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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보존, 국민적 관심 높여야"

지난해 2월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500년을 이어온 우리의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이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 인해 문화재를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12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예원예술대 개교 10주년을 맞아 열린 문화재 보존학과의 국제학술 심포지엄'그림, 應目會心 하며 만나다'는 국내 문화재 보존 과학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자리였다.강대일 한국전통문화학교 보존과학과 교수는 "숭례문은 우리의 문화재 보존철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 경고를 주기 위해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고 본다"며 "문화재를 보존하며 활용해야 하고, 활용하며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강 교수는 이어 1997년부터 용인대를 시작으로 국립공주대, 경주대, 예원예술대 등에 문화재 보존학과가 개설되고 있지만, 전공 교수와 이론·실습시간이 적어 내실을 기하기 어렵다며 문화재 보존 전문가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 사찰 벽화를 보존하려면 예방적 보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한경순 건국대 회화과 교수는 "한국의 사찰 벽화는 외부환경에 노출돼 있어 채색층에 대한 보존 처리와 습기의 유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어렵다"며 "예방 보존에 힘쓴다면, 벽화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전경미 예원예술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근대 이후 정읍 영모재와 담양 미암사당, 임실 양요정과 같은 민화적 그림과 조선 후기 교화적 목적에 의해 그려진 벽화의 영향으로 2000년대 이후 서민을 위한 담장벽화가 유행한 것"이라며 "대중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간직한 벽화의 보존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또한 "조선후기 벽화는 석회를 반죽하여 바른 벽이 아닌 모래와 흙을 섞어서 바른 벽에 그린 것"이라며 "조선 말기 혹은 일제 강점기 유입된 새로운 건축 표현에 기인해 잘못된 상식이 통용됐다"고도 지적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11.15 23:02

[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58) 창녕 진흥왕척경비

그동안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는 모두 네 개로 알려져 있다. 오늘 소개하는 창녕 진흥왕척경비(이하 창녕비)는 이전의 세 비와 달리 척경비라는 명칭을 붙였다. 문헌을 들춰보면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금석총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전의 기록에는 창녕비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여타의 세 비는 모두 비문의 첫 행에 진흥왕의 이름과 '巡狩管境'이라는 내용이 보이므로 진흥왕순수비로 확정하였으나, 창녕비에는 첫 행에 비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학자마다 순수비와 척경비 또는 왕과 신료들이 회맹한 것을 기록한 회맹비(會盟碑)로 규정하는 등 그 설이 분분하다. 현재 문화재청에 따르면 '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로 명명되어 있으며, 1962년 국보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척경비란 영토를 개척하고 세운 비를 의미한다.창녕비는 앞서 소개한 세 개의 순수비와 달리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우선 비의 형태로 볼 때, 다른 순수비들이 정방형의 석재에 개석(蓋石)을 얹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반하여 창녕비는 전형적인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특이하다. 또 비문을 새길 비면을 정리하면서 비의 형태에 따라 거의 정방형의 직선을 그어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왼쪽 상단부는 돌의 모양에 따라 마치 계단처럼 구획되어 있어 매우 특이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부정형의 자연석에 정형화된 공간을 확보하면서 빚어진 특이한 공간구성은 여러 가지 추측을 유발한다. 비문의 구성을 관찰해보면 먼저 비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긴 뒤 비문을 감싸는 구획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비문의 마지막 세 글자인 ?智述干?이 사각의 구획선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보면 글씨를 새긴 뒤 비문의 바깥에 구획선을 그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비문의 첫 구절은 "()巳年二月一日立"이다. 여기에서 판독된 ()은 辛자로 이해되어 辛巳년을 뜻하는데, 고예(古隸)로 쓰인 고구려 광개토호태왕비에도 이와 비슷한 자형이 보인다. 광개토호태왕비에서는 글자의 윗부분 立이 士로 되어 있어 마치 來자처럼 보인다. 비문에서 나타나는 이체자이다. 여기에서 호태왕비를 예로 든 것은 창녕비의 자형이 정형화되지 않은 과도기적 형태를 지니고 있어 호태왕비와도 일면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신라의 고비에서 나타나는 고졸함이 창녕비에서도 엿보이는데, 그 결구방식이나 조화미에서는 이전의 순수비에 비해 떨어지는 감이 있다. 판독된 내용에 따라 건립연도를 추정해보면 신사년은 진흥왕 22년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벌한 651년에 해당한다. 신라의 북진정책과 아울러 남진정책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기년의 아래에 보이는 "寡人幼年承基, 政委輔弼"이라는 구절은 진흥왕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목이다. 과인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정사는 보필하는 자에게 맡겼다는 내용인데, 이는 「삼국사기」에 진흥왕이 즉위할 당시의 나이가 7세였다고 하는 내용과 부합한다. 7세에는 정사를 판단하고 결정할 만한 처지가 되지 못하므로 부득이 섭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사기」에서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며,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정황을 알 수 있다.이후의 내용은 성년이 된 진흥왕이 함께 수행한 신료들의 관작과 이름을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새로 개척한 영토에 대한 처치와 진흥왕의 권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을 잠시 인용하면 "서인(書人)은 사탁의 도지 대사(導智 大舍)이다. 촌주(村主)는 멱총지 술간(멱聰智 述干), 마칠지 술간(麻叱智 述干)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담당한 직책과 이름 그리고 직위를 나타내는 말들이 나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書人이라는 두 글자가 유독 필자의 눈길을 이끈다. 그것이 비문의 서자를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탁의 도지(導智)는 창녕비의 서자로서 소속과 직위를 동시에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 이은혁 (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0.11.10 23:02

"태조어진 납시오" 전주봉안 600주년 기념 대제

6일 전주 시청광장에서 시작된 '태조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 기념 대제'. 이날 행사는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가 왕의 분신이자 상징인 어진을 모신 도시로서 전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널리 알리는 자리가 됐다. 특히 시민들이 사진을 비롯해 동영상으로 이날 행사를 올려 트위터에서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송하진 전주시장은 "이번 행사는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히는 자리"라면서 "전주의 자존심을 자신감으로 승화시키는 날"이라고 밝혔다.기념대제는 조선시대에 어진을 봉안한 과정을 재현한 행사로 전라관찰사가 충청관찰사로부터 어진을 넘겨받아 경기전으로 모시는 고유례, 어진 행렬, 어진봉안례로 진행됐다. 송하진 시장이 전라감찰사로 분장, 취타대와 향로를 안치한 향정이 기수와 의장대와 함께 행렬에 동행했다. 신연 의장과 봉시 예관이 어진을 모신 가마인 신연을 호위하며, 모사된 대형 어진이 모셔지면서 전주기접놀이보존회, 전주지역 풍물패를 선두로 하는 시민축하행렬단이 행진했다. 어진행렬단과 시민축하행렬단은 오거리 문화광장, 팔달로를 거쳐 경기전으로 2km를 행진했다.시민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왕의 행차'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삼삼오오 거리로 나온 어르신들은 일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감격스러운 순간을 확인하기 위해 걸었다.태조어진 행렬을 보기 위해 걸어왔다는 이심기씨(59·전주시 삼천동)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순간"이라고 했다. 울산에서 전주에 나들이 왔다는 이정희씨(29)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가 함께 살아숨쉬는 곳 같다"며 "전주에서만이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 말했다.행렬단은 행진 중간 중간에 시민들을 위한 포토 타임도 가졌다. '기회는 이때다!' 는 심정으로 시민들은 너도 나도 휴대폰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들고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댔다."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김경미씨(46·전주시 송천동)는 "어진이 서울로 올라갔을 때만 해도 정말 서운했는데, 다시 전주로 돌아와 참 다행"이라며 분주하게 사진을 담았다. 이희정씨(78·전주시 호성동)도 "내가 전주 이씨여"라고 말문을 열더니 "이제 어진박물관까지 개관됐으니 더이상 부러울 게 없다"고 덧붙였다.경기전에 도착한 어진은 여섯 번의 북소리를 신호로 향정을 앞세우고 조선 왕실의 종친 제관들에 의해 진전에 모셔졌다. 어진을 경기전에 봉안하게 됐음을 알리는 봉안례가 거행, 주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초헌관과 아헌관, 종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을 올렸다.하지만 이번 봉안 행렬이 역사적으로 자세하게 고증된 봉안행렬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망궐례 역시 봉안 행렬과는 무관한 행사로 태조어진을 봉안한 대신들이 객사에 들러 무사 봉안을 임금에게 고하는 배례(拜禮·절하여 예를 표함)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좀더 세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11.08 23:02

어진·역사 박물관 통합·민간위탁 빈축

전주시가 6일 개관을 앞둔 전주어진박물관의 운영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전주역사박물관과 통합 민간위탁 방침을 밝혀 빈축을 사고 있다. 민간위탁을 맡길 예정이었던 3대 문화관(전주부채문화관, 전주소리문화관, 완판본문화관)은 문화시설 위탁 공고조차 내지 않은 상황이다.지난 2일 전주시는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을 통합위탁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문화시설 민간위탁 수탁자 모집 공고를 발표했다. 문제는 어진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의 통합 운영안에 관한 논의과정이 없었다는 점이다.한 문화예술인은 "전주시가 어진박물관의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관한 가이드 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누구에게 운영을 맡길 것인가만 고민하고 있다"며 "이는 시가 재정의 부담은 덜면서 수탁자에게 어진박물관 운영을 떠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더욱이 경기전은 전주시가 관리하고, 경기전 내에 있는 어진박물관은 다른 수탁자가 맡게 되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주체가 운영하게 될 경우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태조 어진의 국보 승격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을 환기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시가 어진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통합 해 민간위탁을 맡기는 것은 책임 회피용이라는 목소리도 있다.정충영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은 "현재 예산에서 어진박물관을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민간위탁을 결정한 것"이라며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오히려 민간 전문가들이 더 잘 운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11.05 23:02

'조선왕조 본향' 전주, 王을 맞이하다

4일은 조선 태조어진을 전주에 봉안한 지 600주년을 맞는 날이다. 전주시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6일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뒷편의 어진박물관을 개관하고 어진 봉안 600주년 기념대제를 연다.행사의 주관을 맡은 전주문화재단(이사장 라종일)은 어진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오후 1시 30분부터 태조어진 봉안행렬을 재현하고 봉안례를 치른다. 의장대와 취타대 등 총 600여 명이 참여하는 어진 봉안행렬은 시청광장을 출발해 오거리 문화광장과 팔달로를 거쳐 경기전에 도착할 예정이다. 행진 중간 이어지는 어진 영접례·봉안례 등은 고증을 바탕으로 한 거리축제로 거듭나게 한다.전주문화재단은 같은 날 오전 11시30분부터 풍패지관(객사)에서 망궐례 의식을 재현한다. 망궐례는 조선 시대 각지의 관찰사와 관리들이 매월 1일과 15일 객사에서 왕과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배례(拜禮·절하여 예를 표함) 의식이다. 전주문화재단은 또한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과 백일장·사생대회를 열고, 궁중복식·탁본 체험 등을 마련한다.박물관 개관 기념 전시로 '불멸의 위엄, 조선왕릉'도 개최된다. 1392년 제1대 태조부터 1710년 제27대 순종까지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 소개된다.정충영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은 "전주가 태조 어진을 지난 600년간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세섭)이 주최하고, 전주전통문화센터(관장 김민영)가 주관하는 '왕가의 산책'과 '수문장 교대 의식'도 열린다. 전문가 고증에 의해 제작된 15세기 세종대의 궁중복식 및 의장물을 입은 왕과 왕비, 수행단 등 총 20여 명은 6일 오후 1시 경기전에서 궁을 산책하는 '왕가의 산책'을 재현할 예정이다.'수문장 교대 의식'은 7일 오후 1·2시 경기전에서 조선시대 도성과 궁의 각 문을 관장하던 최고 관리자인 수문장의 교대 의식을 재현, 왕실의 호위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김민영 관장은 "이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상설 재현했던 행사로 중앙의 문화행사를 지역과 연계해 전주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태조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을 맞아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도 뜻깊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11.01 23:02

'어진박물관' 개관…조선 '태조' 영구 보전

태조어진과 경기전의 역사를 담아낼 어진 박물관이 다음달 6일 개관된다.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 뒷편에 건립된 어진 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에 1194㎡ 규모로 어진실과 가마실, 역사실, 수장고, 기획전시실 등을 갖췄다. 어진박물관 건립은 태조어진을 영구히 보전하며, 경기전의 역사를 내실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경기전 정전 침실과 같은 모형으로 만들어진 어진실에는 태조어진과 새로 모사된 세종·영조·정조·철종·고종·순종의 어진이 전시된다. 태조어진 전용 수장고에는 1872년 모사된 태조어진만 보관되며, 1년에 한두 차례 특별한 날에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역사실에는 경기전에 태조 어진이 봉안된 후 이에 얽힌 각종 유물들이 보관된다. 주요 유물로는 경기전의 내력과 건축, 관리, 의례 등을 수록한 「경기전의」, 1872년 태조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을 기록해 둔 '어진이모도감의궤',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던 그림 '일월오봉도', 경기전 제례에 사용됐던 각종 제기 등이다.가마실에는 1872년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썼던 어진의 가마인 신연(神輦), 귀중품을 옮겨 싣는 데 쓰인 가마인 채여(彩輿), 조선시대 고관의 행차 때 사용했던 가마인 가교(駕轎) 등이 보관된다. 어진을 옮길 때 사용된 각종 가마들은 국내에서 유일한 것들로 지난해 새롭게 보존처리를 거쳤다.어진박물관 개관에 맞춰 40기의 조선왕릉을 소개하는 특별전 '불멸의 위엄 조선왕릉'도 열린다. 1392년 제1대 태조부터 1710년 제27대 순종까지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 소개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 박물관이 보관해오던 유물들이 전시되는 것으로 조선왕릉의 조성과 분포, 국장 절차 등의 설명까지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10.28 23:02

백제-가야관계 규명 단초 기대

재단법인 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김종문)이 20일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고분에서 가야계 고분 가운데는 처음으로 출토된 중국제 청자를 비롯해 다양한 유물을 공개했다.이 번에 공개된 유물은 88고속도로 확장공사 구간에 있는 총 9기의 월산리 고분군 가운데 5호 고분에서 주로 나온 것이다.5호 고분은 봉분이 원형으로 길이 16m, 높이 3.5m의 중대형 고총인 수혈식 석곽묘로, 청자천계호와 철제초두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청자천계호(靑瓷天鷄壺)는 광구병의 형태로 한쪽에는 계수(鷄首)가, 반대편에는 구연에서 동체까지 연결된 고리형 손잡이가 부착돼 있고, 어깨에는 대칭으로 '∩'자형 귀가 부착돼 있다.천계호(天鷄壺)는 중국 동진과 남조에서 제작된 청자로, 백제 한성 시대부터 동진과의 교류를 통해 백제 중앙에서 수입한 유물로 아직까지 가야지역에서는 출토된 예는 없다.이 고분에서는 또 중국 남조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자루솥과 금제이식, 유리곡옥, 유리옥, 갑옷, 발걸이, 기꽂이, 통형기대, 대부호, 유개단경호도 출토됐다.그동안 아영과 운봉고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중대형 고총은 대가양 양식의 토기가 출토돼 지역이 대가야의 영역에 포함된 것으로 추측됐으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이뤘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분석됐다.전북문화재연구원은"아영과 운봉고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중대형 고총에 대해 체계적인 발굴조사 및 연구가 이뤄진다면 백제와 가야와의 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신기철
  • 2010.10.21 23:02

미륵사지동탑 부실 의혹

미륵사지석탑을 재현해 만든 미륵사지 동탑이 군데군데 금이 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다, 제작 과정에서 떨어져나간 석축 일부도 화공 접착제로 짜집기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철저한 진상규명이 요구되고 있다.현재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한 켠에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 만든 동탑이 해체복원 작업을 통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석공예 전문가와 함께 동탑의 부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 문악구(동탑문)의 주변 석축 6군데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금이 가 그동안 제기돼 왔던 부실시공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특히 석공예 전문가들은 '동탑을 제작하던 당시 석축의 일부가 떨어져나가자 이 곳을 화공접착제로 보수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중압력을 버티지 못한 채 균열 상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관계기관의 조속한 진단을 제기했다.또한 동탑을 이루고 있는 기단부 석축 이곳 저곳에서도 모서리가 떨어져나간 부분을 그대로 화공접착제를 이용해 제작한 흔적인 역력하게 드러나 석공예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석재 관리의 부재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동탑 기단부의 한켠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모서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 방치되고 있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서 탑을 지탱하고 있는 석축의 일부가 내려앉거나 끊어진 곳도 나타나 보수의 시급성이 요구되고 있다.익산시 관계자는 "동탑은 1992년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문화재청의 안전진단 결과 구조물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장세용
  • 2010.10.12 23:02

고대 동북아시아의 水利와 '부엽공법'

국립중앙박물관이 문화재조사 전문기관인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원장 이영철)과 함께 10일-11일 박물관 교육관에서 '고대 동북아시아의 수리(水利)와 제사(祭祀)' 학술대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는 2천년 전 마한시대 마을유적인 전남 보성군 조성리 유적에서 확인한 수로시설과 울산 약사동 유적의 통일신라시대 제방유적이 주제로 오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눈에 띠는 대목은 부엽공법(敷葉工法)이다. 이 공법은 최근 고고학계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으로, 이 공법을 응용한 고대 유적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전국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글자 그대로는 '나뭇잎이나 풀 등을 까는 공사 방법'이라는 의미가 있는 부엽공법은 중국에서 기원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진 기술로, 연약한 지반을 다지고자 기초공사를 할 때 나뭇가지와 잎 등을 기초 부분에 넓게 펴서 까는 공법을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가 '오성리(鳥城里)에서 약사동(藥泗洞)까지'라는 점부제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보듯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부엽공법의 실체를 조명하는 자리다.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해 만든 두 유적은 모두 논농사와 관련된 수리시설이면서 부엽공법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고대인들은 이런 시설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수리시설의 안전이라든가 마을 공동체의 안녕 등을 기원하는 각종 제사를 지낸 흔적도 대체로 같이 발견된다. 이런 의례는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라 해서 수변제사(水邊祭祀)라고 한다. 수리시설과 수변제사의 결합 양상은 고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엿보인다. 이에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조성리 유적과 약사동 제방유적, 함안 가야리 하천제방 유적 같은 국내 수리 관련 유적 외에도 고대 일본의 대표적인 저수시설인 사야마이케(狹山池) 발굴 성과와 특징을 일본 고고학자가 보고하며, 중국에서도 왕솽후이(王雙懷) 산시(陜西)사범대학 교수가 고대 중국의 수리 관개(灌漑)시설 전반을 소개한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9.10 23:02

"반구대암각화 암면 24% 훼손…접합 필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의 바위 표면 23.8%가 훼손됐다."울산시로부터 '반구대암각화 암면 보존방안' 학술연구 용역을 의뢰받은 공주대 산학협력단은 이와 함께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강화제를 이용한 접합이나 충전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9일 울산시와 공주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비파괴조사를 실시한 결과 암각화의 표면에 발생한 탈락 및 박락의 면적이 3만9천27㎤로 산출됐다. 이는 암각화 주암면의 23.8%를 차지하는 것이다. 바위표면 성분분석에서는 암석 구성광물의 하나인 방해석(석회질과 동일)이 내부로 침투한 물과 반응해 최대심도 3∼4㎜의 풍화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해 울산대 조홍제 교수가 반구대암각화에서 발견했다고 밝힌 스멕타이트(바위의 훼손을 가속화하는 점토광물)는 발견되지 않았다. 공주대 산학협력단은 또 초음파 탐사결과 지난 2003년의 같은 탐사 때보다 초음파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7년 동안 침수 반복으로 암각화 바위면의 강도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공주대는 이에 따라 사연댐에 의한 침수와 노출의 반복으로 생긴 반구대암각화 바위 표면의 다양한 균열과 탈락 등 훼손을 보완하기 위해 접착제와 충전제를 사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주사기법이나 링거기법 등으로 훼손된 바위면에 강화제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암각화 하부면 또한 동일한 암석을 사용해 보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울산시의 보전방안대로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만수위를 현 60m에서 52m로 낮출 경우 암각화의 침수를 방지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공주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반구대암각화는 사연댐이 건설된 후에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지속적으로 훼손되었다"며 "균열, 탈락, 박리, 변색, 생물의 침착, 풍화 등 유형별 훼손원인을 분석해 보존처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울주군 사연댐 상류에 위치해 만수위 때 물에 잠겨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반구대암각화의 보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학술용역을 의뢰했다. 시와 공주대 산학협력단은 이날 오후 시청 상황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용역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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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9.10 23:02

"어진 제작 거국적 관심 쏟은 '國事'"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의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전주의 가치를 알아가는 자리가 마련됐다.전북일보와 전주역사박물관, 전주학추진위원회, 전주시가 공동주관한 제9기 전주학 시민강좌 '경기전과 조선왕실제례'가 4일 오후 2시 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시작됐다.첫번째 강의 주제는 '조선시대의 어진'. 강사로 나선 조선미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 전해오는 어진이 수폭에 불과하긴 하지만, 조선시대 태조에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수효의 어진이 제작돼 진전에 봉안됐다"며 "어진제작과 봉안에는 거국적 관심이 뒤따랐다"고 어진의 상징적 기능과 의미에 대해 강조했다."임시관장기구의 설치나 어용화사 선발 등 어진제작과정을 보면 각 단계마다 길일길시(吉日吉時)가 택해지고 왕과 대신들의 봉심(奉審 : 임금의 명을 받들어 능소나 묘우를 보살핌)이 행해지는 등 어진제작에 쏟은 국가적 배려가 막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진제작이 왕가에서 자손이 조상을 추모하려는 뜻에서도 행해졌지만, 제작된 어진을 진전에 봉안함으로써 그 조종이 영구하기를 꾀하려는 사회적 기능도 지대했죠."조교수는 "어진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진전 봉안 때 동원된 인원이나 엄격한 의례 절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전쟁 동안 미천한 신분의 참봉이 어진을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으며, 피난 시 왕 이하 관료들이 어진을 앞에 두고 통곡하며 비탄에 빠졌던 것을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또 진전에 화재가 났을 때 왕이 소복하고 3일간 곡하고, 심지어는 진전 근처에서 실화나 벌목사건이 있거나 큰 비나 큰 눈이 내린 경우에도 위안제를 지냈다고 덧붙였다."우리나라에서 어느 시기에 처음 어진이 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지만, 조선시대에 들면서 태조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숫자의 어진이 제작됐습니다. 활발한 어진제작에도 현존 어진은 소수에 불과해 경기전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 영조 어진, 화재로 일부분이 소실된 영조 영잉군 때 초상화 및 철종과 익종어진, 고종어진 몇 폭과 순종어진초본이 전해올 뿐입니다."조교수는 "조선 태조는 일국의 시조인 만큼 특별한 예우를 받아 상당한 수의 어진이 제작됐지만, 현재 경기전의 태조어진 1본만 전해오고 있다"며 "태조 어진의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전주시와 전주 소재 박물관들이 보여주는 각종 의례의 재현의식과 태조어진을 둘러싼 각종 학술과 전시행사 등을 통해 조선시대 어진이 지닌 사회적 기능과 상징적 의미를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고종 어진은 현재 전주박물관과 원광대박물관, 개인소장으로 여러 폭이 전해오는데, 이처럼 여러 점의 '어진 그리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조선조 내내 품어왔던 어진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전통적 사고에서는 어진이란 왕이나 조종 그 자체로 진전 이외의 외부로의 유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고종연간 이후 이런 관념이 희박해진 듯합니다."조교수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이르면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나 혹은 지나간 옛 왕조를 못 잊는 일부계층이 어진 갖기를 소원한 듯 해 고종황제의 어진 제작 역시 제법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다음 강좌는 9월 11일 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열리는 '「경기전의」로 본 조선 말의 경기전 관리체제'. 이동희 역사박물관장이 강사로 나선다. 참가 희망자는 역사박물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문의 063) 228-6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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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10.09.06 23:02

김제서 한국동인지문학아카데미 제8회 연수회 열려

문예지 출판 허가 기준과 신인 추천권, 문학 관련 협회 가입 조건 등을 강화, 수시로 운영상태 등을 파악해 공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28일과 29일 김제 모악산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2010 한국동인지문학아카데미 제8회 연수회'에서 정희수 한국녹색문학아카데미 회장은 "국내 작가들의 활동 기반이 약화되고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문학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며 "주범은 신인 양산이며, 종범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문학지 탓"이라고 지적했다.정회장은 "현재 문예지는 잡지 운영의 용이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인을 무책임하게 배출함으로써 '끼리끼리 문학'의 울타리만 견고하게 쌓고 있다"며 "일정한 기간 수준급의 작품을 수록한 문예지에게만 신인 추천권을 주고, 실력있는 추천위원회를 조직해 투명하게 추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배출한 신인에 대해서는 연수 등을 통해 필력을 육성하도록 하고, 일정 수준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신인이라면 일정 기간 기회를 줘 연수받게 하는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조미애 전북풍물시동인회 회장 역시 "등단이라고 하는 절차가 문학의 치열성과는 크게 상관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며 "각종 문예지에서 양산한 문인들로 인해 발생한 아마추어문학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한국 문단의 심각한 과제"라고 동의했다.그러나 정군수 전주문인협회장은 "프로작가와 아마추어작가를 구분하고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며 "글쓰기가 서툴고 표현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들이 등단한 동인지를 폄하하고 아마추어작가로 매도하는 것은 문인의 길을 함께 가는 도반(道伴)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고 반론했다.이날 주제는 '아마추어 문학의 새로운 지평과 수준 향상을 위한 과제'. 총론을 발표한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는 "이번 주제가 아마추어적인 문학과 문학인이 만연돼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며 "그들이 문학의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가 되고 있듯 문학을 하고 문학을 읽고 문학을 아는 인구가 많을수록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활용하고 문학인이란 라벨을 창작의 결과로 획득하지 않고 선전과 광고의 방편으로 취득한 사이비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사이비 문학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한국동인지문학아카데미(대표 김한창)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전북지역을 비롯해 대전과 광주 지역에서 150여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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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10.08.31 23:02

'비운의 현장' 덕수궁 중명전 복원 개방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파견 등 구한말 역사 현장이었던 덕수궁 중명전이 원형 복원돼 일반에 개방된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26일 서울 정동 중명전에서 간담회를 열고 내부를 역사현장체험공간인 상설전시관과 교육공간으로 조성해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오는 29일 일반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중명전은 1897년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의 설계로 건립된 황실도서관이었으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화재가 난 이후 고종황제가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사용하면서 긴박했던 역사의 중심이 됐다.이후에는 일제의 훼손으로 외국인 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1925년에는 화재로 내부가 타는 재난도 겪었다. 1976년에는 민간에 매각돼 사무실 등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1983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고 2003년 정동극장이 이를 인수한 데 이어 2006년부터 문화재청이 소유권을 갖게 되면서 사적 124호인 덕수궁에 편입됐다.문화재청은 이듬해인 2007년 12월부터 2009년 말까지 원형복원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는 공간을 넓히려고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회랑 등을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고치고 아치 형의 벽돌 구조를 되살리는 과정으로 이뤄졌다. 실내의 벽난로와 앞마당의 우물도 원모습대로 복원했다. 일부 흙에 묻혀 있던 지하도 복원했다. 중명전 내부에는 대한제국 말 중명전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장이 마련됐다.1층 전시실은 중명전의 연혁을 정리한 '중명전의 탄생', 을사늑약의 현장을 보여주는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을사늑약 후 고종과 대한제국의 노력을 담은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조명한 '헤이그 특사의 도전과 좌절' 등으로 구성됐으며, 2층에는 고종의 집무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살핀 '고종과 중명전' 전시가 마련됐다.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2전시실은 실제로 늑약이 체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으로, 뒤편에 을사늑약에 끝까지 반대했던 당시 참정대신(參政大臣) 한규설(韓圭卨)이 감금당했던 '마루방' 추정 공간도 보인다. 고종 황제의 집무공간으로 쓰였을 2층에는 고종이 있던 자리에 대한제국 국새의 복제본을 전시했다.중명전 관람은 수용인원과 문화재 보호 등을 고려해 1일 6회 실시하며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회당 25명씩으로 관람인원이 제한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문화재청은 27일 오후 4시 중명전 현장에서 후손 등 관계자를 초청해 중명전의 현판식과 전시 개막행사를 연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0.08.27 23:02

이천오층석탑 반환 위한 첫 국제심포지엄

일제 강점기에 반출돼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뒤뜰에 세워져 있는 이천오층석탑을 환수하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한일 관계 모색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이 오는 27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심포지엄은 이천오층석탑 환수위원회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공동 주최하고 문화재청, 경기도, 영월암, 미란다 호텔이 후원한다.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 유족찾기 지원 활동가인 기쿠치 히데아키씨가 참석, '일본에서 본 이천오층석탑 환수 운동의 현안과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한다. 환수위에서는 박창희 실무위원장이 '이천오층석탑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 연구', 이상구 상임위원장이 '이천오층석탑 환수운동 추진경과 및 향후 활동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한국문화재반환 네트워크의 켄 아르미추씨, 한.일시민사회 100년 네트워크의 이대수씨, 심주완 조계종 총무원 문화재팀장, 강덕희 일본 조치대 교수가 토론을 벌인다. 환수위 김나영 사무국장은 "한일 병합 100주년을 맞아 민간 단위의 문화재 환수운동을 통해 새로운 한일 관계 모색을 위한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천오층석탑 등 불법 유출된 우리 문화재 찾기에 대한 국내외 여론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천 오층석탑은 고려 초기 이천시 관고동에 세워졌으나 조선총독부가 1914-1915년께 석탑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1918년 오쿠라재단과 관련된 오쿠라토목조(현 다이세이건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으로 실어갔다. 이천 시민.문화단체는 환수위원회를 구성해 이천오층석탑 반환을 위해 3년이 넘게 활동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10.08.23 23:02

"학술 연구·전시 등 좋은 곳에 써달라"

순흥 안씨 집안 호구단자(戶口單子)가 전북대학교 박물관(관장 김승옥)에 기증됐다.호구단자는 3년마다 실시하는 호구조사 때 호주가 집안의 호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 관에 제출하던 낱장 문서. 이번에 기증된 호구단자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후반 전남 광양현 다압면 죽천리에 살았던 순흥 안씨 집안 것으로, 1795년~1885년에 작성된 고문서 27점이다.특히 한 집안의 낱장 호구단자가 아니라 90년 동안 25번 호구조사에 응했던 일괄문서로 3대에 걸친 호구상황이 기록돼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구단자에는 선대에 정3품인 절형장군(折衡將軍)의 품계를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어 무반(武班)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명(改名)한 이들의 이력과 식솔 수 등이 자세히 나와있다.전북대에 재직 중인 이철량 교수의 권유로 기증을 결심한 이교수의 처남 안정일씨(대전 거주)는 "훼손돼 가는 고문서를 학술연구나 전시 등 좋은 데에 써줄 곳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전북대 박물관 신축 소식을 듣게 됐다"며 "새로 지어지는 박물관이 국립박물관 못지 않은 수장시설과 보존·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 유물이 더 좋은 환경에서 보관·관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증했다"고 말했다.김승옥 전북대 박물관장은 "전북대는 고문서 부문에서 국립대로는 최고의 보유량을 가지고 있다"며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하거나 기탁하는 분들의 뜻을 이어 감동적인 박물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10.08.23 23:02

[용담댐 담수 10년, 빛과 그림자] 용담댐 수몰지구가 살아 숨쉬는 곳

진안역사박물관과 진안용담호미술관은 용담댐 수몰지구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살아숨쉬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지난 5월 용담면 수천리에 개관한 용담호미술관은 수몰지구가 고향인 한국화가 김학곤씨와 수몰지구는 아니지만 진안에서 태어난 서예가 여태명 원광대 교수가 입주해 작업하며 운영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수몰지역 어르신들을 찾아가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훈을 직접 붓글씨로 쓰도록 한 것. 전시가 끝난 후에는 작품들을 어르신들의 자녀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미술관 개관을 축하하며 전국에서 보내온 엽서들도 전시했다. 유성엽 국회의원, 류명식 홍익대 교수를 비롯해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보내온 엽서를 붙여 '진안 용담호미술관'이란 글자를 완성한 것도 재밌다.용담호미술관은 담수 10주년을 맞아 10월 9일과 10일 이틀간 기념사업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를 추진하고 있다. 김학곤씨의 용담고을 그림전 '향수', 창작판소리 '용담가' 제작 및 무용과 함께 하는 여태명 교수의 서예 퍼포먼스, 수몰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옛 가요 부르기 대회 등을 메인 행사로, 용담호 디지털 판화, 용담호 달력·엽서·인장만들기 체험 등이 부대행사로 기획됐다.여태명 용담호미술관장은 "아직 예산 확보가 과제로 남아있지만, 용담댐 10주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기념사업은 꼭 필요하다"며 "특히 고향을 상실한 수몰민들의 한을 예술로 위로하고 승화시키기 위한 자리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향토사 성격의 진안역사박물관은 고고관에 용담댐 수몰지역에서 발굴된 선사·고고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민속관 터치 스크린을 통해 수몰지역의 영상과 자료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2006년 개관기념전으로 '다시 보는 용담-땅, 물, 그리움…'전을 기획한 이래 올해는 1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용담의 기억과 향수'(가제)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길순 학예사는 "용담 수몰지역의 지역사적 특징을 종합적으로 구성하는 동시에 근현대 생활을 재구성해 진안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며 "용담댐 수몰지역과 관련된 역사자료, 기록회화와 사진, 다큐영상, 생활민속자료, 이주민 구술 생애사 등을 담아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10.08.19 23:02

[용담댐 담수 10년, 빛과 그림자] ⑨용담 수몰지구 문화유적

용담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수몰되는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필요했다.발굴조사는 용담댐 축조로 인해 수몰되는 지역, 진안군 용담면과 상전면, 안천면, 정천면 지역을 대상으로 1995년 12월부터 2000년까지 4차에 걸쳐 이뤄졌다. 전북대학교 박물관 주관으로 국립전주박물관, 군산대 박물관, 조선대 박물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호남문화재연구원 등이 참여했다.수몰지구에서 발굴된 유물은 969점.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아우르는 유물들은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일부 진안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국립전주박물관이 2003년에 기획한 '수몰된 옛 사람의 흔적, 용담'전에 특별논고 '용담댐 수몰지구의 발굴성과와 과제'를 쓴 윤덕향 전 전북대 교수는 "용담댐 수몰지역에 대한 조사에서 여러 가지 의미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가 미진한 전북 동부지역에 대한 본격적이고 대규모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각종 문화유적을 조사하고 확인함으로써 이 지역의 고대 문화와 역사적 좌표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윤 전 교수는 용담댐 수몰지역 조사의 가장 큰 성과로 안천면 삼락리, 정천면 여의실, 모정 등 고인돌 관련 유적을 꼽았다. 특히 고인돌 축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유구와 그에 이어지는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의실 유적의 조사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시대별로 분류하면, 구석기 유적의 확인은 전북지역 고고학 연구에서 시간적 외연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금강 상류인 진안고원에 자리하고 있는 진그늘유적은 전북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된 구석기 유적으로 후기 구석기 늦은 단계의 문화양상을 보여주는 대규모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은 용담댐 수몰지구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데, 전북 내륙지방에서 드물게 발견되던 빗살문 토기 관계 유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청동기시대 생활유적으로 정자천 여의곡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석묘 상석을 옮기는 상석 이동로로 추정되는 길이 발견됐다. 이 상석 이동로는 상석의 이동방법과 이동방향, 채석장의 설정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무덤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에는 지석묘가 축조되고, 이어 석관묘·석개토광묘·옹관묘 등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와정 유적이나 황산 유적 등 삼국시대 유적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 지역이 가지는 공간적 위치에 접근할 수 있는 자료도 확보됐다. 고려시대 각종 묘제가 조사된 수천리 유적 역시 하나의 성과다. 수천리에서는 고려시대 석곽묘 53기, 고려·조선시대 토광묘 37기, 조선시대 석곽묘 5기, 회곽묘 3기 등 총 98기의 무덤이 조사됐다. 특히 고려시대 유구에서는 11세기의 해무리굽청자와 12∼13세기의 다양한 청자와 청동유물, 도기들이 출토됐다. 이 시기 유물들을 통해 당시인들이 무덤을 선정할 때 사신사상 등과 같은 사상체계에 입각했음을 알 수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청자를 통해 청자가 변천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었다.전문가들은 용담댐 수몰지역의 발굴조사를 통해 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구명하는 기초자료로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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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휘정
  • 2010.08.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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