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고추는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식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담는데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요즘 널리 애용되는 떡볶이나 각종 찌개의 맛을 내는데도 필수품이다.또한 민간에서는 간장을 담근 뒤 장독속에 붉은 고추를 집어 넣었고, 아들을 낳으면 새끼줄에 붉은 고추와 숯을 걸어 악귀를 쫓았다.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널리 재배되며, 한해살이인 우리나라와 달리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 풀이다.고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임진왜란 후쯤으로 추정된다. 고추에 관한 최초 기록인 '지봉유설'(1614년 편찬)에는 "만초(蠻椒)는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 '왜겨자'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다른 문헌에는 중국에서 전래됐다고도 하고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 갔다는 문헌도 있다. 또 조선시대 어의 이시필(1657년∼1724년)의 '소문사설'에는 순창고추장의 제조법이 최초로 기록돼 있다.고추는 만초(蠻椒) 이외에도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왜초(倭椒), 랄가(辣茄), 당초(唐椒), 고초(苦椒) 등으로 불렸다.고추의 특징은 매운 맛인데 이는 캡사이신이라는 염기 성분 때문이다. 최근 매운 맛에 익숙치 않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이어트 효과가 알려지면서 인기 폭발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황산화(세포 노화방지), 항균, 진통, 스트레스 억제, 면역 증강, 가려움증 치료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매운 맛인 캡사이신이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상반된 연구도 있다.요즘 고추값이 심상치 않다. 여름 폭우와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고추가 썩고, 병들고, 절로 떨어져 수확량이 신통치 않아서다.'금초'라 불릴 정도다.지난 해 600g 1근에 6000원이면 살 수 있었으나 올해는 1만5000원을 넘어 2만 원에 육박한다. 그래서 고추장을 만드는 순창지역 장류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 순창전통고추장의 판매가는 1만8000원으로 이 중 고추성분이 1/3을 차지한다. 이를 원가로 환산하면 6000원 정도여서 고추장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하소연이다.그러나 정부는 고추값이 들먹이자 9월초께 값싼 중국산 고추를 대량방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농민들만 힘들어지게 생겼다./ 조상진 논설위원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의 두번째 방문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4억 6000만달러, 한화로 약 4조 5000억원 규모의 자원 개발에 합의했다고 한다. 수르길 가스전 개발과 가스 화학 플랜트 건설에 합의한것이다.우리나라의 지명을 보면 온(溫)자가 붙은곳에는 대부분 온천수가 났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온양(溫陽)과 금강산 온정리(溫井里)라든가 강화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에서도 따뜻한 온천수가 나왔던 것이다. 울진의 온정(溫井), 당진의 온동지(溫洞池)등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옛문헌에 의하면 탈나무도 또 풀섶도 없는 맨땅에서 몇달씩 연기를 품어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신라 진평왕(眞平王) 31년, 정월에 경주 동해안쪽에 있는 모지악(毛只岳)에서 폭 4보, 길이 8보, 깊이 5척의 별반 크지 않는 구덩이에서 불이 타기 시작하더니 비바람에 관계없이 연중 계속 타오르다가 10월에야 불길이 멎었다고 한다. 신라 태종때도 경주 토함산 기슭에서 3년간이나 땅이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경주의 동해안 일대인 포항, 울산, 울진 바다가까이 있는 땅이 불탄 기록이 빈번하게 나온다고 한다. 세종때 영해부(寧海府)에서 땅이 탔다는 기록과 더불어 성종(成宗) 14년에도 영해땅의 한 구덩이에서 밤과 낮으로 불이 뿜어졌다는 사실이 상세히 실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 불구덩이의 길이가 8척이고 폭이 20척인데 낮에는 연기만 나고 밤에는 불빛이 보였다고도 한다.조정에서는 내관(內官), 이효지(李孝智)를 보내 답사케했는데 그 불구덩이 둘레 수백보가 마치 온돌방처럼 달구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주의를 끄는것은 바다 가운데서도 불이 타올랐다는것이다. 경주 토함산 맞바레기, 문무왕이 호국룡(胡國龍)이 되어 묻혔다는 수중릉(水中陵)인 대왕암(大王癌)이 인조 15년에 불타올라 바위가 부서졌다고 한다.여기서 주목을 끄는것은 땅이나 바위가 탔다는 지점이 거의 포항, 울산, 경주 앞바다인 대륙붕 제6광구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발견돤것은 천연가스로 보는것이 타당할것이다. 앞으로도 지명(地名)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바람 끝이 달라졌다.제법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다.불을 넣고 홑이불이라도 덮어야 잠 잘 수 있다.어제가 가을로 깃드는 처서였다.'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이 있다.결실로 접어 드는 때라 비가 오면 흉작이 들기 때문이다.지난 여름은 여름이 실종되다시피 많은 비가 내렸다.정읍에 기록적인 420㎜의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를 겪었다.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따갑다.그래야 곡식이 영글고 고추도 말리고 옷도 말리고 책도 말릴 수 있다.농가월령가에서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曝灑)하소"라고 권하고 있다.포쇄는 바람에 쐐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한자 '처(處)'는 머물러 정지한다는 뜻이어서 곧 더위가 머무는 때가 처서다.농가월령가 7월령에도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쏘냐'하며 풀죽은 염(炎)장군을 조롱했다.지구온난화로 기후 변동이 심해 처서가 지나도 국지성 호우와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란 예보가 있다.워낙 비가 많이 내려 기청제(祈晴祭)까지 지내야 할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다.하늘이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끊이지 않고 자주 내려 따가운 햇볕이 그렇게도 그리웠다.햇볕은 생명이다.햇볕이 이렇게 귀한줄 미처 몰랐다.지금부터의 햇볕은 다른 때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주여,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성시켜,마지막 단맛이/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이하 생략.실로 지난 여름은 고통스러웠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로 서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장사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었다.김현승(金顯承)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생각난다.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이하 생략.지난 여름 비 맞아 지쳐버린 맘들을 이 가을 에 포쇄해서 비워 놓으면 어떨까.백성일주필/ 백성일 주필
문화 유적의 보고로 유명한 이집트나 이탈리아, 그리이스 같은 나라들을 방문하면 조상 덕에 먹고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소비하는 돈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또 관청에 등록된 자국의 관광안내인을 동반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도록 제도화시킴으로써 일자리와 소득창출 효과를 거두고 있다.중국도 죽은 사람이 산 사람 먹여 살리는 나라에 속한다. 5000년 역사 문화유적의 도시 시안(西安)엔 진시황 능과 진시황의 가상 지하궁전인 '진능지궁(秦陵地宮)', 진시황 능에서 1.5㎞ 떨어진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 있다.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 발견한 병마용 박물관에는 하루 3만명, 피크 때에는 5만명이 찾는다. 입장료도 3만원이나 된다. 훗날 진시황 능을 발굴하면 이 곳을 찾을 관광객도 부지기 수에 이를 것이다. 시안은 경주와 자매결연을, 시안의 한 중학교는 전주 완산중학교와 홈스테이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중국의 관광지 입장료는 비싼 편이다. 관광 가용경비가 100원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는 입장료가 10∼20원 꼴인데 비해 중국은 80∼90원이다.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드니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미약하다. 이러니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다.경기전(慶基殿)과 조경묘(肇慶廟), 조경단(肇慶壇)이 있는 전주는 조선 왕조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이 있는 곳이다.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태조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1410년(태종 10년)에 창건했다가 불에 탄 뒤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됐다. 면적이 49,590㎡에 이른다.경기전에 있는 조경묘(지방유형문화재 16호)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고, 전주 덕진 건지산에 있는 조경단(지방기념물 3호)은 전주 이씨의 시조 묘소다.전주시가 한옥마을의 대표적 문화재인 경기전 관람을 내년부터 유료화할 모양이다.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전주시민은 50% 할인)을 검토하고 있다. 관람료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영향이 문제다. 지역 상권에 미칠 파장도 있다.돈 주고 관람할 만한 게 있느냐는 논쟁은 접고서라도 관광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얄팍한 정책일 수 있다. 볼거리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한옥마을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것 같아 얄밉다./ 이경재 논설위원
교육에는 인성교육과 전문 지식교육으로 크게 나눌수 있다.그러나 이제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사실 학무모들이 이를원치도 않는다. 과거, 못살던 시절에는 점심 도시락을 못가지고 온 동료 학생이 있으면 같은반 학생들이 자기 도시락의 일부를 덜어서 나누어 주었던 인정도 있었다.이것이 약자를 위한 정의감이다.그러나 지금은 가난한 학생을 반 교실에서부터 왕따를 시키는것이다. 학원강사는 시험문제풀이 기술자들이고 EBS방송은 시험문제 정답찾기 공중파이다. 심리학자, 프로이드에 의하면 아이들은 아버지한테서는 이성(理性)과 절제를 배우고 어머니한테서는 감성(感性)을 배움으로써 하나의 균형잡힌 인격체가 될수있다고 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란 존재는 희미하고 엄마들의 위세가 당당하다.지나친 모성애(母性愛)가 자식에 대한 잘못된 과잉보호로 갈수가 있다.이땅의 엄마들의 과잉보호는 초등학교 조기유학을 낳았고, 심지어 대학 입시에 고교 내신 성적중, 봉사활동 성적이 좋아야한다고 하니까 자기 자녀는 학원에 보내놓고 어머니가 자녀대신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는것이다엄마들의 지나친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거친 언어사용을 낳게 하고도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펴면서 어느 학생이 말하길 "어떤 년이 이렇게 도시락을 쌓지?"라고 했다는데 이때 "어떤 년"은 자기 어머니를 빗대어 말한것이다. 요즈음 엄마들의 과잉보호의 저의를 본능적으로 자녀들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암사자는 자식을 훈련시킬때 자기 체구보다 작은 짐승을 추격하면 어미 사자가 뒤따라가 뒷발질로 낚아채 공중회전을 시켜버린다고 한다. 치사스럽게 굴지 말라는것이다. 그후 먹이를 못잡아 굶더라도 어미사자는 먹이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절제된 모정(母情)을 보여주는것이다.바로 사자의 교육법이다. 83년도에 대구 동물원에서 5년된 암사자가 자기를 잘 길러준 사육사를 물어죽인일은 과잉보호속에서 자란 아이가 가정폭력으로 부모에게 대드는 이치와도 비슷한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14~16세기 일본은 센고쿠(戰國)시대로, 막부(幕府)가 실권을 잃고 각 지방으로 분열된 시기였다. 일본 연안일대의 생활이 궁핍한 중소 무사나 농어민들은 해적이 되었다. 이들이 왜구(倭寇)로,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에서 주로 식량을 약탈했다.한반도에서의 활동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가 심했다. 이들은 선단을 이루어 연안마을을 습격했고 때론 내륙 깊숙이 쳐들어 오기도 했다. 그 중 고려 말 우왕 때가 가장 극심했다. 우왕 재위 14년간 침략 횟수는 무려 378회에 이르렀다.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던 것이다.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침략이 진포(鎭浦)해전이다. 이들은 우왕 6년(1380년), 지금의 군산과 서천 사이 금강일대에 500척의 배를 몰고 나타났다. 이들은 배를 밧줄로 엮어 병사들이 나누어 지키는 한편 육지로 올라가 약탈을 자행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이때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덮고 노략질한 곡식을 배에 실어 나르다가 땅에 버려진 쌀이 한 척(尺)이 넘었다"고 한다.다행이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火砲) 덕분에 적선은 한꺼번에 불타버렸다. 왜구들 역시 태반이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일부가 옥천으로 달아나 먼저 상륙한 왜구들과 합류했다. 다시 전열을 정비, 상주를 거쳐 함양에 집결, 남원까지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이에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 왜구 토벌작전에 나섰다. 양측은 운봉 넘어 황산 서북쪽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격전 끝에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두목으로 한 왜구를 물리쳤다.처음에는 왜구의 수가 고려군보다 10배가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 살아 남아 지리산으로 도망갔고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에 달했다. 이것이 황산대첩이다.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 오목대에 들러 종친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조선 창업의 뜻을 밝혔다.이곳 운봉읍 화수리에는 1577년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청일전쟁 때 일본이 이를 파괴했으나 정부가 1977년 새로 복원(사적 104호)했다.이를 기려 운봉애향회가 1986년부터 황산대첩축제를 벌이고 있다. 광복절에 열리는 이 축제는 당시 전쟁을 현장감있게 재현, 일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조상진 논설위원
독도는 구호나 행사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친한파(親韓派,) 일본 교수는 독도문제에 대해 한국이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사용하는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쓰지말도록 충고한 바도 있다.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빼고 당당하게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라는 것이다.갑작스런 정치인의 독도 방문도 독도 해법에 별 도움이 되지않는다. 이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재미교포 박사 한 분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군국주의 부활로 규정하고 전세계가 합심하여 일본의 야욕을 저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그 서한속에는 '독도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을 정복하는 것이 아시아를 정복하는 것이며 아시아의 정복이 러시아의 정복의 길이고 러시아의 정복이 미국을 정복하는 것이라는 게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정한론(征韓論)이다'라는 주장이 실렸다는 것이다.일본은 전통적으로 국내 문제의 해법을 외국 침략으로부터 찾았다. 백년간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에게 오랫동안 충성을 바친 수많은 무사들에 대한 토지분급 문제였다. 분급해 줄 토지가 절대 부족하자 이것을 해결키 위해 조선 침략을 서둘렀던 것이다.아시아의 종주국, 중국이 19세기 초에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다. 중국의 참패는 그 당시 일본 막부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후 일본은 미국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미일 화친조약'을 맺은후 산업화된 서방의 개방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의 한국침략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이 일본 국학자 길전송음(吉田松陰), 일본말로는 요시다 쇼닌이다.요시다 쇼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숨을 거둔 '이토오 히로부미'다. 요시다 쇼닌은 그의 외정론(外征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북(東北)블럭은 지맥(支脈)이 접속해서 통합할 수 있다. 삼한(三韓), 임나(任那) 등은 지맥이 접속되어 있지 않다하더라도 형세가 대치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들이 올 것이다.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와서 예측할 수 없는 걱정을 야기할 것이다." 정한론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전북에서 여당인 공화당 표가 많이 나왔다. 박정권 시절에는 여촌야도(與村野都)현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노태우와 3김이 대통령선거에서 세대결을 벌이면서부터 지역감정이 악화돼 경상도에서는 민주당이 전라도에서는 한나라당 표가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20여년이 지나면서 고착됐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도 이명박 후보가 전북에서 한 자릿수 밖에 표를 얻지 못했다.그간 역대 대통령선거는 물론 총선서도 지역감정 선거가 실시돼 특정당이 독식하는 싹쓸이 구도가 만들어졌다.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호남에서는 누구나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에 당선 되는 것은 떼논 당상이었다. 영남에서도 비슷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 때도 똑같았다. 다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한나라당으로 지사 선거에 출마해 18.2%라는 기록을 세웠다.그 때 그가 두 자릿수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일당 독주 체제에 대한 반감과 남성고 동문들의 헌신적인 선거운동, 그리고 장관 했다는 경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표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껏 큰 틀에서 보면 구조적으로 전북에서 한나라당 표가 나올 수 없다. 지역주의를 깔고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으로 출마할 사람 조차 없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그간 소신을 갖고 전북에서 한나라당을 해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면면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 보고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유·불리를 떠나 도내에서 한나라당은 중요하다. 집권 여당인 만큼 전북 발전을 위해 중앙과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로 구실을 할 마땅한 인물이 없어 보인다. 중앙당에서 워낙 버린 자식으로 취급해와 괜찮은 인물들이 한나라당에 없기 때문이다.정치발전을 위해 지금 같은 정치구도는 깨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나라 중앙당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나라당 표가 전북에서 안 나왔다고 무작정 포기하지 말고 새롭게 인재를 구해서 판을 짜야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적을 받고 홍준표 대표가 마지못해 최고위원을 호남으로 배정하는 식처럼 가면 안된다. 중앙당은 경선 규칙을 만들기에 앞서 도당위원장에 뜻을 둔 3~4명이 과연 지역에서 신망을 얻는 사람인지부터 가려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한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중국 관광지는 대략 10여곳쯤 된다. 북경 상해 항주 소주 서안 청도 대련 만리장성 계림 황산 해난도 백두산 등이 그런 곳들이다. 최근엔 사천성의 구체구와 황룡이란 관광지가 '뜨고' 있다.구체구는 해발 3000m가 넘는 산상 7.5Km의 계곡에 폭포와 수정처럼 맑은 크고 작은 호수가 이어진 원시비경 지역이다. 티베트족 9개 마을이 있다 해서 구체구(Nine-Village Valleys)다. 황룡은 3400여개의 에머랄드 빛 석회암 연못의 비경을 자랑한다. 과장되긴 했지만 이승의 선경, '동화속 세계'로 불린다. 유네스코가 1992년 세계자연유산으로, 1997년에는 세계생물권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굳이 두 관광지를 꺼낸 건 놀라운 관광객 숫자 때문이다. 구체구를 찾는 관광객이 하루 3만명에 이른다. 입장료도 1인당 6만원이니 적은 액수는 아니다. 이 곳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건 중국인들의 경우 5년 전, 한국인들은 3년 쯤 전부터라고 한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마다 이런 규모로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경제적 효과를 헤아리면 그들이 부럽다.중국의 관광소비와 구매력은 왕성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을 주목하는 것도 그들의 관광소비와 구매력 때문이다. 13억 인구의 상위 5%인 6500만 명의 소비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부자들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이다.에어버스사의 A-380은 '하늘을 나는 5성급 호텔'이라는 별칭이 붙은 최신형 비행기다. 한번에 550명의 승객을 태우고 날 수 있다. 이 비행기의 아시아 첫 비행지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 구매력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다.단적인 사례 하나.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 16명이 쇼핑한 액수는 4억6000만 원 어치였다. 루비 화장품 홍삼 등이 주류였고 허름한 옷차림의 한 70대 노인은 부인이 롤렉스시계를 만지작거리자 선물하겠다며 스스럼 없이 카드로 결재했다. 이들을 데리고 온 조선족 안내원이 귀뜸한 내용이다.전북의 '새만금 관광'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대규모 중국 관광객 유치 프로젝트인 중국특화벨트사업도 그 일환이다. 컨셉은 좋지만 중국이 만만한 곳은 아니다. 그들의 부(富)와 구매력을 활용할 인프라, 그것이 문제다. 우리가 아닌 그들 눈높이의 인프라 구축이 과제다. / 이경재 논설위원
축구 시합도중에 갑자기 운동장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려 경기를 방해하는 훌리건들이 있었는데 특히, 영국에서 이런 현상이 심했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의 이미지와 흘리건의 난동은 모순의 극치였다. 이번 영국의 런던의 폭동사건도 월리엄 세익스피어를 낳았고 세계 최초의 의회정치의 산실(産室)이라는 이미지를 일시에 파괴시킨 의아한 장면이었다.영국은 지금도 전통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입헌 공화국이다.영국은 엄연히 민주 국가 이면서도 귀족이 있고 계급이 있다. 상류층, 중산층, 그리고 하류층이 있는데 계급간의 장벽이 심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상원은 '귀족원(House of Lord)'로 불리워지고 상당수는 지금도 세습제이다. 하원(下院)의 명칭은 '평민회(House of Commmon)'로써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영국의 상류층이란 영국 욍족과 귀족을 말하고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이라는 벼슬을 가진 사람들로써 과거, 전쟁에서 무공(武功)을 세운 무인들의 후손들로써 직업이 없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토(封土) 임대료로 생활한다. 중산층은 전통적으로 농부, 상공인, 기술자들을 가르키고 하류층은 노동자들을 지칭한다.재미있는것은 영어표현에도 계층간의 차이가 있다는것이다. 사용하는 영어를 보면 어느계층에 속해있는 사람인가도 알수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화장실'이라는 영어, 'Toilet'는 하류층의 언어이고 중류층은 '워싱룸 (Washing room)', 상류층은 '루 (Loo)'또는 '레버토리(Lavatory)'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귀족층일수록 은유법을 즐겨써 화장실을 가고싶다고 할때도 '자연의 부름이 있다"는 뜻으로 'Call for nature'라고 말한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막말 풍조와는 대조적이다. 교육정책도 계급에따라 차별적이다. 공립학교에 한해서는 무상교육이지만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다르다. 상류층은 막대한 등록금을 내는 '이튼스쿨'에 간다고 한다.1960년대에는 하류층은 대학에도 갈수도 없었다고 한다. 영국의 하류층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이 없다고 한다.그들을 위해 주택문제와 최저 생활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의 런던 빈민지구의 폭동사건은 그들의 계층의식에 변화가 있다는것인가/ 장세균 논설위원
"골골마다 철철이 꽃이 피어도/ 우리는 무궁화를 섬기는 겨레// 무궁화 이 나라에 다시 피는데/ 소리소리 오랑캐 몰려들 온다"일제때 독립군이 부른 '무궁화'라는 노래중 일부다. 당시 독립군이 부른 노래 가사 중에는 거의 예외없이 무궁화가 들어갔다. 태극기와 더불어 무궁화는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일제때 무궁화는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 진딧물이 많이 끼는 지저분한 꽃이라 비하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이 먼다"고 가르쳤다. 또 무궁화를 캐어 오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고 그 자리에 사쿠라를 심도록 했다. 몇 백년씩 사는 장수식물임에도 일제 때 거의 뽑혀버려 큰 나무가 별로 없는 이유다.무궁화(無窮花)는 한자로 근화(槿花) 목근(木槿) 순화(蕣花) 반리화(울타리꽃) 등으로 불렸다.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다. 중국과 인도가 원산지로 세계적으로 250여 종, 국내에는 200여 종이 자란다.우리나라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산해경(山海經)이란 지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 전 8~3세기에 편찬된 이 책에는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무궁화는 법률적으로 공식 국화(國花)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그렇게 여겨져 왔다. 그리고 정부는 1963년 '태극문양을 무궁화 꽃잎에 감싸고 있는 형태'를 나라 문장으로 규정했다. 국가의 주요문서나 공무원 임명장, 훈장 등에 이를 사용하고 있다.이어 1990년에는 다양한 무궁화 품종 중에 꽃잎 중앙에 붉은 꽃심이 있는 단심계(丹心系) 홑꽃 7종을 보급품종으로 지정했다. 이후 20년 동안 공한지, 도로변 가로수나 울타리목으로 전국 3525곳에 307만 그루를 심었다.이어 산림청에서는 2008년 무궁화 메카도시로 강원도 홍천, 테마도시로 전북 완주와 충남 보령을 선정했다.무궁화 특화도시인 완주군은 8-15일 고산휴양림에서 '내 마음에 지지않는 꽃 무궁화'를 주제로 다양한 '나라꽃 무궁화 전국축제'를 열고 있다. 휴양림 일대 11만4000㎡에 무궁화 테마식물원을 조성한 것이다. 민족과 더불어 영광과 수난을 나눠온 무궁화가 선양되는 기회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독도문제가 뜨겁다. 전 세계 지도 제작사의 77% 정도가 동해(東海)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외국인들은 이렇게 잘못 만들어진 세계 지도를 보며 영토에 대한 그릇된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미국조차 '분쟁지역에 대해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명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일본을 편들고 있는 상황이다.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을 원망하면서 이를 반미(反美)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면 이것 역시도 유치한 발상일 뿐이다. 국가간의 관계란 원래가 국익(國益)의 관점에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수도 있기에 그렇다. 아마 미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2년 먼저 맺은 '미·일 안전보장 조약'이 우리가 미국과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 조약'보다 밀착 강도(强度)가 더 센 조약일 것이다.일본은 이 조약의 덕분으로 미국 '핵우산'의 보호 밑에 경제건설에만 주력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독도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미국은 일본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 제 2차대전 종료전에 있었던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의 미국·영국·중국 영수들의 회담과, 뒤이은 포츠담 회담도 독도에 대한 확실한 국적조항을 다루지 않았다.2차 대전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48개국을 상대로 '대일 평화조약'을 맺기 전에 미국은 일본·한국영토에 관한 초안 작성이 급선무였다. 1차에서 5차까지 초안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분명히 명시되었으나 6차 초안에서는 갑자기 일본 영토로 둔갑되었는데 미국 정부의 일본 정치고문관 월리엄 시볼드의 일본 편들기 장난이 개입되었던것이다.다시 7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한국 영토로 복귀되었다가 8차, 9차 초안에서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기재되었다. 10차 초안에서는 유엔 총회의 결의를 들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했다. 의견을 달리했던 영국과 미국은 최종적인 '영·미 합동초안'을 작성했는데 여기에 독도의 귀속문제를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미국의 입김이 암암리에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노골적으로 편을 든 것은 아니지만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인정해주지 않은 것 자체가 은근히 일본편을 든 것이나 다름없다./ 장세균 논설위원
97년 동계U대회와 2002년 월드컵 조별 예선 경기를 치른 이후 전북에서는 별다른 국제대회가 안 열렸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는 스포츠에 있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6번째 나라가 되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대회·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경기가 열리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국가별로 사활을 걸고 유치 경쟁에 나선다.지금 대구 달구벌이 27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을 앞두고 들썩이고 있다. 대구시는 이 대회를 앞두고 몇 년 전부터 경기장을 비롯 숙박시설·컨벤션센터·도로망 구축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 도시 면모를 바꿨다. 건설경기 유발로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대구 시민들이 글로벌 시민이 됐다는 자신감을 가지면서 도시가 활력을 되찾았다. 경기가 열리는 동안 대구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넘쳐날 것이다.강원도 평창은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에 명성을 얻었다. 산골 평창이 전 세계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글로벌 도시가 됐다. 인천공항서 65분만에 평창에 도착할 수 있는 고속철이 깔리면 평창은 상전벽해가 된다. 평창은 그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알펜시아를 건설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해 겨울스포츠의 메카가 되었다. 강원도는 이제 못사는 지역이 아닌 희망이 넘쳐나는 고장이 되었다.여수(麗水)는 이제야 이름값을 하게 됐다. 내년 5월12일부터 8월12일까지 세계박람회가 열린다. 지난해 상하이엑스포를 통해 얼마나 엑스포가 지구촌인들의 큰 잔치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여수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나폴리, 시드니 같은 세계 3대 미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예전 같으면 전국체전만 열려도 도시가 달라지는데 국제경기를 치르고 나면 상상을 초월한다. 잠자고 나니까 스타가 되었다는 말처럼 여수는 스타도시의 반열에 올랐다.전북은 새만금 도로 개통 이후에 1천만명이 다녀갔다고 호들갑을 떤다. 대부분 차타고 휑 지나 가버려 지역경제에는 큰 도움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전북은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인들이 찾을 수 있는 대형 이벤트를 개최해야 한다. 김진선 전 강원지사처럼 통 크게 밀어붙여야 한다. 정부 여당과 소통이 잘 안되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그 뭔가를 찾아야 한다. 그간 전북은 너무 조용한 아침바다였다./ 백성일 주필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될 당시엔 주민 기대가 컸다. 당시 반쪽짜리 지방자치였지만 굴절된 사안들이 바로잡히고 주민들이 주인 대접받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관선시대의 폐해가 너무 컸던 반작용도 있다. 인사· 예산· 정책 등이 중앙정부 잣대로 좌지우지됐고 지역의 의견은 아예 무시되기 일쑤였다. 지방의 관리들은 목줄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만 쳐다보고 일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지방자치법이 새롭게 제정되면서 채택한 체제는 기관대립형이다. 기획 정책 예산 인사 등 자치단체의 업무는 집행부의 고유 업무로 못박고, 지방의회는 집행부 업무에 대해 견제하도록 기능을 조정해 놓았다. 따라서 감시 견제기능은 지방의회의 고유 업무이면서 가장 큰 권한이다. 사무조사권과 예산심의권이 대표적인 수단인데 집행부는 이 두 권한 때문에 쩔쩔 매기도 하고 지방의원을 '상전'으로 모시기도 한다.지방의회 부활 당시 지방의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의회경시였다. 걸핏하면 이 풍조를 문제 삼았다. 무지하거나 권위주의적인 자신들은 탓하지 않고 집행부 간부들을 닥달했다. 간부 군기를 잡기 위해 고의로 단체장을 역공하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는 기자들 앞에서 도청 국장한테 재털이 심부름을 시키는 일도 있었다. 해외에 나가면 수행 공무원은 포터로 불렸다. 의원 짐을 대신 짊어지고 저자세로 수발하는 그들을 기자들이 그렇게 불렀다.격세지감. 익산시 공무원 노조가 익산시의회를 향해 눈을 치켜 떴다. 단초는 일부 시의원의 공무원 무시행태와 강압적인 태도를 노조가 지적한 데서 비롯됐다. 이를 두고 시의회가 발끈, 공무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나서자 두 기관이 주먹을 쥐고 있는 상태다. 시의회는 어제도 성명을 내고 "사과하라."고 경고했지만 노조는 "고압적인 태도는 놔두고 의회입장만 내세운다."며 유감이라고 맞받았다.예나 지금이나 그놈의 태도가 문제다. 할 일이 많은데 태도를 놓고 싸우는 건 볼썽 사납다. 하지만 정치서비스를 받는 주민한테는 좋은 일이다. 집행부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될테니까 말이다. 의회-집행부가 초록관계라면 20년 전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싸움은 말리라 했지만 이런 싸움은 피 터지게 계속 하는 게 낫다./ 이경재 논설위원
미국에서 정자기증을 통해 인공수정이 본격화 된 지 20년이 지났다. 미국 시사주간지 슬레이트는 인공수정이 합법화 된 후 매년 3만에서 5만명의 아이들이 수태되어 태어난다고 한다.남자가 자기의 정자를 수태를 위해 다른 여자에게 기증하는 사람을 순수 우리말로는 '씨내리'라 한다. 반대로 여자가 임신을 못할 경우, 대신 남자의 정자를 받아 임신해주는 여자를 우리말로는 '씨받이'라 한다. 씨내리보다는 씨받이라는 말이 많이 통용된 것을 보면 조선사회에 씨내리 보다는 씨받이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우리 한국의 전통적 대리모인 '씨받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권위있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타기도 했었다. 조선사회에서 장손 며느리가 아기를 못 낳을 때는 이 씨받이가 등장하는 데 대부분 씨받이를 직업적으로 하는 여인이나 가난한 집 딸, 또는 종의 딸을 들여와 합방시켜 핏줄을 잇게 하기도 했다. 씨받이와의 합방날짜가 정해지면 저녁에 장정 몇명이 여자집에 들이닥쳐 이 씨받이 여자의 눈을 가리고 자루에 넣거나 업고 가는데 그 이유는 씨받을 집이 어느 고을 어느 가문인지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이런식으로 해서 남자아이를 낳아주면 입마개쌀이라 하여 쌀 석섬을 보너스식으로 더 받는다고 했다. 만일 딸을 낳았을 때는 씨받이 부인이 양육해야 했는데 그 양육비조로 논밭 서너 마지기를 사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정자를 제공했던 한 남자에게서 129명이 탄생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이제는 남녀 합방의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인공수정의 발달로 인해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을 주게 되었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은 독신녀에게는 새로운 복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발달은 아기의 정체성 문제를 제공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갑을'부부가 아기가 없자 '병'이라는 남자의 정자를 '정'이라는 여자의 난자와 인공수정을 시킨후 '하'라는 여자의 자궁에 착상시켜 10개월 후 아기를 낳았을 경우 그 아이의 법률적 부모와 생물학적 부모, 그리고 낳은 어머니가 서로 달라 정체성의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전통적 가족 개념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장세균 논설위원
영원한'사랑의 지침서'인 춘향가는 서울서 내려온 이도령이 남원의 경치를 구경하는데서 시작한다. 나귀 안장에 올라 방자에게 묻는 것이다."이 애 방자야.""예.""너희 고을에 볼만한 경치가 있겠느냐?""소인의 고을에 별반 경치 없사오나 광한루라 하는데가 삼남 제일의 누각이라 하옵니다.""광한루가 있다면 오작교도 있겠구나.""오작교도 있거니와 누 옆에 영주각과 승사각이 좋사옵니다.""이 애, 그러면 남원이 곧 신선 사는 데로구나. 오늘 광한루 구경 가자."(정정렬 바디)여기서 광한루(廣寒樓·보물 제281호)는 삼남(三南), 즉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 제일 가는 누각으로 묘사되고 있다.이어 이도령은 광한루에서 좋은 경치를 완상하며 술 두석잔 마신다. 곧 취흥이 올라 춘향 만날 시를 짓는다. '다리 이름이 오작이니 신선이 놀던 다리요(橋名烏鵲仙人橋)/ 누각 이름 광한이니 옥경루인가 하노라(樓號廣寒玉京樓)./ 묻노니 전생의 직녀가 그 누군고(借問前生誰織女)/ 알겠노라! 오늘의 견우는 나로구나(知應今日我牽牛).'여기서 옥경루는 하늘나라의 옥황상제가 산다는 누각이다.춘향가는 숙종(재위 1674-1720) 즉위 초 얘기다. 그러나 광한루는 춘향가의 배경이 되기 훨씬 전부터 절경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초 광한루는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돼 왔을 때 광통루(廣通樓)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겼던 곳이다. 이후 세조 때 정인지가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 따 광한루라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38년 다시 지었다.광한루에는 내노라하는 시인 묵객들의 한시 80여 편이 걸려 있어 조선 최고의 사교장이었음 말해준다. 광한루 앞에는 연못이 있고 신선이 사는 곳으로 알려진 3개의 섬이 있다. 봉래(蓬萊) 방장(方丈), 두 섬에는 각각 백일홍과 대나무를 심고 영주(瀛州) 섬에는 완월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연못은 전라관찰사 정철이 확장한 것으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3000여 마리의 토종 및 비단잉어가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요즘 광한루원은 TV드라마 '공주의 남자'촬영지로 각광 받고 있다. 또 남원시는 수문장 이벤트, 사랑의 언약판, 신관사또 부임행차 등 다양한 행사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풍류와 넉넉한 여유 공간으로 재인식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미국의 교육학자였던 캔텔은 그 나라의 식사패턴과 교육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많이 먹는 대식가들인데 독일의 학교는 대량의 지식을 축적시키고 그 지식들이 똑같이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친다. 못다 가르친 부분은 주석(註釋)을 달아 지식을 더 첨부시킨다.프랑스 사람들은 미식가(美食家)로 알려져 있다. 음식 맛을 식별하는 예민한 미각으로 식도락(食道樂)을 즐긴다.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까다롭게 주문을 하고 그 요리를 천천히 씹으면서 맛볼 것은 다 맛보는 것이다.이런 식의 식사는 당연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프랑스 학교는 많은 지식을 가르치기 보다는 생각하는 법, 발상(發想)법, 사상의 깊이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명철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시한다.영국인의 식사는 유럽의 많은 나라 가운데서도 거칠고 맛없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은 음식 맛을 즐기기 위해 먹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방편으로 먹기 때문에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몸을 튼튼히 하는 교육을 강조하게 되고 스포츠가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 된다.대체적으로 영국의 식사문화를 계승한 미국도 음식맛에 중점을 크게 두지 않는다.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이 식사라고 본다. 다만 영국의 식사보다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의 학교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선택과목을 주어 학생 스스로가 칼로리 음식을 선택해서 먹듯이 공부도 그렇게 하게 한다. 적정한 칼로리가 필요하듯 공부의 양도 많지 않다.한국인의 식사패턴은 일회(一回) 완결형이다. 중국이나 서양의 식사처럼 주스가 나오고 그 다음에 수프, 야채가 나오고 고기가 나오는 식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한 상에다 차린다.한국 학교는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지식교육에서부터 인성교육, 도덕교육까지 모든 것을 포함시킨다. 한국의 식사는 잡식성이다. 갖가지 채소, 생선, 육류까지다. 한국의 학교 교육 역시도 수강 과목수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20여년간 한나라당은 전북에서 찬밥 신세였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나 현재 이명박 정권 때도 집권 여당이지만 야당이나 다를바 없다. 지역정서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한나라당으로는 선출직 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으로 강현욱 전지사가 군산서 국회의원이 됐고 이덕용 부안애향운동본부장이 부안서 도의원 된 것 말고는 없다. 도당 사무처장을 지낸 김경안씨나 이계숙씨는 비례대표로 도의원을 했거나 하고 있다.그간 지역에서 한나라 당적으로 출마한 후보들은 거의가 한 자릿수 득표에 그쳤다. 민주당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서 정운천씨가 18.2%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마의 두 자릿수를 넘었다. MB도 대선 때 한 자릿수에 그쳤다. 도내서 한나라당 후보로 두 자릿수 득표를 한 것은 기적이다. 그 만큼 전북에서 한나라당으로 표얻기가 어렵다.정운천씨가 놀랍게도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일당 독주에 식상한 사람들이 그에게 표를 줬기 때문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전주에서 태기표 전 정무부지사, 전희재 전 행정부지사가 출마했으나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이 정도 학·경력이면 두 자릿수가 가능할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결과는 아니었다. 이처럼 전북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표를 얻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 없다.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또 지역주의 선거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이제는 지역감정 불식을 위해 한나라당 후보에도 표를 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 전북도당과 당협을 이끄는 면모를 보면 아니올시다다. 물론 당협위원장 등은 아니라고 반발할 수 있다. '자신들이 척박한 토양속에서 그나마 당을 지키고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게 아니다. 도내서 한나라당 한답시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갖고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 보고 누가 표를 찍겠느냐는 것이다. 유·불리만 따져 이합집산하는 정치꾼들 정도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전대표가 대선 주자 중 선두 주자로 달리자 마치 부나비 마냥 몰려 들고 있다. 지역주의를 경계하는 일부 도민들은 "한나라당 중앙당에서 전북을 포기하는 사석작전을 쓸게 아니라 지역에서 표를 모을 수 있는 인물부터 찾아서 내놓는게 더 급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백성일 주필
한나라당 지도부의 호남 발언을 되새기면 허허롭다. 지난 2008년 9월 지역 민생탐방 차 전북에 들렀던 박희태 대표는 "호남벌에서 언제 금배지를 한번 수확할까 하면서 왔다. 태산도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구애작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로부터 꼭 1년 뒤, 정몽준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첫 지방방문 행선지로 호남을 택했다. 그는 광주지역 당직자 간담회에서 "우리가 호남에서 사랑 받으려면 이곳 말처럼 '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2008년 4월 MB 측근으로 당내 소장파 그룹을 이끌었던 정두언 최고위원은 쓴소리를 날렸다. "당이 선거때만 와서 지지를 호소할 게 아니라 평소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 (지지층이 적은 호남지역에)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해야 하는데 그렇게들 안하더라."고 털어놓았다.호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역설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호남에서 한나라당 당원으로 일하는 것은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지도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욕을 다져왔다.그런 탓일까. 변화의 조짐도 있었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때 정운천 한나라당 후보가 얻은 18.2%의 지지율은 한나라당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석패율제가 시행되면 내년 4.11총선에서 적어도 3∼4석은 건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한나라당 사람들은 지금 신발끈을 매만지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느닷없이 '호남배제론'이 튀어 나왔다. 홍준표 대표는 호남과 충청에 안배하던 지명직 최고위원 두자리를 모두 충청에 주겠다고 공언했다. 표가 나오지 않는 호남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치인도 아마 없을 것이다.전국을 챙겨야 할 집권 여당 대표의 생각 치고는 너무 계산적이다. 당 차원에서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 호남이 배제되는 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강정책에도 어긋나는 독선이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은 '이제 구각을 깨고…지역주의에 안주하지 않는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난다'고 적고 있지 않던가.홍 대표의 발언은 어르고 달래도 모자랄 판에 찬물을 끼얹고, 이제 막 틔우려던 싹을 짓뭉갠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재고해야 옳다./ 이경재 논설위원
지금까지는 개인의 주소를 지번(地番)으로 표시했으나 이제부터는 도로명 위주로 표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불교의 일부 단체 ,그리고 우리땅 이름 지키기 모임 등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다.지명은 그 지역에 얽힌 역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지명은 한마디로 살아 숨쉬는 향토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리의 이정표나 관공서 서류에는 모두가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어 지명의 역사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한자가 오랫동안 추방되다보니 우리말의 어원도 모르고 우리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영어가 범람하다보니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어느날 갑자기 '주민센터'로 둔갑되어 국적 불명의 혼합어가 되었다. 한글세대 공무원들의 어쭙잖은 발상이라고 본다.미국의 지명을 보면 인디언의 말과 관련이 깊다. 뒤늦게나마 기독교적 양심의 발로로 인디언 언어를 붙여주는 아량을 베풀었던것 같다. 서쪽에 있는 오레곤(OREGON)주는 인디언말로는 '콜럼비아 강'을 뜻한다. 아이다호(IDAHO)주라는 이름은 인디언말인 'E Dah Hoe'에서 나왔다. 와이오밍(WYOMING)주의 이름은 Sioux 인디언말의 '대평원'을 뜻한다. 네브라스카(NEBRASKA)주의 이름은 Oto 인디언 말로 '잔잔한 물결'이라는 뜻이다. 그 지역 인디언 부족의 말을 붙여준 것이다.전주의 경우, 팔달로(八達路)는 공수내다리 부근에서 싸전다리를 지나 충경로 사거리 금암광장까지의 길을 말한다. 동서남북으로 길이 잘뚫렸다는 뜻의 사통팔달(四通八達)을 줄여서 붙여진 것이다. 진북로(鎭北路)라는 이름은 전주의 기운이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진북이라고 붙여진 것이다. 태조로(太祖路)는 한옥마을 중심도로인데 태조 이성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어진(御眞)길'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는 경기전과 관계가 있는 도로이름이다. 향교(鄕校)길은 전주 향교가 있는 도로 이름이다. 서원로(書院路)는 신흥학교 뒷산너머에 있는 화산서원에서 유래된 말이다. 관선길은 관선암(觀善菴)과 관련이 있다. 순수 한글 지명이 아닌 다른 지명은 반드시 한자와 병기(倂記)해 주면 쉽사리 지명의 뜻을 이해할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