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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물이 솟는 샘물 가에서/ 캐고 따고 하는 건 미나리니라." 시경(詩經)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중국에서는 2500여 년 전에 이미 미나리가 식용 또는 약용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인도차이나가 원산인 미나리는 고려사 열전에 미나리밭(芹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식용했음이 확인된다.다년초인 미나리는 가을에 순을 잘라 뿌려두면 물기가 있는 곳이나 냇가에서 잘 자란다.이 미나리는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으나 전주 미나리가 특히 유명하다. 경상도 화악산 골짜기에서 생산되는 한재미나리나 언양미나리도 이름이 있으나 옛부터 전주 미나리를 제일로 쳤다. 전주 미나리는 굵고 길 뿐 아니라 겨우내 물속에서 자라 줄기가 연하고 진녹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해독작용과 지혈에도 탁월하다.선조 4년(1571)에 전라감사로 부임했던 유희춘(柳希春)의 시조는 그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미나리 한 떨기를 캐여서 씻우이다/ 년대 아니야 우리 님께 받자오이다/ 맛이야 긴치 아니커니와 다시 씹어 보소서."이 시조는 유 감사가 봉안사(奉安使)로 전주에 온 박화숙과 진안루(鎭安樓)에서 술을 마시며 읊은 것이다. 조촐한 술상임을 말하면서도 전주 미나리를 자랑하고 있다.지금 전주 미나리는 전미동 호성동 평화동 효자동 등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전주 8미(味)'의 하나인 미나리는 '서원 넘어' 미나리를 꼽았다. 서원은 현재 신흥고 자리에 있었던 화산서원(華山書院)을 가리킨다. 화산동 고개를 넘으면 물씬 미나리 향취가 코를 찔렀다. 미나리꽝이 많았기 때문이다.미나리는 연중 이용하는 채소지만 제철을 챙기자면 아무래도 봄철이 제격이다. 독특한 향미가 있어 이른 봄철에 식욕을 증진시켜 주고, 비타민 B군이 많아 춘곤증에 좋다. 대개 삶거나 데쳐 나물로 무쳐 먹으며 생미나리를 김치·물김치에 넣으면 특유의 청량미를 낸다. 생선찌개에는 최고의 부재료요, 미나리생채 쌈 강회 등도 별미다. 미나리 강회는 잘게 썬 편육이나 제육에다 실고추와 잣을 얹고 이것을 데친 미나리 줄기로 감아낸 것이다. 술안주나 반찬으로 일품이다.미나리는 옛 민요처럼 '살랑살랑(왈랑왈랑) 끓는 물에/ 아주 담박 데쳐내어' 먹어야 한다. 일교차가 크고 입맛이 없는 계절에 살찐 미나리 봄동으로 식욕을 돋워주면 어떨까./ 조상진 논설위원
우리는 지금 성형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한국 여대생의 60%이상이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성형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본 여자들이 단체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에 와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성형수술을 하고 가는 것이다.우리나라 여자는 성형한 사실을 당당히 고백하는데 일본여자들은 성형을 숨긴다고 한다. 두 나라 문화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영국의 어느 유명한 정신분석학자는 한국여성들의 과도한 성형수술 붐은 '자기 몸에 대한 증오'와 '잘못된 서구화 관념' 때문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여자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절제 안된 본능은 자칫 추태로 연결된다. 요즈음 여자들의 이상형은 서구적 미인이다. 서양사람들은 1820년에 그리스 남쪽 에게해의 밀로섬에서 출토된 밀로의 비너스상을 미(美)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1차대전 후에 시작된 미스 아메리카, 미스 월드, 미스 유니버스의 선정기준도 바로 밀로의 비너스상이 갖춘 육체조건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소위 이 비너스의 바스트가 37인치, 웨스트가 26인치 히프가 38인치이다. 즉, 37-26-38이 서구적 미인의 조건이다. 최초의 미스 아메리카는 30-25-32였다는데 이는 너무 왜소한 체구였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육체가 발달하여 2차대전 후에 미스 아메리카로 뽑힌 마가렛양은 37-24-36이었다고 해서 언론으로부터 '그녀 이전에 그녀가 없고 그녀 이후에 그녀가 없다'는 극찬도 받았다.그 이후 많은 미녀선발대회 우승자들이 비너스의 조건에 접근해가고 있다. 옛 우리 선조들은 미인의 조건으로 3백(三白: 결·이·손), 3흑(三黑: 눈동자·눈썹·머리카락) 3홍(三紅: 입술·볼·손톱), 3장(三長: 키·머리카락·팔다리), 3단(三短: 이·귓볼·발), 3광(三廣: 가슴·이마·미간), 3협(三狹: 입·허리·발목), 3비(三肥: 엉덩이·허벅지·유방), 3세(三細: 손가락·목·콧날), 3소(三小: 머리·턱·코) 등 30가지를 보았다고 한다.요즈음 사람들의 미감(美感)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옛 우리 선조들은 특히 조그만 코와 작은 두상의 여자를 여성미가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지금은 콧대를 높여 큰 코로 성형을 하다보니 여성미를 잃고 있어 안타깝다./ 장세균 논설위원
기자들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불규칙한 생활속에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기 때문이다.기자들은 날마다 기사 마감시간에 쫓겨 피마른 시간을 보낸다.생각해보라.사람이 피가 마른다면 그것은 사는 길이 아니고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경쟁속에서 매번 승부가 결정나기 때문이다.그래서 기사 마감시간을 오죽했으면 데드 라인(Dead Line)이라고 했겠는가.지방지는 다르지만 서울에서 발행하는 중앙지는 하루에 5~6번 정도의 판갈이를 하기 때문에 그 만큼 특종기사를 싣기 위해 피를 말린다.어떤 기자든 자신이 취재하거나 편집한 기사들이 다른 신문과 바로 그날 비교가 이뤄져 단번에 우열이 판가름 난다.자신의 노동이 바로 그날 평가가 되는 것이다.그래서 신문기자들은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가다"라며 자조하기도 한다.언론계 승패의 세계는 냉혹하다.특종한 기자는 상 받지만 낙종 기자는 독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공직자들은 훈장 받으면 설령 나쁜 짓 하다 적발돼서 징계 받을 때 정상 참작이 이뤄지지만 언론계는 그런 게 없다.긴장속에서 살다보니까 자연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자리가 잦다.요즘에는 건강을 챙기는 기자들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술 담배에 찌들다 보니까 맘의 여유가 없어졌다.가정적으로 보면 낙제생들이다.그러나 사회의 파수꾼이라는 그 자부심 하나로 살았다.요즘 사회에서 바라다 보는 기자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왜 하필 편하고 쉬운 길 다 놔두고 이 길을 택했는지 하면서 말이다.그러나 오늘도 발이 닳도록 열심히 뛰는 기자들이 있다.이 사회는 그냥 놔두면 썩어 문드러지게 돼 있다.언론의 환경감시기능과 비판기능은 더 날카로와야 한다.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성을 잃지 않게 된다.언론인들은 종교인 교수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고위공직자 작가 예술인에 비해 평균수명이 많게는 10살서 2살까지 짧다.남의 일에 제3자로 감놔라 배놔라 끼어들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내일이 신문의 날이다.소셜 네트워크 출현으로 신문의 역할이 축소된듯 보이지만 그래도 신문 봐야 세상돌아 가는 줄 안다는 사람이 있다./ 백성일주필
전주가 자랑하는 음식 세가지를 꼽으라면 비빔밥과 한정식, 콩나물 국밥을 들 수 있겠다. 전주는 오래전부터 콩나물을 요리에 많이 이용했다. 전주에서 재배된 콩나물은 철분 함량이 많고 줄기가 통통하며 맛도 좋고 영양분이 풍부해 전주 8미(味)로 불렸다. 전주 8미를 이용한 대표적 음식이 콩나물 국밥이다.술 마시고 속 쓰릴 때 찾는 해장국으로 북엇국이나 홍합탕 등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콩나물국만한 게 없다. 만들기 쉽고 숙취 해소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콩나물에는 아미노산과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콩나물에 관한 기록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양나라 때 도홍경이 쓴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에 '황권'(黃券)이라는 약재가 등장하는데, '콩에서 나온 새싹을 말린 것'이라고 했으니 바로 콩나물이다. 위 속의 열을 내리는 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 '황권'을 복용하는 방법으로 끓여서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의 '음식이야기' 중에서)콩나물을 끓여서 먹으니 콩나물국이고, 위의 열을 식히는 데 좋다고 했으니 콩나물 국은 이미 1500년 전부터 과학적 근거를 가진 최고의 해장국이었던 것이다.그 중에서도 전주 콩나물국이 유명하다. 사학자 최남선은 평양의 냉면, 강릉의 방풍죽, 의주의 큰만두와 전주 콩나물을 지역 명식(明食)으로 꼽았고('조선문답상식'), 조선 개화기 때 잡지인 별건곤(1929년 12월호)은 서울의 설렁탕, 평양의 어복쟁반과 전주의 콩나물 국밥을 서민 3대 명물 음식으로 쳤다. 전주 콩나물이 유명한 건 좋은 수질과 토질 때문이란 게 정설이다.이런 명성을 이으려는 듯, 콩나물 생산업체인 전주콩나물영농조합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전국 시장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콩나물 단일 품목으로는 풀무원에 이어 전국 두번째 규모라고 한다.그런데 유통망이 문제다. 안세경 전주부시장이 '막(걸리)프로젝트'를 통해 전주부터 시작해 전국적인 막걸리 붐을 일으켰지만 과실은 대기업이 가져가고 있지 않은가. 전주 콩나물 만큼은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부 지역 음식점들이 전주 콩나물을 쓰지 않는 것도 문제다. / 이경재 논설위원
친일파가 일제 강점기 전후에 취득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정이 나왔다. 문제제기를 했던 친일 후손들이야 불만이 많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에 동의할 것이다.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이완용이 일등 매국노라면 이용구(李容九)는 거기에 버금가는 매국노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인지 이완용의 무덤은 이미 파묘(破墓)되어 흔적이 없다 하고 이용구의 유일한 혈손(血孫)이었던 이석규(李碩奎)라는 사람은 일본에서 정신파탄자로 방황하다가 77세로 객사했다고 한다.이것을 두고 악인악과(惡因惡果)요 선인선과(善因善果)라고나 해야할 것이다. 일본은 송병준이라는 사람을 내세워 친일 어용단체를 만들게 했는데 그것이 유명한 일진회(一進會)이고 이용구가 일진회 회장을 맡은바 있다. 그 당시 일진회 회원이 100만명이라고 자랑했다는데 이것은 근거없는 유령숫자라고 한다. 그 당시 조선 인구는 2000만명이었는데 인구의 절반은 미성년이었을 것이고 성년은 아마 1000만명, 그중에서도 여자가 절반이라면 성년 남자는 줄잡아 500만명이었을 것이다. 일진회 회원이 100만명이라면 조선인 다섯 명 중에 한 사람이 친일파였다는 셈이되는데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일진회는 한일합방(韓日合邦) 전에 조선과 일본이 서로 합쳐야 한다는 내용의 한일합방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한일합방이 되자 공로금조로 일진회가 받은 돈이 그 당시 돈으로 15만원이었다고 하며 그 돈을 약 300명의 회원들이 분배받았다고 한다.합병의사를 굳힌 1909년에 일본의 이토오 히로부미는 이용구와 송병준(宋秉畯)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향응을 베풀어 주었다고 하며 그 당시 돈으로 각각 5000원씩 위로금을 주었다고 한다.그런 후 2년 뒤 이용구는 핏줄인 딸 하나와 아들 석규를 남기고 갑자기 사망했다. 송병준이 이용구의 아들 석규를 일본 명고옥(名古屋)의 산사(山寺)에 맡겨 기르게 했는데 그동안 수십명의 양육자를 바꿔가며 자란 그는 대학까지 다니다 말았지만 매국노의 아들이란 주위의 눈총 때문에 방탕과 자살기도를 일삼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무국적자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노후는 분명히 신속하다. 하여간 우리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속히 다가온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말이다.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늙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자녀 교육비 마련과 결혼 준비 등으로 허리가 휘는 사이 몸은 어느 덧 노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이와 관련 최근 2개의 보고서가 나왔다. 하나는 한국금융연구원이, 또 하나는 국민연금연구원이 펴낸 것이다.한국금융연구원은 "2050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38.2%에 달하면서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4세 미만 인구대비 고령인구의 비율인 노령화지수도 2020년에 125.9로 상승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2050년에는 429.3에 이르게 돼 일본과 독일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고령화의 빠른 진전에도 사회구조의 변화, 공·사적 연금 시스템의 미흡 등으로 고령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그리고 국민연금연구원은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50대 이상 중·고령자 10명 가운데 7명(68.2%)은 노후준비를 전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5209가구를 대상으로 제3차 국민노후보장 패널조사를 한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최소의 평균 노후생활비로 개인 기준 75만9000원, 부부기준 121만원이라고 대답했다.노후생활비 마련 방법은 본인 및 배우자의 공적 연금이 29.0%로 가장 많았고 근로생활을 통한 소득이 23.7%, 부동산 투자 15.1%, 적금 및 예금 14.8% 순이었다. 더불어 중고령층 가운데 88.2%가 자녀와의 동거를 원하지 않았다.이제는 수명 연장으로 부모밑에서 30년, 부모 노릇하며 30년, 그리고 60세 부터 시작하는 또 다른 30년을 보내야 한다. 나 자신 또는 부부만의 노후 30년이다.이 마지막 30년은 준비하지 않으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돈 뿐만 아니라 시간관리, 가족관계 등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얼마 전 미래에셋이 제시한 노후준비 신(新)트렌드 14가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 첫째는 "돈이면 된다? No, 일이 있어야 한다"였다.쉽지 않은 일이나, 노후 4고(苦), 즉 가난 질병 역할상실 고독을 벗기 위해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조상진 논설위원
대지진으로 일본은 엄청난 휴유증을 앓고 있다. 우리는 정신대 할머니들까지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하필 이 때, 독도가 자기땅이라는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발간하겠다고 했다. 일본 총리는 한국정부에 양해를 구했다. 가까운 일본이지만 민족성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한국인에게 멋진 인간은 강자(强者)에게 강하고 약자(弱者)에게는 온정을 베푸는 사람을 말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직언을 하고 밑에 부하들에게는 포용력을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사람이 바다건너 일본에 가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일본인에게 멋진 인간은 한국과는 반대이다.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사람이 멋지다. 일본인의 인간관이 이렇듯 우리하고 다른 이유는 그들의 오래된 사회질서와 사회제도에서 온 것 같다.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 100년을 일본은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일본열도에 약 100명의 영주들이 자기 영토 확장을 위해 혈안이 되었으며 전투로 편할 날이 없는 극도의 혼란기였다.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한 치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는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를 제압하는 방식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소위 무사라는 사무라이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영주밑에서 충성을 다했다. 이렇듯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를 굴복시키는 심성이 유전인자로 변해 오늘의 일본인 DNA에 남겨진 것이 아닐까 한다.우리는 조선 시대에 권력의 최정점인 왕에게도 직언을 하도록 대간제도를 두었다. 사간원(司諫院)은 왕이 듣기싫은 말도 직언하도록 신분을 보장하는 그런 국가제도였다. 그래서 강자에게도 강하게 나갈 수 있는 사회적 보장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최고 권력자인 중앙의 쇼군 밑에 있는 사무라이가 직언을 할 때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서양 사람들도 그 민족성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든다면 영국 사람은 걸으면서 길을 생각하고, 프랑스 사람은 다 걸은 다음에 생각하고 독일 사람은 길을 생각한 다음 걷는다는 것이다. 이번의 일본 대지진 사건은 일본인 민족성의 지층을 들어내기도 했다./ 장세균 논설위원
요즘 전북이 동네북 신세다. 넉달 가까이 중앙 민노총 사람들이 전주 시내버스 파업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출퇴근 때마다 겪는 고통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새 봄이 오면 풀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직도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러다가는 7월까지 갈 수 있다. 시민들은 파업에 대한 원성이 높다. 광주나 타 지역 같았으면 이렇게 파업이 길게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좋게 말해 전주 사람들이 너무 양반들이라서 참고 견디기 때문에 장기화 됐다고 한다. 한 쪽에서는 너무 물러 터졌기 때문에 전주 사람들을 깔보고 파업한 것이라고 한다. 전주는 아직도 농경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전남이나 제주도처럼 유배지도 아니어서 후예들 가운데 저항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농사만 짓고 살다 보니까 인심이 순후하다. 대규모 공장이 별로 없어 타지 사람도 많지 않다.전반적으로 지역민의 성격이 온순하다 보니까 정과 눈물에 약하다. 손해를 봤으면 봤지 이익을 못 챙기는 사람들이다. 남 해코지 할 줄도 모른다. 형님 동생하는 문화가 판친다. 의리를 중시하는 양반문화가 만연해 있다. 자연히 먹고 살기가 어렵다. 실리를 챙기는 악착스런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형식과 겉치레를 따진다. 찬물 마시고 이 쑤시는 습성들이 남아 있다.그간 의좋게 지냈던 광주·전남 사람들까지도 전북을 무시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전북인들은 광주나 전남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이웃사촌이라는 생각하고 한솥밥 먹는 사람처럼 여겨왔다. 광주나 전남 사람들은 누군가. 그들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무고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총칼에 쓰러진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들은 피 흘려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래서 지금도 1등 시·도민으로 추앙 받는다.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최근 전남지사와 광주시장이 한통속으로 똘똘 뭉쳐 전북을 고립무원 상태로 만들고 있다. 전북에 있는 공공행정기관은 물론 무안국제공항의 항공수요가 없는 것을 엉뚱하게도 전북에 화풀이 하고 나섰다. 전남사람들은 경제성이 김제공항보다 더 떨어지는 무안공항을 무리해서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 항공수요가 없자 군산공항을 발목 잡고 나선 것이다. 전남 국회의원들이 새만금사업을 발목 잡았어도 전북 사람들은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다. 진정한 이웃이라면 금도(襟度)라는 게 있는 법이다./ 백성일 주필
"33년생 공로연수, 34년생 명예퇴직 '내무부 지시'…공직사회 파문" 1993년 11월27일자 신문은 공로연수 강제 시행과 반발내용을 사회면 톱기사로 싣고 있다. "서기관급 이상 100여명선 대상, 불응 땐 보직해임 대기발령"이란 부제가 달렸다.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공무원 공로연수제도 시행 첫해의 분위기다. 내무부(지금의 행정안전부)는 연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정년을 1년 앞둔 서기관급 이상 공직자를 대상으로 공로연수 신청을 받도록 전국의 각 자치단체에 지시했다. 공로연수에다 명예퇴직까지 강제하니 꼭 사정(司正)처럼 비쳐졌다.해당 공직자들은 정년 보장 위배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33, 34년생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과제로 대두된 뒤 공채로 임용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저항이 더욱 컸다.인사 주무과장인 총무과장은 인사때마다 대상자를 찾아가 읍소하며 공로연수 동의를 받느라 죽을 맛이었다. "선배 몰아내고 잘 되는가 보자, 너는 나이 안먹느냐" 는 등의 갖은 핀잔을 들어야 했다.공로연수에 안들어가려 버티는 대상자들, 선배들이 자리에 연연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후배 공무원들, 공로연수 동의 받으러 온갖 수단을 동원하던 인사부서 근무자들. 지금도 눈에 선하다.공로연수는 자격증이나 취업정보· 기술 등 사회적응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년 1년을 앞두고 공직수행을 그만 두게 한 제도다. 무슨 공로를 끼쳤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지만 취지는 그럴 듯 했다.그러나 '안방 근무'로 변질됐고 사실상 정년을 1년 앞당긴 제도가 되고 말았다. 놀리면서 매월 수백만원씩의 월급을 주니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도 어긋난다.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전북도는 공로연수자를 유관기관이나 지원기관· 기업체 등에 파견근무시키겠다고 했다. 정읍시는 하반기부터 근무경력 등을 고려해 '문화시설소통관' '복지시설소통관' '체육시설소통관' 등 3개 분야의 소통관으로 임명할 계획이다.궁여지책이겠으나 탁상에서 머리 굴린 전시적인 시책이다. 옥상옥이 될 수도 있다. 탁상행정의 헛점은 현실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인력을 사장시키고 소중한 혈세를 낭비시키는 이 제도는 폐지하는 게 정답이다. / 이경재 논설위원
'역사의 연구'라는 책을 쓴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기술은 남의 나라로부터 쉽게 배울 수 있지만 남의 문화를 수용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서양인들의 절제된 음주문화를 익히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학기 대학 MT에서 선배에게 폭행을 당한 후배가 결국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부산 모 대학에서 학생들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선배 한 명이 기강을 잡는답시고 후배를 폭행했는데 그것이 사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학생들의 비뚤어진 음주문화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개선의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폭음문화가 그대로 대학사회까지 이어진 것이다.여기에다 대입공부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신입생들이 대학 문턱을 넘자 자제력을 잃고 폭음에 빠진 것이다. 한 때 한국이 세계 위스키 전체 소비량의 4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마치 위스키를 마시는 행위는 맛보다는 신분상승의 한 표시이기도 했다.스위스의 알코올 전문가, 발트 부르크 박사에 의하면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B1형으로써 알코올 분해속도가 B2형에 비해서 느리다는 것인데 유럽 사람들은 B1형에 해당하고 한국인은 알코올 분해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B2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조상님의 유전자 덕분인지 모르겠다.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어에 의하면 음주문화에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작문화(自酌文化)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만 따라서 먹는 것을 말한다. 서양의 음주문화를 지칭한다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대작문화(對酌文化)이다. 러시아나 중국사람처럼 자기 술잔을 들어올려 건배를 하는 음주문화이다. 세 번째가 수작문화(酬酌文化)이다. 술잔을 주고받는 문화이다. 수작문화는 오로지 한국인이 있을뿐이다.수작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똑같은 양의 술을 서로가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술자리 주당의 주량(酒量)을 따라가야 하는 반 강제성을 띤 음주행태이다. 이러다 보니 주량이 약한 사람은 술이 취해 곤드래 만드래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곤드레 만드레의 추태(醜態)를 애교로도 봐주었다. 수작문화에 변화가 있어야겠다./ 장세균 논설위원
지난 11일 일본을 강타한 진도 9의 강진과 쓰나미는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벌써 2만 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갔고 천문학적인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더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제사회를 불안에 떨게하고 있다.그러면 우리는 안전할까. 나아가 전주지역은 어떨까.학자들은 "일본은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필리핀판 등 3개 지각판이 만나는 경계면에 있어 지진이 잦은 반면 유라시아판에 위치한 한반도는 지각판의 경계면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한다.하지만 옛 문헌을 보면 안심할 정도는 아닌듯 하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9년(1668년) 6월 23일 기록은 다음과 같다."평안도 철산에서 바닷물이 크게 넘치고 지진이 일어나 지붕의 기와가 모두 기울어졌으며 사람이 더러 놀라 엎어지기도 했다. 평양부와 황해도 해주ㆍ안악ㆍ연악…, 경상도 창원ㆍ웅천, 충청도 홍산, 전라도 김제(金堤)ㆍ강진(康津) 등지에서 같은 날 지진이 있었다. 예조가 중앙에 단(壇)을 설치하고 향과 폐백을 내려보내 해괴제(解怪祭·사악함을 물리치는 의식)를 지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따랐다."이 보다 앞서 효종1년(1649년) 11월 6일 기록에는 "전남도의 부안ㆍ함열ㆍ옥구ㆍ무장ㆍ만경ㆍ고부 등지의 여섯 고을에 해일이 일어나고 여산과 함열에서는 지진이 발생했다"고 적혀 있다.뿐만 아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전주도 언급돼 있다. "顯宗五年夏全州地震·八年四月地震…"등이 그것이다. 현종 5년이면 1664년이다. 또 "肅宗四年平壤 三和 全州 鎭安 谷城 求禮 地震" 기록도 있다. 1678년으로, 이 해엔 전주일원 동남쪽 지리산 고원에 꽤 광범위한 지진이 있었던 모양이다.우리나라 최초의 지진 기록은 삼국사기로, 서기 34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샘이 솟았다"고 되어 있다. 혜공왕 15년(779년)에는 "지진으로 가옥이 무너지고 사망자가 100여 명이며, 사좌좌와 같은 자리 100자리를 만들어 놓고 높은 스님을 모시고 설법으로 큰 법회를 열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또 고려사에는 "불국사와 석가탑이 지진으로 무너져 다시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우리나라 지진은 문헌상 삼국사기에 107건, 고려사및 고려사절요에 194건, 조선왕조실록에 1967건의 기록이 있다. 불가항력이긴 하나 지진 대비도 불여튼튼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너무도 모른다.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임진왜란 전에 대마도 도주가 일본의 한반도 침략 준비를 알려주었어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일본 실정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과도 비슷하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보다 우리 역사를 더 연구하고 있다.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본격적으로 서구화·공업화에 몰입했고 주변국에 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일본도 1945년 8월6일, '리틀보이 (Little boy)'라는 우라늄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져 약 16만6000명의 사망자를 냈고 13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3일 후에는 다시 일본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라는 플로토늄 원자폭탄이 떨어져 8만명의 사망자를 냈다.그 후,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일본인의 근면과 노력으로 세계 경제대국 2위로 올라서는 국민적 힘을 발휘했다. 일본인들은 직장을 평생의 일터로 생각하고 돈을 벌면 집부터 사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늘린다. 직장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다. 직장의 간부가 부하의 잘못을 책임지고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자살을 많이 하는 한국의 청소년들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의 힘은 그들의 기업의식에서도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고구려·백제·신라 때인 서기 578년에 창업된 일본의 '콘고구미 (금강조·金剛組)'라는 건축회사가 바로 그것이다.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 장수기업이다.이외에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2위와 3위를 보유하고 있다. 서기 708년에 창업한 여관업의 '케이운칸 (경운관·慶雲館)'과 718년에 창업한 여관업인 '호시 (법사·法師)'다. 참고로 세계 4위의 오래된 기업은 독일의 와인제조 기업인 '슬로스 요아니스베르크(Schloss Johannisberg)'로서 786년에 창업되었다고 한다.장수기업이란 100년 이상된 기업을 말하는데 일본에서 100년 이상 오래된 기업은 5만개이고 200년 이상의 기업만 해도 3146개나 된다고 한다. 우리는 고작 '활명수'로 잘 알려진 동화약품이 1897년에 창업된 정도이다. 오늘의 일본 대지진이 일본을 주저앉히지는 않을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워 따스한 봄이 기다려진다. 하얀 백목련이 피는 날을 결혼날짜로 잡아 놓은 예비 신랑 신부가 많다. 설레기 보다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연애결혼 할 사람은 그래도 낫다. 양가의 사정을 헤아려서 혼수를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매결혼 할 사람은 조건을 따져 결혼하므로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때로는 혼수 문제로 파경까지 맞는다.속칭 사짜를 신랑으로 맞이하려면 열쇠 타령을 듣게 된다. 병원을 개업해 주어야 하고 아파트를 구입해 가야 하는 등 자질구레한 조건이 많다. 정작 당사자들은 별로 생각이 없는데 부모들이 더 극성스럽다. 선을 자주 본 사람은 더 좋은 조건을 놓고 자신도 모르게 저울질 한다. 중매쟁이는 없는 말 있는 말 다해가며 한건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지만 결론은 현실 문제로 귀결된다. 열쇠가 몇 개냐로 판가름 난다.허례허식적인 혼사에 염증을 내고 '내 자식 만큼은 아니다'라고 다짐했던 사람들도 정작 딸을 시집보낼 때는 남들처럼 하기 일쑤다. 조촐하게 하고 싶었지만 결혼이라는 게 상대방이 있고 더욱이 남자쪽 위주로 진행돼 도리 없더란 말들을 한다. 혼수와 하객 초대 모두 일방적으로 조절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개인과 사회 할 것 없이 변화를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는 '다 그래 왔다'는 말이다. 옳지 않은 줄 누구나 아는 일들이 지금까지 다 그래 왔다는 말로 얼버무려진다.연애는 두 사람의 만남이지만 결혼은 두 집안의 결합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제력 종교 문화 가치관 지역 등 작고 큰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결혼에 재를 뿌리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비극으로 몰고 간 것도 두 집안의 갈등 때문이었다. 집안끼리의 문제는 결혼전에도 커다란 암초 같지만 결혼을 약속한 이후나 결혼후에도 큰 골칫거리다. 처음엔 집안의 트러블이 생겨나 알게 모르게 알력 싸움이 진행되지만 심화되면 당사자들간에도 집안싸움에 휘말린다.'혼인치레 말고 팔자치레 하랬다'는 말이 전해온다. 추운 겨울날 사랑에 빠진 고슴도치 한쌍이 다칠까봐 껴안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것처럼 결혼할 사람은 안전거리를 둬야 한다. 너무 가까이 서 속속들이 알아도 안되며 너무 모른 것이 많아도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백성일주필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1970)은 "현재의 최신 무기들을 볼 때 다음 세대에 일어날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種)을 절멸시킬 게 틀림 없다"고 일갈했다. 반전· 반핵주의자인 그는 "결국 인류 최후의 생존자는 산허리 한 구석에서 마지막 가쁜 숨을 헐떡이다 소름끼치도록 외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고 경고했다.그가 죽기 3년 전의 일이다. 그러면서 전 세계인들이 반전· 반핵에 적극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냉전시대 무기경쟁과 원폭투하를 경험한 그였으니 원자핵의 파괴력과 최신 무기들이 인류에 끼칠 폐해를 고민했을 것이다.지금 세계는 2만7000개의 핵탄두로 뒤덮여 있다. 미국(1만104개) 러시아(1만6000개) 프랑스(350개) 영국(200개) 중국(130개) 등 공식 핵 보유국가들이 2만6784개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75∼200개) 인도(75∼115개) 파키스탄(65∼90개)도 핵 보유국이다.히로시마에 떨어진 4.5톤 짜리 우라늄 원폭 '리틀 보이'는 14만명의 목숨을, 플루토늄으로 만든 5톤 짜리 원폭 '팻맨'은 나가사키 시민 7만명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섬광만으로도 눈이 멀었다. 전쟁의 이름으로 자행된 참혹한 대학살이다.핵분열 에너지를 극대화한 것이 원자폭탄이라면, 핵분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원자로다. 핵분열 속도를 제어함으로써 고열과 강력한 에너지를 전기생산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 원전이다. 원전은 27개국에서 443기가 시설돼 있고 62기가 건설중이며 158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언제든지 인간을 공격하는 무기로 둔갑될 수 있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이용해 핵분열 연쇄반응 실험을 성공시킴으로써 원폭개발을 가능케 했던 이탈리아 물리학자 페르미(1901∼1954)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숱한 생명을 앗아간 무기로 쓰인데 대해 괴로워했다.'맨해튼 프로젝트'(원폭개발 암호명)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1904∼1967) 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도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 내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며 핵폭탄으로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러셀의 경고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천만금의 무게를 지닐 것이다. / 이경재 논설위원
북한이 느닷없이 지난 17일 백두산 화산 문제를 남측과 협의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백두산은 애국가에도 나오듯,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후지산 폭발 가능성 주장도 일본 대지진과 더불어 제기되었다. 역시,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도 심심찮게 대두된 바 있다.인간의 지혜가 몇 억 광년의 거리에 있는 행성의 위치도 알 정도이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지구밑의 사정은 의외로 잘 모르는 것 같다. 백두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 폭발 시기에 대해서는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조선왕조실록에는 백두산 분화 기록이 선조 30년, 현종 9년, 숙종 28년에 있다. 화산폭발의 재앙은 엄청나서 기원후 이탈리아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로 폼베이 도시가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 백두산 폭발의 위력도 대단하여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등 일본의 도호꾸 지방이나 핫코다 산지와 같은 산악지대 또는 삿뽀로 ,하코다테 무카와 등 홋카이도의 광활한 어느 지역에서도 백두산 화산재가 발견된다고 한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그 인근 지역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편서풍을 따라 화산재가 일본으로 날아가 그쪽에 피해를 줄 것이다.북한에는 두 개의 큰 명절이 있는데 하나는 4월 15일로 김일성 생일이고 다른 하나는 2월 16일로 김정일 생일이라고 한다. 이번에 새로 발행된 북한 화폐 2000원권에는 김정일 생가(生家)가, 그리고 1000원권에는 김정일 생모의 생가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김정일 생가는 백두산 밀영에 있는데 삼지연에서 30km 떨어진 곳으로 정일봉 밑에 있다고 한다. 김정일이 사실상 태어난 곳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라는 유력한 설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김정일 생가를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으로 옮겼을 것이라고 한다.지금은 김정일 생가를 주체사상의 학습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백두산이 폭발하면 김정일의 생가 역시 피해를 볼 것이고, 이렇게 되면 김정일 생가의 신성성(神聖性)은 백두산 폭발과 더불어 공중분해 되는 것이 아닌가. 화산 폭발은 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법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춘분은 해와 달이 입맞추는 날." 이성교 시인의 '춘분'이라는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음을 재미있게 표현한 듯하다.정끝별 시인은 이 즈음을 "고삐 풀린 망아지"라 했다. '춘분 지나'라는 시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달려간다 너도 달려간다 봄이라잖니!"라며 감성을 톡톡 건드린다. 맹사성도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고 했다.경칩과 청명 사이에 있는 춘분(21일)은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 바로 비추는 날이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 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여기서 봄 춘(春)자는 艸(풀 초) 밑에 屯(모을 둔)자를 놓고 日을 받친 글자다. 둔자는 싹이 몰려 나옴, 햇볕(日)을 받아 풀(艸) 싹이 많이 움터(屯) 나오는 때, 곧 '봄'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대개 입춘부터 봄으로 치지만 유럽은 춘분부터 봄이다.춘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다. 이때부터 약 20여 일간 기온 상승이 급격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일년중 농부들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이 무렵부터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춘분날 밭을 갈지 않으면 일년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했다. 농촌에선 씨앗을 골라 피종준비를 하고 물을 받기 위해 물꼬를 손질했다.그러나 호사다마랄까. 이 때를 전후해 바람도 많이 부는데 꽃샘 추위가 찾아와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덕분에 "꽃샘 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또 중국 내륙 사막에서 피어오른 황사가 한반도의 하늘을 뒤덮는 때도 이 때다.하지만 요즘은 춘분이고 뭐고 세상이 뒤숭숭하다. 지난 겨울동안 구제역과 AI 등으로 400만 마리에 육박하는 가축들이 살처분 혹은 생매장되는 비극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이웃 일본에서는 지진과 쓰나미, 화산 폭발로 난리다. 더구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해 일본 열도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연상시킨다. 지진이며 화산 등은 우리에게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앙이다.그러나 어김없이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머지않아 노란 산수유 그늘이 펼쳐질 것이다. 보송보송한 볕을 받으며 무거운 옷도 벗어버렸다. 오는 봄을 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상진 논설위원
사람의 인격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법이다. 각 나라의 민족성 역시도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들추어지는 법이다. 지난 11일 일본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와 더불어 재정적 피해가 일본 GDP의 6%에 가까우며 피해 복구비만 해도 우리돈으로 약 1000조원이 들어간다고 한다.그러나 이번 대지진의 참상 못지않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일본 국민들의 질서의식이었다. 도난사고나 사재기도 없었으며 일본 언론의 절제있는 보도도 칭찬의 대상이었다. 과거, 미국 LA의 흑인폭동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 당시 흑인폭동의 현장에서는 도난·방화가 판을 쳤었다. 일본인의 질서의식은 일본 에도시대부터 만들어진 의식구조였다.일본도 조선처럼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계급이 철저하게 존재했었다. 그러나 조선은 신분 이동이 가능한 예외조항이 있었다. 임진왜란때는 모자라는 군인(軍人)을 충당하게 위해 노비들에게도 무과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심지어 시험장에서 활을 10번을 쏘아 1번을 과녁에 맞추어도 합격시켜 양민이 되게했다. 또 속오군(束伍軍)에 노비들이 입대를 하면 양민이 될수도 있었다.양민은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관리로 등용되어 상류층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 일본 에도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제도는 고착적(固着的)이었다. 사무라이는 영원히 사무라이며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물건을 만드는 공인(工人)이나 장사하는 상인(商人)은 대대로 공인이거나 상인이어야 했다그러나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농민이나 공인, 상인을 멸시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존재가치를 일정 부분 인정해주었다.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간 조선의 도공(陶工)들을 우대해 주기도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끝없이 신분상승을 위해 혈투를 한 반면, 일본인들은 자기 신분에 만족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했다.그러면서 천민은 농민을 존경하고 농민은 사무라이에게 충성을, 사무라이는 영주에게 영주는 막부의 쇼군에게 충성을 해야했다. 이것이 일본의 충성의 계층화이며 충성의 질서이다. 이번 대재앙에도 그들의 질서의식이 망가지지 않은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왔던 생활속의 질서의식이었다고 본다./ 장세균 논설위원
유황과 불로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았다. 동일본에 9.0 대지진이 났기 때문이다. 쓰나미가 몰려와 도시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아비규환의 장이 돼 버렸다. 여진으로 공포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 처참한 광경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다 이 참혹한 일이 펼쳐졌는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과학에 기대어 신의 영역을 넘보는 등 우쭐댄 것이 화를 자초한 것은 아닐까.밤새 안녕하셨습니까란 말이 절로 나온다. 살아 있어야 산 것이다. 삶은 너무 가변적 요인이 많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이 순식간에 귀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가 돼버렸다. 한 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세상이다. 편리성을 추구한 만큼 그 역기능이 부메랑 되어 나타난다. 그간 산업화 과정에서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인명은 재천이라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 장수하려고 삼천궁녀를 풀어 불로초를 구했던 진시황도 결국 죽었다. 덧 없는 게 인생인데 천방지축 나분댄다고 제 뜻대로 얻어지는게 있는가. 배웠다고 무시하고 남을 업신여기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갖고 있다고 까불어 댄다는 말인가. 앞모습 치장하는데 열중해 온 터라 남의 눈에 보이는 뒷 모습은 생각치도 않는다.카인의 후예로 살아온 인간들은 죄 짓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도 풀을 뜯기 위해 마구 달려가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 스프링복 같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만이 더 문제다. 살다 보면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때가 있는 법이다. 좋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고 슬프다고 슬퍼할 일만도 아니다. 달이 차면 기울듯 인간사 채워지면 흩어지는 법이다. 천만년 부귀영화를 누릴 것 같지만 그런 건 없다.시내버스 파업하는 사람들 생각해 보라. 지금 일본 열도에서 벌어진 종말 같은 파국을 보고도 느낀 점이 없는가. 아귀다툼해서 얻은 것은 고통과 불신 밖에 없다. 시내버스 운행률이 90%를 넘어 큰 불편은 가셨다. 뒤늦게나마 노사가 전주시민들에게 미안한 맘 갖고 통크게 비워야 한다. 그러면 모두에게 크게 채워져 승자가 될 것이다. 그게 하늘의 뜻이다./ 백성일 주필
프랑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파리에서 600Km나 떨어진 중소도시다. 산업체나 연구소, 대학이 없는 지적 자원의 황무지나 다름 없는 지역이다. 농업과 관광이 유일한 소득원이다. 그러나 1974년부터 단지 개발에 착수한 뒤 세계 최첨단 연구소와 대기업 공장들을 유치했다. 200여 기관이 입주해 있는 지금은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불린다.세계 최고의 기업도시인 핀란드의 오울루나 미국의 실리콘밸리· 디즈니랜드,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중국 화시촌, 일본 도요타, 싱가포르 바이오 폴리스 등이 모두 성공한 기업도시들이다.군사보호구역에 묶여 개발 사각지대였던 경기 파주시는 2003년 LG필립스 LCD 공장을 유치한 뒤 첨단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포도밭이던 충남 아산시 탕정마을은 삼성 LCD 공장이 들어서면서 기업도시가 됐다. 두 도시가 훌륭한 기업도시로 태어난 건 기업의 시각에서 기업이 필요한 것을 해주었기 때문이다.지난 2005년 이런 성공사례를 모델로 정부는 무주와 태안, 원주, 충주, 무안, 해남·영암 등 6곳을 기업도시로 지정했다. 무주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는 2020년까지 1조4000여억 원을 들여 무주 안성면 일대 230여만 평에 조성하려던 사업이다. 하지만 모기업인 대한전선이 자금난을 이유로 투자의지를 보이지 않아 지난 1월 개발계획이 취소됐다.기업도시란 기업이 직접 필요한 용지를 확보하고 다양한 기능을 유치해 기업활동에 유리하도록 개발하는 도시를 일컫는다. 기업도시가 성공할려면 건전한 기업의 참여와 기업친화적인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무주 기업도시는 기업체의 의지도 미약했고 기업친화적인 환경도 조성되지 못했다. 정부와 자치단체만 밀어부쳤다.그런 점에서 '관제(官製) 기업도시'랄 수 있다. 관제 기업도시는 기업의 눈높이가 아니라 정부의 시각에서 추진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성공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지역주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게 문제다그런데 얼마전 정부가 미온적이어서 해당 지역주민들의 재산피해와 생활불편이 장기화했다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왔다. 모기업 대체나 해제절차를 이행치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정부 하는 꼴이 이런 식이니 성공한 기업도시 사례는 그림의 떡이다. / 이경재 논설위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내건 기업의 초과 이익 공유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특히 이에 대한 이건희 전경련 회장의 반응이 이슈의 온도를 높인 것 같다. 그는 말하길 초과 이익 공유제란 용어 자체가 경제학 전공인 자기에게 너무도 생소하다고 하면서,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초과 이익 공유제란 정운찬 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것으로써 대기업이 연초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냈을 경우에 초과 이익에 협력사가 기여한 부분을 대기업이 평가하여 협력사를 지원하라는 것이다.이런 주장은 동반성장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으로써 대기업과 협력사가 초과 이득을 오순도순 나누어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복잡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관념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선 대기업의 초과 이익 기준을 어떻게 결정하느냐도 문제다.과거에 종합 부동산세를 도입할 때도 보유 부동산 공시지가 총액 9억원 초과분에 부과할 것인가, 6억원 초과분에 부과할 것인가가 논점이었다. 부과 기준액이었던 9억원과 6억원이 어디에 근거를 두었는지도 일반인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초과 이익 공유제에서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했을 때 대기업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그리고 대기업이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냈을 때라는 단서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을 때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 이익을 미리 산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기업가들이 내심 산정한 예상 이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공개적으로 수치화·문서화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대기업이 초과 이익의 일부를 협력사에 자동 분배하게 되면 협력사는 제품 개선노력에 치열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에 독이 된다는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아무튼 경제학이 어렵다는 것은 그것이 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심리와 관계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심리를 외면한 단순한 경제정책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장세균 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