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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대장경 천년, 계승·발전시켜야

올해는 초조대장경 판각 시작 1000돌이 되는 해이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맞아 고려 현종 2년(1011) 판각을 시작하여 1087년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목판대장경이다. 경판은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인쇄본만 현재 일본에 2500여 권, 국내에 300여 권이 전한다.현대를 국력 중심의 '하드파워'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힘을 중시하는 '소프트파워'의 시대라 말한다. 문화는 오랜 기간에 걸친 지식, 기술, 경험의 축적이니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인간사이다. 그리고 모든 문화와 문명은 기록을 통해 널리 전파되고 후대에 전해지며 새롭게 창조된다. 따라서 인쇄술은 모든 문화와 문명의 모태라 할 수 있다. 하물며 시간적으로는 천여 년에, 공간적으로는 당시 아시아 대륙에 걸쳐 집적된 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대장경에 있어서이랴. 그래서 중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총력을 기울여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우리의 재조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만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당시 대장경은 세계 곳곳의 학문과 지식을 수집, 집약시켰기 때문에 국력의 상징이자 첨예한 선진문명의 지표이며 주도권에 대한 상징이었다. 비록 송(宋)나라가 가장 먼저 판각했지만, 고려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 지식의 보고(寶庫)로 재창조하였으니 당시 고려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선진국이었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산이다.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은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문화의 유전자 '밈(meme)'을 지니고 있었음을 대장경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고려대장경을 만든 지적 유전자가 우리 몸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IT 강국이 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흔히 대장경을 호국불교의 대명사, 혹은 불교 경전의 집합체로서 불교 신자들에게만 의미있는 유산 정도로 생각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견해다. 대장경은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된 많은 성현들의 지혜가 한 데 모인 공동 창작물이자 기록의 집적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三藏(經律論)뿐 아니라 사전류, 목록류, 전기류, 도해류, 역사서, 여행기, 상소문, 비문, 시문, 심지어는 이교도의 성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근대에 편찬된 일본 대정신수대장경에는 景敎의 문헌(唐나라 때 장안에 정착했던 기독교인들의 성경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대장경의 정신은 당시의 중요한 기억들까지도 정리하여 후세에 전함을 기본으로 해 왔다.이러한 대장경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았다. 이전에 인쇄된 그 많은 대장경을 모두 일본에 주어버렸고, 더욱 기막힌 일은 일본 사절들이 애원하여 얻어간 우리의 대장경을 방방곡곡의 사찰에 소중히 모셨던 데 비해, 조선의 유학자들은 나라를 오염시키는 쓰레기 정도로 여겼음을 조선왕조실록은 생생히 전한다. 그 결과 현재까지 전하는 대부분의 초조대장경이 일본에 있고, 연구결과 또한 역수입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세계기록문화유산입네,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입네 입으로만 되뇌인다. 오늘날에도 일부 몰지각한 성직자와 종교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대장경 조조 시작 1000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물을 지니고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던 조선시대의 폐쇄적이고 무지몽매했던 유학자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도 늦지 않다. 대장경을 여러 차례 조성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찾는 국가 차원의 노력과 재창조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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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17 23:02

[타향에서] 전북의 '매력 경쟁력'

최근에 '매력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개인도, 도시도, 국가도 매력을 경영하여 호감을 얻고 다른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매력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21세기는 매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많은 학자들이 강조한다.미래학자 롤프 얀센(Rolf Jensen)은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미래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담겨있는 감성가치이야기 등을 구매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마케팅을 강조했다. 그가 방한했을 때 "김치에도 이야기를 담아 문화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던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오래된 도시들은 문화와 예술, 음식 등을 자기만의 매력경쟁력으로 삼고 있는 곳이 많다. 프랑스에 갈 때마다 문화와 예술적 향취로 가득한 도시들이 참 많다는 점을 느끼곤 한다.비교적 최근에 조성되는 도시들도 매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 부단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같은 모양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하여 개성 강한 건물로 가득한 활력있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의 라스베이가스도 다양한 공연 등을 통해 도박 도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방문하고 싶은 친근한 도시 이미지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그렇다면 전북은 어떻게 하면 글로벌 매력 경쟁력을 높여 나갈 수 있을까?한국의 음식과 전통문화가 물씬 넘쳐나는 고장, 그 속에서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미래 고령화시대에 매력있는 전북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2009년 지역 건강통계에 따르면, 전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건강한 고장이다. 스트레스 인지율이 24%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다. 또한 사망률의 예측지표로 널리 활용되는 주관적 건강상태(self-rated health)는 53.6%로 제주(53.8%)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아 전북인의 절반 이상은 건강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매력 전북, 매력 전북인이 되기 위해서, 우선 모두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제일의 맛 고장인 전북에 세계적인 미식가들이 찾아올만한 대표식당을 전략적으로 키워보자. 프랑스의 수도가 파리지만, 음식의 수도는 리옹인 것처럼 대한민국 음식 수도로 도약할 만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면에서 작년 12월 전주에서 열린 OECD관광위원회에서 '한식 세계화와 음식관광 선진화 방안'을 논의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전북을 고령화 시대의 건강하고 안락한 생활공간으로 재설계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단기간내에는 어렵겠지만 도시 한 가운데 광장이나 공원을 만들어 주말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들이 함께 어울리고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구 확장기의 도시 경쟁력이 좋은 직장과 학교였다면 고령화 시대에는 건강하고 안락한 삶의 질에 따라 도시매력이 결정된다는 점에 우선 착안하고 실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또, 전북은 예로부터 예술과 문화의 고장이다. 한국관광의 으뜸명소로 선정된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하여 각 마을마다 고유의 예술과 문화적 전통을 키워보자. 전북의 초등학교는 예외없이 전통음악 과목을 두고 특성화교육을 해보자. 전북에서 매년 벌어지는 축제는 음식과 전통문화 축제로 총체적으로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가장 이상적인 매력경영은 외적 매력과 내적 매력의 통합이라고 한다. 외적 매력은 보는 순간 바로 나오고 내적 매력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차차 나오게 된다. 그래서 내적 매력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오래도록 지속되는 매력은 내적 매력의 힘으로 뒷받침되는 매력이다.전주비빔밥, 한옥마을, 새만금 등 세계적인 전북의 매력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오감(五感)으로 담아내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해 통합아이콘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필요함을 제안해 본다./ 김원종(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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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10 23:02

[타향에서] 타향에서

흔히들 2011년은 선거가 없는 해라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투표(投票)가 없다는 뜻이지 선거행위까지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연초부터 여러 형태의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다.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잠룡들의 용트림이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감으로는 한나라당 쪽에 박근혜 전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대표가 있고 민주당엔 손학규 당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정세균 최고위원이 포진하고 있다. 이 밖의 야권후보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당대표, 한명숙 전총리 등이 회자되고 있다.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율을 유지하는 박근혜 전 대표는 연초 3일간 그의 출신 기반인 대구에 가서 각종 지역행사에 참석했고 손학규 대표는 역시 연초 3일간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기는 전북의 전주군산정읍 등지를 누비고 다녔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말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복지관련 공청회를 주최하기도 했다.전북 출신의 정동영 최고위원은 통일원장관 출신답게 정부에 방북신청을 하는 등 햇빛정책을 계승하는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얼마전까지 당대표를 역임한 정세균 최고위원은 이른바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는 등 정책홍보에 치중하고 있다.이러한 잠룡들의 기지개를 접하면서 2012년 12월 19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의 관전 포인트를 살펴보고자 한다.첫 번째 관심은 정권교체 여부이다. 한나라당의 정권유지냐 야권의 정권탈환이냐의 문제는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으로만 보면 정당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이 많이 앞서있고 또 한나라당 후보의 인기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형국이어서 정권교체가 되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여야 1대1 선거가 되면 예측불허의 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아산정책연구원 의뢰로 지난 1월 20일 '리서치&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내년 대선때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가 35.4%이고 야당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는 36.8%로 나타났다.두 번째 관심은 한국에서도 여성대통령이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올해 1월 1일 브라질에서 지우마 호세프(63) 여사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 높은 룰라 대통령의 바통을 받아 대권을 승계했을 때 한국의 대선과 연결 짓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여성대통령이 안 나왔지만 지난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했다. 독일의 메르켈 여자총리(66)는 맹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지금 당장 투표하면 박근혜 의원(59)의 당선 확률이 매우 높다. 지난 1월 17일자로 보도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박의원은 압도적으로 높은 45%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모두 한자리 숫자의 지지도.그러나 대선까지는 2년 가까운 기간이 남아 있어 어떤 변수, 어떤 돌출 사건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말수가 적으면서 가끔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발언을 하는 박의원의 스타일로 봐서 큰 무리 없이 최종 선거에 임할 것으로 보여진다. 한나라 경선에서의 대항마가 누가 될지, 야권에서 누구로 단일화가 될지가 관심거리라 하겠다.세 번째 감상법은 각종 정책에서 나타나는 보수와 진보, 즉 우파와 좌파의 대결 구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벌써부터 민주당이 제기하는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대학등록금 반감 정책(이른바 3+1정책)이 뜨거운 이슈로 부각됐다. 재정 조달방식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정동영의원은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부유세(富裕稅) 신설을 제안하고 있다.한나라당 일각에서 추진하는 개헌문제도 민감한 사항중의 하나이다. 개헌하려면 국회 3분의 2 동의가 있어야하고 국민투표를 거쳐야하므로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친이계(親李系)쪽에서 이슈화하는 것은 다분히 대선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이러한 굵직한 정책들이 각 정당의 계파간에 또 여당과 야당간에 어떠한 쟁론으로 발전하는가에 따라 국민들간에도 상당한 이념적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선거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조남조 회장은 익산 출신으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언론인정치인행정가로 활동했다. 중앙일보 정치부장과 제 11, 12대 국회의원, 산림청장, 전라북도 지사,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을 지냈다./ 조남조(한국사료협회 회장전 전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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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27 23:02

[타향에서] 김완주와 정운천

전북출신으로서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먼저 지역구에서 당선되기는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고, 매 총선 때마다 비례대표 안정권에 우선 배정한다는 당 지도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속에서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분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예산국회 때마다 서울로 출장온 전북도 소속 공무원들은 "한나라당에도 전북출신 의원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정성이 배어 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현실적으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 전북에서 배출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기왕 말이 나온 김에 전북과 한나라당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김완주 지사가 한나라당에 어떻게 인식되어 있고, 정운천 최고위원이 전북출신 국회의원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뛰고 있는지를 설명하면 좋을 듯하다.지난 해 16개 시도가 국비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을 상대로 총력을 기울이던 10월 중순경이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전북 방문을 앞두고 한나라당 정책위의 수석전문위원 몇 명이 모였다. 회의 시작전에 어떤 수석이 "왜 사무총장님이 전북예산에 이렇게 관심이 많으십니까"라고 물었다. "한나라당에는 전북출신 의원이 한 분도 없으니 사무총장이 챙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원사무총장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다른 수석이 "김완주 전북지사는 정말 놀라운 사람입니다. 시도지사 중에 예산확보를 위해 가장 열심히 뛰는 도지사 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지사는 전북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설득하는 뛰어난 도지사로 인식되어 있다.작년 12월 하순경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 임명된 정운천 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나타났다. 인사말을 하면서 권역별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호남과 영남에서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현 상태로는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어려우니 선거법을 개정하여 반드시 전북출신 의원을 배출하자는 주장이다. 그 말 속에는 전북발전을 위해서는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뜻이 진하게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김완주와 정운천! 모두 전북발전을 위해 맨 몸으로 서있다. 이 분들을 생각하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어느 지방 군수의 말이 떠오른다. "군수생활 하시기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없는 집 큰 아들 심정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일과 책임은 많은 데 가난해서 마음이 무겁다는 처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김완주지사는 전북의 맏형격이고 정운천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에서 전북을 대표하고 있다. 명성도 높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도민의 행복을 위해 앞뒤 가릴 시간도 없다. 전북의 미래를 개척하고 도민의 살림살이를 챙겨야 한다. 두 분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전북에서 난 쌀과 물을 먹고 성장했다. 두 분의 혈관에는 전북의 피가 흐르고 있다. 전북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도 똑같이 했다. 이제부터는 전북발전과 인재양성이라는 점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소속 당이 다르다는 것이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된다.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고 의지하면서 전북의 꿈을 앞당기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정운천 최고는 김지사가 도정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중앙무대에서 적극 협력해야 하고, 김지사는 정운천의 바람대로 우리 지역에서도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한다.새만금시대를 앞두고 전북이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두 분이 전북의 양날개가 되어 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이재성 (한나라당 대표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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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20 23:02

[타향에서] 진정한 문명인

지난 연말 오랜만에 온가족이 고향 나들이를 함께 했다. 큰 아이가 대학이 확정되자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하여 가족이 함께 움직인 지 오래된 차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평소 지방을 다녀올 때엔 KTX를 이용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무궁화호를 탔다. 조금은 느긋하게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마음을 느긋이 가질 때 삶의 구석구석이 보다 잘 보이는 법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가족간에 오붓한 대화를 나눈 것 또한 오랜만에 덤으로 맛본 행복이다. 이러한 행복은 느림에서 나온다.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은 우리를 성찰로 이끌어 준다. 약간의 불편함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지난해 초 행사 참석 차 뉴욕 가는 길에는 처음으로 가족을 대동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새 출발을 격려하며 보다 큰 꿈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0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맨해튼 시가지를 통해 인간 성취의 끝을 보여주고 싶었다. 맨해튼을 다녀 온 지 10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번에는 최첨단 문명의 반대편에 있는 지평선의 고장 김제를 찾은 것이다.맨해튼과 농촌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 모습은 완전 딴판이다.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화려하고 바쁜 도시의 일상이 농촌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타자와의 비교 우위에 서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로 얻는 신기루인 부와 명예와 권력을 향해 돌진한다. 삶의 본질인 감사와 사랑, 정직, 상생을 딴 세상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드넓은 평야를 보면서 십수년 전에 읽었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의 인디언 추장들의 문명인들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을 들었다. '풀들도 인간처럼 가족을 이루고 살고 추장도 갖고 있다. 따라서 약초를 캐러 가는 사람은 약초의 추장에게 존경심을 표해야 하고, 꼭 필요한 만큼의 풀만 채취하여 좋은 목적에만 사용할 것임을 밝혀야 한다.' 이러한 통찰은 정직한 대지와의 교감을 통해 얻은 것이리라. 이를 통해 인디언들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진리를 아는 최고의 문명인이요, 문명인을 자처하는 현대인들이 오히려 진리를 모르는 야만인임을 깨닫는다.최근 구제역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어찌 소 뿐이겠는가만, 오래 전 한우를 기르던 친구의 말이 차가운 눈발로 가슴을 때린다. '소는 도축장으로 싣고 가는 트럭에 오를 때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차마 볼 수 없어 자리를 피한다.'는. 숱한 생명체가 무참히 살처분 되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그러고도 진정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 인사파동, 함바게이트, 이미 불어 닥친 환경이변, 머잖아 닥쳐올 식량난, 식수난 등등 산적한 문제들의 발생 연원을 깊이 살펴보면, 인디언보다 못한 미개인들이 그동안 가짜 문명인 행세를 했기 때문이 아니던가.대지는 정직하다. 대지를 경작하며 정직함을 배운 농민들 역시 정직하다. 지난번 고향 나들이에서 다시금 확인한 또 하나의 수확이다. '우리는 진리의 책을 가져본 일이 없고 누가 어떤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책에 적어놓고 찬양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고, 진리가 곧 삶이다. 그런 삶을 사는 자에게는 진리의 책이 아무 필요 없다.'는 인디언 추장의 메아리가 맨해튼, 고향 풍광과 겹친다.*외길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은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 국문학과와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를 졸업했다. 시인이자 서예가이며 사경전문가로 노동부 전통사경기능전승자로 선정(2010-5호) 되었다. 사경(寫經)은 불교(종교) 경전의 내용을 금은묵 등으로 옮겨 쓰는 행위, 또는 그 작품을 말하는 것으로 유서깊은 수행법이기도 하다. 김회장은 미국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초대전과 시연회 등을 통해 한국 전통사경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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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13 23:02

[타향에서] 서애 유성룡과 신묘년의 새해 계획

타향에서 나랏일을 보면서 어렵거나 힘든 장애물을 만났을 때, 포기하거나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서애 유성룡을 생각하며 자세를 가다듬곤 한다. 송복 교수의 '위대한 만남'을 읽으면서 유성룡이 의사결정을 할 때 보여준 추상같은 리더십과 실용적인 문제해결 역량이 가슴속에 한없는 떨림으로 남아있는 까닭이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동안 전시수상(영의정)으로서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었던 왜군의 침략에 맞서 명나라와 왜가 4년간에 걸쳐 물밑 강화협상으로 시도했던 조선분할 획책을 막아내고 조선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성공하였다. 송복 교수는 유성룡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온전히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왕의 행차가 왜군에게 쫓겨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명나라로 망명하자는 선조에게 유성룡은 '임금께서 우리 땅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떠나신다면, 그 때부터 조선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大駕離東土一步 卽朝鮮非我有也)'라며 서릿발같이 임금의 행차를 막아선다.명분에 치중한 성리학자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조선에서 서애 유성룡이 보여준 실용적인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은 탁월함 그 자체였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의 궁핍함은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었다. 선조 27년(1594) 1월 사헌부 보고에 따르면, 심지어 사람의 고기를 먹는 일조차 있었던 모양이다.대부분의 관료들은 이를 전란에 따른 불가피한 일로 여기고 있었던 데 반해, 도체찰사 유성룡은 백성들을 위한 실용적인 대책으로 '중강개시(中江開市)'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중강개시'는 압록강 중강진에 국제 무역시장을 개설하여 면포 등 조선의 생산물과 명나라의 곡물을 교환토록 한 것이다. '중강개시'는 오늘날 한미 FTA와 같은 시장개방 정책이었는데, 조선은 사(私)무역을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금했던 점을 감안하면, 실패했을 경우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진정성과 관료로서의 전문성을 보여준 유성룡의 실용적인 혜안은 오백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새겨볼 대목이다.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임금의 행차를 함경도가 아니라 평안도로 이끌었던 혜안을 지닌 유성룡이라면 2011년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중요한 새로운 10년을 여는 변곡점(tipping point)으로 정의하지 않았을까? 2020년 이후 대한민국은 우리가 보아왔던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고 더 풍요롭고 부강한 나라를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모든 준비가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이끌어왔던 젊은 세대 덕분에 커다란 신형 엔진을 장착한 스포츠카처럼 씽씽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노인인구가 아동인구보다 많아지는 '인구의 대역전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많은 국가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달려야 할 길도 점점 험하고 가파라질 전망이다. 건국 이래 가장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젊은 엔진이 꺼져가는 2020년 이후를 내다보며, 신묘년을 맞아 서애 유성룡과도 같은 기개와 실용정신으로 향후 10년을 맞이하는 각오를 다져본다.* 김원종 국장은 남원 출신으로 전주 영생고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공직에서는 보건복지부 전략조정팀장과 자활지원단장사회서비스 정책관노인정책관 등을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보건산업정책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김원종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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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6 23:02

[타향에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며칠 전에 금년 한 해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덮어버리려는 듯 무척 많은 눈이 내렸다. 함박눈을 보면서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살았던 전주 완산칠봉이 생각났다. 요즈음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이 춥지 않지만, 예전에는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웠고 눈도 많이 왔다. 눈이 오면 완산칠봉에 올라가서 대나무 스키를 신나게 타고, 얼어붙은 논에서 썰매를 타곤 했다.완산칠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 전주 시내를 모두 볼 수 있었고, 울창한 편백나무 숲과 약수터는 시민들에게 휴식과 운동을 같이 제공해 주는 보금자리였다. 어린 시절의 완산칠봉은 이렇게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금년 한 해는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해였던 것 같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온 국민이 환호하였고, 남아공 월드컵에서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하였지만, 원정경기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두어 커다란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그렇지만, 북한 잠수정의 천안함 공격으로 우리 해군 장병들이 희생되고,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원과 민간인들이 다시 희생되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전개되었고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북한이라는 현존하는 위협에 대해 그동안 느슨해졌던 우리의 안보의식과 대응자세를 다시금 가다듬게 된 도발이었다.중소기업 분야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었다.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통령께서 공정사회라는 원칙을 제시한 이후, 정부에서는 기업, 학계, 연구기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9월 29일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을 발표하였다. 대책의 주요 내용은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 구두발주 후 취소, 기술탈취 등 대기업의 불공정한 거래행위의 시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략적 동반성장 확산,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점검 시스템 구축 등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이러한 대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이번 달에 민간동반 성장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내년 상반기까지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품목을 선정하여 고시하고, 동반성장 지수 발표 및 1조원의 기금 운영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이 제대로 추진되어 우리 경제가 선진화되고 기속적인 성장동력이 창출되기를 기대해 본다.내년은 토끼의 해인 신묘년이다. 토끼하면 산토끼 노래에서 나오는 '깡충깡충'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멀리 뛰고 빠르고 발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내년에는 우리 나라의 모든 분야가 토끼처럼 도약하고 비약하는 한 해가 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돕고 같이 성장하고, 전통시장과 자영업자 등 어려운 서민경제가 안정되고, 세계로 나아가는 글로벌 중소기업이 더욱 많이 나오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특히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는 새만금 종합 개발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어 전라북도가 신산업의 메카로 그리고 명품 국제 업무단지로 발돋움하기를 바란다./ 최수규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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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30 23:02

[타향에서] 좋은 손금(手相)을 만들려면

한 해가 저문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낀다. 이 시기엔 우리 삶이 어떻게 될까, 새해엔 어떤 '운'이 찾아올까에도 관심이 쏠리게 된다. 『토정비결』을 끄집어내고, 신문 잡지의 '내년의 운수' 기사에 눈길이 간다.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작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약간의 관심을 쏟을 뿐이다. 필자도 그런 류의 미래예언에 관심이 없다. 인생이 미리 결정돼 있다면, 인간의 노력은 필요가 없어진다. 점쟁이에게서 황제가 될 관상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한 농부가 농사를 팽개치고, 아내를 황후로 큰 아들을 황태자로 부르며 "짐(朕)이 어찌 그런 일을" 하다가 굶어죽었다는 옛 얘기도 있다. 인생은 개척하는데 의의가 있다.손금과 관련한 에피소드, 1970년 1월 일본 도쿄(東京)의 화려한 도심 긴자(銀座)에서의 일이다. 일요일 오후, 왕복 4차선의 긴자 거리는 차없는 날이어서 사람들 천국이었다. 최고급 백화점 등 건물도 볼만했지만, 못사는 나라 국민인 내게는 가족 단위로 거리를 걷거나 길 옆 파라솔 밑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당시는 우리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신기한 모습도 보았다. 점쟁이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있는데, 부인들이 줄 지어 기다리는 등 손님이 제법 많았다. 우리가 미신으로 타기하는 점쟁이들이 선진국 일본에서 성업중인 모습은 이상하게 보였다. 조금 걸으니 깃발에 손금을 그려놓은 수상(手相) 전문가가 있었다. 막 지나치려다 걸어놓은 깃발에 눈이 가는 순간,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깃발에 그려진 손금이 내 손금과 꼭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봐달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깃발 봤느냐면서, 누구 손금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일본을 4백년 이상 지배한 에도바쿠후(江戶幕府)의 창건자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손금이란다. 일본에선 그의 손금을 최고로 치는데, 같은 손금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며 희한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손금이라니, 내 손에 천하가 쥐어진 것 같아 우쭐하는 기분도 들었다.이튿날 귀국 비행기를 탔다. 하네다(羽田)비행장 이륙 직후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승객 모두는 크게 놀랐고,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지나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이르렀을 때 기장의 방송이 나왔다. 두 개의 제트 엔진 중 한 개가 이륙 직후 폭발했는데, 엔진 한 개로도 정상비행이 가능하고, 서울이 가까운 곳이라 계속 비행하겠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것. 그로부터 1시간 40분, 비행기 바퀴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닿는 순간까지 200여 승객은 모두 죽음을 옆자리에 태운 기분이었다.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박수를 쳤다.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같은 손금은 비명횡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설마 내가 여기서 죽으랴 하는 생각도 했고, 비행기가 제대로 착륙해서 모두 살게 된다면 그것은 내 손금 덕분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 와중에도 사업 핑계로 고향에 계신 어머님 모시는 게 소홀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살아난다면 어머님께 효도를 다 하리라 맹세했다. 그 후 어머님을 성심으로 모셨다.내가 손금 덕에 오늘을 이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손금이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 손금의 음덕이 있다 해도,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그 덕이 발휘된다. 또 손금은 내가 그리는 게 아니다. 태어나면서 이미 그려져 있는 손금, 그 손금이 좋다면 그것은 조상들의 음덕 탓이 아닐까? 후손들이 좋은 손금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고 싶으면, 지금 음덕을 쌓아야 한다. 연말,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바로 그런 자세가 아닐까?/ 송현섭 (재경 전라북도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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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23 23:02

[타향에서] 고향 나들이

고향 가는 길은 늘 설렌다. 비록 이제는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며 깜짝 반가워하시던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일가 친척들이며 옛 친구들이 있어 반갑다. 고속버스가 오리정 길목으로 슬며시 머리를 틀 때부터 소년처럼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고향에만 오면 세월을 건너뛰어 예나 이제나 어린 아이가 되어 버리는 것처름 느껴지곤 한다.지난 11월 초에도 고향 나들이를 했다. 남원시청의 초청강연 때문이었다. 시청 강당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저녁에는 옛 친구들과의 식사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청에는 중학생 시절 아주 가까이 지내던 두 친구가 재직하고 있어서 그 친구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모든 면에서 나보다 성숙하고 의젓하던 친구들이었다. 건방을 떨고 다니던 문학소년이었던 나를 두 친구는 잘 챙겨주었는데 오랜만에 시청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옛날 심성들로 미루어 보건대 공무원으로도 성실할 게 분명한 친구들이었다. 밤에 만난 옛 친구들은 제각기 하는 일들이 달랐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것 만은 분명했다. 든든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새삼 미덥고 고마웠다.친구들과 헤어져 여장을 춘향가(家)라는 새로 들어선 듯 보이는 숙소에서 풀었다. 한실로 꾸민 방들이 그렇게 정갈할 수가 없었다. 간혹 일본을 여행하다가 전통 료칸(여관)에 묵곤 하던 생각이 났다. 사실 고향은 좋아도 내려가면 잠자리가 여간 문제가 아니었다. 연세 드신 누님댁에 연락을 드리면 부산을 떨게 해드리는 것 같아 적절히 묵을 곳을 찾아도 환경이 마땅한 곳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보료 깔린 숙소에서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오는 국악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다음날 옛집을 혼자 둘러보았다. 대문 너머로 보니 마당엔 잡초만 우거져있다. 어머니가 밤낮으로 가꾸시던 그 채마밭은 돌보는 이 없어 폐허처럼 바뀌어 버리고 장독대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당장이라도 어머니께서 "거 뉘?" 하시고 문으로 다가오실 것만 같다. 내가 빌려온 문학책을 밤새워 읽어대던 길가로 난 골방도 옛모습 그대로였지만 이제는 퇴락해 손만대도 파삭 내려앉을 것 만 같다.가끔 다니러 올 때면 인사를 드리던 골목안 노인들도 이제는 모두 저세상으로 떠나시고 안계셔서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 중에는 나만 보면 불러세우시고 근심섞인 목소리로 아직도 고시가 안됐느냐고 물으시던 분이 계셨다.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드린다 해도 이해 못하실 어른이셨다.옛날 내가 멱감고 물놀이 하던 요천변으로 나갔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백사장이 있어 천렵을 하던 곳이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집에서 쌀을 한 움큼씩 가져와 하얀 쌀밥을 지어 갓 잡은 피라미 매운탕에 먹으면 정신이 핑 돌만큼 맛있었다.천변을 따라 길게 걸으면 내가 좋아했던 여고생 누나가 살던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집에는 풍금이 있었고 간혹 담 너머로 그 누나가 치는 풍금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우리집 골목으로 오가는 누나를 보기위해 일부러 물가에서 서성대곤 했었다.옛 생각에 잠기며 골목을 걷고나니 해가 설핏하다. 돌아보면 거기 변함없이 내 유년시절이 있는 곳. 가난했지만 저녁밥상머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식구들과 함께 화기애애하던 그 곳. 철 모르고 들로 산으로 뛰어놀며 꿈을 꾸던 그 곳. 언제라도 한 나절 버스에 몸을 싣고 가면 만날 수 있는 그 고향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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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09 23:02

[타향에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취약분야 자생력 강화

지금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중소기업 분야의 예산안을 보게 되면, 금년의 8조 8천억원 보다 4.7%, 4천억원이 늘어난 9조 2천억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고향에서 열심히 사업을 하고 계신 기업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개략적으로 중소기업 정책방향과 내년도 중소기업 예산안에 대하여 소개를 드린다.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벤처기업, 이노비즈 기업 등 혁신형 중소기업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원하여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독일, 일본 등에 비하여 취약한 산업의 허리를 보강하여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형 슈퍼마켓의 출점 확대, 내수시장의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전통시장 등 자생력이 미흡한 계층과 분야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강화하여 서민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내년도 중소기업 분야의 예산안은 미래 성장동력 확충,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 활성화, 중소기업의 경영안정,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하여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규모가 처음으로 6천억원을 넘어섰고 금년보다 12.7%가 증액된 6,300억원을 반영하여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지원하게 된다. 기술개발 지원예산은 녹색신성장 산업, 창업초기기업, 제조기반기술, 대학연구기관과의 R&D 협력 등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 사업에 대한 지원이 대폭 강화된다.둘째,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창업, 인력구조 고도화 및 벤처투자 분야에 3,000억원이 편성되었다. 지역에서 성공창업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창업보육센터 건립 지원에 330억원, 기술창업 활성화에 790억원, 신기술 창업 인프라 구축에 350억원, 산학협력 기술기능인력 양성에 310억원이 지원된다. 특히, 창업선도대학에 대해서는 대학당 40억원까지 지원하여 청년들의 창업활동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도록 한다.셋째,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3조 2천억원을 융자하여 중소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지원한다. 융자자금은 창업기업, 기술개발기업, 전략산업 분야에 우선적으로 배분이 되고, 연대입보 면제도 확대하여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 준다. 무역촉진단 파견, 해외규격 인증 획득 등에도 700억원을 지원하여 중소기업의 수출을 촉진한다.넷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동반성장 및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자생력 강화를 위하여, 대중소기업간 협력사업, 나들가게 육성, 전통시장 현대화, 중소 물류센터 건립 등에 3,500억원을 지원하여 서민생활 안정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이러한 중소기업 지원예산을 전라북도의 중소기업들이 많이 활용하고, 중소기업 지원기관들이 유기적인 협조를 통하여 중소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내년에는 매출이 두 배, 네 배로 성장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경기도 기업인들과의 모임에서 항상 이야기 하는 '따블, 따따블'이라는 구호가 전라북도에서도 메아리 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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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02 23:02

[타향에서] 경험이 말 시키는 '황혼잔소리'

사람이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된다. 좋은 일도 있고, 궂은 일도 있다. 좋은 일이야 기뻐하고 즐기면 되지만, 궂은 일은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긴다.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잘못한 행위에 대한 후회로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좌절과 후회가 길어지면 인생 자체가 엇나갈 수도 있다.나이가 들면서 이런 경험이 늘어난다. 후배나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경험이 그들에게 말을 시키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말은 그의 인생이 농축된 표현이다. 성공했다고 인정받건, 실패자로 보이건 간에 크고 작은 경험이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다. 문제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얘기만 하는데도, 그 말이 잔소리로 들린다는 점이다.나도 많은 경험을 했다. 작은 성취에 우쭐한 적도 있었고, 맘 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잠 못이룬 밤도 많았다.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나의 경험이 특히 후배들에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비슷한 또래들을 만나면 「부인 잘 모시라」는 말을 자주 한다. 부인을 황후처럼 모시면 내가 황제 대접을 받는다. 특히 늙어서 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인생이 쓸쓸하고 괴로워진다. 건강도 못 챙긴다. 오래 살려면 부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후배들에게는 「친구 사이에 돈 거래 하지 말라」는 얘기를 강조 한다. 친구 잃고 돈 잃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다. 도와주는 것과 거래는 다르다. 이 말에도 물론 몇 번의 경험이 실려 있다.516 후 군사정부는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했다. 일정 금액만 신권으로 바꿔주고 나머지는 모두 은행에 예치토록 했다. 마침 찾아온 친구에게 한도가 넘는 돈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이라고 했더니, 아는 사람이 은행에 있어 모두 바꿔줄 수 있다는 거다. 가진 돈을 모두 맡겼다. 그런데 감감 무소식. 주소도 몰랐다. 물어물어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한달만에 겨우 찾았다. 그 돈으로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며 벌어서 갚겠단다. 기가 막혔다. 당시 나도 집 한 채 없는 상황. 빨리 갚겠다니 더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 또 무소식. 다시 찾아가니 이사 가고 없었다.성공한 젊은 사업가 시절이던 70년대,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급전이 필요하다며 잠시 빌려달란다. 당시로서는 거금을 빌려줬다. 한달 쯤 뒤 소식이 없던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 있는데, 내일 부도가 난다는 것. 미안하다며 내 돈은 꼭 갚겠다고 말했다. 황당했다. 그래도 친구니까 성공해서 갚으라고 했다. 몇 번 편지는 왔지만, 결국은 무소식. 나중에 들어보니 계획적 도피였다. 어쨌건 그 돈으로 인해 나도 부도위기에 몰렸다. 잘 나가던 사업가가 부도 내고 교도소 갈 형편까지 됐다. 다행히 그 위기를 극복했다.마음이 평온할 수 없었다. 그들이 미웠고, 자다가도 그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났다. 그래봐야 내 몸과 마음만 상한다는 걸 알았다. 어느 순간 돈받기를 포기하고, 그들을 용서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성인군자여서가 아니다. 단념할 것은 빨리 단념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문제는 돈이 관련되니 친구가 곁을 떠난다는 점이었다. 친구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잃는 게 안타까웠다. 베풀 수 있는 한 베푸는 게 인생의 도리다. 도와주려면 그냥 베풀어야지, 친구 간에 돈거래는 안된다는 철리를 깨우쳤다.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얘기한다. 얼마나 가슴 깊이 새겨듣는지는 모르겠다. 필요한 얘기니까 한다. 살아가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괜한 잔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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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25 23:02

[타향에서] 시험의 추억

평생을 선생으로 사는 친구가 지금도 예비고사장에서 문제를 풀지 못해 쩔쩔매는 꿈을 꾼다며, 가슴 아픈 시험의 추억을 털어놓곤 한다. 벌써 수십 년이 흐른 학창시절의 추억이 아직도 잠결에 재생되는 걸 보면 그때 수능 시험의 압박이 정말 강했던 것 같다. 그때만이 아닐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험생이 받는 압박감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71만여 명의 태도와 실력은 모두 다르지만, 수능에 10대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전투적 자세는 공통적이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큰 산을 넘어야 할 고비를 맞은 수험생들이 수능에 대처하는 방식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생리 주기를 피하기 위해 시험 전 한 달 동안 피임약을 복용하며 호르몬을 조정하기도 하고, 우황청심환을 먹고 시험장에서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도시락에 체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아예 밥 대신 초코바로 열량을 보충하라고 권하며, 시험장 분위기에 긴장해 기절한 감독관도 있다. 학부모의 마음은 더하다.중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 가족들을 몰살케 한 얼마 전 사건은 충격적이다. 경찰은 부자간의 불화가 원인이라고 했다. 아들이 법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40대 아버지는 춤과 노래에 흥미를 보이는 아들이 실망스러워 골프채로 배를 찌르고 혼을 내며 막다른 길로 몰아붙였고, 철부지 아들은 차라리 아버지 없는 세상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판검사가 되라며 공부를 강요하던 아버지가 아들을 몰아붙인 결과는, 가족들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끔찍한 불행의 얼굴로 되돌아 왔다. 자식보다 더 자식의 진로에 관여하는 부모, 수험생보다 더 애쓰는 학부모가 부지기수다. 그 간절한 소원은 자녀 사랑의 발로일 것이 분명하지만, 모든 수험생이 만점 받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험생 중 이번 수능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 못해 아쉬워하는 학생이 98%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고득점에 해당하는 상위 1~2 %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의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 소리 없이 좌절하며, 나쁜 시험의 추억을 남길지도 모른다.닉 부이치치(Nick Vujicic) 씨가 지난 달 서울의 한 대학에 왔다. 페이스북과 인터넷을 통해 최근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닉 부이치치는 테트라-아멜리아 신드롬(Tetra-Amelia Syndrom)이라는 희귀병으로 발가락 2개가 달린 작은 발 하나만을 가진 채 1982년 호주에서 태어났다. "나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고, 발가락 2개가 있을 뿐이지만, 대학에도 갔고, 지금까지 38개국에서 1,500번의 강연을 했으며, 두개 단체의 회장이다. 지금까지 35만 명과 포옹했고, 골프, 수영, 서핑을 즐기며,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 기쁘다"며 유쾌하게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일부러 단상에서 넘어졌다. 짚을 손이 없는 부이치치는 성경책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줘 청중을 숙연하게 만들며 큰 감동을 남겼다. 발가락으로 키보드 음악을 신나게 연주하고, 어린 시절 절망에 빠져 자살을 기도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한 시간 내내 청중을 압도한 그가 뜨거운 가슴으로 전한 메시지는 "Never Give Up"이다. 팔다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었다던 부이치치가 청중에게, 살아오는 동안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기적이 되어 주라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소수의 성공자와 다수의 실패자를 만들어내는 수능시험을 사회적 독약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수험생에게 점수를 묻기보다 위로와 칭찬을 먼저 건네며 그들의 청소년기를 따뜻하게 보듬어 줄 일이다. 런던타임즈가 뽑은 행복한 인생 1순위는 바닷가에서 지금 막 모래성을 완성한 어린이다. 아기를 목욕시킨 후 눈동자를 바라보는 어머니, 작품을 완성하고 손을 터는 예술가, 죽어가는 생명을 수술로 살려낸 의사도 뽑혔다.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수능이라는 자신과의 경주를 멋지게 치르고 돌아온 자녀를 가슴에 안은 아버지가 행복한 인생 1순위가 아닐까. 그 행복감을 공유하며, 성적에 절망하는 아픈 추억이 아닌, 사랑에 둘러싸인 달콤쌉싸름한 시험의 추억을 남길 일이다./ 허미숙(전 CBS TV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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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18 23:02

[타향에서] 생활 속의 스승들

공자님 말씀 중에 참 맞다 싶은 것이 많지만 그중에 유독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말씀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닌게 아니라 살다보면 뜻밖의 장소와 낯선 시간 속에서 마음의 사표로 삼음직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몇 년 전부터 주말이면 퇴촌에 자주 가는데 거기서도 나는 마음의 스승들을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그런 고백을 했더니 본인들은 정색을 하며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나는 마음속에 이미 퇴촌의 벗들을 스승의 반열에 두고 있다. 내가 퇴촌의 스승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전남 곡성을 고향으로 둔 한 사십대의 젊은이들인데 세 사람 모두 고건축과 고미술 쪽에 종사하고 있고 서울 근교의 새로운 고미술 거리로 형성되고 있는 도마 삼거리에서 퇴촌까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원래 곡성은 아주 작은 고을인데 유난히 고미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누누누구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람들이 그 지역 출신이다. 이 퇴촌 삼인방은 그러나 말쑥한 고미술상들이 아니라 벗어부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점이 이채롭다.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이를 테면 한옥 짓는 일 또한 이론으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기에도 능한 것이다. 직접 뛰어들어 나무를 다듬고 땅을 파며 석축을 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이 퇴촌 삼인방은 얼마 전 눈썰미와 손이 좋은 목수팀과 함께 '함양당(含陽堂)'이라는 날아 갈듯한 한옥 한 채를 지어냈다. 한 채의 조선집이 지어지는 동안 곁에서 홀로 감동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일이 모두 끝난 뒷자리를 아무리 어두워도 셋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남아 뒷정리를 한다든지, 한 사람이 몸살이라도 날라치면 다른 두 사람이 흠집 없이 그 사람 몫을 해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누가 보던말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본인들의 집을 짓는대도 그보다 더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집이 지어지고 나서도 수시로 와서 둘러보고 가곤 한다. 이 세 사람 중에는 이론에 더 밝은 쪽이 있고 실기에 더 강한 쪽이 있어서 서로 짝을 잘 맞추어 나간다는 것도 특징이다. 실기 중에는 목공일이나 보일러에서부터 벽돌쌓기며 기와 잇기에 이르기까지 두루 만능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가지에 정통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있다.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이러한 자신들의 장기나 실력을 별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엔 대단한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한사코 감추려 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의자며 침상 같은 것을 짜달라는 주문이 들어와도 꼭 받을 것만 받고 그만이다. 실력에 비해 너무 싸다 싶어도 더 받는 법이 없다. 아침부터 밤이 으슥하도록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 자고 나와서는 다시 일하기를 계속한다.나는 서재에 이 퇴촌의 벗들이 만들어 준 의자를 쓰고 있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마음새를 가다듬게 된다. 이토록 견고하게, 이토록 정성을 다해 만들어준 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이나 축내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언제 봐도 이 퇴촌의 세 친구는 늘 온화한 모습이다. 살다보면 간혹 서로 간에 의견충돌 같은 것도 있을 법 하건만 절대 그런 일이 없다. 늘 화기애애하고 정겨운 모습들이다. 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나는 퇴촌으로 가서 한나절 내내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온다. 톱밥이 날아오르는 나무를 켜고 못질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들을 바라보면 내 스스로가 정화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셔츠가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하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의 신성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삶 자체가 등짝에 내리는 죽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이지 스승은 도처에 있다. 주말쯤에는 다시 퇴촌의 스승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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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11 23:02

[타향에서] 옥정호의 아름다운 경관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고 온갖 맵시를 자랑하는 가을이 오면 중학교 때 낚시를 했고 작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여행을 했던 옥정호의 아름다운 경치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전라북도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고 유명한 호수이지만, 사진작가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내가 어렸을 때에는 운암댐이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옥정호라는 지명으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호수가 임실과 정읍을 가로지르고 있다. 전주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옥정호는 새벽에 일출과 함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경관이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전국의 유명한 사진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라고 한다. 하천 길이 212㎞, 유역 면적 768㎢, 저수량은 4억 3천만 톤이나 되는 매우 큰 호수로서 김제평야 등에 농업용수 등을 공급하는 다목적댐이다. 예전에는 붕어가 많이 잡히는 낚시터로 유명하였으나, 현재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낚시는 할 수가 없다.중학교 3학년 때 친구 2명과 주말에 1박 2일로 밤낚시를 했던 적이 있다.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고 야광찌와 떡밥을 매단 낚시 줄을 멀리 던지고 고기가 물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었다. 한 친구는 어린 나이였지만, 언제 배웠는지 거의 어부 수준으로 붕어를 잘 잡았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작년 가을 어느 월요일에 휴가를 내서 아내와 함께 정읍 산내 한우마을에서 둘이 오붓하게 맛있는 한우를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먹고 옥정호를 들른 적이 있다. 국사봉 전망대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본 옥정호의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호수 한 가운데에 있는 붕어섬은 1999년 미국 유학시절 여름방학 때 구경하였던 캐나다 서부에 있는 밴프재스퍼 국립공원의 멀린 호수에 있는 스피릿 아일랜드라고 하는 자그마한 섬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섬은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이 꿈의 촬영장소로 손꼽는 곳이다. 주변에 만년설이 쌓여 있는 웅장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호수물의 색깔은 비취빛으로 물속까지 투명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사슴, 산양, 곰 등 야생동물들이 도로가를 여유있게 거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시사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방문하고 있으며, 관광수입만으로도 주민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캘거리를 제외하고는 인근에 산업시설이 거의 없다.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 경향을 보면,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기록사진을 찍기 보다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편히 쉬고 사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선진국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서 아름다운 옥정호, 단풍이 절경인 내장산과 강천산, 건강회복에 좋은 편백나무 숲이 울창한 축령산, 그리고 소고기라는 먹거리가 있는 산내마을을 엮어서 2박 3일, 3박 4일 또는 1주일 정도의 다양한 웰빙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관광객들을 유치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주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의 완공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고 부족한 숙박시설을 확충함과 아울러, 관광 종사자들과 주민들이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국내와 아시아뿐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글로벌 관광전북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보는 가을이다./ 최수규(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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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04 23:02

[타향에서] 인생의 세 고비

사람이 살아가는데 세 번의 고비가 있다고 한다.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 말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꼭 안 믿는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삶이 예측가능한 게 아니고, 내 삶을 지배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믿는 것도, 미신이라고 매도하지도 않는다.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고비는 있다. 어느 정도까지의 위기가 고비인지, 그것이 옛말에서 말하는 그 고비인지, 또 인생에 유의미한 고비가 꼭 세 번이어야 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내게도 세 번 정도의 고비 혹은 위기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내 경우 고비는 생명의 위기였다.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 칭찬받을 일이기도 했다. 물에 빠진 생명을 구해줬으니까. 하지만 내 수영실력이 동네 개천의 개헤엄 수준이란 걸 생각하면, 용기는 가상했지만 생명의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첫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고향 칠보에서의 일. 물살 센 동진강을 사이에 둔 송산마을과 시기마을은 얼기설기 엮은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내가 다리 옆 둑에 있는데, 나무다리 위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굴렁쇠가 다리의 나무 사이에 걸리는 것 같더니 아이가 물 속으로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뛰어들어가 아이를 끄집어냈다. 50m 정도 떠내려온 아이는 물은 좀 먹었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 괜찮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가라 하니 일어나서 갔다. 나도 경황이 없어서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 후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 계속 수소문했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두 번째는 대학생 시절의 여름. 한강으로 놀러갔다. 당시 서울시민의 휴식처는 남산과 한강인도교 부근의 백사장뿐이었다. 친구와 보트에 올랐다. 부근에서 여자 두 명이 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 배가 한 쪽으로 기울더니 한 명이 물에 빠졌다. 물에 뛰어들어 구해냈다. 내가 구해준 젊은 여성은 생명의 은인에게 술 한잔 대접하겠다며, 종로3가의 술집에 있으니 그리 오라고 했다. 나도 생명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매우 흐뭇했지만, 갈 수는 없었다. 당시 종3이 뭐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세 번째는 역시 대학시절, 안양에 사는 친구를 찾아 버스를 탔다. 안양 부근에서 버스가 둑길에서 냇물로 굴렀다. 세 번 정도 구른 것 같다. 버스 안으로 물이 반쯤 차올랐다. 30여명 승객이 모두 부상을 입었다. 나는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다. 기적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상황. 다친 승객들을 한 사람씩 업고 물 밖으로 옮겼다.며칠 전 신기한 경험을 했다. 캐나다 교포라는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와 친척 되는 어머니가 만나보라고 말씀하셔서 전화했노라고 했다. 약속을 하고 커피숍에서 기다리는데, 순간적으로 '이 사람이 혹시 물에서 구해준 그 아이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든 생각,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 사람에게 "어렸을 때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동생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앞뒤를 맞춰보니 내가 구해준 그 아이가 맞았다. 지금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단다.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 것까지만 생각나고, 그 뒤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 때 상황을 설명해주니, 생명의 은인을 이제야 뵙게 됐다며 감격했다. 며칠 뒤 가족을 데리고 인사를 왔다. 만나고 싶어하던 사람을 57년 지난 뒤에 만난 것. 기적같은 만남이 매우 기뻤다.(나이는 61세. 이름은 한종석. 정말 반가워 부둥켜 안고 꿈만 같았다.)살아오면서 좌절도 있었고, 여러 고비를 겪기도 했다. 죽음과 관련된 고비도 겪었다. 이젠 죽을 고비는 다 넘겼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물'과 관련돼 잘못 되는 일은 없겠지 생각하며 웃음 짓기도 한다. 이 나이가 되면 잔병도 없어진다니,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과욕인가?/송현섭(재경 전라북도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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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0.28 23:02

[타향에서] 그들 속의 목계

몇 해 전 고향에 있는 지인의 집무실에서 '목계(木鷄)'를 처음 봤다. 글자 그대로 나무로 만든 닭이다. 미동도 없이 늠름한 자세로 서 있는 그 수탉은 금방이라도 홰를 치며 숨을 쉴 듯 생생해 한참을 살펴본 기억이 난다. 짧은 기간에 규모의 기업을 일궈낸 그 젊은 경영자는 집무실에서 나무닭을 보며, 스스로의 혈기와 교만함을 경계했을 것이다. 장자(莊子) 달생편에 이 목계 이야기가 나온다.주나라 임금 선왕은 닭싸움을 좋아했던 것 같다. 쓸 만한 투계 한 마리가 생기자 기성자라는 당대 제일의 조련사에게 최고의 싸움닭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열흘이 지나 어떠냐고 묻자, 기성자는 고개를 저었다. "교만해서,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마구 덤비려고 합니다." 열흘 후 다시 물었다. "교만한 건 버렸지만 상대방의 소리나 그림자만 봐도 싸우려고 반응합니다." 열흘 후 왕이 또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에 살기가 남아 있습니다." 열흘이 더 지난 다음에야 기성자가 대답했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덤벼도 반응이 없습니다.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목계'같습니다. 이제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덕이 충만해서 그 모습만 봐도 싸우지 않고 도망갈 것입니다." 싸움닭인 투계가 싸우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창업자가 아들에게 목계의 故事를 예로 들며 '경청'과 '몰입'이라는 경영철학을 물려줬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투계 조련사의 의견을 귀 기우려 듣고 네 번의 기회를 준 임금의 경청 리더십과, 여기에 호응해 목계라는 최고의 명작을 만들어낸 장인의 자발적인 몰입을 통하면, 기업은 최고의 성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사내 인트라넷 화면에 두뇌게임 '아나그램'을 띄워놓고 'L I S T E N' - 경청과, 이 단어를 재배열한 새로운 단어 만들기의 정답 'S I L E N T' - 침묵을 강조하며, 경쟁심을 초월하라고 말하고 있다.고향집을 지키며 희수(喜壽)를 넘기신 둘째 형님이 요즘, 갑자기 아주 사소한 것에 마음의 평정이 흔들린다며 자기검열을 하신다. 어제도 텃밭을 다듬다가 채소에 약을 쳐야겠네, 혼잣말을 했더니 형부가 '거름을 줘야지, 알지도 못하고...' 한 것뿐인데, 그 말이 섭섭해 마슴에 잔물결이 지나간다고 웃으신다. 스무 살에 대청마루 넓은 댁 며느리로 시집간 형님은 시부모님과 외조모님을 함께 모시는 맏며느리로 살면서, 손아래 다섯 시동생과 당신의 여섯 자녀를 키워내며 57년을 현장 지휘관으로 사셨다. 내 기억으로는 그 얼굴에서 미소가 떠난 적이 없지만, 격변기를 사시며 대소가에 번다한 일이 많았던 생애를 짐작해보면, 고비마다 그 풍랑을 어떻게 그리 고요히 견뎠을까 싶어 물었더니, 마음속 깊은 곳에 싸움닭 한 마리가 살았단다. 그 많은 내전을 치르고도 이렇게 상처 없이 승자가 된 형님을 보면, 아마도 그가 평생 가슴에 키워온 것은 투계가 아니라 장자의 목계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뛰어난 투계는 많지만 목계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쌈닭은 한쪽이 죽을 때까지 쪼고 뜯지만 결국 이긴 닭도 오래 살지는 못한다. 사리사욕을 위해 온갖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세상에서,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만이 무적의 강자이며, 무념무심이 최대의 무기라니, 칠순의 형님처럼 마음속에 목계 한 마리 키워낸 어른들의 지혜가 빛나는 가을이다./ 허미숙(전 CBS TV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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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0.21 23:02

[타향에서] 어느 배달소년의 추억

전북일보가 6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인 셈이다. 실로 위업이라 할 만하다.전북일보 60년의 기사를 보면서 낡은 흑백사진처럼 옛날의 기억들이 살아나왔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고향에서 처음으로 신문배달을 시작하였다. 전북일보는 아니었지만 같은 지방지였는데 석간이었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석간을 밤에 돌리곤 했다. 내게 주어진 부수가 40매쯤 되었던 것 같다.이른 저녁을 먹고 지국에서 신문을 받아 골목을 걷거나 뛰다보면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1967년 무렵이었는데 그때 최희준의 '종점'이라는 노래가 유행이었다. 신문을 돌리다보면 담을 넘어 '너를 사랑할 땐 한없이 즐거웠고...'라는 가사의 노래가 유난히 많이 들려왔다. 이 노래가 좋아 가끔은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끝날 때까지 듣곤 했다. 어느 집 모퉁이를 돌면 '종점'이 들리고 어느 집 문 앞을 지나칠 때면 그 시간에 시작하는 연속극 주제가가 들려오곤 했다.그런데 내가 신문을 돌려야 하는 곳 중엔 보선사무소라는 데가 있었다. 역에 딸린 부속사무실이었는데 훗날 생각해보니 아마 선로를 관리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이 곳은 명포 밭을 지나 한참을 가야했는데 사무소 입구에 희미한 불빛 하나뿐 주위는 늘 깜깜했다.밤마다 이 외딴 보선사무소까지 가기가 아주 죽을 맛이었다. 한없이 이어진 키 큰 명포 밭을 지나갈 때면 머리끝이 쭈삣거릴 만큼 무서웠다. 달이라도 휘영청 뜬 날 밤이면 그나마 나았지만 깜깜할 때면 일부러 최희준의 '종점'을 크게 부르며 그곳까지 가곤했다.어느 날 밤인가는 역시 '종점'을 부르며 가고 있는데 명포 밭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하나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해 선배로 소문난 불량학생이었다. "이놈아 노래 좀 작게 부르고 다녀." 그는 나를 지나치며 그렇게 말했는데 슬쩍 보니 곁에선 여학생 모습이 참 예뻤다. 그 후 가끔씩 학교에서 껄렁한 모습의 그를 볼 때면 이쁜 여학생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신문을 돌리는 것은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었지만 보선사무소까지 가는 것이 너무 싫어 슬쩍슬쩍 빼먹기도 했다. 어느 날 지국에서 신문을 봤는데 총무가 배달소년들에게 화를 냈다. "보선사무소 어떤 놈이야. 제대로 돌리지 않으면 잘라 버릴거야."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한달 너댓 번씩은 보선사무소에 신문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자청하여 배달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그 후 대학생이 되어 내려가 보니 고향집에서 전북일보지국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어수선했고 배달소년들은 들락거렸지만 마음의 고향에 돌아온 듯 신문냄새도 상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지금도 나는 나의 배달소년 시절의 추억을 꼭꼭 숨겨놓은 연애편지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때의 어두운 밤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날마다 동심의 키가 한 뼘 정도씩은 자랐던 것 같다. 조숙한 문학소년 때여서 밤길의 작은 풀벌레소리 하나에도 감성의 촉수들이 예민하게 일어서곤 했다. 배달에서 돌아오면 이런 경험들을 글로 적곤 했다. 수필인지 소설인지 정체가 애매한 글을 한도 없이 썼고 때로는 그림까지 곁들여 보관하곤 했던 것이다.폭풍처럼 휘몰아친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 같은 사건들 속에서 그나마 나만의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라는 시간이 친구도 되었고 위로도 되었던 것 같다. 한차례 자꾸만 흘러내리는 신문을 껴안고 터벅터벅 걸으며 어린 나는 자신과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듯 하다. 그뿐인가 지국에서 한달 월급을 받으면 친구와 자장면 몇 그릇을 사먹고 남는 돈으로는 화구며 책을 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돌아보면 내 배달소년 시기야말로 내 생애의 몇 손가락에 꼽을 만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김병종(화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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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0.14 23:02

[타향에서] 장애는 짐이 아니다. 편견이 짐일 뿐이다 - 최수규

책상 앞 지난 달력을 넘기다 4.20일 장애인의 날에 빨간 동그라미와 함께 '장애는 짐이 아니다. 편견이 짐일 뿐이다.' 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는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시행한 2010년 제30회 장애인의 날 행사 공모에서 입상한 슬로건 중 하나로 장애인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장으로써 마음깊이 새겨야 하기에 적어 놓은듯 하다. 한국인 평균 행복지수는 평균 64.13점. 10대의 행복지수가 71.43으로 가장 높았고,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30대와 20대는 각각 63.32, 61.94 순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나 찌푸린 얼굴로 일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 힘으로 일해서, 나를 믿어주며 따라주는 직원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아직도 가슴이 벅차시다는 (주)가인그린텍 전은선 대표가 있다.2007년 설립한 종업원 7인의 장애인기업으로 정부의 새주소 사업과 관련한 현수막 및 주소판 제작 전문기업이다. 이 기업은 조달청 MASS 등록 및 관련특허, 디자인등록증을 보유하여 기업 경영시 가장 애로사항으로 조사된 판로(51.5%)분야를 스스로 개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자재 구매를 위한 운전자금을 지금까지 대표자와 직원들이 가까스로 해결했다는 한마디에 말 못할 미안함과 장애인기업 지원시책 홍보가 적극적으로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에 경기중소기업청에서는 9.30일, 정부의 장애인기업 지원방향 및 지원시책 안내, 공공기관 전자입찰 교육, 우수 성공사례 발표순으로 정책설명회를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는 단 1명의 이석자 없이 4시간 동안 진행되었으며 오랫동안 엉켜 있었던 실타래가 풀린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참가자도 있었다.2008년 중소기업청 용역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인 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1.1%로 조사된바 있다.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5년(38.2%)에서 2008년(41.1%)로 소폭 증가 되었으나 평균 매출액 178백만원, 자본금 147백만원, 종업원 2.9인의 영세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기업에 비하여 장애인 고용율이 24배나 높으며 일반 노동시장 진출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고용하여 '고용'과 '훈련'을 동시에 감당함으로써 장애인들의 일자리와 소득창출을 간접 지원하는 지렛대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기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정부에서는 2005년 장애인기업지원촉진법을 제정하여 장애인기업협의회, (재)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설립을 통한 장애인기업 원-루프(One-Roof) 시스템을 갖추었고, 공공기관 장애인기업제품 우선구매제도, 특례보증지원 제도운영 등을 통해 장애인기업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청에서는 창업강좌 및 컨설팅, 창업경진대회, 장애인기업 CEO 연수 및 국내외 전시회 참가 지원, 기술개발사업 선정시 가점부여 등 다양한 시책을 통해 잠재 장애인기업 발굴 및 사업 활성화에 올해에도 20억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는 올해 300억원 규모로 담보부족과 낮은 신용등급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장애인기업을 대상으로 보증금액 5천만원(제조 및 지식기반서비스업은 1억원 이내) 이하인 경우 보증금액 사정을 생략하고 보증료를 고정 1%만 부과하는 등 완화된 조건으로 보증지원을 하고 있다.아기가 제대로 걷기까지 2000번을 넘어진다고 한다. 장애인기업에게는 같은 시기에 걸을 수 있도록 정부가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걸음마 이후에는 끊임없는 제품개발 노력 및 판로개척을 통해 일반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것이며 장애인을 경제활동에 참가시키는 주체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기고를 쓰면서 다시 한번 슬로건을 되새겨 본다. '장애는 짐이 아니다. 편견이 짐일 뿐이다.'/ 최수규(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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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0.07 23:02

[타향에서] 야박한 서울, 기회의 서울, 그리고 귀성

추석을 보냈다. 민족의 대이동, 귀성의 물결이 전국에 넘실거렸다. 고생길 마다않는 행렬, 고향과 가족을 찾는 연례행사였다. 4천만이 움직였다는 보도다. 명절 때 고향을 찾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중추절을 맞아 고향길에 나서는 중국인의 수자 단위가 ??억??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고향과 부모를 찾는 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길은 막히고 짜증 나는 때도 많다. 그런데도 귀성을 중단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인간의 유전자에 고향을 찾는, 연어의 모천회귀 같은 본능이 있는 걸까? 나 역시 귀성 행렬에서 예외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고향길이 고생스럽지만은 않았다. 막히는 길에 짜증도 냈겠지만, 그런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반갑고 즐거웠던 추억 뿐이다.고향, 늙은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시는 곳. 최근까지 고향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기다리시지 않는다. 몇 년 전 타계하셨다. 1백2세, 그래도 좀 더 오래 잘 모시지 못한 불효자의 회한이 가슴을 저민다.대학시절, 방학만 되면 나는 이불보따리 들처 매고 집으로 달려갔다.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방학 두 달 동안의 하숙비 절약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방학을 마치고 이불 한 채 등에 지고 서울행 야간열차를 탈 때마다 어머니는 여러 가지를, 특히 밥 굶지 말고 꼭 챙겨먹으라고 당부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굶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던 6?25 직후였다. 서울에 도착하면, 다시 하숙집 구하느라 이집 저집을 헤맸다. 이불 짐 맨 채로.서울 인심은 야박했다. 취직을 위해 거의 무작정 상경한 친구가 하숙집으로 찾아왔다. 하숙집 주인은 매몰찼다. 밥 한 그릇 더 주지 않았다. 내 밥을 나눠먹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호출, 친구가 언제 가느냐고 물었다. 며칠 더 있을 것같다고 대답하니 자신에게 피해가 크단다. 그러면서 ??하숙집을 옮기라??고 한다. 밥 한 그릇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피해???밥 먹고 자는 건 학생 것 나눠서 하는 것이지만, 수돗물 쓰고 화장실 차는 건 생각하지 않느냐??는 핀잔이다. 수돗물 좀 쓴다고, 화장실 좀 쓴다고 시비하는 서울 인심이 야속했다. 결국 그 집을 나왔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후배에게 들은 얘기도 비슷한 경우다. 서울로 유학 온 한 후배가 학교 부근 술집에 갔다. 막걸리를 한 주전자 시켰는데, 주인과 후배 모두 상대방에게 인상 쓰고 있더란다. 후배는 ??막걸리 시켰는데, 왜 안주를 안주나??했고, 주인은 ??저 학생은 술만 시키고 왜 안주를 안시키나??하고 있더란다. 이게 전주와 서울의 차이다. 술 시키고 안주 따로 시키는 서울 인심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자취하던 어느 날 새벽, 느닷없이 장정들이 방에 들어오더니 내 짐을 길바닥에 들어내놓는다. 집주인이 부도를 내 강제명도하는 과정. 전세금이 날아갔다. 벼락 맞았다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야박한 서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서울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성공의 기회를 찾기 위해 오늘도 서울로 사람이 몰린다. 재경 향우들 수자가 도민들보다 많은 연유이다. 우리 집안도 그랬다. 나를 따라 가족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는 5대 180명이 서울에 산다. 식구들이 많다고 ??케네디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이제 고향에서 산 기간보다 몇 배의 긴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서는 고향에서 산 기간이 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마음 속의 희망뿐일지라도.우리 아이들은 서울 사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 세대와 같을 수 없다. 그리워해야 할 것도 적다. 그들에게 뿌리가 전라북도임을 가르치는 일이 우리의 과제다. 돌아갈 곳을 만들어주는 것, 그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고단한 귀성길이 그런 교육의 한 현장이다. 귀성의 물결은 그래서 오늘도 아름답다./ 송 현 섭(재경전라북도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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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30 23:02

[타향에서] 태풍 이후

태풍 "곤파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수십년씩 된 가로수가 뽑혀 나가고 전신주가 동강 나기도 했다. 뉴스에 보니 고종의 칠백년 넘은 향나무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한다. 작업실 마당의 참나무도 우지끈 뚝딱! 하는 소리와 함께 한밤중에 부러져 버렸다. 세찬 비바람 소리에 일어나 창 앞에 섰지만 휘몰아치는 광풍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전날 태풍의 소식이 있었지만 여름의 뒷끝이면 의례 오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인데, 그 위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침에 보니 작은 마당이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흡사 점령군이 쓸고 지나간 것처럼 참담했다. 그중에도 하늘을 가리우며 나뭇잎을 빽빽이 달고 있던 수십년된 참나무가 동강난 채 쓰러져 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참나무가 넘어진 자리에 파란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 키 작은 소나무가 힘겹게 서있는 모습도 보였다. 참나무는 마당의 주인 격 이여서 몇 그루 나무는 그 아래서 주군을 모시는 부하들처럼 올망졸망 서 있었는데, 참나무가 넘어지고 나니 비로소 키 작은 몇몇 나무들의 존재가 제대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힘겨워 근처 농원에서 사람을 불러 넘어진 참나무를 자르는데 연세 지긋한 그 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참나무 참 잘 쓰러졌다."이 무슨 악담인가 싶어 "잘 쓰러지다니요?" 했더니"잘 쓰러지지 않았다구요?" 하고 되받는다.그 분의 말인즉슨 햇빛을 가리운 참나무가 태풍에 넘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하늘이 열려졌고 소나무며 작은 나무들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나무 아래 비비 꼬이며 힘들게 서 있는 소나무를 잘 살리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만약에 이번 태풍에 참나무가 쓰러져 주지 않았던들 소나무와 다른 몇 몇 나무들은 그 그늘에 가려 세월이 가도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감하게 참나무 쪽을 감벌해 주어야 하는데 태풍이 대신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나무 잘 쓰러졌다고 했다는 것이다.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분과 땀을 흘리며 한나절 손을 보고 나니 참담했던 정원은 새로운 모습으로 정돈이 되었다. 늘 서 있던 키 큰 참나무가 사라지게 되어 섭섭하긴 했지만 햇빛이 환히 비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영양실조처럼 보이던 작은 소나무는 그 햇빛 속에서 모처럼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태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 새도 나아와 지저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쓸어 가버릴듯 한 태풍의 위세는 무서웠고 그 바람에 손실도 있었지만 가만히 보니 태풍으로 얻어진 것도 많았다. 햇빛과 하늘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소나무며 작은 나무들까지 얻게 되었다. 오래 방치되어 있던 마당도 정리할 수 있게 된다.우리네 인생에도 어느 날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사나운 기세로 우리가 가진 것들에 손실을 입히며 절망과 두려움으로 몰아간다. 벼랑 끝에 몰린 것처럼 캄캄하여 한발짝도 앞으로 내디딜수 없을 것처럼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자연의 태풍처럼 인생에 불어오는 태풍을 잘 견디면 뜻밖의 선물을 주고갈 수도 있는 것 같다. 삶의 지혜와 겸손 그리고 감사의 미덕 같은 것이 바로 태풍이 인생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태풍도 그 섭리와 의미를 되새김질 해보라.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라.태풍 "곤파스"가 일깨워준 것들이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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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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