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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무소유'

불교계의 원로격인 법정(法頂)스님이 지난 21일 서울 길상사에서 가진 가을 정기법회에서 공주 마곡사와 제주 관음사의 주지 선출문제와 신정아 파문을 계기로 드러난 동국대 재단이사회 스님들간의 갈등 그리고 조계종 잡음에 대해 자성의 쓴소리를 했다. 불교 조계종내의 분규와 갈등의 한복판에는 대부분 돈문제가 있다. 전국의 유명사찰은 관광 입장료 수입으로 재정이 넉넉하다.합천 해인사 일년 재정수입이 약 2백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사찰들이 전국에 널려있다.승려들이 두둑한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탐진치(貪嗔痴) 즉 욕심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에서 벗어날수가 없으며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백팔번뇌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꼴이된다. 대부분 종교재단의 분규와 갈등은 신앙과는 관계없이 돈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특히 불교는 참선수행을 강조하고 무소유를 주장한다. 무소유의 첫단계는 돈을 멀리하는데 있는데 유명사찰에 돈이 넘치니 속세처럼 그럴듯한 명분을 빙자해 분규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승려들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로부터 거꾸로 제도(濟度)를 받아야할 판이다. 법정스님이 “수행자의 겉모습을 하고서 속으로 돈과 명예를 추구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자(佛子)가 아니라 가사 입은 도둑입니다.”라고 까지 극언을 할정도로 불교계 내부 문제가 심각하다. 조선의 대표적 선승(禪僧)이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을 일으켜 왜병과 용감하게 싸웠던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지은 “선가귀감”이라는 책에는 오늘의 우리시대를 질책하는 듯한 서문이 있다. “ 부처를 배우는 요즈음 사람들은 말을 한다고 하면 글을 잘하는 속인(俗人)들의 글귀이고 인용을 한다고 하면 속인들의 시귀절이다. 이것을 울긋불긋한 색지종이에 쓰고 아름다운 비단으로 책머리를 장식하여 지극한 보배로 삼는다. 아!, 고금에 부처를 배우는 사람들이 보배삼는 것이 어찌 이리 다른고 ? ” 세속을 벗어나 머리를 깍았으면 세속 욕심을 버리고 무소유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불자의 본령이거늘 돈을 보배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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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25 23:02

[오목대] 연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인의‘너에게 묻는다’란 시다.날씨가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한기가 스며든다.예전 이맘때면 겨우살이 준비가 한창이다.겨우내내 사용할 연탄을 집안에 들여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비교적 여유 있는 집들은 겨울에 사용할 연탄을 한꺼번에 구입해서 들여 놓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그때그때 가게에서 몇장씩 사다 썼다. 40대 이후만해도 연탄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신문 지면에는 거의 연탄중독으로 인한 사망기사가 빠질 날이 없을 정도였다.잠자던 일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망했다는 어두운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지난 70년대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과 사무실 상가에서 연탄을 사용했었다.요즘 자라나는 세대는 연탄이 뭣인지도 모를 정도로 변했다. 2004년 문학동네에서 김근태전보건복지부장관이 펴낸 ‘연탄’이란 수필집은 자신들의 연탄에 얽힌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김지하,김근태,신경숙,임백천 등 각계 인사 스물네명이 연탄불 한장을 가운데 두고 한자리에 모였다.이들은 벌겋게 달아 오른 연탄불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고기 한점 올려 놓고 ,소주 한잔 기울이며,각박한 세상에 시린 마음을 데워가며,각자 추억을 풀어 놓고 마음을 활짝 열어 놓았다. 시인 김지하는 연탄에서 유독한 가스를 피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하는 ‘독극물’인 연탄이 온기로 사람을 살린다는 형용 모순의 미학을 발견했다.그는 바로 그연탄이 곧 분단된 나라,흩어진 겨레,황량한 반도에 대해 마치 죽음속에서의 살림의 불처럼 차원이 다른 어떤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케 하는 새로운 연탄 해석학을 제시했다.김근태전보건복지부장관은 70년대 수배를 받아 쫓기던 시절 과 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셨던 아찔한 기억들을 털어 놓았다. 지금도 생활이 어려워 연탄을 사용하는 달동네 사람들이 있다.IMF를 거치면서 최근 몇년 사이 연탄소비는 다시 늘었다.2004년 139만톤에서 2006년 233만톤으로 68%가 늘었다.반면 공급은 해마다 줄어 연탄대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공기 구멍이 뚫려 있어 구공탄 또는 구멍탄이라고 불렀던 연탄이 원유가 상승으로 다시 우리 곁에 가까워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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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24 23:02

[오목대] 지능형 고속도로

현재 세계에서 고속도로망이 가장 잘 갖춰진 국가는 총연장이 8만8000여㎞ 에 달하는 미국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 고속도로는 1933년 건설된 독일의 아우토반이다. 당시 히틀러는 “수레와 말에 의한 교통이 수레와 말 자신을 위한 도로를 만들었듯 자동차를 위한 자동차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히틀러가 아우토반에 매달린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의 독일 패인이 수송력 부족에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65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전쟁에 대비하면서 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두가지 목적의 ‘독일판 뉴딜정책’이었던 셈이다. 속도제한 없이 능력껏 달릴 수 있게한 아우토반은 결과적으로 독일의 자동차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차로 손꼽히는 벤츠나 BMW, 아우디는 아우토반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도 독일과 인연이 깊다.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방문 길에 아우토반 본∼쾰른간 20㎞ 구간을 시속 160㎞로 달려 본뒤 국내 고속도로의 모델로 삼았다. 1968년 경인 고속도로에 이어 1970년 서울∼부산간 417㎞의 경부고속도로 전구간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한 고속도로 시대를 맞게됐다. 지난해 말에는 전국 고속도로 3000㎞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고속도로는 육상 물류수송의 기간동맥으로 산업활동에 필수적인 인프라가 됐거니와 인적수송에서도 시간상 거리를 크게 단축시켰다. 하지만 전국을 거미줄 처럼 연결시킨 고속도로가 산업발전이라는 순기능만 가져온게 아니다. 전국 중소도시의 기능이 인접 대도시로 흡수되는 ‘빨대효과’때문이다. 지난주 건교부가 우리의 뛰어난 도로기술과 정보기술(IT)을 접속시켜 시속 160㎞ 대로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는 이른바 ‘지능형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도로에 감지장치를 설치해 달리는 차의 차선 이탈을 막고 차간 간격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한편 운전자들에게는 각종 정보를 실시간 전달해 안전을 확보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능형 도로의 상징성을 감안해 우선 서울과 충남에 건설중인 행정중심 복합도시간 도로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행복도시와 가까운 도내 북부지역의 빨대효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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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23 23:02

[오목대] 작은 정부

지금은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가까운 일본은 10개의 성청(省廳)을 없앴고 러시아는 9개의 부서를 줄였다. 미국은 195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와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김대중 정부가 3500명 줄여놓은 것을 다시 6만명의 공무원을 늘여놓았다.7급 일반직 공무원 한사람을 뽑았을 경우 정년퇴직 할때까지 지급되는 봉급이 약 14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돈의 지불자는 당연히 국민들이다.문제는 공무원이 늘면 자동적으로 규제도 늘어나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는 공무원 조직 생리상 그럴수밖에는 없다. 규제가 늘면 그만큼 기업가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도 불편해진다. 현정부 들어서서 규제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이렇듯 공무원 증원과 무관치 않다. 공무원을 흔히 국민에대한 봉사자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동사무소나 구청 민원부서 공무원들 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다른 공무원에게는 맞지 않다. 과거 농업을 위주로했던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80%가 넘었다. 자기 이름조차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이런 사회에서의 공무원은 국민에대한 계몽자적인 역할도 했지만 동시에 군림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대의 공무원들은 권력자와 더불어 무식한 국민들을 통치를 했으니 통치대상이 아니라 통치주체였다.그리고 이는 조선에서의 관존민비(官尊民卑) 즉 관리(官吏)는 높고 백성은 낮다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의식구조가 세월이 가도 없어지지 않고 그 뿌리는 아직도 공무원 의식속에 잠재되 있는데 그 징표의 하나가 새로 짓는 관공서의 외양이다. 관공서 건물은 내구성이 있으되 평범해야되는데 대부분 웅장한 화강암의 석조 건물들이다. 그러면서 민간인들이 이용하는 주차장은 협소하여 불편하다. 화려한 건물을 짓는데 예산을 집중하지 말고 주차장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모순들의 밑바바닥에는 관존민비의 사고가 암암리에 공무의식속에 남아있다는 뜻이다. 공무원을 대폭 줄이면서 업무량을 평균화시켜서 놀고 먹는 공무원을 없애고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민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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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22 23:02

[오목대] 호남이 없다면

많은 호남사람들이 좋아하는 문구 중에 하나가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다. 공공의 장소에서 눈에 띄기도 하고 말마디깨나 하는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충무공 이순신의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삼가 생각건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장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이런 까닭에 어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쳐 바닷길을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난리 중에도 옛 정의를 잊지 않고 멀리서 위문편지를 보내시고 아울러 각종 물품도 받게 되니, 진중(陣中)의 귀물이 아닌 게 없어 깊이 감격하여 마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에야 더러운 적을 소탕하여 없애고 예전의 종유(從遊)하던 회포를 실컷 풀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대하니 슬픈 마음만이 간절할 뿐입니다.”이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7월 16일 충무공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 끝 부분에 실려있다. 당시 조선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일본군이 경상 충청 강원을 유린하고 도성마저 함락시킨 상황이었다. 이때 전라수군절도사였던 충무공은 마지막 남은 호남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더우기 곡창인 호남이 무너지면 식량 보급마저 끊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또 호남의 의병들이 진주성 제2차 혈전에서 모두 순절한지 보름이 지난 때였다. 충무공은 당시 호남 의병및 수군의 헌신을 기리고, 군량미 보급기지로서 호남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충무공의 이 말은 이후 호남인들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또 동학농민혁명, 광주학생운동, 5·18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연면하게 이어져 왔다.12월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 말이 심심치 않게 언급되고 있다. 특히 호남의 표심을 얻기 위해 ‘호남 예찬론’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호남은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 30년 넘게 이어 온 개발독재와 군부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라는 시대흐름에 물꼬를 텄다. 전략적 선택을 통해 힘을 몰아 준 것이다. 이번 대선은 많은 변수가 자리한다. 한나라당은 호남을 껴안으려 하고 범여권은 텃밭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호남의 선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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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9 23:02

[오목대] 로스쿨 정원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로스쿨 설치문제가 지난달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로스쿨 설치는 기정사실화 되었다. 로스쿨 제도 도입의 근본목적은 변호사수를 늘이자는데 있다.이것을 배제한 로스쿨 제도는 속빈 강정일뿐이다.그런데 로스쿨 설치문제를 놓고 법조계와 법학계 그리고 시민단체와의 사이에 있었던 논란을 보면 핵심을 흐린 대목이 많았다.법조인 윤리 또는 양질의 법률 서비스 등의 논의는 핵심을 흐리는 대목이다.이런 지엽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법조계였다.예를든다면 변호사를 많이 양산하면 시민들이 변호사로부터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장의 타당성이 별로 없어보인다.자기가 맡은 많은 소송건 으로 어느때는 사건내용도 잘 모르고 법정에 서는 변호사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변호사 본인도 햇갈릴것이다. 우리나라 변호사 한사람 수임건수가 무려 평균 190건라고 하니 햇갈리는것도 당연할지 모른다.이처럼 변호사 수급 불균형이 고액의 수임료를 요구하게 되고 여기에다 성공보수까지 따로 붙는다.이런 수급 불균형 현상은 바로 우리나라 인구 약 4800만명에 개업 변호사 숫자는 약 9000명이라는 사실때문이다. 인구 약 6000명당 변호사가 한명꼴이다. 선진국의 변호사 한명당 국민 500명선 과는 대조적이다 . 이와같은 변호사 희귀현상으로 전국 지자체 234개곳에서 변호사가 한명도 없는 지자체가 무려 122개곳이라고 한다.결국 이런 수급 불균형 현상이 변호사 고액 수임료를 낳게하고 그만큼 시민들에게 무리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한국 사립대학 총장협의회 회장이 16일 국회에서 앞으로 설치된 로스쿨의 정원은 3200명 정도는 되어야한다고 했는데 현실에 맞는 주장이라고 해야할것이다 법조계가 주장하는 1000명선의 로스쿨 정원은 로TTM쿨 설치 본질을 흐리는 자기 밥그릇 지키기 주장일뿐이다.로스쿨 정원의 결정은 법조계의 전결사항이 아니다. 로스쿨 정원은 법학계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선에서 타결을 보아야할 것이다. 법학계와 시민단체가 하나가 되어 자칫 무늬만의 로스쿨 제도가 되지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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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8 23:02

[오목대] 독감 예방접종

흑사병은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급성 전염병이다.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아시아 내륙의 페스트가 유럽에 전파된 이래 유럽은 수 년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봤다.일명 흑사병이라고 불렸던 이 병으로 인해 당시 유럽 인구가 5분의1로 줄어 들었다.영국과 프랑스간에 116년 동안 치러진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대규모 인구 손실은 노동력 상실로 이어져 당시 유럽 경제의 기반을 이뤘던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를 뒤 흔들어 놓았다.또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신에 의존토록 하였다. 국내외적으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도 만만치 않다.지난 8월 호주 전역을 휩쓴 A형 독감으로 인해 9명이 사망했다.미국에서도 2003년 독감이 대 유행해 예방 백신이 동 날 정도였다.해마다 미국에서는 평균 36000명이 독감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겨울철이 다가오면서 독감이 걱정된다.독감이란 일반 감기보다 독하다고해서 독감이 아니다.감기는 약 200종에 달하는 각종 바이러스가 원인인 반면 독감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면 감기까지 예방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감기에 대한 예방주사는 없지만 독감은 예방주사도 있고 다른 치료약도 있다.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B형C형이 있는데 주로 1∼2년 간격으로 소유행이 10∼15년 간격으로 대유행이 일어나며 이 때 보통 10∼20%가 감염된다.독감예방주사를 맞으면 100%예방 되는 게 아니다.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65세 이하 성인은 70∼90%의 감염예방이 노인에서는 50∼60% 입원 예방이 있다는 것이다. 독감은 완전히 예방되는 것은 아니며 예방주사를 통해 증상을 가볍게 겪고 넘어 가거나사망률을 많이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흔히들 병이 있으면 예방주사를 맞지 말아야 한다는 건 잘못된 상식이다.당뇨,심장병,만성 폐질환자들은 실제 독감에 걸렸을때 합병증을 유발시켜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맞는게 더 좋다는 것.독감은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발병하기 때문에 늦어도 11월까지는 예방주사를 맞아야 된다. 건강하게 산다는 건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건강하다고 자만하지 말고 독감예방 접종을 실시해 건강한 겨울을 지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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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7 23:02

[오목대] 숫자 마케팅

숫자는 단순 명료해서 눈에 잘 띄고, 이미지를 빠르게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문자보다는 사람의 머리속에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이같은 특징을 활용해 제품 이름과 광고에 숫자를 사용하는 ‘숫자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초기 숫자마케팅은 단순 제품명을 숫자로 풀이해 사용했다. 이미 고전이 돼버린 ‘3000리호 자전거’가 대표적이다. 1952년에 출시된 이 자전거는 우리나라 최초 국산 자전거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숫자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제품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한 음료수회사에서 선보였던 ‘187167’은 청소년들이 가장 원하는 키가 남자 187㎝, 여자167㎝ 로 조사된 수치를 제품 이름에 반영한 것이다. 기억하기 쉽고 주 수요층에 어필할 수 있는 감각적인 제품이름을 채택한 사례다. 우리 일상에 보통명사급으로 자리잡은 상품명도 있다.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수는 출시후 ‘2%’라는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우리나라 숫자 마케팅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2%’라는 제품 이름은 인체내에서 수분이 2% 부족할 때 갈증을 느끼는 점에 착안해 상품명에 숫자를 넣었다고 한다. 이 ‘2%’라는 말은 이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조금 부족함이 있거나 모자랄 경우 사용할 정도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같은 숫자 마케팅 방식을 행정기관에서도 원용하고 있다. 한 번만 설명을 듣게 되면 개념정리가 쉽고 기억에도 오래 남기 때문에 행정기관이 주관하는 행사에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전주시가 이달 초 노인주간 행사때 부터 사용한 ‘123 실천운동’을 비롯 ‘1· 3세대 함께 희망의 걷기’ ‘1080콘서트’ 등이 바로 그것이다. ‘123실천’은 1년에 2가지의 세대공감 실천운동을 3세대가 함께 하자는 뜻이고, ‘1·3세대 희망걷기’는 1세대(어린이)와 3세대(노인)가 함께 걸으면서 세대간 ‘공유와 소통’을 이루자는 의미다. ‘1080콘서트’는 3세대와 1세대가 퓨전밴드를 구성해 음악을 공감하자는 행사다. 행정기관이 추진하는 일을 주민들이 쉽게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정책의지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도 변한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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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6 23:02

[오목대] 북한(北韓)의 언어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방문을 통해 북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특히 메스컴을 통해 나타난 북한 고위급들의 공식적인 언어는 남한 언어와 많은 차이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상언어는 그렇지를 않다. 남북한의 언어차이는 우리와 비슷했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분단후 서독은 미국과 서방진영의 사회질서를 동독은 구 소련을 모범으로 한 사회질서를 받아들이다 보니 국가의 조직 행정 문화정책 등에서 새로운 신조어(新造語)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예를 든다면 서독에서는 국가 최고 행정기관인 정부를 “연방정부”라고 한 반면에 동독에서는 “추밀원(樞密院)”이라고 불렀다. 서로의 체제가 다르다보니 서독에서 “주식회사”라고 부르는 것을 동독에서는 여기에 맞는 용어가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국가에는 사기업(私企業)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언어 역시도 분단후 반세기가 넘다보니 그들식의 언어변화가 있게되었다. 북한은 언어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로 여기기 때문에 이와같은 목표실현을 위해 어휘정리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했다.1949년에 한자를 페지하면서 “말다듬기 운동”을 전개했고 그후도 계속 문화어 운동을 계속했다. 이렇게 강제성을 띠는 국가주도의 언어정책으로 북한언어에 많은 변화가 있게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언어차이의 예를 들어보자. 남한에서는 “홍수”를 북한에서는 “큰물”로 남한에서의 “레코드”를 북한에서는 “소리판”으로 남한의 “파마”를 북한에서는 “볽은 머리”로 남한에서의 “노크”를 북한에서는 “손기척”으로 남한에서의 “관절”을 북한에서는 “뼈마디”로 남한에서의 “도시락”을 북한에서는 곽밥”으로 “가발”을 “덧머리”로 “각색”을 “옮겨지음”으로 “각선미”를 “다리미”로 “검표”를 “표보기”로 “견인선”을 “끌배”로 “계모”를 “후어미”로 “공”을 “뽈”로 “공생(共生)”을 “함께살기”로 부르고 있다. 한문식 용어를 순수 한글로의 변화를 주었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면 서로간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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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10.15 23:02

[오목대] 박람회

요즘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게 박람회(엑스포)다. 대학 졸업생들이 관심을 갖는 채용박람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한 두달 사이 언론에 거론된 박람회만도 얼추 10가지를 넘는다. 노인일자리박람회, 해외유학·이민박람회, 국제포도주·농산물박람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대구세계애견산업박람회, 부산IT엑스포, 세계부동산투자박람회, 공룡엑스포(고성), 사회공헌박람회, 곤충바이오엑스포(예천), 국제나노산업박람회, 국제프랜차이즈산업박람회, 골프박람회…. 이밖에 창업박람회, 음식박람회 등 명칭도 갖가지다. 또 쇼핑몰에서는 온라인박람회가 봇물이다. 도내에서는 발효식품엑스포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원래 박람(博覽)이라는 말은 ‘사물(事物)을 널리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박람회는 ‘생산물의 개량·발전및 산업의 진흥을 꾀하기 위해 온갖 물품을 모아 벌여 놓고 판매, 홍보, 심사를 벌이는 전람회’를 말한다. 영어로는 exhibition, exposition(Expo), fair 등으로 쓰인다.국제박람회는 산업혁명 이후인 1761년, 영국 런던의 왕립미술공업상업진흥회가 개최한 공업품전시박람회가 시초다. 이후 유럽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박람회가 열렸다. 20세기 들어 각국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자 1928년 파리에서 국제박람회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개최조건, 내용, 개최지, 기간 등이 엄격하게 정해졌다. 따라서 앞서 열거한 박람회는 이름만 차용했을 뿐 국제기구가 인정한 행사는 아니다.우리나라가 국제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1889년(고종 26) 파리만국박람회가 처음이다. 이 때 한국은 갓, 모시, 돗자리, 가마 등을 출품했다. 당시 프랑스는 이 박람회를 위해 에펠탑을 건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우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의 공식 인정을 받아 1993년 최초로 국제박람회를 열었는데 그것이 ‘대전EXPO’다.최근에는 ‘2012 여수세계엑스포’ 유치를 위한 활동이 한창이다. 두번째 도전인 여수엑스포는 11월 27일 BIE 파리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되는데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도내에서도 10일부터 군산 새만금전시관에서 ‘2007 전북세계물류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새만금이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물류 허브로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행사다. 새만금의 미래 가능성을 알리는 기회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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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2 23:02

[오목대] 고려장(高麗葬)

얼마전에 자기 노부모를 속여 부모의 재산을 증여 받은후 자기가 거주하는 필리핀으로 초청하여 부모를 그곳 길가에 버린 사건이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이라고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장이라는 풍습을 놓고 아예 고려장이라는 폐습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주장에 의하면 고려장이라는 용어는 옛자료 어디에도 없고 일본인들이 일제시대에 도굴을 위해 억지로 만든 용어라는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우리 문화재를 무단 일본으로 반출하는데 혈안이 되었는데 급기야는 무덤의 부장품까지도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부장품 도굴을 위해서는 막일하는 인부들이 필요했는데 우리의 풍습으로는 남의 묘를 파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서 일본인들이 억지로 꾸며대서 하는말이 조선에는 고려때부터 노인을 생으로 고려장 시키는 풍습이 있었는데 지금 이묘지의 주인공 역시도 자기 부모를 고려장 시킨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묘를 파혜쳐도 좋다라는 식의 이야기로 조선의 인부를 달랬다는 것이다.이런 교묘한 일본인들의 말은 아마도 그들 역사에는 고려장이 사실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일본이 몇해전에 만든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영락없는 일본식 고려장을 내용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려장이란 풍습이 한국에는 없었다는 주장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아 좋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지명에 “살애비골” “살애비 바위”라는 지명이 가끔 눈에 띠는 점이나 그리고 살부(殺父)라는 지명이 있는 마을에서는 병들거나 망령든 노부모를 업어다가 죽게했다는 노인 유기(遺棄)의 전설이 있는가 하면 노인을 버린다는 뜻의 노사암(老捨岩), 노사굴 (老捨窟)의 지명도 있는 점, 세종대왕이 이런 폐습을 교정하라는 어명도 내렸다는 사실, 다산(茶山) 정약용의 문집에도 고려장법(高麗葬法)이라는 대목이 보이는 점, 그리고 고려장터로 추정되는 분묘가 적지 않이 발견되었점으로 보아서 고려장 풍습을 추정케한다. 그러나 이런 풍습 유무를 떠나서 자기를 낳은 부모를 먼 타국에 까지 버리는 불효자식이 있다는 것이 우리를 다시 한번 경악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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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1 23:02

[오목대] 핑크리본 캠페인

유방암이 국내 여성암 발병률 1위다.한국유방암학회에 따르면 1996년 3801명으로 집계된 유방암환자는 2004년 9668명으로 늘어났다.8년 사이 2.5배가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1996년 여성인구 10만명당 유방암 환자수는 16.7명 이었지만 1998년 20.3명 2000년 23.0명 2002년 31.9명으로 높아지다가 2004년에는 40.5명으로 늘어났다.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북미나 유럽 같은 서구와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유방암 환자를 볼때 미국에서는 50대가 다수인 반면 우리나라는 40대가 다수를 차지한다.최근에는 20∼30대 미혼여성에게도 유방암이 발병한다. 유방암 환자는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일수록 많다.최근 일본을 비롯 싱가포르나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을 이룬 아시아 국가에서 유방암 발병율이 급증하고 있다.그만큼 고지방,고칼로리로 상징되는 서구화된 식습관 과 비만이 유방암을 일으키는데 영향를 끼친다는 것이다.유방암을 일으키는 또다른 이유로는 빠른 초경과 늦은 폐경,출산율 저하와 모유 수유 감소 등을 들고 있다. 서울대 의대 노동영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12가지 예방법을 제시했다.에스트로겐 수용체를 억제하라.지방을 바꾸라.좋은 에스트로겐을 만들어라.인슐린을 낮추라.글루코스의 과도섭취를 피하라.섬유질을 증가 시켜라.산소활성기의 생성을 줄여라.화학적 에스트로겐을 피하라.체지방을 줄여라.알코올을 제한하라.비타민 D섭취를 늘려라.운동을 늘려라고 충고했다.사랑하는 사람에게 눈물 고이는 일이 없도록 자가 진단을 생활화해야 한다. 미국에서 1992년 시작된 ‘핑크 리본 캠페인’이 국내서도 매년 10월에 펼쳐진다.유방암 예방 캠페인인 핑크불빛 밝히기는 매년 10월 에펠탑,피사의 사탑,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등 세계 100여개 도시의 상징건축물에서 핑크 불빛을 밝히며 유방암 예방의식을 높히는 캠페인이다.국내서도 2003년부터 서울 타워에서 실시됐으며 지방에선 대구 두류 타워에서 오늘 처음으로 열린다.원래 핑크 리본은 가슴을 조이는 코르셋 대신 실크 손수건 2장과 핑크 리본으로 앞 가슴을 감싼 ‘핑크 리본 브라’에서 유래됐다.중국도 지난 2003년부터 이 행사에 동참했는데 중국에서는 핑크 리본을 분홍사대로 부르고 있다.전북에서도 이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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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10 23:02

[오목대] 비보이(B­­­­―boy)

머리를 땅에 박고 몸을 뱅뱅 돌리며,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서 점프를 하는 청소년들의 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의 눈은 저절로 찌푸려진다. 그저 불량한 청소년들의 놀이 정도로 치부되던 브레이크 댄스가 청소년 길거리 문화수준을 뛰어넘어 대중문화 콘텐츠의 핵심으로 자라잡아 가고 있다. 브레이크 댄스는 1970∼80년대 미국 뉴욕 슬럼가에서 형성된 힙합문화에 바탕을 둔 댄스중 가장 격렬한 춤이다. 비보이(B­­­­―boy)는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남자를 말한다. 한국 비보이의 저변은 2000년들어 급속히 넓어지면서 실력 또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 비보이들은 세계 브레이크 댄스의 각종 기술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그간의 국제대회 입상 실력이 말해준다. 한국의 비보이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인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2001년 베스트상을 받으며 신고를 한 뒤, 2002년, 2004년, 2005년 각각 다른 팀이 차례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06년에는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현지 팀을 꺾고 정상에 올랐으며, 미국·프랑스·캐나다 대회를 석권하는등 한국 비보이들의 독무대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보이 세계대회의 한국 대표 선발전은 양궁이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을 방불케할 정도다. 이처럼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비보이가 바로 전북과 깊은 인연이 있다. 지난 2005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서 우승해 코리아 열풍을 일으킨 ‘라스트 포 원(Last for one)’의 구성원들이 전주 출신들인 것이다. 최근 전주시가 ‘라스트 포 원’의 활약을 기념하기 위해 덕진구 오거리(6호 문화광장)에 조성하고 있는 비보이 전용 공연장의 명칭을 ‘라스트 포 원’으로 정한데 이어 오는 14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2007 비보이 그랑프리 배틀’을 개최하기로 하는등 전주를 비보이 메카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천년고도의 전통문화에 신세대 문화 콘테츠의 상징인 비보이를 접목해 전통과 젊음이 함께 숨쉬는 도시로 가꾸기 위한 시책의 일환이다. 지금 전주의 구도심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같은 구도심에 젊음의 역동성을 불어넣는 것은 잘한 일이다. 비보이 공연장이 전주문화를 알리는 또 다른 명소로 태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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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9 23:02

[오목대] 훈민정음(訓民正音)

내일은 한글날로써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어 정식으로 공포한지도 561년이 된다. 훈민정음은 글자그대로 백성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훈민정음을 적은 책은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훈민정음은 극비리에 만들어졌으며 이는 한글 창제 반대자 최만리의 지적대로 이 사실이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면 자칫 외교문제로 까지 비화 될수있기 때문이었다. 조선 개국왕 이성계의 < 즉위교서>에 나타나듯이 조선왕조는 중국의 제후국으로써 명나라에 “지성스런 사대(事大)”가 조선 외교의 기본노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한자와 다른 우리고유의 글자를 갖는다는 것은 중국으로는 일종의 반란으로까지 볼수도 있었다. 최만리의 한글에대한 반대상소는 이런 현실을 대변했다고도 볼수 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든 동기는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나왔듯이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점 , 그리고 한문이 어려워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표현할수 없음을 안타갑게 여긴점이다. 이에 더하여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동기가 더 자세히 세종실록에 나타나있다. 세종대왕의 “ 모름지기 세민(細民: 빈민)으로 하여금 금법(禁法: 해서는 안되는 행위)을 알게하여 두려워서 피하게 함이 옳다”또는 “내가 만약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게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 열녀가 무더기로 나올것이다”라는 말씀속에 훈민정음 창제의 또다른 동기도 들어있다.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을 본떠서 만들었기에 과학적이라고한다.여기에 또 다른 이설도 있는데 조선후기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는 한글은 원나라 세조때 만들어진 몽고글자를 본떳다고 하고 있고 또는 인도의 산스크리트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있다. 촤현배 선생은 정인지 서문을 근거로 전대(前代)의 것을 모방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학설이 지금은 정설로 굳어졌다. 다시 돌아오는 한글날을 보며 훈민정음 즉 한글에 얽힌 내용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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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8 23:02

[오목대] 한반도 평화체제

인류 역사에서 전쟁상태의 기간이 평화의 그것보다 길었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구상 어디선가는 계속 분쟁이 일었고, 수없이 체결된 평화조약이 지속된 기간은 극히 짧았다. 그럼에도 인류는 끊임없이 평화를 추구해 왔다.사람들이 평화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평화에 대한 무조건적 예찬이다. 로마의 정치인 M.T.키케로는 “나는 정의의 싸움보다도 사악한 평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국 시인 S.T.콜리지는 “평화는 세상의 모든 축복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평화는 우리의 목표다. 평화 앞에서 다른 모든 노력은 그 광택(光澤)을 잃는다”고 강조했다.반면 평화를 시니컬하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 초대 대통령 G.워싱턴은 의회에서 “전쟁의 준비는 평화를 키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의 하나”라고 연설했다. 또 영국 소설가 D.H.로렌스는 “평화는 단지 전쟁후의 휴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A.G.비어스는 “평화는 두개의 전쟁의 시기 사이에 개재하는, 서로 속이는 시기”라고 비아냥거렸다. 평화에 대한 소망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면 우리의 남북관계는 전쟁상태일까 평화상태일까. 국제법상으로 전쟁상태가 맞다. 우리는 6·25전쟁 이후 줄곧 전시상태를 유지해 왔다. 심각한 이념의 대립속에 적대관계가 계속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년 사이 평화정착을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이 문제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1998년 열린 남북한과 미국 중국간의 4자회담에서 공식 거론되었다. 북한은 한국전쟁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기 때문에 양자간 평화협정 체결을 원했다. 자칫 그들간의 직거래로, 우리의 주도권 상실이 우려되던 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해 지난 9월 호주에서 미국 부시대통령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으로 부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대한 지지의사를 얻어냈다.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군축과 군사적 긴장완화일 것이다. 북한에 117만명, 남한에 68만명의 대군이 있는 상태에서 평화체제는 요원하다.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終戰)선언을 적극 추진키로 합의한데 주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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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5 23:02

[오목대] 유구국(琉球國)

지금은 일본땅, 그러나 옛날에는 엄연히 유구국(琉球國)이란 독립국을 가졌던곳이 바로 일본의 오키나와이다. 오키나와는 일본과 필리핀 중간에 위치하고있어 군사 전략가들에게는 “태평양의 요충지”로 불리우고 있다. 오키나와 즉 유구국은 우리에게는 마치 동생같은 관계를 맺어왔다. 고려 왕조때는 사신을 보내와 조공을 받치면 고려조정은 유구국에 답례로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런 전례는 조선왕조까지 이어져 왔으나 영조때 제주부사의 역탈사건으로 양국이 소원해졌다. 중국에도 조공을 꾸준히 받쳤으며 중국문명의 영향하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의 꽃이 활짝 피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들어와 일본 세력에 눌려 일본 규유슈의 사츠마국이 쳐들어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가 일본의 메이지 법령하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현(縣)이 되었다. 그후 유구국 , 오키나와는 파란의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그들 고유 언어와 문화는 금지되어야 했었고 세계 2차 대전 말기에는 일본이라는 국적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아 약 2십만명의 오키나와인이 살해되었다. 현재는 미군이 약 3만명 주둔하고 있으며 그들 가족 22000명이 주거 하고 있다. 미군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오키나와 전체면적의 25%라고 하니 미국화(美國化)된 일본땅 이라고나 해야할 것이다. 이런 오키나와가 일본 교과서에 반란을 일키고 있어 우리의 주목을 받지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추한 과거지만 진실을 역사로 남기자.”이와같이 오키나와 주민들의 역사왜곡에 대한 결연한 의지는 일본 역사왜곡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태평양 전쟁말기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살사건에 일본군의 강요가 없었다는 역사왜곡에 대해 지역주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 항의하면서 일본정부가 교과서 기술을 복원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하는것이다. 오키나와인 의식속에는 아직도 그들의 옛왕조 유구국에 대한 긍지가 숨어있다는 증거이다. 일본 역사왜곡의 성곽이 오키나와에서 부터 무너지면 일본의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역사왜곡에도 일침(一針)의 효과는 있으리라 본다. 역사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한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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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4 23:02

[오목대] 휴전선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아니 하겠다”고 다짐하며 38선을 넘었던 김구선생.김구선생은 1948년 4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통일을 위한 남북지도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노무현대통령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분단 54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에 갔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광주 출신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1956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는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발표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비교적 잘 표현돼 있다.1연에는 믿음 없는 대치 상황이 2연에는 불안한 평화의 남과 북이 3연에는 반목과 질시의 세태 비판이 4연에는 멀어지는 관계가 그리고 5연에는 전운 상존의 비극성이 묘사돼 있다. 휴전선을 노래한 시인은 갔다.시인이 살아 노대통령이 휴전선을 넘는 광경을 보았다면 뭐라고 노래했을까.비장한 각오로 38선을 넘었던 김구선생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었던 노대통령의 발길이 통일로 가는 지금길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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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3 23:02

[오목대] 노인의 날

무병장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은 염원이 되어왔다. 불로초를 찾아 헤맨 고대 중국의 진시황으로 부터 건강에 좋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는 오늘날 보신족에 이르기 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대한 집착은 끝이 없다. 장수에 대한 욕망에 현대 의학기술 발달이 더해지면서 평균수명은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 52.4세에 그쳤던 평균수명은 2005년 78.6세로 늘었다. 50여년 사이에 무려26세가 늘어난 것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은 이미 사어(死語)가 될 정도다. 오늘 ‘제 11회 노인의 날’을 맞아 올해 나이가 100세를 넘어 정부로 부터 장수의 상징인 청려장(靑藜杖)을 받는 노인이 사상 최대인 68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9년전인 1998년 117명에 불과하던 수여 대상자가 2005년 501명으로 늘어난데 이어 올해에는 사상 최초로 7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100세 이상 노인 수는 15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인간의 오랜 꿈인 ‘100세인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 싶다. 청려장은 장수 염원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다. 가볍고 탄탄하고 모양이 좋아 노인이 짚기에 안성맞춤이다. 지팡이는 본인이 만들어서 사용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50세가 되었을 때 자식들이 만들어 부모에 드리는 지팡이를 가장(家杖)이라고 했다. 60세때는 동네에서 만들어 준다 하여 향장(鄕杖), 70세때는 나라에서 주는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임금님이 만들어 하사한다 하여 조장(朝杖)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장수는 반가운 일이지만 삶의 질이 수반되지 않고 단지 수명만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노년 이후 빈곤과 질병, 외로움의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주위에 많은게 현실이다. 노인복지 차원에서 내년부터 기초노령연금제가 시행된다. 일정 소득 이하인 65세 이상 노인 301만명에게 월 8만4000원 정도 지급한다. 또 노인 장기요양보험 제도도 실시된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을 막기 위해 기초생활수급 대상 독거노인 5000가구에 감시센서가 설치된다.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선 시작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는 시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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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2 23:02

[오목대] '여성상위시대'

금세기는 여성상위 시대라고 한다.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원시시대의 모계사회를 잠깐 거친후 부계사회로 넘어갔다. 그이유는 수렵채취와 농경사회가 되면서부터 생활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남자의 용감성과 근육의 힘이 위력을 발휘했다. 농경사회부터 토지 소유가 나타나게 되고 소유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기 토지를 이어받을 확실한 자기핏줄의 후손이 필요했고 여기에서 여자의 정조(貞操)윤리가 나오게 되었다. 여자쪽에서 스스로 정조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남자쪽이 핏줄의 순수성을 유지코자 여자에게 정조라는 굴레를 씌운 것이다.따라서 농경사회에서 이성(異性)에 대한 선택권은 오로지 남자쪽에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 간택(?) 받기위해 예쁜 얼굴을 가지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동물들 세계와는 다르다. 동물은 수컷이 암컷보다 더 아름다은 외모를 가졌다. 공작새 수컷의 깃털은 암컷에게 수컷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컷 공작새에게 선택을 받기위한 수컷의 전략이다. 수사자 머리위의 갈기털은 수사자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암컷 사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함이다. 이처럼 동물 수컷의 외모는 암컷에게 보내는 간절한 추파이기도 하다. 동물 사회에서 생활주도권은 인간과는 달리 대부분 암컷쪽에 있기 때문에 수컷은 단순히 종족보존을 위한 생산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엘빈 토플러 말대로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힘보다는 지식과 정보가 더 중요하다. 힘쓰는 분야는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이젠 여성도 경제권을 가지게 되면서 발언권 수위도 높아졌다. 더구나 호주제가 폐지는 여성이 결혼을 하지않은채 체내 또는 체외 수정을 통해 자기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자기 성(姓)까지도 제2세에게 물려줄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분위가 여성 독신주의를 가능케도 한다.남성적인 외모보다 여성적인 꽃미남의 더많은 인기는 여성 상위시대 도래의 징조이다. 이렇듯 성(性)의 정권교체기에 있는 오늘의 젊은 남성들의 고민도 그만큼 클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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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10.01 23:02

[오목대] 미륵사지 복원

삼국유사 무왕(武王· AD 600-641)조에는 미륵사지(사적 150호)의 창건설화가 전한다. “어느 날 무왕이 부인(선화공주)과 함께 사자사(師子寺)에 가려고 용화산(龍華山·현재의 미륵산) 밑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여기에 큰 절을 지어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왕이 말을 듣고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곧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으니 신비스런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헐고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미륵삼존의 상을 만들고 회전(會殿)과 탑과 낭무를 세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이같은 설화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는 미륵의 출현을 3탑 3금당식 가람 배치로 구체화한 호국사찰이다. 미륵신앙은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미륵사의 창건은 왕권 강화와 함께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어줘 정신적 단결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륵부처가 이승에서 3번 설법을 마친후 극락세계로 화한다 하여 3금당(金堂·대웅전이 3개)이 되었고 그 앞에 하나씩의 탑을 세워 3탑이 되었다. 대개의 사찰이 1탑 1금당이지만 미륵사는 3개의 절이 하나가 된 경우여서 3원(院) 1가람 양식이다.원래 이곳은 가운데 대규모의 목조탑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의 석탑을 세웠다. 중앙 목탑은 사라지고 동탑은 1993년 복원됐다. 자세히 보면 색깔이 다른 돌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동탑에 쓰였던 실제 돌이다.서탑(국보 11호)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탑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1997년 해체 복원작업에 들어가기 전, 6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었고 한쪽 면은 일제때 시멘트를 발라 놓아 흉한 모습이었다. 원래는 9층이었으며 백제 초기 목조탑을 돌로 정교하게 깎아 놓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을 보여준다. 국내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는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폐사되고 절터와 석탑, 당간지주만 남았다. 그런데 복원 10년이 되어가나 아직도 사각의 감옥에 갇힌 모습이다. 더우기 복원작업이 지지부진해 복원 마무리가 2008년에서 2015년으로 늘어지고, 예산도 80억원에 70억원이 더해졌다. 마침 문화재 발굴과 관련, 비리가 드러난 후여서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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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7.09.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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