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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사람이 말하는 '전북 회생 방안'

왜 전북은 낙후를 면하지 못하는가. 언제나 전북이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 관련 통계가 나올 때마다 중앙정부의 홀대, 전북 출신 중앙관료 부재 등의 남 탓 이유가 머리를 든다. 전북이 국가경제발전과정에서 타 지역에 비해 소외된 측면이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자원화주도화하지 못한다는 평도 많다. 이제 불평보다는 어려움에 대한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할 때, 전북의 정체성과 문화, 자산과 산업을 지역특화산업으로 묶는 낙후지역 생존전략에 대한 교과서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초대 균형발전비서관으로서 국가균형발전특별법개정, 혁신도시특별법개정 등 강력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한 황태규 우석대 교수가 지역혁신성장론 <지역의 시간>(굿플러스북)을 냈다. <지역의 시간>은 황 교수가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제 실행에 옮긴 경험을 토대로 지역균형발전 실행 모델을 제시한다. 문재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밑그림을 어떻게 현장에 적용할 것인지도 접목했다. 책은 전북지역의 낙후 원인과 개괄적인 회생전략을 담은 제1부 지역회생 골든타임과 도내 14개 시군별 생존전략을 담은 제2부 지역주도 특화성장 등 총 2부로 구성된다. 전북의 지역 가치는 한반도의 경제문화적 수도권이라는 황 교수는 지역 회생전략을 크게 문화관광산업교통글로벌지역대학 특화 분야로 나눠 소개한다. 시군 생존전략은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임실은 치즈에 유일한 스토리를 입힐 것, 순창은 식품가공산업에서 음식관광산업으로 도약할 것, 부안은 국내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의 도시 이점을 잘 활용할 것, 전체 농가 70%를 중산층으로 끌어올린 장수는 인적산업 순환 체제를 갖춘 독자적인 농촌 성공 모델을 만들 것 등을 조언했다. 최근 한국GM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돼 큰 타격을 입은 군산에 대해서는 물류시설 규모 확대, 물류산업 활성화를 위한 개방적인 문화와 유연한 정책을 조언했다. 무엇보다 급격한 경기변동을 견딜 수 있는 완충산업으로 김, 박대 등 수산업 확대를 강조했다. 일본 오이타현의 사가노세끼를 사례로 들며 중공업지역이 어업지역으로 바뀌는 산업재생 모델을 제시했다. 황 교수는 현장에서 만난 전북인들의 열정과 땀은 지난 8년 동안 내 삶의 원동력이었고 새삼 내가 전북인임이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며 더 다듬어야 할 아이디어도 있지만 새로운 지역발전의 동력을 만드는 데 단초가 되길 바라며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4.26 20:56

굳이 교훈 덧대지 않고 동심 엿본 섬세한 시선

서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쏘옥 튀어나갈게// 머리가 커지면/ 생각도 커지고// 생각이 커지면/ 할일도 많아지는 법// 너무 서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토실토실// 쏘옥 튀어나갈테니까요. ( 밤 토실 전문) 전 전북일보 사장인 김남곤 시인이 첫 동시집 <선생님이 울어요>(신아출판사)를 펴냈다. 2년간 쓴 동시 67편이 담겨 있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동심의 행동과 마음을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꽃이나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는 진심으로 동심의 심연을 엿본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사물들의 말을 찾아내 재미있게 들려준다. 부끄러움을 알면/ 사람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면/ 짐승이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어떤 사람은 사람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짐승으로 살고. ( 쉬운 말 어려운 말 전문) 특히 쉬운 말 어려운 말과 개구리의 빈정거림, TV야 등 그의 동시에서는 교육자적 상상과 정신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흔히 인간성 회복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 중에는 교훈의 노출이라는 덫이 있기 마련. 그러나 우리는 교훈을 덧대지 않는 시인의 특별한 시선에 주목하게 된다. 또 평소 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인과 수필가, 소설가, 아동문학가 등 문인뿐만 아니라 한국서양화가, 서예가 등이 예쁜 그림을 그려 동시집을 알록알록하게 꾸며주었다. 김남곤 시인의 손녀와 국중하 수필가 외손녀, 전동희 시인 손자도 손을 보탰다. 65명이 그린 삽화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남곤 시인은 책머리를 통해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시, 그러나 조금쯤은 생각의 씨가 박힌 그런 동시를 쓰고 싶었다며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 한 발짝 키가 큰 생각으로 나도 보고, 너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보는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재균 아동문학가는 흔히 아동문학은 교육성, 문학성, 흥미(재미)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며 김남곤 시인은 교육성 문제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곤 시인은 1979년 시와의식으로 등단했다. 시집 <헛짚어 살다가><푸새 한 마당><새벽길 떠날 때><녹두꽃 한 채반>, 시선집 <사람은 사람이다>를 냈다. 산문집 <비단도 찢고 바수면 걸레가 된다>, 칼럼집 <귀리만한 사람은 귀리> 등이 있다. 전북문인협회장, 전북예총회장, 전북일보 사장을 지냈다. 전북문학상, 한국문예상, 전북문화상, 목정문화상, 해운문학상, 중산문학상, 진을주문학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4.26 20:56

[불멸의 백제] (80) 4장 풍운의 3국(三國) 18

수렵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사신 일행과 식사를 마친 계백이 상을 물렸을 때 연개소문의 위사장 연가복이 서둘러 진막 안으로 들어왔다. 장군, 전하께서 급히 오시랍니다. 화청, 유만과 함께 앉아있던 계백이 긴장했다. 무슨 일이오? 연가복은 연개소문의 친척이다. 연씨 가계여서 뼈대가 굵고 칼을 3개나 찼다. 예, 신라의 김춘추가 국경을 넘어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연가복의 수염투성이 얼굴에서 눈이 웃음을 띠고 있다. 사신으로 국경을 넘어온 것입니다. 사신으로? 예, 전하께서 그 일로 뵙자고 합니다. 계백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따라 일어선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고구려에 백제, 신라의 사신이 동시에 들어왔군요. 다급했기 때문이지요. 유만이 따라 웃었다. 뭐라고 말할지 뻔합니다. 계백은 서둘러 연가복을 따라 진막을 나왔다. 연개소문의 진막은 바로 옆쪽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측근 고관들과 함께 앉아있던 연개소문이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위사장한테서 들었는가? 예, 전하. 김춘추가 남부(南部)고합성에 들어왔으니 사흘 후면 이곳에 닿을 거네. 어깨를 편 연개소문이 짧게 웃었다. 그놈이 다급했어. 허나 대담합니다, 전하. 앞쪽에 앉은 계백이 연개소문을 보았다. 차기 왕을 노리는 인물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단신으로 들어온 것 아닙니까? 적이지만 용기가 가상합니다. 칭찬인가? 예, 전하. 과연 그렇구나. 머리를 끄덕인 연개소문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계백, 김춘추가 뭐라고 말할지 예상이 되는가? 예, 전하. 말해보라. 백제가 신라의 명운을 끊게 되었으니 이제 고구려는 등 뒤로 강적을 맞게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 주위가 조용해졌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고구려 영토였던 한수 하류의 신주(新州)를 1백 년 만에 반환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긴 내버려두면 곧 백제에게 빼앗길 테니까. 고구려가 대륙 정벌을 하는 동안 신라는 백제를 견제하고 신하(臣下)국으로 조공을 바친다고도 할 것입니다. 여왕을 내 첩으로 준다는 말은 안할까? 연개소문이 정색하고 말했기 때문에 둘러앉은 고관들은 눈만 끔벅였다. 그때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하, 김춘추와 비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시지요. 그렇군. 마침내 연개소문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더니 둘러앉은 고관들을 보았다. 너희들도 들었느냐? 예, 전하. 고관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지난번 영류왕 건무를 참살했을 때 연희장에 모였던 고구려 5부대인(大人), 물론 서부대인 연개소문을 제외한 4부대인과 고관 전원을 죽였다. 그래서 모든 고관은 연개소문의 심복으로 심어진 셈이다. 고관들이 일제히 대답했을 때 연개소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신라 차기 왕(王)을 정해야 되겠구나. 자, 돌아가자.

  • 문학·출판
  • 기고
  • 2018.04.25 21:11

[불멸의 백제] (79) 4장 풍운의 3국(三國) 17

그날 저녁, 황야에 수십개의 진막이 세워졌고 그 중앙에 위치한 대형 진막 안에서 10여명이 둘러앉아 저녘을 먹는다. 오늘 낮에 사냥한 노루와 멧돼지, 꿩과 토끼가 놓여졌고 그것을 안주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연개소문의 좌우에는 세 아들이 앉았는데 남생(南生), 남건(南建), 남산(南産)이다. 그 옆에는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앉았고 심복 축조 셋에다 손님으로 계백과 화청, 유만이다. 술잔을 든 연개소문이 세 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잘 들어라. 힘을 합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면 대륙의 패자(覇者)가 되겠지만 갈라지면 망한다. 알겠느냐?” “예, 아버님.” 세 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남생(南生)이 장남이며 남건이 둘째, 남산이 셋째다. 세명 모두 체격이 큰 20대이며 모두 용맹한 무장(武將)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당은 신라를 부추켜 백제와 고구려의 대륙 진출을 방해해왔지만 이제야말로 기회가 왔다. 백제가 대야주를 공취함으로써 신라가 뒤를 칠 염려가 없을 때 우리는 대륙을 정벌한다.” 진막 안이 숙연해졌다. 광개토대왕, 장수왕에 이어서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집권 하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백제 또한 동성왕 시대에 대륙에 기반을 닦은 이후로 다시 기회를 맞게 되었다. 술좌석이 끝났을 때는 자시(12시) 무렵이다. “계백, 그대는 잠깐 남으라.” 모두 일어나 인사를 하고 진막을 나갈적에 연개소문이 계백에게 말했다. 잠시후에 진막 안에는 연개소문과 계백 둘이 남았다. 진막 기둥에 걸어놓은 기름등이 흔들리면서 연개소문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때 연개소문이 입을 열었다. “영웅 항우도 적토마와 함께 죽었고 한고조 유방 또한 죽어서 이미 흙이 되었네.” 숨을 들이켠 계백을 향해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도 언젠가는 말씻는 종과 똑같이 죽는다는 말이네.” 계백은 시선만 주었고 연개소문의 말이 이어졌다. “인간 수명처럼 권력도 끝이 있어, 무슨 말인지 아는가?” “알겠습니다, 전하.” “끝없는 욕심이 제 명을 재촉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법이지.” “....” “내가 건무를 죽여서 토막을 낸 것은 고구려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욕심이었어.” 어깨를 부풀린 연개소문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나 내 한계는 알아. 무리한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는 말이네.” 연개소문이 눈동자의 초점을 잡고 계백을 보았다. “내 아들 셋을 보았지?” “예, 전하.” “남생이 그대보다 세살 아래인 스물셋이고 남건이 스물하나, 남산이 스물이야.” 눈을 가늘게 뜬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세놈 다 용장(勇將)이지. 허나 멧돼지처럼 저돌적이고 욕심만 충천한 놈들이야. 일국(一國)을 다스리기는 커녕 1천명 군사나 지휘할 수 있는 놈들이지. 내가 그놈들 그릇을 알아.” “....” “내가 죽으면 세놈이 서로 싸울 거네, 나라가 어떻게 되건 권력을 가지려고 서로 죽이겠지.” “....” “측근, 또는 참모의 말 따위는 듣지도 않는 놈들이야. 내가 잘못 가르쳤어.” “....” “내가 죽기 전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시키고 싶다고 대왕께 전하게.” 계백이 숨만 들이켰을 때 연개소문의 말이 이어졌다. “고주몽의 아들 온조가 백제를 세웠다가 다시 아버지의 나라 고구려를 품에 안게 되는 것 아닌가? 난 내 아들놈들한테 고구려를, 이 대망(大望)을 맡기고 싶지가 않네.” 이것이 연개소문의 대답이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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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4 20:56

[불멸의 백제] (78) 4장 풍운의 3국(三國) 16

“당(唐)의 인구는 수(隨)의 전성기 때 인구의 삼분의 일 밖에 안 되네.” 말을 몰고 수렵장으로 들어서면서 연개소문이 소리치듯 말했다. 목소리도 큰데다 거침없는 성품이어서 들판에서도 멀리까지 퍼진다. 연개소문이 계백을 보았다. “백제의 주민은 7백만이 넘어. 그렇지 않은가?” “예, 전하.” “고구려도 7백만이야.” 계백이 알기로는 고구려는 650만이다. 백제는 7백보다 많은 720만이고 신라는 5백만쯤 되었다.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들판을 울렸다. “고구려와 백제만 합해도 1400만이야. 지금 당은 1500만 정도다. 더구나 이민족이 섞인 집단이야.” “그렇습니다.” “고구려, 백제는 같은 왕조에서 분리된 형제국이다. 그렇지 않은가?” “예, 전하” 6백여년 전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은 졸본부여왕의 둘째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그 온조가 백제의 시조인 것이다. 연개소문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황야에 잠깐 말굽소리만 울렸다. 지금 2백여기의 기마대가 황야를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연개소문의 시조(始祖)이야기는 부질없다. 6백여년 전의 세월이 흐르면서 고구려와 백제는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서로 왕까지 죽이고 배신을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다시 머리를 돌린 연개소문이 계백을 보았다. 눈이 깊은 우물같다. “백제 대왕이 사신으로 그대를 보낸 이유를 짐작하겠다.” 연개소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대가 대륙 서쪽의 백제령 담로에서 당군(唐軍)과 수없이 전투를 치렀지 않은가?” “네, 그렇습니다.” “전략을 상의하라는 것이겠지.” “네, 대왕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군(唐軍)의 전력은 어떤가?” “강합니다.” 연개소문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정색했다. “이세민은 군을 재정비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한데다 세금을 감면하고 부패한 관리를 숙청해서 인망이 높습니다.” “……”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제 형제들과 그 자식들까지 몰사시킨 패륜을 선정으로 보상하려는 것 같습니다.” “무서운 놈이지.” “저와 함께 온 부사(副使) 나솔 화청이 한인으로 이연의 막장이었다가 백제에 투항한 인물입니다. 화청이 대막리지 전하께서 옛날 이연을 방문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뒤에 따라 오는가?” “부를까요?” “부르라.” 계백이 소리쳐 부르자 화청이 금방 다가와 마상에서 허리를 꺾어 군례를 했다. “늙었구나.” 화청을 본 연개소문이 대뜸 말하더니 묻는다. “태원에서 나를 보았느냐?” “그때 저는 검문소에 배치되어서 말씀만 들었습니다. 전하.” “그래도 인연이 기가 막히구나. 그후로 이연이 반란을 일으켰지?” “예, 전하. 고구려 서부대인의 자제분이 밀사로 오셔서 고구려군이 뒤를 밀어준다는 소문을 냈기 때문에 군사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때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이세민이 그런 소문을 냈겠지.” “예, 전하.” “내가 예상을 했다. 그래서 내가 태원유수 이연을 찾아간 것이니까.”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그때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내가 반란을 종용한 셈이지. 이세민이 말려들었고.”

  • 문학·출판
  • 기고
  • 2018.04.23 21:03

[불멸의 백제] (77) 4장 풍운의 3국(三國) ⑮

다음날 오전 사시(10시) 무렵, 오늘은 백제 사신 일행과 평양성 위쪽 50리쯤 떨어진 수렵장에서 사냥을 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연개소문이 늦게 청에 나왔다. 오늘부터 사흘간 수렵장에서 머물 예정인 것이다. 백제 사신에 대한 고구려 최고통치자의 최상급 대접이다. 함께 사냥을 가서 같이 사흘을 지낸다는 경우는 부자(父子)간, 형제간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에 앉은 연개소문이 측근인 태대형 고준에게 물었다. “어젯밤 백제 사신들이 잘 지냈느냐?” “예, 다 잘 지냈습니다. 하오나…….” “하오나 뭐?” “계백공이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연개소문의 눈썹이 솟아 올라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단 말이냐?” “아닙니다, 전하.” “그러면?” “같이 침상에서 잤다고 합니다.” “답답하군. 그럼 동침한 것 아니냐?” “예.” “이놈이 답답한 놈이군.” 성질이 급한 연개소문이 눈을 흘겼다. “동침하지 않았다고 했지 않느냐!”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말주변이 없는 고준이 쩔쩔매었을 때 옆에 서있던 막리지 요영춘이 나섰다. “계백공이 여자하고 같은 침상에서 잤지만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허, 하초가 부실한가? 겉은 멀쩡한 무장이던데….” 연개소문의 이마에 금방 주름살이 만들어졌다. 그때 고준이 나섰다. “아닙니다.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하.” “넌 답답하니까 입 다물어라.” 말을 막은 연개소문이 요영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예, 계백공이 여자한테 그랬다고 합니다. 내가 정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 여자하고 아직 밤을 같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너를 품는다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 그러니 같이 침상에서 자되 관계하지는 못하겠다.” 요영춘이 술술 말했을 때 연개소문은 다 듣고 나서도 한동안 눈만 끔뻑였다. 청안에 둘러앉은 무장, 고관들도 모두 입을 다물어서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허, 참.” 마침내 연개소문의 탄식이 청을 울렸다. “백제 무장의 인내심이 신(神)의 경지에 이르러있구나.” 연개소문이 말을 잇는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너희들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못합니다.” 대번에 고준이 말했을 때 연개소문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야 당연히 못하겠지.” 모여 앉은 무장 고관들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거나 어금니를 물어서 볼 근육이 단단해졌다. 모두 웃음을 참는 것이다. “정혼한 여자가 있는데 아직 관계를 못했다니, 이런 답답한 일이 있나? 여자가 병에 걸리기라도 했다는 거냐?” “아닙니다.” 어깨를 부풀린 고준이 나섰다. “이번에 대야성 싸움에서 죽은 신라의 투항무장 진궁의 딸이 바로 계백공의 부인이 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예,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는 고준이 기를 쓰고 설명을 했고 연개소문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고준의 설명이 끝났을 때 연개소문이 다시 탄복했다. “으음, 그래도 나는 참지 못했을 텐데 계백은 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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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2 19:36

[불멸의 백제] (76) 4장 풍운의 3국(三國) ⑭

“바로 그분이 대막리지셨군요.” 영빈관으로 돌아오는 계백에게 다가온 부사(副使) 화청이 열에 뜬 목소리로 말했다. 영빈관은 연개소문 대저택 안이어서 사신 일행은 걸어가고 있다. “무슨 말이야?” 계백이 묻자 화청이 옆으로 다가와 걷는다. 이제는 얼굴까지 상기되어 있다. “한솔, 제가 태원유수 휘하 막장이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지.” 이제는 부사(副使) 유만까지 옆으로 다가왔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때 성밖 검문소를 지키고 있었는데 유수한테 고구려 밀사가 왔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밀사가?” “예, 밀사가 유수를 만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문이 났어?” 그때 화청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지금에야 내막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솔.” “무슨 말이야?” “그 밀사는 대막리지가 맞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그 소문은 이세민이 일부러 퍼뜨린 것 같습니다.” 화청이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그 당시는 수(隨)의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가장 두려운 세력이 동북방의 고구려였지요. 양제의 대군을 두 번이나 몰사시킨 고구려가 쳐들어오면 반란군은 풍비박산이 될 것이었고 수는 단숨에 멸망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거든요.” “그렇겠군.” “그런데 대막리지가 다녀가셨단 말입니다.” 화청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어떤 소문이 난지 아십니까? 유수 이연의 뒤를 고구려 대군(大軍)이 밀어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하.” “그러자 주저하던 장졸들도 이연, 이세민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과연.” “이세민이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간교한 놈이 맞군요.” 유만이 그렇게 말했지만 계백은 숨만 들이켰다. 이세민의 빈틈없는 성품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시(戰時)에 맞는 군주가 있고 평시(平時)에 어울리는 군주가 있다고 했다. 이세민이 전시에 어울리는 군주다. 그날 밤 침소에 들었던 계백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침대 옆쪽에 여자 하나가 앉아있다가 일어섰기 때문이다. “누구냐?” 놀란 계백이 묻자 여자가 시선을 내린 채로 대답했다. “밤 시중을 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이런.” 방안에는 양초를 여러개 켜 놓아서 여자의 자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림자가 분명한 밤에는 여자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진다. 여자는 미색이다. 분홍빛 치마 저고리를 입었고 허리끈을 맨 허리는 잘록했지만 가슴과 엉덩이는 크다. 한동안 여자를 응시하던 계백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반강이라고 합니다.” 고분고분 대답한 여자가 계백의 뒤로 가더니 겉옷을 벗겼다. 익숙한 태도다. 계백이 뒤에 선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시중들 여자는 나한테만 왔느냐?” “아닙니다. 부사(副使), 사신 일행으로 온 군사까지 모두 여자가 갔습니다.” “어허.” 그러니 정사(正使)께서도 저를 그냥 보내지 마십시오.” 여자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띄워져 있다. 겉옷을 벗은 계백에게 여자가 헐렁한 침소 옷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제 앞에서 본 여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풀려 있다. “이곳은 고구려입니다. 고구려의 풍습을 따르시는 게 낫습니다.” 그때 계백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고구려 여자들이 기가 세구나.”

  • 문학·출판
  • 기고
  • 2018.04.19 20:18

88. 양말 - '서양 버선'…버선을 한자로 쓰면 '말'

우리가 신고 다니는 ‘양말’이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자어다. 원래 버선을 한자로 ‘말’(襪·버선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양에서 이 버선과 비슷한 것이 들어오니까 버선을 뜻하는 ‘말’에 ‘양’자를 붙여서 ‘양말’이라고 했다. 버선하고 양말이 이렇게 해서 달라졌던 것이다. 이렇게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양’자를 붙이거나 ‘서양’을 붙여 만든 단어들이 꽤 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랄 것이다. 몇 가지를 예를 들어 보자. ‘양철’도 ‘철’에 ‘양’자가 붙어서 된 말이다. 쇠는 쇠인데, 원래 우리가 쓰던 쇠와는 다른 것이 들어오니까 ‘철’에 ‘양’자만 붙인 것이다. 우리말에 ‘동이’라고 하는 것은 물 긷는 데 쓰이는 질그릇의 하나인데, 서양에서 비슷한 것이 들어오니까 여기에 ‘양’자를 붙여 ‘양동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다. 또 양은은 구리, 아연, 니켈을 합금하여 만든 쇠인데, 그 색깔이 ‘은’과 유사하니까 ‘은’에 ‘양’자를 붙여 ‘양은’이라고 한 것이다. ‘양재기’는 원래 서양 도자기라는 뜻이다. 즉 ‘자기’에 ‘양’자가 붙어서 ‘양자기’가 된 것인데, 모음 역행동화가 이루어져 ‘양재기’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말인데 서양에 다닌다는 뜻으로 ‘다닐 행’자 앞에 ‘양’을 붙인 무역회사를 ‘양행’이라 했다. ‘유한양행’이라는 회사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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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9 20:18

지우개는 지우기만 하는 물건일까

지우개는 정말 지우기만 하는 물건일까. 연필은 정말 쓰기만 하는 물건일까. 사고의 전환을 통해 지우개와 종이가 펼치는 엉뚱한 세상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전주 출신의 오세나 그림책 작가가 두 번째 신간 <지우개>(반달)를 냈다. 오 작가는 보름달을 보면서 저 달인 채워진 걸까, 비워진 걸까라는 생각을 종종했다면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고의 전환,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림책 <지우개>에서는 연필과 지우개의 기능이 뒤바뀐다. 연필로 글씨 위를 까맣게 칠해 글씨를 지워버리고, 까만 바탕을 지우개로 지워 그림이나 글씨를 만들어낸다. 사물에는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취지가 담겼다. 전북대 미술대학 한국화를 전공한 오 작가는 개인전도 5차례 열며 활발한 작업을 했었다. 하지만 거주지를 이전하고 출산을 하면서 의도치 않은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그림 못지않게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오 작가는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3년간의 준비 끝에 2013년 첫 그림책 <로봇 친구>가 나왔다. 오 작가는 요즘 그림책은 제10의 예술이라고 한다며 단순히 글과 내용을 묘사한 삽화로 구성된 과거의 동화책과 달리 요즘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환경, 업사이클링 등 평소 일상에서 잘 생각하지 않지만 논의해봐야 할 주제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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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8.04.19 20:18

소설 '혼불'의 가치를 탐구하다

일제강점기 전라도 토착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그려낸 최명희의 소설 <혼불>은 역사민속신화제도 등 우리의 전통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와 무수한 표현의 우리말 등 언어적 전략과 전통 복원에 대한 진정성은 그 자체만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그 저항의 감성은 한국문학에서 큰 가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읽을 때마다 다른 매력과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 소설 <혼불>이다. 서철원 전주대 객원교수가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20주기를 추념하며 <혼불, 저항의 감성과 탈식민성>(태학사)을 출간했다. 혼불학술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가 <혼불>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집필한 학술도서로, 소설에서 전통 복원의 의미가 민중의 역사와 민족 정체성 회복에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살폈다. 서 교수는 등장 인물의 생애와 체험적 요소가 작품 성격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 전통의 복원이 내용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 소설 속 매안마을 양반층을 중심으로 역사민속언어지리신앙신화 등이 다양하게 얽혀 내용이 이어진다. 거멍굴 하층민의 삶을 통해 민중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도 특징이다. 매안마을 양반층으로부터 부여받은 농토를 터전으로 한 소작농을 위주로 하위의 삶을 보여준다. 가진 자의 억압에 대한 저항도 포함돼 있다. 서 교수는 전통의 복원 의미와 민중의 역사는 거시적으로 민족 정체성 회복과 연관돼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등장인물간 전통 신분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갈등, 그리고 화해극복 과정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한국인의 정서 한의 공동체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혼불>은 민중 중심의 역사의식 또는 식민주의 저항극복비판의 의미가 담겨있는 탈식민, 민족정체성 회복의 문학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책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혼불>과 영화 아바타의 비교 연구를 담은 <혼불> 고쳐 읽기 부분이다. 서 교수는 <혼불>의 청암부인과 아바타 나비족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에이와(Eywa)의 공통점으로 여성성모성성을 찾아냈다. 대모신의 지위와 입장을 통해 두 인물의 현실 극복 의지에 초점을 두고 공통점을 분석했다. 그는 그간 <혼불>에 관해 연구했던 논문 자료를 바탕으로 원고보다 향상할 수 있는 지점까지 수정보완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면서 글 안에 흔들리는 춤결이 혼불의 한 가지 빛에 가서 닿으면 다행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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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8.04.19 20:18

[불멸의 백제] (75) 4장 풍운의 3국(三國) ⑬

그때 연개소문이 계백에게 말했다. 나는 등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야 하고 그대의 백제는 옆구리를 물려는 여우를 쳐야 되지 않겠는가? 예, 전하.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연개소문은 당(唐)을 거머리로 비유했다. 엄청난 비하다. 어깨를 편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이제 백제가 신라 우측의 대야주 42개 성을 공취했으니 신라는 영토의 3할을 잃었다. 여왕의 안위도 위험해질 것이야. 계백의 시선을 받은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상대등 비담이 차기를 노리고 있지만 김춘추가 만만한 놈이 아니야. 담로에서 성장한 계백은 신라 내부 사정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계백은 듣기만 했고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비담 일파는 왕위나 노리는 가소로운 놈들이지만 김춘추는 신라를 이끌어갈 놈이야. 더구나 김유신과 피로 엮인 사이다. 두 놈이 신라의 기둥이지. 예, 전하. 그때 무관들이 다가와 연개소문과 계백 앞에 국그릇만한 술잔이 놓인 작은 상을 놓고 갔다. 술잔에는 술이 가득 담겨 있다. 계백공, 들라. 술잔을 든 연개소문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마시고 나하고 그대하고 먼저 한잔씩 하자. 예, 전하. 연개소문이 벌컥이며 술을 마셨고 계백도 술잔을 들었다. 단숨에 잔을 비운 연개소문이 술잔을 내려놓더니 계백을 향해 웃었다. 내가 20여년 전 대륙을 유람했었는데 그때 태원유수 이연과 그의 아들 이세민을 만났었네.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이연은 곧 당의 고조(高祖)이며 이세민은 지금의 당 태종이다.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이연은 고구려 막리지의 아들인 나를 융숭하게 대접했는데 이세민을 시켜 근처 명승지를 안내해 주었네. 계백의 표정을 본 연개소문이 빙그레 웃었다. 이세민이 한 말이 기억나네. 내가 천하의 영웅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라고 하더군. 물론 내가 고구려인이라 듣기 좋게 한 말이겠지만 그때 이연은 수나라 태원유수였고 양제의 1, 2차 고구려 원정이 실패로 끝난 후였거든. 그렇군요. 이연은 이미 반심(反心)을 굳힌 터라 고구려 막리지의 아들인 나를 융숭하게 대접한 거야.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때 이세민이 그랬어. 제가 아버지를 부추겨 난을 일으킬 테니 고구려는 등을 치지 말아달라고 말이네. 이세민이 말씀입니까? 그놈이 그때부터 반란의 주역이었어. 애비 이연은 이세민이 시키는 대로만 했고. 과연. 그러다 이연이 장남 건성을 태자로 세웠으니 이세민이 가만있겠는가?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건성, 동생 원길의 자식들까지 몰사시켰지. 전하께서는 이세민과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그런 이세민한테 개처럼 굽신거렸던 건무는 왕이 될 놈이 아니었어. 이세민이 내가 건무를 죽이고 사지를 고구려 전역에 보내 전시했다는 것을 들었을 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겠지. 나한테 두 손으로 술잔을 건네었던 그때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영웅이십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힘을 합치면 이세민이는 쥐구멍에다 대가리를 박을 거야. 그때 계백이 의자왕의 밀서를 꺼내 연개소문에게 내밀었다. 백제 대왕께서 당과의 결전에 백제도 군사를 내놓는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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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8 18:37

[불멸의 백제] 4장 풍운의 3국(三國) ⑫

평양성, 대막리지 겸 대대로, 5부(部) 전대인의 수장(首長) 연개소문의 저택은 왕궁 못지않았다. 계백 일행이 대막리지 궁(宮)에 닿았을 때는 다음날 오후 술시(8시) 무렵, 주위는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저택은 휘황한 불빛을 내품고 있다. 활짝 열린 대문 좌우로 군사들이 도열해 섰고 횃불을 밝혀서 대낮같다. 백제 사신을 맞는 것이다. 장군 복장의 사내가 대문 앞에서 말에서 내리는 계백에게 다가왔다. “대막리지 전하의 명을 받고 백제 사신을 맞습니다. 장군 윤현입니다.” “백제 사신 계백입니다.” 인사를 나눈 계백이 부사(副 ) 화청과 유만을 소개했다. 연개소문의 대접은 융숭했다. 대문을 2개나 통과하는 동안 도열한 군사는 수백 명이다. 계백일행은 안쪽 영빈관으로 안내되어 여장을 풀었다. “내일 오전에 전하께서 부르실 것이다.” 윤현이 계백에게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그동안 여독을 푸시기 바랍니다.” 영빈관은 2층 건물로 방이 수십 개에 청이 딸려있고 시중드는 하녀만 수십 명이다. 불은 대낮같이 밝힌 청에서 진수성찬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화청이 감동한 표정으로 계백에게 말했다. “고구려 대막리지의 위용이 왕보다 윗길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군요.” 목소리를 낮춘 화청이 말을 이었다. “백제 입장으로는 건무가 왕이었을 때 보다 지금이 훨씬 유리하지요.” 영양왕 건무는 연개소문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에 온 몸이 토막으로 잘려 전국에 전시되었던 것이다. 당(唐)에 굴종한 모습을 보인 벌이었다. 더구나 왕이 참석한 대연회장에 모인 고구려 고관 2백여 명을 모조리 참살한 것이다. 한 명도 살려주지 않았다. 연개소문의 잔학성은 곧 공포심과 함께 위압감으로 만방(萬邦)에 전파되었다. 당(唐) 조정에서는 고관뿐만이 아니라 황제까지도 연개소문의 이름이 나올 때는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고 할 정도다. 다음날 오시(12시) 무렵, 계백과 화청, 유만이 관복을 갖춰 입고 연개소문이 좌청하고 있는 내궁의 대정청으로 들어섰다. 사방 2백자(60m)가 넘는 대정청에는 1백여 명의 고구려 고관들이 좌우로 나뉘어서 앉아있었는데 앞쪽에 붉은색 천이 깔린 계단 5개가 놓여졌고 그 뒤에 연개소문이 앉아있다. 왕보다도 더 위압적인 배치다. 안내역을 맡은 관리가 계단 10보쯤 앞에서 멈춰서더니 연개소문을 올려다보았다. 말했다. “대막리지 전하, 백제국 사신이 뵈러 왔습니다.” “그러냐?” 연개소문이 그렇게 말을 받았는데 목소리가 우렁찼다. 그 순간이다. 연개소문이 선뜻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계단을 내려왔다. 계백은 숨을 들이켰다. 연개소문은 소문대로 칼을 5자루나 차고 있다. 양쪽 허리에 2개씩, 그리고 등에도 비스듬히 한 자루를 매었다. 날렵하게 계단을 내려 온 연개소문이 계백의 세 걸음 앞으로 다가와 섰다. 두 눈을 치켜뜬 연개소문의 모습에서 위압감이 풍겨나왔다. 계백도 장신이지만 연개소문은 비슷한 체구다. 그때 연개소문이 말했다. “계백공인가?” “네, 대막리지 전하.” 계백이 두 손을 모으고 연개소문을 향해 절을 했다. “백제 대왕의 사신 계백입니다.” “잘 오셨어.” 머리를 끄덕인 연개소문이 그 자리에 앉으면서 계백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계백공, 거기 앉게. 뒤쪽 일행도 앉아.” “예, 전하.” 파격이다. 계백은 놀라 숨을 들이켰다가 곧 무릎을 꿇고 앉았다. 뒤쪽의 화청과 유만도 앉는다. 관리들이 서둘러 연개소문과 계백 일행에게 방석을 가져와 앉도록 했다. 이윽고 편하게 앉은 연개소문이 웃음 띤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계백공, 그대가 가야군주 김품석의 목을 베었다고 들었다. 맞는가?” “예, 전하.” “장하다. 오랜만에 용사를 보게 되는구나.”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대정청을 울렸다. “기습군 1천으로 내성에 진입했다지? 성안에는 2만 가까운 신라군이 있었다면서?” 연개소문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때 연개소문은 43세다. 김춘추와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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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7 20:54

[불멸의 백제] (73) 4장 풍운의 3국(三國) ⑪

“소인은 아스카의 백제방(百濟方)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신주(新州)땅, 산비탈의 그늘에서 잠시 쉴때에 하도리가 계백에게 말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아침 일찍 항안성을 떠나 1백리쯤 북상한 것 같다. 아스카의 백제방 방주(方主)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다. 작년에 방주로 부임한 부여풍은 20세의 혈기왕성한 왕자다. 쪼그리고 앉은 하도리가 말을 이었다. “거기서 백제어를 익혔고 4년전에 극우 관직을 받고 본국 근무를 자원해서 항안성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도리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도리 또한 파란만장한 인생 같다. 화청이 한인(漢人)으로 투항한 무장이고 하도리는 왜인으로 귀화한 입장이다. 백제는 대륙에 속령인 ‘담로’를 설치하여 대륙 아랫쪽까지 영토를 넓힌 터라 다민족(多民族) 왕국이다. “네 왜 이름은 무엇이냐?” “예, 핫도리인데 백제어에 맞도록 하도리로 개명했습니다.” “무슨 하씨야?” “예, 물 하(河) 올시다.” “네가 물 하(河)씨 선조가 되겠구나.” “아래 하(下)를 썼다가 바꿨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하청과 사도부 장덕 유만까지 피식 웃었다. 하도리는 밝은 성품이다. 앉은키는 컸지만 선 키는 5자(150cm) 쯤 되었는데 상체가 크고 팔이 길어서 큰 원숭이 같다. 나이는 28세, 10살때 고아가 되어서 각지를 방황하다가 백제방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도리가 붙임성 있게 말했다. “한솔 나리의 명성을 들었다가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광영이요.” “나는 전장(戰場)에서나 유용한 무장이야. 내 옆에 있으면 위험하다.” 계백의 눈 앞에 그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가 대야성 싸움에서 전사한 해준, 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화청이 하도리에게 말했다. “내가 증인이야.” 화청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전시(戰時)에 무능한 지휘관 휘하에 있는 것 만큼 불운한 무장은 없지, 난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솔(率) 품급을 싸움 한번만에 따내었네.” “아, 그것참, 부러운 소리하시오.” 장덕 벼슬의 사도부 부사 유만이 혀를 찼기 때문에 계백도 웃었다. 그때 하도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성주가 평양성까지 모시고 갔다가 오라고 했으니 광영이요.” 하도리는 정탐조 조장으로 기마군 10명을 이끌고 신주(新州)를 제 집 마당처럼 쏘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골짜기에 물고기가 많고 어느 들판에 짐승 잡는 덧이 설치되어 있는 것까지 다 알았다. 하도리는 기마군 둘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사신 일행은 총 25인이다. 하루만에 신주를 빠져나온 일행은 고구려 영토로 들어섰다. 고구려 국경 근처에 세워진 오금성에 전령을 보냈더니 금방 성주가 마중을 나왔다. “사신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복까지 차려입은 성주가 계백을 맞으면서 말했다. 대야성으로 찾아왔던 고구려 사신이 귀국해서 국경에 전령을 보낸 것이다. 저녁 유시(6시) 무렵, 사신 일행은 청에서 고구려 성주의 접대를 받는다. “평양성까지는 4백리 길이나 길이 잘 뚫렸으니 이틀이면 닿을 것입니다.” 옆쪽에 앉은 성주가 말했다. “조금전에 전령을 보냈습니다. 대막리지 전하께서는 내일 중에 사신으로 계백공이 오셨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오.” 성주는 40대쯤으로 역시 무장(武將)이다.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대야주를 탈취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축하드리오.” 술잔을 든 성주가 말했다. 동맹국의 승전을 축하하는 것이다. 따라서 술잔을 든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답례했다. “성주께서도 대공을 세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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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6 19:41

[불멸의 백제] (72) 4장 풍운의 3국(三國) ⑩

사신 일행은 22명, 모두 말을 탔기 때문에 빠르다. 하루에 3백리를 목표로 삼고 1천리 거리인 평양성까지 나흘 일정으로 잡았으니 강행군이다. 둘째날에 일행은 백제령 동방(東方)을 지나 북방(北方)으로 들어섰다. 북방만 지나면 신라 신주(新州)를 통과해야 된다.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신라령이 가로막힌 셈이지만 허술하다. 그만큼 신라 전력(戰力)이 약해진 것 때문이기도 하고 면적이 넓어서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계백의 옆에서 속보로 달리던 부사(副使) 화청이 생각 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한솔, 제가 20여년 전 태원유수 이연의 휘하 군관이었다면 믿으시겠소?” “이연?” 놀란 계백이 화청을 보았다. 화청은 49세, 장년이다. 20여년 전이라면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화청은 귀화한 한인이다. 그런데 이연이 누구인가? 이연은 당(唐)의 고조(高祖)를 말한다. 지금의 당황제 이세민은 이연의 아들이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소장은 태원을 탈출해서 동쪽의 백제령으로 피신했다가 내해(內海)를 건너 본국으로 온 것입니다.” “진양(晉陽)에서 이곳까지 먼길을 오셨구려.” “나는 이연의 모반을 수양제에게 밀고하려다가 발각이 되었소. 내 가족은 모두 이연에게 몰살당했소이다.” 계백은 숨을 들이켰다. 수양제(煬帝) 양광(陽廣)이 죽은 것은 20여년 전이다. 화청은 양제의 충신인 셈이다. 수(隨)는 3대 37년만에 태원유수 이연(李淵)에 의해 멸망되었는데 이연의 둘째 아들 세민(世民)의 공이 컸다. 그러나 이연은 태자 건성을 후계자로 삼았다. 건성은 이세민의 형이다. 결국 이세민은 형 건성과 5명의 아들, 동생 원길과 아들 5명까지 모두 죽이고 황제에 올랐으니 지금의 당태종이다.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제 가족까지 몰사시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당태종 이세민의 내력이다. 화청이 말을 이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힘을 합쳤다면 수나라 말기의 군웅할거시에 천하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북쪽에서 고구려가, 동쪽의 백제령 담로에서 대륙으로 진군하면 반란군은 양국의 깃발 앞에 모였을 것이고 이연 또한 무릎을 꿇었겠지요.” 가능한 일이다. 수 문제(文帝)때 대륙을 평정한 최전성기 시절에 수(隨)의 인구는 890만호 4,600만이었다. 그러나 수십개 이민족을 합친 호구수인 것이다. 그러나 백제만으로도 69만호 720만 인구이며 고구려는 650만, 신라는 5백만이다. 백제와 고구려만 합쳐도 1400만이다. 단일민족으로 한족 다음의 세력인데다 최강연합군이 될 것이었다.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말했다. “나솔, 아직 기회는 있소. 그래서 내가 지금 연개소문 공(公)에게 가는 것이 아니오?” 화청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 배를 붙이듯이 다가와 달린다. 그날 저녁 북방(北方)소속의 항안성에 닿은 사신 일행은 성주의 접대를 받는다. 나솔 관등의 성주 국우재는 30대 중반쯤으로 무장(武將)이다. 국경 지방의 성주 대부분이 무관(武官)인 것이다. 이곳에서 국경까지는 30리 거리여서 매일 정찰대가 오가는 최전선 지역이다. 청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국우재가 말했다. “한솔, 내일 떠나실 때 신주(新州) 지리에 익숙한 무관을 안내역으로 붙여 드리지요.” 국우재는 사신 일행이 온다는 전령의 기별을 받고 안내역을 준비시킨 것이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이자 국우재가 머리를 돌려 둘러 앉은 무관 하나를 불렀다. “하도리, 인사드려라.” “옛!” 무릎 걸음으로 앞으로 나온 사내는 어깨가 넓고 팔이 길었다. 다부진 턱, 가늘지만 반짝이는 눈, 그때 국우재가 말했다. “귀화한 왜인으로 16품 극우 벼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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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5 19:47

87. 양치질 - '소독 효과' 버드나무 가지 '양지'로 이 닦는 것

여러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하지요? 이 ‘양치질’의 어원을 아시나요? 언뜻 보아서 한자어인 줄은 짐작하겠으나 간혹 ‘양치질’의 ‘양치’를 기를 양(養), 이 치(齒)로 써놓은 사전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양치질’의 ‘양치’는 엉뚱하게도 ‘양지질’ 즉 ‘양지’(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 고려의 계림유사에도 ‘양지’(버들 양, 가지 지)로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서도 ‘양지질’로 나타나고 있다.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하는 것이 옛날에 ‘이’를 닦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이, 소독이 된다고 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어원 의식이 점차 희박해져 가면서 이것을 ‘이’의 한자인 ‘치’에 연결시켜서 ‘양치’로 해석해 ‘양치질’로 변한 것이다. 19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변화를 겪었다. 이 ‘양지’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음인 ‘요지’로 변했다. ‘이쑤시개’를 일본말로 ‘요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부는 아직도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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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2 19:31

주변인에게 배우는 삶 국중하 수필집 〈멘토 찾기 9번 타자〉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끝도 없다. 국중하 완주예총 회장은 이를 몸소 보여준다. 가장 가까운 가족, 기업이나 문학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은 지인, 교육의 발표자나 토론자는 모두 그의 멘토다. 아홉 번째 수필집 <멘토 찾기 9번 타자>는 이 배움에 대한 열의가 담긴 책이다. 국중하 회장은 기업인이자 문학인으로 밤낮없이 배움을 위해 진력했다. 그가 좋아하는 인물은 미국의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이외에도 교육계의 선구자인 이상주 전 총장, 조병화·황금찬 시인,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 등도 모두 그의 멘토들이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가족 여행과 여산재 생활 등 삶의 궤적을 짧게나마 짐작할 만한 글이다. 가족, 문화공간 ‘여산재’는 그의 인생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여산재와 여산장학재단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그의 마음을 반영해 설립한 공간이어서 더 의미깊다. 2부는 기업이나 문학 활동을 통해 만난 지우들과의 일화를 담고 있다. 3부는 완주예술제, 완주예총 자문위원회 워크숍, 완주소년소녀합창단 정기연주회 등 그의 지역 사랑이 엿보이는 글로 채워져 있다. 4부는 다양한 세미나와 연수 등으로 정보와 지식을 채우는 의미 있는 여정이 기록돼 있다. 국 회장은 “최고경영자의 사고와 철학은 기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요체”라며 “최고경영자는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야 하므로 오늘도 멘토를 찾고 배움의 길을 닦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국 회장은 1998년 수필과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한국문인 수석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내 가슴 속엔 영호남 고속도로가 달린다> 등 모두 9권의 수필집을 냈다. 여산장학재단 이사장, 우신 회장이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4.12 19:31

매일 시 쓰는 팔순 시인의 집념

‘낙엽도 여기저기 흩어져 놀면 바람몰이에 시달리겠지만 수북이 몸을 포개고 있으면 따뜻한 모닥불로 타오를 땔감 구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작업도 집합에 뜻을 두었다.’( ‘작가의 말’ 중) 김계식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10권에서 작품을 골라 수록한 시선집 <청경우독>(신아 출판사)을 펴냈다. 2011년에 시집 10권의 작품 중 일부를 엄선해 만든 시선집 <자화상> 출간 이후 두 번째다. 그는 20년 째 매일 시를 쓰는 시인이다. 일기 대신 시를 쓰기 때문이다. 그가 총 20권의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고 창작에 전념한 덕분이다. 글 쓰는 것을 고행처럼 신성하고 경건하게 여기는 김 시인은 문학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이번 시선집 역시 올해 여든을 맞은 그가 <대나무는 어울려 산다>, <민달팽이의 독백>, <하얀 독백> 등 2011년 이후 펴낸 시집 10권을 돌아보며 문학인생 한켠을 정리하고 시심을 다잡기 위해 만든 것이다. 책은 총 200편의 시와 함께 그가 받았던 문학상과 약력, 문단활동과 문예지 및 회지 등에 발표한 작품 내용 등을 함께 수록했다.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2002), 한국창조문학 대상(2009),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2009), 전북펜 작촌문학상(2012), 전북문학상(2014), 교원문학상(2017) 등 시상식 사진과 그의 작품을 시화전으로 엮어낸 전시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김남곤 시인은 해설글 ‘내가 그린 시인 김계식의 초상’을 통해 “<청경우독>을 접하면서 인생 노정에 멈춤이라는 표지판을 용납하지 않는, 문학을 향한 그의 열정에 놀랐다”며 “시선집의 제호처럼 갠 날에는 땀 흘리며 노역을 하고 궂은 날에는 머리띠 매고 글을 읽는 의지가 오늘의 강인하고 집요한 시인 김계식을 존재하게 했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아는 친구는 나이를 물으면 20살이라고 한다. 무거워서 60살은 집에 두고 다닌다고 농담하는 것인데 나 역시 나이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기억력도 좋고 작품에 대한 열정도 크다. 여든이라는 나이에 얽매이기 보다는 계속 젊고 유연한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4.12 19:31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