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07 04:36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흔들리는 호남

애정이 깊으면 증오도 그에 비례하는 걸까.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의 민심이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다. 60년 정통 야당이라는 민주당이 창당도 안된 ‘안철수 신당’한테 쩔쩔 매고 있다. 왜 하필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은 위력을 발휘하는가. 창당하면 과연 성공할 것인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관심 사안이다.안철수 신당 지지도는 작년 대선 전후부터 줄곧 민주당을 압도해 왔다. 가장 최근의 여론도 그와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이 전국 19세 이상 120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11월25∼28일)에서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물었더니 새누리당 35%, 안철수 신당 26%, 민주당 11%(통진당 1%, 의견유보 27%)로 나타났다. 호남에선 안철수 신당 35%, 민주당 28%였다. 이쯤 되면 안철수 신당은 제일 공략 대상지역으로 호남을 꼽을 수도 있겠다. 호남은 충청 정치권한테도 공격 받고 있다. 충청권 인구는 10월말 현재 호남보다 1만7129명이 더 많다. 인구가 많은데 국회의원 숫자가 호남보다 5명이나 적은 건 문제가 있다며 충청권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힘을 합쳐 선거구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정치세력 확장이다. 호남을 빗대며 인구에 걸맞는 사업, 예산, 장·차관을 배려하라고 정부를 다그치고 있다. 호남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해 어정쩡하다.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엔 난관이 따른다. 인물과 조직, 비전의 구체화 등 할 일이 많다. 미드필더가 전후방을 휘저어야 경기가 수월할 터인데 허리 역할을 해야 할 현역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 중량감 있는 인물 영입도 여의치 않다.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라는 점도 흥행엔 좋은 여건이 아니다. 바람이 불지, 어떨지도 안갯속이다. 그렇다고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민주당이 힐난할 일은 아니다.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이 힘을 받는 건 민주당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정치쇄신, 민생, 드러나 있는 현안들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심판이다. “낡은 틀로는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설 수 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안철수 의원은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 안갯속에서 태산이 모습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호남, 그런데도 민주당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12.03 23:02

다시 죽음이라 부를 수는 없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1974년 1월 8일, 죽은 유신헌법으로 산 민주주의에 재갈을 물리려던 독재자는 해도 해도 안 되자 긴급조치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나선다. 긴급조치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 이제 시인으로는 죽었다 할 수 있는 한 시인이 참다못해 민주주의의 죽음이라 울부짖었다. 유신헌법과 이를 살리려던 숱한 긴급조치들은 1979년 10월 26일 그 독재자와 죽음을 함께한다.2004년 3월 12일을 죽음이라 부르자/ 막 꽃 피우려고 일어서던 꽃나무를 주저앉히는/ 저 어처구니없는 폭설을/ 폭설의 검은 쿠데타를/ 달리 뭐라 말하겠나, 죽음이라 부르자/ 이건 아니다/ 지붕이 무너졌다/ 서까래가 내려앉았다/ 도란도란 민주주의의 밥을 끓이던 부엌도 까뭉개졌다황색돌풍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날. 현재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 중인 또 다른 시인은 이렇게 절규했다. 해괴망측한 사유로 인한 민주주의의 죽음에 제 정신 가진 국민은 모두 분노했고 이후 선거에서 이를 주도한 세력은 궤멸한다. 그러나 그 후폭풍은 수그러들지 않아 결국 그 노란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만다.그리고 2012년 12월 19일! 감히 죽음이라 부르지는 못하겠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간여하여 치른 불법선거에서는 분명 민주주의의 죽음 냄새가 진동한다. 이를 덮기 위해 남북대화록을 악용하고 각종 학기(學妓자기 전공을 이용하여 권력이나 자본에 기생충처럼 빌붙어 연명하는 도구적 지식인)들을 동원, 조중동과 종편은 물론 공영방송까지 어지럽히는 작태에서도 그 죽음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다. 시인이 아니어서만이 아니다. 죽음이라 부르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참담함이 저주 같아서 두렵다. 죽음이 원한과 증오로 계승되고 다시 이것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피를 요구하며 몇 백 년에 걸친 서구 민주화 역사가 이를 엄증하고 있다지만 이것만은 피해가고 싶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3.12.02 23:02

가양주의 변신

기분 좋은 선물을 받았다. 지인의 친구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온 막걸리를 함께 브랜드화하고 상품화했다는 ‘손막걸리’였다. 주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손막걸리려니 싶었다. 그런데 설명서를 보니 이게 좀 심상치 않았다. 뚜껑을 열 때 천천히 조금씩 가스를 빼야 한다거나, 샴페인 잔에 꼭 마시라거나 등 술 한잔 나누는데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막걸리가 아닌 ‘막페인’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는 설명도 덧붙여 있었다. 마침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에서 시음을 했다. 애주가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다. 함께 놓였던 와인은 남았으나 ‘막페인’은 바닥이 났을 정도다.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마음 선하게 하는 광고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중 마지막 문구.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져 많은 양을 생산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지만, 막걸리에 담긴 정성만큼은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마음을 빼앗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 술을 담은 병의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시음 자리에서도 ‘빈 술병을 갖고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가양주(家釀酒)의 변신은 성공적이다. 가양주는 요즈음 술처럼 맛이나 향은 없고 알코올 순도만 높아 조금만 마셔도 금세 취하는 그런 술이 아니다. 달고 부드럽거나 과일 향기와 같은 깊은 향취가 있고, 깊고 순한 듯 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 그래서 흥취를 더하는 술. 그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주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집안 대대로 물려온 가양주의 전통이 사라진 자리에 상품으로 부활한 전통주가 적지 않다. 우리 지역에도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전통주가 많다. 사실 가양주로 상징되는 전통주의 역사는 고단하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전통주는 급속하게 몰락했다. 가양주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습였지만 일제는 가정에서 빚는 가양주를 ‘밀주’라해 금지시켰다. 더러는 은밀하게 가양주의 전통을 지켰지만 정작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후에도 가양주는 아름다운 풍습의 자리를 다시 찾지 못했다. 서양술이 들어오고 정부가 통제 정책에 나서면서 가정에서 술을 빚는 일이 더 철저하게 금지됐기 때문이다.사라졌던 가양주의 전통이 되살아나고 있다. ‘막페인’처럼 전통주가 지닌 미덕을 지키면서도 품격 있는(?) 상품화에 성공한 가양주들이 눈에 띈다. 우리문화의 의미 있는 복원이 반갑다. 상업성에만 눈 팔지 않는 가양주의 아름다운 상품화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1.29 23:02

달마의 손가락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배출된 여성 대통령이고,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여성 지도자다. 여성들이 ‘유리천장’에 부딪쳐 절망하는 경우가 흔한 현대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유리천장’을 속시원히 깨부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개월째에 접어든 지금, 국내 분위기가 심상찮다. 그동안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어수선했는데, 이제는 아예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가 나왔다. 지난 22일 천주교 전주교구 군산 수송동 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사제들이 시국미사를 했다. 이날 박창신 원로신부가 강론을 통해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국가 기관들이 부당하게 개입한 부정선거라며 “재임시에 국가정보원과 군과 모든 국가기관에서 대선에 개입하도록 해준 이명박 대통령은 구속수사하고, 그걸 이용한 박근혜는 퇴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신부는 정권의 종북몰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천안함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킬 만한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예를 하나 듭니다. 독도는 어디 땅이에요? 우리 땅이죠?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와가지고 독도에서 훈련하면 우리 어떻게 해요?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돼요? 왜 대답이 없어요? 쏴버려야지. 안 쏘려면 대통령 거 뭐하러 있어요. 그러면 NLL,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운동을 계속 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쏴야지. 그것이 연평도 포격사건이에요. 그래 놓고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가지고 지금까지 이 난리를 치르고 선거에 이용하고 한 겁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부탁합니다. 정말, 이명박 대통령 책임져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이 아닙니다, 정말로. 책임져야 합니다.”이 강론을 두고 보수쪽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박 신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연평도에 포를 쏜 게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종북몰이가 연평도 포격을 유도한 꼴이 됐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우리는 박 신부의 손가락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가 가리킨 달을 보고 있는가.김재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3.11.28 23:02

지방의원 공천권

지방정치에서 국회의원은 슈퍼 갑이다.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권한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눈밖에 나면 배지를 달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 그간 민주당 일색인 도내에서 만큼은 국회의원들이 개인 능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당선된 그날부터 큰 완장 차고 무소불위의 힘을 써왔다. 도내 국회의원들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정치력이 약해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지역에서 만큼은 감놔라 배놔라 할 정도로 힘이 세다.출판기념회가 열릴 때는 개미격인 지방의원들이 다 알아서 처리한다. 사람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서 책 파는 것도 국회의원이 신경 안써도 될 정도로 착착 알아서 한다. 공천권을 쥐고 있어 모두가 알아서 슬슬 긴다. 이 좋은 전가의 보도를 국회의원들이 내 버릴려고 하지 않은게 문제다. 민주당은 전 당원 투표를 통해 지방의원 공천권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지만 의원 각자 속내는 그게 아니다. 의원들은 말로만 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시늉만 낼 뿐이다. 새누리당도 대선 공약으로 채택했지만 속으로는 반대다.지방정치가 혼탁하고 비리로 점철된 그 기저에는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맘대로 공천권을 행사한 탓이 제일 크다. 선거 때 자신을 어떤식으로 도왔느냐가 공천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누가 더 많은 실탄을 지원했느냐로 공천이 판가름 난다. 그 사람의 정치적 식견이나 명망도 실력 등은 뒷전이다. 국회의원 한테 누가 더 충견 노릇을 잘 했느냐가 판단기준이 된다. 말이 공천이지 사천이나 다를 바 없다. 지금껏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나 다름 없어 더 국회의원들이 공천권 갖고 지방의원들을 옥죈다.도내 국회의원들은 중앙에서 말발이 잘 먹혀 들지 않고 알아 주는 사람이 없어 지역구 관리 한답시고 자주 지역에 온다. 중량감 있는 의원 같으면 지역에 내려 가기가 쉽지 않다. 도내 의원들 가운데는 가장 바빠야할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도 지방의원 몰고 다니며 행사장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밀었다. 지역구 관리를 잘 한다고 평가하기 이전에 얼마나 정치력이 없는가를 유권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 주변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국회의원들만 깨끗하게 잘 하면 지방정치는 잘 굴러 가게 돼 있다. 악의 씨앗이나 다름 없는 지방의원 공천권을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3.11.27 23:02

다시 보는 루소의 교육론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 모든 것은 선하다. 그러나 인간의 손에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말이다. 그는 소설 형식의 교육론 ‘에밀’에서 “아이의 특성에 관심을 갖고, 아이의 타고난 능력이 훼손되지 않고 자라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교육방법은 당시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 철학자 칸트는 학창시절 1등을 놓치지 않은 모범생이었지만 훗날 자신이 다니던 프리드리히 학교의 교육방식을 비판했다. 모든 수업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낼 정도로 종교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나중에도 모든 형식의 기도를 혐오했다. 칸트는 이 때의 학창시절을 두고 “공포와 두려움만 떠오를 뿐”이라고 했다.공산주의 사상가로 이름을 떨친 칼 마르크스는 학창시절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특별한 재능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학교성적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스스로 익혀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학교 밖에서 독자적으로 길을 개척했다. 철학과 역사에서 자신의 이론을 설파했고 서른셋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는 지식과 인격을 기르는 공간이다. 개개인이 잘 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끄집어 내 안내해 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가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칸트처럼 공포와 두려움만 떠오르는 이들이 있고, 마르크스처럼 학교 밖에서 재능을 찾아낸 이들도 많다. 얼마전 박근혜 대통령이 학교기능을 언급했다. “학교는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각자 꿈꾸는 인생항로를 안내해 주는 곳이 돼야 한다.” “교육은 주입식이 아니라 원래 타고난 것을 잘 끌어내주는 것이다.” 진로탐색 과정인 ‘자유학기제’를 시범운영중인 중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맞는 말이다. 한데 개혁의 구체성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틀에 박힌 교육방법 때문에 상처받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이 잘 하는 것을 끄집어내 주는 역할도 못한다. 루소의 말처럼 인간의 손을 타면서 타락하는 교육이 돼선 안된다. 아이들의 꿈과 소양을 짓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쭉쭉 뻗어야 할 창의성을 사장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할 일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11.26 23:02

코카시즘 마녀사냥 피하는 길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감금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태인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를 잡아갈 때, 나를 위해 항의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그들이 나를 잡아갈 때)정부가 나서서 국회의원을 4명이나 낸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려 하는데도 나는 침묵하고 있다. 그 정당 소속도 아니고 그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려 밀어붙일 때에도 나는 애써 모르쇠 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 조합원이 아니고 이제껏 약간은 비판적 입장에 서있기도 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교수노조는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빨갱이 이석기 변호하려면 북한으로 가라!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사실 변 관심이 없다. 그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드러난 그의 행적을 썩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대학에서 마르크스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강의하던 강사가 한 수강생에 의해 국가정보원에 간첩 좌익사범으로 신고되었다는 소식에 조금 움찔하기는 했지만 또 침묵의 반응을 계속 견지했다. 나는 영시와 그 배경으로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니까!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코카시즘(한국적 매카시즘) 광풍! 스스로 자신들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민주화 되었다고 안심하며 손 놓고 있었던 것도 뼈아픈 착각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이를 삶의 당연한 조건이요 권리로 여기는, 그래서 그것이 훼손될 경우 분연히 떨쳐 일어날 민주화 세력이 다 사라져버린 듯 막무가내로 날뛰는 저들이야 말로 매우 치명적인 패착을, 그것도 연속으로 두고 있는 것이라고. 스프링은 임계점까지만 움츠러들 뿐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또 다시 그 첫 신호를 보내왔다. 초연한 듯 무심하고 게으른, 꼭 나 닮은 사람들 퍼뜩 정신 차리라고! 광풍의 마녀사냥, 언제 어디서든 당할 수 있는 것. 그 때 되어 두리번거리지 말고 지금 나서 함께 가라앉히자고!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3.11.25 23:02

숭례문

숭례문은 대한민국 국보 1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숭례문의 국보 1호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어 왔고 지정번호 또한 가치의 우선순위와는 관계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찌됐든 숭례문은 한 국가의 수도,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의 원형으로서 대한민국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런 숭례문의 태생을 들여다보면 비루하기 짝이 없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숭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을 조선고적 1호와 2호로 지정했다. 그 배경을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두 문을 통해 한양성에 입성한 기록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숭례문은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됐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덕분이다. 실제 태조 4년인 1395년에 시작해 3년여 만에 완공했다는 숭례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도 불에 타지 않았다. 전란 속에서도 의연히 살아남았다는 대견함(?)이 숭례문의 가장 큰 족적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보 1호의 자격을 논하기에는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보 1호’의 변경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숭례문이 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번엔 부실 복구다. 조선시대 양란을 거치면서도 의연했던 숭례문은 2008년 화재로 그 원형을 잃었다. 이후 복원에 들어간 숭례문은 지난 5월, 전통공법의 양식을 온전히 담아 복구했다는 형상으로 그 자리에 섰다. 5년여 만이다. 그런데 불과 5개월 만에 다시 부실 복구 파문이 일고 있다. 단청은 벗겨지고 기둥은 갈라지고 뒤틀리는 행색이 원인이다. 전통공법의 미덕은 찾아보기 어렵고, 온갖 의혹이 꼬리를 문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부실 복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던 듯도 싶다. 숭례문 복구공사 예산은 242억 원. 그중 자재비가 14억 원인데 그것도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목재 예산은 2억 3000만 원, 단청 안료비도 1억이 조금 넘는 정도에 그친다. 이에 비해 홍보사업비는 24억 원이고 주변정비에 더 큰 예산이 들어갔다.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뀐 형국이다. 점입가경, 숭례문 부실복구 책임으로 변영섭문화재청장이 경질되더니 숭례문 단청 복구를 지휘한 단청장이 자격증 불법대여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파문이 심상치 않다. 숭례문의 위기는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1.22 23:02

요즘 민주당

13년 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당시 재선의원에 불과했지만 당 최고위원에 오르는 등 정치적 위상이 크게 올라 있었다. 16대 국회에서 정동영은 천정배, 신기남 의원과 함께 정치 개혁과 혁신을 주도하는 중견 정치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기에 접어든 2000년 정치 상황은 각종 권력형 비리 잡음이 끊이지 않아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치고 있었다. 민주당은 재집권을 위해서 큰 변화가 필요했다. 개혁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DJ 주변 세력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 때 정동영이 DJ의 동교동계 세력을 이끄는 좌장 권노갑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그의 퇴진을 이끌어냈다.2000년 12월2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만찬에 참석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권노갑 최고위원을 향해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정동영의 당돌한 행동을 뒷받침한 것은 송영길(현 인천시장) 등 초선의원들 모임인 ‘새벽21’이었다. 결국 권노갑 최고위원은 보름만인 17일 최고위원직을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재선 의원인 정동영이 당시 상황에서 권노갑을 당차게 공격한 것은 힘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권씨는 권력형 비리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의 동교동계는 40대 젊은 개혁세력의 공세를 감당할 만한 개혁적 정신자세를 갖고 있지 않았다. 권노갑을 찍어낸 정동영의 정풍운동이 성공하면서 정동영의 당내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대선 후보로 거론될 만큼 거물급이 됐다. 실제로 그는 2000년 12월의 사건을 계기로 파죽지세, 자신의 세력을 확장했고, 2001년 상반기에 진행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끝까지 완주했다.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냈고, 훗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본선에서 겨뤘다가 완패하는 수모도 겪었다. 과거 정동영 상임고문 등이 주도한 정풍운동은 민주당이 썩어빠진 구시대적 정치판을 탈피, 미래 세력으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이런 부류의 개혁은 그동안 민주당의 영등포당사, 한나라당의 천막당사 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 민주당은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아왔다. 선거 때가 되면 외부 세력과 연합, 임기응변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요즘 민주당은 내면보다 외면만 쳐다보는 것 같다. 그래서 안철수 세력이 떴을 때 의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김재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3.11.21 23:02

단체장 처신

전북이 너무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꽉 막혀 있어 장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국가 예산을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다 보니까 굵직한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중앙부처에 전북 인맥이 뚝 끊겨 국회의원들도 예산확보 하기가 벅차다. 시장 군수들이 중앙부처를 상대로 예산 활동에 나선다는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다. 중앙부처 실무선부터 차단돼 접근하기가 어렵다. 일부 시장 군수는 그나마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서 국비를 눈물겹게 따오는 형편이다.항상 선거는 중요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는 전북의 사활이 걸렸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만큼 내년 선거가 중요하다. 축처져 있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면 새로운 리더십으로 교체가 절실하다. 지금처럼 별다른 비전도 없는 단체장들이 또 다시 그 자리를 꿰찬다면 전북은 별 볼일 없게 될 것이다. 지난 4.11총선 때 7명을 물갈이 했으나 옥석구분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까 존재감 없는 용각산 국회의원도 뽑았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내년 지방선거 때 반면교사로 삼아야 전북이 살 수 있다.그간 현직 단체장에 대한 능력 평가가 일반에 널리 회자돼 있다. 임기 중에 어떤 성과를 거뒀다고 거창하게 부르짖어도 알만한 사람은 그 허구를 다 안다. 행정을 오래 하다보면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항상 전시행정의 유혹을 받는다. 처음에는 잘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초심이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하지만 초록이 동색인 것처럼 집행부로부터 유혹 받아 이 같은 시스템도 잘 작동되지 않는다. 더구나 민주당 일색으로 짜여진 현행 구도 하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플레이만 설친다.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원이 단체장 장학생 역할을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의원들이 목에다 힘만 주고 지역서 유지랍시고 호가호위한다.내년 지선에서 도내 상당수 단체장들이 바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는 단체장들이 우선적으로 물갈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 때와 공사 청탁 대가로 뇌물 받은 단체장은 더 이상 하려고 해선 안 된다.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는 게 그나마 자신의 명예를 보전하고 지역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또 한 번 하겠다고 마지막까지 버텼다가는 패가망신 당할 수 있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3.11.20 23:02

첫눈 오는 날

정치인 김종필(JP)과 기자들 사이의 첫눈에 관한 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어느 여름날 기자들과 기분 좋게 술 한잔 하면서 정치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첫눈 오는 날 다시 만나자, 연락하겠다."며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하는 의례적인 인사거니 생각한 기자들이 이 약속을 기억할 리 없다. 그런데 그해 첫눈이 내리자 JP한테 연락이 왔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하지 않았느냐. 만나자"며 자리를 함께 했던 기자들에게 전화해 회동이 이뤄졌다. 감동, 또 감동∼. 원래 감성이 풍부하기도 했지만 자상함과 신뢰 때문에 JP 주변에는 기자들이 많았다. 특히 정치인이 새겨야 할 일화다. 진정성 없이 "언제 한번 만나자"고 지나치는 식으로 인사하는 이들이 많다. 맛보기로 살거나 신뢰성 없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제 전주와 고창 군산 정읍 남원 장수 임실 진안 등 8개 시·군에 첫눈이 내렸다. 대부분 지역은 많은 양이 아니라서 쌓이지는 않았지만 장수지역에는 오늘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첫눈 내리는 날 이 시를 읽고,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낭만과 추억이 많다면 풍부한 인생을 산 것이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지 않던가. 첫눈은 본격적인 겨울로 진입한다는 신호다. 중년 이후에겐 또 하나의 연륜이 깊어진다는 예고다. 설레임도 없고 낭만과 추억을 끄집어 내는 것조차 귀찮아 한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리는 설레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느쪽에 있는지 해물파전에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서 반추해 볼 일이다. 그리고 다시 첫눈 내리는 날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 보시라.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11.19 23:02

술 그리운 계절

우리는 종종 일탈을 꿈꾼다. 때로는 실제 벗어나 보기도 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다. 벗어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온 탕아가 그러하듯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던져 보아야만 새롭게 거듭난 모습으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부함에 함몰되기 십상이다. 시인과 예술가들에게는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일탈의 날개가 있다. 누워서도 푸른 바다 그 깊은 곳을 항해할 수 있다. 골방에 앉아 우주 저편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다. 천재들은 흔들리지 않고도 넘친다. 넘쳐흐름으로써 온 강과 들녘의 온갖 푸르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들 범인들이 항아리에 갇힌 물처럼 그 좁고 퀴퀴한 공간을 온 세상으로 착각하고 있는 동안.그런 비상의 날개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주어진다 해도 쉽게 펼치질 못한다. 일상 규범의 부릅뜬 눈 때문이다. "습관이 서리만큼 무거운 추로 내리누르고"(워즈워스) "세월이라는 무거운 짐이 기를 꺾고 구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져 피를 흘리노라!"(셸리) 절규하는 것이다. 상상력이나 천재성을 부여받지 못한 중생은 다른 힘을 빌지 않고는 흔들릴 수도 넘쳐흐를 수도 없다. 그래서 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벗어나기 위해. 크게 한번 흔들려보기 위해. 술은 바람이다. 상상력이 영감의 바람이듯, 그것은 일상의 진부함을 털어버리게 해주는 혁신의 바람이다. 막걸리가 이른 봄 수액이 잘 오를 수 있도록 나무줄기와 가지들을 흔들어주는 바람이라면, 소주는 썩은 가지들을 부러뜨리고 부실한 열매들을 털어내 남은 것들을 실하게 해주는 태풍이다. 취직과 돈벌이의 일상에 쫓기다 "우리 민주주의가 초기화된 컴퓨터"(한승헌)처럼 되어 버린 요즘같이 술의 "혁명적 타격"(고은)이 절실한 적도 없다. 습관의 노예가 되어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화의 자료들 그 소중한 유산마저 날리고 말았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일탈의 소통을 게을리 하다가 민주공동체의 터전마저 빼앗기고 만 것이다.털어내야 한다. 저 진부한 유신의 썩은 가지들! 걷어내야 한다. 푸른 하늘 덮은 "먹구름과 쇠항아리"! 술의 상상력 힘 빌어 "껍데기"에 가려진 "4월"의 "알맹이"(신동엽) 되살려야 한다. '긴 밤 지새우는' 디오니소스적 열정 되찾아 다시 '아침 이슬'의 상쾌한 향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참 술 고픈 계절이다. 진실로 술친구 그리운 계절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3.11.18 23:02

컨테이너의 진화

컨테이너는 일반적으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말하지만, 사전적 해석으로는 화물을 능률적이고 경제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자형 용기를 통칭한다. 대중들에게는 알루미늄이나 강철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컨테이너가 좀 더 익숙하지만 컨테이너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는 목재·합판·강철·알루미늄·경합금·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 의외로 많다. 물론 취급되는 화물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고 수송방식, 용도에 따라 크기도 달라진다.이 컨테이너가 진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되고 있는 기능의 양상이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움직이는 건축물로서의 기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막 등 간이시설물로 컨테이너를 활용한 것은 꽤 오래 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건축물의 소재로서 발휘하는 기능이 커지면서 우리 일상과 문화를 새롭게 바꾸어 놓고 있다. 버려진 재료를 재구성하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술가 배영환은 컨테이너를 이용한 도서관을 만들어 냈다. 당초 목재와 골판지로 만든 설계 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컨테이너로 탄생시킨 그의 도서관은 이동성이 용이해 '움직이는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10여 년 전부터 컨테이너 구조물을 연구해온 건축가 백지원은 '컨테이너 작가'란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컨테이너 건축을 선호한다. 국내외 화제를 모은 서울 논현동의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그의 작품이다. 28개의 군수용 카키색 컨테이너를 연결해 구조물을 만든 이 공간은 필요에 따라 내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비주류 문화의 상징으로 컨테이너를 주목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늘어나면서 공공미술프로젝트 등 예술작업에서도 컨테이너는 중심 소재가 됐다. 컨테이너 건축물은 물론 적은 예산과 이동 가능한 구조물로서의 기능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정육면체의 규격화된 틀이 갖는 한계 때문에 디자인적 요소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 컨테이너 작업을 해온 작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건축디자인을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눈여겨보면 근래 들어 농촌에도 컨테이너 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법규가 완화된 덕분이다. 농막이나 간이시설물 정도로만 활용되면서 조금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던 컨테이너가 제법 예쁜 건축물로 바뀌고 있으니 그 변신이 반갑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1.15 23:02

김치와 김장문화

'김치와 김장문화'가 오는 12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제8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공식 등재될 예정이다. '김치와 김장문화'가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일본이 내세우는 짝퉁 김치 '기무치'를 세계 시장에서 확실히 눌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기무치를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유네스코는 '김치와 김장'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고 가치 있는 문화라고 판단했다. 김치는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젓갈과 고추 등 양념을 버무려 만드는 전통 반찬이다. 아삭거리는 식감에 시큼하고 매운 맛 등이 어우러져 시일이 지나면서 또 다른 깊은 맛을 내는 김치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밥도둑'이다. 김장문화는 매년 11월∼12월에 온 국민이 일제히 김장을 담그는 우리 고유문화다. 가족들이 모여서 일심동체가 되어 담그는 김치, 동네 이웃들이 품앗이로 배추를 뽑아 다듬고, 씻고, 양념을 버무려 만드는 김치는 정겨운 공동체생활문화다. 김치와 김장은 가족과 이웃, 고향을 더욱 뜨겁게 연결해 주는 끈끈한 고리다. 김장은 '어머니의 손맛'에서 나온다. 김치 기업들이 김치 전문가들의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공장에서 생산한 김치를 시장에 내놓지만, 그래도 주름진 어머니 손으로 배추 속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양념을 묻혀가며 버무린 김치가 제 맛을 낸다. 김장 김치 맛은 어머니의 사랑이 발효돼 우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어머니들의 손길은 바쁘다. 배추 폭이 단단하게 차오르고, 날씨가 싸늘해지면 고추를 챙겨 빻고, 마늘을 깐다. 멸치액젓도 챙긴다. 김장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참 많다. 배추와 천일염, 고춧가루, 찹쌀가루, 마늘, 양파, 액젓, 우뭇가사리, 무, 배, 사과, 당근, 생강, 쪽파, 대파, 설탕 등 20여 가지에 이른다. 이렇게 수많은 양념을 잘 씻은 배추에 버무린 다음 옹기에 담아 두면 발효가 되니, 김치 미생물이 추가된다. 사람들마다 생김치, 익은 김치 취향이 있다고 하지만, 김치는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각자 나름대로 풍성한 맛을 내니 세계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날씨가 차가워졌다. 김장철이다. 곳곳에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들이 고향집에 모여 부모님 모시고 1박2일, 또는 2박3일 김장 나들이를 하면서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는 시절이 왔다. 김재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3.11.14 23:02

대중교통도 맞춤시대

"이러다간 자가용 차량이 없는 사람은 시골서 살 자격이 없을 거 같아." 버스 이용에 불편을 느끼는 농산어촌 주민들 사이에서 자조섞인 푸념이 새어나오고 있다. 농산어촌 지역 운행 버스는 차량을 보유하지 않은 주민들에게 나들이할 때 절대적인'발' 역할을 담당하는 대중교통수단이다.서민과 노약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런 버스 목격하기가 농산어촌 지역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뜸해지고 있다. 버스업계가 경영난을 이유로 감차와 더불어 정기 노선 운행횟수를 점점 줄여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승객이 줄고 적자노선 운행에 대한 자치단체의 손실보전금 등이 현실에 못미쳐 운행 횟수 감축은 어쩔수 없다"고 버스업계는 항변한다. 노인들은 버스를 기다리다 목이 빠지고 시내권 시장을 한번 오는데 하루 품을 허비하기 일쑤인 등 버스 감축 운행에 따른 불편은 고스란히 약자들의 몫이다.일부 노인들은 버스이용이 여의치 않자 객지에서 살고 있는 자가용 차량 보유 자녀들을 불러 미뤄놨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한다. 무진장여객 버스기사들이 근로조건을 개선을 요구하며 이달 4일부터 나흘간 전면 파업을 벌여 애꿎은 무주·장수·진안 지역주민들이 불편을 겪은 것도 농어촌버스 업계 실정과 무관치 않다.교육시설인 소규모 학교의 잇달은 폐교에다 대중교통수단 이용마저 여의치 않아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겹겹으로 쌓여간다. 더욱 나빠지는 정주여건은 농산어촌의 공동화(空洞化)현상을 부채질한다.이런 현실에서 전북도가 수요응답형(DRT·Demand Responsive Transporation) 대중체계를 내년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해서 관심을 끈다.DRT는 버스 정규노선처럼 노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탑승자의 예약 등 수요에 대응, 여러 가지 노선으로 변형해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대형버스가 아닌 승합차가 농어촌지역이나 벽지노선 주민들이 요구하는 시간과 장소를 수시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버스의 경제성과 택시의 편리성을 결합한 일종의 콜 대중교통수단인 셈이다.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버스업계 예산지원에 골머리를 앓아온 자치단체가 고육지책끝에 내놓은 이 방안이 의도대로 뿌리를 내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가용 차량이 없는 농산어촌 주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 시행해주길 주문한다.홍동기 논설위원

  • 오피니언
  • 홍동기
  • 2013.11.13 23:02

견훤정권과 전주

"백제가 나라를 연 지 600년 만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소정방을 보내 수군 13만명이 바다를 건넜고, 신라 김유신이 땅을 휩쓸며 당나라 군사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하니 내 지금 감히 수도를 세워 원한을 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견훤의 얘기다. 신라 청년장교 출신인 견훤은 "내가 백제 의자왕의 분을 풀어주겠다"고 공언하면서 국호를 후백제로 정한 뒤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관직을 만들어 직책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때가 견훤의 나이 서른 셋, 서기 900년의 일이다. 그러니 올해는 전주 정도(定都) 1113주년이 되는 해다. '천년 고도(古都) 전주'는 여기에서 발원한다. 후백제는 부패하고 타락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혼란기에 출현했던 정권이다. 국가체제도 미비했고 정통왕조도 아니었지만 엄연한 후삼국 시대의 한 축이다. 36년이라는 짧은 역사였지만 기상은 하늘을 찔렀고 지향하는 가치는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다. 갈수록 쪼그라들고 노령화되고 있는 전북, 정치력이 약화되고 있는 호남에 주는 메시지가 특히 그렇다. "내가 곧 왕"이라고 외치고, "왕건을 무찌른 뒤 평양성루에 활을 걸어놓고 대동강 물에 말의 목을 적시겠다"고 호언할 이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인식 또한 웅대하다. 역사적 계통은 고조선-북부여-백제-후백제로 이어져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연관 짓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백제 도읍인 전주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실로 크다. 역사는 대개 승자의 기록이다. 짓밟히고 구겨진 견훤정권의 자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진실을 찾는 것,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자체가 또한 역사다. 전주 정도(定都) 1100주년이었던 2000년 첫 학술대회('후백제 견훤정권과 전주') 이후 그런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 열린 학술대회('후백제 왕도 전주의 재조명')도 그 일환이다. 궁궐 터나 동고산성의 원형보존 등 연구성과도 진화하고 있다. '후백제' '견훤' 등은 우리지역 사람들에겐 묘한 감상과 긍지를 심어주는 정신적 바탕이다. 후백제의 기상과 천년고도 전주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관심과 지원이 더욱 증폭됐으면 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11.12 23:02

홀로 함께하는 길

이런 결심을 한 적이 있다. 혼자 땅을 벗 삼아 땀 흘릴 줄 아는 사람 무시하지 말자고. 이념이 다르고 인생관이 어긋나 함께 술까지는 나누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진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적어도 사기(詐欺)를 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혹 시와 음악을 줄길 줄 모른다 해도 좋다. 만에 하나 꽃과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용납하자! 했다. 남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 땅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아니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다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미구에 닥칠 식량위기에 대비하자는 것은 아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처사(處士)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을 문명의 이기에 기대는 기생적 삶만은 조금이나마 극복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혼자서도 오지게 잘 살고 있는 벗 박남준 시인의 삶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회가 빌려준 교수, 위원장 등의 직분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할 때를 대비하고 있을 수도 있겠고. 그런 '사회적 장식'을 털어낸 '존재의 제자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홀로 설 수 있다. 그렇게 의연하게 홀로 설 수 있어야 진정 '우리'로 함께 할 수 있다.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예배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낸 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서 나날이 커져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권하신 법정스님이 인용한 인디언 현자의 말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혼자 살 수는 없다.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변증법적 태도가 요구된다. 동아리로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행동거지가 필요한 것이다.이는 확실한 자기중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스님이 강조하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기 관리라 함은 세속적 판단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엄정에게 자기를 평가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의연함. 중용의 계신공구(戒愼恐懼)도 이를 강조하기 위한 말일 게다, (홀로 있을 때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라! 오늘도 혼자서 낙엽을 쓸며 스스로 이런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당당히 함께하기 위하여!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3.11.11 23:02

장서표(藏書票)

책을 사면 첫 페이지 안쪽에 사인을 먼저 하는 습관이 있다. 아마도 아주 어린 시절, 스스로 책을 갖게 된 때로부터 시작된 습관일 것이다. 돌아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엔 누구나가 교과서에 각자의 사인을 해놓았었다. 책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누군가 가져가더라도 금세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그렇다보니 책의 표지 뿐 아니라 옆쪽에까지 잘 지워지지 않게 주인의 이름을 새겨놓은 경우가 많았다. 책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아예 표식을 따로 만들어 책에 붙이기도 했다. '장서표(藏書票)'다. 장서표는 자신이 소장한 책에 대한 소유와 애정의 표시로 책의 안겉장에 붙이는 작은 크기의 판화다. 이 판화에는 책의 주인이 좋아하거나 어울리는 이미지와 '누구누구의 장서'란 의미의 라틴어 'EX-LIBRIS'를 주인의 이름과 함께 새겨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에 붙이는 용도가 정해져 있다 보니 그 크기 또한 아무리 커도 우편엽서의 크기를 넘지 않는다. 장서표는 15세기 독일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인쇄술이 발달한 19세기 후반에는 폭넓게 확산되어 발전했다. 장서표는 소유를 표시하는 기능이 우선이지만, 판화로 제작되는 덕분에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장식적 기능도 커서 현대에 와서는 독립된 판화예술의 한 분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본래의 용도에 따라 책의 주인이 직접 제작하기도 했지만 작가에게 맡겨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서표를 판화작품으로 남긴 이름난 작가도 적지 않다. 장서표의 의미와 판화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이 주목받으면서 그것을 교환하거나 수집하는 애호가들도 세계적으로 많이 늘어났다. 1953년에는 국제적인 장서표 애호가 모임이 처음으로 열렸고, 1966년에는 국제 장서표 협회 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of Bookplate Societies: FISAE)이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결성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서표를 제작하는 판화작가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궁산의 장서표 작업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대부터 장서표 작업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문화계 인사 들을 중심으로 400여명의 장서표를 제작했다. 동양에서도 장서표와 같은 기능을 하는 장서인(藏書印)이 있었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책을 귀하게 여겼던 시대가 물려준 귀한 산물들이다. 책이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과연 후대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1.08 23:02

단풍

한반도의 10월과 11월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만산홍엽의 장관에 이끌려 산으로 몰려간다. 설악산, 속리산, 지리산 등 한반도의 산이란 산은 사람들이 연신 터뜨리는 웃음소리에 놀라 떨어지는 낙엽이 시나브로 쌓여간다. 월요일이면 SNS에 어김없이 올라오는 산행 사진들도 낙엽만큼이나 수북하다. 높은 산 바위에서, 혹은 붉은 단풍을 배경삼아 동료들과 찍은 사진에서 그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산행을 하면서 느낀 감동과 행복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앞 다퉈 SNS에 올리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요즘 산이 울긋불긋한 것은 낙엽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산을 찾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착용하는 등산 아웃도어가 한 몫 한다. 이제 일상복처럼 된 아웃도어는 세련된 디자인에 빨강, 노랑, 파랑 등 색깔도 다양하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솟아나는 땀을 잘 흡수하고, 신축성도 좋다. 게다가 비바람도 어느 정도 막아주니 등산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아웃도어는 비싼 것이 흠이다. 신발부터 모자까지 잘 차려 입고 산행에 나서려면 100만 원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많은 나라에서 공급되면서 가격이 내려갈 때도 된 것 같은데 대부분 브랜드가 고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허황된 소비의식도 문제일 수 있다. 히말라야를 등정할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또 겨울 혹한기에 산을 찾을 일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저가 브랜드 제품도 충분한 것 아닌가. 어쨌든 산이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산을 오를 수 있는 편리한 등산화와 등산복이 일상복처럼 된 세상이니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체력을 다지고, 정신 건강까지 챙기는 산행이니 하산하는 사람들이 피곤함을 쉬이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가을 산의 단풍 낙엽은 희생이다. 마치 불에 타들어가는 듯 비틀어지며 마지막 빛을 발산하다 떨어져 뒹그는 낙엽은 한그루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 요동치는 몸부림이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대비해 성장 활동을 멈추고 낙엽도 떨어뜨린다. 가을 동안에 세포 내부의 수분을 미리 제거해야 겨울 동안 얼어 죽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봄·여름 동안 영양분을 공급해 온 나뭇잎은 그렇게 또 나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뒤에는 썩어 다음 해 나무가 살아갈 양분을 공급해 준다. 단풍철도 이제 막바지다. 김재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3.11.07 23:02

초라한 국감 성적표

도내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때 밥값을 못했다. 초선이라서 정치력이 떨어지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너무 존재감이 없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감에서 송곳 질문을 잘하면 의정 활동은 거의 끝난다. 지난 4·11 총선서 물갈이 욕구에 따라 도내 정치권이 초선들로 7명이나 바꿔졌다. 선출 당시만 해도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임기 2년차를 맞아 두각을 나타낸 국회의원이 없다. 전북 정치권은 숫자가 적어 다른 지역 의원들에 비해 두세 배 더 뛰어야 부족분을 메워 나갈 수 있다.야당의원은 원래 야성이 강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법이다. 점잔만 빼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국가예산 확보도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전북이 애를 먹는 이유는 야무진 국회의원이 없어서 그렇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의원이 단 한명만 있어도 국가예산 확보가 한결 수월해 질 수 있다. 기금운용본부 이전에 따른 말들이 많지만 이 문제도 똑똑한 의원 하나만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정부로부터 이행각서를 받아 두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어렵게 간다. 이 문제를 자칫 어설프게 대응했다간 LH처럼 될 수 있다. LH를 경남으로 빼앗긴 것을 교훈삼아 철저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만약 서울에 본사 형태의 지점이 개설되면 국민연금공단 이전은 기대할 게 없다.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판에 그나마 전북 정치권이 살 수 있는 길은 서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길 밖에 없다. 3선과 재선 각 2명이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우선 돼야 한다. 경험 많은 선배 의원들이 초선들을 잘 이끌고 나가야 지역이 강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각개약진하면 지역은 허당이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능력을 인정 받는다.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물밑에서 광역과 기초의원들을 물갈이 하려는 징후들이 감지된다. 내년 지선 때 충성심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물갈이를 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그런 의원일수록 국감성적이 초라하다. 지역구 관리 한답시고 광역·기초의원 줄이나 세우는 국회의원은 유권자가 더 잘 안다. 쥐 못 잡는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듯 중앙 정치 무대서 존재감 없는 국회의원은 한 번 더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3.11.06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