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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시인협회는 23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가야시 낭독회를 가졌다. 이번 낭독회는 전북에서 발굴되고 있는 가야 고분 등 유물유적에 관한 전북 시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비롯됐다. 시인들은 남원시 아영면 일대의 고분군과 산청군의 구형왕릉 등 가야 유적지를 탐방한 이후 가야를 소재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전북에서 만나는 가야 이야기를 관람한 뒤 이 결과물을 낭독하게 된 것이다. 전북시인협회 조미애 회장은 가야는 1500년 동안 잊혀진 왕국이었으나 가야 문화 5선이라 불리는 거문고, 불교, 차, 철기, 토기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남아 있다며 이번 낭독회를 통해 문학의 눈으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가야시는 전북시인협회가 매년 발간하는 <시의 땅> 제20호에서 만날 수 있다.
출항 엿새째, 그동안 바다는 잔잔해서 남서풍을 탄 5척의 함대는 순항했다. 쾌선은 노를 젓지도 않았고 대선(大船)의 앞뒤로 오가면서 심부름을 했다. 함대는 백제령에 들어가 해안을 우측에 두고 북상하는 중이다. 이틀 후면 대양(大洋)으로 나간다. 대륙과 반도 사이의 태양은 폭풍이 잦아서 겨울철에는 위험하다. 다행히 지금은 8월, 함대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북상하고 있다. 대양을 건너려면 순풍을 만나도 보름은 걸린다. 바람이 없거나 역풍을 만나면 한달이 걸릴 때도 있다. “잡찬, 선장한테 속력을 더 내라고 이르게.” 오후 미시(2시)무렵, 선미에 선 김춘추가 부사 김문생에게 일렀다. 김문생은 28세, 진골 왕족인 덕분으로 3품 잡찬 직위에 종을 1백명이나 소유한 부호였는데 상대등 비담의 일족이다. 김문생이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렸을 때 뒤쪽에 서 있던 시위군관 유해성이 말했다. “나리, 경호장 김배선이 데리고 온 군관 6명중 4명이 전에 데리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심복들이지요.” “놔둬라.” 쓴웃음을 지은 김춘추가 힐끗 앞쪽을 보았다. 그렇다면 군사 태반이 비담의 무리인 셈이다. 김배선은 비담이 신임하는 장수였기 때문이다. 입맛을 다신 유해성이 말을 이었다. “부사(副使)이하 경호장, 군관들까지 모두 상대등 나리의 일파인 것을 여왕께서 아시는지나 모르겠소.” “아시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상대등을 사신으로 보내실 것이지. 도대체….” 그때 왼쪽 난간에 서 있던 김춘추의 아들 김인문이 손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배가 옵니다.” “무엇이?” 놀란 김춘추가 그쪽을 보았다. 맑은 날씨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가 맞닿은 대양(大洋)의 수평선을 김인문이 가리키고 있다. “어디 말이냐?” “저쪽입니다. 두척인데요.” “어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유해성도 눈썹 위에 손바닥을 붙이고 보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소인도 안 보이는데요.” 젊은 놈이 시력이 좋은 거냐?” 김춘추가 아직 17살인 김인문을 놀리듯이 말했다. 김인문도 이번에 사신단에 끼어있는 것이다. 견문을 넓혀 주겠다고 참가시켰는데 비담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때 앞쪽에서 선장의 외침이 울렸다. “배다! 전함이다!” 놀란 김춘추가 그쪽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어디 전함이냐?” 김춘추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다. 그때 선장이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백제 전함이요! 이쪽으로 옵니다!” 선장의 손끝을 본 김춘추가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보인다. 김인문이 잘 보았다. 2척, 돛대가 2대인 것도 보인다. “원진을 만들어라!” 김춘추가 탄 대선의 선장이 선단의 대장 노릇을 한다. 선장이 소리치자 기수가 깃발을 흔들었고 곧 북소리가 바다 위로 퍼져갔다. 그때는 5척의 배가 모두 다가오는 백제선을 본 터라 금방 대열 정돈이 시작되었다. “궁수는 우측 측면으로!” 선장이 다시 소리쳤다. 해전(海戰)의 시작은 궁수가 한다. 불화살과 화살로 일제 사격을 한 후에 배를 붙여 백병전이다. 상대가 대선 2척뿐이라는 것에 신라군은 사기가 올랐다. 이쪽은 정예로 5척이다.
시인이자 수필자인 황정현 씨가 수필집 <시간의 바람꽃>을 펴냈다. 그의 수필집은 총 8부로 나눠 사유의 가름을 마련했다. 전반적으로 체험수필과 사물수필이 골고루 섞여 있지만, 사물수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설명보다 묘사 기술에 공을 들였다. L시인에게, 치매 환자를 위한 변명, 가을 나들이 등 감정과 사유를 풀어 시로 감동의 여백을 채운 작품도 눈에 띈다. 1부의 첫 작품 한 방울 물의 서정이 인생의 자각을 열게 된 사연에서 기초한다. 이는 비 오는 날 산정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율동과 상선약수의 작용이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로 빚어진 결과라고 비유한 글이다. 삶의 정체성과 종교에 대한 믿음도 수필 주제로 삼았다. 이외 그가 불가사의의 대상으로 삼는 물, 바람, 시간에 관해 수필로, 시로 사유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황정현 씨는 계간 『시선』으로 시, 계간 『에세이문학』으로 수필 등단했다. 전북문예 회장, 에세이문학 이사를 맡고 있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입나/ 술 사먹지 애주가들의 술 사랑을 고백한 시 술타령. 이를 쓴 시인 소야 신천희 씨가 시집 <꾼>과 산문집 <나는 날마다 허물을 벗는다>를 내놨다. 그의 시집과 산문집은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뒤통수를 때린다. 그리곤 악의 없이 빙긋 웃는다. 그는 자신을 미친놈으로, 탕자로 표현한다. 겉치레 없는 솔직함과 당당함이 시집 전반에 깔려있다. 비 맞은 중이 중얼거리듯 얼빠진 놈이 따순 밥 먹고 쉰 소리 지껄이듯 도통 무슨 소릴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詩다/ (중략) 그런 훌륭한 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시시하게 이러쿵저러쿵하는 나는 미친놈이다 ( 나는 미친놈이다 일부) 애주가답게 낮술, 범생이 술꾼 등 술에 관한 시(詩)도 한쪽 차지하고 있다. 사랑하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던가.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이 연지 곤지 찍은 얼굴보다 아름답고, 저승에도 술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당장 달려가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프로 술꾼의 면모를 엿본다. 술꾼은/ 갈지자 하나는/ 똑 소리 나게 배운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봐/ 집에 갈 때까지/ 계속/ 복습하며 간다 ( 범생이 술꾼 전문) 시집이 시큼털털하고 씩씩한 사내의 모습 같다면, 산문집은 아기자기한 소녀를 연상케 한다. 크고 비싼 것보다는 예쁘고 깜찍한 것에 관심을 두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도에 입문한 스님으로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면모도 드러난다. 한편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소야 신천희 씨의 출판기념회는 다음 달 1일 오후 5시 전주 아름다운 컨벤션웨딩에서 열린다.
과로사회의 최전방에서 장시간 운행을 통해서만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운전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본문 중) 전주에서 5년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 허혁 씨가 글 모음집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수오서재)를 냈다. 그가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상과 사람,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버스라는 세상을 책임지는 한 운전사가 전하는 작지만 단단한 삶 이야기다.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모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착한 기사였다가 한순간에 가장 비열한 기사가 되는 자신을 마주한 허혁 씨는 그 시간을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왜 버스는 늦게 올까. 왜 기사는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해주고, 왜 선글라스까지 쓰고 인상을 팍팍 쓰고 있던 걸까. 왜 버스는 정류장 앞에 딱 맞춰 서지 않고 급히 좌회전을 해서 몸을 쏠리게 만드는지, 왜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왜 모두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지. 이처럼 탑승자들이 가졌던 불만에 대해 버스기사인 저자가 직접 속사정을 전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만든다. 동시에 버스 안에서 느낀 세상의 이치도 전한다. 승객이 신호를 주면 좋은데 우두커니 서 있다. 대형차 기사에게 목숨과도 같은 탄력을 서서히 잃어간다 가뭄에 콩 나듯 정류장 뒤로 몸을 숨겨주는 할머니도 있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본다.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했을 것이다.(본문 중)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팔짱 끼고 자신을 부리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생각이나 눈으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몸으로 그 기대를 실현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본문 중) 도로 위에 한 생이 펼쳐져 있다고 말하는 저자. 승객마다 한 생을 짊어지고 오르는 버스는 이야기 공장이자, 인문학의 현장이다. 전주 출생인 허혁 씨는 버스기사를 하기 전 20년간 작은 가구점을 운영했다. 글을 쓰는 직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머리맡에 늘 책을 두고 지냈다. 늘 책에 파묻혀 살다보니 자기가 직접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고 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홍세화 작가는 허혁은 사소한 불친절과 냉대 속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사는 삶 속에서, 하루 열여덟 시간 운전대를 잡는 일상의 행군 속에서 그는 역지사지와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며 책이 널리 읽혀 버스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시(밤 12시) 무렵, 내궁(內宮)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져 있다. 방안 분위기가 무거웠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어둡다. 상석에 앉은 의자왕도 그렇고 성충과 흥수, 계백, 그리고 말석에 시립한 위사장 협보의 얼굴도 납덩이같다. 방금 의자는 계백으로부터 태왕비 시녀 서진의 이야기에다 선덕여왕이 준 편지까지 읽은 것이다. 붉은 색 기둥에 달린 황초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이곳은 대왕의 침전 옆 대기실, 사방의 문은 굳게 닫혀졌지만 어디선가 바람이 새어드는 것 같다. 이윽고 의자가 입을 열었다. “그랬었구나.” 탄식하는 것 같다. 의자가 흐려진 눈으로 성충과 계백까지를 차례로 보았다. “그래서 대왕께서 어머니 기를 세워주시려고 애쓰셨구나.” 대왕이란 의자왕의 부친인 무왕(武王)을 말한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신라를 복속시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이유가 이것이었다.” “대왕.” 마침내 성충이 입을 열었다. 눈빛이 강했고 어깨가 부풀려져 있다. “대왕, 연기신이 여왕의 말을 듣고 왔다지만 믿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라 내부의 사정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담, 김춘추의 세력을 견딜 수가 없을 것이오.” 그때 의자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상좌평, 그대는 신라여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구나. 당왕(唐王)처럼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대왕.” 당황한 성충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렇다. 의자가 부른 당왕(唐王)이란 당황제 태종을 말한다. 태종 이세민을 의자는 당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까지 신라가 태왕비와 왕비를 부추겨 백제의 내분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백제가 신라 왕가(王家)를 뒤흔들 차례다.” “대왕, 신라인은 교활합니다.” 흥수가 나섰다. “김춘추는 단신으로 고구려까지 다녀온 지용을 겸비한 후계자입니다. 아예 상종을 안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태왕비와 왕비는 보내는 것이 어떨까?” 의자가 자르듯 말하자 방안에 다시 정적이 덮여졌다. 이 경우도 예상하고 온 것이다. 덮어놓고 보고만을 할 고관들이 아니다. 그때 흥수가 입을 열었다. “대왕, 태왕비께서는 선왕이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의자의 시선을 받은 흥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시다가 이번에 연기신 등 첩자 무리가 색출되자 그때서야 신라여왕의 친필 서한을 내보이시며 선왕께서도 알고 계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흥수의 말을 성충이 받았다. “대왕, 지금 태왕비 마마를 돌려보내지 마시고 신라에 세력을 굳힐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낫습니다.” “…….” “그리고 신라여왕이 어떤 복안으로 태왕비마마를 후계자로 만드실 지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과연, 그대들 말이 옳다.”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 어머니가 신라왕이 된다면 좋은 일이지. 선왕께서 이루지 못하신 꿈이었으니까.” 머리를 돌린 의자가 계백을 보았다. “달솔, 네가 잡아두고 있는 그 시녀년을 놓치지 마라. 난 여기서 둘을 놓치지 않을 테니.”
화폭 가운데 우뚝 솟은 여름 산. 군자요산(君子樂山)이라 했던가. 만물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산 밑의 마을 풍경이 정겹다. 대상의 재현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터치를 통해 유장한 시간을 담고 있다. △조기풍 화백은 1936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스위스와 독일에서 원색분해 기술을 연수하고,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에서 강사를 했고, 광주대학교 문리과대학장과 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작품 안내 =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이럴 수가 있나?” 계백이 말이 끝났을 때 성충이 반쯤 입을 벌리고는 옆에 앉은 흥수를 보았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이곳은 도성 중부에 위치한 영빈관 안이다. 오늘도 한산성에서 말을 달려온 계백이 성충과 흥수를 만나고 있다. 계백이 급한 보고를 할 것이 있다고 했더니 성충이 흥수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때 흥수가 탄식했다. “허어, 괴이하구나.” 성충과 흥수는 외부 12부, 내부 12부로 나뉘어 있는 백제 24개부(部)의 각각 수장(首長)이다. 성충은 외부(外部)의 수석인 병관부의 좌평이며 5좌평의 수장인 상좌평이니 관리 중 최고위직이다. 흥수는 내부(內部) 12부의 수석인 전내부(前內部)의 장으로 왕명 출납과 인사를 맡는다. 계백은 둘을 함께 만나는 중이다. 계백이 품에서 서전한테서 받은 편지를 꺼내 성충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6년 전, 신라여왕이 태왕비께 보낸 친필 서한이랍니다. 보시지요.” 그러자 성충이 편지를 받더니 빨려드는 것처럼 읽는다. 그리고는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은 얼굴로 편지를 흥수에게 넘겨주었다. 흥수까지 편지를 읽는 동안 방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윽고 흥수가 머리를 들었을 때 계백이 먼저 말했다. “그 편지를 선왕(先王)께서는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왕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는군요.” “요사하군.” 성충이 겨우 그렇게 말을 뱉었을 때 흥수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면 태왕비께선 신라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이신가?” “그렇습니다. 좌평나리.” “신라에 가면 여왕의 후계자가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지난번에 연기신이 신라에 갔을 때 여왕한테서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죽은 놈은 말을 할 수가 없지.” 그때 성충이 어깨를 펴고 말했다. “궁중에 요괴가 활보하고 있었구나. 큰일이다.” “덕솔, 지금 그년을 잡아놓고 있나?” 다시 흥수가 묻자 계백이 대답했다. “예, 좌평나리.” “베어 죽입시다.” 불쑥 성충이 말하더니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태왕비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서 궁 안에서 죽든 살든 할 것 아니오? 우선 날개부터 잘라냅시다.” 흥수는 숨만 쉬었고 성충의 말이 이어졌다. “얼마 전부터 궁안에 여우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소. 또 언젠가는 대백제는 안에서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소. 이것이 다 이 여우들 때문이오.” “이보시오. 상좌평.” 흥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사건의 근원을 알게 되었으니 현명하게 대처 하십시다. 그런데 이 내막을 대왕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때 성충이 숨을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태왕비께서 신라여왕의 후계자가 되어서 신라왕이 된다고 합시다. 그리고서 신라가 백제에 합병이 될 것 같소?” 계백이 시선을 내렸다. 성충이 과격하지만 지용을 겸비한 무장(武將)이다.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흥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신라에 김춘추, 김유신, 비담 같은 무리가 왕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 태왕비께서 어떻게 견디실지 불안하오.” 그러자 성충이 말을 맺었다. “대왕께 은밀하게 말씀 올립시다.”
어린이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물어오면, 나는 우선 최대한 주의 깊게 보라고 말해준다. 이것이 미술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 앤서니 브라운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기발하고 유머러스하다. 탄탄한 구성력과 이색적인 그림은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이름을 건 전시 앤서니 브라운 展-행복한 미술관이 6월 20일부터 9월 2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장 1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행복을 주제로 원화 200여 점을 내건다.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2017년 신작 숨바꼭질도 만날 수 있는 기회. 또 명화들을 침팬지의 시각으로 패러디 한 대표작 미술관에 간 윌리(1999),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중 고릴라가 처음으로 등장한 고릴라(1982), 숲속에서 길 잃은 새끼 코끼리를 풍부한 색채로 표현한 코끼리(1974) 등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시장 내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해피 도서관, 작가가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보급해 온 셰이프게임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해피 워크북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특히 해피 도서관은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가구들로 꾸몄다. 그리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관람한 후 인상 깊었던 작품을 직접 그려보는 그림 그리기 대회를 실시한다. 수상자에게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상, 전주문화방송 사장상과 함께 기획공연 초대권을 증정한다. 한편 전시 관람료는 1만5000원. 24개월 미만은 증빙서류를 지참할 경우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마마, 부르셨습니까?” 김춘추가 허리를 굽히면서 묻자 선덕여왕이 손을 까닥여 가깝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당(唐)에 사신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 배 5척에 당 황제에게 바칠 서신과 공물도 싣고 고관(高官)들에게 은밀히 줄 선물도 실었다. 사신은 정사(正使)에 이찬 김춘추, 부사(副使)에 잡찬 김문생이 지명되었는데 김문생도 진골 왕족으로 비담 일파에 속한다. 비담이 김문생과 그 수하 6명을 끼워넣은 것이다. 사신은 35명, 수행하는 장졸들까지 122명이며 공물을 포함한 짐은 130상자나 된다. 그래서 대선(大船) 2척에 중선 1척, 쾌선 2척의 선단을 구성하고 떠나는 것이다. 김춘추가 두 손을 모으고 여왕의 다섯걸음 앞으로 다가가 섰다. 이 자리가 최고 관직인 상대등, 이벌찬의 위치다. 청 안에는 여왕 뒤에 시녀 둘만 서있을 뿐이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저택에 있던 김춘추는 여왕의 부름을 받고 말을 달려온 참이다. 그대 여왕이 더 가깝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긴장한 김춘추가 다시 두 걸음을 떼어 다가갔을 때 여왕이 낮게 말했다. “더 가깝게 오라.” “예, 마마.” 김춘추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다시 한걸음 다가갔다.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여왕은 미모다. 결혼도 하지 않은 터라 아직 피부도 윤기가 흐른다. 그대 여왕이 입을 열었다. “백제 서부 앞바다를 지나게 되겠지?” “예, 마마.” “매년 그 앞바다를 지났지만 백제 수군과 부딪치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김춘추가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예, 수군항에 첩자가 있어서 수군의 출항 일정을 알려주기 때문이 아닙니까?” 수군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김춘추는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여왕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아예 수군 선단을 띄우지 않아서 신라 함선과 바다에서 부딪치지 않았다.” 김춘추는 눈만 껌벅였고 여왕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은 백제 수군과 바다에서 만날 것 같다.” “마마, 어찌 아십니까?” “백제 서부 수군항 항장으로 계백이란 백제 장수가 왔기 때문이다.” “계백이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대의 사위와 딸을 죽인 놈 아닌가?” “예, 마마.” 김춘추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상기되었다. “소신을 고구려에서도 능멸을 한 놈입니다. 마마.” “그대와 전생(前生)에 악연이 있었던 것 같구나.” 여왕은 독실한 불교신자다. 전생과 극락을 믿는다. 김춘추가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마마, 바다에서 만나 일전(一戰)을 하더라도 당에 가야만 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머뭇거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 일 때문에 불렀다.” 여왕이 똑바로 김춘추를 보았다. 왕위 계승 문제로 화백회의에서 연일 갑론을박을 해도 여왕은 놔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김춘추도 도와주지 않았다. 당(唐) 황제도 “신라는 여왕이 다스리기 때문에 약해진다”고 대놓고 사신에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 여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나라에 대한 충심(忠心)이 기특하구나. 그렇다면 내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도록 도와주마.”
서진이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눈이 깊은 우물처럼 느껴졌고 계백은 자신의 몸이 그 우물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눈을 감았다 뜬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년, 요사스러운 말로 홀리려고 드는구나. 멀쩡한 관리들이 대역죄를 범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덕솔께서 저를 죽이셔도 됩니다. 하지만 먼저 이것을 보시지요.” 서진이 저고리 안에서 붉은색 비단 주머니를 꺼내더니 안에서 잘 접힌 종이를 꺼내 두 손으로 계백에게 내밀었다. “태왕비께서 이것을 덕솔께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6년 전, 신라여왕이 태왕비께 보내신 편지입니다.” 숨을 들이켠 계백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편지를 펼쳤다. 질이 좋은 종이였지만 오래되어서 접힌 자국이 깊다. 안에 글이 적혀져 있다. “내가 신라왕이 된지 6년, 아직도 전쟁으로 수많은 양국 백성이 고통을 받는구나. 아버님의 뜻이 어서 이루어져서 신라, 백제가 한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동생을 그리는 언니 선덕이 선화에게 보낸다. 선덕 씀.” 읽고 나서 머리를 든 계백에게 서진이 말했다. “그 편지를 선왕(先王)께서도 읽으셨습니다. 덕솔.” 계백은 숨만 쉬었고 서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선왕께서는 신라 공격을 삼가시고 신라여왕의 기반을 굳혀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옥문곡에서 군사를 되돌려 신라여왕의 계략이 맞도록 만들어주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후로 신라여왕의 권위가 살아났지요.” “…….” “그런데 선왕이 돌아가시기 전에 대왕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선 즉위하신 후부터 신라를 계속해서 공격하셨지요.” “…….” “나리.” 서진이 다시 깊은 물 같은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습기가 찬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신라여왕이 죽으면 뒤를 이을 성골 후계자는 태왕비마마 뿐이십니다. 이제 선왕께서도 극락에 가셨으니 태왕비께서 신라로 돌아가 신라왕이 되셔야 합니다.” “무엇이?” 계백이 어깨를 부풀리며 물었다. 머리끝이 솟는 느낌이 든 계백이 서진을 노려보았다. “신라로 가신다고 했느냐?” “예, 그러나 대왕께서 보내주실 리가 없으니 몰래 가셔야 합니다.” “허어.”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옆에 내려놓은 장검의 칼자루를 쥐었다.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이년, 단칼에 베어 죽일테다. 입에서 뱀이 나오는 년이구나.” “지난번에 덕솔 연기신이 신라여왕을 만나고 왔습니다. 신라는 비담과 김춘추가 왕위를 노리지만 둘 다 왕이 될 그릇이 아니라고 신라왕이 말했다는군요. 만일 태왕비께서 백제를 탈출해서 돌아오시면 후계자로 지명을 받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를 듣자.” “이곳 수군항을 통해 배로 신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말을 대왕께 말씀드린다는 것은 예상하고 있겠지?” “예, 덕솔.” 서진이 바로 대답하더니 어깨를 늘어뜨렸다. 계백은 아직도 쥐고 있던 장검을 내려놓았다. 눈동자가 흐려져 있다.
“나리.” 관저로 들어선 계백을 고화가 먼저 맞았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웃음 띤 눈이 가늘어졌다. “오느라고 고생했어.” 계백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화를 보았다. 청으로 올라간 계백의 옆으로 고화가 다가서며 물었다. “들으셨지요?” “들었어.” 청에 앉은 계백에게 가장 먼저 우덕이 와서 인사를 했다. 반가운지 활짝 웃는다. “주인자리, 관직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 넌 몰라보게 고와졌구나.” 계백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더니 고화는 외면했고 우덕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덕조와 우덕은 이제 한방을 쓰는 것이다. 청 아래에 서있던 덕조가 헛기침을 하면서 시치미를 떼었고 우덕은 도망치듯이 청에서 내려갔다. 이어서 남녀 종들이 차례로 올라와 계백에게 인사를 했다. 계백과 고화가 나란히 앉아서 인사를 받는다. 이윽고 10여 명의 종들 인사가 끝났을 때 청에는 두 부부가 남았다. 그때까지 청 아래에 서있던 덕조가 계백에게 물었다. “주인, 부를까요?” “내가 안으로 들어갈 테니 객실로 오라고 해라.” 태왕비의 시녀 서진을 만나려는 것이다.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고화가 말했다. “저는 내실에 가 있겠습니다.” 자리를 피해 주겠다는 말이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안쪽 객실로 들어섰다. 손님을 맞는 방이다. 계백이 자리 잡고 앉았을 때 곧 상민 차림의 여자가 들어섰다. 분홍색으로 물들인 저고리와 남색 바지를 입었는데 얼굴을 본 순간 계백은 숨을 들이켰다. 미인이다. 흰 얼굴, 검은 눈동자, 곧은 콧날과 단정한 입술, 조금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 여자가 계백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바닥을 짚은 두 손이 눈부시게 희다. 절을 한 여자가 머리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태왕비마마의 시녀 서진입니다.” 낮지만 맑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마마께서 저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계백은 보료에 한쪽 팔을 기대고 앉아서 시선만 준다. 머리도 끄덕이지 않는다. 서진이 당황한 듯 두어 번 눈을 깜박였는데 속눈썹이 길어서 창이 닫혔다가 열리는 것 같다. 서진이 말을 잇는다. “마마께서는 신라 여왕마마의 친동생이십니다. 다 아는 사실이나 마마께선 먼저 그것부터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그동안 마마께선 언니인 신라 여왕께 자주 연락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죽은 덕솔 연기신이 갈 때도 있었고 때로는 제가 남장을 하고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점점 열기가 띄워졌다. 반짝이는 두 눈이 계백을 응시한 채 떼어지지 않는다. “선왕(先王)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때로는 선왕께서 마마를 통해 신라 여왕께 말씀을 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 “신라여왕께서 돌아가시면 후사가 없는 터라 태왕비마마께서 왕위를 이으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여왕과 태왕비마마께선 그런 약조를 하셨습니다.”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가 길게 뱉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말을 뱉는다. “이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으냐?”
우리는 어려서부터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도깨비를 만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도깨비방망이를 한 번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깨비’가 있다면 서양에는 ‘해리포터’가 있다. 공통점은 누구나 당연히 한 번쯤 맛보고 싶은 마법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현실이 아닌 또 다른 반전이 있어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도깨비’라고 했을까? 박은용은 도깨비의 어원을 목도자와 돗가비의 합성이라고 했다. 목도자에 나오는 ‘두두리(豆豆里)’는 절구질할 때의 형상으로 농경사회의 방아 작업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도깨비 내용이 삽입된 방이설화나 도깨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메밀묵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돗가비’설은 ‘돗+가비’의 합성어로 돗은 불(火)이나 종자(種子)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아비’는 아버지의 의미로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의 통계로 볼 때 성인 남자로 이해된다. 이들 용어는 돗+가비>도ㅅ가비>도까비>도깨비로 변화됐다. 위의 예로 보면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도깨비는 복(福)을 가져다주는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토착 신격 중에 하나로 전승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도깨비담에서 묘사되고 있는 도깨비의 형체는 대부분 도깨비불로 상징된다. 일반적인 불빛은 밝은색인데 도깨비불은 파란 불빛을 지니고 있거나 아무런 색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개로 분리되거나 하나로 합쳐지는 등 변화를 보이면서 도깨비불의 신비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도깨비와 직접 대면하는 이야기의 경우 형체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특이한 체형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키가 팔대장 같은 놈’,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 등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도깨비는 남성이다. 도깨비담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도깨비의 냄새에 대한 것이다. 흔히 뿔이 두 개 달린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이고, 우리 도깨비는 뿔이 달려 있지 않거나 한 개뿐이라는 등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현준 수필가가 산문집 <아내와 아들의 틈바구니에서>(북매니저)를 냈다. 김 작가는 수필의 소재는 우수마발처럼 흔하다는 말을 듣지만 그럴듯한 소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며 7~8년 글을 쓰면서 자원이 고갈됐는지 사물을 뒤집어보고 낯설게 바라봐도 선뜻 마음에 드는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충전이 필요한 시점에 역사서를 읽은 것이 <아내와 아들의 틈바구니에서>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책은 <하멜 표류기>의 하멜, <연암일기>의 박지원, 조선의 숨은 명의 조광일, 학자 최치원, 러시아 출신 소설가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울 점이 있는 다양한 인물을 조명한다. 임진왜란 당시 패했던 신립 장군에 대해서는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의 글을 통해 신립의 고뇌와 작전을 재평가했다.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김현준 수필가가 깨달은 감정과 교훈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그는 수필을 공부하면서 신변잡기라는 말이 싫어 이번에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가져왔다며 이런 글을 왜 쓰느냐 하지 말고 이런 글도 쓸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김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지부 부회장, 대한문학작가회 부회장,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노을을 등지고/ 풀섶에 앉아 보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네게 줘야겠다// 의연한 결심인가/ 오늘따라/ 눈시울에 어리는/ 네 눈물이 마냥 고웁다. ( 평원에서 전문) 희수(喜壽)에 시력(詩歷) 반세기를 넘는 류근조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황혼의 민낯>을 펴냈다. 시집에는 중노년층의 현실적 삶과 정서, 경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살 또 한 살 더해가는 나이는 매정스럽다. 하지만 시인은 삶의 쓴맛은 물론 그 너머 죽음까지도 편안히 껴안는다. 그래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시편들을 읽다 보면 살아갈 맛과 힘이 새롭게 샘솟는다. 또 고향을 그리는 시편이나 우리 사회에 쌓인 적폐공해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편도 눈에 띈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혹은 사회학적 지식을 통해 명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나아가 자신을 혹독하게 검증하기도 한다. 나 같은 은퇴자에게도 비공개로/ 상시 열리는 청문회가 있다/ 업보라 할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준엄한 청문회// (중략)// 지금은 머지않아 다가올 이승과의/ 결별을 앞두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스스로 살아온 숙연한 자세로/ 삶의 청문회장에 나와,/ 가끔은 즐거웠던 추억도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청문회를 하고 있지만 ( 청문회 계절 일부)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노경의 현실적 삶과 내면의 깊이를 솔직 담백하게 보여주면서도 마침내는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 해탈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시집이라며 서권기 가득한 탐구열과 끊임없는 시작에 의한 서정적 형상력이 시집을 깊이 있으면서도 젊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익산 출신인 그는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에 당선돼 시단에 나와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펴낸 중진 시인이다. 중앙대 교수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시 창작과 시인론 등을 가르쳐온 학자이기도 하다.
김익두 전북대 교수와 허정주 전북대 대학원 문학박사가 <건재 김천일 전집>을 내놨다. 건재 김천일(1537~1593년) 선생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유학자이자 문인, 의병장이다. 호남 유학의 시조인 일재 이항 선생의 수제자로 당대 서인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강원도사, 경상도사, 임실현감, 순창군수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창의(倡義)의 깃발을 호남에서 처음으로 드높이 든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건재 김천일 전집>은 건재선생문집 번역본과 조선왕조실록 김천일 관련 기사 수록본 등 총 2권으로 구성돼 있다. <건재 김천일 전집-1권>은 1833년 김민상 등이 편집간행한 본집 4권, 부록 7권 등 총 11권 목활자본을 원본으로 한다. 김 교수의 집안 외척인 정운한 옹이 1981년 번간한 국역 건재선생문집을 참고 번역본으로 삼았다. 또 <건재 김천일 전집-2권>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건재 선생 관련 기사(記事)들을 찾아 정리하고, 이에 관한 자세한 주석을 달아 만들었다.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효종실록,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 영조실록, 정조실록, 순조실록 등 <조선왕조실록> 안에는 건재 선생에 관한 언급이 총 120여 차례 등장한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촬영한 사진 자료를 본문 안에 배치해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사전을 따로 찾지 않고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각주도 자세히 처리했다. 김 교수는 건재 선생은 우리가 어째서,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또 그런 일에 앞장서야만 하는가를 일생의 삶으로 우리에게 제시해준 선열이다라며 이 소중한 삶의 기록이 국민들의 삶 속으로 면면히 깊이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주인, 마님 모시고 왔습니다.” 덕조가 인사를 했을 때는 오시(12시)무렵, 계백이 수군(水軍) 조련을 마치고 수군항의 진영으로 돌와왔을 때다. “오, 왔느냐?” 두 달 만에 보는 덕조다. 덕조가 도성에서 고화를 모시고 온 것이다. 도성의 저택이 크고 잘 갖춰진 데다 시장에는 온갖 귀물(貴物)이 넘쳤고 의식주가 편리한데도 고화는 이곳으로 오기를 고집했다. 그래서 마침내 저택에 집 지키는 종만 남겨두고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내가 저녁때 들어간다고 해라.” “네, 주인.” 대답한 덕조가 꾸물거리더니 상석에 앉은 계백을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다. “주인.” “뭐냐?” “마님이 한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모시고 와?” 그때 덕조가 무릎걸음으로 두걸음 다가와 앞쪽에 엎드렸다. 청의 마루방에는 둘 뿐이다. 계백과 집안 집사인 덕조가 만나는 터라 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덕조가 목소리를 낮췄다. “주인, 마님의 친척 행세를 하고 따라왔지만 실은 태왕비 마마의 시녀입니다.” “……” “태왕비께서 마님께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시녀를 나리께 데려가라고 부탁을 하신 것이지요.” “태왕비께서?” 계백은 자신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는 것을 들었다. 태왕비 선화공주는 지금 궁 안에서 연금상태다. 그러나 변복을 하고 궁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대왕의 모친인 것이다. 가끔 선왕(先王)의 묘에도 가고 사찰에서 불공도 드린다. 덕조가 말을 이었다. “예, 열흘쯤 전 저녁 무렵에 찾아오셨습니다. 불사에 가셨다가 들렸다고 하셨는데 변복을 하고 계셨지요.” “……” “그때 시녀 서진을 두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전할 것도 알고 계시더군요. 서진을 데려가 나리를 만나게 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 “서진을 만나고 나서 대왕께 사실을 말씀드려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괴이하다.” 마침내 어깨를 편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태왕비께서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는구나.” 덕조도 계백의 주도하에 신라 첩자 일당이 소탕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 일에 태왕비와 왕비가 연루되어 둘 다 연금상태라는 것도 아는 것이다. 덕조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주인,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마님께서도 주인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시녀인 서진님도 주인의 뜻에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이 일을 집안에서 누가 아느냐?” “네, 저하고 마님, 그리고 우덕이까지 셋입니다.” “셋이라고?” “집안 종들은 서진님을 마님이 도성에서 만난 먼 친척인줄로 압니다.” “그걸 믿겠느냐?” “태왕비께서 대갓집 부인 행세를 하고 계셔서 모두 깜박 속았습니다. 시녀 서진님도 재치가 있으셔서 다른 종들이 모두 마침 친척인줄 믿습니다.” 그때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마마, 소신이 당에 가겠습니다.” 김춘추가 말하자 선덕여왕이 시선만 주었다. 청안에 잠깐 정적이 덮여졌다. 김춘추는 석달전 고구려에 들어가 연개소문을 만나 신라와의 동맹을 제의했다가 오히려 잡혀 죽을 뻔했다. 겨우 도망쳐 나왔지만 신라 조정에서 김춘추를 비난하는 무리는 없다. 진골(眞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에서도 김춘추의 용기를 칭찬했다. 이윽고 선덕이 입을 열었다. “가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김춘추는 선덕을 보았다. 미인이다. 여왕의 수심에 잠긴 것 같은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즉위 12년, 선덕은 진평왕의 맏딸로 신라에 남은 유일한 성골(聖骨) 왕족이다. 또 하나의 성골은 지금 백제 의자왕의 어머니인 선화공주다. 그러니 의자왕의 부친 무왕(武王)이 신라와의 합병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선덕의 다음 차례는 자신의 왕비 선화공주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를 점령하면 신라 백성들은 합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때 김춘추가 대답했다. “마마, 당 황제께서 고구려와 백제왕에게 친서를 내려 신라를 더 이상 침공하지 말도록 청원하겠습니다.” “이보시오, 이찬.” 김춘추 앞쪽에 서있던 이찬 비담이 나섰다. 비담은 진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좌장이다. “이찬은 모르시오? 이제 바닷길이 막혀서 사신을 싣고 갈 배가 영락없이 백제 수군에게 나포될 상황이오.” 김춘추가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고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겁니까? 바다는 넓습니다. 피해가면 됩니다.” “그리고 사신이 간다고 해도 당 황제께서는 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거요.” 선덕도 단하에서 두 신하가 갑론을박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백제에서 첩자가 달려온 것은 열흘 전이다. 백제 서부(西部) 수군항의 항장 이하 지휘관 10여명이 도륙을 당했고 조정에 잠입시켰던 신라첩자 13명이 잡혀 처형당한 것이다. 첩자 중 4명은 간신히 신라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내막을 알게 되었다. 이제 백제 서부 수군항이 백제군의 수중에 들어왔으니 신라 사신이 탄 배 10중 8, 9는 나포될 것이었다. 그때 김춘추가 머리를 들고 선덕을 보았다. “마마, 소신이 이번에도 목숨을 걸고 당에 가서 청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구석에 박혀만 있다가는 사직을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경의 말이 옳다.” 마침내 선덕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에 서서 남 탓이나 하고 신세 한탄을 하면 빼앗긴 땅이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이냐?” 선덕의 시선이 비담에게로 옮겨졌다. “그렇다면 경의 의견을 듣자.” “마마.” “어찌하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가 있겠는가?” “마마, 그것은…….” 당황한 비담이 눈을 부릅떴다가 곧 내렸다. 선덕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담은 여왕 사후(死後)의 왕위 계승 1순위자다. 선덕이 다시 김춘추를 보았다. “이찬, 곧 떠나라.” “예, 마마.”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지 못하면 곧 당은 등 뒤를 찔려 수나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해라.” “예, 마마.” 김춘추는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당장에 목이 잘릴 것이었다.
“대선(大船)이 5척, 중선(中船)이 7척, 쾌선(快船) 18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솔 윤진이 대선 위에서 계백에게 설명했다. 수군항의 전력(戰力)을 말한다. “대선과 중선, 쾌선으로 진이 되어야 대해(大海)로 나갈 수가 있지요. 대선 2척, 중선 4척, 쾌선 6척을 1진(陳)이라고 부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부터 백제는 해상강국이었다. 동성왕 때 대륙의 담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수군(水軍)도 양성시켰기 때문이다. 대선은 길이가 200자(60m), 폭이 60자(18m), 높이가 40자(12m)였고 돗대가 2개, 수부가 20명, 수군을 60명까지 실을 수 있다. 중선은 길이가 150자(45m), 폭이 40자(12m), 높이가 25자(7.5m)이며 돗은 2개 ,수부가 12명에 수군 35명을 싣는다. 쾌선은 길이가 100자(30m), 폭이 20자(6m), 높이가 15자(4.5m)인데 수부가 22명, 수군이 20명이다. 수부가 많은 이유는 배 양편에 노가 3개씩 있어서 수부 12명이 저으면 빠르게 달릴 수가 있는 것이다. 윤진이 말을 이었다. “대선과 중선이 해전(海戰)을 벌이고 쾌선은 연락과 정찰, 또는 기습 역할을 맡았지요. 그러나 요즘 몇 년 동안 대해로 진(陣)을 펼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계백이 묻자 윤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해적선은 3척씩 무리지어 오는 데다 노꾼이 많아서 우리 쾌선보다 빠릅니다. 대해에서 잡지 못하고 놀림감만 되는 바람에 아예 근해만 순시하고 있었습니다.” “방법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 “쾌선에 노잡이를 배로 늘리고 대선과 중선에 대궁을 장착하자고 진즉부터 건의했지만 묵살되었지요.”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신라 선박도 백제 연안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백제 연안은 대륙과 멀리 인도, 페르시아로 통하는 상로(商路)인 것이다. 다음날부터 수군항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선박을 수리하고 한편으로는 수군을 조련시켰기 때문에 수군항 주변에는 밤이 새도록 불빛이 휘황했다. 병관좌평 겸 상좌평 성충이 수군항에 도착한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열흘이 되었을 때다. 대선(大船)에 오른 성충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내가 6년쯤 전에 대선을 타고 담로 안남군에 갔었어. 그때 선왕(先王) 마마의 사신으로 갔었는데 도중에 해적선을 만났지.” 대선에 장착된 대궁(大弓)을 쓸면서 성충이 말을 이었다. “그때는 이 대궁이 육지에서 공성전 때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야. 이 대궁만 있었다면 그 해적선을 잡았을 텐데.” “마침 알맞은 나무가 있어서 솜씨좋은 군사들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궁은 길이가 15자(4.5m), 시윗줄은 삼줄과 가죽을 꼬아 만들었고 화살은 두께가 1치(3cm)에 길이는 12자(3.6m)다. 화살 끝에 창날이 꽂혔는데 주위에 기름을 넣은 가죽 주머니를 붙여서 쏘도록 했다. 가죽 주머니 끝에는 불이 붙은 심지를 매달아 화살이 박힌 순간에 기름 주머니가 터지면서 불이 붙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공성전에 자주 사용했지만 배에 장착하는 것은 처음이다. 계백이 옆에 선 나솔 윤진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솔 윤진이 함선용 대궁을 착안했습니다.” “장하다.” 상좌평 성충한테서 칭찬을 받은 윤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대선에는 대궁이 선수에 2대, 선미에 1대를 장착했고 아래쪽에 노 구멍을 만들고 노를 6개씩 넣었다. 노꾼으로 24명을 충원시켰지만 공간은 넉넉하다. 중선도 대궁을 2대, 노꾼을 20명, 쾌선은 대궁 1대에 노꾼을 20명으로 늘려서 그야말로 쾌속선이 되었다.
두 번째 시녀의 목에 칼을 대었을 때 비명처럼 말이 터져 나왔다. “수군항 궁수장 대덕입니다!” 왕비전의 시녀 단월이다. 위사장 협보가 칼을 단월의 목에서 떼었다가 다시 붙이면서 물었다. “지금 그놈이 어디 있느냐?” “조금 전까지 다리가 아프다면서 부식창고 옆방에 있었습니다!” “잡아라!” 협보가 소리치자 위사들이 달려갔다. 내궁 마당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햇볕이 환한 사시(10시) 무렵, 마당에는 방금 목이 잘린 왕비전 시녀의 시체가 처참한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다. 구석에 잡아놓은 시녀들은 50여명이나 된다. 주위를 위사들이 칼을 빼든 채 둘러서 있어서 흉흉한 분위기다. 잠시 후에 달려갔던 위사들이 대덕 종해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대덕은 반항을 했는지 얼굴이 피투성이다. “덕솔, 도망치려는 것을 잡았습니다.” 위사부장이 보고했다. 머리를 끄덕인 협보가 지시했다. “그놈을 마당에 꿇려라. 곧 대왕을 모시고 나오겠다.” 협보는 종해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그로부터 한 식경쯤이 지났을 때 의자가 대왕전의 청에서 문무 관리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내궁(內宮)에 신라 첩자가 들락였기 때문에 그와 연관된 역적무리를 토벌했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의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병관부 달솔 진재덕, 내신부 덕솔 연기신 등 17명을 위사대가 잡아 처형했고 그 가족은 종으로 배분될 것이며 재산은 몰수한다.” 단하의 성충, 흥수 등은 의자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곧 생모(生母)인 태왕비와 왕비의 조처가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자가 말했다. “신라 첩자가 태왕비와 왕비전을 들락였다는 증거가 있다. 지금 잡아놓은 서부 수군항 대덕 종해가 자신이 첩자이며 태왕비와 왕비의 지시를 받아 왔다고 자백을 했다.” “……” “증거가 확실한 바 태왕비전을 봉쇄하고 왕비는 폐비함과 동시에 궁 안에 감금한다. 둘은 악의 근원이었다.” 청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성충의 목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대왕, 대왕께 이렇게 수족을 자르시는 고통을 드린 죄를 제가 받겠습니다.” 의자가 눈만 크게 떴고 성충이 말을 이었다. “신하로서 사전에 일을 막지 못한 죄를 소신이 받겠습니다.” “당치 않은 말이다.” 혀를 찬 의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 내가 우유부단하게 질질 끌어왔기 때문이야.” “대왕, 신하들의 우두머리인 상좌평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난국에 상좌평이 공석이면 되겠는가? 입을 다물어라.” 의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임금이 지은 잘못을 왜 신하가 받느냐? 임금이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대왕.” “지금은 내부 수습이 시급하다. 상좌평.” 의자가 정색하고 성충을 보았다. “신라 첩자들이 그동안 수군항에 집중적으로 도당을 배치시켰다. 이를 더 색출하고 수군(水軍)을 예전의 전력으로 되살리는 것이 상좌평 그대가 할 일이다.” 의자의 논리정연함이 되살아났다. 의자는 결코 혼군(混君), 폭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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