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체육 비사] (23)전북출신 첫 태릉선수촌장 박종길씨
사격인으로 유명한 피스톨 박(Pistol Park)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떠올린다.그러면 '리틀 피스톨 박'은 과연 누구일까.무려 15년 동안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사격무대를 휩쓸었던 전북 출신 박종길(65·현 태릉선수촌장)을 말한다.그는 서울체고, 광운대, 국가대표 사격감독을 거쳐 올해 초 경기인으로선 최고의 명예라는 선수촌장 자리에 올랐다.전북 출신으론 건국이래 첫 선수촌장이다.선수촌장은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에 있는 '태릉선수촌' 운영을 총 책임지는 자리로 국내 모든 국가대표 선수를 총괄하게 된다.김성집, 이에리사 등이 역대 선수촌장중 유명하다.전북이 낳은 왕년의 사격 대부 박종길의 이야기다.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난 박종길은 이리농림, 광운대를 거쳐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집안형편상 전주사범으로 진학하려 했으나, 때마침 전주사범이 전주교대로 바뀌면서 그는 이리농림으로 방향을 바꿨다.이리농림 졸업후 해병학교에 들어간 그는 권총이란 걸 처음 접했다.1960년대 중반 당시는 월남전 파병이 이뤄질 때여서 무엇보다도 사격이 중요했는데 해병대 창설기념일 또는 9·28 서울수복 기념 사격대회에서 그는 부동의 1위를 하곤 했다.해병대 장교로 포항에 근무하던 그도 60년대말 월남전 파병 대상으로 확정돼 승선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월남에 간 동료들이 참전한지 일주일만에 주검으로 돌아오던 때였다.그런데 월남 출발 3일전 서울에서"내일 아침 기차타고 서울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대한사격연맹회장을 맡고 있던 박종규 당시 경호실장이 1971년 아시아 사격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사격에 능한 사람을 끌어모으던 상황에서, 군인중에서 사격잘한다는 박종길이 그의 눈에 띈 것이다.집안에서 4남2녀중 장남인 박종길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절박한 사정으로 인해 월남에 가서 죽으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었다"며 "뜻밖에 사격을 잘해 태릉선수촌에 잡혀왔는데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남과 북이 극한 대결을 벌이던 시대상황속에서 각종 국제대회때마다 남북은 격렬하게 대결했고, 특히 사격 부문에서 경쟁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대한사격연맹에서는 청와대 경호실, 경찰, 군인중 사격에 능한 사람을 모아 소위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쳤고 그때마다 박종길은 항상 1위를 차지했다.사격에 뛰어난 그를 박종규 경호실장겸 대한사격연맹회장은 무척 아꼈다.아버지뻘 되는 박 전 실장 주변에만 가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끼곤 했으나 또 한편으론 다정하게 대했다고 한다.큰 대회에서 우승하면 직접 격려를 해줬고, "너는 리틀 피스톨 박이야"라고 말하곤 했다.그래서 박종길은 매번 언론에 리틀 피스톨 박으로 보도됐고, 사격인들도 항상 리틀 피스톨 박 하면 박종길을 일컫는다.그는"태릉선수촌에 있을때 여기서 낙오되면 죽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외출할때마다 육군사관학교 입구에서 내려서 눈을 감고 철로에 올라 태릉선수촌까지 걸었다.사격에서 필요한 조정력과 정신 집중을 위해 스스로 개발한 훈련 프로그램이었음은 물론이다.태릉선수촌 뒤편에 있는 불암산에 매일 권총을 손에 쥐고 올랐던게 엊그제 같단다.그가 사격 선수로 출전하면서 국제대회에서 메달 하나 따지 못하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1971년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잇따라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그는 해병대를 예편한 뒤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는다.1978년 세계 사격선수권대회와 방콕아시안게임,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아쉽게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984년 LA올림픽에선 속사권총 부문에 출전했으나 메달을 획득하진 못했다.이연택 전 체육회장때 박종길은 선수촌장이 될뻔 했으나, 같은 전북 출신이라고 해서 밀려나면서 꿈을 접었으나 올해 뜻하지 않게 선수촌장에 임명됐다.선수촌장이 된 이후 그는 매일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숙식을 함께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그는"운동을 했던 선배의 입장에서 보면 요즘 국가대표들은 기대치의 80%밖에 되지 않는게 솔직한 심정"이라면서도 "강제보다는 감성으로 선수들을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기성 세대들이 무조건 힘들게 열심히 했다면, 이젠 즐겁게 해야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그는 내년 런던올림픽때 세계 7위이내 입상을 반드시 이루는게 꿈이다.선수 시절 수시로 전북사격연맹을 찾아 지도하기도 했다는 그는 "전북 도민의 긍지를 잃지 않고 역사에 남는 선수촌장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