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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가능하고 믿을만한 백금률

지난 달 칼럼 '언니가 말해줄게'가 나간 뒤 예상치 못한 많은 관심과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다음 칼럼은 언제 읽을 수 있냐는 재촉성 인사를 듣기도 했다. 미혼 뿐 아니라 기혼인 분들도 꽤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고 인류 역사상 가장 알고 싶지만 풀기 어려운 수수께기는 역시 남녀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1600자 남짓한 글 한 편이 가져온 파장이 예상 밖으로 큰데다 다음 글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일상생활이 편치 않았다.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좀 읽힌다는 연애 백서나 남녀심리를 다룬 책 등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배운 괜찮은 연애상대 고르는 방법은 이렇다. 남자는 '외모', 여자는 '상황'.일단 남자는 여자를 판단할 때 외모에 대한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높다. 평범한 외모와 사귀고 결혼하는 남자들은 오랜 시간 만나 그 외모에 익숙해진 탓에 판단 기준이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여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 한마디. 만약 자신이 맘에 드는 상대가 있다면 오랜 시간 그의 곁에 머물길……. 어차피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면 이치에 맞는 행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한편 여자는 '상황'. 딱히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판단과 선택 기준이 달라진다.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에게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었을 때 '여자'라는 답이 돌아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자는 그때그때 다르다. 그리고 노소(老少)를 불문하고 여자 대부분이 그렇다. 남성 여러분들 참고하시길.'예측가능하고 믿을만한 백금률(The Platinum Rule)'. 괜찮은 남자를 찾아 헤매는 여자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꼽으라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겠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재미있게 꾸며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이야기의 핵심은 첫째, 예측가능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일관되게 보이는 남자 즉 '신사'든 '동네 노는 형'이든 감추거나 이중적인 모습 없이 늘 일관성 있게 말하고 행동해서 그 사람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종잡을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졌다면 일평생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긴장하게 될 것이다. 연애할때야 그것이 짜릿함이겠지만 평생 짜릿함에 노출되어 있다고 가정해보라. 잘하면 감전되어 죽을 수도 있다. 둘째,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하든 그 사람이 그랬다면 믿을만한 사람. 덮어놓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면 더 없이 좋겠다. 커피숍에 혼자 앉아 5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는 그. 다음날 전화해서 사정이 있었다고, 미안하다고 짧게 말해도 화가 나는 대신 별일은 아닌지 내가 도울 일은 없는지 슬그머니 걱정되는 그. 이런 마음이 드는 믿음가는 남자라면 결혼해도 괜찮다. 오늘 하루 연락을 했네 안했네, 어떻게 내 카톡에 답을 보내네 안보내네 하는 사이라면 관두는 게 어떨까? 셋째, 백금률(The Platinum Rule) 즉 자기 중심에서 탈피한 뒤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이 원하는대로 대접할 수 있는 남자. 흔히 타인 배려에 대해 논할 때 '황금률(Golden Rule)'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접하라'는 일종의 잠언 성격을 띤 단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내 맘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백인백색'이며 '아롱이다롱이'다. 나는 내성적이지만 상대방은 외향적일 수 있다. 이런 경우 분명 서로 원하는 것들에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타인의 행복을 바라고 도우려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남자라면 한 평생 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남자라면 살아가는 동안 절벽 끝으로 내몰리거나 다른 남자는 어떨까라는 위험한 호기심 따윈 생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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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12 23:02

의사와 교사

의사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고, 교사는 학생의 인성과 지성을 다룬다. 의사와 교사 모두 사람을 상대하지만 의학은 날로 발전하는데 교육은 답보 상태처럼 보여서 안타깝다. 교육도 의술처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을까?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욕설, 왕따, 자살, 학업중단, 학교폭력 등이 도를 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학교폭력을 근절하기로 하고,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은 교육감과 교장을 직무유기 및 직권 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이는 학교폭력의 발생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그 책임을 학생과 교원에게 묻는 셈이다. 학교폭력을 수그러들게 할 방법이 없을까. 교육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품성은 영유아기 때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영유아기 때부터 인성교육을 제대로 하면 학교폭력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부모 교육은 TV방송 채널 하나를 전용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여성가족부가 맡는 영유아 보육지원 사업을 교육과학기술부로 이관해서 일관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행정을 개편해야 한다. 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이에게 각종 예방접종을 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는 것은, 미리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영유아기 때부터 하는 인성교육은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학력보다 인성이 먼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학교의 책무는 학생의 학력을 신장시키는데 있다. 학력신장을 위한 교과부의 노력은 눈에 띄지만 결과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한 예로 교과부(홈페이지, 10.3.18.)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가 일정 기준 이상인 학교를 09년에는 1440개교 8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였고, 10년에는 신규로 추가 지정하여 교당 최대 1억원까지 학력향상중점학교로 지정하여 지원하였다. 지난 10월 몇 언론은 성공하지 못한 정책이었다고 평하였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하여 기초학력미달학생을 가려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지도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의사는 환자의 증세를 파악하기 위해 문진을 하고, 다양한 장비를 이용하여 검진한다. 또 같은 환자라 하더라도 나이, 성별, 건강의 정도에 따라 달리 치료한다. 병을 고칠 수 없는 상황이면 더 나은 병원으로 보낸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지도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사가 환자를 면밀히 진료하여 처방하듯이, 교사도 학생의 내면을 잘 알고 지도할 것이 요구된다. 학생을 열심히 가르치다가 학생이나 학부모와 마찰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다. 심지어 학생이 교사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폭행을 하는 일도 있다. 이런 때에 교육 책임자는 백년지계라고 하는 교육을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려고 무리하지 않아야 하며, 국가는 영유아기 때부터 바른 인성 교육이 시행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어떠한 교육도 현장 교사가 외면하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의사에게는 부와 명예가 따른다. 학생을 잘 가르치는 교사에게는 무엇이 따르는가. 자존감을 상실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교육에 대한 한없는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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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05 23:02

도시녹지 이제는 관리가 필요할 때

만산홍엽의 가을 산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짙은 회색빛으로 모습을 바꾸고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어 계절에 어울리는 수려한 경관과 지역적 전통미를 살리는 지역단위 지방 축제 공개행사가 끊이지 않는 토속적인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봄과 가을의 기간은 점차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그 기간이 늘어나면서 여름에는 매우 높은 고온과 겨울에는 매우 낮은 저온 현상을 보이는 엘니뇨, 라니냐와 같은 이상 기후현상을 나타내는 국가로 분류되어 이러한 기후 변화에 대응한 개선 방안으로 도시녹지 조성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자치단체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몇 년 전만해도 전주시의 여름 기온은 전국 최고의 온도를 보이면서 또한 열섬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전주시의 기온은 지난 1973년부터 2010년 사이에 0.8℃가 상승했고, 강수량은 53.15㎜가 증가했다. 또 2005년을 기준으로 2020년에는 연 평균 강수량이 3.6㎜증가하고, 온도는 1.0℃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전북일보. 2012.10.17) 이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위요(圍繞)된 분지형 지형의 이유가 먼저겠으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도시개발에 기인한 부족한 녹지공간과 이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녹지대(축)의 부족이 더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전주시는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수립 등 푸른도시 조성을 목적으로 공원, 자투리 공간, 도로중앙 분리대, 교통섬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목을 식재하는 등 새로운 녹지 공간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도시 녹지는 건조하고 무더운 도시 내부의 기후를 사람들이 활동하기 적합한 쾌적하고 상쾌한 기후와 환경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도심 내에 식재된 수목은 가로경관의 개선 효과와 함께 도시의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녹지공간의 조성과 함께 기존에 조성된 녹지공간의 관리로 도심 내에 식재되어 있는 수목 한 그루 한 그루가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태풍으로 녹지 내에 부러지거나 도복(倒伏)된 수목을 그대로 방치하고 일부는 산책로 주변에 쌓아두고 있어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바,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 식생 경관의 복원과 함께 이용의 편익을 위한 식생관리가 필요하고, 또한 지역의 정체성과 가로경관을 이루고 있는 가로수는 볼품없이 앙상하고 삭막한 말뚝과 같은 형태로 관리를 해서는 안 되며, 가로경관의 개선 효과와 함께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수목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마을 입구에 지역주민들의 모임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였던 아름드리 노거수(老巨樹)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목과 연계된 지역의 향수가 없다. 마을 어귀에 고즈넉한 자세로 서 있는 노거수는 그 지역의 역사를 말해주고 더불어 이와 관련된 민속적 신앙과도 같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지역민들에게 무언의 전설적 애향심을 갖도록 하는 교육의 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식적 도시 조경의 화려함보다 비록 껍질이 벗겨지고 만고풍상을 견뎌 온 늙은 귀목나무에 더 많은 애정이 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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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8 23:02

단일화는 시작일 뿐

야권 단일후보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오늘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 TV 토론이 열린다. 그동안 야권 단일화논의를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이제라도 두 후보의 면면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이번 토론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토론은 또한 곧 있을 여론조사결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양측이 사활을 걸고 임하는, 그야말로 뜨거운 공방의 장이 될 걸로 예상된다.사실 단일화협상 중단이라는 답답한 상황이 전개된 지난 며칠 동안에도 결국은 두 후보가 다시 단일화논의에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한 국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권교체와 정치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지금처럼 높은 상황에서 단일화 실패란 곧 모든 것을 잃게 됨을 의미한다는 것을 두 후보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후보의 단일화중단 선언이후 문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지율이 요동친 것은 야권단일화의 중요성에 대한 확실한 여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이처럼 후보단일화가 대선의 중심이슈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단일화협상이 급진전을 이루었으니,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과거 노무현후보 시절을 떠올리며 들뜰 만도 하다. 그러나 후보단일화가 정권교체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인정하더라도 지금처럼 단일화프레임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권교체에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야권은 잊어서는 안된다. 과연 이번 선거가 정권교체 그 자체에만 목적이 있는지, 또 단일화라는 정치공학적 과정을 통해 정말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건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단일화는 잠시 제쳐두고 조금만 뒤돌아보아도 우리는 야권단일화라는 게 실상 얼마나 초라한 발버둥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후보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선후보 중 부동의 1위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욱이 지난 4·11총선에서는 야당이 압승할 수 있는 명백한 상황에서도 민주당의 오만과 기득권안주로 인해 야권은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진보정당은 총선이후 도덕성의 근간을 상실한 채 와해되고 흩어졌다. 결국 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철학이 각각 다른 야권이 하나로 뭉치는 단일화전선을 만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그런데 작년 여름 등장한 안철수현상은 한순간에 단일화의 프레임을 바꾸어 놓았다. 정당정치의 근본적인 변화 대 기성정치라는 대립구도로 정치구조가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야권단일화는 기능적 정당연합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위한 파괴적 창조로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여기서 20, 30대를 중심으로 드러난 변화의 열망과 정치쇄신의 요구는 실상 안철수 개인에 대한 지지도 아니고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도 아님을 정치권은 직시해야만 한다. 만약 이러한 정치변화의 열망이 야권단일화의 내용과 틀에 만족스럽게 반영되지 못하면 이들은 하시라도 다시 정치에 등을 돌릴 것이다. 16대까지의 대선은 누가 1,000만표를 얻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고, 지난 17대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후보를 겨우 57만표차로 따돌렸다. 전통적인 1,000만표를 지키면서 플러스 알파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비교적 안정적인 여권지지층을 고려할 때 야권이 단일화를 한다고 해도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박빙의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단일화는 전략과 전술이 아닌, 진정성 있고 과감한 기득권포기가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자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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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1 23:02

언니가 말해줄게

어떤 남자와 결혼하면 좋겠냐고? 언니는 형부랑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부럽다고? 보이는 게 다는 아나지만 그래. 언니가 말해줄게. 이런 꼰대 같은 짓은 내 평생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언니를 이렇게 만든 건 이 세상 아니겠니? 얼마나 답답하면 네가 나 같은 사람(이제 겨우 서른 둘에다가 변변한 연애 전적 하나 없는)에게 어떤 남자랑 결혼해야 좋겠느냐는 말을 하느냐 말이야.결혼적령기라는 건 엄밀히 말해 둘로 나눠 말해야해. 생물학적 적령기와 심리적 적령기로.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야 너는 벌써 시집을 갔어야지.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스무살 전후 즉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가장 생기 넘치고 건강하다고 볼 수 있지. 누구랑? 그야 당연히 남자랑. 내가 말했잖아.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이라고. 이때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신체 건강한 적령기 남자면 돼. 참 쉽지? 그래 만약 우리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동물처럼 종족 번식에만 관심 있다면 이런저런 고민할 필요 있겠니? 그냥 생물학적 나이 따라 서열에 맞는 남성과 결혼하면 되는거야. 하지만 우린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란 말이지. 더구나 대부분 여자들은(언니 포함) 낭만적인 배고픔을 꿈꾸거든. 이게 문제야.자 그럼 이번엔 심리적 연령에 대해 말해줄까? 심리적으로 결혼 적령기는 이 남자랑 같이 살면 우리엄마 없이도 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야. 어렵게 말하자면 기존의 가족 공동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간다고 해도 별다른 후회나 미련없이 새로운 가족구성원이 주는 힘겨움과 애매모호함 그리고 불안 등을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을 때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이것을 구체적으로 풀어 말하자면 그동안 엄마가 하던 역할을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다는 확신, 적어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주는 남자를 만났을 때라고 할 수 있을거야. 어느 정도 헌신과 희생이 네 인생에 비집고 들어온다고 해도 '그까이꺼 뭐' 하면서 웬만한 건 참아주고 싶은 남자, 억세게 운이 좋다면야 네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고 손끝만 닿아도 온 몸이 빨개지게 되는 그런 남자를 만났을 때가 심리적 결혼적령기라고 볼 수 있어. 이 시기는 대중없기 때문에 십대부터 일흔 저 너머까지 아우르지.남자 키, 연봉, 출신대학, 직업, 피부톤의 밝고 어둠의 정도, T.P.O(Time, Place, Object)에 맞는 옷차림의 세련됨 정도, 선호하는 브랜드의 수준 등이 남자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결코 나쁘다는 건 아니지. 그게 왜 나빠? 결혼하고 나면 매일 마주보고 살 얼굴인데 이목구비 착하게 생겼고, 목소리 이선균 뺨치고, 아침마다 원두커피에 토스트 접시에 담아 침대로 가져오는 남자 찾는 게 왜 나쁘냐고. 문제는 그런 남자가 있긴 있으되 그리고 네가 만날 수도 있으되 그런 남자 곁에 있으려면 너도 키 되고 연봉 되고 출신대학 빵빵하고 직업 전문직이고 피부톤도 송혜교 뺨치게 복숭아여야 되고 매달 옷값으로 월급으로 절반 이상 써야한다는 거지. 그래야 그 남자가 너에게 약간의 호기심이라도 가질거야. 아침마다 커피와 토스트를 가져다 주는 남자는 네가 하루 종일 그 접시에 담긴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늘 바비인형 같은 몸매를 유지하길 원할거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니. 그 남자가 자원봉사자는 아니잖아. 네 몸매가 굴곡 없는 30센티 자처럼 통이 되는 순간 모닝커피고 뭐고 사라지고 주말마다 이상하게 반복되는 출장의 진위여부를 남편 몰래 알아내기 위해 진땀 빼야할거야. 다른 여자들도 너와 비슷한 정도의 시력과 안목을 가지고 있을테니까.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궁금하지? 다음 번 언니 칼럼에서 말해줄게. 어떤 남자를 만나야 소위 '저평가 우량주'를 제대로 만났다는 평을 들으며 결혼하는지 말이야. 그동안은 '너 자신을 성장시키는 시간'을 만들도록 해봐. 언니가 다 말해줄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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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14 23:02

교육균등 생각해 볼 때다

학교의 학급 편성은 대개 석차 순위에 의해 한다.따라서 학급은 학업성취도가 각기 다른 다인수로 구성되고, 교사는 중간수준 학생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상위 수준 학생은 학습이 지루하고 하위그룹에서는 낙오자가 생긴다. 이를 보완하고자 수준별 수업·수준별 이동수업을 도입하였지만, 여전히 학력은 하향 평준화되고 부적응아 수가 증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 제1항의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30여명이 수학 공부하는 모습을 가정해보자. 교실에는 선행학습을 한 아이, 학력이 우수한 아이, 보통아이, 지적 능력이 낮은 아이 등이 뒤 섞여 있다. 1학년 수학 교육과정은 자연수 20 미만의 가감산, 시계보기, 간단한 도형 영역 등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학습량이 적고 난이도가 낮다. 이것을 1년간 일률적으로 가르친다. 선행학습을 한 아이와 학력이 우수한 아이는 능력이 제한되고, 학력이 부진한 아이는 능력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한다. 상급학년으로 진급해도 악순환은 계속된다.보통 예체능이나 바둑, 독서 등은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교육을 한다. 김연아, 박태환, 조수미, 이창호 등은 능력에 맞는 교육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교과학습 분야도 능력에 따른 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학습자의 능력이 제한되거나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고, 능력에 상응한 학습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능력껏 공부할 경우 학력격차로 인해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핀란드 교육을 보면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핀란드와 우리의 현실과 제도와 지원의 차이가 크지만 말이다. 핀란드는 학습자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교육을 한다. 먼저 교육과정 편성 권한을 전적으로 교사에게 일임한다. 또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하고, 잘 못하는 아이는 목표하는 학력에 도달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한다. 고등학교는 무학년제, 학점제를 운영하여 학생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교육 관련자들이 핀란드에 가서 장?단기 연수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훌륭한 시책이 나올지 기대된다. 필자는 초·중·고 별 학제는 현행대로 하되, 연령에 따른 학년제를 학력에 따른 무학년제로 전환할 것(2012,7,18,전북일보)을 제안하면서 사다리 학습을 소개한 적이 있다. 사다리 학습은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을 하기에 적절하다. 교과서를 재편성하여 만든 사다리 학습 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고, 학력우수아나 부진아 공히 자기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하므로 학습자의 능력이 제한받지 않는다. 학력 부진아나 학교 부적응아가 발생하지 않고, 학력우수아가 능력껏 공부하기가 좋다. 또한 학년제는 그대로 하고, 학력에 따른 무학년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현 교육체제와도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수월성 교육목적으로 설립한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고, 노벨상 받기를 갈망하면서 능력을 제한하는 교육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사다리 학습은 학생을 성적순으로 나누거나 경쟁을 유도하지 않는다. 수준과 능력에 따라 스스로 세운 학습목표를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다. 학습자의 서로 다른 능력이 존중되고, 타고난 능력이 제한받지 않는 교육방식이다. 수업방법의 왕도는 없지만 사다리학습이야말로 상처받지 않는 인성과 수준에 맞는 지성을 갖춘 인간을 만드는 학습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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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7 23:02

자녀의 학교선택,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신학기가 시작되자마자 2013학년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학설명회가 각 지역교육지원청과 도교육청을 중심으로 개최되고 언론에도 공시되고 있다. 상급학교 진로에 관심이 많은 이웃 학부모님들의 문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정녕 선택에 대한 확신을 주는 정보를 전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높은 학구열은 가히 세계적이다. 우리교육의 우수성은 지난 6월 EBS 주최 국제 컨퍼런스에서 한국식 교육을 도입해 최하위 수준의 학교를 뉴욕시 최우수학교로 탈바꿈시킨 '데모크라시 프렙스쿨'의 세스 앤드류 교장선생님에 의해 또 한 번 입증되었다.지난 시절, 자녀를 둔 현재의 60∼70대 부모님의 학구열은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기'를 기원했으며, 자녀들 또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삶의 좌우명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30∼40대 부모가 갖는 학구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늘의 우리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학업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자율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전인교육을 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시대 변화에 따른 자녀들의 교육적 수요를 위해서 이제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교육공동체로서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역할분담이다. 먼저 가정에서 부모님은 자녀와 가급적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나의 예로 부모와 함께하는 독서는 자녀의 학습습관, 대화예절, 가치관 형성 등 인간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모는 자녀 앞에서 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자녀의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학업지도에도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학교교육의 담당자인 선생님들의 책무는 더욱 막중하다. 학부모님께는 신뢰를, 학생에게는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보다 더 헌신적으로 가르치고 보살피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의 외부공간과 학교생활은 자녀의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 대기오염과 소음 등 불량한 학습 환경 속에서 성장한 자녀보다 녹지가 풍부하고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 것 뛰어놀며 학교생활을 하는 자녀는 정서적 안정감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또 녹지공간에서의 사색과 넓은 운동장에서의 체육활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위한 상급학교 선정은 이 외에도 통학거리, 학교시설, 교육목표 및 인성지도 등 아무리 많은 것을 고려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부모의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한 '아바타'로 키우고 있지 않나 반문하고 싶다. 진정 자녀의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선택이었는가? 선택 이후에는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었는가? 학교는 내 집과 같고 교실은 가정이며 선생님은 부모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뢰를 보낼 때 자녀가 올바른 인성함양과 창의성 있는 진로지도가 이루어졌다 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은 사람이 바꾸며, 사람은 교육에 의해 바뀐다. 따라서 교육은 축복이며,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자녀가 미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그런 학창시절을 만들어 주는 부모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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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31 23:02

대선에서 빠진 것

대선이 이제 겨우 56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미래의 지표가 될 공약보다는 여전히 단일화나 정치적 논쟁이 화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나마 발표되는 공약마저 주로 경제 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앞으로 펼치고자 하는 정책 프레임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공약은 차기 5년간 한국사회를 이끌 새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국민에게 미리 제시하는 것으로서 세부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적어도 5년 후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지구촌사회의 패러다임이 혁명적 수준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의 시대정신과 방향설정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문제이다.현재 인류문명의 큰 흐름이 과거의 물질적인 양적 패러다임에서 사람과 자연 중심의 따뜻한 순환공존체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자연은 이미 우리가 지켜내야 할 보호대상을 넘어 그 원리를 배우고 모방하여 자연의 순환생산을 통해 가치를 창조하고, 그것을 다시 수입과 고용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경제의 모델이 되어가고 있다.변화의 흐름이 이러한데도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이 자연의 원리와 얼마나 반대되는지를 잠시만 돌아본다면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지금의 대선정국에서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갈수록 무더워지는 기후, 지난여름도 우리는 자연적인 순환원리를 찾아보는 대신 실내 공기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에어컨을 풀가동하며 심각한 전력난을 겪어야 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이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된 전체 바이오메스의 0.3%만이 이용된 것일 뿐 나머지는 99.7%는 썩어서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고 자연에 해를 끼친다.이런 식의 성장과 소비 그리고 폐기의 끝없는 과정을 반복하는 현재의 삶의 방식은 그 대가로 심각한 경제위기와 실업, 또 생태계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위기와 변화는 워낙 근원적인 성격의 것이어서 우리가 만일 지금과 같은 개발 방식을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 유지한다면 한국은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고 국제사회의 변화에도 크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이런 와중에 자연의 원리를 모방한 기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자연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청색기술(이인식,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운동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자연모방기술은 이미 활성화되어 우리 주위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나노기술분야에서는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극히 미세한(나노미터)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생물을 본뜬 수많은 신소재가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이다. 현재 청색기술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미국의 경우 뉴욕 에너지개발연구기구는 자연모방기술을 에너지 전략에 포함시켰고, 미국 아카데미는 2008년 과학기술정책 제안서에서 자연중심기술을 미래에 강력하게 추진할 핵심과제로 채택하였다.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색기술만을 통해서도 향후 5년 동안 15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한다. 세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금, 청색기술과 같이 인간과 자연, 그리고 발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쳐 보이는 후보자의 공약을 볼 수 있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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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4 23:02

당신의 습관, 당신의 우주

# 당신의 습관'나쁜 습관 고치기 힘드시죠? 좋은 습관도 그래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듯 나쁜 습관 뿐만 아니라 좋은 습관도 한 번 몸에 배면 여간해선 고치기 힘들어요.'필자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꼭 한 번은 힘주어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주문과 같아서 입 밖으로 나올 때마다 뛰어난 효험이 있다. 성공적인 삶이란 '좋은 습관들'을 유지하거나 '좋은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시간 혹은 경험의 총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데 골몰하기 보다 '좋은 습관'을 관리하거나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화' 시키는 데 집중한다.'습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 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습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행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시때때로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이루어지는 나의 습관성 생각과 행위들……. 습관적으로 내뱉는 '힘들어 죽겠다', '하기 싫어 죽겠다', '내가 하는 일이 다 뭐 그렇지' 등등의 패배적인 말들은 어느덧 습관성이라는 수식어를 매단 채 내 입술에 매달려 있다. 언제든 떨어질 기세다.한 번 넘어지면 삼 년 밖에 못 산다는 삼년 고개에서 수십번 굴러 천수를 누렸다는 선비처럼 역발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다들 하기 힘들어 하는 공부가 습관이 되고, 독서가 습관이 되고, 청소가 습관이 되고, 봉사가 습관이 된다면 이를 어찌할텐가. 습관이라함은 만들기도 힘들지만 없애기도 힘든 일 아니던가. # 당신의 우주-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中)이 역시 필자가 가슴에 담아두고 아끼는 말이다. 우주라는 광범위한 스케일에 압도되어 나와는 별 상관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바꾸시길 권한다. 여기서 우주는 행성이 떠다니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진공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의 습관 그 자체라고 믿으시길. 아침 일찍 일어나 습관적으로 읽은 신문 한 구절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습관 때문에 누군가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수업 전에 지도서를 반드시 살피고 요점을 정리하는 습관 덕분에 최고의 선생님이 될 수 있고, 아침을 꼭 챙겨먹는 습관, 짧은 거리는 걷는 습관 덕분에 건강함이 당신에게서 떨어질 세가 없다.우주는 곧 당신 자신이며, 당신은 당신의 습관들로 어느 정도 정의되고 설명될 수 있다. 새벽 4시경, 알람이 울린다. 아침이라기엔 아직 이른 시각이다. 필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은 방으로 간다. 그리고 1인용 책상에 앉아 하루치 만큼의 詩를 읽고 또 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시와 시인을 만나게 해주셔서 라는 기도도 잊지 않는다. 詩를 외경하는 습관을 지닌 필자를 온 우주가 합심하여 도와줄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뭐든 잘될 거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찾아든다. 오늘 하루, 당신의 습관들이 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하루가 되길. 아마도 당신의 우주가 당신을 돕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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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7 23:02

교수·학습 패러다임을 전환하자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유독 교육만큼은 뒷북만 치면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교육계의 혁신이 가장 더디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왜 그럴까, 국가에서 만들어 준 교과서에 의해 교사 위주의 수업을 하여, 판박이를 만들어 내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교사들이 교사중심의 수업을 받고 성장했을 뿐 아니라 교사 양성기관도 이 시스템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교과서나 교사용 지도서는 교사주도수업에 적합하고, 교사들이 많이 활용하는 사이버 교수 매체도 매우 발달한 교사주도수업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 교육환경이 여기에 온통 물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등학생 중 6만 3501명이 학업을 중단했고(국민일보,12.10.3), 경기도내 다문화가정 자녀는 10명 중 4명꼴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한겨례신문,12.8.15)고 한다. 이는 교사 주도 수업의 한계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교실 안을 들여다보자. 분수의 곱셈을 하는 수업시간이라고 가정하자. 한 반 30명 중에 한 아이는 덧셈을 할 줄 모르고, 몇 아이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며, 어떤 아이는 이미 분수의 나눗셈까지 선행학습을 했다. 이 경우 학력 부진아나 우수아는 본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교사는 교사용 지도서에서 안내한대로 도입, 전개, 정리 과정을 거쳐 수업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간다. 매 수업시간이 이럴 경우 학업을 포기하는 아이가 나오지 않겠는가. 자기 주도적 학습을 권장할 때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한다. 지식을 넣어 넣어주는데 급급하지 말고 공부하는 방법을 일깨워 주라는 것으로, 학습의 계획에서부터 과정 및 결과처리 까지를 아이 스스로 해결할 것을 요즘 교육현장에서 크게 강조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은 자율학습, 야자, 자습 등과는 다른 것으로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문자를 해득하지 못한 아이, 수 개념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 특수교육 대상자와의 경계선상에 있는 아이, 이들이 학습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스스로 결과처리를 할 수 있을까. 고기의 종류, 생태, 어장에 대한 정보, 어선이나 어구 다루는 법, 고기 잡는 테크닉 등에 정통하도록 안내해 주고 고기를 잡게 해야 고기를 잡을 건데. 필자는 40여권의 자기 주도적 학습 자료를 만들었고, 이 자료를 활용하여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을 사다리 학습법이라 명명하였다. 본 학습법을 학력부진아 뿐 만 아니라 우수아에게 적용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본교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로서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학력부진아가 없고 공부에 두각을 보이는 아이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특색이다. 전교생은 작년 3월 18명이었는데 지금은 40명이다. 사다리 학습을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OO(1학년)양은 단어 1000개와 문장 300개를 외웠고, 수학은 4학년 1학기 과정을 학습하고 있다. 사다리 학습은 학력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제 교수·학습의 패러다임을 전환을 심중히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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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0 23:02

광해, 싸이, 비보이 그리고 대선

요즘 조선 광해군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선 정국과 맞물려 인기를 얻고 있다. 아마도 우리 정치도 저렇게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대중의 바람과 함께 정치적 순수성과 사회혁신에 대한 의지가 정치 개혁의 원동력이라는 내용에 공감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최근 가요계에서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연일 화제이다. 음악계에 자리 잡은 기존의 공식을 완전히 뒤집은 그의 노래와 춤은 폭발적인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 냈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사회적 해석도 분분하다.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B급 문화의 혁명으로 설명하건 새로운 차원을 여는 수퍼 창조물로 보건, 어쨌거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몸을 들썩이며 말춤을 따라 추는 모습은 분명 파격이고 획기적이다.싸이의 치솟는 인기를 보며 문득 한국 젊은이들을 한동안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비보이 열풍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비보이가 추었던 브레이크 댄스는 미국 슬럼가의 침침한 골목에서 흑인들이 모여 추던 일종의 막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춤이라기보다는 당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빈민층 젊은이들이 세상에 보낸 야유와 저항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몸을 온통 구기고 비틀어대며 기존의 질서에서 마음껏 벗어나보고자 했던 이 춤이 우리 젊은이들을 미칠 정도로 흥분시킨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광해와 싸이 그리고 비보이 열풍 뒤에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무언가가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세상에 군림하는 틀에 박힌 공식에 대한 부정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또 세 가지 경우가 모두 기존의 질서와 타협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기존의 방식을 완벽하게 깨는 것에서 변화를 찾았고, 그를 통해 실제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변화의 조짐은 비단 이러한 몇몇 현상들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가 이미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나 전혀 다른 내용의 세계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대표 주자가 3차 산업혁명과 청색경제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과 군터 파울리다. 이들은 현재를 지배하는 산업문명이 거대한 혁명의 길에 들어섰으며, 기존의 중앙집권형 거대구조가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단위 생산을 공유하는 분산형 또는 자연형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수평적 권력이 수직적 권력을 대신하며 자연을 닮은 분산적, 협업적 방식과 네트워크, 그리고 창조와 혁신이 사회적 특징을 이룬다.이러한 설명은 결국 현재 영화나 음악을 통해 표출되는 변화의 갈망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신호를 대중들은 이미 정치권에도 오래 전부터 보내왔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문화나 SNS 정치토론, 인터넷 시민언론, 정당정치의 불신과 안철수 신드롬 등이 모두 기존 정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현상들이다.두 달여 남은 대선. 사람들은 이번 대선이 기존정치가 바뀌고 한국사회에 새로운 시대가치가 열릴 장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선 기존의 공식을 깨고 과감히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후보일수록 국민의 최종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대권후보 모두 이기기만을 위한 선거가 아닌 강남 스타일처럼 열광을 받을만한 정치를 모색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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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03 23:02

동방예의지국을 생각하며

오랜 만에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들른 동내 음식점에서 우연히 모녀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오늘 학교에서 즐거웠어?""우리 담탱이가 나만 미워한다.""왜?""몰라, 오늘은 앞머리가 길다고 엄마 데리고 오래.""너희 담탱이는 XXX이야! 인권침해야!""엄마. 나 학교가기 싫어!""그래라, 이XX 고발해 버려?"옆자리에 앉아 대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참으로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첫째는 교육자로서 느끼는 선생님에 대한 학부모의 편향적 인식이고 둘째는 모녀의 대화가 정겹다기보다는 도리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물론 선생님들 중에도 잘못을 저지르고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는 극히 일부의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교사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저항보다는 순응하는 모범적인 분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녀의 대화 내용처럼 선생님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듯한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자란 그 학생이 과연 우리 사회의 동량(棟梁)이 될 수 있을까? 학생의 본분과 규칙에 대하여 지도하고 옳고 그름의 사리판단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라는 말은 앞으로 사극에서나 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으니…….또한 모녀가 나누는 대화 내용을 보면, 마치 친한 친구와 혹은 손아래 동생과 나누는 듯한 대화로만 지나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그 속에 있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언어는 고스란히 그 사람이 걸어 온 발자취이며 마음의 거울이다.' 사람들은 말로 소통을 이루며, 말 속에 평화로움이 담겨 있고 말로 사랑을 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말의 장점은 대화 상황에 따라 높임말과 겸양어가 잘 발달되어 있고 화자의 정서 표현에도 적합한 언어라는 점이다. 아무리 사적인 대화라 해도 막무가내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윗물이 맑지 않고서야 어찌 아랫물의 맑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결코 모녀지간의 정겨운 대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렇듯 풍요와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지난날 내 자녀들의 올곧은 성장을 직·간접적으로 도맡아 준 선생님을 존경하고 우러러 본 경외심(敬畏心) 때문은 아닐까? 가정은 우리 사회의 꽃이고 텃밭이며, 초등적인 교육기관이다. 대부분의 인성이 가정에서 길러지며 가정은 기본적인 태도와 사회화가 갖춰지는 장소이다. 가정에서의 언어예절교육이야말로 자녀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되는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사람의 품격을 가르는 절대적 가치다. 결코 시대의 변화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 부모 또한 교육현장 일선에서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우리 곁에서 언제 들어도 가슴 따뜻한 모녀간의 대면 속에 진한 모성애와 아양스러운 딸 사이에 대화의 꽃밭이 가꿔지며, 다시 한 번 전통적 예절교육을 바탕으로 대국민교육을 새로이 시작해 진정한 한국의 이미지인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새로이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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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6 23:02

박남준을 위하여

시인에게 가는 길은 반듯했다.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보건소를 지나면 작은 돌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반듯하게만 나아가면 그가 살고 있는 오두막집이 나타난다. 노란색 장판 우의를 야무지게 뒤집어 쓴 '랄랄라'(시인의 오토바이)는 좀처럼 나돌아 다닐 일 없는 장마철이 지루한 듯 했고, 그 옆으로는 캠프파이어에 쓰일 장작들처럼 각 종 술병들이 가지런히 둘러쳐 있다. 풍경소리가 따랑따랑 울려 퍼진다.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인의 오두막을 조심스레 살핀다. 사방 어딜 둘러봐도 시(詩)다. 그가 유일한 욕심이라고 고백한 바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CD들이 품고 있는 선율들은 그의 귀를 지나 한 편의 시(詩)가 될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 역시 그의 눈을 통해 시(詩)로 매일 거듭난다. 쉬셔야 하는데 방해해서 죄송하다는 멋쩍은 인사에 온화한 꽃미소로 답한다. 문득 '꽃중년'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런 경우를 자주 겪어 이력이 난 눈치다. 시인과 두 번 돌아 띠 동갑인 나는 더 황송해져 선생님 시가 참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내가 꺼내든 시집에 그림을 그려주고 색을 덧입히고 짧은 시를 써주어 친필 사인을 마무리 한다. 받는 사람이 평생 기억하게 만들 저자 사인회다. 과연 버들치 시인이다.-선생님,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너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어'와 '너는 지금 모습 이대로가 참 멋지고 이뻐' 중 어느 편에 서는 게 교사로서 옳은 선택일까요?무한경쟁과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나의 제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교사로서 최선인지 그에게 물었다.-그야 당연히 후자지요. 선생님이라면.단박 대답한다.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눈치다. 나는 약간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저그래도요즘 세상이 세상인지라애들이 너무 착하기만 하면 무시당하고 불행해질지도 몰라서.나는 더듬더듬 전자의 편에 서서 그의 말에 넌지시 반박해본다.-결국은 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우리가 할 일 이지요.자발적 가난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의 말인지라 울림이 크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갈등 중이던 나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이 도끼가 아니라 시인이 도끼다.시인과 함께 있는 동안 나는 내 집에 있는 듯 편안하였다. 단 한 순간도 의사소통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시인은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며 가꾸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저 나라는 사람을 꾸밈없이 지키며 앉아 있기만 하면 됐다. 자꾸 대화를 재촉하고 강요하며 공통점을 찾아내 소통하려 하는 여느 만남들과 많이 달랐다.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으며 잠에서 깨고 나면 하나도 기억 못 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는 오후에 할 일이 있다며 예의바르게 헤어질 순간을 알려주었다. 그 역시 거의 매일 해오던 일처럼 익숙했다. 그러기도 하겠지. 전국에서 그를 찾아오는 이 얼마나 많겠는가. 타고난 휴머니스트인 그는 또 얼마나 살갑게 그들을 맞이하겠는가. -꽃잎을 보지 말고 꽃들이 지나온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시를 쓸 수 있을 거예요.시인이 꿈이라는 나에게 그는 화두 하나 던져주며 작별 인사를 가름한다.악양 매화골을 넘어 집으로 오는 동안 시인이 선물해준 호두처럼 생긴 가래 두 개를 쓱쓱 문질러 본다. 따그락 거리면서 서로 몸을 부딪히는 소리가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운다. 이런 긴장으로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시가 많은 이의 일상에 샘물처럼 맑고 신선한 무언가를 선물해 주는 이유도 이 가래 소리 덕분이 아닌가 하며 혼자 웃는다.앞으로 너는 어찌 살고 싶으냐는 막연한 질문을 듣는다면 나도 막연한 세 글자로 답하고 싶다.박. 남. 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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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9 23:02

수준별 학습, 사다리 학습으로 전환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학습 방식은 개별화 학습과 일제식 학습이다. 근대 교육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교육 수요자가 적어서 개별화 학습이 가능하였지만, 교육이 대중화 되면서 일제식 학습이 학교 교육의 기본으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개별화 학습을 일반화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교육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하는 과제가 따른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반면에 일제식 학습은 적은 예산으로 다인수를 교육하기에는 용이하지만, 학력부진아와 학력우수아에게 불리하고 학생들의 창의력 신장에는 적합하지 않는 학습이로 알려져 있다.우리나라 헌법 제 3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는데, 일제식 학습은 학생의 능력에 따른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이에 1997년(제7차 교육과정) 수준별 학습을 도입하면서, 이 학습을 개별화 학습과 일제식 학습의 중간에 위치한 학습, 개인의 능력을 고려한 학습, 학력부진아 문제가 해결되는 학습으로 소개하였다. 그런 수준별 학습을 적용한지 15년이 지났다. 학력이 낮은 아이들을 모아 그룹을 짓거나 반 편성을 했더니, 우수한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을 때보다 성적이 더 떨어지고,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가 벌어졌으며, 낮은 자신감과 보다 많은 탈선 행동을 보인 것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수준별 학습이 학력부진아 문제를 해결했는가, 전반적으로 학력이 신장되었는가, 인성이 좋아졌는가, 사교육비를 절감했는가. 이런 연유로 일선 학교 현장은 수준별 학습도 아니고 일제식 학습도 아닌 어정쩡한 학습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이에 필자는 수준별 학습을 대신할 것으로 사다리 학습을 제안한다. 사다리 학습은 개별화 학습에 더 가까운 학습형태이며, 수준별단계별능력별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취한다. 초등학교 수학과 도형 영역을 사다리 학습으로 공부하는 것을 소개해보겠다. 사다리 학습은 학습자의 수, 학습자의 학력 수준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먼저 교사가 사다리 학습 자료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공한다. 즉 도형 영역을 1학년 수준에서 6학년 수준까지 한 줄로 세운다. 그러면 대개 80여개의 급간이 나온다. 한 급간 한 급간 무리 없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올라 갈 수 있도록 학습 난이도의 급간을 고르게 편성한다. 학생들은 이 사다리 자료를 활용하여 자기 수준에 맞는 단계를 찾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채점하고 피드백 한다. 교사는 조력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6학년 부진아가 3단계를 공부할 수도 있고, 3학년 아이가 80단계를 공부할 수도 있다. 학력부진아나 학력우수아 모두 하나의 학습 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전혀 없다. 학력이 극히 부진한 아이에게 단계를 세분화하여 제공해주면 대부분 즐겁게 학습에 임한다. 다른 모든 학습도 이 방식으로 가능하다. 현행 일제식 학습이나 수준별 학습은 학력부진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능력이 출중한 아이도 자기 학년 수준의 학습 이상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다리 학습은 학력부진아 문제가 해결된다. 능력이 있는 아이는 스스로 얼마든지 상위 단계의 학습을 할 수 있다. 사다리 학습이 개별화 학습과 일제식 학습의 장점을 살린 학습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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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2 23:02

변화의 시대와 교육자의 자세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주역이었던 기성세대의 권위가 사회 여러 분야에서 소외되고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 일상 생활속에서 빈번히 목도(目睹)되고 있다. 그들이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여 기성세대의 패러다임을 이루고 산업 발전을 위한 기여와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없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는지 모르나 왠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기성세대란 현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가 좀 든 세대라 할 수 있겠다.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그네들은 오늘날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여 사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바로 그것이 기성세대에 붙여진 보편적이고도 상징적인 브랜드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각자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을 최고의 과제로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문성이 자격증에 의해 인정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사회는 전문가의 공적인 기준으로 알게 모르게 자격증을 요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는 결코 자격증에 의해 전문성이 획득되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늘 열린 사고를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하며, 역설적이게도 실제로는 자신의 위치에서 항상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는 '나는 늘 초보자'라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지식정보사회의 특성은 전문적 지식의 유효 기간이 매우 짧다는 특징을 지닌다. 어제 배워 알고 있는 정보가 오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것들이 많고 순식간에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되어 버린다. 이제 전문성의 상징이었던 자격증은 어떤 의미로는 어제 내가 전문가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사회적 인증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시대에는 자격증의 유효 기간이 평생을 좌우했다지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오늘날에는 유효 기간이 매우 짧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선생님들은 더욱 그러하다. 교사의 자격 조건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과 검증을 통해 얻은 전문적 자격증의 유효 기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21C 문화의 시대를 걷고 있는 젊은이들과 공감을 이루며 교육 활동을 감당해야 하는 교육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과거의 검증된 자격증이 아니라 오늘의 변화를 주도해야만 하는 새로운 브랜드 가치 창출의 자격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교사는 변화의 물결에 순항할 평생교육의 자기 연수와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아야 하고 아울러 새로운 교육과정을 공부해야만 한다. 어제의 훌륭한 선생님이 오늘도 그러리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과 여건에 순응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선생님이야말로 존경받을 수 있는 교사상이다. 그래서 훌륭한 교육자는 항상 초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어제의 자기 자신과 경쟁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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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05 23:02

따뜻한 기술이 미래다

작년 3월 원전사고가 발생했던 후쿠시마 지역에서는 거주 어린이 세 명 중 한 명꼴로 갑상선암과 연관될 수 있는 결절과 수포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를 보면서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한 원자력과 같은 각종 과학기술이 과연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에너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의 기술적 위험성과 빈부간의 양극화현상은 그 어느 곳에서보다도 심각하다.세계적으로는 아직도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16억 이상의 인구가 전력부족을 겪고 있다. 그리고 27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장작, 숯, 동물 배설물, 볏짚 같은 고체 바이오연료를 이용하는 고전적인 취사와 난방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에너지이용기술은 산림자원의 파괴뿐만 아니라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위해가스로 인한 건강의 위협, 지구온난화 등을 유발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다행히 근래 개도국의 에너지소외계층에게 적합한 에너지기술의 개발과 보급이 적정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 운동도 시작되었다.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케냐 세라믹 풍로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영국의 한 NGO 단체가 케냐주민을 대상으로 보급한 휴대용 목탄 스토브로, 3050%에 이르는 연료절감과 유해가스 발생 감소 등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외계층을 위한 따뜻한 기술이 단순히 저개발국을 위한 복지차원의 기술을 넘어서 일반인들을 위한 미래의 기술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좋은 예가 바로 100달러 노트북이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의 니콜라스 네그로폰데는 저개발국 어린이에게 보급할 목적으로 '어린이 한 명당 노트북 한 대씩(One Laptop Per Child)'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100달러짜리 노트북을 개발했다. 이 노트북은 전기가 없는 곳에서도 어린이들이 크랭크나 밟기판 등의 방식을 이용해 언제든지 사용하고 충전할 수 있으며 최대한 낮은 전력을 소비하도록 설계되었다. 또, 노트북에 내장된 WiFi 안테나를 통해 자유롭게 웹서핑을 할 수도 있다. 넷북과 태블릿 PC의 기원이 되기도 한 이 노트북이 지닌 첨단기술적 해법과 감성적 디자인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응용되고 있으며 기술적으로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최근 네그로폰데와 함께 100달러 노트북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스위스 산업디자이너 이브 베하는 태양광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100달러짜리 태블릿을 설계해 출시하기도 했다.근래 이러한 따뜻한 기술의 혁명을 선진국의 마을 공동체에 적용해 지역 전체를 자연친화적인 순환경제체제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금 지구촌이 겪고 있는 기후재앙은 결국 인류가 개발과 성장에 취해 착취당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같이 보지 못한 탓이다. 우리에겐 지금 경제적 성장에만 편향되지 않은,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위하고 소수가 아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따뜻하고 지속가능한 기술과 발전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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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9 23:02

경쟁력 갖춘 교사란

전주교대에 재학 중인 후배 몇 명을 만났다. 자신만의 특기가 확실한 교사가 인정받는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질문을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실제 발명, 음악 줄넘기, 영어, 글쓰기, 미술 등 어느 한 분야를 특출하게 잘 하면 그와 관련된 일을 추진할 때 자문위원이나 진행요원으로 발탁되어 일하게 된다. 교육계는 인적 자원이 제한된 편인지라 그 비슷한 일이 생기면 이전 사람들이 또 일을 맡고 그러다보면 노하우가 생겨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이것이 일반적 패턴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이런저런 일들에 욕심내다보면 '두루두루 잘 하는 선생님'은 될 수 있을지언정 나 자신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을 공산이 크다. 반대로 한 가지만 집중해서 노력하면 'OO하면 OO 선생님이지'라는 브랜드 네임을 갖게 된다.잠자코 듣던 후배는 되묻는다. 그러니까 그 전문성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고요 라고. 나도 답답하다. 신규 시절, 나 역시 전문성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라는 말은 쏙 빠져 있고 다그침만 들려올 뿐이었다. 더욱 큰 딜레마는 그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조차 딱히 전문성이라고 내세울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젊은 시절 이를 깨닫지 못했음에 한탄하면서 '나는 이랬지만 너는 그러지 말아라'류의 낡은 충고를 해주곤 했다. 그들도 아마 속시원히 대답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해.나는 감히 '전문성이란 불특정 다수 앞에서 두 시간 동안 그 분야에 대해서 쉬지 않고 강의할 수 있으며, 강의 내용 대부분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르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예를 들어 흔하디흔한 부모교육이나 독서논술에 대해 강의 할 때 포털 검색이나 시중에 있는 책 읽기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전문성 있다고 볼 수 없다. 경쟁력 있는 강사는 그 사람 아니면 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비장의 노하우들이 가득한 강의를 할 수 있어야한다.교사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사들과 차별화되는 뭔가 나만 할 수 있고,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은 교사일수록 경쟁력 있고, 전문성 있는 교사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법칙'에 준할 정도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수고가 뒤따라야 한다. 후배들은 알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고민도 아니고, 설사 성공적으로 고민 해결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딱히 눈에 보이는 뭔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OO하면 OO이지'라는 말을 듣는 건 정말 괜찮은 일이다. 이는 비단 교사라는 직업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나는 요즘 '월간 김주연'에 대한 고민에 밤잠을 못 이룬다. 원래도 불면증이 좀 있는데 이젠 아예 새벽 1시에 커피를 마시며 정식으로 고민한다. 서평, 전라북도 문학관 기행, 전북 작가 인터뷰, 패트롤 전북교육, 사람이 답이다 등 크게 열 꼭지를 잡고 시작하고픈 '월간 김주연'은 사실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키워오던 내 꿈의 결정체이다. 소요비용이나 원고쓰기에 필요한 절대적 시간 등을 계산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정말 쓸데없는 짓이지만 역사는 언제나 정말 무모하고 쓰잘데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움직여왔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이 움직임에 나 역시 발을 담궈보려한다.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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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2 23:02

인성·학력보다 긍정성 교육이 먼저다

학교교육은 인성교육과 학력교육을 큰 축으로 다룬다. 양축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요즘은 인성교육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인성이나 학력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긍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긍정적 자아관이 확립되면 인성함양과 학력신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각 학교에서는 학생의 인성함양과 학력증진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상담교사 배치, 폭력대책위원회 구성, 경찰청의 학교폭력 전담 인력 구성,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교원능력개발 평가 등을 철저히 하면 학생의 인성이 좋아지고 학력이 증진될까. 이런 시책은 사후처방은 될지 몰라도 근본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인성과 학력을 논하기 전에 우리 자녀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자존감, 가치, 자긍심, 자신감을 일깨워 주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 또한 인성교육의 범주에 속한다고 혹평할런지 모르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인성교육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유치원 시절에는 명랑하고 쾌활하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정적으로 변한다.아이들이 학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행복해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하다. 그 이유는 가르침(지식)을 이해(인지)하는 속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학교 교육 시스템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교육을 달리기에 비유하여 보자. 운동장 트랙에 한 학급 세 명의 어린이가 달리기를 한다.1번 레인은 교내 육상 선수, 2번 레인은 보통의 남자 어린이, 3번 레인은 소아마비 아이 등 세 명을 똑같이 출발시키고, 서열에 따라 상을 준다. 이런 활동이 일상적으로 계속되면 2번 레인 3번 레인 어린이는 어떻게 될까. 달리기 능력이 어느 정도 향상될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부정성이 증대되고, 달리기에 흥미를 잃게 되며 결국은 달리기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학생의 지능과 정서, 학습에 대한 흥미, 심신의 건강상태, 가정환경 등이 각기 다른 학생을 한 장소에서 동일한 방법과 동일한 시간을 투여하여 가르치면, 최정상에 있는 한두 명 이외에는 부정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패를 거듭하고, 무시당하고 꾸지람과 체벌을 거듭 받으면 부정성이 증대되고 긍정성은 감소한다. 지금 학교에서 실행하는 수준별 수업은 부정성의 증대가 예견되는 교육인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긍정성을 증진시키는 교육은 학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수학과의 분수 단원을 예로 들어 보겠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기초단계에서부터 고학년 고급단계까지 수준별단계별 자료를 한 권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모든 학생이 이 자료를 활용하여 스스로 공부하고 채점하고 피드백하면서, 낮은 단계에서 상위단계까지 학력을 쌓아 간다. 각자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하되, 지도하는 교사는 부진아만 지도하고 손이 모자랄 경우, 먼저 통과한 아이가 부진한 아이를 도와준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아이는 쉬는 시간이나 가정 등에서 무제한으로 학습할 수 있다. 이것을 필자는 '사다리 학습'이라 명명했는데, 학습하는 과정에서 항상 성공만 있을 뿐 실패가 없기 때문에 이 학습을 1~2년 진행하면 크게 학력이 신장되고 긍정성이 증대되는 것으로 검증되고 있다.본교는 지난 1년간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면서 사다리학습을 적용하였다. 금년 들어 학생 간 다툼이나 욕설 한 마디 듣지 못했고, 교과학력 부진아 한 명 없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로 변하였다. 전교생이 20명에서 35명으로 증가했으며 학생들은 자신감과 자긍심에 차있다. 자성예언의 이론과 비슷해 보이는 이 학습방식이 우리 자녀들의 교육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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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5 23:02

기본예절과 가정교육

며칠 전 가까운 지인들과 대학시절 자주 들렀던 맥주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가운데 넓은 자리에 앉고 싶었으나 주인은 가장자리 창가 쪽의 좌석을 권하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우린 대학시절의 즐거웠던 추억담에 빠졌다. 그때 조금 멀리 떨어진 쪽에서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술에 취해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모처럼 옛일을 회상하며 정담을 나누는 자리를 기대했지만, 도대체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치에도 아랑곳없는 젊은 세태의 풍속을 인내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주인에게 정숙할 수 있도록 부탁했지만 소용없다는 듯이 오히려 우리 쪽에 양해를 구하면서 이곳을 찾는 요즘 학생들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이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라고 한다. 이렇듯 언제부턴지 우리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고, 나만을 위하며 나의 뜻대로 생활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지난날 우리네 기본적인 생활태도는 가정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공동체적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웃어른에 대한 존경심과 기본적인 생활예절을 배웠으며, 형제들 간의 우애와 갈등 해소를 통하여 집단사회에 대한 구성원으로의 역할도 배워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부모는 무조건 내 자식만이 최고이며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일이다. 학교생활에 문제가 심각한 한 학생의 부모님을 담임선생님이 불러 학생 생활태도의 잘못을 지적하니, 부모는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학생이 아니며, 주변 친구 탓으로만 모든 것을 돌리는게 아닌가. 오늘의 부모들은 선생님의 말씀보다도 먼저 내 자녀를 감싸고 내 자녀의 잘못을 훈육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잘못으로 돌리는 배타적인 부모들의 가정교육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이런 부모의 가정교육으로 성장한 자녀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과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 것인가?예전에 부모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어떤 부모가 자녀를 귀하게 여긴 나머지 자녀의 밥상에는 항상 맛있고 먹기 좋은 살이 두툼한 쪽 생선을 주고 어머니는 먹기 사나운 머리와 꼬리부분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했더니, 훗날 이 자녀가 성장하여 모친 생신날 생선 머리와 꼬리 부분만을 준비하여 어머니를 모셨다는 이야기'이다. 자녀의 기본적인 예절과 소양은 대부분 가정에서 배워지고 길러지는 법이다. 그런 이유로 옛날 성현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질과 인간적 품성의 모태를 가정에서 찾았으며, 또한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웃어른께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웃어른께 거스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사회 질서를 어지럽게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부터 군자(君子)는 반드시 기본예절에 힘쓰며, 어떤 일이든 기본이 뚜렷이 선다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 저절로 열린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기본위로만 생활하고 있다. 특히 유년기와 초중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정녕 훌륭한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사회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우리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최고보다 먼저 최선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정교육을 실천해야 우리 자녀의 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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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8 23:02

집단지능과 안철수

우리는 대중이 내린 집단적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안철수 현상을 놓고 바로 이러한 고민에 빠져있다. 아직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무소속 비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과연 대선 막판까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만큼 신뢰할 만한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대중의 집단적 선택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영국의 골턴은 1907년 우연히 800여 명의 참가자가 각자 소의 무게를 예상해 맞춰보는 장소에 들렀다가 그들이 적어낸 몸무게의 평균치를 계산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 대중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골턴은 참가자들이 써낸 평균값이 실제 소의 무게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는 '네이처'지에 군중의 판단이 민주주의 선거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이끌어낸다는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집단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집단지능'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집단지능의 힘은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발견된다. 한 예로 흰개미는 개인적인 능력을 넘어 집단 속에서 탑 모양의 거대한 집을 쌓는다. 그런데 높이가 4미터까지 이르기도 하는 이 탑은 굴과 굴뚝의 원리를 이용해 섭씨 27도와 습도 60퍼센트를 유지하는 정교한 냉난방 장치를 갖추고 있다. 최근 한 연구소에 의해 흰개미의 이러한 집단지능 건축법이 미래를 여는 100대 혁신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오늘날 대중의 집단지능은 IT 기술의 발달로 더 스마트하고 광범위해졌으며, 더욱 빠른 속도로 더 큰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아랍의 독재권력이 SNS를 통한 대중의 집단 커뮤니케이션과 결집력 앞에 힘없이 무너져가는 모습은 새삼 집단군중의 위력을 느끼게 하는 사례이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대했던 한국의 촛불시위의 경우 또한 대중이 집단적으로 얼마나 잘 소통하며 변화의 힘을 모을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었다.안철수 원장이 오랫동안 대선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박근혜후보를 앞질러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일각에서 주장하듯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면 소멸할 거품인지는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야 알 일이다. 하지만 안원장에 대한 대중의 선택은 작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이러한 현상이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언가 집단적인 대중의 지능이 작동하고 있음은 분명하다.안철수 현상이 집단지능의 결과라면 정치권이 안철수의 등장을 계속 견제하는 것은 대중의 시대적 요구를 모른 체하는 것이 된다. 어쩌면 안철수는 정치권 밖에서 주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이 현상을 수용할 준비와 변화된 모습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권이 과연 그동안 자연인 안철수에 보내는 대중의 집단지능을 현실로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정치적 변화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최근 미국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시민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 안철수를 통해 표출되는 집단지성의 요구를 정치권이 애써 외면한다면 대중은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안철수 본인 또한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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