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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문학이야기에 풍덩~

전북 문학단체들이 문담(文談)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북소설가협회(회장 정영신)는 천성래 영화감독을 초청해 문학과 영상매체의 만남 세미나와 제5회 소설낭독회를 연다. 17일 오후 3시 전북문학관 대강당. 영화 소록도의 천성래 감독과 함께 소설과 시나리오, 드라마와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고, 문학작품과 영상매체의 만남을 주제로 세미나를 갖는다. 천 감독은 지난해에도 영화 밀양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등을 원작과 비교분석하는 등 소설의 영화화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주도해 큰 호응을 얻었다. 전북소설가협회는 2017년 정영신 회장 취임 후 소설가와 함께하는 소설낭독회와 전북지역 콘텐츠에 관한 세미나 등을 꾸준히 열고 있다. 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장은 소설은 문학적으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협회가 도민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민과 함께하는 문학 기행, 문학 음악회, 지역 이민자와 함께하는 문학의 밤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작가회의도 올해 김종필 회장의 취임 후 첫 월례문학토론회를 연다. 30일 오후 6시 30분 최명희문학관 비시동락실. 토론 대상작은 장은영 동화작가의 <책 깎는 소년>(2018,파란자전거), 한지선 소설가의 소설집<여섯 달의, 붉은>(2018,개미), 임미성 시인의 첫 동시집 <달려라 택배 트럭!>(2018,문학동네) 등 3권이다. 발제는 각각 박예분 동화작가, 정숙인 소설가, 문신 문학평론가가 맡는다. 박예분 동화작가는 <책 깎는 소년>에 대해 선택, 그 이상의 펼침을 주제로 발표한다. 책에 담긴 두 소년의 엇갈린 선택과 갈등, 냉혹한 현실 속에서 십 대들의 꿈과 용기, 좌절과 성장등을 알린다. <여섯 달의, 붉은>을 맡은 정숙인 소설가는 누군가에게 말 할 수 없는 아픔, 작은 상처를 안고 사는 영혼들에게 속삭이는 11편의 작품을 분석했다. <달려라, 택배트럭!>을 소개하는 문신 평론가는 아이와 어른 모두 좋아할 만한 경쾌하고 발랄한 동심의 세계를 들려준다. 김종필 전북작가회의 회장은 이불 대신 펜과 종이로 겨울을 난 작가들의 노고를 보다 세심하고 친절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면서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의 작품들이 봄 꽃내음을 대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3.15 18:22

[불멸의 백제] (50) 3장 백제의 혼(魂) ⑨

“북문 수비군사는 50여명입니다.” 서문 수문장 여준이 병사 차림의 계백에게 말했다. 오전 사시(I0시) 무렵, 여준은 잠시 틈을 내어 계백과 화청을 북문 근처로 안내한 것이다. 북문은 서문보다 좁았고 북쪽 산간지대로 통하게 되어 있어서 길도 좁았다. 서문과 동문이 국도로 통하는 길이라 대로(大路)다. 북문이 보이는 길가의 돌담 옆에 서서 계백이 여준에게 말했다. “북문이 지키기가 쉽겠소.” “아, 그렇군요.” 탄성을 뱉은 여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일단 성문을 빼앗으면 선봉군이 올 때까지 지켜야 될 테니까요.” 그렇다. 성 밖에 백제군이 나타났을 때 성문을 빼앗기는 힘든 것이다. 그때는 성안의 전 병력이 성문 근처에 집결해오는 상황이다. 계백이 주위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성문이 통나무로 되어있고 근처에 민가가 밀집되어 있어서 불을 지르면 북문 근처가 불바다가 될 것이오. 그러면 신라군이 접근하기 힘들겠지.” “과연 그렇습니다.” 화청이 말했다. “선봉군이 불길을 목표로 달려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문을 놔두십니까?” 여준이 묻자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수문장은 서문에서 기다리고 계시오.” “알겠습니다. 오늘 밤에 계획대로 선봉군이 닿았으면 좋겠군요.” 계획대로라면 한솔 협반이 이끄는 선봉 기마군 3천이 오늘밤 안으로 대야성에 닿아야 한다. 그리고 한나절쯤 후에 윤충이 이끄는 기마군 중군(中軍) 7천5백이, 그리고 내일 밤에는 후군 3천5백이 들이닥쳐야 한다. 그리고나서 그 다음날, 의자대왕이 친히 이끄는 친위군 2만이 도착하는 것이다. 오시(12시) 무렵 또 전령이 대야성으로 달려왔다. 이번에는 대야성에서 서쪽으로 150리쯤 떨어진 웅산성에서 보낸 전령이다. “군주! 백제 기마군 5천여기가 동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것이 오늘 오전 축시쯤 되었소!” 전령이 가쁜 숨을 뱉으며 소리쳤다. 이번에는 김품석이 청에서 전령을 맞았는데 보고 내용도 상세하다. 전령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기마군은 경장 차림으로 웅산성 앞 5리 지점을 통과하여 곧장 동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또 동쪽이냐?” 김품석이 소리치듯 물었지만 전령이 대답할리는 없다. 웅산성에서 동쪽으로 직진하면 역시 신라국 왕성(王成)인 동경성이 나오는 것이다. 김품석이 물었다. “5천기가 맞느냐?” “예, 맞습니다!” “전쟁이군.” 혼잣소리로 말한 김품석이 지시했다. “다시 왕성에 전령을 보내라! 백제 기마군 5천이 오늘 오전 축시에 대야주의 웅산성을 통과, 동쪽으로 달려갔다고 해라! 그럼 거리와 위치가 나올 것이다!” 그때 대아찬 벼슬의 부장(副將) 김용하가 한걸음 나섰다. “군주, 오전 축시에 기마군이 웅산성을 통과했다면 거리상으로 오늘 저녁 술시 경에 대야성에 닿습니다.” “이곳, 대야성에?” 김품석이 손가락을 구부려 청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로 온다고?” “예, 어쨌든 이곳도 웅산성, 박천성에서 동쪽입니다.” “동남쪽이야!” 김품석이 짜증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14 20:20

지역 서점 저자 초청강연 등…문화활동 지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해 실시하는 2018 지역 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할 서점을 모집한다. 사업은 지역 서점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객 중심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문화행사를 지원하는 것이다. 선정된 서점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협력해 저자 초청 강연회, 독서 토론회, 책 읽어주기, 시낭송대회, 자치단체 및 지역 독서동아리와 연계한 문화행사 등 다양한 독서 활동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독서 공간, 문화 나눔 등 고객 중심의 문화공간도 조성해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신청 대상은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을 제외한 지역 중소형 서점이다. 이미 지원받은 적이 있는 서점 중 15곳, 신규 서점 20곳, 협업(컨소시엄) 서점 1곳 등 총 36개를 선정한다. 선정된 기존 지원 서점에는 문화 활동 지원비 300만 원, 신규 서점에는 문화 활동 지원비 500만 원을 지원하고, 협업(컨소시엄) 서점에는 1000만 원을 지급한다. 신청 기간은 오는 23일까지다. 자세한 신청 방법 및 문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홈페이지(www.kpipa.or.kr)에서 보면 된다. 결과는 4월 5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진흥원은 올해 전국 25개 교정시설에 파견할 독서 전문 강사도 모집한다. 소외계층의 독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으로, 매년 교정시설 내 수형자를 대상으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참여자의 마음 치유, 감정 순화, 가족 관계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원시설 1곳당 1명의 강사가 투입돼 4월부터 10월까지 총 12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사는 20일까지 25명을 모집한다. 선발되면 사전 워크숍을 받아야 한다. 자세한 신청 방법 및 문의는 진흥원 독서인 홈페이지(www.readin.or. kr)에서 보면 된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3.14 20:20

[불멸의 백제] (49) 3장 백제의 혼(魂) ⑧

진입했다. 진궁을 따라 폐마장으로 들어온 계백의 결사대는 먼저 말부터 풀어놓았다. 마장 군사 하나가 물었다. “어디 군사요?” 폐마장 경비군사는 다섯, 모두 졸개였으니 대아찬이며 성주(城主)였던 진궁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장덕 화청이 군사에게 대답했다. “백제군이네.” “농담하지 마시오.” 그 순간 화청이 허리에 찬 칼을 빼자마자 군사의 허리를 잘랐다. 신음을 뱉은 군사가 넘어지는 것을 신호로 백제군이 달려들어 남은 군사를 순식간에 베어 죽였다. “마장 구석에 묻어줘라.” 어둠속에서 화청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섯이 나와서 저놈들 대신 경비를 서도록 해라.” 화청의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면서 계백이 해준에게 말했다. “군사들은 푹 쉬게 하고 날이 밝으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게.” “폐마장이 한적한 곳에 위치해서 다행이오.” 해준이 말하자 진궁이 손으로 끝 쪽 마구간을 가리켰다. 긴 막사가 2동이나 세워져 있다. “저쪽 마구간이 은신하기가 적당하오. 밖으로 나오지만 않는다면 말과 사람이 숨을 수 있소.” 대야성은 넓어서 산비탈 밑으로 사방 10리 길이로 성벽이 둘러쳐졌다. 폐마장은 외진 곳이라 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계백이 진궁에게 물었다. “서문에서 가까운 성문은 어디요?” “북문이 7백보 거리에 있습니다.” 진궁이 말을 이었다. “작은 동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북문이요.” 그러자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일 나하고 그곳에 가 보십시다.” 계백이 무장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서문으로 들어왔다고 꼭 서문을 열 필요는 없으니까.” 서문 수문장 여준이 협조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서문 수비군을 치고 성문을 열어야 될 것이다. 백제군이 밖에 있는데 수문장이 성문을 열라고 명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진시(8시)쯤이 되었을 때 대야성주이며 대야군주인 김품석이 잠에서 깨어났다. 전령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내성 안까지 들어올 수 있는 장수는 위사장 김채순 뿐이다. “군주, 박천성주가 보낸 전령이 왔습니다. 봉화까지 띄웠다는 데 봉화를 보지 못한 터라 데리고 왔습니다.” 긴장한 김품석이 측실의 손을 뿌리치고 옷을 건성으로 걸치고는 침실을 나왔다. 마루에 선 김품석이 마당에서 기다리는 김채순과 전령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 김품석이 거친 목소리로 묻자 14품 길사 벼슬의 전령이 무릎을 꿇은 채 소리치듯 보고했다. “기마군 수천기가 박천성 남쪽 20리 지점을 지나 동쪽으로 갔습니다. 성주께서 군주께 그것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동쪽으로? 수천기가?” 김품석이 묻더니 혀를 찼다. “백제군이 맞느냐?” “백제군이 맞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등신같은 놈들.” 어깨를 부풀린 김품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쪽이면 어디냐?” 전령은 입을 다물었다. 박천성에서 이곳 대야성은 동남쪽이다. 동쪽으로 직진하면 신라국의 왕성인 동경성이 나온다. 이윽고 김품석이 김채순에게 지시했다. “순찰대를 사방으로 띄우고 이 보고를 동경성에도 전하도록 해라.”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13 20:46

[불멸의 백제] (48) 3장 백제의 혼(魂) ⑦

유시(오후 6시) 무렵이 되었을 때 서문 수문장 여준에게 진궁이 찾아왔다. 진궁은 미복 차림으로 뒤에 장춘이 따르고 있다. 여준은 저녁을 먹으려고 마악 서문을 떠나려는 참이었다. 나마, 왔어. 대뜸 말한 진궁이 바짝 다가섰다. 긴장한 여준이 눈만 깜빡였고 진궁이 말을 이었다. 3백기네, 지금 성밖 건지산 기슭에 있네. 모두 신라 기마군 차림이야. 그럼 술시가 조금 넘어서 들어오라고 하지요. 여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신라군 차림이라도 표시가 날지 모르니 어두울 때가 좋습니다. 그리고 삼현성의 교대 병력 행세를 하라고 이르십시오. 알겠네. 지금 장춘을 보내지. 그러고보니 장춘의 뒤에 사내 하나가 서있다. 진궁이 말을 이었다. 기마군 3백기를 내 폐마장에 넣고 내일 저녁까지 숨겨 두었다가 밤에 서문을 탈취하겠네. 하루를 기다려야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여준이 길게 숨을 뱉었다. 상황을 짐작한 것이다. 성안에 기마군만 5천기가 넘습니다. 그럼 내일 저녁에는 선봉군이 옵니까? 밤에 올거네. 진궁이 말하고는 장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장춘과 사내가 몸을 돌렸다. 밤 술시(8시)가 조금 지났을 때 서문 성루에 서있던 군사 둘이 소리쳤다. 기마군이 옵니다! 주위는 어두워서 성루에 드문드문 횃불을 켜놓았다. 성루 뒤쪽에 있던 수문장 여준이 다가가며 말했다. 삼현성에서 교대병력을 보낸다는 전통을 받았다. 3백기가 신시(오후 4시) 무렵에 도착한다더니 늦구나. 그때 선두의 기마군이 성벽 아래에서 멈춰서더니 성루를 올려다 보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삼현성에서 오는 교대병력이오! 주성(州城)에 전통이 갔을 것이오! 성루로 서문 수비군이 몰려와 성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성벽은 20자(6m) 높이로 돌로 쌓았고 두께는 10자(3m)다. 성벽 위에서 군사들이 석벽 사이로 난 틈으로 활을 쏘면 다 맞는다. 그때 여준이 소리쳤다. 전통에 삼현성 보군대장 급벌찬 전택님이 병력을 인솔하신다고 했다. 급벌찬이 오셨는가? 내가 전택이네. 기마군 사이로 무장이 나서더니 소리쳐 대답했다. 오다가 예비마가 몇마리 다치는 바람에 늦었네. 여기 증표 있으니 보시게! 무장이 품에서 증표를 꺼내 흔들었다. 성문을 열어라! 이만하면 철저히 검문을 한 셈이다. 다른 때 같으면 전통받은 것만으로도 묻지도 않고 성문을 열었을 것이다. 여준이 소리치자 곧 육중한 성문을 10여명의 군사가 달려들어 좌우로 벌렸다. 성문이 둔중한 소음을 내면서 열린다. 통나무에 철을 씌운 문이어서 두께가 2자(60cm)나 된다. 이윽고 성문이 열리자 기마군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준이 성루 아래로 내려가자 전택이 다가왔다. 둘은 같은 가야족 호족으로 안면이 있다. 말에서 내린 전택에게 여준이 낮게 말했다. 저쪽 나무 밑에서 대아찬님이 기다리고 계시오. 고맙네. 나마. 내일 저녁에 다시 보십시다. 우리가 가야를 다시 찾는 것이야. 전택이 잇사이로 말하자 여준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12 20:07

[불멸의 백제] (47) 3장 백제의 혼(魂) ⑥

검문소 한곳의 군사를 몰사시켰으니 군주(軍主)에게 보고하는 것도 당연하다. 기마군은 이제 속보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야성까지의 거리는 1백리, 신시(4시)까지는 닿게 될 것이다. 속보로 달리는 계백의 옆으로 장덕 화청이 다가왔다. “나솔, 강행군이니 대야성 근처에서 쉬었다가 진입해야 합니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선봉군은 이틀 후에야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 남방(南方) 방령 윤충이 이끄는 대군(大軍)에 앞서 한솔 협반이 선봉군 3천과 함께 이틀 후에 닿을 것이었다. 그래서 선봉군이 오기 전에 성문을 탈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빨리 탈취해도 다시 빼앗긴다. 신라군은 안팎에서 공격을 해올 테니 역부족이다. 계백이 화청에게 말했다. “전령보다 빨리 대야성에 닿아야 돼. 대야성 안으로 들어가서 말을 버리고 은신했다가 선봉군이 왔을 때 안에서 성문을 여는 것이야.” 본래의 계획은 하루 전에 진입하는 것이었지만 이틀전에 성 안으로 들어가 잠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계백의 어깨에 3백 결사대뿐만 아니라 3천 선봉군이, 그 뒤를 따르는 윤충의 2만 기마군의 운명이 걸린 셈이다. 유천 검문소 군사가 몰사했다는 보고는 다음날 오전 오시(12시) 무렵이 되어서 정안성주 김길생에게 전해졌다. “무엇이?” 놀란 김길생이 눈을 치켜뜨고 되물었다. “몰사했다니? 백제군의 기습이란 말이냐?” “예, 지난번처럼 백제 유격군이 휩쓸고 지난 것 같습니다.” “다 죽었어?” “소장 이하 17명이 모두 죽었소.” 순찰조장의 목소리가 청을 울린 것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말발굽이 수백개 찍혀져 있었습니다. 백제군이 기습한 것이오.” “아니, 그렇다면….” 그때 관리 하나가 나섰다. “성주, 군주께 전령을 띄워야 할 것 같소. 이곳이 주성(州城)으로 가는 길목이니 서둘러 보고를 하시지요.” “아니, 그것보다도….” 이맛살을 찌푸린 성주가 꾸짖듯 말했다. “무조건 아이처럼 보고만 하는 것이 성주가 할 일이냐? 언제 무엇한테 어떻게 당했는가를 자세히 알아보고 보고를 해야 하지 않는가?” 백번 맞는 말이었지만 속셈은 보고를 들은 군주로부터 질책을 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길생이 건의한 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유천 검문소에 가서 더 자세한 내막을 알아오너라.” “예, 성주.” 성주의 본성을 아는 관리가 몸을 돌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대야성으로 떠날 전령이 한나절 늦어졌다. 그 시간에 선봉 기마군 3천기를 이끈 남방군 소속 한솔 협반이 박천성 남쪽 20리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곳은 산라 국경에서 안쪽으로 2백리나 들어온 곳이다. 3천 기마군이면 예비마까지 포함해서 4천필의 말떼가 달리는 것이니 땅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멀리서는 천둥이 우는 소리로 들린다. “기마군 수천기가 동쪽으로 뜁니다!” 나는 듯이 달린 순찰 기마군이 박천성주에게 보고를 했고 이쪽 성주는 기민했다. 주성(州城)으로 전령을 보내는 한편 봉화를 띄웠다. 그러나 봉화는 3번째에서 뚝 끊겼다. 봉화대의 군사는 많아야 10여명. 계백의 결사대가 도중의 봉화대 2곳을 드문드문 잘랐기 때문이다. 한 곳만 잘라도 그 뒤쪽은 장님이 된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11 20:48

함께 살아가는 법, 마음이 따뜻해지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데 필요한 80개의 표현을 담은 어린이책 <아홉 살 함께 사전>이 출간됐다. 어린이책 <아홉 살 함께 사전>은 <아홉 살 마음 사전>의 후속작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학교라는 사회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현을 그림과 함께 사전 형태로 소개한다. 박성우 시인이 글을 쓰고, 김효은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생활은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자기 내면을 성장시키는 기회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데 필요한 표현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한 어린이들은 서툰 표현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관계 맺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가까이하다’부터 ‘화해하다’까지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사용되는 표현 80개를 사전처럼 가나다순으로 담아냈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과 그 표현이 활용되는 구체적인 상황을 함께 소개한다. 예를 들어 ‘부탁하다’라는 표현은 원피스 뒷면에 달린 단추를 언니에게 채워 달라고 말하는 상황, 신발을 고쳐 신는 동안 친구에게 신발주머니를 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상황 등과 함께 제시한다. 박성우 시인은 1971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가뜬한 잠>·<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우리 집 한 바퀴>, 청소년시집 <난 빨강>·<사과가 필요해> 등을 썼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3.08 20:04

[불멸의 백제] (46) 3장 백제의 혼(魂) ⑤

누구냐? 어둠속에서 외침이 울렸다. 밤, 축시(2시)경, 기마군은 삼현성에서 동쪽으로 1백리 정도 나아간 상태다. 이곳은 정안성에서 20리쯤 떨어진 강가, 흐린 날씨여서 별빛도 없는 천지는 먹물속 같다. 그때 선두에서 기마군을 안내하던 전택이 소리쳐 대답했다. 나는 삼현성 보군대장 급벌찬 전택이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정안성 유천 검문소 군사올시다! 앞쪽에서 사내가 외쳤다. 이 밤중에 어디로 가는 군사입니까? 세곡을 싣고 대야성으로 간다! 군주의 지시로 밤을 세워 가는 중이야! 그러는 사이에 기마군은 검문소로 더 접근했다. 어둠속이었지만 검문소가 드러났다. 앞장선 전택은 이제 검문소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검문소 윤곽이 드러났다. 통나무로 지은 2채의 막사, 이미 검문소 안에서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10여인이다. 그때 군사들을 헤치고 무장 하나가 나섰다. 나는 검문소장 대사 유만성이오! 삼현성 급벌찬이라면 증표를 보이시오! 여기있네. 전택이 마상에서 나무를 깎아만든 증패를 내밀었다. 이제 검문소 군사들이 횃불을 켜서 주위가 환해졌다. 기마군 3백기가 검문소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되어서 군사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신라군 차림이라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때 증표를 본 검문소장이 전택에게 돌려주면서 다시 물었다. 삼현성에 내 의형제가 있소. 수문장으로 있는 사지 안태상이를 아시오? 누구? 사지 벼슬의 안태상이오. 그때 계백이 군사들을 헤치고 앞쪽으로 나와 둘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기마군은 검문소를 사방으로 둘러쌓아서 물샐틈이 없다. 3백 기마군이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는 터라 둘의 문답이 뒷쪽에까지 들린다. 그때 전택이 물었다. 대사, 그대도 가야인인가? 그렇습니다. 올려다보는 대사 직급의 검문소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30대쯤의 건장한 체격이다. 시선을 받은 전택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믿지 못하고 있군. 무슨 말씀이오? 나도 가야인이야. 그렇습니까? 사지 벼슬의 안태상이란 수문장은 작년에 병으로 죽었네. 의형제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나? 아. 수문장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잠깐 잊고 있었소. 그순간이다. 전택이 허리에 찬 칼을 후려치듯이 뽑으면서 수문장의 목을 쳤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수문장이 목에서 피를 품으며 쓰러지기도 전에 기마군이 덮쳤다.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명령을 하지도 않았다. 비명과 외침, 신음은 잠깐동안 이어지다가 뚝 그쳤다. 마상에서 공격한 기마군은 함성 한번 지르지 않고 검문소 군사들을 도륙한 것이다. 말에서 뛰어내린 기마군사 10여명이 막사 안까지 뛰어들어가더니 신음이 울렸다. 그때 피가 묻은 칼을 칼집에 넣으면서 전택이 계백을 보았다. 장군, 제가 동족을 쳤습니다. 살려둘 수가 없었어. 계백이 위로하듯 말하더니 말고삐를 당겼다. 검문소가 당한 것을 알면 전령이 김품석에게 보고를 할 거다. 이제는 낮에도 달려야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3.08 20:04

[김소윤 첫 소설집 '밤의 나라' 출간] 위태로운 '여성들'… 그래도 살기 위해 맞선다

김소윤 소설가가 최근 펴낸 첫 소설집 <밤의 나라>(바람꽃)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쓴 단편소설을 엮은 것으로, 위안부탈북자결혼 이주 여성장애 여성국제 밀거래 조직 등 소재는 다양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여성이 존재한다. 김 소설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결핍과 상처를 지니고 있어서 쓰면서도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어서 그들의 치유와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고 내가 그래줄 수 있기를 소망했지만, 아마도 그건 내 몫이 아닐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이들을 끌어내 세상 속에 세우는 일뿐이었다고 말했다. 표제작인 밤의 나라는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 탈북한 여성 미호의 이야기다. 탈북 과정에서 온 가족을 잃은 미호는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으로 밀항한다. 그곳에서마저 밀항선 선장으로부터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살기 위해 조직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결국 권력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양도한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에서 온 소년과 마주치며 다시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 대가는 죽음이었지만 미호는 더이상 숨고 도망치며 자신을 잃어버리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머지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우리 사회가 구성원으로 상정하고 있는 표준적인 모델은 아니다. 김대현 문학평론가는 김소윤은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았던 위태로운 여성들을 보이게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억압받는 주인공들은 자신을 시험하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광기로 대항하거나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싸운다. 때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한다. 김 평론가는 아무리 비루한 삶이라도 살아지는 이 끈질긴 생명의 힘을 보라며 모든 과정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간다. 그것이 그들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북 출신인 김소윤 소설가는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서 단편소설 벌레 당선, 2012년 제1회 자음과모음 나는 작가다에서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당선 등의 경험이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3.08 20:04

'만인은 평등' 외친 정여립 소설로 만나다

역사 속 정여립(1546~1589)의 모습은 전제왕권에 도전한 반역자 등 부정적인 기록으로 덧칠돼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과 혼정편록, 연려실기술, 대동야승 등 기축옥사와 관련한 역사 내용을 살펴보면 정여립에 대한 오해가 상당했음을 깨닫고 시대를 앞서간 그 사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정여립은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한 인물이다. 장편소설 <여립아 여립아>의 저자 박이선 씨는 정여립을 영국 올리버 크롬웰보다 앞선 공화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시대를 앞선 그 사상이 조선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이런 인물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인물로 불러올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소설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정여립과 대동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특히 동후가 의병들을 모아놓고 말하는 대목은 정여립의 혁명적인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나라 조선은 임금의 나라도 아니요 양반의 나라도 아니다. 우리가 여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모인 것은 사랑하는 내 피붙이들을 위함이 아닌가. 옛 성현들도 말하기를 백성이 나라의 기본이요 무거운 존재라고 했다. 천하에 어찌 주인이 따로 있겠는가.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인 것이다. (본문 중 일부) 이 책은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정여립의 삶과 죽음을 촘촘히 그려낸다. 정여립, 정철, 송익필, 지함두, 변숭복 등 당대 인물들은 철저한 사료 고증을 거쳐 작품 속에서 되살아난다. 또 저자는 마치 르포르타주(기록문학)처럼 당대의 역사를 정교하게 묘사하면서 정여립과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 모반으로 일어난 동인과 서인 간의 정쟁)의 전말을 드러낸다. 기축옥사를 각각 인물의 시점으로 총체적으로 묘사해 역사의 한 장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했다. 남원 출신 박이선 씨는 201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하구로 당선됐다.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춘포>, <이네기>, <이어도 전쟁>이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3.08 20:04

[불멸의 백제] (45) 3장 백제의 혼(魂) ④

저녁, 술시(8시) 무렵, 골짜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마군 앞쪽이 술렁거리더니 곧 고덕 호성이 서둘러 다가왔다. 호성은 기마군의 선봉을 맡고 있어서 언제나 맨 앞에 나가있다. “나솔, 전택이 왔습니다.” 낮게 소리친 호성의 뒤로 전택이 따라왔다. 계백은 전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택은 신라무장 차림이었는데 연락과 감시역으로 파견되었던 장반과 유권도 데리고 왔다. “장군, 준비 다 되었습니다.” 어깨를 편 전택이 계백에게 군례를 하면서 말을 잇는다. “가족은 처가가 있는 산골로 보냈으니 이젠 마음놓고 죽을 수가 있게 되었소.” “죽으면 되나?”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살아서 영화를 누려야지. 그래서 싸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전택이 따라 웃었고 계백이 일어나는 것을 신호로 화청과 해준이 소리쳐 기마군을 정돈했다. 다시 출발하려는 것이다. 이곳은 삼현성에서 10리쯤 떨어진 골짜기다. 길잡이 역할을 할 전택을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터라 밤길을 달려야 한다. 다행히 삼현성까지 오는데 농군 몇 명만 보았지 신라 순찰대는 만나지 않았다. 이제 앞에 삼현성 보군대장이며 급벌찬 벼슬인 전택을 내세웠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출발!” 말에 오른 계백이 소리치자 기마군 3백이 움직였다. 이제는 소음을 죽이고 행군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말들도 울지 않는다. 그 시간에 김유신이 전령의 보고를 받는다. 이곳은 신라 덕천성, 김유신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장군, 백제군이 반으로 쪼개졌습니다.” “쪼개져?” 청 안이 조용해졌고 김유신이 치켜뜬 눈으로 전령을 보았다. 전령이 소리쳐 말을 이었다. “예. 기마군 2만여기가 쪼개져서 남하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 진시(8시)경이었으니 지금쯤…….” “2백리는 갔지 않겠느냐?” 김유신이 대신 말을 받았다. “기마군 2만이라고 했느냐?” “예, 속보로 남하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전령은 12품 대사 직급으로 전장에 익숙한 30대다. “백제왕의 깃발은 그대로 진영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유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전령을 응시했으나 눈의 초점이 떤다. 이윽고 김유신이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전군(全軍)을 출동 준비 시켜라.” “예, 대장군.” 부장 서준이 대답부터 하고나서 묻는다. “어디로 갑니까?” “안곡성으로!” “예, 대장군.” “한시진 후에는 출발이다.” 김유신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안곡성에 전령을 보내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해라!” “예, 대장군.” 청 안의 무장들이 일제히 일어났고 제각기 떠났는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안곡성은 신라 국경에 위치한 산성(山城)으로 백제군이 주둔하고 있는 영암성 근처의 황야와는 50리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백제측에서 보면 신라군이 공격해 오는 것으로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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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7 20:29

[불멸의 백제] (44) 3장 백제의 혼(魂) ③

국경을 넘었습니다. 옆을 따르던 장덕 해준이 낮게 말했을 때는 유시(오후 6시) 무렵, 기마군은 이제 일렬종대로 산기슭을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사람 하나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외진 산길, 옆쪽은 자갈투성이의 불모지인데다 물줄기도 없어서 짐승도 드문 땅, 신라군 국경 초소는 5백여보 떨어져 있었는데 이 시간에는 저녁 준비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마군은 초소를 뒤로하고 술시(8시)가 될 때까지 영토 안으로 더 진입하고 나서야 작은 개울가에서 멈췄다. 변복해라. 계백이 지시하자 각 무장들이 제각기 군사들에게 지시했고 한식경도 되지 않았을 때 기마군은 신라군으로 변했다. 각자가 신라군 복장을 말에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백도 허리띠를 떼고 신라 무장의 가죽갑옷으로 바꿔 입었으며 황금색 용 한 마리를 자수로 놓은 검정색 두건을 썼다. 이찬 등급을 나타내는 두건이다. 장덕 화청과 해준은 붉은색 두건을 썼으니 신라의 6급품 일길찬이 되었고 청색 두건을 쓴 효성은 9급품 급벌찬이다. 자, 오늘밤은 영내로 더 깊게 진입한다. 출발이다. 버릴 것은 땅에 묻고 신라군이 된 기마군이 계백의 명령에 따라 다시 떠났다. 내일 저녁에는 삼현성에 달아야 한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계백이 소리쳤다. 이제는 신라군이 되었으니 수군대며 지시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에 백제왕 의자가 동방방령 의직에게 말하고 있다. 달솔, 그대는 김유신만 막으면 된다. 김유신이 대야주를 지원하려고 내려올 때 허리를 끊어라. 예, 대왕. 의직이 허리를 굽혔다가 펴고 의자를 보았다. 이곳은 동방(東方) 동북쪽의 황야, 백제대왕의 거대한 깃발이 꽂힌 백제군의 본진이다. 대왕 의자가 친히 2만 친위군을 거느리고 북상했고 동방방령 휘하의 동방군 2만5천에다 북방군 5천까지 합해서 5만 대군이 벌판을 뒤덮고 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서 수천개의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터라 마치 땅에도 별무리가 펼쳐진 것 같다. 대왕, 옥체를 보중하소서. 전쟁이 빨리 그쳐야지. 의직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는 이미 갑옷 차림이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진막을 나온 의자가 위사장이 잡고 선 말고삐를 받아 쥐더니 날렵한 동작으로 말에 올랐다. 어둠 속에는 이미 수백기의 위사대가 주위에 벌려서 있다. 별이 밝구나. 하늘을 올려다 본 의자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의직은 바로 말을 받았다. 이번 출정에 대운(大運)이 따른다는 징조올시다. 대왕. 앗하하. 마상의 의자가 턱을 치켜들고 웃었다. 달솔, 지금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면 뭐라고 말을 받을 거냐? 액운이 떨어졌으니 거칠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는 곧 좌평이 되겠다. 입만 가지고 승진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왕. 잘 지켜라. 의자가 정색하고 말하자 의직이 허리를 꺾어 절을 하고나서 낮게 소리쳤다. 대왕. 만세, 천세. 머리를 끄덕인 의자가 말고삐를 채어 몸을 돌렸다. 위사대에 둘러싸인 의자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의자는 친위군을 이끌고 남하하는 것이다. 의자대왕 깃발을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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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6 21:04

전주시 공무원 김소윤씨, 제주 4·3평화문학상 당선

전주시의회에 근무하는 김소윤(38) 작가가 제6회 제주 43평화문학상소설부문에 당선됐다. 수상작은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 제주43평화문학상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이 43의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문학작품으로 담아내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43의 진실,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시와 소설 2개 부문으로 공모한다. 소설 7000만원, 시 20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상금이 주어진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이뤄진 공모에는 국내외 15개국에서 231명이 소설 101편과 시 1635편을 접수했다. 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는 지난달 28일 본심 심사위원회를 열고 김 작가의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을 소설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는 정찬일(제주 서귀포시)씨의 취우가 당선됐다. 정난주 마리아는 1801년 조선 후기 천주학 사건(황사영 백서)으로 제주도로 유배돼 관노비로 살게 된 여성 정난주의 비극적인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조선이라는 봉건시대의 변방에 놓여있는 제주의 차별성을 정난주라는 한 여인의 핍진한 삶과 연결시키는 작가의 진정성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작가의 성실하고 개성 있는 문체도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단편소설 벌레가, 제1회 자음과 모음 나는 작가다에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가 잇따라 당선됐다. 최근 단편소설집 밤의 나라를 펴냈다.

  • 문학·출판
  • 은수정
  • 2018.03.06 21:04

세계막사발미술관 폐관 놓고 '예술인-완주군' 대립

세계막사발미술관 폐관을 놓고 도예가들과 완주군이 대립하고 있다. 도예가들은 일방적인 행정으로 약 5년간 완주 삼례를 막사발 예술의 고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위기라고 호소했다. 반면 완주군은 삼례문화예술촌 위탁기관 변경 및 기관별 운영 평가에 따라 세계막사발미술관장의 장기 해외 출장 등으로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김용문 세계막사발미술관장은 6일 호소문을 통해 세계막사발미술관은 지난 5년간 완주 삼례에서 세계막사발심포지엄, 외국 작가 초청 레지던스, 기획 전시, 도예 교육 등을 통해 세계 유수 교수작가들과 교류해왔다며 짧은 기간 세계막사발미술관이 각국 교수작가들의 교류 장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주군은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며 폐관을 통보하고 지난해 12월 31일 자로 폐쇄했다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이어 사람을 쫓아내도 이렇게 일방적인 처사는 있을 수 없다며 지난 5년간 도예가들과 함께 공들인 활동은 모두 헛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관장은 8일 세계막사발미술관 광장에서 폐관 탄원 퍼포먼스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완주군은 세계막사발미술관 폐관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위탁기관 계약 만료(지난해 12월 31일)로 위탁기관이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에서 아트네트웍스로 변경됐고, 이 과정에서 세계막사발미술관을 포함한 삼례문화예술촌 7개 문화시설 운영자와 사업 내용에 대한 조정이 이뤄졌다. 책공방북아트센터와 김상림목공소만 기존 운영자가 유지되고, 나머지 문화시설은 운영자가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상림목공소, 디지털아트관을 제외한 문화시설의 사업 내용도 변화됐다. 완주군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김 관장이 터키 하제테페대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1년에 3~4개월 국내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 관장의 부재로 인한 리더십 공백으로 정책 결정과 실행 등 원활한 운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위탁기관 변경과 맞물려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자리한 옛 삼례역 역사의 활용도를 높이는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3.06 21:04

[불멸의 백제] (43) 3장 백제의 혼(魂) ②

아침, 3백기의 기마군이 칠봉산성을 내려가고 있다. 예비마와 식량을 실은 말까지 4백여 필의 말이 속보로 내려가는 터라 산이 울렸다. 앞장선 척후는 10여기. 그러나 깃발도 들지 않았고 백제군(軍)을 나타내는 띠도 매지 않았다. 사냥을 갈 때의 차림이다. 아침 일찍 산에 나왔던 나무꾼 서너명이 내려오는 기마군을 보고는 길가에 비켜섰다가 계백이 다가오자 꿇어앉았다. 근처 마을 농부들이어서 계백의 얼굴을 안다. “성주, 잘 다녀옵시오!” 나이든 사내가 소리치자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추수 잘 하게!” 계백의 목소리는 곧 말굽 소리에 묻혔고 기마군에 둘러싸인 뒷모습도 곧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남방 방령 윤충도 말에 오르고 있다. “선봉이 떠났습니다!” 부장(副將)인 덕솔 목기진이 소리쳐 말하면서 옆으로 다가왔다. 목기진이 탄 군마(軍馬)가 흥분해서 목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두 번이나 맴돌았다. 싸움에 익숙한 군마들은 전장 분위기를 느끼면 날뛰는 것이다. “서둘러라!” 말고삐를 쥔 윤충이 소리치자 목기진의 손짓을 받은 중군(中軍)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솔 협반이 지휘하는 선봉군 3천이 조금 전에 방성(方城) 아래쪽 산기슭에 주둔하고 있다가 출발한 것이다. 윤충이 이끄는 중군은 기마군 7천5백, 후군은 3천5백, 선봉군까지 1만4천이다. 기마군이 움직이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자, 이제 시작이다.” 윤충이 말에 박차를 넣어 속보로 걸리면서 주위에 모인 무장들에게 말했다. “이번 싸움은 나솔 계백에게 달려있다.” “방령, 대왕께 전령이 떠났소이다!” 중군의 제1대장을 맡은 나솔 정찬이 다가와 보고했다. “대왕과는 이틀 간격이 되겠소.” “일정이 정확해야 산다.” 윤충이 소리쳐 말했다. “낙오자는 남겨두고 행군을 멈추지 말라!” 이미 각 무장들에게 지시를 해놓은 터라 전령을 시켜 전달할 필요는 없다. 후군(後軍) 뒤로 병참과 예비마까지 3천여 필의 말떼가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성 안은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을 했다. 성 안 주민들이 길가에 나와 서서 구경을 한다. 이 중에 신라 첩자가 있을 것이지만 기마군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출동 전까지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었던 터라 첩자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성문을 나서자 아침 햇살이 기마군 위로 펼쳐졌다. 창끝이 빛을 받아 반짝였고 말들은 기운차게 걸음을 내딛는다. 윤충이 번쩍 상체를 세우고 소리쳤다. “보라! 창끝에 비친 햇살이 이렇게 밝은 적은 처음이다! 이번 싸움은 이긴다!” “와앗!” 근처의 무장들이 소리쳤고 전령들이 앞뒤로 말을 달려 나가면서 기마군들에게 전한다. “창끝의 햇살이 이렇게 밝기는 처음이라고 방령께서 전하셨다! 이번 싸움은 이긴다!” “와앗!” 앞쪽과 뒤쪽에서 전령의 말을 들은 기마군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병사에게 사기를 일으켜주는 것이 장수의 역할이다. 수백 번 전투를 치른 윤충은 비오는 어느 날에 전장으로 달려가면서 빗속의 귀신이 너희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그날 윤충은 5백 기마군으로 3천이 넘는 신라군을 패주시켰는데 귀신의 도움이 컸다. 군사들은 귀신들이 옆에서 돕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것이 사기고 전장(戰場)의 단순함이다. 그것을 잘 응용하는 장수가 이긴다. 제갈공명의 계략은 다 헛소리다. 윤충의 머릿속에 계백의 모습이 떠올랐다. 계백. 지금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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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5 21:21

[불멸의 백제] (42) 3장 백제의 혼(魂) ①

“부르셨어요?” 마룻방에 앉아있던 계백에게 고화가 다가오며 물었다. 고화는 깔끔한 옷차림에 이제는 피부에도 윤기가 난다. 성주(城主)의 손님이 되어서 머물고 있는 터라 몸은 편해졌지만 아직 얼굴에는 수심이 끼었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앞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 앉아.” 오시(12시) 무렵, 잠깐 자고 일어난 계백이 다시 나갈 차비를 하고 앉아있다. 앞쪽에 앉은 고화가 맑은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이제는 눈에 적의는 사라졌다. 대신 두려움과 수줍음이 절반씩 섞여진 것 같다. 계백이 입을 열었다. “내일 새벽에 출진을 할 테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불렀어.” 고화는 시선만 주었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방령께 말씀을 드리려고 했더니 마침 방좌께서 말을 꺼내시더군. 그래서 그대를 내 처로 대우 해달라고 청을 드렸어.” 고화가 시선을 내렸고 계백의 말이 마룻방을 울렸다. “그러니 내가 돌아오지 않아도 나솔 계백의 처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야. 그런 줄 알고 있도록.” “나리.” 머리를 든 고화가 계백을 보았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제가 아버지를 사지(死地)에 빠뜨려놓고 이제는 나리까지 몰아 넣는군요.”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어.”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그대가 지금은 내 걱정을 해주는가?” “아버님께 저는 꼭 살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옳지, 그래야지.” 계백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효도하는 길이고 대의(大義)일세. 내가 전해 드리겠네.” 어깨를 편 계백이 머리를 돌리더니 밖에 대고 소리쳤다. “덕조 있느냐!” “예, 나리.” 문 밖에 있었는지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집안 식구들 모두 불러라!” “예, 나리.” 숨을 다섯번 쉬기도 전에 덕조가 종 둘과 우덕까지 데리고 마룻방 끝쪽에 섰다. 계백이 머리를 들고 덕조에게 말했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아씨를 모시고 기다려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나리.” 했지만 덕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직 내막을 모르기 때문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방좌 덕솔 연신님께서 아씨를 내 처로 인정하시고 대우해주신다고 하셨다. 알겠느냐?” “예, 나리.” 그때서야 덕조가 계백 사후(死後)의 고화에 대한 대우 문제인 것을 알고는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예, 돌아오실 때까지 잘 모시지요.” 머리를 끄덕인 계백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이만하면 되었어.”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내일 새벽에 출진이야. 청으로 들어가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나서 그곳에서 출진할 테니까 여기서 작별이다.” “나리, 무사히 돌아오시오.” 계백의 등에 대고 덕조가 건성으로 말했다. 마룻방을 나가던 계백의 옷자락이 뒤에서 당겨졌다. 머리를 돌린 계백이 옷자락을 잡고 선 고화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화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나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죽을 작정으로 떠나는 무장이야.” 그러나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대에게 돌아오려고 죽음을 피하지는 않아.” 계백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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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4 20:19

[불멸의 백제] (40) 2장 대야성 19

대야성 서문 수문장 여준은 다가오는 진궁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성주 오시오?” “난 성주에서 떨어진지 한 달 되었어.” 쓴웃음을 지은 진궁이 다가와 섰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진궁은 여준의 숙소로 찾아온 것이다. 미리 장춘을 시켜 연락을 한 터라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준이 진궁을 안내했다. 여준도 가야 호족 출신으로 진궁의 가문과 인척으로 맺어져 있다. 진궁의 어머니가 여준의 친척인 것이다. 뒤채 마룻방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뒤를 따라온 장춘이 마룻방 밖에서 지켜섰고 여준은 방에 불도 켜지 않았다. 진궁은 이미 기피 인물이다. 딸이 백제군에게 납치된 것을 숨기고 있다가 군주로부터 직위가 박탈된 신분인 것이다. 억울하겠지만 진궁과 접촉했다가 군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리는 진궁을 피하는 실정이다. “이것 봐, 나마. 내가 그대와 친척이라는 것을 누가 아는가?” 웃음 띤 얼굴로 진궁이 묻자 여준이 따라 웃었다. “안다면 벌써 그자가 군주께 말했겠지요.” “그렇군.” “한 달이 지났으니 아마 저도 직이 잘렸을 겁니다.” “김유신은 내 구명 편지도 불에 태웠어.” “당연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그대와 내 관계도 알게 될 거야.” “그럴 것 같습니다.” 여준은 33세, 활을 잘 쏘았고 마술이 뛰어나 여러 번 전장에서 공을 세웠지만 11품 나마에 머물고 있다. 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지 1백년도 되지 않는다. 그 전(前)에는 가야와 백제가 연합해서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때 진궁이 정색하고 여준을 보았다. 방안이 어두워서 진궁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봐, 나마. 나는 이곳에서 죽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놀란 여준이 눈을 둥그렇게 떴을 때 어깨를 치켜올린 진궁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마는 살아서 영예를 찾게.” “왜 죽습니까?” “대야성을 함락시키겠네.” “대아찬, 무슨 말씀이오?” “성문을 열어주지 않겠는가?” 낮게 말한 진궁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여준을 보았다. “대야성만 넘어가면 대야주 42개 가야 영토의 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네.” “…….” “그럼 우리 가야인들이 다시 대가야의 주인이 되겠지. 나마, 그대가 42개 가야성 한 곳의 성주는 되지 않겠는가?” “…….” “신라가 우리 대가야를 병합시키고 나서 가야족으로 출신한 위인은 김유신 하나뿐이지 않은가?” “…….” “내가 5품 대아찬이 된 것도 30여 번의 전공을 세운 덕분이지. 나 같은 경우는 몇 명 안되어.” “그렇지요.” 어깨를 부풀린 여준이 말했다. “대아찬은 김유신보다도 더 전공을 세웠지요.” 그러나 김유신은 이미 왕족 대우를 받고 진골 김춘추의 매부이며 대장군에다 2품 이찬이 되었다. 가야인 토호 대부분은 11품 나마 이상으로 승급되지 않는다. 전택도 특별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그때 여준이 물었다. “대아찬, 백제에 투항하시려는 겁니까?” “나를 따르겠는가?” “명분은 있으니 실리까지 보여주시오.” “옳지.” 진궁이 어둠 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장하네, 거사가 성공하면 그대에게 성주를 보장하지 못하겠는가?” “조건없는 투항은 백제에서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딸 고화의 장래를 보장받았네.” “대아찬, 살아서 그것을 보셔야지요. 함께 삽시다.” “그럼 성문을 열겠는가?” “대가야는 내 땅이요, 내 집 성문을 여는 것입니다.” 여준의 두 눈이 번들거렸고 먼저 손을 뻗어 진궁의 손을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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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8 19:54

[불멸의 백제] (39) 2장 대야성 18

“나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장들이 돌아가고 계백 혼자 마룻방에 남았을 때 먼저 나갔던 남용이 문앞에서 말했다. “뭐냐?” 다가온 남용이 품에서 접혀진 편지를 두 통 꺼내더니 내밀었다. “하나는 대아찬이 나리께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딸에게 주는 편지지만 나리께 먼저 드리라고 하더구만요.” 20대쯤의 남용은 농사꾼에서 병사로, 병사에서 15품 진무까지 출신을 했다. 군 경력이 8년, 수많은 전장(戰場)에서 살아남은 터라 생존본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편지를 받아든 계백이 남용에게 물었다. “진무, 대아찬의 기색이 어떻더냐?” 남용은 그동안 진궁과 함께 생활해왔던 것이다. 백제 측에서는 연락역 겸 감시역이다. “가야 호족으로 신라 왕족들에게 무시당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남용이 바로 대답했다. “백제군을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려 신라에 충성할 위인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딸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고 진심 같습니다. 딸이 잘 살면 된다는 말만 여러번 했습니다.” “진무, 수고했다.” “나리.” 계백을 부른 남용이 시선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었다. “저와 하성은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번 공격이 성공하면 너희들 둘은 12품 문독이 된다. 그것이 자손에게도 전해질 게다.” “그만하면 죽을 보람이 있지요.” 어깨를 부풀린 남용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죽더라도 자식에게 직위가 넘겨진다는 말이다. 남용이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은 먼저 자신에게로 온 편지부터 보았다. 이제는 눈에 익은 진궁의 필체다. “나솔, 다시 뵙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런 말을 할 기회가 없을 터라 먼저 말씀드리오. 내 딸 고화가 여러모로 부족하나 나솔이 상처하셨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필로 맞아주시면 마음놓고 세상을 뜰 수 있겠소. 이것도 인연이니 고화를 받아주시기 바라오. 고화에게도 따로 편지를 쓸 것인데 고화는 아비의 뜻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승낙해주신다면 백제와 나솔을 위해 대야성 공략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진궁.” 한동안 편지를 보던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편지는 자신의 딸을 배필로 맞으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내용은 당당했고 딸과 대야성을 바꾸겠다는 분위기까지 풍겼다. 이윽고 계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내용 속에 박힌 진궁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진심까지 몸속으로 배어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당으로 나간 계백이 종을 불러 고화를 불렀다. 고화는 이제 종이 아니라 손님이다. 방에서 나온 고화가 앞에 섰을 때 계백이 편지를 내밀었다. “부친과 함께 있는 무장이 여기 오면서 그대 부친의 편지를 가져왔어.” 편지를 내민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도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것도 함께 읽는 것이 낫겠군.” 계백이 다시 편지 한 통을 꺼내 고화에게 건네주고는 돌아섰다. 밤이 깊어서 칠봉산 이쪽저쪽의 부엉이가 울기 시작했다. 방으로 돌아온 계백이 그때서야 옷을 갈아입었을 때 덕조가 술상을 든 종과 함께 들어섰다. “주인, 무슨 편지를 주신 겁니까?” 종이 나갔을 때 술상 옆에 앉은 덕조가 물었다. “얼핏 들었더니 부친이 보낸 편지라면서요?” “고화 부친이 나한테 고화를 처로 맞아 달라는구나.” 순간 숨을 들이켠 덕조가 몸까지 굳히더니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소인이 보기에는 마님으로 적당하십니다. 얼른 받아들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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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7 19:57

[불멸의 백제] (38) 2장 대야성 17

결사대 3백은 칠봉성으로 파견된 병력중에서 선발했기 때문에 계백은 매일 군사 조련을 했다. 방령 윤충은 부장(副將)으로 장덕 화청을 보내 주었는데 40대의 한인(漢人)이다. 건장한 체격에 수염이 무성한 화청이 계백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장덕 화청이올시다. 나솔께서 연남군에 계실 때부터 용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당(唐)에서 귀화했나?” 계백이 묻자 청 안의 시선이 모여졌다. 칠봉성의 청 안이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화창한 날씨여서 산성위로 흰 구름이 지붕처럼 붙여져 있다. “아니오, 전 수(隋)가 멸망한 후에 귀순했으니 수에서 귀화한 셈입니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수(隋)는 3대 37년만에 멸망한 것이다. 한때 중원을 장악했던 수는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대패를 당한 후에 양제가 친위군의 반란으로 살해되면서 사라졌다. “수가 멸망한지 25년이야. 그대는 수에서 관직에 있었나?” “섬서성 동관의 교위로 있다가 동관이 함락되자 곧장 동성군에 투항하였습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성군은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백제령 담로의 하나다. 계백이 성장했던 담로 연남군의 윗쪽이다. “잘왔어, 그대의 경륜이 도움이 되겠다.” 계백이 반기고는 같은 부장(副將)이며 장덕인 해준과 고덕 효성 등 무장들을 소개했다. 이로써 결사대 장수와 병사 준비는 마쳤다. 성안의 군사는 물론 출동시킬 3백 기마군도 아직 대야성 공략은 커녕 출동 날짜도 모른다. 계백과 10여명의 무장만 알 뿐이다. 그날 저녁, 대야성에 밀파되었던 2명중 하나인 진무(振武) 남용이 계백의 사택에 도착했다. 남용은 온몸이 땀과 먼지로 뒤덮여 있는데다 나흘 밤낮을 걸었기 때문에 지쳐 있었다. “지쳤으니 잠깐 물을 마시고 죽을 먹어라.” 늘어진 남용에게 말한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가서 장덕 화청, 해준, 고덕 효성까지 불러오너라.” 덕조가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이 다시 남용에게 말했다. “다 함께 들으려고 그런다.” 잠시후에 선봉군 결사대의 무장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남용이 어디에서 온 것임을 아는 터라 긴장하고 있다. 마룻방에 다섯이 둘러 앉았을 때 계백이 남용에게 지시했다. “말해라.” “예, 그동안 대야성의 주둔병력이 1만3천5백으로 늘었습니다. 기마군 5천5백에 보군 8천입니다.” 남용이 가슴에서 접혀진 종이를 꺼내 계백 앞에 펼쳐놓았다. “대야성 지도입니다. 각 부대의 위치와 병력, 창고와 마굿간, 무장과 관리들의 숙소까지 다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지도는 대아찬이 그렸습니다.” 무장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었다. 계백이 지도를 집어들고 머리를 끄덕였다. 대아찬은 진궁이다. 다시 남용이 말을 이었다. “대야성 주변에 포진한 신라군은 대략 1만여명이고 중앙군단으로는 삼천당군(軍) 1만이 동쪽 마진성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대아찬은 유사시에 만 하루면 3만여명의 신라군이 모일 수가 있고 사흘이면 5만, 열흘이면 신주로 올라간 김유신군(軍)까지 내려와 10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야성 안 분위기는 어떠냐?” “전쟁 분위기는 아닙니다. 김유신군이 북상했고 의자대왕께서 북쪽에 계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숨을 고른 남용이 계백을 보았다. “대야성안 주민이나 가야출신 군사들은 신라 임금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도를 접은 계백이 길게 숨을 뱉었다. 이제 시간이 된 것이다. 이쪽 준비는 다 되었다. “수고했다. 넌 오늘 푹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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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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