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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시차 없이 읽는다…동시출간 늘어

오는 24일(현지시간) 출간을 앞둔 스티브 잡스의 첫 공식 전기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특히 잡스의 이번 전기는 원서 출간 후 최소 몇 달이 지나야 한국어판을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와 달리 미국에서 원서가 출간됨과 동시에 다른 20여 개국 독자들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의 기대감도 더욱 커지고 있다. 전기를 펴내는 민음사의 이미현 홍보부장은 16일 "현지 출판사가 전략적으로 전세계 동시 출간 기준을 계약 전부터 제시했다"며 "마무리되는 원고부터 일부씩 건네받아 번역을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원서와 한국어판이 시차 없이 동시에 출간되는 경우가 최근 부쩍 늘고있다. 잡스의 전기 외에 그의 어록을 담은 책 'I, STEVE'(쌤앤파커스)도 곧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출간되며 대형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차기작 '시장과 정의'(가제.미래엔)도 내년 4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될 예정이다. 앞서 출간된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 세스 고딘의 신간 '이상한 놈들이 온다'(21세기북스),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의 자서전 '온워드'(8.0), 존 스티븐스의 판타지 소설 '에메랄드 아틀라스'(비룡소) 등도 원서와 거의 시차 없이 한국 독자들을 찾았다. 특히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따라 출간일을 앞당긴 잡스의 책처럼 뜨거운 이슈를 바탕으로 한 책들의 경우 이슈가 사그라지기 전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동시 출간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지하 갱도에 갇혔다 69일 만에 구조된 칠레 광부 33인의 이야기를 담은책 'The 33'(월드김영사)는 올해 2월 한국을 비롯한 4개국에 동시 출간됐으며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다룬 책 '위키리크스'(지식갤러리)도 올해 초 11개국에서동시 출간됐다. 21세기북스 관계자는 "해외 출판사에서 동시 출간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과거보다 해외 출판사나 에이전시와의 소통이 빠르고 쉬워진 것도 동시 출간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원서보다도 한국어판이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방한한 알랭 드 보통이 들고온 신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청미래)의 경우 원서인 영어판은 내년 2월에야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 출판사가 집필 단계에 선계약해 원고가 마무리되자마자 곧바로 번역해 선보인 것이다. 자기 계발서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으로 주목받은 스티브 도나휴의 신작 '인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김영사)도 최근 한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동시 출간이 통상 원서 출판사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면 이러한 국내 선출간 사례는 국내 출판사의 기획으로 이뤄진 것이 많다. 특히 전작이 국내에서 유독 두드러진 성과를 낸 저자인 경우 출판사도 저자의 이름값을 믿고 계약하고, 저자도 한국 독자를 특별히 고려해 선출간이 이뤄지는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의 저자인 앤디 앤드루스의 신작 '폰더 씨의 위대한 결정'(세종서적), '마시멜로 이야기'의 저자 호아킴 데 포사다의 신작 '바보 빅터'(한국경제신문)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러한 선출간은 인기 저자의 후속작을 기다리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며 글로벌 출판시장에서 한국 시장의 위상이 커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러한 트렌드가 출판사의 과도한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출판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좋은 저자를 발굴하기보다는 상품성이 검증된 저자의 책을 출간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내용이 검증되지 않은 외서에 국내 출판사들끼리 과도한 경쟁이 붙으면서 부실한 콘텐츠에 높은 선인세를 지불하면서 자칫 한국출판사들이 '봉'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1.10.17 23:02

[일과 사람] 김환태 평론문학상 수상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

"나는 태 내는 게 싫어."(사) 문학사상의 '제22회 김환태 평론문학상' 선정 소식에 문학평론가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60)는 수줍어했다. 교수 시절 보직 교수도 한 번 안했고, 패거리 문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문화예술단체 가입도 꺼려했다. "내가 전북 사람이라 준 거여"라고 말하며 소탈하게 웃는 그에게서 깐깐한 평론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그가 쓴 수상작'전북현대문학'(신아출판사)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잊혀질 뻔한 전북의 문학사, 작가·작품론을 재조명하는 귀한 결실로 민족 문화를 수호해온 김환태 선생의 비평정신을 이어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평소 "시 한 편 갖고도 논문 한 편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 만큼이나 그의 행간 읽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가 주창하는 신비평은 언어의 상징성을 캐는 치밀한 읽기를 바탕으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 것. "숨어있는 이들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 잡아주기 위함"이다."백주 김태주는 내가 처음 발견했을 거요. 작품이 전부 삭제 돼 잊혀진 존재가 될 뻔 했는데…. 가람 이병기 선생도 민족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지 작품(비평)에 대한 시도는 없었어요."'김소월 시어법 연구','한국 현대시 해석의 오류' 등을 펴낸 그는 '김소월 전문가'로도 통한다."내가 '김소월 시의 성상징 연구'로 박사과정 논문을 썼어요. 김소월 시집만 해도 70종이 넘었는데, 전부 다 엉터리였거든. 김소월 시를 덮어놓고 쉽다고 하는데, 실상 어렵다고. 무슨 뜻인 줄 모르는 낱말도 많고, 평안도 사투리 같은 방언도 심하고. 그래서 다시 썼습니다."이렇듯 꼼꼼한 글쟁이지만, 비평을 위한 비평은 지양한다. 비평은 작가와 독자를 막론하고 작품의 이해를 돕는 데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누가 알아주든 말든 서울이 아닌 전북에 남아 후진을 양성해 탄탄한 문학의 숲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잰 체하길 싫어하는" 성품 때문일 것이다."요즘에는 김영랑 시론을 정리하느라 바쁘다"는 그에게서 문학을 하면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시대의 선생을 만난듯 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10.13 23:02

시조시인 故 박병순 선생 발자취 조명

진안 부귀출신인 시조시인 구름재 고 박병순(朴炳淳)선생의 생가복원을 위한 관련 기념사업추진위가 발족된 가운데 고인의 발자취를 되짚는 자리가 12일 진안에서 마련돼 관심을 끌었다.마이문화제 일환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이동희 전북문학회장, 정군수 전주문인협회장, 임수진 전 진안군수 등 내빈과 주최 측인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회원 및 군민 등 3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전라시조문학회 유휘상 회장은 이날'구름재 박병순 선생의 시조문학특성과 기여도'란 주제강연을 갖고 시조문학세계 등 고인의 걸어온 길과 함께 생가복원의 필요성을 설명했다.특히 강연에 참가한 문인들은 구름재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데 뜻을 같이하며 생가복원사업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구름재 선생의 생가복원사업의 뿌리가 되는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동희 시인과 유휘상 시조시인, 그리고 이승철 진안예총회장이 공동추진위원장을,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 외 39명이 고문을 맡고 있다.전북문인협회가 주축이 된 기념추진위는 최근 구름재 선생의 생가터인 진안 부귀 적내마을에서 생가복원 발기모임을 갖고 문단적 사업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첫 발을 뗐다.한편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구름재 선생의 저서는 낙수첩(1956년), 가을이 짙어지면(1981년), 먼길바라기(2003년) 등이 있으며, 노산문학상(1978년),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재문
  • 2011.10.13 23:02

文鄕 전북, 사람 그리고 인생을 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2천 년 동안 수많은 작가와 다양한 작품이 쏟아진 전북 문학의 특성을 한마디로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북도가 11일 펴낸 '전북의 재발견- 문학, 영화'는 여성성과 저항성을 전북문학의 상징으로 꼽는다.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에서 도적에게 잡혀간 여인이 자신을 구출해주지 않는 남편을 풍자한 '방등산'을 넘으면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기녀 시인 매창을 만난다. 최명희,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 등 전북 출신 여성작가들은 눈부시다. 남성 작가인 정극인의 가사 '상춘곡'에서도 당대의 임금에 대한 충성이나 국난걱정보다는 섬세한 여성적 감정으로 자연을 노래한다. 이런 여성성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전북 문학의 저항성은 판소리계 소설에서 쉽게 접한다. 판소리계 소설이 보여주는 저항과 풍자, 비판은 전북 문학의 정신을 가장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일제강점기 채만식의 풍자, 그리고 해방 후 최일남과 서정인의 해학적인 문체 또한 이러한 판소리적 전통에 깊이 닿아 있다. 이런 저항과 풍자 정신은 신석정 이후 박봉우, 고은, 김용택으로 이어졌다. 물론 문학의 저항적 성격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지만, 전북 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저항은 섬세한 여성적 성격, 판소리로부터 이어진 민중적 활력과 깊게 연결돼 있다. 전북 영화를 재발견하는 것은 곧 한국 영화를 재발견하는 것과 같을까. 한국 영화사에 길이 기록될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과 '피아골'이 전북에서, 전북 스태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내 최초의 제대로 된 컬러영화 '선화공주'도 전북에서 태어났고 그런 흐름은 전주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전북이 1960년대 이전 한국영화의 중심지였던 것은 풍광과 사람 때문이라고 책은 말한다. 도내 14개 시ㆍ군의 산과 강을 펼쳐놓으면 굴곡의 세월이 보이고 차곡차곡 접으면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책 발간에 참여한 최기우(극작가)씨는 "전북 사람들의 질박한 삶과 그들이 꽃피운 활자와 영상을 만나는 것은 흥미롭고 유익한 일"이라며 "전북 문학과 영화의 재발견은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1.10.12 23:02

노벨 문학상에 스웨텐 트란스트뢰메르

스웨덴 출신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가 올해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스웨덴 한림원은 6일 "그가 다소 흐리면서도 압축된 심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한림원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대부분은 경제성과 구체성, 그리고 신랄한 비유로 특징지어진다"며 그의 시작 방향이 "훨씬 더 작은 형식과 더 높은 수준의 집중"으로 옮겨졌다고 덧붙였다.AFP통신에 따르면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은유와 심상(心像)이 풍부하고, 일상과 자연으로부터 간결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풀이된다.그의 내면을 관조하는 시작(詩作) 스타일에 대해 문학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신비적이고 융통성이 풍부하면서도 슬프다"고 표현했다.AP통신은 그가 "인간 심리의 신비에 대한 초현실적인" 작품 세계를 구성했다고 풀이했다.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그는 생존해 있는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으로,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지목되고 있다.이런 작품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실생활에서 트란스트뢰메르는 장애인과 범죄자,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과 병행했다.이에 대해 AFP는 심리학도인 트란스트뢰메르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꾸준히 적극적인 헌신을 해 왔다고 평가했다.페테르 엥글룬드 한림원 종신 서기는 트란스트뢰메르가 "역사와 기억, 자연, 죽음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해 집필했다"며 그가 23세 때부터 작품을 선보인 점을 감안하면 "작품 수는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트란스트뢰메르는 1950년대부터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와 교우 관계를 이어 왔고, 블라이는 트란스트뢰메르 작품의 대부분을 영어로 번역했다.그는 올해를 비롯해 최근 몇년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다가 끝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문학계와 베팅사이트 등에서는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와 알제리의 아시아 제바르등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 바 있다.우리나라의 고은 시인과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에 거론됐지만 결국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열리고, 수상자인 트란스트뢰메르에게는 상금으로 1천만크로네(약 17억원)가 지급된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1.10.07 23:02

목정문화상에 진동규·김종범·심춘택 씨

(재)목정문화재단은 6일 제 19회 목정문화상 수상자를 발표했다.재단은 지난 5일 심사위원회(위원장 안홍엽)를 열고 문학부문에 진동규씨, 미술부문 김종범씨, 음악부문에는 심춘택씨를 선정했다고 밝혔다.진동규씨는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북대 국문학과와 전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시인 겸 화가로서 전주예총 회장, 전북문인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역동적인 문화 창작활동을 펼쳤다.미술부문에 선정된 김종범씨는 대한민국미술협회 고문으로 40여 년간 서예 발전을 추구해 왔다.전북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을 맡아 전북 서예의 대중화와 실용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적을 인정받았다.심춘택씨는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며 도내 6개 고등학교에 관악부를 창단, 관악(취주악)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를 육성했다. 현재는 아리울문화예술진흥회 회장을 맡고 있다.제 19회 목정문화상 시상식은 오는 28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목정문화상은 전북지역의 향토문화 진흥을 위해 공헌한 문화예술인 또는 단체를 찾아 시상하는 것으로, 1993년부터 매년 문학, 미술, 음악 3개 부문에 대해 수상자를 선정해왔다.각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각 1,000만원의 창작지원비를 지원한다.설립자인 목정(牧汀) 김광수(金光洙)씨는 무주 출신으로 향토기업인 전북도시가스(주)와 (주)미래엔(옛 대한교과서), 서해도시가스(주), (주)현대문학 등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이지연
  • 2011.10.07 23:02

[금요수필] 찬란한 슬픔

몇 년 동안 방치해 두었던 난이 작년 봄에 꽃을 피웠다. 뜻밖의 손님처럼 반가웠지만 꽃이 진 뒤 기다림도 그리움도 키우지 않고 무심히 세월을 흘려 보냈다. 첫 만남의 감격이 컸기에 아주 잊은 건 아니어서 가뭄에 콩 나듯이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귀띔도 없이 그는 내게로 다시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러니까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그는 동지섣달 꽃은 아니지만 나 좀 바라봐달라고, 나한테 사로잡혀달라고 묵시적 신호를 보내며 장엄한 한 호흡을 시작했다.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해 온 힘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저 생명의 불꽃. 세 개의 꽃대에 다섯, 일곱, 열 한 개의 마디마디에 터를 잡더니 꽃 고추마냥 연둣빛으로 봉긋하게 부풀어진다. 날이 갈수록 여인네 버선코 모양을 하고 수줍은 듯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탱탱해졌다.며칠 후, 노랑 봄 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듯 꽃망울들이 하나씩 벙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늘을 위하여 먼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속내를 꽃으로 노래하고 있으리라. 가슴에 고이는 이 두근거림, 나날이 애틋해지는 꽃. 나는 꽃과 마주하면서 사랑을 듬뿍 담은 여인이 되기도 하고, 명절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는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다.꽃과 사랑노름을 하다가 잠이 들어 이튿날 일어나보면 간밤에 나를 재워놓고 무도회라도 열었는지 꼬마천사들이 발레를 하고, 노란 참새들은 노래를 하며 꽃잎들이 박장대소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고 놀았는지 약간은 흩어진 이슬이 송알송알 맺혀 있곤 했다. '글쎄 요것들이, 즈떨끼리만·····.' 그러나 실은 벌·나비를 유혹할 수 있는 충분한 끼를 지녔음에도 스스로 제 사랑을 찾아 나서지도 못하는 베란다 화분 속의 난 꽃이 안쓰럽다. 오늘은 창문을 열어 벌·나비들을 초대해주어야지.쉽게 피지 않는다는 난 꽃이 우리 집에서 두 번이나 함박지게 피어주었으니 이는 나와 특별한 인연 때문이리라. 그러한 인연 속의 우리 집 난을 막연히 난이라 부르지 말고 그만의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예의일 듯싶어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똑같은 꽃이 보이지 않았다. 잎이 셋인 다른 난과 달리 우리 난은 꽃잎이 여럿이다. 돌연변이를 겪은 귀하신 몸인데 진가를 몰라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꽃은 이미 다 저버리고 마지막 한 송이. 미안한 마음에 늦게나마 사진을 찍어줬다.꽃이 피고 지는 세월 속에서 난 잎 몇 개도 혈색이 변해간다. 우리 집 난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니 생로병사의 굴레를 피해가지 못하는가 보다. 작년에는 한 달 남짓 꽃이 피었는데 올해에는 기간이 많이 짧아졌다. 이러다가는 다시는 꽃을 보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좁은 집에 대가족살이가 힘이 들었을지도 모르니 제금을 내 신접살림이라도 차려주어야 하나. 분신을 그리워하며 몸살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 두어 서로 바라보며 가끔 손도 잡으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게.이제 나는 꽃이 시들어 떨어진 뒤의 허망함을 한동안 견디면서 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찬란한 슬픔의 꽃을, 그리고 다시 피지 않을 나의 젊음을·····.*수필가 이정숙 씨는 2001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지금은 노랑신호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10.07 23:02

제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에 소설가 최인훈

국내 문학상 가운데 가장 많은 1억5천만원의 상금이 걸린 제1회 박경리문학상의 수상자로 소설가 최인훈(75)이 선정됐다. 심사위원회(심사위원장 김치수)는 5일 "최인훈 소설가는 문학적 완성도와 지적성찰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보편성 속에 자리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가 주관하는 박경리문학상은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1926~2008) 선생을 기리고자 강원도, 원주시, 협성문화재단의 후원으로제정한 상이다.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이 시대의 가장작가다운 작가'를 선정한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등단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작가 가운데 공로와 작품의 창조성, 세계 문학의 흐름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적 완성도와 사회적 기여도 등을 고루 평가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올해 첫 회에 한해서는 한국 작가를 뽑고 2회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문학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 작가는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한국분단 현실에 대해 문학적으로 치열하게 성찰해 온 소설가로 평가받는다. '광장'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화두' 등이 대표작이다. 시상식은 박경리문학제가 열리는 오는 29일 오후 4시30분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있다. 문학제에서는 또 청소년 백일장, 문학포럼,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리톤 서정학이 협연하는 기념 음악회 등이 펼쳐진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1.10.06 23:02

보통 "'엄마를 부탁해'는 사랑스러운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등의 소설과 에세이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신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청미래 펴냄. 원제 'Religion for atheists')의 출간에 맞춰 방한해 27일 서울 태평로에서 기자들과 만난 보통은 "한국에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는데 드디어 찾아오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먼저 전했다. "한국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매우 좋습니다. (내가)단순한 사람이라 한국 독자들이 내 작품을 좋아한다면 모두 내 친구죠.(웃음) 한국 역사에 대해서 읽으면서 역사적 장애물을 극복하는 한국인들의 용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인기가 있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읽었는데 작품 자체도 사랑스럽지만 책에 담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보통이 최근에 탈고한 그의 열 번째 책으로, 영어판출간에 앞서 한국 독자들에게 먼저 소개됐다. 무신론자라고 밝힌 보통은 "완전한 무신론에서 종교를 존중하는 입장으로 나아가게 되는 여정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한 이 책에서 무신론자일지라도 종교의 여러측면 가운데 세속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종교가 지니고 있는 초자연적인 측면은 믿지 않지만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가령 사찰의 분위기나 종교의식에 관심이 있고 세속적인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허전한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죠. 종교는 종교인들에게만 맡겨놓기엔 지나치게 흥미롭습니다."책 속에서 보통이 "세속사회가 종교에서 훔쳐올 만한 것"으로 꼽은 것들은 교육방식, 예술을 대하는 방법, 공동체를 결집하는 방식 등이다. 특히 그는 종교가 특정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종교는 대단히 체계적인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종교인으로서 종교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을 수 있어도 가르치는 방식은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세속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생각으로 항상 새로운 사실들을 가르치지만 종교는 사람들이 잘 잊어버리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새로운 것이 항상 좋은것이라고 믿는 세속사회와 달리 종교는 옛 생각 속에서도 진리를 뽑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엄격한 무신론자 가정에서 자란 보통이 종교에 대해 이렇게 '열린' 태도를 갖게된 데에는 바흐의 칸타타나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 그림, 선(禪) 불교의 건축과 같은종교 예술 작품을 접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세속 사회에서는 미(美)와 지(知)를 별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종교에서는 미가 지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종교에서 음악과 미술, 건축 등은 종교적인 사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게 하는 수단으로서만 존재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 이것이 종교의 바람직한 야심이라고 생각하고 세속사회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보통은 이번 방한 일정 중 여러 차례의 강연과 사인회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고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열리는 와우북페스티벌을 통해서도 한국 독자와 소통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1.09.28 23:02

[최명표의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30)'휴전선'의 시인, 박봉우

박봉우(朴鳳宇, 1943~1990)는 광주 출신의 시인이다. 그는 1975년에 전주로 이사하여 전주시립도서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비록 다른 지역 출신이나, 그를 전북 시인의 범주에 포괄할만한 이유이다. 그와 같은 작고문인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행장을 수습하는 일에 서두를 일이다.박봉우는 광주 서석초등학교 시절에 전학년간 급장을 맡을 정도로 수재였다. 그는 초등학교 재학 중에 동요가 입선되고, 중학생 시절에 '진달래' 동인을 결성하는 등, 조숙한 문사의 기질을 드러내었다. 그의 문학 활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미 극에 달했다. 일찍부터 문재를 빛낸 그는 ??학원??의 단골 투고생이었고, 시 ?石像의 노래?가 ??문학예술??에 당선된 기성시인으로, 친구들과 4인시집 ??상록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런 명성 덕분에, 광주고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시내 여고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시인 행세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의 행각은 서울까지 이어져, 동년배 시인 박성룡과 함께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조병화의 단골 다방이었던 문화사롱을 출입하기도 했다.전남대학교에 다니면서 시동인지 ??零度??를 발간한 그는 1956년 시 ?休戰線?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의 각광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주목할만한 신인으로 오르내렸고, 시단의 흐름을 단박에 바꿔버렸다. 새로 나온 겁 없는 신예시인이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라고 문단의 안일을 힐난하며 분단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 나라에 분단문학이 발아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박봉우는 계속하여 "지금 저기 보이는 시푸런 江과 또 山을 넘어야 진종일을 별일없이 보낸 것이 된다"(?나비와 鐵條網?)면서 민족의 비극을 시화하여 "50년대의 기막힌 이야기"(?窓은?)를 쓴 '분단시인'으로 자리매김되었다.그러나 박봉우는 지방 신문의 주재 기자로 재직하던 중에 집단폭행을 당한 후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앓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그의 정신 상태는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하였고, 급기야 정신병동에 감금되는 사태를 맞았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조국과 민족의 비운에 분노하면서 "머리를 앓고 사는 사람들"(?정신병원?)의 병후를 걱정하는 한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무덤 같은 잠"(?죽은 듯 눈 감고 싶다?)을 청하며 인생무상을 탓하기도 했다. 더욱이 마땅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부인과의 사별은 그의 내면에 심한 죄책감을 각인시켰고, 그는 스스로 "蒼白한 病室의 美學者"(?겨울에도 꽃피는 나무?)로 자처하면서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고독과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는 시인의 고독을 동시에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남긴 후기시편에서 공통적으로 검출되는 정서는 삶의 공허감이다.천재의 질병으로 알려진 정신 이상은 그의 시재를 조로화시켰다. 그는 "경무대는 이제 시인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시인들의 공원이 되어야 해"라거나 "노벨문학상은 그리고 노벨평화상은 내가 탄다"면서 거침없이 울분을 토하고 정견을 발표하던 그는 전쟁의 참극이 진정될 무렵에 발생한 4월 혁명에 의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소망과 달리, 군사정변에 의해 혁명이 전복되어버리자 그는 극심한 절망에 사로잡혔다. 이 시절의 절망감은 "이젠 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라는 자포자기적 시편에서 엿볼 수 있거니와, 그는 '서울 下野式'을 마치고 낙향한다.박봉우가 전주에 도착한 이후의 시편들은 후기시에 속한다. 그는 이 시기에 서울 생활에 실패하여 안정된 직장을 잡지 못하다가, 전주시장으로 재직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전주시립도서관에 취직하여 타향살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전주는 삶에 지친 박봉우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전주의 문우들은 맛의 고장에 사는 사람들답게 그의 "주점을 찾고 싶은 욕망"(?黑室素描?)을 흡족시켜 주었고, 인정 많은 시우들은 잔정을 베풀며 즐거이 시를 토론하였다. 또한 그는 전주 사람들의 배려에 힘입어 불성실한 근무와 숱한 이석에도 불구하고 직장으로부터 퇴출되지 않았고, 유명한 남부시장에서 술과 함께 일상을 소비할 수 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으나, 전주에서 보낸 한 철이 박봉우에게는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호시절이었던 셈이다.하지만 시 외의 여타 부문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그의 행동은 포장마차를 이끌며 생계를 책임진 부인의 병세를 악화시켜 심각한 자책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박봉우는 부인을 닮은 딸에게 "슬픈 것 감추고/아름다운 것만 들어내어/너에게 주마"(?내 딸의 손을 잡고?2?)고 약속하지만, 현실은 그의 꿈을 수락할 만큼 녹록치 않았다. 평생 동안 가난을 달고 살았던 그였으나, 시작의 열정은 전신에 흘러넘쳤다. 착란 중에 "국회의사당은 이제 시인들이 다스릴 곳"이라던 박봉우, 그는 지금 어느 하늘에서 시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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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9.27 23:02

[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30)无量壽閣(무량수각)-추사의 글씨(16)

无(無)量壽閣(무량수각) -아미타불(무량수불)을 모시는 불전无:없을 무/ 無:없을 무/ 量:헤아릴 량/ 壽:목숨 수/ 閣:집 각본 연재 17에서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 가면 조선 후기의 3대 명필이라고 할 수 있는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원교가 쓴 枕溪樓(침계루), 추사가 쓴 无量壽閣(무량수각), 창암이 쓴 駕虛樓(가허루)가 바로 그것이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충남 예산의 화암사에는 추사가 썼지만 대흥사 무량수각 현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또 하나의 '无量壽閣' 현판이 있다.충남 예산은 '추사고택'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 양반 추사 선생의 고택이 왜 예산에 있는 것일까? 추사 선생의 가문은 원래 충남 서산군 대교리에서 속칭 '한다리 가문'으로 불렸던 명문가인데 추사의 고조 김흥경(興慶)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더욱 번성했다.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金漢藎)이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 즉 비운의 세자인 사도세자의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써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지고 아울러 봉토(封土=賜田)로서 서울 통의동 일대와 지금의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 일대의 땅을 하사받아 그곳에 집을 지어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 살게 되었다. 추사의 어머니 기계유(兪)씨가 추사를 임신했을 때 서울에 전염병이 돌자 서울 통의동의 집을 떠나 예산의 향저에 내려가 있음으로써 추사는 예산에서 태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오늘날 이 저택을 추사 집안에서 가장 이름을 떨친 '추사'를 기리는 의미에서 추사고택으로 부르게 되었다.고택의 왼쪽에는 추사의 묘가 있다. 추사의 묘는 원래 추사가 만년에 거했던 경기도 과천에 있었는데 1937년 선조들이 묻혀 있는 이곳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추사의 묘 위쪽으로는 화순옹주와 김한신을 합장한 묘가 있고 그 옆에는 젊은 나이에 김한신과 사별한 후 개가를 하지 않은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훗날 정조가 내린 열녀문인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의 오른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기슭에 있는 추사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106호인 백송(白松)이 서 있다. 이것은 추사가 동지부사인 생부 김노경을 따라 북경에 갔다가 가져와 심은 소나무이다.추사고택 근처의 야산인 오석산(烏石山)에는 백제 때 창건된 화암사(華巖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을 추사의 증조부가 재건하여 추사 가문의 집안 절로 사용하였다. 추사가 쓴 이 무량수각 현판은 바로 화암사에 결려있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도 절을 다시 한 차례 중수하였는데 추사는 이 현판 글씨를 제주도에서 써 보낸 것이다. 따라서 해남 대흥사의 무량수각 현판은 비록 귀양을 가는 길이지만 권문세가의 핵심인물로서 아직 기고만장할 때 쓴 글씨이고 화암사의 무량수각 현판은 유배생활의 고초를 겪으면서 氣도 한풀 꺾이고 고독 속에서 삶을 반추하던 시기에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화암사 무량수각 현판은 글씨가 매우 담담하다. 필획에 어떤 힘을 넣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아니, 넣을 만한 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좋게 보면 의도하는 바가 없이 붓 가는 대로 쓴 '담(淡)'의 글씨라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체념에 빠진 무기력한 글씨, 한 바탕 병을 앓고 난 후에 쓴 해쓱한 글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無를 无로 쓴 것이나 '量'자의 모양, 그리고 '閣'의 오른 편 문기둥에 해당하는 획을 오른 편으로 삐쳐 내린 특이한 결구 등 추사의 결자(結字) 습관은 그대로 다 드러나 있어서 대흥사 무량수각의 글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두 작품에 대한 평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閣'의 오른 편 문의 어깨를 낮추고 기둥에 해당하는 획을 오른 편으로 삐쳐 내린 특이한 결구를 통해 추사의 탁월한 창의성을 볼 수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진정한 탁월성은 '無'를 '无'로 쓴 데에 있다. 만약 無를 그냥 無로 썼다고 가정해 보자. 이 작품은 매우 답답한 작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네 글자 중 '量'과 '壽' 두 글자가 다 가로획의 연속적인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다가 첫 글자 '無'마저 가로획이 중첩된 모양을 하고 있는 '無'로 썼다면 이 작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해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반복과 중첩의 답답함을 피하기 위해 추사는 '無'를 '无'로 쓴 것이다. 역시 천재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동일한 작가가 손에서 나왔지만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인생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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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9.21 23:0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저자 김남중 작가 초청 강연회

익산시립도서관은 19일 2011년 한 권의 책으로 선정된 '불량한 자전거 여행'의 저자인 김남중 작가 초청 강연회를 20일 오전 10시 모현도서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이번 강연회는 2011년 한 권의 책 선정도서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널리 알리고 책 읽는 도시 익산 조성을 위해 마련된 행사로, 김 작가와 소통과 배려를 주제로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진솔한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 작가는 익산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제9회 MBC 창작동화상', '제5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제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등을 수상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자존심', '들소의 꿈', '붕어낚시 삼총사'등이 있다.특히 2011년 한 권의 책 선정도서인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속도감 있는 문장과 익살 가득한 에피소드로 그려 단숨에 읽히는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익산시립도서관에서는 이번 작가초청강연회를 시작으로 한 권의 책 독후감 공모전, 원화전시회, 오디오북 체험전, 북콘서트, 독서골든벨, 도서교환장터 등 독서의 달을 기념해 시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 개최를 이어갈 계획이다.한편 초청 강연회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익산시립도서관 홈페이지(www.iksan.go.kr/library)나 전화(859-3731~2)로 문의하면 된다.

  • 문학·출판
  • 엄철호
  • 2011.09.20 23:02

[최명표의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29)비릿한 예토의 '우렁달팽이' 시인, 이연주

이연주(1953~1992)는 군산에서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간 비운의 시인이다. 1991년 시 '가족사진' 등으로 등단한 그녀는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자진하였다. '탁류'의 고장에서 태어난 탓인지, 그녀의 시 속에서는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난다. 시장의 생선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죽어가거나 죽어 있는 시체이다. 그 광경은 역겹다. 왜냐하면 그녀가 생전의 소원대로 "죽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서"('즐거운 일기') 드러누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연주의 시는 읽기 고약하다. 그녀의 길지 않은 생애만큼이나 전기적 사실들도 미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간에 이루어진 비평적 관심조차 드물어서 관심있는 독자들의 접근을 가로막는다.또한 이연주의 시가 난해한 이유는 여기저기서 고린내와 고름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녀 앞에서 시어는 세계의 위악성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그녀는 말초신경염, 비만증, 전염병, 백내장, 긴장형 조발성 치매증, 황달기, 매독, 공수병, 위장병, 문둥병, 실어증, 소화불량증, 진폐증, 혈전증, 천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질병을 작품 속에 퍼뜨리는 심술을 부린다. 한편으로 그녀는 코카인, 가나마이신, 항생제, 아티반, 노발긴, 포르말린, 포도당주사 등 여러 가지 약품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적어도 작품상으로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그녀의 모순된 행동은 사회를 향한 진단과 치유행위이다. 병명의 나열은 사회의 환부에 대한 나름의 진료 기록이고, 약명은 그에 알맞은 처방전이다. 그녀의 시에서 질병은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이연주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어서 생긴 병으로 인해 시작 생활 내내 한순간도 평화할 수 없었고, 자신의 불만과 욕망을 각종 질병으로 명명하고 치료하면서 살았다. 따라서 그녀가 기괴한 '가족사진'을 통해 다수의 작품에서 질병과 약품을 열거한 것은 사회에 퍼지게 될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언어적 신호였다. 그녀는 시인다운 예지력으로 미구에 창궐하게 될 질병을 예측하고 경고했건만, 사람들은 "코끝을 찌르는 듯한 이상한 냄새"('외로운 한 증상')를 풍기는 그녀의 시에 등 돌리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고통에 들게 했던 병원들이 퍼진 후에야, 사람들은 그녀의 시를 꺼내어 병후를 알아보는 등 수선을 떨었다. 이미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가버렸는데 말이다.그녀는 생전에 날마다 꿈을 꾸었다. 그녀는 살아생전에 사람들의 '사이'로부터 탈출하는 꿈만 꾸었다. 그녀는 고상한 서정시인은 못 되더라도, 세상의 대책없는 무질서와 혼란을 외면하는 위선자가 되기 싫었다. 그녀는 패거리 문화에 휩쓸리는 권력지향적 문단 풍토를 애써 멀리 하고, 철저하게 반인문주의적인 상상력을 가동하여 감각적으로 포착하였다. 특히 그녀는 후각 이미지를 빈번하게 제시하고 있는 바 그 여파로 인해 시작품에 냄새가 진동한다. 독자들의 해독을 허용하지 않는 그녀의 '지독한' 시어들은 작품의 구석구석마다 형상으로 켜켜이 쌓여서 낯선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녀의 끈질긴 노력 앞에서 세계는 화해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온갖 모순들이 뒤엉켜 앞을 다투는 '저주의 굿판'으로 변모한 것이다.이연주는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과 '속죄양, 유다'라는 두 권의 시집만 덜렁 남겼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녀의 시집을 펴는 순간, 기존의 시와 달리 엉망으로 난자당한 시어에 당황한다. 그녀는 아어로서의 시어를 고의적으로 폐기하고, 덧난 부위와 곪아터진 상처를 소름끼치는 막말로 시를 썼다.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그녀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습한 시론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현대시의 전통적 문법이나 사유방식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남들이 자신의 시를 읽어주는 것조차 꺼려하며 "어디에도 소장되지 않는 삶"('네거티브')을 꿈꾸었다. 그녀가 "양로원에도 갈 수 없는 나이"('그렇게, 그저 그렇게')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해버린 것은 그 꿈의 완성이다.두 시집은 그녀가 죽던 해를 에워싼 3년의 시간을 증언한다. 그녀가 두 권의 시집 속에 털어놓은 메스꺼움이란 결국 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그녀의 요구조건은 지극히 단순하다. 이제라도 세계의 정직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그녀에게 가했던 부자유와 불합리를 사죄받는 일이다. 더욱이 권력을 좇는 평자들의 눈 먼 독해력을 비웃었던 이연주처럼 치열했던 시인 앞에서는 우리 모두 죄인이다. 이처럼 시는 죽은 자의 작품을 통해서 살아남은 자로 하여금 현생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이제라도 그녀가 남겨둔 두 권의 시집을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예토의 부정직성을 교정하느라 땀 흘려야 한다. 우리들이 태곳적의 형형한 눈빛을 회복할 때, 이연주의 시는 절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9.20 23:02

군장대학 이용길 교수, '창조교육…'출간

군장대학교 이용길(49) 교수가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창조적 발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창조적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학적 이해와 창조교육 교수 학습의 실제적 방법을 서술한 '창조교육 교수·학습의 이론과 실체'를 출간했다.총 380여쪽 분량으로 3부 14장으로 구성된 '창조교육 교수학습의 이론과 실체'는 창조교육의 교수학습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이론과 실제에 대한 연구와 저술들의 장·단점을 절충 보완하고 있으며,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과 귀결됨을 강조하고 있다.이 교수는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창조교육을 위한 교수법과 학습법을 연구해 왔으며, 특히 창조교육 이론을 주창하며 학문적 일가를 형성해 온 이종록 광동학원 이사장과 함께 창조교육학의 토대를 마련해 왔다.남원 출생인 이용길 교수는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교육학회 기획조정위원, 한국교육사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창조교육 교수 5단계 이론에 관한 논의'등 5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04년 한국교육사학회 학술논문상, 2006년 창조교육학회 학술공로상, 2009년 창조성 국제학술대회 우수논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문학·출판
  • 이일권
  • 2011.09.16 23:02

희망의 메시지 담긴 성장통 이야기

"그냥, 즐겼다."여고생 김누리(18·전북사대부고 3학년)양에게 첫 장편소설'안녕, 소리바다(잇북)' 출간은 "시작부터가 도박이었다" .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없었다. 덕분에 즐길 수 있었다. 욕심을 버리니,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주관한 '우수 저작 및 출판지원사업'에 누리양이 최연소로 선정되면서 또다른 '문단 여동생'을 예고했다.'유의, 나 소리바다로 가.'소설은 열아홉살 여고생 '유의'의 시선을 따라간다. 유의는 '절친'J가 가상공간'소리바다'로 사라지자 찾아 나선다. 하지만 '소리바다'에서 한쪽 팔을 잃은 바이올리니스트, 집안 형편으로 헤어진 작곡가 등을 만난다. 유의는 성장통을 겪으며 사랑을 배우고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여기서 누리의 고민과 주인공 유의의 고민이 포개어진다. "처음으로 사랑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하지만 마냥 미쁘지만은 않다. 한창 어리광을 부릴 법도 한데, 성숙하다. 내일이 불안한 청춘의 창백한 낫빛을 볼 줄 알고, 그 지친 영혼에게 자신의 좁은 어깨를 빌려줄 줄도 안다. "더 열심히 읽고 쓸 계획"이라는 누리양은 "(감히) 사랑한다"는 말로 모든 이야기를 대신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9.15 23:02

[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29)山崇海深, 遊天戱海-추사의 글씨(15)

山崇海深, 遊天戱海(산숭해심, 유천희해)-老阮?筆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하늘에서 놀고 바다에서 장난질 하고. -늙은 완당이 멋대로 쓰다山:메 산/ 崇:높을 숭/ 海:바다 해/ 深:깊을 심/ 遊:놀 유/ 戱:놀 희, 희롱할 희/ 阮:성시 완/ ?:속일 만, 거만할 만/ 筆:붓 필이 작품은 현존하는 추사 작품 중 규모가 가장 큰 작품으로서 한 폭의 크기가 가로 207×세로42cm나 된다. 그런데 두 구절 중 '遊天戱海'라고 쓴 폭에만 '老阮?筆'이라는 관기(款記)가 있고 '山崇海深'이라고 쓴 폭에는 아무런 관지가 없다. 따라서 이 두 폭의 글씨가 원래는 두 폭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게 아니고 한 폭으로 이어진 가로 길이 414cm의 대형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홍준은《완당평전》에서 1957년 3월 대한고미술협회가 주관한 경매전에서 관기가 없는〈산숭해심〉은 55만환에 관기가 있는〈유천희해〉는 121만환에 낙찰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두 폭이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이산가족'신세를 면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마치 각 폭이 한 작품인양 각 폭의 끝부분에 같은 도장이 찍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 찍혀 있는 도장들은 추사가 당년에 찍은 게 아니라 두 작품이 분리된 이후에 누군가가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이작품은 추사 서예의 호방하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거칠면서도 제대로 박힌 필획에 탄탄한 결구 그리고 여덟 글자를 가로로 이어 쓰면서도 어느 곳 한 곳 이지러진 데가 없는 웅장한 장법 등 흠잡을 데라고는 없는 작품이다. 이른 바, '살아있는 필획'을 구사하는 운필법 중에 종이와 붓이 마치 사포(砂布)에 문질리는 것 같은 강한 마찰감을 느끼도록 하는 운필이 있는데 이를 '향상도하(香象渡河:코끼리가 강을 건너듯)'라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본 연재 추사〈계산무진〉조 참고). 이 작품이야말로 전형적인 향상도하의 필법으로 쓴 작품이다. 추사 이후 지금에 이르도록 이처럼 큰 대작을 이렇게 참신하면서도 기괴한 결구를 이루면서 이처럼 호방하고 웅장하게 쓸 수 있는 작가는 추사 외에는 없다고 단언해도 무방할 것이다.그렇다면 이 작품에 쓴 '山崇海深, 遊天戱海'라는 글의 뜻은 어떻게 풀이를 해야 할까? 추사는 자신이 스승으로 받들었던 청나라의 서예가 옹방강(翁方綱)의 실학정신을 칭송하면서 "山海崇深"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기는 하나(국립중앙박물관《추사 김정희》2006, 85쪽 참조) 여기서의 '山崇海深'도 그런 의미로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필자는 이 '山崇海深'의 의미를 굳이 옹방강과 연계하지 않고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인 팽구년(彭龜年1142~1206)의 시와 범성대(范成大 1126~1193)의 글에서 찾고자 한다. 팽구년은〈광수(廣壽=長壽〉라는 시에서 "누가 장수하기를 마다하겠는가? 장수하는 방법으로는 덕을 쌓는 것보다 나은 게 없지.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면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수명을 누릴 수 있다네."라고 읊었다. 그리고 범성대는 한나라 때의 은자(隱者)인 엄광(嚴光)의 사당에 대한 기(記)에서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엄광의 인품과 도덕이 산처럼 높고, 맑은 명예가 강물처럼 길게 오래도록 이어질 것을 칭송한 말이다. 추사가 쓴 '山崇海深'은 범성대가 쓴 '山高水長'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로 볼 수 있다. 따라서 '山崇海深'이라는 말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수명과 '산처럼 높은 인품으로 강물처럼 길이 전할 명예'를 누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遊天戱海'는 말은 중국 남조시대 양나라 사람 소연(蕭衍)이 위(魏)나라 때의 명필인 종요(鍾繇)의 서예를 평하여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 떼의 비상처럼 비록 빽빽하지만 결코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구름 같은 고니가 하늘에서 놀듯이 한가하고 여유가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인 "群鴻戱海, 雲鵠遊天(군홍희해, 운곡유천)"에서 따온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하늘에서 노는 고니처럼 한가하게,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처럼 자유롭게'라고 풀이할 수 있다.이제 '山崇海深, 遊天戱海' 두 구절을 이어서 뜻을 부연하여 풀이해보도록 하자.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수명과 산처럼 높은 인품과 강물처럼 길이 전할 명예를 누리소서. 그리고 하늘에서 노는 고니처럼 한가하고 바다 위를 나는 기러기처럼 자유로운 삶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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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9.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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