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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는데

아파트 위층에서 쿵탕거리는 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내는 소리며, 누가 듣는가에 따라서는 하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처음으로 아파트에 살던 시절, 17평으로 기억하는데 위층이 식당을 하는 집이어서 밤이면 12시가 넘을 때까지 마늘을 찧어대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영세 식당을 운영하는 집이라는 걸 알고서는 투정 한번 부려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꼬박 4년인가를 살고 나왔는데 우리가 이사하자마자 그 집도 이사를 갔다고 해서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두 번째 살던 아파트에서는 위층에서 새벽이면 가끔씩 부부싸움하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부부 중 누군가가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술에 취한 날이면 꼭 새벽마다 살림살이가 부서지는 것이었다. 한 번은 아이의 수능시험 보는 날 새벽인데 잠을 깨우는 싸움 소리에 울화가 치밀어 쫓아 올라가 주먹다짐을 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고요한 새벽을 흔들며 위층 방바닥을 구르는 냄비뚜껑 소리에 오히려 낄낄낄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사람 사는 게 참 요란하기도 하구나 하고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15년을 훌쩍 넘기고 나니 서민아파트의 새벽이 오히려 정겨워졌었다.얼마 전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서민들과 함께 사는 어느 원로 시인을 만났다. 그런데 그 분이 마침 아파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위층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날 이후로 가끔씩 콩콩콩 콩콩이를 타는 소리가 났다. 짐작에 서너 살 먹은 꼬맹이가 콩콩이를 타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이건 저녁이건 시도 때도 없이 콩콩콩그 콩콩 소리를 들으며 그걸 타는 티 없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였으며, 어떤 때는 자신도 콩콩이를 타며 그 아이와 함께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어느덧 그 소리를 들으며 산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미안해 할까봐 그동안 한 번도 그 아이를 찾거나 만나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며칠간 그 콩콩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혹시 이 애가 아픈 건 아닌가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걱정이 무르익어 확인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이면 또 어김없이 콩콩거렸다. 참 신기한 기쁨도 있구나, 참 이해 못할 안도의 순간도 오는구나,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위층의 소리 때문에 새벽잠을 깨거나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본 적이 없다. 모두가 생활형편이 나아져서 잡음이 날 일이 없는 것인지, 건물의 방음이 잘 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소란한 소리가 없다. 오히려 새벽이면 스스로 잠이 깨어 창밖으로 안개 자욱한 전주천의 적막을 바라보며 괜스레 쓸쓸해질 때가 많다. 차라리 적당한 사연으로 소리소리 지르며 누군가 싸워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이 아름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슬픈 추억은 영롱한 별처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적신다. 풍요를 지향하는 삶이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빈곤의 시대에 존재한다는 역설 속에 삶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천문학적 유산을 남기고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교육열이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사실은 가난했던 시절처럼 절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 드문 요즘 공부 안 해도 잘 살 수 있는데 구태여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는 속담이 자꾸만 생각난다./ 이세재(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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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2 23:02

[새벽메아리] 혁신과 통합으로 전북 정치에 변화를

정치 혁신과 새로운 통합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서울시장 범야권 통합 단일후보로 박원순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선출되었다. 안풍이 민주당의 조직력을 넘어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후보 선출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기존 정치질서와 정당에 신물을 느낀 시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정치혁신과 통합의 바람을 통한 서울시장 및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결집되고 있는 것이다.전북지역에도 정치혁신과 통합의 바람은 30년 민주당 아성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전북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전북의 대표 주자를 자처하는 정동영 의원은 이미 정치 지도자로서의 역할은 상실하고 매 중요 정치시기마다 헛발질을 하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큰 정치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대권 행보는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되고 있다. 어찌 대권 행보를 하는 사람이 텃밭 지역구 의원직에서 정치를 마치겠다고 호언하는가? 이래가지고야 무슨 대권을 논할 자격이 있나? 지역구를 마치 영구 소유인양 착각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가 본인에 그치지 않고 전염되어 절친으로 미국에서 30년 넘게 학문에 정진하며 한국을 모르던 채수찬 전 의원의 배지를 붙였다 떼었다 하며 정치미아로 만들었다.정치 평자들은 박영선 의원이 비록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정동영 의원과 결별하여 독자적인 길을 간 것이 새롭게 여성정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그녀를 정치에 안내한 정의원은 과거 동작 의원선거에는 왜 나갔는가? 왜 열린 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는가? 반문하고 싶다. 전북의 정치 지형은 정동영 의원의 기득권 사수와 갈지자 행보만큼 뒤틀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동영 의원의 과한 욕심이 지역구 무소속 출마로 배지를 달았지만 '생즉사'이고 지역정치에도 덩달아 퇴물들의 복귀와 잔존을 부채질했다.여기에 질세라 조배숙, 이강래, 강봉균 의원 등도 낙후전북 발전은 안중에도 없고 당직 선거만 있으면 호남 정당의 이점을 통해 당직을 얻고도 중앙에서의 역할은 없고 오직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과히 '방판 당직'이다.잘못된 무소속 바람의 덤으로 의원이 된 한 초선의원은 자신의 과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과한가? 본인이 반인륜적인 민간인 불법도청으로 구속된 전력은 다 잊었는가? 정정당당한 지지운동보다는 공안몰이로 타 입지자들을 압박하며 지역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그나마 정세균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지역구를 서울로 옮겨 종로구 선거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 되고 있다. 정대표도 정동영 의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혁신과 통합의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받아 안고 비움의 정치를 하는 것이 변화와 도약의 정치인으로 종로에서 정치를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처럼 아직도 전북지역은 변화와 혁신의 바람은 안중에도 없고 정치 퇴물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국민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현역 의원들은 인지도가 아니라 선호도 조사를 통해 50%이상 정치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그들이 짠 판을 통한 경선은 의미가 없다. 여기에 젊고 참신한 후보들에게 기회를 부여하여 혁신의 길을 열어야 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도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영기(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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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05 23:02

[새벽메아리] 정전의 추억?

9월 15일 목요일, 대한민국이 40여 년 전으로 되돌아 간 날이었으니. 요즈음 양초를 상비하고 있는 가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필자의 어린 시절인 1970년대 초반 만 해도 각 가정에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에 항상 양초 한 묶음과 통 성냥이 준비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으로 생각하지도 않을 만큼 잦은 정전이 있었고 오히려 코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둠을 무슨 기념일 마냥 즐거워했다.당시 정전이 될 때는 뭐랄까 전조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정전이 되기 전 몇 번의 깜박거림이 있었고 그 전조 증상이 있으면 미리 초와 성냥을 꺼내 놓고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촛불을 통해 종이 벽지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보며 키득거렸고 손으로 온갖 동물 그림자 모양을 만들며 즐거워했다.그 당시의 정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컴퓨터, 승강기도 없었고 냉장고조차 흔치 않았던 때라 단지 TV가 꺼져 연속극을 볼 수 없었던 정도? 잠시 동안의 어둠이 약간 무서웠던 정도?하지만 21세기의 정전은 그야말로 정전 대란이라 불릴 만큼 큰 혼잡을 가져왔다. 예고도 전혀 없었던 터라 승강기에 느닷없이 갇혀 공포에 떨어야 했고, 공장의 조업 중단으로 막대한 생산 차질을 가져왔으며, 은행의 전산망이 중단되어 불편을 겪어야 했으며, 병원에서 수술과 처치가 중단되는 상황과 심지어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군부대마저 정전이 되었으니 어찌 G20 의장국이며 경제 규모 세계 11위의 대국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더군다나 자칫 대한민국 전체가 일시에 정전이 되는 블랙아웃(black out)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하니 국민들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우리를 더욱 분통 터지게 하는 것은 피해 보상에 따른 규정이다. 피해 보상 규정에 의하면 단전 기간 전기 요금의 3배수를 보상한다고 한다. 양식장에서 정전으로 인해 물고기 수 천 마리가 폐사하고 조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이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겨우 수백, 수천원의 보상? 이것은 분명 인재(人災)이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과 현실에 맞지 않는 대응체계, 보상규정 등을 바로 잡아야 한다.하지만 행정의 무능력함과 허술함을 탓만 하기 보다는 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불편함 없이 사용하다 보니 귀한 줄 모르는 게 많다. 물, 전기가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물과 전기를 풍족(?)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없으며 절약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다면 나중에 큰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우리나라는 수력, 화력, 풍력 발전에 좋은 입지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 막대한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원자력 발전이 유일하다. 그러나 안정성과 국민성을 고려할 때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 하여 사태 예방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지금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전원을 꺼야 할 만한 상황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에어컨 온도를 1도 낮추고, 잘 사용하지 않는 전자 제품은 플러그를 뽑아 놓으며 필요 이상의 조명은 줄이고 휴대전화나 노트북 충전기를 계속 켜놓지 않기 등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10% 정도의 전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 한 사람이 어제보다 전력 사용을 10% 줄이면 연간 434억KWh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는 저장이 불가능한 에너지이다. 따라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정전은 불가피하다. 또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금방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항상 그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여 공급을 판단하여야 하고 또 한 번 강조하지만 수요를 감소시키기 위해 절전이 필요한 것이다.정전은 우리에게 더 이상 재미있는 추억이 아닌 뼈아픈 현실인 것이다./ 이재홍 (전주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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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9.28 23:02

[새벽메아리] 녹색관광 전북을 기대한다

아내는 접는 부분이 찢어진 낡은 제주도 관광지도를 투명 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자전거로 제주도 해안도로(280km)를 일주할 때 일정과 느낌을 메모한 지도이다. 3일 동안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4일째 되는 마지막 날에 한라산을 넘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내심 아내의 체력이 견딜까 걱정을 했지만 흔쾌히 따라나섰다.첫날 아침 일찍 자전거를 대여하고 활짝 핀 유채꽃을 뒤고 하며 조금 달리니 보기만 해도 시원한 바다풍경이 우리를 반긴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해안도로를 따라 아내와 단둘이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 물이 얼마나 맑은지 옥빛으로 바닥까지 투명한 협재 해수욕장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물빛의 유혹에 사진을 찍고 말없이 바닷가에 앉아 풍경에 젖었다. 해안도로는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안전한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고, 가는 곳 마다 절경이 계속되어 항상 아쉬움을 뒤로하며 달려야 했다.가다가 경치가 좋으면 쉬고, 날이 어두워지고 지치면 근처의 숙소를 정하면 되었다. 말 그대로 놀멍, 쉬멍, 달리멍, 마음껏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피곤함을 잊은 채 밤늦도록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를 피해 들어간 포장마차의 값싸고 싱싱한 해산물과 주인 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어둠이 깔린 아무도 없는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달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긴 오르막길을 오르며 "이~야야!"고함을 지르며 서로를 격려하고 등줄기에 흐르는 땀과 터질 것 같은 심장의 짜릿한 긴장을 이겨내고,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의 상쾌한 바람, 경험해 보지 않고는 그 기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원하는 곳 어디에나 멈추어 풍경을 감상하고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을 보며 나가 아닌 우리를 발견하는 여행이었다. 용감한 아내는 다시 한번 자전거 여행을 기대하는 눈치다.하늘은 높고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전라북도가 본격적인 축제의 계절과 가을 관광철을 맞아 수도권 등 전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홍보매체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전북을 찾는 관광객은 증가되고 있지만 관광객 대부분이 무료관광객이어서 지역경제 기여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관광객이 체류할 수 있는 상품이 없는 것이 큰 원인일 것이다. 제주도의 올레길이 성공하면서 둘레길, 마실길 등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길을 조성하고 있지만, 너나없이 따라하다 보니 전국 어디나 비슷한 길, 다시 찾지 않아 애물단지가 되는 곳이 적지 않다.얼마 전 군산시가 '생활형 및 관광형 자전거의 활성화'를 위한 자전거 여행 코스를 만든다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 전북의 서부지역은 평야지역과 바다를 낀 절경이 많아 그 어느 지역보다 자전거 관광에 적합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전주, 익산, 군산, 김제, 부안 등을 잇는 자전거 도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만 하다.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도시와 새만금 방조제를 돌아 우리나라 유일의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의 들녘, 변산반도를 도는 코스를 연계한다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지 않을까?올레길을 걷기 위해 먼 제주도까지 가지 않아도 가족, 연인이 함께 우리 땅을 걷고, 자전거로 달리며 우리를 알고 나면, 따로 강조하지 않더라도 애향심, 애국심이 절로 생길 것이다. 그동안 잠시 들러 가는 관광지라는 지적을 받아오던 전북이 훈훈한 인심을 느끼는 마음의 고향,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고장, 진정한 휴식과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저탄소, 녹색관광을 선도하는 관광지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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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9.21 23:02

[새벽메아리] 추석과 알밤과 초콜릿

고향 뒷동산에는 키 큰 밤나무가 있었다. 어린 시절, 추석 무렵이면 알밤을 주우러 새벽같이 그 밤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이슬에 젖어 촉촉한 황토 위에서 반짝거리는 갈색의 알밤, 밤송이의 속살에서 금방 떨어져 나온 알밤 밑동의 뽀얀 색깔, 그것을 손에 쥔 감촉은 참으로 행복했다. 먹기 위해 알밤을 주웠지만 그 맛의 즐거움은 잊은 지 오래이나 알밤을 손에 쥔 순간의 아름다운 감각은 오늘까지도 내 신경과 세포를 간질인다.생각해보면, 새벽 알밤줍기는 먹거리가 궁핍했던 시대의 동심을 움직이는 생존의식만은 아니었다. 키 큰 나무와 오염되지 않은 흙과 새벽공기와 이슬, 그리고 고요한 밤이 지나면 알밤이 떨어져 있는 알밤나무 밑의 변화 - 살아있는 자연의 숨결과 내 생명의 호흡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지구의 한 지점에서 태어나 짧지 않은 인생길을 걸을 때 가슴에 품을 꿈과 소망의 원천이 각인되는 시간이었다.이건청 시인의 '하류(下流)'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기 나무가 있었네./ 희미한 하류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었네./ 나무가 아이의 잠자리를 찾아와/ 가슴을 다독여 주고 돌아가곤 했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일만 마리 매미 소리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네./ 모든 대답이 거기 있었네./ 그늘은 백사장이고 시냇물이었으며/ 삘기풀이고 뜸부기 알이었네./ 거기 나무가 있었네./ 이제는 무너져 흩어져 버렸지만/ 둥치마저 타 버려 재가 돼 버렸지만/ 금관악기 소리로 퍼지던 노을/ 스쳐가는 늦기러기 몇 마리 있으리./ 귀 기울이고 다가서 보네./ 까마득한 하류에 나무가 있었네."인생은 어쩌면 유년의 기억에서 시작하여 그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순수한 동심에서 인식한 세계의 연소과정이 아닐까. 이건청의 시처럼 인생은 '하류(미래)'로 머리를 두고 꿈을 꾸는 나무와 같다. 백사장과 시냇물과 삘기풀과 뜸부기의 알제법 깊어진 인생의 하류에 도달하여 귀 기울이고 다가서 보면 이런 것들이 정말 삶의 모든 대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시냇가의 백사장에 도시와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삘기풀 대신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으며 뜸부기의 알이 아니라 황금과 명예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어린 시절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삘기풀 하나만도 못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이제 추석을 맞아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명예와 부를 싣고 우리가 만든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고향을 찾아 간다. 수만 가지 사연과 상념들이 함께 가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귀향이다. 고향 뒷동산 새벽의 알밤을 줍던 유년의 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둥치마저 다 타버렸을지라도 꿈을 꾸던 그 나무 밑에 다시 서서 상처뿐인 삶을 어루만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세상에는 아직도 순수한 호흡이 살아있고, 지루하고 혼잡하지만 고속도로의 귀성차량은 아름답다.그런데 우리의 아이들은 알밤을 모른다. 그들은 알밤 대신 초콜릿을 찾는다. 당연하다. 그들의 새벽은 바람이 부는 자연이 아니라 컴퓨터 속의 아바타와 교감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향에는 알밤과 시냇물과 삘기풀과 뜸부기가 없다. 그들은 사이버 세계와 영상을 통해 감각과 정서를 익힌다. 토속적인 알밤의 떫은 풋내 대신 뇌신경을 자극하는 초콜릿의 세계화 된 단맛을 안다. 그들의 잠자리를 찾아와 가슴을 다독여 주는 것은 분명 시냇가의 나무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추석날 알밤 대신 초콜릿을 먹어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 세대가 그들의 꿈을 망가뜨린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은 달콤한 초콜릿 맛에서 더욱 아름답게 꾸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알지 못하겠다./ 이세재 (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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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9.14 23:02

[새벽메아리] 프로야구단 유치 운동 민간 주도로 진행돼야

스포츠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늘 함께 있어 왔다. 스포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과정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했다. 단순히 군사적 목적이나 오락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형성과 민족국가 구축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히틀러와 전두환을 비롯한 파스시트들이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를 정치도구화하기도 했다.전북은 419혁명 이후부터 서서히 호남지역의 대표성을 상실하고 늘 광주전남의 아류로 취급되어 왔다. 특히 518민주항쟁 이후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로 부각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신지역과 맞물리며 호남에서 전북의 존재는 상실해갔다. 유신과 5공 시절 전북의 정치 지도자들의 도덕성으로 인해 박정희 군사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 투쟁에서 주도성을 상실한 것이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는 민주정부 수립 후에도 중앙 정치무대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데 장애가 되었다.전북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에 있어서 국민적 신뢰의 회복과 지도력의 복원이 중요한 요체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전북지역은 국회의장과 당의장 등 화려한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전북이 타 지역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스스로 획득한 권력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요직에 있는 사람도 무늬만 전북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경제 낙후와 더불어 정치의 후진성이 반복되고 있다.분단된 조국의 현실에서 통일 한국을 지향하는 마당에 소지역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공공기관의 지사들이 대부분 광주나 대전으로 이전해갔고 사기업들은 이미 떠났다. 시민사회의 주요한 성과인 국가 인권위 등 각종 기구도 광주에 있다. 한마디로 전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점점 낙후의 길로 나아가며 한층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요즈음 전북에 프로야구단 유치가 화제이다. 혹자들은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웬 프로야구단!" 하며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일부 식자층이나 몇몇 단체 인사들은 과거 전두환 정권의 3S(스포츠섹스스크린)정책을 떠올리며 비판한다. 예산문제와 구단은 있는지 반문하기도 한다. '김연아'와 같은 엘리트 스포츠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 하더라도 스포츠는 이미 시민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문화가 된 것이다. 이제 문화욕구는 정치 경제적 욕구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다. 이는 새삼 거론할 것도 없다.프로야구 문제도 그렇다. 난 근래 야구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제 습관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목포의 눈물'을 들으며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스포츠에 정치와 지역을 개입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지역의 노래를 부르며 지역의 팀을 응원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야구단 유치는 '죽고 죽이는' 여타의 사안과 다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성공하면 좋은 일이요 실패한다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또한 프로야구단 유치에서 관은 구단 유치에 유리한 법적제도적 조건을 갖추며 민간이 주도하는 운동을 측면 지원하면 될 것이다. 벌써 전주시의 유치운동을 전라북도가 빼앗아 갔다고 하는 볼멘소리들이 들린다. 이번 유치위원회 활동은 과거의 LH 운동과는 확실하게 달라야 한다. 언론과 민간에서 야구단 유치를 제안하고 전주 완주 익산 군산이 화답하고 전라북도가 참여했지만 유치운동은 철저하게 민간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도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프로야구단 유치가 성공하길 기원한다. 꽉 막힌 전북인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줄 수 있고 이를 단초로 전북인들이 홀로서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길 기원한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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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9.07 23:02

[새벽메아리] 나도 아빠다

수능이 몇 과목이지?"무심코 고3 부모인 지인에게 질문을 했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고3아빠가 맞느냐는 표정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과목 수는 수험생마다 다르단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3대 조건이라고 한다. 아빠는 엄마의 정보력과 투자에 딴지 걸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면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다. 그래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무 무관심하지 않나 싶어 대학입시관련 정보를 보려하니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알 듯 모를 듯 애매하다.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 수시, 정시, 입학사정관제.주변의 수험생 부모들을 보면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 같은 생활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조기 유학을 보내거나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좋다는 과외선생도 붙여보고 정말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밤 11시가 다 되어 축 처진 책가방을 매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의 야식을 챙기고 다시 과외나 독서실에 데려다 주고 잠시 잠을 청한 뒤 아침에 등교를 시키는 등 모든 일정을 자녀에게 맞춘다고 한다. 심지어 자녀가 잠을 자기 전까지 한 사람은 자녀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한집에 살아도 부부만의 시간을 가져본지가 언지인지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이럴 때 필자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일류대학에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고, 적어도 인(in) 서울은 해야 부모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여긴다. 지금은 힘들다고, 왜 이렇게 몰아붙이냐며 불평을 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어 안정된 삶을 살면 부모에게 고맙다고 할 것이란다. 물론 자녀에게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부모로써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 자체를 비난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부모들이 살아온 경험상 일류 대학은 물질적 풍요로움과 안정된 삶을 위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단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일까? 대학진학에 실패하거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그 동안의 학교생활 자체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아들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고 성적이 좋다 나쁘다 얘기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성적표가 오면 예의상 봉투를 뜯어 확인하지만, 아무런 말없이 아이들 방안에 가져다 놓으면 그만이다. 그 정도의 성적으로 우리 아이들처럼 당당한 녀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사실 예전 내 학창시절의 성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다만, 아들과 진로에 대한 대화의 기회가 있을 때 "서울을 갈지, 부산을 갈지 목적지가 정해져야 버스표를 살 수 있듯, 대학을 가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살면 이 세상이 진짜 재미있겠는지를 고민해라. 정말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며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한다. 그나마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예민해졌는지 듣기 싫어하는 눈치라서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아이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며 너무 무관심했지 않았냐는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얼마 전 목표를 정했다는 아들의 선언이 있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하겠다며 기숙사에 스스로 입소했다. 학교 기숙사 앞에서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녀석을 돌려세워 말없이 부자간에 포옹을 했다. 수능이 끝나면 아들들의 기타, 드럼반주에 맞추어 엄마, 아빠의 오카리나와 섹소폰 합주를 계획해 본다.나도 고3 아빠로서 자격이 있을까?/ 이정상(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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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24 23:02

[새벽메아리] 엔트로피와 교육

과학자들은 우주가 탄생(빅뱅)하여 확장해 가다가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라고 하며 이 우주의 확장을 시간이라고 한다. 마치 유리컵 속에 물을 담고 거기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잉크가 서서히 물에 퍼져나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시간은 멈출 수 없으며 결코 역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그런데 여기서 시간의 흐름은 우주만물의 물리적 변화를 동반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아무리 시간이 흘러 모든 물질이 변하더라도 그 상태가 변화할 뿐 우주의 총체적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1의 법칙과, 또한 그 변화는 점차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다는 열역학 2의 법칙 등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올 여름 어느 방송사에서 방학특선으로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제작하여 방영한 것을 보기도 했다.이 중에서 열역학 2의 법칙을 엔트로피법칙이라고도 한다. 엔트로피란 '무질서의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앞서 말한 잉크와 물에서 순수한 잉크(질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에 확산되면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되는 것처럼 시간은 우주의 에너지를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위가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하여 모래가 되고 결국은 먼지가 되며 사람의 몸도 서서히 변하여 늙고 병들어 결국은 썩어가는 것 등은 모두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인 것이다.이 이론은 물론 물리적 법칙이지만, 비단 물리현상만이 아니라 역사가 흐르면서 문명이 발전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현재의 물질문명은 물론 정신문화까지도 과거의 기준에서 보면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 만약 조선시대의 어떤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 현대의 문명과 정신세계의 질서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물질과 정신이 모두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며 문명의 발전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몇 십 년을 학교교육에 몸담고 있다 보니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현상에 대하여 자꾸만 이러한 이론이 생각난다. 특히 청소년들의 문화는 매우 심각하게 무질서를 향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을 휩쓸던 학교무용론이 이제 우리나라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학교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지면상 구체적인 내용을 전할 수 없어 안타까우나 국가적 역량을 모아서 고민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몇 년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은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를 통해 엔트로피 이론을 설파하면서 "시간은 강물과 같이 흐른다. 강물에 있는 모든 것들은 물결 따라 흐르며 깎이고 닳아서 엔트로피 증가의 세계를 향하여 가지만 단 하나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물고기, 즉 생명이다. 무질서를 향해 흐르는 시간을 역행하여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생명이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이미 과학적 이론 이전에 철학적 사유로 우주의 원리를 통찰하고 있었다.인류는 역사를 통해 자유, 평등, 사랑을 얻었다. 이러한 것이 도올이 말한 생명운동에 속할 것이다. 자유와 평등, 사랑 등의 철학적 사유는 무질서의 인간역사에 질서를 잡아 준 생명력이다. 이러한 생명력은 물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역행하는 일이다.교육은 분명 문명발전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육의 본질은 문명발전의 역행선상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청소와 같다. 인간의 삶은 시간을 타고 쓰레기와 무질서를 향해 달리는데 그 무질서를 되돌리는 청소가 교육인 것이다. 교육이 무너진 세상, 청소와 정리정돈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이세재 (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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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7 23:02

[새벽메아리] 관변구조의 해체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애향'이란 단어는 참으로 정감 있게 다가온다. 매번 들을 때마다 뭉클하며 가슴을 저민다. 전주에서 40년을 넘게 살며 수시로 서울 출장을 다니지만 지금도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서 전라북도 표지판을 보면 왠지 모를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니 명절 때 터미널이나 주요 간선도로, 전북 초입 등에 게재된 현수막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를 보며 출향민들이 느낄 아련함을 생각하며 애향운동본부의 역할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애향'을 이야기하며 사심 없이 전개하는 자발적인 고향 사랑과 자원봉사 활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애향운동본부가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지역발전을 빌미로 패권주의와 대결주의로 타 지역과 분란을 조장하고 지역민을 볼모로 한 대결을 조장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여기에다 자발적이며 독립성을 갖추어야 할 애향운동이 관에 휘둘리며 말로는 독립 운운하고 부화뇌동하거나 대행기관처럼 되어서는 지역구도를 조장하는 큰일 날 조직이다.얼마 전 신문 보도를 보면 '퇴진 압박을 받는 애향운동 본부 간부'가 이사 둘을 새로이 임명하며 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단체인데 일부 인사들이 곡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언사이다. 스스로 지역원로를 자처하는 분이 행할 일이 아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이번 LH유치 대책위 활동에서 애향운동본부는 도 유치활동의 대리 역할을 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재정 지출도 대부분 이를 통해 집행되지 않았나? 도의회와 시민단체들이 애향운동본부의 재정적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시기에 책임 있는 인사의 발언은 딴나라 이야기이다.최소한의 충언조차도 모르쇠나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행위가 과연 지역 원로를 자처하며 수많은 요직을 독식하고 있는 분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아직도 나 아니면?' 하는 모습이 진정한 지역사랑과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 용퇴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애향운동본부는 환골탈태하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출향민들에게 가슴 벅참과 시공을 초월한 동질감을 주고 지역사랑의 모범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바라는 것이다.전라북도도 애향운동본부의 변질에 역할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애향운동의 거듭남과 본연의 역할을 찾는데 전북도가 적극 나서 협조해야 한다. 전라북도는 '관변단체의 활용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김완주 도정이 강 도정을 닮아가는 것, 아니 닮은꼴이 된 것은 '그 밥에 그 나물'인 관변단체를 동원하다 스스로 포위된 것이다. 이것은 본인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강 도정의 권위적 도정과 불통의 도정, 일방통행식과 '오직 한 목소리 아니면 왕따'의 문화를 슬며시 세습한 것이다. 전주시장 시절 '강도정'에 매 사안마다 당한 그들이 임기 초반에 다름과 극복을 호언장담 했지만 눈앞의 '딸랑딸랑'과 단맛에 도취되어 스스로 그들을 닮아가고 역으로 족쇄가 된 것이다.김완주 도정은 아직도 3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이제라도 전라북도는 초심으로 돌아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 김완주 도정은 기필코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낙후된 전북에 실타래 같은 희망이라도 걸 수 있다. 더 이상 전북도민을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비록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어 힘겹지만 전북공동체 만큼은 '더불어 사는 삶'에서 희망의 단초를 내와야 한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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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0 23:02

[새벽메아리] 군대(軍隊)가 아닌 군대(軍大)로

수 일전 얼굴이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젊은 청년이 겸연쩍은 듯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한 눈에 봐도 군인이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각 잡힌 자세와 "~까?", "~다."로 마무리되는 말투는 대한민국 군인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외박을 나와 그 동안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일명 사제 음식들을 너무 과하게 먹은 탓인지 장염에 걸린 듯 했다. 구토와 설사가 심하여 탈수 증상이 겹쳐 있었고 열도 있었기에 수 일 간 입원을 권유하였다.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원이 어려우니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가겠다고 했다. 인근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 중이며 입대한지 얼마 안 되는 그야말로 서열 꼴찌의 신병이라 입원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내무반 생활에서는 증상이 호전되기 어렵고, 이 더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근무를 한다면 상태가 악화될 것이 분명하기에 부모님을 설득하여 부대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입원을 하도록 하였다.신참 의경을 보며 십 수 년 전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던 추억이 떠올랐다. 서른이 넘은 나이, 대부분 처자식도 있는 소위 머리통 굵은 전국의 선생님들을 모아놓은 군의학교에서 과연 제대로 된 훈련이 이루어질까? "8주 훈련기간은 뭐 대충 지나가겠지"하는 나의 생각은 며칠 못 가서 바뀌고 말았다. 머리를 깎고 군복과 군화를 착용하니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은 간 데 없고, 군부대 위병소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의 군인 아저씨들이 조교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구령을 외치며 뒹굴고 있었다. 그 무엇이 이처럼 나이도 많고 잘나게 살아온 이들 조차도 군기가 바짝 든 그 신병처럼 영하의 날씨에 속옷만 입고 연병장을 달려도 불평 없이 따를 수 있게 하였을까? 다름 아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의 규율 때문이라 생각한다.6년 전 GP의 총기 난사 사건, 최근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등 우리 군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군 내부의 폭력과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규율의 부당성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으나 무조건 가혹 행위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체벌이나 구타를 없애고 선임병의 횡포를 막는다고 간부가 아닌 선임들에게 명령을 할 수 없게 한다면 대부분이 외아들로 부모의 끔직한 사랑을 받고 자라온 다양한 개성의 젊은이들을 2년 여 시간 동안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전문가는 아니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 교육의 개선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중고 학교생활에서 조직사회의 규범과 역할 수행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교육과, 단체 생활을 통한 이타심과 협동심을 길러야 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부모들의 원성과 질책이 두려워 학생들 지도에 소극적이며, 거침없는 아이들의 반항이 두려워 쓴 소리에 인색한 선생님들을 탓하기 전에, 학교를 학원에 갈 때까지 시간 때우는 장소처럼 만들어 버린 정책 당국에 지적을 보낸다.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려면 군대는 필수적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선풍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모 가수는 병역 면제를 위해 약속을 저버리고 미국 국적을 유지한 괘씸죄로 팬들에게 조차 외면당한 채 입국 금지라는 극형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 임명에 따른 청문회, 지역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을 뽑는 선거 역시 후보자들의 병역이 최대의 관심사이며 병역 면제 의혹으로 인하여 중도 탈락하게 되는 후보자들도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병역에 대한 생각에는 에누리가 없음이 분명하다."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유행어가 있듯이 반드시 가야 된다면 긍정적이고 자기 개발의 시간으로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 기대감으로 갈 수 있도록, 부모의 입장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보내며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도록, 군대(軍隊)라는 다소 딱딱하고 걱정스러운 이미지 보다 학식과 교양을 쌓고 정신수양을 할 수 있는, 마치 군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라는 의미의 군대(軍大)에 입학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 군 문화에 대한 개선을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군필(軍畢)이란, 이력서 한 칸을 차지하는 의미 이상이니까./ 이재홍 (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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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3 23:02

[새벽메아리] 횡단보도를 보행자에게 돌려주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중간에 미처 길을 건너지 못한 지팡이를 든 노인 한분이 서 계셨다. 마침 신호를 받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진행해오고 있어 그 노인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 도로에서 너무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서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였다. 줄지어 달리던 차량행렬이 끝날 때까지 멈추어 서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자동차 운전자는 신호등이 있을 때는 신호를 준수하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사실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보행자가 자동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눈치를 보고, 자동차가 없을 때 스스로 안전을 지키며 건너야 한다. 따라서 보행자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숨을 몰아쉬며 뛰다시피 길을 건너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다 정지선에 멈추어 보행자를 보내주는 자동차를 만나면 착한 우리나라 보행자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길을 건넌다.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젠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보내주기 위해 멈추어 섰는데, 뒤따르던 차가 필자의 차를 앞서가려고 비켜 나가면서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낸 것이다. 차라리 보행자를 막고 그냥 진행했다면 이런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한 기억이 있다. 보행자가 현실적으로 우선권을 갖지 못하는 횡단보도, 자동차를 피해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면 사실 무단 횡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단 횡단 할 때도 어차피 좌우 눈치보고 차 안 올 때 재빨리 건너는 것이니 말이다.유럽이나 미국 등 교통선진국을 여행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자동차 운전, 특히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무조건,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자동차보다 보행자가 우선이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다가서면 양방향 차량 모두가 정지하고 보행자가 보도에 올라서는 것을 확인한 후 차를 출발시키는 등 무조건 보행자를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으로 여겨지고 있고, 보행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그 결과 인구 10만명당 보행자 사고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가장 높으며, 주요 국가에 비하면 2~4배 이상 높다. 물론 우리나라의 교통사고도 꾸준히 줄고 있고, 교통질서 의식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정지선 준수율이나 안전띠 착용률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다.이제 횡단보도를 주인인 보행자에게 돌려주자. 운행 중 횡단보도가 보이면 미리 속도를 줄여 보행자가 여유있게 횡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신호가 있건 없건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들어서면 무조건 정지하자. 그리고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완전히 건널 때까지 출발하지 말자.또한 운전자들이 횡단보도를 쉽게 알아보고 대비할 수 있도록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주변에 지그재그 차선을 설치하거나, LED조명 설치 등 시설보완도 필요하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주차장으로 착각하는 운전자, 차가 조금 밀린다고 횡단보도를 막아 보행자에게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와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게 하는 운전자는 즉시 단속되어야 마땅하다. 누구나 안전하게 길을 걷고 건널 수 있는 보행권이야말로 인권의 핵심인 생명권이며, 보행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운전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은 군산고와 원광대를 졸업하고 전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운수연수원과 대한산업안전협회공무원교육원 등에 출강, 20년 넘게 교육을 실시해오면서 지역사회 교통안전 파수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지역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교통질서의 중요성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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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7 23:02

[새벽메아리] 새벽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승달 / 숲 사이로 지고 / 높은 벽 밑동아리에 붙어서 / 밤새워 울고 난 새벽 /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아래 / 밤새 울고 난 새벽.'가수 '시인과 촌장'은 새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높고 높은 벽을 넘지 못해 울다가 새벽이 밝아오면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 벽이 사랑의 벽이었건 혁명의 벽이었건 이제는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밤새 울고 난 새벽'이라는 말에는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아픔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은 인간 모두를 한 줄로 묶어서 끌고 가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우리는 시간의 사슬에 묶여 새벽이 오면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만 한다. 아픔을 더 이상 아파할 수 없는 새벽은 그래서 절망의 순간이다.이렇게 넘을 수 없는 벽 아래서 울다가 일어서야만 했던 절망의 새벽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치 호루라기소리와 비명소리 속에서 신새벽 뒷골목 나무판자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썼던 김지하의 시처럼, 또는 어린 아들을 새벽차로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아침 눈길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이청준의 소설처럼, 그런가하면 이 밤이 새면 새벽 먼 길을 떠나갈 사람이여 꼬마인형을 가슴에 안고 기다리겠노라는 최진희의 노래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밤을 지새우곤 그 눈물을 숨기며 새벽을 맞이한다.역설적이게도 새날을 여는 희망의 새벽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절망을 안고 있다. 이것은 절망이 희망을 잉태한다는 것일까, 희망의 끝이 절망이라는 것일까.역사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논할 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경계한다. 과거가 현재를 위해 존재했고 현재는 미래를 위한 시간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매 순간의 삶은 그 자체로서 가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창문이 밝아오는 절망과,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새날에 대한 기대를 함께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절망과 희망의 세대를 인위적으로 단절시키거나 연결시키려는 억지가 개입되면 닭목을 비틀어도 온다는 새벽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요즘의 새벽 세대들은 이기적 욕망과 환락으로 날을 새운다. 그들도 언젠가는 절망하는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 한때 이념과 사상으로 하룻밤의 벽을 쌓고 그 벽을 넘지 못한 눈물이 식기 전에 새벽을 맞이한 세대들의 절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념과 사상을 견딘 후 안개가 걷히는 산골 새벽의 서늘하다 못해 슬퍼지리만큼 맑은 공기를 안다. 그들도 한때는 이념과 사상으로 이 도시를 물들였으나 지금은 그들의 서늘한 새벽 공기로 우리는 숨을 쉰다. 욕망과 환락의 새벽세대들이여!*이세재 시인은 임실 출신으로 전주 우석고 교감으로 재직중이다. 199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같은 해 시문학지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뻐꾸기를 사랑한 나무」가 있다./ 이세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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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0 23:02

[새벽메아리] 전북의 변화·혁신, 민주당 독점구조 타파로부터

전북 정치권은 88년 총선부터 민주당(당명은 수시로 바뀜) 일색이었다. 91년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에는 비례대표 의원을 제외하면 단체장광역기초의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의석을 민주당과 '무늬만 무소속인 민주당'으로 20여 년 동안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거의 모든 선출직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도 전북의 낙후는 점점 심해지며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지속적으로 전북을 떠났다.물론 전북 낙후의 근본 원인은 지난 군사독재 30여 년 동안의 지역간 불균형 발전에 기인한다. 거기에 민주정부 시기에도 수도권 중심의 발전전략이나 지역균형발전도 광주 중심의 권역별 발전전략으로 나아간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 정치권을 좌지우지한 민주당의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지난 30여년 가까이 전북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떡 주무르듯이 요리한 것은 전북의 집권당인 민주당이었기 때문이다.이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이나 연대로 정권교체를 이룩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권교체는 기필코 이루어내야 한다. 하지만 전북은 여기에 더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야권 통합이나 연대에는 '민주당 호남 물갈이론'이 반드시 거론된다. 맞다. 기득권의 포기 없이 어떻게 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난 총선의 교훈이다. 지난 총선에서 전북 민주당 국회의원 30%물갈이는 무능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젊고 참신한 초선의원 3명이 교체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공천 심사위의 칼 끝 배후에 중앙당 당권파들과 얄팍한 계보정치의 그림자가 있어 중앙정치권에 힘이 없는 초선의원 3명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다시는 이처럼 폭거와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공천 물갈이는 말뚝만 박으면 당선되는 분위기에서 정치발전과 지역발전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 다선 의원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교체되는 지역은 '낙하산 공천'이나 '야합에 의한 공천'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변화와 개혁, 쇄신의 바람을 담은 민주적인 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야권 연대 과정에서의 배려도 '각 정당 간의 밀실 야합'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합의 과정'을 거쳐 연합공천이나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더 이상 지역을 소외시킨 중앙정치권에서의 밀실야합은 있을 수 없다.또한 비례대표제에도 지역할당의 원칙이 꼭 지켜져야 한다. 지금까지 비례대표제는 중앙당 당권파들의 자기사람 심기와 해바리기형 서울지식인들의 독무대였고 지역 기반의 당직 인사나 여성, 전문가들은 철저하게 소외받았다. 비례대표도 지역할당과 공개적인 추천과 경선 방식을 도입하면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또한 민주당을 제외한 각 정당들과 시민사회진영의 경쟁력 있는 인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에 후보로 참여하여야 한다.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 밥에 그 나물'을 차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정권교체 없이는 전북지역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도, 개혁적이고 참신한 시민사회인사, 지방자치에서 교육되고 훈련된 인사, 진보정당 후보의 정치권 진입도 사실상 어렵다.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을 목표로 전북지역에 신망받는 각계 인사들로 야권통합 전북추진위를 구성하여 야권통합 운동 전개와 민주당 개혁 및 참신한 인사들의 정치 참여를 지지, 성원하는 활동을 제안해 본다. 공감하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민주당 독점 구조의 타파와 변화와 혁신, 개혁적이고 참신한 신진 인사의 발굴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흐름을 형성해보자.*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시민운동가로, 현재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 운영위원장과 (사)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예원예술대 객원교수, 전북미디어공공성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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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5 23:02

[새벽메아리] 명품 가방 사는 것이 재테크?

얼마 전 대화 중에 우연히 샤테크란 단어를 듣게 되었다. 생소한 단어지만 대강 '무엇에 대한 투자이지 않을까'하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니라 다를까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명품 가방을 미리 사두면 투자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란다.원래 재테크라는 말은 보유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최대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재무(財務)와 영어(technology)의 합성어인 재무테크놀로지를 줄인 말로 원래 기업 경영에서 사용되던 용어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산을 안전하게 불려나가려는 일반 가계에서도 쓰이게 된 말이다. 고전적인 재테크 방법이던 저축이 더 이상 자산 증식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땅테크란 신조어가 생겨났고, 금 값 폭등으로 금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금테크, 절세를 통하여 지출을 줄이는 세테크, 경제력을 갖춘 배우자와 혼인을 통하여 경제력을 확보한다는 혼테크 등 유행어가 알려졌다. 이 모두가 당시의 경제 흐름을 반영하며 나름대로 분석적이며 효과적인 투자 방법이라는 것에 공감한다.하지만 가격이 오르기 전에 샤넬 명품 가방을 미리 사두면 이익을 낼 수 있다라는 샤테크라는 말은 국민적 공감 보다는 과소비를 조장하고 많은 불법 행위를 야기하는 반감을 유발하는 단어인 것 같다. 뉴스에 따르면 최근 인천공항 세관을 통해 적발된 면세 범위 초과 미신고 명품 가방 적발 건수가 전년에 비해 86%나 증가했다고 한다. 샤테크 열풍을 타고 벌어진 결과이다.우리 국민의 이런 명품 사랑에 대해 명품 기업들은 어떻게 보답했을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의 국내 매출은 최근 5년간 많게는 2배 이상 증가하였다. 명품 구입 자체도 증가하였지만 가격 상승에 따른 효과도 크다. 실제 샤넬 브랜드의 모 제품은 3년 사이 2배나 가격이 인상되었다. 유로화에 대한 환율이 낮아졌음에도 가격은 해마다 상승하였다.이처럼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명품 기업들을 배불리며 싼 값에 명품을 구하기 위해 만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쇼핑을 떠나는 일부 소비계층의 행태가 과연 적절한 재테크일까? 명품의 구매는 우월감의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또는 흔히 루저라 불리우는 열등인이 되기 싫은 의식이 명품 구매를 부추기게 된다.그러면 이러한 명품에 대한 잘못된 사랑을 바로 잡고 명품 중독으로부터 대다수의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자기 돈 가지고 명품 인생을 즐기겠다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현실이고 수입명품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백화점과 기업 또한 존재목적이 이익추구에 있는 만큼 부당한 규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결국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하며 명품 구입으로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도록 국민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애국심을 갖도록 교육이 필요할 것이며 기부 문화의 확산을 통한 나눔 정신, 그리고 대기업이나 부유층들이 도덕적이며 솔선수범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사회적으로 충만해지도록 하는 것이 샤테크와 같은 희귀한 신조어를 더 이상 탄생시키지 않는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국산 제품의 질을 향상시켜 가격 경쟁을 통한 판매 우위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다행히 우리 지역에서는 3초마다 한 번씩 볼 수 있어 3초백이라 한다는 가방이 그렇게 자주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이 진품이든 짝퉁이든 무조건적으로 구매하지는 않는 수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하다. 우리 전북도민들은 지역사회 문화를 사랑하고 국산품을 애용하여 대한민국에 투자하는 현명함을 보였으면 한다.샤테크보다는 대한민국에 투자하자라는 의미의 코테크(코리아에 재테크)가 어떨까?/ 이재홍 (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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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06 23:02

[새벽메아리] 언어구사의 바로미터는 인격이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조선중기 작자미상의 이 시조는 지적(知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적(情的)인 느낌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즉 무익하고 불합리한 말은 화(禍)의 근원이 되기에 조신(操身)하라는 경고로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진리가 아닌가 한다.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에다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수단이 곧 언어다. 생각이 맑으면 말 또한 맑게 전달되며, 생각이 저속하거나 어두우면 표출되는 말은 야비하고 거칠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는 재물을 잃는 경우가 있더라도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는데, 신뢰는 곧 언어로부터 시작되며, 그 언어는 자기를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 솔직담백해야 상대를 이해시키며 설득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하다보면 자칫 실언 할 수도 있고, 본심과는 달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서 곧바로 후회하기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지식과 교양과 자존심으로 쌓아 올린 그 인격체가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으며, 원인은 모두 자기로부터 시작되어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한 번 왔다 가면 같은 유형으로는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데, 시간과 기회와 말(언어)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짧은 생각으로는 시간은 무궁무진한 것 같고, 기회는 일생동안에 세 번은 온다고 하고, 말은 하고난 뒤 번복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앞에 언급한 말은 말장난이었을까?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사상의 누각처럼 인격이 덜 갖춰진 지식만으로는 존경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교양인 또는 지성인을 가늠하는 척도 중 대표적인 것은 그 사람의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다. 말(言語)에는 질서가 있어야 듣는 사람이 혼란이 없으며, 작은 혀(舌)놀림이 자신을 더럽힐 수도 있고, 나아가 생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 남을 저주하는 말이나 감정이 담겨진 악의(惡意) 있는 비판은 자신에게 엄청난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에세이에 '미인은 말(언어)을 할 줄 알아 꽃보다 낫고, 꽃은 향기가 있어서 미인보다 낫다. 동시에 미인과 꽃을 한 손에 쥘 수 없을 땐 향기만을 뿜는 꽃보다는 말을 하는 꽃을 택하겠다.'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까지 예쁘게 화장을 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얼굴만 단장하는 사람은 덜 행복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고개는 끄덕여진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의 독선을 넘어선 유연함으로 서로의 가슴을 여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큰 장벽이 무너질 것이며, 선과 악이 대칭되는 잣대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시선을 멈춰야 할 것 같다.목표를 추구하는 삶을 영위할 때, 인간의 능력은 더 발전하고 사회에 이로움을 준다고 한다. 눈이 떠있는 모든 시간에는 해야 하는 말, 농담이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신중하게 전달하고, 아름다운 자기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표현 수단인 말을 부드럽고 정감 있게 구사해보자.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위가 되며, 행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된다. 인격은 바로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의 재능과 세상에서의 필요가 교차되는 그 곳에 당신의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를 고품격으로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내가 표현하는 언어는 내 모든 것들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된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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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9 23:02

[새벽메아리] 새만금 조력발전, 득실 또는 허실

삼성의 새만금 투자 발표를 지켜보면서 '갈 길이 여전히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어떤 투자라도 정치적 입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삼성의 투자 발표는 어쩐지 어설프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삼성은 그 발표를 신뢰할만한 신호를 우리들에게 보내지 않고 있다. 어쩌랴.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새만금은 농지로 기획되었다가 최근 들어 산업중심 도시로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그 산업이란 것도 녹색산업, 다시 말해 신재생에너지산업이 주력이란다. 심성도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겠단다. 20년 전 방조제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체 거론된 적이 없는 개념들이다. 자, 그러면 매립이 완료되는 10~20년 후에는 또 무슨 산업이 거론될 것인가? 철학 없이 시작된 국토개조 사업은 부평초처럼 시류에 편승하고, 정치에 흔들리며 떠밀려갈 것이 뻔하다.아무튼 현재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재미가 쏠쏠한 산업으로 유치할만하다. 새만금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는데, 그것은 새만금이 사용할 전력의 상당량을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석유, 석탄, 우라늄 등의 '죽은 원료'로부터 벗어나 바람, 햇볕, 밀물과 썰물, 바이오매스 등의 '살아있는 원료'를 주로 사용해야 한다. 새만금 또한 당연히, 아니 더 모범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새만금 마스터플랜'에는 15%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되어있으나, 지금 제시된 방법으로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5MW급 풍력발전기 175기를 세워 전체 에너지의 9.6%를 담당하겠다고 했지만 새만금 그 어디에 그 누가 경제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발전소를 막대한 자금을 들여 건설한다는 말인가? 먼 장래에 기술개발로 인하여 이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85%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래서 석탄부두가 건설되며, 열병합발전소 5개, LNG 공급시설 4개소가 새만금에 건설될 예정이다.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새만금의 모습인가? 회색도시 하나 더 만들자고 그렇게 국토를 깎고 메웠단 말인가? 정녕코 이것은 답이 아니다. 새만금은 지금 계획보다 더, 훨씬 더 녹색으로 가야 한다.그 대안의 하나로 조력발전을 다시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해수유통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그 동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하자, 말자의 일방적 주장보다는 진지하게 득실을 따져보는 기회는 가져야 한다.서해는 세계적으로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조력발전의 적지이다. 이미 시화호발전소가 완공되었으며, 가로림만도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외에 인천만, 아산만, 강화 등에서 서로 하겠다고 난리다. 조력발전은 풍력, 태양광과는 달리 기후와 계절에 상관없이 상시 가동되고, 원자력발전소급의 대용량이 가능하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에너지원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1967년 프랑스 랑스발전소 이후 전 세계 어디에도 건설되지 못한 데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이 방조제를 쌓기보다는 새만금 같이 기왕의 것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 많다.새만금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는 용담댐, 부안댐, 금강에서 가져오고, 농업용수만 자체 조달하기로 되어 있다. 다 아시다시피 새만금은 농지가 72%에서 30%로 축소된 반면 산업관광용지 등은 70%로 확대되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담수호가 여전히 필요한지, 해수유통은 과연 불변의 금기인지 허실을 따져볼 때가 아닌가 한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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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2 23:02

[새벽메아리] 혁신학교, 그 토대는 지역

혁신학교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교육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혁신학교라 명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당수의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교 문화를 바꾸어 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학교 구성원의 자발성과 헌신성에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한 가지를 첨가한다면 지역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그래서 필자는 혁신학교는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지역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지역도 살고 학교도 산다. 흔히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렸다 하며 홍보하는 학교를 보면 하나같이 인근 지역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며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통학하는 학생들로 채워진다.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남한산초등학교나 거산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이 통학을 한다. 현재 전북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러 유형의 혁신학교에서 추후 그 성과를 이야기 할 때, 더 나아가 성공여부를 이야기 할 때 학생수의 증가를 제시할 것이다. 대부분 학생을 다른 지역 학생들로 채워 운영했을 때 이를 성공한 학교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런 경우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가 나타나거나 지역사회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실제 모 초등학교의 경우는 전주, 읍내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 하더라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척에 학교를 두고 원거리 통학을 시킨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지역과 학교가 공존할 수 없을 때 증가한 학생수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더 나아가 지역의 중고등학교와도 연계되어야 한다. 사실 잘 운영된다고 하는 초등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또 다른 상급학교를 찾아 지역을 떠난다. 그 자체의 성과로 끝나고 만다. 심하게 말하면 학부모와 학생은 단물만 빨아먹고 떠나는 형국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당연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역 인재육성의 중요한 틀에서 중고등학교와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가령 어느 지역에 초등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했다면 연차적으로 그 지역의 중고등학교로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고산중학교의 움직임은 삼우초등학교의 긍정적 학교 운영에 기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혁신학교가 지속적으로 학교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혁신학교는 지역 지자체(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당연히 그 지역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지자체가 그토록 교육 분야에 예산을 쏟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이루고자 하는 주체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여야 하고, 지역시회의 고민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혁신학교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요사이 경기도에서 말하는 혁신교육지구와 같은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혁신교육지구는 학교를 넘어 교육청 및 교육지원청, 지자체, 교육시민사회단체 등 지역공동체가 힘을 모아 새로운 교육협력 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현재 학교 교육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혁신학교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혁신학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현재의 우리 교육현실이 암울하게 비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렇지만 여전히 현재의 교육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유는 아직도 열정적인 선생님이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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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5 23:02

[새벽메아리] 찢겨진 현수막을 내리자

'껴안고 죽을지언정 결코 내놓을 수 없다'던 LH공사가 결국 진주로 넘어가고 유치 실패가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비장한 문구의 현수막과 입간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누가 죽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모씨가 이름도 낯선 함거라는 것을 타고 며칠 길거리 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수건 돌리기 식의 책임론 공방이 이어지는 한편으로, 이 정부의 그간 태도로 보아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상경투쟁도 언제 멈춰야 할지 뒷수습이 난감한 형국이 되었다.그간 분산이전 방침을 공언했던 이 정부가 LH 이전문제를 지극히 정략적 속셈에 따라 전북을 버리는 결말로 몰고 간 것은 '국가균형발전' 같은 것은 애초 안중에도 없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일괄유치와 분산유치 전략 중 그 무엇이 현실적이었나 하는 사후논의는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이다.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자면 중앙정부가 국가예산과 권력의 모든 분배권한을 배타적으로 차고 앉아 지방정부를 줄세우고 '구걸 자치'로 내모는 현재의 정치 현실에 있을 것이다. 이 구조에서 중앙권력을 누가 먹느냐는 정말 사활적인 게임이 되고 만다. 예산철이 되면 줄줄이 중앙부처 앞에 기다리고 서서 애걸복걸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오늘 전주가 내일 진주가 된들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그러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것으로 전북의 정치권은 면죄부를 받아도 좋을 문제인가. LH문제를 도정 최대 현안으로 잔뜩 부풀리고, 관의 위세에 힘입어 전북 곳곳을 현수막으로 도배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면, 그에 합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누구하나 화끈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이 아니라 분명한 항의의 차원으로 봐도 그렇다. 그러니 전북이 늘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물이 고여온 전북정치의 현 주소다. 초라한 가장, 누추한 살림살이를 들어 애써 바깥을 탓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서울이나 외국의 이름을 내밀며 또 언제 뒤집힐 지 모를 몇 년 몇 십 년 신기루에 도민들의 눈을 붙들어 놓는 수법을 재탕하는 것도 이제 좀 접자. 도민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주는 '논두렁' 정치는 넘어서자. 지방자치 20년, 경쟁 없는 안주의 정치 20년 동안 지역사회의 제반 영역에 굳은살이 박히고 동맥경화증이 너무 심해졌다. 물이 오랫동안 고여 쉰내가 난다면 대접을 뒤집어엎고 새 물을 채우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쓰여진 그 문구 그대로 책임도 지지 못하는, 찢겨진 현수막은 빨리 내리자. 걷어치우자. 도민들의 마음 속에서 지금 거세게 흔들리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그 무서운 민심의 깃발에 먼저 머리를 숙이자. 그런 다음에 전북을 물먹인 이 정부를 넘어설 진짜 큰승부를 준비하자. 지역을 가르고 끊임없이 줄세우는 이 '구걸의 자치' 구조 자체를 들어엎고 진정한 균형발전의 큰 깃발이 전국에 나부끼게 하자./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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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8 23:02

[새벽메아리]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가쁜 숨결로 살았던 아름다운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가고, 우리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슬픈 추억을 그리게 하는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가 교육이기에 '교육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자나 깨나 자녀들의 교육, 취업, 성공적인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옆을 돌아다 볼 틈을 내지 못하고 산다. 엊그제 입학한 학생들은 벌써 한 학기의 중간을 훌쩍 넘어 선 시간에 머무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교육이라는 특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사회제도로 조직된 학교사회는 개인이 지식과 교양을 쌓으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직업을 얻으려는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 집단이다.교육의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데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교육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현실교육은 본질에서 멀어진 틀 속에 갇혀 편향된 이념의 답보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엘리트 양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극단적 물질주의를 더욱 가속화시켜 사람냄새를 잊어가게 하고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 낼 뿐이다.교육이 지향하는 근본이념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아야, 오늘의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교육의 제자리란 지적수준을 향상시키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르침과 비틀거리는 공교육이 정상화되어 그 곳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며, 교육의 정초(定礎)가 된다.공교육 회복의 관건은 사도(師道) 확립과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합류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인성교육에 있다. 인성은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가진 사회 안에서 그 사회의 영향에 의해서 이룩되는데, 그 안내원은 바로 교육자들이다. 좋은 교사가 좋은 제자를 키워내고, 교사들의 탁월한 지식(학문성)과 인격 그리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교단의 권위가 바로 설 때 공교육이 사는 길이다.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오직 지적 향상만을 지향하는 학교교육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데 있으므로 이제는 옛 것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정립으로 돌파구를 찾아가야 한다.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칭찬했는데, 국내에서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어지며,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난리들인데, 이런 이면을 제대로 알면서 칭찬하는 것일까? 야멸차고 냉철한 이성으로 살아갈 사람들만 가르쳐내는 현실의 교육에서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주말도 없이 책상에 매달려 밤 12시가 다된 시간에 퇴근하는 선생님과 교복 입은 학생들의 귀가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이것이 인문계고교의 현실이며, 하루 세끼를 교내에서 해결해야 하고 넓은 운동장은 쓸쓸히 비어있으며, 24시간 중 3분의 2를 학교에서 보낸다.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틈만 나면 배우라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학생들은 부와 명예를 얻는 성공과 출세를 하려고, 영어의 나라 미국을 꿈길에서도 동경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시에 올바른 인성을 지닌 인간으로 자라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40여만 명의 이 땅의 선생님들이여 ! 어려우시겠지만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당신들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페스탈로치의 봉사하는 정신과 교육이념에서 우러난 따뜻한 가슴으로 성적이 조금 모자라도 꿈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신다면, 우리 교단의 새싹들이 밝은 모습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리라 믿습니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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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1 23:02

[새벽메아리] 보국탑의 부활

1935년 모리라는 일본인 지주가 군산 월명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 천황에 대한 충성의 징표로 5층 석탑을 세운다. 그것이 보국탑(報國塔)이다. 모리는 노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만주에서 장사를 해 돈을 모았으며, 그 후 군산으로 와서 농장과 정미소를 운영하며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던 자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민족정기를 세우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이 탑은 파괴되어 시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 탑이 최근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물론 파괴되었던 터라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학계에서는 일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식민지로 삼았지만 근대화에 이바지한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이 논리는 압제를 정당화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풍조가 도시재생이나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까지 스며들고 있어 우려스럽다.군산이 대표적이다. 군산에서는 일제가 남기고 간 낡은 건축물을 보수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근대문화도시를 조성한다며 낡은 은행건물이며 창고를 복원하고 있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강점기에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 근대문화유산 투어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유산을 배경으로 영화들이 촬영되고, 근대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세미나가 이어졌다. 근대문화 해설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시립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도 상당수의 유물이 근대라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국탑도 시립박물관 야외에 전시된다.심하게 말하자면 일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군산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광복된 지 어언 66년, 글로벌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웃인 일본을 과거의 감정으로 대하거나 그 잔재를 애써 지울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미화하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은행의 복원도 좋지만 그 은행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우리의 재산이 빼돌려 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도 좋지만 이 항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근대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은 환영할만하나, 그것이 한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형성하거나 나아가 선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 36년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이며, 일제문화는 우리의 치부다. 철면피가 아니고서야 어찌 치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우리나라가 근대국가가 아니듯이 군산은 물론 근대도시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들이 군산을 마치 일제가 갑자기 건설한 신도시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나온 '群山市史'에 보면 "개항 당시의 군산은 약 150여 채의 한옥이 산재할 뿐"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정말 그럴까? 조선시대 인구센서스에 해당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18세기말 군산에는 4,446호 14,649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사조차 식민사관에 의하여 날조된 거짓말을 그대로 싣고 있으니 딱하기 그지없다. 군산이 근대문화로 재미 좀 보려거든 역사의식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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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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