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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소망이 현실로 치환되는 무대

강당에 들어선 학생들은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2019년 10월의 첫날, 김제 지평선고등학교에서 펼쳐진 폴란드 밴드 야누스 프루시놉스키 콤파니아의 ‘찾아가는 소리축제’. 늦더위보다 더 뜨겁고 수준 높은 연주, 관객들의 활짝 열린 마음, 그리고 공연을 유치한 학교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원. 이건, 공연의 성공을 위한 최적의 요건들이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2015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음악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려는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교육청의 도움도 큰 몫을 했던 것으로 안다. ‘공연’이란 티켓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문화 콘텐츠이지만, 공공 재정의 지원을 받는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언제나 문화 복지 차원의 기획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탄탄해졌다. 종종 일반인들을 위한 무대도 마련하며 새로운 음악을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자임했다. 축제 측이 월드 뮤직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인 것도 기획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힘이 됐다. 오늘날 월드 뮤직은 확고한 세계적 흐름이다. 제도권에서 군림해온 음악들에 비해 월드 뮤직은 삶을 날것 그대로 담아낼 때가 많다. 이는, 제3세계의 문화적 가치를 조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한다. ‘찾아가는 소리축제’가 낯선 음악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음악에도 우리와 같은 서사와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대다수의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해설이 있는 콘서트’의 형식을 취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문화의 음악이었기에, 그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흐름에 대한 인식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됐을 것이다. 아울러, 영미권에서 탄생해 세계화된 경우보다 융복합적인 음악을 자주 담아냈다. 그래서 제작진은 통시적이고도 수평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만큼 준비 단계부터 많은 이들의 노력이 요구되는 공연도 드물었다. 상당수는 연주를 위해 마련되지 않은 공간을 새롭게 무대로 꾸며 진행됐다. 이젠 전국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공연이 종종 벌어지지만,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접근의 공연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선구자적 가치를 지닌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하드웨어의 탄탄한 운영 능력과 소신 있는 프로그래밍이 병행되지 않으면 좋은 연출을 꾀할 수 없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수백 년의 세월을 응축한 변방의 어느 음악이 문득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그 가치와 의미가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독특한 대화의 장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감동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연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진행자로 힘을 보태며 소중한 추억을 하나 얻었다. 공연이 끝난 뒤, 음악의 꿈을 꾸던 한 학생이 찾아와 예정에 없던 진로상담을 하게 됐다. 햇살이 반쯤 들어오던 강당 한구석, 그 햇살보다 더 화사했던 학생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에서 위로와 공감을 얻을 것이다. 2023년에는 칠레에서 온 민속 앙상블 트란스아틀란티코와 함께 전북 고창을 찾았다. 해학의 음악으로 충만한 이들이 오랜 세월 쌓인 고난과 애환, 환희와 기쁨을 우리 학생들 앞에 ‘실체화’된 모습으로 와르르 쏟아냈다. 학생들은 뜨거운 갈채와 춤사위로, 어쩌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이국의 벗들을 환대했다. 희미하고 막연했던 소망이 눈앞의 현실로 치환되는 소통과 체험의 현장.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그렇게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김현준 음악평론가는 1997년부터 음악 관련 방송, 공연, 워크숍 등을 기획 및 제작했다. 『김현준의 재즈파일』(1997), 『김현준의 재즈노트』(2004), 『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2022)』를 출간했고, 지난 수년간 ‘찾아가는 소리축제’의 진행을 맡았다. 현재 음악평론가, 공연기획자,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3.10.19 17:29

제43회 가람시조문학상 서연정 ‘시 쓰는 챗봇’ 선정

서연정 시조시인의 ‘시 쓰는 챗봇’이 제43회 가람시조문학상, 류미월 시조시인의 ‘숙묵宿墨’이 제15회 가람시조문학신인상으로 최종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시 쓰는 챗봇’에 대해 공감과 메시지가 선명하며 ‘김소월의 연보를 순식간에 외운다’, ‘존재를 상상하며 시를 읽고 시를 쓴다’, ‘새하얀 종이 위에 배열되는 낱말들’ 등의 표현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불러내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또 ‘숙묵宿墨’에 대해서는 갈아둔 다음 하룻밤을 묵힌 먹물 같은 시조라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스며들어 짙은 먹물 위에 비치는 자신을 보며 성찰의 순간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4일 가람문학관에서 제15회 가람시조문학제와 함께 열릴 예정이다.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 원과 상패, 가람시조문학신인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 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한편 서연정 시조시인은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1997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시조집 ‘먼 길(1999)’, ‘문과 벽의 시간들(2001)’, ‘무엇이 들어 있을까(2007)’, ‘동행(2010)’, ‘푸른 뒷모습(2011)’, ‘광주에서 꿈꾸기(2017)’, ‘인생(2020)’을 출간하는 등 시조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월간문학 시조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류미월 시조시인은 시조집 ‘나무와 사람’, 산문집 ‘달빛, 소리를 훔치다’를 출간하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송승욱
  • 2023.10.19 15:53

전북 어디까지 알고있니?… 통합 지역학 프로그램 '첫 선'

전북의 역사·문화·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장이 열렸다.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이하 센터)는 18일부터 21일까지 전라감영 일대에서 ‘2023년 전북학주간’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라북도와 전북연구원이 공동 주최·주관하는 이번 사업은 전북의 지역 정체성을 연구하는 ‘전북학’의 전문가들과 도민들을 아우르는‘통합 지역학 프로그램’이다. 특히 전문가들의‘학술의 장’과 도민들의‘체험의 장’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2024년‘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앞서 전북학 측면에서 전북의 128년사를 톺아볼 수 있는 전시프로그램과 전북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정치·사회·경제·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전북학 홍보 부스’ 등이 상설 운영된다. 실제로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전북: 확장등재 전문가’를 주제로 한 비공식 세미나가 18일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열렸으며 19일에는 전북학연구센터의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성과발표회가 예정돼 있다. 또 19, 20일 양일에 걸쳐 김남석 부경대 교수, 홍성덕 전주대 교수,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관장 등이 전북학 강연을 펼친다. 특히 마지막 날 오후 5시에는‘큰별쌤’최태성 강사가 전하는 ‘전라북도 이야기’를 주제로 공개 특강이 선화당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전라감사 삭시사 놀이’, ‘취재시험 놀이’, ‘조선팝 얼씨구나 좋구나’ 등 전북의 미래를 책임질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예정돼있다. 이남호 전북연구원 원장은 “전북특별자치도라는 대변혁을 준비하는 도민들에게 전북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전북학이 자긍심을 고취할 기회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준비되길 바란다”며 “또한 전북학연구센터의 다양한 성과들이 도민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10.18 17:15

최기우 극작가, 5번째 희곡집 ‘이름을 부르는 시간’ 출간

최기우 극작가가 5번째 희곡집 <이름을 부르는 시간>(평민사)를 출간했다. 희곡집에는 ‘동학농민혁명’, ‘전주 3·1운동’, ‘옥구농민항쟁’, ‘조선어학회사건’, ‘전주 5·18 민주화운동’ 등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건과 그 속에서 고귀한 삶으로 우리에게 긍지를 갖게 한 선인들의 자취가 담긴 다섯 희곡이 실려있다. 이번 희곡집 속 다섯 작품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그들의 이름을 찾아 크게 외쳐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짚어본다. 먼저 ‘들꽃상여’에는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 간 동학농민혁명의 넋들이 있다. 자신의 집을 자치 행정기관인 집강소로 내놓은 김제 원평의 동록개와 여성 장군 이소사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두리로다’에서는 자비로운 선행과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전주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걸인 성자 이보한(1872~1931)의 삶을 다룬다. 특히 1919년 3·1운동을 전후로 서울과 전주에서 활동한 행적을 중심에 두며, 동구 밭 정자나무처럼 버티고 서 있던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27 옥구 사람들’은 군산·옥구의 열혈 청년 장태성(1909~1987)과 일제강점기 우리 농민의 대표적인 저항운동으로 꼽히는 옥구농민항일항쟁이 소개된다.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를 배경으로 한 ‘수우재에서’는 <조선어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조선어학회를 항이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관계자들을 체포·투옥했던 조선어학회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마지막 ‘아! 다시 살아…’는 5·18민주화운동의 첫 번째 희생자인 전북대학교 학생 이세종(1959∼1980)과 1980년 5월 17일·18일 전주의 처절한 밤을 담았다. 최 작가는 “이번 희곡으로 소개하는 인물들과 그분들이 풀어놓는 지혜를 살피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우리의 자부심이 된 역사를 알리는 일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연극·창극·뮤지컬·창작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며 10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의 저서로는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있다. 그는 전북일보 기자와 전주대학교 겸임교수, ㈔문화연구창 대표 등으로 일했으며, 현재 최명희문학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3.10.18 17:15

김영춘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 출간

김영춘(66) 시인이 자신의 세 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애지)를 펴냈다. 문단에서 시인은 보다 민중적인 서정의 세계를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사물과 사람에 깃든 섭리와 그 은근한 온기를 살피는 시선이 아로새겨져 있다. 시인은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의 내면에 대해 슬며시 눈길을 돌린다. 서로 다른 삶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세상에서 시를 통해 시인이 간직한 서정적인 눈빛을 건네 보는 것이다. 복효근 시인은 발문을 통해 “시인은 생의 순간순간에 마주하는 다정의 얼굴을 구체적인 국면을 통해 그려 보여주고 있어 실감으로 다가온다”며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오래 다정한 눈빛을 건네며 다양한 빛깔로 그 다정을 노래한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교육 운동에 몸담아온 시인은 정이 많고 속이 깊은 사람이다. 그러한 내면이 시에서도 잘 투영돼 있어 오롯이 드러나있다. “산봉우리에/ 형제봉이니 자매봉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 살던 사람들이 있다/ 행여 사이가 좋지 못할까봐/ 형제자매들까지 데려다 놓고는/ 오래 오래 그렇게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시 ‘다정한 것에 대하여’ 중에서) 그의 시에는 현재 살고 있는 전주지역 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 잠들어있는 이야기를 들춰내려 한 흔적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 시대의 시들어가고 소멸하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 주목하면서 사람들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와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을 공유한다. 김사인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작위나 허세는 흔적도 없다”면서 “방심한 듯한 시의 갈피마다 스민 순정 앞에서 읽는 이들은 하릴없이 무장을 해제 당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시집 출간 이후 10여 년 만에 시집을 출간한 시인은 이렇게 소회를 피력한다. “요즘은 문학청년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하루 종일 머릿속에 시 생각이 가득합니다. 그동안 쉼 없이 생각해 왔던 나다운 시를 한두 권쯤 더 묶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쏠쏠한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고창 출신인 그는 1988년 실천문학 복간호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전주 솔내고와 군산동고 등지에서 교편 생활을 했다. 시집으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나비의 사상>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영호
  • 2023.10.18 17: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황보윤 ‘광암 이벽’

이벽(李檗 1754 ~ 1785)은 선교사가 없던 조선에서 스스로 천주교에 입교한 양반이다. 소현세자를 보필했던 6대조 할아버지 이경상이 ‘아담 샬’로부터 선물 받은 서적을 읽으며 믿음의 씨앗을 품었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 등과 ‘천진암’에 모여 천주학을 연구하고 교리를 익혀 씨앗을 신앙으로 발아시켰다. 이승훈을 설득하여 북경의 천주교회에 다녀오게 한 뒤 그에게 세례를 받아 온전한 꽃이 되었다. ‘명례방’에서 그 향기를 멀리 퍼뜨렸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배교하지 않으면 목을 매어 죽겠다는 아버지의 뜻에 좌절하다 열병에 걸려 낙화했다. 1785년 봄이었다. 그 봄부터 100년 동안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후 수많은 꽃이 이벽이라는 구근에 의지해 피었다가 졌다. ‘광암 이벽’은 그런 이벽의 삶을 담담하고 정연한 문장으로 그린 소설이다. 잔잔한 서사를 채우는, 가을 물 같은 서늘한 문체는 믿음의 산물처럼도 느껴진다.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주문한 책은 다음 날 오전에 도착했다. 급한 일들을 미루고 찬찬히 일독했다. 이벽은 낯설었고, 역사 소설을 즐겨 읽지 않으며, 천주교는 먼 종교였던지라 더디 읽혔다. 더욱이 우리 집안은 대대로 토테미즘 비슷한 것을 믿어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무병과 장수를 기원한다며 아들들이 태어날 때마다 마을 동쪽 커다란 바위에 양자로 팔았다. ‘무당’도 아니고 ‘박수’도 아닌 ‘바위’에게 아들들을 팔아넘겼던 것이다. 열 살 때, 막내아들인 내가 소에게 손목을 밟히자 ‘우마신’을 달랜다며 떡 한 말을 해서 외양간 기둥에 바치기도 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며 평생 성당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았고 지금은 불교를 믿고 있으니 더디 읽힐 만했다. 그런 내가 머뭇거림 없이 책을 주문하여 일독한 이유는 첫째가 황보윤 소설가 때문이고, 둘째가 그 무렵 물고 다녔던 ‘처음 혹은 두려움’이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지난해 가을, 어떤 강연이 끝나고 소설가 여럿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황보윤 소설가와 동석을 했다. 육회비빔밥 전문점이었는데 메뉴판을 보며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녀가 비빔밥을 시키며 고기를 빼달라고 청했다. ‘비건’이었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갈비탕에 고기를 좀 듬뿍 넣어달라고 비굴하게 웃으며 주문을 했다. 맛있게 갈비를 뜯는 나를 보고는 고기를 빼달라 주문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덜어주면 될 것을 괜히 그랬다며 퍽 미안해했다. 그 연한 말이 질긴 갈비로는 채우지 못할 헛헛한 곳에 담겼다. 헤어지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좋은 날 차를 한잔 마시자고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다. 처음엔 첫눈이 오기 전에 연락드리겠다며 내가 먼저 약속을 깼고 다음엔 벚꽃이 지기 전에 소식을 준다며 그녀가 약속을 깼다. 다시 만날 날을 정했으나 여름이 가기 전에 연락드리겠다며 내가 또 약속을 깼고 마지막엔 그녀의 다리가 부러져 약속이 깨졌다. 첫눈이 오기 전에 만나기로 했는데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리가 내릴 것만 같은데. 그렇게 스스럼없이 깨진 약속들이 누이 같은 사람을 가져다주었다. 밥 안 사 주는 누이, 그녀의 책이어서 머뭇거림이 없었던 것이다. ‘광암 이벽’을 읽을 무렵 작가의 길, ‘길 없는 길’을 가는 두려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작가라는 존재는 아무도 다녀오지 않은 ‘곳’을 다녀오는 존재고, 다녀온 그 ‘별’ 같은 곳을 향한 나침반을 조각해 내는 것이 도리인데 내 사유와 문장은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서러워할 무렵이었다. 가끔, 김시습의 시 ‘도중’이 생각나기도 했다. 눈 내리는 저녁 지평선을 향해 외로이 길을 떠나는, 가난한 나그네의 두려운 심정을 가늠하곤 했다. ‘머뭇’ 했으나 뒤돌아보지 않고 의연히 길을 나섰던 나그네. 이벽이 그랬으리라. 그녀가 그랬으리라. 황지호 소설가는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3.10.18 17:14

"완주 작은 학교에서 오페라 만나니 즐거워요"

“지금까지 오페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학교에서 공연을 보고 나니 재밌고 즐거웠어요.” 17일 오전 10시께 완주 소양서초등학교 강당. 이날 보물강당이라고 이름 지어진 학교 강당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의 정수로 꼽히는 ‘사랑의 묘약’이란 작품을 무대 위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1932년 작곡한 희극 오페라로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지주의 딸 아디나와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며 변치 않는 사랑을 바라는 시골 총각 네모리노, 아디나에게 당장 결혼하자며 나타난 벨코레가 뒤엉킨 좌충우돌 사랑이야기다. 이번 공연은 ‘2023 국립오페라단과 함께하는 오페라 학교 가는 날’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평소 체육 활동으로 강당 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지만 이날만큼은 오페라 공연에 집중하는 진지한 모습이 엿보였다. 바로 눈앞에서 오페라 무대를 접한 아이들은 대개 신기한 반응을 보였다. 완주 소양서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이상민 학생은 “오페라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말했다. 학교 강당에서는 가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세트 구성과 경쾌한 음악으로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아이들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김수정 완주 소양서초등학교 교사는 “국립오페라단이 작은 학교까지 방문해 학생들에게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1962년에 창단한 국립오페라단은 60년이 넘도록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와 예술가를 배출하고 오페라의 기쁨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 사실 서울 등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경우 오페라 자체가 낯설고 생소하게 여겨지고 있다. 국립오페라 단원들은 대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완주 소양서초등학교에서 공연을 펼치면서 긴장감 보다 설레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각 지역의 학교를 직접 찾아가 미래 세대에게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며 “전국 방방곡곡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 전시·공연
  • 김영호
  • 2023.10.17 18:38

"문화예술기반 ESG 경영 위한 지역 생태 환경 공간 활용법 마련해야"

기업과 지역문화재단, 예술가가 한자리에 모여 ESG와 문화예술의 만남과 실천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17일 ‘ESG 연계 문화예술, 만남과 실천이 필요한 이유-4번째 포럼:공유회’가 ‘공간 봄’에서 열렸다. 전북문화관광재단 ‘도민주도 정책 토론장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사회적 기업 마당이 주최·주관하고 전북문화관광재단이 후원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ESG와 문화예술 어디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기조 발제를 했다. 이 대표는 “현재 전주천과 삼천의 수달, 삼천동 맹꽁이 등 멸종위기종과 고유종 및 관심종 보존에 시민의 공감을 끌어내는 문화예술 사업이 전주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일반 기업의 문화예술기반 ESG 경영과 연계할 수 있는 환경 영역을 살펴보고 문화예술기관이 갖는 강점과 역할을 접목할 전략 수립과 프로그램을 발굴할 지역의 공간 활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SG 연계 문화예술가치 창출을 실천한 사례를 공유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권순표 사회적기업 (유)사각사각 대표는 2019년부터 진행해 온 폐목재로 만든 소녀상에 대해 설명하며 “ESG 연계 문화예술가치 창출 사업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명확한 사회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정 전주문화재단 미래전략팀장은 지난해까지 진행된 전주문화재단의 그린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예술을 통해 우리의 삶의 전환을 모색하고 예술가 스스로 친환경 예술 활동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근범 전 선미촌 문화도시재생 총괄 기획자는 지난 2019년 SK텔레콤과 협업한 선미촌 도시재생 사례를 설명하며 “기업과 예술인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담 부서 또는 지역의 문화재단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10.17 18:38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열린 판으로 섞여드는 소리, 사람, 그리고 세계

비가 야속하게도 한없이 쏟아지는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본격적인 첫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야외 소리판이 수년 만에 온라인을 넘어 현장 속에서 활짝 열림을 하늘이 시기하는 듯하였다. 자원봉사자들은 바람에 밀려 천막 속으로 들이치는 빗줄기로부터 의자들을 보호하느라 안간힘이었다. 비 때문에, 가까이서 또 멀리서 초대한 베트남, 중국, 아랍에미리트, 한국의 음악가들 앞에 많은 관객이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스태프들의 표정도 밝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소리판이란 본디 근대적 의미의 실내 단상 위 무대이기 이전에 팔방이 열린 땅 위에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음악학자 머레이 샤퍼가 고안한 개념인) “소리풍경”이 비와 바람, 새와 소음, 습도까지 품음으로써 그날만의 특유한 색깔을 지닌, 반복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연행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날의 비는 야외 무대가 지닌 그러한 묘미의 원천이 되었다. 스태프들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며 점차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비에 지지 않는 박수를 보냈다. 음악가들은 비와 어울리며 혹은 비와 대화하며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베트남 중부 잘라이(Gia Lai) 성에서 온 소수민족 즈라이(Jrai)인들은 우리의 징에 빗댈 수 있는 타악기 공(Gong)의 합주를 통해 선율을 만들어내며 빗속 무대로 입장하였다. 잘라이 지역이 위치한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에서는 9월이 가장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 달이라는데, 어쩌면 관객은 그러한 기후와 공기마저 음악과 함께 무대 위로 옮겨진 모습을 보게 된 셈이다. 대나무로 만든 실로폰과 유사한 원리의 쭝(t’rung), 나무 줄기에 막대기를 달고 줄을 메어 뜯는 현악기 띵 닝(ting ning) 등,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악기들을 불고, 긁고, 두드리며 앙상블을 구현하였다. 대나무로 할 수 있는 모든 주법을 보여준 듯한 “아침”은 날씨의 도움으로 잘라이 지역 우기의 아침을 관객에게 더욱 잘 전해준 셈이 되었다. 빗줄기가 한층 더 세차진 늦은 오후, 남해안별신굿보존회가 무대에 올라 프로그램상 예정되어 있던 “맞이굿” 대신 “가망굿”을 첫 차례로 올렸다. 가망굿은 사회자의 설명처럼 농업 및 어업에 알맞은 날씨의 조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축제의 상황에 맞는 레퍼토리로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싶었고, 설사 잘못된 추측이었다 할지라도 그 변화가 의미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찌할 수 없는 날씨의, 자연의 힘 속에서 우리와 마을의 안녕을 소리로, 몸짓으로 힘껏 비는 모습으로서 굿이 한층 더 비치었다. 전투에 희생되어 바다에 남은 넋을 기리는 군웅굿, 종이로 정성스레 만든 용선으로부터 꽃을 하나씩 관객들에 건네며 복을 전한 용선놀음까지 끝나자 놀랍게도 비가 많이 잦아들었다. 어둑해진, 습한 늦여름 혹은 초가을밤은 아랍에미리트의 연주자들이 만든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타와슬(TAWASL)의 소리가 채웠다. 바이올린, 피아노와 같은 서구 악기와 중동 지역의 대표 류트 계열 악기인 우드(oud), 양금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그와는 달리 뜯어서 소리를 내는 지터류 발현악기 카눈(qanun)이 어우러지며 묘한 공기를 만들었고 관객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옛 말로 따지면 멀리 “서역”에서 온 그들의 소리를 가만히 앉아 들으며, 서역의 어딘가에서 한반도의 음악 앞에 앉아 동녘의 초가을을 감상하는 어떤 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뒤에 이어진 악단광칠의 멋진 기악곡 “북청”과 같은 음악을, 어떤 서역의 관객이 서역의 땅냄새 위에서 생소함과 설렘으로 듣는 모습 말이다. 축제란, 판이란 그런 것이다. 이 나라의 공기 속으로 다른 나라의 공기가, 이 나라의 사람 앞으로 저 나라의 날씨가 당도하여 서로 섞여드는 것이다. 이렇게 귀한 ‘열린’ 판이 더 많은 이들을 향해, 더 좋은 날씨와 함께 다음 날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 다음, 다다음 해 계속하여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은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 및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강사로 재직중이며, 재단법인 월드뮤직센터에서 기획을 맡고 있다. 인류학 연구자이자 대중음악 창작자이기도 하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평론부문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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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7 18:35

문체부, 지역 문화자원 '로컬100' 선정⋯전북 5개 포함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의 문화매력을 찾아내고 지역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로컬100(지역문화매력100선)'을 선정, 17일 발표했다. 전북에서는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무주 안성낙화놀이, △익산 미륵사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및 전봉준장군·동학농민군상, △남원시립국악단 상설 창극공연 등 5개가 포함됐다. '로컬100'은 전국 228개 지자체와 문체부 2030자문단 '엠지(MZ)드리머스', 문체부 4070지역문화매력기자단 등 국민발굴단의 추천을 받은 후보 461개 중에서 지역문화 명소 58개, 지역문화 콘텐츠 40개, 지역문화 명인 2명 등이 각각 선정됐다. 문체부는 이날 키크니 작가를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2024년까지 국내·외에 집중 홍보할 계획. 또한, 코레일관광개발과 함께 '로컬100 기차여행' 상품을 출시해 기차로 지역문화를 연결한다는 방침이다. 유인촌 장관은 "문화로 지역소멸에 대응하고, 문화로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핵심은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에서 시작한다"며 "이번에 선정된 로컬100에 대한 생활공감형·밀착형 홍보를 과감하게 추진해 국민이 문화로 지역에 머물고 싶고, 살고 싶고, 가고 싶게 만드는 새로운 지역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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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수
  • 2023.10.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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