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5 06:57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 - 차승호

어른용은 어디 있지? 아빠는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 사이트를 뒤지고 있어요. 우주복을 사기 위해서지요.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서 우주복을 사오라는 전화가 왔거든요. 우주복은 위아래가 붙어 있고 밑이 트인 옷이에요. 아기들이 주로 입는 옷이지요. 밑이 똑딱단추로 되어 있어서 기저귀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셔요. 벌써 일 년이 다돼가요. 지난겨울 마당을 치우다 쓰러지셨거든요. 그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요. 오른손이 떨려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들지요. 어른들은 중풍이 와서 그렇대요. 아빠, 이번에도 할아버지랑 짜장면 먹나? 그럼,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얼마나 좋아하신다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좋아하셔요. 이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아서 거의 씹지 않고 삼켜요. 그래도 짜장면을 드실 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져요. 턱받이와 얼굴에 짜장 범벅이 되어도 합죽하게 웃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아빠도 나도 짜장면을 좋아해요. 아빠, 손 짜장면이 뭐야? 손 짜장면? 면발을 기계로 뽑지 않고 손으로 뽑아서 만드는 짜장면이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거든. 할아버지하고 단골로 가는 요양원 앞 만리장성은 손 짜장면집이에요. 만리장성 주인아저씨는 러닝셔츠 차림에 하얀 위생 모자를 쓰고 있어요. 짜장면을 주문하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 밀가루 묻은 손으로 짝짝 박수를 두 번 쳐요. 면발을 뽑기 위한 준비운동인가 봐요. 그러고는 밀가루 반죽을 늘이기 시작해요. 고무줄처럼 늘인 밀가루 반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마른 밀가루도 팍팍 뿌려요. 늘인 밀가루 반죽을 반으로 접고 또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밀가루 반죽을 늘이고 접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가느다란 면발이 돼요. 한 번 접을 때마다 면발이 곱빼기로 불어나거든요. 쿵쿵, 쿵쿵, 쿵쿵. 21=2, 22=4, 24=8. 면발 내리치는 소리에 맞춰 나도 모르게 구구단을 외우기도 해요. 쿵쿵, 쿵쿵. 면발 불어나는 신호예요. 짜장면이 곧 나올 것 같아요. 찾았다.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만드나 보네. 어른용 우주복을 찾았나 봐요. 그럼 할아버지가 우주인이 되는 거야? 우주인이 되려면 머플러도 있어야 되는데. 머플러? 어린 왕자는 긴 머플러를 하고 있잖아. 어린 왕자가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어린 왕자는 B612호 소행성을 떠나 지구별에 왔거든요. 그러니까 우주인이 틀림없지요. 아빠, 어린 왕자 안 봤어? 항상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글쎄, 할아버지는 어린 왕자도 아닌데 머플러가 필요한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평소에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해요. 요양원으로 모신 것에 대하여 늘 마음 아파해요. 어떤 때는 밥 먹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봐요.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라고 짐작해요. 아빠, 밥! 요양보호사 아저씨는 가끔 할아버지가 아빠를 찾을 때가 있다고 해요.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는 얘기예요. 농사일을 하는 아빠는 생각만큼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해요. 앞으로 좀 더 자주 와야겠네요. 말끝을 흐리며 아빠는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두 눈이 금세 붉어져요. 그럴 때면 나는 얼른 이불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 발을 주물러드리며 아빠에게 말을 걸어요. 아빠, 할아버지 발 정말 크다. 그치! 지난 할아버지 생신 때였어요. 생신은 집에서 보내야 된다며 할아버지를 모셔왔어요.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은지 주름살투성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어요. 할아버지가 웃을 때마다 주름살도 따라 웃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드셔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는 여러 번 설사를 하셨어요. 아빠는 밤새 기저귀를 갈고 물휴지로 할아버지를 닦았어요. 아빠, 출발 안 해? . 다음날 아빠는 자동차 시동을 켜놓고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았어요. 부릉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차 안 가득 떠다녔지요,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 아빠는 말없이 앞만 바라봤어요. 아빠는 할아버지를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빠, 울어? 울긴 이 녀석아! 깊은 한숨과 함께 차가 출발하자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뼈만 남은 할아버지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어요. 손가락이 몰려서 조금 아팠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어요. 요양원까지 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내 손은 따뜻하게 아팠지요. 할아버지, 짜장면 먹으러 가야지? 우주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듬성듬성 남은 이로 벙긋벙긋 웃어요.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우주복을 입고 나니 할아버지는 영락없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인 같아요. 와, 할아버지 짱! 할아버지, 광선검은 어디 있어? 내가 엄지를 치켜들자 할아버지가 뭐라고 뭐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뭐라고? 웅얼웅얼, 웅얼웅얼! 할아버지는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해요. 할아버지 말을 해석하려면 할아버지 입모양을 살펴야 돼요. 어떤 때는 바짝 귀를 대고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요. 이 빠진 우주인 말이라서 어려운가 봐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우주인도 아니면서 아빠는 할아버지 말을 용케 알아들어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맞장구도 쳐요. 그류그류, 그렇구먼유. 아빠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동안 동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해요. 내 친구 현주네 검정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는 얘기까지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그렇다니께유, 글쎄! 어떤 때 보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을 하고 아빠는 아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하고 얘기할 때면 아빠는 항상 사투리를 쓰는데 한 번도 시골을 떠난 적이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런가 봐요. 그게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웃은 적도 있어요. 아빠는 어떻게 할아버지 말을 잘 알아들어?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나타나거든. 어, 정말? 어른들은 얼굴만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안다는 게 정말인가 봐요. 너희들 얼굴에 다 나와 있으니까 핑계 대지 마라! 선생님도 숙제를 해오지 않은 친구들을 꾸중하실 때면 꼭 얼굴에 다 나와 있다고 하시거든요. 와, 아빠! 선생님 해도 되겠네! 휠체어에 옮겨 타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드시러 가요.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울 때마다 요양보호사 아저씨랑 아빠는 땀을 뻘뻘 흘려요.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 몸이 굳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할아버지와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건 즐거워요. 여느 때처럼 면발 뽑는 모습을 구경하며 모람모람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에 군침을 삼켜요.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는 언제나 군침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에요. 할아버지는 꿀꺽, 아빠는 꿀컥, 나는 꼴깍. 그러고는 할아버지 한 그릇. 아빠 한 그릇, 나도 한 그릇 짜장면을 먹어요. 맛있어요. 할아버지, 또 올게. 요양원에 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헤어질 때면 짜장면 사드리러 또 오겠다고 약속을 해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도 찍고 손바닥을 펼쳐 복사도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조심조심했지만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요양원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열이 심하게 올라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다는 전화예요. 하루에 두 번 면회가 되는 중환자실이래요.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셔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했어요. 중환자실 면회를 다니면서 짜장면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요.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니 못 드셨기 때문이에요. 간호사 선생님이 미음만 겨우 드신다고 걱정했어요. 미음도 몇 숟가락 안 드세요.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 하셨어요. 우주인 말도 하지 않고 벙긋벙긋 웃지도 않았어요. 정신이 들면 입으로만 힘없이 웃었어요. 폐렴이 문제야. 환절기를 잘 넘겨야 할 텐데. 아빠는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훌쩍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건 아닐까?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요구르트 한 병도 다 못 드셨어요. 몸은 점점 새우처럼 둥글어졌어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것 같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주 깊은 잠에 빠졌어요. 몇 번 잠자는 모습만 보다가 왔어요. 어디서 전화만 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할아버지 안부를 묻는 동네 어른들께 아빠는 또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 . 아버지, 저희 왔는데 눈 좀 떠 보세요! . 날이 밝았어요. 바람도 불지 않고 햇볕이 따뜻해요. 어제저녁엔 비가 조금 내렸거든요. 아빠는 날씨가 나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하늘은 맑고 투명해요. 우주정거장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란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요. 할아버지가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날이에요. 나는 할아버지 사진을 넣은 커다란 액자를 들었어요. 액자 속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셔요. 직장 때문에 자주 내려오지 못했던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요. 고모도 고모부도 슬퍼해요. 할아버지는 누에고치 같은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나무 캡슐에 들어가 계셔요. 우주여행용 캡슐 속에 잠들어 계셔요. 할아버지는 잠자는 우주여행을 선택하셨거든요. 나이가 많아서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더 늙어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에요. 어느 때고 할아버지별에 도착하면 깨어나실 거예요. 할아버지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몇 번씩 옮기며 노을을 바라볼지도 모르지요. 노을을 바라보며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별에도 짜장면집이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지구별에 다시 올 때까지 만리장성 짜장면집이 장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 할아버지하고 아빠하고 나는 또 손 짜장면을 먹으러 갈 테니까요. /차승호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우주여행으로 생 마친다는 전개 참신

/안도 시인아동문학가 올해 신춘문예에서 동화는 106명이 117편을 응모했다. 이를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출신 김근혜, 이경옥, 장은영 동화작가들의 예심을 거쳐 9편이 본심에 올려졌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올해 응모 동화들을 보면 대부분 애완동물, 치매 및 노인문제, 다문화 등의 소재가 많았다. 이 외에도 가족 간의 사랑, 현실비판, 자연보호, 이웃돕기 등의 주제에다가 아이들의 마음세계를 양념처럼 담은 작품들이었다. 동화의 본질은 어린이를 위해 쓴 문학의 한 갈래로써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따라서 동화를 창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이 어린이임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올해 신춘문예에서는 성인들의 이야기지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본선에 올라온 9편중에서 깜장묵 베프, 홀씨요정 들레, 뻥튀밥 귓밥, 우주인 할아버지 4편을 최종심에 올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깜장묵 베프는 다문화 가정이야기인데 제목부터 아무리 통용되고 있는 외래어라고 하지만 베스트 프렌드도 모자라 베프라는 줄임말이 동화에서까지 난무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홀씨요정 들레는 고향집에 민들레를 남겨놓고 향수를 느끼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제목 홀씨는 식물이 암컷과 수컷의 교배 없이 이루어지는 생식을 위하여 형성하는 세포로 민들레는 홀씨가 없어 잘못된 표현이다. 이 두 작품은 내용에서도 일상의 이야기를 너무 작위적으로 꾸며서 신선감이 떨어진다. 뻥튀밥 귓밥은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의 속어인 뻥을 소재로 나쁜 소리를 많이 들으면 왕귓밥이 생긴다는 내용의 신선한 전개를 했는데 산만한 구성과 과다한 주제의식이 노출되었다. 반면 우주인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손쉽게 갈기 위해 입은 옷을 우주복으로 명명하고 일상을 우주와 결부시켜 마지막에는 우주여행으로 생을 마친다는 전개가 참신해서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러나 동화적 감각은 좋지만 이상과 현실의 관계 설정이 모호해서 주제가 빈약했다. 앞으로 신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미래세계에 대한 비전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어넣어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어린이 세계를 주제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끌어들이면 좋은 동화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안도 시인아동문학가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오은숙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은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오은숙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당선 소감을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할까. 아니면 BTS의 노래를 검색해서 그것으로 채울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만을 나열하고 끝낼까. 생각만 오갈 뿐 적당한 것이 없다.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꼴이다. 어떻게든 내 안에 있는 것을 써야 한다. 소설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끙끙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순간이지만 오래도록 살아 있는 느낌. 느낌 안에 숨어 있는 감정. 이런 것이 내게는 소설적 진실이다.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호기심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다. 소설적 진실에 대한 천착. 천착으로 끝나지 않는 소통. 현재로선 그것이 소설에 대한 나의 비전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소감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해 난감하다. 이럴 땐 기분 전환하듯 문단이라도 바꿔야 한다. 어둑한 밤이다. 지나온 삶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잘 가라고. 다시는 비틀거리지 말고 기웃거리지 말고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절망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쓰라고. 미래의 삶 또한 같은 말을 하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좋다. 기꺼이 가겠다. 나는 애써 두려움을 떨쳐낸다. 어머니, 아버지와 삼 형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가족으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당신들의 안녕을 빕니다. 소설을 쓰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신 윤후명 선생님과 동서문학 멘토링의 연으로 만나게 된 이태형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다연 선생님과 현숙, 현진 언니 당신들이 주신 사랑 고마워요. 항상 기억 할게요. 효진, 희단, 서진과 등단을 제 일처럼 기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끝으로, 세상에 눈을 뜨게 한 K와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오은숙 작가는 현재 요양 병원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을 오가며 창작 수업을 들었다. 앞으로도 일하며 글쓰는 단순한 삶이 이어질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납탄의 무게 - 오은숙

안전수칙과 총기 사용법을 들은 후였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던 나는 박의 옆 라인에 자리를 잡았다. 십 미터 사격이라 그런지 표적지와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청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을 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계속 지켜보겠다는 듯 서 있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왼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납탄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사격이 끝나면 총기도 수거해야 한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말했다. 알겠으니 자리 좀 비켜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스타디움식 의자가 수백 개 놓여 있는 관중석 뒤로 갔다. 그가 통로 쪽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린 나는 들고 있던 총과 총알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총 길이는 생각보다 길었고 총알은 장난감 총에나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짝이 맞지 않는 볼트와 너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던 총이 아니었다. 권총이 아닌 것 같아. 혼잣말이었는데 목소리가 컸는지 박이 듣고 말했다. 공기 권총이라 일반 권총보다 길어서 그럴 거라고. 권총의 종류가 많다는 것인지, 일반 권총과 공기 권총만 있다는 것인지 그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쏴. 그녀가 툭하고 뱉은 후 옆으로 선 채 총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냥 쏘면 되지. 나는 총을 든 손 위로 시선을 옮겨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네 개의 붉고 작은 결절은 한 시간 전보다 더 부어올랐다. 엄마에게 물린 자국이 두드러기처럼 부어서 가라앉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매를 맞거나 꼬집혀도 피부 재생이 빨랐는데 나이가 들면 체질도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기도 했잖아. 그때도 그냥 하면 되는 거였어. 삼 년 전, 나는 장편 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가까스로 얻은 기회였으나 제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가 수정되기를 원했다. 수없이 고친 시나리오에 트집을 잡으며 시간을 축내던 나이 어린 제작자의 마음을 나는 돌리지 못했다. 결국, 장면 하나 하나에 제 입김을 넣으려던 제작자에게 맞서고 말았다. 그는 설정만 좋고 아무 것도 없는 시나리오에 투자할 사람이 자기 말고 누가 있는 줄 아느냐고 했다. 너 말고도 그런 식으로 뜯어고칠 사람은 많아, 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뭐, 너? 이게 아주 이성을 잃었구나. 마흔 넘어 영화 한다고 징징대는 것이 불쌍해서 봐줬더니. 제작자는 나를 몰아붙였고 나도 지려 하지 않았다. 막말이 오갔고 찍기로 한 영화는 엎어졌다. 그즈음, 집 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바람에 방을 빼야 했는데 더 싼 월세 방을 찾아 서울 변두리를 전전하다 영화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 정상에 오르기는커녕, 산 아래서 등산로 입구만 찾아 헤매다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불에 생리혈을 묻혔을 때나 도시락 통을 꺼내 놓지 않은 다음날, 씻지 않은 도시락 통에 담긴 미끈거리던 밥알을 씹었던 때가. 그럴 때 엄마는 내가 두 아들보다 게으르고 못돼서 평생 고생할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내 주제에 감독은 무슨, 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웃었다. 박은 졸업 한 뒤 바로 방송국에 취직했다. 그녀를 통해 들은 바로 그녀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지지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졌으며 야무진 그녀는 원하는 것을 놓치거나 실패해 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믿어주었던 그녀 엄마 덕분이리라. 누구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박을 알게 된 후로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업한 그녀가 첫 월급을 탄 날이었다. 이차도 내가 살게. 한정식 집을 나오며 그녀가 말했다. 다섯 명의 밥값을 치른 후였다. 마흔 전에 집 살 거라며, 무리하지 마. 누군가 말했고 친구 중 한 명이 회비를 걷자고 거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 모임이라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알아서 생각해주던 말이었다. 그녀는 첫 월급이라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이런 식으로 살면 집은커녕 생활비도 힘들겠다. 방송국을 아무나 들어가나, 저도 기분 내고 싶겠지. 평생 가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마흔 전에 집을 산다고. 그러니까, 철이 없는 거지. 저마다 한 마디씩 뱉은 후 잔을 들었다. 나는 노가리를 뜯으며 생각했다. 그녀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화장실로 간 뒤에 나누던 대화여서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노가리만 뜯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함께 잔을 들어올리자는 시늉을 했다. 박은 내가 월세방에 살면서 영화 현장을 전전할 때 국내는 물론 세계의 정치, 경제 뉴스를 파더니 주식을 시작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았지만 투자를 하려고 그녀처럼 국내외 정치, 경제를 공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손해를 몇 번 본 후,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 아파트 값이 모아지자 과감히 주식에서 손을 뗐다. 동기들은 평생 운을 다 쓴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한 종목의 주식을 사고파는데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代價)로 여겼다. 박을 보면서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영화에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다. 착실히 돈 모아서 시집가라던 엄마 말은 귓등으로 날려버렸다. 박은 삼십 대 중반에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역시, 난 년이야. 집들이에 초대된 동기들은 말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에서 한 번도 눈을 돌린 적이 없었다. 야무진 그녀라면 제작자와 마찰을 빚기 전에 다른 대안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용산역까지 배웅 나온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선택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선택했으니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나도 그러길 바랐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엄마 손을 잡고 근처 공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밤근무를 나가기 전 한 시간 정도 자려고 알람을 맞출 때 박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항상 똑같지, 하고 답했다. 사이를 두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짧게 들이마신 뒤 내뱉은 긴 숨이었다. 그녀는 아파트를 팔고 작은 빌라로 이사할 생각이라며 똑같은 방식으로 숨을 쉬었다. 왜, 하고 묻던 내 목소리가 그녀의 한숨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대뜸 말했다. 땅으로 꺼지고 싶어.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어. 나는 또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일이야 항상 있지. 그녀가 더는 묻지 말라는 듯 자신이 뱉은 말을 눙쳤다. 그러더니, 그녀가 아니면 추석이나 설날도 그렇지만 어버이날조차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를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만 바라보고 산 엄마가 짐으로 느껴진다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믿어주기 바빴던 엄만데, 왜.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켰다. 몇 주 전, 그녀의 전화를 다시 받았을 때 그녀는 내가 일하는 요양 병원으로 엄마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그녀 엄마는 오 년 전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요양원 생활을 하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울 근교에 있는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 엄마는 특이하게 정수기 물 대신 특정 상표의 생수를 마셨다. 요양원에서 오백 밀리미터 생수 한 병을 하루에 다 마시도록 했는데 요양 병원에서도 같은 상표의 물만 고집했다. 그 물을 마시면 기운이 난다고 했기에 그녀는 매번 생수를 사가지고 엄마를 만나러 가거나 생수를 주문해 택배로 보냈다. 생수와 간식만 해결되면 내가 일하는 병원에 엄마를 맡기고 일 년 정도 인도로 나가 있고 싶다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사직서를. 그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버티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돌아와서 무얼 하겠냐며 다그쳤다. , 생수와 간식을 부탁하면 안 될까. 카드 주고 갈게. 그녀 집에 얹혀살았던 적이 있던 내게 그녀가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었다. 더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알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선택한 것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는 확답이라도 받고 싶은 듯 몇 번이나 생수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던 나는 걱정 말고 준비나 잘 하라고 했다. 이삿날을 알려주면 오프를 받아 올라가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계는 명확해지고 삶은 어떤 식으로든 뚜렷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오래 전 생각은 틀렸다고.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어도 그때뿐이었고 영화 감독을 꿈꾸며 청춘을 보냈어도 남은 것은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늙은 엄마가 전부인 우리는 마흔 여섯의 나이에 흔들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두 시간 전, 박을 만나 그녀 엄마 입원 수속을 도왔다. 병원에 미리 말해둔 터라 수속은 금방 끝났지만 그녀는 엄마가 점심을 먹는 것까지 보고 가자고 했다. 어서 올라가서 짐 싸야지.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왜 이렇게 굼떠. 그녀 엄마가 병실 안에서 서성이던 박을 부르더니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이거 갖고 어서 올라가. 빨리 가야, 빨리 오지. 박의 엄마는 박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그런 뒤 박을 밀어내던 낯빛이 차가웠다. 쌀쌀맞다기보다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듯 올찬 표정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해내려고 잠시 떠나는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그러니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병원을 나온 후 박은 서너 시간 여유가 생겼다며 임실에 있는 종합 사격장에 가자고 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고 기본 열 발만 쏘고 오자고 해서 나도 그러자고 했다. 사격장으로 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창밖 풍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도심을 빠져 나온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어. 운전을 하고 있던 박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나도 그래. 추임새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네 엄마는 우리 병원에 있잖아. 내 목소리가 퉁명스러운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 자개는 아니구나. 박은 여전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말을 하고 나서야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그녀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라도 떨쳐내려고 그녀에게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다고 말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어쩌면 그녀도 그녀만의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내게는 말하지 못한 그녀만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시골 길을 지나 산 중턱으로 오르자 사격장 건물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 막혔다. 자개농 안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급하게 나오면서도 안방에 있는 에어컨을 켜고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입구를 달리한 건물 세 동 앞에서 박이 주춤거렸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반 년 전까지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는 은퇴한 사격 선수였다. 나는 그녀가 그와 함께 이곳에 왔던 기억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와 함께 사격장을 찾았던 그녀가 나를 만나고 갔었는데 그때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었다. 저 바윗돌을 지났는데. 박은 손가락으로 중앙에 세워져 있는 바윗돌을 가리켰다. 바윗돌에는 사격인의 요람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연습을 하거나 대회를 치르려고 많이 찾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장난감 총조차 잡아본 적 없었던 나는 그렇게 그녀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탁, 소리가 났다. 총을 쏜 것은 박이었다. 공중으로 날아간 탄알이 정확하게 표적지 중앙을 뚫었으리라. 기대감을 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모니터를 보았다. 6점이었다. 사격을 해본 사람치고는 좋은 점수가 아니었다. 첫발이라 긴장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총을 겨눴다. 총 머리 부분에 패인 홈은 가늠자, 총구 쪽에 볼록 솟은 곳은 가늠쇠였다. 달리 말해, 가늠자와 가늠쇠는 음과 양이었다. 0.5밀리미터가 될까 싶은 음과 양이 평행을 이룰 때 방아쇠를 당기라고 청원 경찰은 말했다. 수평을 이룬 음과 양은 미세한 떨림에도 쉽게 틀어졌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고 최대한 손 떨림을 없앴다. 십 미터 밖 검은 동그라미를 향해 총구를 맞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탁, 소리가 난 후 내 앞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여러 개의 검은 동그라미 중 하나에 구멍이 뚫렸다. 9점이었다. 처음인데 잘 하네. 박의 칭찬을 듣고도 나는 무덤덤했다. 처음인데 잘 하네. 오래 전에 그 말을 들었다면 엄마를 자개농에 가두지 않았을까. 열다섯 살 때였다. 하루는 엄마가 고등어 두 마리를 던져주며 말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명태나 고등어로 찌개를 끓인 적은 있었지만 엄마가 깨끗하게 손질한 것에 칼집을 넣어 끓인 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배를 가르고 핏물을 뺀 뒤 토막 쳐서 김치와 물을 넣으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바쁘면 고등어 손질을 내게 맡기고 나가버렸을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용기를 냈다. 도톰하고 하얀 고등어 배 위에 칼을 댔다. 솜씨가 없어서인지 칼이 무뎌서인지 쓱싹대길 반복했다. 피가 섞인 내장이 칼끝을 비집고 나올 때 엄마가 돌아왔다. 처음인데, 잘하네.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배 갈라서 핏물 씻어내고 토막 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엄마가 뱉은 말은 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후볐다. 엄마는 딸인 내가 그 정도는 도와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더 퍼붓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엄마가 자개농을 배달시켰다. 가구점 직원이 자개농을 안방에 들여놓을 때 나는 끓고 있던 고등어찌개 간을 맞추고 있었다. 석자 반 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요. 들뜬 목소리가 안방 너머에서 들렸다. 엄마가 가구점 직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농을 왜, 어울리지 않게 우리집에 놓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고등어찌개를 끓여놓으라고 해놓고 자개농을 사러 갔다는 사실이 얄궂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자개농에 내가 밀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는 곱씹었다. 처음인데 잘 한다는 칭찬 한마디 없이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던 엄마의 악다구니를. 탄알을 넣고 방아쇠 왼쪽으로 길쭉하게 휘어진 쇠막대기를 앞으로 꺾었다. 딸각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건드리면 탄알이 나갈 수도 있다고 했기에 총을 든 손을 조심스럽게 쭉 폈다. 총을 쏘는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했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숙련자들도 그렇다고 박은 말했다. 매번 같은 일상이지만 정확히는 다른 날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처음에 9점을 쏜 것과 다르게 내 점수는 내리 평균점을 밑돌았다. 박은 6점을 쏜 후로 갈수록 점수가 올라 방금 전에는 10점 만점을 받았다. 우리는 탄알 두 발을 각각 남겨 놓은 상태였다. 남은 두 발 중 한 발이라도 표적지 중앙에 구멍을 뚫었으면 하고 바랐다. 박을 따라 하느라 한 손으로 총을 쏜 탓에 아까부터 심하게 손이 떨렸다. 가늠자와 가늠쇠는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들쑥날쑥 요동을 쳤다. 테이블에 총을 내려놓고 오른 손을 탈탈 털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삼각근을 주물렀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근육은 알이 배긴 듯 뭉쳐 있었다. 총 무게가 1.5킬로그램이래. 박이 납탄을 집으며 말했다. 무겁다는 것인지 가볍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총을 들고 있는 동안 내 손은 심하게 떨렸지만 박은 알지 못했다. 무게가 1.5킬로그램이라는 말만 하고 자신의 총을 들어올렸다. 나도 그녀같이 한 손으로 총을 들며 웅얼거렸다. 너는 무겁지 않은 거구나. 탁, 소리가 났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녀의 모니터에 10이라는 숫자가 더해졌다. 처음에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든 후 방아쇠를 당겼다. 자세에서 초보자 티가 나는 것 같아 박을 따라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로 총을 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따라 하느라 애먹은 것은 아닌가. 멋쩍은 마음에 총을 들고 있던 손으로 화장기 없는 볼을 문질렀다. 볼에 닿은 손가락이 이상하게 꿉꿉했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 감촉이 손가락 끝에 엉겨 있는 듯했다. 어제 저녁, 나는 욕조 안에 앉아 있던 엄마 등을 밀었다. 일하면서 살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엄마를 씻기지 않아 밀어도 밀어도 때가 나왔다. 그럴수록 나는 더 세게 밀었다. 너무 세게 밀어 붉게 변한 살을 보자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오히려 시원하다고 했다. 영화 한 편 볼 여유 없이 집과 병원을 오가며 엄마를 돌봤어도 엄마 살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몽글몽글 손에 잡혔다. 제 엄마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내가 박의 엄마에게 간식과 생수를 사다주며 얼굴을 비추겠다고 했다. 허세였나, 오지랖이었나. 쓴웃음이 나왔다.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인도로 떠나는 박이 부러워졌다. 엄마의 아픈 손과 아픈 손이 닿지 않는 몸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욕조 안을 둥둥 떠다녔다. 무엇인가 되겠다며 버둥거렸던 지난 시간이 스쳤다. 고생만 하다가 떨어져 나왔구나, 둥둥 떠 있는 때 같아. 불쑥 떠오른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미련스러웠다. 머리를 가로 저었다. 엄마 등을 위아래로 밀었다. 손가락에 마치는 등뼈 열두 개가 빨래판 물결인 양 울퉁불퉁했다. 더욱 세게 밀었다. 그 옛날 엄마가 해주던 목물처럼 까슬하고 아프게. 때를 미는 일이 힘에 부쳤다. 허리를 펴고 이마에 흐르던 땀을 훔쳤다. 안 아파? 엄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시원해. 엄마는 둥둥 떠 있는 때를 손으로 퍼서 욕조 밖으로 걷어냈다.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원하다는 말이지. 나는 살갗이 붉어진 엄마 등을 보았다. 응. 들려오던 목소리가 태연했다. 왠지 억울했다. 응, 이라는 대답이 고등어 배를 갈라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하고서는 자개농을 사왔던 날 내게 했던 말로 들렸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침이 되어 상을 일찍 물렀다. 박을 만나려면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빠는 매 끼니 뒤에 달달한 믹스 커피를 두 잔 타서 엄마와 함께 마셨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작년 이후로 그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커피 두 잔이 담겨 있는 쟁반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식초 탄 물에 마른 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푸르딩딩한 구름과 희뿌연 달 아래로 두 마리 학이 부리를 맞대고 서 있는 자개농 문을 닦았다. 아무리 닦아도 코팅 된 자개는 제 빛을 내지 않았지만 엄마는 수시로 걸레질을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서 다 지워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지워진 듯 사라진 듯 기억에도 없다가 어느 날 불쑥 드러났다. 엄마 등을 밀었던 전날과 마찬가지로 자개농을 들여놓던 날이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 살지 그래. 나는 깨끗해졌지, 하고 묻던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본새냐며 한 마디 할 법도 했지만 엄마는 조용했다. 말없이 자개농을 닦았다. 삼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개농에 밀렸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자개농만 닦고 있던 엄마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작은 방으로 가서 책상 밑에 있던 박스를 뒤적였다. 장편 영화를 준비할 때 썼던 소품이 들어 있는 박스였다. 박스 속에서 노란색 끈 하나를 꺼냈다. 일 미터 가량 되는 긴 끈을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첫 출근하면서 한 번 신은 싸구려 인조 가죽 구두를 일 년이 지나 신발장에서 꺼냈을 때 삭아서 문드러진 걸 보고 황당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물건에도 기운이라는 것이 있어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빨리 헤진다며 제 물건 하나 간수하지 못한다고 나를 나무랐었다. 나는 긴 끈을 대충 뭉쳐 안방으로 갔다. 자개농 앞에 있던 엄마가 방으로 들어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 엄마가 외마디를 질렀다. 한쪽 문이 열려 있는 자개농 바닥에 앉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개농 속으로 들어가라고! 나는 두 다리를 방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버둥거리던 엄마의 다리를 들었다. 그러자 엄마가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했다.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아프지 않았다. 내 겨드랑이 안쪽 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순간,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얼얼한 통증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엄마 살은 삶은 호박처럼 물컹거려도 자개농 문짝처럼 단단해. 봐봐. 자개농에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지. 이봐, 크기만 했지 아귀힘조차 없는 내 손을. 나는 지금 엄마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자개농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또 꼬집으려고 하지. 몇 개 밖에 없는 이로 어딜 물려고 하는 거야. 그래, 물고 싶으면 물어. 여길 봐. 엄마 이가 내 팔에 깊게 박혔다 사라졌어. 난 피하지 않았다고. 이봐, 깊게 박혔던 이가 자국을 남겼지만 피가 나거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진 않았어. 누군가 울음소리를 듣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엄마 옆엔 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옷장 안으로 들어가세요. 엄마를 가까스로 자개농 안에 넣고 자개농 손잡이 양쪽에 끈을 묶어 야무진 매듭을 지었다. 일인용 침대와 탁자, 의자를 자개농 앞에 일렬로 늘어뜨렸다. 매듭이 풀려도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자개농 문 밖에 있던 틈을 없앴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부터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내 행동은 치밀했다. 울음소리와 함께 쿵, 쿵, 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쉬지 않고 주먹으로 옷장 문을 두드리던 엄마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탁, 소리가 난 뒤였다. 처음 9점을 쏘았던 자세로 방아쇠를 당긴 뒤라서 어떤 점수가 나올지 궁금했다. 모니터를 확인했다. 표적지에 그려진 원 안에도 밖에도 총알이 뚫고 나간 자리가 없었다. 총알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했던 청원 경찰이 생각났다. 스타디움식 의자에 앉아 있던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까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표적지를 다시 보았다. 아홉 발을 쏘았으나 탄알 구멍은 여덟 개뿐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탄알 흔적으로 방금 전, 나는 총을 쏘았지만 총을 쏘지 않은 듯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늘 아침을 거슬러 어제 저녁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다가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엄마에게 물려 부어올랐던 곳이 가라앉았다. 박이 볼까 싶어 가리기도 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붉은 결절이 사라졌다. 박은 이번에도 만점이었다. 왜 그렇게 잘 쏴? 나도 알려줘. 탄알 구멍이 가운데에 몰려 있는 박의 표적지를 보며 말했다. 탄알 한 개만 남겨 놓은 상태라 잘하고 싶었다. 9점은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 상황이라면 5점 이상만 나와도 족했다. 옆으로 쏴, 자세로 서 있던 그녀가 들고 있던 총을 내렸다. 으응, 죽이고 싶은 걸 떠올렸어. 왜, 있잖아. 머릿속에서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죽이고 싶은 게 그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을 죽이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 있는 엄마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이사하게 만든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의지가 되어주는 친구지만 박과 나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애써 캐묻지 못하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탄알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오가는 납탄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는 작은 것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1.5킬로그램의 공기 권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게였다. 실제보다 너무 커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었다. 오래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납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머리를 굴리자 아슴푸레 돋아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단편 영화를 찍고 있었으니 십 년은 족히 넘었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집에 내려왔다 올라가면 왕복 차비를 써야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향집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돈도 없으면서 왜 자꾸 내려오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늦은 나이에 향수병에라도 걸린 듯 그렇게라도 집에 다녀와야 한 달을 견딜 수 있었다. 하루는 집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이 원인이라며 퇴원 전에 한 번 다녀가라고 했다. 나는 그 달에 다녀왔으니 다음 달에 가겠다고 했다. 다음 달 초가 되어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가 퇴원하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촬영과 아르바이트 일정이 빠듯해서 내려온 지 만 하루가 안 되어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 기차를 탈 것이라고 말해둔 터라 간다는 말도 않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서리가 내린 새벽은 어두웠다.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녹슨 대문을 밀고 나오는데 대문 밖에 엄마가 서 있었다. 자다 일어나 바로 나왔는지 위아래 내복만 걸친 채였다. 잠 안자고 왜 나와 있어. 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 가는 것 보려고 나왔지. 키 작은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알아서 갈 건데 나왔느냐며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팬티 고무줄 끈이 보이는 내복 안에 손을 넣으며 내 쪽으로 바투 다가섰다. 흰 머리카락이 내 턱을 쓸어서 엄마 키가 이렇게 작았나, 생각할 때 엄마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편마비가 생겨 어정쩡하게 구부러진 손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가 손 안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다. 됐어, 괜찮아. 그렇게 말한 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며,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에게 지폐를 돌려주려 했으나 엄마는 차비라도 하라며 받지 않았다. 고생이 많지, 우리 딸.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가슴에 박혔다. 무겁고 무거운. 한 없이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 엄마가 먼저 내게 등을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엄마는 내가 가는 것을 보겠다며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대문 안으로 밀고 등을 돌렸다. 힘들면 내려와. 등 뒤에서 들리는 낮고 어눌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괜스레 서러웠다. 쓸쓸한 여운으로 남은 목소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었다. 깜깜한 새벽 도로를 걸으며 손 안에 있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느꼈다. 몇 장일까. 걸음을 멈췄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을 더해 접은 곳을 펼쳤다. 쫙 펴진 지폐는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 돈을 평생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월급날을 앞두고 돈이 떨어졌을 때 집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나는 그 돈으로 칠 천 얼마 하는 무궁화 표를 샀다. 이후로 지금껏 그날 일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 탄알을 넣은 후 총을 들었다. 1.5킬로그램짜리 총은 버둥거리던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을 때처럼 무거웠다. 탄알 하나의 무게와 오래전 종이 지폐 무게까지 덤으로 올려져 있어 그럴지도 몰랐다. 떨리는 손을 한 손으로 받쳤다.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이 내게는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떨어. 그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진작 마지막 탄알까지 10점을 맞췄고 내가 총을 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딴 생각하지 마. 박이 말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것만 권총은 아니라며 그냥 쏘든지 아니면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녀 말 대로면 나는 여태껏 권총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권총은 아니지.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늠자와 가늠쇠가 가까스로 수평을 이루자 방아쇠를 당겼다. /오은숙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고달픈 삶,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작품은 기성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소재와 구성으로 주제를 심화해야 한다. 응모작품 대부분 이러한 요구를 잘 만족시키며 일정 수준에 이르렀으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조금씩 흠결을 지니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서사를 이끄는 구성은 완벽한데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했거나 결말에서 집중력이 흩어지는 작품이 의외로 많았다.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치밀하고 완벽한 서사구조가 완성되어야 훌륭한 소설이 된다. 그런 가운데 심사위원의 시선을 끈 작품은 납탄의 무게 불편한 편의점 10cm다. 심사위원들이 다시 이 세 작품을 정독한 결과 불편한 편의점은 오늘날 갈등구조를 일으키는 사회현상을 편의점이란 공간으로 이동시켜 아르바이트 청년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으나 결말 처리가 미숙한 점이 아쉬웠고, 10cm는 의료현장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서사구조가 시선을 끌었으나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한 점이 흠결로 남았다. 납탄의 무게는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사격장을 배경으로 불편한 가족 관계와 고달픈 삶을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나와 친구 박을 대칭 관계에 두고 엄마를 공통분모로 등장시켜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이를 10m 사대(射臺)를 배경으로 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표적지를 고달픈 삶의 현장과 오버랩(overlap)한 구성이 매우 신선하다. 친구 박과 달리 나에게만 무거운 납탄은 바로 그녀의 삶의 무게다. 서사를 전개하는 소설 미학 또한 나무랄 데 없다. 특히 마지막 한 발을 쏜 뒤, 점수 확인을 생략한 채 작품을 마무리한 결말 또한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로서 독립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잘 갖춘 작품이다. 당선한 분에게 축하를, 응모한 모든 분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호운 소설가, 우한용 소설가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김애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 열리지 않는다는 것 알아"

김애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고단한 즐거움입니다. 뼈대를 세우고 옷을 입혀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려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앓기도 했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기가 죽었습니다. 타고난 글재주도 없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밀어 넣고 어정거리며 빠져나갈 틈만 엿보았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그럴듯한 열매 하나 맺지 못했어요. 캄캄한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마다 그만하자고 중얼거리지만 자꾸 뒤돌아보느라 결단하지도 못했습니다. 십여 년의 미련을 접기보다 한해만 더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묵정밭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때마다 거름을 주며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란 낭보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세상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와 땀을 쏟은 만큼의 결실이 신의 조화고 섭리였습니다. 몇 번씩 주저앉아도 늘 묵묵히 지켜봐 주던 가족이 울이 돼 주었기에 튼실한 열매를 얻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함께 격려하며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때로는 쓴소리 아픈 소리로 날카롭게 평해준 포곡수필의 글동무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게으름 부릴 때마다 열정을 쏟지 않는다고 죽비를 내리치듯 꾸지람하다가도, 의기소침해 있으면 어느새 위로와 격려로 다독여 주시던 스승님께 이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쳐진 어깨를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제 글에 눈 맞춤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선으로 선해 용기와 격려를 주신 뜻이 헛되지 않도록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봅니다. 장미꽃이 아닌 잡초라도 나름의 존재가치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니, 더디고 힘들지만 한 걸음씩 저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애자 작가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구 계명대, 경북 경운대 교수를 지냈다.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부문 은상을 받았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수필] 망월굿 - 김애자

강 가운데 생긴 섬마을이다. 태백산에서 태어난 내성천(乃城川)과 소백산에서 출발한 서천(西川)이 만나 마을을 휘돌아나가면서 물돌이동을 만들었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수도리 모래사장에는 일 년 중 가장 달이 크게 보이는 정월대보름 달집이 세워진다. 달집을 태우면서 한 해를 시작하면 바라던 일들이 잘 이루어 질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설날보다 대보름이 더 신났다. 농한기의 쉼을 얻은 어른이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명절이라는 이유로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낮에는 연날리기와 지신밟기로, 밤이면 쥐불놀이로 마을은 온통 축제로 들떴다. 절정은 달집태우기였다. 타오르는 불 앞에 소원을 걸어놓고 이루어지기를 빌고 다짐하는 것은 한 해의 농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청년들은 긴 막대로 기둥을 세우고 달집의 뼈대를 만들었다. 집 안에는 불씨가 잘 살아나도록 솔가지며 마른나무, 관솔을 넣고, 밖에는 생솔가지를 쌓아 이엉을 얹어 새끼줄로 감는다. 아이들도 자기주먹 만한 꿈 하나씩 품고 땔감을 보태기 위해 고사리 손을 모았다. 집이 다 만들어지면 달이 보이는 쪽으로 문을 내고 보름달 모양을 만들어 달집 가운데 새끼줄로 매달아 놓았다. 망월이야! 환호성과 함께 불길이 솟아오른다. 붉은 너울의 끄트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자 농악대의 꽹과리소리가 자지러진다. 달집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도 불꽃의 춤사위와 풍악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 보름달의 꼬리가 산 능선을 박차고 둥실 떠오르자 구름이 물러나면서 길을 터준다. 달은 온 세상에 환한 빛을 흩뿌린다. 불이 점점 무섭게 타 오른다. 선홍의 불빛이 검붉은 색이 되어 하늘로 사라진다. 거센 기세로 솟구치는 불길과 강 건너편 숲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나무에 달아놓은 액막이 부적과 소원들도 활활 타 올라간다. 잡아먹을 듯 널름거리는 불의 혓바닥을 빠져나온 불똥이 탁탁 소리를 지른다. 마음속에 쟁여둔 사악함을 몰아내라고 죽비를 치며 호령하는 것 같다. 반백년이 지나는 동안 불뚝한 뱃가죽만큼 쌓아 둔 분노와 욕심의 찌꺼기를 서둘러 내 놓았다. 한기가 뼈마디를 쑤시는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지만 불 앞에 있으니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다. 검붉은 구름이 치솟는다. 땅의 소망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연기에 올라탄 불기둥이 하늘 길을 터준다. 농사의 풍요와 생명력을, 물과 여성을 품은 달이 이루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인가. 여인들은 고쟁이나 저고리 동정을 뜯어 불 속으로 던지며 다산을 기원한다. 풍악 소리가 더 크게 울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인 이들은 일제히 달집 주위를 빙빙 돌며 목이 터져라 강강술래를 불렀다. 불가에 쪼그리고 앉았던 내 어깨도 저절로 들썩거린다. 아랫도리가 후줄근하도록 아낙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붉은 달빛이 흥건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바다의 밀물처럼 내 안의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비릿한 냄새와 축축한 느낌이 께름칙하다. 젖은 속옷을 보자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부끄러움에 온 몸이 오그라든다. 빨강 꽃잎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름적거리며 엄마 눈치만 살폈다. 낌새를 알아챈 엄마가 책상 밑에 숨겨 둔 흔적을 찾아냈다. 엄마는 달거리가 시작된 거라며 작은 소창 생리대를 만들어 주었다. 며칠 동안 선홍의 달빛을 경험한 나는 못할 짓을 한 것처럼 후미진 곳으로 숨어 다니며 식구들의 눈을 피했다. 가뭄이 심할 때 옛사람들은 붉은 빛이 선명한 소녀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냈다. 당신도 딸의 첫 생리를 신성하게 여겼는가. 엄마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개짐을 정성스럽게 신문지에 쌌다. 뒷마당 한쪽 진 곳에 땅을 파고 왕겨로 불을 피워 성인식을 치르듯 찬찬히 딸의 증거물을 태웠다. 달빛의 흔적이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당신의 얼굴은 달보다 더 붉게 물들었다. 씨알을 품을 딸의 밭에 나쁜 기운은 재가 되고 막 피어나는 여체女體는 옥양沃壤이 되기를 염원했으리라. 달은 생명의 집이다. 씨를 품는 여인의 몸이며 땅이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를 받은 여인들의 몸에는 창조의 기운이 서려있다. 달집을 태워 액을 없애고 농사가 번성하기를 기원한 것처럼 여성은 생산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치르면서 자신의 몸을 정화시켰으리라. 보름달에서 완숙한 기운을 받은 여자가 달거리로 생명을 불러 후손을 얻으려는 것은 잉태의 근원이 달과 여인의 신비로운 조화에 있음이 아니던가. 여자의 힘이 달을 닮은 자궁에서 비롯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땅의 소원이 달에 닿도록 풍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너울거리는 불꽃 뒤로 보름달이 둥두렷이 떠올랐다. 달집 속에 매놓았던 달이 언제 뛰쳐나갔는지 동쪽 하늘에 성큼 올랐다가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간다. 광기어린 꽹과리소리에 기죽은 듯 안팎으로 보이는 달의 모습이 처연하다. 시끄러운 소리 속에 표현 할 수 없는 적막감이 감돈다. 생명을 받고 헤어지는 모녀처럼, 뜨고 이우는 달처럼 생과 사의 비밀을 품은 이 땅의 여인과 농민들의 아픔을 다 끌어안느라 힘든 때문일까. 땅을 품고 사는 이들의 몸을 밟고 춤추는 세상사가 올해도 뾰족한 수를 보여줄 수 없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깽 깨갱 깨갱 깽 하늘을 가르는 꽹과리소리가 천둥을 부르자 둥 두둥 구름떼가 몰려든다. 딱 따닥 딱 장구재비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져 무아지경에 이르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지잉 지잉 천지의 기운을 한데 모은 바람이 파문을 그리며 골짝으로 퍼져나간다. 꽹과리, 북, 장구, 징의 사물四物을 앞세운 농악소리가 산천을 누비며 하늘로 올라간다. 불과 물과 달에 만취한 아녀자와 남정네, 늙고 젊고 높고 낮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달집을 돌고 돈다. 올해도 풍년이고, 내년에도 풍년일세.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 나아 네에. 땅의 함성과 하늘의 자비가 공중에서 얼싸 안고 춤을 춘다. 절정으로 치 닿는 망월굿의 오르가즘을 맛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땀으로 흠씬 젖은 육신이 땅의 품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개운하고 편안하다.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진다. 가물거리던 연기도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남은 불똥 몇 개가 튀어나가 어둠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풍악도 시들해지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발길을 돌린다. 불길에 몸을 사르며 사라져간 달집의 흔적은 다시 어미의 품인 토양으로 돌아가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될 게다. 아직 다 못한 소원이 있는가. 모닥불 옆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불야성의 도시로 향한다. 달집을 빠져 나온 보름달이 차창에 올라앉아있다.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웠고 액운도 거두었다며 싱긋 웃는다. 달집에 달아놓은 소원은 다 들어주겠으니 안심하라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돌아오는 밤길이 훤하다. /김애자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수필] 수필장르만이 지니는 미학적 특장 십분 잘 발휘

/전일환 수필가 경자년 새해 전북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을 비롯하여 소설, 수필, 동화 등 네 장르에 750여 분들이 무려 2,000편의 작품을 응모하였다. 가히 물질만능 세상에서 인문학적인 가치나 철학이 미래세계의 청신호가 되고 지렛대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 같아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수필장르엔 217분이 500여 편의 작품을 출원하였는데 응모된 편수만큼이나 좋은 작품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어서 당선작을 뽑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많은 작품들을 천평칭(天平秤) 저울에 올려놓고 오랜 시간동안 경중을 전형(銓衡)하고 선후우열(先後優劣)을 가리는 작업이 대단히 어려웠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수필(隨筆)이란 자의(字義)에서 보듯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라는 장르적 자유로움만큼이나 글쓰기가 어렵다는 역설이 나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우선 많은 작품 가운데 열 분의 작품 호미론, 망월굿, 먼길 옷, 나비물, 낙타가시풀 등 25편 중에서 최종적으로 망월굿을 당선작으로 올려놓았다. 1년 중 정월 보름달이 제일 크다는 대보름날의 절정의례인 달집을 태우는 망월굿을 벌일 때, 작중화자인 작자는 흥건하게 한껏 부풀어 오른 바다의 밀물처럼 내안의 무엇이 붉은 달빛과 한 쌍의 짝이 되어 동대우(同對偶)의 수사(修辭)기교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가뭄이 심할 때 옛 사람들은 선명한 소녀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전통적 풍습을 이 작품 속에 끌어들였고, 엄마는 지저분하게 구겨진 소창생리대를 정성스럽게 싸서 뒷마당 한 쪽 진 곳에 땅을 파고 왕겨로 불을 피워 성인식을 치르듯 찬찬히 딸의 증거물을 소각하였다. 이러한 의례절차에서 차고 기우는 달의 정기(精氣)를 받은 여인들은 달거리로 자신의 몸을 정화(淨化)시키고 잉태의 근원이 달과 여인의 신비로운 조화(調和)에 있음을 분석하고 재해석하여 풀어낸 점이 다른 작품들보다 돋보였다. 일찍이 루마니아의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달과 물, 여인이 3자간 생생력환대(生生力環帶)를 이루며 풍양(豐穰)과 산아(産兒), 건강(健康) 등에 부합된 생생력의 상징으로 인간의 숭앙대상이 되어왔음을 주장한 바 있다. 작자는 만월인 대보름달과 선홍의 달빛 같은 초경(初經)수와 비경(祕境)의 생산력을 지닌 여인의 3요소를 망월(望月)굿을 통해 인간 삶을 통찰(洞察)과 관조(觀照)의 과정을 끌어들여 심미(審美)적으로 담아내고 해석해내었다. 그럼으로써 이 망월굿의 작품은 수필장르만이 지니는 미학적 특장(特長)을 십분 잘 발휘했다고 평가되었으므로 당선작으로 선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전일환 수필가

  • 문학·출판
  • 기고
  • 2019.12.31 10:15

전북예총 제24대 회장 선거 ‘3파전’

(사)한국예총 전북연합회(이하 전북예총) 제24대 회장 선거가 3파전으로 치러진다. 제24대 전북예총 임원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30일 오후 4시 후보접수를 마감한 결과 김상휘 소설가, 소재호 시인, 최무연 전북예총 부회장(이름순) 등 3명이 등록을 마쳤다. 기호추첨 결과, 김상휘 후보는 1번, 소재호 후보는 2번, 최무연 후보 3번을 각각 받았다. 그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며 지역 문인들의 기대를 모았던 전북문인협회 소속 후보군의 단일화는 결국 무산됐다. 각 입후보자들은 입후보 등록신청서, 공탁금(500만원) 입금 확인증 등 등록 서류와 금품수수와 상대 후보 비방행위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선관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서에는 선관위의 결정 사항을 준수하며, 이를 위반 시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데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선거 공고가 나고 이틀 후 후보 등록을 마무리했다는 김상휘 후보는 예산 확보의 길을 안다며 국회에서 돌발성 예산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겠다. 2023년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 개최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소재호 후보는 예향 전북에 걸맞은 큰 그림을 그리겠다. 외연을 넓히고 예술인이 대접받도록 하겠다며 예산확보에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무연 후보는 예총의 개혁이 필요하다. 예총의 변화는 곧 예술인들의 변화와 경제적인 해결이 우선이다며 기업과의 유대 방안 마련과 함께 회원들의 상호정보교환을 통한 유대강화, 창의적인 창작활동 방안 등을 모색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투표는 내년 1월 17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투표에 참여하는 대의원은 11개 시군 지부 82명과 10개 협회 78명 등 160명이다. 한국예총 정회원 자격 미달에 따른 결격사유 등이 발생함에 따라 대의원 수가 소폭 감소했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선거운동 기간은 제한이 없으며, 당선자는 1차 투표 다득점자로 정할 예정이다. 당선자의 임기는 인준서를 받은 날로부터 4년간이다.

  • 문화일반
  • 이용수
  • 2019.12.30 17:58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관람료 10년만에 인상

전북지역 유일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 2009년 5월 개관 이후 약 10년 6개월 만에 영화 관람료를 인상한다. 적용 시점은 2020년 1월 1일로, 기존 일반 관람료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한다. 단, 후원회원과 10인 이상 단체 관람객에게는 6000원을, 만 65세 이상청소년국가유공자장애인 관람객에게는 5000원을 적용한다. 이번 관람료 인상은 독립예술영화의 작품성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예술영화관들의 평균 관람료 확인하고 물가인상분 등을 반영해 결정했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관계자는 관람료 인상 배경에 대해 영화관의 관람료 수익은 제작자와 배급사에 일정 비율로 배분되기 때문에 영화관 운영 목적에 의해서만 관람료를 결정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2014년부터 낮은 관람료로 인해 프로그램 수급에 문제가 생겼고 일부 배급사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봉 하루 만에 종영하는 작품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예술영화 전용관 관람료가 평균 8066원인 것과 비교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평균 7333원보다 낮은 가격인 5000원을 10년 넘게 유지해왔다. 이에 영화계에서는 그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 공익적인 목적에 의해 낮은 관람료로 운영해 온 것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요금이 타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을 경우 작품성 있는 영화에 값싸다는 인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독립예술영화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람료를 개선해달라는 요청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측에 지속 제기해왔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전주시 민간위탁시설로 운영되는 만큼 관람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주시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관객 설문 조사를 통해 관람료 인상 수준에 관한 여론을 수렴했다. 조례 개정안은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회 등을 거쳐 지난 7월 16일 통과됐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관계자는 스크린 독과점과 양극화로 얼룩진 영화산업환경에서 독립예술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의 합당한 요구에 부응하고 관객들에게 가치 있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게 영화관의 할 일이라며 조례개편 등 행정상의 이유로 그동안 단계적 인상을 반영하지 못하였기에 이번에 다소 큰 폭으로 인상된 점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 영화·연극
  • 김태경
  • 2019.12.30 17:58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에서 실험적인 예술 역량 펼쳐요"

국내외 예술가의 창작역량을 강화하고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전주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에서 회화, 설치, 필름&비디오,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조형 등 시청각 예술분야의 입주작가를 선발한다. 전주문화재단(대표이사 정정숙)은 오는 2020년 1월 11일까지 2020년 3기 입주작가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모집인원은 총 11명(팀)으로, 정기 7명, 기획 2명(팀), 국외(3개월 단기 입주) 2명으로 나눴다. 지난해 신설한 기획입주 A형은 프로젝트 수행형 작가를 대상으로 하며 지역연구, 공단연구, 커뮤니티기반, 매체 및 미디어 연구 분야의 작가를 선발한다. 이와 다르게 올해 신설된 기획입주 B형에는 쇼케이스 프로젝트 형태의 공연예술분야와 문학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며 팀으로도 지원할 수 있다. 전주문화재단 관계자는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는 작가의 미적 아이디어 실현을 지지하고 건강한 창작활동을 지향하는 만큼 국내외 동시대 예술의 창작산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며 시민들에게는 예술가의 동시대적 감각을 경험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황순우 팔복예술공장 총괄감독도 2020년에도 3기 입주작가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펼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신청서 접수는 전자우편(2020studio@naver.com)을 통해 진행한다. 전화 문의는 팔복예술공장 창작지원팀(063-283-9221).

  • 문화일반
  • 김태경
  • 2019.12.30 17:58

작품으로 엿보는, 내면의 이중성 ‘페르소나’

전북도립미술관(관장 김은영) 학예사 인턴 박영선정여훈조은호 씨가 의기투합해서 기획전을 마련했다. 내년 1월 17일까지 전북도청 기획전시실에서 진행하는 가면의 경계전이 그것이다. 이들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페르소나(Persona)에 주목했다. 페르소나(Persona)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화가가 본인 자아를 투영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서완호 작가의 Empty, 탁소연 작가의 무명씨, 박성수 작가의 자화상, 이가립 작가의 FACE, 홍선기 작가의 이발사 등 전북도립미술관 소장품 중 15점을 엄선했다. 박영선정여훈조은호 씨는 전시 서문에서 사람들은 가면을 쓴다. 가면 속 안에 내면의 인격을 잠재운 채 웃는 가면을 쓰며 싫어도 좋은 척, 사이가 안 좋아도 친한 척 등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게 된다. 가면의 경계전은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가식이면에 대해 주목한 전시다고 밝혔다. 사회활동을 하며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가면과 온전히 발가벗겨진 날것의 모습, 이 혼란스러운 두 개의 자아 속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들의 고민을 발견할 수 있겠다. 관람 문의는 063-290-6871.

  • 전시·공연
  • 이용수
  • 2019.12.30 17:58

[2019 전북 문화계 결산 ⑧ 문화재]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무성서원 세계유산 등재 ‘겹경사’

올해 문화재 분야에서는 경사가 이어졌다. 14년 넘게 진통을 겪어온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지정이 황토현 전승일(5월 11일)로 확정제정돼 첫 기념식을 치렀고, 일본에서 송환된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이 125년 만에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안치됐다. 특히 정읍 무성서원 등 전국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큰 경사가 있었다. 또한 남원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됐고, 진안 수선루,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정문경 등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는 등 의미 있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첫 기념식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로 지정됐다. 정부는 지난 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황토현 전승일은 동학농민군이 1894년 5월 11일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최초로 관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둔 날이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은 지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추진됐으며,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동학농민혁명의 위상을 높이는 결실을 맺게 됐다. 정부는 지난 5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5년 만에 이를 기리는 첫 국가기념식을 개최했다. 그러나 정부 주최의 첫 기념행사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불발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 송환 동학농민군 지도자, 125년 만에 영면 고이 잠드소서. 일본에서 송환된 무명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이 125년 만에 전주에 안치됐다. 지난 6월 1일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안치된 유골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에게 처형된 무명의 농민군 지도자 머리뼈다. 유골은 지난 1995년 일본 북해도대학에서 발견됐으며 이듬해 당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이었던 한승헌 변호사가 유해봉환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주로 모셔왔다. 그간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임시 보관돼 왔다.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이날 오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인 후, 풍남문 노제 등을 거쳐 동학농민군 추모공간인 녹두관에 유골을 영구 안장했다. △정읍 무성서원 등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조선시대 성리학을 보급한 서원(書院)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우리나라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정읍 칠보 무성서원을 비롯해, 소수서원(경북), 도산서원(경북), 병산서원(경북), 옥산서원(경북), 도동서원(대구), 남계서원(경남), 필암서원(전남) 등 모두 9개다. 서원은 공립학교인 향교(鄕校)와 달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학교. 정읍 무성서원은 통일신라 말기 정읍 칠보지역 태수를 지냈던 유학자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으나 1696년 국가 공인 서원이 되며 이름을 바꿨다. 현재 전북지역 세계유산은 정읍 무성서원을 포함해 고창 고인돌,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3곳이 됐으며,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무성서원에 대한 보존과 활용방안이 과제로 남았다. 이와 관련 정읍시는 무성서원 인근 4만 2492㎡ 부지에 호남 선비정신 수련과 풍류문화 계승 발전을 위한 무성서원선비문화수련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가야 문화재 발굴 성과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출범 남원 청계리 청계 고분군이 호남지역 최고(最古)최대(最大) 가야 고총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남원 청계리 청계 고분군 발굴조사를 통해 청계 고분군이 현재까지 호남 지역에서 발굴된 가야계 고총 중에서 가장 이르고, 가장 규모가 큰 고총임을 확인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호남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수레바퀴 장식 토기 조각을 비롯한 다수의 함안 아라가야계 토기, 호남 지역 가야 고총에서 최초로 확인된 왜계 나무 빗 등 남원 아영분지 일대 고대 정치조직의 실체와 변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들을 확보했다. 축조 시기는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됐으며, 규모는 남아있는 봉분을 기준으로 길이 약 31m(도랑 포함 34m 내외), 너비 약 20m, 남아있는 높이는 5m 내외로 현재까지 발굴된 호남 지역 가야계 고총 중에서 가장 크다. 또한 장수 마봉산에 조성된 고분 83기를 묶은 장수 동촌리 고분군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2호로 지정되는 등 전북 가야 문화재 발굴연구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전북지역 가야 유적과 만경강 유역 초기철기시대 유적 조사를 담당하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연구소장 최종덕)가 지난 7월 신설됐고, 10월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내 임시청사에서 개소식을 하고 업무에 들어갔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지방연구소들 중 7번째 연구소다. 그러나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를 삼례문화예술촌 곁방살이가 아닌 독립적 복합역사문화센터로 신축 건립하기 위한 국비 확보가 과제로 남았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12.30 17:34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쥐를 화폭에 담다

2020년 새해는 경자(庚子)년 쥐띠해이다. 경자(庚子)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로 연도를 표기한 것이다. 경(庚)은 십간(十干)의 일곱 번째로서, 방위로 서쪽, 오방색으로는 흰색에 해당된다. 자(子)는 십이지의 첫 자리로서, 방위로 정북(正北)을, 달로 음력 11월을, 시간으로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를 말한다. 띠는 사람이 태어난 해의 십이지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쥐띠는 갑자[甲子, 靑], 병자[丙子, 赤], 무자[戊子, 黃], 경자[庚子, 白], 임자[壬子, 黑]의 순으로 60갑자를 순행한다. 요즘같이 굳이 색깔로 이야기한다면 경(庚)이 오방색으로 흰색에 해당되니, 경자년는 흰 쥐띠해이다. 조선시대의 그림 중에서 쥐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제법 있다. 쥐그림은 들에서 수박이나 홍당무를 갉아먹고 있는 모습 등 재미있는 주제의 포착과 서정 넘치는 표현, 아름다움 색채감각이 돋보이도록 그려졌다. 특히 최북(崔北, 1720년경)은 무주 최씨로 무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지역 화가인데, 무를 갉아먹는 쥐를 그렸다. 쥐의 생태와 습성을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수박과 쥐그림은 수박의 빨간 속살과 그 앞에서 씨앗을 먹고 있는 쥐 한 쌍, 나비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겸재 정선(謙霽 鄭敾)이 그린 서투서과(鼠偸西瓜)에서 쥐가 수박을 갉아먹고 있고, 심사정(沈師正)이 그린 초충도첩(草蟲圖帖)에는 쥐가 무을 먹고 있다. 심사정의 그림도 최북의 그림과 유사하다, 수박은 씨가 많다. 씨가 많다는 것은 다산과 풍요를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다산 왕인 한 쌍의 쥐는 부부 사랑과 다산, 풍요이다. 무와 당근은 《시경 詩經》제1편 국풍 곡풍(國風 谷風)에 보면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한다. 무는 아래 위를 다 먹을 수 있다. 무는 뿌리만을 보고 잎새까지 맛이 없다고 내버리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부인이 나이 들어 얼굴이 시든 것만 생각하고, 옛날에 고생했던 일이나 그의 미덕까지 버리고 딴 여자에게 다시 장가가면 안 된다는 뜻이다. 쥐가 수박무와 함께 그려진 그림은 부부애와 다산의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 쥐는 문화적으로 재물(財物)다산(多産)풍요기원(豊饒祈願)의 상징이며, 미래의 일을 예시(豫示)하는 영물이다. 사람에게 쥐는 결코 유익한 동물이 아니다. 생김새가 얄밉고, 성질이 급하고 행동이 경망한데다 좀스럽다.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나돌며 병을 옮기고, 집념이 박하고 참을성이 없고 시행착오가 많다.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양식을 약탈하고 물건을 쏠아 재산을 축낸다.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동물이다. 한 가지 쓸모가 있다면 의약(醫藥)의 실험동물로서의 공헌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자연계의 일원으로서의 쥐는 나름대로 그 존재 의의가 자못 크다. <끝>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12.30 17:31

전북문화관광재단, 비상임 이사·감사 최종 선정결과 공고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하 재단)은 지난 26일 비상임 이사감사 공개모집에 따른 최종 선정 결과를 공고했다. 비상임 이사는 강신동 한국전통문화전당 이사, 박신 (사)소리문화창작소 신 이사장, 박영자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 성창호 전 서남대 교수, 송영국 전북 무형문화재 위원, 송영희 전 전북시인협회장, 윤점용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집행위원장, 전정구 전 전북대 교수, 최수연 전북관광협회장, 최영기 전주대 교수 등 10명이 선정됐다. 감사는 민경록 노무사, 최종문 공인회계사 등 2명이다. 연임하게 된 비상임 이사감사는 송영희 전 협회장, 최수연 협회장, 최종문 대표 등 3명이다. 앞서 재단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 20일 비상임 이사 25명, 감사 4명 등 후보자를 복수 추천했으며, 이사회 의결로 최종 선정됐다. 임기는 오는 2020년 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2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재단 이사는 △재단 업무에 관한 사항 심의 의결, △이사장으로부터 위임사항 처리 등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감사는 △재단운영과 업무에 관한 사항 감사, △부정부당사항 개진 및 시정요구 등을 맡게된다. 임원 최종 선정 결과는 재단 홈페이지(https://www.jbct.or.kr/post/6256)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문의는 재단 경영지원부 담당자 063-230-7414.

  • 문화일반
  • 이용수
  • 2019.12.29 16:48

[2019 전북문화계 결산 ⑦ 종교] 지정환 신부 선종…세계평화의전당 ‘첫 삽’

올해 전북의 종교계는 큰 아픔과 새 희망을 동시에 안았다. 임실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가 4월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그를 따랐던 종교계와 지역사회에 큰 아픔을 안겨줬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 전주교구유지재단과 전라북도, 전주시가 손을 잡고 9월 전주치명자성지 세계평화의 전당 건립사업에 착공을 알렸다. 불교,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등 4대 종단이 화합하는 세계종교문화축제는 다섯 번째 이야기를 펼쳤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인류의 바람(wish)을 조명하는 종교음악시리즈를 통해 인류가 간직해온 평화의 메시지를 조명했다. △한국에 희망 준 지정환 신부 잠들다 1960년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전북에 오며 지역사회에 희망을 안겨준 지정환 신부가 4월 13일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그는 유럽의 치즈 기술을 한국에 전파하는 데 힘써 임실 치즈의 아버지라 불렸다. 본인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활동에 헌신했다. 전주에 중증장애인의 재활을 돕기 위한 공동체 무지개 집과 무지개 장학재단을 세우고 봉사에 여생을 바쳤다. 4월 17일 전주 중앙성당에서 지정환 신부의 장례 미사가 봉헌됐다. 지정환 신부, 벨기에 출신의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는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에 안치되며 한국 땅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일생동안 종교인의 직책을 다했으며 한국 땅에 정착해 지역주민들이 잘 사는 법을 함께 고민했던 참 목자였기에 그의 삶은 모두에게 오랜 울림을 줬다. 정부는 7월 국무회의에서 고 지정환 신부에게 농림축산식품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전주 치명자성지 세계평화의 전당 착공 9월 전주 치명자성지 세계평화의 전당 건립사업의 첫 삽을 떴다. 전주한옥마을 인근 치명자산성지 일원 부지 1만7000여평에 피정연수관, 생활체험관, 테마공원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20년 12월까지 건립을 마쳐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고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활력을 이끌어낸다는 취지가 담겼다. 복합기념교육관과 생활문화체험관을 중심으로 교육관, 공연장, 숙박시설, 테마공원 등을 갖춰 운영할 계획이다. 천주교 순교성인의 정신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전주 치명자성지를 사업부지로 택한 것은 배려와 화합의 가치를 지향해온 전북고유의 정서에 부합한다는 취지에서다. △기독여성 공동체 전주YWCA 창립 50주년 기독여성들의 공동체 전주YWCA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에 4월 전주 바울센터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예배와 기념식을 열고 100년을 이끌어갈 비전을 선포했다. 이 자리에서 권경미 회장과 이사, 위원, 회원들은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며 △회원운동- 생명공동체 민들레50+운동 △평화운동-일상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 △청소년운동-거리의 성자 방애인장학회 설립 등 세 가지 비전을 외쳤다. 지역사회와 함께 생명으로 열어온 50년, 평화로 이어갈 100년을 향한 희망의 빛을 비춰나가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9월에는 창립 50주년 비전사업의 일환으로 거리의 성자 방애인 장학회를 출범했다. 이를 통해 주체적이고 건강한 청소년을 발굴하고 격려하겠다는 계획이다. 12월에는 1999년 <전주YWCA 30년사> 이후 20년의 역사를 정리해 <전주YWCA 50년사>에 담아 발간하기도 했다. △우린 하나 예술로 어우러진 종교축제 평화를 주제로 종교간 화합과 상생의 장 세계종교문화축제는 전라북도가 주최하고 세계종교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주관해 전주, 익산, 김제, 완주 등 전북지역과 임진각에서 4일간 다섯 번 째 이야기를 펼쳤다. 축제 개막식이 열린 전주 경기전 광장에서는 불교, 기독교, 원불교, 천주교 등 종교음식과 종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와 각 종교별 뮤지컬과 합창, 연극 공연이 펼쳐져 시민과 관광객의 이목을 불러 모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만개한 연꽃 향으로 물드는 완주 송광사 백련지에서는 올해도 제8회 송광 백련 나비채 행사를 열고 클래식 음악 선율을 선보여 지역사회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 특히, 올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종교음악시리즈를 통해 삶의 기원으로 빚어낸 종교음악을 조명했다. 조지아 정교회 고음악, 클래식 영성음악, 전북영산작법보존회와 영남 아랫녘수륙재보존회의 불교의식이 축제의 면면을 장식했다.

  • 종교
  • 김태경
  • 2019.12.29 16:48

진안 수선루,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됐다

진안 마령면에 있는 수선루(睡仙樓)가 제2055호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진안 수선루를 포함한 전국 10건의 누정(누각과 정자)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누정 문화재는 △진안 진안 수선루 △강원 강릉 강릉 경포대 △경북 김천 김천 방초정 △경북 봉화 봉화 한수정 △경북 청송 청송 찬경루 △경북 안동 안동 청원루 △경북 안동 안동 체화정 △경북 경주 경주 귀래정 △대구 달성 달성 하목정 △전남 영암 영암 영보정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시도 지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등록된 총 370여 건의 누정 문화재에 대해 전문가 검토를 거쳐 총 14건을 국가지정문화재 검토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후 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지정가치 자료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신청단계부터 협업해 최종적으로 이번에 10건을 보물로 신규 지정하게 됐다. 진안 수선루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누정과 달리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거대한 바위굴에 딱 들어맞게 끼워 넣듯이 세워져 있다. 수선루는 자연 암반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세워졌으며, 자연에 일체화시킨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의 조합은 당시 획일적인 누정건축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 누정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10건의 누정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12.29 16:48

‘사회적 동물’ 타인과 조화 이루며 사는 우리들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 한국화가 김승현 씨는 화단을 채운 여러 종류의 식물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식물이 겉모습과 성격 모두 다르지만 영양분을 나누며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처럼 우리네 현실에서도 소외되고 뒤쳐진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가 되길 바랐다. 21일부터 전주 누벨백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개인전의 주제를 a Society라고 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는 2020년 1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성장하는 나의 모습을 표현한 한국화 20여점을 선보인다. 김승현 한국화가는 선인장은 작가로서의 내면이 투영된 작품이라며 사람들이 약자를 배려하고 타인과의 소통, 유대를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이야기했다. 다채로운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장지와 동양화 물감인 분채를 주재료로 택했으며 가지각색의 모양과 색감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나타냈다. 동양화 채색기법을 주로 활용한 만큼 그림을 통한 시각적 휴식을 제공하고자 했다. 김승현 한국화가는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전주와 완주 등을 오가며 두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 전시·공연
  • 김태경
  • 2019.12.29 16:48

[2019 전북문화계 결산 ⑥ 영화·영상] 전주국제영화제 20주년, 지역정체성 살리기 고심

전북은 올해 시민들과 함께 영화제와 영상산업을 주제로 기념할 일들이 많았다. 전북의 대표 영화축제인 전주국제영화제는 성년을 맞아 새로운 발돋움을 시도했고 전주 영화계의 기반인 전주영화제작소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관객들과 함께 이를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주시민이 만든 전주우리마을영화제에서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영화영산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성년 맞아 영역 확장 시도한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성년을 맞아 5월 2일부터 열흘간 53개국 275편의 영화와 함께 확장된 전시를 선보였다. 기존 전주 영화의 거리에 집중되던 영화제 공간을 확장해 팔복예술공장으로 프로그램을 넘긴 것이 눈에 띄는 변화였다. 전주 원도심 밖으로 영역을 넓히면서도 현대영화의 실험적인 경향을 반영해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다. 영화제의 20년 역사를 돌아보기 위한 특별 기획 뉴트로 전주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섹션도 올해 관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한국경쟁 배우상 부문을 신설했으며 국제경쟁 시상 규모를 키워 영화제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었다. 20년간 축적해온 영화제의 자산을 돌아보기 위한 아카이빙은 다소 미흡했다는 평을 받았다. 지역과 함께 해온 영화제의 정체성을 보다 견고하게 만들려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인력이 간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개편 진통새 얼굴 맞이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이사회는 이충직 집행위원장을 이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함께 만들어갈 새 집행위원장을 찾는 과정에서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와 이상용장병원 프로그래머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래머가 이사회는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했으며 지난 7년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11월 집단 사임함에 따라 올 초 영입한 문성경 프로그래머만 남게 되자 조직위는 프로그래머를 공개모집했다. 조직위는 12월 10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이준동 신임 집행위원장을 위촉하고 26일 신임 프로그래머에 전진수문석 씨를 선발했다. 이준동 신임 집행위원장은 20년간 쌓아온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과를 이어받아 영화제의 노하우와 정체성을 지키는 데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양한 지역 목소리 담아낸 상영 축제도 풍성 자연과 함께 하는 영화 소풍 무주산골영화제는 일곱번 째 여정을 치렀다. 닷새간 25개국 101편의 영화와 함께 관객들이 즐길 수 잇는 각종 체험행사와 토크쇼, 콘서트 등을 선보였다. 지난 2001년 전주시민영화제로 시작한 전북독립영화제는 멀쩡히 살구 있는 우릴 보라라는 이색적인 슬로건과 함께 19번째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소개하는 메이드 인 전북 등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전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정부의 경제보복과 평화위협 행위가 이어지면서 일본군의 문제를 지적하는 영화도 지역 극장가에서 이목을 끌었다. 인권운동가 김복동의 평화를 향한 투쟁을 담은 영화 김복동, 일본 우익의 실체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주전장 등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등에서 꾸준히 상영되며 관람객을 맞았다. 전주영화제작소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관객들과 함께 만드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십시일관 영화제는 개막일 노무현입니다를 상영하며 닷새간 관객 설문조사 등을 통해 선정한 영화 11편을 선보였다. 전주영상위도시혁신센터시민미디어센터마을발전소 맥이 공동개최한 전주우리마을영화제에서는 시민이 직접 제작한 영화가 스크린에 담겼다. 이는 올 1월 취임한 박흥식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취임 당시 밝혔던 계획 중 하나다. 공동체의 정신을 다지고 전주시민들이 영화와 영상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상영작을 선정했다.

  • 영화·연극
  • 김태경
  • 2019.12.26 17:4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