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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독립운동가 ‘마명 정우홍’의 생애를 조명하다

정읍 태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마명 정우홍 선생의 문학논설조선불교사화가 신아지역작가총서 4권에 담겼다. <마명 정우홍 전집>(신아출판사)은 계간 <문예연구> 편집위원으로 있는 최명표 문학평론가가 엮었다. 마명 정우홍(馬鳴 鄭宇洪, 18971949) 선생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혁명가, 작가, 언론인, 재가불자로서의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민족해방운동에 나서면서도 창작에 매진했다. 마명은 불자가 되어 한국 불교사를 정리, <조선불교사화>라는 옥고를 집필해 장기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내장산록에 자리를 튼 구암사에서 박한영을 만나고 나서 인도의 고승 마명의 삶을 닮겠다는 의지로 법명 겸 필명을 마명으로 자호했다. 해방 후 마명은 서울신문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며 조국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각종 논설을 썼다. 재가불자들의 모임인 거사림을 조직해 불교대중화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혁혁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자들로부터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대구 출신으로 요절한 아나키스트 마명(馬明)과 그를 혼동하기도 했다. 게다가 다량의 문학작품을 창작한 작가인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마명 정우홍 전집> 제1권은 정우홍이 남긴 문학 관련 작품인 시와 소설, 수필, 서평 등을 한데 모았다. 제2권에는 그가 발표한 논설을 싣고 제3권에는 그가 생전에 강조했으며 해방 후 직접 출판했던 재건주의와 완전변증법과 관련한 글을 모아 엮었다. 제4권은 그의 저서 조선불교사화를 통째로 묶었다. 이번 전집의 엮은이 최명표 씨는 평소 전북지역의 문학자료를 정리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마명의 운동 이력을 추적한 덕분에 식민지 시대의 사상운동과 노동운동을 지도하던 전북지역 출신의 운동가가 되살아났다. 더욱이 마명은 많은 문학작품을 발표한 작가로, 전집 발간을 통해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과정이 한국근대문학사의 한 국면을 담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명표 씨는 마명의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에 전집을 발행한 소설가 이익상과 박열이 연결되는 전북지역의 아나키즘운동사를 집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1.06 17:27

[신간] ‘존폐 위기’ 농어촌 작은학교의 현실과 가능성을 구하다

30여 년간 김제에서 농촌학교 교사로 근무한 남궁윤 씨가 작은 학교의 실제를 담은 책을 발간했다. <농어촌 작은 학교의 현실과 가능성>(무명인)에는 현재 존폐 위기를 겪고 있는 농어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적은 학생수 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 짓게 될 교육현실을 보며 적잖은 걱정과 위기를 느꼈다고 전한다. 남궁 씨는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교의 학생들이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 깨달은 후, 교사들이 대부분 기피하는 방과후 돌봄교실을 4년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학부모, 교사관리자가 좌충우돌해야 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더불어 4년에 걸친 활동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농어촌 작은 학교 정책의 현황과 함께 정부와 전북교육청의 정책적 한계를 지적했다. 향후 농어촌 학교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 책을 통해 농어촌의 작은 학교가 처해있는 현실과 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저자의 활동을 돌아보노라면 농어촌 작은 학교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동시에 독자에게 다양한 문제의식을 일깨우면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가치는 무엇이고 교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남궁윤 씨는 김제 출신으로,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인 만경읍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전교조 전북지부 농어촌교육발전특별위원장, 전북교육청 농어촌교육희망찾기 TF 위원, 전북교육청 민관협력위원회 농어촌교육활성화분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만경중학교 교사이자 기업 후원형 돌봄 학습클리닉 프로젝트와 쉼터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전북교육연구소 소장, 전북교육청 민관협력위원회 운영위원장 역할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1.06 17:27

[신간] 생명을 유지해나가는 본질, 상실 딛고 집에 가 닿을까

부안 출신의 강민숙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둥지는 없다>(실천문학사)의 발간과 함께 상실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강 시인은 1990년대 중반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를 통해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움을 낳아 기른 슬픈 시인의 사랑을 노래했다는 평도 받았다. 나이 서른에 남편의 사망신고와 아이의 출생신고를 동시에 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은 둥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 앞에 시인을 서게 했다. 둥지가 없다는 사실은 상실을 의미하며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떠올리게 한다. 둥지를 잃고 몽골과 티베트를 거쳐 인도, 히말라야,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둥지를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은 끝이 없다. 바람의 구두가 된 시인은 지구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자신이 보고 듣고자 했던 실체에 대해 생각한다. 마침내 시인은 애초부터 인간에게 둥지는 없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인식하면서 궁극적인 실존에 질문을 던진다. 치열한 몸부림을 치는 것이야말로 뭇 생명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도전이자 사명(使命)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제 떠나지 않고도 만나는 인연이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그렇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영위하는 방법이 각기 달라도 생명을 받아 유지해나가는 본질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54편의 시편에 배어 있다. 신경림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강민숙 시인은 두려움 속에서 날개를 접고 어둠을 응시하며 떠는 새의 연약한 모습에 자신을 비유하곤 했다며 그에게 시는 어둠을 이겨내고 일어서는 버팀목이 됐는데, 만약에 시가 아니었다면 그는 어둠속 그림자로 묻혀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1년 등단한 강민숙 시인은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를 비롯해 1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아동문학상과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1.06 17:2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길상 시인 - 최일남 소설집 ‘국화 밑에서’

최일남 소설에 자주 보이는 방언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비교적 최근작인 <국화 밑에서>에도 방언과 비속어, 사어(死語) 및 한문 투 표현이 여전히 많다. 한문 투나 비속어가 태반인 소설은 읽기 불편하다. 현대적이거나 쉬운 말로도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나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이미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물론 현대적 언어의 사용이 소설이나 시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관행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모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극대화한 이런 소설들은 어느 사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호 아래 말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공동체적 가치관이 사라지고 간편 장례 혹은 맞춤 장례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요즘의 병원 장례의식은 윤리의식의 마비와 비인간성을 넘어 문화적 질병에 이른 수준이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 장례 풍습의 문제점을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해학적 진술을 통해 제시한다. 그 신랄한 비판은 국화 밑에서의 아냐 영안실이 비좁기 때문에 바깥에도 따로 천막을 치던 시절이었어. 빈터에 가마솥을 걸고 고향에서 가져온 쌀로 어머니의 솜씨를 본떠지었다고 했는데 밥맛이 어떻게나 입에 달던지 고인의 유언에 따른 거랬어. 문상 오시는 분들에게 절대로 밥장사 밥을 드리지 말라고 일렀다는 그 어머니의 따뜻한 뜻과 유족의 정성에 감복할 밖에라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들이 자주 쓰는 방언들은 사라져가는 이런 풍습과 문화를 복원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개심심한, 하냥, 아사리판, 께복젱이, 들이당짝, 듬성드뭇하다, 어금버금, 칙살스럽다, 호도깝스럽다, 헤실바실, 가년스럽다, 심심파적, 어지빠른. 이 소설집의 또 다른 한 축은 노년의 죽음에 대한 관심사가 반영된 물수제비다. 표면적으로는 먼저 떠난 아내의 죽음과 그 추억을 주제로 취급하고 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작중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도중의 침묵이다. 죽음은 세상 너머의 일이다. 죽음을 앞 둔 노인에게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에 따른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과 너무나 느슨한 삶에 대한 자성으로서의 침묵이 아닐까. 그 침묵 속엔 그의 정신적 재생의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정신적 여유를 찾고 매사 진지하게 삶에 복무한다는 것은 어쩌면 노년에 되찾은 삶의 여유이면서 생과 사를 초월하는 행위인 것이다. 박교장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란 말을 한 것도 노년에 이르러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여러 장례 풍습과 노년의 삶이 방언, 비속어 및 사어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주 출신인 최일남 소설가가 구사하는 전라도 방언들을 쏠쏠히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소설집의 잔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 이길상 시인은 2001년 전북일보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으며, 시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1.06 17:16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⑫ 유재 송기면의 한시…유연(悠然)한 도(道)의 세계, 깨어 있는 민족의식의 시편들

유재 송기면 초상화. 홀로 근심 안고 새벽까지 앉아서(獨抱幽憂坐達晨) / 하늘과 땅에 빌고 신에게 또 빌었네.(拜天禱地又祈神) / 어느 누가 부드럽게 덕을 품고 베풀 수 있어(何人能施柔懷德) / 온 세계를 녹이고 따뜻한 봄 오게 할 수 있을까.(四海融融各得春) -丙申元朝 전문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이 1956년 75세 설날 아침에 쓴 시이다. 평생 도를 구하고 학문을 하는 본뜻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그 해답은 위의 시에서 찾아지리라. 잠도 이루지 못하고 새벽까지 홀로 앉아 천지신명께 세계평화의 봄을 간구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본바탕인 성(性)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실천하는 도학자의 본보기를 만나게 된다. 송기면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이다. 그는 김제군 백산면 요교리에서 부친 송응섭과 모친 전주 최씨 사이의 4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응섭공은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수되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여러 차례 천거되었다. 유재가 5세일 때 부친이 타계하여 모친이 그 뜻을 이어 가르치게 된다. 모친은 1894년 전주에서 거처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대문호 석정 이정직(1841-1910)을 집으로 모셔와 유재를 가르치게 하였다. 유재는 석정을 통하여 시문과 서화, 예술 이론, 천문과 지리, 역산(曆算)과 의학 등 실용적 지식을 포함한 박학적 학풍의 진수를 전수받으며 20세 무렵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다. 1910년 스승 석정이 타계하자 그의 학문을 계승한 유재는 요교정사(蓼橋精舍)에서 석정을 대신하여 수많은 후학을 가르치게 된다. 1920년, 30대 후반의 유재는 세상의 혼란을 피하여 계화도에 머물고 있는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를 찾아가 예를 갖추고 사제의 연을 맺는다. 이후 유재는 도의(道義)에 뜻을 두고 이치를 궁구하는 데 전념하여 성리학의 체계를 확고히 세우게 된다. 아울러 옛것을 중시하면서도 수구론에 빠지지 않고 유신론을 강조하여 구체신용설(舊體新用說)을 정립하였고, 의(義)와 이(利)의 조화를 통한 효용을 중시하였다. 박완식의 역(譯)으로 발간된 『유재집』(2000년)에는 276제 368수의 시가 실려 있고, 이 중 180여 수가 교유시(交遊詩)다. 교유시가 많은 것은 두 스승 문하에서 수학하고 많은 제자를 둔 그의 이력과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유재의 성품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또한 그의 시에는 경륜, 지조, 절의 내용이 뚜렷한바 그의 문학은 경세적(經世的), 실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개화기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남북분단의 격변기를 살면서 부당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삶을 관철시킨 힘은 바로 선비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근대문학이 정립되면서 문학의 주도권이 한문에서 국문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한문학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한문학이 소멸되는 끝자락에서 유재는 수준 높은 한시를 창작한바, 유재는 그의 글씨와 유학에 못지않은 한시를 남겼다. 그의 시는 크게 사회시와 서정시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시는 우국, 상시(傷時), 절의, 저항, 애민, 교유, 교육 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견훤의 묘를 지나며와 노량진, 사육신의 묘에서 두 편을 감상한다. 저무는 산마루에 올리는 술 쓸쓸하고(一杯寂寂暮山頭) / 서풍에 만고 시름으로 지팡이가 머무네.(住杖西風萬古愁) / 싸움터 묵은 벌판에 가을풀이 이울고(百戰荒原秋草沒) / 들녘의 무심한 노인 누렁소를 풀어 놓네.(無心野老放黃牛) 사육신의 죽음을 한탄하지 말라(莫恨六臣死) / 죽었어도 길이길이 아름다워라(死惟百世休) / 영령은 해와 달처럼 빛나고(靈應懸日月) / 백골은 산악처럼 무겁다네(骨亦重山岳) / 저녁 새 빈 골짜기에 울고(夕鳥號空谷) / 봄꽃은 강물에 떨어지네(春花落上流) / 내 일생 통한의 눈물(平生一?淚) / 노량나루터에 흩뿌리네(灑向鷺梁頭)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직후, 화자는 나그네가 되어 후백제의 왕 견훤의 묘를 마주하게 된다. 해 저무는 가을 쓸쓸한 날, 옛 영웅 앞에 술 한잔 올리며 옛 시절을 떠올린다. 과거 싸움터였던 들녘, 시들어가는 가을풀과 누렁소를 풀어놓는 노인의 무심한 풍경에서 화자는 무상감을 느끼고 있다. 우국의 정서를 자아내면서 동시에 달관한 인생의 한 경지를 엿보게 한다. 아울러 화자는 1920년대에 한강변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를 찾았다. 망국민의 비애가 사육신의 높은 절의와 만나니 그 감회는 걷잡을 수 없다. 도의를 지키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육신의 높은 뜻 앞에서 새도 울고, 꽃도 울고, 슬프게 흘러가는 강물 위에 망국민으로서 화자 역시 솟구치는 눈물을 흩뿌린다. 유재는 일찍부터 세속의 명리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다. 1906년 25세 때, 조정에서 박사과 과거를 실시하여 이에 응시하고자 했으나, 시험이 문란하고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고 응시를 포기하였다. 다음의 시 만조(晩眺)는 관직을 포기하고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연한 태도를 새의 비상을 통해 잘 보여준다. 곱게 물든 저녁노을에 하늘의 반이 물들었고 / 물 위의 맑은 안개는 희미하게 사라지려 하네. / 저녁노을 비치는 산 위로 새 한 마리 날고 있나니 / 내 몸은 아직 긴 강물 그림 속에 머물고 있네. 유재는 평생 인격수양에 노력하고 명상을 하며 도인으로 살았는데, 사람을 대할 때는 진정한 마음으로 대하였다.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은 어떤 압력에도 굽히지 않았다. 일제도 유재의 성품을 알고 있었기에 창씨개명 같은 신민화정책을 강요하지 못했다. 다음 시는 왜경(倭警)이 칼을 들고 삭발을 강요할 때 단호하게 호통을 치고 돌아와 쓴 시다. 의를 품고 살아가는 유재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음산하게 비가 내려 앞산이 어두운데 / 무수리의 요망함이 도둑떼처럼 나타나네. / 아무리 칼로 위협한다 해도 / 내 가슴속 의리를 어찌 자르리오. 유재는 마음보다 성(性)을 더욱 존중하는 간재의 성사심제설(性師心弟說)을 계승하였으며, 방법론으로는 구체신용설(舊體新用說)을 강조하였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옛것으로써 본체를 삼고, 옛것은 새로운 것으로써 작용을 삼는 것이다. 본체가 보존되어 있음으로써 그 작용이 무궁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새롭게 한다는 것은 옛것을 계승함이니, 유신(維新)이란 옛것을 계승하여 새롭게 함을 말한다. 유재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시 제요교정사의 원래 우리 도는 일정한 형체가 없고 / 순리를 따르면 어디서나 넉넉하리.라는 표현과 맥이 통한다. 그러나 자신의 본래 심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황에 맞게 처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음 두 작품은 유재가 추구하는 도의 세계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한다. 못난 듯 사노라니 마음에 누(累)가 없고 / 번거로운 일 줄이니 꿈자리도 편하구나. / 한가하게 때로 홀로 걸으니 / 산수가 옷자락에 비쳐오네.(偶題), 하나도 가슴속에 누된바 없어 / 사람과 하늘 이치 본래 하나임을 알겠네. / 항상 맑은 기운 이 몸에 머무르니 / 내 마음 절로 담담하여 허공과 같네.(詠歸亭 일부) 『유재집』에는 시 외에도 편지와 각종 문집의 서문, 묘비명과 행장(行狀) 등 많은 글이 실려 있고, 『유재집』에 수록되지 않은 유고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당대 호남의 지성사(知性史)를 복원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유재는 천하와 더불어 그 예(禮)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천하의 지공(至公)이다.라고 하며 예의 실천에 지극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자의 대의(大義)를 항일로 주를 삼고, 시에서 망국민의 아픔을 다수 형상화한 것도 예의 실천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유재는 유신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삶의 본체인 성리(性理)를 떠나지 않으면서 현실 상황을 끌어안는 시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한시는 유연(悠然)한 도(道)의 시학을 담고 있으며, 어느 국문 시가보다 민족의식의 각성을 보여주었다. 일제 말기, 그는 시 온양온천을 통해 성(性)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넓은 품을 보여준다. 온양온천은 우리나라의 으뜸이라. / 질병을 치료하는 데 큰 공이 있네. / 어떻게 하면 본성 잃은 자까지 치유해 / 한 세상 태평성대로 편하게 할까. 당대 본성을 잃은 자는 일제를 말함이 아니겠는가. /김광원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19.11.06 17:13

전북시인협회, 5일 제20회 전북시인상 시상식

김대곤 시인. 전북시인협회(회장 조미애)가 5일 오후 4시 전주 웨딩팰리스 웨딩홀에서 제20회 전북시인상(운영위원장 정운기) 시상식을 연다. 올해의 수상작은 김대곤 시인의 책갈피. 소재호임명진 심사위원은 수상작 책갈피에 크게 공감했다며 그 공감의 폭은 거리 조정이 여타 시적 장치들과 긴밀하게 조응하는 데서 넓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평한 바 있다. 남원 출생의 김대곤 시인은 전북대학교 의과대학과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시집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도시의 밤안개>, <겨울 늑대>, <가방 속의 침묵> 등이 있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의 사회로 진행으로 열리는 이날 시상식에서는 신정혜 피아니스트 초청 음악회가 함께 열릴 예정이다. 신정혜 피아니스트는 선화예고, 경기예고, 백석대학교 콘서바토리 출강중이며 Ensemble UI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신정혜 피아니스트는 시상식에 앞서 쇼팽의 즉흥환상곡강아지왈츠, 리스트의 라 탐파넬라, 편곡 아리랑 등을 연주해 늦가을의 정취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초청음악회는 (주)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가 후원한다. 시상식에 이어 3부 행사에서는 심봉석 시, 신귀복 작곡의 얼굴과 하중희 작사, 김강섭 작곡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참석자들이 함께 부르는 시간도 마련됐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1.04 17:49

제5회 부안문학상 수상자에 박갑순 시인

수필가이자 아동문학가인 박갑순 시인(54)이 제5회 부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회장 김영열)는 최근 부안문학상 심사위원회를 열고 작품 수준, 참여 및 기여도, 작품집 발간 등을 기준으로 3명의 후보자를 심사한 결과 박갑순 시인을 제5회 부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영 심사위원은 박갑순 시인은 부안문인협회의 창립에 앞장서서 열정을 쏟는 시인으로 지금은 고향을 떠나 살지만 고향 문학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며 특히 그의 시집 <우리는 눈물을 연습한 적 없다>는 아무리 지치고 힘들지라도 슬픔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누구라도 마음을 기대고 싶은 작품집이다라고 평가했다. 박갑순 시인은 때 이른 감기몸살을 칭칭 감고 쉬고 있을 때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다며 부안에서 비둘기문학동인을 결성해 퇴근 후 바삐 움직였던 시절이 생각난다. 주산부면장이셨던 고 고관석 선생님, 배금자, 김기찬, 양정숙, 전안숙 선생님 등등. 그때는 겁 없이 쓰던 시절, 시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일단 써서 동인을 이끌어주시던 김기찬 선생님과 함께 합평을 하면서 한 편 한 편 쌓아갔던 시절이 오늘의 영광을 가져온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부안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고향 부안문인협회에서 주는 상을 수상하게 되어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박갑순 시인은 지난 1998년 <자유문학>과 2005년 <수필과비평>을 통해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으로 <우리는 눈물을 연습한 적 없다>, 수필집 <꽃망울 떨어질라>, 투병기 <민머리에 그린 꽃핀>, 동시집 <아빠가 배달돼요>가 있다. 월간 <소년문학>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글다듬이집 주인으로 있다. 시상식은 8일 오후 3시 부안 부안컨벤션 웨딩홀 3층에서 부안문학 제25집 출판기념회와 함께 열린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1.03 17:54

“동시집 읽고 끝말 이어 재미난 동시 써보세요”

끝말이 이어지면서 상상의 세계가 생겨난다. 어린이를 위한 끝말잇기 놀이가 동시를 만났다. 박성우 시인의 새 책 <끝말잇기 동시집>(비룡소)에는 시 짓기 원리에 쉽게 접근함으로써 아이들이 폭넓은 어휘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동시 40편을 재미난 만화와 함께 실었다. 이 책의 탄생기는 이렇다. 끝말잇기 놀이를 가지고 더 재미있고 신나게 노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던 중 끝말에 어울리는 낱말을 이어 끝말잇기 동시 쓰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박성우 시인은 초등학생인 딸에게 숙제 검사를 받듯 보여주고 아이가 재미있어하던 것으로 골라 넣었다고. 초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소개된 말 잇기는 아이들이 다양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끝말과 끝말을 이어 누구나 재미난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지 새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에 실린 만화는 <눈물바다>, <커졌다!>, <간질간질> 등 다양한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려온 그림작가 서현 씨의 작품이다. 정읍 출신인 박성우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과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과 동시집 <불량 꽃게>,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박성우 시인의 첫 말 잇기 동시집> 등을 펴냈다. 이밖에도 청소년 시집, 산문집, 어린이책, 그림책 등 청소년을 위한 여러 책을 쓰고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0.30 16:1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김형미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아침에는 겨울의 찬 기운이 코끝을 간질이다가도 한낮이 되면 여전히 땀이 은근하게 맺힌다. 날씨처럼 도통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날,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었다. 시인의 시에는 저마다의 향기가 짙게 묻어났다. 다양한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지금, 이 계절에 딱 읽어야 할 시집이 있다. 김형미 시인의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이다. 시집을 넘기고 있으면 찬바람을 맞으며 헛헛해진 속이 따뜻한 다독임을 받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형미 시인의 시집을 펼쳐보시라. 시집은 자꾸만 지나간 것을 곱씹어보게 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더 시를 향수(享受)하게 된다. 바다는 끊임없이 출렁이는 진한 소금 내가 난다. 짠 내를 걷고 나면 붓의 진한 묵향이 휘감고 지나간다. 빗소리가 들리는 바닥에 피는 꽃은 비를 맞은 것들의 향기가 난다. 시원한 바람 분다고 여름이 다 간 것은 아니야 / 꽃이 지고 말랐다 해서 그 나무가 죽은 건 아닌 것처럼(입추(立秋) 中)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자꾸만 떠나며 잊은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다 지나갔다고 해서 내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시인의 시는 후각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인이 마주한 향기가 독자의 눈앞에 펼쳐진다. 조기 떼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 서해 바닷가 하늘 한 귀퉁이 물고 / 해가 집을 잡아 들어가는 게 보입니다 / 다 두고 돌아와 / 온 산이 욱신욱신 단풍 들어가는 것도 / 사나흘 안으로 큰 비가 오려는 것이겠지요(수성당 中) 시인의 시어는 자꾸만 오감을 예민하게 만든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마치 이전에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낯선 풍경들을 따라 시인의 기억을 쫓으면 어느새 독자는 마음 가장 안쪽까지 도착할지도 모른다. 속절없이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책을 닫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에 쓰겠다고 당장 그리도 많은 것들을 붙잡고 싶었는지. 딱 한 가지만 떠올리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며 살고 싶다(가을 中)라고 하면서도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시월 中)하고 바라던 시인의 마음처럼. * 최아현 소설가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분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공저로 <천년의 허기> 등이 있다. 현재는 꿈다락 일상의 작가 교육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0.30 16:12

국토종주 그랜드슬램 체험기 '배낭 메고 따르릉'

여행은 걷기보다 빠르고 자동차보다 느린 자전거가 제격이다. 여행지의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끝없이 이어진 자전거 길을 따라 힘차게 페달을 밟고 달리는 기쁨을 아는가. 여기 자전거와 함께라면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는 에너지가 있다. 자신의 국토종주 그랜드슬램 체험기를 담은 책 <배낭 메고 따르릉>(신아출판사)을 펴낸 오동표 씨는 자신을 자전거와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 라이더라고 칭한다. 시간만 있으면 산악자전거를 타고 길 위에서 땀을 흘렸다는 오 씨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그냥 지나친다면 얼마나 아까운 손실인가 생각했다며 자전거와 함께 천리길을 달리며 보고 느낀 생각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이 책은 △국토종주 자전거길 633㎞ △4대강 자전거길 538㎞ △그랜드슬램 자전거길 606㎞ 등 3부로 나눠져 있다. 13차에 이르는 라이딩을 통해 만난 전국 곳곳의 풍경 사진도 함께 실어 여행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그동안 여행 중 겪은 생생한 이야기와 경험담을 비롯해 다양한 여행노하우를 꼼꼼히 메모해온 덕분에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담긴 책이 완성됐다. 부록으로는 즐거운 자전거 여행을 위한 준비물과 행동요령을 비롯해 국토종주 자전거길 인증센터 안내도를 수록했다. 오동표 씨는 은퇴 후 자기계발과 도전정신을 위한 값진 경험을 채우고자 25년간 꾸준히 도전해온 백두대간 그랜드슬램 종주 산행을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다져진 체력 덕분에 자전거 페달을 자신 있게 밟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오동표 씨는 1956년 전남 화순 출신으로 전북일보 총무관리국장으로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쳤다. 전주에서 생활하며 방화관리 대상, 신문협회 대상, 에너지절약 전북도지사 표창, 한국도로교통안전공사 교통안전 감사패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0.30 16:12

잊혀져가는 공존의 가치 회복을 꿈꾸며

기억이 인간을 만든다. 기억을 지우면 그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가 형성한 인간관계도 그가 꾸었던 꿈도 그가 경험한 세상의 모습도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에. 황준 시인의 첫 시집 <기억의 바다>(지성의 상상 미네르바)에는 기억을 주제로 지은 시가 자주 등장한다. 세월호 청문회장에서 / 울분을 삭히지 못해 / 일침을 가하던 잠수사가 / 기억의 바다로 떠났다 - 기억의 바다 중. 그의 시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들을 소환하고, 그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운다. 황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사랑과 절망, 욕망을 자극하는 한줄기 빛이 되어 어둠이 깊어질수록 꺼질 줄 모르른 불꽃, 시는 인간을 불타게 한다며 삶의 이야기를 모아 시집 <기억의 바다>에 싣고 푸른 영혼의 섬을 향해 출항 신고를 한다고 밝혔다. 시집은 1부 감꽃 필 때, 2부 어머니의 강, 3부 겨울밤의 이야기, 4부 꽃을 위한 관음 등 4부 114쪽으로 구성됐다.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황준 시인은 상실과 결핍을 벗어나기 위해 점점 사라져 가는 공존과 사랑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다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시의 특징이고 장점이다고 평했다. 전주에서 태어난 황 시인은 지난 1988년 시 세계 동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변호사 황선철 사무소에서 일하며 시를 쓰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0.30 16:12

고요한 작가, 단편소설 ‘오래된 크리스마스’

이 소설은 내가 태어난 진안을 배경으로 썼습니다. 천변을 따라 들어선 오래된 가게인 양조장, 장시계점과 쌍다리 다방 같은 곳들. 지금 이 순간 다시 읍내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때 헤어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고요한 작가가 단편소설 오래된 크리스마스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과거의 사랑, 그리고 또 새롭게 시작될지도 모를 그런 사랑. 주요 등장인물은 마흔을 앞둔 주인공 은석, 크리스마스에 은석과 맞선을 본 이름 모를 여자, 은석의 첫사랑 요안나, 요안나와 결혼한 은석의 친구 우영. 세상에 내려놓지 못할 건 없어요. 사랑했던 남자를 잊기 위해 페루의 마추픽추에 갔다며 주인공 은석에게 건네는 맞선녀의 이 말은 꽤 긴 여운을 남긴다. 맞선의 공간이자 재회의 공간인 진안 마이산 돌탑 아래, 과연 은석은 옛 사랑 요안나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맞선녀는 내려놓음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됐지만, 은석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작가는 진안에는 어머니가 살고 계시다.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며 오랜만에 돌아온 시골집이 평온했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처음으로 소설 속에 끼워 넣었다고 했다. 이 소설에 실린 사랑 이야기는 아마도 작가의 그것과 닮았을지도. 이서안 소설가는 리뷰를 통해 오랜 시간 속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의 애틋한 서정성은 사랑의 본질로 치달아 지금까지 계속된다며 마이산 돌탑과 마추픽추를 병렬해 사랑의 단면을 호소력 있게 보여준다고 했다. 이 소설 오래된 크리스마스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소설가 다섯 명의 작품과 함께 <나, 거기 살아>(문학나무)로 엮어졌다. 강이라문서정박지음이서안정정화 작가가 각각 아름답고 낯선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고요한 작가는 진안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배웠다. 지난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미국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에 그의 단편소설 종이비행기가 번역 소개됐다. 부지런히 작품을 준비해 내년에는 단편소설집을 펴낼 계획이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0.30 16:12

이수홍 다섯번째 수필집 '글읽는 산수유'

지난 2008년 <노래하는 산수유 꽃>를 시작으로 2~4년마다 산수유를 제목에 넣어 수필집을 만들어왔던 이수홍 작가가 다섯 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이번 책 이름에도 역시 산수유가 들어갔다. 4년 전 글쓰는 산수유가 <글 읽는 산수유>(도서출판 북매니저)로 돌아왔다. 이수홍 작가는 1937년 전남 구례산동에서 태어나 전북경찰 경정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2007년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해 이듬해부터 10여년에 걸쳐 다섯 권의 수필집을 썼다. 그가 책에서 빠지면 서운할 존재가 돼버린 산수유의 유래를 찾아가보니 이번 책에 실린 글 중 구례산동산수유 꽃 축제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온천관광단지 일원에서는 봄이면 산수유 꽃 축제가 열리는데 매년 참석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2013년 축제 때에는 산동산수유문학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기도 했다고. 동인지 <산동산수유문학>을 발간하고 인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백일장을 열어 상장과 상금을 듬뿍 줬다. 고향 벗들과 초등학교 동창회를 만들어 축제 때마다 동창회를 열다보니 으레 고향을 생각하면 산수유를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산수유의 사전적 의미와 생김새와 특성, 관련 애화와 노래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향의 자랑이자 얼굴인 특산물을 널리 알리고 지역 후배들을 격려하는 마음이 모여 지리산 정기를 닮은 산수유처럼 전국에 전해진다. 이밖에도 손주가 쓴 편지와 그림 선물, 결혼기념일의 추억, 경찰공무원 재직시절 일화, 전북도립국악원 국악 공부일기,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글이 오랜 시간 쌓여 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0.30 16:12

순창 출신 정재영 시인, 세번째 시집 '탁란' 펴내

청소년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시인은 손에서 책을 놓은 청소년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청소년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세상을 글로 표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주 한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인 정재영 시인의 세 번 째 시집 <탁란>이 출간됐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지만 청소년들과 늘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청소년들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희망의 꽃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담담한 어조와 섬세한 서정이 잘 나타나있다. 더불어 역사를 인식하는 날카로운 자세가 자신의 경험과 맞물리기도 한다. 그의 시 꿈이 없는 청춘에게와 고삼풍경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아파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다. 청춘과 바람,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인은 삶을 그리고 있다. 순창 출신으로 자유문학을 통해 1993년 등단한 정 시인은 <물이 얼면 소리를 잃는대>와 <나무도 외로울 때가 있다>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을 펴냈다. 현재 전주문인협회 편집국장, 국제펜문학 전북위원회 사무국장,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 등 전북 문학의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 문화의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북문학관에서 지역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 청소년에게 문학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 문집> 2권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전북에 청소년 복합 복지관을 만들어 이들이 언제든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전북을 빛낼 인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 여정에 국어교사와 시인으로서 함께 하며 문학의 힘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0.30 15:59

[신간] ‘21세기 김정호’ 신정일의 ‘新택리지’ 시리즈 출간

21세기의 김정호라 불리는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쌤앤파커스) 시리즈가 출간됐다. 서울 편을 시작으로 경기, 전라, 북한, 제주 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인문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신정일 씨가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했다. 앞서 우리 땅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소개한 두 발로 만나는 우리땅 이야기 시리즈의 서울경기전라도 편에 이어 북한과 제주편을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한 것. 멋과 맛의 고장 전라도편에서는 한반도의 서남해안에 자리잡아 삼한시대 마한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 백제영토로서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금강과 섬진강, 그리고 영산강, 만경강, 탐진강 등 크고 작은 강이 모여 비옥한 평야를 일궈냈으며 덕유산, 지리산, 내장산, 무등산, 월출산 등 국립공원이 많이 들어서 있어 국토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썼다. 특히,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 북한편에서는 한반도 전역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인문지리학적 통찰을 준다. 조선왕조의 꿈을 품은 함경도부터, 조선 팔도중 제일가는 인심을 자랑하는 평안도, 단군이 도읍을 정한 구월산이 있는 황해도, 금강산을 품은 평화의 땅 강원도 북부까지 북한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이번 책을 한장씩 넘기다보면 마치 입담 좋은 해설사와 함께 한 걸음씩 내딛으며 답사하는 느낌을 준다.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놓쳐버릴 수 있는 지형과 지세, 각 지역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물론 지역의 설화와 지명의 유래까지 골고루 녹여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용택 시인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 그가 다음을 강 길을 걷더니, 이제는 아예 우리나라 전 국토를 이 잡듯 뒤지며 걷고 또 걷는다며 신정일이야말로 현대판 김정호라고 말했다. 김지하 시인도 이 책은 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기 발이 도달한 산천 도처에서, 금강의 여러 구비에서 울고 웃는다. 나는 그를 발로 쓰는 민족사상가라고 부른다고 이야기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이사장인 신정일 씨는 도보답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중반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고자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했다. 수십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걸어온 이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19.10.23 17:09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 문학의 메카, 전북] ⑪ 석정 이정직,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던 최고 수준의 대문호

벼루 열어 구슬이슬 기울이니(開硯傾珠露) / 푸른 연이 곧 그림스승일세.(靑蓮卽畵師) / 치장을 없앤 천연함 있어야(天然去雕飾) / 진실로 잘 그려진 시라네.(正是寫眞詩), 사람들은 실제 매화가 좋다 말하지만(人道眞梅好) / 나는 매화그림을 더욱 좋아한다네.(吾憐畵更好) / 세속 높이 초월함 이미 조촐하여(高標看已潔) / 용모 감쇠하는 때가 없어라.(未有減容時)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은 구한말의 인물로서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예술가요, 실학자였다. 시서화뿐 아니라 천문, 지리, 의학, 수학 등에 두루두루 통달한 유학자, 통유(通儒)라 부를 수 있는 선비였다. 위 두 수의 시는 제화시(題畵詩)로서 연(蓮)과 매화의 그림에 어울려 쓴 시이다. 석정은 시론시(詩論詩), 교유시(交遊詩), 사경시(寫景詩) 등 여러 종류의 시를 많이 남겼는데, 시서화에 능통한 석정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제화시라 할 수 있다. 연(蓮)을 읊은 첫 수에서 그림의 대상 연과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주객일여의 세계로 하나가 되고, 그림이 시가 되고 시가 그림이 되는 시화일체의 경지를 보여준다. 자연 그대로의 청련 자체가 내 그림의 스승이요, 내 마음세계를 담아낸 진경의 시가 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석정은 실제 매화보다 매화그림이 더욱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문인화 속에는 작가의 고매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또 그래야 함을 말한 것이다. 시서화 삼절의 높은 경지를 이룬 석정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석정 이정직은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근대계몽기에 활동한 문인으로서, 매천 황현(1855-1910), 해학 이기(1848-1909)와 더불어 호남삼걸로 불리었다. 석정은 칸트와 베이컨 철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였는데, 1973년 철학자 박종홍이 석정을 서양철학 연구의 선구자라 평가하기까지 그는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에 대한 활발한 연구는 2002년 김제문화원에서 『석정이정직유고』 국역본을 펴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단행본으로 구사회의 『근대계몽기 석정 이정직의 문예이론 연구』(2013)가 발행되는 등 현재 석정을 연구 대상으로 한 단일 논문만 해도 100여 편에 이르고 있으니, 석정은 이제 조선말기의 대문호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구사회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학문과 예술 두 영역을 두루 겸비한 인물은 거의 없다 하면서, 두루 겸비한 인물로 추사 김정희와 석정 이정직을 들고 있다. 석정의 학문과 예술의 경지는 오랜 세월에 걸친 부단한 학습과 끊임없는 연마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선천적 재능보다 후천적 학습을 중시하였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친 이계환이다. 가난한 살림에도 석정의 교육에 온갖 정성을 다했는데, 부친은 단계적인 교육을 실행하였으며, 한 스승에게만 맡기지 않고 여러 스승을 통해 공부하도록 주선하였다. 석정의 서화(書畵) 역시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나, 여러 자료를 놓고 보면 그의 예술적 성과는 결국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석정은 글씨와 그림에 대해 특정 스승을 사숙하지 않고 서첩이나 화본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여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1868년 28세의 석정은 중국의 연경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이는 그로 하여금 외래 문물을 익히고 자신만의 학문과 예술을 정립케 하는 데 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정은 전주 남문에서 한약방을 수년간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1894년 4월에는 동학농민전쟁으로 전주성이 함락되면서 화재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틈틈이 지어두었던 10여 질의 시문집도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다. 이후 그는 고향인 김제로 돌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 연구와 예술 창작에 심혈을 쏟는다. 그의 모든 원고들이 사라졌을 때 그는 대단히 낙담하였으나, 절망하지 않고 다시 분발하여 세상을 떠난 1910년 11월까지 1300여 수의 시와 300여 편의 문장을 남겼다. 오늘날의 문집 초고본인 『연석산방미정고(燕石山房未定藁)』를 비롯하여 『시경일과(詩經日課)』, 『시학증해(詩學證解)』, 『간오정선(刊誤精選)』 등 10여 종 이상의 저서가 전해오고 있다. 이정직의 글은 문(文), 사(史), 철(哲) 및 경세(經世) 전반에 관련되어 있지만, 특히 문학담론적 글의 비중이 크다. 시문이 밥이라면 글씨는 떡과 같다.라고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서화보다 시문에 더 치중했음을 알 수 있다. 석정의 시작(詩作)은 많은 시회(詩會)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친목을 다지고 후진을 양성하는 시회는 그의 삶의 일상이었다. 지인과 정을 나누는 교유시와 지인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쓴 사경시 한 편씩 들어본다. 지난날 내 만나지 못해서는 / 그리움에 부질없이 넋을 잃었지. / 나아가 산 누각에 이른 후에는 / 마주 앉아 도리어 말이 없네.(舟村書室), 주촌은 구례에 있는 지명이다. 당시 매천 황현은 구례에 거주하였는데, 석정은 1895년과 1897년 사이 몇 차례 구례를 방문하여 황현과 이기 등 지인들을 만난 바 있다. 그리움에 넋을 잃을 정도라고 표현해놓고는 막상 만나서는 서로 말을 잃고 있으니, 상봉의 감격과 그 이심전심의 기쁨이 절로 전해온다. 빈 강에 수많은 겹겹의 바위 / 치고 부딪혀 절로 요란하네. / 바위는 모두 거울처럼 평평하여 / 한 올 머리카락 흔적도 자세히 아네.(過龍江村) 용강촌을 지나다 바라본 강가의 바위를 읊은 시다. 빈 강에 겹겹이 놓여 있는 바위들이 물살에 부대끼고 부딪혀 소리가 요란하나, 그 덕분에 바위는 거울처럼 평평해졌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 보일 정도로 맑아졌다는 것이다. 수많은 단련의 과정을 거쳐 평담(平淡)의 경지에 도달한 시적 자아의 내면세계가 강물 속의 바위를 통해 전해온다. 석정 시의 특징은 회화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시(詩)와 화(畵) 모두에 뛰어난 그였기에 시경(詩境)과 화경(畵境)의 혼융은 당연한 결과로 여겨진다. 석정은 천성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시를 좋아하였다. 하지만 시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천성이라는 타고난 품성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선천적 능력보다 끊임없이 갈고 닦는 후천적 학습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 역사적 사례를 당나라 두보(712-770)에서 찾았다. 천성이 우수한 자는 그 천성만을 믿고서 학식에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백이 이런 경우입니다. 학식이 우수한 자로 이치에 통달하고 마침내 천성을 따라잡은 것은 두보입니다. 석정은 조화롭고 이상적인 문장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견식(見識)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견식이 지극하면 문장의 법을 지키면서도 재능을 활용하지 않음이 없고, 고문(古文)을 추구하면서도 솜씨를 맘껏 펼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극한 견식이란 옛 성현의 정신이 담긴 경전을 익히고 배워서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안목을 갖춘 높은 견식을 말한다. 공자께서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은 식(識)을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식을 이루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길러야 한다. 또한 석정은 다수의 시론시(詩論詩)를 남겼는데, 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론,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라는 창작론, 시인과 작품에 대한 비평론, 자신의 시적 취향과 시벽(詩癖) 등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다음은 희위이십사절구의 22수이다. 풍아(風雅)의 충만함이 바로 시경(詩境)이거니 / 오랜 세월 오르내린 명가(名家)는 몇몇인가. / 벌꿀이 그처럼 달콤한지 알려면 / 많은 꽃들을 열심히 채취해봐야 하리. 석정은 시의 이론화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후학들이나 제자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학자로서의 현실적인 필요성이 작용하여 찬술한 저서가 『간오정선』이다. 이 책은 원나라 방회와 청나라 기윤의 비평 저서에서 490여 수를 선별하고, 방회와 기윤의 비평과 견해를 달리하는 110여 곳에 자신의 비평을 덧붙인 시학이론서요, 비평의 비평서다. 무릇 시를 지음에 있어 화려함은 장년기에 이루어지고 정밀함은 노년에 이루어지니, 화려함은 기가 충만한 데서 생기고 정밀함은 법이 완숙한 데서 나오는 것이다. /김광원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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