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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아·태문화유산센터 들어선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무형문화유산을 관리해 나갈 아·태 무형문화유산센터가 전주에 들어선다.지난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5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카테고리 2급 기관인 '유네스코 아·태 무형문화유산센터'를 향후 전주시 동서학동에 들어서게 될 아·태 무형문화유산전당 내에 설치하는 방안이 최종 승인됐다.이로써 우리나라는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카테고리 2급 기관은 유네스코가 재정이나 인력 등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지만, 유네스코의 로고나 후원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문화재청이 지난 2005년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설립을 제안했으며, 4년만에 최종 승인됐다.이곳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무형문화유산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가공해 각국의 전문가와 일반인 등에게 알리면서 보호와 전승 역할을 한다.전주시 동서학동 전북도 산림환경연구소 부지(5만9588㎡)에는 총 753억 원이 투입, 올 1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무형문화유산전당이 들어선다.도 관계자는 "무형문화유산 전당과 함께 센터가 우리지역에 들어섬으로써, 전북지역이 전통문화유산의 본고장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구대식
  • 2009.10.20 23:02

새옷 갈아 입은 '군산대 박물관'

군산지역을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연구해 온 군산대학교 박물관(관장 곽장근)이 19일 군산대 황룡문화관으로 신축이전했다.올 초 신축한 황룡문화관에 자리잡은 군산대 박물관은 1층을 군산대 역사박물관으로 구성, 1947년 군산사범학교로 출발한 이래 군산대의 발전과정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고고, 역사, 예술, 민속 등 군산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는 3층 박물관은 '군산의 선사문화' '군산의 역사와 문화' '군산의 해양민속문화' '전북 동부지역의 대가야' 등 4개의 대주제로 재단장했다.'군산의 선사문화'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군산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정리됐다. 구석기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200여점의 유물은 군산지역과 인접 지역에서 수집된 문화재들. '군산의 역사문화'는 서해에서 발굴된 고려청자와 발굴조사를 통해 수집된 무덤 출토유물, 군산지역과 관련된 고문서, 일제강점기 자료 등이다. '군산의 해양민속문화'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선조들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생활소품과 영상, 고군산군도의 생활모습과 유적지 등이 디오라마로 전시됐다. '전북 동부지역의 대가야'는 군산대 박물관이 10여년 동안 연구해 온 특성화 연구방향으로, 마한 이래 백제문화권에 속했던 동부지역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한 80여점의 유물 및 위성사진이 선보여졌다.개관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10.20 23:02

亞太무형유산센터 전주에 들어선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을 담당할 아태 무형유산센터가 전북 전주에 들어선다. 전북도는 19일 "지난 17일 프랑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35차 총회에서 아태무형유산센터가 카테고리 2급 기관으로 최종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카테고리 2급 기관은 유네스코가 재정이나 인력 등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지만,유네스코 로고 및 후원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2급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40여개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교육분야에서 '아태국제이해교육원'이 있지만 문화유산분야에서는 페루의 '라틴아메리카 무형문화유산보호지역센터'와 중국의 '아태지역 세계유산연수연구원' 등 2곳뿐이다. 아태무형유산센터가 유치됨에 따라 도는 이 센터와 연계한 인프라 구축의 하나로 무형문화유산전당 건립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도는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에 있는 전북도 산림환경연구소 부지(5만9천588㎡)에 753억원을 들여 올해 1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무형문화유산전당을 완공할 계획이다. 공연과 전시, 기ㆍ예능 전승, 교육 및 연수, 시민체험 공간 등을 갖출 이 전당에는 아태무형유산센터의 사무국이 들어가게 된다. 도 관계자는 "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문화유산의 보호나 전승 등과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술자문 등을 수행하는 무형유산의 허브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며 "앞으로 IT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무형유산 보호방법을 제시하면서 국제적 네트워킹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10.19 23:02

[오목대] 장승 - 조상진

장승(長生)은 가장 한국적인 민중문화의 상징이다. 통방울 같은 눈에 주먹코, 뾰족하게 벋친 이빨… 다소 과장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어느 것은 부처님처럼 인자하고, 어느 것은 귀신처럼 험악한 몰골이다. 남근처럼 생기거나 문·무관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장승의 어원은 긴(長) 나무푯말(승)로, 거리와 지명을 표시하거나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마을 입구에서 흔히 볼수 있었으며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등 남녀 한 쌍씩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목장승은 소나무나 밤나무로 만들었으며 비바람에 쉽게 부식되어 2-3년마다 새로 만들어 세워야 했다. 그래서 지금 전해지는 것은 대부분 석장승이다.장승과 관련된 설화나 속담 지명도 많다. 설화로는 장승을 치죄하여 도둑을 잡은'명관치장승설화(名官治長丞說話)'가 있고 판소리로는'변강쇠가'가 유명하다.변강쇠가는 전라도 잡놈인 변강쇠와 평안도 음녀(淫女)인 옹녀의 이야기다. 둘은 지리산에 들어가 살던중 지나친 음행으로 나태해진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다 패어 불을 땐다. 이로 인해 조선 8도 장승들에게 보복을 당한다. 병에 걸려 앓다가 장승처럼 뻣뻣이 서서 죽는다. 신성모독과 장승터부 사상이 깔려 있다.또 송강 정철의 석장승을 소재로 한 시조는 백년해로하는 부부애를 그리고 있다. "길 위에 두 돌부처 벗고 굶고 마주서서/ 바람 비 눈 서리를 맞도록 맞을망정/ 인간에 이별은 모르니 그를 부러워하노라"속담도 여럿 있다. 키가 멋없이 큰 사람을 '구척 장승같다'고 했고 멍청하게 서 있는 사람을'벅수(장승)같이 멍하니 서 있다'고 했다. 또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할때'장승 얼굴에다 분가루 발라놓고 분값 내라고 한다'고 했다.장승백이 등 장승 관련 지명도 전국적으로 771개소나 된다. 전북에는 우리나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9기의 장승중 6기가 있다.이러한 장승은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불쏘시개로 쓰이거나 민속촌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관광지에서 너무 남발되고 있다. 플라스틱 장승까지 나왔다.순창 복흥에서 추령장승축제가 17일까지 열린다. 인근 내장산 단풍과 삼림박물관도 함께 들려보면 좋을듯 하다./조상진 논설위원

  • 문화재·학술
  • 조상진
  • 2009.10.16 23:02

"전주정신은 저항과 풍류의 도시로 집약"

전통문화 중심도시 전주, 유구한 역사에 담겨진 얼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녹아있는 정신은 무엇일까.지역을 대표하는 원로학자와 젊은 연구자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전주가 갖고 있는 정신적 가치를 이야기했다. 14일 오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전주정신 대토론회'는 전주와 전주사람, 그리고 역사를 관통해 온 지역정신을 반추하는 자리였다.기조발제에 나선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은 전주정신을 '저항과 풍류'로 집약했다. 소설가 최명희도 '혼불'에서 전주를 '꽃심을 지닌 저항과 풍류의 도시'라고 했다.장 전 총장은 "전주사람들은 외적의 침입과 왕정의 폭정에 저항해왔다"면서 "또한 반역향으로 몰렸던 한(恨)에서 발생된 판소리를 대사습놀이 풍류잔치로 만들었고, 곰삭은 음식 맛을 즐겼다"고 말했다.임진왜란 때의 의병과 동학농민혁명 등에서 저항정신이 드러났고, 판소리와 음식에서 문화창조적인 전주사람의 풍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토론에 나선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지역의 역사적 특질을 관통하는 전주정신을 '넉넉함과 포용력'으로 풀었고, 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선비정신과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상상력의 세계관에 주목했다.그러나 전주정신을 명료하게 집약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또 단시일내에 정립되지도 않는다. 도시의 역사와 그 역사를 영위했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정리하는 작업은 몇몇 연구자의 주장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주민들의 공감이 필요한 만큼, 시대에 따라 재정립될 수도 있다.'전주정신 정립 방안'은 홍성덕 전주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통해 제시했다.홍교수는 전주정신 정립의 의미를 "다른 도시와 차별화 된 삶의 방식과 시대적 변화의 이면에 흐르는 주민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밝히고 개념화함으로써 '전주는 어떤 도시인가'에 답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했다.그는 "전주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규명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인위적 정제과정을 통해 정립되고 교육되어야 할 '선도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단지 전주정신을 정립하는 단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 새로운 도시전략 개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홍교수는 전주정신을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한 방안으로 △충실한 지역연구 △지역의 역사·문화적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개념화작업 △주제별 백가쟁명식 논의 △대중들과의 소통을 들었다.그는 또 "전주는 패배자의 역사로 기억된다. 끝없는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던 곳간지기의 삶은 소외와 낙후·차별 등 자조적 비판으로 이어졌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대립적 구도보다는 미래 지향적 이미지로서 '상생과 해원(解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토론에서는 이상균 교수(전주대)가 전주정신의 근원을 청동기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송화섭 교수(전주대)는 전주사람들이 어떠한 유형의 온전한 고을을 조성하려 했는지에 천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제10회 전주학 학술대회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전주학 연구사업을 벌이고 있는 전주역사박물관과 전주학추진위원회·전주시가 공동으로 마련했다.

  • 문화재·학술
  • 김종표
  • 2009.10.15 23:02

안중근 의사 발자취 담은 자료집 나온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100주년을 맞아 의사의 발자취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집이 다음달 초 나온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14일 이 단체가 출간을 준비해 온 전체 20권 각 700페이지 분량의 '안중근 자료집' 중 3∼5권을 11월 초 1차로 발간하기로 하고 출판보고회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집에는 의거 후 사형판결을 받을 때까지의 공판기록 전문을 비롯해 안 의사의 행적에 대한 사료들이 중점적으로 실린다. 기념사업회의 편집위원 10여명은 지난 5년간 일본에서 당시 공판기록을 전부 스캔해 온 뒤 이를 현대 일본어로 바꾸고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노력을 했다. 지금까지 모두 9차례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학자들이 발표한 사료 등도 자료집에 일부 포함된다. 사업회는 안 의사가 거사를 결행하기 전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사료들을 묶은 나머지 15~17권가량의 자료집은 내년 3월께 출간할 예정이다. 기념사업회 윤원일 사무총장은 "현재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는 많지만, 학술 연구를 위한 사료집은 거의 나와 있지 않은 상태다. 재판 과정도 부분적으로 설명된 자료들은 있었지만, 공판기록 전문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윤 사무총장은 "진정 안 의사를 기념하는 길은 그의 일생을 단순히 영웅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를 염원했던 그의 사상을 계승ㆍ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자료집이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이번 번역 작업 등은 외부의 도움 없이 내부 연구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으며 기념사업회의 어려운 사정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네티즌들의 모금 운동이 벌어져 한 달 만에 840만원의 후원금이 모이기도 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출판 기념회에 앞서 22일 고려대 박물관 국제회의장에서 고려대 한국사학과 조광 교수, 기념사업회 신운용 책임연구원, 모스크바 국립인문과학대의 타지야나 심비르체바 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족운동 사상과 국제평화'를 주제로 제10회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10.15 23:02

한중일방송프로듀서포럼 14일 인천서 개막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방송 프로듀서들이 각국의 프로그램을 공동 시사하고 시상하는 제9회 한중일방송프로듀서포럼(상임위원장 정수웅, 집행위원장 김덕재)이 14일부터 4일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최된다. 일본 40여 명, 중국 40여 명 등 PD 1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인 이번 포럼에서는 '도시와 인간'을 주제로 각국에서 선정된 작품 12편을 시사,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국내에서는 KBS '환경스페셜-내게 너무 소중한 밤'(연출 김서호), MBC 'MBC스페셜-아무도 묻지 않는 죽음'(연출 김종우)과 'MBC스페셜-물의 여행'(연출 임완호), EBS '다큐프라임-서울은 사랑할 것이 많다'(연출 김훈석) 등 네 편이 출품됐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각각 4편씩 참가했다. 이들 작품에 대해서는 참가 PD들의 투표로 대상 1편, 최우수상 2편, 우수상 3편을 선정해 시상한다. 한중일 방송프로듀서포럼은 2001년 한국과 일본의 PD포럼에서 시작해, 2003년 제주 심포지엄에 중국이 합류한 뒤 해마다 3국을 번갈아 돌며 열리고 있다. MBC 오상진 아나운서와 OBS 김빛이라 아나운서의 사회로 14일 오후 5시30분부터 진행되는 개막식에서는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가 '인간의 조건, 도시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펼친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10.14 23:02

[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⑤왕순(王珣)의 백원첩(伯遠帖)

왕순(王珣·349~400)의 자는 원림(元琳)이며, 왕흡(王洽)의 장남이다. 벼슬은 상서령을 지냈으며 왕헌지와 동시대 인물이다. 「백원첩」은 종형제인 왕목(王穆)에게 보낸 서간으로 백원(伯遠)은 그의 자이다. 지금 우리가 숭앙하고 있는 서품들이 대부분 서간이나 제문 또는 비문들이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에 다룬 왕희지 일가의 서품들이 주로 탑모본이나 판각본인데 비하여, 오늘 소개하는 왕순의 「백원첩」은 왕씨 일가의 필적 중 유일하게 진적본이다. 이처럼 희귀한 진적본임에도 불구하고 왕순의 이름이 송대 이전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동진시대의 명필 중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듯하다. 송나라 휘종조의 「선화서보(宣和書譜)」 권14에 이 「백원첩」을 논하며 왕순의 서에 대해서도 비로소 언급한 것이 보인다. 그 기록을 간단히 살펴보자.왕순은 아버지 흡(洽)과 할아버지 도(導)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예서를 잘 썼고, 행초서에도 능했다. 삼대에 걸쳐 서명이 높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당시에 명필들이 명가에서 출현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속된 비유를 빌리자면 왕대 밭에서 왕대 나는 격이다. 왕순은 당시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귀족의 풍류를 배우며 상서령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대령(大令) 왕헌지에 비해 소령(小令)으로 일컬어지는 왕민(王珉)이 일찍이 비단 네 필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붓을 들고 휘호하였는데 수미가 일관되어 한결같았을 뿐만 아니라 오자도 없었다. 그것을 본 왕헌지가 희롱하며 동생의 글씨는 마치 노새를 타고 준마를 앞지르려 하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왕헌지의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잘 나타난다. 왕순은 이러한 명가의 틈바구니에서 자랐다.이 첩은 후에 청나라 건륭제의 손에 들어갔다. 건륭제는 왕희지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왕헌지의 중추첩(中秋帖)과 함께 이 첩을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서 삼희당(三希堂)이라 이름하였다. 삼희당이란 세 가지 희귀한 보배를 보장(寶藏)한 집이라는 의미이다. 이로써 왕순의 「백원첩」은 이왕의 필적과 더불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천하의 주목을 받았다. 명작은 언젠가 명가의 손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현재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총 5행 69자로 쓰여진 글씨는 유려한 진대의 행서풍을 보이고 있다. 필세는 앙세(仰勢)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거침없는 필력이 돋보인다. 당시 유행한 왕희지류의 서풍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왕희지와는 다른 독자적인 풍격을 이루고 있다. 명나라 동기창은 "왕순의 글씨는 소쇄고담(蕭灑古淡)하며 동진의 풍류가 눈앞에 펼쳐진 듯하다"고 평하였는데 바로 이 첩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이왕(二王)의 필적만을 천하의 보배로 여겨 탑모본과 판각본이 시대를 풍미하였으나, 귀한 진적이 시대를 거치며 떠돌다가 비로소 청나라 건륭제의 소장품이 됨으로써 세상에 보기 드문 명적으로 거듭 태어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일하게 동진의 영화와 풍류를 한 몸에 간직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명작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빛을 본다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뛰어난 서품이다.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09.10.14 23:02

세계 최소 공룡발자국 화석 발견

경남 남해군 창선면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작은 아기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됐다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 천연기념물센터가 12일 말했다. 센터에 따르면 이 화석은 2007년 10월 창선면 주민 박근실씨가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듬해 8월에 진주교대 서승조ㆍ김경수 두 교수가 확인했다. 이 화석은 중국과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소형 수각류(獸脚類) 공룡 발자국 화석이며, 학명으로는 미니사우리푸스(Minisauripus ichnosp. '소형 공룡발자국'이란 뜻)에 해당한다고 센터는 덧붙였다.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 화석 중 가장 작은 발자국은 길이 1.27cm에 폭 1.06cm로 기존 발자국 화석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고 센터는 말했다. 즉, 중국 쓰촨지역 화석(길이 2cm)보다는 약 37%가 작고, 산둥지역 화석(2.5cm)에 비해서는 절반 크기다. 또한, 같은 남해군에서 발견된 소형 공룡 화석(2.3cm)보다는 45%가 작은 것이라고 센터는 설명했다. 현재 세계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된 세계 최소 공룡 발자국은 스코틀랜드 스카이섬(Isle of Skye)에서 발견된 수각류 공룡발자국으로 길이 1.78cm, 폭 1.16cm다. 이번에 발견한 남해군 공룡 발자국 화석은 이보다 약 29%가 작은 셈이다. 김경수 교수는 "발자국 길이로 볼 때, 이 공룡은 키가 최대 10cm를 넘지 않았을 것이며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공룡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보통 발자국 길이로 알 수 있는 공룡 크기는 골반까지 높이다. 소형 수각류 공룡은 발자국 길이의 4.5배가 골반까지의 높이에 해당되므로 이번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 공룡은 골반까지 높이가 5.7cm로 추정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센터는 이번 연구 성과는 지난달말 영국 브리스톨에서 개최된 제69차 세계척추고생물학회에 보고되어 이미 그 학술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았으며, Science News와 New Scientist, Live Science, NPR (National Public Radio) 등 세계적인 과학언론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아 보도됐다고 전했다. 천연기념물센터는 이번 발견 성과를 이곳 전시관을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10.13 23:02

한국동인지문학관 커뮤니티운영활동 전북연수회 열려

문예지의 난립과 출혈 경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신인 작가들이 문단에 대거 진입되면서, 프로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지난 10~11일 모악산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한국동인지문학관(대표 김한창)의 '2009 한국동인지문학관 커뮤니티운영활동 전북연수회'에서 문학평론가 호병탁씨는 '프로작가와 아마추어 작가' 주제 발제를 통해 "과거엔 유력 신문사의 신춘문예 입상이나 일부 문예지의 추천(2~4회)을 거쳐야만 문단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1980년대 말 문예지가 우후죽순으로 발간되면서 작품의 질적 저하가 이뤄졌다"며 "그런 문예지를 만든 사람들이 다름 아닌 기성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뼈아픈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호씨는 이어 등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책임질 만한 문인에 의한 추천제 부활을 비롯해 동인들의 새판 짜기, 전국지를 겨냥한 문예지 발간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최 영 시인은 '한국문학동인의 시대적 배경과 전망' 주제 발제를 통해 "현재는 문단 없는 문단, 문턱 없는 문턱을 넘어 소리없이 퍼지는 사이버문학 시대가 도래했다"며 "문학의 보수와 진보 대립 시대는 가고, 사이버와 비사이버 문단의 대립 시대에 놓여 있는 만큼 문단의 정체성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문학 작가의 수준과 품격을 높여야 한다-문학의 본거지에 다가가기'를 주제로 열린 이번 연수회는 최근 동인지가 기사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품격과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김한창 대표는 "지난해 문학 동인단체의 품격 향상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지만, 이번 연수회에선 등단의 문제점을 짚고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를 우리 스스로 구분지어 보자는데 그 목적을 뒀다"며 "진정한 문학정신이 깃든 문학의 본거지에 다가가는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9.10.12 23:02

숭례문 옆 지하쓰레기장 논란 속 강행

화재로 타 복원 중인 숭례문 옆에 지하 쓰레기집하장을 짓는 공사가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이달 중순 강행될 계획이어서 갈등이 예상된다. 11일 서울 중구에 따르면 서울시와 구는 집하장 부지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문화재나 옛 성곽 유적이 나오지 않은 점을 확인하고 조만간 공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문화재청으로 보낼 계획이다. 숭례문 주변의 시설 공사 허가권을 가진 문화재청은 이미 발굴조사를 조건으로 집하장 건립을 허가한 상태라 이변이 없는 한 이달 17∼19일께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구 관계자는 전했다. 공사 부지는 숭례문에서 40여m 떨어진 남대문시장 앞 공터로 예전부터 시장의 각종 음식물 쓰레기와 폐지 등을 쌓아놓는 옥외 집하장으로 쓰여 미관상 나쁘고 악취도 심했다. 시와 구는 이에 따라 이곳에 지하 7m 깊이의 집하장을 세워 쓰레기를 땅 밑에 거둬들여 환경을 개선하고 지상 420여㎡ 공간은 시민 광장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구 관계자는 "문화재청도 남대문시장의 쓰레기를 처리할 합리적인 방안이란 점을 인정했다"며 "광장을 조성하면 시각적으로도 숭례문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하 집하장도 쓰레기 투입구와 대형 승강기가 지상에 노출되는 만큼 숭례문 주변을 역사ㆍ문화 공간으로 만들 때 걸림돌이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이런 시설을 발굴조사 조건만 달아 허락한 문화재청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다른 부지로 집하장을 옮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지하상가 상인들은 시나 구가 숭례문과 가까운 이 땅을 문화 공간으로 개발하겠다는 기존 방침과 달리 일방적으로 공사를 추진해 이해관계자인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 숭례문 수입상가 지하1층 지주회(점포 소유주 모임) 손도원 회장은 "건축법 45조가 정한 '이해관계자 동의'를 받지 않아 법적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 소송 등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관계자는 "시장 상인들 사이에는 편의성 등의 이유로 해당 시설을 찬성하는 여론이 많다"며 "시장 다른 곳에는 적당한 넓이의 빈터가 없어 위치 변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반박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10.12 23:02

전동성당 순교기념관 기공식

한국천주교 첫 순교성지인 전주 전동성당(국가지정문화재 사적 288호)이 세계적인 성지 지정 노력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전동성당 교육관 이전 건립축성식과 함께 순교자 윤지충(바오르) 권상연(야고보)과 호남의 사도 유항검 일가를 기리는 순교기념관 건립기공식이 11일 낮 12시 30분 김완주 도지사, 최규호 교육감, 국회 신건·장세환 의원, 송하진 전주시장, 이병호 전주교구주교, 전주교구 총대리 유장훈 몬시뇰, 김치산 전 전동성당주임신부를 비롯 천주교인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천주교의 세계적인 성지인 전동성당은 첫 교수형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외 123위를 현재 교황청에 복자(福者) ·성인(聖人 혹은 성녀)으로 추대하는 시복시성을 청원중인 상태. 교황청의 시복시성이 확정되면 순례여행 코스로도 개발돼 전주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전동성당 보수복원 추진위원회는 총 사업비 36억원을 확보 지난 2006년부터 전동성당 보수 및 사적공원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순교기념관 신축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다.전동성당 김용태(베네딕토) 주임신부는"전동성당과 풍남문 경기전 한옥마을 일대의 문화역사 인프라를 바탕으로 동 서양을 막론하는 문화재 사적 공원화를 추진하고 있다"며"전주가 세계적인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민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한편 문화재청은 내년 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78호인 전동성당 사제관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 문화재·학술
  • 윤나네
  • 2009.10.12 23:02

"임기보장 민간 전문가가 국악원장 맡아야"

전북도립국악원(원장 이선형)의 운영이 활성화되려면, 임기가 장기간 보장된 민간 전문가가 도립국악원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9일 오후 1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국악원 운영 활성화 및 발전방향'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박용재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실장은 "지난 23년간 12명의 국악원장이 재임했고, 2001년부터 예술에 대한 전문 식견이 부족한 행정원장이 1년 단위로 전환되면서 내부의 반목이 커졌다"며 "국악원이 발전하려면 민간 전문가를 국악원장으로 영입하고, 책임감을 갖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임기를 장기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어 박 학예연구실장은 "사무국 역시 국악원 재산 관리, 예산 집행를 다루는 관리계 업무는 일반 행정직에 맡긴다 하더라도, 교무계는 예술 행정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전북도립국악원이 전국적으로 내걸 만한 작품을 기획하려면, 최소한 2~3년부터 공연을 준비해 운영할 수 있도록 예산 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민국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원은 "현재로서는 예산에 맞춘 공연을 올릴 수 밖에 없어 공연의 질적 저하가 예상된다"며 "최소한 2년 전엔 공연을 기획하고 연구해 올릴 수 있도록 예산이 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종민 전주문화재단 운영위원장은 "내실있는 공연을 위한 예산 확충도 필요하겠지만, 도립국악원 단원들 스스로가 공연을 통한 자구책 찾기에 골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전북도립국악원이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도립국악원 정상화를 위한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첫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지만, 국악원 내부 진단과 소통을 위한 대안 마련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9.10.12 23:02

[전북의 문화콘텐츠 50] (25)부안 청자

누군가 고려청자의 신비로운 색깔은 가을하늘과 닮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부안으로 취재하러 가는 길, 길가에 가득한 코스모스를 저리도 흔드는 건 바람이 아니라 가슴 저리게 맑은 비취빛 하늘이 아닐까 생각했다. 원래 청자의 비취빛, 즉 비색(翡色)은 옥색(玉色)을 모방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에게 옥은 군자를 상징하는 귀중한 보석이었지만,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게 청자다. 도자기에 옥색을 입혀 대리만족을 얻으려 했던 것.그러나 일찍이 도자기술이 발달되었던 중국조차 비색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도자기의 원료 흙인 태토(胎土)와 유약의 질이 일정한 수준에 오른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형태로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월(越)이라 불렸던, 중국 대륙의 동남부 저장성(浙江省)지방에서 생산된 청자는 '월주청자'라 불리며 명품 도자기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렇지만 중국청자는 진정한 비색을 완성하지 못했다. 중국청자가 비록 중후한 맛은 있으나, 유약이 투명하지 않아 태토의 색감과 문양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청자기술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한반도에 유입되었으되, 고려 도공들은 그 기술을 창조적으로 적용했다. 중국처럼 벽돌가마를 쓰지 않고 흙가마를 썼으며, 가마의 크기도 줄였다. 그리고 불과 흙, 공기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철분이 함유된 백토에 투명한 유약을 바른 뒤 천천히 불을 때면 유약이 녹으면서 철분이 산화된다. 이윽고 유약이 충분히 녹게 되면, 공기의 유입을 완전히 차단한 채 더욱 센 불을 지핀다. 그러면 흙과 섞였던 산소까지 모두 타게 되는데, 이때 비색이 탄생한다. 이처럼 산화와 환원이라는 복잡한 화학공정을 정확하게 거쳐야만 투명한 비색을 머금은 도자기, 중국 북송의 화가 서긍(徐兢)이 극찬했던 그 고려청자가 완성된다. 남송의 시인 태평노인은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을 신비로운 색, 비색(秘色)이라 칭하며 어떤 청자도 견줄 수 없는 천하제일이라고 했다.투명한 비색과 더불어 고려청자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양이다. 파도와 물고기, 앵무새, 연꽃, 학 등 자연에서 따온 소재를 음각과 양각, 인화와 상감 등 다양한 수법으로 문양을 새겼다. 특히 상감청자는 고려청자의 백미다. 먼저 반(半)건조된 그릇 표면에 문양을 음각하고 초벌구이를 한다. 그리고 무늬에 따라 흙으로 메우고 유약을 칠한 뒤 다시 구우면, 문양이 유약을 통해 은은하게 드러나는 상감청자가 된다.청자가마터는 주로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가마터가 발견되는 곳은 전남 해남과 강진, 그리고 전북 부안이다. 해남에서 발굴된 청자가 대부분 품질이 떨어지는데 비해, 강진과 부안에서는 왕실이나 귀족에만 공급되던 질 높은 청자가 많이 발굴되었다. 부안과 강진은 모두 좋은 흙과 물이 풍부하고, 청자를 개성으로 운반하기 쉬운 물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리적 여건이 고려시대 최대 도요지를 형성케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변산반도는 예로부터 수목이 울창하고 좋은 목재가 생산되어, 궁궐이나 사찰의 기둥나무를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풍부한 땔감 역시 도요지로서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일 터. 부안은 청자생산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췄고, 그에 걸맞게 최고의 청자를 생산했다.부안의 가장 큰 특징은 상·중·하급의 청자가 모두 발견되면서도 상감청자가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청자가 대중화되면서 수요계층에 따라 맞춤형으로 생산·보급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더 이상 부안청자요가 관요인지 지방요인지 논쟁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안의 가마터는 줄포만을 중심으로 유촌리와 진서리 등지에 밀집되어 있는데, 특히 유촌리에서 발굴된 최상급 청자들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게 많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자상감인물문매병 복원품, 청자상감용파문대매병 복원품 등이 예다. 청자상감인물문매병은 새겨진 문양이 다른 어떤 청자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것이며, 청자상감용파문대매병은 크기도 크기거니와 왕의 상징인 용과 파도가 상감되어 있어서 권위와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왕실용 청자매병이다. 고려청자의 정점인 상감청자,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명품이 만들어진 곳이 바로 부안이다.이처럼 가치가 높은 부안청자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은 강진청자가 대규모로 먼저 발굴되었고, 이에 맞춰 강진군이 청자박물관을 지으며 장소 마케팅을 선점한 이유가 무엇보다도 크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에 많은 청자가 도굴된 것도 한 몫을 했다. 앞서 언급한 명품청자가 이화여대박물관에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후카다 야수토시라는 일본인이 도굴한 청자의 일부를 이화여대에서 매입했던 것이다.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강진군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관한 지 10년이 막 지난 강진청자박물관은 관리가 부실해 벌써 낡았다. 때마침 총공사비 250억원을 들인 부안청자전시관이 내년 중에 개관된다. 전시관을 근거지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유천리 일대가 명품 청자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오히려 진짜 선진지이며 무서운 경쟁자는 일본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도자기기술을 강제로 수입한 일본은 4세기만에 세계 최고의 도자기강국이 되었다. 부안이, 아니 한국이 따라 잡아야 할 대상은 바로 일본이다. /이경진 문화전문객원기자(시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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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9.10.12 23:02

[전북의 문화콘텐츠 50] 부안청자전시관 내년 봄 개관

부안청자가 중요한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면서 전시관건립이라는 성과를 내기까지, 주요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 부안군청 청자전시관팀 팀장을 맡고 있는 김종운씨다. 동양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종운 팀장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2000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부임하면서 부안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03년부터 청자전시관팀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왔다.운영계획을 묻자 "전시관이라고 하지만 원래 국립박물관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고 말을 뗀다. "지자체 예산만으로는 지속적인 발굴과 개발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에게 국립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지만, 잘 안됐다. 그렇지만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것이 이루어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한다.지금 생각하면 무모할 정도지만, 몇 장짜리 제안서만 들고 정부를 설득해서 전시관건립비를 확보했던 그 뚝심이 그냥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는 12, 13세기에 중국과 일본 뿐 아니라, 몽골, 타이완, 류큐(오키나와), 필리핀, 이란까지 수출되었던 세계 최고의 도자기였다. 그 상감청자를 주로 생산하던 곳이 부안이다." 콘텐츠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이다.문제는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파생 콘텐츠를 개발할 것인가이다. "기본적으로 전시관은 학예실과 도자공방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학예실은 도자 도예지 연구, 유물 보존처리, 전시기획 등을 담당한다. 도자공방은 일종의 체험관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도자기 제작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전문가 양성을 위한 도자학교를 운영할 것이다."더불어 도자마을 조성도 추진된다. 청자, 분청자, 백자 등을 포괄하는 부안도자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한 청자복원을 위한 지속적인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상감청자축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한국에서 아직까지 관주도로 진행된 어떤 예술창작촌도 성공한 예가 없다는 현실과 운영계획이 강진의 그것과 큰 차별성이 없다는 사실이 우려되었다. "급히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5년여 동안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확실한 마스터플랜을 만들 예정이다. 문제는 인력이다. 같은 시설이라도 어떤 인력이 운영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를 것이다. 정말 실력 있는 민간전문가가 결합할 수 있는 운영형태를 고민하고 있다."오롯이 맞은 말씀이다. 청자완(靑磁碗)의 모습으로 디자인되어 내년 봄에 개장될 지상3층, 5609.9m² 규모의 거대한 건물이, 살아있는 명품청자의 기념비가 될지, 아무도 쓰지 않는 낡은 상징이 될지는 어떤 사람이 운영하느냐에 달려있다./이경진 문화전문객원기자(시인·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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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12 23:02

안중근 처형 전 사진 원본 국내 첫 공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안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 처형 전 유언을 남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과 감옥에서 남긴 글씨가 8일 국내에 들어왔다. 이들 사진 27점과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3점은 일본 류코쿠(龍谷)대가 소장품을 대여한 것으로, 국내에는 처음 들어왔다.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도 공개된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은 코트를 입은 가슴에 수형 번호가 적힌 리본을 달고 양손을 가슴에 모아 왼손 약지 단지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면회 온 정근, 공근 두 아우와 프랑스인 신부에게 유언을 남기는 모습도 사진에 담겼으며 호송마차를 타고 형무소에서 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가는 광경도 있다. 의거에 사용한 브라우닝식 연발 권총과 탄환을 찍은 사진도 있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이제까지는 원본을 복제한 희미한 사진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논어의 경구인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불가이구처약, 어질지 않은 자는 곤궁에 처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한다)이라고 적힌 유묵에서는 옥중에서의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다른 논어 경구인 '敏而好學不恥下問'(민이호학불치하문,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도 있으며 나머지 1점은 중용의 경구인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경계하고 삼간다)를 적었다. 유묵은 모두 사형집행 직전인 1910년 3월에 쓴 것으로 약지 손가락의 단지 흔적이 있는 왼손을 눌러 찍은 안 의사의 장인(掌印)이 있다. 이밖에 저격당하기 6일 전 러일전쟁 격전지를 시찰하는 이토 히로부미와 일행의 모습, 이토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승강장에 내려 안중근에게 사살당하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사진도 공개된다. 전시되는 유묵은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 있을 당시 사형수를 교화시키기 위해 안 의사를 만나 교감을 나눴던 일본 정심사(淨心寺) 주지 마쓰다 가이준이 안 의사로부터 받은 것이며, 사진 역시 안 의사 순국 후 마쓰다가 수습해 일본으로 가지고 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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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09 23:02

[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④왕헌지(王獻之)의 십이월첩(十二月帖)

왕희지와 그의 7자 헌지(344~386)는 진대를 대표하는 명서가이다. 서예사에서는 이 두 사람을 아울러 이왕(二王)이라 칭하며, 한편으로는 희지를 대왕(大王) 헌지를 소왕(小王)이라 지칭한다. 헌지의 자는 자경(子敬)이며, 중서령을 지내 왕대령(王大令)이라 부르기도 한다. 희지는 헌지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여 훗날 명서가가 될 것을 예언하고 비결서 「필세론」을 쥐어주며 친히 필법을 전수했다. 헌지가 아버지를 따라 현사들이 모인 난정의 유상곡수연에 참석했을 때의 나이가 불과 9세였으니, 그때 시를 짓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현재 전하는 필적으로는 십이월첩(十二月帖) 압두환첩(鴨頭丸帖) 중추첩(中秋帖) 입구일첩(卄九日帖) 지황탕첩(地黃湯帖) 등의 척독이 있으며, 소해(小楷)로서 낙신부(洛神賦) 13행이 있다. 일부는 탑모본으로 전하며, 순화각첩을 비롯한 여청재첩, 보진재법첩, 괘설당첩 등의 판각본에서 그의 필적을 확인할 수 있다.헌지에게는 유독 아버지와 얽힌 일화가 많다. 「진서」 본전에는 7~8세 무렵부터 글씨를 배웠는데 희지가 몰래 뒤에서 붓을 잡아당겼으나 빠지지 않자 감탄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후에 크게 이름을 날릴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이 보인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집필법을 논할 때면 으레 이 일화를 들먹이며 붓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후기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도 필법전수서를 집필하면서 이 일화를 거론했을 정도이니 그 영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어느 날 희지가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행차에 임박하여 벽에 글씨를 써 놓았는데, 헌지가 몰래 그것을 지우고 얼른 글씨를 써서 바꾸어 놓고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다. 그런데 희지가 돌아와 보고 탄식하며 "내가 갈 때 정말 많이 취했었구나!"라고 하자 헌지가 속으로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의 실력을 아버지와 견주려 했으나 아직 역부족이었다는 일화이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구애됨이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녔던 헌지의 언행은 때로 오만하게 보였다. 당시의 명현 사안(謝安)이 헌지에게 아버지 글씨와 비교하면 어떠하냐고 묻자 당연히 자신이 낫다고 대답하였다. 사안이 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하자, 헌지는 사람들이 어찌 그것을 알겠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사안은 헌지의 편지를 찢어 교정지로 사용하기도 하고, 희지가 보낸 편지에 다시 답장을 써서 보내는 등 헌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헌지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언행을 교정하고자 한 듯하다. 헌지가 아버지보다 낫다고 한 말은 윤리적 비난이 있지만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 했던 점에서 예술가의 기질이 엿보인다. 희지도 그러한 헌지를 마음 속으로 인정하였다.아버지만한 아들 없다고 했던가. 일반적으로 "헌지는 희지만 못하다"는 서평이 정론이지만. 당대에 종요(鍾繇)·장지(張芝)와 더불어 사현(四賢)으로 지칭되는 것을 보면 헌지에게 있어 아버지 희지는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반자 관계였다. 특장인 행초서는 그의 분방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십이월첩'은 북송대 서화가로서 높은 감식안 지닌 미불이 "이른바 일필서로서 天下子敬第一帖이다"라고 극찬하였다. 희지와는 다른 헌지만의 기개가 느껴진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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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9.10.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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