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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竹夫人)을 두고 수족(手足)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에 나오는 대목이다.죽부인은 매끈하게 다듬은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여름 침구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끌어 안고 자거나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자면 무섭게 달려드는 삼복더위도 저만치 물리칠 수 있다. 찬 성질을 가진 대나무로 만든데다 안이 텅 비어 있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풀을 먹인 삼베 홑이불을 씌우면 더욱 그만이다.죽부인은 중국 당나라 때 더운 남방지역에서 널리 퍼져 한·중·일 삼국에 보편화되었다. 당나라 때는 무릎에 끼는 도구라는 뜻으로 죽협슬이라 불렀다. 그러다 송나라 때는 끌어 안고 자는 부인으로 의인화 해 죽부인이라 한 것이다.부인이다 보니 아버지가 쓰던 죽부인을 아들이 쓰지 않았다. 또 스승이 쓰던 죽부인을 제자가 쓰는 것도 금기시했다. 남성 위주의 독특한 풍습인 셈이다. 그렇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여인네들도 여름철에 이를 애용하게 되었다. 이 경우 '죽남인'이라 부른다.세간에는 죽부인과 관련된 여러 일화가 전한다. 그 중 하나가 5형제 얘기다. 옛날 노부부가 5형제를 두었는데 아직도 아버지의 혈기가 왕성했던 모양이다. 무더운 여름 밤에도 부인과 꼭 잠자리를 같이했다. 이를 본 5형제는 "저러다 또 아이가 만들어지면 큰일이다. 우리가 업어 키우고 똥·오줌까지 치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라고 궁리를 했다.그 끝에 가짜부인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는 5형제가 만들어준 죽통을 안고 자보니 사람을 껴안고 자는 것보다 시원하고 잠이 절로 왔다. 덕분에 5형제는 효도를 하고 여섯째 동생이 생기지 않아 짐을 덜었다는 것이다.하지만 여름내내 손 때가 타도록 애용하던 죽부인도 찬바람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한쪽에 쳐박아 버린다. 그래서 옛 문인들은 변덕스러운 세태나 권력의 비정함을 이에 빗대기도 했다. 고려말엽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지은 소설 '죽부인전'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절개를 대나무에 비유하여 당시 퇴폐해 가는 고려 사회를 풍자한 것이다.요즘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너무 흔하다. 하지만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죽부인과 더불어 여름을 나 보면 어떨까./ 조상진 논설위원
일본 야당인 자민당 의원 4명이 8월1일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하여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이는 독도를 영토분쟁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기 위한 그들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의 일본 독도 망언은 언어 수사(修辭)의 수준에서 끝났으나 이제는 직접 행동으로까지 나서는 모양새이다.외교통상부는 주한 일본 대사관을 통해 방한을 추진중인 일본 자민당 의원들에게 안전문제 등을 내세워 울릉도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방문을 추진중인 4명의 의원들은 강경파로 '신도 요시타카'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대장을 지낸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의 외손자이고 '사토 미사하시' 참의원은 자위대 출신이며 '가쓰에이' 중의원은 경찰 간부 출신이라고 한다.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의 입국을 금지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울릉도는 한때 우산국(于山國) 으로 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찬, 이사부(異斯夫)의 정벌 아래 신라에 귀속하여 토산물을 신라에 바쳤다. 그후 고려가 개국한 후에도 이런 조공관계가 계속되어 토산물을 고려에 바쳤다. 고려말부터는 해안사람들을 울릉도로 이주시켜 생활하도록 유도했다.조선 개국후, 세종때에는 여러차례 관원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관리하였다. 그러나 왜구의 잦은 노략질로 울릉도뿐만 아니라 큰 섬들에 대해서 사람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공도(空島) 정책을 조정에서 추진하였다.조선후기 숙종 때에 일개 노젓는 수병(水兵)이었던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에서 해산물을 독점했던 일본인들에게 붙들려 갔으나 일본에서 울릉도·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하여 그 당시 일본 에도막부로터 앞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치 않겠다는 서계(書契), 즉 공문서까지 받아오는 쾌거를 올렸다.조선은 가끔씩 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함으로써 그런대로 영토관리를 했으나 1800년 쯤부터는 울릉도·독도 관리를 소홀히했다. 이런 해이된 상태에서 일본인 254명이 울릉도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사실만을 빗대어 울릉도도 자기 영토라고 억지로 우길지도 모를 일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서 부(副)자는 별로다. 자치단체에서 부는 장(長)을 보좌하는 역할에 그칠 뿐 독자적인 컬러를 낼 수 없다. 행정부지사는 중앙에서 파견한 공무원이지만 일처리 때마다 지사 눈치를 살핀다.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실질적 의미에서 볼 때는 지사가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정무부지사는 지사의 판단에 따라 여건만 맞으면 그 누구라도 임명할 수 있다.정무부지사는 정무에 관한 사항을 맡는다. 말이 정무지 사실 일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힘든 자리다. 중앙 정부와 가교 역할을 해야 하고 도내 국회의원·도의원 그리고 언론사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한마디로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이라서 이 사람들 비위 맞추려면 애 간장 녹는다. 기자들도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접대를 자주해야 하는 자리라서 아예 쓸개와 간장을 떼놓고 다녀야 할 지경이다.김완주지사가 취임초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삼성 출신 김재명씨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했다. 다음으로 매일경제 편집국장 출신인 한명규씨를, 그리고 쌍용 출신 송완용씨를 임명했다. 연임하면서는 전주문화방송 보도국장 출신인 박종문씨를 기용했다. 정무부지사는 지사를 대신해서 술상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건강이 망가질 수 있다. 그 만큼 쉬운 자리가 아니지만 정치에 꿈 있는 사람들은 경력 관리를 위해 이 자리를 넘본다. 그런 면에서 장세환 국회의원은 성공한 케이스다.박부지사가 25일자로 사표를 냈다. 언론사에 30년 정도 근무하면서 쌓아온 인맥 덕으로 1년 정도 정무부지사를 했지만 LH문제로 어려웠다. 서울과 전주를 밥 먹듯이 오가면서 열심히 챙겼지만 정무부지사라는 역할의 한계 때문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실패로 끝난 LH문제에 대해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결국 박부지사가 속죄양(Scapegoat)이 되고 말았다. 사즉생(死卽生)을 외치며 도민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린 김완주지사는 멀쩡하고 박정무만 자리를 떠나게 됐다. 그렇다고 LH후유증이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LH후속대책에 관해 정부측의 속시원한 답변이 없어 이래저래 도민들만 속앓이 하고 있다./ 백성일 주필
"골프가 특권층의 스포츠가 돼선 안된다.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대중(퍼블릭) 골프장을 많이 짓게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반면 골프를 즐겼던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시절 골프에 인색했다. "임기 동안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공직자들의 골프를 금지시켰다. 골프 친 공직자들은 사정기관의 밥이 됐다.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는 대통령은 골프대중화를 이끌었고, 골프를 잘 아는 대통령은 골프를 경원시했다. 골프 역기능, 이른바 댓가성과 연대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은 "골프 좀 치겠다."며 아예 골프치는 걸 공개했다. 그리고는 많은 '골프 사건'들이 터졌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이 총리는 2006년 3.1일절에 골프를 했다가 보름만에 낙마했다. 그해 1년 전 '식목일 산불 골프'를 쳤다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신하겠다."고 국민한테 사과해 놓고도 골프를 치다 화를 입었다. 함께 골프 친 이기우 교육부 차관도 사표를 냈다.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도 그해 '수해골프'를 쳤다가 화를 입었다. 피해가 극심했던 강원 정선지구의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때에 강원랜드 골프장에서 한가롭게 골프를 쳤으니 국민 비난이 빗발친 건 당연한 일이다.전주시와 전북도청 공무원들이 골프를 치고 그린 피 문제로 감사를 받은 일도 있다. 골프로 공직자들이 화를 입는 '사건'은 잊을만 하면 도지는 단골메뉴가 됐다. 최근에는 임실군 소유 법인회원권 사용자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평일 근무시간에 골프를 친 공무원 8명(임실군청 5명, 전북도청 3명)이 적발됐다. 확인중이니 아직은 새발의 피일 수 있다.익산시는 아예 감사원의 법인회원권 사용자명단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한수 시장의 동의가 있지 않고서는 가능치 않은 일이다. 평일에 골프 친 공직자들을 비호한다는 욕을 먹을 망정, 비공개 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섰다는 뜻이겠다.기초자치단체가 감사원의 요구를 깔아뭉갤 정도라면 그럴만한 인물들이 명단에 들어있을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회원권 사용자중엔 중앙부처와 감사원 직원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이 지역에 파다하다. / 이경재 논설위원
일반적으로 몸에 문신이 있으면 조직 폭력배로 인식을 해왔다. 몸에 문신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화가 변하면서 연예인들까지 문신을 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특히 미국의 프로 레슬러들은 몸에다 갖가지 문신을 하고 링에 등장하는데 관중석 팬으로부터 열광적 환호를 받기도 한다.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는 금기(禁忌)의 영역을 좁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간다. 그래서 문신 즉 ,영어로는 '타튜(Tattoo)'가 이제는 개인의 '자기 표현방식'의 하나라는 인식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문신은 신체의 '자기 결정권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신도 엄연히 패션의 하나라는 주장도 나온다.우리에게 있어 문신의 역사는 오래이다. 조선의 성종(成宗)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섹스 스캔들의 여주인공은 그 유명한 어을우동(於乙宇同)이었다. 그 스캔들 내용이 성종실록에 나오는 것이다. 어을우동의 팔뚝에는 대여섯 명의 남자 이름이 문신되어 있는데 문신을 남긴 목적은 남자가 어을우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사랑의 증거를 남기는 애정문신이다.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등에다 부인이 울면서 문신을 새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문신이 나쁜 마귀(魔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문신은 마귀를 아낸다고 보았다.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형벌문신(刑罰文身)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조선조에서는 도둑질하다 들킨 도범(盜犯)에게는 처음인 초범자에게는 오른팔에 '도(盜)'자를 문신하고 두 번째 저지르는 재범(再犯)일 때는 왼팔에다 '도(盜)'자를 문신하여 평생 전과자임을 나타냈다. 고려때는 도범에게 팔에다 문신을 하지 않고 얼굴에다 문신을 한 것에 비하면 범죄자의 인권을 많이 보호해 준 셈이라고나 해야할 것이다.우리말에 '경을 친다'는 말은 바로 신체에다 문신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문신이 일반화 되어 눈썹이 많지않은 성근 눈썹을 위해 인위적인 눈썹문신도 있다. 특히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미용문신은 성형기술과 함께 비약적 발전을 할 것으로 내다보여 진다./ 장세균 논설위원
완주군 봉동일대는 예로부터 생강 산지로 유명하다.이곳 생강은 다른 지역 생강에 비해 뿌리가 크고 섬유질이 없는 게 특징이다. 더욱이 글루코스(포도당) 함량이 높아 매운 맛이 덜한데다 향긋해 임금님께 진상하는 특산품이었다. 저장 방법도 독특하다. 온돌 아래 지하 저장고에 저장함으로써 생강의 부패를 방지하고 신선도를 유지시킨 것이다.봉동 생강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얘기가 전한다. 하나는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만석(申萬石)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건너가 봉성현(鳳城懸)이라는 곳에서 생강뿌리를 얻어 돌아 왔다. 이것을 지금의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에 심었으나 재배에 실패했다. 그러자 지명에 봉(鳳)자가 있는 이곳 봉상(鳳翔)에 내려 와 심은 결과 재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200년 전 일이다. 1820년에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서구(李書九)는 풍수지리에 밝아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관내 순시를 위해 봉동읍에 들렸다. 이곳 봉실산(鳳實山)의 산세와 지형을 두루 살핀 후 들판을 보더니 "이 근처에서 장차 향기로운 풀(香草)이 자라 사람에게 큰 복을 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뒤 과연 향내나는 풀이 자라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바로 봉동의 생강이라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완주지역 토산품으로 석류 울금 봉밀과 함께 생강을 꼽은 것으로 보아 두번째 얘기는 과장된듯 하다.일제 때 신문(동아일보 1934년 8월 15일)에도 봉동 생강은 '조선에서 유일! 삼례 생강'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봉동면을 중심으로 고산 삼례 용진에서 재배자들이 조합을 조직해 100정보에서 3000석(石)을 생산했다.이 생강조합은 자유당 때도 이어졌다. 한달 남짓 농림부장관을 지내 최단명(1954.5.6-6.29)에 그쳤던 율소리 출신 윤건중씨가 조합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농업을 잘 아는 농민출신을 장관에 임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윤씨를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윤씨는 독일 유학을 다녀와 독일식 협동조합 운동을 벌였다.국내 최대 생강 집산지를 끼고 있는 봉상생강조합이 15일 (주)대상 청정원과 공동사업협약(MOU)를 체결했다. 연간 120톤(6억 원 상당)의 생강을 구매키로 한 것이다.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 좋고, 기업은 좋은 품질의 생강을 구입해 상생의 해법이 아닌가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장마 때마다 홍수 피해는 우리나라의 연중행사이다. 북한에서는 홍수 때문에 그들의 집단체조인 아리랑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10년 이래 최악의 홍수로 701명이 사망했고 태국은 이번의 홍수로 101명이 사망하고 360만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우리나라의 홍수는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 때문에 장마와 폭우를 동반하는 2~3개의 태풍으로 인한 집중호우로 발생한다. 과거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홍수와 가뭄은 하늘이 내린 천벌로 보았다. 특히 오랜 가뭄은 농경국가인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직했으면 임금이 머리를 풀고 하늘을 향해 비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냈겠는가. 조선조 500년 동안 기우제를 지낸 횟수가 모두 1142회 였다고 하니 일년 평균 2회가 넘는다.가뭄 못지않게 무서운 재난이 홍수였다. 홍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정서는 유럽과 다르다. 유럽의 자연은 유순하고 규칙있게 변화하기에 인간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었다. 유럽의 자연은 인간이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일반적으로 지중해 인근의 강우량은 한국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알프스의 눈이 녹아 흐르기에 수량은 풍부하지만 비바람 때문에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그와 반면에 한국의 자연은 인간이 다스리기에 억셌다. 그래서 산천(山川)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마음은 산에 들어갈 때는 대소변을 받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또 산중에서는 큰 소리로 말한다거나 부정탈 말은 산신령을 노하게 한다하여 조심했다고 한다. 만일 냇가에서 돼지나 개를 잡아 피를 흘려서 부정을 타면 그 응징으로 폭우을 내린다고 생각했다.폭우로 홍수가 나면 고을의 원님은 누가 부정을 타게했는지를 조사하여 처벌까지 하려고했다 한다.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하는 것이 임금의 덕목이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홍수와 같은 천재(天災)를 지금으로 말하면 인재(人災)로 생각하여 도덕적 성찰을 했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홍수 피해는 미리 대비치 않는 안이한 태도에서 나온 인재이기도 하다./ 장세균 논설위원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부안 변산해수욕장이 새만금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 해류의 변동이 생겨 퇴적토가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예전의 명성은 오간데가 없어졌다. 심지어 모래를 갖다가 뿌려 놓아야할 상황까지 이르렀다. 물도 깨끗하지 않고 숙박시설이나 상가 등도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같이 폐허처럼 변했다. 대신 격포나 고창 구시포 쪽으로 해수욕객이 옮겨 갔다.그러나 지리산 뱀사골, 무주 구천동, 진안 운일암반일암,장수 방화동 계곡, 진안 풍혈냉천, 순창 강천사 등은 피서지로 각광 받는다. 다음주부터 초·중·고에서 일제히 방학에 들어가면 이곳으로들 떠날 것이다. 이제는 피서가 하나의 생활 풍속도가 됐다. 하루 이틀이라도 가족과 함께 휴가를 안갔다 오면 신간 편하게 여름 넘기기가 힘들다. 호주머니 사정이 안좋아도 빚을 내서라도 휴가는 갔다와야 하는 연례행사가 돼버렸다.또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방학철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 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신경 쓰고 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이 있지만 피서 가는데는 상관이 없다. 소득과 취향에 따라 피서법이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산과 계곡이나 해수욕장을 찾는게 일반적인 피서법이다. 그러나 예전 선비들의 피서는 달랐다.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찾는 사람들이라 탁족(濯足)을 했다. 선비들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발만 물에다 담갔다. 탁족이란 말은 원래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서 나온 말이다.초나라 충신 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비관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던 어부가 그의 형편을 물으며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을 남긴데서 유래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 상(上)에도 이 말이 인용됐다.여기서 말하는 탁족의 의미는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스스로 처신과 수양 방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옛날 선비들은 지금처럼 에어컨과 선풍기를 갖고 몸을 식히는 것에 비해 탁족을 즐기면서 등배자(藤褙子)토수(吐手)죽부인(竹夫人)목침(木枕) 지모(紙帽) 등으로 여름을 났다./ 백성일 주필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돈이 아니라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돈을 지배하는 것보다 지식을 지배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지식'의 개념을 그는 "일하는 방법을 끊임 없이 개선· 개발· 혁신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장면 배달원이나 미화원, 회사원, 운동선수 등 누구든 일하는 방법을 개선· 개발· 혁신해서 자기 몸값을 높이는 사람이라면 지식인이다.반면 20년간이나 누렇게 변색된 똑같은 강의노트로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있다면 그가 아무리 명문대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더라도 지식인이 아니다. 옛날 관행만 고집하는 부서장이나 CEO, 관리자 역시 지식인 대열에 들 수 없다.피터 드러커는 그러면서 '지식근로자'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만들어냈다. 산업-정보-통신혁명에 이어 다가오는 지식혁명 시대에는 조직과 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고 지식근로자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지식근로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일을 개선· 개발· 혁신함으로써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부가가치도 높아진다. 따라서 언제든지 지금의 직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며 평생고용을 생각한다.반면 그저 시간만 때우고 봉급이나 기다리는 보통근로자는 부가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불황, 퇴출 등에 무기력하고 평생고용보다는 평생직장에 매달린다. 일하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근로자가 생성되는 것이다.최근 김완주 도지사와 도청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 쇄신 다짐대회'를 열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관행적인 회의 및 보고 줄이기 ▲회의방식 개선 ▲현장행정 활성화 ▲가족의 날 확대 ▲탄력적인 출ㆍ퇴근제 도입 ▲시간 외 수당 개선 ▲월례휴가 활성화 ▲유동정원제 시행 ▲사무 전결처리규칙 준수 등 쇄신방안도 내놓았다.아무리 뜯어봐도 진정한 일하는 방식 개선하고는 거리가 멀다. 도지사나 부서장이 마음 먹으면 해결될 일들을 놓고 굳이 다짐대회를 열면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전시행태를 개선하는 게 일하는 방법 개선이라는 걸 왜 모를까. / 이경재 논설위원
마늘의 효능에 대해서는 일찍이 널리 알려져 왔다. 특히 남성들에게는 강장제로 애용되어왔다. 그러나 마늘냄새는 한국사람 말고는 일반적으로 외국인에게는 고통을 주는 악취였다. 일제시대때 한국 학생들이 벌을 받기위해 교무실로 끌려가게 될 때는 일부러 마늘을 입에 잔뜩 물고 가면 마늘의 독한 냄새에 기가 질린 일본 선생들이 벌을 못주고 그만 내보냈다고 한다.마늘냄새를 제거하고 마늘 엑기스만을 상품화하여 팔기도 한다. 마늘이 정력에 좋은 것은 미국에서도 증명이 되기도 했다. 팔순(八旬)에 이르도록 정력적인 활동을 과시했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일리노어 여사는 기자들로부터 노익장의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그녀의 대답은 간결했다. '비결이란 다만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온 것이 있다. 수십년동안 마늘을 먹어온 것이 그것이다'고. 영부인의 이런 언급 때문인지 60년대에 미국에 일대 마늘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먹기 좋게 만든 당의정(糖衣錠)을 영부인의 이름을 따서 '일리노어 타블렛'이라고 까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미국에서 지난 70년대부터는 마늘이 위암과 간암에 좋다는 학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의 많은 암연구소가 마늘이 항(抗) 박테리아 효과를 갖는데다가 질산염이 아질산염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차단하여 암 발생을 억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경제 잡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마늘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기사를 실은 적도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은 연간 37만톤의 마늘을 먹고, 미국인은 7만톤, 남미가 14만톤, 프랑스가 7만1천톤, 서양에서 마늘을 가장 많이 먹는다는 스페인이 23만 5천톤, 한국 인구의 20배가 넘는 중국은 60만 2천톤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국은 마늘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유럽의 유명한 괴기영화 '드라큐라'에서는 마늘이 마귀를 쫓는 방편으로 나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인 웅녀(熊女)는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밤의 꿈'에서는 마늘을 또한 하층민의 냄새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마늘의 효능을 일찍이 발견했던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居寧懸·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사람이다. 그는 개 한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귀여워했다. 어느날 외출하는데 개도 또한 따라 나섰다. 개인이 술에 취해서 길가에 누워 잘 때 들불이 점차 번져 오게 되었다. 개는 곧 곁에 있는 냇물에 몸을 적셔 주위를 빙 둘러 풀과 잔디를 적시어 불길을 막아 놓고는 기운이 다하여 그만 죽고 말았다. 개인이 잠에서 깨어나 개가 한 자취를 보고는 슬프고 감동해서 노래를 지어 슬픔을 기록하고, 무덤을 만들어 장사 지낸 뒤에 지팡이를 꽂아 이것을 표했다. 그런데 이 지팡막대가 나무로 자라났기 때문에 그 땅을 이름하여 오수(큰 개 獒, 나무 樹)라고 했다.악보(樂譜)중에 견분곡(犬墳曲)이 이것이다.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人恥時爲畜)/ 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린다네(公然負大恩)./ 주인이 위태로울 때 주인 위해 죽지 않는다면(主危身不死)/ 어찌 족히 개와 한가지로 논할 수 있겠는가(安足犬同論)."이는 고려때 문장가 최자(崔滋)가 1254년에 지은 보한집(補閑集)에 실린 오수 의견(義犬)에 관한 내용이다. 일제 때부터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다.임실에서는 이를 널리 알리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1999년부터 220억 원을 투자해 오수견 육성 및 관광지 조성사업을 벌여 왔다.하지만 이 가운데 12억 원을 들여 추진한 오수견 복원사업 및 육종사업이 전북도 감사에서 지적되었다. "오수견에 대한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향후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토록 한 것이다.임실에서는 그동안 위원회를 만들어 각종 문헌과 민화, 고대 동북아지역 개의 혈통 등을 기초로 오수개가 '티벳탄 마스티프' 종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같은 종 20여 마리를 수입, 복원에 나섰다. 2008년에는 9마리를 오수견으로 공식 지정까지 했다.그러나 복원된 오수견은 애견협회나 애견연맹 또는 세계축견연맹 등에 공식적인 오수견으로 등록하지 못했다. 정식견종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복원된 개의 형태와 혈액 등이'티벳탄 마스티프'가 아닌 새로운 품종(오수견)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스토리텔링으로 훌륭한 소재지만 1000여 년전의 설화를 현실화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어느 나라든지 그 나름대로 속앓이의 문제점은 있다. 얼마 전에 미국 뉴욕타임즈가 한국을 가리켜 국가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라고 평한 바 있다. 한국의 높은 이혼율, 세계 제일의 자살률, 입시지옥, 지나친 폭음문화를 지적했던 것이다.한국의 이혼형태는 이제 황혼이혼까지 겹쳐, 세계 제일의 이혼 금메달국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자살률이 세계 최고로 하루 평균 자살자가 3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미수자까지 합치면 얼마가 될 지 모른다. 자살자가 많기로 유명했던 헝가리를 이미 앞섰다.더욱 가슴 아픈 대목은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제 1위인 것이다. 대학입시 지옥문 앞에서 스스로 자폭한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을 찬양한 바 있는데 그는 한국교육의 일면만을 보았던 것이다. 자녀들 조기유학을 위해 미국에까지 엄마가 따라와 뒷바라지 해주는 것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조기유학 뒤에는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라는 또다른 존재를 모르고 판단한 것이다.또 그는 한국인의 자녀 공교육은 인성교육·도덕교육과는 거리가 멀며, 치열한 사교육 현상을 모르고 한국인 교육열을 예찬한 것이다. 한국교육은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출세(出世)하는 사람을 만들기위한 교육제도 일 뿐이다.출세자는 돈과 권력을 함께 소유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인의 끝없는 탐욕은 한 분야에 성공한 것으로 만족치 못하고 남한테 왕처럼 군림 할 수 있는 출세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이런 출세가도(出世街道)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소위 서울의 SKY대학 입학을 목표로 학교공부가 끝난 후 저녁 10시까지 학원수업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또한 한국의 교육환경이다.그리고 폭음문화는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원래 전통 문화현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법이 없다. 우리의 폭음문화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에 여성들의 음주량이 많아지면서 폭음현상도 더욱 가열되었다.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반드시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이제는 호흡을 잠시 멈추고 어떤 형태의 사회가 이상적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다./ 장세균 논설위원
외지인들이 전북 사람들을 좋게 말해 양반이라고 평한다. 농경사회가 주축을 이뤘던 시절에는 전북이 먹고 살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나았다. 징개 맹개 외야미뜰 같은 너른 평야가 있어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경상도 사람들까지 먹고 살려고 이곳으로 유입됐으니까 말이다. 의식이 풍족해서 여유가 생겨나다 보니까 자연히 풍류를 즐기게 된 것이다. 이게 요즘 말하는 '예향 전북'의 뿌리가 된 것이다.그러나 산업화에 뒤처지면서 반대로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 산천을 등지고 떠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큰 공장이 없어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꽤 오래됐다. 최근들어 현대중공업·동양제철화학·일진그룹 등이 대규모 투자를 하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요즘에는 투자 한다고 해서 즉시 약발이 나타나지 않는다.최근 LH유치 실패를 보면서 전북이 이대로 가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순진무구하게 정부말만 곧이 곧대로 믿다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전북 사람들은 머리가 영리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합이 안되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남이 앞에 나서는 꼴도 못보고 뒤에서만 총질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무 위에다 올려놓고 마구 흔들어대는 사람만 늘었다. 관 눈치나 잘 살피면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잘 둘러대는 사람이 처세 잘하는 사람으로 통할 정도가 됐다.지역이 이렇게 된데는 정치력이 약해진데 연유한다. 중앙에 가서 누구 하나 큰 소리 한번 지를 사람도 없어졌다. 정치인의 강단과 기개가 사라졌다. 예전 같으면 유진산 이철승 송방용 윤제술 나용규 소선규 양일동 김판술씨 같은 쟁쟁한 정객들이 중앙 정치를 주름 잡았지 않았던가. 지금은 밖으로 뻗지 못하고 안으로만 쪼그라 들었다. 분통을 터뜨리고 싶어도 목에다 방울 달 사람조차 없다.전북인의 약점으로 뒷심 부족을 든 사람이 있다. 전북보다 뒤늦게 동계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강원도 평창이 3수(修) 끝에 영광을 거머쥔 것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된 도민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중앙 정치권과 재계가 총 출동해서 지원해준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도민들의 뒷심이 강했다. 지금 김완주 지사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시장·군수 통틀어 결기와 강단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백성일 주필
"고추도 3년 동안 한 곳에서 농사를 지었더니 잘 되지 않더라.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인물도 똑같다. 고인 물이 썩기 마련인 것처럼 한 인물이 오래하다 보면 나태해지고 부패하기 십상이다." 전주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한 지인은 내년 4.11총선을 앞두고 '호남 물갈이론'이 일자 농사를 빗대 이렇게 말했다.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호남물갈이론이 요즘 탄력받고 있다. 지난 10일 3선인 민주당 김효석 의원(담양 곡성 구례)이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포기와 수도권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다. 호남에서 3선,4선 하면서 단순히 선수(選數) 하나 쌓기 보다는 당이 필요로 하는, 의미있는 지역에 나가 싸우겠다는 비장감을 드러냈다.손학규 대표한테는 천군만마 격이다. 사실 지역구 불출마를 가장 먼저 선언한 인사는 당 대표 시절의 정세균 최고위원(진안 무주 장수 임실)이다. 대선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지역구에는 새 인물 영입의 물꼬를 트겠다는 포석이다.전주 완산에서 4선을 지낸 장영달 전 의원의 영남 출마 선언도 호남 중진들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겨냥한 지역구는 변호사 출신의 한나라당 조진래 의원(46·농수산식품위)이 포진해 있는 경남 의령· 함안· 합천이다.세명의 전· 현직 국회의원 행보는 혁신적이다. 손학규 대표의 '분당 을' 출마도 혁신적인 결정이었다. 정세균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민주당 변화의 중심은 호남에서의 혁신이 중요하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치는 민주당이 주도해 왔고 민주당은 호남정치가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맥이 끊기고 침체됐다는 지적들이 많다. 의정활동과 대여투쟁,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진단하고 처방하기 보다는 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에는 공천개혁과 야권통합을 이뤄내야 할 커다란 숙제가 있다. 지금보다 더 큰 혁신적인 결행이 필요하다. 민주당 텃밭에 기대 치열성도 없이 적당히 정치하는 인물은 갈아치워야 옳다.3선 이상 중진 국회의원과 정치 리더들중 누가 물갈이 대상이 될 것인지 벌써부터 흥미롭다. 지역구 옮기면 죽는 줄로만 아는 한 발전은 없다. 밀려나기 보다는 스스로 통 큰 결단을 내려 선구자가 되는 게 훨씬 나을텐데 말이다. / 이경재 논설위원
'알바'는 '아르바이트'의 준말이다. '아르바이트'는 원래 독일어 'Arbeit'인데 이말은 '노동, 업적'이라는 뜻으로 한 때 독일과 연합국이었던 일본이 사용했던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알바'로 줄여졌다. '알바'를 정의한다면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이 될 것이다.근래들어 청소년의 알바는 일반화되었다. 우리사회가 다양화되다 보니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청소년들이 단순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 것이다. 청소년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편의점, 음식점 등이다.그러나 사용자들이 알바 청소년들에게 노동관계법을 어기고 최저 임금마저 지급하지 않는 곳이 약 70% 정도로 조사되었다. 2007년 기준으로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3480원이었다. 과거 역사에서는 청소년을 혹독하게 부려먹은 예가 너무도 많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3년으로 잡았고 충분히 조심해서 사용하면 8년까지 사용 가능하다는 내용의 책도 있다.이 때 3년이니 8년이니 하는 기간은 청소년들에게 해당되는 시기이다. 나이 어린 노예들이 그만큼 혹사당했던 것이며 그들의 수명도 일반인들에 비해 극히 짧았다. 19세기 영국의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도 어린이들이 공장에서 낮은 임금과 더불어 힘든 노동에 시달렸다. 우리사회는 아직은 청소년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희박하다.지금 알바 시장의 현실은 최저임금 기준을 지키지 않으려는 다양한 편법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떼어먹기'는 기본이다는 것이다. 임금을 사용자가 안 주는 것이다. 그리고 '꺽기'가 있다. 흔히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데서 횡행한다고 한다. 근무 시간 중에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이 되면 알바생들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알바생들은 이 요구에 따라 오락실이나 PC방, 만화가게 같은 곳에서 시간을 메우고 오는데 이 시간만큼의 임금을 제외시키는 것이다.아직, 우리사회는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에 미숙하다. 지금도 일하는 사람을 농경사회에서의 '머슴' 정도로 인식한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인 임금을 머슴에게 주는 '새경'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청소년의 알바도 정당한 노동인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평창과 무주는 한때 라이벌 관계였다.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티켓을 놓고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을 벌였다. 벌써 10여 년전 일이다.전북은 1997년 세계 대학생들의 잔치인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무주와 전주에서 치렀다. 이를 성공적으로 치른 후 자신감을 얻자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마침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돼 물실호기였다. 측근이던 유종근 지사는 탄력을 받고 거침없이 나갔다. 1998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마란치 위원장도 한국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이에 이르자 전북은 그 해 7월 문화관광부와 한국올림픽위원회(KOC)에 유치신청서를 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무주의 국내 경쟁은 독무대였다.그런데 다크 호스가 나타났다. 강원도 평창이었다. 강원도는 1999년 치를 동계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김진선 부지사 등 관계자들이 일본을 방문했다.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운영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였다.일본의 동계올림픽 성공을 목격한 강원도는 동계아시안게임에 만족할 수 없었다. 더 큰 꿈을 향해 2000년 10월 정부에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전북보다 2년 3개월 늦게 출발한 것이다. 이 때부터 무주와 평창은 불꽃 튀기는 경쟁에 돌입했다.먼저 신청한 전북은 국내 후보지 결정을 떼어 놓은 당상으로 믿고 느긋해 했다. 유 지사는 국내보다는 해외로 나가 IOC 위원 접촉에 주력했다. 반면 강원도는 선발주자인 전북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한나라당과 체육계, 언론계 등을 파고 들었다.경쟁이 치열해지자 정부는 중재안을 냈다. 2010년에 평창, 2014년에 무주가 유치토록 한 것이다. 이후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평창은 중재안을 무시하고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재도전을 시도했다. 전북이 반발했으나 찻잔속 태풍이었다.이같은 과정을 겪으며 강원도는 3수(修)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이번 성공으로 한국은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월드컵축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스포츠 행사를 유치한 '그랜드 슬램'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6번째다.평창 유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전북의 분발을 촉구해 본다./ 조상진 논설위원
근래에 와서 한참동안 대학교 등록금이 너무 많다하여 반값 등록금 문제가 정치 쟁점화 되었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다 해도 기회만 있으면 폭발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약 85%가 되는 우리 교육현실에서는 충분한 사회문제 수준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의 취약한 재정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주 수입원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이다.호수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스위스는 국민 일인당 소득이 4만달러를 넘어섰지만 대학 진학률은 고작 27%에 불과하다.스위스 사람들은 대학은 물론 평생교육 체계와 함께 매우 발달된 자영업을 중심으로 '장인(匠人)' 즉 '마에스트로'시스템을 통해서 중산층을 배출한다. 스위스 시계나 맥가이버 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 주머니칼은 바로 스위스의 '마에스트로' 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지금은 직업의식의 변화가 있지만 전에는 물건 만드는것을 천업(賤業)으로 알고 멸시했다.대학을 운영하는 형태를 미국형과 유럽형으로 크게 나눈다. 미국 대학의 효시(嚆矢)는 하버드 대학이고 하버드 대학은 국가가 세운 국립대학이 아니라 휼륭한 신부를 배출하고자 세워진 사립대학이다. 미국의 많은 사립대학들은 여러 형태의 풍부한 장학 재단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뜻있는 많은 독지가(篤志家)들이 자기들의 재산 일부를 기증하여 만든 것이다. 대학생들은 이런 장학재단이 주는 혜택 속에서 공부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기부문화에서는 후진성을 탈피 못하고 있다. 경주 최부자가 유명한 것과는 반대로 조선 대부분의 부호(富豪)들은 탐욕스럽기로도 유명했다. 유럽의 대학들은 미국처럼 거부(巨富)들의 기부에 의존치 않고 대학제도 개혁에 명운(命運)을 걸었다. 유럽은 사립대학들을 국립대학으로 전환시켜 국가 재정으로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일본은 어정쩡하게 문부성의 장학금을 늘리는 것으로 점진적 해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립대학 제도는 무늬는 미국식이지만 각종 장학재단이 너무도 빈약하다. 그렇다고 미국의 부자처럼 한국의 부자들이 쉽사리 그들의 지갑을 열지는 않을 것 같다./ 장세균 논설위원
요즘처럼 무더운 때는 기운이 빠진다. 의욕이 없어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 쉬고만 싶다. 가볍게 운동을 해서 원기를 추스를 수 있지만 삼복더위를 잘 나려면 섭생이 더 중요하다. 한방에서는 여름이면 나무나 풀이 울창하게 피어나는 것처럼 몸의 양기가 바깥으로 나오고 음기는 뱃속 깊숙한 곳으로 숨는다고 한다. 여기에 여름에는 찬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몸속은 점점 차가워지게 된다. 속이 차가우면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설사도 잦아져 몸의 기운이 떨어지고 저항력도 약해지게 된다. 그래서 뜨거운 보양식을 먹는다.우리나라 보양식 개념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복날 보양식의 대명사인 개고기는 불(火)에 해당하고 복날은 쇠(金)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로써 쇠를 이겨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처럼 보양식하면 닭, 개, 장어 따위가 자웅을 겨뤘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이들은 민어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백성의 물고기라는 의미를 가졌으면서도 정작 백성은 가까이 하기 힘들었다. "삼복더위에 양반은 민어를 먹고 상놈은 보신탕을 먹는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민어는 여름에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민어는 생선이지만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다. 가시가 적고 살이 많아 먹기가 편하다. 6월 중순부터 7월말 알 배기 직전까지는 암컷이 맛 있고 8월초 암컷이 알을 배기 시작한 후부터는 수컷이 더 낫다. 민어회는 식감이 좋아 도톰하게 썰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씹을수록 살에서 단맛이 배어나와 입안에 감돈다. 포를 떠서 회와 전으로 먹고 남은 살과 머리 뼈로는 매운탕을 끓인다. 그래서 민어탕은 홍어애탕과 더불어 '탕중왕'이다. 정약전이 일찍이 갈파한 것처럼 "맛이 담담하면서도 달아"어떻게 해먹어도 훈감하다.다음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찾지만 계삼탕이 맞다. 닭이 주재료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계삼탕은 결국 무슨 닭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값비싼 산삼을 넣으면 뭐하나. 닭이 엉터리라면 말짱 황이다. 옻 엄나무 영지버섯 등 별별 것을 다 넣어도 그건 마찬가지다. 계삼탕의 닭은 보통 두세달 키운 영계가 제격이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삼계탕은 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지만 아무래도 옛맛은 아니다. 민어탕이든 무슨 음식이든지간에 여름철에는 잘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돈 때문에 요양원 보내지도 못하고 집에서 인지치료, 운동치료 하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재활병원 다니고 수술하고 간병인 쓰고, 집 담보로 다 쓰고 나니까 이젠 집도 없고…" 4년째 치매 걸린 남편을 수발하는 50대 아내가 남긴 글이다.치매가족협회 홈페이지(www.alzza.or.kr)에는 이런 글들이 많다. "식사도 하지 않고 하루에 4~5번은 서럽게 우신다. 언어가 안돼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치매환자는 밥을 막 먹고 난 뒤에도 "왜 밥을 주지 않느냐"고 타박을 하기도 하고 밥을 갖다 주면 "아까 밥을 주고 또 주느냐"며 정색을 하기도 한다. 있지도 않은 일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릴 해대기도 한다.치매가 뇌의 질환이라는 걸 규명한 사람이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츠하이머다. 알츠하이머는 1906년 노망 걸린 50대 여자의 증상이 악화돼 죽음에 이른 과정을 4년간 추적 조사 끝에 뇌신경 조직의 손상이 원인이라는 걸 밝혀냈다. 그래서 퇴행성 치매를 알츠하이머 병으로 부른다. 치매환자중 알츠하이머 병에 의한 것이 50∼60%를 차지한다. 혈관성 치매가 20∼30%, 나머지 10∼30%는 우울증이나 약물· 알코올· 화학물질 중독 등에 의해 발병한다.치매는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 언어능력, 판단력, 사고력 등 지적 기능이 저하돼 있는 상태를 이른다. 죽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갈뿐 잘 낫지도 않는다. 가족은 절망감에 휩싸이고 풍비박산되기 십상이다. 이런 걸 아는 치매 당사자도 고통스럽다.생전에 레이건은 "인생의 황혼으로 살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겠다."며 치매 걸린 사실을 고백했고,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도 "기억에 남아있을 때 작별하고 싶다."며 비디오테이프로 기자회견을 했다. 치매가 얼마나 끔찍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치매환자가 2020년이면 노인 10명당 한명꼴이 될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전북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도내 치매환자는 2만5,000여명에 이른다.치매의 끔찍성을 생각한다면 치매는 이제 사회문제로 대응해야 옳다. 최근 전북치매관리센터가 전주에 문을 연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치매예방과 치료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단지 노화현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 이경재 논설위원
지난 6월 25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태국은 지상군 4000명을 비롯해서 육·해·공군을 6·25 전쟁에 파병한 나라이다. 지금은 골프관광 선호국으로 한국 골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태국과 우리와의 인연의 역사는 오래이다. 1451년에 작성된 고려왕조의 연대기인 '고려사'에서 공양왕 3년, 1391년 음력 7월에 '섬라곡' 왕국이 '나이공' 등 여덟 명을 고려에 보내어 토산물 등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언급되는 '섬라곡(暹羅斛 )'은 지금의 태국을 가르킨다. '섬라곡'은 태국의 옛 명칭인 '시암'을 지칭하기도 한다.고려에서는 일찍이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을 통해서 '섬라곡'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373년 중국에서 돌아온 사신의 보고를 통해서 '섬라곡'이 안남(安南),즉 베트남과 진랍(眞臘), 즉 캄보디아 등과 함께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중국 변방의 나라로 알게 되었다.'조선왕조 실록' 중의 '태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듬해인 1393년 음력 6월16일에 '섬라곡 왕국은 그의 신하인 '나이장소도' 등 20명을 보내와 소목(蘇木) 1천근과 속향(束香) 1천근 그리고 토인(土人) 2명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왕은 이 두사람의 토인을 궁궐문을 지키도록 명령했다고 한다.이때 언급되는 토인 2명은 말레이 반도의 남부지역이나 인도네시아 섬들 가운데 하나에 살던 말레이 원주민으로 노예로 붙잡혔거나 팔려 태국 무역선에 실려서 조선에 오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당시 이 지역을 여행했던 포루투갈 사람 '토므 피르스' 여행기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 당시 남중국해 해안에서는 광범위하게 노예무역이 행해졌는데 태국도 노동력 획득의 방법으로 노예매매에 참가했던 것이다.1395년 조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절단을 태국에 파견했던 것으로 '태조실록'에 나온다. 그러나 태조 초기에는 태국과의 무역에 적극성을 보였으나 일본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인적·물적 피해를 경험한 조선 조정은 태국과의 무역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이제 태국은 한국인에게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장세균 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