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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극인 상춘곡 (하)] 담양의 면앙정가단 형성, 조선조 가사문학의 원천

상춘곡의 허두(虛頭)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생애 어떠한가 / 옛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미칠까는 세속을 떠나 산 속에 은거하고 있는 풍류가 고인의 멋에 비교해 보면 어떨까라는 발화자의 서정적 표출로 출발된다. 이러한 풍류는 상춘곡의 결사(結辭)와 같이 부귀공명도 뜬구름이요, 단표누항(簞瓢陋巷)에 쓸데없는 생각을 아니하고 살아가는 티끌 없는 청정(淸淨), 그것은 청풍명월이 유일한 벗일 뿐이라는 사대부의 절제 있는 스토우어시즘(stoicism)적 미의식의 표출로 발산되었다. 백년행락 자체는 청풍명월을 벗하며 사는 안빈낙도의 도취적 감흥을 영탄한 것으로서 서사를 외연으로 한 서정성의 복합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사실 가사 작품 속에서는 규방가사의 계녀(誡女)가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정적 정신보다는 서사적 방법을 통한 교술(敎述)적 정신이 근간을 이룬 작품들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문학 장르의 역사 사회적 변모에 따른 분파, 내지는 변이(變異)화로의 한 전이형태라고 보아야 하고, 또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술한 바와 같이 서정, 서사, 교술성의 복합성에서 출발된 어느 한 성격의 극대화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춘곡과 같은 은일(隱逸)류의 가사는 서정이 주조를 이루고, 서사와 교술은 이를 뒷받침하는 보조적 성격을 이루는 장르의 복합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발화자의 감흥이 객관적 대상에 머물지 않고 서정적으로 미화되어 향유자(독자)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감흥을 일으키고 공명(共鳴)을 얻게 된다. 그런 까닭에 텍스트를 통한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수용되고 향유되는 특별한 장르라고 보고 싶다. 정극인의 이러한 은일류의 가사는 담양의 송순의 면앙정가로 이어지고, 이 면앙정가의 영향 아래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연결되는 면앙정가단이라는 가사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중종 5년(1510년)에 쓴 향약 발문을 보면 취은 송세림은 불우헌 정극인보다 30년 후에 태어났으므로 선생을 직접 만나 가르침이나 인도를 받을 수 없는 것을 한탄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정읍 태인 고현학당을 차운(次韻)한 머리에 학당은 본시 고(故) 불우헌공 정극인이 교수하던 곳인데, 취은 송세림에게 또 곧바로 이어졌다는 기록만 보면 송세림은 같은 고을에 살았던 정극인을 얼마나 존경하며 사숙했는지를 알만하다는 것이다. 송순은 일찍이 중종 13년(1518년) 송세림이 능성현감으로 있을 때 직접 찾아가 사사를 받았는데, 그 때 스승으로부터 정극인의 〈불우헌유고〉를 접할 수 있었고, 상춘곡이나 불우헌가와 불우헌곡도 읽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정극인과의 간접적인 문학적 영향관계를 엿볼 수 있다. 중종 22년(1527년)에 세자 호의 동궁에 작서(灼鼠)의 변과 요사스런 현패(懸牌)사건이 일어나고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억울하게 사건의 주모자로 몰리게 된 경빈 박씨와 아들 복성군을 죽이라고 간하자, 송순은 이의 불가함을 역설하다가 벼슬에서 물러났다. 2년 후인 중종 26년 고향인 담양 기촌으로 돌아와 면앙정을 짓고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마침 세조찬탈의 정국을 겪으며 태인 칠보로 은거한 정극인이 험난한 세상과는 무관한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봄날의 아름다운 정경을 그려낸 상춘곡처럼 송순은 중종조에 세자를 둘러싼 정치적 변란을 피해 담양 기촌의 면앙정에 유유자적하면서 은일가사 면앙정가를 창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심수경은 「견한잡록」에서 송순의 면앙정가는 그윽한 산천과 넓디넓은 전야의 형상이라든가 정대(亭臺)의 높고도 낮게 굽이도는 지름길의 형상을 두루 포서(鋪敍)하고, 사시사철 변모하는 아침저녁의 경치를 빠짐없이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문자를 섞어가며 운치 있게 도는 것을 지극히 잘 표현했음으로 진실로 볼만하고 가히 들을만함으로 송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으뜸 작이라 절찬하였다. 이러한 평설은 홍만종의 〈순오지〉에서도 동일하게 찾아 볼 수가 있는데, 순국어의 자유 자재로운 구사나 조사법의 기발한 솜씨, 조어의 공교로움, 이에 따른 절절한 정감 등은 가히 가사문학의 가치를 한껏 고양시킬 수 있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문만을 진서(眞書)라 숭상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평설로 본다면 대단한 작품평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 김동욱이 잡가에서 원문을 발견하기 이전에는 〈면앙집〉에 신번(新飜) 면앙정장가 1편이라는 부(賦)형식의 번역가만 실려 그 진가를 알 수 없음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김동욱 교수에 의해 잡가에서 발견된 면앙정가 원전을 보게 됨으로써 심수경이나 홍만종 등이 절창이라 평설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음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송순의 제자인 박상이나 김윤제, 기대승, 김인후, 임억령 등에게 배운 정철은 이들을 통해 면앙정 송순을 사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송순의 면앙정가를 본받아 성산(별뫼; 무등산자락)의 사계에 따른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성산별곡에 담아냄으로써 이들을 중심으로 한 면앙정가단이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송순은 스승 송세림을 통해 정극인의 상춘곡을 본받아 면앙정가를 창작하였고, 정철은 송순의 면앙정가와 같은 성산별곡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극인의 상춘곡은 조선가사문학의 효시(嚆矢)요, 남상(濫觴)이 아닐 수 없고, 담양에 면앙정가단을 형성케 함으로써 조선조 500여년을 이어 온 한국가사문학장르의 원천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전북 태인 칠보를 발상지로 한 정극인의 상춘곡은 담양의 면앙정가단으로 이어지고 호남가단을 형성함으로써 조선조 사대부가사문학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임진란 이후에는 부녀자, 평민 등으로 작자와 향유자가 확대되면서 국민적 장르로 발전하여 조선조 국문학의 질량을 드높였다고 생각된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 문학·출판
  • 기고
  • 2013.12.19 23:02

한국문인협회 고창군지부 문학상 진동규 시인 수상

(사)한국문인협회 고창군지부(지부장 최재언)는 지난 13일 르네상스웨딩홀에서 제14회 고창문학상 시상식 및 제46호 출판기념회를 가졌다.이날 행사에는 김인호 부군수, 조병익 군의회 부의장 및 조규철 의원, 김종한 미술협회지부장, 이충이 시와산문 발행인, 문인협회 고창지부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 축하했다.고창문학상 수상 주인공은 진동규 시인(68).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기도 한 진 시인은 상하면 출신으로, 구시포 노랑모시조개 등의 작품을 통해 고창의 아름다운 자연과 정경을 그려 왔으며, 그 공로 등을 인정받아 이번 상을 수상했다. 진 시인은 전북문학상, 영랑문학상, 전북인 대상, 목정문화상,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진동규 수상자는 “고향에서 받은 이번 상이 다른 어느 상보다 값지다”며 “남은 일생을 고창과 고창문학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사)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는 현재 50여 명의 문인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로서 문화예술 발전에 앞장서 오고 있으며, 꽃무릇 시화전, 고창예술제, 미당문학제 등 활발한 단체활동을 통해 지역 예술인 간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창작의욕을 높이며 순수 문화예술로 군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성규
  • 2013.12.17 23: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전체적 수준 향상…깊은 울림은 부족

문학은 현실의 거울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201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작은 경기 침체와 고령화라는 시대상을 반영해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작품 자체의 수준은 향상됐지만 소재가 신변잡기에 치중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 13일 본보 편집국에서 열린201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비심사에서 응모작들의 흐름과 경향을 분석한 결과다. 지난 9일까지 접수 마감한 본보 신춘 문예에는 단편소설 88명 90편, 시 211명 848편, 수필 190명 419편, 동화 74명 78편 등 모두 1435편이 접수됐다. 2013년 신춘문예 응모작 총 2052편(시 1296편, 수필 422편, 소설 179편, 동화 155편)의 2/3 수준이다. 이날 심사는 △단편소설 김병용(전북대 초빙 교수)최기우(전주대 겸임 교수) △시 박성우(우석대 교수)문신(문학박사) △수필 김저운(수필가 겸 소설가)서철원(수필가 겸 소설가) △동화 김자연(전주대 교수)이준호(아동문학가 겸 소설가) 씨가 맡았다.이들은 동화를 제외한 3개 부문은 해마다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총평이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참여도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단편소설 부문의 경우 문장력이 뛰어난 작품이 상당수였지만 주제 의식은 미약했다. 소설가 김병용 씨는 소설은 계속 좋아졌고 세부 묘사도 흠잡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다면서도 불안하게 흔들리는 삶의 모습을 묘사하는 일에만 치중,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호한 작품이 다수로 기량의 세련미만큼 주제의 새로움이나 무거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됐다고 설명했다. 극작가 최기우 씨는 침묵이 강요당하는 시대상이 나타났다면서 사회 비판이 줄어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가 대다수였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중장년층 글 가운데 기본적인 서사는 약하지만 깊이 고민한 인생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 부문은 복고가 대세였다. 실험적인 시가 줄고 소재와 형식이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박성우문신 씨는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언어의 실험, 내면의 해체 등 미래주의적인 시가 줄어 문학청년들의 피로현상이 보이는 듯했다면서도 대신 삶의 이면을 촘촘하게 포착하고자 하는 작품은 많아졌다고 풀이했다. 그들은 이어 새로운 경향을 찾지 못해 10여년 전의 표현 방법으로 돌아가려는 작품이 두드러졌다며 아직은 미래파적인 산문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시적 화자에 대해서는 바깥 쪽을 향하던 시상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느낌이 강했다면서 응모자도 15~77세로 광범위하고 시적 대상을 오래 응시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다고 말했다.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수필 부문은 일부 수작도 있었지만, 상당수 깊이가 얕았다는 지적이다. 심사를 실시한 김저운서철원 씨는 일상적 체험이 주류를 이뤘지만 가시적의식적 꾸밈이 많았다면서 소소함이 글감으로 좋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체험에 바탕한 깊은 내면화가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다수 글에서 진귀한 문장과 글쓴이의 참신함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동화 부문은 생활동화와 의인화 동화가 대부분이었고 완성도는 낮았다. 김자연이준호 씨는 동화도 서사와 문장 형식을 갖춰야 하는 문학인데 기본적인 요소가 미진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면서 문장의 빈약함과 함께 맞춤법, 띄어쓰기가 안 된 작품은 글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당선작은 본심을 거쳐 이번 달 말께 개별 통보한다. 발표는 2014년 1월1일자 본보 신년호에 공지한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3.12.16 23:02

이운룡 시인, 한국문인협 '조연현문학상' 수상

중산(中山) 이운룡 시인(75, 전북문학관장)이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 주관 제32회 조연현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어안魚眼을 읽다>(이랑과이삭). 2006년의 7순 기념시집 <산새의 집에는 창이 없다> 이후에 쓴 시를 해마다 13~23편씩 문예지에 발표한 노년 절정기의 시 87편을 묶어 올해 발간한 시집이다. 심사위원회(김후란, 이근배, 장윤익, 김우종, 윤후병, 박성배)는 이운룡의 시는 일체의 구속과 거리낌 없는 범천梵天의 세계를 청아한 목소리로 전해준다며 그의 어안은 우주의 근본 원리에 의하여 역사는 새로 발전한다는 진화법칙을 함의함으로써 양자역학적 세상 이치를 제시, 한국문학사의 후천개벽을 꾀하고 있다고 보았다.심사위는 또 그의 시는 어둠을 짜내어 진동을 일으키는 눈빛이 되고, 꿈이 되고, 향기가 천지를 덮는 현학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워야 빛나는 삼라만상, 그런 눈빛을 읽어낼 줄 아는 통찰력과 어안, 철학적 시안을 높이 평가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이 시인은 시집 머리말에서 물고기는 살아서 또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일언이 폐지 왈 생사불이이다. 어안은 궁극적으로 시적 상상력을 표상한 사물이며 그 이미지인 것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곧 실재와 현상 너머의 세계를 어안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자각의식으로 이해하여도 좋으리라고 화두를 꺼내었다. 시인은 올해 희수의 나이로 조금이나마 여력이 남아 있을 때에 정리해 두려고 시집을 상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중부대 교수로 정년 퇴임한 이 시인은 진안 출신으로, 전북대를 졸업했으며, 조선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69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의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등단했으며,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문학평론이 당선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가을의 어휘> 등 14권, 시 비평의 저서로 <시와 역사현실의 명암> 등 11권을 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월간문학 동리상, 한성기문학상,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 전북도문화상(문학부문), 표현문학상, 모악문학상, 전북문학상, 백양촌문학상, 작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시상식은 오는 30일 오후2시 대한민국예술인센터 지하1층 아카데미홀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2.16 23:02

이희근 수필집 〈아름다운 만남〉'회자정리' 통해 인생 전 과정 표현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만났던 사람들이 헤어질 때,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헤어짐의 당위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용되는 말로 변질되어 버렸다.수필가 이희근씨가만남의 철학을 꺼냈다. 그의 3번째 수필집 〈아름다운 만남〉(오늘의 문학사)을 통해서다.저자는 책머리에서 만남을 이렇게 정리했다. 인간 최초의 만남은 출생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가족, 친지, 친구, 직장동료와 상사 등 많은 사람과 만난다. 외연을 점점 넓혀가면서 만남은 계속되지만, 헤어지는 순간도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다.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인생이요, 회자정리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최후의 헤어짐은 죽음이다. 죽음은 회자(會者)가 만남을 중단하며 지금까지의 만남을 정리(整理)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定離)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회자정리라는 말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의 전 과정을 함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에게 수필 역시 만남의 문학이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수필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겨왔다. 세 번째 수필집을 통해 수필과의 만남을 회자정리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다며 자연과 인간이 만나고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문학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오하근 문학평론가는 교육자와 체육인, 문학인으로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정신, 육체, 예술, 기술, 세속, 종교 등의 만남과 어울림을 기록하고 있다며 만남과 어울림이 헤어짐을 전제하듯, 그의 글은 회자와 정리를 철학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고 평했다. 이번 수필집은 손자의 큰 선물, 감 한 개 때문에, 영원한 포터, 아들의 한 수, 단청 구경하는 할머니 등 5부로 구성돼 있다. 전주 한별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저자는 2009년 계간 문학사랑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산에 올라가 봐야〉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2.13 23:02

전북문인들 주축 〈한·몽문학〉 창간호 발간

전북 문인들이 중심이 돼 문집 〈한몽문학〉 창간호를 냈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김한창씨가 2년 전 몽골문학 레지던시로 참여해 몽골 울란바타르대학 연구교수로 활동하면서 한국문학 특강을 개설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한창 한국동인지문학아카데미 대표와 몽골 토이갈상 시인(몽골 울란바타르대 교수)이 지난해 8월 몽골문인협회와 한몽 문학교류협약을 체결하고, 격년제 상호 방문 세미나와 공동 번역 문집 등을 발행키로 한 결실이다. 창간호에는 몽골 문인과 한국 문인 40여명의 작품이 몽골어와 한국어로 함께 수록됐다.김남곤 시인은 창간호 권두시를 통해 풍남문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 대한민국의 전주와 / 밤하늘의 별이 밤톨처럼 쏟아지는 / 몽골 울란바타르와의 사이 / 몇천 리인가 / 몇 만리인가 / 손등을 포갬포갬 얹어 문학의 씨앗 뿌리는 / 약속의 탑 하나 웅장하게 쌓는구나고 의미를 부여했다(그 구원의 빛중에서).소재호 석정문학회장은 한몽문학 창간의 국제적 의미라는 특집을 통해 문화 문물이 전혀 다른, 깊숙한 대륙의 한 나라와 한반도 중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전북이 그 문학으로 국경을 넘어 한 권의 문학지로 교류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며, 우리 정신세계의 무한 확장과 우리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새로이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적었다. 최기호 울란바타르대학 총장과 정군수 전북문인협회장이 축간사를 썼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2.13 23:02

[10. 정극인의 상춘곡 (중)] '서정·서사·교훈' 종합 복합장르

(가) 엇그제 겨울지나새봄이 돌아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석양리(夕陽裏)에 피어있고녹양방초(綠楊芳草)는세우중(細雨中)에 푸르도다칼로 말아낸가붓으로 그려낸가조화신공(造化神功)이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수풀에 우는 새는춘기(春氣)을 못내 겨워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흥(興)이에 다를소냐화풍(和風)이 건듯 불어녹수(綠水)를 건너오니청향(淸香)은 잔에 지고낙홍(落紅)은 옷에 진다천촌만락(千村萬落)이곳곳에 벌려있네연하일휘(煙霞日輝)는금수(錦繡) 재폈는 듯엇그제 검은 들이봄빛도 유여(有餘)할샤(나)송죽울울리(松竹鬱鬱裏)에 풍월주인(風月主人) 되었어라시비(柴扉)예 걸어보고정자(亭子)에 앉아보니소요음영(逍遙吟詠)하여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한중진미(閒中眞味)를알 이 없이 혼자로다아침에 채산(採山)하고낮에 조수(釣水)하세소동(小童) 아이에게주가(酒家)에 술을 물어어른은 막대 짚고아이는 술을 메고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시냇가에 혼자앉아명사(明沙) 조한 물에잔 씻어 부어들고청류(淸流)를 굽어보니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무릉(武陵)이 가깝도다저산이 그것인가발화(發話)자는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경탄하다 못해 도취된 나머지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라는 탄사를 영발(詠發)하고 있다. 이는 봄날의 풍경이 객관적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 관조의 세계가 심미적인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즉 봄날의 경치가 명장들의 칼로 조각된 것인지, 아니면 유명한 화공(畵工)에 의해 붓으로 그려낸 것인지 모르지만, 이는 분명 보통 사람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닌 필경 조화옹(造化翁)의 신비세계의 경지에 이른 결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 경물 속에 서정을 담은 경중정(景中情)의 정서적 가치의 표방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일반적인 시적 감흥이었으며 시정신이 되어 왔다. 수풀에서 우는 꾀꼬리가 봄 향기에 취해 노랫소리마저 교태롭게 들리는 것은 발화자의 정서의 직서화(直敍化)가 아닌 조선조 사대부들의 일반적 정서의 표출 방식이었다. 물(物)과 아(我), 즉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는 곧 자연을 객관적 대상으로만 보지 아니하고 바로 발화자의 정서로 주관화하는 관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정은 상춘곡을 수용하는 향유자나 독자층의 입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가)를 읊조리거나 창(唱)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발화자의 입장과 같이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서정적 진술로 받아들여 미적 감흥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 봄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도화행화(桃花杏花)나 녹양방초(綠楊芳草), 세우(細雨), 새, 화풍(和風), 녹수(綠水), 청향(淸香), 술잔, 낙홍(落紅), 천촌만락(千村萬落), 연하일휘(煙霞日輝) 등은 춘경을 그리는데 사용된 소재만은 아니다. 이러한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그것이 객관적 대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발화자의 시혼(詩魂)과 교감되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향유자(독자)층에서도 똑같은 심정적 도취로 수용되어 나타나게 된다.(나)의 경우도 봄날 하루 동안의 생활을 순서대로 늘어놓은 일기처럼 서사성을 보여주는 진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사립문(柴扉) 밖을 걸어보고, 정자에 앉아 보며, 나물캐기와 낚시질, 또는 주가(酒家)에서 술을 받아 시냇가에 홀로 앉아서 취락(醉樂)에 빠져 있는 발화자의 모습은 하루생활의 일목요연한 일기적인 서술로도 볼 수 있다. 하루생활의 나열로 관심은 객관적 대상에 머무르고 있고, 서사성을 외연(外延)으로 하면서도 객관적 대상과 발화자는 물아일체의 도취적 경지에 이르러서 서정성에 귀결되므로 서사와 서정의 복합성이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동일 교수는 상춘곡은 봄날의 풍경과 그 속에서 보낸 하루를 그리고 있는데 그치는 작품이 아니며, 그러한 사실을 묘사하여 남에게 알려주고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이해하고 있다. 즉 사실의 전달에만 그치질 않고 사실의 전달을 통하여 일정한 교술(敎述)적 목적을 첨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의 장르를 가르쳐주고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교술장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사는 교술장르만이 아니라, 서정과 서사, 교훈성이 종합된 복합장르로 파악하는 게 옳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나라 가사장르만이 가지는 고유성으로 세계적인 문학장르라 할 수 있다. 오랜 관직생활을 했는데도 조산대부행사간원(朝散大夫行司諫院) 정언(正言)에 그친 정극인은 공명과 부귀도 나를 꺼려 피해가니 단표누항(簞瓢陋巷)에서 흣튼혜음 아니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조(自嘲)가 내면에 깔려 있다. 그러한 가운데 유교 윤리적 타당성을 설정하고 안빈자족(安貧自足)이란 유교적 철학을 가르쳐 주기 위한 교훈적 진술 위에 서정과 서사가 복합된 장르라는 것이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 문학·출판
  • 기고
  • 2013.12.12 23:02

미당 서정주 미발굴 수필 발견

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전집에 실리지 않은 미발굴 수필이 새롭게 발견됐다.계간 문예교양지 ‘연인’ 겨울호(통권 20호)에 실린 ‘1944년경(頃)의 이야기’는 미당이 1947년 경찰 전문잡지인 ‘민주경찰’(民主警察) 9월호에 발표한 글이다.이 수필이 발표된 것은 해방 후이지만 이 글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광복 이전인 1944년에 경험한 이야기다. 고향의 친구인 고등계 형사인 윤길이와 일본인 형사에게 체포돼 고향인 고창경찰서 감방에서 지낸 체험담을 쓴 산문이다.“나의 죄라는 것은 벌써 7년 전인가 8년 전에 전문학생시절(專門學生時節)에 그들과 놀면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소. (중략) 내가 있던 곳은 삼감방(三監房)이었는데 여기에 오랫동안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두 명의 절도와 한사람의 영아 살해범(殺害犯)과 또 한 사람의 살인미수(殺人未遂) 혐의(嫌疑)의 노인(老人)이었소. 이밖에도 징용도피자(徵用逃避者)와 도박(賭博)꾼과 작은 절도 횡령(橫領) 등 때 따라 많은 출입(出入)이 있었으나 그들은 나와 깊이 사귈 기회(機會)가 없었음은 물론(勿論)이오.” 미당이 학창 시절 젊은 혈기로 친구들과 이야기한 것이 빌미가 돼 체포됐다는 것이다.이 수필에는 미당이 그 감방에서 한 달 동안 “공포(恐怖)와 초조(焦燥)와 하수도(下水道) 속에 내리 떨어진 것 같은 불쾌감(不快感) 속에서 나날이 말라 들어가고 때로 붓고 가슴을 쥐어뜯고 살았던” 이야기들, 감방 속 사람들과의 단편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오랫동안 묻혀 있던 미당의 수필은 서지학자인 김종욱 씨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자료를 수집하다가 발견했다.그는 “‘민주경찰’은 해방 직후에 나온 최초의 경찰 전문잡지로, 이런 잡지에 미당이 글을 실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미당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기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문학·출판
  • 연합
  • 2013.12.11 23:02

박대헌 삼례예술촌 책박물관장, 한국출판 우수 학술상

박대헌 완주 삼례문화예술촌내 책박물관 관장이 저술한 ‘한국 북디자인 100년’이 한국출판연구소가 주관하고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주최하는 2013년 한국출판 우수 학술상에 선정되었다.박대헌 관장의 ‘한국 북디자인 100년’은 우리나라에 서양 활판인쇄술이 도입된 1883년부터 1983년까지 100년간 인쇄·출판된 단행본들의 표지 디자인이 변천하는 과정을 실제 도서를 연구 자료로 활용해 북 디자이너의 작품을 미술사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출판 역사를 재조명한 도서이다. 이 책은 기존에 시도되지 못했던 한국 북 디자인 및 북 디자이너, 한국출판의 역사를 인문학적인 분야를 넘어 문화·예술·사회·경제 전반에 통섭적인 주제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연구 성과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박대헌 관장의 저서에 소개된 도서들은 완주 책박물관의 특별 기획전시 ‘한국 북 디자인 100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공개되어 책의 아름다움과 함께 한국 북 디자인의 100년의 역사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도록 삼례문화예술촌 책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회는 내년 4월 6일까지 이어진다.한편 박대헌 관장은 오는 20일 오후 7시 완주 책박물관 제4회 고서대학에서 문화 창조와 혁신의 가능성에 대한 방안을 고서를 통해 살펴보는 ‘고서의 수집과 활용’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경모
  • 2013.12.09 23:02

농촌 간호원 20년 이야기, 사진과 함께

농촌 보건진료소에서 바라본 농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작가 겸 무주 상곡진료소장인 박도순씨가 농촌의 생생한 이야기와 사진이 담긴 에세이집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어도〉를 냈다(사진예술사). 무주가 고향인 저자가 고향 보건진료소에서 간호사로 사회 첫 발을 디딘 후 지금까지 20여년간 농촌 주민들과 함께 한 애환을 담았다. 치매 노인을 둘러싼 농촌의 풍경, 닭에 항생제(마이신)을 먹인 동네 주민들, 자녀를 도시로 내보낸 어르신들의 순박한 삶들을 진솔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보건진료소에서 혹은 논두렁 밭두렁에서 농촌 어른들의 삶을 지켜보았고, 그들의 삶이 책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고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습니다.”저자는 “농촌간호 현장은 도시 병원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간호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말로 농촌 어른들의 건강을 걱정했다.“우리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돌봄’의 손길 속에 삽니다. 신의 돌봄, 부모의 돌봄, 가족과 친구들의 돌봄, 이웃의 돌봄, 이것이 인정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저자는 보건진료소의 에피소드들을 SNS에 올려 보건진료소 종사자들 사이에 이미 유명 인사로 통하고 있으며, 쉼 없는 공부와 열정으로‘또순 여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또 일본의 99세 할머니 시인이 출판한 시집에 그의 사진이 게재될 만큼 사진작가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이번 에세이집에도 봄부터 겨울까지 생명이 꿈틀거리는 현장 사진들이 담겨졌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2.06 23:02

군산 출신 문효치 시인 11번째 시집 〈별박이자나방〉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천착해온 군산 출신의 문효치 시인(70)이 이번에는 생명체 속으로 들어갔다. 11번째 시집으로 〈별박이자나방〉(서정시학)을 통해서다.1976년 첫 시집 연기 속에 서서부터 2년 전 발간한 10번째 시집 칠지도까지 문 시인의 시를 관통하는 정신은 백제문화에 대한 성찰과 애정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시집에서는 표제시부터 거의 모든 소재를 생명을 갖고서도 무시받는 나비벌레풀 등으로 잡았다.일반에게 이름 조차 생소한 미물들을 시인은 주목했다. 거꾸로엷팔나비털두꺼비하늘소미운사슴벌레왕귀뚜라미산푸른부전나비좀사마귀큰멋쟁이나비황철나무잎벌레풀종다리번개오색나비남생이무당벌레, 달무리무당벌레모시나비검은물잠자리금테비단벌레쌀잠자리노란띠하늘소멧팔랑나비알락귀뚜라미도토리노린재좀청실잠자리열점박이별잎벌레모자무늬주홍하늘소 등이 시재로 삼은 나비와 벌레들이다.좁쌀냉이꽃층층이꽃개불알꽃멍석딸기꽃땅빈대닭의장풀노랑어리연꽃각시붓꽃방동사니며느리밑씻개 등은 시인의 눈을 붙든 풀들이다.시인은 우리가 흔히 벌레나 풀, 나무 등을 보고 미물이라고 말해버리는 것, 잡초나 잡목이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중대한 인식의 오류며 오만이고 편견이다고 시집 머리에서 일갈한다. 또무릇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의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존엄성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 운용의 커다란 질서 속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 생명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생태계의 실존적 구성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며 우호와 사랑으로 이들 미물과 잡초에 다가가 손잡고자 한 이유다.김석준 문학평론가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재탄생시키고 있다. 푸른 생명체들과 내밀한 우주적 대화를 감행하며, 생명의 여율을 동감의 시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시집 해설에 붙였다.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장 등을 지냈다. PEN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정지용문학 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미네르바〉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3.12.06 23:02

[9. 정극인의 상춘곡 (상)] 처가 칠보에 '불우헌' 짓고 자연 벗삼아 안빈낙도 추구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정극인(태종 1년 1401~성종 12년 1481)은 인간 세상, 특히 세조찬탈이란 정란 이후 온갖 시기와 질투, 모함이 득시글대는 벼슬세계를 떠날 때까지 간난신고의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세종 11년(1429}에 생원시에 합격을 했지만, 여러 번이나 과거에 실패를 거듭했다. 1437년 세종이 흥천사를 중건키 위해 토목공사를 벌이자, 태학생(太學生)들을 이끌고 그 부당함을 항소하다가 북도(北道)로 귀양을 갔고, 그 뒤 유배 길에서 풀려난 후 처가가 있는 태인 칠보로 은거하여 동진강가 비수천에 불우헌(不憂軒)이란 초옥(草屋)을 짓고 향리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단종 1년(1453) 52세 때 전시(殿試)에 응시하여 급제한 후, 전주부 교수참진사로 있다가 1453년 단종의 숙부인 세조에 의해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 두고 아내 박씨의 고향인 태인 칠보로 내려가 동진강가에 집을 짓고 세상의 근심 걱정과 관계가 없다는 뜻으로 그 초가집을 불우헌이라 칭하고 자신의 호로도 삼았다. 자연을 벗 삼아 그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가며( 自娛自樂) 살아가는 동안 조선 가사문학의 효시(嚆矢)작인 상춘곡을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상춘곡은 세조정란 후 두 번 째 칠보로 귀향했던 그의 나이 54세 때 지은 것으로 생각 된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1455년 전주부 교수참진사의 직을 사임하고 다시 칠보로 은둔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불우헌 정극인은 좌익원종공신 4등을 받고 다시 10년간의 벼슬길에 올라 4번의 성균관 주부(主簿)와 2번의 종학박사(宗學博士)를 지내고 사헌부감찰, 통례문감찰, 태인현 훈도, 사간원헌납, 사간원정언을 끝으로 성종 1년(1470)산수가 수려한 칠보로 세 번째 은둔를 선택하였다. 소용돌이치는 그러한 정치의 격랑 속에 일찍 벼슬을 그만 두고( 引年致仕) 자연 속에 묻혀 산 그였으므로 세상의 부귀공명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자신의 벗은 인간세상이 아닌 다만 청풍명월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면서 세상을 등지며 살았다. 그리하여 표면상으로는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에 누추한 거리에 한 줌의 밥과 자그만 표주박의 물(簞瓢陋巷)로 연명하면서 살았다. 그는 쓸데없는 인간세상의 명예나 부귀를 생각지 아니하며, 오로지 순진무구한 자연만을 즐기는 것으로 인생 백년의 행락(行樂)을 표방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이내생애(生涯) 어떠한가 옛사람 풍류(風流)를미칠까 못 미칠까천지간 남자 몸이날만한 이 많건마는 산림(山林)에 묻혀있어지락(至樂)을 모를 것인가 (중략)공명(功名)도 날 꺼리고부귀(富貴)도 날 꺼리니청풍명월(淸風明月)외에어떤 벗이 있사올고단표누항(簞瓢陋巷)에허튼 생각 아니 하네아무렴 백년행락(百年行樂)이이만한들 어떠하리발화자(發話者)는 흙먼지같이 더러운 티끌세상(紅塵)을 벗어나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에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어떠하며, 그리고 도연명과 같은 옛 사람의 풍류에 이를 수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선인(仙人)의 모습으로 갈아든다. 이어서 봄날 하루 동안의 흥취에 도취되어 신선처럼 살아가는 대목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인간세상의 부귀와 공명도 나를 꺼려 지나쳐버림으로 나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인간 본연의 회한(悔恨)이 진하게 서려온다. 인간세상의 부귀공명이 뜬구름 같고 자신과는 무관한데, 쓸데없이 그것에 매몰되고 갇혀서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아온 자신을 한탄하며 스스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우헌이라 스스로 이름 짓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체험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세상의 부귀와 공명이 자신으로부터 떠나가질 아니하고 오히려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므로 그런 질곡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근심하는 내면의 모습이 드러나 안타깝다. 작중화자는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고라며 인간 세상에는 자신을 위로하며 동행할 수 있는 진정한 벗이 없고, 오로지 맑은 바람과 밝은 달(淸風明月)만이 자신의 벗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는 고산 윤선도가 오욕(汚辱)의 벼슬세계를 떠나 해남 금쇄동에서 산중신곡(山中新曲)을 지으며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할 줄 모르는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 이 다섯의 자연물만이 내 벗이라 했던 오우가(五友歌)의 경지와도 같다. 또한 고려 말의 나옹선사(1320~1376년)가 56세에 남기고 간 선시(禪詩) 청산은 나더러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날더러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같이 나에게 가라하네(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라는 속세를 떠난 티끌 하나 없이 청정무구한 경지가 연상된다. 이렇듯 스스로는 바람과 물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과 같이 인간세상의 허튼 생각을 아니하고 인생 백년의 행락이 이만한들 어떠하리라며 위안하고 자족(自足)하려 짐짓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상춘곡 내면엔 오히려 그러한 걱정과 근심을 떨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작중화자의 모습이 역연히 드러나 근심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불우헌을 무색케 한다. 차라리 불우헌이라기보다 세상의 부귀공명의 끈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한탄하고 근심하는 우헌(憂軒)이라 할 만큼 화자(話者)자신 내면의 진 모습이 엿보여 안쓰럽게 보이기도 한다.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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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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