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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太祖) 어진 봉안 행렬의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추진된다.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어진박물관장은 500년 조선 왕조의 본향 전주에서 행해지는 태조 어진 봉안 행렬과 봉안제에 대해 종묘대제와 같이 무형문화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12일 밝혔다.이 관장은 학술대회 등을 거쳐 조선시대 원형 그대로 재현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조경단 대제와의 연계 등도 검토해 볼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13년 전국 최초로 재현한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 포쇄의 정례화 의지도 내비쳤다.경기전 내 어진박물관은 연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과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이들 전북지역 2건을 포함 지난 1월 예고했던 17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문화재청에 따르면 보물 제1852호로 지정된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은 1610년과 1646년에 제작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보물 제1853호로 지정된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순치 9년(1652)에 무염(無染)이 수조각승을 맡아 완성한 작품으로, 조형적인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 무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소재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관리단체) 등과 적극 협조해 국가지정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제작된 완산부지도(完山府地圖)가 국가 지정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26일 완산부지도 등 1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완산부지도는 조선 태조의 본향이자 전라도 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부를 10폭 병풍으로 제작한 지도다. 제1폭에는 전주부의 건치연혁(지역의 내력)을 비롯해 산천, 풍속 등 전주부의 지리를 지리지 형식으로 담고 있다. 제2~8폭에는 전주부 일대를 회화식으로 그렸다. 제2폭을 남쪽, 제8폭을 북쪽으로 배치했다. 이와 같은 방위 배치는 전주부 지리 구성을 병풍식 회화처럼 재현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국립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완산부지도는 병풍을 그려낸 기량이 뛰어나 중앙에서 파견된 화공의 숙달된 솜씨로 추정하고 있다. 제작 연대는 비록 19세기 후반에 해당하지만, 전주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회화식 지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문화재 13건에 대해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을 거친다. 이후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김제 벽골제에서 진흙 주머니(초낭)가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면서 김제 벽골제가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된 국내 최대의 인공 저수지라는 상징성과 우수한 토목 기술을 인정받게 됐다.전북문화재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4차례에 걸쳐 김제 벽골제에 대한 발굴 조사를 벌였다. 연구원은 발굴 조사를 통해 제방 중간에 있는 수문 중심거, 제방의 축조 방식 등을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최근에 시행한 발굴 조사는 지난 1925년 일제에 의한 농수로 개설 과정에서 물길을 돌리기 위해 훼손된 제방의 상부 지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애초 직선 형태였던 제방이 이후 곡선 형태로 변경됐기 때문에 하부 구조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제 용골마을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제방의 동쪽 부분에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보축 제방(補築 堤防)을 확인했다. 특히 이 보축 제방 하단에서는 제방의 축조 방식을 알 수 있는 초낭이 발견됐다.제방의 보강을 위해 진흙을 담아 쌓은 이 초낭은 나뭇가지나 잎사귀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부엽 공법(敷葉工法)의 일종이다. 보축 제방 하단에는 초낭이 남서북동 방향으로 열을 맞춰 배치돼 있어 연약한 지반을 견고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초낭에서는 흙과 함께 볍씨, 복숭아씨 등이 출토됐고, 그 하층에서는 담수 지표종인 한해살이 물풀 마름이 발견돼 벽골제가 과거 담수지였다는 점을 추정해 볼 수 있다.실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초낭은 7세기를 전후한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에 전주 등 7개 주(州)에서 동원된 사람들을 이용해 제방을 증수축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결과다.당시 통일신라는 9주 5소경(九州五小京) 체제로 이 가운데 전주 등 7개 주에서 벽골제 제방 증수축을 위해 대규모 인력을 동원했다는 것.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돼 건설된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라는 상징성이 다시 확인되는 대목이다.또 초낭은 원제방이 아닌 보축 제방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토목 기술의 발전 양상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벽골제 원제방이 건축될 당시에는 초낭이라는 시설물이 없었기 때문에, 습지 지역을 평평하게 만든 뒤 초본류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부엽 공법이 활용됐다. 이후 초낭을 사용한 토목 기술이 발달했고 이는 일본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제방의 동쪽에 해당하는 곳에는 활등처럼 굽은 모양(호상)으로 보축 제방을 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보축 제방의 규모는 길이 75m, 너비 34m, 높이 160cm다. 단면 토층은 140~300㎝ 간격으로 성분이 다른 토양이 之자 모양으로 맞물려 쌓인 양상을 띠고 있다.또 제방의 가장 아랫부분인 기저부를 조사한 결과, 제방은 직선으로 연결되고 일부 경사면에서 목주열(나무기둥열)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제방 기저부의 너비는 30m 내외로 축조 방식은 기본적으로 최하단에 부엽층을 두고, 점토질과 사질토로 번갈아 쌓고 있다. 사이사이에서 토낭과 부엽 흔적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러한 축조 수법은 일본 사야마 저수지 제방 등의 원류이기도 해 우수한 토목 기술이 입증된 셈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큰 유산의 하나가 집강소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 설치를 합의했다. 전라도 전역에 설치된 집강소는 조선정부가 공식적으로 농민군에게 통치권을 인정한 것으로, 한국사 더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민과 관이 함께 폐정개혁을 추진한 집강소는 농민자치 더 나아가 농민통치를 실현한 우리나라 자생 민주주의의 효시로서 동학농민혁명의 가장 큰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다.당시 설치된 집강소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김제 원평집강소 건물이다(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소재). 그러나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돼 폐가로 방치되면서 붕괴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본보와 민간단체 등이 나서 보존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2014년 3월19일, 6월23일자 보도).이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김제시가 문화재청에 문화재 긴급매입 신청을 했고,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원평집강소의 긴급매입 및 복원을 결정했다.이를 바탕으로 원평집강소 복원 작업이 올 구체화 된다. 문화재청이 총 6억4500만원을 투입, 올 연말까지 집강소 복원 및 주변 정비에 나선다. 민간대행사업자로 선정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13일 원평집강소 현장에서 자문위원회를 열어 복원 방향과 향후 활용 방안 등을 구체화 할 계획이다.동학농민혁명 보다 12년 앞서 1882년 건립된 원평집강소 건물(상량문에 光緖 捌年 壬午三月二十 기입)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백정 동록개가 김덕명 대접주에게 헌납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혁명 이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30년대 원불교 불법연구회에서 활용했으며, 1950년대 이후 개인 소유 건물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저수지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에서 제방의 지반을 받치는 진흙 주머니(초낭)가 최초로 발견됐다.전북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4차례에 걸쳐 김제 벽골제에 대한 발굴 조사를 벌인 결과,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 제방의 동쪽 부분에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보축 제방(補築 堤防)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특히 이 보축 제방 하단에서는 제방의 축조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초낭(草囊) 100여 개가 발견돼 주목을 받았다. 풀로 엮은 주머니에 진흙을 담은 초낭은 습지 지역에 세워진 제방이 유실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초낭은 벽골제 공법의 영향을 받은 7~8세기 일본 카메이 유적 등에서 확인된 바 있으나 국내에서 온전한 형태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남서북동 방향으로 열을 맞춰 배치된 초낭은 연약한 지반을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초낭에서는 흙과 함께 볍씨, 복숭아씨, 마름 등이 출토됐는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7세기를 전후한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에 전주 등 7개 주(州) 사람들을 이용해 제방을 증수축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결과여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한편 연구원은 이번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3일 오후 10시 30분 현장에서 설명회를 연다. 같은 날 오후 1시부터는 김제시청 대강당에서 동아시아 고대 농경 수리와 김제 벽골제의 위상을 주제로 벽골제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 학술회의를 진행한다.
동학농민혁명에서 최고의 가치가 있는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는 사발통문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돼 원본 사발통문을 상시 관람할 수 있게 됐다.사발통문에 이름을 올린 참여자(송국섭)의 후손으로, 통문을 소장해온 송택렬 씨가 귀중한 자료의 안정적 보존과 혁명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하는 기관인 기념재단에 기탁하기로 했다고 10일 재단이 밝혔다.사발통문은 1893년 11월 전봉준 등 22명이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사발통문을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문에는 고부성을 부수고 조병갑을 죽일 것,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에게 탐학한 벼슬아치를 징치할 것, 전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올라갈 것등 4개항의 결의문도 함께 담겨 혁명 전야의 긴박한 상활을 보여주고 있다.1968년 발견 당시 사발통문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이듬해 사발통문이 발견된 신중리 주산마을 앞에 동학혁명모의탑이 세워지기도 했다. 사발통문은 그간 독립기념관에 10년간 기탁되어 전시되다가 소장자에게 반환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쳤다.기탁자인 송택렬씨는 사발통문이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가장 가치 있는 유물이므로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하는 기관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기탁되는 유물 중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송두호 교장임명장 등 4점이 포함됐다.사발통문의 진본 가능성에 대해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지질 감정을 통해 갑오년이나 바로 직후 문건이라는 감정 결과가 나와 동학농민혁명 주도세력이 남긴 유일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을 보류한 사발통문에 대해 전북도 문화재로 지정받는 절차를 진행하고, 향후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후백제 관련 연구자들이 후백제 역사와 문화에 관한 실체적인 규명 작업을 벌이기 위해 후백제 연구회를 조직했다.후백제 연구회는 지난 6일 오후 4시 국립전주박물관 세미나실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과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장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다.후백제 연구회 제1대 회장에는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이 추대됐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부회장, 김종운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위원은 감사에 각각 선임돼 앞으로 2년간 후백제 연구회를 함께 이끌어 간다.후백제 연구회는 근현대 후백제사 연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인식 제고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조직이다.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장을 비롯해 곽장근 군산대 교수, 송화섭 전주대 교수,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장, 전상학 전주문화유산연구원, 노기환 미륵사지유물전시관 학예사 등 4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이들은 후백제 관련 논문 발표와 후백제 최신 조사 성과 공유 등 연 4차례 학술발표회를 열고,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후백제 유적 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전북사학회 등 학술연구재단 등재지와 연계한 후백제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발표회등재지 논문조사 성과 자료 등을 엮은 논문 학술지 후백제 연구도 발간할 방침이다. 후백제 연구회의 사이버 공간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평양 대성동 고구려시대 고분에 대한 남북한 공동발굴조사가 추진된다.문화재청은 22일 발표한 ‘2015년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올해도 북한 문화유산 남북 공동조사를 지속 전개할 예정이라면서 그 일환으로 “(개성) 만월대는 제7차 공동조사가 진행되며, 평양 대성동 고구려고분은 처음으로 공동발굴을 추진한다”고 밝혔다.정부 차원에서 북한지역 문화유산을 공동발굴한 곳은 만월대뿐이다. 개성을 제외한 지역에서 공동 발굴 혹은 문화재 복원 사업이 민간 차원에서 더러 있기는 했다.아울러 문화재청은 씨름과 금강산·설악산 유산 공동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는 등 남북한 문화재 교류·협력을 통한 신뢰 프로세스를 지속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문화재청은 올해 정책목표를 △문화유산 보존·전승 체계 고도화 △문화재 분야 규제 합리화와 참여 활성화 △문화유산 향유와 미래가치 창출 △문화유산 교류와 환수·활용 내실화의 네 가지로 삼겠다고 밝혔다.문화재 수리체계 개선 차원에서 정기조사 법정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며, 재난 대비를 위해 방재설비를 등록문화재로 확대할 방침이다.분산된 문화재 정보의 통합관리를 위해서는 문화재 지정에서부터 수리, 점검, 조사, 발굴, 수리 참여자, 도면 등 개별 문화재 생애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또한 매장문화재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제공을 위한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대규모 발굴조사에는 공동조사를 유도해 조사기간 단축을 추진키로 했다.문화재 주변 지역 주민불편 해소 차원에서는 기존 문화재별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올해부터 오는 2017년까지 3개년에 걸쳐 재조정할 예정이다.광복 70주년을 맞아 정신문화유산 ‘민족 얼’ 찾기와 항일독립운동 관련 등록문화재 특별전 개최 등의 사업을 벌인다.문화재 활용 확대를 위해 궁중문화축전을 개최하고 경복궁 소주방과 연계한 궁중음식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궁궐 속 인문학’ 주간도 신설하기로 했다.조선왕릉 비공개 지역인 영원(英園)과 회인원(懷仁園)은 5월에 개방한다. 남양주시 금곡동 영원은 영친왕(英王)과 이방자(李方子) 무덤이며, 회인원은 대한제국 황세손 이구가 묻힌 곳이다. 뉴스
전주역사박물관이 겨울방학을 맞아 초등학교 3~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겨울방학 박물관 학교를 연다.이번 겨울방학 박물관 학교는 의기양양 청양과 함께라는 주제 아래 양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다양한 형태로 쓰였던 양의 모습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1일 차에는 입학식을 시작으로 학예사와 함께하는 양띠 해 특별전시 관람과 양에 대한 탐구, 학습활동이 이뤄진다.2일 차에는 임실 두마리목장을 방문한다. 오전에는 양치기 목동이 돼 양에게 직접 먹이도 주고, 보살피면서 양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오후에는 산양유로 만든 비누 만들기 체험과 치즈 제조과정 견학으로 진행된다. 3일 차에는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깃든 민화를 중심으로 양 민화족자 만들기 체험이 이어질 예정이다.겨울방학 박물관 학교 신청은 20일 오후 2시부터 선착순 20명을 모집한다. 참가비는 5만 원(재료비, 식사비, 교통비 포함)이다. 참가를 원하는 학부모와 학생은 전주역사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전북대학교박물관은 임실 박우개(朴右介-현 임실 청웅면 향교리) 박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 165점을 기탁 받았다고 14일 밝혔다.임실 밀양박씨 규정공파 영장공 종중인 박우개 박씨 집안 후손들은 지난 7일 전북대박물관 고동호 관장을 찾아 기탁 협약식을 갖고 고문서 보존과 연구 및 전시 활용 등을 협의했다. 이번에 기탁된 고문서는 교지, 서간, 호구단자, 소지, 매매문서, 분재기 등 다양하다. 이들 문서는 1746년부터 1911년 사이에 이루어졌으며(연대를 알 수 없는 것도 일부 포함), 이곳에서 터를 잡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규정공파 영장공 집안의 역사와 생활상이 오롯이 담긴 기록문화 사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기탁된 고문서들은 원래 연구를 목적으로 전북대 한국학자료센터(센터장 한문종)에 대여된 것이며. 연구가 완료됨에 따라 한국학자료센터종중대표박물관이 서로 협의하여 문서를 박물관에 기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2013년부터 유물기증 릴레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북대박물관은 이번 고문서의 대거 기탁이 대학 내 관련 기관의 협력으로 이룬 기록문화유산의 확충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군산대 박물관이 오는 5월 30일까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서른 걸음을 돌아보다를 개최한다.이번 특별 기획전에서는 군산대 박물관의 30년 발자취와 지표 조사 결과물, 발굴 유물, 박물관 물품, 사진, 사회교육 및 체험 학습 결과물 등을 전시한다.지표 조사 결과물에는 고창군의 지석묘, 장수군의 산성과 봉수, 남원 두락리 및 유곡리 고분군 지표 조사 등이 있다. 군산 조촌동창오리 고분군과 장수 삼고리 고분군, 진안 와정 유적 발굴 조사 등 발굴 유물도 볼 수 있다.지난 1984년 개관한 군산대 박물관은 30년 동안 12명의 관장이 역임했다. 개관과 함께 옥구 지방의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지표 조사 144건, 발굴 조사 72건, 매장 문화재 의견 조회 78건 등 290여 건의 학술조사를 진행했고 56권의 총서를 발간했다.군산대 박물관의 전시 활동은 1973년 군산대 전신인 군산교육대학 박물관에서 시작됐다. 1981년 군산교육대학(현 군산고등학교)이 군산대로 교명을 변경하면서 소장품을 비롯한 박물관의 모든 자료가 이관됐다.1983년 미룡동캠퍼스가 조성되면서 박물관은 미룡캠퍼스 인문대학 건물 2층으로 공간을 옮기고 1년 뒤 전시실을 개관했다. 박물관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인문대학에서도 수차례 이전을 했고, 2009년 황룡문화관 신축을 계기로 동편 1층과 2층으로 이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군산대 박물관은 군산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서해와 금강, 만경강을 중심으로 선사 이래의 흔적들을 찾고 정리해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다. 1990년대 전북 동부 지역의 가야 문화를 처음으로 학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고,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고군산군도 나아가 새만금 권역의 역사와 문화를 밝힐 수 있는 기초 학술 자료를 확보하는데 힘쓰고 있다. 특히 도서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를 통한 고군산군도의 역사성 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김종수 박물관장은 서른 살이 되면 학문이나 견식이 확립돼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선다는 공자의 말처럼 박물관도 서른 살이 됐으니 중심을 잡고 반듯이 서서 우리 문화유산을 발굴 수집하고, 연구 보존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나의균 총장은 일제강점기 군산이 문화 관광의 중심이 된 요즘 군산대 박물관이 30년 여정을 발판 삼아 군산의 선사와 역사 문화를 찾아 알리는 교육기관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연해주의 문화 유적Ⅳ 보고서를 발간했다.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선사시대 이래 한민족의 문화 네트워크에 속한 연해주의 다양한 문화유적을 밝히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역사학고고학민속학연구소와 공동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이번 제4차 보고서에는 연해주 동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한 144개 고고 유적의 최신 자료가 실려 있다. 제4차 보고서에는 연해주 동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한 144개 고고 유적의 최신 자료가 실려 있다.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연해주 동해안 일대 카발레로보 지구, 달네고르스크 지구, 테르네이 지구의 중세 시대 국경 방어를 위해 설치한 시설인 관방(關防) 유적에 대한 현황 조사 결과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 발해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문헌사 연구 성과에 따르면 전성기 발해의 영역 내에 속하는 곳으로 알려졌다.이 유적들은 발해국이 존속하던 시점에 형성된 것으로 그 축조 집단과 계통 측면에서 발해와의 연관성에서 주목된다. 말갈이나 여진 등 주요 집단의 방어 체계 연구에도 유용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는 신규 유적 다수를 소개하고 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은 앞으로도 연해주 일대의 최신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해 공동 조사 지역을 확대하고, 지속적인 보완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12일부터 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 통합 서비스인 국가문화유산포털을 확대 개편한다.국가문화유산포털은 사이버 문화재 탐방관과 기록 유산관, 문화유산 학습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유산 디지털 허브 검색을 통해 문화유산 설명자료와 사진, 동영상, 도면, 조사연구 자료 등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이번 개편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 가운데 사진 3만 3727여 건, 도면 8만 8315여 건을 상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누리 1 유형(출처표시)으로 개방했다. 수화자막음성해설이 반영된 영상 10편은 국가문화유산포털과 복지TV 방송을 통해 제공한다.또 사이버 문화재 탐방관은 30여 개의 콘텐츠를 보강하고 고품질 3차원 영상을 제공하는 문화유산 3D, 지역별로 다양한 문화유산 이야기를 소개하는 문화유산 이야기 코너를 신설한다.기록 유산관은 오는 19일부터 조선왕조 의궤와 승정원일기 등 규장각장서각 소장 조선왕실도서의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 열람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항전지인 완주 대둔산 유적지는 험한 산세에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또 극적 여건까지 갖춰 예술적 형상화에 대한 예술인들의 관심도 높다. 동학농민민혁명에서 대둔산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현재 모습을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부장이 담아 왔다.1999년 어느 날 필자의 은사이신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전 원광대 사학과 교수)은 연구실에서 필자에게 대둔산에 있는 동학농민군 최후항전지를 찾으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문헌에서만 대둔산 항전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현장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조사단을 꾸려 대둔산으로 향하였다. 대둔산 형제바위 근처를 맴돌던 우리는 현장을 찾지 못하고 막 하산하려고 하였다. 그때 은사께서 여기다라고 소리치셨다. 3m가 넘는 절벽을 겨우 겨우 올라갔다. 그곳에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상당한 넓이의 평지가 있었다. 바로 동학농민군들이 3개월간 항전을 벌였던 현장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흔적이 그때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894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탄피도 수습하였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역사의 현장과 직면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때의 대둔산 항전지 발굴이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을 공부하고 있다.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곳에서의 항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해발 715m의 거대한 암반의 상단에 자리한 최후 항전지는 동학농민군이 1894년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1월 24일까지 관군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곳이다.동학농민혁명 당시 최대 전투였던 공주 우금치 전투 이후 전라도로 후퇴한 동학농민군을 포함한 고산, 진산 일대의 접주 이상의 동학농민군들은 대둔산 정상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초막 3개 동을 구축하고 관군과 민보군, 일본군과 대치하였다. 결국 1895년 1월 24일(양력 2월 18일)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으로 소년 1명을 제외한 25명의 동학농민군들이 관군과 일본군의 총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중에는 임산부도 있었으며, 접주 김석순은 일본군에 항복하지 않고 한 살 쯤 되는 여자 아이를 끌어안고 150m 되는 절벽으로 뛰어내려 최후를 맞이하였다.그런데 이 대둔산항쟁 이야기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내용 중 가장 극적인 면이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이에 필자는 이들과 함께 역사적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필자는 지난 1월 4일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 김정호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판화가 박홍규 씨등 10여명과 함께 대둔산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에 다녀왔다.가는 길은 몹시 험했다. 자욱한 안개로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60~70cm 정도의 눈길을 헤치며 어렵게 대둔산 항전지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그때 돌아가신 동학농민군들을 위해 막걸리와 큰절을 올렸다. 눈덮인 대둔산 최후항전지는 우리들에게 120년 전 동학농민군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하였다.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은 대둔산 최후 항전지는 다른 지역의 동학농민군이 대부분 사라진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저항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 이곳 유적지는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자리잡아 당시 원형이 상당부분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하였다.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정호 회장(변호사)은대둔산항전지가 빨리 문화재로 지정되고,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판화가 박홍규는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 현장에 직접 와보니, 불과 2~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학농민군이 꿈꾼 세상을 이곳에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동학농민군의 모습을 되새겨 보았다.필자는 대둔산 최후항전지를 20여 차례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남다른 느낌이 든다. 특히 눈 덮인 대둔산항전지에서 술 한 잔 올리며 큰절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울며 다짐하고 빌었다. 동학농민군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노라고, 가식과 위선으로 점철된 세상은 사라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아마도 120년 전 동학농민군은 비록 3개월에 짧은 기간이지만 대둔산 꼭대기에 그들의 이상세계를 만들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춥고 배고프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기쁘고 즐거운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이 5일 전북지역 두 개 사찰의 유물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17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이번에 보물 지정이 예고된 남원 선원사 유물은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소조시왕상 일괄(25구,복장유물 18점, 발원문 5점 등). 이 유물들은 1610년과 1646년 두 차례에 걸쳐 제작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가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됐다. 이 상들은 각 17세기 초중반의 시기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명부 조각의 대표작으로 문화재청은 평가했다.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1652년 무염이 수조각승을 맡아 완성한 작품. 무염이 수조각승을 담당한 작품들은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5년)을 포함, 여러 지역에 다수의 존상들이 전하고 있으나, 정수사의 아미타삼존상이 조형규모 면에서 무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완주=권순택, 남원=홍성오 기자
문화재청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인정할 때 종목별 특성을 반영한 핵심 기예능을 조사지표에 반영하고, 일부 조사현장을 일반에 공개하는 등 보유자 선정 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지난달 26일 자로 개정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올해부터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려는 사람의 실기능력을 평가할 때는, 그동안 분야별로 구분하여 적용하던 조사지표 대신 종목별로 세분화구체화한 조사지표를 적용하게 된다. 변경된 조사지표에는 각 종목을 실연하는 데 필요한 대표적인 핵심 기예능이 포함되었으며, 지도력과 교수능력 등도 지표로 반영됐다.그 외 개정된 규정에는 △보유자 인정 심의를 위한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 개최 의무화 △음악무용 등 일부 무대 종목의 보유자 조사현장 일반인 공개 △종목별 정기적(매 5년) 전승자 충원 여부 검토 등의 내용도 담았다.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이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제1842호 지정됐다.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은 석가여래삼불좌상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4구의 보살상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 불전의 봉안 형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1605년에 조각승 원오(元悟)가 맡아 제작한 불상으로 17세기 초 조각승들의 활동과 조각 전통의 계승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문화재청 측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소재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소유자(관리자, 관리 단체)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국가 지정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한편, 문화재청은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을 포함한 강진 고성사 청동보살좌상,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 등 모두 8건을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정했다.
익산 국립박물관 승격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규모나 인력 배정 등이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정치권과 지역민들의 관심이 촉구된다.특히 조만간 진행될 실시설계에서 이 같은 내용이 확정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익산의 많은 문화유산이 담길 수 있도록 사전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국회는 내년도 국가예산 심의에서 이춘석 의원의 활약에 힘입어 25억 원의 익산 국립박물관 실시설계용역 예산을 확보했다. 익산 국립박물관의 실시설계 예산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업비로 명시되어 있어 앞으로 국립박물관 주도하에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될 전망이다.이미 국립박물관을 추가로 신설하는 것에는 정부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만큼 익산 국립박물관의 규모나 인력 배정을 실시설계에서 최소화하는 방향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특히 최근 기본설계에서 관장의 직급을 5급 사무관으로 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지역이 발끈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만큼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촉구되고 있다.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정부예산이 많이 배정되며 박물관의 위상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근 전주국립박물관 관장은 부이사관급인 3급이며 이보다 작은 규모의 지역 국립박물관은 4급 서기관이 관장을 맡고 있다. 5급이 관장으로 있는 국립박물관은 전국에 한 곳도 없다. 3급 관장이 부임하면 조직의 규모는 4급과 5급 간부가 배정되는 등 30명 안팎의 조직이 꾸려지며, 4급 관장의 조직은 20여명으로 조직이 구성된다.이처럼 조직의 규모가 달라지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실시설계에서 최대 조직을 꾸릴 수 있도록 많은 문화유산을 담아야 한다는 과업을 사전에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지역 문화계 인사는 정치권에서 첫 단추를 꾀었다면 앞으로는 지역과 문화예술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면서 지금까지 노력한 정치권과 지역민이 함께 제대로 된 익산국립박물관이 설립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자와 탁본을 통해 선조의 생활을 살펴보는 전시가 마련된다.전라금석문연구회(회장 김진돈)는 26일부터 31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고대 와당, 명필 서첩, 명비 탁본으로 구성한 연구회의 10번째 전시를 진행한다.이번 전시에서는 와당(기왓장)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를 통해 각 시대별 문화적 특징을 볼 수 있는 유물이 선보인다. 고구려 전돌에 나타난 그림과 글씨를 통해 고구려의 문화와 미술을 감상하고, 후백제의 동고산성과 성미산성의 문자 와당으로 문자의 조형성도 헤아려 본다.조선시대 문자 와당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사상도 들여다본다. 특히 순창향교의 아자(亞字) 와당은 을미년 (乙未年)이라 적혀 있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할 수 있으며, 기와 주변에 선비가 쓰는 정자관 모양을 음양으로 넣어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기와를 구울 때 글자가 확실하지 않아 못으로 글자를 확실하게 쓴 흔적도 나타난다.더불어 선현들이 보고 읽고 쓰던 서예자료인 김생의 <전유암 산가서>, 최치원의 <쌍계사 진감선사비첩>, 백하 <윤순의 서첩(윤의지 비문)>, 창암 이삼만의 <화동서첩>, 호산 서홍순의 <호산필첩>로 그들의 공부 방법도 엿본다.남원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인 만복사지의 후면 선면불상 탁본도 함께 내놓아 고려시대 불교 미술도 미루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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