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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우중(雨中) 단상-749번 지방도에서 - 문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길 위에 서면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지? 그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피식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이런 말도 들었던 것 같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바람이 불자 예의상 잠깐 흔들려주는 나뭇잎 같은 심정이었다랄까?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는 남다른 재주에 조금 감탄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뭐라고 한마디 거들어보고 싶다, 길에 관해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길과의 로맨스는 떠오르지 않는다. 길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 적도 없고, 검은 숲을 파헤쳐 나만의 길을 내본 적도 없다. 몇 가지 소소한 일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늦가을 어느 날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도로를 횡단하며 마치 큰 범죄라도 저지르듯 으스댔었지만, 무단횡단에 따른 딱지 한 장 받아보지 못했다. 길모퉁이에 서서 어떤 여자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영영 헤어져버린 기억도 있다. 그렇다고 이별의 책임을 길에게 묻고 싶지는 않다. 이별이래야 이별일 수 없는 게, 노상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발밑에 늘 길이 있어서였을까? 길에 관해 진지하게 고마워해본 적은 없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길에 마음을 앗겨버린 것이 2003년 무렵이다. 홀렸다고나 할까? 운명처럼, 길이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뒷목 근처에서 속삭이는 애인처럼 길은 내 오목한 발바닥을 향해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길의 애무에 끝내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 이제 나를 다 가져라! 한껏 달떠서 나는 그렇게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나는 길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애인으로 삼은 길은 완주군 상관면 신리에서 소양면 화심을 잇는 749번 지방도로다. 신리에서 더듬어가기 시작한 길은 적당한 경사를 이루며 오르막을 형성한다. 그 길을 사랑하는 일은, 사랑에 눈이 멀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수컷처럼, 앞만 보고 무작정 뛰는 것이다. 애인의 발등을 쓰다듬다가 정강이를 스쳐 무릎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곧장 살 오른 허벅지로 달려들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재게 발을 굴려야 한다. 신리에서 출발한 지 5분쯤이면 그리 길지 않지만 제법 가풀막진 오르막이 버티고 있다. 이제 등줄기에 땀이 배고 종아리는 딴딴하게 부풀어 오른다. 눈알 벌게지도록 씩씩거리며 단숨에, 그렇다, 멈춤 없이 단숨에 기어오르면 문득, 길은 감추어두었던 상관수원지를 애인의 허벅지 안쪽처럼 내어준다. 그 순간 휘이, 숨이 탁 트이면서 긴장하고 있던 몸의 근육들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길도 마찬가지다. 상관수원지 허리를 살포시 휘감고 도는 길은 풍만한 굴곡을 이루며 길 위에 선 사람을 유혹한다. 그렇다고 거추없이 덤벼들 일은 아니다. 길도 나도 서로 충분히 간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뛰는 일은 시늉으로 두고 물낯에 드리워진 산그늘의 깊이를 헤아려본다. 이런 날은 아주 맑아도 못 쓴다. 세상이 좀 더 침침해지고 사물의 빛깔들이 바짝 뭉개질듯 흐리흐리해야 연애할 맛도 난다. 주춤주춤 가랑비라도 내리면 더 좋다. 세우(細雨)에 뛰는 일은 어떤 오르가슴도 넘보지 못할 향락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더러 어이없는 장벽 같은 것이 덜컥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니. 길과의 연애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처음과 달리 달리는 폼도 안정되고 속도도 붙어서 제법 능숙하게 애인을 대하듯 길을 밟아나가던 때였다. 준비운동을 할 때부터 아랫배가 미심쩍더니 상관수원지를 돌아가는데 기어이 탈이 나고 말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뭘 자꾸만 사달라고 졸라대는 애인처럼 아랫배가 쿡쿡 쑤셨다. 돌아갈까? 그러나 하다 말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만고의 진리가 득의하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미소의 그늘에서 피어오르는 유황불 같은 불길함을 애써 외면했지만, 오래 잊고 있던 길 위에서의 추억 하나가 강제로 소환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것은 느닷없이 내 이름을―그렇다,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자기야, 라고 부르지 않았다.―한 음절씩 끊어서 불러대는 애인의 싸늘한 목소리처럼 뭔가 께름한 징조였다. 다섯 살? 많아야 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로 나는 울상이 되어 길을 걷고 있었다. 집에까지는 제법 많은 걸음이 남아 있었고, 뒤편에서는 내 걸음보다 빠르게 해가 지고 있었다. 눈앞으로 길게 드리워진 내 회색 그림자를 보며, 나는 생애 최초의 비극과 맞서고 있었다. 잔뜩 숨을 참았다가 병아리 눈물처럼 조심스럽게 내쉬는 동안, 한주먹감도 안 되는 내 엉덩이는 바윗돌보다 무거웠다. 이미 나는 약간의 설사를 지린 상태였다. 배 속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성난 물찌똥이 출렁거렸고, 내 눈에는 흥건해진 눈물이 여차하면 미끄러져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쥔 채 괄약근에 잔뜩 힘을 주고 걷던 길이었는데.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 중학교 이학년 봄, 소풍 길도 거들어보겠다고 불쑥 끼어들었다. 아, 아득하여라. 그해 소풍 길에서 노랗게 흔들리는 환타는 귀여운 악마 같았다.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날 나는 환타가 아니라 봄볕의 환각에 취한 것이었다. 시작은 한 모금으로 미미했으나 몇 병의 환타를, 아니 봄볕을 마시고 또 마신 끝은 말 그대로 창대한 판타지였다. 찧고 까부는 동안 판타지는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옆구리 터진 김밥을 우겨넣고 난 뒤에 약간의 미심쩍은 기미를 느꼈으나 그때까지는 여전히 판타지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그러다가 늦은 오후, 소풍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으슥한 덤불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길은 숲을 알지 못했다. 길은 매정하게도 엄폐, 은폐할 만한 것들을 지니지 않았다. 길 위에서 나는 거의 체념하였고,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최후의 눈을 감았다. 그때 아, 신이시여! 건물과 건물 사이 빈터에 누군가 버려놓은 쓰레기더미가 보였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보니 그 옆에 우북하게 돋은 쑥대가 찬란한 후광을 두른 채, 여기가 유토피아야, 라고 속삭이듯 나를 향해 손짓을 해댔다. 내가 신의 가호를 인정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단두대의 칼날이 목에 닿기 직전에야 나는 이마를 가린 쑥대밭에 주저앉았고, 염치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어린 양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 나올 수 있었다. 몇 번 입지 않았던 팬티를 과감하게 벗어주는 것으로 쑥대밭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도래하는 미래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말머리에 다시를 붙여본다. 다시 도래하는 미래. 그랬다. 악마의 재림이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악마가 도래하고 있었다. 가랑가랑 비는 내리고 싸륵싸륵 배는 아파오는데, 오래전 덜 여문 내 엉덩이에 입맞춤하고 사라졌던 악마가 749번 지방도에 강림해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릿속이 바빠졌다. 살기 위해서는 그날 새 팬티를 과감하게 내던졌던 것처럼 길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길을 달려본 사람은 안다. 길이 주는 매력을. 대장정에 나선 이에게 길은 요물이나 다름없다. 나신으로 누운 길은 그 까만 눈동자를 새침하게 내리뜨고는 가볍게 몸을 뒤채며 유혹한다. 길의 매혹에 혼미해지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고나 할까? 어느 순간 길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장탄식을 토해내기도 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 아니라 걷는 자는 모두 길 왕국의 충복이 되어 길에게 투신하고 헌신한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야누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 혼미한 정신은 길의 유혹에 꿈쩍하지 않는다. 길, 너 없이는 못 한다고 굳게 맹세했던 모든 말들이 모두 부도난 허세였음이 탄로 나는 순간이다. 절세미인과 신방(新房)을 꾸미더라도 뒤가 마려우면 헛일이려니, 앞일 치르고 뒷일 봤다는 말 들어본 적 없다. 이쯤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당당하게 파혼을 선언하고 길가 밭 언덕으로 기어올랐다. 바짓단을 내림과 동시에 쭈그리고 앉으니 마침 콩잎이 부끄러움을 가린다. 막무가내로 막아댔던 길이 터지자 밤하늘 유성우처럼 내 안의 우주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천지창조의 순간이 이러했을 것이다. 다 끝났다. 여운처럼 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야들야들한 비단 한 자락이 아기 걸음처럼 밟고 간다. 환각과 마각의 카타르시스로 부르르 몸이 떤다. 간신히 둘러보니 누리 가운데 나 하나만 외롭게 주저앉은 듯한데, 멀리 산자락들도 한 무더기씩 부려놓은 것처럼 도톰하게 섰다. 눈앞에 안개가 개니 불현듯 참담하여 그제야 엉덩이를 쏘삭이며 간질였던 것이 한낱 볼품없는 풀잎이었음을 안다. 저만치 콩잎들 사이로 껑충한 참깨 꽃이 서넛 질려 있는 것도 보인다. 문득 쓸쓸해진다. 쓸쓸함이란 이런 심정을 두고 하는 말임을 널리 선포해도 좋겠다. 콩잎 서너 장을 뜯어 쥔 채 저만치 늘어져 있는 749번 지방도를 내려다보았다. 뒤를 비우니 장딴지에 힘줄이 불끈 솟는다. 그래, 오늘은 끝장을 보자. 나는 749번 지방도에 올라탄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진 듯하다. 젖은 길은 치명적인 속살을 내보인다. 길 끝은 화심(花心)이렷다? 꽃의 속살을 아니 보지는 못할 일이니, 쓰다 남은 콩잎 한 장 움켜쥐고 우중(雨中) 질주에 속도를 높인다. 애인이여! 너,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라. /문신(시인) * 2004년 <세계일보>, <전북일보> 신춘문예(시),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동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문학평론) 당선. 시집 <물가죽 북>, <곁을 주는 일>, 연구서 <현대시의 창작방법과 교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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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8 15:31

[불멸의 백제] (110)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⑥

“오, 왔느냐?” 의자의 절을 받은 태왕비 선화공주가 잔잔한 표정으로 맞는다. “어마마마 부르셨습니까?” 절을 하고 머리를 든 의자는 태왕비 옆에 앉아있는 왕비 교지를 보았다. 의자가 절을 하는 사이에 옆으로 온 것 같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교지가 눈웃음을 쳤다. 그 순간 의자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아름답다. 교지의 나이도 42세, 20대 자식이 있는 나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요염해졌다. 그때 태왕비가 의자에게 물었다. “대왕, 서부 수군항의 항장 이하 지휘관급 11명이 몰사한 사실을 아느냐?” “예, 어마마마.” 허리를 편 의자가 똑바로 태왕비를 보았다. 부친인 선왕(先王) 무왕도 왕비인 선화공주를 어려워했다. 자색을 겸비한 선화공주는 결단력과 용기까지 갖춘 여장부이기도 하다. 백제왕이 되기 전에 소를 키우던 서동과 결혼을 할 만큼 과단성이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부친인 진평왕이 시켰다고 따르는 성품이 아니다. 태왕비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럼 그 극악무도한 범인이 한산성주이며 수군항 항장을 겸임하게 된 덕솔 계백인지도 알겠구나?” “처음 듣습니다.” 놀란 의자가 눈을 크게 떴다. “신라 자객들의 소행이란 보고를 듣고 한산성주 계백에게 시급히 자객단을 잡으라는 전령을 보낸 참입니다. 도대체 누구한테서 들으셨습니까?” “수군항에서 밀사가 왔었다.” “저에게 밀사가 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왔다.” “어마마마께 밀사가 오다니요?” 의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임금을 젖혀놓고 태왕비께 밀사가 갔다는 말씀입니까?” “대왕.” 태왕비가 불렀지만 의자가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위사장!” “예, 대왕.” 청 밖에서 다 듣고 있던 위사장 협보가 금방 소리쳐 대답했다. 의자가 다시 소리쳐 지시한다. “서부 수군항에서 태왕비께 온 밀사는 신라 첩자가 분명하다. 그놈은 나와 태왕비마마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다.” “예, 대왕.” “태왕비마마 전을 샅샅이 뒤져서 찾으라.” “예, 대왕.” “태왕비전과 왕비전을 위사로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외인의 입출을 금한다.” “예, 대왕.” “찾지 못하면 시녀들을 잡아 한 년씩 목을 베어라. 그러면 누군지 밝혀질 것이다. 알았느냐!” “예, 대왕.” 그때 의자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태왕비를 보았다. 왕비 교지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태왕비마마,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오늘 중으로 첩자를 찾아낼 것입니다.” “대왕.” 의자의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얼굴이 굳어졌던 태왕비가 겨우 불렀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사태를 짐작한 것이다. 의자가 태왕비를 향해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태왕비마마,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 “긴 세월이었습니다. 태왕비마마.” 허리를 편 의자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태왕비를 보았다. “소자도 30여년을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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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7 20:26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3. 아들과 딸 - 딸 선호한 모계사회서 유래

딸의 어원은 모계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모계에서 어머니 ‘혈통을 따른다’는 데서 ‘따른다-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혈통을 ‘안 따른다’하여 ‘아딸-아달-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양주동 박사에 의하면 딸의 어원을 ‘앗[小]+딸[女息]’로 보았다. 즉 ‘앗’은 작다의 의미이고 ‘딸’은 말 그대로 딸이므로 ‘작은 딸’이다. 어원적 의미의 해석은 우리 고대 사회가 모계 사회였다는 데서 가능한 추론이다. 다시 말하면 딸은 정계(正系) 상속자이고, 아들은 차계(次系) 상속자였기 때문에 소자(小子, 작은 자식)의 의미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족제도를 지배해온 중심 원리는 가계 계승을 위한 직계·부계가족의 원리였다. 장자는 결혼 후 부모와 같이 살면서 부계 중심의 직계가족 형태로 가계를 계승하고, 가계 계승이 바탕이므로 부자 중심의 가족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또 직계가족제도 하에서의 상속제도는 장자 우선과 불균등상속제도로서 가계 계승·제사 상속을 받는 장자가 우선이며, 부인이나 딸은 상속제도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직계가족 원리가 남아선호·남존여비의 사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제도와 관련해 결혼한 여성에게 남아 출산을 강요했고, 아들을 출산하지 못할 경우는 칠거지악의 하나에 해당해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기도 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도 있다.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못생기고 거기에 독까지 있는 두꺼비를 왜 하필 귀한 아들에 비유했을까? 이유는 아들은 기왕이면 똑똑한 아비를 닮은 아들이어야 한다는 데서 유래한다. 여기에서 ‘똑똑한 아비’가 바로 떡두꺼비이다. 똑똑한 아비를 우리말 공식에 대입하면 똑=(똑) 똑=(또)·(ㄱ) 아=(ㅏ) 비=(비) 오른쪽을 세로로 읽으면 똑.또.ㄱ.ㅏ.비=똑또가비= 똑도가비=떡두꺼비가 되어 결국 떡두꺼비는 똑똑 아비의 와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떡두꺼비의 진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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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7 20:26

색깔도 농도도 다른 여류 시인 3인의 삶

▲ 김형미 시인과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윤수하 시인과 시집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 이은송 시인과 시집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 (위에서부터)오늘날 전북 시단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존재인 여류 시인들. 색깔도 농도도 다른 여류 시인 세 명이 각자의 삶으로 엮은 시집을 내놨다. 이들이 존재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시어와 시상, 시학을 비교해 읽는 즐거움이 작지 않다.김형미 시인은 세 번째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로 묵화처럼 고요한, 행간으로 존재하는 시인의 운명을 노래한다. 시인은 온 힘을 다해 쓸쓸함에 맞서고 통증을 삼켜낸다. 그래서 딱 하나만 사랑하는,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는 세상이 시인에게는 어쩌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찬바람 불면서 물이 고여들기 시작한다/ 몇 새들이 저 날아온 하늘을 들여다보기 위해/ 물 깊어지는 나뭇가지에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다/ 생숨을 걸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 세상에는 있는 것인가, 곰곰 되작이면서// 그래 사랑할 만한 것이 딱 하나만 있어라” ( ‘시월’ 中) “흰 새가 날아오는 쪽에서 가을이 오고 있다/ 살던 곳의 바람을 죄다 안고서//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며 살고 싶다” ( ‘가을’ 中) 문신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김형미 시인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인이라고 평한 뒤 “이런 시인들은 바라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다만 들여다볼 뿐”이라며 “심연(深淵)이라는 욕망의 물낯에 드리워진 자기 표정을 확인하듯, 자기의 눈으로 오롯하게 들여다볼 때 심연의 무늬는 읽힌다”고 밝히기도 했다. 들여다보는 일은 시선(視線)이 아닌 심선(心線)이 닿아야 하는 문제. 이 심선으로 시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자신을 알게 된다. 윤수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는 우리의 생을 가로지르는 불가해한 흔적들과 마주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인연 줄에 얽매인 채 이뤄지는 생명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는 형체와 이름이 없는 존재를 향한 하염없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윤 시인은 우리 몸을 휘감고 있는 이 흔적들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가상이지만 현실과 이어져 있는 이미지. “책 틈에 커피를 흘렸다./ 온종일 그것을 닦느라 뒤졌다./ 그러나 그림자처럼/ 어딘지 자꾸 스며들었다./ 검은 방울은 흩어져 번식했다. 검고 기다란 다리를 휘휘 저어/ 수십 수백 마리의 똑같은 형상이/ 누워있는 내게로 모여들었다.” ( ‘몸속의 거미’ 中) 또 시인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 과정을 시작(詩作)의 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수많은 상처와 흔적이 모여 이룩되는 다채로운 생명의 세계는 자신이 곧 타자가 되는 어떤 세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타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내 안의 흔적을 바탕으로 타자로 나아가는 길은 윤수하 시인이 추구하는 시 쓰기의 길이 된다”며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타자, 혹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나가 나타나는 지점에서 그의 시가 탄생한다”고 평했다. 첫 번째 시집을 낸 이은송 시인.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은 오랜 세월 시를 써온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적은 연민의 기록이다. 소멸과 파멸의 시이고, 재생과 탄생의 시이다. 시인은 삶에 내재한 통증을 자각하고, 이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강력한 생의 의지를 표출한다. 이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병을 앓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자신의 파멸을 생의 절벽까지 밀고 가며 끝내 자기 회생에 대한 갈망에까지 이른다. 그에게 시는 정화와 재생, 자기 구원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어찌 병에 들지 않고 이곳을 건너겠는가/ 오 내 몸의 균열로 들어서는 초록/ 나는 참지 못하고 이슥한 밤이 오면 타라 여신처럼/ 반라의 몸으로 시바 신의 성전으로 스며들 거예요/ 산산이 부서져 파멸당하더라도/ 기어이 저 초록의 음역들을 훔쳐 오고 말 거예요” ( ‘입하’ 中) 초록은 치유와 재생의 상징이듯 시인의 의지는 통증을, 아픔을 감내하면서 기어이 초록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으로 귀결된다. 시인에게 치유는 아픔을 건너온 단순한 상처의 회복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6.07 20:26

[불멸의 백제] (109)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⑤

다음날 아침, 의자가 후궁 백씨의 침전에서 조반을 마친 후에 청에 나가려고 옷을 입을 때 문 밖에서 기척이 났다. “대왕, 태왕비께서 부르십니다.” 태왕비의 시녀다. “그러냐? 곧 뵌다고 말씀드려라.” 소리쳐 대답한 의자가 옆에서 얼굴을 굳히고 선 백씨에게 말했다. “위사장을 부르라.” 백씨가 서둘러 물러나더니 잠시 후에 위사장 협보가 소리 없이 다가와 옆에 섰다. 협보는 덕솔 관등으로 의자가 태자 시절부터 호위를 맡았던 복심이다. 항상 그림자처럼 의자를 따르면서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얼굴을 보지 못한 고관들도 많다. 의자가 허리끈을 매면서 협보에게 물었다. “태왕비께서 나를 부르시는 이유를 알겠느냐?” “덕솔 계백이 서부 수군항 지휘관들을 몰사시킨 죄를 주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임금이 된 지 올해로 몇 년째인가?” “3년이 되셨습니다.” “내 나이가 몇인가?” “43세가 되셨지요.” “내가 태자 생활을 몇 년 했지?” “27년을 하셨습니다.” “긴 세월이었어.” “예, 대왕.” “네가 태자 시절부터 내 위사장이었으니 몇 년째냐?” “예, 18년째올시다.” “네 나이가 몇이든가?” “45살입니다.” “그렇지, 나보다 두 살 위였지.” 머리를 끄덕인 의자가 몸을 돌려 협보를 보았다. 눈동자가 깊은 물 속 같다. “내가 너무 어마마마께 주눅이 들어 있었지 않느냐?” “예, 대왕.” 대답은 했지만 협보는 외면했다. 그러나 의자가 말을 잇는다. “태자 위치는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지. 어마마마의 한마디면 태자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으니까.” “……” “내가 임금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이 남아 있는 것 같구나. 어마마마가 부르시면 대답부터 하고나서 가슴이 무거워지는 걸 보니까 말이다.” “……” “왕비도 어마마마 등에 업혀서 날 가볍게 보았고.” “대왕.” “말 안 해도 안다.” 눈동자의 초점을 잡은 의자가 협보를 보았다. “위사대를 시켜 병관부 달솔 진재덕, 전내부 덕솔 연기신, 그리고 왕비, 태왕비와 내통한 혐의가 있는 고관을 모두 잡아들여라. 모두 17명이었지?” “예, 대왕.” 협보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눈빛이 강해졌다. “대왕, 반항하면 베리까?” “베어라.” 숨을 고른 의자가 말을 이었다. “너는 내 경호로 남고 부장들을 보내도록 하라. 모두 믿을만한 자들이겠지?” “모두 대왕께 목숨을 바칠 무장들입니다. 염려 마시옵소서.” “그럼 그동안에 나는 태왕비가 부르셨으니 가 뵈어야지.” 의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방을 나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선 후궁 백씨의 어깨를 어루만진 의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내가 오늘, 달라 보이지 않느냐?” 의자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6.06 18:35

[불별의 백제] (108)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④

그 시간에 대왕전 뒤쪽의 방 안에서 의자왕이 앞에 앉은 세 신하를 응시하고 있다. 세 신하란 바로 성충과 계백, 흥수다. 오른쪽에서부터 앉은 순서대로 말한 것이다. 계백은 대왕을 만나는 자리여서 옷은 자색 겉옷을 걸쳤지만 흥수한테서 빌린 옷이라 작았다. 계백도 이른 아침에 하도리와 함께 말을 달려 도성으로 온 것이다. 국가대사(國家大事)다. 한산성주겸 서부 수군항 항장 덕솔 계백이 나솔급 관리 둘, 장덕 셋을 사살한 것이다. 또한 수군항 항장 은솔이하 관리 여섯을 수군, 수부(水夫) 수십명과 함께 수장시킨 혐의도 있다. 계백은 두손을 마룻바닥에 짚은 채 의자를 올려다 보았고 성충 흥수는 굳게 입을 다문 얼굴로 의자를 응시하고 있다. 붉은색 기둥에 양초등을 둥글게 붙여서 방앞은 환하지만 넷의 표정은 무겁다. 방금 계백은 국창을 죽인 사실부터 어젯밤 문자성 일당까지 죽인것까지 모두 말한 것이다. 이윽고 의자가 조금 충혈된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내가 우유부단했다.” 의자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태자 시절부터 태왕비 마마와 왕비가 신라측과 교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 “선왕(先王)께서 처리하시리라고 믿었지만 놔두시더구나.” “……” “선왕 말년에 신라 접수에 대한 꿈을 버리신 터라 태왕비께서 더 기세를 올리시도록 한 것이다.” 태왕비란 선왕(先王)이며 의자왕의 부친 무왕(武王)의 왕비를 말한다. 무왕의 왕비가 되기 전에는 선화공주로 불린 신라 진평왕의 딸이었으며 지금 신라여왕인 선덕여왕의 동생이다. 무왕은 왕비를 무마하여 신라와의 합병을 공략했다. 선덕여왕도 후사가 없는 터라 그 다음은 선화공주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백제와 신라는 합병이 된다. 이것이 딸만 두었던 신라 진평왕의 의도이기도 했다. 신라왕은 선덕에서 성골(聖骨)인 왕족이 끊기게 된다. 김춘추 등은 무수한 진골(眞骨) 왕족중의 하나일 뿐이다. 왕이 계백을 보았다. “덕솔, 네가 마침내 칼을 뽑았구나. 잘했다.” “황공하오.” “국창이 왕비의 사주를 받아 신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지만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가 없는 법. 네가 잘 처리했다.” 머리를 든 의자가 성충과 흥수를 번갈아 보았다. “왕비가 이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이미 한산성의 변( )을 보고 받았을지도 모른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왕비께서 대왕께 직보하실 성품입니다. 계백이 무고한 장수들을 처단했으니 죽여 마땅해야 된다고 하시겠지요.” 흥수가 말했을때 성충이 거들었다. “태왕비 마마를 모시고 대왕을 압박하실 것입니다. 조정의 대신 몇몇도 합세하겠지요.” 의자가 시선만 주었고 흥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 조정의 실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동안 태왕비마마 시절부터 포용했던 친(親)신라파 관리들이 모두 힘을 합쳐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때 의자의 시선이 다시 계백에게 옮겨졌다. “계백이 불씨를 살렸구나.” 의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기둥에 매단 등불의 불꽃이 바람이 없는데도 흔들렸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내부 단속을 하지 않고 외부로 나갈 수는 없는 법. 이제 결단을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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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5 19:48

[불멸의 백제] (107)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③

그러나 수군항에서 빠져나간 국창 일당이 있다. 수병(水兵) 궁수장 적임인 11품 대덕 종해, 이른 새벽에 수군항을 빠져나온 종해는 필사적으로 말을 달려 오후 유시(6시) 무렵에 사비도성에 도착했다. 도중에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뛰다 걷다 하면서 기어코 도성 문이 닫치기 직전에 들어온 것이다. 종해가 왕비 교지 앞에 엎드렸을 때는 술시(8시)가 넘었을 무렵이다. 종해가 왔다는 보고를 받은 왕비는 식솔 연기신과 병관부 달솔 진재덕까지 불러 종해를 맞은 것이다. 왕궁 뒤쪽의 별당 안이다. 상석에 그림처럼 앉은 교지의 아래쪽 좌우에 연기신과 진재덕이 자리잡고 종해를 내려다 본다. 별당은 토지신과 조상신을 모신 곳으로 태왕비의 전용이다. 이곳은 태왕비와 왕비만 사용할 수가 있다. 그때 교지가 말했다. “서부 수군항에 급변이 일어났다니, 듣자. 빠짐없이 말하라.” “예, 마마.” 머리를 든 용해가 교지를 보았다. 온몸이 땀과 먼지로 덮여 거지꼴이다. “한산성주 계백이 덕솔 축하연에서 수군항의 지휘관 다섯을 죽였습니다.” 용해의 목소리가 별당을 울렸다. 모두 숨을 죽였고 용해가 말을 잇는다. “미리 궁수를 잠복시킨 후에 항장의 일당이라고 짐작되는 지휘관 다섯을 겨냥하고 있다가 계백의 신호를 받고 쏘아죽인 것입니다.” “누가 죽었느냐?” 교지가 묻자 용해가 바로 대답했다. “나솔 문자성, 나솔 정길도, 장덕 육반, 장덕 장호기, 장덕 온성입니다.” “그전에 실종된 국창이하 지휘관은 몇명이냐?” “여섯명입니다.” “모두 십여명이 죽었구나.” “예, 이제 국창님 휘하의 지휘관은 다 죽었소이다.” 용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교지를 보았다. “나솔 윤진, 장덕 백용문 등이 계백에게 국창님 휘하의 지휘관을 낱낱이 알려주었기 때문이오.” “이 역적 같은 놈 계백.” 교지가 잇사이로 말했다. “내가 이놈을 꼭 죽일 것이다.” “마마.” 병관부 달솔 진재덕이 조심스런 표정으로 교지를 보았다. “계백이 실상을 알았으니 이미 도성과 대왕께 손을 썼을 것입니다.” “아니, 대왕은 아직 모르신다.” 교지가 반짝이는 눈으로 진재덕을 보았다. “아마 성충과 흥수 무리에게는 기별을 했겠지. 아마 그들과 공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마께서 대왕께 먼저 손을 쓰셔야 됩니다.” “이번에는 연기신이 말하자 교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오늘밤에라도 대왕을 만나야지.” “먼저 머리를 잘라야 됩니다.” 진재덕이 눈을 가늘게 뜨고 교지에게 충고했다. “몸둥이를 자르면 늦습니다. 독니가 있는 머리부터 자르셔야 하오.” “그 머리가 성충 아니냐?” “그렇습니다.” “성충이 죽으면 그대가 병관좌평이 될 것이다.” 자리를 차고 일어선 교지가 흰창이 커진 눈으로 셋을 둘러보았다. “계백이 국창과 휘하 지휘관을 죽인 것이 분명하다. 우선 성충을 제거하여 그 배후를 없앤 후에 그놈을 대역죄로 잡아들여 멸족 시키기로 하자.” 교지의 목소리는 차갑고 눈빛은 날카롭다. 왕궁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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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4 20:04

[불멸의 백제] (106)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②

예, 있습니다. 하면서 손을 든 장수가 있다. 수군항의 선단장(船團將)인 나솔 문자성. 손을 들고 계백을 응시하고 있다. 청 안에는 한산성과 수군항의 지휘관 30여명이 둘러앉아 있는 것이다. 밤 술시(8시) 무렵, 마당에는 장작더미에 불을 질러서 청 안까지 환해졌다. 계백이 문자성에게 다시 물었다. 시인한다니 반역을 시인한다는 것인가? 문자성은 국창의 일파로 분류된 인간이다. 도성의 왕비에게 보낸 밀서에 제 이름도 써놓고 수결(手決)을 했다. 그때 문자성이 계백을 똑바로 보았다. 말씀하신 반역도의 수장(首將)은 바로 왕비이십니다. 그러나 여러 번 이 사실이 대왕께 보고 되었지만 선왕(先王)시대부터 조치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왕의 묵인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계백은 듣기만 했고 문자성의 말이 이어졌다. 소장은 대왕께 반역했습니다. 따라서 대왕 앞에서 죄를 심판받고 싶습니다. 그때 계백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교활한 놈. 대왕 앞에 설 때까지 시간을 벌어보려는 수작이구나. 그순간 계백이 번쩍 손을 들었다. 쳐라! 그때다. 마당쪽에서 밧발같은 화살이 날아와 수군항 장수 다섯명의 몸에 꽂혔다. 미리 궁수들에게 표적을 알려준 터라 실수가 없다. 마당 건너편 담장 위에 상반신을 내놓은 궁수 20여명이 쏜 것이다. 거리는 30보 미만이었으니 단 한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주연 좌석이 술렁거렸다가 곧 잠잠해졌다. 그때 화청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 더러운 놈들의 시체를 치워라! 그러자 청 안채에서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시체들을 떠메고 내려갔다. 다시 청 안이 조용해졌을 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대왕께는 내가 따로 말씀 올리겠다. 수군항의 역적 무리는 이것으로 소탕한 셈으로 치겠다. 계백의 시선이 수군항의 남은 장수들에게 옮겨졌다. 너희들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을 것 아닌가? 방관은 동조보다 더 비겁하고 나쁘다. 계백의 목소리가 엄격해졌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국창의 반역에 가담한 무리만 제외하고 내가 사면을 해줄 테니 그것을 대왕에 대한 충성으로 보답하라. 남은 수군항 장수들이 머리를 숙였고 윤진이 대표하듯이 말했다. 덕솔께서 수군항을 정화시키셨습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육지의 군사들과 함께 해적을 격멸시킬 수 있습니다. 주연이 끝난 후에 청 안에는 계백화 화청, 육기천과 윤진, 백용문 등 한산성과 수군항의 주요 지휘관만 남았다. 덕솔, 수군항의 장졸이 뒤숭숭 할 것입니다, 하룻밤에 지휘관 다섯이 떼죽음을 당한 데다 지난번에는 국창 이하 지휘관 여섯이 몰사했지 않습니까? 윤진이 말을 이었다. 남은 장졸을 위무시켜 주셔야 됩니다. 윤진은 35세. 10여년간 전장을 누빈 무장이다. 수군항의 수병장(水兵將)으로 배속받은 것은 3년전. 그동안 전선을 타고 바다 건너 담로까지 여러 번 다녀왔다고 했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기강이 풀린 군대를 위무해준답시고 어루만지면 더 느슨해지는 법. 이번에 전 선단을 이끌고 해상 순찰을 나가도록 하지. 계백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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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3 20:54

[불멸의 백제]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①

계백이 한산성주 겸 수군항 항장으로 임명된 것은 그로부터 열흘 후다. 도성에서 온 의자왕의 사자(使者)인 전내부 도사는 계백이 4품 덕솔(德率)로 승급했다는 어명을 전했다. 그날 저녁, 한산성의 청에는 수군한 지휘관들까지 모두 모였다. 계백의 승급과 항장 취임을 축하하는 주연이 열린 것이다. 모두 한마디씩 축하 인사를 끝냈을 때 수군항의 나솔 윤진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전(前) 항장 국창님께서 해적에게 당해 수중고혼이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렇소. 하지만.” 옆에 앉은 장덕 백용문이 거들었다. “나솔 백안과 한솔 목덕춘님도 함께 가셨으니 외롭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둘은 국창과 그 추종세력들이 계백에게 몰사당한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화청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어쨌든 한산성과 수군항 항장을 덕솔께서 겸임하게 되셨으니 이제는 수륙 합동작전으로 해적을 격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오.” “과연.” 윤진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저승에 계신 국창님도 반기실 것이오.” 계백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수군항의 지휘관이 10여명, 절반쯤은 기가 죽은 분위기다. 죽은 국창의 일파였던 자들이다. 그동안 그들이 안절부절한 상태로 수없이 회의를 했고 두 번이나 도성으로 밀사를 보냈지만 화청과 하도리 등 한산성의 장수들이 쳐놓은 그물에 다 걸렸다. 그래서 계백은 국창의 일파가 누군지 샅샅이 알게 되었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나는 바다 건너 연남군의 기마대장 출신으로 본국에서 온 전함을 보면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모두 숨을 죽였고 계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국경을 맞댄 당(唐)의 수군(水軍)은 대백제의 전함을 보면 아예 도망질을 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본국의 실상을 보니 해적의 침략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니 놀랍다.” 계백의 시선이 국창의 일파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구나 수군항 항장까지 해적선의 공격을 받아 실종되다니 기가 막힌다.” 국창의 일당으로 도성의 왕비에게 밀사를 두 번이나 보낸 지휘관은 다섯명, 밀사를 잡아 밀서 내용을 보았더니 일당들은 국창을 계백이 살해해서 수장시킨 것으로 믿고 있었다. 지금 계백의 눈앞에 그 지휘관 다섯이 앉아있는 것이다. 밀서를 함께 읽은 화청과 윤진 등은 그들을 모두 죽이자고 했다. 그리고 오늘이 그 기회인 것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대백제는 해상강국이다. 수백년 전부터 남방의 담로를 지나 인도, 페르시아까지 상선을 보내왔다. 그런데 해적이 본토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도록 놔두다니.” 계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구나 도성의 대왕께서는 이 위기를 보고받지도 못하셨다. 이것은 수군항 지휘관의 반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옳습니다.” 화청의 질그릇 깨지는 것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장도 내륙의 전선을 수년 간 돌아다녔지만 해적이 횡행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반역도의 짓입니다.” 이제 다섯 지휘관의 얼굴은 사색(死色)이 되었다. 청 안 분위기가 얼음 구덩이 안처럼 차가워졌고 살기가 덮였다. 그때 계백이 이 사이로 말했다. “수군항 지휘관 중에서 이 사실을 시인하는 자가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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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31 19:40

"해운문학상 통해 바다에 대한 관심 많이 가져달라"

제12회 해운문학상시상식이 바다의 날인 지난 3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주)국제해운(대표 윤석정)이 주최하고 전북문인협회(회장 류희옥)가 주관하며, 해양수산부전북일보가 후원한 해운문학상 시상식에는 수상자인 배환봉(바다사랑상), 안연희(대상시 출항의 새벽) 씨를 비롯해 조정제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총재(전 해양수산부장관), 임병찬 전북애향운동본부 본부장, 김철성 군산 컨테이너 터미널 사장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윤석정 국제해운 대표(전북일보 사장)는 바다는 무한한 생명력과 상상력의 원천이라며 해운문학상을 통해 바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조정제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총재는 12년 째 해운문학상을 이어오고 있는 것에 대해 윤석정 대표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매년 작품 심사를 맡는 전북문인협회에게도 감사하고 계속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임병찬 전북애향운동본부장은 금전적 여유가 있어도 인간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에 투자하지 않는데, 지역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 기업에서 하고 있다며 좋은 작품이 계속 발굴돼 상의 권위가 더욱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배환봉 작가는 금 1냥과 손목시계를, 안연희 작가는 300만 원을 부상으로 받았다. 안 씨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바다에 대한 끝없는 동경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나의 바다를 위해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배 씨도 묵묵히 창작하는 문인을 찾아서 주는 상이기에 더욱 값지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운문학상은 바다의 날에 맞춰 바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해양문학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매년 공모를 통해 선정하는 문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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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8.05.31 19:40

가슴에 조용히 스미는 사람냄새

나와 너 사이로 바람 분다면/ 눈 녹고 꽃 피는 일이 우리 사이의 일이겠다/ 그런 이유로 마냥 봄인 날들,/ 피는 꽃의 향기는 네게 닿고/ 꽃 향이 내게 올 때 너도 함께 묻어오겠다/ 너와의 사이라면 바람에 꽃잎 지는 것도 나는 춤이라 여기고/ 낙화도 하냥 꽃이라 하겠다 쓸어내지 않겠다(오창렬의 시 바람 지날 만한 중) 오창렬 시인이 10년 만에 시집<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모악)를 펴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시공간을 아우르는 시어로 메우는 오 시인. 사이는 간격이기도 하고 여지, 어떤 지점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곳과 저곳 사이에 무수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나의 이야기이면서너의 이야기를 말하는가하면, 내 이야기도 네 이야기도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한다. 김완준 모악 출판사 대표의 말대로 펼치면 천일의 시간이지만 접어놓으면 딱 하룻밤 이야기 같은 시집이다. 박성우 시인은 오 시인의 작품을 두고 시인의 격과 결을 고대로 닮은 고요하고 고결한 시편들이라고 말했다. 잘 여문 시의 씨앗에서는 꽃냄새와 샘물냄새와 사람냄새가 난다. 오태환 시인은 그리움의 정서가 촘촘히 배어 아스라한 빛깔로 채색된 시집이라고 평했다. 명륜당에 앉아 황금빛 우러르는 사람들,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데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걸 끄덕끄덕 배우는 눈빛에 반짝, 반짝, 금물이 든다( 미인 중) 여러 겹의 무늬가 겹쳐 있는 오 시인의 작품은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시의 무늬와 색감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는 독자의 가슴속으로 고여 들면서 짙어진다. 오 시인은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살고 있다. 1999년 계간시지 <시안>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8년 시집 <서로 따뜻하다>를 펴냈다. 제8회 짚신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개정교육과정2015년 개정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등에 시 부부, 가을밤이 수록됐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5.31 19:40

'상처투성이 한국 법치주의'를 향한 충고

악을 벌하고 선을 지켜주는 여러 장치, 그중에서도 사법부가 온전하게 제 소임을 다해야 한다. 권력에 예속되거나 그와 야합하는 검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요체야말로 바른 세상을 이루어나가는 데 으뜸가는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주권자는 부도덕한 정치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 표를 주거나, 연달아 속으면서도 속는지도 모르는 지배의 객체, 애국과 해국의 분별을 모르고 착각에 안주하는 존재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문 국가의 허상과 주권자의 민낯 일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으로 사법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법치가 정의와 민주주의의 정도(正道)를 상습적으로 벗어나는 현실에 대한 개탄의 목소리가 들끓는다. 올해로 정확히 60년 동안 법조인으로 살아온 한승헌 변호사의 신간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는 법조인으로 후배들에게 건네는 충고, 지식인으로 국민들에게 전하는 조언과 같다. 법치의 마지막 담보 또는 보루라 할 사법부가 신뢰를 잃은 현 상황에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책에는 그가 했던 강연, 강의, 인터뷰, 대담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의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해답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과거의 기억이 주류를 이룬다. 과거를 바로 알아야 미래를 바로 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들의 망각을 방지할 의무가 지식인들에게 있다고 역설하는 데, 이 책도 망각 방지와 기억 투쟁이란 명분이 작용했다. 그는 법치주의의 본질, 지향점에 대한 오해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법치주의는 국민에 대한 치자(治者)의 하향적 준법 명령보다는, 치자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상향적 견제를 본질로 한다. 하지만 한국의 법치주의는 상향성과 하향성이 뒤바뀌어 치자 준법의 일탈은 제쳐놓고 피치자의 준법만 강요하는 전도 현상을 드러냈다. 또 주권자인 국민들이 주권자다운 도리를, 선택을 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국민은 투표하는 순간만 주권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야만 그들만의 나라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 변호사는 우리가 바라는 역사의 진보나 변혁은 일부 정치세력의 독주가 아닌 언론, 지식인, 시민사회, 직능단체 그리고 청년 학생층의 역량과 능동적 참여가 따라야 한다며 또 독재나 압제와의 투쟁 능력 못지않게 민주 쟁취 후의 관리능력, 즉 국가경영능력의 차원에서 국민의 신뢰와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5.31 19:40

[불멸의 백제] (104) 5장 대백제(大百濟) (20)

상인으로 변복을 한 계백이 도성에서 대좌평 성충과 마주 앉았을 때는 저녁 술시(8시) 무렵이다. 저택의 밀실에는 지난달 전내부(前內部) 좌평이 된 흥수와 동방방령 달솔 의직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전내부는 내관(內官) 12부 중 선임으로 왕명의 출납을 전담하는 부서이며 성충은 외관(外官) 12부 중 선임인 사군부(司軍部) 장령으로 병관좌평이며 5좌평 중 좌장이다. 내외관(內外官) 각각 12부 중 수석부서의 장이 다모인 셈이다. 동방(東方)은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막강한 군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신라의 대야주는 남방군의 기습전으로 공취를 했지만 백제 주력군(主力軍)은 동방군(東方軍)이다. 계백이 국창의 밀사 양하를 죽인 것부터 어제 수군항 항장 국창 이하 추종 세력들을 수장(水葬)시킨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듣기만 하던 셋의 분위기는 무겁다. 성충이 다시 처음부터 진상을 말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계백이 왔다는 기별을 받자 성충이 둘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먼저 성충이 입을 열었다. 태왕비께서 살아 계시는 한 왕비의 행동을 저지시키기는 어렵소. 어찌 생각하시오? 그때 흥수가 계백에게 말했다.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한솔, 나이든 우리가 무기력해서 한솔한테 다 떠넘기는 것 같네. 아니올시다. 이제 대감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왕(先王)시대에 해결해야 했어. 길게 숨을 뱉은 흥수가 성충을 보았다. 대좌평, 내가 대왕께 수군항 항장을 한산성주 계백이 겸임하도록 상주하겠소. 그러니 병관좌평께서 동의를 해주시면 대왕께서 선선히 받아들이실 것이오. 그렇지. 성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 왕비 사주를 받는 8족 놈들도 입을 다물겠지. 그때 의직이 나섰다. 국창과 그 일당들이 실종된 것에 대해서 왕비 일파가 의심할 것이오. 아직도 수군항에 국창 세력이 남아있을 테니 당연한 일이지. 머리를 끄덕인 성충이 계백을 보았다. 한솔, 그대의 공(功)으로 치면 나솔에서 한솔 일등급 승진은 부족했네. 나하고 전내부 장령이신 내신좌평이 그대를 덕솔로 승진시키려고 하네. 그러자 흥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왕께선 두말하지 않으실거네. 역시 덕솔로 수군항 항장까지 겸임하는 것이 맞습니다. 의직도 거들었다. 수군항에서 국창의 실종 신고가 올테니 그때 우리가 상주하기로 하지. 흥수가 결론을 내었고 의직이 계백에게 다시 조언했다. 이보게, 한솔. 그동안 국창 일파를 면밀하게 탐문해놓게. 한산성이 소속된 서방의 방령 해재용도 지금까지 수군항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어. 해재용에 대해서도 잘 알아보게. 예, 방령. 계백이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갈수록 썩은 뿌리가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하룻밤 묵지도 않고 밤길을 달려 성으로 돌아오던 계백에게 수행한 하도리가 물었다. 나리, 전장(戰場)에는 언제 나갑니까? 무슨 말이냐? 계백이 말의 속력을 늦추면서 옆을 따르는 하도리를 보았다. 밤길, 두필의 말이 텅 빈 국도를 질주하는 중이다. 그때 하도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차라리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 편합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05.30 20:38

[불멸의 백제] (103) 5장 대백제(大百濟) 19

아니, 저놈. 그때 막 전선(戰船)에 오른 군사를 본 국창이 눈을 크게 떴다. 체격이 커서 시선을 준 참이었다. 군사 복장에 장검을 찬 사내, 바로 한솔 계백 아닌가? 저놈이? 그때는 이미 계백이 국창의 다섯걸음 앞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널판지를 타고 오른 순시선의 군사는 10여명, 그때 계백이 허리에 찬 칼을 쑤욱 빼들면서 소리쳤다. 한산성주 계백이 역적 국창을 죽인다! 쳐라! 그순간 국창은 한걸음 물러서면서 허리의 칼을 빼들었지만 계백은 껑충 뛰어 두걸음 간격으로 다가왔다. 네 이놈! 놀랐지만 국창도 무장이다. 국창이 칼을 치켜든 순간 계백이 덮치듯이 달려오더니 장검을 옆으로 후려쳤다. 에익! 계백의 기합, 계백과 함께 내달려온 순시선의 군사들이 일제히 칼을 휘둘렀다. 으악! 국창의 비명이 처음으로 전선 위에 울렸다. 왼쪽 어깨에서 옆구리까지 비스듬히 베어진 국창이 쓰러지는 것을 신호로 배에는 비명과 고함소리로 뒤덮였다. 다 죽여라! 이것은 화청의 목소리다. 네 이놈! 하도리의 외침도 섞여졌다. 국창과 함께 홍도에서 주연을 즐기려던 무장들도 변변하게 대항도 하지 못하고 살육되었다. 국창이 계백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자 혼이 나갔기 때문이다. 전선에 오른 10여명의 군사는 계백의 직속 무장들이 변장을 한 것이다. 잠시후에 전선에 탄 국창 일행은 물론 병사와 수부까지 모두 살해되었다. 전멸이다. 불을 질러라! 이제는 화청이 지시했다. 수군항 항장 국창과 수하 장수들은 홍도에 놀러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실종된 것이다. 소리쳤던 화청이 맑은 하늘을 잠깐 보더니 덧붙였다. 해적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한식경쯤이 지났을 때 불에 타오르던 전선이 갑자기 선수가 물속으로 박히더니 곧 소용돌이와 함께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후에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다시 바다가 잔잔해졌을 때 바다위에는 판자 조각이 몇개 흩어져 있을 뿐 전함은 사라졌다. 수부들에게 입막음을 단단히 시켰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믿을만한 놈들입니다. 부상이 낫지 않아서 순시선에 남아있었던 나솔 육기천이 계백에게 말했다. 순시선은 뱃머리를 돌려 육지로 다가가는 중이다. 수군항 항장과 그 측근 무장들이 몰사했으니 왕비측에서 당황할 것입니다. 화청이 주름진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다시 측근들로 수군항 지휘를 맡기기 전에 손을 써야 할 텐데요. 이번에는 내가 대좌평을 만나고 와야겠어. 계백이 화청과 육기천, 하도리 등을 둘러 보았다. 3국의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인데 대백제가 왕비를 중심으로 하는 모반세력 때문에 내분이 일어난다면 큰일이네. 큰일이라고 표현했지만 왕국은 외부의 침공보다 내부의 모반 때문에 멸망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내부의 분란이 외척의 침공을 불러오기도 한다. 화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소. 한솔께서 다녀 오시는게 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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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9 20:33

[불멸의 백제] (102) 5장 대백제(大百濟) 18

“바다가 잔잔해서 마치 거울 위를 지나는 것 같소.” 나솔 백안이 국창에게 말했다. “ 은솔께서 곧 달솔이 되실테니 오늘은 미리 승급주를 마시도록 하지요.” “이 사람아, 내가 머리위에 혹이 하나 붙은 참인데 무슨 승급주인가? 홧술이나 마시자구.” 국창이 투덜거렸을 때 한솔 목덕춘이 나섰다. “그 놈이 윤충, 성충 형제의 위세를 믿고 날뛰는 것이오. 대왕께서 우리 대성(大性)가문을 아예 몰사시킬 작정으로 뜨내기 가문 놈들을 중용하기 때문이오.” 국창, 백안, 목덕춘 모두가 백제의 대성8족(大性八族)인 것이다. 무왕과 의자왕 시절에 이르러 왕권이 강화되면서 한성, 웅진성에 기반을 둔 대성8족이 쇠퇴되었고 불만이 쌓여졌다. 그때 국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를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왕비마마밖에 없어. 왕비마마는 여왕이 되시고도 남아.” “그렇습니다.” 백안이 맞장구를 쳤을 때 목덕춘이 앞쪽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순시선이 오고 있소.”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백제 순시선이다. 순시선은 돛 1개에 노꾼이 좌우로 12명씩 붙어서 속도가 빠르다. 연안 순시선으로 대해(大海)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빠른 속력을 이용하여 연안 순찰과 연락선 역할을 맡(?)는다. “홍도에서 오는 길인가?” 백안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홍도 방향에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시선은 높이가 낮고 앞이 뾰족해서 속력을 내면 앞이 들린다. 이제 순시선과의 거리가 5백보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선장인 무독이 소리쳐 보고했다. 이쪽은 전선(戰船)이다. 대선(大船)이어서 순시선보다 높이도 높고 길이도 2배는 된다. 돛은 2개지만 노가 없어서 바람을 타야 속력을 낸다. 전선에는 수부(水夫)15명에 군사 50명이 탈 수 있는데 오늘은 국창과 무장 10여명, 군사 20여명이 탔다. 놀러가는 길이어서 배에는 술과 안주가 가득 실려져 있다. 그때 선장 옆에 선 키잡이 수부가 다시 소리쳤다. “순시선에 10여명이 타고 있습니다!” 이제 거리는 3백보로 좁혀졌다. 양쪽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국창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선장에게 소리쳐 물었다. “깃발 신호를 해라!” “예, 항장.” 대답한 선장이 곧 수부에게 지시해서 깃발 신호로 물었다. “이곳은 사령선이다. 무슨 일이냐?” 깃발이 색깔별로 흔들리면서 묻자 곧 순시선에서 깃발 대답이 왔다. “급히 보고할 것이 있다!” “해적인가?” 이쪽에서 묻자 깃발 대답이 왔다. “그렇다.” “이런.” 깃발 신호를 읽은 국창이 입맛을 다셨을 때 순시선과의 거리가 1백보가 되었다. 국창이 지시했다. “백에서 널판지를 내려라.” “예, 항장.” 널판지를 순시선에 내려서 직접 보고를 듣겠다는 말이다. “해적을 발견했는가 봅니다.” 목덕춘이 말했을 때 곧 순시선이 전선 옆으로 붙더니 널판지를 붙잡고 고정시켰다. 그러더니 순시선에 탄 군사들이 널판지를 타고 전선으로 건너온다. 이쪽 전선의 군사들이 널판지를 잡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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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8 19:39

[불멸의 백제] (101) 5장 대백제(大百濟) 17

밀서를 읽고 난 성충이 앞에 앉은 하도리를 보았다. 사비도성의 남부 전항에 위치한 성충의 저택 안이다. 오후 술시(8시) 무렵, 하도리는 한산성에서 말을 달려 한나절만에 이곳에 도착했다. 갑옷은 먼지로 뒤덮였고 얼굴은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있다. 성충의 손에 쥔 밀서는 바로 문독 양하가 왕비에게 전하려던 국창의 밀서다. “큰일이다.” 성충이 한숨과 함께 말을 잇는다. “한솔은 이 밀서만 전하라고 하더냐?” “예, 대감.” 하도리가 똑바로 성충을 보았다. “대감께서 알아서 판단하실 것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 이 밀서를 가져가던 놈, 문독 양하는 죽였느냐?” “예, 죽여서 묻고 말을 소인이 끌고 오다가 빈 말로 버렸습니다.” “잘했다.” “그럼 소인은 돌아갑니다.” 하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자 놀란 성충이 말렸다. “이 시간에 돌아가? 3백리 길을 달려왔지 않느냐?” “말이나 바꿔줍시오.” “그러지. 그럼 내가 한솔에게 답장을 쓸 동안 좀 먹고 쉬도록 해라.” 성충도 서둘러 일어섰다. 하도리가 돌아왔을 때는 다음날 오후 신시(4시) 무렵이었으니 만 하루 만에 600여리를 주파한 강행군이다. “나리, 대감의 답신을 가져왔소.” 성안의 밀실에서 만난 하도리가 품에서 밀서를 꺼내 내밀었다. 목소리는 씩씩했지만 몸이 늘어져서 눈꺼풀이 감기는 중이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장하다. 문독.” 하도리를 칭찬한 계백이 성충의 밀서를 펴 읽는다. “한솔 보게. 역적의 밀서를 읽고 통분한 심정을 가누기 힘드네. 그러나 대사(大事)를 경솔히 처리할 수는 없는 법, 국충과 내 휘하의 병관부 달솔 진재덕, 그리고 왕비까지 연루된 사건인 바 신중하게 처리해야 될 것이네. 그래서 먼저 한솔이 국충과 그 일당을 제거해주기 바라네. 방법은 한솔에게 맡기겠네. 내가 다시 연락을 할 것이나 매사 신중하게 처리해주게.” 이것이 성충의 답신이다. 머리를 든 계백이 하도리에게 말했다. “너는 쉬어라. 큰일을 했다.” 계백의 표정은 어둡다. 그날 밤 계백의 처소에는 나솔 화청과 육기천, 수군항에서 불러내온 윤진과 백용문까지 심복 무장들이 다 모였다. 계백이 먼저 자신이 왕비에게 가는 밀사 양화를 죽인 것부터 말하고 성충의 밀서를 꺼내 모두 읽도록 했다. 그동안 방안은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이윽고 모두 읽기를 마쳤을 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국창을 없애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국창은 왕비한테 밀사로 보낸 양하가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기다리는 중일거요.” “그렇습니다.” 나솔 윤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양하가 돌아오지 않으면 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오전에 국창이 전함을 타고 홍도에 순찰을 갑니다.” 장덕 백용문이 말했다. “그 전함에는 국창의 심복 무장들이 다 타고 따르지요. 홍도 수군기지에서 조련을 핑계삼아 놀다가 오는 것이지요.” 홍도는 서쪽으로 40리 떨어진 섬으로 수군 초소가 있다. 풍광이 좋고 가까워서 놀기가 좋은 섬이다. 계백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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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7 18:43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2. 오빠와 누나, 언니 - '어린, 미숙한'·'여형제'·'처음'서 의미 변화

많은 친족 어휘 가운데 ‘오빠’와 ‘누나’는 어원 연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어휘에 속한다. ‘오빠’는 논의 자체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없고, ‘누나’는 논의 자체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오빠’와 ‘누나’의 어원 설명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들과 형태론적 계열 관계에 있는 다른 친족 어휘와 비교해 보면 단어 형성이나 형태 변화 과정을 그런대로 설명할 수 있고, 친족 어휘 전체에 적용되는 명명의 원리를 고려한다면 의미 변화의 문제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오빠’와 관련된 단어는 후기 중세국어에는 보이지 않고 근대국어 문헌인 <화음방언자의해>에 ‘올아바’로 처음 보인다. 여기서 ‘올아바’는 ‘오라바’에 대한 분철 표기며 ‘오라바’가 후기 중세국어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아주 일찍부터 평칭의 호칭어로 쓰였다. 존칭형 ‘오라바님’을 통해서도 ‘오라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국어 친족 어휘의 존칭형은 평칭의 호칭어에 ‘-님’이 결합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오라바님’의 ‘오라바’가 의당 평칭의 호칭어가 되기 때문이다. ‘오라바’는 ‘올-’과 ‘아바’로 분석된다. ‘올-’은 올밤, 올벼 등에 보이는 ‘올-’과 기원이 같다. ‘아바’에 선행해 이른, 어린, 미숙한 정도의 의미를 보인다. ‘아바’는 본래 ‘부(父)’에 대한 평칭의 호칭어이다. 그런데 ‘오라바’에서 ‘아바’는 ‘부(父)’의 의미가 아니라 ‘남자’의 의미를 보인다. 따라서 ‘오라바’는 ‘아버지보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 정도로 해석된다. ‘누나’와 관련된 말은 후기 중세국어에도 문헌이 나타나지 않는다. 근대국어 이후에 조어된 단어로 추정되고 ‘누니’에 호격의 ‘아’가 결합된 ‘누니아’가 축약된 형태로 간주된다. 19세기 말 <한영자전>에 ‘누나’가 처음 보였으며 이후에는 실제 많은 용례를 보인다. 이때 ‘누나’에 ‘여동생’의 의미가 있었다. ‘누나’의 본래 의미는 ‘여형제’이고, ‘여형’(女兄)과 ‘여제’(女弟)의 의미도 갖는다. 그런데 지금은 의미가 축소돼 ‘여형’의 의미만 보인다. ‘언니’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언니’의 어원을 ‘앗, 엇’에 접미사 ‘-니’가 결합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이때 ‘앗, 엇’은 ‘처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앗니, 엇니’는 ‘초생자’(初生子)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손위 여자 형제나 손위 여자를 이르는 말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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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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