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부의 손에서 국민의 밥상까지 - 김정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 중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음식을 두가지 말하라 하면 첫 번째는 김치이고, 나머지 하나는 쌀밥이라고 말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민족에게 친숙한 쌀이 한민족의 역사와 고스란히 함께해온 이유를 선사시대의 유물인 탄화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만년의 역사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1998년 충북 청원군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제공한다. 소로리 볍씨는 무려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500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는 한반도에서 그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을 말하여 준다.이렇듯 우리민족에게 친근한 쌀이 어떻게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지 알고 있는 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쌀이 그저 1년간 농민에 의해 농사지어지고,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매년 같은 품종의 쌀이 심겨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농가에 보급되는 우수 품종은 대략 15년 전에 벼 연구자에 의해 우수한 양친(암컷, 수컷)이 선정되는 것이 출발점이고, 이들로부터 번식된 후세대들중 농업적으로 우량한 계통을 약 10년에 걸쳐 선발한다. 이중 선발된 개체들을 자연환경, 각종 병해, 재해에 대한 안전성을 3년여에 걸쳐 철저히 조사한 후 합격한 개체에 대하여 비로소 품종 선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게 된다. 품종 선정은 각개의 전문가 그룹에 의해 복잡한 심사를 거쳐 비로소 품종으로 선택되어지는데, 1개의 품종은 대략 5만개의 형제 개체들로부터 경쟁을 뚫고 선택되어진 벼중의 최고 벼라고 생각하면 된다. 매년 농촌진흥청은 밥쌀용 5~6개의 품종을 개발하는데 모든 품종이 농민들에 의해 선택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선택되어져도 여간하여서 장수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중 2001년도에 개발된 동진1호는 2007년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약 20%인 190,000ha에 심겨졌으니 그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진1호의 생산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조 7,000억원의 액수이니 그 가치는 현대 그랜져 자동차 6만 5천여대를 수출한 가격과 맞먹는 다고 할 수 있다.이렇듯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벼가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급자족의 역사는 최근 20여년의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386 이상의 세대에게 이젠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보릿고개'가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120kg을 상회하던 1인당 쌀 소비량이, 이젠 쌀 재고량이 문제가 될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급기야는 햄버거 등 서구 외식문화에 자리를 넘겨주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77kg 수준으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음식이 남아돌고 쌀의 소중함이 역사의 한페이지로만 여겨지고 있는 우리에게, 국민의 80% 이상이 우리 대한민국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최근 필리핀의 일련의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불과 10년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은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인하여 지금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하였고, 급기야는 올해 전 세계적인 쌀값 폭등으로 인하여 정부가 쌀 수입을 위해 태국, 베트남 정부에 식량을 구걸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8%(쌀 98.9, 보리 46.5, 콩 13.6, 밀 0.2%)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쌀을 제외할 경우에는 5%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의 식량자급률을 살펴보면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은 농산물 주요 수출국이며, 캐나다, 프랑스는 150%을 훨씬 상회하는 식량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OECD 선진국들 모두가 식량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가기관에서 직접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한 필리핀의 전철을 밟지 않고, 대한민국이 향후 중국에게 식량문제로 인하여 제 2의 '삼전도 굴욕'을 격지 않으려면 농업 농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지속적이고 큰 애정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김정곤(농촌진흥청 호남농업연구소 벼육종 재배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