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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新州)는 백제의 북방을 가로지르는 신라 영토지만 백제로부터 빼앗은 것이나 같다. 백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빼앗겼던 한강 유역 6군을 회복했다. 신라는 한강 상류 10군을 점령했는데 진흥왕은 갑자기 백제를 배신, 백제군이 수복한 6군마저 탈취한 후에 신주를 설치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성왕이 신라군과 싸우다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했으니 백제로서는 피눈물이 뿌려진 땅이다. 그리고 관산성 싸움에서 성왕을 패사시킨 신라 무장(武將)이 바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金武力)이다. 당시의 김무력이 신주군주(新州軍主)였던 것이다. 신주(新州) 서북방에 진출한 김유신이 덕천성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전령이 달려와 보고했다. 대장군, 백제 의자왕이 영암성에 입성했습니다. 영암성은 백제의 북단으로 신주와는 50여리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김유신이 주둔한 덕천성과는 2백리 정도다. 전령의 보고가 이어졌다. 의자왕이 이끈 기마군은 8천여기, 보군은 1만7천 정도이나 동방 방령 의직이 주둔한 대곡성에는 보기 2만 정도의 병력이 있습니다. 김유신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곡성과 영암성간 거리는 60여리밖에 되지 않는다. 의자가 노리는 곳은 두 곳 뿐이야. 김유신이 청안의 무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다. 이쪽, 신주(新州)와 서쪽 대야주다. 대장군, 의자가 이쪽에서 사냥 시늉을 하는 건 서쪽을 노리고 있는 것을 숨기려는 수작 아닐까요? 김병일이 물었을 때 김유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김유신은 올해 49세,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너무 뻔한 성동격서다. 그것은 뻔하게 드러냈으니 그 반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까? 대아찬, 그 반대가 무엇이냐? 김유신이 아직 20대 후반이나 5품 대아찬에 오른 김병일을 물끄러미 보았다. 김병일도 진골(眞骨)왕족이다. 상대등 비담의 조카가 된다. 비담 일당이 김유신의 옆에 박아 놓은 감찰관 역할이다. 김유신의 시선을 받은 김병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성동격서의 반대란 바로 소리를 내는 곳으로 공격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의자가 그렇게 뻔한 짓을 할까? 그럼 서쪽 대야주를 친다는 것입니까? 의자는 우리가 그것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때 김병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둘러선 무장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다. 대부분이 김유신을 따라 전장을 누비고 다닌 무장들이다. 그때 김유신이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내가 북상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군사를 이끌고 당항성으로 가지 않은 이유를 아는가? 김유신의 시선이 부장(副將) 서준에게로 옮겨졌다. 서준은 6품 아찬으로 38세, 10여년간 김유신을 수행한 무장이다. 아찬, 말해보라. 예,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서준이 바로 대답했다. 어깨를 편 서준의 왼쪽 볼에 칼자욱이 길게 뻗쳐졌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어느 쪽 적과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김유신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허나 의자의 준동은 전쟁의 시작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군사를 이끌고 북상한 것도 당연한 일, 서쪽 대야주 방비도 충분하니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백전노장의 빈틈없는 말이다.
고산성에서 돌아온 계백은 전택과 4명의 농민 차림의 사내를 대동했는데 그들이 바로 신라에 파견될 백제 연락역이다. 바로 첩자인 것이다. 15품 진무와 16품 극우에서 선발된 하급 무장이었지만 중책을 맡은 터라 모두 긴장하고 있다. 그들을 청으로 데려가지도 못하고 사택으로 데려온 계백이 마룻방에 모아놓고 말했다. “대야성 함락은 그대들에게 달렸다. 그대들의 목숨이 결코 헛되게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 진무 하나가 물었다. “나솔, 소인이 진무를 단지 3년이오. 이번 일이 성사되면 무독까지는 되겠지요?” 무독은 14품이니 2계단 오를 것이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런 욕심이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다. 공(功)에 대한 욕심이 없는 자는 많을 수가 없다. “내가 13품 문독까지는 보장한다.” “어이구, 살아서 문독이 되어야 할텐데요.” 20대 중반쯤의 진무가 따라 웃으며 말했을 때 계백이 대답했다. “그대가 죽으면 처자식이 그 보상을 받으리라.” 듣고만 있던 전택이 입을 열었다. “나솔, 다음달 보름이면 20여일이 남았소. 서둘러야 될 것입니다.” “그대의 책임이 크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대야성의 대아찬에게 연락을 해야 될 것이고 대야성까지의 길 안내를 해야 될테니까.” “나도 목숨을 내놓았소.” 전택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떠올랐다. “승자(勝者)의 세상이요, 승자로 죽으면 이름이라도 아름답게 남을 테니까 말씀이오.” 전택은 삼현성에서 대야성까지의 길 안내를 맡은 것이다. 제각기 농민 차림을 한 다섯명이 사택을 나갔을 때는 오후 유시(6시)무렵이다. 그들은 밤을 세워서 삼현성으로 간 후에 다시 전택은 진궁에게 붙여줄 둘을 데리고 대야성까지 가야만 한다.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계백이 마룻방으로 들어섰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몸을 돌린 계백이 문 앞에 서 있는 고화를 보았다. 시선을 받은 고화가 입을 열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무슨 말인가?” “신라땅으로 말씀입니다.” “준비가 되면 떠나야지.” 그때 고화가 한발짝 다가섰다. “아버지를 만나시겠지요?” “당연하지. 내가 그대 아버님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까.” “제가 급벌찬한테서 다 들었습니다.” 고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물기에 젖은 두눈이 반짝이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면 제 편지를 전해드릴 수 있습니까?” “전해주지.”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전해주겠다.” “그럼 떠나시기 전에 편지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그리고 이번 일이 성공하면 네 부친은 가야국 호족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되실 것이다.” 고화가 시선을 내린채 입을 다물었지만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벼슬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아니야. 네 부친은 정당한 권리를 찾으시려는 것이니까.” “……” “너를 종으로 산 인연으로 일이 이렇게 엮였지만 아직 마음이 놓이지는 않아.” “……” “네 부친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지도 아직 알 수가 없으니까.” 계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나도 최소한의 병력으로 네 부친한테 가는 거야. 네 부친한테 내 목숨을 맡기고 가는 셈이다.” 고화가 머리를 들었지만 계백은 몸을 돌린 후다.
조선조 <재물보(才物譜)>에 ‘호남 사람들이 고막이라 칭한다’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고막(庫莫)이란 말이 나온다. 꼬막을 와룡자(瓦龍子)라고도 한다. 이는 중국과 한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데 기와지붕처럼 꼬막의 껍데기를 보고 지은 이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어로는 복로(伏老), 괴합(魁蛤) 등으로 불린다. <자산어보>에 ‘살이 노랗고 맛이 달다’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라도의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매패류에 속한다. 껍데기 길이 약 5㎝, 높이 약 4㎝, 나비 약 3.5㎝로 피조개나 새꼬막보다 크기가 작다. 껍데기는 사각형에 가깝고 매우 두꺼우며 각피에 벨벳 모양의 털이 없다. 껍데기 표면에 17~18줄의 굵은 방사륵(放射肋)이 있다. 방사륵에는 작은 알갱이처럼 생긴 결절이 각정부터 있어 배 가장자리 쪽으로 갈수록 굵고 거리가 떨어져 뚜렷하게 보인다. 인대(靭帶)는 검은색으로 모가 나 있으며 나비가 넓기 때문에 양 껍데기의 각정부가 약 5㎜ 정도 떨어져 있다. 껍데기는 흰색이고 각피는 회백색이며 살은 붉은 편이다. 우리말 ‘고막’과 ‘꼬막’은 같은 말로 ‘작은 조개’를 뜻한다. 고막과 꼬막에 쓰이는 ‘고’와 ‘꼬’는 ‘고맹이’, ‘꼬맹이’ 같이 구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꼬’는 ‘꼬마’, ‘꼬투리’처럼 작은 사물을 지칭하는 접두어다. ‘막’도 작은 공간을 나타내는 ‘오막’, ‘오두막’, ‘움막’ 등에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고막 혹은 꼬막은 ‘작은 집에 사는 것’이란 의미로 기와지붕처럼 생긴 꼬막의 껍데기를 연상하면 쉽게 그 연원을 생각할 수 있다. 꼬막에는 새꼬막, 참꼬막, 피조개 3가지가 있는데 모두 돌조갯과에 속한다. 새꼬막은 참꼬막보다 적고 털은 약간 있고, 주름은 30여 개며 살은 분홍색이다.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여 똥꼬막이라고도 한다. 참꼬막은 새꼬막보다 맛이 좋아 제사꼬막이라고도 하며 털은 없고 주름은 20여개이며 속살은 검붉은 색이다. 피꼬막은 혈색소가 헤모글로빈으로 되어 있어 피가 붉어 피조개라 하며 피를 직접 먹기도 한다. 털이 많고 주름은 4여 개다. 속살은 핏빛이며 값이 비싸 한때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기자 생활 100년을 기념하는 책이 나왔다. <청언백년(淸言百年)- ‘3부자 記者’ 100년의 글 자취>라는 제목의 이 책은 박규덕(1935~1998) 전 전북일보 주필, 박종권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종률 CBS 논설실장 삼부자가 쓴 칼럼과 논평을 발췌해 엮었다. 언론인으로 활동한 삼부자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접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해석한 글이 실려있다. 삼부자는 모두 기자로 출발해 논설위원을 거쳤다. 언론인의 길을 함께 걸었던 이들에게는 올곧은 저널리즘 정신이 관통한다. 고(故) 박규덕 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군(軍)을 ‘가시가 많아 울타리로 제격인 탱자나무’에 비유하며 군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큰아들인 박종권 씨는 한국기자협회 수석부회장으로 공정 언론을 구현하는 데 노력했고, 작은 아들인 박종률 씨는 한국기자협회 초대 직선 회장에 당선된 뒤 연임하며 저널리즘 복원에 힘썼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추천사를 통해 “깨끗한 말과 글인 ‘청언(淸言)’을 국민에게 전하려는 삼부자 기자의 고통과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들과 함께 격동의 대한민국 반세기를 찬찬히 뒤돌아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 박규덕 씨는 1957년 전북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이래 전북일보에서만 40여 년을 몸담으며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을 지낸 향토 언론인이다. 박종권 씨는 1986년 중앙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중앙엔터테인먼트앤드 스포츠 대표이사, 일간스포츠 편집인,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쳤다. 현재 내일신문과 아주경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박종률 씨는 1992년 CBS 기자로 입사한 뒤 아침 종합뉴스 앵커,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CBS 논설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몇 년째 동네 책방 열풍이 거세다. 전주도 잘 익은 언어들, 책방 토닥, 살림책방, 유월의서점, 북스포즈, 책방 같이(:가치), 에이커 등 개성 다른 작은 서점이 골목을 점령하고 있다. 오는 24일 새로 문 여는 L의 서재는 직장인들에게 반가운 심야 문학서점이다. 전주 효자도서관 인근의 카페 알마 마테르 안에 둥지를 튼 L의 서재는 시와 소설, 에세이만을 다룬다. 베스트셀러에 편승하기보다는 일반서점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책과 작가 소개 등에 집중한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운영자 L(이재규 씨)은 밤에만 서점에 나온다. 그는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퇴근을 하고 밤늦게 책을 읽기 위해, 또는 퇴근 후 여유 시간을 인문학적으로 즐기기 위해 서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지금 읽으면 좋을 시집과 소설을 골라주고 책에 관한 소감을 나눈다. 낮에도 서점 문을 열고 책을 팔지만 자타공인 다독가로서 북 큐레이터를 자청한 L과 함께하는 책 이야기가 이 서점만의 특색이다. L의 서재는 오는 24일 오후 4시 30분 개점을 기념해 한국문학에서 개성적인 목소리로 유명한 배수아 작가를 초청한다. 그의 신작 단편 <뱀과 물>을 작가가 낭독극으로 들려주는 특별한 시간이다. 배 작가는 창작과 번역 양쪽에서 열혈 팬을 가졌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번역돼 미국에서 연달아 출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음료 포함 참가비(1만 원). 3월 23일은 김이듬 시인이 온다. 지난해 6월 전주 금암동 전북대 병원 맞은편에 자리를 튼 책방 놀지가 매일 하는 것. 놀 궁리다. 놀지는 책방과 지식을 뜻하는 단어인 Knowledge+지(知)의 합성어다. 전북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5명이 의기투합해 마련한 동네책방이자, 커피가게이자, 아시아문화를 탐구하는 연구소다. 연구원들의 취향 덕분인지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판매하고, 직접 책을 읽고 느낀 소감과 설명을 함께 전시한다. 커피와 맥주, 와인 등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이곳은 눈과 입, 귀가 함께 즐거운 공간이다. 손으로 넘겨보던 시를 귀로 읽어보는 시 낭독회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해 함께 듣는 밤의 음감회가 매달 열리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3월 7일 오후 7시 30분 열리는 시 낭독회에는 이희중 시인이 귀한 시간을 냈다. 지난해 15년 만에 세 번째 시집<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문학동네)를 낸 그가 신간에 수록된 시들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지난달에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인 김헌수 씨 등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낭독자로 나서 호평을 받았다. 도서음료 포함 참가비 1만 5000원. 3월 3일 오후 8시부터 열리는 밤의 음감회는 책방에서 나눠주는 엽서에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내면 매니저가 틀어준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나의 명곡 리스트를 공유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라는 설명이다.
계백이 옷만 갈아입고 전택과 함께 남방 방성(方城)인 고산성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은 해시(10시) 무렵이다. 방령 윤충이 청 안에서 계백과 전택을 맞았는데 오늘도 방좌 연신이 동석했다.“나도 오늘 오후에 대왕께서 보내신 전령으로부터 내막을 들었어.”윤충이 계백을 맞으면서 말했다.“그런데 신라인을 직접 데려오다니 일이 빨리 진행되는구나.”윤충의 시선이 전택에게 옮겨졌다. 그때 전택이 두손으로 청 바닥을 짚고 절을 했다.“신라 삼현성 보군대장 급벌찬 전택입니다.”시선을 든 전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말을 이었다.“신라 관직을 대기가 부끄럽습니다.”“알아.”윤충이 담담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그대의 가슴이 복잡하겠지. 반역이냐 또는 내가 사내의 길로 바로 가는 것이냐, 하고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예, 목숨이 아깝지는 않으나 헛되게 버리지는 않겠습니다.”전택이 눈을 부릅뜨고 윤충을 보았다.“전(前) 삼현성주 진궁도 소인과 같습니다.”윤충의 시선이 계백에게로 옮겨졌다.“나솔, 나도 그대에게 맡기겠다. 허나 신중을 기해야 될 것이다.”그때 연신이 나섰다.“그래서 여기 있는 급벌찬과 진궁에게 각각 우리측 연락역을 배치시키는 것이 낫겠네.”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대아찬 진궁은 지금 대야성의 마장 관리인이 되어 대야성에 있습니다.”“어허.”탄성을 뱉은 윤충이 연신과 마주보더니 전택에게 물었다.“그게 정말인가?”“예, 방령. 그래서 제가 달려온 것입니다.”“그렇다면 곧장 대야성을 찌를 수도 있겠구나.”윤충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삼현성은 놔두고 뱀의 머리부터 떼는 것이다.”“제가 대야성으로 가겠습니다.”계백이 말을 이었다.“전택과 함께 삼현성 군사로 위장하고 대야성까지 가는 것입니다.”“전령의 말을 들으니 3백 군사만 데리고 가겠다던데 가능할까?”“바로 뒤만 받쳐 주십시오.”윤충과 연신이 다시 얼굴을 마주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아직도 전택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전택을 믿더라도 만일 신라군에게 잡히면 실토할 수밖에 없다. 그때 전택이 입을 열었다.“저에게 연락관 둘을 붙여 주시지요. 하나는 제 옆에 남고 또 하나는 연락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둘은 제 고향 농장에서 온 하인인 줄 알 것입니다.”“그렇다면 진궁에게도 둘을 보내야겠군.”“제가 이번에 그 둘을 데리고 가지요.”전택이 말을 이었다.“삼현성을 거쳐 대야성까지 들어가 대아찬을 만날 테니까요.”“그럼 내일 떠날 때 넷을 붙여주지.”윤충도 결단이 빠른 성품이다. 머리를 끄덕인 윤충이 수족 같은 방좌 연신에게 지시했다.“덕솔, 진무나 극우 중에서 넷을 추려 내일 나솔에게 딸려 보내도록.”“예, 방령.”“대가야가 백제에 귀속되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게야.”윤충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전택을 보았다.“가야 토호 중에서 김유신만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는 재주를 부려 김춘추에게 여동생을 주는 바람에 출신을 했지?”억지 소리지만 설득력은 있다. 전택이 어깨만 부풀렸고 윤충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대백제는 한때 대성(大性)이 권세를 누렸지만 지금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신하들을 관리한다. 그대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리!뒷쪽에서 부르는 소리에 계백이 말고삐를 채어 말의 속도를 늦췄다. 오후 미시(2시)무렵, 칠봉산성 앞쪽의 황무지를 달려가던 중이다. 머리를 돌린 계백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사내를 보았다. 40대쯤으로 손에 손도끼를 들었다.성주 나리.다가온 사내가 가쁜숨을 가누면서 말을 이었다.나무를 하다가 지나시는 것을 보고 인사를 드리려고...무슨 일인가?말을 세운 계백이 물었다. 의자대왕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호위군사 2기만 거느리고 이번에도 쉬지않고 달려오는터라 지친 상태다.예, 제 이름은 곽신조라고 하옵고, 제 자식은 배준이라고 합니다.계백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땅바닥에 넙죽 엎드렸다.제 자식에게 활과 화살을 주셨고 잡은 노루까지 주셨습니다. 그 인사를 여기서라도 드립니다.오.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아이가 궁술 연습을 하는가?예. 잠을 잘때도 손에서 활을 놓지 않습니다. 나리.연습이 제일이야.이 은혜는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나리.성주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아이나 잘 키워라.나리. 무운장구 하소서.고맙네.말고삐를 당긴 계백이 말을 이었다.올해 농사는 풍년이지만 세는 작년 기준으로 걷을테니 겨울은 잘 지내게 될거네.아이구. 고맙습니다. 나리.사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만큼 기쁜 소식도 없는 것이다. 마을로 달려간 사내가 금방 소문을 낼것이다. 성에 들어간 계백이 옷부터 갈아 입으려고 사택앞에서 말을 내렸을때 덕조가 달려 나왔다.나리. 왔습니다.서둘러 말하는 덕조의 뒤로 사내 하나가 따라 나왔다. 바로 삼현성의 보군대장 전택이다.나리, 이제 오십니까?오. 무슨 일인가?다가간 계백이 전택에게 물었다. 고화와 우덕은 보이진 않았고 며칠전에 고용한 여종 둘이 마루끝에서 기다리고 있다. 계백은 전택과 함께 마룻방에 올라 마주보고 앉았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앉은 것이다. 전택이 입을 열었다.나리. 성주가 대야성의 마장 관리인이 되셨소.대야성의?놀란 계백의 눈빚이 강해졌다.대야성으로 옮겨갔단 말인가?예, 삼현성에 두면 불안하니까 옆으로 불러들여 감시할 작정이었던것 같습니다.전택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그것이 오히려 더 잘되었지요.....구(구)마장을 관리한다고 보냈는데 병든 말 몇필에 군사는 10여명이었습니다. 관리인 숙사는 돼지우리 같았다고 합니다.....저는 삼현성 보군대장 직임을 그대로 갖고 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앞장을 설수가 있소.가만.손을 들어 전택의 말을 막은 계백이 정색했다.나하고 갈곳이 있네.어디 말씀이오?내일 아침에 남방 방령을 만나러 가세.방령 나리를 말씀이오?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말을 이었다.내가 이번 전쟁의 선봉을 맡게 되었어.숨을 죽인 전택을 향해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이제 그대와 나, 그리고 구(구)삼현성주는 일심동체로 움직여야 되네. 같이 살고 같이 죽을거야.
동방군(東方軍)과 함께 북쪽의 신라 신주(新州)를 겨냥하고 무력시위를 하던 의자왕의 진막 안이다. 이곳은 백제 북방(北方)의 우측 끝, 상진성에서 20여리 떨어진 산기슭, 앞쪽 벌판에는 백제군 2만5천이 포진하고 있어서 인파로 자욱하게 덮였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진막 안에는 상석에 의자왕이 앉았고 좌우로 병관좌평 성충, 동방방령 달솔 의직 등 대장군급 무장들이 둘러서 있다. 그리고 의자왕을 바라보는 정면에 나솔 계백이 서있다. 계백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옷이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다.나솔, 왔느냐?의자가 웃음 띤 얼굴로 계백을 맞았다.예, 대왕.계백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40이 넘어 왕위에 오른 의자는 20대 중반인 계백에게 아버지뻘이다. 더구나 무장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군주에게 목숨을 바치는 법. 의자에 대한 계백의 충성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대왕의 전령으로부터 호출을 받은 계백은 칠봉성으로부터 이곳까지 5백여리 길을 만 하루만에 달려온 것이다. 도중의 성(成)에 들려 말을 바꿔탔지만 잠은 잠깐씩 길가에서 잤을 뿐이다. 그때 의자가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내가 나솔하고 나눌 이야기가 있다. 병관좌평과 동방방령만 남고 물러가도록 하라.그러자 순식간에 진막이 비워졌고 안에는 의자와 성충, 의직, 계백만 남았다. 의자가 계백에게 물었다.대야성은 난공불락인데다 김춘추, 김유신의 권력 기반이 되는 성이다. 더구나 대야주 42개 성의 중심이다.의자의 두 눈이 번들거렸고 목소리가 낮아졌다.나솔, 삼현성주의 모반이 확실하느냐?바로 이것 때문에 의자가 계백을 부른 것이다. 남방방령 윤충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의자가 계백에게 직접 확인하고 있다.대왕, 가야인의 반발은 확실하나 삼현성주의 투항은 아직 믿기 어렵습니다.어허.예상 밖의 대답인지 의자가 탄식했다.그렇다면 그 기회를 버릴 것이냐?아닙니다.계백이 머리를 들고 의자를 보았다.소장이 그 기회를 잡겠습니다.무슨 말이냐?그때 병관좌평 성충이 나섰다.나솔이 그 함정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겠다는 말인가?예, 좌평.머리를 끄덕인 성충이 의자를 보았다.대왕, 나솔의 방법이 낫습니다.의자가 지그시 계백을 보았다.자세히 말해보아라.소장이 변복한 군사들을 이끌고 삼현성주의 뒤를 따라 대야성에 진입하겠습니다.말하라.진입한 후에 성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던 백제군이 성을 장악하는 것입니다.옳지.의자가 시선을 준 채로 말을 이었다.만일 함정이라면 너와 네 부하들만 당하게 되겠구나.예, 대왕.대야성에는 1만이 넘는 군사가 있다고 한다. 너는 군사 몇 명을 이끌고 가겠느냐?3백이면 성문 하나는 장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왕.3백이면 너무 적지 않느냐?성문 하나를 장악하기에는 적당합니다, 대왕.내가 네 아비를 알지.불쑥 의자가 말했기 때문에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의자가 초점이 멀어진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내가 연남군에 갔을 때 네 아비하고 같이 사냥을 했다. 네 아비는 명궁이었다. 충신이었지.황송하오.계백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대왕한테서 아비 칭찬을 받는 것이 바로 가문의 영예다. 특히 대왕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했을 경우에는 더욱 감개가 무량해진다. 그래서 대(代)를 이은 충성이 나오게 된다.
“음, 대아찬, 왔는가?”김품석이 진궁을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한낮, 대야성의 청에 앉은 김품석의 표정은 밝다. 사방 100자(30m)가 넘는 청에는 수십 명의 관리, 무장들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인근 성에서 온 성주들도 눈에 띄었다. 진궁이 두 손을 청 바닥에 짚고 김품석을 올려다보았다.“군주(軍主), 부르셨습니까?”김품석이 전령을 보내 대야성으로 부른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지면서 청 안이 조용해졌다. 김품석은 28세. 장인인 김춘추와 같은 아찬이며 진골 왕족이다. 42개 성을 거느리는 대야군주(軍主)였으니 김춘추보다 오히려 실세다.“대아찬, 심현성에는 이미 신임 성주가 가 있으니 그대에게 새 직임을 주겠다.”김품석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대야성 북쪽의 구마장 관리인이 비었다. 그대가 관리인을 맡으라.”“마장 관리인입니까?”“그렇다.”김품석의 눈빛이 강해졌다. 청 안의 문무관(文武官)들이 숨을 죽였고 누군가 쇠붙이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칼이 마룻바닥에 떨어진 것 같다. 진궁이 김품석의 시선을 받은 채 심호흡을 두 번 하고나서 입을 열었다.“막중한 소임을 맡겨주셔서 감사드리오.”“그런가?”어깨를 늘어뜨린 김품석의 눈빛이 약해졌다.“오늘부터 맡으라. 관리인 숙사는 비었을 것이다. 북쪽의 구마장이다.”“예. 군주.”머리를 숙여 보인 진궁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청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진궁이 청을 나왔을 때 마당 건너편 중문 밖에서 기다리던 장춘이 따라붙었다. 장춘은 삼현성에서부터 따라온 진궁의 집사다. 진궁의 집안에서 대를 이어서 내려온 씨종인 것이다.“주인, 어떻게 되셨소?”진궁과 비슷한 연배의 장춘이 옆으로 붙어 걸으면서 물었다. 장춘은 뼈가 굵었고 힘이 장사여서 지금도 말을 어깨에 올리고 걷는다. 진궁이 대답 대신 지나는 군사 하나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대야성 구마장이 어디 있느냐?”“이 길로 주욱 가시오.”군사가 손으로 앞쪽을 가리키더니 진궁을 훑어보았다.“거긴 뭐 하러 가십니까?”“내가 구마장 관리인이 되었다.”“병든 말 몇 마리뿐인데요.”그때 장춘이 군사에게 바짝 다가섰다.“이보게. 병든 말 몇 마리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성의 새마장은 남쪽 마장으로 옮겼고 구마장은 병들고 죽어가는 말 몇마리만 남겨놓았소.”숨을 들이켠 장춘이 다시 물었다.“그곳 관리인이 있었는가?”“관리인이 무슨 필요가 있소? 군사 대여섯 명이 지키고 있을 뿐이오.”그때 진궁이 장춘에게 말했다.“자, 가자.”“고맙네.”군사에게 인사를 한 장춘이 진궁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둘이 다섯 걸음을 걸었을 때 장춘이 앞쪽을 응시한 채 말했다.“주인, 잘 되었소.”진궁은 발만 떼었고 장춘이 말을 이었다.“마장 관리인으로 박아놓고 감시를 하겠지요. 행여나 했던 내가 미친놈이었소.”장춘은 전택이 계백을 만나고 온 것도 아는 것이다. 어깨를 부풀린 장춘이 힐끗 뒤를 보고나서 말을 이었다.“둑은 손가락만한 구멍 하나가 커져서 터지는 법이오, 주인.”
전북문인협회가 수여하는 2017 전북문학상을 받은 김두성 작가가 두 번째 수필집 <행복은 이미 당신입니다> 출판을 기념해 북콘서트를 연다.오는 22일 오후 5시에 남원 예가람길 공간 봄날.김두성 작가는 행복은 무한한 것이다. 행복은 나누고 또 나눠줘도 줄어들지 않는다. 행복혁명은 마음혁명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고 말한다. 신간에는 그의 행복에 관한 신념과 가치관이 경험담에 적절히 녹아들어 있다.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장 등을 지낸 그는 남원문학과 향토문화의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남원중학교 교장이다.
칠봉산성 아래쪽으로 산기슭을 따라 강이 흐른다. 맑고 푸른 강이다. 강폭은 3백보 쯤 되었지만 아래쪽은 폭이 50여보로 좁아져서 나무다리가 놓여졌다. 이곳이 칠봉산성으로 오르는 앞쪽 입구다. 계백이 칠봉산이 바라보이는 황야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미시(2시)무렵이다. 방령 윤충과 만나고 귀성하는 길이었다. 계백이 앞장을 섰고 10보쯤 뒤로 3기의 기마군이 따랐는데 속보다. 질주를 하면 말이 지치기 때문에 네 필의 말은 빠른 걸음으로 황무지를 횡단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가는 8월말, 말 무릎까지 닿는 잡초가 시들면서 칠봉산의 단풍이 멀리서도 붉게 물들고 있다. 그때다. 어디선가 아이의 외침 소리가 울리더니 앞쪽 풀숲을 헤치면서 큰 노루 한 마리가 가로질러 달려갔다. 빠르다. 노루 엉덩이의 흰 반점이 보이더니 사라졌다.“앗! 노루다!”뒤를 따르던 호위랑 무독(武督) 곽성이 소리쳤다. 그 순간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안장에 걸친 활을 빼들었고 고삐를 입에 물면서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눈 깜빡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흥분한 전마(戰馬)는 네 굽을 모아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노루를 쫓는 것이다. 계백이 풀숲 사이로 보였다가 숨기를 반복하는 노루를 응시했다. 전마는 빠르지만 노루와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1백여보, 그 때 뒤쪽에서 호위 기마군이 쫓아왔지만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계백의 30보쯤 뒤다. 그때 계백이 활을 만월처럼 당겼다. 달리는 말위에서 입에 고삐를 물고 겨눈다. 뒤를 따르는 호위군사는 숨을 죽인 채 응시했다. 그 순간 계백이 시위를 놓았다. 앞쪽 1백10보쯤 떨어져있던 노루가 한걸음에 7~8보 간격쯤으로 도약을 했는데 그 도약해서 떠오른 순간을 겨누고 쏘았다.“와앗!”뒤쪽에서 함성이 울렸다. 솟아올랐던 노루의 목에 화살이 박힌 것이다. 노루가 곤두박질로 풀숲에 뒹굴었을 때 계백과 기마군이 달려가 에워쌌다. 곽성이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칼등으로 노루의 머리를 쳐 숨을 끊었다.“나리, 명궁이십니다.”노루 옆에 선 곽성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지난번 삼현성에서 적장을 쏘아죽이셨다는 소문도 군사들을 통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곽성은 한인(漢人)이다. 백제는 귀화한 한인은 물론이고 왜인, 남만인, 인도인까지 받아들였고 관직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30대 초반의 곽성은 산적질을 하다가 투항하고 백제인이 되었다. 계백이 흥분한 말갈기를 쓸어 달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아이가 노루를 쫓았던 것 같다.”그때 옆쪽에서 풀숲을 헤치며 아이 둘이 달려왔다. 열두어살 짜리와 열살쯤의 사내 아이. 둘 다 남루한 베옷을 짚으로 묶었고 큰 아이는 조잡하게 만든 활을 쥐었다. 가쁜 숨을 내뱉으며 달려 온 둘이 멈춰 서더니 죽은 노루를 보았다. 그리고는 계백을 올려다본다. 큰 아이의 눈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찼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산성 아랫마을에 사느냐?”“예, 나리.”큰 아이가 가쁜 숨을 참으며 대답했다.“아랫마을 곽신조의 아들 배준입니다.”아이의 맑은 눈을 내려다보던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저 노루를 가져가거라.”놀란 아이가 숨을 들이켰을 때 계백이 들고 있던 활을 아이 앞에 던졌다.“이 활로 궁술 연습을 해라. 화살도 주마.”
최원현 수필가가 수필집 <누름돌>로 제23회 신곡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본상은 송복련 수필가가 수필집 <물(物)의 시선>으로 받았다.수필과비평이 지난 1995년 제정한 신곡문학상은 전국 문단에 기여도가 높고 뛰어난 문학성을 자랑하는 수필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최원현 수필가는 한국수필로 수필, 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부문에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강남문인협회 회장, 한국수필작가회장 등을 역임했다. 허균문학상, 서울문예상, 한국수필문학상, 현대수필문학상, 월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날마다 좋은 날><문학에게 길을 묻다><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 등 15권, 문학평론집으로 <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 등 2권이 있다.제23회 신곡문학상 시상식은 24~25일 부안 모항해나루 가족호텔에서 열린다.시상식과 함께 수필 문학 세미나도 열린다. 최원현 수필가가 현상(現象)의 수필, 형상(形象)의 수필을 주제로 강연한다.
전택이 방으로 들어섰을 때는 깊은 밤, 자시(12시)가 지났을 무렵이다. 고향에서 친척 상(喪)을 당했다면서 엿새 동안 비번 허가를 받고 계백을 만난 것이다. 오늘이 엿새째, 신임 성주 죽성에게 신고까지 마치고 진궁에게 다시 숨어 들어왔다.“고화를 만났고 계백까지 만나 이야기를 했습니다.”전택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계백은 바다 건너 백제령 담로인 연남군 출신 무장으로 24세, 상처하고 혼자 삽니다. 의자왕이 즉위 후에 담로의 무장들을 많이 데려왔는데 계백도 그 중 하나입니다.”전택은 계백에 대해서도 알아본 것이다.“계백은 건장한 체격에 중후한 성품을 지닌 것 같았습니다. 고화를 당장 손님으로 대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반역이야.”불쑥 진궁이 말했기 때문에 전택은 숨을 들이켰다. 굳어진 전택의 표정을 본 진궁이 빙그레 웃었다.“반역이 성공하면 임금이 된다네.”“성즉군왕이요, 패즉역적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나는 가야인으로 돌아가 반역을 하겠네. 그대는 어쩔 텐가?”“따르지요, 당에서도 무시를 받는 여왕의 졸개가 되지 않겠습니다.”진궁이 다시 웃었다.“나는 자식의 생사에 연연하는 부모로 죽겠어.”“같이 가십시다.”둘의 시선이 마주쳤고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결의(決意)다.남방방령 윤충이 계백과 마주 앉았을 때는 신시(오후 4시) 무렵이다. 계백이 방성(方城)인 고산성까지 호위 기마군 3기만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청 안에는 방좌 연신까지 셋 뿐이었는데 계백의 보고를 들은 윤충이 목소리를 낮췄다.“내막을 들으니 함정은 아닌 것 같다. 대야성이 내부에서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하지만 확인할 필요는 있습니다.”계백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삼현성보다 진궁을 이용하여 대야성을 공략하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그렇지.”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윤충이 눈을 가늘게 떴다.“이 기회를 삼현성 하나와 맞바꿀 수는 없지.”“삼현성에서 대야성까지는 1백리 정도이고 그 사이에 성이 4곳이 있습니다.”방좌 연신이 청 바닥에 펴놓은 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모두 요지(要地)에 박혀 있어서 삼현성을 함락시킨다고 해도 대야성까지 간다면 병력과 시간 손실이 클 겁니다.”머리를 끄덕인 윤충이 계백을 보았다.“나솔의 의견을 듣자.”“삼현성은 놔두고 대야성을 직접 공략하는 것입니다. 진궁을 앞세워 신라군으로 위장할 수도 있고 진궁에게 성문을 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그렇지.”윤충이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대야성부터 떨어뜨리면 머리 잃은 뱀꼴이 되겠지.”“나솔의 방법이 적합합니다. 다만 은밀히 거행되어야지 잘못되면 망합니다.”“그럼 결정했네.”정색한 윤충이 계백을 보았다.“나솔이 추진하되 선봉군 4천을 응용하도록, 내가 1천을 더 증원시켜주겠네.”“예, 방령”“내가 대왕께 보고하도록 하지, 철저히 기밀을 지키도록 하고 나에게 수시로 보고하도록.”이제 대야성 공략의 첫 발이 내디뎌졌다.
백제가 세상의 중심이다.대왕 의자가 말고삐를 쥔 채 옆을 따르는 왕자 부여풍에게 말했다. 왕자 부여풍(豊)은 무왕 32년인 10여년 전에 왜국의 백제방(百濟方)에 보내졌다가 잠깐 귀국한 길이었다. 의자는 풍과 함께 도성 북쪽의 사냥터에 나와 있는 것이다.명심해라. 지난 수백 년간 백제는 왜국과의 교류에 공을 들였다. 이제 일심동체, 천왕가(天王家)에서부터 대신들까지 백제계가 되었다.풍이 잠자코 옆을 따른다. 한낮, 앞쪽 호위군이 몰아온 꿩 한 마리가 옆쪽으로 날아갔지만 의자는 놔두었다. 둘의 뒷쪽으로 고관, 장수들이 20여보 거리를 두고 따른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대륙은 이제 전운(戰雲)으로 덮여지고 있다. 백제와 신라, 고구려, 당까지 격동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머리를 든 풍은 의자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의자왕 3년, 3년 전에 죽은 무왕(武王)은 41년간이나 재위를 했다. 따라서 의자왕은 나이 40이 넘어서 왕위에 오른 것이다. 부여풍은 선왕(先王)때 백제방의 장관이 되어 떠났으니 10여년 만의 귀국이다. 의자가 목소리를 낮췄다.곧 신라의 대야주를 정벌하여 신라 영토의 3할을 획득하고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항성을 수복한 후에 당을 사면(四面)에서 포위, 멸망시킬 것이다.숨을 들이켠 풍을 향해 의자가 입술 끝만 올리고 웃었다.풍, 잘 들어라.예, 대왕.일본은 수백년 전부터 백제인과 깊은 교류를 맺었고 백제 문화를 받아들였다.그렇습니다, 대왕.1백년전 목협만치(木 滿致)가문이 왜에 들어가 소가만치(蘇賀滿智)로 이름을 바꾸고 왜국의 대신이 되고 왜왕의 외조부가 되더니 권력의 중심에 있지 않으냐?그렇다. 그래서 왜국의 중심 아스카에 백제방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백제방의 장관으로 백제 왕자가 집무하고 있는 것도 왜국 조정과 동체(同 )라는 증거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의자가 말을 이었다.대륙의 담로는 인도 근처의 흑치국(黑齒國)까지 뻗어있으며 우측은 대양에 막힌 일본국까지 대백제의 영향력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예, 대왕.네 책임이 막중하다.대왕, 일본국을 대백제의 동체로 만들겠습니다.수백년간 백제 문물의 영향을 받은 신민(臣民)들이다. 천왕도 우리 핏줄이 아니더냐? 소가 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대신 대부분이 백제계다.당 정벌에도 군사를 낼 수가 있습니다.서둘 것 없다.그때서야 안장에 걸친 활을 잡으면서 의자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너는 내 뒤를 이어 대백제의 대왕이 될 신분이다. 멀리 보아라.예, 대왕.고구려에서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이 나하고 뜻이 통한다. 그래서 대륙에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의자왕 재위 2년째인 작년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영류왕 건무(建武)를 죽이고 영류왕 동생의 아들인 보장(寶臧)을 왕으로 삼았다. 영류가 당을 겁내어 수비에만 치중하고 저자세를 보인 것이 연개소문의 경멸을 산 것이다. 풍이 숨을 들이키며 머리를 끄덕였다. 격변의 시기인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는 동맹을 맺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지난해 조선시대 석양(石羊), 전북지역 고문헌(古文獻) 등 국내외 유물 158점을 기증받았다고 11일 밝혔다.석양은 일본인 히카 아키오(比果彰夫) 씨가 선대부터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본인 의사에 따라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유물은 머리에 비해 몸통이 비대하고, 다리 사이가 막혀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석양의 특징을 띤다. 제작 시기는 조선 후기로 평가된다. 현재 석양 2점은 국립전주박물관 옥외전시장에 전시돼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고문헌은 강제봉 씨가 고문서 1점, 윤경원 씨가 고서 155점을 각각 기증했다. 강제봉 씨가 기증한 고문서는 광무 9년(1905) 전라북도 관찰사가 정려문(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세운 건물이나 문) 제작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윤경원 씨가 기증한 고서는 1800년대 후반 호남지역에서 간행된 문집과 지리지 자료가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조선 말기에 항일의병 활동을 펼친 최익현(1833~1906)의 문집, 남원의 지리지인 <용성지>, 조선시대 호남지역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호남절의록> 등이 눈길을 끈다.국립전주박물관은 기증된 고문서와 고서는 호남의 선비문화와 관련해 지식인의 모습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며 향후 해당 자료를 연구와 전시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그머니!”우덕이 비명을 질렀다. 놀란 외침이다.청으로 들어선 우덕이 계백 앞에 앉은 사내를 본 순간 자지러진 것이다.“오.”사내도 우덕을 보고는 짧게 신음했다.“나리.”우덕이 손에 쥐고 있던 쟁반을 겨우 떨어뜨리지 않고 마룻바닥에 놓더니 사내를 불렀다. 사내는 상인 행색을 했지만 삼현성 보군대장인 급벌찬 전택이었던 것이다. 계백은 둘을 바라만 보았고 전택이 입을 열었다.“아씨는 잘 계시냐?”“예? 예.”영문을 모르지만 대답부터 한 우덕이 부엌쪽을 향해 냅다 소리쳤다.“아씨! 아씨! 이리 와 보세요!”그러자 부엌에서 고화가 나왔고 마당에 있던 덕조는 이미 마루 끝에 붙어 서있다. 그러고 보니 마당 끝에 군관 서너명이 주춤거리며 모여서 있다. 청으로 다가온 고화가 역시 전택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러나 우덕과는 달리 눈을 크게 뜨고는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오, 고화, 고생이 많구나.”“급벌찬이 여기 웬일이세요?”고화가 겨우 물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서 있기가 힘이 드는지 한 손으로 기둥을 잡았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들어와 앉아라.”고화가 홀린 것 같은 얼굴로 청에 올라 전택 옆쪽으로 앉았다. 우덕은 벽에 붙어 서있고 덕조는 마루끝에 자리잡았다. 마당의 군관들도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집안이 조용해졌다. 먼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전택이 계백에게 말했다.“이제 고화를 확인했으니 말씀 드리겠소. 삼현성을 넘겨 드리지요.”고화가 머리를 들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계백도 시선만 주었고 전택이 말을 이었다.“성주께서 말씀하셨소, 딸을 핑계 삼아 성을 넘기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습니다. 왕국에 대한 충성과 의리 따위를 주절대는 것보다 훨씬 정직한 소행이라고 하셨소.”그때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믿겠다고 전해주시게.”“기다리고 있겠습니다.”두손을 청 바닥에 붙인 전택이 머리를 숙였다가 들었다, 물었다.“고화 주종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지금 돌려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당연하지요.”전택의 시선이 옆에 앉은 고화를 스치고 지나갔다.“손님으로 대우해주시오, 성주.”“그러지.”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마루끝에 다가와선 덕조에게 말했다.“들었느냐?”“예?”“고화가 내 손님이다.”“예, 그것이…”“알았느냐?”“예.”“다른 곳에서 종을 둘 데려와서 고화 주종의 시중을 들도록 해라.”덕조가 숨만 쉬었기 때문에 계백이 다그쳤다.“알아들었어?”“예, 주인.”머리를 돌린 계백이 다시 전택을 보았다. 굳어진 얼굴이다. “대야주가 떨어지면 가야인이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지.”그러자 전택이 대답했다.“가야를 바쳐 김유신 일족만 출세했지요.”
전북교단문학회 제11대 신임회장으로 이길남 부안격포초 교감이 선출됐다. 전북지역 초등학교 교사 및 퇴임을 한 교사들로 구성돼 있는 전북교단문학회는 교사들의 문학적 소양을 다듬고 어린이 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생겼다.전북교단문학회장은 전북글짓기지도회장을 겸한다. 1965년 창립한 전북글짓기지도회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도내 초등 교사들의 모임으로 54년간 어린이 글짓기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이길남 신임회장은 “선후배들과 함께 전북교단문학회와 전북글짓기지도회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회원을 늘리고 회원들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 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소년문학으로 등단해 동시집 <띵까 띵까>를 출간했다.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 대한민국봉사대상 문학대상, 가이아 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굴비의 어원을 찾으려면 굴비(屈非)와 이자겸(李資謙) 이야기부터 알아야 한다. 이자겸은 고려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예종이 죽자 외손자인 인종을 추대하였으며, 왕위를 찬탈하려던 왕실의 친인척을 숙청하였다. 외손자인 인종이 즉위하자 자신의 두 딸이자 이모가 되는 폐비 이씨 자매를 외손자인 인종에게 시집보내 그 세도가 하늘을 찌르게 권력을 누렸다. 뒤에 인종을 독살하려다가 도리어 인종의 친위 쿠데타에 의해 제거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이자겸은 아들을 7명이나 두었는데 이 중 3남인 이지언의 하인이 척준경의 하인과 싸우다 이지언의 하인이 “네놈 주인은 임금 계신 곳에 화살을 쏘고, 대궐에 불을 질렀으니, 네 주인은 참형을 당하고 너는 관노로 끌려가야 한다!”고 욕한 것이 척준경에게 전해졌다. “주인이 대감이면 하인들도 주인의 위세를 빌어 거들먹거린다더니! 아이고! 하인이 집안을 말아먹네!”라는 말을 전해 들은 척준경은 이자겸의 집으로 찾아와 관복을 벗어 던지며 다 그만두고 낙향하겠다고 펄펄 뛰었고, 이후 척준경과 이자겸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하였다.이후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하였고, 척준경은 인종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글을 올려 화답한다. 이에 인종은 척준경에게 군사를 주어 요샛말로 쿠데타를 시도하였다는 명목으로 이자겸을 붙잡아 오게 한다. 이자겸은 붙잡혔으나 왕의 장인에다 외조부란 이유로 죽이진 못하고 영광으로 귀양 보내진다. 이자겸은 귀양살이하면서도 찬역(簒逆)을 한 일이 없다며 뜻을 굽혀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자겸은 영광의 앞바다에서 잡힌 맛 좋은 조기를 진상하면서 자기가 ‘비굴’ 하지 않다는 뜻으로 굴할 굴(屈), 아닐 비(非)의 굴비(屈非)라고 이름 지어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자겸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었지만 이후 영광 굴비는 궁중 진상품이 됐으며 이것이 굴비의 원조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전북여성백일장 수상자들의 모임인 글벗이 서른 번째 동인지 <글벗>을 출간했다.글벗은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북여성백일장으로 하나 된 문학동인. 격주 금요일 밤에 모여 이길상 시인의 지도 아래 마음의 장작불을 지핀다. 동인지는 진지하게 시를 논하던 시간의 결실.이번 동인지에는 이길상 시인의 초대 시 외딴집을 비롯해 권영란, 박세순, 박완희, 신양옥, 이석영, 이이진, 이해선, 임진, 전경정, 정언주 씨의 시와 수필이 고루 실렸다. 제45회 전북여성백일장 입상작도 자리한다.전경정 회장은 바쁜 일상 중에도 마음의 소리를 글로 옮기고 낭랑한 목소리로 읽던 회원들의 모습,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기만 하다며 글벗이 있어서 숨을 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공해 채소같이 싱그러운 빛깔을 간직한 책. 군산 푸른솔초등학교 학생들이 쓴 어린이 시집 <분꽃 귀걸이>가 그렇다.송숙 교사가 군산 푸른솔초등학교 4학년 6반 학생들이 쓴 시를 엮었다. 학생 수는 남학생 14명, 여학생 12명 등 총 26명이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새로운 교실은 2층. 원래 음악실이었던 곳이다. 그곳엔 작은 베란다가 딸려있었고, 송 교사와 학생들은 이 공간을 화단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시작됐다.식물이 자라니 곤충과 벌레들이 모여들었다. 나비, 꽃등에, 실잠자리가 날아왔다. 벼를 심은 고무 논에서는 농약 사용으로 사라져가던 희귀생물인 풍년새우가 나타났다. 코스모스 꽃잎을 손톱에 붙이고, 분꽃으로 귀걸이를 만들어 서로의 귀에 걸어주면서 함께 웃었다. 배추벌레를 잡느라 아침마다 젓가락을 들고 분주했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1년간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품을 키웠다.이 시집에는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시들이 많다. 짤막한 글이지만 근심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시집에는 송 교사가 1년 동안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직접 찍은 따뜻하고 밝은 사진도 실려 있다.송숙 교사는 2년간의 휴직 후 아이들에게 시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써온 시를 엮어 어린이 시집 <시똥누기>를 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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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전북도립미술관의 반란
부안여성작가 13명, 30일까지 제9회 단미회展 ‘Art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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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존재의 숨결로 표현한 기도 형상
제3회 전북특별자치도 예술·관광상 공모
[⑦ 인간중독] 중독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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