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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괴물 아이 - 전소현

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건 열두 살 무렵이었다. 밤마다 왼쪽 가슴 언저리가 웃음이 날 정도로 간지러웠다. 어느 날부터, 왼쪽 가슴엔 초록색 털이 자랐다. 그리고 그 털은 점점 자랐고, 학교 운동장에 있는 잔디와 같아졌다. 엄지손가락 마디의 길이였는데, 가위로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났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피부과부터 시작해 온갖 병원을 다 데리고 다녔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상해요. 알 수 없지만, 건강엔 이상이 없습니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엄마와 달리 열두 살의 나는 기뻤다. 만화에서 보던 영웅이 변신했을 때의 모습처럼 나도 변신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영웅의 증표를 친구들에게 가서 보여줄 생각에 신이나 설레하던 전날 밤을 기억한다. 다음 날 입고 있던 티셔츠를 짠하며 벗었다. 친구들의 표정은 제각기였다. 감탄이 섞인 소리도 들렸고 만져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괴물이야 라고 외쳤다. 이건 괴물이 아니라 영웅의 증표였는데, 괴물 소리가 점점 커졌다. 괴물이다. 괴물. 몸에서 이상한 게 자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난 듯 복도를 뛰어다니며 괴물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곳저곳에 끌려다녀야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옷을 멋대로 벗겨내려고 했고, 모르는 사이 내 사진이 찍혀 돌아다녔다. 엄마는 내 팔을 붙잡고 울면서 나를 때렸다. 뭐가 자랑이냐고, 그걸 왜 보여주냐며 나를 혼냈다. 집 앞에는 카메라를 든 어른들이 나를 찍으려고 애썼다. 학부모들은 나를 전염병이 걸린 사람처럼 학교 밖으로 쫓아내자고 회의를 했다. 텔레비전에선 나를 괴물 아이라고 소개했다. 아, 나는 영웅이 아니라 괴물이었구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있는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세면대에 올라가 옷을 벗고 그 괴물의 증표를 잘라냈다. 아무리 잘라도 끝에 남아있는 것까지는 자르기가 힘들었다. 가위를 던지고 손으로 벅벅 긁었다. 긁어도, 잡아 당겨봐도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절대 괴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피가 새어 나왔다. 피가 초록색의 잎을 빨갛게 적셔갔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장실 안에 엄마의 울음소리와 나의 고함이 한 데 섞여 울려지고 있다. 전교생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전학을 갔다. 만화방, 오락실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시골 동네였다. 6학년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전학 첫날 선생님 손을 잡고 반으로 걸어갔다. 바닥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반 앞에 도착해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도 나는 바닥만 보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라고 말한 뒤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냥 대충 고개를 숙이고 이름을 말했다. 잠깐의 정적 뒤 박수 소리가 들렸다. 창가 빈자리에 앉았다. 종례시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음 날, 운동장에서 얼핏 어제 반에서 봤던 애 중 하나와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가던 발걸음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다. 뛰면 뛸수록 심장 소리가 더 커졌다. 숨이 차올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특유의 짠 향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바다가 있었다. 심장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파도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실내화 가방을 대충 모래사장에 던지고 그 위에 앉았다. 불안함에 요동치는 내 마음과 달리 파도는 점점 고요를 되찾았다. 엄마한테 지금쯤이면 전화가 갔으려나. 내가 없어진 건 아무도 모르겠지. 이제 어떡해야 하지. 왜 나는 괴물이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머리를 잔뜩 굴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내가 있는 쪽과 점점 가까워져 고개를 들었다. 왜 나보고 도망쳐? 아까 운동장에서 봤던 그 애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뒤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 나를 보고도 그 애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왜 나를 뒤 따라온 건지 궁금한 것보다 그냥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옆을 힐끔 봤는데 그 애는 바다에만 시선을 두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애와 나 사이엔 기러기 소리, 파도 소리가 전부였다. 나 너 알아. TV에서 봤어. 그 애가 정적을 뚫고 말을 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나도 모르게 어쩌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애가 그제야 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애의 눈엔 벌겋게 변해버린 내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몇 겹을 껴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괴물의 증표가 옷을 뚫고 튀어나올까 무서워 손으로 가렸다. 잔뜩 웅크린 나와 달리 그 애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더니 이내 눈앞으로 그 애의 팔이 다가왔다. 이것 봐. 멋지지 않아? 그 애의 팔엔 검은색의 반점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눈이 찌푸려질 모습이었는데 그 애는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져보지 않겠냐고 그 애가 제안했다. 뭐에 홀린 듯이 손을 그 애의 팔에 갖다 댔다. 보기와 달리 피부가 훨씬 매끈거렸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야. 엄마가 그랬어. 내가 사랑해줄수록 더 예뻐질 거라고. 너한테 생긴 것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도 예쁘겠지만 네가 사랑해주면 사랑해줄수록 더 빛날 거야. 처음으로 누군가가 가슴에 생긴 것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왼쪽 가슴이 뜨겁고 간질거렸다. 마치 처음 잔디가 폈을 때처럼. 금방이라도 그 속에서 해바라기가, 장미가 예쁘게 피어날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학교에 가자고. 아마 다들 기다릴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내민 손을 붙잡았다. 우리의 손 사이에 있는 모래가 서걱거렸다. /전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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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유수진

유수진 작가 수변길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불빛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어룽어룽 빛들이 물결 따라 흔들렸습니다. 징검다리로 올라서니 수변길에서 보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빛들은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제 몸을 다해 점멸하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빛들이 자리를 옮깁니다. 이쪽과 저쪽을 다니며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빛들을 오래 봤습니다.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전등을 환하게 켜둔 방을 헤아렸습니다. 아파트엔 불 켜진 방이 많았습니다. 저기 어디 내 방에도 불이 켜졌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밤 기온이 영하라는데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달았습니다. 불이 환한 창문들 사이로 듬성듬성 아직 빛이 귀가하지 않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변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글을 왜 쓰냐고, 시를 왜 쓰냐고. 그럴 때마다 막막하고 난감합니다. 왜 쓰는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답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쪽엔 흰 종이를 펼쳐 둔 채 다른 쪽에 한글파일 화면을 열어 두었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귀가를 기다리는 창문들에 관심을 두겠습니다. 수면 위에서 점멸하는 별의 끝을 잡고 풀어가겠습니다. 여정의 길목마다에서 스위치를 찾겠습니다. 스위치를 딸깍, 올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어수룩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고향, 엄마 보고 싶어요. 아버지, 당신의 등을 존경합니다. 아들아, 딸아, 사랑한다.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유수진 작가는 대전 출생으로 이화여대 독어독문과, 동 대학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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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1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왼) 허형만 시인 / (오) 김영 시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열한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자의 인적 사항이 없이 응모 번호만 응모작 맨 앞에 적혀서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코로나19로 만나지는 못하고 각자 좋은 작품을 뽑기 위해 숙독을 하고 다시 각각 세 분의 작품으로 압축했다.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 「흙냄새 향수」 외 4편, 「저녁의 집」 외 3편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세 분의 작품들은 모두 소위 신춘문예 풍조에 물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시의 위의와 진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먼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의 작품은 대담한 언어 구사와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언어를 부리는 기교가 겉으로 너무 드러나면 소통과 감동에서 약간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비록 오타였다 하더라도 맡겨를 맞겨로 쓴 실수는 마지막 퇴고나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았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흙냄새 향수」 외 4편에서는 시적 진술과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힘이 좋았다. 그러나 일상을 읽는 독법이 평이함으로써 참신한 감각, 즉 신선미가 떨어진 듯하여 아쉬웠다. 「저녁의 집」 외 3편은 요즘처럼 세상이 코로나19로 어수선할 때 너무나 소중해진 당연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가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치열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다른 응모작들도 고른 수준을 견지함으로써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러기에 심사위원들은 「저녁의 집」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서로 일치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허형만 시인, 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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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1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황지호

황지호 작가 그날 모악산 산행이 떠오릅니다. 안개가 진했던 늦가을이었습니다. 안개는 곧 는개로 변해 나아갈 길을 자주 확인해야 했습니다. 익숙한 길이었으나 불안감이 밀려왔고, 불안감은 두려움에 닿았습니다. 정상을 넘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래 걸었으나 정상은 나오지 않았고 도착한 곳은 낯선 마을이었습니다. 길을 잃었던 것이지요.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었나 봅니다. 자주 다니던 산이니 길을 잃기 쉽지 않은데, 스스로 의지를 꺾고 벗어났을 겁니다. 제 글의 행로, 삶의 행적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막연했고, 두려웠으며, 회피했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으니 길에서 벗어나 낯선 것을 기웃거렸던 순간들, 새로운 길을 걸어본 경험들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사람들 삶 속에 결이 비슷한 감정과 인식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심사위원님들의 선택은 그럭저럭 걸을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산행을 시작해보라는 권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시 산 들머리에 섰습니다. 문장의 능선에서 세상과 역사, 사람들의 삶과 내면을 오래 바라보겠습니다. 글을 가르쳐 주신 이희중 선생님, 강준만 교수님,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갖게 해주신 변주승 교수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주신 이강식 선생님, 제 삶과 글의 첫 독자인 윤공 스님과 마지막 독자인 아내 윤은영 님 감사합니다. 서울장흥 식구들과 재선이를 비롯한 친구들, 물빛학원 동료들과 제자들, 흐름출판사 한명수 사장님 감사합니다. 황원지와 황정현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황지호 작가는 전북 장수군 장수읍 동촌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고 <월간 전원생활>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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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0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귀가(歸家) - 황지호

집이 죽어가고 있었다. 평고대 안쪽으로 쏟아진 기와는 기단과 마루에서 파편이 되었다. 기와가 밀린 곳은 보토와 진새, 앙토가 드러났고 그 흙에 의지해 민들레가 자라고 있었다. 뿌리가 암세포처럼 서까래 골수에 파고들었을 것만 같았다. 상한 서까래 마구리는 아귀의 이빨처럼 날카로웠고 추녀는 갓이 상한 버섯처럼 추레했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덧문과 덧문에 남아 있는 삭은 보온 비닐들이 집의 음습함을 더했다. 황토미장을 한 벽도 무너진 지 오래였다. 미장한 흙이 떨어지며 드러난 중깃과 눌외, 설외가 핏줄처럼 보였다. 황토와 범벅 돼 흘러내린 빗물이 피고름 같았다.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 그것을 주춧돌이 농반처럼 받았다. 밤이 되면 무서운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집이 흐느껴 울 것만 같았다. 드레싱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피부암 전이를 막기 위해 절단한 그녀 다리는 치료되지 않았다. 피부암이 전이된 것인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직검사를 하자는 요청에 담당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미 내려놓은 듯했다. 깨끗한 임종을 위해 절단한 부위의 상처라도 낫길 바랐지만 수습되지 않았다. 소독할 때마다 핏줄과 살들이 너덜거렸고 상처와 상관없는 근육이 바들거렸다. 그녀의 긴 비명이 병동을 오래 침묵하게 했다. 몇 번의 드레싱 이후 이식한 살이 떨어져 나갔다. 소독 접시로 그것이 떨어지자 담당의가 질끈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뼈와 근육 사이가 벌어졌다. 이격을 봉합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회진을 할 때마다 새살이 돋았냐고 순하게 묻던 그녀가 퇴원을 하라는 의사의 말에 사납게 변했다. 처음에는 비명을 참아 보겠노라고 했다. 암이 전이된 것이면 위쪽을 한 번 더 절단하자고 했다. 퇴원이 임종을 준비하라는 말인 것을 안 그녀는 분노와 원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분노와 원망 사이에 의사는 희망을 심어 주지 않았다. 담담히 남은 생을 정리하라고 했다. 의사의 담담함이 죽음을 더 바투 다가오게 했다. 부엌문 하방과 둔테를 바라보았다. 하방은 반달처럼 굽었고 둔테는 우물처럼 깊었다. 옛 목수는 하방을 자귀로 다듬고 끌질을 더해 둔테를 만들었다. 곡률이 큰 월방문턱이었으나 턱이 닳았고, 세월과 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둔테는 깨져 있었다. 비스듬히 걸린 부엌 판문을 당겼다. 부엌이 깊숙한 곳까지 햇살을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천장 상부 구조를 바라봤다. 좌측 대들보와 우측 평주를 휘어진 충량으로 연결하고 전후면 도리를 연결하는 멍에를 충량 위에 가로질러 걸었다. 그 위 외기 도리에 추녀와 서까래를 걸었다. 충량과 멍에의 곡선이 은은했고 모를 접어 순해 보였다. 손대패로 다듬은 서까래의 살결이 매끄러울 듯 했다. 겉은,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었지만 속은 아직도 여리고 순한 집이었다.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는 눈꼽재기창은 그대로였으나, 그 아래 부뚜막에 걸려 있던 암수 솥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래 비어 있던 집이니 고물상들이 남겨 놓을 리 없었다. 솥을 잃은 부뚜막은 무너졌고, 쌀뒤주는 사라져 빈자리에 먼지가 앉았다. 솔가리는 숨이 죽었고, 섶은 삭아 땔감답지 못했다. 석유곤로와 사기그릇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놓인 한쪽 술날이 닳은 놋숟가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유리를 만진 듯 차가웠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들어 술잎을 천천히 쓸었다. 파란 녹이 더 진하게 드러났다. 놋숟가락을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부엌방 홑겹 대살문 너머로 작은 항아리 몇 개가 보였다. 항아리에 소분된 간장과 된장을 고물상도 차마 내쏟지 못한 듯했다. 간장과 된장은 이미 오래전 발효의 끝에 다다랐을 것이다. 정맥주사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감나무 새순이 돋았냐고 물었다. 그즈음이라고 답했다. 정월에 담은 간장을 갈라야 하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감나무 새순이 돋기 전에 간장을 가르고 새순이 피면 못자리를 준비하자고 했다. 논두렁이 미끄러울 텐데 한쪽 다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오디새가 울기 전 밭갈이를 마치고 접동새가 울면 외를 심자고 했다. 감꽃이 피면 논두렁에 서리태를 심고, 감꽃이 질 때쯤 메주콩을 심자고 했다. 뻐꾸기가 울면 참깨를 심고, 고추잠자리가 날면 김장 배추를 심자고 했다. 눈 오기 전에 모은 솔가리가 불땀이 좋은데 산비탈에서 갈퀴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가 첫눈이 내린 날 아침, 햇빛이 문고리에 걸릴 무렵 그를 낳았다고 말했다. 생일날 국수를 삶아 주고 싶으니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회진을 도는 담당의에게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의사가 몇 올 남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부엌에서 나와 툇마루를 바라보았다. 여모귀틀 하단 곡선은 초봄의 들판을 닮았고 마루청판 상부 풍화된 나이테는 밭이랑을 닮았다. 밭이랑은 소를 부려 골을 탄 듯 굽었고 새 보습을 끼운 듯 고랑이 깊었다. 이랑과 고랑에 먼지가 쌓여 마루의 봄 흙 같던 검은 윤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마루청판 하부에 옛 목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무 연질을 부드럽게 떠낸 자귀 자국이 완연했다. 마루청판과 귀틀, 부엌 월방과 둔테를 다듬은 자귀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스승은 목수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오면 자귀질만 반년 넘게 시켰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무의 성질을 깨닫게 하려는 뜻인 줄 알겠으나 견디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스승은 죽기 직전, 남은 목수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묵은 집을 고치거나 이축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일을 물리지 말라 했다. 목수에게는 묵은 집보다 좋은 스승이 없다고 했다. 묵은 집을 열어 보면 옛 장부법, 직재와 곡재를 다루는 정석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집을 감싸는 바람 길과 집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물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성정이 다른 재료를 버무려 공간을 짓는 방법과 그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외기를 어떻게 이어 주는지, 혹은 피해가게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집이 늙어 가는 흐름과, 어디부터 상하고 아프기 시작하는지, 집과 사람이 어떻게 의지하고 서로를 품어 주는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이 사람으로 보일 때에야 비로소 도편수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오래된 옛집은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반듯하고 고졸한 집은 선비로, 산속 암자는 초연한 노승으로 보여야 한다. 양반인 것 같지만 격 없이 화려하게 지어 기생인 집이 있고, 비루한 객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준엄한 어사의 품위를 갖춘 집이 있다. 같은 촌부라 하더라도 사임당 같은 집이, 용부의 부족한 심성이 드러나는 집이 있다. 폐가가 되었을 때도 무관의 기품 드러나는 집이 있고, 인색하고 옹졸한 성품이 드러나며 볼품없어지는 상인의 집이 있다. 본채는 번듯하지만 아래채는 남루한 집이 있고, 부족한 본채지만 아래채와 의지하며 조화로운 집터를 만들어 가는 집이 있다. 말은 없지만 속정이 깊어 기대고 싶은 집이 있고, 치장은 화려하나 내용이 없어 오래 머물 수 없는 집이 있다고 했다. 도편수는 산파와 같아 새로운 집의 탄생을 돕기도 하지만, 의사와 같아 아픈 집을 낫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허리가 굽은 노인에게는 지팡이를 깎아 주고, 격 없는 기생집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주고, 비루한 객에게는 밥 한 끼 대접해야 한다. 인색한 상인 집에는 마루를 만들어 주며, 남루한 집은 미장보다 지붕을 고쳐 주고, 조화가 깨진 집은 담을 쌓아 주어야 한다. 자식을 가르쳐 용부를 돕고, 올곧은 뼈대를 갖춘 집은 좋은 터를 잡아 이축해 주라고 했다. 혹여 그럴 수 없는 집이라면, 주인이 이미 속굉을 확인한 집이거든 정성을 다해 염습을 해주라 했다. 염장이가 되어 시충이 나오더라도 진맥하듯 시신을 닦고, 가죽같은 빈 몸, 피고름 담긴 육신이라 생각하지 말고 성심을 다해 염을 하라고 했다. 시신이 허리를 세우듯 집이 목수를 섬뜩하게 하더라도 시취에서 살아 있을 때의 사연을 맡겠다는 마음으로 습을 하라고 했다. 조각난 수장재, 부러진 보머리라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화장을 하되 그 마지막 육신으로 어느 집 행랑채 한 번 따뜻하게 데울 기회를 만들어 주라고 했다. 화장이 끝나면 재는 부추 밭에 뿌리고 좋은 날을 골라 부추를 거둬 막걸리 한 잔 하되 첫 잔은 반드시 고수레를 하라 했다. 그리고 잊으라 했다. 은하수 같은 부추 꽃이 발목을 잡아도 집과의 인연은 이미 끝난 것이라 생각하고 등을 보이라 했다. 배 목수가 집을 철거할 일꾼들과 함께 마당에 들어서며 그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등에 업혀 마당을 지날 때 지붕 용마루 복문이 쓰러졌으니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툇마루에 내려놓자 비닐 덧문을 걷지 그랬냐며 나직하게 나무랐다. 마루에 앉은 그녀가 툇보를 올려다보며 여전히 곱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집 치울 일이 걱정이라 했다. 그녀는 때가 되면 참나무 껍질을 벗겨 굴피담을 보수했고, 그 곁에 인동과 나팔꽃을 심었다. 마루는 마른걸레만으로 검은 윤을 냈고 아침마다 마당 비질을 했다. 가을걷이를 앞두고는 흙을 이겨 마당들이기를 했다. 좋은 흙을 따로 선별해 바람벽 틈을 메웠고 남은 흙으로 부뚜막과 한데부엌을 보수했다. 그녀가 집이었고 집이 곧 그녀였다. 개숫물도 마당에 함부로 쏟는 일이 없었다. 윗물은 다시 썼고 아랫물은 거름에 더했다. 바람이 불면 처마 끝에 매단 시래기를 뒤집었고, 구름이 들면 수채를 확인했다. 겨울이 오기 전 마루에 덧문을 달았고, 봄이 되면 걷었다. 같은 날 세살문에 창호지를 발랐다. 봄에는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포개 넣었다. 외양간 옆에는 손수 막을 짓고 토끼를 키웠다. 토끼가 새끼를 보면 동물도 사람도 주변 왕래를 금했다. 개가 해산을 하면 왼새끼로 꼰 금줄을 대문에 치고 돌아와 어미 개 곁에 앉아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다. 곧 미역국을 끓여 오래 쓴 해산 바가지에 담아 어미 개에게 먹였다. 삼칠일이 지나면 금줄을 걷었고 그때서야 강아지를 안았다. 마당은 암탉과 그 새끼들의 터전이었는데 평화롭게 노니는 병아리를 좋아해 고양이만은 키우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사는 것들을 죽여 양식으로 삼는 일이 없었다. 가축은 그저 키우는 것이었을 뿐 그 숨과 몸을 거두어 먹이로 삼지 않았다. 마당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장날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 오겠다고 하자, 그녀가 이제괜찮다고 답했다. 기단에 서서 안방 문을 바라보았다. 창호지가 드문드문 삭았으나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툇마루에 올라 안방 문 앞에 서자 무너진 외양간을 살펴보던 배 목수가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으나 힘이 맥없이 풀렸다. 추레하게 서 있으니 배 목수가 다가왔다. 배 목수가 안방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을 슬며시 놓게 헸다. 대목수가 집과 나무 기세에 눌리거나 장척이 부러지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배웠다. 집 기세에 눌린 목수는 드잡이를 멈추고, 나무 기세를 이기지 못한 먹잡이는 먹통을 잠시 놓아야 하며, 장척이 부러진 도편수는 현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배웠다. 오늘은 목수로 온 것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배 목수가 안방 옆 마루방 문을 열고는 그를 살짝 끌어 안방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마루방은 연등천장이라 서까래와 대들보가 곧바로 보였다. 필요한 곳만 적당하게 다듬은 대들보였다. 옛 목수가 남겨 놓은 치장먹줄이 선명했다. 도리와 도리, 인방과 인방 사이에 많은 시렁이 걸려 있었다. 채반을 걸어 누에를 키우고 꽃 열매와 뿌리를 말리던 시렁이었다. 칸 전체 바닥에 깔린 마루청판은 틈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마루 막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냄새가 났다. 집도 사람도 육신의 허물을 벗을 때는 냄새가 나는 법. 상처에서 진물과 피고름, 냄새가 계속 흘렀다. 거즈를 떼면 살점이 묻어 나왔다. 죽은 살이 죽어 가는 살을 부여잡았다. 붕대를 동여맬 수 없었다. 이팝나무 꽃잎 같은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여간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욕창이 위험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니, 이 방 바닥에 어떻게 냄새와 얼룩을 남기겠냐고 했다. 때가 되면 그녀는 껍질이 연한 솔방울을 구해왔다. 그것들을 방바닥에 촘촘히 깔고 오래 불을 때 바닥에 송진을 먹였다. 송진 위에 은행잎을 곱게 갈아 뿌리고 굳기를 기다렸다. 그 과정을 몇 번쯤 반복했고 마지막엔 바닥을 사발로 밀고 마른걸레로 문질러 윤을 냈다. 송진 향은 방 안에 오래 머물렀고, 은행잎은 벌레를 막았다. 그 온화하고 담박한 방에서 그녀는 그를 팔베개로 재웠다. 그녀를 위해 의료용 중고 침대를 사 왔다. 침대 시트를 갈 때마다 그녀는 두 팔로 그의 목을 꼭 감싸 안았다. 그는 그를 위해 시트를 자주 갈았다. 배 목수가 일을 시작하자며 일꾼들에게 마당의 잡목이며 풀부터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마루방 문을 열어 놓고 기단으로 내려와 집 왼편을 돌아 뒤뜰로 갔다. 풀과 잡목으로 뒤덮인 뒤뜰은 버덩과 다름없었다. 배 목수가 일꾼들에게 낫을 받아와 길을 냈다. 장독대의 항아리, 뒤뜰 툇마루, 작두샘 손잡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버선본을 뒤집어 햇빛을 되쏘아 노래기와 지네를 쫓았던 장독대엔 개망초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다. 새벽녘 잠이 깨 소쩍새 소리를 들었을 뒤안 툇마루에는 동바리만 남아 있었고, 손잡이는 사라지고 몸만 남은 작두샘은 이제 그만 쓰러지고 싶은 듯했다. 사라진 것들은 고물상을 통해 도시 어딘가로 팔려 나갔을 것이다. 초봄엔 머위를, 늦봄엔 죽순을 거두었던 대숲은 어지러웠고, 대숲과 채전 사이 굴뚝은 담쟁이넝쿨로 덮여 있었다. 굴뚝에 올라 담쟁이넝쿨을 걷어내는 배 목수를 향해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배 목수는 비록 무너뜨리더라도 굴뚝을 이렇게 놔 둘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아궁이가 입이고 구들이 자궁이라면 굴뚝은 여근이나 유두쯤 된다. 아이를 낳는 여근인 탓에 묵은 집이라 하더라도 산월에는 구들이나 굴뚝을 수리하지 않았다. 난산일 때 지아비는 굴뚝 덮개를 열고 키로 부치고 시어머니는 치성을 드리라 조언했다. 온 집안사람이 산모를 위해 굴뚝에 모여 마음을 쏟으라 말해 주곤 했다. 넝쿨을 제거한 배 목수가 조심스럽게 굴뚝을 내려왔다. 목욕이 어려워 그녀의 몸을 자주 닦아 주었다. 손가락에 눌렸던 살이 다시 회복되는데 오래 걸렸다. 핏기 없는 피부라 저승꽃이 선명했고 겨드랑이를 닦아도 간지러워하지 않았다. 쪼그라진 젖을 닦을 때면 고개를 돌렸고 사타구니를 닦을 때면 몸을 비틀었다. 그럴 때면 계모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여기에서 내가 태어났고 이 젖으로 나를 키우지 않았냐고 말했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그를 낳고 며칠 후 먹은 매운 김치 탓에 갓난애 입이 불켰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젖을 땔 때까지 그녀는 김치뿐만 아니라 생선이나 맵고 짠 것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무얼 먹고 살았느냐 하니 조용하던 그녀가 봄 산엔 찔레도 있고, 진달래도 있고. 꽃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꽃으로 그를 키웠고 그녀가 살았다고 했다. 산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에게 젖을 먹이기 전 매번 몸을 씻었다. 꽃을 만진 손으로 아이 입에 젖을 물리기 싫었다. 늘 작두샘에서 냉수를 퍼 올려 몸에 쏟고 뒤뜰 툇마루에 앉아 젖을 먹였다. 배가 고파도, 한기가 들어도 냉수 쏟는 일이 먼저였다. 그는 물수건을 자신의 체온으로 데워 그녀의 몸을 닦았다. 집 주변을 정리한 일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배 목수가 주변 정리가 끝났으니 고유제와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안방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곧 트럭에서 음식을 가져와 기단 위에 펼쳤다. 배 목수 아내가 준비해 준 음식들은 풍성하고 정갈했다. 준비를 마친 배 목수가 안방에 인사를 드리지 않고 집에 손을 댈 수는 없으니 더 늦기 전에 들여다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툇마루에 올라가 안방 문고리를 잡았다. 배목수와 일꾼들도 툇마루에 올라섰다. 배 목수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꾼들과 함께 기단 아래 마당으로 내려갔다. 담배를 물고 먼 산을 보고 있었지만 배 목수 마음은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에 묶여 있었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문에 매달린 그의 모습을 배 목수가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를 도우려 걸음을 옮기는 일꾼을 배 목수가 잡았다. 곧 문이 열리고 그가 안방을 들여다보다가 문설주에 손을 기댔다. 일꾼들이 기단에 올라 안방은 바라보았다. 그곳에 무덤이 있었다. 구들 고래를 구덩이 삼아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굄돌과 구들장을 쌓은 뒤 재와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묵은 무덤이 드러났다. 일꾼들이 수런거렸다. 누군가가 집이 상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헐거워진 고막이벽으로 바람이 들어와 봉분의 흙이 개자리로 쓸렸다. 쌓은 구들장과 굄돌이 언뜻언뜻 보였다. 집의 자궁인 고래와 구들이 무덤 노릇을 했지만 따뜻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았을 것만 같았다. 산 자의 죽어 가는 집이 죽은 자의 살아 있는 집을 덮고 있었다. 어둡고 답답했을 것만 같았다. 안방의 온기를 기억하는 무덤 주인에게 그늘진 무덤은 형벌과 같았을 것이다. 배 목수가 마루로 올라와 배목걸쇠를 풀고 안방을 훤히 열었다. 습기와 냉기가 한숨처럼 마루로 쏟아졌다. 그녀를 위해 진통제 투여량을 늘렸다. 그녀의 감각이 그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억은 뒤섞였고 시간은 토막 났다. 상처가 간지러우니 새살이 돋는가보다고 말했다. 바람에서 비 냄새가 난다고 했다. 먼 곳에서 오래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풀을 먹이게 교복을 벗으라 했다. 새 운동화를 사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작설 같은 손톱을 깎아 주었던 아침을 그리워했고, 품앗이에서 남겨 온 사탕이 늘 녹아 서운했다고 했다. 남편이 죽었던 새벽에 함박눈이 내렸다고 했다. 그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는지 들이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가 다녀오는 시간은 멀었고 공간은 넓어 불분명했다. 진통제 양을 줄이자 그녀의 감각이 살아났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헛구역질을 했다. 감정과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고, 의지와 상관없이 동공이 확대되었다. 동짓달 홑적삼만 입은 듯 몸을 떨었다. 매순간 모진 고통이 그녀 몸속에 머물렀다. 다시 진통제 투여량을 늘렸다. 진통제가 빠르게 소모되었다. 배 목수가 고유제를 지내며 성주신을 시작으로 가신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배웅했다. 따로 상을 차려 무덤 주인을 위한 제를 지냈다. 주춧돌과 무덤에 술을 뿌렸고 음식을 땅에 묻었다. 종이를 태워 토지신에게 매지권을 환매하며 고유제를 마쳤다. 남은 음식을 일꾼들과 나눠 먹고 일을 시작했다. 배 목수가 집을 짓는 역순대로 하부 벽을 해체하고 수장재부터 분리하자고 했다. 지붕이 위태로워 상부 구조 먼저 해체하고 하부 구조로 내려오자고 했다. 배 목수가 수긍하며 일꾼 먼저 지붕에 올라 복문으로 사용된 수키와 두 장을 들고 내려왔다. 수키와 표면에 무명천 자국이 선명했다. 일꾼들이 기와를 해체해 마당으로 내리면 배 목수가 집 주변 경계에 쌓았다. 그는 목재에 주기를 먹였다. 정면을 기준으로 기둥에 번호를 썼고, 기둥 번호를 기준으로 부재와 수장재에 이름과 번호를 기록했다. 배 목수가 옮길 집이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물었다. 그가 목재들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 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기와를 모두 내리니 보토와 앙토 등 집의 속살이 온전히 드러났다. 모난 괭이로 살을 걷어내는 세골을 시작했다. 홍진이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일꾼들이 세골한 흙을 아래로 떨구었다. 안방 상부 고미반자가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흙과 함께 밝은 빛이 무덤으로 쏟아졌다. 배 목수가 일꾼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그에게 먼 곳의 소리처럼 들렸다. 뼈를 드러낸 서까래에는 철물이 귀했던 시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연침과 연침 구멍이었다. 서까래에 구멍을 뚫고 싸리나무 연침으로 꿸대를 꽂아 모든 서까래를 한 몸으로 연결했다. 그가 연침을 낫으로 잘랐다. 집을 이루던 음양의 첫 고리가 풀렸다. 집을 이루던 목재들의 교감은 단절되었고, 나무의 교접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급히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진통제 때문이냐고 묻고는 이제 그만 서방님 곁으로 떠나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손등을 덮었고, 곧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들이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들어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살며시 움켜잡았다. 잠시 후 그녀가 그의 손으로부터 그녀의 손을 거두어 갔다. 두 손끝이 떨어지는 찰나는 길고 느렸다. 그녀가 거둔 손으로 안방 벽장을 가리켰다. 벽장 안쪽 오른쪽 끝 벽지를 걷어내면 고미반자 위 고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물 구석에 짚으로 덮어놓은 도자기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도자기에는 아편이 들어 있었다. 홀로되어 유복자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 이 아편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집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이 이 꽃, 앵속 때문이라고 했다. 늦봄이 되면 그녀는 그를 포대기로 엎고 산으로 향했다. 노을을 등지고 몰래 심어 놓은 꽃을 찾아다녔다. 뒤뜰 대나무를 잘라 죽침을 만들어 양귀비 열매에 침을 놓으면 침선을 따라 하얀 진이 베어 나왔다. 양귀비 유두에서 배어 나오는 그 젖으로 그녀와 그가 살았다. 그 젖을 엿처럼 고아 도자기에 보관했다. 날품을 팔아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끼니를 그것을 팔아 해결했다. 복통과 하리를 앓는 사람에게는 열매를, 해열제를 찾는 사람에게 뿌리를 주었다. 양지가 아닌 방안 그늘에서 말린 것이라 사름들은 제값을 치르지 않았다. 해수를 다스리고 염폐에 쓰려는 사람은 적은 양의 아편을 사갔지만, 눈이 이미 초점을 잃은 사람들은 많은 양을 사 갔다. 그녀는 양귀비를 심고 아편을 거두는 것보다 그것을 사러 오는 사람이 더 두려웠다. 두 목숨을 연명할 논과 밭을 마련한 후로 그녀는 더 이상 꽃을 키우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를 위해 얼마의 아편을 남겨 놓았다. 그녀가 그 남은 아편을 뜨거운 물에 개어 달라고 했다. 강다리로 연결된 추녀를 내리고 종도리를 분리했다. 동자주를 내리고 대들보 위에 올라섰다. 바람벽을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목재와 이격된 벽을 진흙으로 발랐다. 흙을 바른 자리에 손가락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리를 타고 그곳으로 건너갔다. 엉겅퀴 같은 손가락이 지나간 길을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따라갔다. 두 손끝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 잠시 겹쳤다. 기둥이 사개맞춤으로 똬리를 틀어 수평 부재를 떠받쳤다. 도리는 주먹장으로 결구되었고, 툇보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치목돼 대들보 밑에서 부재들과 결합돼 있었다. 충량도 마찬가지였다. 충량과 툇보 뒤는 대들보 무게로 눌렀고, 앞은 처마도리와 서까래로 눌러 움직일 수 없었다. 단단히 맞춤된 집이었다. 목재들을 분리하기가, 인연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 힘들게 연장을 넣어 부재들의 오래된 맞춤과 이음을 풀었다. 연장을 움직일 때마다 집에서 슬픈 소리가 났다. 집이 아파하는 듯 했다. 받을장과 덮을장을 구분해 도리를 기둥으로부터 분리했다. 드러난 대들보 목이 얇았다. 대들보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배 목수가 상량문이 있는 것 같다며 그를 불렀다. 마룻대 상부 종도리와 맞닿은 부분에 홈을 파고 상량문을 넣은 뒤 정교하게 조각한 덮개로 덮었다. 덮개를 열고 상량문을 꺼냈다. 숭정으로 시작하는 상량문에는 초석을 놓은 안초일, 기둥을 세운 입주일, 마룻대를 올린 상량일을 기록했고 끝에는 상량 사주를 부기했다. 안초일은 집이 잉태된 날이고, 입주일은 뼈가 생긴 날이며 상량일은 집이 생명을 얻은 날이다. 그가 상량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집의 영혼을 그가 거두었다. 그녀가 방이 싸늘하니 군불을 때 줄 수 없겠냐고 했다. 솔가리와 마른 섶을 불쏘시게 삼아 아궁이를 말리고 장작을 밀어 넣어 방을 따뜻하게 했다. 솥을 씻어 물을 앉히고 돌아오니 그녀가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 다리가 없어 북망산에 오르기 힘드니 아무래도 서방님이 마중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자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가 좋겠다고 했다. 보자기에 싸인 색이 바랜 한복을 꺼내 그녀에게 입혔다.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두 팔이 그의 목을 오래 감싸 안았다. 그녀가 침대를 치우고 방바닥에 눕혀 달라고 했다. 누운 그녀가 방바닥을 손으로 쓸며 아편이 담긴 도자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럴 수 없다고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아픔을 덜어 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단단하게 굳은 아편에 물을 조금 붓고 솥 안에서 중탕을 했다. 잘 녹지 않았다. 놋숟가락을 집어 천천히 아편을 저었다.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자기를 꺼내 마당에 던져 깨뜨리고 싶었지만, 아편을 녹이는 손이 멈춰지지 않았다. 안방과 부엌 사이 눈꼽재기창 너머에서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러 말들이 오고갔으나 남은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아편 물을 마셨다. 말끔히 마시고 고개를 숙여 목젖을 막았다. 편안하고 간결한 죽음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그녀는 마디 없는 소리로 아픔을 표현했다. 몸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소리를 그는 마루에 앉아 들었다. 밤새 소쩍새가 울며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갔다. 보머리를 들어 올려 결구를 헐겁게 했다. 한쪽은 배 목수가, 한쪽은 그가 주축이 되어 대들보를 들어 올렸다. 기둥으로부터 대들보를 분리하고 상인방 위에 올린 뒤 한쪽씩 바닥으로 내렸다. 대들보가 내려오자 집 내부 공간과 하늘이 하나가 되었다. 공간이 사라지며 망자의 무덤을 억눌렀던 질곡의 사슬이 풀렸다. 도리와 보아지 장여를 수거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 인방재를 분리했다. 상부 인방재를 들어 올리고 벽체와 인방재를 이격시킨 후 벽을 밀었다. 벽이, 집의 살들이 먼지와 함께 땅으로 되돌아갔다. 마지막 기둥을 수거했다. 집을 지탱했던 기둥을 주춧돌로부터 분리했다. 십반먹이 드러나며 주춧돌도 더 이상 생명의 씨앗이 되지 못했다. 기둥이 사라지자 집이 소멸되었다. 삶의 행복과 고통, 열망과 분노, 희열과 애증, 희망과 좌절을 담았던 집이 사라졌다. 집과 관련된 인연도 사연도 삶도 멸각되었다. 아니 더 넓은 곳으로 연하게 퍼져 나갔다. 해체된 집의 모든 뼈들을 마당 가운데에 얼기설기 쌓아 놓고 일꾼들을 보냈다. 배 목수와 그가 마지막 집, 무덤 개장을 시작했다. 그가 세한의 나무처럼 떨던 몸을 멈추고 마루에서 일어나 안방 문을 열었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길게 뻗은 오른 손에 얼굴을 얹고 그녀가 죽어 있었다. 안방도 그녀의 몸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가 그녀의 웅크린 몸을 반듯이 펴고 팔을 구부리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두둑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녀를 안아 마루방에 옮기고 안방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녀가 송진을 먹이고 윤을 낸 방바닥을 모난 괭이로 파냈다. 방통미장을 걷어내고 구장들 위의 모래와 자갈, 새침한 흙을 걷어냈다. 구들장을 들어내 한쪽에 쌓았다. 고래에 쌓인 재를 긁어내고 고래둑 일부를 무너뜨려 그녀가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를 마루방에서 안아 올렸다. 굳은 그녀의 몸은 더 이상 그를 감싸 안아주지 않았다. 그녀를 구들바닥에 눕히고 그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쓸어 주었다. 고래둑 위에 이맛돌과 구들장을 올려 그녀의 관을 만들었다. 염습도 보공도 없었다. 구들장과 굄돌을 가져와 쌓고 흙을 덮어 집의 자궁에 그녀의 유택을 만들었다. 그는 그 길로 집을 떠났다. 목수가 되어 자귀질을 배우고 먹통을 잡았다. 대나무 칼로 먹줄을 긋고 끌질을 했다. 산파와 의사, 염장이 노릇을 하며 멀리로 멀리로 맴돌았다. 고미반자 잔해를 걷어내고 무덤을 개장했다. 봉분을 이루었던 흙과 구들장, 굄돌을 걷어내고 배 목수가 관 덮개로 쓰인 이맛돌과 구들장을 들어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자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는 삭아 없어지고 그녀의 웅크린 유골만 남아 있었다. 길게 뻗은 팔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유골의 어두운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배 목수가 말없이 유골을 수습했다. 유골은 여전히 한쪽 다리가 없었고 살이 잘 삭아 세골이 필요 없었다. 그녀를 하얀 종이에 싸서 함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가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마당으로 갔다. 쌓아 놓은 집의 유골들 사이에 그녀의 유골함을 앉혔다. 유골함 위에 상량문을 올리고 주머니에서 놋숟가락을 꺼내 눌렀다. 배 목수가 바닥에 깔린 솔가리와 마른 섶에 불을 붙였다. 집과 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노을에 닿을 듯 집들은 무섭게 타올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가 불꽃 끝 먼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하얀 재가 그의 어깨 위에 소복이 내려앉았다. /황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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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0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현실과 자의식(自意識) 소설

(왼) 유현종 소설가 / (오) 정종명 소설가 예선을 거쳐 본심에 넘어 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그런데 7편의 작품이 갖는 공통점은 자의식의 어두운 그림자와 시니시즘(냉소주의)의 자기 고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수수>는 직장과 모순된 현실의 스트레스를 위로해주는 건 수수한 한 가닥 바람 소리였다는 게 처량하다. 말라비틀어져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치약을 명예퇴직을 강요당한 주인공의 모습과 몽타즈하여 그리고 있는 <치약의 내일>은 기약 없는 그의 내일을 잘 그려내고 있다. <죽은 고양이를 위한 연금술>은 너무 관념적인 이야기의 전개들이 조작적이고 <이누이트의 추모법> 또한 관념소설이며 지나친 감상주의와 염세주의가 거슬린다. <마지막 화>는 끝이 훤히 보이는 가족 복수극이라는데 문제가 있고 <리치먼드 초콜릿>은 산뜻한 감각적 감성이 두드러져 보이며 문장이나 표현들이 아주 유려한 반면 통속적인 스토리가 진부하다. 마지막 남은 작품 <귀가(歸家)>. 귀가는 바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격있게 건축된 전통 한옥 기와집이 수명을 다해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그 집 안주인도 암에 걸려 집과 함께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을 겪어내는 집과 안주인의 임종 모습이 교직(交織)된다. 문제는 한옥건축물의 각종 용어가 나열되어 해독불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철저한 자료조사로 작품을 쓰는 건 좋으나 확고한 스토리나 리얼리티가 없이 해설 없는 전문용어로 시종일관 나열하면 작품에서 감동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단점을 안고는 있지만 이만하면 작가적 역량이 탁월하여 장차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 싶어 당선작으로 정했다. 정진을 바란다. /유현종 소설가, 정종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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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09

[2020 전북문화계 결산] ④ 문학·출판

올해 전북지역 문학출판계에는 코로나19로 인한다양한 시도와 변화들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공도서관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도서관들은 독서 활동에 불편을 겪는 시민들을 위한 북드라이브스루 방식을 도입해 시행했다. 비대면 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이었다. 전주독서대전이 사상 첫 온라인 개최를 결정하는 등 온라인 플랫폼 활용도 두드러진 변화였다. 정부의 도서정가제 개정 움직임은 전북을 비롯한 전국 동네책방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정부는 도서정가제를 큰 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도내 문단은 다수 문학단체장이 바뀌며 새로운 기류를 형성했다. 특히 전북문인협회는 김영 시인이 당선되며 전북문인협회 창립 역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 코로나19에 도서관 비대면, 독서대전 온라인 적극 활용 코로나19 확산으로 임시 휴관이 장기화되자 공공도서관은 도서대출예약서비스, 무인예약대출기 등 비대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민들의 독서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내 시립군립도서관들은 자동차에 탄 채책을 빌리는 북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도입해 호응을 얻었다. 이용자간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불편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라이브스루는 코로나19 시대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됐다. 올해 전주독서대전은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전주시는 온오프라인 병행 개최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전면 온라인으로만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개폐막식과 북마켓 등 체험 부스를 운영하지 않고 프로그램도 축소했다. 이외 열린시문학회 등 문학모임들도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수업으로 코로나19 속 문학 활동을 이어갔다. △ 다수 문학단체 새 인물 전북문인협회 첫 여성 회장 탄생 올해 도내 문학단체들은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고 변화를 모색했다. 전북작가회의는 이병초 시인, 전북시인협회는 김현조 시인, 전북아동문학회는 박예분 아동문학가, 전주문인협회는 유대준 시인,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는 신영규 수필가가 회장에 당선됐다. 특히 전북문인협회는 김영 시인이 단독 접수해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는데, 이는 전북문인협회 59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 당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정부 도서정가제 개정 움직임 논란 동네책방 거센 반발 올해 도서정가제 개정을 두고 논란이 거셌다. 정부가 11월 도서정가제 검토 시한을 앞두고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개정 법률안을 예고하면서 전북을 비롯한 전국 동네책방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동네책방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경쟁이 심화한 가운데 도서정가제마저 폐지될 경우 동네책방이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정부는 도서정가제를 큰 틀에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정가의 15% 이내에서 할인을 제공하는 등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번 논란은 전자출판물 성장 등 출판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도서정가제는 3년 주기로 타당성을 검토하는 만큼, 향후 전자출판물 도서정가제 적용 방안은 과제로 남게 됐다. <끝>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30 18: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박수서 시인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종종 제목이나 겉표지에 낚여 덜컥 사버릴 때가 있다. 책 펼치자마다 아뿔사! 낚였군.해도 이미 내 손에 책이 온 후. 후회막급해도 소용없고, 책표지 뒷장 바코드 아래 책값을 두고두고 째려본 들 어쩌겠는가! 그 충동에 구입한 시집이 있었다.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사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집을 펴고 한 일은 목차를 보고 시를 찾았다. 목차 어디에도 없었다. 책을 잡으면 끝장을 보기도 전에 잠이 몰려오는 나를 단 한번에 온읽기를 시켜버렸다. 아주 고단수가 따로 없다. 처음에는 안 보이는 게 약이 올라 읽다, 나중에는 오기로 읽었다. 어쩜 그 말이 그 말인 셈이지만. 콩나물 국밥에 다진 청양고추 넣어 말아버린 것을 어쨌든 찾았다. 나중에 들은 후문이지만, 출판사 대표가 제안해 나온 제목이란다. 박수서 시는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처럼 기막힌 시어들이 숨어있다. 시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어느 날 하루는 박 시인이 철 한 수저를 먹었는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형, 나하고 친해서 사람들한테 욕먹지? 난 망설임 없이 냅다 대답했다. 그래! 박수서는 별종 중에 별종이다. 나는 곁에 별종 하나 있는 게 좋다. 뽕작시의 선두주자, 자칭 삼류시인, 고독한 미식가를 사랑하는 고독한 미식가다. 어찌 보면 시인이 만든 한 장르이다. 사뭇 기괴한 물건이 따로 없지만 이 별종이 나는 좋다. 서문에 일출을 보러갔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라면 한 그릇 먹었더니 해가 중천에 떴더라 하면서 그렇게 한눈팔다 시를 잃었다고 말한다. 박수서는 어쩌면 인생에 서 먹을 라면 한 그릇이 너무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매일 삶이란 무엇이냐?하며 징징거린다. 그런 식으로 시를 갈급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둘러대는지 모른다. 『빈집』을 보면 박수서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시를 못 쓰고 막걸리를 마실까, 소주를 마실까 고민할 때면 빈집처럼 부산해진다. 정신을 빼놓는다. 박수서 시인은 시 쓸 때는 세상 진중하다. 나는 가끔 몸살 난 박수서를 보면 쌍화탕 한 병 주듯 시 써라! 한다. 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감히 물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덜 익었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가기 쉽겠는가? 『거미』시를 읽고 누군가 말했다. 기죽고 힘들어하지 마시게나. 다 보기 나름이라네. 요즘은 매일 위기와 동거하는 세상 같다. 다들 힘내자는 말 대신『거미』의 시구로 마무리 하련다. 죽지 못하고 끝까지 줄 위에서 버티는 것은 스스로 거미줄을 먹어치울망정 세상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12.30 18:14

[신간] 국명자 작가 <차표끊다 먼먼 그리운 역을향하여> 발간

폭설보다 더 큰 위력으로 몰려오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가 될 글감들을 찾게 하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준 고향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차표끊다. 먼 먼 그리운 역을 향하여 中> 고창출신 국명자 작가가 수필집 <차표끊다. 먼 먼 그리운 역을 향하여>(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책에는 국 작가가 도시를 떠나 마음이 편안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다. 이 책에서 작가는 고향을 가난하고 불편했으며, 심심하기만 했었던 곳으로 칭한다. 하지만 우리들 옆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더 크고, 너그럽고, 따뜻한 무언인가로 감싸 안아주는 곳이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즉 어린시절 가난과 고단함을 준 곳이지만 지금은 그런 고향이 그립고, 따뜻함이 더 큰 곳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눈길에 닿았던 정다운 모든 것들과 미소 나눴던 모든 사람들과 가슴 저리게 펑펑울 게했던 곳이 고향이라며 그런 고향이 그리웠고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무너져내리던 나를 다시 불끈 일으켜 세워주고 있다고 고향의 그리움을 설명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작가는 남편이 떠난 뒤 삼년 간 외로이 홀로 써왔던 작품 12편도 이 책에 담았다. 국 작가는 무엇이건 주어진 대로 감사하면서 살면 괜찮은 삶이 될 것이라며 늘 위로해주고 살 길을 터주셨던 그분을 뵈울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창 출생으로 1983년 한국수필로 등단해 전북수필 창립회원, 표현 동인으로 활동했다. 제3회 전북수필문학상(1990), 표현문학상(1993), 제7회 전북문학상(1995)을 수상했다. 부부칼럼 에세이집 <따갑게 미소롭게>,<내 모습 이대로>, <다시 만나기 위하여> 등의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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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규
  • 2020.12.30 17:48

김용옥 시인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김용옥 시인 김용옥 시인이 한국현대시인상을 받았다. 한국현대시인협회는 제43회 한국현대시인상 수상자로 김용옥, 정송전 시인을 선정했다. 한국현대시인협회는 1978년 한국현대시인상을 제정해 등단 20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매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전북에서는 최승범, 권일송, 이병훈 시인이 수상했다. 1988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김용옥 시인은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시집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는> 등 6권과 수필집 <生놀이> 등 11권을 발간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과 한국문인협회 이사, 감사를 역임했다.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이다. 이번 수상 시집 <새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는 수많은 너 중에서 억겁의 인연으로 합일돼야 나가 된다는 깨달음과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85편의 시를 담고 있다. 김 시인은 시는 나의 존재 방식이라며 화장 단장한 외모를 보이느니, 알몸을 드러내듯이 시를 쓴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수없이 많은 남과 다른 남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셀 수 없는 그대와 그대들의 집합이다. 현대시인상에도 그대들이 가득 들어 있다. 고개 깊이 숙여 이 상을 받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29일 오후 3시 서울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27 18:42

[신간] 양정숙 동화집 '알롱이의 기도' '충노, 먹쇠와 점돌이'

양정숙 동화작가가 동화집 <알롱이의 기도>와 <충노, 먹쇠와 점돌이>를 펴냈다. <알롱이의 기도>는 혼자 사는 할아버지와 유기견 알롱이의 이야기이다. 병치레가 잦아 주인에게 버림받은 알롱이는 오일장에서 할아버지를 만난다. 알롱이는 병이 나자 또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알롱이를 살뜰히 보살핀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간다. 그리고 동화는 알롱이의 기도로 끝이 난다. 양 작가는 할아버지와 알롱이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라는 점에서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불행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어린이들에게 서로 베풀며 사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인지를 말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충노, 먹쇠와 점돌이>는 왜병과 맞서 싸운 의병장 고경명의 두 충노, 봉이와 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들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고경명은 노비들을 평등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왜군이 쳐들어오자 솔선수범해 전쟁터로 나간다. 먹쇠와 점돌이도 그 뜻을 함께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인간적인 배려와 자기희생 정신이 계층 간 대립을 해소하고 함께 대의를 이루게 만든 것이다. 순창 출신인 작가는 조선대 문예창작과, 광주교육대 대학원 아동문학교육과를 졸업했다. 1995년 수필과 비평 수필 신인상, 2016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으로 등단했다. 동화집, 그림동화, 수필집 등 다수를 펴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23 18:54

[신간] 여행작가 산들 시집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꼼짝없이 발이 묶인 사람들이 추억의 랜선 여행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좋아하던 여행을 못 가게 된 여행작가 산들(장창영)도 비행기 대신 SNS를 타고 랜선 여행을 떠났다. 그 여정의 기록을 시집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로 남겼다. 시집은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소재로 한다. 여행잡지 <뚜르 드 몽드>에서 여행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여행작가 산들은 여행을 갈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을 해소할 대안을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인스타그램 사진을 대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코로나 시대가 빚은 우연의 결과물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옹이 때문에 넘어지는 일도 있고/ 더 나아지는 일도 있다/ 옹이가 다른 이에게는/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관계에 대하여 부분) 그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의 사진과 이야기를 토대로 시를 써서 선물했다. 시를 선물 받은 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인친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러시아, 미국, 포르투갈까지 다양하다. 특히 이 시집은 작가와 독자의 협업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힘든 시기였지만 작가는 이 기간에 시를 쓰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희망은 포기하고 싶은 절망의 마지막 끝을 헤집고 온다. 이 시집이 힘든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시집은 코로나 시대 랜선 여행에 지친 이들, 앞으로 코로나 종식 이후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는 이에게 뜻깊은 선물이 될 것이다. 시집 제목이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이지만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들(장창영)은 시인이자 여행작가로 200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서울신문, 불교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23 18:54

[신간] 김명이 시집 '사랑에 대하여는 쓰지 않겠다'

가학과 피학을 곱씹는 사고인 듯/ 수줍은 프릴 속 파괴적 살사인 듯/ 좀 더 놀라워/ 피 한 방울 솟구쳐 떨어진 지점에/ 분분한 해석들의 숭어리// 꽃의 수술을 보았는지/ 결코 아물 수 없는 환각일 거야 (장미의 행방 부분) 김명이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사랑에 대하여는 쓰지 않겠다>를 출간했다. 두 번째 시집 <모자의 그늘>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시집에는 대표시 완전한을 비롯해 ㅁ, 투명한 계산법, 암호 카페 등 64편의 시가 담겨 있다.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한 뒤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김 시인은 불안, 불완전, 불온한 언어와 감성을 빌어 불확실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불완전성과 욕망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구조물의 허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감정 모두가 우리 삶의 일부임을 이해하고, 어두움과 불안이 지배하는 자리에 끊임없이 새로운 희망의 꽃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그는 첫 번째두 번째 시집이 가족과 고향이야기라면, 세 번째 시집은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라며 코로나19 등으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살아가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 이를테면 어두움, 공포, 불안, 불완전함을 끄집어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발간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완성을 꿈꾸지만 결국 미완과 결핍으로만 확인되는 우리의 삶. 시인은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언어의 이면을 통해 말하고 있다. 황정산 평론가는 이를 두고 김 시인의 시는 말 자체의 의미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맥락에서 스스로 창조된다며 그것들은 우리에게 안전하고 완전하다고 생각되는 우리의 삶에 균열을 내고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헛된 욕망에 의지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대전 문학단체인 오정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시인은 전북 임실 오수 출신으로 2010년 <호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엄마가 아팠다>, <모자의 그늘>이 있다. 한남문인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23 18:5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 - 김영 시집 <파이디아>

시 한 편 읽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다면 우리 사는 일이 왜 지지부진하겠는가! 세상의 철벽 앞에 시는 무기력하고 시인의 시 쓰기는 무모한 도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를 읽는 일은 우리가 세상의 벽만은 되지 않겠다는 버둥거림이 아닐까? 젖은 서사는 아무리 구겨도/날개를 펴지 않는다라는 시구를 읽다가 시집을 잠시 덮었다. 점심 무렵 우편물을 찾아왔으니 오후 서너 시쯤이었을 것이다. 9월이었고 맑았고 아무 일 없는 날이었다. 심심하기 그지없었던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방비였던 나는 젖은 서사라는 말을 흠뻑 뒤집어써버렸다. 바야흐로 그날 오후가 온통 흥건해져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김영 시인의 시 사물들의 본적을 만나게 된 정황이다. 새벽마다 반송되는 나의 미래는/언제나 부러진 기억 쪽으로 수납된다라는 시구는 저녁 어스름이 슬금할 무렵에 읽었다. 낮밤의 기수역에서 마음이 산란했는지도 모르겠다. 무턱대는 성격도 아닌데 그 구절을 덥석 잡아채고 말았다. 묵음은 모든 불안의 본적이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한번 더 마음이 삐끗했다. 시를 읽다보면 주춤거리며 말려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를 읽는 일이 그랬다. 이것이 김영 시인의 시 일어서는 묵음을 읽고 난 소회다. 김영 시인의 시집 <파이디아>에서 두 편의 시를 먼저 풀어놓는 것은 공교롭게도 두 시가 존재의 본적을 다루고 있어서다. 본적은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제도화된 형식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응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영 시인은 파이디아(paidia)를 전면에 내세웠다. 소개하자면 파이디아는 무질서한 상황을 즐기는 아이들의 놀이 형식을 어원으로 삼고 있다. 제도화된 존재와 질서 없는 존재 사이에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 시집을 꼼꼼 읽었고 곰곰 생각했다. 삶은 규칙 없는 놀이(파이디아1-흐르거나 머물거나)에 닿았다가 기원이 다른 사유가 한 페이지에 머무르는 것은, 갈등을 부르는 존재 방식이었나 봐요(파이디아2-숲이 되는)를 짚은 후 세상은 같은 문장을 다른 의미로 읽어주지요(파이디아3-대성당)에 다다라서야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질서와 무질서, 규칙과 변칙이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이 인간 존재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그 세상은 질서 있고 규칙적인 같은 문장으로부터 무질서와 변칙으로 이루어진 다른 의미가 탄생하는 곳이었다. 하나의 뿌리(본적)에서 여러 갈래의 가지를 뻗어 탄생하는 것이 우리의 삶(존재)이라는 생각으로 시집 읽기를 갈무리했을 때는 밤이 깊어 있었다. 밤은 모든 존재의 본적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흠뻑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시를 읽는 일은 자주 나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삶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겨냥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견고한 세상의 벽과 맞선다. 김영 시인의 시집 <파이디아>를 읽고 우리 인간의 본적이 인간 자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소박한 것일까? 사소할지라도 새겨둘 만한 일이다. 시 읽는 일이 이렇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12.23 18:54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7) 서정성 높은 동양적 휴머니즘의 시인, 최학규

최학규 시인 시인은 50대 중반에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뛰어났고 절실했다. 당시 익산에는 남풍이라는 시 동인회가 있었는데, 시인은 이 동인회에서 좌장을 맡기도 했다. 대부분 현직교사인 그들은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한 사람도 빠지지도 않고 모두 나와 활발하게 시와 문학을 논의했다고 한다. 당시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식탁엔 아침부터 메뉴에도 없는 피곤이 오르고, 그대와 나 말없이 담배만 피우며 끄며 얼핏 보면 일상에 지친 나른한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의 시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특히 그들은 당시 아름다운 토속어가 많이 죽어버린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으며, 무엇보다도 이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자고 다짐하곤 했다. 시인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을 지킨 향토 시인으로 동양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서정의 농도를 짙게 풀어 쓴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시인이 태어난 곳, 청하는 김제, 군산, 익산과도 가까운 곳이어서 시인은 이 세 지역을 활발하게 오가면서 문학인들과 교류하였으며, 청송(靑松) 같은 의지로 작품을 쓰는데 열정을 다하였다. 만년에는 김제 청하를 떠나 인근 군산시 성산면 나포리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썼다. 시인은 1962년 3월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이사로 선출되어 전북 문단 활성화에 이바지하였고, 1965년 3월에는 김제 최초의 동인지 『향토문학』을 발간하기도 했다. 1954년에는 신석정 시인이 직접 발문을 써 준 처녀시집, 『길』을 출간하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66년에는 제2 시집 『빛과 사랑의 시』을 출간했다. 홍석영은 발문에서 그의 시를 세정(世情)에 조련찮은 시인의 생리로 하여 산고를 겪으면서 인간의 절실한 내적 필연성에서 움트게 된 생명의 소박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시인은 1970년 11월 한국문협 김제지부를 창립하면서 초대지부장으로 선임되어 김제 문단 활성화와 김제 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70년에는 시집 『모과』를 냈고, 1971년에는 시집 『우러러 사는 풍토』와 채규판, 강상기 시인과 함께 3인 시집 『이색풍토』를 출간하였고, 1975년에는 여섯 번째 시집 『3월의 모음(母音)』을 출간했다. 그러나 시인의 시적 태도는 첫 시집에서 여섯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었다. 특히 그의 시 「자화상(自畵像)」에서 보듯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도 변함없이 자신만의 삶을 가꾸려고 한 것 같다. <전략> 어디를 가나 흙내를 풍기지만 흙을 외면할 순 없으리라. 산을 배경으로 영토는 넓고 <중략> 죽음과 영원과 사랑의 뿌리 깊은 나무에서 나를 결실하며 우러러 한없이 열린 길을 나두야 나만큼은 열고 간다. -최학규 「자화상」에서 시인은 멀리 산을 배경으로 하고 그 아래 펼쳐진 넓은 평야의 흙내 풍기는 곳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죽음과 영원과 사랑의 섭리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한순간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또한, 시인의 삶은 항상 경건하였으며, 주어진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배경에 담긴 현실을 받아들였고, 또 그 문제를 확인하여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이고자 하였다. 특히 시인과 함께 공동시집 『이색풍토』를 출간한 채규판(원광대 명예교수)은 「고산 최학규 선생을 생각하며」 (전북문단 통권 제7호, 1990)에서 그의 시를 평가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형식에도 구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 쓰는 데 몰입하였고 항상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진행하였다. 시인의 시에는 어떤 게으름과 오만함도 없었으며, 한순간도 심미적 자아 성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렇듯 시인은 항시 맑고 깨끗해지려고 노력했고, 아름다운 것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늘 고독하기도 했지만, 시인은 시를 통하여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기에의 지향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나는 그 많은 허물을 벗고 객관적으로 서면 나무가 된다. <중략> 벼랑에 서도 바위를 애착하며 인간에 몰리어도 人形을 사랑하며 모연이 자욱한 날에도 미소를 피우며 해가 기울어도 기도(祈禱)의 자세는 수직(垂直)으로 영원의 가지에 단풍(丹楓)이 들면 나는 견고(堅固)한 나목(裸木)이 된다. -최학규의 「견고(堅固)한 나무」의 일부 시인은 어느 때나 생각이 분명하고 뚜렷했던 것 같다. 원래 인간적 질서에의 회귀라는 말은 인간 본질에 관한 확인일 것인데, 시인에게 시는 언제나 매우 정직한 도전의 과정이었다. 시인은 이렇듯 한결같이 견고(堅固)한 나무로 우리 곁에 서고자 하였다. 시인은 1971년 11월에 제5집을 『우러러 사는 풍토』를 낸 뒤, 3년간 쓴 작품 중에서 새로 66편을 골라 시집 『3월의 母音』을 내면서 그 서문에서 파고들어 시의 바탕은 따뜻하고 싶다. 원래 고독한 인생은 더욱 따뜻한 사랑을 추구하는 시심에서이리라라며 한순간도 새로움을 궁구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대가 달라졌다 시대를 따라가기도 바쁘다 이런 의미에서도 젊고 싶다 세월은 가는데 낡은 것은 싫어진다 이런 의미에서도 시는 새롭고 싶다. -최학규의 『3월의 모음』 서문에서 이렇듯 시인은 어떤 시기나 관점에 고착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이런 태도는 시를 쓰는 오늘의 시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최학규 시인 시인은 원광대 채규판 교수와 아주 각별하였던 것 같다. 그와 만나면 밤을 새워 시와 문학을 논했다고 전해진다. 1975년 추석을 앞두고 시인은 그와 만나기로 했다. 시인은 그를 만날 기쁨에 아침부터 서둘러 농약을 하다가 그만 농약 중독사고를 당했다. 결국, 시인은 유명을 달리했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채 교수는 매우 놀라면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시인과 공동시집을 낼 만큼 가깝게 어울렸던 채 교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한없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채 교수는 시인을 시를 천직(天職)이라고 뼈아프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시인이라면서 시인의 시에는 최소한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삶에 있어서 긍정의 방법을 선택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라고 했다. 시인은 그렇게 떠났지만, 그를 따르던 동료와 후생들은 시인의 삶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1981년 11월, 김제시 교동 성산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天門冬(천문동) 푸른 골짝을 은하가 이어 흘러 내 가느단 血管(혈관)에도 푸른 물소리 스며 든다. 七層塔(칠층탑) 감고 넘은 검푸른 하늘에는 상기 푸른 입김이 서려 있어라. 沈默(침묵)과 더불어 자리하신 부처 앞엔 念佛(불념)도 되려 俗(속)된 푸념 같아 머리끝까지 젖어드는 木鐸(목탁) 소리에 차리리 눈을 지그시 감아 본다. -古山의 시 「금산사」 전문 시인은 우리에게 동양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자연 친화적 일체감을 노래한 시인, 그리고 서정성 짚은 작품을 통해서 많은 공감을 준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필자는 최학규 시인을 추적하면서 시인의 동향인(同鄕人) 최현호 씨가 시인과 관련된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권의 일기와 세 권의 미발행 친필시집, 그리고 많은 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1929년 정읍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과 사회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일기와 미발행시집 <창작시집>, <불평을 노래합시다>, <고산시선> 등이다. 이 자료들은 곧 우리 문단에 공유되어 최학규 시인의 삶과 문학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현호 씨에게 거듭 감사드리며, 머지않아 전라북도문학관에서 최학규 시인의 문학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20.12.23 17:54

‘이낙연의 길’ 출판기념회 부안서 개최

유력한 대권 후보 중 한 명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물기행서가 출간된데 이어 도내 첫 출판기념회가 지난 19일 오후 2시 부안군 부안연가에서 열렸다. 부안 위도 출신 방송작가이자 소설가인 서주원 작가의 인물기행서 <이낙연의 길>(희망꽃) 부안출판기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지지 모임인 인연산악회와 NY사랑 관계자, 부안 출신 김진배 전 국회의원, 김제 출신 최락도 전 국회의원, 송광복 부안수협 조합장 등이 참석했다. 황톳길 길섶에 핀 들꽃이 어찌 바람을 탓하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대선의 길로 들어선 이낙연 대표의 인생 역정을 생생히 담아냈다. 서 작가는 서문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 대표의 삶과 영혼의 발자취를 자세히 살펴봤다며 미래 국가 지도자로서 자격과 능력을 충분히 갖췄는지 따져보는 참고서이길 바란다고 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 첫 번째 장의 제목은 법성포 굴비길이다.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굴비의 본고장 법성포에서 행상을 했던 이 대표의 어머니와 평생 민주당을 지킨 이 대표와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이 본 변함이 없는 사람 이낙연 기자,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고 외친 노무현 대통령 대선 후보 때의 이낙연 대변인, 국민과 함께 코로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이낙연 위원장, 언론사 도쿄 특파원을 지내며 이낙연 기자가 한 줄 한 줄 적은 新간양록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서 작가는 이 대표가 지일파여서 일본에서도 출간하기 위해 일본어 번역을 추진 중이라면서 서울, 광주 등 전국 여러 서점에서 저자 사인회 등을 가질 예정 이라고 말했다. 책에서는 광주 무등산길, 서울 청운의 길, 순창 고추장길 등 꼭지마다 도입부를 두고 이낙연 대표의 인생길을 서술한 점이 눈길을 끈다. 서주원 작가는 이낙연의 길은 평전이 아니고 인물기행인데다 이 대표의 타고난 성격에 기질이 어떻게 더해졌는지 깊이 더듬어 보고 함께 공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런 형식을 취했다고 귀띔했다. 한편전 KBS 방송작가인 서주원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부안군에서 일어났던 서해훼리호 참사와 부안반핵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봉기 1~3권,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하룻밤을 다룬 봉하노송의 절명 1권을 펴내는 등 현실세계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과 문제의식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백세종홍석현 기자

  • 문학·출판
  • 백세종
  • 2020.12.20 20:00

엄동 한파를 녹이는 연로 문인들의 시 수업 열정

코로나19로 인해 사람 만나기가 부담스러운 요즘,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시 공부에 열중인 모임이 있다. 전주 열린시문학회(지도교수 이재숙)는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던 시 수업을 이달부터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인 줌(ZOOM)을 이용한 수업으로 전면 전환했다. 열린시문학회 3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줌 수업을 처음 제안한 윤현순 시인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젊은 사람 못지않게 잘 하신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열린시문학회는 본격적으로 줌 수업을 하기 전,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회원들을 위한 리허설도 여러 차례 거쳤다. 이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된 건 수업 외 가장 큰 소득이다. 또 서영숙 시인은 겨울에는 너무 춥거나 폭설 때문에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줌 수업을 하니 그런 염려가 없어 좋다며 그래서인지 수업 참여율도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40여 명의 수강 회원 가운데 서울이나 충북 등 타지역 거주자들도 열성적으로 줌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수업을 받기 위해 전주까지 오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무주, 장수지역 회원들도 기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9년 이운룡 시인이 창립한 열린시문학회는 전북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모임이다. 오랜 역사를 더욱 빛내려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열린시문학회는 오늘도 신선한 열정을 펼쳐 나가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20 19:1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