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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초에 만들어진 김제 벽골제와 7세기 초에 만들어진 일본 사야마저수지는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야마저수지를 만드는 데 있어 벽골제가 본보기가 된 듯 합니다. 귀중한 토목유산을 배우기 위해 벽골제에 오게 됐습니다."김제 벽골제를 둘러보고 지난 2일 전주를 찾은 일본 오사카 부립 사야마이케(狹山池) 박물관 쿠라쿠 요시유키(工樂 善通) 관장(70)은 "일본의 토목기술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벽골제를 직접 보기 위해 전북에 왔다"고 말했다.사야마저수지는 7세기 초에 만들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댐식 용수지. 사야마이케박물관은 1400년 역사가 쌓여있는 제방과 물을 빼내는 송수관, 제방의 미끄럼을 방지하는 목제틀 등의 토목유산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그는 "전통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전통가옥과 전통음식이 남아있는 전주에 방문하게 됐다"며 "역사적인 토목유산인 사야마저수지의 활용방안을 전북에서 얻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쿠라쿠 관장은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일본 고고학 및 역사학 관련 장서 1만여권을 기증, 박물관 도서실에 '쿠라쿠 요시유키 문고'가 설치되기도 했다. 나라문화재연구소 매장문화재센터장을 지내는 등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평생을 근무한 그를 통해 내년에 열리는 '나라 헤이죠쿄(平城京) 천도 1300년 기념축제'도 들을 수 있었다."'나라 헤이죠쿄 천도 1300년 기념축제'는 헤이죠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궁까지 포함해 나라현 전체에서 1년 동안 열리는 행사입니다. 나라가 일본의 수도였다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은 이미 높습니다. 이번 축제를 통해서는 아무래도 관광객을 통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죠."나라 헤이죠쿄는 서기 710년에 완성된 도읍으로, 784년 교토로 천도할 때까지 일본의 수도였다. 쿠라쿠 관장은 "헤이죠쿄는 초석과 기단, 계단 정도가 남아있는 정도였다"며 "헤이죠코의 중심인 태극전인 내년에 완성되는 등 200억엔을 들여 중심건물 중심으로 헤이죠쿄의 일부분을 복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나 한국은 7~8세기 목조건물이 많아 세월이 흐름 속에서 많이 없어진 반면 유럽은 돌로 만든 건물들이 많아 당시 유적이 그래도 남아있는 편"이라며 "헤이죠쿄 복원에 있어 경복궁 복원 사례가 참고가 됐다"고도 설명했다.
국보 62호인 금산사 미륵전으로 비롯 도내 국보와 보물 등 중요 목조문화재가 화재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5일 문화재청이 국회 이명수(자유선진당)·이은재·장제원(이상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광역자치단체 관리, 중요 목조문화재 소방시설 현황'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으로 금산사 미륵전과 전주 풍남문·객사 남원 광한루 정읍 피향정 등 도내 중요 목조문화재 18곳 중 12곳이 화재경보기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다.특히 도내 중요목조문화재 18곳 중 화재경보 시스템이 구축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관계당국의 늑장대응이 자칫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도내 중요 목조문화재중 CCTV가 설치된 곳은 고창 선운사 대웅전과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송광사 대웅전·종루 내소사 대웅보전 개암사 대웅전 등 6곳에 불과했다.이 의원 등은 "문화재 소방방재 시스템을 구축할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은 깜깜 무소식이고 소방방재청은 손을 놓고 있으며 자치단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정부만 쳐다보고 있다"며 "중요 목조문화재에 대한 소방방재시스템 구축 등을 포함한 대책들은 탁상공론식 실책만 있어 정부를 중심으로 총체적 부실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이와 관련해 전북도는 도내 국보, 보물 등 중요 목조문화재는 현재 화재예방 시스템과 관련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일부 문화재를 제외하고는 올 연말 안에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밝혔다.전북도 문화재관련 담당자는 "중요목조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시스템은 중앙 정부에서 심의를 통해 예산을 지급하는 것으로 예산 승인이 미뤄지거나 문화재 별로 설계안을 변경해야 해 사업이 지체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도내 문화재 18곳은 모두 현재 공사가 완료됐거나 설계를 마친 상태다"며 "보수 공사가 겹친 몇몇 문화재 외에는 올해 안에 화재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한국유네스코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유네스코운동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2009 한국유네스코 운동 전국대회'가 9~10일 이틀동안 전주코아리베라호텔에서 열린다. 이번 전국대회는 1998년 이후 11년만에 전주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유네스코운동 각 시·도협회회원 7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회원들은 대회 기간중 유네스코 운동 활성화를 위한 토론과 정보교류외에도 전주한옥마을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고창 고인돌 견학,새만금 방조제 현장답사 등을 할 계획이다.윤석길 한국유네스코연맹 전북협회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전국의 유네스코 회원들에게 전주와 전북의 빼어난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한편 유네스코는 인류의 평화·인권·민주주의·관용의 실천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국제기구로, 현재 19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전주시가 남천교 누각 이름을 공모한다.50년만에 재가설된 남천교는 무지개 모양의 아치교량 구조로 다리위엔 고건축 누각이 올려질 예정.이름은 전주한옥마을과 어우러지면서, 천년 전주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으면 된다.응모기간은 10월12일까지. 응모방법은 온라인, 우편 접수.당선자 1명에겐 30만원 재래시장상품권이 주어진다. 063)281-2452. www.jeonju.go.kr
▲ 완판본(完板本)완판본은 조선후기(18C 후반∼20C 중엽)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전라감영뿐만 아니라 일반 서점 및 개인이 간행한 것도 포함된다. 시기적으로 한문본 「구운몽」이 출판된 1803년부터 '양책방(梁冊坊)'이라는 서점이 아동교육용 도서를 출판한 1937년까지 약 140년이며, 활기를 띠었던 시기는 1850년에서 1910년까지 약 60년 동안이었다. 완판본으로 대표되는 전주의 출판·인쇄는 조선시대 수도였던 서울을 제외하고 그 규모가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전라감영에서는 「자치통감강목」, 「주자대전」 등과 같은 유학관련 서적들을 발간하였다. 그 책판들은 전주향교 장판각에 보관되어 오다가 전북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돼 있다. 당시만 해도 이곳에 보관됐던 책판은 9500여 개에 이르렀지만 자연재해와 조선말의 혼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많은 양이 손실되었다. 최근 정리사업을 통해 조사된 목판의 수는 10종 5059장에 이른다.일반 서점과 개인들은 유학관련 서적뿐 아니라 수많은 한글 고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을 발간하였다. 완판본 중에서 「열여춘향슈졀가」나 「심청전」과 같은 한글소설은 전북지역 방언과 국어의 역사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또한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어서 당시 널리 유포되었던 경판본과 안성판본의 단조로움보다 더욱 다양한 서체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잘 표현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방각본(坊刻本)방각본은 조선시대 사가(私家)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간행한 책을 말하는데, 목판으로 인쇄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방간본(坊刊本)이라고도 한다. 또한 방각본은 출판의 주체인 판원(板原)에 따라 분류된 명칭의 하나이다. 판원에 따라 분류하면 관청에서 출판한 관본(官本), 개인이 가정에서 출판한 사가본(私家本), 상인인 민간 출판업자가 판매 목적으로 출판한 방각본, 사찰에서 출판한 사찰본(寺刹本)등으로 나누어진다.한국 최초의 방각본은 1541년(중종 36) 명례방에서 간행한 「한서열전(漢書列傳)」이 처음이라고 하나 기록상으로 확인된 것은 1576년 간행된 「고사촬요(攷事撮要)」이다. 방각본은 중국 당나라 때 시작돼 송나라 때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방각본에 의한 출판·인쇄 경향은 임진왜란으로 일시 침체되었다가 17세기 말에 와서 호남지장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17세기 전라도 태인 지방에서 손기조(孫基祖) 전이채(田以采) 박치유(朴致維)등 아전 출신의 인사들이 간행한 책이 호남지방 방각본의 원류가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와 그 주류가 전주지방으로 옮겨와 전주의 방각본을 형성하기에 이르면서 그 담당층이 서리 중인층으로부터 서민 출신의 상공층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 방각본 출판·인쇄물의 특징은 시장성을 전제로 한 한글목판본 소설류이다. 주된 독자층은 서민으로 독자의 기호에 영합하는 오락적인 소설의 출판을 가속화했다는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수의 계층에 안정되어 읽히던 소설을 서민층도 널리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소설작품의 출판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소설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고전소설의 유통상 필사본의 한계점을 극복하여 그 작품들의 광범한 보급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출판·인쇄의 기록문화를 선도했던 우리 전주.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발간된 60여권의 책, 개인 출판업자에 의해 20여 종류의 한글 고대설과 250여 종류의 고문헌이 출간되었다. 뿐만 아니라 1803년부터 1932년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고소설들이 전주에서 출간됐고, 현재 전하는 완판본 한글 고소설의 종류는 총 23가지로, 판본이 다른 것까지 합치면 50여종이 이른다. 이 덕에 전주는 고소설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서울 다음으로 최고인 출판·인쇄문화문자는 대량의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보관할 수 있어서 다른 도구나 기계들이 발명되기 이전, 정보전달의 거의 유일한 도구였다. 문자를 통한 정보소통의 가장 일반화되었던 방법은 문헌을 통한 것으로 문헌 출판의 능력은 곧 그 사회의 문화 발달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세계의 출판문화에서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발명이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에 세계문화사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는 각 시대별로, 각 지역별로 독특한 출판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지방의 감영마다 문헌을 출간했고, 사찰과 서원 등에서도 문헌을 간행했다. 근대에 들어 출판의 대량화 요구에 맞추어 방각본이 출현하면서 지역별로 독특한 방각본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서울의 경판본, 전주의 완판본이다. 경판본이야 국가의 수도인 서울에서 간행된 것이기 때문에 출판여건이 좋은 상황이었지만, 완판본은 출판여건이 어려운 지방에서 간행된 것이어서 우리의 관심을 더 끌게 한다. 완판본 중에서도 특히 한글 고소설은 경판본 고소설과 함께 고소설사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전주의 종합문화가 반영된 완판본완판본이 전주에서 등장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언어 외적인 요소가 작용하였을 터. 판목을 만들기 위한 목재공급의 수월성, 책을 찍어낼 한지의 생산·공급이 용이성, 출판을 담당할 수 있는 높은 재력 등이 이것의 조력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러한 책을 직접 쓸 수 있는 다양한 서예가와 판각능력을 가진 각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상황이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들을 소비할 수 있는 독자층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들을 전국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사업조직인 판매망이 조직되어 있었을 것이다. 서적 출판이 단순히 작업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완판본이 존재는 그 당시 전주의 종합문화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완판본의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이러한 여건을 바탕으로 책을 판매하는 책방은 주로 전주부성 4대문 밖에 형성된 시장부근, 특히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길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또한 방각본을 찍어 판매한 책방은 서계서포, 다가서포, 문명서관, 칠서방 등 10여 곳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앙과 다른 완판본 한글 고소설출판이 아무리 그 사회·문화의 척도가 된다고 하여도 출판된 문헌의 언어와 문자가 난해한 것이면 출판을 통한 정보전달이라는 기능을 반감시키게 된다. 어떠한 문자로 문헌을 간행하였는가 하는 부분도 출판문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완판본 한글 고소설이 갖는 가치와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지방에서 간행된 문헌 중에서도 각 감영에서 간행해낸 문헌은 대체로 중앙에서 간행해낸 문헌과 큰 차이가 없지만 방각본인 완판본 고소설은 중앙의 간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각 감영에서 간행한 문헌은 주로 중앙 간본의 복각본이 많아서 지방판별로 언어상의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완판본 고소설은 경판본 고소설에 비해 언어적 차이가 무척 커 전라도만의 방언들이 수록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한편 완판본 한글 고소설은 대중문화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완판본 한글 고소설에 보이는 서체에서 서민들의 서체를 볼 수 있기 때문. 전주문화의 특징이 궁중문화가 아니듯 완판본 고소설에 보이는 한글서체는 궁중의 서체가 아닌 일반 서민들의 서체이다. 경판본이 오늘날 서체의 명칭으로 말하자면, '궁체'의 하나인 반면 완판본은 '민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완판본에도 궁체와 유사한 서체도 보이지만 경판본의 궁체와는 확연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출판문화 속에 담긴 전주의 미래우리가 완판본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그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전주문화의 특징을 찾고, 그 문화를 오늘날 되살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데에 있다. 완판본에 대한 이와 같은 결실은 전주향교 옆에 들어설 완판본 문화관으로 맺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다시금 고민에 길에 접어들게 된다. 과거의 찬란했던 출판문화는 조상들의 것이기 때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은 완판본을 통해 전주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따라서 완판본 문화관은 단순히 완판본이 주향인지, 그 특징이 주향인지 알려주는 공간에서 벗어나 전완판본에 담겨져 있는 전주정신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설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출판, 인쇄문화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한지와 서예문화 등 전주의 문화·역사를 완판본 속에서 창조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서병문 단국대 미디어콘텐츠연구원 원장은 30일 "'긍정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영상 콘텐츠들이 나온다면 그만큼 우리사회도 더 밝아지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날 오후 방송회관 3층에서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영상 콘텐츠의 사회적 책임과 과제'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반사회적인 영상 콘텐츠가 방영되면서 우리 드라마의 영화(榮華)는 이제 끝났다는 자조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그는 "사회 일탈적인 내용이 방영되면 순간적으로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에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지 못하게 될것"이라며 "우리 영상 콘텐츠의 메시지 중에는 지나치게 현실부정이나 자기비하적인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 교수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 '솔약국집 아들들', 영화 '거북이 달린다' 등을 '착한 드라마' 혹은 '착한 영화'라고 칭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장밋빛으로 채색하자는게 아니라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삶의 보편적인 태도를 보여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손병두 KBS이사장은 "세계인들이 매력적이라고 공감할 만한 보편적 감성의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작년 12월 출범한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가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콘텐츠 산업의 현주소부터 점검해보자는 차원에서 마련했다.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등 우리 무형문화재 5건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강강술래 등 5건이 세계무형유산 목록에 올랐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미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등 3건이 등재돼 있어 모두 8건의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이번에 세계무형유산이 된 강강술래(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는 설, 대보름, 추석 등에 행해진 노래,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춤을 추는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선소리를 하면 모든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선후창의 형태로 노래하고, 노랫소리에 맞춰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는 조선후기 남사당패가 농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했던 놀이로 풍물놀이,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보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가 이어진다.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하고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영산재(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는 49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해금, 북, 장구 등을 연주하고 바라춤, 나비춤 등을 추며 영혼에 제사를 지낸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은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신당인 칠머리당에서 마을 수호신에게 하는 굿으로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해녀가 하는 굿이다.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는 궁중 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용예술이다. 통일신라 시대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유네스코는 2001년부터 격년제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 프로그램을 실시해 국가별로 구전 및 무형유산 등재신청을 받아 지정해왔다. 이 프로그램은 국가당 신청건수를 1건으로 제한해 2005년까지 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은 70개국 90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2006년 무형유산보호협약이 발효되면서 각국별 신청 건수를 제한하지 않고, 신청된 무형유산은 대부분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해주는 쪽으로 심사기준을 바꾼 '대표 목록(Representative List)'제도를 도입했다. 올해는 새 프로그램이 시행된 첫해로 22개국이 무형유산 76건을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 올렸고, 이 가운데 한국 무형유산 5건도 세계무형유산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국은 당초 조선궁중음식을 포함한 6건을 등재신청했으나 이것이 세계무형유산 목록에 오르면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전자문회의에서 탈락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세계무형유산은 '세계유산(World Heritage)' 제도와 달리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문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차원이다. 국민적 관심을 높여 무형유산 보존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본다"면서 "지난달 무형문화재 40건을 등재 신청해 내년에는 세계무형유산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일부 훼손된 왕릉을 복원정비하는 등 조선왕릉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서울시,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등 관련기관 의견 수렴과 학술포럼 개최, 그리고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수립한 '세계유산 조선왕릉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을 30일 발표했다. 이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부 훼손된 능역의 원형 보존과 완충구역의 적절한 보존지침 마련, 안내해설 체계 마련 등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기본 계획을 문화재청은 단기사업(2010~2015)과 장기사업(2016~2025)으로 구분했다. 단기사업은 유네스코 권고사항 등을 이행하기 위한 사업을 중심으로 진행하며, 장기사업은 능역 내의 사유지 매입 등을 통한 능제(陵制) 복원 사업을 위주로 한다. 사업에는 단기 2천400여억원, 장기 2천500여억원 등 모두 4천900원이 소요된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우선 내년부터 서삼릉(젖소개량사업소, 경주마 목장 등), 의릉(구 국가정보원 건물), 태강릉(국제사격장, 국가대표선수촌) 등 일부 훼손된 왕릉을 복원정비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2025년까지 16년에 걸쳐 동구릉 등 18개 왕릉의 훼손된 시설물을 복원하는 한편, 사격장 등 능역 안에 들어선 건축물은 철거한다. 또 화재나 도굴 등을 예방하기 위해 CCTV와 경보기 등 경비시스템을 비롯해 소방 설비 등 종합적인 방재시설을 구축할 예정이다. 조선왕릉은 서울과 경기 일원에 분포해 개발압력이 높은 가운데 왕릉 주변 완충 지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준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수립하며, 재실(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을 사무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데 대해 문화재 훼손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관리사무소를 별도로 만들 예정이다. 한편 조선왕릉을 세계유산의 품격에 걸맞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안내판을 정비하고 고궁과 왕릉 및 주변 관광지를 연계한 탐방코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의궤 등 기록문헌 번역물 등을 제작하며 조선의 장묘 및 제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왕릉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안내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관광가이드북 등 홍보물도 제작해 배포한다. 문화재청은 왕릉을 찾는 국내ㆍ외 관광객이 국장 절차, 왕릉의 공간 구성 및 구조, 산릉제례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울 노원구에 있는 태강릉 주변에 조선왕릉 전시관을 건립해 12월 중 개관할 예정이다.
조선 후기시대의 장례 풍습과 소송 행태 등을 엿볼 수 있는 요여(腰輿.시체를 묻은 뒤에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와 소송 서류 뭉치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 고씨 임피종회는 제각에 보관하던 요여(길이 275㎝, 높이 55㎝)와 조선 후기 시대 소송 서류 77장을 29일 군산시에 기증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여는 세공 솜씨가 정교하고 온전해 역사학적 가치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에 함께 기증된 소송서류는 총 77장으로, 1834년부터 약 63년간 제주 고씨 임피종회의 완주 고산면 선산의 소송을 다룬 것들이다. 임피종회의 선산과 토지를 침범한 이웃을 상대로 고을 수령에게 처벌을 구하는 소장이 대부분인데, 당시의 소송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군산시는 임피종회에서 기증받은 유물을 2011년 말 완공될 시립박물관에 영구적으로 보관할 계획이다. 군산시 학예사 김중규씨는 "100여년 넘도록 볼수 없었던 요여가 온전한 모습으로 기증된 것도 기쁘지만 조선후기때의 소송서류가 무더기로 공개됨에 따라 그 당시의 토지소송과 판결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부산국악원은 29일 오후 우리나라와 일본,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 4개국의 탈놀이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음악 국제학술회의 개막식을 갖고 이틀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아시아의 탈놀이'를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는 지난해 10월 공식 개원한 국립부산국악원이 개최한 첫 국제행사다. 부산, 경남이 탈놀이로 대표되는 전통연희 분야가 발달한 곳이어서 이번 회의를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해외보급 및 세계화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립부산국악원 측은 탈놀이를 음악학과 연극학, 민속학, 공연예술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기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특강을 통해 각국의 탈놀이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각국 탈놀이를 시연하는 행사를 병행해 이해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송나라 말년의 황주 도화동의 한사람이 잇스되 셩은 심이요 명은 학규라...'(심청전 상권)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소설인 심청전의 상권 목판이 조선시대 최고의 출판문화를 꽃피웠던 전북 전주에서 다시 태어났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목판서화체험관 대표 안준영(52)씨는 최근 심청전 상권 30장(60쪽)의 목판 복각(復刻) 작업을 끝냈다. 520여 글자가 들어가는 한 장을 양면에 새기니 목판은 모두 15장이다. 심청전은 문장체 소설에 가까운 경판(京板)계와 판소리의 영향이 묻어나는 완판(完板)계 등 이본(異本)이 여럿 있지만 이들 모두 목판은커녕 낱장 전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판각본도 찾기 어렵다. 선비만 보던 경전이나 문집과 달리, 서민들이 서로 돌려 읽다 보니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다. 안씨는 1906년께 간행된 상.하권 71장짜리 완판본 완서계신판(完西溪新板) 완질을 원광대 박순호 교수(국어교육과)로부터 어렵사리 구해 지난해 11월 복각을 시작했다. 대구와 경북 안동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하생들이 작업을 도왔다.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인 완판본을 모본(母本)으로 택한 것은 세계 최고로 꼽히는 우리나라 목판인쇄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판본이기 때문. 질 좋은 전주한지를 사용하는 데다 서체도 다양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목판인쇄의 시작이라면 완판본은 그 끝"이라는 게 안씨의 생각이다. 그는 복각 작업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숨구멍이 거의 없고 견고한 산벚나무로 판을 짠 뒤 직접 만든 20여 가지의 조각칼과 망치로 한 획을 서너 번씩 당기거나 밀다 보면 하루 8시간씩 쏟아도 한 장을 새기는 데 4~5일은 족히 걸린다. 안씨는 우리 목판 인쇄술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라지만 먹은 그렇지 않아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종이로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게 우리 목판 인쇄술입니다. 쉽고 간단하게 찍지만 30만 부를 찍어도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죠."안씨는 내년에 하권 41장까지 모두 복각할 계획이다. "하권까지 완성되면 책으로 찍어 흐릿한 복사본을 보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보급할 생각"이라는 안씨는 10월6일 목판서화체험관에서 기념식을 열고 이번에 복각한 목판을 공개한다. 이어 한글날을 맞아 10월11일까지 진행되는 '목판으로 만나는 한글 문화유산전'에서도 안씨가 복각한 훈민정음 언해본 등과 함께 심청전 목판을 볼 수 있다.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5건의 무형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위원회에서 강강술래 등 5건의 세계무형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29일 말했다. 이들 무형문화재는 무형유산위원회 사전 자문회의에서 등재 권고를 받아 본회의에서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세계무형유산은 76개국 166건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등 3건이 등재돼 있어 이번에 5건이 추가 등재되면 모두 8건의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강강술래(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는 설, 대보름, 추석 등에 행해진 노래,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로 이뤄진 원시종합예술이다.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는 조선후기 남사당패가 농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했던 놀이로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하고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영산재(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는 49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은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으로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다.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는 궁중 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하며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용예술이다.
왕희지가 유상곡수연에서 즉흥으로 휘호한 '난정서'는 그의 문장력은 물론 필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작이다. 이러한 희대의 명작은 유전하며 많은 일화를 남긴다. 정관지치(貞觀之治)로 유명한 당태종 이세민은 왕희지의 글씨를 좋아하여 보이는 대로 수집하였으나 이 '난정서'만은 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희지의 7세손 지영(智永)이 '난정서'를 비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고 심복인 소익(蕭翼)을 시켜 '난정서'를 빼돌려 마침내 손에 넣었다. 그 기쁨이 어떠했을까. 모든 명물은 수집가 앞으로 모인다는 소동파의 말처럼 당태종은 그것을 입수하고 더 없는 행복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의 물건을 빼돌린 죄의식도 차마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행복감과 죄의식이 당태종의 마음을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당태종은 손수 '왕희지전'을 지었고, 이것이 현재 '당서(唐書)'에 전한다. 이는 역사에서 보기 드문 예이다.불행스럽게도 '난정서'는 당태종의 유언에 따라 소릉(昭陵)에 부장되었고, 이로써 천하명적은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그것을 입수한 당태종이 당시의 명서가들을 불러 진적을 똑같이 모사하여 대신들에게 하사했는데 그것들이 지금 세상에 전하여 그 전모를 볼 수 있다. 왕희지의 '난정서'가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예견했는지 봄날의 아름다운 서경을 술회하는 것으로 시작한 문장은 점차 인생무상을 자탄하는 처연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한없는 즐거움 뒤에 밀려오는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다. 목숨이 길거나 짧거나 자연의 조화에 따라 죽음은 기약되어 있는데, 오늘 같은 즐거움에 앙연자족하며 늙음이 장차 이르는 줄을 알지 못했던 자신. 이제야 장자가 사생(死生)이 하나이며 팽상이 똑같다고 했던 말들이 모두 허탄하고 망령된 것임을 알겠다고 회고하며 비탄한다. 마지막 문장에서 '훗날 이것을 보는 자는 또한 나의 글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까지 하고 있으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명문장에 명필로 쓰여진 이 '난정서'는 명시문을 모은 소통(蕭統)의 '문선(文選)'에 선택되지 못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天朗氣淸'이라는 구절이 마치 가을을 의미하는 듯해서 당시 늦봄의 서경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왕희지가 이처럼 인생을 비탄조로 바라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절친했던 벗 은호(殷浩)의 실각과 죽음, 며칠 차이로 재롱둥이 두 손녀의 죽음, 며느리의 죽음, 형과 형수의 죽음, 친족의 죽음 등등 가혹할 정도로 처연한 슬픔에 잠긴 왕희지는 봄날의 경치가 아무리 기꺼워도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병약한 자신의 처지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난정서'보다 3년 뒤(356)에 쓰여진 '상란첩(喪亂帖)'은 이러한 왕희지의 애수를 증명하는 또 다른 명작이다. '상란(喪亂)이 극심해져 조상의 묘가 다시 재난을 만나 황폐화되었으나 당장 수리하려해도 아직은 달려갈 수가 없다.'는 애통한 심정이 절절이 드러나며, 유려한 비애미를 넘어 숭고미로 치닫고 있다. 명작은 슬픔을 동반한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치는 불행한 일들로 인하여 한없는 슬픔과 인생무상을 체감한 왕희지는 이렇게 숨김없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였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백제시대 분구묘(墳丘墓)에서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금동신발 1켤레가 발굴됐다. 특히 이번 금동신발 발굴은 고인돌 유적지 인근에서 발견돼 고창이 선사는 물론, 마한 백제시대 중심지였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8일 봉덕리 1호분 제2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고 4호 수혈식(竪穴式) 석실에서 완벽한 형태의 금동신발 1켤레를 비롯해 금제귀걸이 2쌍, 대나무 잎(죽엽·竹葉)형 머리장식, 은제탁잔, 중국제 청자반구호, 일본 고훈(古墳)시대 토기인 스에키(須惠器) 계통의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 칠기 화살통, 대도, 도자, 마구류, 철기류, 기대·개배 등의 토기류, 곡옥 등 각종 옥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최완규 소장은 "마한식 전통 묘제에 백제(금동신발·개배), 중국(청자반구호), 일본(소호장식유공광구호) 등 4국의 유물이 모두 확인됐다"면서 "당시 백제와 쌍벽을 이루며 활발한 국제교류를 벌였던 마한국의 왕릉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이날 가장 관심을 모은 유물은 국내에서 출토된 14켤레의 금동신발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동제 신발. 목 부분과 측판 2매, 바닥으로 이뤄진 이 신발의 바닥 중앙에는 용 1마리가 있으며, 발뒤꿈치 부분에는 고구려 장천1호분 고분벽화나 무령왕릉 허리띠 장식에 보이는 역사상(力士像)이 투조(맞새김)로 장식한 것으로 밝혀졌다.최 소장은 "이번 발굴로 고창지역에서 고인돌 문화 이후 마한문화의 단면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며, 백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봉덕리 1호분은 하나의 분구(봉분) 안에 석실분 5기·옹관묘 2기가 매장돼 있는 마한문화의 전통이 강한 5세기에 조성된 무덤. 이 가운데 3기의 횡혈식(橫穴式) 석실에선 다량의 기와편이 출토돼 경기 이남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무덤 위에 와즙(瓦葺·기와로 지붕을 이음) 건물이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이 설립 435년만에 향사례(享祀禮)에 일반인의 참관을 허용한다. 도산서원 향사례는 퇴계 이황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로 민간차원에서는 최고, 최대의 전통적 제례행사이며, 매년 봄.가을 서원에 있는 상덕사(尙德祠)에서 치러진다. 경북 안동시는 도산서원측이 오는 29일 열리는 올해 추기 향사례부터 일반인의 참관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일반인의 향사례 참관이 허용되면 1574년 설립된 도산서원은 전통서원 가운데 최초로 지난 2002년 여성의 참관을 허용하면서 금녀(禁女)의 벽을 허문 데 이어 향사와 관련해 시행되던 유교적 제한을 완전히 풀게 된다. 도산서원측은 향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향사례가 더이상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열려서는 안된다는 유림의 뜻에 따라 일반인의 참관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원측은 또 후학의 교육 편의와 일반인의 향사례 참관 편의 등을 위해 향사례 시간도 기존 오전 1시(축시)에서 오전 11시로 변경하고, 입재(入齋.향사에 참여할 수 있는 헌관과 축관, 유생 등이 서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머무는 것)도 2박3일에서 1박2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관들이 상덕사에 나아가 입재를 고하고 향사를 올리러 왔음을 알리는 알묘례(謁廟禮)와 역할을 나누어 정하는 분정(分定), 제사상에 올릴 돼지를 검사하는 생간례(牲看禮), 제기를 씻어 말리는 척기례(滌器禮) 등은 엄격히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시 관계자는 "2박3일 동안 외부와 단절된채 이뤄지던 향사례가 공개되면 도산서원을 찾는 관광객과 젊은 세대에게 전통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창 봉덕리 백제시대 마한 분구묘(墳丘墓, 봉분을 갖춘 무덤)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신발을 비롯해 칠기로 만든 화살통, 중국제 청자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금동신발에서는 발뒤꿈치뼈가 나오는 등 인골도 함께 발굴됐으며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는 국내 최초로 발견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고창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지난 6월부터 고창군 봉덕리 고분군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8일 유적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열고 "한성 백제기의 마한문화 전통을 가진 분구묘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금동신발을 비롯해 각종 유물이 쏟아진 석실분은 4호분으로 다른 석실분이 횡혈식인 것과는 달리 수혈식으로 분구의 동남편에 치우쳐 자리하고 있다. 4호분 내부 유물의 배치상태를 보면 시신이 안치됐을 중앙에는 머리부문에서 청동제 대나무잎 모양의 장식이, 머리와 가슴부분에서는 귀걸이 2쌍과 곡옥 2점을 비롯한 다량의 옥이 발견됐다. 팔 부분에서는 칠기로 만든 화살통, 대도 2점, 손칼이 놓여져 있었으며, 발치쪽에서는 금동제 신발이 약간 비스듬이 뉘여진 상태로 발견됐다.아가리가 바깥을 향해 벌어진 소호장식유공광구호는 일본 고분시대 토기인 스에끼에서는 장식호라 불리는 것으로, 고창 출토는 이들 토기의 원류로서 한일 고대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이 토기를 받치고 있었던 그릇받침은 하부에 토제 구슬을 넣고 막은 형식으로 제작돼 방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어 제의 의식에 사용된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최완규 소장은 "이 고분의 조성연대는 고분의 구조나 4호에서 출토된 남조대의 청자연대를 참고, 5세기 초엽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봉덕리 1호분 주변에는 마한 분구묘 계통의 분묘가 밀집돼 있는 곳으로 마한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의 중심지로 지목할 수 있는데, 이번에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정치세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금동신발을 비롯한 유물은 수습과정에서 훼손될 것을 우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의 지원을 받아 수습 및 응급조치를 시행했으며 일부 유물은 현재 보존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올 가을 도내 시민단체들이 풍성하고 알찬 강좌를 마련, 인문학을 통해 우리 시대를 성찰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움직임을 만든다.강연의 스타트는 '초록시민강좌'가 알린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일보의 공동주관으로 5기째를 맞는 이 강좌는 다음달 8일 전주시평생학습센터에서 첫 강좌가 열린다.올해 초록시민강좌의 초점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통한 우리사회의 가치찾기다. 자연생태와 진보, 여행, 인문학, 정치 등 10강으로 마련되며 강좌마다 해당 분야에서 선구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사들을 초청했다. 보다 많은 시민의 참여를 바라는 초록시민강좌의 특성상 이번에도 손석춘, 도법스님, 고미숙, 김남희, 김규항 등 대중 지명도 높은 인사들이 강사로 나선다.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도 본보와 공동으로 제3기 '참여자치아카데미'를 다음달 13일부터 전주시 경원동 사무실에서 8개 강좌로 연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참여자치아카데미는 올해에도 우리시대의 민주주의, 지방자치의 제도적 실천, 풀뿌리민주주의 만들기 사례 등 크게 3가지 틀에서 강좌가 진행된다.우석훈, 강수돌 등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는 스타강사와 재연 실상사 주지, 구성은 전주시의원, 임성진 전주대교수 등 지역강사가 고루 포진해 있다.올바른 지역언론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도 오는 11월 전북대 합동강당에서 제16기 '언론학교'로 시민들을 찾아간다.특히 이번 언론학교에는 '미네르바' 박대성씨, 정연주 전 KBS사장,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앵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등 지난해와 올해 언론 관련 사안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강사로 나선다.
'제27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부 장원을 수상한 김나영양(한국전통문화고 3)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선생님!"하고 장문희 명창의 품에 안겼다. 시상 소감을 묻는 내내 울먹이느라 한마디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엔 부모님도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했다."연습은 안하더라도, 매일매일 봐야 마음이 편해요. 엄마가 항상 선생님만 믿고, 시키는 대로 다하라고 하셨거든요. 믿고 의지할 사람은 선생님 밖에 없으니까…."김양이 부른 대목은 '춘향가' 중 '십장가'. 목은 많이 잠겼지만, 무대에 주저앉는 발림까지 곁들여 '옹근' 소리를 펼쳤다. 청이 높고 긴장감 있는 소리로 열정적인 무대를 이끌어나갔다는 평가.김양의 첫 스승은 송순섭 명창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로부터 '흥보가'를 배운 뒤 장 명창의 문하생이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그를 지도해왔던 장 명창은 "청이 높고, 끝심이나 뱃심이 좋아 '십장가'를 추천했다"며 "이모(이일주 선생님)도 소리를 들으시더니, 소리 잘 가져간다 하시며 눈물을 보이셔서 자신감이 있었다"고 전했다.실패를 맛보아야 좋은 소리를 키워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장 명창은 칭찬에 인색한 편. 장 명창이 대사습에 첫 출전해 단박에 명창 자리에 오르자, 너무 일찍 됐다고 아쉬워했던 스승 이일주 명창의 마음을 헤아리던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명창이 심사위원에 참여하면서 "'심사회피제도' 로 평균 점수밖에 주지 못해 부담감은 오히려 컸다"며 "지난해엔 순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했는데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김양의 어깨를 다독였다.이것 저것 다 해보고 싶은 나이인 만큼 김양도 소리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중학교 2학년 때 연습 안하고 놀기만 하니까 엄마가 '그럴꺼면 아예 소리 집어치우라'고 하셨어요. 근데 집어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잔소리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잔소리 못하게끔 연습 더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고3이 되면서부터 새벽 연습을 한 게 좋은 결과를 안겨준 것 같다"는 김양은 "여러 가지 목 쓰는 것을 제대로 익혀 자유자재로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말했다.대학 입시를 앞둔 김양의 또다른 목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일. 하지만 김양은 "외도하지 않고 끝까지 정통 판소리를 고집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전주MBC 공개홀에서 열린 '제27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에서 김나영양(한국전통문화고 3년)이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했다.예선과 본선이 함께 치러진 올해 대회는 판소리 32명, 농악 4명, 관악 21명, 현악 37명, 무용 16명, 민요 24명, 가야금 병창 21명 등 8개 부문에 4개팀, 총 327명이 출전, 국악 유망주들이 실력을 겨뤘다.심사위원장을 맡은 정회천 전북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수준은 향상됐지만, 예선과 본선을 함께 치르다 보니 출전자들의 소리가 예선보다 더 쉬거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면이 있어 아쉬웠다"며 "발굴된 학생들이 차세대 명인 명창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등용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판소리-장원 김나영(한국전통문화고3), 차상 장서윤(국악고3), 이진우 (국립전통예술고2) △ 농악-유재혁(천안병천고), 차상 남원학생농악단, 차하 부천 여월초교 △ 관악-장원 김태한(국립국악고2), 차상 김슬기(국립전통예술고3), 차하 장진엽(부산예술고3) △ 무용-김민선(고양예술고3), 차상 이지원(군산중앙여고3), 차하 민희정(브니엘예술고2) △ 가야금 병창-장원 한시형(보성고1), 차상 지유정(국립전통예술고3), 차하 박소윤(전주예술고3) △ 민요-장원 최해정(국립국악고2), 차상 박민주(전통예술고3), 차하 김무빈(국립전통예술고3) △ 현악-장원 문성혜(전남예술고3), 차상 서수진(한국전통문화고3), 차하 송현수(국악고3) △ 어린이 판소리-장원 박지원(전주용흥초6), 차상 라서진(울산신복초5), 차하 이채연(대구복현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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