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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 삼독과 팔고, 시조에 품어

메마른 땅 거친 산을 땀방울로 일군 자리 / 삽날 끝에 묻은 꿈이 용케도 돋았구려 / 여름내 쓰다듬는 정을 한 바구니 담으리 - 시조 땀방울에 젖은 보람 전문. 민전 정교관 선생이 시조집 <땀방울에 젖은 보람>(도서출판 동경)을 펴냈다. 표제시 땀방울에 젖은 보람은 시조시인이 된 경제학도, 정교관 선생의 <시조생활> 제108호 등단작. 늦둥이로 등단하여 어설픈 말 조각들을 주워 모아 설익은 시조집을 엮어보려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정교관 선생은 왜 시조를 짓는가 스스로 묻는다. 그러면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 휴머니티, 시대정신을 연소시켜 영원을 탐구자 함이었다고 답한다. 세계전통시인협회 유성규 회장은 정교관 선생의 작품은 철학성이나 예술성이 두드러져 모두들 놀라게 했다며 그를 한국의 자랑이라고 추켜세웠다. 시집은 제1부 산촌생활, 고향생각, 제2부 4계절 생각, 제3부 농촌사랑, 나라사랑, 제4부 시문회수업, 제5부 동시조, 제6부 여백 단상, 제7부 시문회 자료 작품, 제8부 덧붙임 등 총 8부 204쪽으로 구성됐다. 문학평론가 김봉군 시조시인은 시조집 평설 노작의 보람과 초월의 시학을 통해 민전 정교관 선생은 인생길의 삼독(三毒)과 팔고(八苦)를 극복초월하기 위해 바위와 소나무 표상의 강건성에 의지한다며 그의 시조에 일관되어 흐르는 에너지는 긍정적 세관과 낙관적 비전이며, 허다한 인생고, 시대고를 초극하게 하는 것은 시인의 결곡한 신앙이다고 평했다. 정교관 선생은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원장, 한중 경제무역 촉진협회 고문, 중국 계속교육 연합대학원 객좌교수를 지냈다. 현재 전국새마을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새마을 운동의 서천>, <새마을 교육행정의 특성과 운영원리>, <여래미리 높은 재>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2.31 19:2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소설가 -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사람은 무엇을 위해 싸우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자, 그 방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이광재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를 추천한다. 수확을 얻으려는 자 논을 갈 듯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자 저들은 묵은 세계에 날을 박아 숨을 끊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로부터 125년이 지난 2019년에 이르러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지정되었다. 2020년은 동학농민혁명 126년이 되는 해이고,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이 된다. 고부민란으로부터 1년여에 걸쳐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의 동학농민군은 뒤에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그 맥락은 31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역사적 사료가 되는 개인의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다시 겸허해지는 시간의 경계를 건넌다.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는 현란할 만큼 매력적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인물의 힘과 문체가 그것이다. 첫째로, 시대의 상징을 관통하는 힘을 이해하는 것이 소설의 출발이다, 또한 가장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제목이다. 이광재 작가는 전봉준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의 세상은 이 세상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란 저 너머에 있을 어떤 것이고 유토피아 또는 꿈같은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하는 장면에서, 싸움을 멈추라는 어명을 두고 병사 하나가 일어나 들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리쳐 두 쪽을 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나라 없는 나라》195쪽) 둘째로, 이광재 작가는 인물의 중심에 전봉준을 두고, 동학농민과 함께 현실적으로 연대했던 대원군이 어떻게 됐나를 세웠다. 변화하는 백성 상으로는 을개로서 대변하게 하고, 당시 조선 젊은 지식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정치사에서 어떤 역할을 차지했는지를 다뤘다. 세상의 중심을 향해 육박하는 큰 힘이 백성임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끼는 대원군을 향해 전봉준은 반도 없고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주인인 까닭에 망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에게 소중하여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강병한 나라 아니옵니까?라며 거리낌이 없다. 전봉준과 대원군, 대접주와 두령들, 을개와 갑례, 이철래와 호정, 장팔이와 손네. 단지 이름만 나오는 것까지 포함해서 육십여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세대가 다른 사랑법도 애절하다.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소설 역시 우리 삶의 터이며 작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직립이 가능해지는 세계라는 가능성을 배운다. 글쓰기의 실제가 시대와 삶의 모법 답안은 아니라 해도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기 때문에 《나라 없는 나라》가 주는 열망은 뫼비우스 띠가 되어 독자에게 돌아온다. 독서의 시작과 끝이 독자인 것처럼. 셋째로, 작가의 문체다. 일상적이지 않은 의고체의 낯섦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잠시 책을 덮게 했지만, 바로 책장을 열고 각각의 문장을 더듬게 했다. 이광재 작가는 서술어조차 긴장을 놓지 않는, 작가적 책임감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장의 맛을 장편에 표현해냈다. 또 그는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나라 없는 나라》 이후 전혀 다른 문체인 《수요일에 하자》로 승부를 걸었다. 이광재 작가의 다른 글도 추천한다. 우리는 어둠을 원하지 않는다. 평화롭고 따뜻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서울로 압송되어 함거에 실렸던 전봉준의 사진 한 장, 그 눈빛의 날카로움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꿈꾸기 때문이다. 농묵 같던 어둠이 묽어지자 창호지도 날카로운 빛을 잃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을 기억한다. *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정숙인 소설가는 역사를 마주보는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백팩과 빛의 증거와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9:22

사랑과 그리움, 사유 시로 풀어내다

정읍 출신인 황정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첫 입맞춤으로 시작하기>(도서출판 북매니저)로 사랑과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걸작을 향한 발버둥과 밤샘을 건너가는 고투에도 능력 밖의 거룩한 시를 꾸미려 했기에 거의 미완의 졸작이라고 소감을 쓴 황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내는 만큼 안이한 시적 감상을 조금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이번 시집에는 수필 같은 사유 시와 시의 운율을 닮은 수필을 나란히 차려놓았다. 문학의 깊은 사유나 철학이 아니라 감정의 본능적 묘사가 운문으로 튀어나오면 시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그러한 시의 상차림에는 지각과 경험의 음식이 담겨 있다. 내 첫 입맞춤이라는 단상을 시작으로 △사랑이 싹트다 △사랑이 자라다 △사랑이 익어가다 △사랑이 그리움 되다 등 4가지 주제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나눠 엮었다. 황정현 시인은 정읍 신태인 출신으로 익산 남성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계간 <시선>과 <에세이 문학>을 통해 시와 수필 문학계에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두리문학, 영호남수필, 큰샘수필 회원으로 있으며 전북문예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계절의 연가>와 수필집 <시간의 바람꽃>이 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2.31 16:29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차승호 "동화,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세계"

차승호 동화와 동시를 쓰고부터 매년 연말이 조마조마하다가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연필을 더 깎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2월 중순이 넘도록 통보가 없어서 신춘문예하고는 인연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말은 우울하게 보내지 말라는 듯 위로의 전화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화와 동시를 쓸 때면 늘 마콘도가 생각납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공간이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이 갖는 의의보다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에 더 매료되었습니다. 마콘도에서는 흙을 먹을 수도 있고,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고, 연금술로 금을 만들 수도 있는 동화적인 공간입니다. 마녀처럼 오두막에서 수십 년을 지낼 수도 있고, 나무에 묶였지만 나무의 일부가 되어 살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마법의 공간인 셈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연필을 깎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콘도와 같은 나만의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보이는 시골집의 밤처럼 말이지요. 오랜 시간 시를 쓰다가 몇 해 전부터 동화와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결과를 빨리 보고 싶은 조바심이 생기지만 문학에는 왕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우직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천 리를 보고자 누각의 한 층을 더 오르는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기회를 준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차승호 작가는 충남 당진 출생으로 지난 2004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얼굴 문장>, <난장> 등을 펴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 - 차승호

어른용은 어디 있지? 아빠는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 사이트를 뒤지고 있어요. 우주복을 사기 위해서지요.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서 우주복을 사오라는 전화가 왔거든요. 우주복은 위아래가 붙어 있고 밑이 트인 옷이에요. 아기들이 주로 입는 옷이지요. 밑이 똑딱단추로 되어 있어서 기저귀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셔요. 벌써 일 년이 다돼가요. 지난겨울 마당을 치우다 쓰러지셨거든요. 그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요. 오른손이 떨려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들지요. 어른들은 중풍이 와서 그렇대요. 아빠, 이번에도 할아버지랑 짜장면 먹나? 그럼,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얼마나 좋아하신다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좋아하셔요. 이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아서 거의 씹지 않고 삼켜요. 그래도 짜장면을 드실 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져요. 턱받이와 얼굴에 짜장 범벅이 되어도 합죽하게 웃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아빠도 나도 짜장면을 좋아해요. 아빠, 손 짜장면이 뭐야? 손 짜장면? 면발을 기계로 뽑지 않고 손으로 뽑아서 만드는 짜장면이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거든. 할아버지하고 단골로 가는 요양원 앞 만리장성은 손 짜장면집이에요. 만리장성 주인아저씨는 러닝셔츠 차림에 하얀 위생 모자를 쓰고 있어요. 짜장면을 주문하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 밀가루 묻은 손으로 짝짝 박수를 두 번 쳐요. 면발을 뽑기 위한 준비운동인가 봐요. 그러고는 밀가루 반죽을 늘이기 시작해요. 고무줄처럼 늘인 밀가루 반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마른 밀가루도 팍팍 뿌려요. 늘인 밀가루 반죽을 반으로 접고 또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밀가루 반죽을 늘이고 접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가느다란 면발이 돼요. 한 번 접을 때마다 면발이 곱빼기로 불어나거든요. 쿵쿵, 쿵쿵, 쿵쿵. 21=2, 22=4, 24=8. 면발 내리치는 소리에 맞춰 나도 모르게 구구단을 외우기도 해요. 쿵쿵, 쿵쿵. 면발 불어나는 신호예요. 짜장면이 곧 나올 것 같아요. 찾았다.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만드나 보네. 어른용 우주복을 찾았나 봐요. 그럼 할아버지가 우주인이 되는 거야? 우주인이 되려면 머플러도 있어야 되는데. 머플러? 어린 왕자는 긴 머플러를 하고 있잖아. 어린 왕자가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어린 왕자는 B612호 소행성을 떠나 지구별에 왔거든요. 그러니까 우주인이 틀림없지요. 아빠, 어린 왕자 안 봤어? 항상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글쎄, 할아버지는 어린 왕자도 아닌데 머플러가 필요한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평소에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해요. 요양원으로 모신 것에 대하여 늘 마음 아파해요. 어떤 때는 밥 먹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봐요.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라고 짐작해요. 아빠, 밥! 요양보호사 아저씨는 가끔 할아버지가 아빠를 찾을 때가 있다고 해요.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는 얘기예요. 농사일을 하는 아빠는 생각만큼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해요. 앞으로 좀 더 자주 와야겠네요. 말끝을 흐리며 아빠는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두 눈이 금세 붉어져요. 그럴 때면 나는 얼른 이불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 발을 주물러드리며 아빠에게 말을 걸어요. 아빠, 할아버지 발 정말 크다. 그치! 지난 할아버지 생신 때였어요. 생신은 집에서 보내야 된다며 할아버지를 모셔왔어요.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은지 주름살투성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어요. 할아버지가 웃을 때마다 주름살도 따라 웃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드셔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는 여러 번 설사를 하셨어요. 아빠는 밤새 기저귀를 갈고 물휴지로 할아버지를 닦았어요. 아빠, 출발 안 해? . 다음날 아빠는 자동차 시동을 켜놓고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았어요. 부릉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차 안 가득 떠다녔지요,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 아빠는 말없이 앞만 바라봤어요. 아빠는 할아버지를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빠, 울어? 울긴 이 녀석아! 깊은 한숨과 함께 차가 출발하자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뼈만 남은 할아버지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어요. 손가락이 몰려서 조금 아팠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어요. 요양원까지 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내 손은 따뜻하게 아팠지요. 할아버지, 짜장면 먹으러 가야지? 우주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듬성듬성 남은 이로 벙긋벙긋 웃어요.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우주복을 입고 나니 할아버지는 영락없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인 같아요. 와, 할아버지 짱! 할아버지, 광선검은 어디 있어? 내가 엄지를 치켜들자 할아버지가 뭐라고 뭐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뭐라고? 웅얼웅얼, 웅얼웅얼! 할아버지는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해요. 할아버지 말을 해석하려면 할아버지 입모양을 살펴야 돼요. 어떤 때는 바짝 귀를 대고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요. 이 빠진 우주인 말이라서 어려운가 봐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우주인도 아니면서 아빠는 할아버지 말을 용케 알아들어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맞장구도 쳐요. 그류그류, 그렇구먼유. 아빠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동안 동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해요. 내 친구 현주네 검정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는 얘기까지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그렇다니께유, 글쎄! 어떤 때 보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을 하고 아빠는 아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하고 얘기할 때면 아빠는 항상 사투리를 쓰는데 한 번도 시골을 떠난 적이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런가 봐요. 그게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웃은 적도 있어요. 아빠는 어떻게 할아버지 말을 잘 알아들어?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나타나거든. 어, 정말? 어른들은 얼굴만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안다는 게 정말인가 봐요. 너희들 얼굴에 다 나와 있으니까 핑계 대지 마라! 선생님도 숙제를 해오지 않은 친구들을 꾸중하실 때면 꼭 얼굴에 다 나와 있다고 하시거든요. 와, 아빠! 선생님 해도 되겠네! 휠체어에 옮겨 타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드시러 가요.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울 때마다 요양보호사 아저씨랑 아빠는 땀을 뻘뻘 흘려요.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 몸이 굳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할아버지와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건 즐거워요. 여느 때처럼 면발 뽑는 모습을 구경하며 모람모람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에 군침을 삼켜요.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는 언제나 군침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에요. 할아버지는 꿀꺽, 아빠는 꿀컥, 나는 꼴깍. 그러고는 할아버지 한 그릇. 아빠 한 그릇, 나도 한 그릇 짜장면을 먹어요. 맛있어요. 할아버지, 또 올게. 요양원에 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헤어질 때면 짜장면 사드리러 또 오겠다고 약속을 해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도 찍고 손바닥을 펼쳐 복사도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조심조심했지만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요양원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열이 심하게 올라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다는 전화예요. 하루에 두 번 면회가 되는 중환자실이래요.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셔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했어요. 중환자실 면회를 다니면서 짜장면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요.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니 못 드셨기 때문이에요. 간호사 선생님이 미음만 겨우 드신다고 걱정했어요. 미음도 몇 숟가락 안 드세요.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 하셨어요. 우주인 말도 하지 않고 벙긋벙긋 웃지도 않았어요. 정신이 들면 입으로만 힘없이 웃었어요. 폐렴이 문제야. 환절기를 잘 넘겨야 할 텐데. 아빠는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훌쩍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건 아닐까?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요구르트 한 병도 다 못 드셨어요. 몸은 점점 새우처럼 둥글어졌어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것 같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주 깊은 잠에 빠졌어요. 몇 번 잠자는 모습만 보다가 왔어요. 어디서 전화만 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할아버지 안부를 묻는 동네 어른들께 아빠는 또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 . 아버지, 저희 왔는데 눈 좀 떠 보세요! . 날이 밝았어요. 바람도 불지 않고 햇볕이 따뜻해요. 어제저녁엔 비가 조금 내렸거든요. 아빠는 날씨가 나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하늘은 맑고 투명해요. 우주정거장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란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요. 할아버지가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날이에요. 나는 할아버지 사진을 넣은 커다란 액자를 들었어요. 액자 속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셔요. 직장 때문에 자주 내려오지 못했던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요. 고모도 고모부도 슬퍼해요. 할아버지는 누에고치 같은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나무 캡슐에 들어가 계셔요. 우주여행용 캡슐 속에 잠들어 계셔요. 할아버지는 잠자는 우주여행을 선택하셨거든요. 나이가 많아서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더 늙어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에요. 어느 때고 할아버지별에 도착하면 깨어나실 거예요. 할아버지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몇 번씩 옮기며 노을을 바라볼지도 모르지요. 노을을 바라보며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별에도 짜장면집이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지구별에 다시 올 때까지 만리장성 짜장면집이 장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 할아버지하고 아빠하고 나는 또 손 짜장면을 먹으러 갈 테니까요. /차승호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우주여행으로 생 마친다는 전개 참신

/안도 시인아동문학가 올해 신춘문예에서 동화는 106명이 117편을 응모했다. 이를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출신 김근혜, 이경옥, 장은영 동화작가들의 예심을 거쳐 9편이 본심에 올려졌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올해 응모 동화들을 보면 대부분 애완동물, 치매 및 노인문제, 다문화 등의 소재가 많았다. 이 외에도 가족 간의 사랑, 현실비판, 자연보호, 이웃돕기 등의 주제에다가 아이들의 마음세계를 양념처럼 담은 작품들이었다. 동화의 본질은 어린이를 위해 쓴 문학의 한 갈래로써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따라서 동화를 창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이 어린이임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올해 신춘문예에서는 성인들의 이야기지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본선에 올라온 9편중에서 깜장묵 베프, 홀씨요정 들레, 뻥튀밥 귓밥, 우주인 할아버지 4편을 최종심에 올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깜장묵 베프는 다문화 가정이야기인데 제목부터 아무리 통용되고 있는 외래어라고 하지만 베스트 프렌드도 모자라 베프라는 줄임말이 동화에서까지 난무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홀씨요정 들레는 고향집에 민들레를 남겨놓고 향수를 느끼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제목 홀씨는 식물이 암컷과 수컷의 교배 없이 이루어지는 생식을 위하여 형성하는 세포로 민들레는 홀씨가 없어 잘못된 표현이다. 이 두 작품은 내용에서도 일상의 이야기를 너무 작위적으로 꾸며서 신선감이 떨어진다. 뻥튀밥 귓밥은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의 속어인 뻥을 소재로 나쁜 소리를 많이 들으면 왕귓밥이 생긴다는 내용의 신선한 전개를 했는데 산만한 구성과 과다한 주제의식이 노출되었다. 반면 우주인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손쉽게 갈기 위해 입은 옷을 우주복으로 명명하고 일상을 우주와 결부시켜 마지막에는 우주여행으로 생을 마친다는 전개가 참신해서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러나 동화적 감각은 좋지만 이상과 현실의 관계 설정이 모호해서 주제가 빈약했다. 앞으로 신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미래세계에 대한 비전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어넣어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어린이 세계를 주제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끌어들이면 좋은 동화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안도 시인아동문학가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오은숙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은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오은숙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당선 소감을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할까. 아니면 BTS의 노래를 검색해서 그것으로 채울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만을 나열하고 끝낼까. 생각만 오갈 뿐 적당한 것이 없다.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꼴이다. 어떻게든 내 안에 있는 것을 써야 한다. 소설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끙끙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순간이지만 오래도록 살아 있는 느낌. 느낌 안에 숨어 있는 감정. 이런 것이 내게는 소설적 진실이다.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호기심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다. 소설적 진실에 대한 천착. 천착으로 끝나지 않는 소통. 현재로선 그것이 소설에 대한 나의 비전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소감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해 난감하다. 이럴 땐 기분 전환하듯 문단이라도 바꿔야 한다. 어둑한 밤이다. 지나온 삶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잘 가라고. 다시는 비틀거리지 말고 기웃거리지 말고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절망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쓰라고. 미래의 삶 또한 같은 말을 하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좋다. 기꺼이 가겠다. 나는 애써 두려움을 떨쳐낸다. 어머니, 아버지와 삼 형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가족으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당신들의 안녕을 빕니다. 소설을 쓰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신 윤후명 선생님과 동서문학 멘토링의 연으로 만나게 된 이태형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다연 선생님과 현숙, 현진 언니 당신들이 주신 사랑 고마워요. 항상 기억 할게요. 효진, 희단, 서진과 등단을 제 일처럼 기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끝으로, 세상에 눈을 뜨게 한 K와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오은숙 작가는 현재 요양 병원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을 오가며 창작 수업을 들었다. 앞으로도 일하며 글쓰는 단순한 삶이 이어질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납탄의 무게 - 오은숙

안전수칙과 총기 사용법을 들은 후였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던 나는 박의 옆 라인에 자리를 잡았다. 십 미터 사격이라 그런지 표적지와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청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을 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계속 지켜보겠다는 듯 서 있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왼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납탄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사격이 끝나면 총기도 수거해야 한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말했다. 알겠으니 자리 좀 비켜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스타디움식 의자가 수백 개 놓여 있는 관중석 뒤로 갔다. 그가 통로 쪽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린 나는 들고 있던 총과 총알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총 길이는 생각보다 길었고 총알은 장난감 총에나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짝이 맞지 않는 볼트와 너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던 총이 아니었다. 권총이 아닌 것 같아. 혼잣말이었는데 목소리가 컸는지 박이 듣고 말했다. 공기 권총이라 일반 권총보다 길어서 그럴 거라고. 권총의 종류가 많다는 것인지, 일반 권총과 공기 권총만 있다는 것인지 그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쏴. 그녀가 툭하고 뱉은 후 옆으로 선 채 총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냥 쏘면 되지. 나는 총을 든 손 위로 시선을 옮겨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네 개의 붉고 작은 결절은 한 시간 전보다 더 부어올랐다. 엄마에게 물린 자국이 두드러기처럼 부어서 가라앉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매를 맞거나 꼬집혀도 피부 재생이 빨랐는데 나이가 들면 체질도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기도 했잖아. 그때도 그냥 하면 되는 거였어. 삼 년 전, 나는 장편 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가까스로 얻은 기회였으나 제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가 수정되기를 원했다. 수없이 고친 시나리오에 트집을 잡으며 시간을 축내던 나이 어린 제작자의 마음을 나는 돌리지 못했다. 결국, 장면 하나 하나에 제 입김을 넣으려던 제작자에게 맞서고 말았다. 그는 설정만 좋고 아무 것도 없는 시나리오에 투자할 사람이 자기 말고 누가 있는 줄 아느냐고 했다. 너 말고도 그런 식으로 뜯어고칠 사람은 많아, 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뭐, 너? 이게 아주 이성을 잃었구나. 마흔 넘어 영화 한다고 징징대는 것이 불쌍해서 봐줬더니. 제작자는 나를 몰아붙였고 나도 지려 하지 않았다. 막말이 오갔고 찍기로 한 영화는 엎어졌다. 그즈음, 집 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바람에 방을 빼야 했는데 더 싼 월세 방을 찾아 서울 변두리를 전전하다 영화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 정상에 오르기는커녕, 산 아래서 등산로 입구만 찾아 헤매다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불에 생리혈을 묻혔을 때나 도시락 통을 꺼내 놓지 않은 다음날, 씻지 않은 도시락 통에 담긴 미끈거리던 밥알을 씹었던 때가. 그럴 때 엄마는 내가 두 아들보다 게으르고 못돼서 평생 고생할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내 주제에 감독은 무슨, 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웃었다. 박은 졸업 한 뒤 바로 방송국에 취직했다. 그녀를 통해 들은 바로 그녀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지지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졌으며 야무진 그녀는 원하는 것을 놓치거나 실패해 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믿어주었던 그녀 엄마 덕분이리라. 누구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박을 알게 된 후로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업한 그녀가 첫 월급을 탄 날이었다. 이차도 내가 살게. 한정식 집을 나오며 그녀가 말했다. 다섯 명의 밥값을 치른 후였다. 마흔 전에 집 살 거라며, 무리하지 마. 누군가 말했고 친구 중 한 명이 회비를 걷자고 거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 모임이라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알아서 생각해주던 말이었다. 그녀는 첫 월급이라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이런 식으로 살면 집은커녕 생활비도 힘들겠다. 방송국을 아무나 들어가나, 저도 기분 내고 싶겠지. 평생 가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마흔 전에 집을 산다고. 그러니까, 철이 없는 거지. 저마다 한 마디씩 뱉은 후 잔을 들었다. 나는 노가리를 뜯으며 생각했다. 그녀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화장실로 간 뒤에 나누던 대화여서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노가리만 뜯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함께 잔을 들어올리자는 시늉을 했다. 박은 내가 월세방에 살면서 영화 현장을 전전할 때 국내는 물론 세계의 정치, 경제 뉴스를 파더니 주식을 시작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았지만 투자를 하려고 그녀처럼 국내외 정치, 경제를 공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손해를 몇 번 본 후,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 아파트 값이 모아지자 과감히 주식에서 손을 뗐다. 동기들은 평생 운을 다 쓴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한 종목의 주식을 사고파는데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代價)로 여겼다. 박을 보면서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영화에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다. 착실히 돈 모아서 시집가라던 엄마 말은 귓등으로 날려버렸다. 박은 삼십 대 중반에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역시, 난 년이야. 집들이에 초대된 동기들은 말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에서 한 번도 눈을 돌린 적이 없었다. 야무진 그녀라면 제작자와 마찰을 빚기 전에 다른 대안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용산역까지 배웅 나온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선택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선택했으니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나도 그러길 바랐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엄마 손을 잡고 근처 공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밤근무를 나가기 전 한 시간 정도 자려고 알람을 맞출 때 박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항상 똑같지, 하고 답했다. 사이를 두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짧게 들이마신 뒤 내뱉은 긴 숨이었다. 그녀는 아파트를 팔고 작은 빌라로 이사할 생각이라며 똑같은 방식으로 숨을 쉬었다. 왜, 하고 묻던 내 목소리가 그녀의 한숨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대뜸 말했다. 땅으로 꺼지고 싶어.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어. 나는 또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일이야 항상 있지. 그녀가 더는 묻지 말라는 듯 자신이 뱉은 말을 눙쳤다. 그러더니, 그녀가 아니면 추석이나 설날도 그렇지만 어버이날조차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를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만 바라보고 산 엄마가 짐으로 느껴진다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믿어주기 바빴던 엄만데, 왜.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켰다. 몇 주 전, 그녀의 전화를 다시 받았을 때 그녀는 내가 일하는 요양 병원으로 엄마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그녀 엄마는 오 년 전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요양원 생활을 하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울 근교에 있는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 엄마는 특이하게 정수기 물 대신 특정 상표의 생수를 마셨다. 요양원에서 오백 밀리미터 생수 한 병을 하루에 다 마시도록 했는데 요양 병원에서도 같은 상표의 물만 고집했다. 그 물을 마시면 기운이 난다고 했기에 그녀는 매번 생수를 사가지고 엄마를 만나러 가거나 생수를 주문해 택배로 보냈다. 생수와 간식만 해결되면 내가 일하는 병원에 엄마를 맡기고 일 년 정도 인도로 나가 있고 싶다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사직서를. 그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버티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돌아와서 무얼 하겠냐며 다그쳤다. , 생수와 간식을 부탁하면 안 될까. 카드 주고 갈게. 그녀 집에 얹혀살았던 적이 있던 내게 그녀가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었다. 더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알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선택한 것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는 확답이라도 받고 싶은 듯 몇 번이나 생수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던 나는 걱정 말고 준비나 잘 하라고 했다. 이삿날을 알려주면 오프를 받아 올라가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계는 명확해지고 삶은 어떤 식으로든 뚜렷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오래 전 생각은 틀렸다고.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어도 그때뿐이었고 영화 감독을 꿈꾸며 청춘을 보냈어도 남은 것은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늙은 엄마가 전부인 우리는 마흔 여섯의 나이에 흔들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두 시간 전, 박을 만나 그녀 엄마 입원 수속을 도왔다. 병원에 미리 말해둔 터라 수속은 금방 끝났지만 그녀는 엄마가 점심을 먹는 것까지 보고 가자고 했다. 어서 올라가서 짐 싸야지.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왜 이렇게 굼떠. 그녀 엄마가 병실 안에서 서성이던 박을 부르더니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이거 갖고 어서 올라가. 빨리 가야, 빨리 오지. 박의 엄마는 박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그런 뒤 박을 밀어내던 낯빛이 차가웠다. 쌀쌀맞다기보다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듯 올찬 표정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해내려고 잠시 떠나는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그러니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병원을 나온 후 박은 서너 시간 여유가 생겼다며 임실에 있는 종합 사격장에 가자고 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고 기본 열 발만 쏘고 오자고 해서 나도 그러자고 했다. 사격장으로 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창밖 풍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도심을 빠져 나온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어. 운전을 하고 있던 박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나도 그래. 추임새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네 엄마는 우리 병원에 있잖아. 내 목소리가 퉁명스러운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 자개는 아니구나. 박은 여전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말을 하고 나서야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그녀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라도 떨쳐내려고 그녀에게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다고 말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어쩌면 그녀도 그녀만의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내게는 말하지 못한 그녀만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시골 길을 지나 산 중턱으로 오르자 사격장 건물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 막혔다. 자개농 안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급하게 나오면서도 안방에 있는 에어컨을 켜고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입구를 달리한 건물 세 동 앞에서 박이 주춤거렸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반 년 전까지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는 은퇴한 사격 선수였다. 나는 그녀가 그와 함께 이곳에 왔던 기억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와 함께 사격장을 찾았던 그녀가 나를 만나고 갔었는데 그때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었다. 저 바윗돌을 지났는데. 박은 손가락으로 중앙에 세워져 있는 바윗돌을 가리켰다. 바윗돌에는 사격인의 요람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연습을 하거나 대회를 치르려고 많이 찾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장난감 총조차 잡아본 적 없었던 나는 그렇게 그녀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탁, 소리가 났다. 총을 쏜 것은 박이었다. 공중으로 날아간 탄알이 정확하게 표적지 중앙을 뚫었으리라. 기대감을 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모니터를 보았다. 6점이었다. 사격을 해본 사람치고는 좋은 점수가 아니었다. 첫발이라 긴장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총을 겨눴다. 총 머리 부분에 패인 홈은 가늠자, 총구 쪽에 볼록 솟은 곳은 가늠쇠였다. 달리 말해, 가늠자와 가늠쇠는 음과 양이었다. 0.5밀리미터가 될까 싶은 음과 양이 평행을 이룰 때 방아쇠를 당기라고 청원 경찰은 말했다. 수평을 이룬 음과 양은 미세한 떨림에도 쉽게 틀어졌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고 최대한 손 떨림을 없앴다. 십 미터 밖 검은 동그라미를 향해 총구를 맞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탁, 소리가 난 후 내 앞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여러 개의 검은 동그라미 중 하나에 구멍이 뚫렸다. 9점이었다. 처음인데 잘 하네. 박의 칭찬을 듣고도 나는 무덤덤했다. 처음인데 잘 하네. 오래 전에 그 말을 들었다면 엄마를 자개농에 가두지 않았을까. 열다섯 살 때였다. 하루는 엄마가 고등어 두 마리를 던져주며 말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명태나 고등어로 찌개를 끓인 적은 있었지만 엄마가 깨끗하게 손질한 것에 칼집을 넣어 끓인 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배를 가르고 핏물을 뺀 뒤 토막 쳐서 김치와 물을 넣으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바쁘면 고등어 손질을 내게 맡기고 나가버렸을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용기를 냈다. 도톰하고 하얀 고등어 배 위에 칼을 댔다. 솜씨가 없어서인지 칼이 무뎌서인지 쓱싹대길 반복했다. 피가 섞인 내장이 칼끝을 비집고 나올 때 엄마가 돌아왔다. 처음인데, 잘하네.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배 갈라서 핏물 씻어내고 토막 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엄마가 뱉은 말은 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후볐다. 엄마는 딸인 내가 그 정도는 도와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더 퍼붓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엄마가 자개농을 배달시켰다. 가구점 직원이 자개농을 안방에 들여놓을 때 나는 끓고 있던 고등어찌개 간을 맞추고 있었다. 석자 반 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요. 들뜬 목소리가 안방 너머에서 들렸다. 엄마가 가구점 직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농을 왜, 어울리지 않게 우리집에 놓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고등어찌개를 끓여놓으라고 해놓고 자개농을 사러 갔다는 사실이 얄궂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자개농에 내가 밀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는 곱씹었다. 처음인데 잘 한다는 칭찬 한마디 없이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던 엄마의 악다구니를. 탄알을 넣고 방아쇠 왼쪽으로 길쭉하게 휘어진 쇠막대기를 앞으로 꺾었다. 딸각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건드리면 탄알이 나갈 수도 있다고 했기에 총을 든 손을 조심스럽게 쭉 폈다. 총을 쏘는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했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숙련자들도 그렇다고 박은 말했다. 매번 같은 일상이지만 정확히는 다른 날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처음에 9점을 쏜 것과 다르게 내 점수는 내리 평균점을 밑돌았다. 박은 6점을 쏜 후로 갈수록 점수가 올라 방금 전에는 10점 만점을 받았다. 우리는 탄알 두 발을 각각 남겨 놓은 상태였다. 남은 두 발 중 한 발이라도 표적지 중앙에 구멍을 뚫었으면 하고 바랐다. 박을 따라 하느라 한 손으로 총을 쏜 탓에 아까부터 심하게 손이 떨렸다. 가늠자와 가늠쇠는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들쑥날쑥 요동을 쳤다. 테이블에 총을 내려놓고 오른 손을 탈탈 털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삼각근을 주물렀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근육은 알이 배긴 듯 뭉쳐 있었다. 총 무게가 1.5킬로그램이래. 박이 납탄을 집으며 말했다. 무겁다는 것인지 가볍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총을 들고 있는 동안 내 손은 심하게 떨렸지만 박은 알지 못했다. 무게가 1.5킬로그램이라는 말만 하고 자신의 총을 들어올렸다. 나도 그녀같이 한 손으로 총을 들며 웅얼거렸다. 너는 무겁지 않은 거구나. 탁, 소리가 났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녀의 모니터에 10이라는 숫자가 더해졌다. 처음에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든 후 방아쇠를 당겼다. 자세에서 초보자 티가 나는 것 같아 박을 따라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로 총을 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따라 하느라 애먹은 것은 아닌가. 멋쩍은 마음에 총을 들고 있던 손으로 화장기 없는 볼을 문질렀다. 볼에 닿은 손가락이 이상하게 꿉꿉했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 감촉이 손가락 끝에 엉겨 있는 듯했다. 어제 저녁, 나는 욕조 안에 앉아 있던 엄마 등을 밀었다. 일하면서 살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엄마를 씻기지 않아 밀어도 밀어도 때가 나왔다. 그럴수록 나는 더 세게 밀었다. 너무 세게 밀어 붉게 변한 살을 보자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오히려 시원하다고 했다. 영화 한 편 볼 여유 없이 집과 병원을 오가며 엄마를 돌봤어도 엄마 살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몽글몽글 손에 잡혔다. 제 엄마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내가 박의 엄마에게 간식과 생수를 사다주며 얼굴을 비추겠다고 했다. 허세였나, 오지랖이었나. 쓴웃음이 나왔다.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인도로 떠나는 박이 부러워졌다. 엄마의 아픈 손과 아픈 손이 닿지 않는 몸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욕조 안을 둥둥 떠다녔다. 무엇인가 되겠다며 버둥거렸던 지난 시간이 스쳤다. 고생만 하다가 떨어져 나왔구나, 둥둥 떠 있는 때 같아. 불쑥 떠오른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미련스러웠다. 머리를 가로 저었다. 엄마 등을 위아래로 밀었다. 손가락에 마치는 등뼈 열두 개가 빨래판 물결인 양 울퉁불퉁했다. 더욱 세게 밀었다. 그 옛날 엄마가 해주던 목물처럼 까슬하고 아프게. 때를 미는 일이 힘에 부쳤다. 허리를 펴고 이마에 흐르던 땀을 훔쳤다. 안 아파? 엄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시원해. 엄마는 둥둥 떠 있는 때를 손으로 퍼서 욕조 밖으로 걷어냈다.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원하다는 말이지. 나는 살갗이 붉어진 엄마 등을 보았다. 응. 들려오던 목소리가 태연했다. 왠지 억울했다. 응, 이라는 대답이 고등어 배를 갈라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하고서는 자개농을 사왔던 날 내게 했던 말로 들렸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침이 되어 상을 일찍 물렀다. 박을 만나려면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빠는 매 끼니 뒤에 달달한 믹스 커피를 두 잔 타서 엄마와 함께 마셨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작년 이후로 그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커피 두 잔이 담겨 있는 쟁반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식초 탄 물에 마른 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푸르딩딩한 구름과 희뿌연 달 아래로 두 마리 학이 부리를 맞대고 서 있는 자개농 문을 닦았다. 아무리 닦아도 코팅 된 자개는 제 빛을 내지 않았지만 엄마는 수시로 걸레질을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서 다 지워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지워진 듯 사라진 듯 기억에도 없다가 어느 날 불쑥 드러났다. 엄마 등을 밀었던 전날과 마찬가지로 자개농을 들여놓던 날이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 살지 그래. 나는 깨끗해졌지, 하고 묻던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본새냐며 한 마디 할 법도 했지만 엄마는 조용했다. 말없이 자개농을 닦았다. 삼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개농에 밀렸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자개농만 닦고 있던 엄마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작은 방으로 가서 책상 밑에 있던 박스를 뒤적였다. 장편 영화를 준비할 때 썼던 소품이 들어 있는 박스였다. 박스 속에서 노란색 끈 하나를 꺼냈다. 일 미터 가량 되는 긴 끈을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첫 출근하면서 한 번 신은 싸구려 인조 가죽 구두를 일 년이 지나 신발장에서 꺼냈을 때 삭아서 문드러진 걸 보고 황당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물건에도 기운이라는 것이 있어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빨리 헤진다며 제 물건 하나 간수하지 못한다고 나를 나무랐었다. 나는 긴 끈을 대충 뭉쳐 안방으로 갔다. 자개농 앞에 있던 엄마가 방으로 들어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 엄마가 외마디를 질렀다. 한쪽 문이 열려 있는 자개농 바닥에 앉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개농 속으로 들어가라고! 나는 두 다리를 방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버둥거리던 엄마의 다리를 들었다. 그러자 엄마가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했다.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아프지 않았다. 내 겨드랑이 안쪽 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순간,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얼얼한 통증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엄마 살은 삶은 호박처럼 물컹거려도 자개농 문짝처럼 단단해. 봐봐. 자개농에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지. 이봐, 크기만 했지 아귀힘조차 없는 내 손을. 나는 지금 엄마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자개농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또 꼬집으려고 하지. 몇 개 밖에 없는 이로 어딜 물려고 하는 거야. 그래, 물고 싶으면 물어. 여길 봐. 엄마 이가 내 팔에 깊게 박혔다 사라졌어. 난 피하지 않았다고. 이봐, 깊게 박혔던 이가 자국을 남겼지만 피가 나거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진 않았어. 누군가 울음소리를 듣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엄마 옆엔 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옷장 안으로 들어가세요. 엄마를 가까스로 자개농 안에 넣고 자개농 손잡이 양쪽에 끈을 묶어 야무진 매듭을 지었다. 일인용 침대와 탁자, 의자를 자개농 앞에 일렬로 늘어뜨렸다. 매듭이 풀려도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자개농 문 밖에 있던 틈을 없앴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부터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내 행동은 치밀했다. 울음소리와 함께 쿵, 쿵, 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쉬지 않고 주먹으로 옷장 문을 두드리던 엄마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탁, 소리가 난 뒤였다. 처음 9점을 쏘았던 자세로 방아쇠를 당긴 뒤라서 어떤 점수가 나올지 궁금했다. 모니터를 확인했다. 표적지에 그려진 원 안에도 밖에도 총알이 뚫고 나간 자리가 없었다. 총알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했던 청원 경찰이 생각났다. 스타디움식 의자에 앉아 있던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까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표적지를 다시 보았다. 아홉 발을 쏘았으나 탄알 구멍은 여덟 개뿐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탄알 흔적으로 방금 전, 나는 총을 쏘았지만 총을 쏘지 않은 듯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늘 아침을 거슬러 어제 저녁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다가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엄마에게 물려 부어올랐던 곳이 가라앉았다. 박이 볼까 싶어 가리기도 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붉은 결절이 사라졌다. 박은 이번에도 만점이었다. 왜 그렇게 잘 쏴? 나도 알려줘. 탄알 구멍이 가운데에 몰려 있는 박의 표적지를 보며 말했다. 탄알 한 개만 남겨 놓은 상태라 잘하고 싶었다. 9점은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 상황이라면 5점 이상만 나와도 족했다. 옆으로 쏴, 자세로 서 있던 그녀가 들고 있던 총을 내렸다. 으응, 죽이고 싶은 걸 떠올렸어. 왜, 있잖아. 머릿속에서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죽이고 싶은 게 그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을 죽이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 있는 엄마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이사하게 만든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의지가 되어주는 친구지만 박과 나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애써 캐묻지 못하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탄알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오가는 납탄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는 작은 것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1.5킬로그램의 공기 권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게였다. 실제보다 너무 커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었다. 오래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납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머리를 굴리자 아슴푸레 돋아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단편 영화를 찍고 있었으니 십 년은 족히 넘었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집에 내려왔다 올라가면 왕복 차비를 써야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향집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돈도 없으면서 왜 자꾸 내려오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늦은 나이에 향수병에라도 걸린 듯 그렇게라도 집에 다녀와야 한 달을 견딜 수 있었다. 하루는 집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이 원인이라며 퇴원 전에 한 번 다녀가라고 했다. 나는 그 달에 다녀왔으니 다음 달에 가겠다고 했다. 다음 달 초가 되어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가 퇴원하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촬영과 아르바이트 일정이 빠듯해서 내려온 지 만 하루가 안 되어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 기차를 탈 것이라고 말해둔 터라 간다는 말도 않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서리가 내린 새벽은 어두웠다.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녹슨 대문을 밀고 나오는데 대문 밖에 엄마가 서 있었다. 자다 일어나 바로 나왔는지 위아래 내복만 걸친 채였다. 잠 안자고 왜 나와 있어. 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 가는 것 보려고 나왔지. 키 작은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알아서 갈 건데 나왔느냐며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팬티 고무줄 끈이 보이는 내복 안에 손을 넣으며 내 쪽으로 바투 다가섰다. 흰 머리카락이 내 턱을 쓸어서 엄마 키가 이렇게 작았나, 생각할 때 엄마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편마비가 생겨 어정쩡하게 구부러진 손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가 손 안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다. 됐어, 괜찮아. 그렇게 말한 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며,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에게 지폐를 돌려주려 했으나 엄마는 차비라도 하라며 받지 않았다. 고생이 많지, 우리 딸.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가슴에 박혔다. 무겁고 무거운. 한 없이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 엄마가 먼저 내게 등을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엄마는 내가 가는 것을 보겠다며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대문 안으로 밀고 등을 돌렸다. 힘들면 내려와. 등 뒤에서 들리는 낮고 어눌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괜스레 서러웠다. 쓸쓸한 여운으로 남은 목소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었다. 깜깜한 새벽 도로를 걸으며 손 안에 있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느꼈다. 몇 장일까. 걸음을 멈췄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을 더해 접은 곳을 펼쳤다. 쫙 펴진 지폐는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 돈을 평생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월급날을 앞두고 돈이 떨어졌을 때 집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나는 그 돈으로 칠 천 얼마 하는 무궁화 표를 샀다. 이후로 지금껏 그날 일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 탄알을 넣은 후 총을 들었다. 1.5킬로그램짜리 총은 버둥거리던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을 때처럼 무거웠다. 탄알 하나의 무게와 오래전 종이 지폐 무게까지 덤으로 올려져 있어 그럴지도 몰랐다. 떨리는 손을 한 손으로 받쳤다.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이 내게는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떨어. 그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진작 마지막 탄알까지 10점을 맞췄고 내가 총을 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딴 생각하지 마. 박이 말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것만 권총은 아니라며 그냥 쏘든지 아니면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녀 말 대로면 나는 여태껏 권총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권총은 아니지.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늠자와 가늠쇠가 가까스로 수평을 이루자 방아쇠를 당겼다. /오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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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고달픈 삶,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작품은 기성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소재와 구성으로 주제를 심화해야 한다. 응모작품 대부분 이러한 요구를 잘 만족시키며 일정 수준에 이르렀으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조금씩 흠결을 지니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서사를 이끄는 구성은 완벽한데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했거나 결말에서 집중력이 흩어지는 작품이 의외로 많았다.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치밀하고 완벽한 서사구조가 완성되어야 훌륭한 소설이 된다. 그런 가운데 심사위원의 시선을 끈 작품은 납탄의 무게 불편한 편의점 10cm다. 심사위원들이 다시 이 세 작품을 정독한 결과 불편한 편의점은 오늘날 갈등구조를 일으키는 사회현상을 편의점이란 공간으로 이동시켜 아르바이트 청년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으나 결말 처리가 미숙한 점이 아쉬웠고, 10cm는 의료현장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서사구조가 시선을 끌었으나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한 점이 흠결로 남았다. 납탄의 무게는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사격장을 배경으로 불편한 가족 관계와 고달픈 삶을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나와 친구 박을 대칭 관계에 두고 엄마를 공통분모로 등장시켜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이를 10m 사대(射臺)를 배경으로 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표적지를 고달픈 삶의 현장과 오버랩(overlap)한 구성이 매우 신선하다. 친구 박과 달리 나에게만 무거운 납탄은 바로 그녀의 삶의 무게다. 서사를 전개하는 소설 미학 또한 나무랄 데 없다. 특히 마지막 한 발을 쏜 뒤, 점수 확인을 생략한 채 작품을 마무리한 결말 또한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로서 독립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잘 갖춘 작품이다. 당선한 분에게 축하를, 응모한 모든 분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호운 소설가, 우한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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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김애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 열리지 않는다는 것 알아"

김애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고단한 즐거움입니다. 뼈대를 세우고 옷을 입혀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려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앓기도 했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기가 죽었습니다. 타고난 글재주도 없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밀어 넣고 어정거리며 빠져나갈 틈만 엿보았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그럴듯한 열매 하나 맺지 못했어요. 캄캄한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마다 그만하자고 중얼거리지만 자꾸 뒤돌아보느라 결단하지도 못했습니다. 십여 년의 미련을 접기보다 한해만 더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묵정밭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때마다 거름을 주며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란 낭보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세상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와 땀을 쏟은 만큼의 결실이 신의 조화고 섭리였습니다. 몇 번씩 주저앉아도 늘 묵묵히 지켜봐 주던 가족이 울이 돼 주었기에 튼실한 열매를 얻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함께 격려하며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때로는 쓴소리 아픈 소리로 날카롭게 평해준 포곡수필의 글동무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게으름 부릴 때마다 열정을 쏟지 않는다고 죽비를 내리치듯 꾸지람하다가도, 의기소침해 있으면 어느새 위로와 격려로 다독여 주시던 스승님께 이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쳐진 어깨를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제 글에 눈 맞춤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선으로 선해 용기와 격려를 주신 뜻이 헛되지 않도록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봅니다. 장미꽃이 아닌 잡초라도 나름의 존재가치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니, 더디고 힘들지만 한 걸음씩 저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애자 작가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구 계명대, 경북 경운대 교수를 지냈다.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부문 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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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수필] 망월굿 - 김애자

강 가운데 생긴 섬마을이다. 태백산에서 태어난 내성천(乃城川)과 소백산에서 출발한 서천(西川)이 만나 마을을 휘돌아나가면서 물돌이동을 만들었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수도리 모래사장에는 일 년 중 가장 달이 크게 보이는 정월대보름 달집이 세워진다. 달집을 태우면서 한 해를 시작하면 바라던 일들이 잘 이루어 질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설날보다 대보름이 더 신났다. 농한기의 쉼을 얻은 어른이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명절이라는 이유로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낮에는 연날리기와 지신밟기로, 밤이면 쥐불놀이로 마을은 온통 축제로 들떴다. 절정은 달집태우기였다. 타오르는 불 앞에 소원을 걸어놓고 이루어지기를 빌고 다짐하는 것은 한 해의 농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청년들은 긴 막대로 기둥을 세우고 달집의 뼈대를 만들었다. 집 안에는 불씨가 잘 살아나도록 솔가지며 마른나무, 관솔을 넣고, 밖에는 생솔가지를 쌓아 이엉을 얹어 새끼줄로 감는다. 아이들도 자기주먹 만한 꿈 하나씩 품고 땔감을 보태기 위해 고사리 손을 모았다. 집이 다 만들어지면 달이 보이는 쪽으로 문을 내고 보름달 모양을 만들어 달집 가운데 새끼줄로 매달아 놓았다. 망월이야! 환호성과 함께 불길이 솟아오른다. 붉은 너울의 끄트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자 농악대의 꽹과리소리가 자지러진다. 달집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도 불꽃의 춤사위와 풍악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 보름달의 꼬리가 산 능선을 박차고 둥실 떠오르자 구름이 물러나면서 길을 터준다. 달은 온 세상에 환한 빛을 흩뿌린다. 불이 점점 무섭게 타 오른다. 선홍의 불빛이 검붉은 색이 되어 하늘로 사라진다. 거센 기세로 솟구치는 불길과 강 건너편 숲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나무에 달아놓은 액막이 부적과 소원들도 활활 타 올라간다. 잡아먹을 듯 널름거리는 불의 혓바닥을 빠져나온 불똥이 탁탁 소리를 지른다. 마음속에 쟁여둔 사악함을 몰아내라고 죽비를 치며 호령하는 것 같다. 반백년이 지나는 동안 불뚝한 뱃가죽만큼 쌓아 둔 분노와 욕심의 찌꺼기를 서둘러 내 놓았다. 한기가 뼈마디를 쑤시는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지만 불 앞에 있으니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다. 검붉은 구름이 치솟는다. 땅의 소망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연기에 올라탄 불기둥이 하늘 길을 터준다. 농사의 풍요와 생명력을, 물과 여성을 품은 달이 이루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인가. 여인들은 고쟁이나 저고리 동정을 뜯어 불 속으로 던지며 다산을 기원한다. 풍악 소리가 더 크게 울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인 이들은 일제히 달집 주위를 빙빙 돌며 목이 터져라 강강술래를 불렀다. 불가에 쪼그리고 앉았던 내 어깨도 저절로 들썩거린다. 아랫도리가 후줄근하도록 아낙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붉은 달빛이 흥건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바다의 밀물처럼 내 안의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비릿한 냄새와 축축한 느낌이 께름칙하다. 젖은 속옷을 보자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부끄러움에 온 몸이 오그라든다. 빨강 꽃잎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름적거리며 엄마 눈치만 살폈다. 낌새를 알아챈 엄마가 책상 밑에 숨겨 둔 흔적을 찾아냈다. 엄마는 달거리가 시작된 거라며 작은 소창 생리대를 만들어 주었다. 며칠 동안 선홍의 달빛을 경험한 나는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후미진 곳으로 숨어 다니며 식구들의 눈을 피했다. 가뭄이 심할 때 옛사람들은 붉은 빛이 선명한 소녀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냈다. 당신도 딸의 첫 생리를 신성하게 여겼는가. 엄마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개짐을 정성스럽게 신문지에 쌌다. 뒷마당 한쪽 진 곳에 땅을 파고 왕겨로 불을 피워 성인식을 치르듯 찬찬히 딸의 증거물을 태웠다. 달빛의 흔적이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당신의 얼굴은 달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씨알을 품을 딸의 밭에 나쁜 기운은 재가 되고 막 피어나는 여체女體는 옥양沃壤이 되기를 염원했으리라. 달은 생명의 집이다. 씨를 품는 여인의 몸이며 땅이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를 받은 여인들의 몸에는 창조의 기운이 서려있다. 달집을 태워 액을 없애고 농사가 번성하기를 기원한 것처럼 여성은 생산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치르면서 자신의 몸을 정화시켰으리라. 보름달에서 완숙한 기운을 받은 여자가 달거리로 생명을 불러 후손을 얻으려는 것은 잉태의 근원이 달과 여인의 신비로운 조화에 있음이 아니던가. 여자의 힘이 달을 닮은 자궁에서 비롯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땅의 소원이 달에 닿도록 풍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너울거리는 불꽃 뒤로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올랐다. 달집 속에 매놓았던 달이 언제 뛰쳐나갔는지 동쪽 하늘에 성큼 올랐다가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간다. 광기어린 꽹과리소리에 기죽은 듯 안팎으로 보이는 달의 모습이 처연하다. 시끄러운 소리 속에 표현 할 수 없는 적막감이 감돈다. 생명을 받고 헤어지는 모녀처럼, 뜨고 이우는 달처럼 생과 사의 비밀을 품은 이 땅의 여인과 농민들의 아픔을 다 끌어안느라 힘든 때문일까. 땅을 품고 사는 이들의 몸을 밟고 춤추는 세상사가 올해도 뾰족한 수를 보여줄 수 없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깽 깨갱 깨갱 깽 하늘을 가르는 꽹과리소리가 천둥을 부르자 둥 두둥 구름떼가 몰려든다. 딱 따닥 딱 장구재비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져 무아지경에 이르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지잉 지잉 천지의 기운을 한데 모은 바람이 파문을 그리며 골짝으로 퍼져나간다. 꽹과리, 북, 장구, 징의 사물四物을 앞세운 농악소리가 산천을 누비며 하늘로 올라간다. 불과 물과 달에 만취한 아녀자와 남정네, 늙고 젊고 높고 낮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달집을 돌고 돈다. 올해도 풍년이고, 내년에도 풍년일세.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 나아 네에. 땅의 함성과 하늘의 자비가 공중에서 얼싸 안고 춤을 춘다. 절정으로 치 닿는 망월굿의 오르가즘을 맛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땀으로 흠씬 젖은 육신이 땅의 품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개운하고 편안하다.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진다. 가물거리던 연기도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남은 불똥 몇 개가 튀어나가 어둠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풍악도 시들해지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발길을 돌린다. 불길에 몸을 사르며 사라져간 달집의 흔적은 다시 어미의 품인 토양으로 돌아가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될 게다. 아직 다 못한 소원이 있는가. 모닥불 옆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불야성의 도시로 향한다. 달집을 빠져 나온 보름달이 차창에 올라앉아있다.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웠고 액운도 거두었다며 싱긋 웃는다. 달집에 달아놓은 소원은 다 들어주겠으니 안심하라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돌아오는 밤길이 훤하다. /김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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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수필] 수필장르만이 지니는 미학적 특장 십분 잘 발휘

/전일환 수필가 경자년 새해 전북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을 비롯하여 소설, 수필, 동화 등 네 장르에 750여 분들이 무려 2,000편의 작품을 응모하였다. 가히 물질만능 세상에서 인문학적인 가치나 철학이 미래세계의 청신호가 되고 지렛대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 같아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수필장르엔 217분이 500여 편의 작품을 출원하였는데 응모된 편수만큼이나 좋은 작품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어서 당선작을 뽑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많은 작품들을 천평칭(天平秤) 저울에 올려놓고 오랜 시간동안 경중을 전형(銓衡)하고 선후우열(先後優劣)을 가리는 작업이 대단히 어려웠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수필(隨筆)이란 자의(字義)에서 보듯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라는 장르적 자유로움만큼이나 글쓰기가 어렵다는 역설이 나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우선 많은 작품 가운데 열 분의 작품 호미론, 망월굿, 먼길 옷, 나비물, 낙타가시풀 등 25편 중에서 최종적으로 망월굿을 당선작으로 올려놓았다. 1년 중 정월 보름달이 제일 크다는 대보름날의 절정의례인 달집을 태우는 망월굿을 벌일 때, 작중화자인 작자는 흥건하게 한껏 부풀어 오른 바다의 밀물처럼 내안의 무엇이 붉은 달빛과 한 쌍의 짝이 되어 동대우(同對偶)의 수사(修辭)기교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가뭄이 심할 때 옛 사람들은 선명한 소녀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전통적 풍습을 이 작품 속에 끌어들였고, 엄마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소창생리대를 정성스럽게 싸서 뒷마당 한 쪽 진 곳에 땅을 파고 왕겨로 불을 피워 성인식을 치르듯 찬찬히 딸의 증거물을 소각하였다. 이러한 의례절차에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精氣)를 받은 여인들은 달거리로 자신의 몸을 정화(淨化)시키고 잉태의 근원이 달과 여인의 신비로운 조화(調和)에 있음을 분석하고 재해석하여 풀어낸 점이 다른 작품들보다 돋보였다. 일찍이 루마니아의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달과 물, 여인이 3자간 생생력환대(生生力環帶)를 이루며 풍양(豐穰)과 산아(産兒), 건강(健康) 등에 부합된 생생력의 상징으로 인간의 숭앙대상이 되어왔음을 주장한 바 있다. 작자는 만월인 대보름달과 선홍의 달빛 같은 초경(初經)수와 비경(祕境)의 생산력을 지닌 여인의 3요소를 망월(望月)굿을 통해 인간 삶을 통찰(洞察)과 관조(觀照)의 과정을 끌어들여 심미(審美)적으로 담아내고 해석해내었다. 그럼으로써 이 망월굿의 작품은 수필장르만이 지니는 미학적 특장(特長)을 십분 잘 발휘했다고 평가되었으므로 당선작으로 선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전일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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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중(中)’·‘용(庸)’, 8년간의 마음공부

인생 그렇게 사는 것 아니다. 지난 2010년 한 범부의 이 말에 큰 충격을 받고, <중용(中庸)>을 다시 보며 마음공부를 하기로 작심했다는 연정교육문화연구소 김경식 소장. 김경식 소장이 8년 넘게 틈틈이 쓴 글을 엮어 <중용(中庸) 바로보기>(교육과학사)를 펴냈다. <중용(中庸)>의 저자는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 기원전 483년~402년)다. 자사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를 스승으로 모셨고, 그 학맥은 맹자(孟子)로 이어졌다. 이 책은 김 소장이 자사가 쓴 <중용>원본을 자력으로 공부하고 정리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김 소장은 시중의 서점에서 범람하는 <중용>에 대한 해설서는 거의 주자(朱子)의 <중용장구>에 기초하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800여 년에 이르는 주자의 사상적 규제의 그늘에서 벗어나 <중용> 원본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책은 서편(序編) 예비적 인식과 본편(本編) 중용 원문 바로보기 등 2편 822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편에서는 <중용>의 저자 자사(子思)에 대한 이해, 중용의 의미와 <중용>이 쓰인 당시의 시대적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본편에서는 <중용> 원문 내용을 8개 장으로 구조화해 해석을 덧붙였다. 중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전적으로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한다. 김 소장은 중(中)과 용(庸)이 갖는 의미를 각각 나누어 소개했다. 먼저 중(中)은 첫째 중간, 둘째 적중하다, 일치하다, 맞다는 뜻이 있으며, 셋째로 치우치지 아니하다, 불과급(不過及)이 없다는 뜻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또한 용(庸)은 항상 일정하여 변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항상, 평상(平常)이라는 세 가지 뜻을 지닌다고 소개했다. 중용은 마음공부가 자기 인생에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하게 하고, 오늘의 나를 반성할 수 있도록 깨우칩니다. 중용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소장은 중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성실하게 수양함이 부족할 뿐이라고 봤다. 김 소장은 1997년 <문예사조> 수필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일제강점기 民族私學 高敞高普 - 그 심층적 탐색>, <고창의 전통과 생활사> 등이 있다. 현재 고향 고창에서 연정교육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연변교육과학연구소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2.25 16:47

전주문인협회 협회지 '문맥' 53호 발간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회장 이소애, 이하 전주문인협회)가 제2회 전주시민문학제와 제11회 전주문인대회 및 제7회 전주문학상 소식을 협회지 <문맥>의 53호에 실었다. 이소애 전주문인협회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연2회 발간하는 <문맥> 회지 발간은 마치 사막을 걸어가라는 명령처럼 암담했지만, 회원과 후원업체의 기부금으로 무난하게 발간할 수 있었다며 시인과 시민이 함께하는 시 낭송 축제를 등 서로의 문학성을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만남, 이상, 기쁨이 샘솟는 글밭을 가꾸기 위해 함께 힘써주신 분들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번 호에는 지난 9월 전주덕진공원 시민갤러리에서 열린 제2회 전주시민문학제 당선작품 전시회 및 시상식 소식을 돌아보게 했다. 10월 전주예술제가 열린 덕진공원에서 회원들의 시 작품을 전시하고 전주시 독서대전을 통해 회원들의 작품집을 선보인 소식도 사진에 담았다. 지난달 23일 열린 제11회 전주문인대회 및 제7회 전주문학상 시상식 현장 풍경도 전한다. 전주문학상 본상문맥상 특집으로 발간한 만큼 이번 책에서는 전주문학상 수상자들의 대표작을 만나볼 수 있다. 본상 수상자인 박성숙 씨의 붉은 잎은 떠나고 외 4편과 문맥상 수상자인 황점숙 씨의 마음 한 상 외 4편이다. 회원들이 써낸 시동시수필 작품도 넉넉히 실었다. 표지화는 한재원 한국사진작가협회 전주지부장의 작품인 한벽루의 겨울이다. 양병호 씨는 평론을 통해 추억의 회상과 자아 성찰로 빚어내는 사랑의 노래라는 주제로 이소애 시인의 시 세계를 분석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2.25 16:47

제3회 꽃밭정이 문학상에 백금종 씨 선정

꽃밭정이수필문학회(회장 문광섭)가 지난 23일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꽃밭정이 수필> 제9호 출판기념회와 제3회 꽃밭정이수필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일환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지도교수, 이소애 전주문인협회장,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나인구 대한문학회장, 최화경 행촌수필문학회장, 이용미 수필과비평문학회장, 권요안 꽃밭정이노인복지관장등 60여명의 문학인들이 참석했다. 문광섭 꽃밭정이수필문학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수필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체험을 글로 의미를 만드는 문학이기에 노인복지관 회원들의 성숙한 작품이 우리들의 삶의 지표가 된다며 아홉번째 <꽃밭정이 수필>에는 어르신들이 전하는 젊은 날의 경험과 교훈적인 삶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제3회 꽃밭정이수필문학상 수상작인 해오라기의 아침을 쓴 백금종 씨는 고창 출신으로 국보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다. 이희근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으로 백금종 작가는 해오라기의 느림의 미학을 발견했다며 움직임 속에 고요가 있고, 고요 속에 생동감이 넘친다. 자연법칙의 한 단면을 잘 그려냈다고 밝혔다. 이날 제3회 꽃밭정이수필문학상 시상식은 심사평과 수상자의 소감 발표에 이어 수상작품 낭독으로 이어졌다. 이어 참석자들은 제9호 <꽃받정이 수필> 출판을 기념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2.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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