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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주인이 게으른 헌책방일수록 책들은 더 두서없이 쌓여있기 마련인데 이런 헌책방에 으레 괜찮은 책들이 많았다. 이른 봄 두릅나무 순이라도 꺾는 것처럼 면장갑까지 준비해 헌책방을 뒤지다 보면 한 아름 가까이 책을 고르게 되는데. 헌책방의 책들은 긴 시간 정성을 다해 골라도 명저이면서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작았다. 대개 빌려 읽든지 훔쳐 읽든지 읽기는 읽었으나 책장에 꽂혀 있지 않은 책. 그럴만한 책이 아닌데 양장본으로 만들어 책값이 비싸 구매하지 못했던 책. 읽지도 않을 거면서 빌려 간 뒤에 돌려주지 않는 책. 읽지 않을 걸 알면서도 책장에 꽂아 두어야 할 것만 같은 책. 꽂아 두면 왠지 있어 보이는 책. 그리고 절대 헌책방에 있으면 안 되는 책, 헌책방 구석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타고 먼지가 쌓이면서 박대당하면 안 되는 책이게 마련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한 주를 살고, 방학 두 달 일해서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던 조실부모한 대학생이, 한 아름의 헌책을 모두 구매할 수는 없었고. 돌아갈 버스비와 콩나물국밥값을 제하고 남은 돈만큼만 책을 사게 마련인데. 우선순위에서 밀린 책들은 책방 모퉁이나 눈길이 머물지 않는 뒷줄 정도에 숨겨 다음을 기약하곤 했다. 그 책들을 놓고 오는 마음이 허전하고 스산하여 문득 인생이란 걸 알아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 초라한 살림살이에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매번 구매했던, 헌책방에 절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책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한때 표지에 검열필이 찍힌 초판만 열 권 남짓 가졌을 때도 있었는데. 더러는 선물로 주고 더러는 빼앗기기도 해서 이제 두 권만 남은, 헌책방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는 책. 이 책을 그 시절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를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 것도 같다. 한동안 글은 문장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살 때가 있었다. 화려하고 신선한 비유, 조율된 리듬감의 일관성,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단문과 단문을 연결해 이루어내는 날카로움, 보일 듯 보여주지 않는 행간, 길어도 주술 관계가 깨지지 않는 어순, 문맥에 부합하는 적확한 단어, 조사와 수식어의 적절한 생략과 편안한 음독,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해학과 풍자,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긴장감, 아련함을 남기는 여백 등 문장이 글 쓰는 사람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달은 찾지도 않고 손가락의 손톱만 다듬던 때가 있었다. 그 무명(無明)을 벗어나게 해준 책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책. 사회적문학적 주제, 글은 그 주제가 우선이며 주제 실천 의지와 노력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글 쓰는 사람 노릇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지호 소설가 『2014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 선정』,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저서 『잠수함 속 토끼』 등.

  • 문학·출판
  • 기고
  • 2022.01.19 19:39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0)범 내려온 자리에 남은 호랑이 기운

호랑이 기운이 깃든 ‘인검(寅劍)’은 의례용 칼이다. 12간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은 양기가 강하며 의(義)를 상징하는데,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인년, 인월, 인일, 인시가 네 번 겹쳐지는 시간에 맞추어 제작한 사인검과 삼인에 맞추어 제작한 삼인검이 있다. 조선 시대 인년은 총 43회였다. 태조 7년(1398) 무인년에 처음 인검이 제작되었지만, 전란과 흉년이 심한 해에는 만들지 못하기도 했다. 제작의 준비부터 완성되기까지 여러 복잡한 절차와 금기를 지켜가며 시기를 맞추어 선정된 장인이 특정한 장소에서 엄선된 재료로 의미를 담아 제작하였다. ‘사악한 것을 베고 나라를 지키라는 뜻’을 담아 왕실이 만든 인검은 ‘나쁜 기운을 막고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재앙을 물리치며 잡귀를 막아주는 ‘영물(靈物)’로 여겼지만, ‘호환(虎患)’이라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물어 죽여 호랑이가 먹고 남긴 시신 일부를 모아 장례를 치르는 것을 ‘호식장’이라 하였으며, 그 자리에 만든 무덤을 ‘호식총’이라 하였다. 호환과 맞서기 위해 호랑이를 사냥한 모습이 고구려 벽화와 조선의 화가 이인문의 그림 등에 남아 있으며, 고려 시기에는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 존재했다. 조선 초부터는 농사를 위한 개간이 늘어 살 곳을 빼앗긴 호랑이가 인가에 출몰하면서 호환이 잦아지자 조정은 호랑이를 잡는 ‘포호정책’을 펼쳤다. 태조 1년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쏴 죽인 것을 비롯하여 궁에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고 태종이 “범에게 상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죄를 주겠다”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호환에 대응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진다. 포호정책에 따라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잡는 최정예 군사인 ‘착호갑사(捉虎甲士)’를 선발 운영하였고 세종 시기에 이르러 체계화되었다. 지방에도 호랑이를 잡는 ‘착호인’과 함정을 관리하는 ‘감고’등을 설치해 호랑이 가죽을 진상하게 하고 더러는 큰상을 내렸다. 왜란을 거치며 훈련된 조총 포수들이 호랑이 사냥에 투입되었고 산포수라 불린 숫자가 늘어 감에 따라 호랑이의 수는 점차 줄었다. 조선총독부는 피해 입히는 맹수를 퇴치한다는 구실로 해수구제를 정책으로 삼아 호랑이를 마구 사냥했으며, 부호 야마모토가 조직한 호랑이 사냥단 정호군까지 원정와서 ‘조선 호랑이 사냥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1922년 경주 대덕산에 살던 호랑이가 사살되면서 조선의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호랑이 왕국이라 불리던 조선에 그 많던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는데, 임실 덕치면 약담봉에는 포수바위 전설이 있다.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하는 호랑이를 쫓아 달라고 정성껏 제물을 바치며 산신제를 올리자 감동한 산신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약담봉에 세워준 게 포수바위이다. 이후 마을에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약담봉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류에 자리한 임실 신평면 호암리에는 특별한 호석(虎石)이 있다. 호랑이를 닮은 범바위가 있어 호암리인데, 그 모습을 두려워해서인지 확실치 않지만 사람들이 범바위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후 범바위를 없애는데 주도한 사람의 집에 불이 나고 우환이 잇따르자, 수호신인 범바위를 없앴기 때문이라고 여긴 마을 사람들이 호석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이후 마을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는데 만든 호석의 모습이 특이하다. 이빨을 드러내고 익살스럽게 히히 웃는 호랑이는 오금 저리게 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보다는 민화 속 친근한 호랑이 같기도 하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흥정하는 동화 속 호랑이 같다. 공포를 해학으로 풀어 낸 친근한 상징이다. 남원에도 두리뭉실한 귀여운 모습의 호석이 있다. 광한루원을 비롯한 몽심재 고택과 고평마을 세 곳에 자리한 호석인데, 비슷한 형상이 마치 한 사람의 석공 솜씨처럼 보인다. 그 호석이 전해진 데에는 견두산(犬頭山)과 관련 있다. 견두산의 본디 이름은 호랑이 머리를 뜻하는 호두산(虎頭山)이었고, 그 고장은 호랑이가 들끓어 지명과 마을 이름마저도 호곡리(虎谷里)와 호음실이었다. 남원에 호환이 끊이지 않자, 풍수에 능한 전라감사 이서구(1754~1825)가 산 이름을 견두산으로 바꾸면서 호환이 사라졌다. 하지만, 견두산이란 이름을 얻자 성난 개가 남원 땅을 노려보는 모양새가 되어버렸고 들개와 늑대가 떼를 지어 나타나 피해를 줬다. 이에 이서구가 세 곳에 호석을 세우도록 하여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자 들개무리의 피해와 호환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호석이 있어 호석거리로 불렸던 남원의 옛 시장은 광한루원에 편입되어 사라졌지만 오작교 가는 길옆에 호석은 세월에 닳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고 명당으로 알려진 몽심재에는 호석과 더불어 호랑이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나무가 200여 년을 함께하고 있다. 나무줄기의 밑동이 호랑이 발을 닮아 ‘호족시’란 이름을 얻은 감나무가 특별하고 귀하다.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으며 두려움을 넘어 벽사의 상징이 된 호랑이의 힘찬 기운을 받아 보자. 조선 왕실의 인검과 호랑이 물상에 기대어 삿한 것을 물리치고,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란 노래로 한껏 흥을 내자.

  • 문화재·학술
  • 백세종
  • 2022.01.19 13:48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의  전통문화바라보기] 백범의 글

2022년의 임인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나라 안팎으로 코로나19라는 몹쓸 전염병이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지난 승리의 역사 한 모습처럼 굳건하게 서로를 위로하며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다. 역사의 흐름과 교훈은 항상 반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돌아보며 지난날의 과오와 교훈을 얻고 보다 나은 생활과 안정된 현실을 꿈꿔왔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견제, 억압과 탄압, 갖은 병마에도 언제나 우리 민족은 마음을 함께 모았으며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인 아들, 딸들의 낙원을 위해 노력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쓰러진 서로를 안고 고통스럽게 아파할 때도 있었다. 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온 목소리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하나", "우린 할 수 있어", "우리니까". 역사는 또 흐르고 시대는 다시 반복한다. 모진 삶의 현실과 몹쓸 전염병은 총, 칼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또 다른 삶의 변종 회오리는 불안과 초조를 낳고 있지만, 과거 우리 민족이 그랬듯이 우리는 서로를 위하고 뜻을 함께하며 저마다 의지를 다질 것이다. 힘든 현실과 어려운 정국政局, 병마가 휘도는 세상 속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써의 방향은 바로 "굳은 의지"란 시작점이며 "사랑과 포용"의 변곡점이다. 백범 김구의 글이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있다." 백범의 글처럼 오래전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견고히 올곧게 다져진 우리 민족의 의지는 어지러운 세상을 이겼다. 모든 것은 스스로 마음에 달려있다. 힘을 내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가끔은 호탕하게 웃자. 주어진 현실은 어렵지만, 주먹을 쥐고 마음을 다스려보자. 이 세상이 우리를 반기며 안아줄 그 날을 위해 말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2.01.19 11:36

[이승우 화백의 미술이야기]세잔느의 앵무새 1

1864년 살롱전에서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1882년 입선을 할 때까지, 정확하게 18전 1기의 명예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세잔(Paul Cezanne)이다. 그나마 19년째에는 또다시 낙선을 하여 아예 출품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2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위대한 화가”라고 평가하며 자신을 굳게 믿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보고 그린다‘는 입장을 떠나서 ’본다는 것은 아는 것과 동일하다‘는 다빈치의 말처럼 감각과 지성을 인식의 근원으로 하여 대상을 포착하려던 사람, 그래서 하루 종일 사과를 들여다보며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사람, 세잔의 현실은 답답함을 벗어나 안쓰러웠다. 시골 은행장이던 아버지의 덕택으로 빨간 조끼를 입고 으스대며 궁하지 않게 돈을 쓰는 까닭에 그 편협하고 괴팍한 편집광적 성격에도 더러 친구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의 그림만은 절대 사절이었다. 그의 그림을 물감의 하치장 정도로 여기던 친구들은 어쩌다 얻은 그림마저도 집에 가져 갈 수가 없었다. 부인에게 문화적 미개인이라는 핀잔을 듣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그림을 가져오게 하여 깜박 잊고 가는 척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에게 발견된 그림은 바로 창고 속으로 직행, 쥐들의 침대가 되거나 불쏘시개로 쓰였다. 그럼에도 세잔은 6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쉼 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엑스 시의 부르고뉴 거리에 있는 자택 이외에도 로보거리에 아틀리에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다. “미사를 드리는 것은 샤워와 마찬가지야. 그것으로 나는 말끔해지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하루 일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소브로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성당 입구에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고는 곧장 로보거리에 있는 아틀리에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전 중에 그림을 그리고 일단 집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4륜 마차를 타고 스케치를 하러 간다. 마부는 세잔이 말하지 않아도 행선지를 알고 있었다. 김세희 기자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2.01.19 11:3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작가-김하종 「사랑이 밥 먹여준다」(마음 산책)

“밥 짓는 일은 절실한 기도였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김하종 신부가 한국에 온 지 30여 년 만에 쓴 삶의 고백서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온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숙제를 해결하려면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난독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난독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고 주변의 나약함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타인의 절망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가 되어 봉사의 길에 접어든 것도 아픔을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썼다. “난독증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었던 어린 시절에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사제의 길을 간다고 결심을 밝혔을 때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괜찮다’라고 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41쪽) 김하종 신부의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조’다.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성남시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성씨는 ‘성남 김씨’가 되었다. 1998년에 불어닥친 IMF는 이웃의 생존을 위협하고 2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했다. 김하종 신부는 그해 7월 7일 실직자와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문을 열고 수백 명분의 쌀과 반찬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리어카를 끌고 새벽 시장을 돌며 팔다 남은 야채를 얻었고 학교의 급식소를 찾아가 남은 반찬을 얻었으며 빵집과 결혼식장의 뷔페, 김장 김치를 나눠주는 절에도 찾아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동안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 하루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다섯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김하종 신부는 싸움을 말리다가 뺨을 맞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울기 시작했다. 매일 사랑을 주는 데도 폭력적인 행동으로 돌아온 것이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오늘 흘린 눈물은 어두운 땅에 소중한 씨로 뿌려질 것이다. 새로운 사랑과 평화를 탄생시킬 것이다.”(145쪽) ‘안나의 집’에는 무료급식소 외에 공동생활 가정인 ‘쉼터’가 있다. 춥고 위험한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의 대피소다. ‘쉼터’에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상담, 의료 지원, 직업, 자활 교육 등을 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장소와 따뜻한 환영,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꽃을 볼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나눔의 길에서 피어난 꽃은 더욱 아름답다. 밭에서 키운 감자와 배추를 나눠주는 분,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에게 주머니의 용돈을 다 털어준 사람, 어렵게 모은 100만 원을 놓고 가신 낡은 코트의 할머니, 해마다 약을 기부하는 약사들, 돌잔치 대신 나눔을 택한 부부,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후원자가 된 사람……. 김하종 신부는 나눔의 꽃들을 끝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이 책을 읽어준 당신이 내게는 큰 응원이다.’(255쪽)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이 나눔의 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1.19 11:35

"후삼국 시대 선도한 후백제 재평가 시급"

후백제의 역사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문화권 정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전주병)‧안호영(완주진안무주장수)‧김종민(논산)의원과 국민의힘 임이자(상주 문경) 의원이 주최하고, 후백제학회(회장 송화섭)가 주관하는 '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후백제 국회 토론회'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지역 학자들은 후백제의 위상을 조명했다. 이어 후백제 역사문화권이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권 정비법)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이를 두고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토론을 주최한 의원들을 비롯, 송하진 전북도지사,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 소속 김승수 전주시장, 박성일 완주군수, 전춘성 진안군수, 고윤환 문경시장, 강영석 상주시장 등이 참석했다. △후백제 위상=이날 주제발표에 나섰던 학자들은 한국 고대사에서 후백제가 차지하는 위상을 조명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지역주의를 뛰어넘고 기회와 참여의 폭을 넓힌 사회로 넘어가는 사회가 후삼국시대라며 이 시대를 선도한 국가가 후백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진훤(견훤)은 농민 출신이었으며 지도층은 신라에서 정치 참여에 한계가 있었던 6두품과 지역 토호 세력들이었다면서 백성들의 생활향상에도 힘썼는데 둔전이나 관개를 통해 농업경제 증진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라 말보다 진전된 국가로 평가했다. 정상기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실장은 고고‧미술사적 자료를 통해 후백제문화권의 범주를 살폈다. 정 실장은 산성과 청자 가마터, 청자, 사찰유적 등을 통해 살펴볼 때 후백제의 범주는 광주, 전남‧전북, 경남 서부, 경북 북부, 충남 홍성 등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정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실장은 역사문화권정비법에서 정의하는 역사문화권은 문헌기록과 유적‧유물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발전시켜 온 권역이라며 후백제는 법에서 정의한 역사문화권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새롭게 발굴된 후백제 유물‧유적=이날 발표에서는 완주군이 후백제 문화유적 15곳을 확인하고 발굴 조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후백제 문화유산 현황 파악을 위한 전수조사 결과 봉림사지와 용계산성을 포함한 15개소의 유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봉림사지는 후백제 시대 절터, 용계산성은 운주면 용계천을 따라 남쪽으로 4㎞가량 뻗은 석성이다. 특히 3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봉림사지의 실체를 최초로 실증했다며 올해는 용계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후백제 문화권 역사문화권정비법에 포함 여건 충분=문화재청 이재필 고도보존정책과장과 군산대 곽장근 교수, 문경시청 엄원식 문화예술과장, (사)채미옥 미래세상 이사가 참여한 토론에서는 후백제 역사권이 역사문화권 정비법에 추가 포함될 여건이 충분한 것으로 논의됐다. 이재필 과장은 역사문화권 정비법 개정안과 관련한 지역의 요구를 문화재청은 최대한 수용하는 정책방향"이라며 "이런 방향성에 의해 후백제 역사문화권이 개정안 에 포함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예맥과 중원 등이 들어오면서 너무 많은 문화권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며 "태봉과 진안, 변한문화권에 대한 요구도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문화재청은 올해 전국적으로 역사문화권 기초 현황조사를 실시한다"며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원삼국부터 후백제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개념을 정립한 뒤, 법안 포함여뷰를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2.01.18 18:32

2022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개최

'2022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3일 오후 3시 전북일보사 7층 회장실에서 열렸다. 올해 시상식도 전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당선자들만 초청한 가운데 진행됐다. 당선자들에게 상패와 꽃다발을 전달하고, 별도 행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시 부문 박수봉, 소설 부문 방희진, 수필 부문 오미향, 동화 부문 박영미 씨를 비롯해 전북일보 서창훈 회장, 윤석정 사장, 백성일 부사장, 서창원 이사, 김은정 이사, 위병기 편집국장 등이 참석했다. 서창훈 전북일보 회장은 글이라는 것은 참 대단한 것 같다. 글로 사람을 슬프게 할 수도 있고, 기쁘게 할 수도 있고, 분노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에 좋은 글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스마트폰 검색 한 번이면 뭐든 다 나오는 세상이다. 가끔 세상이 조금 얇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세상에 맞는,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심금 울리는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며 플래카드(한국문단의 큰빛 되거라)에 쓰여 있듯이, 이제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으니 한국 문단에 큰 별이 되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일보가 주최하고 가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 302명(1,157편), 소설 부문 117명(120편), 수필 부문 161명(366편), 동화 부문 121명(126편) 등 총 701명이 1,769편을 응모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1.18 18:31

제1회 아름다운 선거 61초 영화제 개최…27일부터 작품 공모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와 문화콘텐츠연구소 시네숲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맞이해 이달 27일부터 제1회 아름다운 선거 61초 영화제 작품 공모를 시작한다. 작품의 주제는 아름다운 선거다. 참여, 공정, 화합, 희망, 가치 등 아름다운 선거의 모습을 61초 영상에 담으면 된다. 이는 선거와 영화의 만남으로, 유권자가 선거를 보다 가깝고 익숙한 것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선거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61초 영상으로 제한해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일을 알리고자 했다. 작품 공모는 이달 27일부터 3월 11일까지 가능하다. 출품 신청서 작성도 작품 공모일과 동일하게 이달 27일부터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만 접수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온라인으로 시상식을 중계하고, 이후 수상작을 상영할 계획이다. 수상작은 4월 첫째 주 아름다운 선거 61초 영화제 홈페이지 혹은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상작은 일반부 14편, 청소년부 14편으로 총 28편을 선정한다. 일반부 대상에게는 5백만 원, 최우수상은 2백만 원, 우수상은 백만 원, 장려상은 30만 원을, 청소년부 대상에게는 백만 원, 최우수 50만 원, 우수상 30만 원, 장려상 10만 원을 수여한다. 작품 공모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아름다운 선거 61초 영화제 프로그램 담당자 전화(063-253-4045) 또는 공식 홈페이지(www.be61ff.kr)를 참고하면 된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1.18 18:31

“문인들에게 신춘문예는 희망이고 힘이 되는 존재”

여러분들은 이제 전북일보의 가족입니다. 전북일보와 시작을 함께 하게 됐으니 한국 문단에 큰 별이 되길 바랍니다. 18일 전북일보사 7층 회장실에서 열린 2022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당선자들만 참석하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따라 축소해 진행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전북일보 임원들이 참석해 한국 문단을 빛낼 별이 될 시 부문 박수봉, 소설 부문 방희진, 수필 부문 오미향, 동화 부문 박영민 작가의 출발을 응원했다. 시 부문 당선자 박수봉 작가는 이름이 더욱더 무거워졌다. 이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쓰겠다. 작년에 최종심에 낙선했었는데, 이때 낙선주라며 담근 술을 따라주며 격려해 주던 오산의 문우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밝혔다. 소설 부문 당선자 방희진 작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과) 멀어지게 됐다며 사실 남의 인생을 사는 듯한 헛헛함도 있었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다.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의 정체성을 되찾은 느낌이었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이어 수필 부문 당선자 오미향 작가는 서울이나 수도권 (신춘문예)에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거의 없다. 신문사에서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그래도 지방 신문이 있어 굉장한 희망이 되고 힘이 됐다며 제 작품이 많이 부족하지만 읽어 주시는 심사위원도 있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후원해 주는 신문사도 있어 문인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동화 부문 당선자 박영미 작가는 몇 년 동안 동화 공부를 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아이들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동화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그만 써야 하나 생각도 했다며 원래 신춘문예 투고도 안 하려다가 주위에서 투고하기도 하고, 전남 여수에서 자랐다 보니 이쪽(전라도) 신문에 투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1.18 18:31

우석대, 풍석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 관련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

우석대학교(총장 남천현)와 (재)풍석문화재단(이사장 신정수)이 업무협약을 맺고 풍석 서유구 선생이 남긴 임원경제지의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 18일 대학 본관 2층 총장 집무실에서 열린 업무협약 체결식에는 남천현 총장과 오석흥 산학협력단장, 신정수 이사장, 진병춘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주요 협약 체결 내용으로는 △인적물적 자원의 상호 교류 △교육과정 협의 및 실무 교류 △학생들의 취업지원을 위한 공동 노력 △대학 내 관련 연구소 설치 △각종 기획 프로젝트 공동참여를 위한 협력 등이다. 이날 업무협약 체결에 따라 우석대학교는 산학협력단을 중심으로 (재)풍석문화재단과 상호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풍석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학술활동과 저술에 나타난 당시의 생활상과 풍속을 활용한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전북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예정이다. 전라도 관찰사로도 많은 업적과 일화를 남기며 조선시대 실학을 정점에 올렸던 풍석(楓石) 서유구 선생(1764~ 1845)은 생산과 실용, 실증, 개방의 정신으로 19세기 초반까지 축적되어 온 동양 3국의 실용지학을 16지 113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집대성하여, 인류 지성사에 유례없는 생활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편찬했다. 남천현 총장은 실용주의 인재를 키워내는 우리 대학교와 조선 후기 실학 운동의 정점을 이룬 서유구 선생을 재조명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풍석문화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인적물적 자원의 상호 교류를 통해 풍석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 관련 전통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정수 이사장도 풍석 서유구 선생은 그 생애가 참으로 고귀하고, 남긴 업적이 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풍석 서유구 선생의 사상과 지식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여러 분야의 산업과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우석대학교와 함께 노력하겠다라고 답했다. 한편 (재)풍석문화재단은 풍석 서유구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고, 그의 저술에 기반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복원하여 한국 학술 및 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지난 2015년 4월 설립되었다.

  • 문화일반
  • 이강모
  • 2022.01.18 18:31

전주대, 구한말 호남 의병장 송사 기우만의 ‘송사집’ 완역 출간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가 구한말의 의병장이자 호남의 대표적인 학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문집 송사집(松沙集, 발행 흐름출판사)을 완역, 출간했다. 송사집은 기우만의 문인인 양회갑(梁會甲)의 주도로 1931년에 간행된 책이다.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권역별거점연구소 협동번역사업팀(연구책임자 김건우)은 1931년에 간행된 초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지난 2020년 12월에 11권을 번역, 출간했고, 지난 2021년 12월, 나머지 7권을 출간하여 총 18권의 책으로 완간했다. 기우만은 할아버지 노사 기정진의 학맥을 계승한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항일투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1896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으로 장성에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일으켜 이후 서울 북상을 계획했으나, 고종이 의병해산을 명하자 의병을 해산하였다. 1910년 7월에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식음을 전폐하였으며, 1911년에 남원(南原)의 사촌(沙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1916년 10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간 기우만의 방대한 저작이 비교적 온전히 전해진 데 비해 그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송사집 완간은 호남 항일투쟁의 정신적 지도자인 기우만이란 인물 연구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영호남 유림의 네트워크, 사상사, 사회사 등 여러 분야의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지역 역사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 문화일반
  • 이강모
  • 2022.01.18 18:31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역사 기록관 '나주 복암리 3호분'(하)

나주 복암리 3호분이 영산강유역의 분구묘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이유는 하나의 분구 내에 400여년 정도 지속적으로 매장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매장부의 유형 변화를 통해 마한의 정치와 사회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대형분구 축조 이전의 3세기 중엽에서 5세기 중엽에 이르는 선행기에는 난형(卵形) 몸통의 목이 좁은 형태에서 U자형 대형옹관으로 변화된 옹관이 주요 매장부로 채용되고 있다. 이 시기는 영산강유역의 연맹체 세력들이 백제의 영향력에 압박을 받으면서 새롭게 결집성장하는 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Ⅰ기는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전엽에 해당하는데, 선행기의 분구를 조정확대하여 방대형 분구를 축조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새로이 출현하는 96석실은 공주지역의 백제 석실분과는 입지, 평면형태, 축조방법과 구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일본 구주지역과 교섭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위 영산강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석실 내에 시기차를 두고 안치된 4기의 옹관의 존재는 전통적인 옹관과 외래의 석실이 결합된 양상으로서, 이는 옹관을 주요 매장시설로 이용하던 마한세력이 석실분을 자발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당시 한반도 정세를 보면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인하여 상당한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틈타 영산강유역의 마한 세력이 대외교섭을 통한 독자적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석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96석실 내의 2호 옹관에서 출토된 금은장삼엽환두도(金銀裝三葉環頭刀)를 통해 피장자의 신분이 지배자 계층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4호 옹관은 영산강유역의 대형 옹관과 달리 생활용기로 사용되던 회청색 경질의 호형토기이며, 4기의 옹관 가운데 가장 늦게 안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옹관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통하고 있어 Ⅰ기의 마지막 단계로서 백제의 지방통치와 관련된 단서가 되고 있다. Ⅱ기에는 본격적으로 백제계의 횡혈식석실분을 매장부로 채용하는 단계인데,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초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는 석실이 정형화소형화되는 사비유형이 주를 이루지만, 긴 묘도와 연도의 시설에서 전형적인 사비유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미 채택하고 있었던 영산강식 석실의 속성이 가미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복암리 3호분 축조집단이 사비유형의 석실분을 자발적으로 수용한 증거가 된다. 이 단계의 사비유형 5호 석실에서는 관모틀과 은제관식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물은 백제 고지에서 폭넓게 발견되고 있다. 은제관식은 중국 역사서인 「周書」에 보면 백제의 16관등 가운데 6품인 나솔(奈率) 이상의 관인이 착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은제관식을 착장하고 있었던 피장자는 복암리 3호분 축조집단에서 배출되었던 중앙관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은 백제가 이 지역을 완전하게 편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영산강유역의 마한계 집단도 백제 중앙관리로 진출하여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나주 복암리 3호분은 3세기부터 7세기 초까지 영산강 유역의 마한 연맹체세력들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갔는지 보여주는 기록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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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2.01.18 17:37

문광부, 전주시•완주군 ‘2022년 관광두레’ 선정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2022년 관광두레로 지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7일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2022년 관광두레 신규 지역 19개소와 관광두레피디(PD) 19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2013년부터 시작한 관광두레는 관광두레피디가 지역주민과 함께 주민 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역 고유의 특색을 지닌 주민사업체를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육성하는 지역 관광정책 사업이다. 2021년까지 109개 지역을 관광두레 사업 지역으로 선정하고, 지역관광 콘텐츠를 기반으로 숙박, 식음, 기념품, 여행사, 체험 등 5개 분야에서 총 822개 주민사업체를 발굴하고 육성해 지역관광 활성화에 기여했다. 올해 관광두레 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전북 전주, 완주를 포함해 △부산 진구 △인천 동구, 미추홀구 △광주 북구, 서구 △울산 남구 △경기 부천, 남양주 △강원 영월 △충북 충주 △충남 보령, 금산 △전남 무안, 영암 △경북 성주, 청도 △경남 창원이다. 각 지역에서 선발된 관광두레피디는 지자체와 주민, 방문객과 주민, 주민과 주민 사이를 이어주고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역량강화 교육과 활동비를 지원받는다. 관광두레피디 활동기간은 최대 5년이다.

  • 문화일반
  • 이강모
  • 2022.01.17 19:21

‘자연 음악회’ 송영란 개인전 개최…‘자연의 변주’전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전북 지역 회장인 송영란 작가가 오는 2월 4일까지 청목갤러리 전시실에서 개인전 자연의 변주를 연다. 송영란 작가는 자연을 모티브로 한 한국화, 수묵, 혼합매체 작품 등 30여 점을 전시한다. 작가에게 자연은 변주와도 같다. 자연은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변주라는 고유한 작업 세계로 표현했다. 그는 자연을 기반으로 한 매체를 활용해 자연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은유적, 혼합적 기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자연의 기운, 율동, 어울림, 소리, 기다림, 속삭임 등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요소에 집중했다. 작가가 자연 중 첫 번째로 손꼽는 것은 기운이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기운을 작가 특유의 영감으로 포착해 작업에 반영했다. 그는 먹이나 커피의 번짐으로 효과를 구현하고, 닥나무 죽을 이용해 자연의 율동을 탐색했다. 그뿐만 아니라 탄탄한 시각예술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자연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대인에게 사랑받는 기호 식품인 커피와 커피 여과지를, 한지, 먹, 채색 물감, 황토 등 자연의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이처럼 그는 매체와 기법에 있어 경계를 넘나들고 자신의 작업을 확장하는 등 유연하고 열린 작업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그의 작품 자연의 소리를 보면 현대인의 동반자인 커피라는 재료를 시각예술 매체로 직접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동시대 시각예술 매체의 확장을 실험하는 작업으로, 대지와 태양, 공기, 인간 협업의 결과물인 커피콩이 일정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놓이고 음용되는 그 순간부터 발생하는 현상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송 작가는 작가 노트를 통해 서로 다른 색, 다른 감정이나 변화 그리고 그들의 혼합, 조화, 우연한 효과를 유도해 자연적인 변화 속에서의 기운, 율동, 어울림, 소리, 기다림, 속삭임 등을 기대하며 표현했다. 새로운 것과 현대적인 것을 우연과 필연, 작위와 무작위가 교차하는 반복적인 순수한 자연적 행위에서 얻어진 자유스럽고 여유로운 변화 속에서 작업 방향을 모색했다고 전했다. 그는 원광대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이후 그는 예원예술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한국미술협회, 전북여성인미술협회, 전북구상작가회, 원묵회, 봄바람회 등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전라북도미술대전과 온고을미술대전 초대작가, 문화예술교육사로 문화공간 또바기 대표, 문화대장간 초연을 운영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1.17 19:21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