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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0. '개'와 '참'의 의미 - 개를 천대하는 풍토…단어 앞에 '개'가 붙어

‘개’자를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은 ‘가짜다’, ‘안 좋다’, ‘~인 척하다’의 의미를 갖는다. 반대로 좋은 것은 ‘참’이란 글자를 붙인다. 우리 조상들은 수 천 년을 살아오면서 ‘참’과 ‘개’를 가지고 많은 말들을 만들어 냈다. 쉬운 말로 바르고 진실된 것은 단어 앞에 ‘참’자를 붙였다. 그런데 내용이 바르지 못하거나 진실되지 못한 것 또는 좀 아니라고 생각되는 단어 앞에는 ‘개’자를 붙이면서 말을 만들어 왔다. 그 예를 들어보면 ‘참’자에는 참기름, 참나무, 참나물, 참꽃, 참나리, 참말로, 참모습, 참붕어, 참사랑, 참새, 참외, 참조기, 참치, 참흙 등 많은 말들이 만들어졌다. 반면 ‘개’자에는 개살구, 개놈, 개새끼, 개자식, 개판, 개꽃, 개나리, 개꿈,개나발, 개다리, 개떡, 개똥철학, 개망신, 개망나니, 개흙 등과 같다. 이와 같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참’자와 ‘개’자로 말을 만들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개’가 왜 나쁜 쪽으로만 쓰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아마도 사람보다는 개를 천대 시 하는 풍토에서 나왔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 결과를 입을 통해 말로 표현하고 온몸을 이용해 행동이나 눈짓으로 표현하고 또한 그것들을 문자로 표현하면서 만물의 영장 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생겨난 깊은 유래나 원인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잘 모른 채 많은 말들을 막 쏟아 내면서 자연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다. ‘참’(眞)과 ‘개’(犬), 이 두 글자의 어울림 말에 대해 언급하면 여기에서 ‘참’은 한자어의 진(眞)의 뜻인 ‘참’, 즉 사실이나 이치에 어긋남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 ‘개’는 한자어 견(犬)의 뜻인 짐승, 즉 우리가 기르는 개인 것이다. ‘참’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말에 먹을 수 있는 것엔 ‘참’이 붙고, 먹을 수 없는 것엔 ‘개’가 붙었다. 즉 좋은 것, 멋진 것엔 ‘참’이 붙고 볼품없는 것엔 ‘개’자가 붙는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5.10 20:59

청년들이여 일어나라!…소설로 담은 '선거제도 개혁'

“선거제도만 올바르면 사회·경제적 약자는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강자가 될 가능성이 커요. 대의제 민주주의 선거는 1인 1표의 원칙인데,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경제적 약자의 수는 강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잖아요. 그러니 선거제도만 개혁하면 이들은 정치적 힘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과 제도, 법을 (대리인을 통해)만들 수 있는 거죠.”(<청년의인당> 중) 최태욱 정치경제학자(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장편소설 <청년의인당>(책세상)을 펴냈다. 최 교수는 선거제도 개혁이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해왔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복지한국 만들기>(공저) 등 다수의 저서에서 주장을 피력했지만 학술적으로는 흥미가 부족해 소설 형식을 빌렸다. 그 결과물이 정치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청년’들과 약자를 보호하는 ‘의인’들의 정당, <청년의인당>이다. 학자의 자리에서 정치개혁을 설계하는 ‘정치기업가’ 한석, 소상공인 전문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통령이 되는 최드림, 스타 방송기자에서 정치인이 돼 시행착오를 거치는 이혜리 등 세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 정치 현실과 청년 문제, 저자가 생각하는 정치 개혁안을 풀어냈다. 소설 속 시대에서는 광화문 광장이 다시 시민으로 가득 찬다. 일명 ‘헬조선’에 견디다 못한 100만여 명의 청년들의 ‘청년 봉기’다. 청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청년의인당’이 만들어지고 큰 지지를 얻지만 배분 받은 국회의석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 겨우 12석. 20% 득표율을 받지만 의석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를 통해 1등만 뽑아 국회에 보내고 나머지 표심은 사장되는 현행 소선거구 1위 대표제가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드러낸다. 최 교수는 “시민의 의사가 정확히 의석에 반영되는 전면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이 이루어질 때 사회·정치·경제적 약자의 대표성 강화와 이념·정책 중심의 다당제가 가능해진다”며 “소설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자 미래”라고 밝혔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5.10 20:59

[불멸의 백제 (90) 5장 대백제(大百濟) ⑥

사비도성 안쪽 부소산 기슭에 있는 왕궁의 뒤쪽에는 사비수가 흐른다. 사비 천도를 단행한 성왕(聖王)은 천도와 동시에 국호를 남부여(南夫餘)로 바꿨는데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부여는 백제 왕실의 본향으로 왕실의 성(性)인 부여(夫餘)씨도 이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성왕이 관산성에서 신라군에게 패사한 후에 국호는 다시 백제로 환원되었으며 이후 현대의 의자왕대(代)에야 왕권이 제자리를 찾았으니 100년 가까운 세월이 허송되었다. 사비도성 거리는 모두 바둑판처럼 직선으로 뻗어나가 어디서든 끝이 보인다. 도로에는 돌을 깔아 마차가 지나거나 기마군이 달릴 때면 요란한 소리가 났다. 도로의 폭이 100자(30m)가 되었지만 항상 인파로 붐빈다. 거리의 행인은 한인(漢人)과 왜인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남방인과 서역인도 보였는데 대륙의 백제령 담로에서 온 사람들에다 장사꾼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도성안 중부(中部) 전항 지역은 주로 관리들만 거주한다. 도성은 동, 서, 남, 북, 중의 5부(部)와 5항으로 나뉘어 있어서 각 구역별로 거주민이 다르다. 사비도성의 인구는 10만호에 65만이다. 동방(東方)의 대도(大都)인 것이다. 이곳이오. 중부 전항 지역의 대로변에 멈춰선 외관(外官) 점구부(點口部)의 고덕(固德)이 손으로 옆쪽 저택의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이 가리킨 저택은 담장이 높은 대저택이다. 계백이 숨만 삼켰지만 뒤를 따르던 덕조가 대문으로 달려가더니 문을 열어 젖혔다. 아이구. 덕조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머리를 돌린 계백이 열린 문으로 저택의 안을 보았다. 넓다. 마당이 칠봉성의 청 앞 마당만 했고 앞쪽 청은 그보다 더 크다. 마당은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서 햇볕에 반사되고 있다. 고덕이 말했다. 이 저택은 본래 달솔 목신의 집이었지만 남방 흑치군의 군장으로 가시는 바람에 작년부터 빈집이 되었소. 과분하네. 계백이 말하자 고덕이 쓴웃음을 지었다. 40대 초반쯤의 고덕은 점구부의 관리로 호구 파악과 무역 업무를 맡는다. 점구부가 주택을 관리하는 것이다. 한솔, 대왕의 명이오. 나한테 그러실 것 없습니다. 들어가십시다. 신이 난 덕조가 계백의 말고삐를 잡아 끌면서 소리쳤다. 대야성 탈취의 일등공을 세우신 상을 받으신 것이오. 덕조에게 끌려 저택 안으로 들어선 계백이 다시 숨을 삼켰다. 이곳은 바깥채 마당과 청이다. 그리고 옆쪽에는 행랑채가 있고 그 뒤쪽에는 다시 중문(中門)이 있는 것 같다. 중문 안에는 사랑채인가? 그 안은 또 안채인가? 그때 계백 옆으로 고화가 다가와 섰다. 고화도 말에 타고 따라온 것이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고화가 눈웃음을 쳤다. 입술은 꾹 닫았지만 눈이 초승달처럼 잔뜩 굽혀졌다. 그래서 꾹 닫힌 입술이 막 터질 것 같다. 행복한 얼굴이다. 그것을 본 계백이 고덕에게 말했다. 고맙네. 고덕, 과분하지만 대왕께서 내리신 저택을 감사히 받겠네. 그러셔야지요. 고덕도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도성 안에서도 한솔의 용명(勇名)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이오. 계백은 칠봉성에서 식솔들을 이끌고 이곳 사비도성으로 온 것이다. 칠봉성은 계백의 첫 임지였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5.10 20:59

지역 어른들에게 듣는 구비설화

전북문화원연합회가 전북의 향토자료 시리즈로 <전북의 구비설화>를 발간했다. 전북 14개 시군의 구비설화를 망라한 책으로 분량만 955쪽에 달한다. 구비설화를 통해 축전된 삶의 지혜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자료다. 전북의 각 문화원에서는 구비전설 등을 담아낸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의 구비설화>는 단순히 책이나 자료집에 기록된 것을 찾아 묶지 않고, 지역 어른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다. 가능한 각 지방의 언어를 표현 그대로 옮겨 지역의 언어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자료적 성격도 더했다. 마이산이 그전에는 속금산이라고 했어. 마이산이란 것은 말 귀같이 생겼다고 중간에 진 거여. 속금산은 암속금산이 있고, 숫속금산이 있거덩. 숫속금산이 밤에 크자니까 암속금산이 낮에 크자고 했다고, 그래서 발로 톡 찼다고, 여자가 주저앉았댜. 그래서 거 가면 산이 파였어. (진안의 구비설화 속금산 전설 일부) 각 문화원 회원들이 조사자로 나서 고창 46개, 군산 12개, 김제 14개, 남원 30개, 무주 19개, 부안 23개, 순창 28개, 완주 18개, 익산 24개, 임실 23개, 장수 29개, 전주 19개, 정읍 31개, 진안 51개 등 14개 시군의 구비설화 367개를 정리해 수록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은 책이고, 구비설화가 구연되는 현장은 도서관이었다. 책에는 구술자와 구술 일시장소, 조사자, 구술 내용, 설화 내용 등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설화 내용으로는 고창의 동리 신재효에 얽힌 비사, 군산의 광법사 호랑이 바위 이야기, 김제의 용이 된 강처녀와 추방제 설화, 남원의 진씨 탄생설화 옥정(玉井), 무주의 금척마을 유래, 부안의 반계선생 유적과 우반동 내력 등 고장의 역사자료가 세세히 담겼다. 나종우 전북문화원연합회장은 구비설화는 떠돌아다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삶의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며 이번 연구조사를 통해 해안, 산간, 평야 등 각 지역적 특색이 비슷한 삶의 터전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고, 구비설화가 문자문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장르의 문화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5.10 20:59

[불멸의 백제] (89) 5장 대백제(大百濟) ⑤

나리가 오셨다! 덕조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한낮, 계백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종들이 달려 나왔다. 청에서 계백을 모셔온 덕조가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한솔 나리가 오셨다! 그때 안방에서 고화가 나왔다. 계백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고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시선을 내린 고화가 마루에서 내려오더니 머리를 숙였다. 이제 오세요? 잘 있었소? 두 달여 만이다. 다가간 계백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고화를 보았다. 계백이 성에 온다는 기별을 받았을 테니 고화가 단장할 여유는 충분했다. 깨끗한 치마저고리로 갈아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고화의 자태를 보자 계백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이다. 그날 밤, 성주의 관저는 해시(10시)가 되기도 전에 조용해졌다. 하인들의 방에도 불이 꺼졌고 두런거리던 집사 덕조의 목소리도 뚝 끊겼다. 마당 안쪽의 주인 침실에서 불이 꺼진 것이 신호가 된 것 같다. 계백과 고화가 같이 침실에 든 것이다. 침상에 누운 계백이 어둠 속에서 사그락거리며 옷이 벗겨지는 소리를 듣는다. 고화가 옷을 벗는 것이다. 이윽고 옷을 벗은 고화가 침상 위로 오르더니 계백의 옆에 누웠다. 몸을 웅크리고 등을 돌린 자세로 누운 것이다. 계백이 잠자코 팔을 뻗어 고화의 어깨를 당기면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고화가 얼굴을 계백의 가슴에 묻으면서 안겼다. 고화는 엷은 속옷 저고리치마 차림이다. 치마만 들치면 알몸이다. 계백은 고화의 치마끈을 차분하게 풀었다. 고화가 막으려는 듯이 계백의 손목을 두 손으로 쥐더니 곧 떼어졌다. 고화의 숨결이 가빠졌다. 이윽고 치마끈이 풀리면서 계백이 치마를 젖히자 고화의 하반신은 알몸이 되었다. 고화가 이제는 몸을 더 붙인다. 그렇게 알몸을 감추려는 것 같다. 그때 계백이 이제는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고화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려고 시늉하더니 다시 손이 떼어졌다. 저고리가 젖혀지면서 고화의 젖가슴이 통째로 드러났다. 어둠속이지만 희고 풍만한 젖가슴이 선명하게 보인다. 고화의 숨결이 계백의 목에 닿았다. 뜨겁다. 이제 고화는 알몸이 되었다. 두 손으로 계백의 저고리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다. 이제는 계백이 바지를 내려서 벗고 저고리를 벗어 던졌다. 그 순간 둘은 알몸의 짐승이 되었다. 계백이 먼저 고화의 입을 맞췄다. 놀란 고화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숨이 막히자 입이 벌려졌다. 계백은 벌려진 과일 같은 고화의 입을 빨았다. 고화가 이제는 두 팔로 계백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다. 그때 계백이 고화의 몸 위로 올랐다. 고화가 순순히 받아들일 자세를 만들었다. 뜨거운 밤이다. 거친 숨소리에 이어서 신음 같은 탄성이 일어났고 방안에 열풍이 휘몰아쳤다. 열풍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다음날 아침, 아침상을 들고 방안에 들어선 우덕의 뒤에는 덕조만 따르고 있다. 항상 식사 시중을 들던 고화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계백이 수저를 들었을 때 덕조가 헛기침을 했다. 나리, 나리께서 도성의 대왕 옆으로 가신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소문이 맞습니까?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도성에서 따라온 군사들이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다. 사실이다. 나는 곧 새 관직을 받을 것이야. 곧 칠봉성을 떠난다. 어젯밤에 고화에게는 이야기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5.09 20:15

[불멸의 백제] (88) 5장 대백제(大百濟) ④

계백이 탄 고구려선(船)이 사비도성의 구드래 포구에 도착했을때는 평양성을 출발한 지 7일째가 되는 날 오후다. 연개소문의 선물이 많았기 때문에 평양성 아래쪽 포구에서 배를 탄 것이다. 구드래 포구는 백제의 중심항으로 사비도성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강(白江) 중류에 위치한 구드래 포구에는 수백척의 무역선과 수군(水軍)의 전선(戰船)까지 들락거리는 터라 언제나 붐빈다. 배에서 내린 계백에게 포구 경비 책임자인 나솔 관등의 관리가 다가왔다. 솔(率) 품계는 자색 관복을 입었기 때문에 표시가 난다. “한솔께서 오셨군요.” 초면인데도 관리가 활짝 웃는 얼굴로 계백을 맞는다. 백강(白江) 입구에 들어서면서 빠른 정탐선을 보내 포구와 도성에 연락을 했던 것이다. “대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말을 준비했으니 가시지요.” “고맙소.” “짐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나솔이 비껴서자 도시부(都市部) 소속의 관리와 함께 군사들이 재빠르게 배에 올라 짐을 내린다. “고구려선 선장과 선원 대우를 잘 부탁하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객사도 비워놓았고 실컷 먹고 놀도록 하겠습니다.” 선장과 선원들과 작별한 계백이 서둘러 도성으로 들어가 의자왕을 보았을 때는 오후 유시(6시)가 지났을 무렵이다. “한솔, 널 기다리느라 내가 목이 늘어났다.” 의자가 계백을 보더니 대뜸 말했다. 좌우로 도열해 서있던 중신(重臣)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의자왕은 40이 넘어서 왕이 된 터라 왕의 체통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선친인 무왕(武王) 시절에 대성8족(大性八族)의 기세를 꺾고 왕권을 강화시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대왕께 드리는 밀서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어디 선물부터 보자.” 의자의 말에 다시 웃음이 일어났다. 계백이 선물 목록을 펴고 읽는 동안 청 안에서는 연신 탄성이 터졌다. 호피가 20장이나 되었고 비단이 1백필, 금으로 만든 노리개가 한 상자, 진주, 보석 등이 2상자, 녹용이 2상자. 그래서 배에 싣고 온 것이다. 이윽고 목록과 선물의 대조가 끝났을 때 의자가 계백에게 말했다. “이제 됐다. 그만 돌아가 쉬어라.” 계백이 눈만 껌벅였을 때 청 안이 다시 웃음으로 뒤덮였다. 의자도 같이 웃는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의자가 말했다. “밀서를 보자.” 계백이 내민 두루말이 밀서를 받은 병관좌평 성충이 의자에게 두손으로 바쳤다. 그러자 의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대가 읽으라.” “예, 대왕.” 성충이 전 아래에서 밀서를 펴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읽는다.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백제국 의자대왕께 글을 올립니다.” 숨을 고른 성충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고구려는 일찍이 수의 대군을 전멸시켜 수왕조를 멸망에 이르도록 했으며 대륙의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 대륙을 평정할 계획이었으나 전왕(前王) 건무가 소심, 옹졸하여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하여 이 연개소문이 건무를 베어죽이고 보장을 왕으로 세워 대륙 정벌에 나설 예정입니다. 이에 백제와 대동맹을 맺고 대륙을 분할 통치하고자 맹약을 드리는 것입니다.“ 계백은 성충의 목소리를 들으며 감동했다. 눈 앞에 대륙의 평원이 떠오르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5.08 21:28

[불멸의 백제] (87) 5장 대백제(大百濟) ③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고구려 남부(南部)를 통과한 김춘추가 신라 신주(新州)로 들어섰을 때는 도망친 지 나흘째가 되는 날 저녁 무렵이다. 그동안 군관 둘이 죽고 부사(副使) 김성준도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을 입었으니 구사일생을 한 셈이다. 국경에서 고구려군이 쏜 화살에 맞은 것이다. 당항성에 들어섰을 때는 해시(오후 10시) 무렵이었는데 김유신이 기다리고 있다가 맞았다. “대감, 천지신명이 도우셨습니다.” 김춘추의 몰골을 본 김유신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대감의 이 우국충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꼭 보답을 받으실 것이오.” 당항성주와 장수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은 김춘추가 옷만 갈아입고 청에 나와 김유신과 마주앉았다. 청에는 김춘추, 김유신, 김인문까지 셋이 모였다. 김춘추가 입을 열었다. “실패했소. 연개소문은 이미 백제와 단단히 결속되어 있소. 그래서 날 죽일 눈치가 보이길래 여섯만 빠져나왔구려.” 김춘추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연개소문의 집에 20명을 남겨두고 왔으니 모두 죽임을 당했을 거요.” “소장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김유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춘추를 보았다. “떠나신 지 얼마 안 되어서 백제 왕궁에 박아놓았던 세작의 밀서를 받았습니다.” “……” “의자가 연개소문한테 사신을 보냈는데 그 정사(正使)가 계백이라는 것입니다.” 김춘추의 시선을 받은 김유신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의자는 대야성 함락의 공신인 계백을 보내어서 전공(戰功) 자랑도 시켰을 것입니다. 연개소문에게 가셨을 때 그놈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나는 지금 처음 알았소.” 김춘추가 말했을 때 김인문이 나섰다. “우리한테 숨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겠지.” 머리를 끄덕인 김춘추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연개소문을 만날 때 백제 사신들도 고구려 관리들 사이에 끼어 있었을 수도 있겠다.” “계백까지 가 있는 상태에서 대감께 호의적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계백 인상착의가 어떻소?” 불쑥 김춘추가 묻자 김유신이 대답했다. “6척 장신에 호남이라고 합니다. 눈썹이 짙고 코가 두꺼우며 수염이 짙다고 합니다.” “눈은?” “눈꼬리가 조금 솟았고 안광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놈이군.” 쓴웃음을 지은 김춘추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연개소문이 나에게 확인차 보낸 고구려 관리가 그놈 같군.” “아버님, 대부사자 연백이라는 놈 말씀입니까?” “그렇다.” 김춘추가 팔걸이에 몸을 의지하더니 말을 이었다. “연백이란 연개소문의 성(性)에다 계백의 이름 ‘백’을 붙인 것이었구나.” “그놈이 매부와 누이를 죽인 원수였습니다. 그놈이 눈앞에 있었군요.” 김인문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때 김유신이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대감께선 천운을 받으셨으니 반드시 그 한(恨)을 푸실 기회가 올 것입니다. 쉬시지요.” 김유신의 위로를 받은 김춘추가 웃었다. “그렇소. 국운은 천운이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5.07 20:46

[불멸의 백제] (86) 5장 대백제(大百濟) ②

“도망쳤어?” 버럭 소리친 연개소문이 눈을 부릅떴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저녁을 먹자고 김춘추를 부른 다음에 창고 옆쪽의 별당에 연금시키기로 결정을 했던 연개소문이다. “예, 부사(副使) 둘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데리러 갔던 관리가 쩔쩔매면서 대답했다. “수행원 장인 중 군관 셋까지 여섯이 비었습니다.” “이놈이.” 연개소문이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내려치고 나서 소리쳤다. “잡아라!” “예엣!” 대답한 고관은 병관대신(兵官大臣)인 막리지 요영춘이다. 몸을 돌린 요영춘이 청 밖으로 달려나갔다. 전쟁에 익숙한 장수 출신이어서 세세한 지시 따위는 받지 않는다. 연개소문 또한 장수를 부려온 대장군이다. 김춘추 체포를 맡기더니 시선을 돌려 고관들을 보았다. 연개소문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있다. “쥐새끼 같은 놈, 눈치를 채었구나.” “전하, 놈이 경솔했다는 증거올시다.” 동생 연정토의 말에 연개소문이 입맛을 다셨다. “나도 방심을 했다. 내 집안이라고 경비를 배치시키지 않았구나.” 연개소문의 시선이 고관들 사이에 선 계백에게 옮겨졌다. “계백, 잡았다가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신라가 그만큼 다급했던 것입니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먹을 만한 고기도 아니었습니다. 미련을 버리시지요.” “그런가?” 쓴웃음을 지은 연개소문에게 계백이 말을 이었다. “전하, 저도 내일 백제로 떠나겠습니다. 너무 오래 폐를 끼쳤습니다.” “떠난다니 서운하구나.” 눈썹을 모은 연개소문이 만류하지는 않았다. “내가 백제왕께 보내는 서신과 선물을 준비하겠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사시(10시) 무렵에 계백은 연개소문의 전송을 받으며 저택을 떠났다. 고구려 기마군의 호위를 받은 백제 사신 일행의 행차는 볼만했기 때문에 길가에는 구경꾼들이 가득 찼다. 일행이 평양성 남문을 나왔을 때 화청이 계백에게 말했다. “한솔, 김춘추가 말장수한테서 말 7필을 샀다고 했으니 꽤 멀리 갔을겁니다.” 말을 판 말장수가 신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야 신고해서 늦었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가 신라 신주(新州)를 지나야 되니 답답합니다.” 그렇다. 고구려 남부(南部)와 신라 신주(新州)가 맞닿아있는 것이다. 신주를 통과해야 백제땅이다. “신주를 우리가 차치해야 합니다.” 화청이 낮게 말했다. 본래 신주는 신라와 백제가 연합해서 고구려로부터 탈취했던 땅이다. 그랬다가 신라가 배신해서 백제를 밀어내고 신주를 설치했던 것이다. “한솔, 김춘추는 왕의 그릇이 되었습니까?” 화청이 말을 몰아 바짝 붙으면서 다시 물어서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 “그만하면 신라왕이 될 만한 인물이야.” “그렇습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적지에 온 용기, 그리고 왕국(王國)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연개소문에게는 다르게 말해서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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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3 21:03

거리서 깨우친 평화 세상과 나누고 싶어

평화의 글을 쓰고 평화의 길을 목적으로 삼아 살아가려는 저에게 평화의 해석은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늘 관통하는 중요한 원칙과 개념이 있습니다. 평화는 공존이고 공생이며 자리이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원불교 정상덕 교무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쓴 평화일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평화일기-노랑부리소등쪼기새는 기린의 겨드랑이에서 잠든다>. 100여 개의 평화일기 가운데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나누고 싶은 57개의 글을 책으로 담아냈다. <평화일기>는 정 교무가 종교와 세상의 현장을 걸어 다닌 이야기이다.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을 짓는 책임자이자 평화운동가로 현장에서의 사색과 종교인으로서의 기도 등을 글로 써 내려갔다. 책은 평화를 △나로부터 시작된 평화 △개벽에서 배우는 평화 △거리에서 깨우친 평화 △은혜로 연결된 평화 △이웃종교와 통하는 평화 △건축으로 만나는 평화로 세분화해 보여준다. 모든 글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새벽 명상과 구치소 법회,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정신개벽 서울선언문, 광화문 촛불, 노무현 대통령의 8주기, 두 교무의 단식 등 일상 속 평화의 가치를 관찰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원불교 성지인 경북 성주의 소성리 사드 배치 후 촉발된 원불교 평화운동을 전개하면서 성지 수호를 넘어 더 큰 평화운동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 라이너스 폴링, 마리아 몬테소리, 함석헌, 넬슨 만델라, 무함마드 유누스 등 평화 실천자 6인을 통해 인류 보편적 희망인 평화를 엿봤다. 정 교무는 세상의 흐름도 골상, 관상, 심상을 지나 태도를 중요시하는 태상의 시대라며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써먹기 위함에 있다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그 정신을 평화의 솥에 담고자 평화일기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정상덕 교무는 저서로 현재 원불교소태산기념관 건축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원불교 인권을 말하다>(공저), <마음따라 사람꽃이 피네>가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5.03 21:03

마지막 70일 '처절한 외침' 동학농민군 비밀이 드러나다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70일, 가장 절박하면서도 찬란했던 날들이 소설로 재탄생했다. 고창 출신 이성수 소설가가 동학농민혁명 역사소설 <칠십일의 비밀>(고요아침)을 출간했다. 정읍에 위치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박사의 학술논문 금산진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연구(2003)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어서 특별하다. 배경은 대둔산 형제바위 아래에 망루처럼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항전지. 우금치 전투 이후 농민혁명군은 대둔산으로 올라갔고 엄동설한에 70여 일 동안 항전을 벌이다가 장렬히 산화했다. 소설은 농민혁명군의 모습을 질박하게 묘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일본군 첩자 다나카 지로의 행각과 부보상(보부상) 접장의 탐욕을 통해 당시의 모순된 사회상을 표현한다. 박홍규 화백의 판화도 삽입했다. 이성수 작가는 이병규 박사의 논문을 탐독하고 나서 왠지 할 일을 놔두고 엉뚱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것 같아 조급하고 불편했다며 근대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대사건인데도 역사의 발굴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작가적 시각으로라도 동학농민혁명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군과의 최후 격전 중 접주(지도자)인 김석순이 일본군에게 죽지 않겠다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병규 박사는 동학농민군들은 더 이상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대둔산을 올랐다며 논문은 그들은 왜 그랬을까?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곳에서의 마지막 70일은 죽음을 앞둔 가장 잔인한 시간이면서도 동학이 지향했던 인간존중, 평등 사상 등을 외압 없이 가장 이상적으로 이뤄냈던 시간이었어요. 김석순의 죽음은 동학의 뜻을 지키고자 하는 농민군의 정신이 극대화된 것이죠. 이 박사는 3미터 절벽을 올라가야만 나오는 대둔산 동학농민군항전지는 내가 지도교수와 함께 발굴했던 1999년 이전까지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곳이라며 현재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신비로운 현장을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이야기로 함께 엮어낸 이성수 소설가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5.03 21:03

[불멸의 백제] (85) 5장 대백제(大百濟) ①

“도망쳐야겠다.” 연개소문이 보낸 관리가 돌아갔을 때 김춘추가 김인문에게 말했다. 얼굴이 굳어져 있다. “내가 경솔했다. 저놈들은 백제하고 단단히 결속되어 있구나.” “아버님, 저를 인질로 두고 가시지요.” 김인문이 침착하게 말했지만 김춘추가 머리를 저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저놈들은 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조금전의 그놈을 보낸 것이다.” 김춘추가 옆쪽에 앉은 부사(副使) 김성준에게 말했다. “이보게. 자네와 나, 그리고 인문이하고 셋이 군관 셋만 데리고 빠져 나가기로 하세. 모두 하인으로 변장을 하고 하나씩 저택을 나가기로 하지.” “대문 밖에는 경비병도 없으니 지금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무관(武官)인 김성준이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나머지 일행은 그대로 놔두지요. 알려지면 저놈들이 눈치를 챌 것입니다.” “안됐지만 하는 수 없지.”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성준이 서둘러 방을 나갔다. 김춘추가 겉옷을 벗으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호구(虎口)에 들어왔다.” 잠시후에 영빈관을 하인 행색의 사내들이 하나씩 빠져나왔다. 영빈관 안팎으로 저택의 하인과 신라측 사신 일행이 뒤섞여서 붐비고 있었기 때문에 저택 하인 차림의 사내들이 나가는 것은 아무도 주의깊게 보지 않았다. 김춘추 일행이다. 김춘추도 두건을 눌러썼고 수염까지 깎아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개소문의 저택 대문은 활짝 열려져서 하인과 군사들이 무리지어 오가고 있었는데 나가는 사람들은 검문하지 않는다. 무사히 대문을 나온 여섯은 곧 대로 옆길로 꺾어져서 모였다. “말을 사서 달려야 합니다.” 김성준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곧 발각이 될테니 그때는 도처에서 검문을 할 것입니다.” “이곳은 말이 흔합니다.” 군관 하나가 김성준에게 말했다. “먼저 남문 밖으로 나가 계시면 소인이 말을 사오지요.” “그것이 낫겠다. 우선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안전하다.” “올적에 보았더니 남문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작은 개울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 개울가 주막에서 뵙지요.” “그럼 네가 말을 구해오너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군관 하나가 나섰기 때문에 김춘추가 머리를 끄덕였다. “서둘러라.” 이제 김춘추 일행은 넷이 되어서 남문을 향해 발을 떼었다. 올적에도 남문으로 왔기 때문에 길은 안다. “대감, 저기 옷가게가 있습니다. 먼저 가시면 소인이 옷을 사 오지요.” 김성준이 거리 끝쪽의 옷가게를 보더니 말했다. “알았네. 먼저 가겠네.” 김성준이 떨어져 나가자 이제 일행은 김춘추 부자(父子)와 군관까지 셋이 남았다. 서둘러 걸으면서 김춘추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연개소문이 나를 잡으면 죽일 것이다.” 김인문은 대답하지 않았고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온 소득은 있었다. 연개소문은 듣던대로 오만불손한 놈이었지만 고구려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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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2 21:04

[불멸의 백제] (84) 4장 풍운의 3국(三國) 22

“어서 오시오.” 신라 사신 김춘추가 고구려의 4품(品) 대부사자 연백을 맞았다. 오전 사시(10시)경, 영빈관 안의 청에는 김춘추와 부사(副使) 둘이 관복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 전갈을 받은 것이다. 대부사자 연백은 계백이다. 연개소문이 자신의 성(性)을 계백에게 붙여줘 이름까지 만들어 준것이다. 계백은 6품 대사자 전홍과 동행이다. 가볍게 목례만 한 계백이 김춘추의 앞에 앉았다. 두걸음 거리여서 숨소리도 들린다. 청 안에는 다섯 뿐이다. 김춘추는 옅게 웃음 띤 얼굴이었지만 몸이 굳어져 있다. 어젯밤 잠을 설쳤는지 눈의 흰창이 조금 흐려져 있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대부사자 연백이 대막리지 전하의 명을 받고 몇가지 확인을 하려고 왔습니다.” “말씀하시오.” 김춘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내가 목숨을 내놓고 이곳에 온터인데 무엇을 숨기겠소? 어제 다 말씀드렸소.” “대감.” 먼저 부르고 난 계백이 김춘추를 보았다. “이번에 백제에게 대야주를 빼앗긴데다 신주(新州)까지 고구려에 반환하면 신라의 국력은 절반으로 깎이게 되오. 그것으로 왕국을 보존하실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구 5백만에 군사 30만을 보유하고 있소. 백제를 제압 하기에는 충분한 전력(戰力)이오.” 계백의 계산으로는 인구 4백만에 군사 20만 정도가 남는다. 과장이다. 그러나 계백이 말머리를 돌렸다. “지난번에도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의 한수유역 영토를 공취한 후에 바로 백제를 배신하고 신주를 설치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고구려와 연합했다가 고구려를 배신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내 아들을 인질로 데려왔지 않습니까?” 어깨를 편 김춘추의 눈빛이 강해졌다. “고구려는 등 뒤에 백제와 신라를 함께 두는 것이 이롭습니다.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 것이오.” “백제는 대륙에도 22개의 담로가 있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대륙 진출의 야망을 품고 있지요. 3면이 바다에 막힌 이곳은 고향일 뿐이지요.” “허어, 백제인처럼 말씀 하시는군.” “고구려와 백제는 자주 소통을 했기 때문에 뜻이 같습니다.” “백제는 기습 공격에 뛰어나오.” 김춘추의 목소리에 열기가 띄워졌다. “이번에 신라 대야주를 강탈한 것처럼 백제 기동군이 평양성을 내습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가 없을 것이오.” “대야주는 내부의 가야족이 호응해서 쉽게 무너진 것이 아닙니까?” “무슨말이오?” “우리가 듣기에 대야주는 가야국의 영토로 신라에 귀속되었지만 가야국 호족중에는 고관(高官)으로 오른 자는 김유신뿐이어서 호족들의 불만이 많았다는 것이오.” 김춘추는 숨만 들이켰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가야족 출신 성주와 하급관리들이 백제군에 호응해서 대야주가 쉽게 무너뜨린 것 아닙니까?” “잘 아시는군.” 얼굴을 일그러뜨린 김춘추가 외면하더니 뱉듯이 말했다. “그렇소. 거기에다 계백이라는 지용(智勇)을 겸비한 백제 장수가 있었기 때문에 대야주를 잃었소.” 계백도 김춘추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운 순간 숨을 들이켰다. 김춘추는 사위와 딸을 죽인 원수를 칭찬하고 있다. 그것을 직접 눈 앞에서 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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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1 21:04

[불멸의 백제] (83) 4장 풍운의 3국(三國) 21

물러가 기다리라. 가타부타 대답을 안 하고 연개소문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김춘추는 일어나야만 했다. 사신 일행이 청을 나갔을 때 연개소문이 단을 내려와 위쪽 평좌(平座)에 앉는다. 그리고는 계백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계백이 다가가 앉았을 때 연개소문이 막리지에게 지시해서 고관들을 물러가게 했다. 잠시 후에 청에는 연개소문과 측근 대신(大臣), 그리고 계백까지 7, 8명이 모여 앉았다. 이것이 연개소문의 성격이다.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병졸과 같이 길바닥에서 밥을 먹다가 칼을 5자루나 차고, 매고 계단 위의 용상에 앉아 거드름을 피운다. 연개소문이 측근 대신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용이 제 발로 그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막리지 양성덕이 대답했다. 양성덕은 남부대인(南部大人)으로 백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장(長)이다. 죽여야 합니다. 김춘추 저놈이 영민하고 담대하다는 소문이 났으나 이번에는 제가 제 꾀에 넘어간 경우올시다. 오만함 때문에 실수를 한 것이지요. 이때 죽여서 후환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동의했다. 살려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여왕의 약조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김춘추는 아들이 많습니다. 죽입시다. 죽여서도 득 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자는 동부대인이며 막리지인 요영춘이다. 요영춘이 말을 이었다. 김춘추가 죽으면 진골 왕족 중 하나가 신라왕이 될 것입니다. 지금 김춘추는 사위인 김품석을 잃고 날개 하나를 잃은 새 꼴입니다. 김유신 하나만 남아있지요. 이때 김춘추를 품으면 신라를 배후에서 조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연개소문이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계백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계백, 그대 생각은 어떤가? 전하, 저는 고구려 신하가 아닙니다.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대답했지만 연개소문이 정색하고 말했다. 동맹국 장수의 견해를 말해보라. 예, 김춘추는 지금 다급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적지에 올 만큼 다급한 것입니다. 옳지. 모두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전부터 왕의 재목이라고 안팎에 소문이 났습니다. 과연 용기와 과단성, 재치가 뛰어난 인물입니다. 계속하라. 지금 김춘추를 죽인다면 신라는 큰 손실이 될 것입니다. 차기 왕이 누가 되었건 김춘추만한 재목이 없을 테니까요. 죽여야겠군. 김춘추가 다급해서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밤에 죽이고 술을 마셔야겠다. 그때 계백이 시선을 내리면서 말했다. 김춘추도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연개소문이 눈을 치켜뜨고 계백을 보았다. 계백, 그대가 김춘추를 만나보지 않겠는가? 고구려 관리로 위장하고 말이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내 측근으로 시국을 논하려고 왔다고 하면 김춘추가 온갖 요설을 쏟아놓을 것이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따르는 법, 그대가 가서 듣고 오라. 연개소문의 시선이 옆쪽의 대사자 관직의 사내에게로 옮겨졌다. 너는 계백공을 안내하고 말을 거들어라. 김춘추하고 독대를 하다니, 이것을 절호의 기회라고 하는가? 그보다 연개소문의 용인술이 놀랍다. 변화무쌍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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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30 20:18

[불멸의 백제] (82) 4장 풍운의 3국(三國) 20

그때 연개소문이 다시 물었다. “그대의 사위 김품석이 싸우다 죽었다고 들었다. 사위를 죽인 적장의 이름을 아는가?” “예, 압니다.” 계백은 김품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바로 세걸음 거리에 김춘추가 앉아있는 것이다. 그때 김춘추가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백제 나솔 관등의 계백이라고 들었습니다.” “허, 그런가? 이름도 알고 있구만.” “예, 제 사위를 죽이고 대야성을 공취한 일등공(功)으로 한솔로 관등이 올랐다고도 들었습니다.” “신라는 첩자를 많이 보낸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렇구나.” “황송합니다.” “그럼 그대가 목숨을 걸고 나를 찾아온 이유를 듣자.” “예, 대막리지 전하.” 어깨를 편 김춘추가 똑바로 연개소문을 올려다 보았다. “먼저 신라국 여왕께서 보내신 밀서를 올리겠습니다.” “밀서?” 되물은 연개소문이 보료에 팔을 기대면서 웃었다. “그대가 펴서 읽으라. 내가 고구려 고관들과 함께 듣겠다.” 그때 계백은 김춘추가 어깨를 잠깐 올렸다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뒤쪽 부사(副使)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밀서를 내놓으라는 표시다. 빠르다. 그리고 행동에 강단이 있다. 부사가 서둘러 붉은 두루마리 밀서를 건네자 김춘추가 매듭을 풀고 펼쳤다. 붉은색 비단에 금박을 입힌 글씨다. 곧 김춘추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신라 여왕 덕만이 고구려 대막리지 전하께 글로써 인사와 함께 약조를 드리옵니다.” 김춘추가 잠깐 숨을 고르더니 계속했다. “신(臣) 덕만은 백제의 공격을 받아 사직을 보존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진 터라 다음과 같은 약조를 드리니 살피시어 신라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계백은 김춘추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것은 신하국(臣下國)으로 고구려를 왕국(王國)으로 모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김춘추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어깨는 펴졌다. 옆모습만 보였으나 흰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계백이 소리 줄여 숨을 뱉었다. 문득 의자대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의자대왕은 절대로 이렇게 못한다. 그때 김춘추가 다시 밀서를 읽는다. “백제에 사신을 보내시어 출병을 거두도록 해주시면 한수 유역의 신주(新州)를 당항성 한곳만 빼고 고구려에 반환토록 하겠습니다.” 계백도 연개소문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옮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에 옅은 웃음기까지 떠올라 있다. 계백에게 고구려의 4품 관등인 대부사자 관복을 입히고 청에 앉아 김춘추를 살펴보라고 권한 것이 연개소문이다. 백제에 대한 배려였지만 짓궂다. 김춘추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고구려가 당과 싸울 적에 백제가 등을 치지 못하도록 신라는 후위 역할을 맡겠습니다. 그 증거로 김춘추의 아들 김인문을 고구려에 인질로 두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춘추가 밀서를 내려놓았을 때 청 안이 조금 술렁거렸다. 인질이 있단 말인가? 연개소문도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내려다 본다. 계백의 시선이 김춘추 뒤쪽 부사(副使) 두 명에게 옮겨졌다. 하나는 젊다. 이자가 김춘추의 아들인가? 아들까지 데려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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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9 18:20

[불멸의 백제] (81) 4장 풍운의 3국(三國) 19

연개소문의 대저택 청 안, 오늘도 붉은색 계단 위의 보료에 기대앉은 연개소문의 위용은 왕 이상이다. 계단 아래쪽 청에는 고관들이 좌우로 갈라져서 마주보고 앉았는데 안쪽 계단 밑에서부터 관등 순(順)으로 청 입구 쪽까지 20여 줄이 되었으며 뒤쪽에도 대여섯이 앉아있는 터라 1백여 명의 고관이 마주보고 앉은 셈이다. 그러나 청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화려한 금박, 은박 장식을 붙인 붉고, 누렇고, 푸른 관복, 청 안에는 붉은색 아름드리 기둥이 수십 개 늘어섰으며 벽과 천장에는 금박을 입힌 온갖 조각이 새겨졌다. 사방이 탁 트인 청은 넓어서 끝이 아득하게 보였지만 계단 위 용상에 앉은 연개소문의 숨소리도 끝 쪽까지 들린다. 소리가 기둥에 부딪쳐 사방으로 새지 않도록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청 끝의 마당에 신라 사신 일행이 들어섰다. 안내해온 관리가 청으로 올라오기 전에 소리쳐 보고한다. “신라 사신 이찬 김춘추가 대고구려 대막리지 전하를 뵈오러 왔습니다!” 그것을 청 안의 집사부 대관이 받아서 다시 외친다. 그동안에 김춘추 일행은 청 아래쪽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 “신라 사신 이찬 김춘추가 대막리지 전하를 뵈오러 왔습니다!” 대관의 말을 들은 계단 밑의 전내부 막리지가 연개소문을 올려다보았다. 연개소문이 머리를 끄덕이자 막리지가 곧 대관에게 지시했다. “김춘추를 청에 오르도록 하라.” “예.” 대답한 대관이 청 아래의 관리에게 소리쳤다. “김춘추를 청에 오르도록 하라!” “예.” 그때서야 관리의 안내로 김춘추가 계단을 올라 청으로 들어선다. 김춘추 일행은 여섯. 신라 이찬 복장의 김춘추가 앞장을 섰고 부사(副使) 둘이 각각 비단으로 싼 상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뒤를 따랐으며 셋은 보좌역으로 그 뒤를 따른다. 이윽고 김춘추가 좌우로 갈라 앉은 고구려 고관 사이를 지나 연개소문이 앉은 계단에서 10보 거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미리 관리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때 막리지가 연개소문에게 보고했다. “전하, 신라 이찬 김춘추가 왔소이다.” “그러냐?”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처음 울렸다. 연개소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계단 아래쪽 10보 거리의 김춘추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김춘추냐?” “예, 전하.” 김춘추가 두 손을 모으고 연개소문을 올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채다. 시선이 마주치자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네 여왕이 아직 처녀라던데, 내 측실로 데려올 생각은 없느냐?” “전하, 고구려, 신라의 동맹을 위해서라면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김춘추가 똑바로 연개소문을 보았다. 눈이 맑고 피부는 미끈하다. 곧은 콧날, 입술에는 옅은 웃음기까지 띄워져 있다. “흠.” 연개소문이 김춘추의 응답에 조금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연개소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백제에게 대야주를 잃고 절박해졌구나. 네 사위가 대야군주 아니었느냐?” “예, 전하.” “사위와 딸이 모두 죽었지?” “예, 전하.” 계백은 김춘추가 심호흡을 하는 것을 보았다. 김춘추는 지금 계백의 바로 앞에 앉아있다. 계백이 옆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백이 고구려 관리 복장으로 앉아있기 때문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4.26 20:56

날선 문체가 그려낸 감정 '영상처럼 생동'

정서정의 단편소설은 30초 분량의 강렬한 광고 영상을 보는 듯하다. 날선 문체는 이미지를 그려내고, 문체가 쫓는 시선은 빠르게 전환돼 이미지는 생동한다. 정서정 소설집 <기습>(청어람M&B)이 출간됐다. ‘기습’, ‘덫’, ‘당신의 습작’, ‘산사로 가는 길’, ‘날 좀 보소’, ‘네펜데스의 여정’, ‘폭염’ 등 단편소설 7편으로 구성됐다. ‘신이시여, 제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정말로 다한 거라면, 당신께서 기어이 인과응보의 철퇴를 들고 곧 저를 맞이하실 요량이시라면 부디 제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지금이라도 깨닫게 해주소서.’ ‘…당신에게 내려진 선고는 집행유예인 거다. 자. 이제 당신은 무엇과 드잡이해 싸울 것인가. 시한부 투쟁의 시간.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기습’ 중) 표제작 ‘기습’은 영문도 모르게 수술대 위에 올려진 주인공의 불안한 시선으로 시작한다. 느닷없이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은 인과관계보다 주인공이 직면한 상황과 감정에 따라 서술된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주인공의 죽음과 삶에 대한 심리, 내면의 감정 등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과 세계(사회)와의 불화를 서사적인 진술에 의존하기보다는 상황과 감정에 충실한 묘사와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영길 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정서정이 글로 그려내는 이미지는 명징하고 결곡하되 서사의 내부 맥락을 훼손하지 않는다”며 “서사와 이미지가 길항하면서 루카치가 말한 ‘문제적 개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전체성 차원에서 사유하도록 하는 것이 이 소설집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정서정(본명 정옥상) 소설가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불어불문학 석사, 프랑스 파리 제8대학 불어불문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원광대 유럽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시(詩)를 건지러 간다>, <모서리와의 결별>(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 도서 선정)과 동시집<두둥실>을 출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4.26 20:56

89. 미역국 - '미역국 먹었다'…일제때 우리 군대 강제해산서 유래?

미역은 한 인간의 탄생, 즉 아이의 출산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선조들은 태기가 있을 때면 장미역부터 마련했다. 꺾지 않고 말린 미역을 장미역이라 하는데, 산모가 아이를 잘 낳고 태어난 아이도 오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다. 산모의 방 한쪽에 상을 놓고 그 위에 장미역과 쌀을 올려둔 것이 삼신할미상이다. 삼신할미는 아이의 출산과 성장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삼신할미상의 미역국을 통해 건강과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 많은 사람은 미역국의 미역이 미끌미끌하니까, 그렇게 사용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말도 유래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해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 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4.26 20:56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