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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복지 사각지대 - 조상진

# 사례1= 익산시 복지기동반은 공공 화장실과 공원 등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A씨(26·남)와 B씨(26·여)에 대한 신고를 접수했다. 이들은 장애인 부부로, A씨는 형제들로부터 구타와 임금착취 등 가정 내 불화를 당했으며 B씨는 구직이 여의치 않았다. 이들은 월세가 체납되면서 지난 2월 집을 나와 찜질방과 여인숙을 전전하다 노숙자의 길을 걷게 됐다. 발견 당시 B씨는 임신 5개월이었으나 그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로 심신이 불안한 상태였다.# 사례2= C씨(남·45·정신장애 3급)는 김제 터미널 근처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다 식당 관계자가 신고했다. 조사단은 C씨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거처가 불분명한데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한 상태에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등 긴급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이들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달 23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실시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보호를 위한 전국 일제조사'에 따라 발굴된 케이스다.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끝에 전국적으로 1만2135건에 2만3669명이 발굴되었다.발굴된 소외계층은 노인이 36.6%로 가장 많았고 장애인, 어린이 순이었다. 또 발굴 장소는 창고 및 컨테이너, 여관·여인숙, 교각, 공원, 비닐하우스, 토굴 등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사회에 벼랑 끝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케 해준다.이번 조사의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TV에서 '화장실 3남매'라는 방송을 본 후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보건복지부는 부랴부랴 TF팀을 꾸리고 조사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지금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무상급식에 이어 반값 대학등록금에 대한 해법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 있던 한나라당이 더 나서는 형국이다.하지만 TV를 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호들갑을 떠는 복지정책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를 일이다.나아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이 400만 명을 넘는다. 수급권자 157만 명의 2.5배를 웃도는 숫자다. 그물망 복지는 커녕 구멍이 숭숭 난 복지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조상진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7.01 23:02

[오목대] 장수비결 - 장세균

얼마 전에 전북 장수군(長水郡)이 장수(長壽)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수는 역사적으로 의기(義妓), 논개(論介)가 태어난곳으로도 유명하고 물길이 길다 해서 장수라는 지역 이름을 붙였는데 이제는 명(命 )도 길어 장수촌(長壽村)도 되었다.주로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는 농촌에 사는 사람이 장수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는 가끔, 화제의 뉴스가 되는 장수지역 즉 장수촌(長壽村)이 있다. 러시아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그루지아 지방, 안데스 산맥의 비르카반바, 파키스탄의 훈자, 프랑스의 브르타뉴, 일본의 은기도(隱岐島) 등이다.많은 학자들이 장수촌의 장수조건을 조사하고 있는데 장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첫째, 장수하는 집안에서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장수인자가 유전되는 것이다. 둘째는 장수하는 사람의 80%가 여자라는 점이다. 여자의 생활 적응력이 남자보다는 강하다는 뜻도 된다. 셋째는 장수하는 사람은 거의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은 적이 있다. 결혼생활이 장수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요즈음 한국 젊은층의 결혼기피 현상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반농반어(半農半漁) 생활, 즉 반절은 농사를 짓고 반절은 고기를 직접 잡는 생활을 한다는 것인데 그만큼 자연을 가까이 하고 녹색공간에서 산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는 쉴 새 없이 몸을 놀려 자질구레한 일이라도 한다는 것이다.여섯 번째는 생활정도가 중하(中下)나 하상(下上)이다. 경제적 부(富)가 장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주식(主食)이 감자, 야채, 두부, 돼지고기, 어류 등으로 적게 먹는 소식(小食)이고 조촐한 조식(粗食)이다. 식단(食單)이 화려하지 않다. 요즈음 어린이들의 비만은 소식과 조식의 역행에서 비롯된다.여덟 번째는 술, 담배, 차(茶), 설탕을 먹고 안먹고는 장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홉 번째는 스트레스를 받고 안받고도 장수요인과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열 번째는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한 번째는 단위체중당 산소흡입량, 즉 기초대사량이 적을수록 장수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은 바로 기초대사량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30 23:02

[오목대] 약식동원(藥食同源) - 백성일

예나 지금이나 무병장수하길 바란다. 9988234란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노인들이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본심과 다른 거짓말이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무병장수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백세인 시대가 왔다. 장수 한 노인들의 섭생은 소식에다가 채식을 주로 한다.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말이 있다. 음식이 약이라는 말이다. 한식에는 약식동원 사상과 음양오행의 원리가 조화롭게 담겨져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결론적으로 한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 한국인은 장 길이가 길어 채식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를 잘 지키지 않고 서구 사람들처럼 육류를 과다하게 섭취하는 바람에 성인병과 대장암 등 몹쓸병이 많이 생겨났다.쾌식 쾌숙 쾌변이 건강의 기본 원리다. 먹는 것은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요즘 같으면 된장에다가 풋고추와 양파 쑥갓 오이 그리고 상추를 보리밥에다 싸서 쌈으로 먹으면 제격이다. 초여름의 별미 중 하나가 부추전이다. 부추를 푸짐하게 썰어 오징어까지 넣어 부친 해물 부추전이면 더욱 좋다. 여기에 막걸리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부추는 한자로 '구자'라고 쓰는데 땅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이러한 음식들을 먹으면 그게 보약이다.식색동원(食色同源)이란 말도 있다. 식이 강하면 색도 강하기 마련이다. 궁궐에서는 임금님의 정력을 보강하기 위해 검은색 식재료를 많이 썼다. 검은 콩, 검은 깨, 오골계, 흑염소에다 검정소 등등 검은색 음식을 많이 올렸다. 소고기도 토종 검정소만 썼다고 한다. 검은색은 오장 가운데 신장에 주로 작용한다. 한의학에서는 신장은 콩팥 뿐 아니라 고환을 포함한 비뇨생식기 전부와 성 호르몬을 관장하는 원기의 근본으로 파악한다.현대인들은 임금님 수라상을 능가할 정도로 잘 먹고 산다. 하지만 지금 음식들이 거의 화학조미료와 달게 음식을 만들어 감칠 맛이 덜하다. 패스트 푸드는 음식이라기 보다는 가축 사료나 다를 바 없다.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으면 성격도 급하고 포악해진다. 그래서 못살 때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그 밥상에 올라왔던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 오늘부터 옛날 밥상으로 돌아가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 백성일 주필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29 23:02

[오목대] 이빨 빠진 지방의회 - 이경재

지방자치는 '일정한 지역의 어떤 일을 지역주민이나 그 대표자를 통해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학교'로 부른다.영국의 처칠 수상은 "민주주의가 가장 나쁜 제도인데 그것보다 더 좋은 제도가 없어서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고 했다. 지구상의 여러 제도중 민주주의가 가장 나은 제도라는 걸 표현한 것이겠다.민주주의의 뿌리는 지방자치에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는 일천하다.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1995년 민선단체장 시대를 열었으니까 기껏해야 20년, 완전한 지방자치의 틀을 갖춘 건 16년 밖에 안된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70년 혹은 100년에 이르는 선진국들에 비하면 청년기 수준이다.1961년 5.16 때 지방의회가 해산된 뒤 1991년 지방자치법이 새롭게 제정되면서 지방의회가 부활된 건 정치적 산물이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의해 탄생됐다. 따라서 밑에서부터 주민들에 의해 요구되고 시행된 게 아니라 위로부터, 정치권으로부터 시행된 것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이한 현상이다.지난 91년 출범 당시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자신의 업무에 종사하면서 의회가 열리면 집행부 업무를 살피고 주민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소박한 출발이었지만 시일이 흐르면서 지방의원들은 권력화됐다. 부패하기 시작했고 주민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유급제로 바꿨다. 도의원은 연봉 4900만원 짜리 '직장인'이 됐다. 시군의원도 3∼4000만원 대다.지방의회의 제일 기능은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주민 대표기관으로서 이런 기능을 소홀히 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방의회에 대한 평가가 곱지 않다. 지방자치 20년을 맞아 전북일보가 14개 시군 주민 800명을 대상으로 '지방의회가 제대로 견제하는 기능을 하는지'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가 44%나 됐다.지방의회가 집행부한테 알아서 긴다면,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집행부 들러리나 선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수단은 선거에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도 선거다. 이빨이 없는 지방의원은 선거 때 싹 갈아치워야 한다. / 이경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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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6.28 23:02

[오목대] 국경분쟁 - 장세균

북한과 중국이 황금평 경제특구 공동개발에 착수한 가운데 압록강변을 둘러싸고 영토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황금평이 북한보다 중국땅에 더 가깝게 있기에 중국영토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압록강변에 사람이 사는 섬은 황금평을 포함해 모두 11곳인데 이 가운데 10곳이 북한에 소속되었다고 한다.황금평의 영토문제는 1962년 12월 10일, 중국 수상이었던 주은래(朱恩來)와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을 확정지은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을 떠올리게 한다.조중변계조약에 의하면 '백두산 천지의 경계선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루 서남단(西南端)위에 있는 2520고지와 2664고지 사이 안부(鞍部)의 중심을 기점으로 동북향 직선으로 천지를 가로질러 대안(對安)의 산마루인 2628고지와 2680 고지 사이의 안부 중심까지이다. 그리고 그 서북부는 중국에 속하고 동남부는 북한에 속한다'고 되어있다고 한다.그래서 백두산 천지(天池)의 55%는 북한에 45%는 중국에 속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과의 국경선 조약으로 백두산 천지의 절반을 중국에 양보한 것이다. 중국과의 국경선 문제는 '간도협약'에도 있었다. 올해 9월 4일이면 과거 일본이 중국 청나라와 불법적으로 맺었던 '간도협약'이 102년이 되는 해이다. 국제법에 의하면 불법적으로 맺은 국제간의 협약이라 하다라도 100년동안 쌍방 중 어느 쪽도 이의를 제기치 않으면 유효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되어있다.그러나 100년이라는 시효는 국제법상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시효가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간도'는 북간도·서간도·남간도를 총칭하는 말로써 지금의 중국 동북(東北) 삼성(三省)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간도는 중국 청나라에서도 자기 조상들의 발원지로 보았으며 우리 조선 역시도 국력이 약한 상태에서도 간도를 지키기에 혼신(渾身)의 힘을 다한 흔적이 있었다.바로 백두산 정계비가 그것이다. 1712년 숙종 때에 백두산 위에 청나라와 조선 사이의 경계를 나타내는 경계비를 세웠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일본은 간도를 중국에게 양보하는 불법 국제조약을 맺었다. 황금평 국경분쟁의 귀추가 주목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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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7 23:02

[오목대] 훈몽재(訓蒙齋) - 조상진

"산도 졀로졀로 록수도 졀로졀로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산도 졀로 물도 졀로하니 산수간 나도 졀로 (山自然 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아마도 졀로 삼긴 인생이라 졀로졀로 늙사오려.(已矣哉 自然生來人生 將自然自然老)"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가 지은 '자연가(自然歌)'다. 그의 문집인 '하서전집'에 실려 있다. 송시열 또는 이황이 지었다는 이설(異說)도 없지 않으나 하서의 작품이라는 게 통설이다.하서가 이 시조를 지은 것은 그가 35살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전남 장성으로 낙향했다 38살 되던 1548년 부모를 모시고 처가가 있는 점안촌(鮎岩村·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으로 옮겨서다. 그는 이곳에 초당을 지어 훈몽재(訓蒙齋)라 이름짓고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며 후학을 길렀다.그에 앞서 하서는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 등과 같이 공부했으며 1543년 홍문관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홍문관부수찬이 되어 세자(인종)를 가르쳤다. 1546년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옥과현령으로 부임했으며 임금이 죽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그가 점안촌에 든 것은 숱한 정쟁을 목격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한다는 천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훈몽재의 훈(訓)은 가르칠 훈, 몽(蒙)은 어린 몽으로 후학을 가르치는 학숙이다. 이곳에서 기호학파의 핵심으로서 학문에 정진하며 정철 조희문 기효간 변성온 등 5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그는 유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호남유림으로는 유일하게 공자 맹자 등과 함께 향교 문묘(文廟)에 모셔진 동방 18현에 올랐다.훈몽재는 그의 5대손인 자연당(自然堂) 시서(時瑞)가 중흥시켰으며 정조는 훈몽재가 "잘 보존되고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러나 6·25 전쟁때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소실되었다. 순창군이 2009년 17억 원을 들여 복원,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이곳은 섬진강 상류 추령천과 백방산 등 주변 경관이 뛰어난데다 인근 복흥면 김병로 생가와 대법원 가인연수관, 낙덕정 등과 이웃하고 있다.방학 때마다 원광대·전주대 한문학과, 상지대 한의학과 학생들이 합숙하며 한학을 배우고 있고 22일에는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와 교류협약식을 가졌다.청산과 녹수속에, 온고지신의 명소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 흐뭇하다./ 조상진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24 23:02

[오목대] 커피 하우스 - 장세균

요즈음 전주시내에 갑자기 커피 하우스가 많이 생기고 있다. 커피 하우스란 예전의 '다방(茶房)'이다. 자판기 커피가 나오면서부터 다방은 어느새 사양직종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건물 지하실 몇 군데에 '다방'이라는 옛 이름의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고 있으나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들이 주 고객이다.유행은 돌고 돌아 이제는 다방이 커피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개명(改名)이 되어 새롭게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의 기호식품인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설(說 )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아라비아 산양치기 칼디의 이야기이다.어느날 칼디가 산양무리를 새 목초지로 데리고 갔는데 이상하게도 산양들이 흥분해서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칼디는 근처의 수도원에 찾아가서 수도원장에게 말했더니 수도원장이 산양들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산양들이 어느 작은 나무 열매를 먹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열매를 가지고 여러가지로 먹어보다가 한번은 끊여서 마셔보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수도원에서는 밤에 예배를 볼 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수도사들이 있었는데 그 열매 끊인 물을 그들에게 마셔보게 하자는 것이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그 후로 수도원에서는 검은 음료인 커피가 필수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영국으로 퍼지게 되고 프랑스 궁정에까지 보급되면서 커피의 화려한 역사는 시작되었다.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시음하신 분은 조선말의 고종황제이다. 그는 민비가 시해당한 후 그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하는데 러시아 공사인 웨베르가 커피 열매를 건조해서 고종에게 진상했다는 것이다. 고종은 커피에 맛 들인 후 덕수궁으로 환궁을 한 후에도 커피를 즐겨마시는 커피 마니아가 되었던 것이다.다방에는 '가오마담'과 '레지'가 있었는데 '가오'는 일본어로 얼굴을 말하고 '레지'는 레지스터, 즉 Register(카운터에서 요금을 계산하는 사람)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커피 하우스가 우리 사회에서 대화의 광장, 소통의 광장이 되기를 바란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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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3 23:02

[오목대] 편백나무 숲 - 백성일

지구 온난화로 봄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졌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고 있다는 증표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계곡과 숲이 제일이다. 차를 갖고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의외로 좋은 곳이 많다. 여름철에는 한낮에 에어컨 켜고 1시간만 달려도 힘 들다. 헉헉거리고 숨막힐 지경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숲속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면서 머리를 식히는 게 요산(樂山)일 게다.전국적으로 전남 장성군 축령산이 편백나무 숲으로 각광 받으면서 찾는 발길이 늘었지만 도내서도 그에 못지 않은 곳이 많다. 가깝게는 전주 왕릉의 건지산이다. 이 일대는 편백나무 숲이 있어 아침 저녁에는 말할 것 없고 낮 시간대에도 산책객이 많다. 인접 아파트촌에서 올라 오는 길이 많고 나즈막해서 더 없이 좋다. 한낮에도 편백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햇빛 하나가 들지 않을 만큼 시원하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사색을 통해 뇌를 쉬게 해줘야 한다.전주에서 남원간 국도를 따라 완주 신리를 지나다 보면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에 다다른다. 이 공기마을에는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주말이면 한꺼번에 차가 몰려 들어 주차할 곳이 없다. 맑은 공기 마시며 한 두시간이라도 이 곳에 머물면 금세 힘이 불끈 솟는다. 산소는 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암 환자들이 이 곳을 즐겨 찾는다. 요즘에는 바람으로 목욕하는 풍욕이 건강에 좋다고 소개되고 있다. 피부로 노폐물을 발산시켜 피를 맑게 해주기 때문이다.현대인의 스트레스 심각성과 관련한 조사 결과가 앞다퉈 발표되고 있다. 미국 AP통신이 주요 10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81%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응답자 4명 중 1명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트레스만 받지 그 푸는 방법을 잘 모른다. 직장 남성들은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착각한다.그러나 그 건 잠시 해소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가벼운 산책과 명상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더위에 지쳤을 때는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편백나무 숲으로 달려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 것이 최상의 건강법이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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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2 23:02

[오목대] 시민여상(視民如傷) - 이경재

공직생활을 하는 데에는 세 글자의 현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맑을 '청(淸)', 둘째는 삼갈 '신(愼)', 셋째는 부지런할 '근(勤)'자라고 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말이다. 정관정요는 성군으로 꼽히는 당나라 태종의 치도(治道)를 설명한 것으로 제왕학의 교과서랄 수 있다.고위 고직자나 리더가 사려 깊게 새겨야 할 덕목으로 '시민여상'(視民如傷)이 있다. '백성 보기를 마치 자신의 상처를 보듯 하라'는 뜻이다. 맹자가 문왕(文王)의 예를 든 말인데 문왕은 중국 주나라의 기초를 닦고 덕치에 힘쓴 명군이다.송나라 때 성리학의 원류인 정호(程顥)는 지방관으로 임관할 때마다 집무실에 '시민여상'을 써놓고 "내가 항상 이 네 글자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 글귀를 좌우명 삼아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이리라.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시민여상을 재인용하며 각 지역에 부임한 지방관들이 새겨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요즘 공직사회가 비리와 부정으로 난타당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온통 썩은 나라'라고 질타하고 나설 정도다. 청(淸), 신(愼), 근(勤)의 세 덕목과 시민여상은 커녕 틈만 나면 빼돌리고 향응 받고 자기네들 회식비용까지 업자들한테 물리는 판이니 공직사회가 썩어도 너무 썩었다.일찌감치 이런 비리백태를 경험한 나머지 공직을 그만 두려했던 안세경 전주부시장이 4년10개월 간의 전주시 근무를 마치고 오늘 이임한다. 부단체장 재임기간으로선 아마 최장수인 것 같다. 그를 떠올리는 건 시민여상이라는 그의 좌우명 때문이다.그는 "…공직내부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보면서 당장 옷을 벗고 싶었다. 괴로워할 때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이 마음을 바꾸게 만들었고, 산민(山民) 선생이 써 준 '시민여상' 글귀를 사무실에 걸고 좌우명처럼 조석으로 쳐다보며 나를 다스렸다."고 그의 책 '나 당신 그리고 우리'에서 적고 있다.그가 마침 국무총리실의 국가경쟁력위원회로 옮긴다. 공직사회의 부정과 비리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런만큼 파격적, 획기적 개선책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시민여상'이 고위 공직자들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도록. / 이경재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21 23:02

[오목대] 대사습(大私習) 놀이 - 장세균

지난 수십년 동안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되어온 '전주 대사습 놀이'가 올해 처음으로 경기전과 한옥마을에서 지난 11일과 13일 사이에 열렸다. 우리나라 판소리의 중시조(中始祖)인 송흥록(宋興祿)은 지리산에서 폭포 소리를 능가하는 3년 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그의 이런 성공의 뒤편에는 한 맹렬(猛烈) 여성이 숨어 있었다고 한다.3년을 송흥록과 동거, 뒷바라지 하면서도 송흥록의 피를 토하는 폭포수련을 성공시키기까지는 단 한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송홍록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판소리 예맥(藝脈)이 지리산의 지맥(支脈)인 노령산맥을 따라 호남땅으로 번져간 것이라고 한다.우리나라의 명창으로는 전(前) 8명창, 후(後) 8명창, 또는 5명창을 드는데 순조(純祖)와 철종(哲宗)때 전 8명창 중에서 권삼득(權三得), 모흥갑(牟興甲), 송흥록 형제, 신만엽(申萬葉), 주덕기(朱德基) 등 6명이 호남사람이요, 철종·고종 때 '후 8명창'중에서 박유전(朴裕全), 박만순(朴萬順), 이날치(李捺致) 등도 모두가 호남 태생이었다고 한다. 고종 말기 일제 초기의 '5명창' 김창환(金昌煥), 송만갑(宋萬甲), 정정렬(丁貞烈), 유성준(劉成俊), 진채선(陳彩仙) 등도 거의가 호남 출신이었다고 한다.그후 명창인 허금파(許錦波), 임방울(林芳蔚), 오태석(吳太石), 이화중선(李花中仙) 그리고 무형문화재인 김연수(金演洙), 정광수(丁珖秀), 김여란(金如蘭), 박초월(朴初月), 김소희(金素姬)도 이 호남판소리 예맥에 핀 꽃들이라고 한다.다니엘 부어스틴은 왜 호남이 판소리의 온상이 되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들판에는 집회소가 있고 그곳에 사람이 모이면 무대가 생기며 무대가 생기면 예술이 생기고 따라서 들판 사람들은 주정적(主情的)이게 된다"고 했다. 전라도에는 어느 마을이나 마을 입구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모정(茅亭)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있다.일을 끝내고 이 모정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여흥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소위 이 '모정'이라는 무대가 바로 '판'이요, 이 '판'에서 여흥으로 나타난 '소리'가 바로 판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판소리는 당연히 전라도 방언으로 되어 있으며 호남의 고도(古都), 전주가 바로 판소리의 메카가 되어가는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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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0 23:02

[오목대] 남전(藍田) 허산옥 - 조상진

전주가 '맛과 멋'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 오래 전부터 판소리의 고장이었고 뛰어난 그림과 글씨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맛깔스런 음식까지 곁들여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전주가 예향으로서 맥을 잇도록 한 분 중 하나가 남전(藍田) 허산옥(본명 허귀옥·1926-1993)이다. 그녀는 자신이 출중한 화가였고 전주의 대표적 한정식집 행원(杏園)의 경영자였다. 그러면서 배포 큰 문화예술계의 메세나였다. 말하자면 남전은 40여 년 동안 전주 문화예술계의 대모(代母)였던 셈이다.남전은 김제 부량의 가난한 집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16살에 남원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고, 이곳에서 산옥(山玉)이란 예명을 받았다. 이후 예능활동은 전주에서 펼쳤다. 당시 권번은 가무와 시, 서화를 가르치는 종합예술학교였고 기생은 잘 나가는 아이돌 가수요, 탈렌트였다.남전은 풍남문 옆에 행원을 개업했다. 일제 때 유명한 요정이었던 낙원의 건물 일부를 인수받아 문을 연 것이다. 이 즈음 남전은 전주 동광미술학원에서 이도영(나중에 서울에 올라가 홍익대를 설립)에게 동양화, 이응로에게 산수화를 배웠다. 또 개인적으로 허백련에게 산수화, 송성룡에게 서예, 이용우에게 기명절지(器皿折枝)를 사사했다.(전주대 송화섭 교수)그러면서 화가들을 적극 후원했다. 당시 전주에는 효산 이광열이 한묵회를 조직하면서 변관식 이상범 장우성 허건 등 소위 '10대 작가'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뿐만 아니라 행원의 명성을 듣고 찾아 온 영화인이며 문인, 국악인들이 줄을 이었다. 남전은 이들의 후원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행원은 이들이 풍류를 즐기는 공간이었다.이들에게 잠자리와 술 밥을 풍족히 대접하고 이들이 그린 그림을 구입해줬다. 또 자신의 그림을 용채(用債)로 내놓은 경우도 빈번했다.(체육발전연구원 이인철 원장) 남 몰래 선행도 베풀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많이 주었다.이같은 후원 역할에 그치지 않고 본인도 국전에 15번 입선하는 실력을 보였다.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남전은 1993년 전북예술회관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다 세상을 떴다.지금이라도 그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갖고 조그만 기념관이라도 마련하는 것, 그것이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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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7 23:02

[오목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 장세균

우리 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정의(正義)'가 숨을 죽일수록 역(逆)으로 정의라는 말이 더 범람하듯, 사회 지도층들이 사회적 책임감이 없을수록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남발된다.대학교 일년 등록금 천만원대 육박은 학부형 등을 휘게 만드는데 제정신이 없는 교수들이 높은 봉급과 안식년을 얻어 가며 골프로 세월을 보냈다는 것도 '반(反)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뜻이다. 지도층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이런 정신은 이미 고대 로마 시대 때 확립이 되었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로마 귀족의 정신이었다. 고대 로마 초기에 로마 귀족들은 솔선하여 카르타고 한니발과의 전쟁에 참전하였고 제 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하는 등 최고 관리직인 귀족들이 죽음을 불사한 것이다.그러나 조선 왕조 때에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양반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군역(軍役)에서 면제되었다. 이런 무책임주의가 아직도 우리 사회 구석에서 숨을 쉬고 있다. 얼마전에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의 기지이자 독립군 양성소 역할을 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 잔디광장에서 열렸다고 한다. 신흥 무관학교는 석주(石洲) 이상룡과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희생이 밑바탕이 되었다.1910년 한일합병 조약이 성립되자 한일병합에 공(功)이 큰 76명이 일본으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었는데 대부분이 노론(老論)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회영 일가는 소론(小論)의 대표적 집안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대거 이주키 위해 갖은 어려움 속에서 전재산을 정리하였는데 그 당시 쌀 한가마니가 3원일 때 40만원의 거금이 마련되었다고 한다.온 가족이 만주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데 전재산을 쾌척했으며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근간이 되어 독립운동 사상 최대의 성과라는 청산리 대첩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이완용과는 달리 독립운동을 위해 전재산을 정리하여 망명했던 이회영 일가의 행동은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씨앗은 있다는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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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6 23:02

[오목대] 지역선수교체 - 백성일

전북이 왜 낙후되었는가를 따지면 정치적 원인이 제일 컸다고 볼 수 있다.정부 수립 이후 줄곧 영남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북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탓이 크다.중앙 정부가 자원 배분과 인재 등용을 고루게 안해 줬기 때문이다.경부축 위주로 산업화를 주도한 것도 한 원인이다.그러나 우리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정치적으로 경쟁 구도를 만들어 주지 않고 민주당 일변도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지역정서에 의존하는 정치구도는 잘못된 행태다.결국 우리가 못 사는 건 돈과 인재가 없어서다.돈이 없어지면서 인재도 사라졌다.인재는 돈 되는 곳으로 몰리게 돼 있다.다른 지방도 엇비슷하지만 전북은 그 도가 심하다.지금 같은 정치구도가 계속 되는 한 지역 낙후를 면키는 힘들 다.아무리 중앙에 가서 국가예산 타령을 늘어 놓아도 그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다.현재 같은 정치 구도는 일부 정치하는 사람 한테나 좋지 도민들 한테는 나쁘다.전반적으로 지역 사회가 정체됐다.나이가 벼슬로 통할 정도로 가부장적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나이 오 륙십이 넘어도 물당번 하기도 힘들다.지금도 고령자들이 지역을 이끌고 있다.물론 경륜이 필요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젊은 패기도 중요하다.LH유치 운동을 펼 때 모든 게 드러났다.지역에서 신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앞장서면 될 일도 안된다.그 사람들 보고 힘을 합쳐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지금 지역에서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을 보면 '아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너무 신물이 날 정도로 오랫동안 감놔라 배놔라 한 사람들이다.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선수를 교체해야 할 때가 왔다.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임무교대를 해야 한다.그래야 지역이 산다.이미 개인 역량이 다 드러난 사람들을 믿고 따를 사람이 없다.어떤 공적 단체나 공적 모임도 장기간 이끌면 단점만 보인다.전북은 변곡점을 맞았다.LH유치 실패를 교훈삼아 지역을 새롭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정치적으로 목소리만 키우는 사람 보다는 때로는 사재를 털어가며 동고동락할 사람이면 그만이다.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지만 그래도 노 장 청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그 누구 하나 사람 없소./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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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5 23:02

[오목대] 공직사회 부패 - 이경재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요즘 공무원들은 대놓고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묘하게 활용한다."고 했다. 그가 털어놓은 몇가지 사례는 뻔뻔스럽기도 하고 악질적인 것도 있다.# 업무와 관련이 있는 부서 공무원이 어느날 김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왔다. '갑'이 '을'한테 선물을 보내오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전화했더니 친척이 김 공장을 하는데 잘 팔리지 않아 소화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그 뜻을 헤아리고 수십만 원 어치 김을 팔아줬다.# 부서 회식자리에 별 부담 갖지 말고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냥 지나쳤다간 괘씸죄에 걸릴 것 같아 참석했지만 회식비용을 나몰라라하기가 어려웠다. 괘씸죄는 육법전서에도 없는 고약한 죄 아닌가. 2차 술집, 3차 입가심용 가맥 집까지 200만 원이 깨졌다.# 직원들 경조사도 고질적인 병폐라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화환 보내달라, 조화 보내달라 해서 귀찮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관심했다간 괘씸죄에 걸릴 게 뻔해 수용하고 있다고 했다.더 고약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모두 불법이다. 공직자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이나 부동산, 물품· 유가증권· 숙박권· 회원권 등 선물, 골프· 음식물 접대 등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 여부와 관계 없이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지난 99년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만들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참여정부 때 이를 대통령령으로 법제화했다. 이것이 '공무원 청렴 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이다.이 행동강령에는 공무원은 직무 관련자한테 경조사를 통지하거나 회식비를 대납케 해서도 안되고 인사청탁이나 이권에 개입해서도 안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위를 이용해 알선· 청탁을 해서도 안되고 상급자의 부당명령에 대한 거부권도 보장하고 있다.그러나 행동강령은 지금 글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부정과 비리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특히 고위 공직사회가 심각하다. 징계 따위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효과가 없다.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라디오연설에서 선출직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공직자윤리법부터 엄격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이왕 할 바엔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단호한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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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4 23:02

[오목대] 부권(父權)의 상실 - 장세균

요즈음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TV 드라마 보기가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한다. TV 드라마 속의 아버지는 자녀들 앞에서 항상 어머니의 눈치를 본다든가 어머니한테 혼나는 장면들이 흔하기 때문이다.역사를 테마로 하는 사극(史劇)은 그런대로 아버지들이 선호 하는데 사극 속의 남자들은 권위와 더불어 영웅적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가장(家長)으로서의 아버지 권위는 사실상 땅에 떨어진 지 오래이다. 어느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아버지를 그리라고 하니까 어떤 학생은 팬츠바람에 소주잔을 들고 있는 아버지를 그렸다고 한다.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지쳐서 겉옷을 벗어 던진채 팬츠바람으로 소주잔을 들이켯을 것이다. 그 아들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런 것이었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아버지의 권위인 부권(父權)은 두 가지가 기초되어야 한다고 한다.첫째는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가업(家業)에 종사하고 그 가업을 계승할 때이다. 이 때 아버지는 아들보다 풍부한 경험이 있기에 아들을 가르칠수가 있어 부권이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아버지의 어엿한 모습, 그리고 인내하는 모습,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말없이 이를 감내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부권이 형성된다고 한다.둘째는 가족 구성원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원래 권위란 그 권위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아지는 법이다. 과거 우리사회는 대가족 제도였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부권의 두 가지 기본조건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산업화로 아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게 되었다. 핵가족화로 가정에서 아버지를 너무 가까이 접하게 됨으로써 아버지의 존재가 그렇게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마르쿠제는 이제 아버지란 존재는 종족보존을 위한 정액(精液) 제공자에 불과하다고까지 극언했다. 땅에 떨어진 부권은 학교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의 학부모 회의는 없어지고 '자모회(子母會 )'가 대신하고 있다. 자모회란 학생들의 어머니 모임이라는 뜻이다. 자녀들의 교육권 향방이 어머니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부권 상실의 시대에 아버지들의 고민이 크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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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3 23:02

[오목대] 태산 선비문화 - 조상진

정읍하면 흔히 혁명을 떠올린다. 동학혁명의 횃불이 워낙 높이 타올랐던 탓이다. 그래서 과격한 이미지가 없지 않다.하지만 정읍은 알짜 선비의 고장이다. 호남지방에서 선비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불의(不義)에 대한 저항정신이 선비정신과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정읍의 선비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는 곳은 태산 일대다. 지금의 태인과 칠보 산내 산외 옹동 북면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 일대는 본래 백제의 태시산군(太尸山郡)이었는데 신라때 태산(太山·太는 泰로도 통한다)으로 고쳤다.태산지역에 유교문화의 씨를 뿌린 이는 신라말 대문호이며 정치가였던 최치원이다. 886년 태산태수로 부임해 뛰어난 학문과 덕행을 남겼고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이다. 이 사당은 당초 태산사로 불렸으며 고려말에 훼손되었다가 조선 성종때 유림의 발의로 다시 세워졌다. 그 뒤 숙종(1696년)이 무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태산 선비문화의 중핵인 이 서원에는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을 배향했다. 무성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 전북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또 일제때는 최익현 임병찬 등이 의병을 일으킨 거점이었다. 최근에는 안동의 도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장성 필암서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이곳에선 선비 고장답게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흔적이 있다. 최치원 재직시 포석정처럼 자연을 이용해 물에 잔을 띄우고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이같은 풍류는 조선 초 정극인으로 이어졌다. 그는 벼슬을 버리고 처가인 이곳으로 낙향해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인 상춘곡을 남겼다.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청풍명월을 벗삼은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고현동(古縣洞)향약(보물 1181호)을 정리해 오늘까지 전승시켰다. 27책이 현존하며 조선시대 최초의 것으로 평가된다.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 어려움을 함께 돕는 이 향약정신은 500년을 이어오고 있다.이밖에 호남 제일의 정자인 태인의 피향정(보물 제289호)과 호남 사대부 가옥의 대표격인 산외면 김동수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 등도 선비문화의 향기가 묻어있다. 9일 제11회 태산선비문화제가 열렸다. 옛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을 체득하는 계기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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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0 23:02

[오목대] 광복군(光復軍) - 장세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지난 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살아있는 마지막 광복군 출신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많은 감회를 일으키게 한다. 백범 김구선생의 비서였으며 사상계라는 계몽적 잡지를 창간했던 광복군 출신 장준하씨의 죽음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일제 지배를 배격하고 조국독립을 위해 어려운 시절에 광복군이 존재했었다는것 자체가 꺼지지 않는 민족혼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드골의 지휘 아래 '자유 프랑스' 군대가 상젤리 개선문을 통해 파리에 입성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광복군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다.광복군은 해방후 미군정(美軍政)의 요구에 따라 무장 해제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1년후에는 그나마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광복군의 일부가 국방 경비대에 흡수되어 대한민국 건군(建軍)에 이바지하게 되었다.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에 중국 중경(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조직체로 출발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은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敵)인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내용의 광복군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광복군 총사령관은 이청천(李靑天), 참모장은 이범석(李範奭) 등 수명의 간부들이 임명되었다. 광복군의 존재는 단순한 상징적 의미 이상이었다.그 당시 중국 각지에는 약 60만명에 달하는 교포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며 그 가운데 20만명은 소집이 가능했다는 것이고 만주에 거주한 200만의 교포와 국내 동포까지 합치면 30만명의 광복군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당시 임시정부의 판단이었다.무력에 의한 독립론의 근거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으로부터 폭격을 당하자 관망적이었던 미국이 2차 대전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대일 선전포고와 더불어 임시정부도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였던 것이다.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서거는 다시한번 광복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광복군의 존재 의의도 같이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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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9 23:02

[오목대] 큰 인물 - 백성일

예로부터 큰 나무 덕은 못 보지만 큰 사람 덕은 본다고 했다. 수양산 그늘 강동 팔십리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여름철에 정자나무 같은 큰 인물은 그늘을 드리우게 해 지쳐 있는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줬다. 덕이 많아 곧잘 큰 일도 잘 해냈다. 지역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혼자서도 앞장서서 해결했다. 평소 구린 짓을 하지 않아 중앙 무대에서 말발이 섰고 정치력이 통했다.요즘처럼 도민들이 실망감과 무력증에 빠진 적도 없다. 총력을 경주했던 LH 전북유치가 물건너 가면서 그렇게 됐다. 도내 산간 오지까지 LH 유치 관련 플래카드로 도배질 했었다. 관제성 데모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모처럼만에 도민들이 중앙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간 것 같다. 힘 없는 약자의 설움만 톡톡히 느끼고 있다. 전북이 중앙으로부터 냉대를 받은 것이 꽤 오래 되었다.박정희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50년간이나 이어졌다. 지난 김대중·노무현정권 때도 별 것 아니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관료 정도만 혜택을 봤다. 민초들은 선거 때 잠시 기분만 좋았지 정권 맛은 못 봤다. 그간 찬방이라 오랫동안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윗목까지 온기가 스며드는데 불 때는 시간이 짧아 아랫목 정도만 온기를 느끼고 말았다. 경상도 정권의 뿌리가 깊게 박혀 지난 두 정권 때도 전북은 쪽도 못 폈다.지금도 찬밥 신세는 여전하다. 정동영 후보가 530만표 차로 대패해 그를 일방적으로 지지한 전북만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됐다. 새만금사업도 1차 내부개발 완공 시점을 10년 앞당겼지만 2020년까지 계획대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해마다 1조원의 국가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절반 확보도 힘들다.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도 예산 확보가 잘 안돼 어렵다.개인이나 자치단체나 힘 없으면 당하게 돼 있다. 돌이켜보면 소석(素石)만한 인물도 없다. 크게 써 먹을 수 있었던 7선의 이철승씨를 전주 사람들이 팽시킨 것은 두고 두고 후회할 일이다. 지금 중앙 정치무대에서 전북을 대변할만한 인물이 없다. 원래 인물은 고향 사람들이 밀어줘서 키우지만 본인 스스로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크는 법이다. 지역이 어처구니 없게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쓴소리 한마디 하는 원로도 없다. 도내 국회의원들부터 정신차릴 때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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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8 23:02

[오목대] 국립임실호국원 - 이경재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이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뜻이고, 보훈은 나라를 위해 공헌한 분들을 기리고 보답한다는 뜻이다. 헌데 그 의미가 갈수록 엷어져 가고 있다. 어제가 현충일이었다. 어릴 때엔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으면 무슨 죄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교육을 엄하게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반기를 게양한 집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추모나 참배 분위기도 느낄 수 없다. 현충일은 쉬는 날 정도로 퇴색해 있다.이럴수록 순국선열을 기리고 유공자에 감사할 줄 아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립묘지 참배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우리나라에는 현충원 2곳(서울·대전)과 호국원 3곳, 민주묘지 3곳 등 모두 8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호국원은 수도권에 이천호국원, 호남권에 임실호국원, 영남권에 영천호국원이 있고 민주묘지는 3.15· 4.19· 5.18 묘역을 이른다.국립 임실호국원은 호남과 제주를 대표하는 호국 성지다. 향군 참전 군인묘지 조성사업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1995년 재향군인회 현충사업단이 발족돼 이 사업을 추진했다. 당초 남원· 진안 등 몇곳을 검토했으나 입지조건과 땅값, 풍수지리 등을 종합해 임실군 강진면 백령리로 결정돼 오늘에 이른다. 묘역은 10만6000평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2001년 11월 30일 준공한 뒤 2002년 1월1일 첫 합동안장식이 이뤄졌다. 국가유공자(1869기)와 6.25 참전군인(7981기) 및 참전경찰( 1274기), 월남참전군인(1577기) 등 모두 1만2701기가 안장돼 있다.그런데 현충원과 호국원의 명칭이 차별적이다. 현충원에는 대통령· 독립유공자· 애국지사 등이 안장되고 호국원에는 참전용사와 10년 이상 군 생활자· 국가유공자· 상이군경 등이 안치된다. 똑같은 국립묘지이고, 똑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했지만 영면의 길에서는 급이 다르게 모셔진다. 안장의 격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명칭까지 꼭 현충원과 호국원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임실호국원 등이 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가보훈처는 묵묵부답이다. 호국원의 공무원 인력과 예산도 확충할 필요가 있고 기구의 명칭을 현충원으로 격상시키는 문제도 이젠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 / 이경재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07 23:02

[오목대] 주자파(走資派) - 장세균

북한 김정일의 최근 중국 방문은 큰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을 김정일에게 수시로 요구하지만 김정일의 의중에는 개혁 개방보다는 체제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과거처럼 북한은 개혁·개방 시늉만을 할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과거 중국처럼 이념보다 경제문제를 우선시하는 나름대로의 주자파(走資派)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은 전 국토를 국유화하고 중국의 전 인민을 인민 공사라는 조직속으로 몰아넣고 대약진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그러나 이 대약진운동은 농업생산의 저하로 1959년과 1961년 사이에 굶어죽은 아사자(餓死者)가 무려 3000만명에서 4000만명이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서 10년동안 기아(飢餓)로 죽은 사람이 약 300만명이라고 하니 그 때의 중국 인구와 북한의 인구비례로 보면 아사자 비율은 비슷한 것 같다.그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이었던 유소기(劉少奇)는 이런 참상의 원인을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의 결점과 착오에 있다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런 대기아(大飢餓)의 원인은 30%는 천재(天災)이고 70%는 인재(人災)라고 하여 모택동 노선을 비판하고 경제발전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비판은 결국 모택동의 미움을 사게되어 숙청을 당한뒤 병사(病死)했다.이렇듯 경제문제를 중요시 하는 사람을 주자파(走資派)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모택동의 문화혁명에서 겨우 살아남아 오늘의 중국 경제 부흥을 가능케 한 등소평(登小平)의 정치적 등장이다. 북한처럼 혈족이 아닌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함으로써 정책에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 첫 단추의 성공은 동남아시아에 산재한 중국 화교 자본에 힘입었다.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을 의심한 서구의 자본주들은 중국 투자를 망설였다. 더 나아가 중국은 대만·홍콩·마카오 화교들에게도 투자를 위한 손을 벌렸다. 결국 화교들의 자본투자가 성공하자 서구 자본들이 투입되어 오늘의 중국 경제 호황의 밑거름이 된것이다. 북한에는 중국의 유소기나 등소평 같은 주자파는 없고 충성경쟁만 있는 사회라서 개혁은 힘들다는 생각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1.06.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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