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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이들, 인간다운 삶 찾는 날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의한 문제점, 국가 간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고발하고 빈국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돌려줄 대안을 찾는 책들이 나란히 출간됐다.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세계화가 가져온 기아 문제를 고발했던 장 지글러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은 신작 '빼앗긴 대지의 꿈'(갈라파고스 펴냄)에서 남반구 주민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부추기는 서구의 '이중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비판한다.지글러는 서구 열강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인권선언문을 읊고 바로 뒤돌아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채찍을 휘둘렀던 두 얼굴의 역사가 멈춘 게 아니라 겉모습만 바꾼 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국제기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경험을 바탕에 깔고 제3세계의 아픔을 그려 나가는 저자의 필치는 생생하고 세세하다.저자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세계 8위의 석유생산국임에도 다국적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 노동력 착취, 국부 반출로 가난에 허덕인다. 이들 기업은 현지 정치인들을 열심히 '부패' 시켜 사업권을 확보한다.국제사회 자금까지 잘못 흘러들어 상황을 악화시킨다. 저자는 세계은행(WB)이 훨씬 처참한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돌아가야 할 개발지원금을 나이지리아에 퍼부어 석유기업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인 현재의 세계 경제 체제가 "세계화한 서양 자본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을 비롯해 다국적 민간 기업들로 구성된 '용병'들을 이끌고 신자유주의 이념을 무기 삼아 강요하는 체제"라며 비난을 쏟아붓는다.그는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의 변화에서 희망을 찾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농부 출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에너지 사업을 국유화하는 데 나섰으며 그 재원을 빈곤층 구제로 돌렸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변화는 이어지고 있다.이 책의 최종 주문은 "인류애만을 기억하라"는 것.잘 사는 일부, 못 사는 절반이 동지애를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꿈꾸는 저자는 "국제사회의 다극화란 인권존중, 전 지구적인 사회계약 존중, 생존에 필요한 공기, 물, 식량을 보호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라는 대가를 통해서만 성공리에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양영란 옮김. 312쪽. 1만2천800원.월든 벨로 필리핀국립대 교수의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더숲 펴냄)는 식량 문제에 초점을 맞춰 세계화의 문제점을 짚어본다.식량 생산량은 충분한데도 빈부격차와 분배의 실패 때문에 현대의 빈곤층이 굶주리는 것이 아니라 빈국과 개발도상국의 농촌 경제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식량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막혀버렸다는 것.지글러처럼 벨로도 IMF나 세계은행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특히, 그는 IMF가 1980년대 이후 여러 나라에서 벌인 '구조조정'이 어떻게 제3세계의 농촌 경제를 뒤흔들어놓았는지 파고든다.IMF가 각국 정부에 요구한 정부 지출 감축과 무역자유화는 현지 농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의 농업 지원금이 뚝 끊기고 외국의 자본 기업농이 생산한 농산물이 물밀듯이 밀려오자 농촌은 맥을 못 추고 무너졌다.저자가 멕시코, 필리핀, 중국,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농업이 세계화로 어떻게 타격을 받았는지 하나하나 분석한 데 이어 내놓은 대안은 물론 '탈세계화'와 '지역화'다.저자는 식량의 생산량과 소비량, 생산양식과 소비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각 국가에 있는 '식량주권'이 자리를 잡아, 자연에 무리하게 해를 가하지 않는 영세 소농의 활성화와 국가가 관리하는 공정한 가격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김기근 옮김. 288쪽. 1만4천9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10 23:02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출간

와병 중인 법정 스님(78)이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 출간됐다.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출간한 출판사 문학의숲 편집부는 "법정스님이 평소 법회나 잡지 기고문에서 언급한 책 가운데 300여 권을 고르고 이 가운데 50권을 다시 추려내기 위해 2년여에 걸쳐 스님과 대화했다"며 "스님은 지난겨울 병중인데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주셨다"고 설명했다.50권 중에는 다양한 종교관련 책, 고전이 된 동서고금의 문학작품, 파괴와 착취를 향해 질주해가는 이 시대의 종말을 경고하는 환경서적, 이미 절판된 책 등이 포함됐다.외국책으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제러미 리프킨의 '음식의 종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 환경, 명상, 문학, 인권 관련 작품이 다양하게 포함됐다.한국책으로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 등 옛날 책과 요즘 책, 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했다는 잡지 '녹색평론' 등이 포함됐다.출판사측은 법정 스님의 책사랑은 출가 이전부터 남달랐다고 전했다.법정 스님은 출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단박에 삭발을 결정하고 얻어 입은 승복까지도 그리 편할 수가 없었건만, 집을 떠나오기 전 나를 붙잡은 것이 책이었다. 그것들을 차마 다 버릴 수가 없어서 서너권만 챙겨가리라 마음먹고 이 책 저 책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놓기를 꼬박 사흘밤. 책은 내게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고 했다고 출판사는 소개했다.또 책에 대해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책에 읽히지 말고 책을 읽으라",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등 많은 이야기를 했다.출판사측은 책 마지막에는 스님이 법회와 잡지 등에서 언급한 책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엮었다.아울러 스님이 늘 곁에 두고 스승으로 삼는 경전으로 '초발심자경문', '선가귀감', '숫타니파타', '장로게', '정법안장' 등이 있다고 전했다.아울러 스님의 서가에는 경전이나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펼쳐보았다는 '어린왕자'를 비롯해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등의 동화가 꽂혀있고, 스님은 성경 가운데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고 소개했다.488쪽. 1만8천5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09 23:02

세밀화로 보는 생물 진화의 흐름

산꼭대기에서는 지하의 열이 밀어올린 온천이 솟고 주변 습지에는 다양한 관다발 식물이 자라 있다. 식물과 바위 사이사이로 거미나 전갈처럼 생긴 동물들이 돌아다닌다.4억800만 년 전 데본기 동식물 조직이 잘 보존된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라이나 각암을 세밀화로 '복원'한 모습이다.1억2천800만 년 전 백악기,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는 다양한 종의 공룡들이 물가를 뛰어다니는 가운데 오소리처럼 생긴 원시 포유동물이 갓 태어난 새끼 공룡을 잡아먹고 있다.영국 과학 저술가 더글러스 파머가 쓰고 자연사 전문 삽화가 피터 바렛이 그린 '35억 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예담 펴냄)에는 생물이 지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35억 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주요 화석 발굴지 100곳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100컷은 생물 진화의 흐름을 보여준다.암초 생물이 번성하다가 턱없는 어류가 출현하고 육지는 녹색으로 바뀐다. 사지동물이 육지에 상륙하고 빙하시대를 지나 복잡한 먹이사슬이 생겨난다. 공룡들 사이에 약육강식이 펼쳐지다가 포유류가 등장하고 지구 온난화가 닥쳐온다. 대초원이 생기고 원숭이가 진화한다.인류가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몇 장면뿐이고 진짜 주인공은 기나긴 지구 역사 속의 다양한 생물체들이다.일러스트 외에도 진화, 생물의 분류, 화석에 관한 개괄적인 글과 생물 계통도, 멸종 생물과 현존 생물의 상관관계, 세계 화석 발굴지명 사전, 다세포 생물 종 목록 등 진화와 생물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망라해 '자연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런던자연사박물관 공동 제작. 최재천 감수. 강주헌 옮김. 374쪽. 8만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09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독신의 수난사

지난 2009년 10월 통계개발원이 내놓은 '한국의 차별 출산력 분석'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미혼율이 2000년 이후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출산연령대 여성의 급격한 미혼율 증가가 저출산의 핵심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여성 비율은 30~34세가 2000년 10.5%에서 2005년 19.0%로, 35~39세는 4.1%에서 7.6%로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5~29세의 미혼율은 같은 기간 39.7%에서 59.1%로 늘었다.각자 어떤 이유에서건 독신은 우리 시대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뉴스가 되질 않아서 그렇지 지금 이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 수많은 가정에서 성인이 된 자녀의 독신을 둘러싸고 부모-자식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프랑스의 역사학자 장 클로드 볼로뉴(Jean Claude Bologne)의 「독신의 수난사」(권지현 옮김, 이마고, 2006)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을 뿐 인류 역사 이래로 내내 독신은 모진 탄압을 받아왔다. 독신자를 탄압한 주요 이유는 늘 인구·풍속 문제였다. 독신자가 많아지면 인구가 줄고 풍속이 타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신자에게 벌금을 내게 하는 제도는 '기본'이었고, 각종 모욕과 탄압이 가해졌다. 전쟁을 많이 벌이던 스파르타에선 겨울에 독신자들을 강제로 벌거벗겨서 광장을 돌게 하는 모욕을 주고 독신자들이 법을 어긴 만큼 벌을 받아도 싸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일시적으로나마 독신자의 구세주는 1798년 「인구론」을 출간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였다. "인구의 힘은 인간을 부양할 지구의 힘보다 항상 훨씬 더 크다"는 주장은 공포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출판사는 한정된 자원과 넘쳐나는 인구로 지구는 곧 멸망할 것이라는 포스터까지 등장시켜 홍보했고, 책은 날개돗친 듯이 팔려 나갔다. 맬서스의 인구억제론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에 명백한 한계는 있었지만, 한동안이나마 독신자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그러나 인구 증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독신자는 다시 탄압의 무대 위에 올려졌다. 빌레르메라는 사람은 1850년에 발표한 글에서 독신자들이 가정을 타락시킬 수도 있으니 이들과 일체의 접촉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7년 「자살론」을 펴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1858~1917)은 독신과 자살을 결부시키면서, 독신자의 자살을 '이기주의적 자살'로 비난했다.독일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가족, 사적 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서 자본이 인간관계를 가족관계로 축소시킨다며, 일부일처제를 버리는 것이 역사적 진보라고 주장했지만, 독신을 옹호하진 않았다. 그는 일부일처제와 유사하지만 사회경제적 이유보다는 감정에 기초한 사랑을 역설하면서 이런 관계가 매매춘, 불륜, 여성의 노예화라는 부작용을 낳지 않으리라 믿었다.엥겔스의 주장이 시사하듯이, 사실 기존 가족제도의 문제점을 개혁해보려는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졌다. 예컨대,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생겨난 셰이커교(Shakers) 같은 종교단체는 출생으로 인한 고통과 위협, 그리고 영아 사망으로 인한 슬픔에서 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독신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 신흥종교는 독신주의 교리 때문에 곧 쇠퇴하고 말았다.20세기 들어 독신을 가장 탄압한 체제는 파시즘 국가들이었다. 1927년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남성 독신세를 신설했다. 무솔리니는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에 채찍질을 가하기 위해 이 세금을 활용한다"며 "9천만 독일인, 2억 슬라브 민족 앞에 겨우 4000만 이탈리아 인구가 말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무솔리니의 목표는 20세기 후반에 인구 6000만을 돌파하는 것이었다.히틀러의 독일도 마찬가지였지만, 독일은 '우등 인간'을 키운다는 우생학적 목표가 더해졌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하자마자 독신세를 통한 결혼의 권장을 최우선 정책 중 하나로 만들었다. 우생학적으로 허용된 결혼의 목적은 오직 다산(多産)이었다. 히틀러의 어머니 생일인 8월 12일에는 해마다 수천명의 산모가 메달을 받았다. 4~5명을 낳은 사람은 동메달, 6~7명을 않는 사람은 은메달, 8명 이상을 낳은 사람은 금메달을 받았다. 1943년경엔 모든 여성이 35세까지 순수 독일 인종이 남성들과의 사이에서 4명의 아이를 생산해야 한다는 출산의무제도가 도입되었고, 4명의 출산목표를 달성한 가장의 경우 다른 여성들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조항마저 포함되었다.파시즘 체제는 아니었지만, 프랑스도 이미 1920년대부터 인구 증가를 위한 강력한 정책을 폈다. 1923년 폴 오리(Paul Haury)라는 사람은 '프랑스의 삶 혹은 죽음'이라는 연구로 정부의 상을 받았는데, 그는 프랑스를 죽인 살인용의자는 독신자라고 주장했다. "한 나라에서 독신자들과 자녀 없는 가정들은 과연 무엇인가? 전혀 번식하지 않는 세포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남기는가? 무덤 하나, 그것이 전부이다."독신자 탄압에 대한 저항이 사회운동 수준으로까지 발전돼 나타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히피 운동이었다. 히피들은 공동체 생활과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가지면서 독신을 대안적 생활방식으로 발전시켰다.이후 독신자들은 굳이 저항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경제사회적 환경이 독신을 강요하는 쪽으로 급격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독신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사회경제적 불안이다. 날이 갈수록 살기가 편해졌다곤 하지만, 그만큼 치열해진 생존경쟁은 출산과 양육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다.오늘날 독신자를 위한 옹호운동은 사실상 대중문화와 소비여가산업이 대신 해주고 있다. 이 분야의 산업들이 독신자 인구의 막강한 구매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독신자는 기혼자들보다 영화관이나 식당에 두 배 더 자주 가고, 웰빙에 훨씬 더 관심이 있으며, 가족부양의 책임이 없어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밝혀졌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줄 일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소비한다. 그러니 각종 소비산업이 어찌 독신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독신의 사회적 장점도 많다. 독신은 무엇보다도 혁신의 동력이다. 결혼이 폐쇄해버리는 미래의 가능성이나 직업선택·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기존 규범에 의문을 품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독신은 기존 가족중심적 인간관계의 문제를 완화시킬 수도 있다. 저자는 "독신생활은 탑에 홀로 갇혀서 통조림이나 냉동식품을 까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다."고 말한다.독신을 찬양하고 싶어도 인구 감소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는 애국자들이 많겠지만, 그건 독신자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국가경쟁력'을 빙자해 자녀의 사교육에 목숨 걸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드는 현 입시전쟁 체제를 고수하거나 더 악화시키려는 사람들, 자녀 양육에 도움을 주려는 정책보다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토건사업에만 '올인'하려는 사람들에게 따져야 할 문제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3.05 23:02

돈욕심 없는 그는 과연 제정신일까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미국 작가 커트 보네거트(1922-2007)의 소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문학동네 펴냄)는 재치 있는 첫 문장이 귀띔하듯 '돈'에 대한 이야기다.'제5도살장', '마더 나이트' 등의 소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반전(反戰)작가이자 탁월한 풍자가인 그는 1965년 발표한 이 소설에서 돈과 노동의 본질을 유쾌하게 풀어낸다.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열네 번째 부자인 로즈워터 가의 일원으로서 자선문화재단인 로즈워터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앨리엇 로즈워터.늘 술에 취해 기행을 일삼던 앨리엇은 정신과 의사마저 치료를 포기할 정도의 기인이었다. 급기야 집을 나와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는 고향 로즈워터 군에 정착해 그곳에 있는 "쓸모없고 볼품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살기로 한다.한편 로즈워터 재단을 관리하는 법률회사의 젊은 악덕 변호사 노먼 무샤리는 재단 임원이 정신이상 판정을 받으면 즉시 퇴출된다는 규정을 이용해 앨리엇을 몰아낼 음모를 짠다. 규정에 따라 차기 이사장이 될 앨리엇의 먼 친척 프레드의 대리인을 맡아 막대한 수임료를 챙길 속셈이다.소설은 유쾌한 '미치광이' 앨리엇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가난한 프레드를 대비시키며 로즈워터 가 재산의 향방을 흥미롭게 따라간다.공상과학 소설을 사랑하고 소방관을 존경하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 앨리엇이 던지는 어린아이 같은 물음은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제법 진지한 질문을 이끈다."한 나라의 정부라면 최소한 모든 아기에게 재물을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해요. 안 그래도 힘든 인생인데, 돈 문제까지 고민하다 병이 나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조금만 더 나눈다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풍족할 거예요."(137쪽)노먼 무샤리의 음모를 잠재우는 '엘리엇다운' 해법도 통쾌한 반전이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04 23:02

인터넷 속 문학의 향연…웹진 전성시대

인터넷 소설 연재의 활성화와 맞물려 인터넷 문학 웹진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에 '문학웹진 뿔'과 '문화웹진 나비'가 잇따라 문을 연 데 이어 올해 문학과지성사도 '웹진 문지'를 창간했고 창비도 웹진 형식의 블로그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들 웹진은 수준 높은 문학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종이 매체를 통해서는 쉽지 않았던 독자들과의 쌍방향 소통도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 ◆ 인터넷에서 만나는 시ㆍ소설 = 이들 웹진들의 주요 콘텐츠는 무엇보다 신작 소설과 시다. 문학과지성사가 '문학과 인문학의 창의적 플랫폼'을 표방하며 문을 연 '웹진 문지'의 경우 김태용과 이홍, 백가흠의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창간호를 통해 이기호의 단편소설과 강정, 김혜순, 김광규의 시를 선보이는 등 신작 단편소설과 시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문학동네와 생각의나무, 자음과모음 등 일곱 개 출판사가 함께 만든 문화웹진 '나비'에는 강영숙, 최인석, 김다은의 장편이 연재 중이다. 윤성희, 김도언, 김선우, 정수현 등도 '나비'를 통해 장편 연재를 마쳤다. 문학에디션 뿔이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함께 문을 연 '문학웹진 뿔'에서는 전아리, 배지영, 이신조, 박금산, 서준환 등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웹진'의 형태는 아니지만 문학동네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은희경의 신작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으며 내달 초 문을 열 창비 블로그에는 천운영의 장편소설이 연재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2005년 일찌감치 문을 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장 웹진'에도 매달 여러 편의 신작 소설과 시가 발표되는데, 인터넷 매체의 장점을 살려 작가들이 육성으로 작품을 낭독한 오디오 파일도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자들을 위한 열린 공간 = 웹진을 통한 독자와의 소통은 단순히 작가가 올린 작품을 읽고 독자들이 댓글을 다는 것을 넘어선다. '웹진 나비'의 경우 기성 작가의 문학작품이나 명사들의 칼럼 외에 네티즌 독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나는 나비 2.0'이라는 코너를 통해 네티즌들의 '손바닥 소설'이나 '한 줄 이야기', '리뷰'를 공모해 정기적으로 우수작을 선정하고 있다. 500자 가량의 압축 단편을 올리는 '손바닥 소설' 게시판에는 한 달에 20-30여 편의 네티즌 작품이 올라오고 있는데 우수작들에 대해서는 문학평론가들의 심사평도 올리고 있어 독자들의 호응이 높다. '웹진 나비'는 미등단 신인들을 위한 제1회 나비문학상도 공모해 내달 첫 수상자를 낼 예정이다. '문학웹진 뿔' 역시 신인 발굴을 위한 문학상을 구상 중이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01 23:02

호주판 오체불만족 "포기 말고 희망을 품어요"

"좌절하고 포기하기 직전까지는 언제나 희망이 존재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품으세요"분당서울대병원은 팔다리가 없는 선천적 장애를 극복,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희망 전도사인 호주의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24일 병원을 방문, 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25일 밝혔다. 부이치치는 암병동, 노인병동, 재활치료실 등 병원 곳곳을 돌며 자신과 비슷한 처리로 실의에 빠져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장애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품으세요"라고 말했다. 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사회에 짐이 될 뿐이고, 쓸모가 없다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짐일 뿐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미 상실한 기능, 능력에 얽매이면 현재 가진 소중한 것마저 사라지므로 현재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하고 사랑하세요"라고도 했다. 부이치치는 팔다리가 없이 작은 왼발만 갖고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장애를 딛고 세계를 돌며 희망 전도사로 활약 중이며, 지난 21일 방한했다. 그는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의 저자인 일본의 오토타케 히로타다와 비슷한 장애를 지녀 '호주판 오체불만족'으로 불린다. 그는 오는 28일까지 부산, 서울, 부천, 성남, 수원 등을 돌며 희망을 전도하는 강연과 퍼포먼스를 한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2.26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굿바이 니코틴홀릭

김관욱의 「굿바이 니코틴홀릭 : 금연상담 전문의의 담배 이야기와 금연 멘토링」(북카라반, 2010)은 뜻밖의 책이다. 금연을 하라고 잔뜩 겁주는 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이만저만 재미있는 게 아니다. 단지 재미 뿐인가. 그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넛지(nudge)' 방식이라고나 할까. 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주의를 환기시키다'는 뜻이지만,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책도 그런 식이다."우리는 무지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확신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말이다. 가슴에 와 닿는다. 흡연자, 특히 골초들의 심리가 그렇다. 김관욱은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확실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주로 발생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담배는 하나의 '기호품'이고, 흡연하는 생활양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니코틴 의존도'(흡연에 대한 의식, 가치관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높은 흡연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의학적 '진실'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심신이 '불편'해지기만 한다. (중략) 백이면 백 탄 고기는 먹지 않고 버리곤 한다. 이유는? '암'에 걸리는 게 두려워서다. 탄 걸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믿음은 어디에나 통용된다. 그런데 폐암을 유발하는 담배는 왜 그렇게 열렬히 피우는 걸까?"골초들이 담배에 대해 나름대로 갖고 있는 확신은 실은 '담배 마케팅'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 따르면, 하버드대 의학 교수 앨런 브랜트(Allan M. Brandt)는 「담배의 세기(The Cigarette Century)」에서 "담배는 선천적인 특성보다 판촉에 의해 의미가 정의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담배의 역사는 곧 '판촉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묘기대행진에 가까운 담배 판촉술 몇가지를 감상해보기로 하자.1928년 미국 아메리칸토바코(American Tobacco)사 사장인 조지 워싱턴 힐(George Washington Hill)은 PR 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 Bernays)에게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길거리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던졌다. 그렇게만 되면 여성의 담배 소비량이 두 배로 늘 수 있다는 게 아메리칸토바코사의 생각이었다. 버네이스는 담배를 여성해방이라고 하는 '자유의 횃불'로 만들기로 했다.1929년 3월 31일 부활절에 미국 뉴욕시 맨해튼 5번가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0명의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활보했던 것이다. 늘 진기한 사건에 굶주려 있는 신문들은 이 행진을 보도하기 위해 1면을 아낌없이 할애했다. 버네이스는 이어 보스턴, 디트로이트, 휠링,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자유의 횃불' 퍼레이드를 연출했다. 이 사건 이후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아메리칸토바코사는 이어 '담배 피우는 산타클로스 캠페인'을 전개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가 담배를 선물로 주는 형식을 취해 담배의 선물화를 시도한 캠페인이다. 1936년 광고 속 카드에 쓰인 내용에 따르면, "나의 크리스마스 정신(선물 증정)은 곳곳에 퍼져 있다. 이러한 정신을 표현하고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줄 선물은 크기에 상관없이 정말로 드물다. 나의 친구인 '럭키스트라이크'가 바로 그러한 선물이다."담배의 마케팅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히트 광고는 1955년에 등장한 필립 모리스사의 말보로(Malboro) 광고다. 카우보이를 등장시킨 광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에선 1954년부터 담배의 폐암 유발 가능성이 거론되었지만, 이 말보로 광고는 그런 우려를 이후 오랫동안 잠재우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오죽하면 2006년 10월 미국에서 꼽은 '가장 영향력 있는 허구인물 101명' 가운데 말보로맨이 1위에 올랐겠는가. 그러나 역대 10명의 말보로맨 가운데 한 명이었던 웨인 맥라렌(Wayne McLaren)은 1992년 51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죽으면서 "나는 흡연이 인명을 살상시킨다는 명백한 증거를 남기며 죽어간다"고 말했다.간접광고 형식을 통한 할리우드와 담배의 유착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80년작 <슈퍼멘 2>에는 말보로 광고가 배경으로 22번이나 등장하고, 슈퍼맨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로이스 레인(마곳 키더 분)이 영화속에서 피웠던 담배 역시 말보로다.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Enzio Stallone)은 <람보>와 <록키 4> 등 자신이 출연한 5편의 영화 속에서 브라운 앤 윌리암슨(Brown & Williamson) 담배를 피우기로 계약한 후 50만 달러(5억원 이상)를 받았다.한국의 담배 마케팅의 전진 기지는 군대다. 1949년 '화랑'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약 60년 동안 군대에 담배가 보급되었다. '화랑' 이후 군용담배의 명맥은 '은하수'와 '한산도'(1982~1988), '백자'(1989~1990), '솔'(1990~1994), '88 라이트'(1994~2000), '디스'(2001~2008)로 이어졌다. 1994년 12월 한국담배인삼공사 지점장이 해병부대를 방문해 신제품 '디스'를 선물로 주면서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동시에 장병들에게 '디스'의 홍보를 부탁했다는 게 흥미롭다.국산품애용이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은근슬쩍 국산담배 판촉을 하는 건 오래된 수법이다. 「담배인삼가족」 1995년 1월호에 실린, 초등학생 국산품 애용 글짓기 대회 수상작을 보자.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 (…) 담배는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인데 담배까지 수입한다니 큰 일이다. (…) 이렇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담배를 왜 사람들은 양담배를 피우는 것일까? 우리나라 담배를 사면 그만큼 나라가 잘사는데…."이젠 오랫동안 '국가 종교'였던 '수출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KT&G의 인터넷 자사 광고에 따르면, "KT&G는 러시아, 중동, 중앙아시아,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 40여개국에서 수출개시 7년만에 수출금액 25배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총 생산량의 약 40퍼센트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KT&G는 세계가 인정하는 초우량 글로벌기업의 위상을 확고히 해나가겠습니다."이 책엔 담배에 얽힌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흡연자들의 '자기 확신'을 의심하게 만든 다음 마지막 장에서 '금연을 위한 생활백서'를 제시한다. 저자의 마지막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금연운동은 담배에 관한 의학적 측면은 물론 역사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측면까지 깊이 있게 성찰할 때에만 비로소 인류를 더욱 행복한 길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건의료인들도 담배회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담배는 마약이다. 흡연자의 의지를 강조하는 금연운동으론 한계가 있다. 체질에 따라 중독의 정도도 다를 것인 바, 의지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어떤 의료인이 주장하고 나선 '담배 금지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담배는 마약이라는 그의 진단은 백번 옳다. 문제는 담배생산 농가를 비롯하여 담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사전 대책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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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02.26 23:02

뿔난 문인들 "보조금 안 받겠다"

"한 1-2년쯤 잡지 안 내고 외국작가 초청 안하면 안돼요? 이번 일은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보여주는 건데 작가회의가 이걸 받아? 좀 크게 봐야합니다."한국작가회의의 정기총회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 강당.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불법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와 관련한 최일남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의 발언에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외침과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2년간 작가회의를 이끌면서도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던 최씨의 격앙된 목소리와 이에 대한 회원들의 호응은 이번 사태에 대한 작가들의 입장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지난달 문화예술위원회가 작가회의에 3천400만 원의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을 비롯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를 요구한 일이 특별안건으로 올라 집중 논의됐다. 논의에 앞서 도종환 전 사무총장은 경과를 보고하며 지난 17일 예술위 윤정국 사무처장이 방문해 구두로 사과의 뜻을 전한 것과 이번 사태 관련 보도를 접한 원로 문인이 작가회의에 3천400만 원을 익명으로 전달한 사실을 회원들에게 전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원로 회원과 젊은 회원을 막론하고 강경한 입장이 주를 이뤘다. 한 회원은 "작가회의만의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 보조금 없이 한두 해 어렵게 가더라도 강력 대응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단체들의 문제도 함께 해결되는 길을 터줘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종영 신임 부이사장은 "원로가 전달하신 돈이 매우 상징적인 것"이라며 "보조금 없이도 갈 수 있다. 작가들이 어떤 입장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작가회의는 보조금을 받지 않는 한편 정부 지침 철회를 위한 문학적 저항을 이어가기로 했다. 현 정부의 문화행정 등에 대한 저항의 뜻을 글로 담아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저항의 글쓰기' 운동에도 이날 총회 참석회원의 대부분인 158명의 회원이 서명해 지지를 보여줬다. 작가회의는 예술위가 확인서 제출 요구의 근거로 삼은 정부 지침의 철회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투쟁을 확대시켜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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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2.22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더러운 철학

"이 더러운 세상에서 그 더러움도 깨끗하게 만들지 못한 채 깨끗한 체하는 철학도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은 세상의 근본과 근원만 생각한다면서 사실은 그것을 확보하지 못하는 철학, 그러면서 근본과 근원을 잊은 세상을 입바른 말로 비판하기 좋아하는 철학도 제 손에 묻은 때와 피를 보지 못한다.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려고 해도, 논술이나 논리로 특성화를 모색하려고 해도, 도덕과 윤리의 이름 뒤에 숨어도, 철학은 구차스런 더러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진석은 「더러운 철학」(개마고원, 2010)에서 위와 같이 선언한다. 철학이 더럽다면 남아 날 학문이 무엇이 있겠는가? 모든 학문이 다 더럽다고 보아야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올바르지 않다. '더러운 철학'이라기보다는 '더러움에 관한 철학'으로 붙여야 옳다. 그런데 왜 '더러운 철학'인가? 겸양의 뜻인 것 같다.우리는 세상을 향해 더럽다고 손가락질을 하길 좋아한다. 물론 세상이 더러운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손가락질을 하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시라. 다섯 손가락 중 앞을 향한 건 둘이요, 셋은 자신을 향한다. 나 역시 더럽거나 더러울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더러움에 대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의도적으로 더러움을 껴안을 필요도 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더러움은 상종해선 안될, 피해야만 할 무엇으로 여겨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탐구해야 할 학문마저 더러움을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더럽다'는 수준의 피상적인 관찰로만 끝내기 일쑤다. 이에 김진석은 이의를 제기한다."오늘날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더러움에 빠지기 쉽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역설적이게도 더러움을 무릅써야 한다. 철학은 아마도 먼저 더러움에 빠지고, 먼저 더러움을 무릅쓰는 공부의 이름일 뿐이다. 소위 인문적 지식과 담론들뿐 아니라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지식과 담론들도 학문적 담론의 더러움을 피하기 어렵다."그러나 우리는 더러움을 피하는 것이 학문이라고 여긴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이 정치에 대해 쓴 모든 논문과 저서들을 다 읽는다면 한국정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까? 어림도 없다. 정치학자들은 더러운 걸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러운 현상이라도 거시적으로 고상하게만 다룰 뿐, 선거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것에 대해 알기는 어렵다. 그건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선거 브로커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브로커들이 하는 일이 왜 논문이나 저서의 주제가 될 수 없단 말인가? 이른바 '상아탑(象牙塔)'이라는 신화가 학문을 버려놓는 건지도 모르겠다.그러다보니 말과 삶이 겉도는 일이 벌어진다. 정치는 마치 침뱉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판에 뛰어들어 성공을 한 사람들은 권력의 과실을 누리지만, 그건 마치 침을 맞아가면서 더러운 도박을 한 것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진다. 어린 아이들이 맛있는 걸 혼자 먹기 위해 먹을 것에 침을 퉤퉤 뱉어놓는 것처럼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정치가 욕을 먹을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걸 잘 알고있는 듯 하다. 그런데 정치가 더럽다고 침을 뱉는 사람들은 얼마나 깨끗한가? 김진석이 던지는 질문이다."역설적으로 현실정치는 더럽지만, 그것이 더럽다는 것이 뻔히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곧 그것이 권력관계의 뻔뻔한 극단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최소한 위선적이지는 않다. 위악에는 잘 빠지지만, 위선에는 덜 빠진다. 그와 달리, 실제로는 사교를 하고 인맥을 쌓는 일에 열중하면서도, 자신은 정치 바깥에 있고 또 자신들의 행위는 그저 인간적인 행위라고 믿는 사람들의 행위는 위선에 잘 빠진다. 이 점에서 나는 옳은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마지막 말은 좀더 설명이 필요하겠다. 내 식으로 설명을 해보겠다. 나는 옳은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걸 자신의 권력 행사를 위해 쓰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달리 말하자면, 진보의 가치를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거나 남을 비난하기 위해 써먹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옳은 말을 할 때엔 겸손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도덕적 분노가 치밀어 겸손을 잃을 수는 있지만, 상습적으로 진보의 가치를 사유화하는 건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장에선 그렇게 사유화를 하는 사람들이 잘 팔린다. 진보의 비극이요, 더러움 철학의 부재다.진보주의자들이 무조건 '경쟁'을 매도하는 걸 볼 때마다 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통해 명문대학을 나와 사회적 발언권을 얻은 뒤에 경쟁을 매도하는 이들이 많다. 아름답게 볼 수도 있겠지만, 더럽다고 볼 수도 있다.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정녕 경쟁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걸까? 김진석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의문에 공감하는 이유다."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이름 아래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인 경쟁이 부추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거꾸로 근본주의적 자연 개념은 너무 단순하게 경쟁을 무시하고 백안시하는 것은 아닌가? 문명적 인간 사이의 경쟁과 권력관계를 너무 부정적이고 악의적으로만 해석한 나머지, 어떠한 폭력도 없는 순수한 공생, 어떠한 갈등도 없는 평화적 공생만을 목적으로 삼는 실수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이명박 정권은 더럽다. 더러워도 이만저만 더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이명박 정권만 더러운 것인가? 그래서 이명박 정권에게 '파시즘' 딱지를 붙이는 것인가? 김진석은 이 딱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이명박 정부가 경찰과 정보기관의 힘을 빌려 통치를 하는 경향이 심해지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 정부를 파시즘 정부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 글을 쓰는 2009년 8월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권위주의적이고 퇴행적인 조짐들이 많이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이 정부를 파시즘 정부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본다. (…) 만일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의 정부 비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비판하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어쨌든 선거에서 표현된 민의를 존중해야 할까? 아니면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가 파시즘에 물들었다고 말해야 할까?"이번 지자체 선거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이미 한국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다. 그땐 파시즘이 아니었는데 그후에 파시즘이 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그때부터 온 사회가 파시즘에 물들었다는 것인가? 혹 '더러움 철학의 부재' 때문에 일어난 착각은 아닐까? 즉, "나는 깨끗하지만 너는 더럽다"는 이분법으론 이 세상을 설명할 길이 없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이분법에서 기만적인 위안을 찾으려 드는 게 아닐까? 이명박 정권의 더러움 이전에 그 어떤 다른 더러움에 대한 분노와 염증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깨끗하지만 세상은 더럽다고 믿는 분들에게 「더러운 철학」을 일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2.19 23:02

현직기자가 들려주는 1인미디어 운영법

블로그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언론사에 속하지 않고도 뉴스 전달과 여론 형성에 적극적인 '나 홀로 언론' 1인 미디어가 널리 퍼졌다. 많은 1인 미디어 운영자가 열정적인 취재와 뛰어난 기사로 기존 언론과 경쟁하며 세를 넓혀가고 있으나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여전히 많다. 언론사 현직 기자들이 1인 미디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 비법을 전해주는 실용서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한국콘텐츠진흥원 펴냄)를 내놓았다. 저자는 김병만 연합뉴스 사진부 국회취재반장과 김익현 아이뉴스24 에디터, 류종현 MBC 보도국 시사영상부 부장, 안수찬 한겨레21 사회팀장, 이나리 중앙일보 차장, 이상국 한국언론재단 편집 전문 교수, 이세영 연합뉴스 영상뉴스부 기자, 장성구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장이다. 저자들은 1인 미디어의 저널리즘적 특성을 짚어보고, 기삿거리 찾기부터 현장 취재 방법, 인터뷰 섭외와 진행, 기사 쓰기와 제목 달기, 편집까지 저마다 실전에서 겪은 노하우를 전한다. 또, 신문과 방송이 결합한 '크로스 미디어'인 인터넷 미디어의 특성상 필수적인 사진과 영상, 그래픽 등 시각 콘텐츠를 만들고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며, 기성 언론사보다 취약한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관련 법적 분쟁 대응법도 귀띔한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 제작 총괄 정인택 프로듀서, 정수웅 다큐서울 대표 등 1인 미디어 '선구자'들과의 인터뷰 내용도 실렸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1인 미디어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 해서 누구나 뛰어난 저널리스트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선 기자들이 현장 경험과 뉴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녹여냈다"고 말했다. 348쪽. 2만1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2.18 23:02

색깔 있는 세계문학을 읽고 싶다면

세계문학전집의 상차림이 다채로워졌다. 민음사가 주도하던 고전문학 시장에 최근 1-2년 새 을유문화사, 펭귄클래식코리아, 문학동네 등이 잇따라 진입하며 세계문학전집 의 '춘추전국시대'를 열고 있다.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뛰어든 출판사들이 늘어나면서 독자들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이 중에서도 독특하면서 분명한 색을 갖고 독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시리즈들을 소개한다. ◆ "처음 만나는 작가" 들녘 일루저니스트 시리즈 = 들녘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일루저니스트 시리즈'는 2007년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소설 '차가운 피부'를 시작으로 출발했다. 현재 오타비오 카펠라니의 소설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까지 모두 13종 16권의 소설이 출간됐다. 이중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전2권)는 3만 부 이상이 팔린 인기 도서다. 일루저니스트 시리즈는 영미권이나 유럽권에 치우쳐 있는 국내의 세계문학 시장이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세계 문단에서 인정받은 작가들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들녘측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고, 작품이 10개국 이상에 출간됐으며, 권위 있는 문학상을 3번 이상 받은 작가라는 기준을 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루저니스트 시리즈에 몇달 앞서 다른 출판사를 통해 또다른 작품이 소개된 독일 작가 다니엘 켈만을 제외하면 모든 작가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다. 작가의 국적도 아르헨티나(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위험한 책'), 페루(알론소 쿠에토 '고래 여인의 속삭임'), 스웨덴(쉘 요한손 '이야기꾼'), 피지(에펠리 하우오파 '엉덩이에 입맞춤을') 등 다양하다. ◆ "고품격 숨은 명작" 대산세계문학총서 = 문학과지성사가 대산문화재단과 함께 펴내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도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시리즈다. 그동안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너무 난해하다는 이유로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해당 언어 전공자의 수준 높은 번역으로 출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001년 로랜스 스턴의 소설 '트리스트럼 샌디'(전2권)를 시작으로 아리시마 다케오의 '어떤 여자'까지 모두 91권이 출간됐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국내 초역이다. 상업성보다는 작품성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다른 세계문학전집과 달리 시와 희곡, 산문 등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 또한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다. 91권 가운데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등 모두 15권의 시집이 포함돼 좋은 반응을 얻었고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희곡 '돈 카를로스', 당대 문장가 한유의 산문집 '한유문집' 등도 포함됐다. ◆ "단편의 향연" 창비세계문학 = 장편 위주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부담스럽다면 여러 편의 단편을 통해 최근 100년간 세계문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창비세계문학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창비가 올해 초 선보인 '창비세계문학'은 각 언어권의 주요 걸작 단편만을 묶은 단편문학전집이다. 작가 102명의 단편 114편이 영국 '가든파티', 미국 '필경사 바틀비', 독일 '어느 사랑의 실험', 스페인ㆍ라틴아메리카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프랑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중국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일본 '이상한 소리', 폴란드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러시아 '무도회가 끝난 뒤' 등 국가별 9권으로 나뉘어 묶였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찰스 디킨스 등 19세기 작가부터 도리스 레싱, 르 클레지오, 크리스토프 하인 등 동시대 생존작가까지 망라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생소한 폴란드 작가들의 단편을 비롯해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됐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2.16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자동차의 역사:시간과 공간을 바꿔놓은 120년의 이동혁명

당신이 누구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무슨 무슨 자동차로 당신을 대변하라고 유혹하는 광고가 있다. 그 속물적 천박함에 짜증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동차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 보이려는 건 우리 시대의 '상식'이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그 상식이 드라마틱하게 실천되는 시즌이 바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었다.설이란 무엇인가? 여러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그건 '자동차 전쟁'이기도 하다. 고향을 찾는 민족대이동의 주요 수단이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괴로운 전쟁이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그래도 견딜 만 하다. 고향에 가기 위해 며칠 또는 수십일간을 걸어야 했던 시절, 기차나 버스를 놓치면 고향에 갈 수도 없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독일 역사가 쿠르트 뫼저(Kurt M?ser)의 「자동차의 역사 : 시간과 공간을 바꿔놓은 120년의 이동혁명」(김태희·추금혼 옮김, 이파리, 2007)을 읽으면서, '자동차 전쟁'을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자동차에 대한 공격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1913년 헨닝스도르프 근처에서 일어났다. 양쪽의 가로수에 묶인 철사가 한 운전자와 그 부인의 목을 잘라 버렸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두 딸들은 부상을 당했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 암살사건 이후 많은 자동차에 '철사 퇴치' 장치가 부착되어 만약의 경우에 그것이 탑승자의 머리 위로 올라가도록 했다."자동차 지붕이 없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이 끔찍한 사건은 자동차의 출현 초기에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자동차에 대한 반감과 공격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동차는 특권층의 전유물인데다 자유롭게 뛰어놀던 길을 빼앗아가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동차를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했다. 1904년 미국 뉴욕시에서는 자동차에 대한 투석(投石)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자동차에 대한 공격은 그만큼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1905년의 미국의 최고 히트 가요는 "함께 떠나요, 루시. 내 즐거운 올즈모빌을 타고"였다. 어떤 필자는 "자동차는 현대의 우상이다. 차를 가진 사람은 여성들에게 신(神)이나 마찬가지다."고 썼다.대중의 자동차 우상화를 정치적으로 가장 잘 이용한 인물이 독일의 히틀러다. 히틀러는 1933년 전 국토에 대규모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아우토반 건설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1934년엔 자동차가 '특권계급의 독점물'인 현실을 성토하면서 국민이라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국민차(Volkswagen)' 생산을 선언했다. 1938년 최초의 국민차인 폭스바겐38이 출시되자, 히틀러는 '강함과 기쁨의 차' 저축운동을 통해 모든 노동자가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장담했다. 이 운동은 당시 독일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스페인의 프랑코도 자동차를 '국가·민족의 영광을 위한 실체이자 상징'으로 이용하였다. 유럽의 파시즘을 가리켜 '자동차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파시즘은 아니었지만, 한국민이 국가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된 최초의 사건 중의 하나도 바로 자동차였다. 1986년 자동차 수출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이른바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국가주의적 애국심을 일깨워 주었는데, 당시 김동길 연세대 교수가 정주영 현대 회장을 존경하게 된 것도 순전히 자동차 때문이었다. 김동길은 "내가 정주영씨를 한국의 거인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85년인가 캐나다 강연을 가서 때마침 그곳에 상륙한 현대자동차의 포니 승용차를 목격한 그때부터였다"고 말했다. 그는 포니 승용차 안에 타고 있던 백인 젊은이들이 "가서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피조물"이었으며, "정주영은 한국인 모두에게 긍지를 심어준 민중의 영웅이다"고 단언하였다.6·25 시절 자동차에 탄 미군에게 껌과 초콜렛을 구걸했고,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온 드럼통을 펴서 차체를 만들고 노후화된 미군 지프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을 조립해 만든 '시발(始發) 자동차'를 신기하고 뿌듯하게 여겼던 한국의 아이들이 커서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팔아 먹었다는 건 김동길 세대에겐 그야말로 살 떨리는 감격이었을 것이다.사정이 그와 같은데, 성공하겠다며 고향 떠나 서울로 간 사람들이 설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으면서 무얼 보여주고 싶었겠는가. 80년대말부터 설이나 추석에 고향방문을 할 땐 빚을 내서라도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가야 한다는 '상식'이 유포되기 시작했고, 자동차 회사들은 그걸 마케팅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1992년 설날엔 "안전한 르망이 있어 더욱 즐거운 설날 귀향길- 우리집 새 가족 르망과 함께 고향길을 달려 갑니다"라는 구호가 요란하더니 그해 추석을 앞두곤 "엑셀 특보! 지금 계약하시면 추석 연휴때 타실 수 있습니다"라는 선전구호가 난무했다.실제로 승용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성수기는 추석과 설날을 앞둔 몇주일간과 피서철이었다. 또 중고차 시장에 매물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추석, 설날, 피서철이 끝난 직후였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가는데 객지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알리는 데에 승용차 이상 좋은 것이 없었다. 설사 객지에서 변변치 않게 살고 있다 하더라도 번듯한 승용차를 몰고 가서 체면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옷차림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게 돼 승용차가 과거의 옷차림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승용차를 '제3의 피부'라고 한다.뫼저의 결론이 재미있다. 그는 "자동차에 대한 비판은 자동차 시스템의 성장과 줄곧 병행될 테지만, 여전히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문화적 대안 프로그램으로서 '느림의 발견' 역시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자동차(auto-mobile)는 '자율(autonomy)'과 '이동성(mobility)'의 구현이다. 물론 이는 미국인들의 생각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그 어떤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우리의 신앙이자 종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다.당신이 누구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무슨 무슨 자동차로 당신을 대변하라고 외치는 것도 좋겠지만, "당신이란 사람은 자동차 이외엔 달리 자신을 표현하고 설명할 길이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왕성하게 제기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자식 교육도 마찬가지다. 늘 대학입시 결과가 나온 시점과 겹치는 설에 온 가족, 일가친척이 모이면 전국적으로 부모들의 치열한 '자존심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에서의 서열은 자식이 들어간 대학의 간판 값과 정확히 정비례한다. 학부모들은 정말 자식만을 위해서 명문대에 집착하는가? 그렇진 않다. "내가 창피해서 못 살아"라고 외치는 학부모들이 많은 걸 보면, 실은 자식교육을 빙자한 자신의 '인정투쟁'을 하는 셈이다. 설은 그런 '인정투쟁'의 축제이기도 하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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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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