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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8주년] "아내 나라 문화 알려는 노력해야죠"

2005년 동네 필리핀 언니와의 인연으로 전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이지훈소장과 연계돼 전화상으로 베트남어 통역을 하기 전까지 전북지역에 베트남 여성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정도로 외부와 접촉이나 교류를 끊고 살았던 것. "통역이 힘들어요. 가정불화로 인한 상담이나 긴급상담이 많다보니 밤이나 새벽에 통역을 원하는 연락이 많이 오지요. 3자통역이 대부분이고 마음을 읽어야 하니까 그것이 어려워요. 밤중에 또는 새벽에 나가도 '좋은 일 한다'며 이해해주는 남편이 고맙죠."대부분 사소한 문젠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특히 남편이 술 마시는 것 때문에 빚어지는 다툼이 많다고 말한다. 이는 베트남여성이 고집이 좀 있는 편이긴 하지만 베트남문화와 한국문화가 다른 데서 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남성들도 외국인 아내 나라의 문화를 알려고 노력해야 해요. 한국남성들이 마음이 따뜻한데도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애요. 일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 중요해요. 대화가 안된다고 하지 말고 자꾸 말을 걸고 한국말을 1∼2시간 가르치려고 노력해야지요."투엔씨는 베트남 이주여성에게도 할 말이 많다. 사랑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어차피 자신이 선택한 일이므로 한국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려고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20대 초반의 어린 신부들이 베트남에서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고만 하지 말고 한국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그러다보면 직장을 다닐 수 있어서 친정을 더 도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투엔씨의 생각. 그렇지만 애정 없는 국제결혼 자체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작년에 개명했어요. 본인의 자격이 한국사람인데 외국인 이름으로 있으면 은행카드 할부도 안되고 불편한 점이 많아요."2006년 8월 전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간사로 취직한 그는 오전 9시 전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통역하고 전화받고 상담하는 일 외에 잡다한 일을 한다. 또 출입국관리사무소와 1366여성의 전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등에 달려가 이주여성들의 입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산모와 아이를 돌보고, 임신부 등 아프면 병원 데리고 가고... 사무실 사람들이 잘 도와줘서 지금은 일이 손에 익었다는 그는, 월 80만원의 보수보다 법 분야를 공부하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6.02 23:02

[창간 58주년] 낯설고 물선 여성들, 한국서 뿌리내리기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생소한 문화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결혼으로 맺어진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온 이주여성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변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정착해서 사는 결혼이주 여성들도 차츰 눈에 띈다. 이들 중에는 솔선수범하는 생활로 이웃의 모범이 되는 여성들도 있다.전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간사 베트남 태생의 레 티 투엔씨(한국명 이가연, 39·전주시 덕진구 팔복동)도 그중 한 사람.올해로 한국생활 13년째. 투엔씨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상담·통역 관련 각종 교육을 받고 가정폭력상담원 교육을 수료한 그는, 전북지역 베트남 여성들의 든든한 '맏언니'이다. 사무실에서 상담과 통역을 맡을 뿐 아니라 베트남 아내와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풀어주는 해결사로서 도내 시군 어느 곳이든지, 언제든지 달려간다. 투엔씨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때는 95년 4월. 한국문화를 알고 싶은, 호기심 많은, 쾌활한 성격의 27세의 산업연수생인 그가 한국에서 다닌 첫 직장은 전주시 팔복동의 전주섬유. 속옷을 일본에 수출하는 이 회사에서 베트남 여성 8명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그는, 외국인이 귀했던 그시절 애교 많고, 상냥하고, 성실한 성격 덕분에 한국아줌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공장에 처음 갔던 날 아줌마들이 다 구경 나왔어요. '아! 베트남사람이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해요. 부끄러웠어요."그해 8월 '잠시' 회장 운전기사로 일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온 총각의 끊임없는 구애공세를 받았다."맛있는 것 사주고 작업장에 놀러오고... 사랑에 빠지니까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양쪽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98년 혼인하기에 이른다. 양가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채 결혼식을 치렀던 것. 회사원인 투엔씨 아버지와 소매점을 하는 어머니는 아홉자녀중 여덟째가 자신들보다 '못사는 한국가정'에 딸을 맡기고 싶지 않았고, 시댁에서도 외국인 여성을 며느리로 들이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셨던 것이다.투엔씨는 당초 직업군인이나 경찰을 꿈꿨다. 직업군인인 큰언니의 추천으로 고등학교 3학년 때 군에 자원했고 3년간 군대에 있다가 89년 러시아 외국인근로자 모집에 자원, 4년간 보로그라에 있는 바퀴제조 공장에서 일했다."베트남 근로자가 500명 정도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공장이었습니다. 90∼91년 IMF로 인해서 빵도 못먹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낸 기억이 더 남습니다."베트남 수도 하노이 북쪽에 위치한 고향 랑손시를 찾은 그는 버스로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중국을 오가며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 번번이 돈을 떼이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야 했다. 군에서도 잘 견딘 딸에 대한 믿음이 컸던 아버지는 '적극적인' 딸이 기회의 땅 한국에서 일할 것을 권했다.이토록 '희망'을 안고 밟은 한국땅이었지만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은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하면서 아들 하나 키우는 것조차 경제적으로 어려워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생활형편이 어렵긴 하지만 그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남편과 착한 아들이 옆에 있기 때문. 형편이 안돼서 6년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베트남을 가지 못했던 그. 섬유회사에 재취업도 했었지만 자신의 고된 삶을 행여 옆에서 알까봐 티도 내지 않았다.

  • 여성·생활
  • 전북일보
  • 2008.06.02 23:02

[여성] 전주음식 1호 명인 김년임씨

'전주음식 1호 명인' 김년임 전주 가족회관 대표(70).책임이 너무 무거워 '명인'을 반납하고 싶다는 김 사장에게서 '한 분야에 통(通)하면 모든 분야와 통한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밥에 누룽지를 만들어 내놓는 장인. 음식점 옆 '번듯한' 음식제조 공간이 없어서 완주군 이서면의 벤처산업단지의 공장에서 반찬을 해가지고 나오면서도 그는 아직도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총지휘를 하고 있다.비빔밥이 화합을 상징하는 음식으로서 전주를 알리는 행사뿐 아니라 경삿날 참석자들이 나눠먹는 대표적 음식으로 자리잡기까지 그 선봉에 서왔던 김 사장.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북에 왔을 때 영부인이나 앉을법한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서 새만금에 관해 40분 동안 얘기를 나누기도 했던 그는 전북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세계시장에 전주반찬이 깔릴 때까지 노력할테니 전북지역에서 추진하는 새만금개발과 식품클러스터사업의 적극 지원을 건의했다는 그다. 대통령 행사때 밥내는 일을 30년째 해왔으니 '안전'은 확실하다. 대통령 수행 전직원들이 김장아찌 맛에 빠져 구매를 서둘렀다는 후문이다.김 사장은 '얼마 팔면 얼마 남아야 된다'는 개념없이 그저 손님이 좋다면 반찬을 한상 가득 올린다. 손님이 맛있다고 칭찬하면 그 반찬을 기억해두었다가 그 손님상에 그 반찬을 올리는 진정성이 오늘의 '가족회관'을 있게 했다고 그는 믿든다. 그러기에 음식점 경영을 이어가는 큰딸에게도 "돈 계산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손님이 우리집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만 생각하라"고 주문처럼 왼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묻혀있는 음식을 발굴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 그러기에 음식점 옆 한쪽을 공부방으로 만들어 생활하는 현재가 만족스럽다.그의 '음식 인생관'은 7년전 말기 대장암 수술로 건강을 되찾으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자신의 건강보다 병약한 손자의 치료비 걱정에 정신이 번쩍 나고 사업권리도 딸에게 넘겼던 그는, 하나님이 연장해준 삶을 음식에 더욱 쏟고 있다. 이 손자를 향한 할머니 정성, 사위와 딸의 정성 덕분에 거의 정상인처럼 회복되는 것에도 감사할 뿐이다.완주 초포가 고향인 김 사장은 어머니가 어렸을 적 했던 굴비장아찌 감장아찌 김장아찌에 삭힌 생강대며, 그 맛난 토하젓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장날이나 그 전날 사둔 고기나 대구를 소금항아리속에 넣어두고 풀칠해둔 헌창호지로 봉해두어서 보관했던 일이며, 잔치날과 다름없었던 제삿날하며, 가마솥에 들기름 둘러서 장작불 때서 남은밥 다 넣고 육회나 생쇠고기 없으면 육포로 대신하고 머우대 찢어서 넣고 콩나물 고사리 등을 넣어서 비빔밥을 해먹었던 일이며... 현재의 그의 손에서 연출되는 음식은 어렸을 적 입맛 찾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손재주 있었던 막내딸을 어머니는 '손이 영글어야 잘산다'며 떡방아를 찧게 하고 고추장 담글때나 메주 만들때도 손에 꽈리 잡힐 정도로 일을 시켰다. 그러기에 반찬을 만들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아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79년 전주에서 전국체전 할 무렵 가족회관 문열어 비빔밥 메뉴 하나만을 내놓았을 때 전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후에 유명인사 접대용으로 로스를 하면서 고기 구어질 동안 반찬을 만들어서 내놓은 것이 백반정식으로 이어졌다. '반찬은 즉석에서 만든다.' 김 사장은 이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충남 금산의 농업벤처대학에 다닌지 올해로 4년째. 탑프런티어 스쿨과정을 마쳤지만,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기에 한달에 하루 서울 양재동AT센터 농업벤처대학을 다닌다. 호박전과를 개발하기도 한 그는, 명품의 상품화, 식품의 고부가가치를 위해 오늘도 땀을 흘린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8 23:02

[여성] "지나친 욕심 대신 칭찬을"

주위에서 어쩌면 자식들을 착하게 잘 키웠냐고 하는데,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잘 한 것이 없기 때문이죠. 회사원으로 있는 큰아들과 중위인 작은아들 둘다 착하고 착실하고, 아들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는 것 외에 내세울 것이 없어요.큰아들은 공부를 반에서 7∼8등에 썩 잘하진 못했어요. 기대감 때문에 고2때, 사춘기때 크게 한번 부딪쳤는데, 아들의 그릇을 알게 되고 그 후부터는 그릇에 맞게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요. 그 뒤 마찰이 없었고, 별 일 없이 잘 커줬습니다. 작은아들은 무조건 칭찬만 했지요. 모든 식구가 친구처럼 지내죠. 큰아들은 애인같이 친구같이 지냅니다. 아직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요.부모 인성을 닮지요. 남한테 절대 폐 끼치지 않으려 하고,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고, 남보다 손해보고 살자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남편이 2남2녀 중 막내아들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지는 않지만 광주의 큰아들 집에서 전주로 오면 남편이나 저나 잘 해드리려고 하죠. 딸같이 하려고 하고, 시부모에게 장난도 하지요. 특별히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애들이 어른을 공경하는 것도 부모가 한 것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선생님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라고 부탁하는 특이한 부모였지요. 자식의 부족한 면을 말씀 드리고 고쳐주길 부탁했는데 학교에서도 착하다고 칭찬을 받았지요.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스카우트 활동을 하게 했어요. 우리 부부도 스카우트를 하면서 자연속에서 애들과 활동하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고 세상을 기쁜 마음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게 됐습니다.이선이씨는 1955년생으로 전주에 거주하며 스카우트전북연맹 부연맹장을 지냈고 스카우트지도자 훈련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신한생명 직장인이기도 한 그는, 공사 퇴직 후 서울서 회사원으로 근무하는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 여성·생활
  • 전북일보
  • 2008.05.28 23:02

[여성]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나눔사회사업단 운영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센터장 박영자)가 여성부와 공동협력사업으로 운엉 중인 나눔사회사업단이 실적을 거두고 있다.나눔사회사업단은 방과후 돌봄서비스팀, 장애우 돌봄서비스팀, 요리&조리 제조판매팀으로 나눠 전문소양을 갖춘 팀별 10명 내외의 인력이 맞벌이 가정과 취약계층을 위한 돌봄서비스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꾀하면서 이와 함께 '나눔'사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조손 및 한부모가정, 소년소녀가장 등은 장애우 돌봄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방과후 돌봄도 주 1회 4시간 무료 지원받으며, 요리&조리 제조판매팀의 당일 제조분량의 10%를 무료로 제공받는다.저소득 맞벌이 가정과 차상위 계층도 장애우 돌봄과 방과후 돌봄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이는 나눔사회사업단에서 이들 도우미의 인건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며 내년 8월까지 시행된다.특히 창업성격을 띤 요리&조리 제조판매분야는 밑반찬류 1팩당(200g) 2000원에 판매하며, 국과 찌개 등 주문형 요리도 시행될 계획으로 판매금액에 따라 배달이 가능하다.일반 소비자도 나눔사회사업단을 이용할 수 있으며, 회원으로 가입한 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2일전에 예약해야 하며, 기본1시간에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254-3813∼4.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8 23:02

[여성] "행복한 가정·훌륭한 남편을 찾습니다"

전라북도여성단체협의회(회장 강원자)는 2008년 훌륭한 남성상과 행복한 가정상(3자녀) 후보자를 6월13일까지 추천받는다.행복한 가정상은 세번째 자녀를 현재 임신중인 임산모나 0∼12개월 사이의 아동이 있는 세자녀 이상의 가정을 대상으로 하며, 추천서(도·시·군 여성단체장 및 기관장), 현지확인서, 주민등록등본 각 1부씩과 후보자 증명사진, 가족사진, 아기사진 1장씩을 갖춰 협회 사무국에 우편접수 및 방문접수하면 된다.훌륭한 남성상의 자격은 전북도민 남성으로, 여성발전 및 지위향상과 남녀 차별개선 및 평등의식 향상에 기여하고, 가정안에서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며, 가족과 함께 여가시간을 공유, 자녀를 성숙한 사람으로 교육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바람직한 아버지상으로 존경받는 남성, 가사·자녀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 여성의 사회 참여·취미·기타활동을 존중해주며 적극 지원해 주는 남성, 기타 이유로 모범적인 남성상으로 추천을 받은 남성이어야 한다.후보자 추천서, 현지확인서, 주민등록등본 각 1부씩과 증명사진과 가족사진 각 1장씩을 갖춰서 협회 사무국에 우편접수 및 방문접수해야 한다.표창은 7월8일 열릴 제9회 전북여성합창대회장인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있다. 여협 사무실은 우편번호 560-021,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1가 108번지 309호. 홈페이지 http://www.jbcw.or.kr 전화 (063)231-9675,8 전송 (063)231-9676.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8 23:02

[여성의 힘 2050] 아동양육방문지도사 김분호씨

아동양육방문지도사 김분호씨(51·전주 인후동 51세). 일주일의 스케줄을 묻자 그는 대답 대신 활짝 웃었다.그가 가진 전문자격증만도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노인교육지도사, 아동요리지도자, 요리치료사, 한식조리사, 유치원정교사, 웃음치료사, 가정폭력상담사, 학교폭력·성폭력상담사 등 열손가락으로 꼽아야할 정도. 그러나 요즘 김씨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것은 아동양육방문지도사 일이다.그는 1주일에 2번 아동양육방문지도사가 돼 다문화가정을 찾아간다.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아동양육방법 및 일상생활의 어려운 점에 대해 조언해 주기도 한다.그는 "처음 다문화가정 방문했을 때, 가족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만큼 뭔가 커다란 벽을 느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의 시어머니가 언어소통이 어려운 며느리에게 인격을 비하하며 심하게 나무라는 걸 볼 때면 특히 가슴이 아팠다. 그는 "결혼이민자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늘 마음에 걸렸다"며 "어떻게 하면 가족 간에 자리잡고 있는 잘못된 인식을 전환시켜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김씨는 다문화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열기'를 시도한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결혼이민자에게 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시어머니께 전하도록 했다. 그는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어머니께 며느리가 "어머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하며 안아드리자 시어머니는 매우 행복해 했다"며 마음 나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의 꿈은 노인과 어린이가 통합된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 어린이들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노인들에게는 손자 손녀의 귀여운 재롱을 보며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김씨는 "결혼이민자 가정이 여러가지 이유로 해체되는 사례를 접하면서 능력만 된다면 그들과 어린 자녀들이 우리나라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도 운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김씨는 현재 한일장신대학교 NGO정책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한국아동요리지도자 전북지부장, 전주시 사회복지협의체 위원, 전주시평생학습센타 강사협의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여성·생활
  • 박예분
  • 2008.05.26 23:02

변도윤 장관, 성매매피해자 지원시설 방문

여성부는 21일 전북도와 공동으로 전주 코아리베라호텔에서 여성정책 설명회를 열고, 여성부의 여성정책 추진방향을 설명하고 여성정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가졌다.이날 여성정책 설명회를 위해 전북을 방문한 변도윤 여성부장관은 오전 기자간담회에 이어 도와 시군 여성의원, 지방자치 부단체장, 여성단체장, 여성관련 기관장, 여성기업인 등과 오찬을 겸해서 설명회를 가진 뒤 전주지역의 성매매피해자 지원시설인 '쉼터 민들레'와 '여성자활지원센터'를 방문했다.변 장관은 오찬 자리에서 인사말을 통해 "새만금의 수평선이 지평선으로 바뀌는 것과 함께 더많은 기업이 유치돼 좋은 여성일자리가 더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전제하고, "여성인적자원의 개발과 활용이 국가이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기에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축소된 여성부는 이같은 본연의 여성업무에 더욱 집중해나가겠다"고 밝혔다.이와함께 변 장관은 '미래를 여는 여성, 함께 하는 평등사회'를 모토로 한 여성부의 여성정책을 설명, 정책과제인 '여성다시일하기센터'와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예방 대책을 소개했다.이에 대해 참석여성들은 △이주여성 남편들의 일자리도 정책적으로 창출 또는 연계하는 방안을 비롯해서 △올해 시범운영을 앞두고 있는 '여성다시일하기센터'의 전북 우선 지정 △기존 여성취업 관련 기관에 지속 지원 △농어촌지역의 성별영향평가센터를 지정 △여성부 소관의 상담소 등 여성복지시설 종사원 임금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준해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시설 종사원 임금과 동일하게 상향할 것 등을 변 장관에게 건의했다.한편 변 장관은 '여성다시일하기센터'가 별도의 기관이 아니며 기존 여성취업 관련 사업에 지속적인 예산 투입과 여성 일자리의 모델과 직종을 개발·지원하는 사업을 하게 된다고 강조하고, 여성친화지수를 개발해서 기업 평가를 통한 시상과 부처간 종사자 임금격차 해소를 약속했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2 23:02

[여성] 전주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김신재씨

사단법인 전주생활협동조합(아이코프전주생협) 김신재 이사장(39·전주시 우아동).생협운영을 총괄하는 이사장이 된지 올해로 3년째.한·미쇠고기 협상 이후 그와 전주생협 조합원들이 바빠졌다. 시위 참여하랴, 기자회견 하랴, 거리에서 전단 나눠주랴 그리고 최근엔 공정무역 커피 마시기에 나서기까지.그가 친환경, 건강한 식탁에 당초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들(초등4) 딸(초등1) 낳은 뒤부터. 둘 다 아토피를 앓고, 특히 딸이 아토피가 심해 마음고생을 한 끝에 먹을거리, 환경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안전한 밥상과 먹을거리를 찾던 중 최민희씨가 쓴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책의 뒷부분에 소개된 '생협'에 필(feel)이 꽂혔다. 그때부터 전주 한울생협 문을 두드려 회원으로 가입했고 2~3년 후인 2001년부터 전주생협 회원으로 가입했다.'윤리적 소비'를 꿈꾸는 아이코프생협에 출자금을 내고, 또 매월 2만원씩의 회비를 내면서 조합에 대한 책임감도 나눈다. 김 이사장처럼 아토피를 앓는 자녀들의 건강 때문에 생협을 찾은 엄마들, 30대 주부들이 조합원의 주류를 이룬다.일반물품보다 20%정도 비싼 까닭에 자녀가 조금 좋아지면 일반물품을 섞어 사용했다가 특히 과자를 먹었다가 또다시 아토피로 고생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이제 생협물품 아니면 불안감을 가지게 됐다. 생협물품이 100%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생협에서 나온 과자를 먹으면 괜찮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자녀 내가족'의 범위를 넘어 이웃에도 권하게 됐다. 그는 어느덧 식품에 대해서 강의하고, 성명서 낭독하고, 캠페인, 기자회견에 참여하게 되고 자신뿐 아니라 주부회원들 모두 활동가가 됐다.처음,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지킨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생협에 가담한 그는, 생협의 안전한 식탁운동이 농업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으면서 농민운동, 식량주권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기에 최근 GMO(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수입하는 것에 심사가 틀어진다. 우리농업이 살아야 안전한 먹을거리가 보장된다는 신념아래 소비자로서 우리농산물을 열심히 소비하는 일로 우리농업을 지키는 일을 거들고 있다.전국 64개 조합이 있으며 전북지역에는 전주생협과 익산솜리생협, 남원생협이 조직돼 있다. 생협 조합원들이 마을모임을 통해 도농교류, 환경공부도 한다. 환경수세미를 뜨고 황토염색을 하고 고구마캐기 딸기따기 벌꿀캠프 오디따기에 풍년기원 가을걷이 행사 등.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로 공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농촌을 살리고 죽어가는 땅과 생태계를 살리는, 건강한 생활이 결국 신뢰하며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 건강한 사회를 실현해나가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또 홍보위원회, 식품안전위원회, 물품위원회, 급식위원회 등 각 위원회에서 각자의 활동을 하지만, 결국 조합원들은 '내가 사먹는 물품을 내가 선정'하는 즐거움을 누린다.친환경,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생협물품도 800~900여 가지로 다양해지고, 조합원이 520명에 이를 정도로 확대됐다. 김 이사장을 비롯한 생협 조합원들은 최근의 광우병 파동만 해도 몇년전 생협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으며, 시민들이 생활속의 문제들에 민감한 때가 왔다고 판단한다.김 이사장은 생협을 통해 가정내 안전한 식탁이 어느 정도 보장된 지금, 외식의 안전성도 지킬 계획이다. 우리밀로 만드는 빵과 과자, 친환경 유기농식품 등을 판매하는 자연드림 베이커리를 지난 3월 전주에서 연데 이어 조만간 우리밀을 이용한 자장면 등이나 채식뷔페 식당을 열 예정이다. 우리밀 자급률을 현재의 0.2%에서 3%까지 끌어올릴 야심만만한 플랜(?) 중 하나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1 23:02

[여성] 증언으로 듣는 '전북의 5·18과 여성'

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 93명 회원 중 여성 회원은 극소수.전북대 출신의 김성숙 문희선 조혜경(전주 거주) 송혜경(광주 거주) 김혜숙 이유숙 서성길(경기도)씨와 구속부상자 회원 양윤신(전주대, 진안청소년집 관장) 김은경(익산중앙교회 목사)씨 등이 고작.1980년 전주의 5월. 전주 전북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나?그 때 여학생은 여성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었을까?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사명감에 현실로 뛰어들었던 이들. 암울한 탄압속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민주화의 그날을 위해 수배, 투옥을 감수했던 학생운동의 고민과 투쟁들. 이들에게 5·18은 28년이 지난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80년대 초중반까지 민주화운동의 파편을 기록하여 보관하고 전파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을뿐 아니라, 그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은 모든 기록을 소각하고, 심지어는 본인의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버리는 가혹한 삶을 강요당했기에 기억조차 희미한 그날들. 지난 17일 민중항쟁 최초의 희생자 이세종열사 제28주기 추모식에서 전북대 출신으로 5·18새벽 학생회관 집회에 참여했던 김성숙, 문희선, 조혜경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북의 5·18과 여성'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여성만 구별해서 말하는 것이 어줍잖다는 이들. 그러나 '그때 그당시' 여성들의 활동이 조망되지 않은데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79년 전북지역에서 대학이 가장 빨리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나섰다. 80년 4월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총학생회가 부활되고 각 대학들의 투쟁들이 본격화된다. 5월2일 전북대가 전국 최초의 가두진출을 시도했다. 구 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여 대규모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5월15일 시민을 포함한 약 2만명이 전주역 광장에 모였다. 이때 전북대는 이미 4월부터 계엄법 위반으로 수배된 박종훈, 최인규 등의 복적생들과 시위의 조직자인 이광철 김형근 김중길 이승희 배현식 등 수십명이 학생회관에 농성을 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이 농성장은 민주캠프였다. 이곳서 시위를 조직할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시민들에게 국내의 정치상황과 민주화 참여를 호소하는 유인물을 제작하여 직접 배포 역할도 담당했다. 식사는 학생들이 모은 쌀과 반찬으로 해결했고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공동체였다. 17일 철야농성이 진행되고 있던 1층 학생회관과 2층 교수회의실, 현재 대학방송국 자리인 이곳에서 40여명의 학생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18일 새벽 0시 계엄포고령이 확대, 제7공수 31연대 공수부대원이 4대의 트럭에 나뉘어 타고 학생회관을 포위하고 전원을 차단한 가운데 1층부터 토끼몰이 하듯 뒤지기 시작했다. 착검을 한 상태로 총을 등뒤에 메고 진압봉을 들고 닥치는대로 학생들을 후려치며 쓰러뜨리고 군화발로 짓밟으며 수색, 포승줄에 묶여져 트럭으로 던져졌다. 일부는 훈방됐고 학년이 높거나 주동자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35사단을 거쳐 광주 상무대로 이첩됐다.(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가 발간준비 중인 '기록, 1980년 5월 그 뜨거운 날들의 투쟁' 기록에서)"여성, 남성의 역할 구분이 없었어요. 전북대학생의 여학생 비율이 3분의 1, 4분의 1 정도였어요. 여학생회가 구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한다는 것이 분위기상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집이 전북대 근처여서 마음 편하게 늦게까지 시위에 참여했던 김성숙(국어국문학과 79학번, 논술학원 운영) 씨는 학생회관에서 지냈던 날들의 한끼 한끼가 우여곡절 끝에 넘어갔다고 기억했다. 김 씨와 5·18의 인연은 어느날 학생회관 주방을 들여다본 것이 탈(?). 농성하면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취사 인원이 적고 특별히 당번을 정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덜컥 밥담당을 자처한 것. 김치도 인근 교회에서 담아다 준 것으로 기억한 그는, 5월17일 밤과 18일 아침밥 걱정을 하던 차에 '군인이 온다'는 말 한마디만 생생하게 기억날 뿐 13일 이전의 장면은 몇 컷만 떠오릅니다.같이 밤을 새웠던 애와 얼굴을 마주쳐도 모른척, 엄마한테도 두려워서 5·18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는 그는, 20년 뒤 보상문제로 그때 얼굴들을 다시 보게 됐다."잡혔을 때는 너무 두렵고 긴장해서 맞아도 아프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그리고 총에 칼을 꽂고 들어온 계엄군 눈에 비친 방의 모습이 오합지졸일 것이라는 생각, 순간 '민주주의 회복' 등 나라살리는 거창한 구호 외치는 것이 초라하게 생각됐다는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같이 있었던 여학생 7명(조혜경 송혜경 김혜숙 이유숙 문희선 서성길)은 35사단으로 끌려갔고 다음 경찰서에서 10일, 헌병대 감방에서 2주정도 머물다 안기부에서 각서를 쓴 다음에야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조직범이 아니기에 이 정도로 했다고 들었다.당시 맨앞에 앉아있던 문희선(사학과 78학번)씨는 계엄군이 내리치는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는 바람에 다른 여학생보다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컸다. 피가 얼굴을 타고 끝없이 흘러내려도 두려움에 떨기만 했던 문 씨. 상처를 더러운 수건으로 묶는 것이 다였으며, 경찰서에 옮겨져서야 치료를 받았던 그는, 후유증은 문 씨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그 때 상처가 워낙 커서 5월만 되면 답답하고 숨이 막힙니다. 많이 우울합니다."수업 끝나면 학생회관을 찾아 시위에 참여했던 조혜경(수학과 79학번)씨는 계엄군이 들어오던 현장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이세종과 같이 35사단에 갔다는 것 때문에 이세종 열사 사망에 관한 최후 진술서를 써야 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했기에 적은 수의 여학생들끼리도 농성장에서 얼굴만 익혔다가 나중에 최후진술서 쓰면서 이름을 알았을 정도로, 아는 것이 두려운 시절이었다. 누가 농성장에 오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도 개인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 참여했던 그는, 그때의 충격이 워낙 커서 삶의 근거가 흔들렸지만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21 23:02

[여성의 힘 2050] 수다? 秀다!…밥상이 불안하다

"불안하죠. 사람들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가 먹을 게 없다는 거예요. 당장 학교 급식도 닭고기 끊기고, 쇠고기 끊기고…. 영양사들은 급식 메뉴 짜기도 힘들다고 하더군요.""쇠고기 닭고기는 먹을 수 없고, 돼지고기집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삼겹살은 1000원이나 올랐더라고요. 그래도 정육점 가면 쇠고기 썰었던 칼로 돼지고기 썰어서 팔텐데, 교차감염도 걱정되잖아요. 이젠 풀만 뜯어먹고 살아야 겠어요.""쇠고기는 우리 나라가 최고 시장이죠. 발톱 빼고는 다 먹잖아요. 왜 대책없이 개방부터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 경제 살리라고 대통령 뽑아줬지, 누가 미국 경제 살리라고 했나요?"고병원성 조류인풀루엔자(AI)에, 광우병, 유전자변형 콩과 옥수수까지…. 먹을 게 없다.먹거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밥상을 책임지는 주부들 관심이 온통 가족들 건강에 쏠리고 있다. 주부들로 구성된 전북일보 여성객원기자들 역시 마찬가지. 수다를 시작하자 마자 커진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에요. 전부 급식이잖아요. 학생식당이나 단체급식이나, 안쓴다고는 하지만 알 수 없잖아요. 학생, 군인이 제일 불쌍해요. 이제 우리 아이도 도시락 싸주려고요."객원기자들은 "요즘에는 급식에 쇠고기나 닭고기가 올라오면 아이들이 먼저 항의한다"며 "도시락 싸가지고 가는 애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애들 성적 올리려면 학원 보낼 게 아니라 먹을 것부터 잘 골라 먹어야 한다"며 "교육정보를 공유하던 엄마들이 이제는 안전한 먹거리와 관련된 정보를 나눈다"고 덧붙였다."축산농가들도 걱정되더라고요. AI 보상금이 나와도 그동안 외상으로 쓴 사료값때문에 다 가압류 들어간다고 해요.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객원기자들은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관련 업체들의 매출도 감소하고 있다며 나라 경제 전체가 걱정된다고 했다."저는 생협(친환경식품 직거래 위한 '생활협동조합' 줄임말)을 이용해요. 그동안 생협을 이용하면서 약간 비싸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먹거리 문제가 계속 터지다 보니까 잘 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막상 계산을 해보면 생협은 물가변동이 1년 내내 거의 없어서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에요."식탁에는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다. 생협을 이용하고 있는 객원기자는 "생협은 물건이 동이 날 정도로 많이 팔리고 있다"며 "특히 육류만큼은 생협에서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객원기자는 "우리 동네 유기농매장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가 쇠고기 수입과 함께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우리나라에도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한우가 있다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먹거리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전 국가적으로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아요."객원기자들은 "검증 강화나 원산지 표기 확대 조치 등 관련 대책을 내놔도 국민들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며 "처음부터 불신을 심어줬기 때문에 정부에서 계속 괜찮다고 해도 믿음이 안간다"고 말했다.

  • 여성·생활
  • 도휘정
  • 2008.05.19 23:02

출산ㆍ육아 퇴직여성 재취업 지원 강화

출산, 육아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취업지원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여성부는 '경력 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이 1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취업지원사업을 노동부와 협력해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경력 단절 여성이란 임신, 출산, 육아 또는 가족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상황 등으로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는이들을 뜻한다.이들을 위한 경제활동 촉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종합시책을 세우고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여성부는 이를 위해 경력 단절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정기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여성부는 노동부와 함께 경력 단절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유망 직종을 선종해 그 직종에 여성이 취업하도록 지원할 수 있으며, 상담과 취업 및 복지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력 단절 여성 지원센터'를 지정, 운영할 수 있다.여성부는 "우리나라 상당수 여성은 가사와 육아 부담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고학력여성의 경우 재취업을 포기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경제활동 촉진법으로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경력 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은 올해 1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2006년 현재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0.8%보다 낮다.

  • 여성·생활
  • 연합
  • 2008.05.16 23:02

[여성] "성매매·성폭력방지 법제화 보람"

"진보적인 여성단체가 없었던 때에 개별 소모임 여성단체 탄생도 힘들 때, 여성단체연합으로 연대하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여연이 이 지역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관에서 여성정책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사단법인 전북여성단체연합' 초대 상임대표이었던 이 대표는, 여연이 지역 리더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신했다. 기획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문민정부 들어서부터 관의 파트너로서 협력을 해왔으며, 이는 성주류화 정책의 주도적인 흐름 속에서 여성정책이 계속 부각되던 시기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이 대표는 또 여연 20년 역사는 여성의식을 높이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활동의 중심에 있었다고 표현하고,우리지역에서 성폭력방지법과 성매매특별법의 두 가지 여성관련 큰 법을 만들어내는데 여연이 온상지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남원지역에서 발생한 김부남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예방치료센터가 전국 최초로 설립되고 성폭력방지법을 이끌어냈으며, 군산 개복동 화재사건을 계기로 성매매특별법을 도출해낸 것. 단순 화재 사건으로 넘어가려 한 것을 여연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성매매여성 인권문제를 사회적 인식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이강실 대표가 법과 제도를 제정하는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면 저는 이를 내면화하고 완성 정착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분권화로 인한 여성정치, 평등한 의회 등 여성정책에 신경 쓰고 의회모니터링을 시도했습니다. 선거 국면에서 후보를 추천하기도 했지요."심야에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러 다닌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김 대표는, 여연의 큰 공으로 군산 대명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을 통해 쉼터와 인권지원센터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주에 설립된 점을 꼽았다.저출산과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전라북도에서 이주여성문제를 조명하는 등 여성의 삶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문화제' 형식으로 대중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김 대표는 여연이 정책능력 면에서, 그리고 관의 여성정책 개발 면에서는 탁월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 내용은 아쉬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 예로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를 만드는 전제하에 전북발전연구원으로 통합을 양보했던 전북여성발전연구원의 경우 여성정책연구소로 구조화하면서 내용이 달라진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박영숙 현 대표는 신 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속에서 빈곤과 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으로 나타나고 비정규직과 여성농민 등 여성인권이 후퇴하고 있는데도 현 정부들어 여성정책이 실종되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면서, 여연이 과거 독재에 맞서 싸웠던 것처럼 이제 반 여성인권에 맞서 강건하게 싸워야 할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훈련된 인력이 부족하고 재정에 어려움이 큰 실정에서 전북의 경제력, 여성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이 대표와 김 대표는 여연이 의식있는 여성들을 결집시키는 모체, 현장활동 여성리더들을 길러낸 주체인 점을 동감하면서도, 여연이 젠더관점의 일에 치우쳐왔다면서 통일문제 민족문제 한반도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면서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강실 목사(49·전주 고백교회 부목사)는 88년 1월 전북민주여성회(전북여성단체연합의 전신) 출범 당시부터 참여, 초대 부회장을 맡았다. 1998년 사단법인 전북여성단체연합(여연)으로 재출범하면서 상임대표를 맡아 2005년 1월까지 성매매방지법 등 여성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현재 전북진보연대준비위원장, 우리겨레하나되기전북본부 상임대표, 성매매인권지원센터 대표이사.※김은경 목사(53·익산 중앙교회 담임목사)는 광주YWCA 간사 등을 지냈으며 93년 익산으로 거주지를 옮겨 익산YWCA 창립멤버이자 익산여성의 전화에서 상담활동을 했다. 성폭력예방치료센터에서 성과인권위원회 활동을 하고, 여연 평화통일위원장, 성매매 부설 쉼터 소장 등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여연 상임대표를 지냈다. 현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전북지부준비위원장, 전북이주여성 쉼터 소장.

  • 여성·생활
  • 허명숙
  • 2008.05.14 23:02

[여성] "철저한 예절교육, 회초리도 들었죠"

남편은 사업에 실패하고 전주 집을 팔고 '땅은 안속인다'며 방죽안마을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야간에 동네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땅이 진 동네였어요. 다들 못살아서 좀도리쌀을 한집에 모아주곤 했습니다. 3000평 땅에서 복숭아 배 사과 과수원을 하고, 담배농사 수박농사 무농사 안해본 것 없이 다 해봤지요. 두 아들과 딸도 부모가 일하면 나와서 일하고, 토·일요일에도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큰애는 자전거를 타고 아리랑고개 넘어 화장터 지나서 학교를 다녀야 했지요.남편이 엄하고 무섭게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아이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여름방학 때면 완주 고산이나 진안 죽도 등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족캠핑을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밥 해먹고 친구같이 대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동네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보면 또 인사하고 10번 보면 10번 인사한다고 칭찬을 받곤 했지요.저는 남편에 비하면 느슨한 편이지만,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가지러 가는 동안, 가지고 오는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거죠. 종아리에 피가 날 정도로 때리고 부둥켜안고 운 적도 많습니다.아들 둘다 글씨도 모르는데 여섯살에 학교를 보냈어요. 욕심을 냈죠. 청강생으로 보냈는데 숙제를 무얼 냈는지도 몰라서 애가 오면 앞집에 가서 알아와 저녁밥 먹은 다음 집에서 혼자 가르쳤지요. 큰애를 그렇게 하고 나니까 둘째는 공부하라고 닥달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더군요.막내 때문에 1년동안 속상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거든요. 차마 당구장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고 형이 가서 데리고 나오고 그랬는데, 재수해서 대학 들어가고 지금은 회사원으로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무척 속상해도 너무 다그치지 않고 믿어준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지금도 자녀들과 손자녀들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방석 하나 들이는 것, 신발 잘 놓는 것에서부터 예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순화되지요.최정자 씨는 47년생으로 79년 전주시 호성동의 방죽안마을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아 방죽가에 콩을 심어서 부녀회원들의 재정에 도움을 주었으며, 염소 새끼를 길러 동네 잘살기 운동을 이끌어나가기도 했다. 농협의 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들의 모임 회장으로서 전주시여성단체협의회장과 전북여성단체협의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상담사 요리사 전래놀이지도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고 가야금, 장구, 민요, 살풀이(고전무용) 등을 취미로 배웠으며, 올해부터 전주 금암노인복지회관에서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다. 예절교육에 심취해 있으며 대학에서 아동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 전북여성단체협의회 특별사업위원회 위원.

  • 여성·생활
  • 전북일보
  • 2008.05.14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