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문과에서 '역사' 과목이 가장 많아 - 김성규
하버드대학에서 생각한 것들(2) 하버드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나?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높은 난관을 뚫고 모여든 학생들은 과연 하버드에서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학은 ‘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s)’으로 규정되어 왔고, 이때의 ‘교양’은 전문화된 직업이나 기술교육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지적인 교양’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직업적, 전문적 기술은 대학원에 진학해 배우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구조는 하버드의 경우에 단적으로 들어난다. 학부생 6700명은 이 대학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FAS(Faculty of Arts and Science)라는 단위 안의 ‘하버드컬리지’에서 배우고, 그 수가 두 배가 되는 대학원생들은 9개의 각종 대학원(Professional School)에서 공부한다. FAS는 문과와 이과 즉 ‘문리대학’의 뜻이고, 따라서 공대, 법대, 의대 등의 전문교육은 학부에서 교양 이상의 수준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학생들은 이 FAS 내에서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왔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하버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공(concentration)’제도를 도입했고, 교양과목에도 필수를 지정함으로써 교육목표를 ‘균형 잡힌 교양인’으로 수정했다. 졸업을 위해 최소 96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학생들은 그 중 전공필수로 11개 영역에서 적어도 7개 영역 21학점을, 전공으로는 45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여기서 눈을 끄는 것은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11개 필수영역의 내용이다. 인문, 사회, 이공, 예술 등이 큰 틀을 이루지만, 구체적인 과목 수는 외국문화4, 역사17, 경제학4, 도덕철학3, 행정학1, 문학7, 음악3, 연극2, 수학17, 컴퓨터과학1, 화학4, 지구과학 2, 공학2, 생명과학2, 물리학8, 생물학6으로 되어 있다. 83개의 과목들은 문과와 이과 사이에 균형을 이루지만, 특히 기초학문 즉 문과에서는 역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 문학, 경제 등의 순이며, 이과에서도 수학과 물리, 생물이 두드러진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 교양필수 영역에서 ‘역사’를 배제했다가 문제가 된 전북대학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하버드의 과목편성 배후에 혹시 어떤 이해관계라도 반영된 것인가를 생각해보았으나 그 가능성은 찾지 못했다. 학과 중에는 교양필수를 전혀 개설하지 못한 곳도 많고, 교수 수가 많아도 필수과목 수는 거기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필수과목 중에 예를 들어 ‘1990년 이후의 서부아프리카’같은 과목이 보이는 것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학생들의 관심의 폭과 그 강의가 가능한 이 대학의 역량을 말해준다. 한국은 국제화에 대한 요구로 대학교육에서 ‘외국어’를 과도하게 강조하지만,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할 진정한 국제화의 준비는 그 같은 ‘기술’적인 테크닉보다 그 나라의 인간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한국의 조건은 분명 다르고 하버드의 교육방식에도 비판은 따르지만, 적어도 원칙과 철학이 있는 교육정책, 그리고 단순한 지식과 방편이 아니라 진정으로 깊이 있는 교양인 육성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대학의 사명일 것이다./김성규(전북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