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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전주 대성리 출토 쇠북 - 고려시대 전북 국악계 외형 넓혀신호 전달 매개체로 사용

쇠북은 청동으로 만든 북인 금고(金鼓)를 말한다. 쇠북은 형태상 고대 타악기의 일종인 원반형태의 정(鉦)에서 유래되어 점차 불가의 의식용 법구로 정착되었는데, 그 근거는 『금광명최승왕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금고는 원래 징과 북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선종이 크게 융성함에 따라 의식과 사찰의 장엄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의식용 법구로 활발하게 제작됐다.금고의 용도는 지금과 같이 대중을 모으는 용도 외에도 금고를 두드려 의식을 행하고, 그 소리를 들음으로써 모든 죄를 참회토록 한 것이란 점에서 악기로도 연주되었을 것이다. 또한 작은 소형의 금고의 경우 승려의 지물로 활용되어 손에 들고 치면서 염불수행의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현재의 목탁과 같은 역할을 했다.현재에는 국악기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불교 의식물로만 생각되는 금고는 분명하게 우리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악기로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구려 벽화의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는 안악 제3호분에도 금고와 같은 악기가 묘사되었을 뿐 아니라 고문헌과 유물에도 쇠북이 국악기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구려벽화의 행렬도 가운데 후반부에 그려진 북의 모습은 금고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이 악기의 역사는 그만큼 윗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특히 고대 악기일수록 신호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악기를 사용했다. 타악기였던 나각과 나팔, 북과 징은 상고시대에 악기이자 신호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됐다.고려사 병지 병제에는 금고가 군대의 진퇴에 사용한 신호악기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범주의 악기는 후대에 내려올수록 타악기로 변화하면서 우리 악기에 편입되고 연주되었다. 따라서 국악기의 전범과 같은 악학궤범에는 국악기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금고는 고분벽화와 같은 유물과 고문헌등의 자료에서 악기로 기록됐다.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전주 대성동 출토 청동금고는 고려시대의 유물로 지름이 50.5센티미터나 될 정도로 큰 쇠북이다. 더욱이 이 쇠북에는 연판, 연입, 인동문을 장식함으로써 화려한 미의식까지 보여줘 불교미술공예품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금고 중에도 규모나 장식면에서도 매우 우수한 이 쇠북은 고려시대 번창했던 연등회와 팔관회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음악사를 확장하는 유물로 주목된다.고려시대 사찰과 각종 연희행사에서 사람을 모으는 법음구와 더불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불교 음악의 한 갈래로 활용되었던 쇠북은 당대를 대표하는 고려시대 악기였던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징과 매우 유사한 쇠북은 한 면은 두드리는 역할과 다른 반대편은 비어있어 공명을 냄으로써 타악기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글자 그대로 쇠북을 뜻하는 금고는 넓은 의미에서 두들겨서 소리 내는 금속제 악기이다. 따라서 전주 대성동에서 출토되어 햇빛을 보게 된 금고는 고려시대 전북 국악계의 외형을 넓혀주는 소중한 악기다. 전북문화재 전문위원·한별고 교사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2.02.29 23:02

미륵사지 금동향로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2000년 10월 익산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향로를 보물(1753호)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전북도가 금동향로에 대해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지 2년만이다.미륵사지 출토 금동향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한 번도 확인되지 못한 수각(獸脚, 짐승다리) 향로인 점과, 출토 경위가 확실하고, 보존 상태가 완벽하며, 통일신라 시대 대형 향로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빨라 문화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전북도는 금동향로의 보물지정에 따라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업과 동원 석탑지 출토 금동풍탁 등 국보급 유물을 갖게돼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격을 높이는 계기(국립박물관 승격)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금동향로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존처리 된 후 2007년 국가로 귀속됐으며,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 관리 위임돼 상설전시되고 있다. 향로는 향을 불살라 연기를 피우는 그릇으로, 각종 제사 의례에 사용됐다. 우리나라의 향로들은 보편적으로 다리가 3개이고 장식이 없는 데 비해, 미륵사지출토 향로는 다리가 짐승얼굴 모양이며 4개가 달린 독특한 형태다. 수각 향로가 발굴되기 전까지 완전한 형태와 양호한 상태를 갖고 발견된 사례는 국보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가 유일하다는 게 미륵사지유물전시관측의 설명이다.특히 미륵사지의 수각 향로는 장식적인 성격의 중국 당나라시대 작품에 비해 실용적으로 변모됐고, 단아함이 돋보인다. 이 점에서 그 기원과 형식이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적 수각향로로 정착을 이루었으며, 일본의 수각 향로(火舍)가 미륵사지 수각 향로에서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2.02.23 23:02

12. 청자관악기 - 고려시대 청자로 만든 유일한 관악기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에 들어가 햇빛을 보게 된 부안 유천리의 각종 유물은 시대를 넘어서 고려청자의 빛깔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다. 곱고 세련된 유약과 부안땅에서 채취된 백토, 여기에 자연이 빚어낸 불 등으로 탄생된 고급 청자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지만 청각적으로 우리 예술의 찬연한 미감을 전해준다. 도공의 치열한 예혼은 그 위에 투명하게 빚어졌다.현재에도 이화여대 박물관 수장고에 소장돼 있어 일반인이 관람할 수 없는 청자 관악기는 그동안 미술사학계에서 도판으로 소개되었을 뿐 학계는 물론 한국음악사학계에서도 소개 조차 되지 않은 유물이다. 그러나 이 유물은 고려시대 청자에 생산된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관악기란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부안군에서 발간한 『부안유천리 고려도자』에는 "속이 빈 8각관으로 지름 0.8센티미터의 구멍이 있어 관악기로 추정하였다"라고 한 줄로만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비록 유약이 녹지 않아 상태가 불량하지만 이 악기는 고려시대 전북국악사는 물론 한국음악사의 외형과 내실을 넓혀줄 유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고려시대 각종 주악도상에서 소개되지 않았으며, 본격적인 연구 또한 미진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악기는 출토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관악기 유물이란 점에서 학계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파손되어 원형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취구가 있고 세로로 불 수 있는 관악기인 점, 그리고 피리에 비해 규모에서 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퉁소로 볼 수 있다.고려시대 이후 퉁소라는 명칭으로 전승되어 있는데, 시대에 따라 악기의 구조는 약간씩 달랐다. 특히 고려 이후부터 조선 중기까지 당악과 향당교주의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풍류문화에서도 한몫을 한 악기다. 퉁소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의 일종으로 현재는 그리 활발히 연주되지 않지만, 풍류객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가가 있었으며, 민간에서도 퉁소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애용되었던 악기다. 퉁소가 얼마나 널리 알려졌던지 바깥에서는 제대로 행세하지 못하면서 집안에서나 큰소리치는 사람을 일컬어 '방안퉁수'라고 하는 말까지 생긴 걸 보면 퉁소가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친근한 악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특히 20세기 초반에 퉁소의 명인은 거의 모두 전북 출신이었다. 단소의 명인 추산 전용선과 맹인으로 이름을 떨친 편재준, 그리고 유동초 명인은 모두 퉁소로 이름을 날렸다. 우리 전북에서 출토된 퉁소와 조선시대 퉁소 명인 대부분이 전북출신임을 감안한다며 퉁소란 악기는 전북과 불가분한 관계임은 자명해진다. 그리고 고려시대부터 전북에서는 퉁소를 사랑할만큼 수많은 악공이 전통음악 지킴이로 활동한 것을 상상만 해도 국악의 본향으로 전북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만큼 전북의 국악뿌리는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제라도 유천리에서 출토된 퉁소를 통해 고려시대의 화려했던 음악을 부활하는 작업이 절실하다.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2.02.22 23:02

'창덕궁' 표지석 전주서 발견

전주문화원(원장 서승)은 전주이씨 조선왕실 시조묘가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1가 72-21번지 건지산 기슭에서 '창덕궁'(昌德宮)이라는 글씨를 새긴 표지석을 최근 발견했다고 21일 말했다.문화원은 이 금석문을 "전주승마장에서 백동저수지로 넘어가는 길 한가운데서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탁본을 했다"면서 "비가 발견된 지점 땅 주인을 확인하고자 완산구청에서 옛 등기부대장을 조사해 본 결과 구한말 이후 일제 초기까지 창덕궁 소유였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나아가 문화원은 이 땅이 1920(쇼와 4년)에는 이왕직 장관 소유로 기재된 점으로 보아 이 푯말은 "서울의 창덕궁에 있던 것이 아니라, 이 일대가 조선왕실 소유 땅임을 표시하는 경계석이며 그 안쪽에는 묘지를 쓰거나 벌목을 금지하는 구역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구체적으로 문화원은 대한제국 선포 후인 광무 3년(1899년), 대한제국 정부는 조선왕실 시조 이한(李翰)을 기리기 위한 조경단(肇慶壇)이라는 제단을 조성하면서 그 구역을 표시하고자 세운 표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피력했다.문화원은 "이번 표지석 발견을 계기로 전주에 있는 창덕궁 소유의 옛 땅과 이왕직 소유 옛 땅 실태를 조사한다면 더욱 의미 깊은 역사적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2.02.21 23:02

정월 대보름푸짐한 굿판

멋과 풍류의 땅, 예향 전북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축제다. 정월대보름(6일)을 맞아 도내 곳곳에서 펼쳐지는 풍물굿은 푸지고 푸진 흥사위를 돋워준다. 꽹과리 소리에 놀라 멍해지다가 한 패거리로 동요되고야 마는 현장을 둘러보자.△ 2012 임실 필봉 정원 대보름굿 (4일 오후 2시 임실 필봉굿마을 일대)"풍물굿의 미학은 푸진 것, 나누는 것입니다. 사람이 푸지게 모여야 하고, 말도 푸져야 하고, 음악도 푸져야 하고, 술도 푸져야죠. 무엇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제일로 푸져야 합니다." 양진성 임실필봉농악보존회 회장은 필봉굿을 치면서 푸진 것을 만들고 푸진 것을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길 원한 아버지(故 양순용)의 마음에서 한 번도 빗겨나지 않았다. 어느덧 '흥의 명인'으로 살던 아버지 인생이 자신의 인생이 됐다. 임실필봉농악보존회는 묵은 액을 털어내고 한 해의 안녕을 빌기 위해 '필봉 정월 대보름굿'(4일 필봉굿마을 일대)을 이어오고 있다.올해로 서른한번째를 맞는 이번 대보름굿은 오후 2시 필봉마당 동청마당에서 기굿으로 시작한다. 마을 어귀 당산으로 옮겨 마을 수호신에게 굿을 고하고 복을 기원하는 '당산굿', 마을 우물로 이동해 '샘굿'을 치고, 마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당밟이'(뜰밟이굿)가 이어진다. 오후 7시부터 채굿 호허굿 풍물굿이 어우러지는 앞굿과 판굿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동굿의 백미를 이룬다.'푸진 굿과 푸진 삶'을 염원하는 굿판. 세상에 필봉굿의 푸진 굿정신이 널리 퍼 날라지는 날이다. 이날 행사는 필봉굿마을이 주최하고, 임실필봉농악보존회가 주관하며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후원한다. 문의 063)643-1902. www.pilbong.co.kr△ 도립국악원'얼씨구, 대보름이야'(5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야외놀이마당)전북도립국악원(원장 신현창)이 정월대보름을 맞아 '얼씨구, 대보름이야'를 올린다. 도립국악원 관현악단(단장 류장영)의 수성 반주로 창극단(단장 송재영)의 해학 창무극'변학도의 대보름 잔치'(1부), 무용단(단장 문정근)의 무용극'대보름이야'(2부)가 어우러진다.썰매 타기, 팽이 치기, 쥐불놀이 등이 이어지는 어스름한 대보름 저녁, 도깨비와 아이들이 달뜨는 모습을 보면서 원을 그리며 소원을 기원하는 모습. 사회는 이정표(국가대표 축구팀 아나운서)씨와 유재준(창극단 단원)씨가 맡는다. 공연은 인터넷 예약이 가능하며, 현장 좌석권은 오후 6시부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배부된다. 문의 063)290-5539. www.kukakwon.or .kr △ 전주 한옥마을 달빛 축제(4~5일 전주 전통문화관)전주전통문화관(관장 안상철)이 정월대보름(6일)과 입춘(立春4일)을 앞두고 '전주 한옥마을 달빛 축제'를 연다. 한옥마을 문화 지킴이를 자처하던 문화시설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자리로 소원지 쓰기, 쥐불놀이, 소망등 만들기, 오곡밥 나누기, 부럼 깨기, 달집 태우기 등을 준비했다. 전통문화관은 전주한옥생활체험관(관장 노선미)의 오곡밥 먹기와 전주공예품전시관(관장 오영택)의 부럼 세트 만들기를 패키지로 묶어 '만원의 행복'(캠프 형식)을 내놓는다. 특히 전주 향교 유림들이 문화시설들을 돌며 직접 쓴 입춘첩을 나눠준다. 입춘첩은 옛날 궁중에서 입춘을 맞아 문신들이 지어올린 연상시(延祥詩) 가운데 좋은 시구를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내건 것을 의미한다. 신청 기간은 3일 오후 4시까지. 문의 063)280-7041. (사)창암이삼만선생기념사업회(회장 유지인)도 창암 선생을 추모하며 입춘첩을 써준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국가가 안정되고 국민이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등과 같은 좋은 글귀를 담아준다. 문의 063)283-3131. △ 부안군 정월대보름 행사(4~6일 부안 마포마을 일대)부안군이 정월대보름을 맞아 4일부터 6일까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와 용왕제, 달집 태우기 등을 마련한다.부안 변산면 마포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당산제(마포리 대보름 문화제)를 시작으로 당산나무 용줄 감기, 물동이 이고 달리기, 지게 지고 달리기, 달집 태우기 등 재밌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5일에는 용왕제(격포), '제33회 줄포 민속연날리기 대회'(줄포 자연생태공원), '제6회 대보름 민속제'(매창공원) 등도 곁들여진다.

  • 문화재·학술
  • 기타
  • 2012.02.03 23:02

4.익산출토 원개형동기 - 전북서 가장 오래된 소리도구

선사시대에 우리의 조상들은 수렵이나 어로행위를 할 때 서로 간에 연락을 꾀하거나 작업의 흥을 돋을 목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도구를 이용해 상호 교신을 하였을 것이다.당대 유물을 통해 보았을 때, 많은 원시의 소리가 아직 미 발견의 상태로 남아 있으나 지금까지 발견된 일부 유물 속에서는 당시 소리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북에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소리도구인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원개형동기는 바로 농경시대의 제사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개형동기는 제정일치사회에서 제사를 관장하는 제사장의 신분을 상징하는 징표로서 사용되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원개형동기와 같은 신성스러운 소리의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소리를 통해 부족의 화를 쫓고 복을 부름으로써 부족구성원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원개형동기는 둥근 원 모양의 청동기인데, 둥글면서 뚜껑처럼 안쪽이 약간 굽은 형태다. 또한 뒷면에 구멍이 있어 끈을 매달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 꽹과리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띤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익산에서 출토된 원개형동기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 이 유물은 1973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고 황수영 교수가 전북지역에 조사차 내려왔다가 익산의 골동품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하여 국가로 귀속시킨 것이다. 황수영 교수에 의하면 이 유물은 전북지역에서 출토된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기원전 4세기 말에서 기원전 3세기 초 사이의 유물로 평가되는 이 유물은 문양에 있어서도 십자문양을 보이고 있어 '십자무늬청동의기'로 지칭되기도 한다. 약 12㎝ 크기인 원개형동기가 고대음악사에 주목받는 이유는 청동이란 재질과 십자문양에 있어 샤마니즘이란 종교의식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유물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원개형토기 중 유일하게 십자문양이 있는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오늘날에도 만주 몽고족의 무격들은 수십 개의 동령과 동경, 패곡 등을 달아서 요란하게 소리가 나는 신의를 입고 손에 신고를 잡고 두드리며, 춤을 추는 것과 비교하면 이는 원개형동기와 매우 유사하다. 다시 말해 오늘날 꽹과리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하겠다.비록 악보와 음악적 산물이 없지만 원개형동기는 청동기시대에 제정일치 사회에서 신을 부르고 그 신을 통해 부족원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 마치 지금의 꽹과리처럼 '둥둥둥' 울렸을 당대 담백하고 솔직한 음악성이 깃들여있다.전북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1.12.28 23:02

“농악보존 ‘40년 외길’… 후배양성 노력”

김해순(54사진) 김제농악보존회장이 전북무형문화재 제7-3호 김제농악(설장고)예능 보유자로 지정(2011년9월30일)돼 명실공히 농악(설장고) 명인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김 씨는 13세 때인 1970년 당시 농악단 활동을 하던 선친에 의해 스승인 박판열(전 전북부형문화재, 작고)선생으로 부터 40여년간 전수교육을 받아왔다.김 씨는 1973년 김제군 백구농악단원을 시작으로 농악인의 외길 인생을 살아 왔으며, 김제시 관내 농악단 강습과 각급 학교 특별활동 지도를 통해 김제농악의 전승 발전을 위한 농악인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해 왔다.또한 지난 2001년 7월6일 김제농악전수교육관(벽골제)이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김제농악의 전수교육에 혼신의 힘을 다해 오고 있다.김 씨는 지난 1986년 전주대사습 전국농악경연대회서 장원에 입상하는 등 그동안 수 많은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출전, 다수의 수상 실적을 거두었다.특히 2005년 농악인의 개인기량을 겨루는 (사)한국농악보존협회 주관 전국농악명인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을 차지, 명실공히 농악(설장고)명인의 반열에 올랐다.김 씨는 2008년 3월부터 김제농악보존회장직을 맡아 김제농악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김제농악전수교육관 지도교수로서 김제농악의 전수교육에 매진 하고 있다.김 씨는 김제농악의 원형을 보존계승시키기 위해 전수교육을 강화할 생각이다면서 초중고 학생들을 집중 교육시켜 전문농악인을 양성하고, 농악인의 저변확대를 위해 각 읍면동 농악의 활성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대우
  • 2011.11.30 23:02

임실 하가유적서‘석기집중부’8개 발굴 구석기 시대 대규모 석기제작터 증거로 평가

임실군 신평면 가덕리 하가유적서 구석기인들이 모여 석기를 만들었던 흔적이 대거 발견됐다. 조선대 박물관 조사단(단장 이기길 관장)은 7일 하가유적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대규모 석기제작터의 미조사 지점 등에 대해 지난 9월 15일부터 제5차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석기집중부 8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석기집중부의 발견은 하가유적이 대규모 석기제작터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약 2만년 전 후기 구석기인들이 지녔던 석기제작기술의 복원은 물론, 당시 구석기인들이 혹독한 환경을 딛고 생존하는 데 꼭 필요했던 도구체계를 밝히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조사단은 밝혔다.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또 좀돌날몸돌(작은 돌날을 떼어 내 가공된 뼈나 나무에 끼워 사용하였던 석기제작기법)과 좀돌날(작은 돌날) 제작지도 발굴됐다. 박물관 이강희 학예사는 돌날과 좀돌날에 기초한 다양한 사냥도구와 가공도구 등으로 이뤄진 석기갖춤새는 하가유적이 석기제작에 국한하지 않고 채집물과 사냥감의 가공까지 이뤄진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특히 나이프형석기모뿔석기가 함께 드러난 유일한 곳이어서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발굴조사단은 8일 현장에서 5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가지며, 여기에는 일본 학자들도 참가할 예정이다.한편, 하가유적은 지난 2000년 지표조사를 통해 구석기 유적이 다량 발견된 후 2006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 문화재·학술
  • 박정우
  • 2011.11.08 23:02

"전북 천주교 유산, 세계유산 가치 충분"

전북지역에 남아있는 천주교 관련 유산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가능성이 있는 문화유산으로 7개가 꼽혔다. 그러나 실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좀 더 학문적 성과의 축적 등 세심한 검토와 면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전북발전연구원 주최로 27일 열릴 '전북지역 천주교 문화유산의 재조명' 세미나 발제자로 나서는 김정신 단국대 교수는 천주교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추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며 이같이 밝혔다.특히 지난달 열린 이코포럼(ICO-FORUM,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 제시한 천주교 관련 한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29건중 전북지역 유산이 7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주 전동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정읍 신성공소, 진안 어은공소, 장수 수분공소, 완주 되재성당, 전주 치명자산 순교자묘에 주목했다.국가 사적지인 전동성당은 1914년 건축 후 한국전쟁때 일부 훼손됐으며, 여러 차례 보수작업을 했으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고, 한국적인 정서와 정교한 디테일로 종탑과 내부공간이 아름다운 건출물로 꼽힌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곳으로 교회사적 가치도 높다.그러나 김교수는 전동성당에 대한 건축기법과 양식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전무하고 주변 외부공간과 조화되지 못하며, 순교사적지로서 공간조성이 매우 미흡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부공간의 원형복원과 신축예정 건축물들이 전동성당과 조화되도록 계획돼야 한다는 것.역시 국가사적지인 나바위성당은 남녀석을 구분해 가운데 칸막이가 설치된 목조 한옥성당이라는 점, 유교문화의 가톨릭을 수용한 한국 천주교회의 특성을 잘 반영한 점이 특별하다. 전례와 교회건축의 토착화의 좋은 사례인 동시에 국내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서품과 귀국을 기념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역사성과 장소성, 경관적 가치가 높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주변 피정의 집 등의 정비와 나암·황산포 등 김대건 신부의 기착지를 포함해 전체 보존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조언했다.전북기념물인 도재성당은 국내 두 번째 성당건물이며, 최초 한옥 성당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뮈텔 주교 일기와 사진자료 등이 남아있어 전체 복원이 가능하다. 옛 교우촌의 흔적을 최대한 본존하는 마을 정비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의견이다.전북문화재자료로 보호되고 있는 신성공소는 소규모 성당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평가된다. 성곽을 연상시키는 토석 담장과 포도주 저장고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1913년 건축된 수분공소는 팔각지붕의 한옥성당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어은공소는 지붕을 천연돌판으로 얹은 유일한 사례로 희소가치가 있다는 평가다.전북기념물로 보존되고 있는 치명자산은 성지는 동정부부 유종철·이순이와 그 가족 등 7순교자의 묘가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성지를 조성했으며, 전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도 가치를 더해준다.이코포럼서 제시된 잠정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천호성지 여산성지 수류성당 등도 복원과 정비 여하에 따라 목록에 포함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보았다.김 교수는 이들 천주교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해당 유산의 보수정비에 대한 종합계획을 마련해 물리적 훼손이 되지 않도록 하고, 교회 안팎의 보전관리 체계 정비와 함께 교구·문화재청·자치단체 등이 연계된 추진기구 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1.10.27 23:02

국창 권삼득 선생의 업적 재조명

국창 권삼득 선생 탄신 240주년 기념 제12회 국창 권삼득 선생 추모 국악대제전의 일환으로 학술세미나가 22일 완주 종합복지관에서 열렸다.완주군·완주국악협회(지부장 안소현) 주최로 권삼득 선생을 재조명한 이날 학술세미나는 최동현 군산대 교수(전 판소리학회 학회장)가 좌장을 맡았고 △권삼득의 생애와 관련 설화 고찰 : 김기형 고려대 교수(판소리학회 부회장), △권삼득의 더늠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 : 김정태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원 △권삼득 관련 학술 연구사 정리 및 검토 : 서유석 서강대 전임연구원 등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한편 지난 18~19일 완주 봉동 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제12회 국창 권삼득 선생 추모 전국국악대제전 예선과 본선 결과 권삼득상(문화체육부 장관상)은 일반부 판소리 백귀영씨가 차지했다.일반부 판소리 대상(도지사상)은 한유리씨, 무용 대상(〃)은 이정민씨가 차지했고 기악 대상은 수상자가 없었다. 지도자상은 일반부 도지사상으로 조명호·모보경씨가 수상했다.이번 대제전의 각 부문별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일반부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2명) 순△판소리 : 경보비 없음 조희욱 천양자△무 용 : 모준·최기신 등 13명·임민영·박정숙 등 5명△기 악 : 없음 성한여름 정재민 신정민◆ 고등부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2명) 순△판소리 : 오동욱 성재현△기 악 : 김소연 송민정 정수영 류혜민 성아담◆ 중등부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2명) 순△판소리 : 지명인 정진성 박유정 임승준△무 용 : 김미현 남혜윤 정정은 김유연△기 악 : 박상진 장지수 조현정◆ 초등부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2명) 순△판소리 : 최민강 이나다 김윤호 김성욱 이가희△무 용 : 김인이 조수진 오다인△기 악 : 유지영

  • 문화재·학술
  • 백기곤
  • 2011.10.24 23:02

익산 미륵사지석탑 6층 부분복원으로 가닥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서탑)이 부분 복원 방안으로 가닥이 잡혔다.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가진'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국제포럼에서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계획안을 공개했다.연구소측이 제시한 복원안에 따르면 과거의 역사적 흔적과 예술적 작품성을 보존하기 위해 보수정비의 범위를 해체 전 남아있던 6층까지만 하기로 했다. 복원 방법은 탑의 2층까지는 모두 복원하고, 3∼6층은 부분 복원하는 방안이다.문화재연구소 배병선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이날 포럼에서"서탑도 동탑과 마찬가지로 9층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7층 이상으로 볼 수 있는 부재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고증에 어려움이 있다"며, "9층까지 완전 복원할 경우 추론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을 야기함과 동시에 원부재의 재사용 비율이 줄어들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6층안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배 실장은 또 6층 부분 복원 정비안과 6층 전체 복원안에 대한 검토 결과 두 안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해체 직전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부분 복원안을 택했다고 밝혔다. 사라진 부분은 그냥 두고 남아 있던 부분을 중심으로 쌓아 올리되 일부 부재를 보완하는 게 부분 복원 정비안이다.이 안에 따르면 2층까지는 사방을 모두 복원하고, 3∼6층은 해체 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되 탑의 안전을 위해 일부를 보완 복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 2층의 경우는 탑을 지지해야 하는 아랫부분이기 때문에 모두 복원해야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이날 포럼에 나선 토론자들은 전반적으로 6층 부분 복원안에 찬성하면서도 좀 더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석탁 복원방안은 연구소측에서 올 연말까지 최종 결론을 낸 후 문화재위원회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석탑의 부분 복원에 필요한 사업비는 총 197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2016년까지 마무리 될 전망이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1.10.20 23:02

익산 미륵사지 석탑 '6층 부분 복원' 잠정 결론나기까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방안이 1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표되면서 석탑 복원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탑이 해체되던 2001년부터 석탑의 복원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끝에 나온 결론이기 때문이다. 9층이 아닌, 6층으로, 6층 전체가 아닌 부분 복원으로 잠정 결론나기 까지 과정을 살펴보았다.  ▲ 해체에서 복원안 결정까지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안전진단결과 구조적 안전이 우려돼 해체 보수가 결정됐고, 전북도와 대행사업 협약을 체결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6층부터 해체에 들어가 지난해까지 10년에 걸쳐 해체와 발굴 작업을 모두 마쳤다. 현재 석탑은 기초부만 남아있는 상태다.  연구소측은 해체 및 발굴조사 과정에서 상세한 자료를 축적했고, 건축·보존과학·고고학·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발굴 과정에서 2009년 석탑 1층 심주석에서 사리장엄이 출토돼 석탑의 창건시기가 서기 639년임을 밝혀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석탑의 건축재료를 조사한 결과 흙은 미륵사지 주변에서 채집한 양토와 사양토 등으로 구석됐고, 채석산지는 미륵사지 북편으로 믹산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석탑의 붕괴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소측은 지진이나 지반구조의 취약, 석재의 내구성 저항 등을 붕괴원인으로 가정하고 여러 실험을 거쳤으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다만, 발굴조사과정에서 확인된 초반석의 불균형한 형태나 내구성의 저하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았다. 미륵사터 석탑은 조선시대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해 1915년경 서쪽면 전체와 남쪽, 북쪽면 일부가 무너졌고 당시 일제가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체 전까지 6층까지만 남았었다.   ▲ 왜 6층까지 부분 보수인가 연구소측은 석탑 2층까지 해체한 후 2005년 복원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으며, 이 때부터 지금까지 △9층 복원 △ 6층 부분복원 △ 6층 전체복원 등의 방안을 놓고 논의해왔다. 연구소는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기본원칙을 국제적으로 문화재 보수·복원의 보편적 기준으로 삼고 있는 '베니스헌장'에 뒀다고 밝혔다. 즉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의 회복, 구조적 안전성을 고려했다. 이와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외 석조문화재의 복원 사례를 참고했다. 그 결과 과거의 흔적과 예술적 작품성을 보존하기 위해 보수 정비의 법위를 해체 전 남아있던 6층까지로 정했다.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며 역사적 형태 및 구조적 안전성을 고려해서다. 또 해체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원래의 축조기법과 재료를 반영하되, 기존의 방법으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과학적 기술에 근거한 방법을 적용한다. 원래의 부재 재사용 비율을 높인다는 것도 기본원칙에 포함됐다. 연구소측은 6층 부분 복원과 전체 복원을 놓고 장단점을 비교한 결과 6층 부분 복원쪽에 손을 들었다.  6층 부분 복원과 전체 복원의 차이는 해체 직전 무너진 6층을 그대로 두느냐, 아니면 무너지기 전 모습으로 복원하느냐의 차이다. 형태적으로나 시각적으로는 전체 복원이 안정적이며, 일반도 선호하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자칫 원형을 6층으로 오인하거나 공사가 중단된 형태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또 신재료의 증가로 이질감이 커지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연구소측은 보았다. 부분 복원시 기존 재료의 사용률이 62%지만, 전체 복원시에는 기존 재료가 39% 밖에 안된다. 반면 부분 복원시 국제적 보수·복원 원칙을 반영하고, 최소한의 복원으로 후대에게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석축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고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설명했다. 배 실장은 부분 복원안이 "1915년 콘크리트 보강 공사 이후 거의 100년 가까이 지속된 미륵사 석탑 모습이 될 것"이라며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모습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형태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1.10.20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