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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관리 중요…지나친 개발 자제해야"

지난해 유네스코 등재 유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한 해였다. 지난해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됐고, 11월에는 가곡·대목장·매사냥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올랐다. 손상락 안동시청 문화예술과 세계유산 담당자(53)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 경주 양동마을보다 덜 알려진 것이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덜 알려진 까닭에 양동마을이 본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더 잘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그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협의체인 '세계문화유산 도시협의회' 발족했다고 말했다. 참여 자치단체는 수원시(화성)와 서울 종로구(종묘), 경북 안동시(하회마을)와 경주시(석굴암 불국사·경주역사유적지구·양동마을), 경남 합천군(해인사 장경판전), 전북 고창군(고인돌 유적), 전남 화순군(고인돌 유적), 인천 강화군(고인돌 유적) 등 8곳이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세계문화유산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세계문화유산의 보존과 유지 관리를 위한 국고 지원, 유네스코 도시 간 네트워크를 통한 외국인 관광코스 지원과 협력 등에 공동 대응에 나섰다.그는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이 훼손되지 않도록 좀 더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쪽인데, 지자체가 개발을 완화시켜달라고 요구해 난항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특히 서울이나 수원은 특별법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종로나 창덕궁의 경우 담장 너머 건물이 보수조차 못하고 있어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가 심각해요. 지자체는 이런 주민들에게 합당한 대책을 마련해 좀 더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그는 "세계유산은 한 국가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유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며 "따라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순간 그 소유권과 관리 또한 지역과 국가를 넘어 세계화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기 때문에 지나친 개발은 자제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1.08.15 23:02

'백제 왕도' 익산, 무왕을 되짚어보다

'왕궁(왕궁리유적)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백제 무왕 서동이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누구였을까.'사랑과 보석도시 익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왕궁리유적(왕궁), 익산쌍릉(왕릉), 미륵산성(산성), 미륵사지 및 제석사지(대규모 사찰) 등 진정성을 갖춘 백제 왕도임을 알리는 전시회가 열릴 예정에 있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익산시는 13일'서동의 꿈 미륵의 통일'을 주제로 한 '백제 무왕 기획전'을 오는 29일부터 8월31일까지 왕궁리 유적전시관 상설전시장과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 각각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익산시 왕궁리유전적시관과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문화재 등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무왕의 익산 경영, 사비궁과 익산왕궁, 무왕의 야심과 카리스마'등 3개의 소주제 아래서 왕궁리유적과 관북리 유적 출토 유물 비교를 통해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열리게 된다.특히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국립전주박물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국립부여박물관, 원광대학교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었던 왕궁리유적 및 제석사지 출토 유물을 대여하고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한데 모아 전시회가 기획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아울러 시는 이번 전시회 개최를 통해 지난해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익산역사유적지구의 탁월성과 독창성, 보편적 가치 등이 재조명됨으로써 세계유산 정식 등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전시 주요 유물은 왕궁리 5층 석탑 발견 사리병과 사리내함, 왕궁리유적 출토 유물(금제품, 녹유호, 토기완, 벼루, 짚신, 정원석 등), 제석사지 출토 유물(천부상, 악귀상, 소조상, 연화문수막새, 벽체편, 벽화편 등), 익산쌍릉 출토 관장식, 복원관 등을 비롯해 관북리 유적 출토 유물(기대, 변기형토기, 벼루, 토기완 등), 부소산성 출토 중국청자, 정림사지출토 연화문 수막새 등 174건 189점이다.단, 국보 123호인 왕궁리 5층 석탑 발견 사리병, 사리내함은 8월12일까지만 전시된다.이와함께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은 '용의 아들, 서동 왕이 되다, 무왕이 정복해야만 했던 나라 신라, 무의 왕비, 사탁씨와 선화공주, 무왕과 미륵사'등 4개의 테마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삼국유사 무왕조 등 관련 문헌자료, 미륵사지 출토 유물, 미륵사지석탑 사리기 일괄, 산성 출토 유물 등이 전시된다.기획·전시회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익산왕궁리유적전시관(http://wg.iksan.go.kr·859-4632)으로 문의하면 된다.

  • 문화재·학술
  • 엄철호
  • 2011.07.14 23:02

'장마에 어이할꼬' 습기 가득한 어진박물관

장마철이 시작됐지만 각종 책이나 그림 등 소중한 유물이 제습기도 없이 습기 가득한 곳에 놓여 있는가 하면, 국악원 예술단이나 시립극단 등 예술단체들이 수시로 사용하는 무대세트와 의상 등이 빈 창고 등에 방치되다시피 보관돼 있어 훼손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 10월 전주 경기전 뒤편에 가마실과 역사실,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고 개관한 전주어진박물관. 이 박물관 지하에 자리잡은 역사실에는 '경기전의','일월오봉도' 모사본과 경기전 제례에 사용됐던 제기 등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최근 장마철을 맞아 높은 습도로 인해 일부 유물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지하실에 마련된 전시공간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제습기조차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어진박물관 이동희 관장은 "건립 당시 물웅덩이가 있던 자리라 상대적으로 습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 "냉·난방기를 비롯해 공기 순환장치가 있지만, 갈수록 습도가 높아져 이동용 제습기라도 곧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은 무용단 무대세트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 보관해 왔으나, 창고가 비좁아 지난해부터 도로관리사업소 빈 창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전용 보관창고가 아닌 빈 창고에 세트를 보관하면서 훼손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도립국악원 관계자는 "보관장소가 없어 무대세트를 임차할 때도 있는데, 이 경우 제작비와 맞먹을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든다"며 "무대세트, 의상 등을 제대로 보관해야만 훼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용 보관창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도립국악원 창극단·무용단·관현악단은 대규모 공연을 한 뒤, 다음 공연때까지 무대 세트나 의상 등 각종 소품을 한곳에 모아 보관하고 있다.전주시립극단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주시립극단은 전주덕진예술회관에 있는 전주시립교향악단 지하실에 무대세트를, 전북예술회관 옥상에 의상을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무대세트를 보관하고 있는 지하실은 습도가 높아 훼손 우려가 크다.도내 문화예술인들은 "예향 전북, 예향 전주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다"며 "전북도나 전주시가 문화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1.06.24 23:02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예고

문화재청이 전라북도지정 문화재 제213호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塑造釋迦如來三尊像) 및 복장유물(腹藏遺物)'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했다.20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의 경우 조선시대 양식이 형식적으로 흐르기 전단계의 소조불상으로써 중요하며 복장유물은 후령통의 제작기법, 내용물, 재질 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이들 삼존상 등은 지난 2008년 전북도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으로 문화재청이 그동안 관계전문가들의 조사를 벌여왔으나, 지난 4월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추가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이후 복장유물 현품 및 추가조사 의견서 제출로 보물 지정 예고안이 원안 가결돼 30일간의 지정 예고에 들어가게 됐다.삼존상은 석가여래좌상(높이 147㎝)과 가섭존자입상(높이 159.5㎝), 아난존자입상(높이 160㎝)으로 1650년 벽암 각성 스님을 증명법사로 조각승 응매가 주도해 만들었으며 나무에 황토를 입혀 만든 소조불이다.이들 불상에서는 지난 2007년 사리 1과, 후령통 3조, 1586년 김제 흥복사 발간 목판본 '묘법연화경', 발행년도 미상의 선문염송을 비롯한 경전류 49권과 보협인다라니경과 보협진언 216장, 순치7년(효종 1년, 1650년)에 작성된 발원문 등이 발견됐다.특히 1586년 김제 흥복사와 1609년 전주 귀산사 간행 목판본 '묘법연화경'은 서지학자들의 판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아 왔다.유물이 나온 삼존불은 1950년대 후반 김남곡 스님이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서 동국사로 옮겨온 것으로, 문화재청은 추가조사 시 이에 대한 조사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군산시 관계자는 "조선 중기 초기의 목판본 연구와 불교사 연구는 물론, 직물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이다"며 "군산 원도심권의 동국사 보물 지정으로 군산시가 국제관광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일권
  • 2011.06.21 23:02

"전주 신흥부호들, 문화의 양반화 추구"

조선 후기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농업 자본가들이 문화 소비층으로 등장해 문화의 양반화를 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개관 9주년을 맞아 8일 전주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12회 전주학 학술대회'에서 함한희 전북대 교수는 예술가층도 두터웠지만, 대부호인 백인기·박영철 등이 양반 문화를 선호하면서 전주가 예향(藝鄕)의 도시가 되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을 갖췄다고 주장했다.함 교수는 전주의 문화예술을 꽃피우게 하는 촉매제는 사랑채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들만 거처하는 사랑채는 사교 모임의 장소였다"며 "전주 한옥마을 내 남아있는 학인당을 비롯해 향천주장과 오일주장을 경영한 백남석·송정섭의 집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하반영 선생의 구술을 통해 6·25 당시 1년간 전주에 묵었던 묵로 이용우 역시 화가 남전 허산옥 백남석 등과 같은 후견인을 만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양반처럼 폐쇄적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신진세력들과 어울리면서 양반 문화 확산에도 주력했다고 밝혔다.전주 교동의 양사재는 한국 문단의 거목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기거하면서 주변 문인과 교류해 전북 문단의 꽃을 피운 장소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전주 극장 뒷골목에 위치하는 곳에서 다방 골목이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발전시켰다며 전주의 낭만과 역사가 담긴 식당과 술집을 '가람길(전북대~영화의 거리~다가공원~한옥마을)'로 만들자고 제안했다.발제자인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필방(고려당), 5대로 이어진 한지 명가 송가종이 등에서 생산된 질 좋은 서화지가 전주 서화 발전의 토대가 됐다"며 "서화의 예맥을 이어가기 위해 이 지역의 필장을 도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송화섭 전주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전주는 조선왕조를 태동시킨 왕조문화가 깃든 데다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 행원과 백번집과 같이 풍류문화를 발전시킨 곳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1.06.09 23:02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은 도난품"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국보급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解例本)은 도난품이므로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다른 고서를 구입하면서 몰래 가져간 이른바'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환하라며 고서ㆍ골동품 판매업자인 조모(66)씨가 이서적을 보관 중인 배모(48)씨를 상대로 낸 물품인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증인들의 증언 등에 비춰볼 때 배씨가 2008년 7월, 조씨가 운영하는'민속당'에서 고서적 2박스를 30만원에 구입하면서 이 사건 고서(상주본 해례본)를몰래 끼워넣는 방법으로 절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배씨는 조씨에게 고서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는 1,2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상주본 해례본은 현재 국보 70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상태는 국보 지정품보다오히려 좋아 국보급으로 평가된다. 상주시 낙동면에 거주하는 배씨는 2008년 7월31일 경북 지역 일부 언론을 통해이 상주본 해례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했다. 배 씨는 그 한 달 전쯤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곧이어 같은 상주시 낙동면에 거주하는 조씨가 이는 원래 자기 소유로배씨가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는 진정서와 고발장을 상주경찰서와 상주지청에 잇따라 제출하면서 검경이 수사에 나섰다. 조씨는 경찰의 내사종결과 "도난품이라는 심증은 가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반발, 배씨를 상대로 해례본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한끝에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현재 해례본을 확보 중인 배씨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인도를 거부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화재청과 국립국어원 등 관계 당국은 이대로 방치하면 국보급 문화재가훼손되거나 국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배씨를 다각도로 압박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기관의 한 관계자는 "해례본이 민ㆍ형사 사건 대상으로 비화하면서 두려움을 느낀 배씨가 해례본을 뜯어 여러 권으로 분책(分冊)해 비닐봉지 같은 것으로 싸서 자신만이 아는 곳에 숨겨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국외 유출"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배씨 설득이 실패하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면서 "원래소유주 조씨는 이 국보급 문화재를 반환받는 대로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도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1.06.08 23:02

"스스로 문화예술 기량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센터장 선기현)은 25일 오후 3시 최명희 문학관에서 '전북 문화예술교육의 비전찾기'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선기현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의 인사말, 임진아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의 사업설명회에 이어,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문화예술교육의 방향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정민룡 광주 북구문화의 집 관장이 첫 발제를 했고,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서정상 경남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총괄팀장이, '전북문화예술교육의 비전과 미션찾기에 대한 제언'를 주제로 양옥경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평가위원이 각각 발제에 나섰다.문화체육관광부와 전북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고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한 이날 세미나는 본격 사업을 앞둔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됐다.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의 정책과 연계해 지역 특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문화예술분야의 인적자원을 발굴, 육성하고 유관기관과의 네트워킹을 강화로 문화예술교육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큰 과제로 정하고 학교 및 사회문화예술교육사업, 전문인 양성과정, 기반조성사업 등 12개 세부사업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특히 문화예술교육은 재능이 뛰어난 무용가나 음악가를 직접 양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스스로 문화예술적 기량를 표현하는 능력을 복돋우며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감수성을 훈련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게 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참석자들은 이날 세미나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법에 기반을 둔 광역센터의 역할을 토대로 전북지역만의 특색있고 차별화된 센터의 정책방향을 모색하고 도내 문화예술교육의 비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 문화재·학술
  • 위병기
  • 2011.05.26 23:02

[사람] 방짜유기장 이종덕 씨 전북도 무형문화제 제43호 지정

방짜유기장으로 널리 알려진 이종덕(50, 김제시 금산면)씨가 지난달 29일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됐다.방짜유기는 품질 좋은 놋쇠를 부어 낸 다음 다시 두르려서 만든 놋그릇으로, 과거에는 그릇의 밑바닥에 '방(方)'자가 찍혀 있어 방짜유기라는 명칭으로 불려졌다.'유기'하면 '안성맞춤'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안성이 유명하지만, 경국대전(공전)등의 기록에는 전주와 남원에 유장(유기장)을 국가에서 둘 정도로 전북지역에서도 예로부터 유기제작이 성행했으나 현재는 그 전통적 맥이 끊어진 상태다.이 씨는"지평선으로 유명한 우리 고장 김제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곡물과 방짜유기를 접목시켜 좋은 식단을 만들고 제자를 양성하여 (방짜유기를)김제 특산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이 씨의 작품 중 꽹과리 및 징의 경우 국립국악원 및 김덕수 사물놀이, 진쇠 등 국내 최고팀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룻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전용식기로 채택될 정도로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황배연 김제시 문화홍보실장은 "(이 씨는) 방짜유기장 중 유일한 석사출신으로, 이론과 실기를 완벽하게 겸비한 인물인 만큼 김제뿐만 아니라 전북도의 전통과 문화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인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대우
  • 2011.05.04 23:02

"임실출신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 재조명해야"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 명인 임실 출생인 박준승 선생(1865~1927)이 조명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역사회의 무관심이 가장 크죠. 만세운동을 함께 했던 손병희·최남선 선생에 비해 박준승 선생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도 재조명을 어렵게 하는 이유입니다."28일 임실군민회관에서 열린 전북역사문화학회(회장 나종우)의 박준승 선생 추모학술대회에서 나종우 회장(63·원광대교수)은 '3.1운동과 박준승 선생의 생애'에 대한 주제 발표를 통해 박준승 선생의 재조명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 회장은 "박준승 선생은 전북에 연고를 두면서 한 평생 동학과 민족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나 회장은 "1891년 동학에 입교한 박준승 선생은 동학지도자인 대교구장을 역임했고 손병희 등과 천도교를 통한 민족의식 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주권 회복에 앞장선 인물"이라며 "독립운동가 33인의 한 사람으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본 경찰에 연행 돼 옥고를 치른 뒤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현재 박준승 선생의 유허비는 임실에 있지만, 묘는 정읍 충렬사 뒷쪽에 있다. 박 선생은 출생지와 활동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임실이나 정읍의 경우 서로 지역의 인물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추모사업에 소홀해왔다. 하지만 나 회장은 "이같은 전북의 인물을 발굴·선양하는 것은 선조들의 전라도 정신을 찾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며 "도민들이 박준승 선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인적 자산을 우리손으로 사장시키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임실군에서 박준승 선생 생가복원 관련 예산을 확보한 것은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후손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올바른 역사 이해를 위해서라도 생가 복원이나 스토리텔링을 통한 관광 활성화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는 자치단체를 떠나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죠. 이 사업이 정치적으로 흐르지 않고 지자체의 장기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합니다."

  • 문화재·학술
  • 황주연
  • 2011.04.29 23:02

89년간 日 떠돈 조선왕실의궤 "귀국 다가왔다"

오대산 사고(史庫)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은 89년 전인 1922년이었다. 이는 의궤에 찍힌 '舊藏 五臺山史庫 大正 11年 5月 朝鮮總督府 奇贈(구장 오대산사고 대정 11년 5월 조선총독부기증)'이라는 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정(다이쇼) 11년이 1922년이다. 한국은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고자 한일기본조약을 맺으면서 약탈 문화재도 반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의궤는 궁내청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돌려달라는말조차 하지 못했다. 의궤가 일본 땅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은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와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등 서지(書誌)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궁내청 쇼로부(書陵部)를 조사한 뒤 2001년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 고문서 목록을 발간해 의궤의 존재를 고국에 알렸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식민지 시절에 기증된 것을1965년에도 못 받았는데 이제 와서 돌려받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강했다. 여기에 도전한 것이 2006년 7월14일 도쿄대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받아낸 봉선사혜문 스님 등 불교계.정치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두달 후인 2006년 9월14일 경복궁 광화문에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로 이름을바꿔 발족시켰고, 곧바로 환수 운동에 나섰다. 국회는 2006년 12월8일 의궤 반환을요구하는 1차 결의를 발표해 이들을 지원했다. 환수위는 운동 초기만 해도 조선왕조실록 반환의 경험에 따라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힘을 기울였지만, 이후 한일 외교 관계를 활용하는 쪽으로 차츰 방향을틀었다. 정체됐던 의궤 반환 운동이 다시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해 2월11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전 외무상을 만났을때 의궤 문제를 언급했고, 국회는 같은달 25일 2차 결의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일외교를 중시하는 일본 민주당 정권이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뭔가 '선물'을 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깔린 게 사실이다.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일본 전 관방장관이 지난해 7월21일 '일본이 의궤를돌려줄 것'이라는 국내 한 신문의 보도에 대해 한국 정부로부터 의궤를 돌려달라는요청조차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을 때만 해도 이같은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듯했지만,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지난해 8월10일 한국병합 100년 사죄 담화에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 유래 도서를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간 총리가 지난해 11월14일 일본 요코하마(橫浜)에서 '조선총독부를 거쳐 일본에 반출된 도서 1천205책을 인도한다'는 내용의 한일도서협정에 서명한 것은 이 담화의 결과였다.이후엔 일본 국회 내부의 진통이 이어졌다. 제1야당인 자민당이 민주당 정권을 궁지에 몰아붙이고자 좀처럼 도서협정 비준에 동의하지 않고 애를 먹였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올해 정기국회에서도 "한국으로건너간 일본 도서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독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는등 모종의 '대가'를 요구하며 도서협정 심의에 반대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약탈한 도서를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일본 내에서도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공명당 등이 도서협정 비준에 찬성하겠다고 밝히면서 자민당도 어쩔 수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 그 결과 중의원(하원)이 28일 본회의에서 도서협정을 '사실상 비준'하기에 이르렀다. 참의원(상원) 심의가 있긴 하지만, 일본 헌법상 조약은 중의원 결정이 우선하는 만큼 이제 의궤의 '89년 만의 귀국'을 막을 장애물은 더는 남아있지 않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1.04.28 23:02

日문화재 반환 환영..우호 증진 디딤돌

한일도서협정이 28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통과돼 궁내청 소장 우리 전적(典籍) 문화재 1천205종이 사실상 돌아오게 된 것과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 양국 우호 증진에 디딤돌이 되기를희망했다. 이번 반환대상 목록 작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서지학자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일본이 한ㆍ일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서 이들 도서를 반환키로 했다는 진정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면서 "더구나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문화재반환이 이뤄지게 된 것은 의미가 더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외규장각 도서에 이어 궁내청 도서도 돌아온 만큼 이제는해외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를 '환수'라는 차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면서 "이제 우리도 '문화대국'답게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유ㆍ불ㆍ선을 아우르는 한국문화의 콘텐츠로 만드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과거 불행한 우리 역사에서 강압적 공권력에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늦게나마 돌아오게 된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 "이번 반환을 계기로 형성된 한ㆍ일 우호 증진의 움직임이 독도 영유권 논쟁이라든가 교과서 왜곡 문제와 같은 현안도 잘 풀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외규장각 도서와 달리 궁내청 반환 도서 목록에는 처음들어보는 유일본이 적지 않아 학계에서는 특히 기대를 한다"면서 "다른 무엇보다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당국에서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궁내청 도서 반환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 그런 것처럼 반환에 따른 무엇인가의 제약 조건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면서 "부디 이런 조건이 이번에는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만 환수 형식이 '반환'이 아니라 '인도'인 점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문화유산 시민단체인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우리가 강탈당한우리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데 '반환'이 아니고 '인도'가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런 식으로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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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1.04.28 23:02

익산 미륵산서 백제때 추정 기왓장 발견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이 들어서 있는 미륵산 정상에서 백제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이 대거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27일 익산시의회 이천인 의원에 따르면 최근 미륵산에 오른 등산객들이 산 정상부근 땅속에서 수십여장의 오래된 기왓장을 발견했다. 이들 기왓장은 땅속 20-30㎝에 묻혀 있던 것들로 그동안 많은 등산객이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땅 위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현장 확인에 나섰던 이 의원은 "이들 기왓장을 학계 관계자에게 분석을 의뢰한결과,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고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들 기왓장이 백제 때 산 정상에 세워졌던 산성 또는 봉수대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봉수대는 높은 산봉우리에 불을 피울 수 있는 시설물로, 밤에는 횃불을 피우고낮에는 연기를 올려 외적의 침입이나 난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됐었다. 미륵사지유물전시관 노기환 학예사도 "이들 기왓장으로 봐서 미륵산성 정상부에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봉수대가 아니면 산성 내부의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덮개나 망루 개념의 건축물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학예사는 "산 바로 밑에 있는 미륵사지 터와도 관련이 있는 건축물로 볼 수있기 때문에 정식 발굴조사를 통해 역사적 가치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식 발굴에 앞서 등산객들로부터 현장을 보호하기 위한 입산통제 등의 선제 조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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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1.04.27 23:02

제5대 국새 글자체 '국새규정' 위반 논란

정부가 '제5대 국새(國璽)'를 새로 만들면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체를 사용토록 한 '국새 규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5일 대전에서 활동중인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47) 소장은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국새규정에 따라 국새의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로 해야하는데도 공모를 통해 임의의 글자를 사용키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0년 11월 시행된 '국새규정' 제5조를 보면 "국새의 인문은 '대한민국'네 글자를 한글로 하되,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제5조 규정은 1949년 국새규정이 제정될 당시에는 없었으나 1999년 2월1일개정을 통해 삽입됐다. 그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체는 1446년 창제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의규정에 따라 1448년 작성된 '동국정운(東國正韻)'에 나무활자로 찍은 한글 자체(字體)가 그대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훈민정음(국보 70호)이 한글에 관한 어문 규정이라면 동국정운(국보 71ㆍ142호)은 세종 30년에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한 책이다. 동국정운의 글자체를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각각 '대(大)→ㆍ땡', '한(韓)→ㅎ한', '민(民)→민', '국(國)→귁'으로 표기돼 있다. 당시 'ㄸ', 'ㅎㅎ'은 현재처럼 된소리가 아니라 '긴소리(長音)'이며, 'ㆍ때' 받침의 '0'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묵음(默音) 표시이다. 박 소장은 "공모를 통해 새로 정한 국새의 글자체는 훈민정음, 동국정운 등 뿐만 아니라 한글 창제당시 문헌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된 글자체"라며 "국새 규정을그대로 따랐다면 국가 예산과 시간의 낭비, 공정성 논란 등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새 국새 모형 공모'를 통해 제5대 국새의 손잡이(인뉴), 글자체(인문) 제작 공모자를 선정하고 오는 9월까지 국새 제작을 마칠 계획이다. 박대종 소장은 "현재의 어문 규정으로 보면 600년전의 글자체는 다소 낯선 측면이 크지만 국새의 상징성, 역사성 등을 감안할 때 새롭게 만들어지는 국새는 규정에맞춰 한글 창제 당시의 글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체가여럿이 있고 국새규정도 기존 국새에 관한 것"이라며 "5대 국새가 만들어지면 국새규정을 고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지난해 6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보물1411호)'이 한국어식 한문표기가 아니다라는 새로운 연구내용을 학회지에 발표해 관심을끄는 등 한글, 한문 분야에서 독창적 연구성과를 내오고 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1.04.25 23:02

고려초·중기 추정 '기와편' 미륵산서 발견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정상에서 고려시대 초·중기시대(900∼1100)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바닥 만한 크기의 기와 편이 발견됐다.문화재 전문가들에 의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밝혀진 이 기와 편은 이천인 익산시의회의원이 지난 17일 오후 지역 체육인들과 함께 등산에 나섰다 미륵산 정상을 거닐던 중 눈에 띄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이 의원에 의해 발견된 이 기와 편은 모두 5∼6장으로, 이 가운데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한편을 익산시와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계자들에게 의뢰해 사료적 가치를 살펴본 결과, 고려시대 초기나 중기의 것으로 밝혀졌다.이 의원은 "흙에 덮혀 있던 기와 조각이 그동안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드러난 것 같다"면서"내 생각으로는 미륵산 정상에 미륵산성의 봉수대나 망루 등 중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미륵사지유물전시관과 익산시 문화재 관련 관계자들도 이 기와 편과 관련, 미륵산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성벽위에 덮은 기와이거나 아니면 성벽을 쌓으면서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고임돌로 쓰인 기와가 아닌가 보고 있다.또한 이 기와는 무늬 등의 특성에 비춰볼때 성벽을 쌓으면서 비워있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쓰인 기와로 추정되는 등 발견된 기와의 사료적 가치를 두고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분석이 이뤄지고 있다.하지만 이 기와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초·중기의 기와로 추정되는 만큼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문화재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노계홍 미륵사지유물전시관 학예사는 "발견된 기와편을 살펴본 결과 고려시대 초·중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 기와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면서 "기와가 발견된 미륵산 정상 부분에 대해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한 후 보다 세밀한 지표조사를 통해 발굴 계획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장세용
  • 2011.04.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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