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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전주 세계소리축제 리뷰] 소리프론티어에 대한 보고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아주 잘 만들어진 공연을 선택해 축제의 관객에게 제공한다. 올해 소리축제에서 <노인과 바다>를 공연한 이자람은 “창작판소리 만드는 소리꾼들에게 로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소리를 가지고 여기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공연을 올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소리축제의 위상을 잘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한국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전통음악과 전통을 기반으로 만든 해외의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된 음악을 소개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잘 선택된 음악들이 벌이는 향연이다. 이런 축제의 틈에 <소리프론티어>라는 꼭지가 있다. 필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 2017년이었고 경쟁 시스템이었다. 이 해에 ‘악단광칠’은 2등을 했다. 아쉬움과 적잖은 타격감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경쟁은 기쁨과 아픔을 쥐고 참여자와 관객을 유혹하는 게임이 아닌가. 재미도 있고 이슈도 되었으나 축제 운영자들에게 많은 고민을 주었던 것 같다. 1등을 위한 환호보다 그 외 예술가들의 얼굴에 남은 그늘에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형식을 바꾼다. 신진 예술가 혹은 단체를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하고 선정 작품을 무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형태다. 필자는 선정 과정에도 참여했다. 매간당은 탱천한 의지가 돋보였고, 경력은 짧지만 이들이 만들어 온 음악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새로운 젊음을 만나는 것 같았고, 새로운 음악의 흐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적인 공간에서 잘 주목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덧붙인 제안이 있었다. 축제의 특성도 있고 하니 ‘음악에만 집중하면 좋겠다.’였다. 로비에서 티켓팅을 하는 순간 나눠주는 카드에 묻어있는 향내와 객석에 들자 눈에 들어오는 무대 장치들 그리고 공연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공연을 마치는 때까지. 이들은 하고자 했던 무대를 온전하게 구현했다. 내부 단원의 임사체험을 향과 무대와 의상과 영상, 나래이션과 춤, 음향과 음악과 조명 ... 모두를 동원하여 구현했다. 의도와 의도를 대하는 태도와 표현 어느 한구석에서도 빈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긴 시간 복면을 하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이 객석에는 어떻게 해석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이들이 공연을 대하는 태도, 예술을 대하는 태도라고 느꼈다. 숨 막히게 갑갑한 삶의 현장을 버텨내는 예술인들 같았다. 음악에만 집중해 달라는 심의위원의 요구를 잘 무시해줘서 고마웠다. 이들의 매력은 역시 음악이었다. ‘선율과 화성’은 전통악기에게 이질적이나 다름을 인정하고 전통의 방법만을 추구하며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많은 전통음악 연주자들이 그 산을 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매간당은 입장이 달라 보였다. 선율과 화성에 자유로운 연주자 사람들. 화성과 선율은 도울 뿐 전통악기가 갖고 있는 음향과 음색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매간당에게 꽤나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아직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는 경험의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의 최선이 관객의 마음에 이르는 길을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써놓고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것이 있다는 지적 이전에 분명 필요한 것이 있다. 젊은이들이 맘껏 자신의 음악과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면 조언이 껴들 자리가 없다. 이들을 해석해주고 주목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던 때가 있었다. 젊은 시인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말들을 꼼꼼하게 챙겨 일러주던 사람들 그 정점에 있었던 김현같은 평론가가 떠오른다. 젊음에게 그런 특권을 주었는데 지금 우리에겐 이 젊음을 해석해 줄 사람, 안내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잘 만들어진 예술이 전시되는 이런 축제의 장에서 소리프론티어가 품었던 따뜻함이 좋은 결과로 빛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쉬웠던 것은 이들을 읽어주고 빛나게 해줄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아쉽다. 빛 없는 곳에도 그들이 오면 좋겠다. 천재현 정가가악회 대표는 예술과 사회의 건강함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면서 2000년 정가악회를 창단하여 대표이자 예술감독,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축제 '국악대학전'과 '평롱: 그평안한 떨림', '아리랑 삶의 노래 시리즈' 등의 공연, 음반'정가악회 풍류1-5 ', 밴드 '악단광칠' 등을 제작 및 연출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3.10.22 16:25

'맑고 곧은 품성을 지닌 꽃'⋯박종권 사진작가, ‘매화전’ 개최

사진작가 박종권 개인전인 ‘매화전(梅花展)’이 오는 23일까지 전주 오거리 문화광장 이동형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 박 작가는 자연에서 만난 아름다운 매화의 사진을 한지에 인화해 족자 표구로 전시하고 있다. 박 작가는 “조선의 4대 문장가인 상촌(象村) 신흥(申興) 선생의 시(詩) 중에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구절이 있다”며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처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고 피어나는 매화의 품성을 사랑해 이번 전시주제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전시장에는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분홍매, 화엄사 홍매, 전남대 대명매, 연곡사 청매, 금둔사 홍매 등 천연기념물부터 수백 년 수령의 아름다운 자연을 위주로 한 작품 10점이 전시돼있다. 그는 “무욕의 얼굴에 맑고 곧은 품성을 지닌 매화처럼, 혼탁한 작금의 이 시대에 매화의 정신이 어느때 보다 절실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하며 이번 전시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박종권 작가는 2007년 농림부 농촌사진 콘테스트 최우수상, 2013년 지리산 사진 공모전 대상, 2014 대구 환경공단 환경지킴이 사진전 대상, 2020 순창 성당 60주년 새 성전 사진 최우수상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그는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전북사진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사진대전 추천작가, 전북사진대전 심사위원역임, 가톨릭 미술가회 회원, 전주 영상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3.10.19 17:31

'전북 선현의 유묵 전시' 22일까지 미술관 솔

과거를 통해 전북 서예의 정신과 숨결을 느낀다. 전북 서예의 유구한 역사를 조명해보는 '전북 선현의 유묵 전시회'가 전주 미술관 솔에서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이하 서예비엔날레) 기간 중에 연계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비엔날레 최초로 전북 작고 작가들을 통해 지역의 숨겨있던 서예의 역사를 되짚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조선시대 3대 명필로 잘 알려진 전북 출신의 창암 이삼만을 비롯해 호산 서홍순, 석정 이정직, 벽하 조주승, 심농 조기석, 유재 송기면, 효산 이광열, 유하 유영완, 석전 황욱, 운재 윤제술, 강암 송성용 등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총 27명의 작고 작가들의 묵향 가득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7세기부터 태동한 전북 서예의 맥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광복과 6.25 전쟁이란 시대적인 아픔과 격변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 그 어느 지역보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서예가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전해진다. 전시를 통해 전북을 벗어나 한국 서예가들의 대표로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던 선인들의 묵향을 직접 접해보고 서예의 고장으로서 전북의 뿌리까지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 솔 관계자는 "국내에서 일찍이 지역의 서예 역사를 다룬 곳이 전북이었다"며 "가장 한국적인 서예 문화가 응축된 곳이 전북이고 이번 전시가 전북의 서예 역사를 되짚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김영호
  • 2023.10.19 17:30

전주부채문화관, 초대전 '부채의 전설 단선의 맥'

대한민국 단선 명가 3대의 부채가 한 자리에 모였다. (사)문화연구창 전주부채문화관(관장 이향미)은 22일까지 3대에 걸쳐 단선 부채의 맥을 잇고 있는 고(故) 방춘근 전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선자장, 방화선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선자장, 송서희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선자장 이수자의 초대전‘부채의 전설 단선의 맥’을 열고 있다. 전주부채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이번 전시는 고 방춘근, 방화선, 송서희 등 3대가 만든 대표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아울러 고 방춘근 선자장이 생전에 사용했던 부채 제작 도구도 만날 수 있다. 고 방춘근(1927~1998) 선자장은 일제 강점기 단선 부채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6.25 한국전쟁 중에도 부채를 만들다 북한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만들던 부채를 그대로 두고 며칠간 집을 떠난 적이 있지만 그는 평생 부채 만드는 일에만 몰두했다. 1960년대에 가내공예센터를 운영하며 전국 태극선 물량의 대부분을 제작했으며 일꾼 160명이 2교대로 근무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전주 출신인 방화선 선자장은 고 방춘근 선자장의 장녀로 1965년부터 단선 부채를 만들며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부채를 만들고 있다. 전통부채 재현과 더불어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부채를 제작하고 있으며 2010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단선)으로 지정됐다. 송서희 이수자는 방화선 선자장의 자녀로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부채 만드는 일을 익혔다. 2001년 온고을공예대전 특선을 시작으로 무주전통공예한국대전, 대한민국 문화관광상품대전, 전라북도공예품경진대회, 전북관광기념공모전, 전라북도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했다. 2019년부터 개인전과 초대전 등 다수의 기획전에도 참여해오고 있다. 전주부채문화관 관계자는 "대한민국 단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김영호
  • 2023.10.19 17:30

전주문화재단 이팝프렌즈, '둔산다복 음악회' 연다

전주문화재단이 20일 오후 5시 완주군 봉동읍 둔산공원에서 ‘둔산 다복 음악회’를 개최한다. 전주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정석케미칼과 완주산업단지진흥회, 둔산애향회가 후원하는 이번 음악회는 전주문화예술후원회 ‘이팝프렌즈’의 후원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됐다. 먼저 대한민국 대표 포크 음악 그룹 여행스케치가 친숙한 통기타와 풀벌레, 계곡의 물소리, 빗소리 등 자연의 효과음을 담아 소박한 색깔의 가사와 멜로디를 전한다. 이날 이들은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별이 진다네’ 등을 노래할 예정이다. 이어 라디오 로고송, 만화 주제곡 참여 등 다양한 무대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보컬리스트 걸그룹 써니힐의 멤버 은주가 ‘Goodbye to Romance’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를 선보인다. 또 클래식을 전공한 청년들이 모인 단체, 무직회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메들리와 함께 가을 음악회의 낭만을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 무대에는 트로트 열풍을 이어가는 가수 진해심이 깊고 진한 매력적인 음색으로 음악회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백옥선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둔산다복 음악회’는 지역의 대표기업인 정석케미칼과 완주산업단지진흥회, 둔산애향회의 소중한 예술후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며 “둔산공원의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음악회와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음악회는 무료로 진행되며 자세한 문의는 전주문화재단 미래전략팀(063-211-9276)을 통해 가능하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3.10.19 17:30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소망이 현실로 치환되는 무대

강당에 들어선 학생들은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2019년 10월의 첫날, 김제 지평선고등학교에서 펼쳐진 폴란드 밴드 야누스 프루시놉스키 콤파니아의 ‘찾아가는 소리축제’. 늦더위보다 더 뜨겁고 수준 높은 연주, 관객들의 활짝 열린 마음, 그리고 공연을 유치한 학교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원. 이건, 공연의 성공을 위한 최적의 요건들이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2015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음악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려는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교육청의 도움도 큰 몫을 했던 것으로 안다. ‘공연’이란 티켓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문화 콘텐츠이지만, 공공 재정의 지원을 받는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언제나 문화 복지 차원의 기획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탄탄해졌다. 종종 일반인들을 위한 무대도 마련하며 새로운 음악을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자임했다. 축제 측이 월드 뮤직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인 것도 기획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힘이 됐다. 오늘날 월드 뮤직은 확고한 세계적 흐름이다. 제도권에서 군림해온 음악들에 비해 월드 뮤직은 삶을 날것 그대로 담아낼 때가 많다. 이는, 제3세계의 문화적 가치를 조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한다. ‘찾아가는 소리축제’가 낯선 음악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음악에도 우리와 같은 서사와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대다수의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해설이 있는 콘서트’의 형식을 취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문화의 음악이었기에, 그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흐름에 대한 인식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됐을 것이다. 아울러, 영미권에서 탄생해 세계화된 경우보다 융복합적인 음악을 자주 담아냈다. 그래서 제작진은 통시적이고도 수평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만큼 준비 단계부터 많은 이들의 노력이 요구되는 공연도 드물었다. 상당수는 연주를 위해 마련되지 않은 공간을 새롭게 무대로 꾸며 진행됐다. 이젠 전국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공연이 종종 벌어지지만,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접근의 공연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선구자적 가치를 지닌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하드웨어의 탄탄한 운영 능력과 소신 있는 프로그래밍이 병행되지 않으면 좋은 연출을 꾀할 수 없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수백 년의 세월을 응축한 변방의 어느 음악이 문득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그 가치와 의미가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독특한 대화의 장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감동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연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진행자로 힘을 보태며 소중한 추억을 하나 얻었다. 공연이 끝난 뒤, 음악의 꿈을 꾸던 한 학생이 찾아와 예정에 없던 진로상담을 하게 됐다. 햇살이 반쯤 들어오던 강당 한구석, 그 햇살보다 더 화사했던 학생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에서 위로와 공감을 얻을 것이다. 2023년에는 칠레에서 온 민속 앙상블 트란스아틀란티코와 함께 전북 고창을 찾았다. 해학의 음악으로 충만한 이들이 오랜 세월 쌓인 고난과 애환, 환희와 기쁨을 우리 학생들 앞에 ‘실체화’된 모습으로 와르르 쏟아냈다. 학생들은 뜨거운 갈채와 춤사위로, 어쩌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이국의 벗들을 환대했다. 희미하고 막연했던 소망이 눈앞의 현실로 치환되는 소통과 체험의 현장.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그렇게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김현준 음악평론가는 1997년부터 음악 관련 방송, 공연, 워크숍 등을 기획 및 제작했다. 『김현준의 재즈파일』(1997), 『김현준의 재즈노트』(2004), 『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2022)』를 출간했고, 지난 수년간 ‘찾아가는 소리축제’의 진행을 맡았다. 현재 음악평론가, 공연기획자,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3.10.19 17: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황보윤 ‘광암 이벽’

이벽(李檗 1754 ~ 1785)은 선교사가 없던 조선에서 스스로 천주교에 입교한 양반이다. 소현세자를 보필했던 6대조 할아버지 이경상이 ‘아담 샬’로부터 선물 받은 서적을 읽으며 믿음의 씨앗을 품었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 등과 ‘천진암’에 모여 천주학을 연구하고 교리를 익혀 씨앗을 신앙으로 발아시켰다. 이승훈을 설득하여 북경의 천주교회에 다녀오게 한 뒤 그에게 세례를 받아 온전한 꽃이 되었다. ‘명례방’에서 그 향기를 멀리 퍼뜨렸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배교하지 않으면 목을 매어 죽겠다는 아버지의 뜻에 좌절하다 열병에 걸려 낙화했다. 1785년 봄이었다. 그 봄부터 100년 동안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후 수많은 꽃이 이벽이라는 구근에 의지해 피었다가 졌다. ‘광암 이벽’은 그런 이벽의 삶을 담담하고 정연한 문장으로 그린 소설이다. 잔잔한 서사를 채우는, 가을 물 같은 서늘한 문체는 믿음의 산물처럼도 느껴진다.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주문한 책은 다음 날 오전에 도착했다. 급한 일들을 미루고 찬찬히 일독했다. 이벽은 낯설었고, 역사 소설을 즐겨 읽지 않으며, 천주교는 먼 종교였던지라 더디 읽혔다. 더욱이 우리 집안은 대대로 토테미즘 비슷한 것을 믿어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무병과 장수를 기원한다며 아들들이 태어날 때마다 마을 동쪽 커다란 바위에 양자로 팔았다. ‘무당’도 아니고 ‘박수’도 아닌 ‘바위’에게 아들들을 팔아넘겼던 것이다. 열 살 때, 막내아들인 내가 소에게 손목을 밟히자 ‘우마신’을 달랜다며 떡 한 말을 해서 외양간 기둥에 바치기도 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며 평생 성당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았고 지금은 불교를 믿고 있으니 더디 읽힐 만했다. 그런 내가 머뭇거림 없이 책을 주문하여 일독한 이유는 첫째가 황보윤 소설가 때문이고, 둘째가 그 무렵 물고 다녔던 ‘처음 혹은 두려움’이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지난해 가을, 어떤 강연이 끝나고 소설가 여럿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황보윤 소설가와 동석을 했다. 육회비빔밥 전문점이었는데 메뉴판을 보며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녀가 비빔밥을 시키며 고기를 빼달라고 청했다. ‘비건’이었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갈비탕에 고기를 좀 듬뿍 넣어달라고 비굴하게 웃으며 주문을 했다. 맛있게 갈비를 뜯는 나를 보고는 고기를 빼달라 주문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덜어주면 될 것을 괜히 그랬다며 퍽 미안해했다. 그 연한 말이 질긴 갈비로는 채우지 못할 헛헛한 곳에 담겼다. 헤어지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좋은 날 차를 한잔 마시자고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다. 처음엔 첫눈이 오기 전에 연락드리겠다며 내가 먼저 약속을 깼고 다음엔 벚꽃이 지기 전에 소식을 준다며 그녀가 약속을 깼다. 다시 만날 날을 정했으나 여름이 가기 전에 연락드리겠다며 내가 또 약속을 깼고 마지막엔 그녀의 다리가 부러져 약속이 깨졌다. 첫눈이 오기 전에 만나기로 했는데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리가 내릴 것만 같은데. 그렇게 스스럼없이 깨진 약속들이 누이 같은 사람을 가져다주었다. 밥 안 사 주는 누이, 그녀의 책이어서 머뭇거림이 없었던 것이다. ‘광암 이벽’을 읽을 무렵 작가의 길, ‘길 없는 길’을 가는 두려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작가라는 존재는 아무도 다녀오지 않은 ‘곳’을 다녀오는 존재고, 다녀온 그 ‘별’ 같은 곳을 향한 나침반을 조각해 내는 것이 도리인데 내 사유와 문장은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서러워할 무렵이었다. 가끔, 김시습의 시 ‘도중’이 생각나기도 했다. 눈 내리는 저녁 지평선을 향해 외로이 길을 떠나는, 가난한 나그네의 두려운 심정을 가늠하곤 했다. ‘머뭇’ 했으나 뒤돌아보지 않고 의연히 길을 나섰던 나그네. 이벽이 그랬으리라. 그녀가 그랬으리라. 황지호 소설가는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3.10.18 17:14

"완주 작은 학교에서 오페라 만나니 즐거워요"

“지금까지 오페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학교에서 공연을 보고 나니 재밌고 즐거웠어요.” 17일 오전 10시께 완주 소양서초등학교 강당. 이날 보물강당이라고 이름 지어진 학교 강당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의 정수로 꼽히는 ‘사랑의 묘약’이란 작품을 무대 위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1932년 작곡한 희극 오페라로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지주의 딸 아디나와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며 변치 않는 사랑을 바라는 시골 총각 네모리노, 아디나에게 당장 결혼하자며 나타난 벨코레가 뒤엉킨 좌충우돌 사랑이야기다. 이번 공연은 ‘2023 국립오페라단과 함께하는 오페라 학교 가는 날’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평소 체육 활동으로 강당 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지만 이날만큼은 오페라 공연에 집중하는 진지한 모습이 엿보였다. 바로 눈앞에서 오페라 무대를 접한 아이들은 대개 신기한 반응을 보였다. 완주 소양서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이상민 학생은 “오페라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말했다. 학교 강당에서는 가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세트 구성과 경쾌한 음악으로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아이들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김수정 완주 소양서초등학교 교사는 “국립오페라단이 작은 학교까지 방문해 학생들에게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1962년에 창단한 국립오페라단은 60년이 넘도록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와 예술가를 배출하고 오페라의 기쁨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 사실 서울 등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경우 오페라 자체가 낯설고 생소하게 여겨지고 있다. 국립오페라 단원들은 대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완주 소양서초등학교에서 공연을 펼치면서 긴장감 보다 설레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각 지역의 학교를 직접 찾아가 미래 세대에게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며 “전국 방방곡곡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 전시·공연
  • 김영호
  • 2023.10.17 18:38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열린 판으로 섞여드는 소리, 사람, 그리고 세계

비가 야속하게도 한없이 쏟아지는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본격적인 첫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야외 소리판이 수년 만에 온라인을 넘어 현장 속에서 활짝 열림을 하늘이 시기하는 듯하였다. 자원봉사자들은 바람에 밀려 천막 속으로 들이치는 빗줄기로부터 의자들을 보호하느라 안간힘이었다. 비 때문에, 가까이서 또 멀리서 초대한 베트남, 중국, 아랍에미리트, 한국의 음악가들 앞에 많은 관객이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스태프들의 표정도 밝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소리판이란 본디 근대적 의미의 실내 단상 위 무대이기 이전에 팔방이 열린 땅 위에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음악학자 머레이 샤퍼가 고안한 개념인) “소리풍경”이 비와 바람, 새와 소음, 습도까지 품음으로써 그날만의 특유한 색깔을 지닌, 반복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연행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날의 비는 야외 무대가 지닌 그러한 묘미의 원천이 되었다. 스태프들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며 점차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비에 지지 않는 박수를 보냈다. 음악가들은 비와 어울리며 혹은 비와 대화하며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베트남 중부 잘라이(Gia Lai) 성에서 온 소수민족 즈라이(Jrai)인들은 우리의 징에 빗댈 수 있는 타악기 공(Gong)의 합주를 통해 선율을 만들어내며 빗속 무대로 입장하였다. 잘라이 지역이 위치한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에서는 9월이 가장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 달이라는데, 어쩌면 관객은 그러한 기후와 공기마저 음악과 함께 무대 위로 옮겨진 모습을 보게 된 셈이다. 대나무로 만든 실로폰과 유사한 원리의 쭝(t’rung), 나무 줄기에 막대기를 달고 줄을 메어 뜯는 현악기 띵 닝(ting ning) 등,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악기들을 불고, 긁고, 두드리며 앙상블을 구현하였다. 대나무로 할 수 있는 모든 주법을 보여준 듯한 “아침”은 날씨의 도움으로 잘라이 지역 우기의 아침을 관객에게 더욱 잘 전해준 셈이 되었다. 빗줄기가 한층 더 세차진 늦은 오후, 남해안별신굿보존회가 무대에 올라 프로그램상 예정되어 있던 “맞이굿” 대신 “가망굿”을 첫 차례로 올렸다. 가망굿은 사회자의 설명처럼 농업 및 어업에 알맞은 날씨의 조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축제의 상황에 맞는 레퍼토리로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싶었고, 설사 잘못된 추측이었다 할지라도 그 변화가 의미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찌할 수 없는 날씨의, 자연의 힘 속에서 우리와 마을의 안녕을 소리로, 몸짓으로 힘껏 비는 모습으로서 굿이 한층 더 비치었다. 전투에 희생되어 바다에 남은 넋을 기리는 군웅굿, 종이로 정성스레 만든 용선으로부터 꽃을 하나씩 관객들에 건네며 복을 전한 용선놀음까지 끝나자 놀랍게도 비가 많이 잦아들었다. 어둑해진, 습한 늦여름 혹은 초가을밤은 아랍에미리트의 연주자들이 만든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타와슬(TAWASL)의 소리가 채웠다. 바이올린, 피아노와 같은 서구 악기와 중동 지역의 대표 류트 계열 악기인 우드(oud), 양금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그와는 달리 뜯어서 소리를 내는 지터류 발현악기 카눈(qanun)이 어우러지며 묘한 공기를 만들었고 관객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옛 말로 따지면 멀리 “서역”에서 온 그들의 소리를 가만히 앉아 들으며, 서역의 어딘가에서 한반도의 음악 앞에 앉아 동녘의 초가을을 감상하는 어떤 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뒤에 이어진 악단광칠의 멋진 기악곡 “북청”과 같은 음악을, 어떤 서역의 관객이 서역의 땅냄새 위에서 생소함과 설렘으로 듣는 모습 말이다. 축제란, 판이란 그런 것이다. 이 나라의 공기 속으로 다른 나라의 공기가, 이 나라의 사람 앞으로 저 나라의 날씨가 당도하여 서로 섞여드는 것이다. 이렇게 귀한 ‘열린’ 판이 더 많은 이들을 향해, 더 좋은 날씨와 함께 다음 날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 다음, 다다음 해 계속하여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은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 및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강사로 재직중이며, 재단법인 월드뮤직센터에서 기획을 맡고 있다. 인류학 연구자이자 대중음악 창작자이기도 하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평론부문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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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7 18:35

예술가 노(老) 부부의 그림 그리고 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날씨 속에 황혼의 예술가 부부가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따뜻한 작품 세계를 펼쳐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회화작가로 알려진 전북미술계 거목 유휴열 화백과 그의 아내 최명순 시인이 최근 지역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마련했다. 한평생 부부로 살아온 이들은 순창공립옥천골미술관의 기획으로 6일부터 ‘물속에 감추어둔 말들’이란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다.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삶의 굴곡을 함께 해온 인생의 동반자다. 예술 활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31일까지 순창공립옥천골미술관에서 진행될 전시에선 부부가 그림과 시를 통해 장르를 넘나들며 하나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모악산 아래 터를 잡은 유휴열미술관을 운영하는 부부의 시화 작품들은 감성적인 시에 입체적인 평면 그림을 배경으로 가을과 어울리는 감성을 불어넣었다.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화가의 아내’란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독하게 살아가는 화가의 숙명을 감싸주는 아내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했다. 이에 화답하듯 아내인 시인도 남편을 향한 마음을 시로 풀어냈다. “하루 종일/ 커피와 담배 연기 자욱한 그 안에서/ 근심도 계절도 멈춰버린 듯/ 혼자 흥분하고 재미있고 신이 난다// 내가 모를 또 다른 세상 속에서/ 왕굴을 짓고 돌담을 쌓고 강줄기도 내며/ 혼례식도 하고 달도 따고 소풍을 간다”(시 ‘화가의 아내’ 중에서) 아내는 그림에 몰두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70여점의 시화 작품을 찬찬히 음미하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사인 시인은 “그림에 구애되지 않고 시를 집중해서 읽으면 시집 한권을 읽는 느낌이다”며 “시의 간섭 없이 그림을 충분히 보고 난 뒤 시와 상응하는 그림을 한 쌍씩 대조하면 예술의 성찬이다”고 치켜세웠다. 유휴열 화백은 전주대 미술교육과, 홍익대 대학원(서양화)을 졸업했고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보관문화훈장과 전북일보 전북대상,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북청년미술상을 제정한 후 화단의 원로로 작가들의 창작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최명순 시인은 전주여고, 전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시집 <물속에 감추어둔 말들>을 펴냈으며 (사)모악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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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호
  • 2023.10.16 17:40

영호남 연극잔치⋯제24회 영호남연극제 막 오른다

호남과 영남 연극인들이 만든 화합의 연극잔치인‘제24회 영호남연극제’가 올해 전북에서 열린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이하 전북연극협회)가 주최·주관한 이번 연극제는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17일부터 20일까지 총 4차례 무대로 진행된다. 공연 시간은 오후 7시 30분. ‘문화는 즐거움이다. 도시가 공연장이다’를 표어로 진행되는 올해 연극제에 오를 작품으로는 광주광역시의 ‘극단 문화예술공방 바람꽃’, 경남 진해‘극단 고도’, 전주 ‘창작극회’, 익산 ‘극단 자루’ 등 총 4팀이다. 먼저 ‘문화예술공방 바람꽃’이 작품 ‘우리말글’을 올리며 연극제의 막을 올린다. 이날 이들이 준비한 작품은 한글을 반대하는 신하들에 맞서는 세종, 한글로 된 책을 전부 태우는 연산군, 한글을 사용하지 못한 일제강점기 등 한글이 지닌 수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둘째 날에는 ‘극단 고도’의 ‘해질역’이 공연된다. ‘해질 역’이라는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한 이 연극은 주인공 ‘여옥주’가 사별한 남편 ‘차만식’을 만나 마음속의 ‘흉터’로 남은 과거 기억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셋째 날에는 전북의 무대가 펼쳐진다. 이날 무대의 주인공인 ‘창작극회’가 준비한 작품은 ‘이수일과 심순애’로 경성국제대학 학생인 이수일과 심순애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마지막 날에는 ‘극단 자루’의 ‘헤이, 부라더!’가 연극제의 막을 장식한다. 연극에는 27살 배우 지망생 ‘소룡’과 가난한 체육 특기생 ‘강준’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두 인물이 동거를 시작하며 가족이 돼가는 모습을 연기한다. 조민철 전북연극협회장은 “전북, 광주, 경남 등 3개 지역에서 참여한 이번 연극제는 영호남 연극의 현주소를 한눈에 살펴보고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즐길 기회”라며 “올해 연극제를 통해 어려운 시절 치유와 감동이 함께 하는 공연예술의 숲을 거닐어 보실 것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올해 연극제는 전석 무료이며, 예약은 전화(063-277-7440) 또는 카카오톡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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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현아
  • 2023.10.16 17:40

한지문화진흥원, 전주시·일본 가나자와시 전통공예 교류 펼쳐

전주 한옥마을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일본 고유의 전통공예 향연을 통해 교류의 장이 열렸다. (사)한지문화진흥원은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전주공예품전시관 다온관과 라온관에서 자매도시인 전주시·일본 가나자와시 교류의 일환으로 ‘제22회 전통공예전’을 펼친 것. 전주시와 일본 가나자와시는 2002년 자매도시를 맺고 해마다 두 도시를 순회하며 전통공예 교류전을 열고 있다. 올해의 경우 전주에서 교류전을 갖고 일본 작가인 도요우미 켄타, 카네야스 히로시의 칠예 공예품 등 일본 대표 전통공예 작품 100여 점을 선보였다. 옻칠바구니를 비롯해 대나무 공예, 명함지갑, 브로치, 향토완구 등 쓰임새와 형태가 다양한 공예품들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전통공예와 또 다른 멋을 지닌 일본의 전통공예을 통해 두 도시는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가나자와시는 일본에서 고급 칠기와 자기 등을 포함해 비단과 면직물 제조업이 발달한 도시이기도 하다. 김혜미자 한지문화진흥원 이사장은 “전주에서 20년 넘게 일본 가나자와시와의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다”며 “코로나19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지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전통공예 교류가 중단되지 않도록 지속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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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호
  • 2023.10.16 17:39

[이승우의 미술이야기] 향교길 68갤러리, 서혜연 초대전

가을비가 이따금 가랑비로 내리는 날에, 전주 한옥마을의 유서 깊은 향교 앞길. 향교길 68 갤러리(관장 조미진)에서는 그간 환상적인 그림을 그려왔던 서혜연 작가를 초대해 "Welcome to my world(내 세상에 온걸 환영해)–서혜연-"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my(나의)와 world(세계)사이에 Fantastic(환상적인)이라는 단어가 하나 더 들어가도 좋을 뻔했다. 나서지도 않지만 물러서지도 않는 올곧은 성격의 조미진 관장과 천생 여인이지만, 이 지역 미술계에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는, 이젠 나이가 아니라 연세가 되었을 방부제 미인 서혜연 작가가 만난 것이다. 이 작가는 잘 연마된 인체 크로키 실력을 바탕으로 인물의 몸짓을 그리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섬세한 무늬의 헝겊을 정교하게 오려 붙이는 콜라주를 많이 이용해 환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었다. (헝겊을 이용하는 콜라주나 종이를 붙이는 빠피야 콜레 기법은 모두 처참했지만, 가치 있었던 미술 파괴 운동, 즉, 다다가 폭풍이 돼 지나간 직후에 발생한 초현실주의나 입체파에서 연유한 기법) 그래서 미술의 3대 요소인 그리기, 만들기, 꾸미기를 하나의 화면에 같이 시도하는 작업을 했었다. 시인 이상의 ‘거울’에 나오는 마지막 시 구절,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밖에 없으니 퍽 섭섭하오"처럼 거울에 비치는 본인의 연민을 연일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는 행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신작들은 콜라주를 이용한 기막힌 효과보다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단순하게 그리기만으로 완성하고 있었으며, 즐겨 그리던 인간들마저 하나의 정물로 바라보려는 자세, 높은 경지 관조의 세계로 몰입해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도 하고싶은 말이 많은 것인지 그녀의 그림들은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어 했다. 즉 많은 말을 하고싶지만, 말을 아끼는 거 같은 심정? 입맛으로 생각해 보면, 일관했던 단맛은 많이 줄고 그 자리를 쓴맛, 신맛, 매운맛 등 갖가지 오묘한 맛들로 채워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오히려 색채와 형태는 더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극렬한 배색에서 오는 화려함보다는 더욱 온화한 유사 색상의 배색 등으로 편안해지는 마음을 표현해서 화려함보다는 온화함을 강조하여 원숙한 나이가 되어감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었다. 어느 원로시인이 나이가 들어가니 당신의 시도 늙어가서 걱정이라더니 요즘은 나이 따라 늙어가는 글이 더 좋아졌단다. 딱 그 모양이다. 대저 늙은 시나 그림이 무엇이던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여유와 관용일 것이다. 거기에 연유해서 관조의 경지에도 도달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 속의 나를 또다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소 작품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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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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