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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언어구사의 바로미터는 인격이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조선중기 작자미상의 이 시조는 지적(知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적(情的)인 느낌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즉 무익하고 불합리한 말은 화(禍)의 근원이 되기에 조신(操身)하라는 경고로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진리가 아닌가 한다.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에다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수단이 곧 언어다. 생각이 맑으면 말 또한 맑게 전달되며, 생각이 저속하거나 어두우면 표출되는 말은 야비하고 거칠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는 재물을 잃는 경우가 있더라도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는데, 신뢰는 곧 언어로부터 시작되며, 그 언어는 자기를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 솔직담백해야 상대를 이해시키며 설득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하다보면 자칫 실언 할 수도 있고, 본심과는 달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서 곧바로 후회하기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지식과 교양과 자존심으로 쌓아 올린 그 인격체가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으며, 원인은 모두 자기로부터 시작되어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한 번 왔다 가면 같은 유형으로는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데, 시간과 기회와 말(언어)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짧은 생각으로는 시간은 무궁무진한 것 같고, 기회는 일생동안에 세 번은 온다고 하고, 말은 하고난 뒤 번복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앞에 언급한 말은 말장난이었을까?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사상의 누각처럼 인격이 덜 갖춰진 지식만으로는 존경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교양인 또는 지성인을 가늠하는 척도 중 대표적인 것은 그 사람의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다. 말(言語)에는 질서가 있어야 듣는 사람이 혼란이 없으며, 작은 혀(舌)놀림이 자신을 더럽힐 수도 있고, 나아가 생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 남을 저주하는 말이나 감정이 담겨진 악의(惡意) 있는 비판은 자신에게 엄청난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에세이에 '미인은 말(언어)을 할 줄 알아 꽃보다 낫고, 꽃은 향기가 있어서 미인보다 낫다. 동시에 미인과 꽃을 한 손에 쥘 수 없을 땐 향기만을 뿜는 꽃보다는 말을 하는 꽃을 택하겠다.'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까지 예쁘게 화장을 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얼굴만 단장하는 사람은 덜 행복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고개는 끄덕여진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의 독선을 넘어선 유연함으로 서로의 가슴을 여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큰 장벽이 무너질 것이며, 선과 악이 대칭되는 잣대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시선을 멈춰야 할 것 같다.목표를 추구하는 삶을 영위할 때, 인간의 능력은 더 발전하고 사회에 이로움을 준다고 한다. 눈이 떠있는 모든 시간에는 해야 하는 말, 농담이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신중하게 전달하고, 아름다운 자기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표현 수단인 말을 부드럽고 정감 있게 구사해보자.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위가 되며, 행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된다. 인격은 바로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의 재능과 세상에서의 필요가 교차되는 그 곳에 당신의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를 고품격으로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내가 표현하는 언어는 내 모든 것들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된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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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9 23:02

[새벽메아리] 새만금 조력발전, 득실 또는 허실

삼성의 새만금 투자 발표를 지켜보면서 '갈 길이 여전히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어떤 투자라도 정치적 입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삼성의 투자 발표는 어쩐지 어설프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삼성은 그 발표를 신뢰할만한 신호를 우리들에게 보내지 않고 있다. 어쩌랴.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새만금은 농지로 기획되었다가 최근 들어 산업중심 도시로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그 산업이란 것도 녹색산업, 다시 말해 신재생에너지산업이 주력이란다. 심성도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겠단다. 20년 전 방조제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체 거론된 적이 없는 개념들이다. 자, 그러면 매립이 완료되는 10~20년 후에는 또 무슨 산업이 거론될 것인가? 철학 없이 시작된 국토개조 사업은 부평초처럼 시류에 편승하고, 정치에 흔들리며 떠밀려갈 것이 뻔하다.아무튼 현재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재미가 쏠쏠한 산업으로 유치할만하다. 새만금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는데, 그것은 새만금이 사용할 전력의 상당량을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석유, 석탄, 우라늄 등의 '죽은 원료'로부터 벗어나 바람, 햇볕, 밀물과 썰물, 바이오매스 등의 '살아있는 원료'를 주로 사용해야 한다. 새만금 또한 당연히, 아니 더 모범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새만금 마스터플랜'에는 15%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되어있으나, 지금 제시된 방법으로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5MW급 풍력발전기 175기를 세워 전체 에너지의 9.6%를 담당하겠다고 했지만 새만금 그 어디에 그 누가 경제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발전소를 막대한 자금을 들여 건설한다는 말인가? 먼 장래에 기술개발로 인하여 이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85%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래서 석탄부두가 건설되며, 열병합발전소 5개, LNG 공급시설 4개소가 새만금에 건설될 예정이다.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새만금의 모습인가? 회색도시 하나 더 만들자고 그렇게 국토를 깎고 메웠단 말인가? 정녕코 이것은 답이 아니다. 새만금은 지금 계획보다 더, 훨씬 더 녹색으로 가야 한다.그 대안의 하나로 조력발전을 다시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해수유통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그 동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하자, 말자의 일방적 주장보다는 진지하게 득실을 따져보는 기회는 가져야 한다.서해는 세계적으로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조력발전의 적지이다. 이미 시화호발전소가 완공되었으며, 가로림만도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외에 인천만, 아산만, 강화 등에서 서로 하겠다고 난리다. 조력발전은 풍력, 태양광과는 달리 기후와 계절에 상관없이 상시 가동되고, 원자력발전소급의 대용량이 가능하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에너지원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1967년 프랑스 랑스발전소 이후 전 세계 어디에도 건설되지 못한 데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이 방조제를 쌓기보다는 새만금 같이 기왕의 것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 많다.새만금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는 용담댐, 부안댐, 금강에서 가져오고, 농업용수만 자체 조달하기로 되어 있다. 다 아시다시피 새만금은 농지가 72%에서 30%로 축소된 반면 산업관광용지 등은 70%로 확대되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담수호가 여전히 필요한지, 해수유통은 과연 불변의 금기인지 허실을 따져볼 때가 아닌가 한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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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2 23:02

[새벽메아리] 혁신학교, 그 토대는 지역

혁신학교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교육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혁신학교라 명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당수의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교 문화를 바꾸어 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학교 구성원의 자발성과 헌신성에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한 가지를 첨가한다면 지역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그래서 필자는 혁신학교는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지역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지역도 살고 학교도 산다. 흔히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렸다 하며 홍보하는 학교를 보면 하나같이 인근 지역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며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통학하는 학생들로 채워진다.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남한산초등학교나 거산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이 통학을 한다. 현재 전북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러 유형의 혁신학교에서 추후 그 성과를 이야기 할 때, 더 나아가 성공여부를 이야기 할 때 학생수의 증가를 제시할 것이다. 대부분 학생을 다른 지역 학생들로 채워 운영했을 때 이를 성공한 학교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런 경우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가 나타나거나 지역사회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실제 모 초등학교의 경우는 전주, 읍내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 하더라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척에 학교를 두고 원거리 통학을 시킨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지역과 학교가 공존할 수 없을 때 증가한 학생수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더 나아가 지역의 중고등학교와도 연계되어야 한다. 사실 잘 운영된다고 하는 초등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또 다른 상급학교를 찾아 지역을 떠난다. 그 자체의 성과로 끝나고 만다. 심하게 말하면 학부모와 학생은 단물만 빨아먹고 떠나는 형국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당연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역 인재육성의 중요한 틀에서 중고등학교와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가령 어느 지역에 초등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했다면 연차적으로 그 지역의 중고등학교로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고산중학교의 움직임은 삼우초등학교의 긍정적 학교 운영에 기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혁신학교가 지속적으로 학교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혁신학교는 지역 지자체(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당연히 그 지역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지자체가 그토록 교육 분야에 예산을 쏟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이루고자 하는 주체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여야 하고, 지역시회의 고민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혁신학교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요사이 경기도에서 말하는 혁신교육지구와 같은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혁신교육지구는 학교를 넘어 교육청 및 교육지원청, 지자체, 교육시민사회단체 등 지역공동체가 힘을 모아 새로운 교육협력 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현재 학교 교육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혁신학교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혁신학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현재의 우리 교육현실이 암울하게 비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렇지만 여전히 현재의 교육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유는 아직도 열정적인 선생님이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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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5 23:02

[새벽메아리] 찢겨진 현수막을 내리자

'껴안고 죽을지언정 결코 내놓을 수 없다'던 LH공사가 결국 진주로 넘어가고 유치 실패가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비장한 문구의 현수막과 입간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누가 죽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모씨가 이름도 낯선 함거라는 것을 타고 며칠 길거리 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수건 돌리기 식의 책임론 공방이 이어지는 한편으로, 이 정부의 그간 태도로 보아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상경투쟁도 언제 멈춰야 할지 뒷수습이 난감한 형국이 되었다.그간 분산이전 방침을 공언했던 이 정부가 LH 이전문제를 지극히 정략적 속셈에 따라 전북을 버리는 결말로 몰고 간 것은 '국가균형발전' 같은 것은 애초 안중에도 없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일괄유치와 분산유치 전략 중 그 무엇이 현실적이었나 하는 사후논의는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이다.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자면 중앙정부가 국가예산과 권력의 모든 분배권한을 배타적으로 차고 앉아 지방정부를 줄세우고 '구걸 자치'로 내모는 현재의 정치 현실에 있을 것이다. 이 구조에서 중앙권력을 누가 먹느냐는 정말 사활적인 게임이 되고 만다. 예산철이 되면 줄줄이 중앙부처 앞에 기다리고 서서 애걸복걸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오늘 전주가 내일 진주가 된들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그러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것으로 전북의 정치권은 면죄부를 받아도 좋을 문제인가. LH문제를 도정 최대 현안으로 잔뜩 부풀리고, 관의 위세에 힘입어 전북 곳곳을 현수막으로 도배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면, 그에 합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누구하나 화끈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이 아니라 분명한 항의의 차원으로 봐도 그렇다. 그러니 전북이 늘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물이 고여온 전북정치의 현 주소다. 초라한 가장, 누추한 살림살이를 들어 애써 바깥을 탓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서울이나 외국의 이름을 내밀며 또 언제 뒤집힐 지 모를 몇 년 몇 십 년 신기루에 도민들의 눈을 붙들어 놓는 수법을 재탕하는 것도 이제 좀 접자. 도민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주는 '논두렁' 정치는 넘어서자. 지방자치 20년, 경쟁 없는 안주의 정치 20년 동안 지역사회의 제반 영역에 굳은살이 박히고 동맥경화증이 너무 심해졌다. 물이 오랫동안 고여 쉰내가 난다면 대접을 뒤집어엎고 새 물을 채우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쓰여진 그 문구 그대로 책임도 지지 못하는, 찢겨진 현수막은 빨리 내리자. 걷어치우자. 도민들의 마음 속에서 지금 거세게 흔들리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그 무서운 민심의 깃발에 먼저 머리를 숙이자. 그런 다음에 전북을 물먹인 이 정부를 넘어설 진짜 큰승부를 준비하자. 지역을 가르고 끊임없이 줄세우는 이 '구걸의 자치' 구조 자체를 들어엎고 진정한 균형발전의 큰 깃발이 전국에 나부끼게 하자./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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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8 23:02

[새벽메아리]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가쁜 숨결로 살았던 아름다운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가고, 우리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슬픈 추억을 그리게 하는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가 교육이기에 '교육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자나 깨나 자녀들의 교육, 취업, 성공적인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옆을 돌아다 볼 틈을 내지 못하고 산다. 엊그제 입학한 학생들은 벌써 한 학기의 중간을 훌쩍 넘어 선 시간에 머무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교육이라는 특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사회제도로 조직된 학교사회는 개인이 지식과 교양을 쌓으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직업을 얻으려는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 집단이다.교육의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데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교육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현실교육은 본질에서 멀어진 틀 속에 갇혀 편향된 이념의 답보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엘리트 양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극단적 물질주의를 더욱 가속화시켜 사람냄새를 잊어가게 하고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 낼 뿐이다.교육이 지향하는 근본이념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아야, 오늘의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교육의 제자리란 지적수준을 향상시키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르침과 비틀거리는 공교육이 정상화되어 그 곳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며, 교육의 정초(定礎)가 된다.공교육 회복의 관건은 사도(師道) 확립과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합류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인성교육에 있다. 인성은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가진 사회 안에서 그 사회의 영향에 의해서 이룩되는데, 그 안내원은 바로 교육자들이다. 좋은 교사가 좋은 제자를 키워내고, 교사들의 탁월한 지식(학문성)과 인격 그리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교단의 권위가 바로 설 때 공교육이 사는 길이다.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오직 지적 향상만을 지향하는 학교교육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데 있으므로 이제는 옛 것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정립으로 돌파구를 찾아가야 한다.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칭찬했는데, 국내에서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어지며,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난리들인데, 이런 이면을 제대로 알면서 칭찬하는 것일까? 야멸차고 냉철한 이성으로 살아갈 사람들만 가르쳐내는 현실의 교육에서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주말도 없이 책상에 매달려 밤 12시가 다된 시간에 퇴근하는 선생님과 교복 입은 학생들의 귀가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이것이 인문계고교의 현실이며, 하루 세끼를 교내에서 해결해야 하고 넓은 운동장은 쓸쓸히 비어있으며, 24시간 중 3분의 2를 학교에서 보낸다.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틈만 나면 배우라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학생들은 부와 명예를 얻는 성공과 출세를 하려고, 영어의 나라 미국을 꿈길에서도 동경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시에 올바른 인성을 지닌 인간으로 자라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40여만 명의 이 땅의 선생님들이여 ! 어려우시겠지만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당신들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페스탈로치의 봉사하는 정신과 교육이념에서 우러난 따뜻한 가슴으로 성적이 조금 모자라도 꿈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신다면, 우리 교단의 새싹들이 밝은 모습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리라 믿습니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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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1 23:02

[새벽메아리] 보국탑의 부활

1935년 모리라는 일본인 지주가 군산 월명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 천황에 대한 충성의 징표로 5층 석탑을 세운다. 그것이 보국탑(報國塔)이다. 모리는 노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만주에서 장사를 해 돈을 모았으며, 그 후 군산으로 와서 농장과 정미소를 운영하며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던 자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민족정기를 세우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이 탑은 파괴되어 시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 탑이 최근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물론 파괴되었던 터라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학계에서는 일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식민지로 삼았지만 근대화에 이바지한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이 논리는 압제를 정당화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풍조가 도시재생이나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까지 스며들고 있어 우려스럽다.군산이 대표적이다. 군산에서는 일제가 남기고 간 낡은 건축물을 보수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근대문화도시를 조성한다며 낡은 은행건물이며 창고를 복원하고 있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강점기에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 근대문화유산 투어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유산을 배경으로 영화들이 촬영되고, 근대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세미나가 이어졌다. 근대문화 해설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시립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도 상당수의 유물이 근대라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국탑도 시립박물관 야외에 전시된다.심하게 말하자면 일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군산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광복된 지 어언 66년, 글로벌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웃인 일본을 과거의 감정으로 대하거나 그 잔재를 애써 지울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미화하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은행의 복원도 좋지만 그 은행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우리의 재산이 빼돌려 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도 좋지만 이 항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근대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은 환영할만하나, 그것이 한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형성하거나 나아가 선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 36년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이며, 일제문화는 우리의 치부다. 철면피가 아니고서야 어찌 치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우리나라가 근대국가가 아니듯이 군산은 물론 근대도시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들이 군산을 마치 일제가 갑자기 건설한 신도시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나온 '群山市史'에 보면 "개항 당시의 군산은 약 150여 채의 한옥이 산재할 뿐"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정말 그럴까? 조선시대 인구센서스에 해당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18세기말 군산에는 4,446호 14,649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사조차 식민사관에 의하여 날조된 거짓말을 그대로 싣고 있으니 딱하기 그지없다. 군산이 근대문화로 재미 좀 보려거든 역사의식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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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5 23:02

[새벽메아리] 5월에 교사들은

푸르름이 더해가는 5월,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가정의 달답게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행사도 많다. 학교도 중간고사가 끝나고 현장체험학습, 체육대회 등 행사로 이어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또 여기에 스승의 날이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스승의 날이 마음에 편치 않을 때가 많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화되었다. 갈수록 교사의 사회적 존중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정적 직업으로서 선택될 뿐이다. 그래도 이날 안부를 전하는 제자가 있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초임 발령을 부안고등학교로 받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어가는데,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여러 일들이 있다.교직생활 하면서 눈시울 뜨겁게, 마음으로 반갑게 받은 몇 번의 촌지(?)가 기억난다. 초임지 부안고에서 3학년을 맡고 대학 원서를 쓸 때였다. 무척 성실하고 착실한 녀석이었는데, 어느 국립대학의 공업교육과에 원서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점수가 되지 않아 그곳은 힘들다고 하니 제 소원이니 써 달라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오신 어머니는 자식의 소원이니 써 달라고 부탁한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애정 표현이었으리라. 교무실 밖으로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몇 장의 천 원짜리 지폐를 펴더니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한사코 받지 않는다는 말에 서운함이 얼마나 컸던지 눈시울을 붉힌다.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졸업 후 그 아이는 취직을 하고 뒤늦게 대학을 다녔고 언제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신문》을 보내왔다. 그 책 속 쪽지에 "세속적인 빛에 가리어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잠시나마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형식적으로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작년 12월 만남 이후 반년이 흘러가고 있죠. 만남을 기약하며 건강하시고요. 앞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늘 가정에 평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제자가 바랄게요. 제자 올림" 스승의 날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래서 교사로 사는 것이 아닐까?진안에서 근무하면서였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었고 순진한 녀석이었다. 지금은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열심히 근무하면서 가끔씩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녀석이다. 담임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부르더니 종례 끝나고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사거리로 가자 그 애는 가방 속에서 비닐 주머니를 꺼낸다. 그 속에는 예쁘게 익은 살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만 먹으라는 소박한 그의 마음이었으리라. 올해도 스승의 날 무렵에 전화가 왔다. 교사는 이런 보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진안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가르친 몇 명의 제자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을 때 한편 가슴 뿌듯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앞으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교사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희망을 주고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출근한다./ 이상훈(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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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18 23:02

[새벽메아리] 오월의 노래

산색이 참 좋은 때다. 다시, 오월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리 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갈아엎는 달이 사월이라면, 오월은 겹겹이 층을 이루며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자연의 빛깔이 보여주듯 사물의 기운이 충만해지는 때다. 몸과 마음이 자꾸 밖으로만 도는 청년의 시간대다.오월은 특별히 우리 현대사의 시간표에서도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역사의 중요한 고비들이 다 이 계절에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 또래들은 오월만 되면 몸이 막 뜨거워진다.이제 막 싹을 틔운 4월 민주혁명을 뒤집고, 한강을 넘는 탱크와 군화로 장면 전환한 박정희 체제가 백년을 갈 것처럼 위세를 부리던 권력의 출발점이 1961년 5월 16일의 쿠데타였다. 그 오월의 반동을 다시 돌려놓은 것이 1980년 5월의 봄이다. 막 피었다 비바람에 스러진 여린 꽃들처럼 좌절한 민주화의 꿈과 오월 광주 시민 봉기의 핏빛 기억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를 오래 남겼던 역사의 봄이었다.그 짧았던 봄의 마지막 기억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군의 항전 본거지였던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마지막 대치 장면으로 끝난다. 광주항쟁의 마지막 투사 윤상원은 투항을 거부하고 총을 든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 형제들일지도 모를 어린 군인을 겨냥해 끝내 쏘지는 못하고, 그는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완벽한 고립의 순간, 그 새벽에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윤상원은 비바람에 지는 오월의 꽃잎처럼 너무도 이르게 낙화했다.그러나 그것은 단지 쓸쓸한 사라짐은 아니었다. 그처럼 자진해 스러진 수많은 꽃잎들로 인해 1980년대는 사계절이 언제나 오월이었고 오월을 통해서 우리 역사는 평화적 정권교체로, 남북의 화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이제 다시 2011년의 오월. 1980년 광주가 품었던 대동세상의 꿈으로부터 31년의 세월이 지났다. 완벽한 한 세대의 전환이다. 대다수 어린 학생은 518을 교과서로만 기억한다. 좌충우돌 속에서도 한걸음씩 앞으로 전진해왔던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한참을 뒤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오월의 신록이 그 선연한 빛깔로 제 계절을 일러주듯 역사는 굽이쳐도 결국은 제 갈길을 간다. 신민이 국민이 되고, 다시 공감과 참여로 행동하는 시민의 시대로 진화해온 우리 역사의 긴 호흡에서 보면 이 희한한 역주행도 한순간일 뿐임이 분명하다.최근의 민심은 뜨거웠던 오월을 기억하고 다시 역사를 말하는 세대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80년 오월 그때의 내 나이가 된 아이들과 함께, 난 오래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려본다. "꽃잎처럼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일찍 낙화한 꽃잎들을 그리워하며 오월의 헌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 속에서 어떤 비바람에도 지지 않는 그 역사의 꽃들은 여전히 희고 붉다. 그득하다./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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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11 23:02

[새벽메아리] 우리의 교육! 지금쯤은 뒤돌아 볼 때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초목의 생명들이 꽃을 피우고 꿈틀대는 계절의 여왕답게 기념일이 무려 13일이나 되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싱그럽기 그지없는 달이다. 사랑 가득한 가정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며, 정상의 길에서 일탈하는 상당한 학생들의 어두운 미래에 가슴이 아파오는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 평소의 생각을 메모해본다.일등과 일류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면 이 지구상에 남겨질 사람이 얼마쯤 될까? 뒷자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들 나름대로의 빛이 날 것이다. 영재와 수재들이 모여 미래를 그려가는 일류대학에서 발생한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은 어디서부터 기인되었을까?학교의 사명과 기능은 어쩌면 교과교육보다 더 중요한 건전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및 사회성을 고취시켜 주어야 하며, 학생지도의 핵심은 인성지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교권이 위협을 받고, 학교의 기본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서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의 현실은 양적인 팽창은 있을 런지 모르나, 적재적소에 필요한 수준 높은 인재 양성과 배출은 어려울 것이다.교육의 의미는 지적수준을 깨우쳐 끌어 올리고, 인성을 다듬고 함양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며, 탄탄한 인격의 기반위에 쌓여진 지식이라야 영롱한 보석으로 가공 될 것이다.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교육의 장에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론 강제성도 용인되어야 할 것이고,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는 상황에 따라 제한되고 유보될 수도 있어야 한다. 민주교육의 현장에서 체벌의 용납과 인권침해를 정당화 하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지구촌시대에 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그리는 유토피아의 인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즉 가난의 대물림은 교육의 불평등에서 기인되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무척 많은 나라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 사회의 명사님들, 교양취미기술을 생활 속에서 가르쳐 주는 선생님, 주변의 어른을 일컫는 선생님, 작가 선생님 등 존경하고 배우고 이끌어 줄 선생님들이 많은 나라인데도 어쩐 일인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정으로 앞장서서 깨우쳐 주고 질타하는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어째서일까?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사람은 한쪽 눈은 크게 뜨고, 한쪽 눈은 지그시 감아본다고 한다. 떠 있는 눈으로는 현실과 앞을 보고, 감고 있는 눈으로는 이상을 그리고 이면(裏面)을 본다고 한다. 이 땅에 계시는 선생님들!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수십 년을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소질과 특기를 찾아내어 알찬 인생설계로 꿈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지도하실 선생님을 절실하게 찾고 있답니다. 1980년대 이후 교복과 두발 자유화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면서 교단에도 새로운 물결이 밀려와 유능한 교육인재들이 교단을 떠나거나 현장에 있으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결과적으로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신뢰가 줄어드는 풍조가 공교육의 불신을 불러오고 결국 교사들과 학생 그리고 학부형들 모두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본다.교육의 틀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모와 교사다. 덕망과 실력을 갖춘 소신 있는 교사들이 어깨를 펴고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현장의 분위기가 쇄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비포장 길을 의식 없이 터벅터벅 걷는 청소년들을 바로잡아 주는 꾸짖음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머리로만 살아가는 지식 전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바로서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토끼의 해에 토끼와 같은 영민하고 따뜻한 교육의 본틀로 한국사회가 진정한 교육이념이 뿌리내려 교육복지 국가로 거듭 성장하기를 기원해본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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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04 23:02

[새벽메아리] 축제, 그리고 제사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방방곡곡에서 화사한 봄꽃과 더불어 축제가 한창이다. 봄날의 산하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는데 그에 더하여 여기저기서 무슨 축제라 이름 붙여 다양한 즐길거리로 우리를 유혹하니 여간내기인들 어찌 행락을 주저할까. 난장이 벌어지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봄나물과 싱싱한 해산물을 상상만 해도 우리는 벌써 그 곳에 가 있다. 각 지역은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축제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대로 된 축제는 어지간한 산업 못지않은 소득을 안겨준다.그런데 이 축제가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아마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신 또는 자연에 올리는 제사는 반드시 놀이를 동반하고, 그 놀이를 통하여 인간은 신과의 합일을 경험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등 고대사회의 제천의식(祭天儀式)에는 반드시 춤과 노래가 수반되었다. 아리랑의 원무도 기실은 제사의식이다.엘리엇(T. S. Eliot)이 '황무지'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한 것도 죽음과 재생의 순환을 기원하는 곡물제의(穀物祭儀)가 그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또한 만월을 통하여 생명력을 얻고자한 원시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축제 '마츠리'도 제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물론 요즘 들어 제사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제사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식이 변질되고 기능이 약화되었지만 신과 제사는 인간의 의식에서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무의식에서 신화는 여전히 살아있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많은 상징과 기호가 신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융(Carl Jung)은 잘 증명한 바 있다.각설하고 축제의 본질은 제사다. 축제가 돈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축제가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놀고 마시는 것이 전부다. 그 축제를 통하여 '놀이 참가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없다. 제대로 된 축제라면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제사기능이 부가되어야 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를 가보라. 남강을 유유히 떠가는 형형색색의 등에는 각 사람의 소원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유등의 원형은 '위도 띠뱃놀이'이다. 전북은 기막힌 축제의 모티브를 보유했음에도 현대화에 실패했다.1980년인가 필자가 대학 2학년 때쯤이었나. 내가 다닌 대학의 상징이 용이었는데 대학축제가 예나 지금이나 그저 먹고 마시는 것 밖에는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전국에서 용을 테마로 하는 민속을 뒤졌다. 그래서 찾은 것이 '김제 벽골제의 쌍용놀이'였다. 그 해 가을 대학축제 때에 필자는 거대한 용 2마리를 만들어 싸우는 장엄한 무대를 대운동장에서 연출했다. 동원된 학생만 500 명이 넘었다. 사라질 뻔 했던 쌍용놀이는 그 후 벽골제에서 재현되었고 지금은 벽골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놀이 또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제사에서 비롯된 것이다.며칠 전 군산에서 '새만금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기간 내내 시끌벅적했지만 마치 영혼이 없는 허수아비와 춤추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바라고 축제를 열었는 지 알 수 없었다. 민중의 꿈과 그 꿈을 실현해 줄 전능자와 꿈을 비는 행위가 축제의 모티브가 되어야 한다. 축제를 기획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문화인류학에 대한 깊은 소양은 차치하고라도 재미삼아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라도 한번 읽어보시라./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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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7 23:02

[새벽메아리] 진안 어린이날 큰 잔치

오랫동안 진안에서 생활하다가 전주로 온 지 세 해가 되어가지만 진안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버스를 타고 진안으로 가 골목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막걸리를 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곤 했다. 골목집은 3~4평 되는 막걸리집인데, 그 집에만 가면 으레 만나는 친구가 있다.진안에서 18년간 생활하면서 지역 선생님,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일이 많았다. 여러 단체와 연대하여 추진했던 어린이날 큰잔치, 마이 어깨동무느티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학생신문 제작, 청소년 문화축제, 지역을 바로 알기위한 진안역사 골든벨, 통일 골든벨, 전통문화 기행, 벽화 그리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가지고 진안의 수백 군데 마을을 답사하면서 지역 구석구석의 향토를 모아 진안의 마을신앙, 진안의 마을유래, 진안의 탑 신앙, 진안의 마을 숲 등 책을 엮어내고 향토교육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은 필자가 진안 출신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마음은 늘 진안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겸연쩍게 진안이라고 대답한다.그러면서 인상 깊었던 활동은 어린이날 행사와 독서교실이다. 지금도 학생신문과 함께 행하여지는 두 행사는 진안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진 교육활동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고 생각한다.독서교실은 어렵게 사회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으로 시작하였는데 학부모님의 관심과 열기가 대단했다. 독서라는 것이 꼭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자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침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매달 쉬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독서교실이 열린다.진안 어린이날 큰 잔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역의 아이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행사다. 10여년을 이어오는 동안에 지역 초등 선생님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농촌 학생들에게 어린이날을 지역축제로 만든 열정적인 모습은 지금도 살아있다. 진안의 어린이날 큰 잔치는 단순히 어린이날 행사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지역축제가 되었다. 농민회는 어린이날 행사 때 손수 떡을 준비해와 아이들과 함께 떡메치기를 하고, 소방서에서는 아이들에게 소방체험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종교단체는 천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었고, 때로는 개인이 돼지 한 마리를 후원하기도 했다. 어린이날 행사를 도왔던 교대생이 졸업 후 지역 선생님으로 발령받아 진안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무엇보다 진안 어린이 날 행사의 힘은 많은 사회단체의 연대에 있다. 진안문화의집, 진안평생학습지도자협회, 소연문화원, 청소년지원센터, 무진장소방서, 진안농민회, 진안보건소, 진안 청소년수련관, 진안 지역아동센터 등 많은 단체는 어린이날 행사를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선물을 받는 일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준비한 티셔츠는 비록 몇천 원의 값어치에 불과하지만, 혹시라도 늦게 와서 못 받으면 울고불고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느 해인가는 책 선물을 주기도 했고, 자전거를 주기도 했다. 요즘에는 토마토 모종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생명을 가꾸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진안 친구가 집에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 날 이후 아들이 묻는다. "아빠 어린이 날에 진안 갈 거죠?" "그래, 가자." 올해도 우리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한마당 축제가 되리가 생각한다. 언제나 진안 어린이날 행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상훈 (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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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0 23:02

[새벽메아리] 전국은 야권 연대, 전북은 야권 혈투?

427 재보선의 막이 올랐다. 전국 38곳에서 치러지는 이번 재보선은 미니 총선과 지방선거가 결합되어 있는 탓에 내년의 여야 대격돌을 앞두고 미리 보는 시험지, 전초전 같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특히 야권에서는 보수진영의 집권 연장을 막을 가장 강력한 전략으로서 포괄적인 야권 연대, 연합이 유일하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왔기 때문에, 이번 재보선에서 반드시 야권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경남 김해을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되는 과정은 야권 정치세력 공동의 위기의식이 강제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로써 이번 선거는 강원도, 분당과 김해를 주요 축으로 '한나라당 대 야권단일후보'의 일대일 대결 구도로 짜여지게 되었다.그런데 전북지역은 전국적인 야권연대의 흐름과 다르게 야권 내의 혈투가 예상된다. 전주 덕진 제 9선거구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와 야3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연대후보 간 대결구도가 벌어진 것이다. 각 정당의 지도부가 강원, 분당, 김해, 순천에서는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리다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일컬어지는 전북에서는 얼굴을 붉히게 생겼다.먼저, 아쉬운 것은 정동영 의원의 행보다. 바깥을 향해서는 자신이 야권 단일정당론자임을 자임하면서 일정표까지 제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야권연대 실현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다. 만일 정동영 의원이 자신의 영향력이 결코 가볍지 않은 지역구에서 일관된 야권연대전선의 확대를 위해 진보정당, 시민사회를 끌어안는 노력을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 의원 측근 간의 생존게임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선거가 훨씬 재미있어지고 전국적 야권단일전선 흐름과도 맞추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측근 세력 등 민주당 내부의 반발은 일부 있었겠지만 그렇게 확대된 연대 틀 속에서 대선을 종착점으로 하는 야권연대의 현실성과 신뢰를 높여가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원래 우리 몫의 광역의원 선거인데 뭘 야권연대까지.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민주당이 왜 순천은 내놓았던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현재 전북정치에서 민주당의 대표성이 부족해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합치지 않으면 질 것 같으니까 뭉치자, 조금 내주자. 그런데 전북은 굳이 안 내주어도 되잖아." 이렇게 정황에 따라 셈법을 바꿔가며 단순 합을 추구하는 것이 야권단일정당론의 문제의식일 수는 없다.한국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야권연대와 정치혁신이 같이 가야 한다. 큰 승부에서의 승리를 위해, 지혜롭게 합치되 민주당의 퇴행적 행태는 혁신하고, 진보 세력은 좀 더 국민의 눈높이와 호흡하는 대중화의 길을 가야 한다. 기존 정당에서 수렴하지 못한 신진세력들, 시민사회의 다양한 역량들도 합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개방된' 정당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진보정당에서는 민주당이 '호남의 한나라당'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고인 물과 낡은 정치에 대한 뼈아픈 충고가 숨어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면적인 진실일 수는 없다. 정운천 씨가 들으면 서운할 소리이지만, 나는 우리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배제해온 대중의 선택을 진보적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지역감정으로 매도될 것이 아니다. 그러면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온전한 대체재가 될 수 있는가. 지난 20년 진보정당이 거둔 성적표에 답이 있다. 물론 선거제도의 맹점과 오랜 분단체제가 강요해온 이념적 제약도 적지 않게 작용했음을 기억하자. 진보정당의 오랜 헌신과 외로운 깃발이 한국정치의 다양성을 열어놓았음도 잊지 말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민주진보 단일정당으로 함께 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혁신하고 더 진취적으로 개방하며 진보정당은 대중화의 길에 합류하는 '혁신과 통합의 길'. 버스파업을 둘러싼 쟁점으로 비유한다면 파업 노동자와 시민의 입장을 다 같이 아우를 수 있는 큰길을 가야 한다. 그 큰길 위에서 오늘 전북정치의 주류가 보여주는 이 답답함과 한계를 제대로 넘어설 수 있는 너른 들판을 만나게 되길 열망한다./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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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13 23:02

[새벽메아리] 인생은 선택이다

순간의 선택이 자신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운명은 선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가려야 하는 순간의 고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임어당은 "삶이란 영위하는 사람에 따라 난해하고 복잡한 논문이 될 수도 있고, 산뜻하고 부드러운 수필이 될 수도 있다."라고 했다.수필과 같은 삶이란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행복을 느끼는 삶이 아닐까하고, 잠시 생각을 멈춰 본다. 우편물 집배원들 그리고 택배 아저씨들의 힘든 하루가 시작되는 출근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행복을 실어다준다' 라고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갖는다면, 그분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웃으며 일하는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경솔한 선택은 인간을 곤경에 빠뜨리고, 무책임한 선택은 화(禍 )와 해로움을 초래한다.선택은 대체로 자유로운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부모나 형제와의 만남은 자력이나 자기 의지의 범주에서 벗어난 운명이라 할 수 있으나, 일상의 많은 것들의 선택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만을 취한 뒤에 나머지를 버려야 하므로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힘들게 선택했더라도 잘못되어졌다고 생각되거든 바로 철회 할 수 있는 용단이 바보 같은 삶을 빠르게 벗어나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중대하고 비장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힘든 결단은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독백의 문장이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민고민 하다가 경험자를 찾아 자문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해법을 찾으려는 신중한 행위는 행복과 쾌감을 느끼기 위한 선택의 길이다 .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땀과 열정을 바쳐 목적을 이뤄낼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모아야 성공의 문이 열릴 것이다.삶은 부메랑이다. 우리들이 선택했던 생각이나 말 그리고 행동의 결과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되돌아 온다. 모두의 인생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을 결정짓는 3대 선택이 있다. 첫째로 일생을 결정짓는 배우자의 선택은 지혜로워야 하고, 둘째는 삶의 틀을 만들어 주는 직업의 선택은 현명해야 하고, 끝으로 어떤 인생을 사느냐를 가늠하는 가치관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선택은 행과 불행, 성공과 실패의 길이며 지혜와 순발력을 수반하는 판단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거나, 현실의 자기 위치와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을 때의 결단은 분명 자기 인생을 어둡게 할 것이다.우리들의 삶에서 예고 없이 찾아드는 뜻하지 않은 재앙과 이상기류의 불청객인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거센 격랑에서 살아남으려면 평상시의 생각들이 뜻대로 되도록 전력을 다해야만 웃는 얼굴의 현실이 지속될 것이다.살아가면서 가장 큰 실수는 어렵다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이란다. 한 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 동북부지역 대재앙의 극한 상황에서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이냐, 가장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야 하느냐의 인간적인 고뇌의 기로에서 전자를 택했던 한 소방관의 애틋한 사연을 들었던 지구촌 사람들 모두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려야했다.상황에 만족하고 또 그 선택의 결과로 흡족해 하며 살고있는 세상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작은 일에서 부터 크고 중요한 것들까지 매 시간, 매일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며, 그런 선택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신중한 결단이 내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수놓으리라./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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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06 23:02

[새벽메아리] 스마트폰의 그늘

애플의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열풍은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라는 사이버 공간을 형성했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민주화의 불을 지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소셜 네트워크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정보화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마치 시대정신에 부응하지 못하는 낙오자처럼 취급된다. 변화의 속도는 아주 빠르고, 변화의 굽이마다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새로운 정보기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그러나 일견 화려하게 보이는 이런 변화에도 어둡고 쓸쓸한 뒤안길이 있으니, 갈수록 심화되는 정보격차(digital divide)가 그것이다.웬만한 스마트폰은 가격이 100만원에 육박한다. 한 달 사용료는 아껴 써도 5~6만원이다. 겨우 하나 장만해봤자 2년 넘으면 이미 구닥다리가 된다. 시류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다시 개비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지출이 문제가 안 되는 가정도 많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정보화로 인하여 소득이 적은 빈곤층이 겪는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연전에 성실하지만 가계가 곤란한 학생이 있어서 장학금을 주선해 주었더니 그는 장학금을 받자마자 고급 핸드폰을 구매했다. 등록금에 보태고, 책도 사보기를 기대했던 우리의 기대와는 달라서 적잖게 실망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것도 아니다. 그 또래에서는 책보다 휴대폰이 더 중요했을 테니까. 편모슬하에 사는 여고생을 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힘든 일을 하지만 딸이 쑥쑥 커가는 재미로 산다. 그 학생은 유행하는 스마트폰을 갖고 다닌다. 엄마는 딸이 그런 것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 기죽지 않기를 바란다. 그 어머니의 바람은 잘못된 것인가?전북발전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도내 빈곤층은 11만3780명이라고 한다. 이 중 청소년이 2만3690명이다. 요즘 무상급식으로 교육현장이 떠들썩하지만, 감정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는 끼니 못지않게 휴대폰이 중요하다. 그들은 휴대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밤샘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으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세상과 소통한다. 요즘은 엥겔지수 못지않게 가계에서 통신비용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통신지수가 삶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부각되고 있다.가난하니까 정보통신의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것은 사회적 억압이다. 머지않아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사라지고, 태블릿 PC 하나를 들고 등교하는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애플의 iTunes에 가보라. 이미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캠브리지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강의를 오픈하고 있다. 올해는 EBS와 수능의 연계가 더 강화된다고 한다. 핸드폰에 의한 전자투표로 대통령을 뽑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정보통신은 이미 우리네 삶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것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곧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통신의 사각지대를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고, 그들에게 정보화의 샘물을 걱정 없이 마시게 해주어야 한다. 스마트폰의 그늘에서 말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정보빈곤층을 비출 횃불을 준비해야 한다. 이 일이 IT 강국 코리아에 사는 우리의 사명이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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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3.30 23:02

[새벽메아리] 학교 달력

졸업식과 입학식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과거에는 졸업식장이 밀가루 세례나 계란 투척으로 얼룩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사이 졸업식에서는 의례적인 식순은 생략하고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축하공연을 한다든지, 더 나아가서는 선생님들이 무대에 나서 축가를 불러주는 학교도 있다.특히 소규모학교에서는 졸업생이 미래에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개인별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기도 하다. 아예 현수막에 제 몇 회 졸업식이 아니라 '꿈, 생각, 행동이 있는 희망이야기'라는 주제를 적어넣은 졸업식이 진행되기도 한다.입학식도 마찬가지이다. 입학식에서 어떤 학교는 책을 주는가 하면, 교통카드나 앨범, 화분을 선물로 주는 행사로 진행되기도 한다. 또한 상급생이 신입생에게 이름표를 달아주고 오카리나 연주로 축하해 주기도 하며, 심지어 어느 교장선생님은 손수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 행사로, 그리고 학교 교화를 심는 행사로 입학식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예전에 관행적으로 진행되던 졸업식과 입학식이 아니라 학교 축제로 변한 느낌이다.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 둘째딸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2011학년도 학교 달력, 귀 자녀편에 보냈습니다. 학사일정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무심코 지나쳤다. 그리고 책상 위 서류 봉투 속에 탁상 달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학교에서 온 문자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었다.지난해 고3 담임을 하면서 무던히도 많은 대학으로부터 홍보용 달력을 받아 보았다. 대학에서야 홍보차원에서 달력을 만든 지 오래 되었다. 물론 대학마다 학교 학사일정이나 특색을 살려 만들기는 하지만 그런 달력을 볼 때 그렇게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또한 수많은 사업체나 단체에서도 역시 오래전부터 탁상 달력을 만들어 홍보 수단으로 사용해온 터였다.중학교에서 나누어 준 탁상 달력에 학생과 학부모가 알아야 할 학사 일정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이미 여러 학교에서 학교달력을 제작하고 학교 나름대로 내용을 담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학부모 입장에서 학교달력을 받아보니 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와 소통하고자 얼마나 노력하는지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학사일정이야 언제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달력으로 매일 학교 일정을 살필 수 있다는데서 다른 느낌을 주었다.정성이 담긴 학교 달력을 받으면서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학교 로고와 함께 '꿈과 사랑이 가득한 즐거운 학교'란 구호와 매달 새롭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시험, 토요휴무, 현장체험학습, 체육대회 등 그야말로 학사 일정만 국한된 내용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진 행사나 특색사업 이야기도 소개되었으면 보다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또 한 가지는 학교 달력에 들어간 사진이다. 달력을 계절에 맞게 풍경사진으로 처리했는데, 학교행사나 학생들의 행복한 모습으로 채워졌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학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필자의 생각일 수도 있다.그럼에도 새 학기 시작하는 날, 학부모는 무엇보다도 뜻 깊은 선물을 받은 셈이다. "고맙습니다, 전일중학교."/ 이상훈 (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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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3.23 23:02

[새벽메아리] 전북에는 '정치' 가 없다

일본 열도를 강타한 특급 재난 소식에 연일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전주 버스파업 100일을 맞았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100일처럼 설렘 속에서 하루하루를 세는 기쁨이 아니라 칼바람 치는 겨울 거리에서 목쉰 함성과 빈손으로 버틴 100일이기에 버스 노동자들의 심경은 정말 봄이 봄 같지 않을 것이다.겨우내 이를 악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던 승객들의 분통을 따라 저잣거리 민심은 무서운 쓰나미처럼 번져갔다. 버스나 택시 안, 술집에서 만난 보통시민들은 노사는 물론 지역 정치권을 향해 원색적인 욕설을 털어놓았다. 80일, 100일이 되도록 버스파업 하나 해결 못하는 지역 역량에 부글부글 끓는 마음들이 그렇게 분출한 것이다.물론 법원의 교섭권 인정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불법파업 규정이 서로 충돌하면서 노사간 장기대치의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행정이 이 양 측 논거의 사이에 끼어 운신할 폭이 좁다는 말에도 일부 수긍할 점이 있다. 정동영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태도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청문회도 준비한다고 한다. 민주당 시장, 도지사에 유력 정치인이 다 같은 당인 텃밭에서 일어난 노동문제를 여야 대결구도로 희석시키면서 빠져나가나 싶지만 일단 경청해보자.그러나 청문회를 연다면 시민들이 가장 먼저 말을 듣고 싶은 사람 1순위는 정 의원의 표현처럼 '무리한 버티기'를 하고 있는 사업주들이다. 세간의 이야기처럼 도대체 어떤 '빽'이 있길래 그 많은 버스보조금을 그렇게 허술한 절차를 거쳐 편하게 갖다 쓸 수 있는지, 막강한 행정권한을 가진 단체장들의 '중재'와 설득을 쉽게 뭉갤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전국과 지역에서 파트너 당을 바꿔가면서 이른바 정책연대와 선거 캠프 참여를 통해 유력 정당, 단체장과 정치적 특수관계를 맺어온 일부 노동 관계자들도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다.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고 수구세력 집권 연장을 막아야 한다는 열망 때문에 진정한 검증과 경쟁 없이 오래 편안하게 정치적 독점의 과실을 누려온 전북의 정치권 유력인사들도 말문을 열어야 한다. 이른바 토호들과 특정한 학연과 지연, 이해관계로 얽혀서 후견, 지원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을 제때에 반박할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파업 80일을 맞아 버스 승강장에서의 1인 시민시위를 제안한 것은 그것이 노사협상 타결을 위한 무슨 힘있는 사회적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 버스를 기다리는 교통약자의 마음이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단체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에 정말 아쉬웠던 것도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 소통을 만들어내려는 절박한 호소의 부족이었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버리고 속수무책의 진영 대결만 남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목소리라도 내보자는 것이었다.파업이 나날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 측에 아쉬운 마음도 적지 않았다. 시민의 눈높이를 고려한 유연성을 주문하고 싶었다. 오거리 촛불집회에서 이제 노동자가 통큰 결단으로 먼저 파업을 풀어주고 시민들의 지지 속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 어떻겠느냐는 마음 아픈 제안도 했었다. 곧바로 일부 노동자의 항의성 발언도 들었다.그런데 바로 다음날 전북대 승강장 앞을 지나가던 파업시위 행렬 중 한 분이 피켓을 들고 선 내게 다가와 주머니에서 꺼낸 홍삼즙 한 봉을 내밀었다. 추운데 드세요. 아니, 먼저 드셔야. 서로의 입장을 넘어 건네진 그 작은 소통이 못내 안타까워 난 아직 음료팩을 뜯지 못하고 있다. 버스는 여전히 파업중이다./ 이재규 ( '희망과 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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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3.16 23:02

[새벽메아리] 건강한 내일을 위해서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호탕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소중한 내 인생에서 어떤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무엇이 나를 초조하고 가슴 아프게 했을까.새해 들어 어느 일간지를 읽던 중 눈에 띈 기사가 있었다. '출세의 대가가 단명을 불러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과연 성공과 단명은 상관관계가 얼마나 깊을런지! 이 시대 최고의 성공 아이콘으로 불리는 CEO 스티브 잡스(56세)도 건강문제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다. 29세에 매킨토시 컴퓨터를 출시했고, 35세에 애플을 설립하여 세계적인 IT회사로 성장시킨 유명한 잡스 CEO도 '일찍 성공하면 단명한다' 는 의료계의 정설화된 가설에 해당되는 것일까.성공지향적인 성향과 스트레스가 만들어내는 건강 시나리오는 최악이라 한다. 서울대 임재준 교수의 <가운을 벗자>에서 '성공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에서 그 대가는 수명의 단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과연 짧고 굵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 지, 뒤돌아 볼 때라고 했다. 건강을 잃은 성공이 어떤 의미로 다가 올까.우리들은 눈만 뜨면 경쟁의 늪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 빨리 해결해야 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좋은 환경여건과 높고 힘있는 사람 앞으로 줄을 서야 하고, 너보다는 내가 먼저 해내야 하는 경쟁의식은 지금까지 우리들의 자율신경을 압박해왔으며, 그 길만이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의 양은 어떻게 계산되어야 하며 얼마나 축적되었을까.잘 사는 사람은 요란하지 않고, 좋은 친구는 어렵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욕심을 채우려든다면 과연 그 길이 순조롭게 이루어질까. 우리는 결국 자기만족으로 나름대로의 행복을 그리며 살아간다.행복(충족) 강박증 환자는 만족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욕구 충족을 위해 스스로 빠져 들어가는 늪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의 욕심을 버리면 열 개의 걱정이 없어진다'고 한다. 물질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격도 체면도 친구도 때로는 부모형제도 버리는 사람들, 명예나 권력 그리고 출세 길을 찾아 모두에게서 등을 돌리면서까지 얻어내고자 하는 소유욕과 성취욕이 강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정신과 육체는 멍이 들어갈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업이 되고, 스트레스로 쌓여 얻고자 하는 행복의 화려함의 대가보다 더 큰 돌이킬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일 수도 있으리라.이솝우화에 나온 인간의 수명은 본래 30년인데 인간들이 너무 짧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제우스 신은 나귀에게서 18년, 개에게서 12년, 원숭이에게서 10년을 덜어와 40년을 더해 주어 70년으로 수명을 늘려주었다. 인간들은 25년은 정신과 육체가 성장해가지만 나머지의 세월은 늙어가는 삶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귀에게서 덜어 온 시간은 힘차게 일하는 나이, 개로부터 덜어 온 시간은 가족들을 부양하는 나이, 원숭이에게서 덜어 온 시간은 어린이처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시간이란다. 어찌했든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무엘 존슨이 말한 것처럼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고 했으니, 의미를 재분석해서 오늘을 새로운 모습으로 유쾌하게 활용하고 건강한 삶을 찾아야 할 것 같다.혹여 자기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웃어보면 그 답이 거울에서 나오리라. 평균 수명 80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봤을 때, 삼만 여 날을 다하지 못하는 삶에서 건강을 잃어가면서까지 아웅다웅 성취한 성공과 출세가 과연 어떤 보람이 있을까?/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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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3.09 23:02

[새벽메아리] 상괭이의 죽음을 생각한다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셨다. 날씨는 여전히 싸늘하지만 지난 겨울의 추위에는 비길 바가 아니다. 칼바람 눈보라가 기승을 떨치던 고군산군도에도 동백의 꽃망울이 한층 부풀었다. 이제야 안심이다. 더 이상 그들의 주검을 보지 않아도 될 듯해서.상괭이는 쇠돌고래의 일종으로 동으로는 우리나라에서부터 서로는 아라비아반도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한다. 고래지만 몸집이 매우 작아 상어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주로 근해에 살기 때문에 사람 눈에 자주 띈다. 그러나 겁이 많아 다가가면 곧장 도망간다. 등지느러미가 없지만 카이저수염 모양의 꼬리를 보면 영락없는 고래다. 숨쉬기 위해 물 바깥으로 머리를 쳐들 때나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은 참으로 앙증맞다.옆구리에 젖먹이 새끼를 달고 다니기도 하는데, 새끼는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어미를 행여 놓칠 새라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마치 나들이 나선 어린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 같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사람처럼 젖이 두 개가 있다고 하여 人魚라고 표현하였다. 그 이름의 뜻을 알 수 없으되 다만 볼품없는 고래라는 뜻의 상경(常鯨)에서 유래하지 않았나하고 짐작할 뿐이다.이 상괭이가 새만금 호수에서 떼죽음 당했다. 안타깝다. 발견된 사체만도 200여 마리. 사인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들이 많았으나 부검 결과 이상한파로 호수가 얼어붙자 물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지 못해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양식장의 전어나 장어, 숭어가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기는 했지만 고래가 얼음에 갇혀 질식사했다는 소식은 전대미문이다.상괭이의 죽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새만금 호수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하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 그리고 왜 호수에 갇혔으며, 얼마나 많은 개체가 서식하고 있으며, 무엇을 먹고 번식하고 있느냐하는 것을 밝혀야 한다. 이 문제를 풀다보면 자연스레 새만금 호수의 생태계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둘째, 상괭이를 보호할 체계적인 방법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상괭이는 국제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포획과 거래가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판장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다. 딴 어종을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든 이른바 혼획으로 잡힌 것들이다. 우리나라 학계에서 상괭이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연구와 조사는 주로 울산의 고래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차제에 학계, 관계뿐만 아니라 NGO 등도 나서서 이 보호종의 안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셋째, 상괭이가 새만금 인근 해양생태계의 건강함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순천의 시조(市鳥)는 흑두루미이다. 서천군의 군조(郡鳥)는 검은머리물떼새이다. 다 천연기념물로 자기 고장은 깨끗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일환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숨 쉬며 살아가는 포유류의 질식사를 전례 없는 강추위로 인하여 생긴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고 간단히 치부해서는 안 된다. 상괭이의 죽음은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가 우리의 숨통을 서서히 죄어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상괭이는 해양에서뿐만 아니라 하구나 강 등 민물에서도 잘 산다. 염도가 낮아서 못살지는 않는다. 새만금에 서식하는 상괭이가 그 개체수를 꾸준히 보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이 사건은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새만금이 친환경적으로 개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니까. 아이콘 없는 새만금에 상괭이가 아이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연성 (군산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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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3.02 23:02

[새벽메아리] 학생이름

우수(雨水)가 지났다. 그렇게 추웠던 겨울도 지난 듯 그동안 얼어붙었던 것들이 녹아내린다. 노오랑 개나리와 연분홍의 참꽃, 하얀 목련도 필 날이 멀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새로운 학생을 만날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이름대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이름을 신중하게 잘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은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하여 살아간다는 말일 것이다.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나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준다. 아니면 작명가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평생 불릴 이름이니 얼마나 고심하며 지었겠는가. 하지만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막상 작명한 이름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고, 호적에 올릴 때 착오가 생길 때도 있다.요사이는 자식 이름을 지을 때 한글 이름으로 많이 짓는다. 부르기도 좋고 예쁘다. 필자도 그렇게 지었다. 큰딸은 푸름이 둘째 딸은 푸른들이라 지었다. 셋째는 아들인데 한자로 산하(山河)라 지었다. 그런데 둘째딸 이름은 커갈수록 뭔지 모를 아쉬움과 어색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친구들이 '푸들'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아직 이름을 새롭게 지어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금도 한자로 항렬대로 짓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혹 아이가 성장하여 이름이 맞지 않으면 새로 이름을 지어줄 생각이다.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직생활을 하면서 이름에 얽힌 한두 가지 일화는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한 학생의 이름은 '이나'였다. 성은 '이'가고 이름이 '나'였다. 무척이나 특이하여 언니나 오빠 이름을 물어보았다. 오빠는 없고 언니 둘이 있는데, 큰언니 이름은 '겨자씨'였다. 성경에서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말하는 그 겨자씨를 의미했다. 작은 언니는 '딸기'였다. 지금 이분들이 결혼하여 살고 있으니 30~40여 년 전에 지어진 이름으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이름이라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이름 때문에 고생한 학생들도 있다. '일성'이라는 이름은 북쪽 김주석 이름이라서 놀림감이 되어 일찍이 개명했고, '완용'이나 '원균' 등 이름도 마찬가지다. 학생 이미지와 이름이 맞지 않아 고생한 아이들도 있었다. 초롱, 샛별, 큰별, 소망 등의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학생생활이 이름과 걸맞지 않아 놀림감이 되기도 하여 개명한 경우도 있다.여기까지 왔는데, 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수업을 할 때 번호 보다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학생들을 새롭게 만나고 몇 달이 지나고도 이름을 알지 못하여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할 때, 교사 스스로 화끈함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실천이 중요하다. 교사의 조그마한 관심이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다. 학생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면서 말이다.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학생 이름부터 알고 보다 관심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훈 (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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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23 23:02

[새벽메아리] 버스파업, 시민의 입장에서 풀자

버스파업 70일을 넘겼다. 처음엔 며칠 참으면 되는 일로 알았는데 연말을 넘겨 이제 봄을 앞두고 있다. 유별난 엄동설한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가장 고통 받은 이는 학생, 노인과 주부 등 교통약자이다. 물론 명절을 낀 두 달간 생활비 없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버스노동자들도 몸이 시리다. 다 우리 이웃들이다. 아프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두 달을 넘긴 지금도 해결의 전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전세버스도 행락객을 찾아 갈 것이고 개학으로 버스 수요는 배가될 터인데 대치국면만 고조되면서 곧 터질 풍선처럼 뭔가 정점을 향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버스파업은 기본적으로 노사문제이니, 바깥에서 별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노사의 불법행위는 별도로 처리할 수 있지만 사태를 해결할 유효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무한정 양자의 선의와 양식을 촉구할 뿐 방법이 없는 문제인가. 원래 파업이라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측이 사용자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이고 기업주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비용이 타협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커지기 전에 노사협상으로 이를 수습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버스 같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사업장은 그 공공성 때문에 행정이 나서서 대체버스를 투입하고 인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기업주가 경영 압력을 받아 적극적 협상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막대한 보조금이 보여주듯 평소에도 민간 사업주에 대한 혜택을 보장하는 데 비해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한 것이 현실임에도 대항수단은 마땅치 않다. 더하여 파업이 일어나면 행정이 나서서 대처해주는 상황에서 시일을 끌면 대체로 노동 측에 시민의 불만이 쌓이게 되니 파업의 결과는 대부분 노동 측의 사회적 힘의 한계만 확인하고 끝나기 쉽다. 그 때문에 파업이 길어질수록 노동자들은 절망적 심정으로 격하게 나오기 마련이다.민간기업 영역을 넘어서 소중한 세금이 투여되며 시민 다수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런 공공영역의 파업에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 개입해서 사태를 빠른 시일 내에 매듭지어야 한다. 그 출발은 버스파업을 단순 노사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중단이라는 중대 사태로 보고 단기적, 장기적 해법을 내는 것이다.단기적으로는 노사 양쪽의 최대한 양보 가능한 주장을 바탕으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주체들과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들이 사회적 보증을 하는 방법으로 일단 파업을 해결하되 장기적으로는 버스문제를 공공성의 관점에서 해결하기로 하는 것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 85조(면허취소) 1항 2호(사업경영의 불확실, 자산상태의 현저한 불량, 그 밖의 사유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하여 국민의 교통편의를 해치는 경우)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면 전주시가 사업주를 압박하고 노조를 설득할 경로는 얼마든지 있다.버스사업은 시장경제 원리를 넘어 공공적 재정이 충분히 투자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종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또한 제대로 보장이 되는 쪽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버스업계의 구조적 문제 파악은 일단 전주시의회 버스특위가 출범했으니 그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가져가 중장기적 논의의 단초로 삼았으면 싶다. 장기적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는 버스공영화는 우리 대중교통정책의 대전환을 전제로 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재원, 교통망의 재배치 등 큰 변화를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꼼꼼하게 따지며 하나씩 준비하며 가는 게 옳을 것이다.70일을 넘긴 버스파업. 시민들의 발이 길게 편안할 수 있도록 이번의 아픈 경험을 잘 해결하여 두고두고 약으로 삼는 모두의 지혜와 양보가 절실한 때다. 분쟁의 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를 먹여 살리는 버스업의 고객이 누구인가. 자치단체장을 뽑아주고 유력한 정치인들을 세워준 사람이 누구인가. 당신들이 평소에 왕이라고 모시던 전주시민이 지금 가장 추운 곳에서 덜덜 떨며 이를 갈고 있다./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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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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