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전북체육 결산 - 4. 생활·장애인체육
◇ 생활체육도내 각 시군 생활체육회 종목별 연합회에 등록된 생활체육인은 4200개 클럽에 18만명에 달한다. 등록되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민들에게 생활체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전라북도생활체육회는 올해 5년 연속 우수단체에 선정되는 영예을 안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난해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잠복해있던 선거의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5년 연속 우수단체= 전북도생활체육회는 올해 국민생활체육회가 선정하는 생활체육 멤버십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5년 연속 우수단체에 선정됐다. 체육복지사업, 동호인 주말리그, 생활체육 회원카드 가입실적 등을 인정받은 결과이다.특히 전북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동호인 주말리그 및 왕중왕전은 7개월 동안 1700여개 클럽 4만5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다. 3월부터 10월까지 7개월 동안 주말을 이용해 시군별로 주말리그를 펼친 뒤, 11월 9일과 10일에는 종목별 시군리그에서 우승한 275개 클럽 4000여명이 김제실내체육관에서 모여 왕중왕전을 벌였다. 경기종목은 게이트볼, 배드민턴, 축구, 배구, 족구, 탁구, 테니스, 야구 등 8개였다.△ 체육복지 정보화사업=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내 체육시설 1089개소와 4000여개 동호회 현황, 312명 생활체육지도자의 지도활동 상황 및 운영 프로그램, 도내에서 열리는 경기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홈페이지 및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시군 상임부회장 집단 사임= 13개 시군 생활체육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상임부회장(임실은 생활체육회장)들로 구성된 생활체육회장협의회가 지난 6월 전북도생활체육회 이사직을 집단으로 사임했다.이사수가 너무 많다며 시군 생활체육 발전에 전념키로 했다는게 겉으로 내세운 이유였지만,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된 이후 소원해진 소통 부재에 대한 불만까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한 회장이 이사수를 대폭 늘리고 모든 이사들에게 이사회비를 납부하도록 요구해왔다. 결국 박승한 회장이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고, 생활체육회장협의회가 이사회 대신 대의원총회에 진출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사태는 진정됐다.◇ 장애인체육전북의 장애인체육은 저변이 넓지 못하고 소수 엘리트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 올해 열린 전국 장애인체전에도 전국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선수단을 꾸렸고, 지난해보다 한단계 떨어진 16위에 그쳤다. 장애인 체육의 활성화와 함께 우수 선수의 발굴 육성, 그리고 훈련장비 및 용품 지원, 전문지도자 배치 등 많은 과제를 드러냈다. 특히 장애인체육은 재활 및 사회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엘리트 체육과 함께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관련 기관 단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전민재 최고의 한해= 전민재에게는 최고의 한해였다. 전민재는 지난해 제14회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대한민국 장애인 체육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올 2월에 열린 제5회 소강체육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선수상을 받았다.전민재는 또 대구에서 열린 제33회 전국장애인체전에서 10년 연속 3관왕과 함께 기자단 투표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 손옥자의 선전= 전북장애인배드민턴협회 소속의 손옥자(44) 선수는 11월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2013 장애인 배드민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휩쓸었다. 이선애 선수와 짝을 이룬 휠체어 1부문 여자 복식 경기에서 카린(스위스)-수지랏(태국) 선수조와 47분간의 결전끝에 2-1로 이기며 짜릿한 금메달을 따냈다. 손옥자 선수는 이에 앞서 혼합복식과 여자단식 경기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손옥자는 이에 앞서 장애인체전에서도 금메달 2개를 따냈다.△ 장애인체전 다관왕 다수 배출= 제33회 장애인체전에서 남자육상의 전은배(T36)가 4관왕, 남자육상의 김정호(F55)와 여자육상의 이도연(T56) 선수가 각각 3관왕에 올랐으며, 육상 필드의 문지경과 박정규, 선정미, 장동옥은 각각 2관왕에 올랐다. 이처럼 다관왕의 다수 배출에 따라 전북은 메달순위에서는 전국 13위를 차지했으나 전체 점수에서는 16위에 그쳤다. 장애인체육의 저변확대가 절실함을 보여주는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