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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춘향전과 흥부전, 콩쥐팥쥐전, 홍길동전] 춘향 문화재, 남원 곳곳 산재 '본향 확실'

〈춘향전〉은 작자, 창작년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숙종조나 영조 초에 판소리로 불리어오다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 장르로 문장체 한글소설과 한문본 소설 등이 있다. 그 종류만 해도 120여종이 넘고 제목도 이본에 따라 다르므로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춘향전〉 작품군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춘향전〉의 모태가 된 근원설화를 보면 남원에 살았던 춘향이라는 기생이 이부사 자제의 도령을 홀로 사모하다 죽은 후에 원귀가 되어서 남원에 많은 재앙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양진사가 제문으로 창작했다는 액풀이로서의 제의(祭儀)설에 근원을 두고 시작된다. 그리고 노진, 조식, 성이성, 박문수 등 야담에서 전해지는 암행어사 출두설화가 〈춘향전〉에 부합되었다는 설과 조선조에 비롯된 기생과 양반도령과의 애련설화 등의 야담이 바탕이 되었다는 다양한 견해들이 많다.〈춘향전〉의 연구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조윤제의 「교주춘향전」이 나오면서 시작된 이래, 1965년 김동욱에 의해 발표된 〈판소리발생고〉로 본격화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판소리춘향가와 소설춘향가와의 관계를 근원설화로부터 판소리 한마당으로, 이후 판소리 대본 및 판소리계소설로의 정착이라는 전개도식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로써 〈춘향전〉의 소설이 판소리춘향가보다 앞섰다는 선행(先行)설을 극복하고 판소리춘향가의 선행설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원설화에 관한 연구도 도미설화의 변이형인 구례현에 살았던 부인의 〈지리산가〉 백제오가 열녀설화와 남원에서 노진, 김우항, 박문수, 성이성 어사와 기녀가 사랑했다는 설화들이 있고, 신임부사 생일잔치에서 지은 7언시 설화인 암행어사설화, 남원지방의 추녀기생 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 등 5종이 전해오고 있다. 이 외에도 유사한 연애설화와 아랑설화, 심수경 설화에 얽힌 신원설화(伸寃說話), 성현의 아들 성세창이 평양기생 자란과의 애련설화 등의 염정설화, 허현의 아들이 혼례식날 부친의 급서로 초야정사를 치르지 못하고 여묘(廬墓)살이 하다가 정사를 치러 자식을 낳았지만, 신랑이 죽자 신랑이 주었던 신표로 친자위기를 모면했다는 수기설화(手記說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야기로 발전한 것으로 귀결되어 왔다. 어쨌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간중심의 사랑이야기인 〈춘향전〉은 남원 광한루와 춘향사당, 춘향묘, 성안의(成安義)부사의 기적비, 이도령이 다니던 박셔틔(薄色峙)고개, 춘향이 버선발로 이도령을 따라갔다는 버선밭과 오리정(五里亭) 등의 배경과 소재들이 남원지방에 실제 산재해 있다. 또 남원에서 매년 시행되는 춘향제 등 민간설화와 더불어 전해지는 유형무형의 춘향의 문화재가 많은 남원은 조선조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본향임에 틀림이 없다. 1949년 80세 된 조성국 노인담에 의하면 박색 춘향이 이도령을 위해 수절하다가 옥사한 뒤 남원에 가뭄이 들자, 양진사가 백지 3장에 춘향의 해원(解寃)을 담아 기우제를 지낸 뒤 흉년을 면했는데 그것이 훗날 춘향전으로 발전되었고, 자신이 70 년 전(고종 16년, 1879년) 이용준 남원부사 시절에 남원 광대기생들이 춘향계를 만들어서 춘향의 제사를 춘추에 두 번 지내는 걸 보았다는 목격담이 전해 온다고도 하였다. 〈춘향전〉은 18세기 영국의 새뮤얼 리처드슨 (1689- 1761)이 귀족의 아들 백작 Mr. B와 그 집의 하녀 파멜라가 신분적 차이를 극복하고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는 애틋한 사랑을 편지체소설로 완성한 서구 근대소설의 효시인 〈파밀러〉와도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보이고, 이 소설에 견주어 보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고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 외에도 남원군 인월면 성산리나 아영면 성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과 전북 완주군 이서면을 배경으로 한 〈콩쥐팥쥐전〉 등의 한글소설이 이 고장을 배경으로 하여 창작되었다. 이는 조선 세조 조에 김시습이 남원에서 전해오는 양생과 귀신처녀와의 사랑을 엮은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와 광해군 때 실제 남원에 살았던 최척이 임병양란을 겪으며 옥영과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엮은 조위한의 〈최척전〉이 남원의 이러한 산문문학을 낳는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콩쥐팥쥐전〉은 서구의 신데렐라 소설과도 이야기 줄거리가 유사하고, 더욱이 중국의 옛 문헌에도 실려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세계 각국에 공통적으로 분포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인간 본연의 신분상승 욕구의 분출과 동경이 낳은 소산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이 고장 전북에는 이러한 소설을 뒷받침하는 지명이나 설화들이 산재해 있다. 예컨대 흥부태생마을인 남원 인월면 성산리와 흥부 발복 마을인 아영면 성리에는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 짚신을 털며 신세한탄을 했다는 신털바위와 박첨지 놀부묘가 실재하고, 박춘보 흥부가 허기져 쓰러졌다는 허기재와 놀부가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얻어 돌아가 쉬었다는 화초장 바위 외에도 연하다리, 연비봉, 흰죽배미, 새금모퉁이, 박놀보설화 등이 실제로 유전되고 있다. 또 완주군 이서면과 은교리 앵곡 마을에는 애통리 두월천 빨래터와 콩쥐가 은혜를 입은 산이라는 두은(斗恩)산, 팥쥐가 콩쥐를 빠뜨려 죽였다는 팥쥐기방죽, 팥쥐가 넘어가 건넜다는 두월천, 아버지 최만춘이 딸 콩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애통한 소식을 처음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는 애통리, 계모 배씨와 팥쥐가 짜고 콩쥐를 죽였다는 분통터진 소식을 들었다는 분통리(일명 분토리), 앵곡 역참(驛站)의 마방자리, 콩쥐를 도와준 두꺼비가 살았다는 두죽제 등 「콩쥐팥쥐전」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전개에 따른 지명들이 산재해 있다. 실제 이곳은 〈콩쥐팥쥐전〉의 배경을 놓고 김제시와 완주군이 경쟁적으로 서로 다투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김제 금구에 속해 있던 은교리와 앵곡마을을 완주군 이서마을로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서면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젼쥬 셔문밧 삼십리허’에 있다고 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3 전라도 전주부조에 도‘이서(伊西)는 전주 서쪽 30리에서 35리 사이에 있다고 한 기록과 부합된다. 또 앵곡마을에는 전주에 예속된 역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곳이며, 이 역참은 그 옛날 남북을 오가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그러므로 여러 지역색을 가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수집되고 혼합 재생산되어 구전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콩쥐팥쥐전〉이 생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고전소설 〈홍길동전〉도 전북 부안과 위도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홍길동이 이상국으로 건설한 율도국이 부안 위도라는 사실이 민간 전승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상당한 근거를 갖고 논의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인근인 영광에는 홍길동 마을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고, 실제 연산군 6년(1500)엔 가평, 홍천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소설 속의 홍길동(洪吉童)과 끝자만 다른 명화적(明火賊) 홍길동(洪吉同)이 존재했었다. 또한 조선 중기 여류시인이자 부안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었던 매창이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 허균, 이귀 등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왕래하며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으로써 〈홍길동전〉의 율도국이 이 고장 위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허균은 오랫동안 부안 기생 매창과 왕래하며 시로서 교유를 했고, 실제 부안 우반동 선계안골엔 〈홍길동전〉을 집필했던 장소가 정사암이라 전해내려 오고 있다. 그 당시 허균의 장형 허성은 전라관찰사였고, 허균은 충청, 전라도 지방의 세곡을 거둬들이는 수운판관이었기 때문에 부안을 자주 드나들었다. 선조 34년(1601년)에는 수운판관의 벼슬마저 사임을 하고 부안을 자주 내방하면서 매창과 시로서 절친하게 사귀었으므로 〈홍길동전〉을 부안에서 지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선조 실학자이자 많은 한문소설을 남긴 박지원의 〈허생전〉 가운데서도 부안 변산이 도적소굴의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허균의 〈홍길동전〉의 창작이 이 고장 부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18 23:02

문정 유고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 발간…18일 출판기념회

지난해 작고한 문정 시인(본명 문정희, 1961~2013)의 유고 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이 나왔다(애지).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첫 시집을 준비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시인의 죽음을 슬퍼하던 친구들이 뜻을 모아서다. 그를 시인으로 만든 신춘문예 당선작하모니카 부는 오빠를 표제작으로 마지막 작품인 그림자 치료까지 모두 84편의 시를 담았다. 시인의 시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과 소외된 이들의 삶에 지속적인 애정을 보이며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으로 보듬는다는 평을 받았다. 진안에서 자란 시인은 자신의 눈에 비친 봄비와 아지랑이와 호수와 구름과 이슬과 비와 나무를 산뜻한 이미지로 형상화해낸다. 편편이 시적 대상을 과장하거나 덧칠하지 않고 음전한 언어로 녹여낸 서정성이 짙다.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동체적 가치, 인간애를 그려낸 시편들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파동이 있다. 우석대 송준호 교수는 시집해설에서 문정 시인이 슬픔과 절망의 현실 속에서 최종적으로 의지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네 힘든 생을 끌고 나갈 생명력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안도현 시인은 유고 시집은 감정이 여리고 섬세한 문정 시인을 꼭 빼닮았다. 세상을 보는 눈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목소리는 욕심 없이 차분하고, 그가 매만진 언어는 숨소리가 고르다고 시인을 그렸다. 시집 발간과 관련, 전북작가회의(회장 복효근)와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우석고등학교(교장 이세재) 주축으로 18일 오후 6시30분 최명희문학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시인 문정을 떠올리는 밤의 타이틀을 건 이날 행사는 시인의 친구인 임영섭 씨(남성여고 교사)의 발제와, 시 낭송, 시인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물 상영 등을 통해 시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자리로 진행된다.고인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88년부터 우석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국어를 가르쳤으며, 지난 2008년 하모니카 부는 오빠로 문화일보의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2012년 전북작가회의 제1회 작가의 눈 작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15 23:02

한승헌 변호사, 〈한국의 법치주의…〉 펴내

국민의정부 때 감사원장을 지낸 진안 출신의 한승헌 변호사(80)는 험난한 굴곡을 건넌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증인이다. 민주주의가 억압던 시절 시국사건과 양심수들의 변론을 맡아 진정한 법치를 세우려 몸부림쳤고, 그 스스로도 필화사건(75년)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1980년)으로 두 번에 걸쳐 투옥되는 힘든 삶을 살았다.그가 최근법조 55년 기념선집(전4권)을 완간했다. 지난해 3권을 낸 후 4권째 선집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를 출간했다(범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어떻게 가야할지 보여주는 한 변호사의 경험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겼다 .4권의 선집은 <피고인이 된 변호사> <권력과 필화> <한일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로 이루어졌다. <한일현대사~>는 일본어로 일본에서 출간됐다.기념선집은 한 변호사가 반세기에 걸쳐 남긴 말과 글들을 골라 엮은 것으로, 선집 발간을 위해 간행위원회가 구성됐다.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김선수(변호사) 김인회(인하대 교수) 김효경(경북대 교수) 김희수(변호사) 남형두(연세대 교수) 문미란(변호사) 백승헌(변호사) 서보학(경희대 교수) 정미화(변호사) 정연순(변호사) 조국(서울대 교수) 하태훈(고려대 교수)씨가 참여했다.한 변호사는문헌을 통한 연구가 아니라 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장 백서다. 오래된 글도 그 집필 당시의 시대상황과 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보기누름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증언집이 되었으면 보람이 되겠다고 책 머리말에 밝혔다.누구를 위한 법치주의인가-법치주의에 대한 오해와 왜곡가식적 법치주의의 실상-역대 반민주정권의 법치주의 훼손집권 정략에 밀려난 법의 정통성-국가이익과 집권자의 이익압제정권하의 사법의 진통-오풍 못지않은 영합의 위험법을 통한 정의구현은 가능한가-언론의 물음에 답하다등 5부로 구성됐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11 23:02

[(24) 조위한 한문소설 〈최척전〉과 가사 〈유민탄〉] 남원서 창작된 사회 비판 작품 '문학사 보배'

남원 만복사 동쪽에 모친을 일찍이 여의고 부친과 함께 살았던 최척이란 소년이 옥영이란 처자와 임, 병 양란을 겪으며 중국, 일본을 무대로 펼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다룬 조위한의 〈최척전(崔陟傳)〉도 남원에서 창작된 한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최척은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킨 변사정의 막하에 들어가 활약했던 실존인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주목된다. 그는 82세의 삶을 사는 동안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고, 일생동안 사회현실과 관련된 문학 활동을 해왔다. 이미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남원의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창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임제의 〈원생몽유록〉, 〈화사〉, 〈수성지〉 등 한문계 고소설에 이어 그러한 문학적 환경을 이루어 왔다는데도 의의가 있다.〈최척전〉은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이 받아야 했던 수난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왜구나 구원병으로 온 명군들에게까지도 당한 치욕과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아픔들까지 다루었고, 실제 역사적인 실존인물이 등장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등 세 나라를 무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다큐멘터리적인 작품이다. 특히 작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건전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은 작자정신이 깊게 베어난다는 점에서 기존 소설이 따를 수 없는 차별적인 작품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있는 홍도와도 유사한 내용으로 임진란 때 있었던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광해군 13년(1631년)에 조위한이 지은 소설로서 현재 한문본 필사본이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전한다. 조위한(趙緯韓)은 명종 22년(1567)에 출생하여 인조 27년(1649) 세상을 떠날 때까지 82년간의 그의 삶 자체는 임진란, 정유재란, 정묘 병자호란 등의 외침과 계축옥사,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 내적 난리로 어지러운 세상을 어렵게 살아온 풍운의 사대부였다. 그는 인조반정으로 인해 벼슬길에 오른 이후에도 과감하게 종실(宗室)인 인성군의 만행을 비판하는 ‘위인성군소척인피계(爲仁城君所斥避啓)’의 상소를 올림과 동시에 왕실 사람인 정백창을 논죄하라는 상소도 올렸다. 이러한 죄목으로 인조의 미움을 사서 한때 양양부사로 좌천이 되었지만, 인조 2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왕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군사를 거느리고 상경하여 왕을 보호할 만큼 임금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광해군 10년(1618년) 나이 52세 때 벼슬을 버리고 남원 주포로 이주하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생각하며 그 운(韻)을 빌어‘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를 짓고 전란으로 황폐된 강산과 세상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두 차례의 왜란과 정묘, 병자호란으로 피폐된 강토와 유랑민들의 참상을 보며 사대부로서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일마저 버려둔 채 살아가는 한심한 자신을 이 한시에 담았고, 또 광해군 13년 55세 때 가사 〈유민탄(流民嘆)〉을 지어 유랑하던 백성들의 처절한 한과 아픔을 담아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조위한은 잘못된 현실을 묵과하지 않고 작품 속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나라 안에 이 작품이 크게 유행하였고, 그런 이유로 광해군은 이를 알아보라고 궁중 밖으로 암행조사의 명을 내린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가사 〈유민탄〉은 그 작품이 유실되어 전해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억(趙億)이 찬한 ‘현곡조공행장(玄谷趙公行狀)’에는 장종 천계원년 즉 신유년 공이 55세 때 〈유민가〉를 지었는데 그 당시 부역에 시달리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즐비한 참상을 우리말로 지었다. 노래가사가 슬프고 곡진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슬퍼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홍만종은 「순오지」에 홍섬이 지은 〈원분가〉로부터 송순의 〈면앙정가〉, 백광홍의 〈관서별곡〉, 정철의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 차천로의 〈강촌별곡〉, 허균의 첩 무옥의 〈원부사〉, 조위한의 〈유민탄〉, 임휴우의 〈목동가〉, 무명씨가 지은 〈맹상군가〉 등 당대 굴지의 12가사를 소개하면서 조위한의 가사작품을 열 번째로 실어 놓았다. 그리고 이들 작품 가운데 〈유민탄〉은 ‘현곡 조위한이 지은 것으로 어두운 조정 정령(政令)의 번거로움과 열읍(列邑)들의 세금징수의 가혹함을 자세히 서술했으니 정협의 〈유민도〉와 서로 표리(表裏)가 됨직하다’라고 평설하였다. 또한 홍만종은 송시열이 찬한 조위한의 ‘신도비명’에도 조위한이 지은 〈유민탄〉이란 가사에는 백성들의 고통과 집안이 무너지는 슬픔을 그대로 기술했는데, 임금이 이를 찾아내라 했으나 찾아내지 못했고 훗날 광해실록을 수찬할 때 자신이 그것을 보고 사실로 믿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로 보면 조위한과 같은 조선조 사대부들은 불쌍한 백성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보살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애민사상의 소유자들이었고, 부조리한 정국을 고발하며 이를 광정해야 한다는 비판적 지성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대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조의 사회문화가 세계적이었다는 문화사가들의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우리 전북지방에서 그러한 훌륭한 사대부들 예컨대 신경준, 장복겸, 조위한 등이 가렴주구의 무자비한 세곡징수과 부조리한 정정(政情)을 바로 잡아야만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된다는 상소를 하는 한편, 이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 많은 저술활동을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다만 조위한의 가사 〈유민탄〉이 실전되어 안타깝지만, 어무적이란 사람이 지은 동명이작의 〈유민탄〉이란 한시를 보면 이 작품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창생들 어렵네(蒼生難)창생들 살기 어렵네(蒼生難)나는 너희를 구제할 마음 있어도(我有濟爾心)너희를 구제할 힘은 없다네(而無濟爾力)창생들 피나는 고통(蒼生苦)창생들 피 토하는 고통(蒼生苦)추워도 덮을 이불 하나 없는데(天寒爾無衾) 저들은 구제할 힘은 있어도(彼有濟爾力)구제할 마음은 없다네(而無濟爾心) 원컨대 소인의 마음 돌려서(願回小人腹)잠시 군자를 위해 걱정하노니(暫爲君子慮)잠시라도 군자의 귀를 빌어서(暫借君子耳)시험 삼아 백성의 말 들어보아라(試聽小民語)백성들은 말을 해도 그대들은 알아듣지 못하고(小民有語君不知) 지금 백성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렸네(今歲蒼生皆失所) 비록 대궐에서 임금이 근심하는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도(北闕雖下憂民詔)자방관청이 받아 보는 건 쓸데 없는 종이 한 조각이네(州縣傳看一虛紙) - 중략 -억만창생들은 입을 옷가지 하나 없이 헐벗고, 아무리 추워도 덮을 이불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데 구제할 힘이 있는 나라의 관료들은 탐관오리들뿐이라는 부조리한 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발한 시이다. 어무적(魚無迹)이라는 작자도 실명을 은익한 사대부일 것으로 보인다. 행동이 기민하지 못한 ‘어물쩍거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어무적’이라고 지은 필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안목을 지닌 사대부들의 작품들, 예컨대 장복겸이 임금께 올린 ‘구폐소’와 연시조 〈고산별곡〉, 장현경의 가사 〈사미인가〉, 조위한의 한문소설 〈최척전〉과 가사 〈유민탄〉, 신경준의 〈시칙〉 등은 우리 한국문학사상 보배로운 국문학적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조 사대부들의 비판적 지성의 사회문화로 인해 조선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상위그룹에 오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토록 훌륭한 사대부들을 전북이 낳고 또 그런 사대부들이 이 고장에서 살아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11 23:02

문체부 인문독서아카데미 전북지역 3곳서 진행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2014년 인문독서아카데미’ 60개를 선정, 이달부터 11월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은 도서관, 문화원, 서원 등에서 인문정신 고양과 독서 문화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2013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다.전북에서는 완주군립 중앙도서관(설화 오딧세이 등), 전북도교육문화회관(지역문화로 풀어가는 유쾌한 인문학), 전북도청 도서관(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감상 등) 등 3곳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인문독서아카데미 프로그램은 공모 절차를 거쳐 선정됐으며, 공모에는 각 기관 및 단체에서 총 168개의 프로그램을 접수했다. 문체부는 출판·독서·문학 전문가 등이 참여해 주제의 적절성, 지역 문화와의 연계성, 강사의 적합성, 수행기관 운영 능력 등에 초점을 맞춰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독서동아리 운영 여부와 사업 완료 후의 기대 효과 및 정책 효과 등에도 중점을 두었다는 것.올해 수행기관으로 선정된 기관은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통섭형 주제의 강의로 지역 주민들을 맞이하게 된다. 수행기관에는 강사료와 교재비 등이 지원된다.문체부는 인문정신 및 독서문화 확산을 통한 ‘책 읽는 사회 만들기’를 위해 독서·시민단체·도서관 등과 함께 소외 지역에의 문학작가 파견, 독서동아리 활동 지원, 지역 대표 독서프로그램 지원,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지원, 대한민국 독서박람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9 23:02

한국동서문학상 수필 부문 임실 출신 신영규씨 작품상

수필가 신영규씨가 제2회 한국동서문학상 수필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수필 ‘실존 하려면 외로워야 한다’. 시상식은 지난 4일 부산예총회관에서 열렸다. 한국동서문학(이사장 겸 발행인 이석래)은 2012년 설립된 재단으로 한국문화와 문학의 신장을 목표로 한국동서문학을 계간으로 발간해 오고 있다. 한국동서문화상 및 문학상을 시상해오고 있으며, 무료 문학강좌와 도서보내기운동, 장애인협회 연계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임종찬(부산대 국문과 교수)심사위원장은 “신영규씨의 수상작은 무시무시한 외로움과 고독으로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이 매일 밤 치열한 상념의 전투 속에서 삶을 고뇌하고 거기서 깨달은 삶의 문제를 문학과 철학으로 연결, 승화시켜 결국 인간에게 생존의 물음표를 던져주고 사유케 하는 인식능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임실 출신의 신영규씨는 1995년 월간<문예사조>와 1997년 월간<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문협신문 편집주간과 전북수필 사무국장, 한국신문학 전북지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숲에서 만난 비> <사랑을 소매치기 당한 여자>, 칼럼집<돈아 돈 줄게 나와라> <펜 끝에 매달린 세상>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8 23:02

한국 출판문화 아시아 넘어 세계인과 소통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고영수)를 지원하여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개최되는 ‘2014 런던도서전’의 마켓포커스(Market Focus) 국가로 참가한다.1971년에 시작된 런던도서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과 함께 저작권 거래를 위한 비즈니스 중심 도서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매년 100여 개가 넘는 국가에서 약 2만 5000명의 출판인·서적상·출판 에이전트·사서 및 영상산업 관계자들이 참가해 왔다.한국은 지난 2012년 베이징국제도서전, 2013년 도쿄국제도서전 주빈국 참가에 이어 올해는 런던도서전 마켓포커스 국가로 참가하여 아시아를 넘는 영어권 시장으로의 도약을 꾀한다. 이번 도서전 참가 콘셉트는 책과 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세계인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출판문화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출판 특별전시, 작가 문학행사 및 출판 전문 세미나, 참가사 설명회 등을 준비했다.마켓포커스관(516㎡) 중 한국 출판문화를 조명하는 특별전시관(258㎡)에서는 이번 도서전 참여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작가특별전, 한국 전자책의 기술 및 콘텐츠를 소개하고 우수 전자책 콘텐츠를 시연해보는 전자출판 특별전,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와 작품을 전시하는 한국 근대문학특별전, 한국 유일의 웹툰을 소개하고 다양한 웹툰의 창작 방식과 소비 방식을 살펴보는 만화ㆍ웹툰 홍보관 등이 마련되어 한국 출판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알릴 예정이다.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에서는 양국 간 문학교류 행사를 통해 한국문학의 영미권 시장 진출을 꾀한다. 이를 위해 정읍 출신의 소설가 신경숙 등 10명의 작가가 참가하여 영국작가와의 대담회 및 문학 세미나, 문학살롱, ‘오늘의 작가’ 행사, 번역세미나, 한국문학번역 즉석대회 등 다양한 문학행사를 개최한다. 2달간 열리는 ‘한국인쇄활자문화전(The Art of Printing)’ 전시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을 비롯해 금속활자와 목활자, 바가지 활자 등 한국의 인쇄문화와 활자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50여 종의 활자본이 전시된다. 또한 영국인들이 매월 한 권의 한국문학 작품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한국문학의 밤’ 행사가 10회에 걸쳐 개최된다. 7일 문화원에서 개최되는 개막 전야 리셉션에서는 성악가 조수미의 ‘가곡과 아리아의 만남’ 공연도 선보일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7 23:02

전북지역 문학관·시비 사진전…전북문학관 10일부터

전북에 어떤 문학관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 또 전북 출신 문인들을 기념하는 어떤 시비가 세워져 있을까. 그 현주소를 한자리에서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전북문학관(관장 이운룡)에 의해 기획됐다. 전북문학관이 10일부터 문학관 3전시실에서 도내 문학관·시비 사진 전시회를 연다. 도내에 산재한 문학관과 시비를 담은 사진전을 통해 전북문학의 맥을 이어온 기념비적 유산을 담아보는 자리다. 걸출한 문인들이 배출되어 시향(詩鄕)이라고 불리는 전북문학 유산의 생생한 현장을 접할 수 있는 사진 40여점이 준비됐다. 문학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그간 김환태문학관(무주)·미당시문학관(고창)·석정문학관(부안)·아리랑문학관(김제)·채만식문학관(군산)·최명희문학관(전주)·혼불문학관(남원)과, 가람시비·권일송시비·김민성시비·김해강시비·김환태문학비·매창시비·박동화문학비·박정만시비·박항식시비·백양촌시비·삼의당시비·삼의당 담락당 부부시비·상춘곡비·서정주시비·신석정시비·송기섭시비·송남 이병기시비·이광웅시비·이철균시비· 정읍사비·조두현시비·진을주시비·채만식문학비·최학규시비 등 현장을 탐방했다.이운룡 관장은 “전북문학관이 문학을 통해 삶을 향기롭게 열어가자는 취지로, 개관 3년차를 맞아 매월 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회가 전북문학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히고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문의 전북문학관 063)252-4411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4 23:02

문학평론가 신동욱 교수가 본 송하선 저 〈신석정 평전〉

신석정 시인의 작품에 관한 평가나 해설은 시인의 작품들이 발표될 무렵부터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대표적인 몇 사례를 들 수 있는데, 목가시인이라는 호칭을 송하선 교수는 그 잘못됨을 지적했다. 작품집 〈촛불〉(1939)에 수록된 작품들, 그리고 〈슬픈 牧歌〉 (1947년)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자연을 읊은 데서 그럴만한 수용자적 관점에서는 고요한 경지에서 은일(隱逸)사상을 노래한 것임을 영미문학의 용어인 목가(pastoral)가 아닌 점을 지적하고 있다.송 교수는 신석정 시인의 말을 인용하여 시인이 닦은 철학적 근거로 노장철학과 일부 불교사상을 들어, 도연명의 도화연기의 내용과 신석정 시인의 작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대비하며, 동질적 사상들을 도표로 제시하였다.동양문화권에 있는 시인으로서 그만한 사상적 교양을 가진 시인 또는 문인이라면 그만한 수용적 시심을 나타내어 작품으로 창작함직하다.이렇게 본다면, 문예작품들은 그 지은 작가의 사상적 근거나 교양에 의하여 그 미적 특성의 근원을 밝힘직한 사례가 된다고 하겠다. 아마도 기존의 신석정 작품의 논평들 중에서 송하선 교수만큼 시인의 창작의도와, 사상적 접근을 구체화한 논평은 드문 예가 될 것이다.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참여시인이라고 평하고 그러한 호칭으로 신석정 시인을 말한 1960년대 평자들에 대하여 송 교수는 신석정 시인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적 견해를 밝힌 점이다. 송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참여라는 뜻은 어울리지 않는 지조있는 선비이며, 신석정시인의 작품에서 永河나 山의 序曲에 보이는 내용들은 현실 투시일뿐, 참여의 의지를 나타낸 것은 아니라고 논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선비정신이나 작품에 나타난 현실인식의 의미도 참여와는 다른 시적 투시에서 반영된 현실일 뿐이라고 밝혀, 기존의 평자들의 편향된 해석은 옳지 않다고 논평하였다.송 교수는 신석정시인의 시어, 겨울:봄, 밝음:어두움, 등의 대비에서 현실인식을 나타내고 있으나, 참여시나 참여 정신과 달리, 현실을 투시한 것뿐임을 논증하고 있다. 현실참여의 의지와는 확연히 다름을 밝히고 있다.그는 신석정 시인의 시작품의 주요 특징을 중심으로 호칭을 전원시인으로 붙인다면 좋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한 호칭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를 해설하고 있다. 다음으로 석정 시 사상의 근원에서 임께서 부르시면을 해설하는 데서도 장자의 제물론과 관련한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 더하여, 불교의 영생관이나 윤회사상과도 관련을 맺고 있음을 논급하고, 이 작품에 보인 임은 천지의 주재자로 규정하고 있다. 한용운, 김소월과도 다른 임의 의미임을 분명히 밝혀 송 교수의 시 해석의 독자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 대바람 소리에 관한 해설에서, 체념 은둔의 정서를 지적하면서, 동양적 선비정신을 나타냄을 거듭 밝히고 있다.(p179)위와 같은 신석정 시인의 사상적 뿌리를 밝힌 작품해설은, 이제까지의 여러 평자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작품의 의미해명을 보이고 있다. 독자들은 송 교수의 작품풀이를 위한 여러 논거되는 자료들을 고려한다면 일정한 설득력과 객관적 시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특히 그의 여러 논거들의 신석정시인의 생애, 교육, 취향과 거의 일치함을 제시한 점에서 실증적 풀이의 장점을 알 수 있게 했고, 이 점은 송 교수의 한학적 교양과도 일면 상통함을 엿보게 하고 있다.그런데,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미술감상이나 음악감상 또는 영화나 무용감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늘 수용자, 여기서는 시의 독자가 각자 지니고 길러온 미의식과의 문제이다.즉 작품과 독자들의(또는 감상자) 미적가치의 수용에서 나타나는 개별적 이해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의 연마된 또는 잘 숙달된 미의식이 문제가 됨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작품의 의미와 미적가치는 고정된 원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수용자적 인식의 다양성과 연결되어 작품의 생명성이 또는 유기적 가치의 진폭이 나타남을 고려할 수 있다.송하선 교수의 근래에 보기 드문 노작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이 참여하여 신석정 시인의 시 정신과 작품의 미적 특질과의 연결 고리를 잘 찾기를 기원한다.※문학평론가 신동욱 전 고려대 교수는 196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 현대 시평사〉, 〈문학의 비평적 해석〉 〈현대의 서민〉 〈근대시의 서구적 근원 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04 23:02

[(23) 김시습의 〈만복사 저포기〉] 남원지역 설화 재구성한 한문소설

계유정란을 일으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김시습(세종 17년 1435- 성종 24년 1493)은 삭발하고 중이 되어 북으로 안시향령, 동으로 금강오대, 남으로 다도해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 관동록, 호남록을 썼고, 그때 읊은 시들을 정리하여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을 남겼다. 그리고 누차 세조의 소명도 뿌리치고 31세(세조 11년 )때에 경주 남산 금오산 자락에 금오산실을 짓고 들어앉아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몽유록계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筵錄)〉 등 5편이 「금오신화」에 실려 전한다.「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으로 완본은 전해오지 않으나 육당 최남선이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발견하여 1927년 〈계명〉19호에 실음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 책은 고종 21년(1884년) 동경에서 발간된 것으로 상, 하 2권이다. 상권은 32장으로 서(序)와 〈매월당소전〉,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등이 실려 있고, 하권은 24장으로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발문, 평(評) 등으로 되어 있다. 본디 이 목판본은 효종 4년(1653년) 일본에서 초간되었던 것을 중간한 것으로 초간본은 오스까(大塚彦太郞)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자료였다. 국내에서도 1952년에 정병욱 교수가 필사본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을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아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생규장전〉은 개성의 이생(李生)과 최소저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후반에 가서 홍건적의 난에 죽은 아내 최소저와 부부의 연을 다시 이어가다가 영영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생은 학당을 오가다가 근처에 살고 있는 양반집 규수인 최소저와 눈이 맞아 밤마다 담을 넘어 다니며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국 이를 알게 된 이생의 부모가 이생을 먼 울주로 떠나보내어서 이들의 애정행각을 끊어 놓았다. 하지만 최소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양가부모의 허락을 받아서 종국에 혼인을 하였다. 이후 이생은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최소저와 양가의 가족이 모두 희생되고 이생 혼자만 남게 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부인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는 이생에게 최씨 부인이 다시 나타나서 수년간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이승의 인연이 끝났다고 홀연히 떠나버리자, 이생도 마침내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죽게 된다는 결말의 구조를 지닌 이야기다. 이생규장전은 일종의 산자와 죽은 자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시애(屍愛)설화라 할 수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개성에 사는 홍생(洪生)이 평양으로 장사를 나갔다가 대동강 부벽루에서 술을 마시며 놀게 되었는데 수 천 년 전 선녀가 된 기씨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다. 본디 개성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홍생이 달 밝은 어느 날밤에 부벽루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처녀는 그 옛날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의 후예였는데 고국을 너무 그리워하다가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 꿈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날 하늘의 천명을 어길 수 없다며 승천을 하자, 양생도 병이 들어 죽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생규장전과 같은 시애소설의 공통적인 설화구조를 지닌다. 〈남염부주지〉는 미신과 불교를 배척하는 선비인 박생(朴生)이 경주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꿈속에 저승에서 염라대왕과 토론을 하고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용궁부연록〉은 개성에 살고 있었던 한생(韓生)이 꿈속에서 용왕의 잔치에 초대되어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이야기다.〈만복사저포기〉는 전북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梁生)이 부처와 저포놀이(윷놀이내기)를 하여 승리한 대가로 부처가 수년전 왜구들에게 죽은 처녀귀신과 만나게 해줌으로써 이들은 꿈같은 부부생활을 하다가 헤어졌다는 산자와 죽은 자와의 사랑을 다룬 설화이다. 양생은 일찍 부모를 여읜 후 혼인을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데 부처의 도움으로 왜구의 난에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혼자 정절을 지키며 살다 죽은 원혼을 만나게 되어 며칠간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재회를 기약한 날 양생은 딸의 대상을 치루는 양반집 행차를 목격하고 자신과 사랑을 나눈 처녀가 3년 전에 죽은 그 양반댁의 망자임을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부모가 베풀어준 음식을 먹고 난 후 처녀는 저승의 명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며 홀연히 사라지자, 양생도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홀연히 그 처녀가 다시 나타나서 자신은 죽어서 다른 나라로 가 남자로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이에 양생은 장가를 들지 않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평생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이야기로 이생규장전과 같이 산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구조를 지닌 설화다. 이들 한문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지방에 많이 살고 있는 대표적인 토속적 성씨들로서 재자가인들이며, 아름다운 문언문(文言文)의 한문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로운 설화를 옮긴 점 등이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성격을 공통적으로 띠고 있는 특성을 보인다. 금오신화의 이야기들은 조선 초에 이르기 까지 계속적으로 서사문학의 원초형태인 설화로 이루어져 전승 변이되면서 소설이 발생될 수 있는 문학사적 기저를 마련했다고 할 수가 있다. 설화나 소설은 동질의 서사문학이기 때문에 이러한 설화의 발달이 한문소설의 발전을 가져온 동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인량의 「수이전」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는 수많은 설화들이나 임춘의 〈국순전〉이나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나 〈청강사자현부전〉 같은 고려의 가전체소설 등이 금오신화에 내면적 영향을 주었고, 외적으로는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와 같은 전기체 소설의 영향을 비교문학적으로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세조찬탈이라는 부조리한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관북, 관서, 호남, 영남의 방랑생활에서 얻어진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만복사저포기〉는 전북 남원지방에 있는 만복사를 배경으로 남원 양씨 성을 가진 노총각과 왜구의 출몰로 희생된 처녀귀신과의 이야기구조를 이룬 설화를 수집하여 재구성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가 있다. 그리고 국문학상 고려대의 가전체소설을 이은 최초의 한문소설의 첫 작품 〈만복사저포기〉가 남원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남원에서 살다간 최척이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조위한의 한문소설 〈최척전〉을 낳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가사 〈유민탄(流民嘆)〉이 생산케 되었다는 국문학적 의미가 크다. 그리고 훗날 남원 광한루를 배경으로 전승되는 남원 여인을 중심으로 민간설화를 소설화한 우리나라의 러브스토리 〈춘향전〉이 조선 후기의 주요한 국문학 작품이라는데 큰 의의를 찾을 수가 있다. 〈만복사저포기〉와 〈춘향전〉 이 두 작품은 환상이나 몽상의 공간과 현실공간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주자학적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이념이나 철학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중심적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남성종속적인 여성관에서 여성의 독자적 존재 가치가 부각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근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가 있다. 이는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남원지방 민중들의 인간중심적인 휴머니티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한문소설의 효시작인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와 광해군이 암행조사를 할 만큼 문제가 된 가사 〈유민탄〉과 임진란 때 실제 남원에 살았던 최척이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소설 〈최척전〉이 남원의 조위한에 의해 이 지방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이 고장이 우리나라 산문문학의 원천이라는 국문학적 의미를 갖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4.04.04 23:02

한 권 책에 담은 의미있는 시인의 흔적

1970년 발급된 주민등록증, 빛바랜 앨범, 명함, 안경, 파이프, 지갑, 시계, 의류, 책장, 상패 등은 시인의 흔적으로 묶어졌다. 1939년 발간된 첫 시집 <촛불>부터 제2시집 <슬픈 牧歌>, 3시집 <氷河>, 4시집 <山의 序曲>, 유고시집, 수필집, 전집 등은 저서로 정리됐다.신석정 시인(1907~1974)이 남긴 많은 유품과 기증 자료들을 보관전시하고 있는 석정문학관이 이를 <소장자료집>으로 발간했다. 2011년 고향 부안읍 선은리 고택에 건립된 석정문학관에는 5000여점의 유품과 몇만 권의 장서가 소장돼 석정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석정의 유족들이 내놓은 일상 용품서적서간문과, 초대 석정문학관장을 지낸 허소라 시인(군산대 명예교수)이 기탁한 여러 유품과 희귀 도서, 정양 시인(우석대 명예교수)오하근 문학평론가(원광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자료 등이 문학관을 풍성하게 만들었다.소장자료집은 이렇게 모인 자료들을 분석해 석정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석전 박한영 스님, 가람 이병기 시인, 박화성 소설가, 김광섭정인섭김소운장만영서정주설창수박목월황금찬김상옥조병화 시인 등이 보낸 편지와 엽서 등은 수신 편지로 묶어 자료집에 게재됐다. 또 1930년대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석정의 사진들과, 문학관이 소장하는 서화도서들도 자료집으로 정리됐다.소재호 석정문학관장은 진열대와 수장고에 산적한 자료를 오하근 교수님이 몇 날을 공들여 의미를 캐고, 사적을 더듬고, 분석하여 자료집으로 엮을 수 있게 됐다며, 이 역사적 사료 제작에 관심을 주신 많은 분들께 사의를 표한다고 발간사에서 밝혔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4.04.01 23:02

김제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 농경문화 생생한 교육장 기대

김제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이 동진수리민속박물관(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소유) 소장 유물 1457점을 이관 받아 명실공히 농경문화박물관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김제시는 지난 1998년부터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이관받으려 노력했으나 그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다 이번에 이관 받음으로써 16년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이로써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향후 전시 및 교육 등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이 소장 하고 있던 유물들은 지난 1983년부터 수집이 이뤄진 생산지가 분명한 지역생활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김제시는 이관 받은 유물을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내 동진관에 전시하고, 전시도록에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100년사와 동진수리조합동진농업주식회사의 역사를 축약해 담았다.또 수리도구발달사에는 길이 4m에 달하는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나무 파이프 및 물을 품어내는 물풍구, 대나무물풍구 등 희귀자료를 선보이고 있고, 농업도구 발달사는 농촌진흥청의 농기계 국가검정과 기술개발 자료인 재건쟁기와 중경제초기가 전시돼 있다.특별전시존에는 1970년대 동진수리조합에 재직했던 박규현 씨 사랑채를 재구성했으며, 동진수리민속박물관 기념존에서는 동진동우회 인터뷰자료 등 동진의 역사 및 유물이관의 의의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관계자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이번 동진관 개관을 통해 동진수리조합 100년의 역사를 끌어안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서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에 이관하는데 협조해준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한편 김제시는 지난 28일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에서 이건식 시장을 비롯 김상무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장 및 관계자, 도시의원, 유관기관단체장, 지역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진관 개관식을 가졌다.

  • 문학·출판
  • 최대우
  • 2014.03.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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