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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소통의 미학 - 고일영

퇴근길 어느 날. 라디오에선 평소 즐겨 듣던 토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이날의 주제는 '가족간의 소통'이었는데 가정문제 상담전문가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하였다. 전문가들은 가족간의 소통이 의외로 가장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2006년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배우자와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이 30분 미만이라는 응답이 20%, 30분~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33%로 과반수 이상의 부부가 하루에 1시간도 안 되는 대화시간을 갖고 있다. 부모와 자녀간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결과 중고등학생의 40.6%는 부모와의 대화단절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요즘 들어 기업들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영진이 아무리 좋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해도 구성원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 비전은 경영진만의 생각으로 끝나버리고 직원이 아무리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소통이 안된다면 그 아이디어는 직원의 책상서랍 속에서 빛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기업에게 있어 구성원간 소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과의 소통이다. 특히 일등기업,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선도기업은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일등기업은 자신이 소유한 기술을 신봉하여 소비자들과의 소통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경영학에서 이카루스의 역설은 일등기업이 자신을 지탱해주던 핵심기술을 애지중지하다가 소비자들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여 갑자기 망하는 경우를 일컫는데, 기업에게 있어 소통이 왜 중요한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최근 애플의 사례는 국내 기업에 있어 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현실감 있게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는 우리나라가 만들었지만 고객중심의 사용자 환경을 구축한 애플의 아이팟이 시장에서는 혁신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국내 기업이 만든 휴대폰보다 하드웨어적 스펙은 뒤처지지만 앱스토어라는 소통의 장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폰에 더욱 열광하고 있다. 애플은 세계 최초도 아니고 일등도 아닌 기술을 가지고도 소통을 통해 일등 제품, 일류 기업이 되는 길을 보여주었다.이렇듯 소통은 화목가정, 성공기업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소통이 잘 될까? 소통의 대전제는 상호 인정과 존중이다. 인정과 존중의 진정성이 없는 서로는 백번 천번 만나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는 상호 눈짓만으로도 소통이 원활함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통은 많은 경우 양적인 문제보다 질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휴대폰, 문자메시지, 블로그, 미니홈피, 메신저, 트위터 등 정보화 사회의 진전과 함께 소통의 채널은 점점 늘어나도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통을 호소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또한 소통은 잘 들을 때 원활하다. 세계적 제약회사 화이자의 제프킨들러 회장은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신이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하나의 입을 준 이유는 말하는 것의 2배 이상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의 실천을 위해 매일 동전 10개를 왼쪽 바지속에 넣어두었다가 직원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었다고 생각이 들면 1개씩 오른쪽에 옮겨 놓는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바야흐로 만물을 소생케 하는 봄이다. 그 상큼한 봄기운을 받아 고향 곳곳에 소통의 꽃이 활짝 폈으면 한다./고일영(기업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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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8 23:02

[타향에서] 해내뜰 그 길은 나의 선생님 - 문효치

나는 어린 시절 고향의 시골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나를 가르쳐 주신 분은 물론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나의 선생님은 또 있었다. 그것은 학교를 오가는 '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등하교 길의 주변에 펼쳐져 있는 자연이었다.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무척 외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6.25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입학을 했기 때문에 취학 아동이 다른 학년에 비해서 월등히 적었다. 우리 동네에서 같은 학년에 다니는 학생은 단 두 명이었다. 그것도 한 명은 여학생이었다. 그때는 그 어린 것들도 내외법을 지켜서 따로 떨어져서 다녔다. 아침의 등굣길은 다른 학년 아이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었지만 하교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학년 마다 끝나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집으로 가는 시골길은 내 외로움을 많이 덜어주었다. 교장사택이 있는 학교 뒷문으로 나오면 콩밭과 수수밭이 있었다. 보라색 콩꽃이 넓은 콩잎에 가려 뽀도시 작은 얼굴을 비치면 그것이 그렇게 새참하고 예뻤다. 옆에서 너울거리며 서 있는 키 큰 수수잎들이 하늘의 끝을 간지를 때엔 내 옆구리가 간지러운 듯 했다. 그 콩밭과 수수밭을 잠깐 지나면 논길로 이어진다. 간신히 소달구지나 다닐 만한 좁은 길이었지만 많은 추억이 어린 길이다. 이 논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펼쳐진 들판을 해내뜰이라고 불렀다. 이 해내뜰에서 나는 바람의 신비함을 처음 느낄 수 있었다.해내뜰은 꽤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에 사방이 툭 터져 있었다. 따라서 바람이 잘 소통되는 곳이었다. 넓게 퍼진 논은 똑같은 키로 자라고 있는 벼잎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그 벼잎들이 일제히 누웠다가 일어서곤 했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벼잎들이 저 멀리서부터 차례로 물결을 이루는 모습에서 나는 바람의 모습을 함께 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바람은 벼잎과 같은 초록색이라고 생각했다.군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윤해서 살갗에 닿는 기분도 꽤 부드럽게 느껴졌다. 해내뜰의 길은 옆에 농수로를 끼고 뻗어나갔다. 그 농수로를 우리는 똘이가고 했다. 이 똘은 나의 중요한 놀이터였다. 추운 겨울이 아니고는 그 똘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똘에 그림자를 담그며 길을 걷다가 나는 어느새 책보자기를 길뚝에 내려놓고 바지를 걷고 살그머니 물로 들어갔다. 송사리떼가 금방 잡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작은 물고기가 어찌 그리도 빠른지 손으로 잡을 수는 없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도랑이기 때문에 비록 얕아도 많은 생물들이 살았다. 운이 좋으면 어른 손바닥만한 시꺼먼 조개를 잡았다. 뱀장어같은 것도 가끔 건져 올리곤 했다. 피라미, 매기, 빠가사리, 게 등이 내 친구였다.물에 들어가기 싫으면 이가래, 노랑어리연, 개구리밥 등 수초를 관찰하며 놀았다. 특히 노랑어리연의 꽃빛이 참 좋았다. 해나 달의 빛깔 중에 제일 예쁜 노랑색만 골라서 꽃에 발라놓은 듯 했다. 자라풀, 보풀, 마름 같은 것들도 그 나름대로 풋풋하거나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들에게도 눈길이 자주 갔다.물총새의 잽싼 동작은 참으로 신기했다. 어디쯤 숨어 있다가 물고기 한 마리를 겨냥하여 빠른 속도로 날아가 낚아채는 솜씨에 놀라기도 했다. 그 이름대로 정말 총알 같았다. 그 새는 깃털의 빛깔이 파란색이었는데 그 놈이 날을 때는 어디서 푸른 바람 한 점이 날아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 물풀들과 눈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즐기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 놈 때문에 고요가 깨뜨려지기도 했지만 절대로 물에 빠지지 않고 교묘하게 은빛 물고기만 한 마리 건져 올려 솟구치는 그 모습에서 후련함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집으로 가는 길은 들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나무가 제법 울창한 산길도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 산길에서 꾀꼬리, 두견이의 소리를 처음 듣고 기억 속에 넣어 두었다. 무슨 금관악기의 관을 통해 불어져 나오면서 만들어진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름다운 활엽수의 잎사귀들이 비벼지면서 만들어지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새소리가 내 뇌 속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몇 가지 더 있었다. 그런 새소리 틈으로 보이는 산꽃들이 참 신비스러웠다.그 길에는 계절에 따라 많은 꽃들이 피곤 했다. 붓꽃, 닭의장풀,엉겅퀴, 패랭이, 메꽃 등의 빛깔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나는 그때 그 꽃의 빛깔들이 뿌리를 통해 땅 속에서 빨아올린 빛깔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땅 속은 시꺼멓거나 깜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만가지 색깔들이 우글우글 들어 있는 색깔의 큰 창고라고 생각했다.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다는데 그래서 우리의 조상님네들도 땅 속에 계실텐데 그분들은 어쩌면 아름다운 꽃빛깔 같은 세상 속에서 지낼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때로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해찰을 해가며 놀았다. 손가락으로 땅에 금을 그어가며 낙서도 하고 나뭇가지를 집어서 사람의 얼굴이나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을 그리기도 했다.나는 혼자 다니는 일이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나 혼자서 잘 놀고 즐길 줄을 알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흙장난을 하다가 문득 산개미들이 눈에 띄었다. 새까만 산개미들은 그다지 예쁜놈들은 아니지만 그놈들하고도 즐겁게 놀았다. 나는 쪼그만 저놈들도 생각이라는게 있어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생각이 있을까 알고 싶었다. 긴 풀대를 꺾었다. 옆에 붙은 잎들은 떼어 버리고 적당한 길이로 잘라 활처럼 둥글게 휘어서 마치 무지개다리처럼 양끝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는 땅에 꽂힌 양끝 부분에 침을 뱉어 놓았다. 그리고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무지개다리 같은 풀대위에 올려놓았다. 개미는 한쪽 방향을 향해 열심히 기어갔다. 그러나 곧 침이 고여 있는 부분에 와서는 땅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아마 그 부분을 개미는 큰 강이나 호수쯤으로 생각한 듯 했다. 개미는 뒤로 돌아, 오던 길을 되짚어 다른 한쪽 끝으로 갔다. 거기에도 역시 물(침)이 있는 것을 알고 다시 뒤로 돌았다. 개미는 그렇게 왕복을 되풀이 했다. 언제까지 저 되풀이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개미의 되풀이는 예닐곱으로 끝났다. 양쪽에 모두 물이 있어 땅으로 내려설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개미는 돌연 중간쯤에서 땅으로 뚝 떨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놈을 다시 집어 다리위에 올려놓아 보았다. 이번엔 두세 번 만에 땅으로 뛰어내렸다. 다시 집어 올려놓으니 이번엔 바로 땅으로 뛰어내렸다. 개미에게도 분명 생각이라는 게 있구나 생각하며 개미가 신기하기도 하고 귀하게도 여겨졌다.고향은 내 어린시절의 삶이 남아 있는 곳이요 우리의 조상이 죽어서도 살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의 예술'이라고 하는 자연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경험하고 상상하고 즐겼던 것들이 모두 나의 선생님이다. 우리는 고향과의 영교(靈交)를 통해 우리 삶을 격조있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책에서보다 숲이나 강이나 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요즈음 해내뜰에 가보면 옛길이 확장되고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무척 능률적이고 편리해졌다. 비가와도 신발이 진흙에 빠지지 않고 자동차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자연의 신성성에 흠에 가지 않는 범위에서의 개발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노여움과 그 벌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선생님을 잘 섬기고 모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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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04 23:02

[타향에서] 러시아 연수생의 참변 - 김근

최근에 깜짝 놀랄 끔찍한 일이 러시아에서 일어났다.연수를 위해 러시아에 갔던 우리나라 대학생이 러시아의 극우청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폭행의 이유는 인종혐오 때문이라고 보도 되었다.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었으나,그보다 더 큰 뉴스들에 가려서인지,아니면 러시아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해서인지 이 일은 일과성 보도로 끝났다.전도양양한 한 젊은이의 희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부모를 비롯한 가족, 친지,친구들의 슬픔 말고도,같은 피부색깔을 지니고 같은 나라에서 사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그 희생은 마음을 저 밑바닥에서 부터 흔드는 일이 된다.타고난 피부 색깔로 증오하고,태어난 나라나 지역으로 나누어 차별하고,가진 것이 많으냐 적으냐로 상대를 멸시하는 인간 세상이 사람의 삶을 나락으로 몰고 간다.이러한 극한의 상태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증오가 증오를 낳고, 결국은 그 대립이 전쟁을 부르고,마침내는 대량살상 무기를 내세워 지구의 운명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인간의 역사를 뒤돌아 보아 그것이 인간차별의 시정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사람이 모여 산 이래 언제나 그 공동체에 차별은 있었고,그 차별을 지양하려는 노력도 있었다.그 긴 역사적 노력의 결과가 어제에 비해 보다 평등한 오늘의 인간 공동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사실은 그 본질이 전혀 변한 것은 아니다.그 인간 차별 때문에 매일 처럼 벌어지는 지구상의 비극을 보면서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도 그 사정은 다르지 않다.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자신도 누구 못지 않은 차별주의를 지니고 있다.일상을 통해 절실히 경험하는 것이지만 한국인들 처럼 강한 차별주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현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모멸이 있다.외국인 노동자들에게만 그런가.연변에서 온 동포들에게도 마찬가지다.음식점에 가면 자주 마주치는 그 동포들이 연변 말씨를 숨기려 애쓰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그런가 하면 탈북동포들도 차별한다.탈북동포들 가운데 일부는 그 차별을 견디기 어려워 아예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이 모든 차별은 그들이 가난한 지역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부자 나라에서 온 백인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차별주의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이런 차별주의를 가지고는 통일을 지향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생길 것이 뻔한데,자칫하면 통일이 민족의 재앙이 될 수도 있겠다.김 구 선생이 치열한 독립운동 뒤에 자신의 바람을 말하기를 "조선이 문화국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이런 상황에서는 김 구 선생의 바람이 실현되기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 것인데,이런 차별적 문화를 시정하기 위해서 전라북도 도민들이 발벗고 나서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전라북도의 시민사회가 나서고 도민과 시민 군민들이 호응하면,그 도덕적 물결은 호남 전체를 거쳐 전국으로 번져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그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 사회의 반 인간적 차별문화를 부수고 이 사회를 세련된 문화적 수준에 한걸음 가까이 가게 한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이 사업으로 전북도민들은 우리사회 안에서 도덕적 헤게모니를 쥘 수 있게 될 것이다.누군가 바삐 나서서 해야 될 일이라면 그 일에 전북의 시민사회가 먼저 나서 그 깃발을 들었으면 좋겠다 엉뚱한대로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해보는 편이다./김 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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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25 23:02

[타향에서] 스마트폰이 열어가는 세상 지금부터 준비를 - 고일영

아침 출근시간. 집을 나서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니 오늘은 옷을 좀 두툼히 입어야 할 것 같다. 매일 오가는 길이지만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어 출근길 교통정보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보니 원활한 교통흐름에 안심이 된다. 지금 상황이라면 회사까지는 40분 정도가 걸릴 것 같다.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오늘 해야 할일과 일정을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메일 확인과 주요 뉴스를 검색하니 벌써 회사 앞이다.저녁시간. 모처럼 오랜 친구들과 약속이 잡혀있다. 그런데 모임장소가 매번 모이던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이다. 스마트폰으로 장소를 검색해 보니 을지로 3가 부근의 한 식당이다. 초행길이지만 스마트폰의 안내에 따라 길을 나섰는데 불과 10분만에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한 후 다시 보니 식당이 골목길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스마트폰이 아니었으면 좀 헤맬 뻔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실제로 경험한 필자의 생활속 변화들을 소개하여 보았다. 회사에서 마케팅본부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스마트폰을 2대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회사에서 모바일비즈니스를 선도해 줄 것을 당부하며 정책적으로 제공한 스마트폰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구입한 스마트폰이다. 현재 1백만대 수준에 있는 스마트폰은 올해 최대 4백만대까지 증가될 전망인데, 50대인 필자가 스마트폰을 2대나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요즘 스마트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스마트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으로부터 시작된 모바일 혁명이 경제의 판을 바꾸고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애플이다. 애플은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통해 음성과 문자중심의 이동통신 시장을,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중심으로 판을 바꾸었다. 판을 바꾼 이득은 막대했다. 애플 아이폰의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은 4000만대 수준으로 판매량으로는 아직 '빅 5'에 미치지 못하지만 대당 높은 단가에 팔아 매출과 영업이익은 매우 높다. 애플 영업이익율은 41%로 1위 노키아(29%)나 2위 삼성전자(15%)를 압도하고 매출규모로도 이미 4위에 올라섰다.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혁명의 거대 변화에 잘 적응하고 기회를 십분 활용하는 고향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본다.먼저 스마트폰용 관광가이드 어플이다. 현재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한 지자체 관광 안내 어플을 제공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 한 곳에 불과하다. 고향도 이와 같은 어플을 만든다면 관광객들의 편의 향상과 함께 지역 도민의 소득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요 관광지 및 교통정보, 맛집정보 탑재와 함께 특산품 소개와 모바일로 주문 가능한 직거래 장터를 구현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어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현실세계를 좀 더 정확히, 풍성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증강현실' 구현도 고려해 볼만 한다. 전북의 주요 문화유산, 건물, 관광지를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비추기만 하면 주요 정보가 제공되게 함으로써 우리고장을 널리 제대로 알리고 이해도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다.모쪼록 스마트폰이 열어갈 새로운 세상에 앞서가는 전북을 기대해 본다./고일영(기업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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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8 23:02

[타향에서] 한철골(寒徹骨)과 박비향(撲鼻香) - 정운천

봄의 전령이라고 했던가? 제주도에서부터 피기 시작한 매화가 남도에 상륙해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아 개화가 늦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입춘이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지금쯤 구례에서 화개장터를 거쳐 안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길에는 새색시처럼 수줍게 피어난 매화가 때 이른 상춘객들을 맞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별빛이 부서지는 매화꽃 사이를 거닐며 진한 매화향기에 취해보고 싶다.나는 특히 매화를 좋아한다. 작고 어여쁜 꽃송이와 코를 찌르는 향기도 일품이지만, 한겨울의 추위를 딛고 눈 속에서 피어난 꽃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코끝이 찡한 감동이 느껴진다. 지난해 봄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마주한 토종매화는 감동과 함께 인생의 깊은 깨달음까지 남겨 주었다. 매화와 함께 만난 한편의 한시(漢詩) 덕분이었다.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뼈를 깎는 추위를 한번 만나지 않았던들,매화가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두번의 아픔은 겪게 마련이다. 또한 사람은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싯귀를 보며 뜻을 되새긴 순간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당시의 내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싯귀의 표현처럼 그 당시 나는 '뼈를 깎는 추위'를 겪었다. 예기치 못한 촛불정국으로 인해 농정의 최고 책임자에서 하루 아침에 국민건강을 팔아먹은 매국노로 매도되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저주를 받았고, 결국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전국을 순례하던 중이었다.뼈를 깎는 추위를 겪어야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는다 그 범상치 않은 싯귀는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전국의 농촌 현장을 순회하면서 농업인들과 만나고 농업을 살리는 강연을 시작했다. 촛불정국이란 사상 초유의 국가적 혼란을 겪으며 터득한 소통과 화합. 그 희망의 향기를 국민들에게 전파했다.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았다. 인원의 많고 적음도 구분하지 않았다. 나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밀물농업을 전파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희망의 향기를 전했다.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120 여곳을 순회했으니 일주일에 두 곳 이상을 방문한 셈이었다.한편으로 나는 밤을 새워가며 글을 썼다. 휴일에는 하루 종일 매달렸다. 그렇게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해 9월 <박비향>이란 책을 발간했다. 재임시와 퇴임 후에 터득한 희망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100일에 걸친 전국순례 끝에 만난 한편의 시(詩),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는 매화에게서 터득한 깨달음 덕분이었다.경제는 어렵고, 청년실업 등 고용상황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내면을 다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뼈를 깎는 추위' 속에서 '코를 찌르는 향기'를 응축하는 매화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뚜벅뚜벅 자기 일을 찾아 갈고 닦으면 반드시 희망의 불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정운천(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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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1 23:02

[타향에서] '오르고 또 오르면'과 '쉬어간들 어떠리' - 문효치

과거는 지나가버림으로 끝나거나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연속성을 가지고 현재를 관장하며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때때로 추억이라는 과거를 가지고 가파른 현재의 삶을 위로하기도 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한다.문득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추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풍금앞에 앉아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하면서 노래를 가르쳐 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마침 교실의 창문으로 코스모스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있으면 더욱 아름다웠다.전쟁과 가난에 찌들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세대, 그러나 멋있는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새로 반이 편성되고 교실도 다시 배정을 받는다. 묵은 학년이 쓰던 교실을 새롭게 정돈하고 환경미화 심사라는 것을 받는다. 심사에 앞서 선생님과 학생들은 방과후까지 남아 청소를 하고 그림도 새로 붙이고 '급훈'이나 '우리반의 자랑'따위도 써 붙이곤 한다. 재미있고 달콤한 시간이다.그때 선생님은 옛시조 두편을 단정한 붓글씨로 써서 교실 양쪽 벽면에 걸었다. 지금도 그 시조를 정확히 기억한다. 우리는 일년간 그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늘 보며 외웠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하늘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놀라 하더라또 하나는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워라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였다. 앞의 것은 김천택의 시조요 뒤의 것은 황진이의 시조다.그때는 매일 운동장 조회를 했다. 애국가 봉창, 묵념, 교장선생님 훈화, 주번교사와 교무주임의 전달사항등 어찌나 길고도 재미가 없는지 우리는 그때가 인내심을 함양하는 시간이었다.어떤 때는 학생 한 두명 쯤 땡볕에 못이겨 쓰러질 때도 있었다. 판에 박힌 듯한 조회가 끝나면 군가를 부르며 열을 맞춰 교실로 입실했다. 동요 대신 살벌한 군가를 부르던 소년들,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년이냐/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또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그때의 군가는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가난과 억압과 열악한 환경에 눌려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왜소한 시골 아이들은 이런 우악스런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입실해서 대하는 시조는 매우 상큼했던 기억이 난다. 뜻은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다'는 뜻과 '달밝은 밤이니 쉬어간들 어떻냐'는 뜻은 대충 알았다.두 편의 대조적인 시조, 하나는 근면과 끈기를, 하나는 낭만과 여유를 노래한 시조다. 선생님은 전쟁과 가난에 찌든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다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근면과 끈기를 가르친 김천택의 시조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던 그 난세에, 그것도 초등학교 꼬맹이들에게 황진이의 시조를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쉽지 않았으리라. 아마도 그때 선생님은 황진이의 시조를 벽에 걸기 위해서 고심과 용기가 필요했을 터이다.우리 어린이들은 이 선생님을 통해서 균형과 조화라는 마음의 양식을 은연중 터득하며 자랄 수 있었다./문효치(시인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시인 문효치는군산 출신으로 1966년 서울신문 및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역임했고, 『연기 속에 서서』, 『남내리 엽서』, 등 시집 10여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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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04 23:02

[타향에서] 고향에 돌아오며 - 김 근

읽다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법 열심히 신문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니 전북일보와 얽힌 기억이 아직도 새롭고 그 신문이 자극하는 옛 생각으로 범상치 않은 귀향의 느낌을 갖는 듯하다.이번에 느끼는 귀향의 감정이 남다르다 하지만, 정직하게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도 고향 사람들과 많이 지내게 된다. 주로 학교 동창들인데, 물론 고향 친구들이 정다워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지역주의 탓이 크다. 내 스스로는 일부러 동창만을 챙기고 고향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왔으나, 살다 보니 나도 그 범주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지역의 구별이 드세고 타 지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현실에서, 그런 현상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나는 고향을 떠나 살면서 지역주의와 관련해 많은 경험을 했다. 생활 속에서 상처를 받은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문제였다. 사실 이제껏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식인들이 지역주의에 대해 갖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버젓이 지역주의를 내세우는 일도 허다하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역주의가 지식인 사회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고 보는 것이 차라리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지역주의로 생활의 이해관계에서 큰 도움을 받는 현실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갖는 태도이다.지역주의가 온통 나라의 정치를 혼돈으로 몰아가던 시절, 진보적 지식인들이 갖는 태도는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역주의 본질이 호남차별에 있는 것이라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것에 맞서 비판하고 싸워야 마땅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보는 진보이고 지역은 지역이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들은 그들대로 마음 속에 단단한 지역주의를 품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난 뒤의 절망감은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거듭 생각해 보았다. 차별을 눈감고 그 차별에 동참하는 진보가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내 의문의 핵심이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다는 이념이나 신념,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싸우고, 불이익 받고, 심지어는 감옥까지도 마다 하지 않은 것인데, 그렇게 한 그들이 정작 지역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그래서 개인적으로 거기에 맞서 길게 싸웠으나 지금 남은 것은 허무하다. 여전히 지역차별은 계속되고, 그것으로 정치는 왜곡되고 인간정신은 그 한계를 시험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그들이 소속된 시민사회도 지역주의에 관한 한 하나도 바뀐 게 없다.나는 진보세력이 지역주의에 맞서 단단히 진영을 꾸려 새로운 싸움에 나서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예컨대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은 치욕에 해당한다. 물론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는 인종차별이 일상화 되어 있지만, 지식인 사회에서 만큼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극우 정치세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결국은 지식인과 언론의 힘이 민주주의를 키우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지역주의조차 넘어서지 못하는 지식인 사회로는 당분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꿈꾸기는 어려울 것이다.모처럼 고향에 돌아 오면서 집 나가 얻은 상처를 굳이 헤집어 다시 핥는 꼴이 되었다./김근(언론인)▲ 언론인 김은씨는전주 출신으로,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국제언론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를 열임했으며 연합뉴스 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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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28 23:02

[타향에서] 스토리 시대의 새로운 기회 - 고일영

주말 나들이 인파의 모습을 전하는 뉴스의 오프닝 영상이 눈길을 끈다. 새하얀 종이에 무수한 점이 박혀있는 모습의 이 영상은 다름 아닌 화천의 산천어 축제를 하늘에서 찍은 것이다. 올해 8번째 열리고 있는 이 축제엔 매년 100만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북한강의 최상류 지역, 상수원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 등 각종 개발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는 인구 2만 4천의 작은 군에 이토록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모처럼 직원들과 함께한 점심시간. 얼마 전에 거제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온 송과장이 여행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여행지에서 볼만한 곳은 어디어디이고, 거기에 가면 무슨 식당에서 어떤 걸 먹어야 하고 "송과장은 어쩌면 그렇게 잘 알아? 그 동네에 살았었어?"라고 누군가 묻자, 송과장은 "아뇨. 이번에 처음 갔었죠. 하지만 몇 개 유명 블로그를 통해 미리 가볼만한 곳과 맛집을 알아보았어요. 여행을 앞두고 장만한 네비게이션 덕도 톡톡히 보았죠. 길찾기와 운전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다. 스토리가 있는 집은 깊은 산속에 있어도 흥하고 스토리가 없는 집은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어도 망한다. 스토리가 있는 집은 차도 못 들어가는 후미진 골목길 허름한 인테리어에도 대박을 내고 스토리가 없는 집은 넓은 주차장에 비싼 인테리어로도 사람을 끌지 못한다. 화천을 찾은 100만 인파는 무수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어 내년에도 다시 많은 사람들을 화천으로 부를 것이다. 송과장의 여행 후일담을 들은 몇몇 직원들은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거제도를 몇몇 블로그와 네비게이션에 의지해서 방문할지도 모른다.세계적인 석학 다니엘 핑크는 정보화사회 이후 도래할 사회를 개념과 감성이 강조되는 하이터치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스토리의 중요성을 역설한바 있다. 스토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정보, 지식, 문맥, 감정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압축하여 중요한 인식작용을 하게 한다. 그래서 스토리는 요즘 비즈니스에도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기업들은 공급과잉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스토리를 이용하고 있다.다가올 하이터치시대에 전북이 발전하려면 스토리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전북은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내장산, 변산, 고창 등 예부터 유명한 관광지에서부터 지리산둘레길, 임실치즈마을, 정읍한우마을 등 몇 해 전부터 새롭게 부상한 신흥관광지, 그리고 앞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할 새만금개발사업 등등.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할 때 항상 아쉬웠던 부분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산업화였다. 몇 해 전 필자가 은행 본부장으로서 전북을 담당할 때도 이는 항상 아쉬웠던 부분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스토리가 중요한 지금, 전북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도민 모두가 협력하여 '찾아오는 전북', '살고 싶은 고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풍성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고일영(기업은행 부행장)▲ 고일영 부행장은1977년 기업은행에 입사해 전자금융부장, e-business부장, 종합기획부장, IT본부장 등을 거쳐 현재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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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21 23:02

[타향에서] 우리 음식이 세계인을 살린다 - 정운천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과 약은 근본뿌리가 같다는 말이다. 몸에 맞는 음식, 영양의 균형을 잡아주는 음식은 효과가 뛰어난 약이나 마찬가지다. 음식만 가려 먹어도 질병의 대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우리 국민에게 좋은 음식은 우리 전통음식이다. 풍토합일(風土合一)이요, 신토불이(身土不二)다. 이것은 결코 우리 농산물 판매를 위한 판촉구호가 아니다. 의학이자 과학이다.우리는 조상 대대로 채식민족이었다. 유사 이래 곡류와 야채를 중심으로 식생활을 영위해 왔다. 육류를 위주로 한 서양 유목민족과는 체질적으로 다르다.이러한 차이는 신체구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 민족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몸속 대장의 길이가 평균 9.5m다. 8m인 서양인들보다 1.5m나 길다. 수천년 동안 채식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곡류나 야채는 몸속에서 오랫 동안 천천히 소화되므로 거기에 맞게 대장이 늘어난 것이다.육류는 그 반대다. 짧은 시간에 빨리 소화되고 빨리 썩는다. 남은 찌꺼기도 빨리 빠져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축적되고 부패된다. 그런 육류를 주식으로 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의 대장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음식이 신체 건강은 물론 신체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채식에 적합한 몸을 가진 우리 민족에게 채식 위주의 우리 음식이 최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우리 음식, 한식은 신토불이에 앞서 그 자체로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한식은 대부분 발효과정을 거친다. 장기간의 숙성을 통해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유산균을 생성한다. 음식을 살아 있는 미생물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한식을 먹으면 영양과 칼로리 뿐 아니라 각종 유산균까지 공급받는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기 않고 활동성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에 비해 양식은 육류 중심의 인스턴트 식품이다. 짧은 시간에 높은 칼로리만 공급한다. 그 결과 몸이 비대해지고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에 쉽게 노출된다. 미국의 경우 국민의 60~70%가 비만이다. 성인병을 앓고 있는 국민이 전체의 30%를 넘는다. 국가 재정이 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유럽 각국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황은 마찬가지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우리의 발효식품을 주목하고 있다. 웰빙식품이자 다이어트식품인 한식에서 비만과 성인병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고 있다.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한식을, 영양을 고루 갖춘 모범식으로 소개했다. 세계적인 건강잡지 『헬스(Health)』도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음식으로 선정했다. 된장 고추장에 대한 관심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그런데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오히려 양식을 선호한다.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인스턴트 식품에 빠져 들고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도 어린이 비만과 성인병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배불뚝이를 요즘에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 음식을 되살려야 한다. 주식을 되찾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발효식품을 부활시켜야 한다. 천일염과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은 하나같이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빚은 자연의 음식이다. 이를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되살리는 것은 전통음식의 계승에서 나아가 세계인을 살리는 길이다.그런 의미에서 최근 들어 일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 움직임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노력들이 보다 체계화되어 한식이 세계인의 음식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대한다./정운천(전 농림부 장관)※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은고창 부안면 출신으로 현 국무총리직속 새만금위원회 위원, 이순신 리더십연구회 이사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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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14 23:02

[타향에서] 된장의 성인병 예방효과 - 황의영

대망의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부자 되세요. 어릴 적 요맘때쯤이면 고향 우리 집 안방 시렁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갈라진 메주 틈 사이로 흰곰팡이가 서려있고 메주 뜨는 코콤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11~12월 경 수확한 햇콩으로 메주를 쑤어 목침만한 크기로 빚어 2~3일 정도 말린 다음 볏짚으로 묶어 시렁 등에 매달아서 띄웠다. 30~40일 지나 메주가 잘 뜨면 입춘이 지나고 맑은 날을 골라 메주를 쪼개 장독에 넣고, 천일염을 물에 타 하루쯤 가라앉힌 소금물을 붓고 빨갛게 타는 참숯, 고추, 불에 구운대추를 함께 띄워 장을 담근다. 이는 불순물과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전래되는 방법이다. 장을 담근 지 20~30일이 지난 다음 메주를 건져서 다시 소금을 골고루 뿌리고 간장을 쳐서 질척하게 갠 후 옹기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고 웃소금을 뿌린다. 잘 봉해서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햇볕을 쪼여 메주가 삭게 되면 된장이 된다.우리 음식은 거의 모두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간을 맞추고 맛을 냈다. 장맛이 곧 음식맛이었다. 장맛이 좋은 집안의 음식은 맛있었고 사대부가에서는 좋은 장맛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가문의 자부심으로 여겨왔다. 장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의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고구려에서는 장양(藏釀)을 잘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된장 간장을 담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조선시대 초?중기의 기록인 《구황촬요(救荒撮要)》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각각 조장법(造醬法)과 장제품조(醬諸品條)가 있어 좋은 장을 담그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장제품조의 첫머리에 "장은 모든 음식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안 좋으면 좋은 채소와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없다. 설혹 촌야(村野)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해도 여러 가지 좋은 맛의 장이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다. 우선 장 담그기에 유의하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함이 도리이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장을 소중하게 여겼다.어릴 적 우리는 "콩은 밭의 고기"라고 배웠다. 그러나 콩은 이제 단순히 단백질과 지방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질병을 예방하는 식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콩의 주요성분으로는 단백질올리고당식이섬유인지실이소플라본사포닌트립신 저해제피트산 등이 있다. 콩단백질은 혈중 콜레스테롤, 혈중지혈, 지방단백질 농도감소, 동맥경화 심장병을 예방한다. 콩오리고당은 장내 유용균 번식을 촉진하고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 배설을 촉진하며 장기능에 대한 생리효과가 있다. 인지실은 생체박 성분, 뇌기능향상과 노인성 치매예방, 혈중 콜레스테롤 축적예방, 이소플라본은 암세포 증식 억제로 유방암?대장암?폐암 등의 항암효과와 골다공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트립신 저해제는 항암작용, 당뇨병 예방, 피트산에는 철과 결합하여 지질 산화억제의 효과가 있다. 이렇듯 콩은 풍부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어 우리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콩으로 된장 간장 두부 등의 음식을 만들지만 그 으뜸이 된장이다. 일상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음식중의 하나가 된장이다. 예부터 어느 집에서나 된장은 쌀과 같이 기본식량으로 여겼다. 여름철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상추에 된장을 싸서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했고 보리밥이라도 물에 말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으면 한 끼가 거뜬했다. 최근에도 돼지고기 쇠고기를 구워먹을 때 고기를 야채에 된장과 함께 싸서 먹는다. 또한 국을 끓일 때도 된장을 풀어 끓이면 맛있다. 된장을 되게 개어 물을 붓고 풋고추 애호박 파 등을 썰어 넣고 끓인 된장찌개면 한 그릇의 밥을 바로 비웠다. 이 된장이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준 소중한 음식이다. 요즘 도시의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된장을 담그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된장을 직접 담그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다보니 우리들 식탁에서 된장이 멀어져 가는 것 같아서 한 없이 아쉽다.우리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된장을 많이 먹도록 하여 수천 년 이어온 우리음식과 가족의 건강을 지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길 간절히 희망한다. 된장이 많이 소비되면 농가에서는 콩 재배가 늘어나고 콩으로 소득이 높아지게 되면 농산물 수입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농가도 도와주는 것이다. 수천 년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온 영양의 보고 된장을 많이 먹자./황의영(농협중앙회 상호금융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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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07 23:02

[타향에서] 시간에 관하여 - 김년균

한 해가 벌써 간다. 오늘은 올해의 끝이고, 내일은 새해의 시작이다.어제는 친구와 막걸리를 마셨다. 좀체로 술을 마시지 않는데, 세모라서 마음이 들뜬 탓일까. 몸에 좋다는 막걸리를 몇모금 마시다 보니, 금방 하루가 지났다. 시간은 왜 이리도 빠른가.시간을 두고 '쏜살' 같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시간의 역사로 따져보면 쏜살 정도가 아니다. 십년이 순간이고, 백년이 잠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어느 물리학자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가 137억 살이고 지구는 50억년 전에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가 현재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북극성을 바라본다면 천년 전 것을 보는 것이고, 안드로메다 은하를 바라본다면 2백만년 전을 보는 것이 되며, 10억광년 떨어진 은하를 관측한다면 10억년 전을 관측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그만큼 광대한 시간의 역사 앞에서 인간의 수명을 계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루살이'를 보며 비웃을 일이 아니다. 밤에 북극성을 바라보는 것이 천년 전을 보는 것이라는데, 인간의 생애 백년쯤이 하루살이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런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시간의 불감증에 걸린 셈이다.시간은 만물의 생멸을 지배한다. 시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의 귀함을 알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간의 가치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쓰는 데 있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똑같은 시간을 살았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한다. 똑같은 시간을 썼으면서도 어떤 문인은 명작을 남기는가 하면 어떤 문인은 쓸만한 작품 하나 못쓰고 술꾼으로 전락하고 만다.어떤 이는 평생동안 거리에서 휴지를 줍는 일을 하면서도 큰돈을 모아 장학기금 등을 만들어 칭송을 받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애초에 큰돈을 가진 부자였으면서도 나중엔 빈털터리가 되어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온갖 절망 속에서도 시간을 가치있게 써서 큰 인물이 된 경우를 우리는 목격한다.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어느 것도 그 위력을 앞서지 못한다.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미래는 주저없이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한다'(실러)는 것이다.옛시조에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부디 지 말고 촌음을 아껴 쓰라/가다가 중지곳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가 있다. <청구영언>을 엮은 김천택(金天澤)의 글이다. 옛날 사람들도 시간에 대한 생각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시간의 실체를 보며 정신차리고 살아갈 일이다. 시간은 쓰는 자에 따라 성격도 달라진다. 성장을 기르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패배를 안겨주는 악마가 되기도 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지만, 그를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이 없이는 기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시간을 아는 이들은 저마다 충고한다. '성인은 한 자(尺)의 벽보다 한 치(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劉安), '시간을 서투르게 쓰는 자가 시간이 짧다고 불평한다'(브르예르), '평범한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데 쓰고, 유능한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 데 쓴다'(쇼펜하우어).사람은 언제나 할 일이 많고, 시간은 아껴도 모자란다./김년균(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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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31 23:02

[타향에서] 일자리를 위하여 - 김성중

성탄절이 다가오고 한해가 저물어간다. 겨울이 깊어 가면 부모들의 시름도 깊어간다. 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입 때문에 열병을 앓고, 기껏 고생하며 대학까지 보내어 졸업을 앞에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취업 때문에 주름살이 깊어만 간다.사실 고용의 문제처럼 중요한 사안은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부모의 품에서 자라며 학업을 마치면 반드시 일을 해야 살 수가 있다. 예전에는 부모를 잘 만나(?)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요즈음에는 땀흘려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그러한 불한당(不汗黨)들은 없을 것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다는 것은 개인의 비극일뿐 아니라, 일자리가 없으면 주민들이 이탈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큰 숙제이기도 하다. 정부도 수년전부터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바꾸어 고용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고용문제 해결은 간단하지가 않다. 많은 이들이 그동안 경제성장만 되면 실업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대비 취업자 증가율을 나타내는 고용탄력성 추이를 살펴보면 그러지 않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1970~1980에는 0.50였다가 1981~1990년까지는 0.36으로, 1991~1996년에는 0.32로, 2000년대는 0.30로, 최근에는 0.1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2003년에는 경제성장률이 3.1%였음에도 취업자는 3만명이나 감소하고 말았다. 내년에 경제성장을 하여도 얼마나 고용이 늘지 우려된다.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고용인원이 많은 제조업의 유치 등 기존의 시책에 더하여, 사회적 기업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사회적 기업은 블루 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조차 생소하여 필자가 노동부차관시절 입법을 하면서 무척 애먹기도 했었다. 이제까지 기업이나 정부가 하는 일과는 달리 사회적 필요가 있는 서비스 제공이나 취약계층 고용을 위하여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다. 독거노인과 결식아동들에 대한 행복도시락배달사업, 가난한 가정을 위한 간병인 보조사업 등은 당사자와 기업과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이다. 사회적 기업이 발전하면 그 지역이 살기 좋은 곳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또 하나 관광산업을 잘 부흥시켜야 한다. 전북은 덕유산, 지리산, 내장산등 빼어난 산들과 드넓은 평야, 그리고 아름다운 해안과 섬들이 있다. 이제 주5일 근무제도 정착되어가고 교통편도 많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천혜의 자원에 인적인 요소만 합친다면 큰 고용창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친절'이다. 웃음띈 얼굴로 인사만 잘해도 여행객들의 가슴은 뛰기 마련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퉁명스럽지 않고, 친절하고 상냥하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인식 하나가 백만명의 여행객을 모을 것이다.한가지 제언을 하자면 무엇보다도 편히 잘 수 있는 전북식 숙소를 만들자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모텔의 불빛은 휘황찬란해도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가기는 민망하다. 전북식 숙소는 편히 잘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침 식사도 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조그만 호텔에서 정성껏 차려 내놓는 아침 식사가 얼마나 좋던가. 황토내음나는 한옥에서 푸근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 전국에서도 명성 높은 전라도식의 아침 밥상을 받게 되노라면 과연 '전라북도는 대한민국의 고향'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친절이 더해진다면, 몇 번이라도 찾고 싶어질 터이다./김성중(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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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24 23:02

[타향에서] 우리경제에 갖는 한·페루 FTA의 중요성 - 김상국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심신이 극도로 피곤하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열사의 사막인 사하라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평상인과 너무 다른 감수성을 가진 그에게 사하라사막은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이런과 비교도 안 되는 둔한 신경을 가진 나로서 그와 나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의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여행이 갖는 의미를 새로이 느꼈기에 괜스레 바이런의 얘기를 꺼내본 것이다. 직업이 교수인 관계로 여행을 자주하는 편이다. 그러나 방문하는 장소는 그리 다양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며칠 전 FTA 관계로 남미의 칠레와 페루를 방문하였다. 비행기 타는 시간만 24시간이 되는 먼 곳이어서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방문 이유는 칠레와의 FTA는 4년이나 되었으니 새로운 FTA의 방향을 정해보자는 것이었고, 페루와는 FTA를 빨리 체결하는 것이 양국 이익에 일치한다는 것을 그곳의 학자들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사실 칠레와 FTA 때는 온 국민의 반대가 참으로 많았었다. 포도와 관련 된 시위 사태를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그때의 기억은 우리에게 생생하다. 그런데 그 후 우리는 한?유로 간에 FTA를 체결하였고, 한?인도 간에도 FTA가 체결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페루 간 FTA 체결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이나 어느 매스컴을 보아도 일반 대중들이 이번 FTA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는 기사를 보지 못하였다. 과거를 상기해 보면 조금 어리둥절한 일이다.지금 우리는 칠레로부터 구리와 와인, 포도 등을 수입하고 있다. 구리와 와인은 원래 우리가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반대가 심했던 포도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듯하다. 우리 포도는 여름에 나오지만 남반구에 있는 칠레 포도는 그들에게는 여름, 우리에게는 겨울에 생산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포도는 문제가 되지 았었는지도 모른다. 그 대신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그들에게 수출하고 있다. 자동차, 전화기, TV 등 매년 대 칠레 평균 수출신장률은 42.4%나 된다. 칠레 신규 자동차의 8%는 우리나라 차다. 중고차 시장까지 합하면 그보다 훨씬 더 높다. 여행이 갖는 의미를 글 첫머리에 꺼낸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리라고 느끼는 것과 그 효과를 직접 확인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페루와의 FTA도 마찬 가지라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일부부처에서 반대하고 있고, 그 부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동조도 된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칠레와의 FTA 보다는 페루와의 FTA에서 우리가 얻을 실익이 훨씬 더 크다. 우선 농수산물 입장에서도 우리가 잃을 것이 별로 없다. 칠레와 페루 간에는 수입대체 효과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즉 포도의 수입도 칠레에서 페루로 대체되지 신규 수입의 창출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익은 명확하다. 칠레로부터 자원수입은 거의 구리뿐이다. 그러나 페루로 부터의 자원수입은 불가능한 것부터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다. 페루의 아연과 몰리부덴 수출은 세계 1위이고 은, 납은 세계 2위, 주석 과 금은 세계 3위 4위이다. 또한 천연가스와 원유도 중요한 수출자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티티카카호 근처에서 우라늄광산 까지 발견되었다.우리에게 있어서 우라늄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정부에서도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였지만 미래에 탄소절감은 경제발전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30% 탄소 절감목표는 화석연료의 사용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원자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지금도 우리나라 전기발전의 40%는 원자력 발전이다. 지금 세계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깨닫고 원자력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10년 미국 원자력 발전소 판매가격은 거의 10배 상승하였고, 일본은 무려 54기의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추세다. 탄소절감과 관련된 원자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라늄은 현재 세계 최고의 전략적 자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하루라도 빨리 페루의 우라늄과 그밖의 광물자원 개발계획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것도 선점하여 참여하여야 한다. 우리가 FTA 체결을 피해야 할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일본과 우리나라는 모든 산업에서 보완관계에 있지 않고 경쟁관계에 있으며, 그것도 그들이 우리보다 경쟁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밖의 나라와는 피할 이유가 없다. 피할 이유가 없다면 빨리하는 것이 더 좋다. 선점의 이익은 그 어느 것 보다 크기 때문이다./김상국(경희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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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17 23:02

[타향에서] 김치가 보약이다 - 황의영

김치가 보약(補藥)이다. 가정마다 몇 포기씩 더 담그자.김장이 한창이다. 집집마다 한겨울 식량인 김치를 많이 담근다. 가정뿐만 아니라 기관 단체에서도 김장을 많이 한다. 독거노인, 소녀소년가장, 불우이웃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김치를 담근다는 보도다. 그늘진 곳에 사랑을 나눈다는 훈훈한 얘기들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김치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가득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식이다. 채소가 없는 겨울철, 섭취가 어려운 영양소를 얻고자 가을에 채소를 절여서 식품으로 만들어 보관하면서 이를 먹었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 됐다. 김치는 배추무 등을 소금에 절여서 고추마늘파생강 등의 양념, 젓갈과 같이 버무려 저장한다. 저장된 김치는 젖산 생성에 의해 숙성되어 저온에서 발효된다. 김치를 담그는 것은 채소를 오래 저장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저장 중 여러 가지 미생물의 번식으로 유기산과 방향(芳香)이 만들어져 훌륭한 발효식품이 된다. 김치는 사시사철 한국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근래에는 여러 나라에서 건강식으로 대중화되고 있다.김치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약 3천 년 전의 중국 '시경(詩經)'이며, 오이를 이용한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라는 글자가 나온다. 조선 중종 때에 '벽온방'에 "딤채국을 집안사람이 다 먹어라"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를 우리말로 '딤채'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국어학자 박갑수는 김치의 어원에 대해 '딤채'는 '팀채'가 변했고 구개음화하여'김채', 다시 '김치'가 됐다고 설명한다. 김치를 지방에 따라서는 지(漬)라하고 제사 때에는 침채(沈菜)라 하며, 궁중에서는 젓국지짠지싱건지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현재는 김치하면 배추김치를 연상할 정도로 배추로 김치를 많이 담그지만 1900년대 전까지만 해도 김치의 주재료는 무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산동에서 배추가 수입된 후부터 배추김치가 널리 보급됐다. 김치에 쓰이는 고추는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을 통해서 17세기전후 전해졌기 때문에 그 후부터 김치에 고춧가루가 쓰게 됐다. 고추는 부패를 더디게 하여 고추를 많이 넣으면 옅은 소금물에 절여도 김치 맛이 오래간다. 또한 고추의 자극적인 맛은 소금만큼 식욕을 자극하고 탄수화물의 소화를 촉진시킨다.김치를 먹으면 신종플루를 예방하고 AI(조류인프루엔자)예방과 치료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심장병 예방, 항암 작용, 노화 억제, 소화 촉진, 면역성 강화, 항균기능, 돌연변이변비 예방, 체중조절 효과, 바이러스 감염콜레스테롤 억제 효과, 동맥경화 예방효과와 항생제 성분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Health)에서 요구르트, 낫또 등과 함께 세계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김치는 담글 때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파김치, 부추김치, 고들빼기김치 등으로 부른다. 담그는 방식에 따라 깍두기, 동치미, 백김치, 나박김치, 물김치, 보쌈김치 등 다양하다. 이 모두 한결같이 맛이 좋아 우리 미각을 사로잡는다. 지역에 따라 특색있는 김치가 많다. 전라도는 갓김치고들빼기김치?동치미가 경상도는 콩잎김치부추김치깻잎김치가, 충청도는 굴 석박지총각김치무짠지가, 서울 경기도는 보쌈김치?배추김치장김치나박김치 등이 유명하다. 김치는 반찬으로 밥과 같이 먹지만, 찌개, 전, 국, 볶음밥 등으로 요리하면 더욱 맛있는 음식이 된다.몇 일전 트랙터로 배추밭을 갈아엎는 모습의 보도를 접하면서 가슴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져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난 농심의 표현일 것이다. 집집마다 영양의 보고인 김치를 몇 포기씩 더 담아 배추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농민도 돕고 겨울철 건강도 챙기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김치가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황의영(농협중앙회 상호금융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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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10 23:02

[타향에서] 문인과 육필 - 김년균

육필이란 본인이 직접 쓴 '글씨'를 말한다. 그러나, 직접 썼다고 하여 모든 글씨에 '육필'이라는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육필이란 적어도 글씨를 쓴 분이 사회적으로 명망을 떨친다거나, 또는 역사에 남을만한 인물이라던가 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우리집에는 박두진, 김동리, 김구용의 육필이 벽에 걸려 있다. 구상, 김상옥, 박재삼의 육필도 있었으나 이사다니며 잃어버렸다. 박두진 육필은 80년대 초던가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친척에게 부탁하여 구했고, 김동리, 김구용의 육필은 두 분이 스승이어서 자주 만났으므로 자연스레 손안에 들어왔다.이 육필을 응접실에 걸어두고 수십년을 지낸다. 특별히 관심있게 관찰하기 보다는, 눈길 한번 못주고 지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걸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다. 배우들의 얼굴이나 화가의 그림처럼 예쁘거나 멋있지 않고 종이조차 누리끼리하게 바랬어도, 뒤에서 밀어주는 후원자처럼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육필의 묘미인지도 모르겠다.하긴, 추사의 육필인 '세한도'에 대해선 요즘 시인들이 작품을 많이 쓴다. 금방 기억나는 시인만 해도 유안진, 이가림, 유자효 씨가 있다. 그들은 '세한도'를 대상으로 작품을 썼는데, 모두 문학상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귀한 육필을 보면 신기한 감흥이 솟구치나 보다.얼마 전에 한국문인협회에서 '문인육필전'을 개최했다. 황금찬 김남조 이호철 성춘복 김후란 허영자 오세영 김승옥 등, 원로문인에서 중견문인까지 130여명이 참여했고, 모두들 자신의 시나 산문을 붓으로 족자에 썼는데, 각기 필적이 다르기 때문에 전시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 되었다. 이 육필들을 후대의 문학연구가들이 문학사료로 쓸 수 있도록 협회에 기증해 달라고 했더니, 한 분도 반대하지 않았다.문인의 육필은 자신의 필적일뿐, 문학작품은 아니다. 문학작품이라면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 비치하여 보존할 수 있겠지만, 육필은 그럴 자리가 없다. 육필을 관리하고 보존할 기관이나 단체 등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조그만 전시관은 몰라도, 마땅한 곳이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작가의 서가나 친지의 응접실 같은 곳에 걸어둘 수밖에 없는데, 세상살이란 한 집에만 오래 살 수 없는 것이라서, 혹은 이사다니며 찢겨지고, 혹은 자식이나 손자들이 장난질하며 부서뜨리고, 이래저래 결국 없어지기 마련이다. 하거늘, 문협 같은 기관에서 보존해 준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현대문학 백주년기념 행사로 한국문인협회에서 '작고문인 육필전'을 작년에 개최한 바 있다. 그런데 문인의 '육필' 구하기가 어찌나 힘들었던지 십년은 감수할만큼 애간장 태웠던 기억이 새롭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육필을 가진 분들을 찾아냈지만, 그분들도 잘해야 한 두점 가졌을 뿐이고, 그것조차 잃어버릴까 두려워서였던지 바에 내놓기를 주저했다. 전시회의 취지를 열심히 설명하여, 이광수 한용운 홍명희 서정주 박목월 박두진 박종화 유치환 황순원 김광균 신석정 김동리 설창수 윤석중 이원수 구상 김상옥 김구용 정비석 김춘수 등, 40여 명의 육필을 전시할 수 있었는데, 이 전시회가 문단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원로시인 김남조 선생께서 "전시회를 연장할 수 없느냐"고 전화를 주신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귀한 전시회였기에,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였으리라.문학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학문이다. 문인은 글(작품)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밝히는 빛을 만든다. 문인의 글씨는 그 빛을 만드는 도구다. 그 글씨엔 문인의 혼이 담겨 있다. 문인의 육필은 그래서 귀중하다./김년균(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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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03 23:02

[타향에서] 깜빡등 켜기 - 김성중

얼마전 전주에 가려고 오랜만에 차를 몰아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는 길이 막히다가 천안을 넘어서니 제 속도를 낼 수가 있어서 110Km로 주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추월선에서 앞차를 따라가던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들었다. 깜짝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보니 젊은 사람이 몰고 있는 BMW 신형차량이었다. 그 차는 또다시 아무 신호도 없이 추월선으로 파고들어 원래 자기 앞에 가던 차를 앞지르고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치 감히 좋지도 않은 차가 내 앞을 막고 있느냐는 투였다.필자가 보기에 신호를 하지 않고 끼어들거나 과속을 하는 차들은 대부분 외제차나 대형차들이다. 많은 차들이 남들이 자기 앞에서 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빵빵 클랙슨을 울리는가 하면, 번쩍번쩍 경고등을 울려대거나, 그 차를 앞지르기 위해 곡예운전을 하기도 한다. 유리창을 내리고 욕을 하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사람조차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보면 앞지른 사람들도 식사를 하거나 용변을 보거나 차를 마시다가 마주치게 된다. 얼마나 계면쩍고 무안할 것인가... 좋은 차를 탄 사람도, 나이 젊고 운전 잘하는 사람도 멀리 가지 못한다. 비슷한 때에 출발을 하면 같이 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두 동행자요, 동반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조금 먼저 가려고 얼굴 붉힐 것은 없다.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도 자동차가 급속히 보급되어 편리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필자가 태어난 고창군 무장까지 가려면 6~7시간 걸렸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울 사람들이 골프 치러 고창에 가는 게 흔한 일이 될 정도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자동차가 증가되는 만큼 자동차 이용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1980년대에 코넬대가 있는 이타카에서 뉴욕을 가야할 일이 있어서 미국자동차협회(AAA)에 의뢰하였더니 상세한 지도와 도시 안내서를 받게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자동차 문화가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한 AAA 안내서의 최종 결론이 '뉴욕에서 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전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Best way to drive in N.Y. is not to drive) 과연 전북의 도시들에게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인지..... 천년 고도라 워낙 비좁아서 그런지 전주에서 운전할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한 국가나 한 지역의 발전수준은 법과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한동안 전북에서는 불법분규 없는 지역을 표방하면서 기업들을 유치하려 노력하였다.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규칙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운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북지역이 룰을 잘 지켜 안전하고 살기좋다면 관광객뿐 아니라 기업 유치도 많아질 것이다.최소한 우리 고향에서는 깜빡이라도 잘 켰으면 좋겠다. 신호를 잘 보내고, 신호를 잘 지키면 좋겠다. 그것이 사고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예의이기도 하기 때문에./김성중(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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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1.26 23:02

[타향에서] 청년 실업 문제, 어떻게 풀것인가? - 김상국

현재 우리나라 실업문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큰 문제다.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큰 문제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업율은 통계수치로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몇 달 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실업율은 3.8%로 OECD국가 실업률과 비교하면 네덜란드의3.0%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미국의 실업율 9.8%나 스페인의 실업율 15.5% 그리고 얼마 전 까지 강소국의 대표적인 나라였던 아이슬란드의 17%가 넘는 실업율에 비교하면 우리나라 실업율은 대단히 낮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슴에서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얘기다. 여기에 바로 통계의 마술이 숨어 있는 것이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직장이 없는 사람들의 비율을 말한다. 그리고 경제활동인구는 현재취업자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실업자를 합한 수치이다. 그러므로 실업률을 계산할 때 비경제활동인구는 포함되지 않는다. 즉 군인이나 주부 그리고 구직활동을 포기한 실망노동자 들은 통계에서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발표된 실업율은 실제 보다 더 좋은 수치가 된다. 여기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구직활동을 여러번 시도하다 포기한 실망노동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청년실망노동자들이 문제다. 청년실업은 15세에서 29세사이의 실업을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나 청년실업은 보통 전체 실업의 두배 가까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실업율은 약 3.8%이지만 청년 실업율은 8%를 상회한다. 그러므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청년실업이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청년 실업이 가까운 장래에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성장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번 금융위기 이후 특히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규로 유입되는 청년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약 5~6%의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속도는 높아야 4% 보통 3%대이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율 자체가 전체 신규인력을 고용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이다.둘째는 경제 성장률 1% 당 생기는 직업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통계 숫자 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과거에는 경제 성장률 1% 당 3만개 정도의 직장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절반 정도 수준이다.셋째는 기업들의 고용기피 현상이다. 기업들은 이익을 중시 여길 수밖에 없고, 그리고 장기간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경기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경기의 상승과 하강 시기에 따라 근로자의 수를 조절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나라 현실 상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기업들은 기존인력들에게 초과수당을 주는 한이 있드라도 신규인력 고용을 가능한 줄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신규인력의 고용은 더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청년 실업 문제를 본질적으로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과도한 제 몫 찾기 현상"이다. 일부 대기업 근로자들의 연봉은 중소기업 사장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유주의 경제의 가장 기본 원칙은 "자기 몫에 해당하는 값을 찾아가는 것" 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자기 몫 이상을 찾아가면, 다른 한쪽에서 반드시 그것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 다른 한쪽이 직장 갖기를 희망하나 직장을 잡지 못하는 젊은 근로자일 수 있고, 또는 가격 결정 능력을 갖지 못하는 중소기업일 수 있다. 당연히 대중소기업 간 급여에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이것은 다시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고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는 것이다.우리가 청년 실업문제 (일반적 실업문제도 동일함)를 이와 같이 분석한다면, 해결책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가장 근본적 해결책은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서 경제성장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둘째는 언론이 중심이 되어 광범위한 사회 운동을 펼치는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기업 중소기업의 직장 (직업이 아님)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크게 홍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근로관행을 정착시키는 것이다.우리민족은 항상 위기에 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IMF의 위기도 우리만큼 빠르게 회복한 나라가 없다. 이번 금융위기도 우리만큼 쉽게 피해 간 나라는 없다. 또한 내년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회복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는 잠시 어려운 이 시기를 또 다시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김상국(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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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1.19 23:02

[타향에서] 막걸리가 뜨고 있다 - 황의영

막걸리가 한일 정상회담 만찬 시 건배주로 사용되는가 하면 서울의 일류백화점 주류 판매실적에서 와인과 맥주의 판매액을 앞섰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아지면서 막걸리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3/4분기까지의 막걸리 수출량은 4,380t, 수출금액으로는 356만 2천달라인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물량은 24.1%, 금액은 23.2%가 각각 늘어났다. 수출국 또한 기존의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베트남, 호주 등에도 수출된다고 하니 머지않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술이 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막걸리는 우리나라의 전통 술로 '쌀과 누룩으로 빚어 그대로 막 걸러내어 만들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막걸리는 대체로 쌀뜨물과 같은 흰빛을 띠고 있다. 지금처럼 규격화된 양조법으로 대량 생산되기 전에는 집집마다 나름대로의 술 빚는 방식이 있어 가문마다 지역마다 맛과 빛이 달랐다. 막걸리는 희다 해서 백주(白酒), 탁하다하여 탁주(濁酒), 집집마다 담가 먹는다하여 가주(家酒), 농사지을 때 새참으로 마신다 하여 농주(農酒), 제사 지낼 때 쓴다 해서 제주(祭酒), 백성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 하여 향주(鄕酒),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 해서 국주(國酒)라고도 불렸다. 지역에 따라 모주, 왕대포, 탁배기라고도 한다.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이지만 그 기원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민족과 함께 해온 술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고조선 단군께서 신곡이 수확되면 여러 신(神)에게 제사 지냈는데 햇곡식으로 만든 떡과 술, 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역사로 볼 때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술임에 틀림이 없다. 문헌상으로는 고려 때 이달충의 시에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 라는 문구로 처음 언급 되는데, 이를 볼 때 그 당시에도 서민의 술로 애용됐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때에 이화주(梨花酒)라고도 불렸는데 이것은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드는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영양성분이 많아 요기도 되고 흥을 돋워주기에 오랬동안 우리민족의 사랑을 받고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특히 농사철에 농부들이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허기를 달래며 일해 왔다.요즘 막걸리가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6%로 다른 종류의 술보다 현저히 낮고 쌀로 빚어서 몸에 부담이 적다 보니 양은 주전자에 담겨진 대포집 막걸리를 즐겨 마셨던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여성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최근 알려지고 있는 막걸리의 효능을 보면 당뇨병과 고혈압에 좋을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 효과에다 특히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탁월하다고 한다.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식욕을 왕성하게하고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크다. 또한, 막걸리가 암 예방과 암세포 증식 억제, 간 손상 치료, 갱년기 장애해소 등에 탁월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막걸리에는 단백질을 비롯한 비타민B, 아미노산류가 풍부하고 구연산과 젖산이 있어 청량감이 있는 상큼한 맛과 갈증을 해소해 준다. 이런 효능에 홍어와 빈대떡, 파전 등과 같은 대중적인 음식과 궁합도 잘맞다 보니 점점 인기가 높아 지고 있다.일제강점기에 주세령 때문에 우리 전통주의 맥이 끊겼고 광복 후에도 일제치하의 주세행정이 그대로 이어져 다양한 우리의 전통주가 사라졌다. 특히 막걸리는 식량부족을 이유로 만드는 재료를 밀가루 등 잡곡을 사용하게 함으로서 맛이 떨어져 애주가로부터 멀어졌다. 이제 쌀로 빚는 우리 막걸리가 전통의 맛을 되찾았으며 애주가들의 사랑도 받게 됐다. 우리입맛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이를 위해 대부분 수입쌀로 빚고 있는 막걸리를 생산원가가 조금 높아지더라도 국산 쌀로 빚어 품질을 높였으면 한다. 포장용기도 고급화하여 수출도 더욱 늘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모처럼 일고 있는 막걸리의 소비증가가 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도 돕게 되고, 수출증가로 인한 국가경제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소비자인 애주가들도 다소 값이 높아지더라도 국산 쌀로 빚은 순수한 우리 전통의 막걸리를 지속적으로 애용해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린다./황의영(농협중앙회 상호금융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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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1.12 23:02

[타향에서] 가을과 어머니 - 김년균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왔다. 고향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 되어, 이제 그곳에 가 보았자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로 낯설다. 다만 마을 한 귀퉁이 언덕바지에, 먼저 간 어머니께서 한많은 세상일 잊고 편안히 잠들어 계실 뿐이다.어머니가 묻힌 묘지에 가서 인사드리자 '왜 이제 왔느냐'며 한편은 꾸중을 하고, 또 한편은 반가워하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느낀다. 송구스럽고 죄송해서 나는 묘소 근처만 이리저리 서성거린다."어머니, 용서하세요. 또 오겠습니다."돌아올 땐 마음이 울적하고, 가슴 한가운데 무언가 응어리 같은 게 뭉클하게 치솟는다. 그리움이 남겨놓은 표적일 터이다.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늘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란 누구일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런 존재일까.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전쟁(6.25)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세상이 몹시 시끄러웠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겹쳤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굶주림에 지쳐 있었다.그런 어느 날이었다. 이웃마을 잔칫집에 가셨던 어머니가 황급히 돌아왔다. 어려운 시절에 모처럼 잔칫집에 가셨으니, 오래 놀다와도 될 텐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나를 찾더니, 나들이옷도 벗지 않은 채 젖가슴을 펼쳐 보였다. 어머니의 봉긋 솟은 두 개의 젖과 함께 드러난 가슴팍, 그곳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이 달라붙어 있었다. 말만 들어도 군침이 넘어가는 떡이었다. 손에 들고 오거나 손수건에 싸 와도 될 텐데, 어머니는 떡이 식을까봐 가슴팍에 품고 왔던 것이다."식기 전에 먹어라."어머니는 가슴팍에 붙은 떡을 넘겨주며, 이제야 안심이 되는 듯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떡은 정말 신기하게도, 방앗간에서 막 만들어낸 것처럼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그런데 그 떡이 왜 그리 맛있었던가를 깨달은 것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였다.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였다. 자식이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오장육부를 다 꺼내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안 뒤부터였다.얼마나 어리석은가. 깨달음이란 언제나 삶의 뒤안에 숨어 있다가, 뒤늦게야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시인이자 국어학자인 이희승 선생은 <어머니>란 시에서 "하늘이라 하오리까/ 땅이라 하오리까/ 한낱 미물로/ 그 높이를 어이 아오리까/ 야중가리 없는 떡잎으로/ 그 넓이를 어이 헤아리오리까// 해에다 대오리까/ 달에다 비기오리까/ 가슴속에 스며드는/ 어머니의 사랑/ 볕밭보다 따뜻하오이다/ 달빛보다 서늘하오이다"라고 썼다.요즘, 양로원이 잘된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노인이 지내기에 편리한 곳'이라서 그렇다고도 하지만, 왠지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부모 자식간에 떨어져서 외롭게 살고픈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혹시라도 자식이 부모를 버렸거나, 부모가 자식을 버렸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가.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天高馬肥)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생각이 무르익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들녘에 나가면 흔연히 널려 있는 오곡백과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를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삶도 이젠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고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김년균(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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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1.05 23:02

[타향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 - 김성중

오래전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할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 하는 주제였다. 얼핏 얼마나 돈을 가져야 부자일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담당 교수는 미국에서는 돈이 동서들보다 많으면 부자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위 사랑은 장모'란 말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 가족들이 모이면 장모가 이리저리 사위들을 비교하곤 하는데 그때 동서들보다 돈이 많으면 부자라는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부와 지위에 대한 것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고, 규모보다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필자는 얼마 전에 너무나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상담을 하고 있었는데, 인천의 모 영세업체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가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찾아왔다. 필자가 감히 사장을 바꾸라 할 수도 없어서 경리를 담당하는 직원을 바꾸어달라고 했더니 젊은 여성이 전화를 받자마자 '아저씨가 뭔데요?' 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자원봉사하는 사람이라 말하고, 그 외국인근로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걔'를 잘알지요" 하길래 밀린 임금을 주도록 종용하자 '안주면 어쩔 건데요?' 하고 쏘아붙인다. 너무나 어안이 벙벙해서 사장님한테 보고하면 될 터인데 왜 그러느냐, 법대로 임금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했더니 '아저씨나 잘 하세요' 하고 전화를 끊는게 아닌가.세상에 딸보다도 어린 사람한테 이런 수모를 다 당하다니, 너무나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득 나이 먹은 내게 이럴진대 사업장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세한 업체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의 월급도 그다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보다 나이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걔'라고 하대하며 욕하고 부려먹고 혼내어도 된다는 것인지.사람들은 자기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길에서 '내가 누군데?' 하고 소리 지르며 싸우는 사람들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진정 훌륭한 사람들은 남을 깔보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남들에게 더 잘 대해주려 애를 쓰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오히려 별로 잘나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남보다 조금 우월한 위치에 있다하여 남을 괴롭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민주국가가 발전하게 된 것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참정권도 없었을 것이고, 어린이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을 것이며,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고 말았을 것이다.외국인근로자에게는 이름도 부르지 않고 이놈, 저놈 하면서 욕을 하는 사업장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는 욕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자기나라에서 뛰어나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귀국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인격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되면 한류열풍도 확산되고 우리나라의 수출도 확대되기도 할 것이다.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너무나 아쉽다./김성중(前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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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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