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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게임과 노래방, 당구 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책을 냈다. 6개월간 발로 뛰며 생생하게 기록한 <고등학생이 발로 쓴 전북문화 탐방기>(북랩)다. 겨울방학도 반납하고 부지런히 전북을 누빈 10대 작가는 전주 신흥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손병관, 유태훈, 이경민, 채승윤 군이다. 이들의 여정은 전북교육청이 주민참여 제안사업으로 장창영 실버라이트 교육문화연구소 대표(전북대 교수)가 한 전북 역사문화 탐방 지도 제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시작됐다. <전북문화 탐방기>는 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전북 문화의 현주소에 대한 감상을 모아낸 것이다. 장창영 대표와 함께 전주, 삼례, 익산, 군산, 김제, 부안, 고창, 남원, 정읍 등 우리 고장 구석구석을 답사하였다. 임실의 김용택 시인, 남원의 복효근 시인, 전주의 최기우 작가 등 현역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작품세계와 작가정신을 엿보는 인생경험도 했다. 가볍고 유쾌한 여행기가 많지만 학생의 눈으로 본 전북 문화관광지의 문제점과 보완점도 담겨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길거리 음식과 한복 사진 촬영 외에 전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콘텐츠와 놀 거리가 부족하다는 것, 삼례문화예술촌은 입장료는 저렴하지만 어떤 체험이 있는지 정보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 등이다. 유태훈 군은 많은 곳을 다녔지만 어른들을 위한 문화 행사나 프로그램은 많은 대신에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은 매우 부족했다면서 앞으로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의 발굴과 보급이 활발해지기를 희망했다. 고등학생이 공부 대신 탐방을 다녀도 되나?시작 전 걱정에 대한 학생들의 활동 후기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좋을 경험이었다. 우리 문학작품의 산실과 문화의 주요 배경지를 다니는 것은 교실이나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손병관 군은 삶을 허무하게 보냈던 내게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다며 어렵게 느껴지던 문화재 탐방이 주말 마다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임을 느꼈고, 탐방을 다니고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뭔가에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는 게임, 스포츠 등에 관심이 많던 학생이었습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처음 여행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졌고 삶의 가치관이 변했어요. 여행을 느끼기 전에 왜 여행을 가고 싶은지, 또 여행을 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짚게 됐습니다. 이경민 학생의 소감이다. 채승윤 학생은 우리가 걸어온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전북의 문화재를 아끼고 큰 관심을 갖자는 중요한 의미를 바탕에 둔 것이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또 고등학생이 책을 쓴다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어서 모든 부분에 열심히 임했고, 이 설렘과 긴장을 앞으로도 인생에서 계속 느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실에 둘이 마주보고 앉았을 때 김춘추가 충혈된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장군, 내가 고구려에 가야겠소.” “무슨 말씀이오?” 놀란 김유신이 상반신을 기울였다. 고구려와는 60여년 전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하류지역을 점령했을 때부터 원수지간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그 후에 신라는 동맹관계인 백제를 배신, 한강 하류지역을 탈취하고 신주(新州)를 세워 다시 백제와도 원수가 되었다. 더구나 빼앗긴 땅을 탈취하려는 백제하고는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聖王)을 전사시킴으로써 불구대천의 사이가 되어있다. 김춘추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말했다. “고구려도 백제의 기세에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오. 더욱이 연개소문은 북진정책을 주장하는 호전적인 인간 아니오?” 김유신의 시선을 받은 김춘추가 열에 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신라는 영토의 3할을 잃었소. 고구려는 앞쪽의 당(唐)을 치려면 등 뒤에 도사리고 있는 범부터 제압해야 될 것이오.” “대감, 백제와 고구려는 동맹관계올시다.” “서로 필요했기 때문이지. 지금 연개소문은 백제가 부담이 되고 있을 겁니다.” “대감, 그러면 밀사를 골라 보내시지요.” “누가 가겠소?” 김춘추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비담 일파가 골라준 밀사는 그저 다녀오는 시늉만 낼 것이오.” “하지만 위험합니다, 대감.” “장군이 신주 북방까지 올라가 주시면 나한테 도움이 되리다.” “그거야 얼마든지 해 드리지요. 하지만…” “내가 연개소문을 만나겠소.” 어깨를 편 김춘추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유신을 보았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요. 비담 일당은 당황제에게 여왕을 비난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소. 이러다가 왕국이 망하게 되면 왕이 된들 무얼 하겠소?” “그 전에 죽임을 당하겠지요.” “이번 대야주 42개 성이 백제 수중에 들어갔으니 연개소문도 생각을 바꿀 것이오.” “대감, 차라리 소장이 가지요.” “아니오, 신라에는 장군이 필요하오.” 쓴웃음을 지은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나같은 왕족은 수십명이나 있지만 대장군은 그대 하나뿐이오.” “황공하오.” “장군이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 연개소문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 할 것이오.” 그때 김유신이 긴 숨을 뱉었다. “대감의 용기는 무장(武將) 100여명보다 낫습니다.” “딸과 사위를 한꺼번에 잃은 분노가 그렇게 만들었소.” 김춘추가 뱉듯이 말하더니 외면했다. “왕국을 잃으면 성골, 진골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김유신은 이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계백이 의자왕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백제 사신으로 고구려로 떠나는 인사다. 의자왕은 계백과 부사(副 ) 유만, 화청을 밀실로 불렀는데 배석자는 성충과 윤충, 내신좌평 목부까지 셋뿐이다. 밀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야주 공취로 연개소문이 우리에게 위협을 느낄지도 모른다,” 의자왕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의 동맹이 내일 원수로 변하는 것이 어디 한두번이냐? 그러니 너는 이것을 연개소문에게 주어라.” 의자왕이 두루마리 밀서를 계백에게 내밀었다. 붉은 천에 금박 글씨로 쓴 왕의 친서다. “신라 신주(新州)를 공취하면 당항성만 백제가 차지하고 나머지 옛 고구려 영토는 고구려에 반환시키겠다는 밀서다.” 계백이 밀서를 두 손으로 받자 의자왕이 말을 이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하면 당(唐)의 이가놈이 견딜 것 같으냐? 백제와 함께 북진하자고 해라.”
어떻게 죽었느냐? 김춘추가 묻자 무관이 엎드렸다. 백제 장수 계백이 베었다고 합니다. 무관은 15품 대오 벼슬의 하급 무장으로 가야성 내궁 경비를 맡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성벽을 넘어 탈출했다는 것이다. 성이 함락되거나 아군이 참패했을 때, 특히 궤멸 상태가 되었을 때 현장 보고를 받기는 어렵다. 그것은 보고를 다 듣고 나서 너는 왜 도망쳤느냐는 심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춘추는 대야성이 함락된 지 엿새 후에야 지금 보고를 받고 있다. 동경성(東京城) 안 김춘추의 저택은 웅장하다. 청 아래쪽의 마당은 넓어서 마술 시합을 할 수도 있다. 청의 기둥 옆에 선 김춘추가 무관을 내려다보았다. 주위에 둘러선 가솔, 이찬 김춘추를 만나러 온 문무관원들까지 수십 명이 숨을 죽이고 있다. 그 때 김춘추의 목소리가 마당으로 울렸다. 계백이라고? 예,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무관이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김춘추를 보았다. 백제 나솔 계백이 대야군주 김품석을 베었다라고 외침이 일어났습니다. . 저는 분이 나서 내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백제군 수천 명이 진입한 상황이었습니다. . 그래도 칼을 들고 싸웠다가 곧 성주의 목이 창끝에 꿰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래서 죽기보다 보고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내궁 마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김춘추의 목소리가 바짝 마른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마당과 청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그 때 무관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춘추를 올려다보았다. 뒤늦게 도망쳐 나온 군사들한테서 들었습니다만 내궁 마님은 칼로 가슴을 찔러 자결하셨다고 합니다. . 내궁을 점령한 계백이 마님의 목까지 베고 내궁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으음. 김춘추가 갑자기 기둥에 어깨를 붙이면서 신음을 했다. 놀란 집사가 그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가 멈췄다. 이놈들. 김춘추가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앞쪽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이 한(恨)을 꼭 풀 것이다. 그러더니 기둥에 등을 붙이고 서서 손을 저었다. 모두 물러가라. 그 때 마당 뒤쪽 문 앞에서 말굽소리가 들리더니 곧 서너 명의 무장이 들어섰다. 햇볕을 받은 갑옷이 번쩍였다. 앞장 선 무장은 김유신이다. 김유신의 어깨와 머리에도 먼지가 내려 앉아있다. 달려온 증거다. 대감, 들으셨습니까? 청에 선 김춘추를 보자 김유신이 소리쳐 묻는다. 마당에 서 있던 가솔, 관리들이 황급히 좌우로 갈라서서 길을 터준다. 김춘추가 눈의 초점을 잡고 김유신을 보더니 주르르 눈물을 쏟았다. 그렇소, 방금 듣고 있었소. 모두 내 불찰입니다. 청 앞에 선 김유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춘추를 보았다. 의자의 간계에 속았기 때문이오! 김유신의 목소리가 마당과 청을 울렸다. 이때 김유신은 49세, 김춘추는 43세이니 장년이다. 김춘추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더니 기둥에서 등을 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김춘추가 휘청거리다가 김유신에게 말했다. 대감, 들어오시오. 상의 드릴일이 있소.
대야성에서 계백이 보낸 14품 좌군(佐軍) 벼슬의 아한이 칠봉성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신시 (4시) 무렵이다. 아한은 기마군 셋을 이끌고 왔는데 모두 땀과 먼지를 뒤집어써서 거지꼴이었다. 아한이 곧장 계백의 사택 마당으로 들어서자 덕조가 두 손을 내밀고 달려 나왔다. 그 뒤를 고화와 우덕, 그리고 종들이 따라 나와서 마당은 금방 사람으로 찼다. 아한은 계백의 위사대 조장(組長)이라 덕조와 아는 사이다. “좌군, 무슨 일이오?” 덕조가 긴장된 얼굴로 묻는다. 백제군이 대야성을 함락시켰고 대야주 42개 성을 공취해간다는 소문은 들었다. 승전보가 오가는 전령의 몇 마디 말로 전해지는 상황이다. 이곳 칠봉성은 전장(戰場)에서 멀 뿐만 아니라 사비도성과 대야성 사이에 위치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소식이 늦는 편이다. 그때 아한이 소리쳐 말했다.“성주께서 대야성을 함락시킨 1등 공을 세우셨소. 그래서 대왕께서 한솔로 관등을 올려주셨소!” “만세!” 그 순간 두 손을 번쩍 쳐든 덕조가 소리쳤다. “천세! 내가 그렇게 되실 줄 알았어!” 와락 다가선 덕조가 어깨를 부풀리면서 물었다. “다들 무사하시오? 저기, 우리 아씨의…” 그때 호흡을 고른 아한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대아찬 나리는 전사하셨소.” 덕조는 입만 딱 벌렸고 고화는 아한에게 시선을 준 채로 굳어졌다.” “아이구머니!”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은 것은 우덕이다. 땅바닥에 두 다리를 뻗은 채 주저앉아버린 우덕이 울부짖었다. “우리 아씨는 어쩌라고 가셨단 말인가!” 마당이 숙연해졌고 우덕의 외침이 이어졌다. “아씨를 살리시려고 나리께서 가셨구나!” “……” “아이고, 불쌍한 우리 나리!” 덕조도 숨을 멈춘 채 굳어졌고 아한은 물론이고 군사들도 석상처럼 말이 없다. 우덕의 외침이 마당을 다시 울린다. “아이고, 나리! 아씨께 말 한마디 못해주시고 저 먼 곳에서 가셨구나!” 그때 정신을 차린 아한이 품에서 기름종이에 싼 편지를 꺼내 고화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아씨, 한솔께서 아씨께 드리는 편지올시다.” 방으로 돌아온 고화가 편지를 꺼내 펼쳤다. 밖에서는 우덕의 울음소리만 울릴 뿐 조용하다. 주인 계백이 대공(大功)을 세워 한솔로 승급이 되었지만 부인의 부친이 전사를 한 상황이다. 고화가 편지를 읽는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안고 있었소.” 편지를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버님이 날 올려다보시면서 힘껏 싸우다가 죽는다고 하시며 웃었소.” 고화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내가 대아찬이라고 불렀더니 다르게 불러달라고 하셔서 장인어른이라고 불렀소.” 고화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나솔, 내 딸을 부탁하네, 하셔서 염려하지 마시고 떠나시라고 했소.” 고화가 짧게 흐느껴 울었다. “그랬더니 사위, 자네를 믿는다고 하시길래 내가 아버님이라고 부르면서 끌어안았소.” “아버지.” 고화가 편지를 쥐고 흐느꼈다. “아버님께 극락으로 가시라고 했더니 내가 안심하고 가겠다고 하십디다. 그래서 내가 고화를 아끼고 살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으신 아버님이 고맙다고 하시며 웃으셨소.” 고화가 머리를 들었다. 편지는 그것으로 끝났다.
“예, 대왕.” 사신 소준관이 어깨를 펴고 의자왕을 보았다. 청에 모인 백제 무장, 관리들의 시선이 모여졌다. 이곳은 전장(戰場)이나 같다. 신라 서부의 요지(要地)로 영토의 3할을 차지하고 있던 대야주를 백제가 정벌한 상황이다. 의자왕이 사신을 이곳으로 오도록 허용한 이유도 대백제(大百濟)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다. 소준관이 입을 열었다. “대막리지께서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신라와 당을 멸망시킬 계책을 논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 과연.” 의자왕이 상반신을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백제와 고구려는 동맹관계인 것이다. 의자왕이 생기 띈 얼굴로 소준관을 보았다. “과인도 적극 협력할 작정이야. 이제 그대도 보았다시피 신라 서방(西方)의 대야주가 백제령이 되었다. 42개 성을 공취했으니 신라는 왼쪽 팔을 잃어버린 병신 꼴이다.” “오, 적임자가 있지.” 의자왕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담로 연남군에서 당군(唐軍)과 여러 번 접전을 했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이번에 대공을 세운 무장이 있어.” 의자왕의 시선이 단하의 계백에게로 옮겨졌다. “한솔 계백이야.” 계백이 머리만 숙였을 때 의자왕이 말했다. “한솔, 네가 막리지와 함께 고구려에 가라.” “예, 대왕.” 의자왕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대막리지의 제의에 적극 찬성이야. 과인도 진즉부터 그것을 논의하고 싶었지만 선왕(先王)이 소극적이었는데 잘 되었다.” “과연 명군(名君)이시오.” 50대의 소준관은 달변이었다. 바로 의자왕의 말 뒤를 잇는다. “따라서 대막리지께서는 계책을 논의할 백제 무장을 고구려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대백제의 사신이다.” “예, 대왕.” “부사(副 )로 사도부 장덕 유만을 데려가도록 하고 무장(武將)은 누가 좋겠느냐?” “예, 나솔. 화청을 부장(副將)으로 삼고 싶습니다.” 한인(漢人) 출신의 투항무장 화청은 이번에 장덕에서 승진하여 6품급 나솔이 되었다. 의자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다. 사흘 후에 막리지와 함께 떠나도록 하라. 나도 그동안에 대막리지께 보낼 밀서를 준비하겠다.” 그날 저녁, 계백은 의자왕의 침전으로 불려 갔다. 죽은 김품석이 사용하던 침전에는 의자왕과 병관좌평 성충, 성충의 동생이며 남방방령인 윤충, 내신좌평 목부까지 넷이 모여 있었다. 계백이 말석에 꿇어앉았을 때 의자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고구려로 보내는 이유를 말해주마.” 계백이 숨을 죽였고 의자왕이 말을 이었다. “연개소문은 기(氣)가 센 무장이다. 당(唐)과의 결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데다 용병술과 지도력도 뛰어난 인물이다.” 의자왕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왕과 대신들까지 수백명을 한명도 살리지 않고 주살한 자야. 왕의 시체를 토막 내어서 전국에 떼어 보냈다던가? “…….” “네가 가서 대백제의 기(氣)를 보여라. 네 무용이 고구려에도 알려졌을테니 당당하게 연개소문에게 맞서서 전략을 논해라.” “예, 대왕.” “당(唐)과의 결전에 대백제도 군사를 내놓는다고 해라. 담로가 이미 널려있으니 고구려보다 대백제가 당의 영토에 우선권이 있지.” “예, 대왕.” 계백은 의자왕의 뜻을 알았다. 백제, 고구려 연합군은 당을 두조각으로 낸다. 신라는 염두에도 없다.
대야성에서 투항한 가야 출신 항장을 앞세워 백제군은 대야주의 성을 공략했다. 주성(州城)이 함락되고 군주 김품석이 살해된 상황인 것이다. 투항한 신라군만 1만여명이 되었으니 대야주의 41개 성은 대부분이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함락되었다. 대야성이 함락된지 엿새만에 대야주 42개 성이 백제군(軍)의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대야주에는 가야인 1백여만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거의 백제군에 저항하지 않았다. 대승이다. 대야성의 청에 앉은 의자왕이 도열한 신하들에게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있다. 부왕(父王)이 이루시지 못했던 대업(大業)을 이루었다. 기쁘다. 오전 사시(10시) 무렵이다. 청에는 항장(降將)들도 둘러서 있었는데 삼현성에서 진궁과 함께 벼슬을 살았던 신라 급벌찬 전택과 대야성 수문장 여준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 전택은 백제의 7품 장덕이 되었고 여준은 9품 고덕이다. 신라에서보다 두계단이나 승진을 한 것이다. 백제 장수들도 논공행상에 의해 승진을 했는데 계백은 6품 나솔에서 5품 한솔이 되었고 선봉장 협반은 한솔에서 4품 덕솔에 올랐다. 그러나 계백의 수하 무장 해준은 전사했고 고덕 효성도 죽었다. 의자는 죽은 무장들도 일일히 승급시켜 그 녹봉을 가족에게 넘기도록 했다. 사후 처리를 잘해야 장병이 죽기를 무릅쓰고 싸우는 것이다. 여러번 전장을 겪은 의자는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의자가 남방방령 윤충에게 말했다. 고구려 사신이 왔다니 이제 들라고 하게. 예. 대왕. 기다리고 있었던 윤충이 소리쳐 지시하자 곧 의례를 담당하는 사도부(司徒部) 부장(副長)이 청 밖에서 한무리의 관리들을 안내해 왔다. 고구려 사신들이다. 사신들은 사비도성을 거쳐 이곳 대야성까지 내려왔는데 모두 말을 달렸기 때문에 평양성에서 엿새가 걸렸다고 했다. 백제 대왕을 뵙습니다. 고구려 관복을 입었으나 급히 바꿔입은 흔적이 났다. 얼굴은 먼지가 끼어서 씻을 겨를도 없었던것처럼 보이는 사신이 소리쳐 말하고는 청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구려 막리지, 태대형인 소준관이 인사드리오. 오, 막리지이신가? 의자왕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사신을 보았다. 막리지면 고구려의 5부(部) 대인(大人)격이며 태대형은 2품급으로 백제의 달솔급, 즉 장관급이다. 고위직 사신이다. 의자왕이 물었다. 그래, 고구려 대왕께서 보내셨는가? 아니올시다. 대왕. 어깨를 편 소준관이 의자왕을 보았다. 고구려의 대막리지이시며 대대로이시며 5부(部) 전(全)대인을 겸하고 계시는 연개소문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아아. 신음 같은 탄성을 뱉은 의자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막리지께서는 건녕하신가? 예, 대왕께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이 더욱 강고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소준관이 들고 있던 밀서를 두손으로 바치자 옆에 서 있던 사도부 부장이 받아 의자왕 아래쪽에 선 윤충에게 건네주었다. 의자왕이 소준관을 보았다. 당(唐)이 지금도 북변을 건드리는가? 전무가 처형된 후로 놀랐는지 잠잠합니다. 이때는 의자왕이 입을 다물었고 청안의 대신들이 술렁거렸다. 영류왕 건무를 처단하고 대신들을 모조리 살육한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동생 대양왕(大陽王)의 아들 보장(寶臧)을 왕으로 세웠지만 허수아비다. 소준관이 영류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현재의 왕을 언급하지도 않는 것이 그 증거다. 그때 소준관이 정색하고 의자왕을 보았다. 대왕, 대야주 정복을 경축드립니다. 고맙네. 사비도성에서 기다릴 것이지 이곳까지 급하게 내려온 이유가 있는가?
“대인, 수고했다.” 영류왕이 연개소문에게 말했다. “천리장성 축성은 그대의 공이다. 들라.” 잔을 들어 한모금을 삼킨 영류왕은 연개소문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청에 도열해 앉은 2백여 명의 고관, 장수들의 시선이 연개소문에게로 옮겨졌다. 연개소문 혼자서 일어선 것이다. 아직 손에 술잔을 쥐고 있다. 머리에는 옥이 박힌 은관을 썼고 갑옷은 벗고 비단 겉옷 차림이다. “대왕께 아뢰오.” 연개소문의 굵은 목청이 울리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대인, 무슨 일이냐?” 영류왕이 지그시 연개소문을 내려다보았다. 연개소문은 5부 대인의 수장(首長) 격이었지만 언제나 영류왕의 견제를 받아왔다. 지금도 좌석 배치가 5부대인의 3번째 서열이며 조정 고관의 아래쪽이다. 어깨를 편 연개소문이 2백여 쌍의 시선을 받고는 그들을 휘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영류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당한 태도다. “대왕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라.” 영류왕의 대답이 냉랭해졌다. 그대 술잔을 든 채로 연개소문이 물었다. “대왕께서는 광개토대왕과 장수대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청 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2백여 쌍의 시선이 연개소문과 영류왕을 번갈아 훑어갈 뿐이다. 그때 영류왕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앗하하. 내가 그대가 묻는 의도를 알겠다. 그 두 분 대왕은 위대하신 왕이시다. 허나 이 건무는 그분들과는 다르다.” 영류왕의 얼굴에서 차츰 웃음기가 가시더니 곧 눈을 치켜뜨고 연개소문을 노려보았다. “나는 백성을 전란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것이 백성과 땅을 지키는 일이다!” 어깨를 부풀린 영류왕이 꾸짖듯 말을 뱉었다. “보국안민이 내가 갈 길이다!” “그렇습니까?”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연개소문이 몸을 돌려 둘러앉은 2백여 명의 고관들을 다시 보았다. 영류왕의 기세에 질린 고관들은 모두 숨만 죽이고 있다. 연개소문이 입술의 한쪽 끝만 비틀고는 웃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한껏 추켜올리더니 술잔을 추켜올리면서 소리쳤다. “고구려는 다시 일어난다!” 벽력같은 외침이 청을 울리자 모두 아연실색을 했다. 다음 순간 연개소문이 들고 있던 술잔을 청 바닥에 내던져 박살을 내었다. “다 죽여라!” 연개소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이다. 청의 네곳 문으로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앞장선 장수들은 모두 연개소문의 심복 무장들이다. “와앗!” 청 안이 무너질 것 같은 함성이 울리면서 당장 살육이 일어났다.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다 죽인다. 사방의 문으로 끝없이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청 안은 비명과 외침으로 가득 찼다. 연개소문은 달려온 심복 무장으로부터 장검 두 개를 넘겨받았다. 청에 들어오기 전에 모든 관리는 고하를 막론하고 무기를 맡겨 놓아야 했기 때문에 청 안의 고관들은 비무장이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은 칼을 받자마자 옆에서 허둥거리는 남부대인 고정태의 머리통을 내려쳐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서부대인 양수가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달려가 등을 찍었다. 가슴으로 칼이 빠져나갔고 양수가 목청이 터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대인! 살려주시오!” 외치는 소리에 머리를 돌렸더니 북부대인 사반이 연개소문의 무장에게 목덜미를 잡힌 참이었다. 무장은 칼을 치켜들고 있다.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베어라!” 그리고는 상을 건너뛰어 영류왕에게로 달려갔다. 왕은 세 명의 무장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악을 쓰는 중이었다. 무장들은 칼을 치켜들었지만 베지 못하고 망설인다. 왕인 것이다.
고구려에는 5개 대부족(大部 )이 있는데 연노부, 순노부, 개루부, 관노부, 절노부로 나뉘어졌다. 그 중 연노부(淵奴部)가 가장 강력한 부족이다. 연개소문은 연노부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 연광(淵廣), 조부 연자유(淵子遊), 부친 연태조(淵太祚)는 대를 이어 서부대인(西部大人)에다 대대로(大對盧)를 지냈다. 서부대인은 연노부가 서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서쪽은 곧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래서 618년에 즉위한 영류왕 건무와 온건파 대신들은 연개소문의 부친 연태조가 죽자 호전적 성격인 연개소문의 서부대인 세습을 반대했다. 연개소문은 을지문덕이 주장한 북진정책에 호응하는 강경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개소문은 각 호족들과 대신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온건파의 정책에 따를 것을 맹세하고 나서야 서부대인 세습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서부대인이 된 연개소문은 곧 군사들을 모으고 당에 대항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과의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자신의 영지가 전장(戰場)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세는 했지만 을지문덕이 주장한 북진정책은 버리지 않았다. 영류왕은 10여 년 전 고구려의 오랜 맹방인 돌궐의 힐리가한이 당의 이정(李靖)에게 잡히자 그것을 치하하는 사신을 보냈다. 돌궐은 수의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서 싸워준 맹방이다. 연개소문을 비롯한 강경파 장수들은 왕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왕은 스스로 당의 속국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왕은 당의 사신 진대덕이 오자 길 안내를 시키는 한편, 진대덕이 노골적으로 지형과 방비 상태를 염탐을 해도 막지 않았다. 포로로 잡혀있던 한인들에게 고향으로 곧 데려갈 것이라고 진대덕이 고구려를 무시한 언동을 했는데도 놔두었다. 영류왕 건무는 한때 무용을 날렸던 장군으로 선왕(先王) 영양왕을 도와 수나라 대군을 물리쳤으나 왕이 된 후로는 수비에만 치중했고 당에 저자세를 보인 것이다. 고구려는 5부(部), 3경(京)제로 되어 있었으니 동, 서, 남, 북, 내(內)의 5부에 평양성, 국내성, 한성의 3경(京)이었다. 전국의 성이 176개, 호구가 69만7천호여서 백제의 5부(部), 37군(郡), 200성, 76만호에 620만 인구에 비하면 면적에 비해서 인구가 적은편이다. 의자왕 2년 10월, 영류왕 25년, 평양성. 오늘은 평양성에 5부(部)의 수장들이 다 모였다. 부족의 이름을 따서 내부(內部)는 계루부로도 불렸고 서부(西部)는 연노부, 북부(北部)는 절노부, 동부(東部)는 순노부이며 남부(南部)는 관노부이다. 오늘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감독했던 장성투입 병력의 열병식을 한 것이다. 천리장성은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세워졌다. 곧 영류왕의 북수남진(北守南進) 정책의 산물로써 16년간의 공사로 완공이 된 것이다. 천리장성은 서부(西部)로 뻗어있었기 때문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공사를 맡아야 했으니 인력과 물자의 손실이 대단했다. 5부대인은 모두가 부족의 장으로 대부분 대를 이어서 대인직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제각기 사병(私兵)을 길러 국경을 지켰는데 연개소문의 서부가 영토도 가장 큰데다 사병의 수도 많았으므로 대인(大人)중의 수장(首長) 노릇을 한다. 5부대인이 청에 좌정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영류왕이 들어섰다. 영류왕 건무는 26대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6척 장신에 수염이 길었고 눈빛이 맑았다. 영양왕때 수의 대군을 을지문덕과 함께 몰사시킨 용장이었으나 왕이 되자 북수남진 정책을 펴왔다. 영류왕이 용상에 앉아 백관을 둘러보았다. 5부대인과 그들의 중신(重臣)들, 그리고 조정의 고관이 모두 모였으므로 대왕진에 모인 관리는 2백인이 넘는다. “모두 앉으라.” 영류왕이 말하자 모두 자리에 다시 앉는다. 각자의 앞에 술상이 차려져 있어서 왕이 먼저 술잔을 들었다. 시녀가 다가와 잔에 술을 채운다. “이제 북쪽 국경은 그것으로 되었어.” 잔을 들어 올리면서 영류왕이 말하자 대신들도 모두 잔을 들었다. 그 때 영류왕의 시선이 연개소문에게 옮겨졌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성 안으로 다시 한무리의 신라군이 몰려 들어왔다. 대야군주 김품석의 옷을 창끝에 매달아 성문 앞에 걸어 놓았지만 분을 참지 못하고 쳐들어오는 무리다. “막아라!” 이제는 진궁이 백제군 부대를 지휘한다. 앞장선 진궁이 칼을 휘두르며 마당으로 달려 나갔고 뒤를 군사 수십명이 함성을 지르며 따른다. “나솔! 한솔이 이곳으로 오시고 있소!” 전령한테서 보고를 받은 화청이 소리쳤다. 화청은 온 몸에 피칠을 해서 모습이 끔찍했다. 그러나 상처는 없다. “전령이 오면서 보았는데 신라군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답니다!” 주장(主將)을 잃은 군사는 흩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화청이 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웃었다. “3천 군사로 대야성을 함락시킨 것 같소. 모두 나솔의 공이요!” “내 공이 아니야! 나는 앞장만 섰을 뿐이다!” “대야군주 김품석을 벤 공이 1등 공이요!” 그때 청으로 군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나솔! 대아찬이 살에 맞았소!” “무엇이!” 놀란 계백이 마당으로 뛰어 내렸을때 군사 셋이 진궁을 메고 들어왔다. 계백과 화청이 달려가자 군사들이 진궁을 마당에 내려 놓았다. 마당 구석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진궁의 모습이 드러났다.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상대방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궁의 가슴 깊숙하게 화살이 박혀져 있다. 본인이 화살을 부러뜨려 절반만 남아 있었어도 가슴 깊숙히 박혀져 있다. “대아찬!” 계백이 진궁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상반신을 부축했다. “대아찬! 살을 빼면 되겠습니다!” 소리쳤지만 전장을 많이 겪은 계백은 이것이 치명상인 것을 알았다. 진궁이 피가 뿌려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나솔, 힘껏 싸우고 죽소.” “대아찬!” “나솔, 나를 다르게 불러줄 수 없소?” “장인어른.” 순간 화청이 숨을 들이켜더니 곧 머리를 끄덕였다. 화청도 진궁과의 사연을 아는 것이다. 계백이 진궁의 입가로 흘러나온 피를 손끝으로 닦으며 다시 불렀다. “장인어른,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죄송하오.” “나솔, 내 딸을 부탁하네.” “염려하지 마시고 떠나시지요.” “사위, 자네를 믿네.” “아버님.” 계백이 진궁의 머리를 두팔로 감아안고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아버님, 극락으로 가시오.” “내가 안심하고 가네.” “고화를 아끼고 살겠습니다.” “고맙네.” 또렷하게 말한 진궁이 계백을 향해 웃어 보이고는 눈을 감았다. 그때 함성이 울리면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선봉군이 진입했다!” “들으셨소?” 계백이 소리치듯 진궁에게 묻더니 몸을 마당에 내려놓았다. “나솔! 어디 있는가?” 협반의 목소리가 울렸고 계백이 소리쳤다. “여기 있소!” “만세! 만세!” 함성이 울리면서 협반이 마당으로 뛰쳐 들어왔는데 온몸에서 활기가 넘치고 있다. “나솔! 신라군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어!” 협반이 소리치다가 땅바닥에 눕혀진 진궁을 보더니 주춤했다. “대아찬 아닌가?” “네, 내 장인어른이 가셨소.” 계백이 소리쳐 대답했다. 진궁이 들으라는 것 같다.
“네, 이놈!”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김품석이 먼저 외쳤다. 계백과의 거리는 겨우 세걸음, 칼을 내려치면 닿는 거리다. 계백이 가쁜숨을 고른다. 뒤쪽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났고 그 뒤쪽에서는 함성과 외침, 비명으로 가득찬 상황. 그러나 계백의 바로 뒤쪽 무장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잠깐동안 마루방, 복도 사이의 좁은 공간에 짧은 정적이 덮여졌다. 그저 숨 두번쯤 마시고 뱉을 만큼의 정적,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계백의 외침이 정적을 깨뜨렸다. “백제 나솔 계백이 김품석을 친다!” “오!” 김품석이 맞받아 소리치면서 칼을 내질렀지만 이미 기세가 꺾였고 살기가 떨어졌으며 검법 또한 미숙했다. 계백이 김품석의 칼을 겨드랑이 사이로 보내면서 치켜든 칼을 후려쳤다. 맹렬한 살기, 노도와 같은 기세, 빈틈없는 검술이다. “으악!” 비명은 뒤쪽 시녀들한테서 터졌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를 비스듬히 잘린 김품석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우왓!” 계백의 뒤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김품석을 백제 나솔 계백이 베었다!” 화청의 외침이 복도를, 청을, 내성으로 울렸다. 뒤쪽 군사들이 따라 외친다. “김품석을 베었다!” “대야군주 김품석을 백제 나솔 계백이 베었다!” 군사들이 너도 나도 다투어서 외친다. 내성으로 따라 들어왔던 신라군이 외침을 듣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의(戰意)가 꺾인 것이다. 장수들이 독전했지만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백제군의 외침은 더 커졌고 더 넓게 퍼졌다. 신라군은 머리를 잃은 용이 되었다. “무엇이? 김품석을?” 펄쩍 뛰듯이 놀란 한솔 협반이 벌떡 일어섰다. 이곳은 서문의 성루 위, 협반은 북문에서 서문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곳이 지휘하기도 용이했고 윤충의 본군이 진입하기에도 쉬웠기 때문이다. “이, 이런, 나솔이 대야성을 먹었다.” 협반이 반쯤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내가 그 뒷수습을 해야겠다.” 어깨를 부풀린 협반을 보고 장덕 하나가 물었다. “한솔, 어쩌시렵니까?” “어쩌기는, 내가 곧장 내성으로 가서 나솔과 합류하는 것이지.” “성문은 어쩌시구요?” “이놈아, 내가 수문장이냐?” 협반이 버럭 화를 냈지만 지금은 전시(戰時)다. 조금전까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끝낸 무장(武將)들이라 거칠어져 있다. “한솔, 우린 고작 2천3백이 남았소, 그 병력으로 1만이 넘는 신라군이 우글거리는 성안을 휘젓는단 말이요? 성문을 지켜서 방령이 오시기를 기다립시다.” “이놈아, 그래서 너는 장덕에서 솔(率)품계로 승진하지 못하는 것이야. 우리가 성안을 휘저으면 머리 잃은 용이 제대로 대항이나 할까?” “용 몸통이 꿈틀거리면 다 깔려죽소!”했지만 장덕의 목소리가 약해졌고 다른 장수들이 거들었다. “가십시다! 2천으로 성을 빼앗읍시다!” “신라군이 열린 서문, 북문으로 도망쳐 나갈 것이오!” 그때 협반에 대들었던 장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곽청, 네가 나솔이 될 기회다! 앞장서라!” 그러자 장수들이 ‘와’웃었고 분이 난 장덕이 눈을 부릅떴다. “좋소, 대공을 세워 한솔이 될 것이오!”
“이게 무슨 소리냐?” 김품석이 소리쳤다. 함성과 외침이 울린 것이다. 이어서 비명이 울렸다. “알아보고 오너라.” 이맛살을 찌푸린 김품석이 시녀에게 지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부인인 소연을 만나러 왔던 것이다. 저녁도 먹지 못했지만 식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소음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칼날 부딪치는 소리에다 여자들의 비명도 날카롭게 울렸다. “나리, 백제군 일까요?” 소연이 다가와 물었는데 눈을 크게 뜨고 입이 조금 벌어졌다. 겁에 질린 표정이다. 소연의 일생에서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것이다. “아니, 그럴리가…….” 했지만 김품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마룻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의 외침이 울렸다. “군주(軍主)!, 백제군이 내성에 침입했습니다.” 위사장 김채순이다. “나리.” 놀란 소연이 김품석의 소매를 잡았고 뛰는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침실 옆의 마룻방이다. “군주! 어서 피하십시오!” 그때 마룻바닥을 울리는 무수한 발자국 소리와 함성, 비명이 한꺼번에 울렸다. “이런!” 소연에게 잡힌 소매를 뿌리친 김품석이 허리에 찬 칼을 빼들고는 문을 열었다. “으앗!” 함성이 더 크게 방으로 쏟아졌고 문 앞에 서 있던 김채순이 몸을 돌리면서 김품석을 가로막는 시늉을 했다. 그때 김품석은 복도를 달려오는 무리를 보았다. 신라군이다. 앞장선 신라군은 피 웅덩이에 빠진 것 같았는데 손에 칼을 치켜들고 있다. 그 순간 사내와 김품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복도의 기둥에 매달아놓은 등빛에 얼굴이 선명하다. 김품석이다. 계백은 방문 안에 선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바로 알았다. 금박을 입힌 붉은색 겉옷, 흰 얼굴, 그리고 그 뒤에 숨듯이 선 여자, 김품석의 부인이며 김춘추의 딸 소연인가? “으앗!” 함성은 뒤를 따르는 진궁과 화청이 질렀다. 계백은 치켜든 칼을 고쳐쥐었다. 거리는 20보에서 어느덧 7, 8보로 줄어들었다. 이제 가로막는 신라군은 없다. 김품석 앞에 선 무장의 기세가 사납다. 위사장인 것 같다. 내성 안을 통과하면서 따라 들어온 위사, 신라군 대여섯명을 베어 죽였다. “이놈!” 그때 김품석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무장이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더니 달려왔다. 맹렬한 기세, 건장한 체격의 무장은 칼을 치켜들고 단숨에 덮쳐왔다. “이얏!” 그 순간에 계백과 부딪친 무장의 칼이 엄청난 기세로 내려쳐졌다. 계백은 무장에게 달려가면서 무장과는 반대로 치켜든 칼을 내렸다. 그래서 둘이 부딪쳤을 때는 칼이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진 자세, 수비 자세다. 상대가 내려칠 것을 예상하고 기다린 자세, 그 순간 무장의 칼이 벼락처럼 계백의 머리끝을 쳤다. 기다리고 있던 계백이 어깨를 틀면서 걸치고 있던 칼로 무장의 가슴을 찔렀다. “욱!” 가슴을 관통당한 무장과 몸이 부딪치면서 얼굴이 바로 옆에 놓여졌다. 무장은 숨을 들이켰다가 몸이 젖혀지더니 입으로 솟아오른 피를 계백의 얼굴에 뱉었다. 계백이 어깨로 무장을 밀어 젖히고는 칼을 뽑았다. 자, 다음은?
넋두리는 ‘불만이나 불평을 하소연하는 말’을 뜻한다. 원래는 죽은 이의 넋이 저승에 잘 가기를 비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죽은 이의 넋을 대신해 하는 말을 넋두리라고 한다. 굿을 할 때 무당은 죽은 이의 넋을 불러낸다. 죽은 사람은 이러저러한 하소연과 불평을 무당의 입을 통해 쏟아낸다. 넋두리를 하는 것이다. 넋타령, 넋풀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넋두리는 ‘무당이 토해내는 하소연이나 불평’이라는 특수한 의미였다. 점차 뜻이 확대돼 ‘불만을 길게 늘어놓으며 하소연하는 말’이라는 일반적 의미를 갖게 됐다. 넋두리는 못다 산 억울함을 풀어 주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죽음은 삶의 미완성이다. 채 살지 못한 죽음은 곧 채 죽지 못한 삶이다. 그러기에 완전히 죽지 못한 넋은 저승에도 못 가고 중음계를 방황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넋을 불러들여 넋두리를 하게 하고 원한을 풀게 함으로써 못다 산 삶을 채우게 하며 죽음을 완성케 한다. 완전히 죽은 영만이 비로소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수지역 출판사 ‘내일을 여는 책’(대표 김완중)이 사회 이슈를 쉽고 재밌는 동화로 풀어내는 ‘내일을 여는 어린이 시리즈’의 일환으로 일곱 번째 신간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를 출간했다. 장수 출신의 동화작가 박상재 씨가 글을 쓰고 고담 씨가 그림을 그렸다.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는 구제역과 살처분을 주제로 한다. 황금 돼지해에 태어난 상우가 그의 친구가 된 아기 돼지 상돈이를 살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산 속으로 도망치고, 지켜내는 과정을 담았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구제역이란 무엇이고 왜 생기는지, 동물을 강제로 죽여 매장하는 살처분이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인지, 한 생명을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도록 했다. “아저씨, 안 돼요. 저 쪽에 따로 있는 돼지는 절대 실어 가시면 안 돼요. 저 돼지는 제 동생이에요.”(<돼지는 잘못이 없어요> 중) 어른이 보는 세상과 동심의 세상은 다를 것이다. 아토피가 심해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사는 상우는 유독 작고 여리게 태어난 새끼 돼지 상돈이를 친구로 여기고 지켜주기로 맘먹는다. ‘동물과 우정을 나누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일뿐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상우는 ‘술지게미를 먹고 술에 취한 상돈이에게 해장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하는 등 돼지와 교감한다. “우리 돼지들이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 것쯤은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왜 병들지도 않은 우리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거야?”(본문 중) 박상재 작가는 “구제역은 돼지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키우는 열악한 축산 환경과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 다녀온 후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옮기는 것”이라며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친구(상돈)를 통해 인간의 안전을 위해 다른 종의 생명을 빼앗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묻는다”고 말했다. 구제역이 물러날 때까지 산막에서 상돈이를 지켜낸 상우. 안수연 문학평론가는 “생명과 다른 존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잘못된 현실의 원인을 찾게 하는 동화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는 아이들을 위한 좋은 삶의 나침반”이라고 말했다.
전주의 갤러리 숨(대표 정소영)이 올해 6년째 진행 중인 기획전 PLATFORM(플랫폼)을 시작한다. PLATFORM은 30대~50대 전북 출신 미술가 7명을 초대해 잇따라 개인전을 펼치는 형식이다. 1년 전 섭외해 신작 위주로 선보인다. 올해는 국형원, 김가슬, 김시오, 노성기, 박종찬, 정하영, 차유림 작가가 참여한다. 첫 번째 주자는 4월 9일부터 21일까지 전시를 여는 김시오 작가다. 그는 지난해 처음 상실에 대한 경험을 했는데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나에겐 처음이기에 특별했다며 전시작들은 대상을 잃고 내가 어떻게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4월 1일까지 진행되는 그의 개인전 멀리 있는 그대에게와 이어진다. 맥락은 같이하지만 새로운 작품이 걸린다. 김 작가는 두 개의 전시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열고, 닫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군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종찬은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 마을도시 기록, 전시 기획과 비평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미술활동가다.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여는 개인전은 가족사와 작품 활동의 근간인 학교, 군산을 돌아보는 기록물 전시 형식이다. 대학시절부터 예술에 몸을 내던졌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전과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한 정하영 작가(5월 7일~19일). 그는 미술가로서, 여성으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자신의 삶을 고민한 지점들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전북 출신으로 홍익대 및 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한 김가슬은 완전한 나만의 장소를 정원에 빗대 표현한다. 전시는 5월 21일~6월 2일까지다. 노성기 작가는 6월 4일부터 16일까지 입체와 평면, 사실과 추상이 공존하는 새로운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선보인다. 고목에 고부조(高浮彫)로 조각해 자개, 한지, 옻, 천연석 등 자연재료를 붙이고 채색하는 기법이 특징이다. 차유림 작가(6월 18일~30일)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꽃다운 시절을 오늘날 여성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본다. 7월 4일부터 14일까지 전시를 여는 국형원 작가는 의뢰를 받은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 하면서 내 작업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며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을 일러스트로 작업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소영 갤러리 숨 대표는 전시는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약 4개월이라는 대장정이 끝날 때까지 많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계백, 진궁, 화청이 앞장을 섰고 해준이 뒤를 맡았다. 깊은 밤, 이제 성 안은 전장이 되어서 군사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닐뿐 주민 통행은 그쳐졌다. 240여 명이 된 백제군이 내성을 향해 다가간다. 모두 신라군 복장이어서 지나는 신라군도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다. “내성의 성문은 항상 열어 놓았는데 오늘은 어떤지 모르겠소.” 앞장선 진궁이 계백에게 말했다. “내성안 수비군은 정문 안쪽의 위사대 2백명이 전부요. 군주는 청 뒤쪽의 별궁에서 기거하고 있소.” 그때 앞에서 일대의 보군이 뛰어왔다. 앞장선 무장들도 뛴다.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횃불이 켜져 있어서 군사들의 얼굴은 드러났다. “어디 가는 군사요!” 다가온 군사들에게 소리쳐 물은 사내가 진궁이다. 그때 앞장서 달려오던 무장이 가쁜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서문으로 갑니다! 서문으로 백제군이 왔답니다!” “저런!” 진궁이 놀란듯 소리치자 지나던 무장 하나가 진궁을 알아보았다. “대아찬은 어디 가시오?” “군주께 명을 받으러 가오!” 그러나 달려가는 바람에 대답은 듣지 못했다. 길 모퉁이를 돌자 내성 대문이 보였다. 내성 앞에는 군사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었는데 무장들이 소리쳐 구분을 시키고 있다. 출전 준비중이다. 기마군사가 오갔고 전령이 달려오고 들어간다. 대문 앞마당에 모인 군사가 2백 여인이나 되었기 때문에 계백은 긴장했다. “내성으로 곧장 진입합시다.” 계백이 다가가며 말했다. 문이 열려있는 것이다. 성안이 어수선해서 지금까지 2리(1km) 가까운 거리를 오면서 검문을 받지 않은것만 해도 천행이다. 성 안은 군사들로 가득차 있다. 1만 5천 가까운 군사들이다. 이제 내성의 대문과 1백보 거리가 되었다. 그때 옆쪽에서 순찰대가 나타났다. “어디 가시오?” 순찰대장은 12품 대사 벼슬이지만 눈빛이 날카롭고 긴장했다. 뒤를 따르는 순찰대는 10여명, 내성 주둔군 소속이어서 병력 이동에 환하다. 진궁이 순찰대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뒤를 따르는 군사들은 멈추지 않는다. “삼현성에서 온 지원군을 데려오라는 군주의 명을 받고 가는 길이네.” “상현성주 아니시오?” 순찰대장이 진궁을 알아보더니 옆에 선 계백과 화청까지 둘러보았다. “가 보시지요.” “수고하게.” 순찰대장 앞을 지난 백제군이 서둘러 내성의 대문으로 다가갔다. 이제 대문의 정문이 20여보 남았다. 정문 좌우에 선 위병이 다가오는 군사들을 보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는 것도 보인다. 그때 계백이 뒤쪽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지금 어디로 가시오?” “곧장 갑시다.” 계백의 걸음이 빨라졌고 뒤쪽 순찰대장이 다시 불렀다. “내성으로 군사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단 말이오?” “뛰어라!” 계백이 소리치자 진궁, 화청이 달렸고 대문 앞에 선 위사들이 창을 고쳐 쥐었다. 그러나 이미 서너걸음 앞으로 다가온 계백과 진궁이다. “으악!” 위병 하나의 비명이 밤하늘을 울렸다. 화청이 들고 있던 창을 던져 몸통을 꿴 것이다. 그때 진궁이 다른 위병의 몸을 쳤다.
속보= 논란을 빚은 전북문인협회의 고은 조명 강연이 결국 취소됐다. (28일자 10면 보도) 전북문인협회는 2018 전북문학관 문예 아카데미 특강의 일환으로 29일 열 계획이던 고은 시인에 대한 문학 강연을 취소한다고 28일 밝혔다. 애초 내용을 일부 수정하더라도 강연은 진행하겠다는 게 전북문협의 입장이었지만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고은 시인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였지만 외부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결국 취소하기로 했다. 현재는 어떤 내용과 취지든 말이 날 위험이 있는 분위기라며 도민, 문학인을 위해 예산을 들여 무료로 펼치는 강연인 만큼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9일 전북문학관에서는 이복웅 시인이 시인 고은에 대한 잡론- 삶과 문학 그리고 현실 강연 대신 특강 채만식 문학 역정에 대한 재조명을 연다. 김인술 작가의 생명의 밥상 이야기 강연도 진행된다.
“성문을 닫아라!” 계백이 소리쳤다. “서둘러라!” 서문 앞까지 밀어닥친 백제군에 밀린 신라군이 열려진 성문 밖으로 나간 것이다. 백제군을 앞뒤에서 협공한다는 말이 신라군에게 먹히기도 했다. 성문에 달라붙은 백제군이 성문을 닫았다. 요란한 소음이 울리면서 통나무 빗장까지 채워지자 그때서야 성문을 탈취한 실감이 났다. “빼앗았다!” 장덕 안준이 칼을 치켜들고 소리치자 백제군이 함성을 질렀다. “우왓!” 전장이 된 서문 안은 사상자가 즐비했고 아직도 이쪽저쪽에서는 칼 부딪치는 소리와 신음이 울렸다. 백제군 사상자도 수백명이 된다. “안쪽을 지켜라!” 안준이 소리치며 지휘했다. 그때 계백이 화살 끝에 기름을 먹인 헝겊을 매달고는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북문 쪽 하늘을 향해 시위를 한껏 당겼다가 놓았다. 협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는 계백이 소리쳤다. “자, 가자!” 내성으로 잠입하려는 것이다. “북문은 백제군한테 빼앗겼습니다!” 부장 김용하가 소리쳐 보고했는데 머리칼과 옷자락이 불에 타 그을렸다. “백제군이 열린 성문으로 진입해와서 이미 진을 치고 있소!” “이, 이런.” 당황한 김품석이 벌떡 일어섰다. 내성의 청에서도 북문 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어둠에 덮인 청 안팎은 어수선했다. 북문으로 달려간 무장들이 뛰어 들어왔고 일부는 뛰어 나간다. 이미 군사 배치는 끝냈지만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때 김품석이 소리쳤다. “북문을 빼앗아라! 보군 5천을 그쪽으로 보내고 대아찬 그대가 지휘하라!” “예, 군주. 일길찬 한천과 사찬 박기문이 거느리고 있는 2개 부대가 그쪽에서 가깝습니다!” “그대가 이끌고 가라!” 명을 받은 김용하가 한천과 박기문을 데리고 황급히 청을 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성문을 빼앗겼단 말인가?” 분한 표정이 된 김품석이 어깨를 부풀리면서 소리쳤다. “성문 수비군은 자빠져 자고 있었단 말이냐!” 둘러선 무장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북문의 불길을 뚫고 온 수비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제군이 안에서 친 것을 모른다. “군주, 백제 후속군이 있는지 정찰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장 하나가 묻자 김품석이 머리를 저으며 화를 내었다. “밤이 깊어가는데 성 밖으로 정찰대를 보내란 말이냐? 정찰대를 보내려면 성문을 열어야 하는데 성 밖에서 백제군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김품석의 전장 경험이 없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둘러선 무장들은 대부분 전장을 겪은 터라 이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김품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 내실에 들어가 있을테니까 전령이 오면 연락을 해라.” 무장들이 허리를 굽혀 김품석을 배웅했다. 김품석이 청을 나가자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무장들이 둘씩 셋씩 모여서 두런거렸는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전북문인협회가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고은 시인을 재조명하는 강연을 마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군산에서 열린 고은 시낭송회가 전국적인 비난을 받고 도시마다 고은 조형물도서관 등 시인의 흔적 지우기에 진땀인 상황에서 고은 시인을 문학의 장으로 소환한 것은 미투로 추락한 고은 시인을 띄워주기 위한 문단 내 움직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북문학관에서는 29일 오후 3시 시인 고은에 대한 잡론- 삶과 문학 그리고 현실을 주제로 한 강연이 열린다. 문학관을 수탁 운영하는 전북문인협회가 2018 전북문학관 문예 아카데미 특강의 일환으로 이복웅 시인에게 고은 시인의 삶과 작품,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강연을 부탁한 것. 이에 대해 일부 문인과 도민 사이에서 비난이 일고 있다. 연이어 폭로된 그의 성추행을 작품으로 대신 용서 받을 수 없고, 더욱이 고은 시인의 사과와 반성도 없는 상태에서 그에 대한 문학 활동이 이어지는 것은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강연자로 나선 이복웅 시인은 고은의 행동을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변명에 나도 화가 나고 잘못은 강연에서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순수 문학성까지 미투에 휘말려 매도돼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어김없이 문학인의 도덕성과 작품성을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역 여론은 대체로 냉담하다. 지역 문인 A씨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역시 행정과 도덕성을 분리해서 봐야 하나. 그렇다면 왜 직위를 내려 놓겠나. 더욱이 자아가 투영되는 문학을 작가와 작품을 분리한다면 진정한 문학으로 볼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전북문인협회가 미투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인 B씨는 문학인을 대표하는 문협이라면 문학계의 성폭력, 작품성과 도덕성 분리 논란 등을 지적하고 공론화해 자정운동을 해도 부족할 판에, 현 시국에서 고은에 대한 특강이라니,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 결정이다며 고은 시인의 현 상황에 대해 말한다 해도 그걸 직접 본인이 밝혀야지 왜 누군가가 대신 해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문단 대선배를 보고 글쓰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처신도 잘 하자,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준비한 것이라며 (논란이 불거진만큼)강연자와 상의해 강연 내용을 일부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서문 수문장 나마 여준은 앞쪽에서 외침과 신음 소리가 울렸을 때 그것이 백제군의 기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리는 1백50보 정도. 어둠 속인데다 앞쪽이 장애물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싸움이 일어났소!” 당황한 장교 하나가 소리쳤을 때 여준이 소리쳐 꾸짖었다. “동요하지 말라!” 여준은 서문 수문장으로 수문경비병 50여명을 지휘하고 있다. 전고(戰鼓)는 그쳤지만 이제 서문 앞쪽에는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군사 7,8백여명이 진을 쳤고 아직도 더 몰려오는 중이다. 그때 함성이 일어났다. 공격진의 함성이다. “수문장! 아군이 밀리고 있소!” 다시 다른 목소리도 울렸다. 이제 소란은 7,80보 정도로 가까워졌다. 밀리고 있다. 백제군이 이미 북문을 탈취했다는 것은 여준도 알고 있었다. 전령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그때 여준이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영문을 모르는 군사들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밖은 비었다. 밖에서 신라군을 넣어 적을 안팎에서 협공하려는 것이다!” 그때서야 군사들이 움직였고 여준이 다시 소리쳤다. “서둘러라! 곧 남문에서 군사들이 온다!” 거짓말이지만 누가 확인을 하겠는가? 성문을 열고 닫는 것은 수문장 권한이다. 성주 외에는 수문장에게 명령할 사람은 없다. 그때 함성이 더 가까워졌고 육중한 소음을 내면서 성문이 열렸다. 쏟아지는 것처럼 내려가던 백군의 전진 속도가 차츰 느려졌고 싸움은 그만큼 더 격렬해졌다. 그러나 밀고 내려가기는 한다. 성문과 50여보 거리가 되었을 때는 계백과 진궁, 그리고 안진까지 한발짝씩 떼면서 밀고 나가는 상황이다. “쳐라!” 계백이 소리쳤다. “다왔다!” 백제군이 함성으로 응답했다. “와아앗!” 아직 수적으로 우세인데다 이쪽은 격렬한 전의(戰意)를 품고 있는 공격군이다. 신라군은 수세인데다 소극적이어서 기(氣)에서도 밀린다. 그러나 차츰 결사적이 되어서 전투는 치열해졌다. “백제군이여! 이겼다!” 계백이 다시 소리쳤고 뒤를 따르는 백제군이 함성으로 응답했다. 그때다. 앞쪽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요란한 소음이 울린 것이다. “성문이 열린다.” 계백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밀고 나가라!” 그때 성루에 선 여준이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성문 밖으로 물러서라!” 군사들이 주춤거렸을 때 여준이 다시 외쳤다. “놈들을 밖으로 유인해내는 거다! 밖에서 신라군이 매복하고 있다!” 그말을 들은 성문 수비군이 일제히 몸을 돌려 성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우왓!” 앞장서서 밀던 계백과 진궁, 안진은 갑자기 앞쪽이 느슨해진 것을 깨닫는다. 막아섰던 신라군이 주춤대면서 물러서는 바람에 한번에 서너걸음을 전진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칼을 휘두르며 안진이 소리쳤을 때 신라군이 등을 보이며 어둠 속에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와앗!” 뒤를 백제군이 달려가며 함성을 지른다. “여준이 성문을 열었소!” 가쁜 숨을 뱉으면서 진궁이 계백에게 말했다. “신라군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있소!” 그때 성루 위에 서 있던 여준이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서 소리쳤다. “나솔 계시오? 문을 어서 닫으시오!”
계백이 선봉 우군(右軍)이 다가왔을 때 협반에게 말했다. “한솔, 서문을 점령하면 서문 방어는 우군대장에게 맡기고 저는 제 수하 군사를 이끌고 내성으로 잠입하겠소.” “내성으로?” 놀란 협반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품석이 있는 곳으로 말인가?” “그렇소.” 계백이 한걸음 다가섰다. “제 수하 군사가 모두 신라군 차림이니 성안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잠입해 보겠소.” “으음.” 결단이 빠른 협반도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깐 망설이는 것이다. 무모한 작전이다. 그러나 3백 기마군으로 대야성까지 잠입했지 않은가? 처음부터 대야성 공략은 무모했다. 마침내 협반의 눈동자가 고정되었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나솔, 해 보겠는가?” “전장에서 군사를 끊임없이 운용해야 됩니다.” “과연.” 협반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나솔, 조심하게. 내가 잊지 않겠네.” “서문을 빼앗으면 불화살로 신호를 드리지요. 동시에 저는 내성으로 갑니다.” 계백과 진궁이 몸을 돌렸다. 선봉 우군(右軍) 대장은 장덕 안준이다. 20대 후반으로 눈빛이 무거웠고 키는 작았지만 팔이 길다. 첫눈에도 노련한 무장이다. 1천 기마군이 이제는 보군이 되어서 동산을 넘어가고 있다. 동산은 이미 백제군 좌군이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나아간다. 신라군은 동산 아래쪽에 집결하고 있다. 백제군이 동산을 점령한 것을 아는 것이다. “장덕.” 계백이 부르자 뒤를 따르던 안준이 바로 옆에 붙었다. 이제 1천3백 가까운 백제군이 동산을 내려가고 있다. 2백보쯤 앞이 신라군 진용이지만 어수선하다. 이쪽저쪽에서 몰려온 부대로 아직 대오가 정비되지 않았다. 다가선 안준이 계백에게 물었다. “부르셨소?” “그대는 나하고 앞장을 서서 서문으로 돌진하세.” “당연한 말씀을 왜 하시오?” “내 수하 군사는 후위에 붙었다가 서문을 탈취하면 곧장 내성으로 갈 거네.” 그때 뒤에서 따르던 장덕 화청이 거들었다. “나솔, 부상자를 두고 와서 250여명이 남았소.” 계백은 숨만 들이켰다. 이제 내성으로 돌진하면 그 이상이, 또는 전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안준이 잇사이로 대답했다. 화청이 뒤로 물러갔고 곧 동산을 내려간 백제군 앞으로 신라군 대열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창날, 쇠갑옷이 드러났다. 그때 계백과 안준이 쥐고 있던 칼을 치켜들더니 함성도 지르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거리는 30여보 정도, 웅성거리던 신라군은 처음에는 어둠 속에서 덮쳐오는 백제군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쪽저쪽에서 외침이 터졌다. “적이다!” “백제군이다!” 그때는 이미 선두에 선 계백과 안준의 첫 칼이 내려쳐진 후다. “으아악!” 비명이 살기를 솟구치게 한다. 더구나 백제군은 함성도 지르지 않고 덮쳐가는 터라 칼끝에 살기(殺氣)가 더 배었다. 마치 검은 파도처럼 백제군이 쏟아져 내려가면서 살육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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