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체육 비사] (31)결산
'더 빨리(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텡 남작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정신을 한마디로 이렇게 규정했다.주어진 여건에 굴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려는 의지와 정열, 그리고 땀방울을 함축적으로 웅변하는 말이다.전북의 체육인들은 쿠베르텡의 말에 부응하듯, 어려운 여건속에서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그 결과 자신은 물론, 전북의 명예를 한 단계, 한 단계 높여왔다.사실 현대적 개념의 전북 체육 역사는 전국체전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프로가 활성화 돼 있고, 각 종목별로 전국단위 대회가 수없이 많이 열리지만, 종전엔 전국체전이 가장 큰 대회였고, 모든 체육인이 한자리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의미있는 것이었다.올해 열리는 전국체전이 92회 대회인 점을 감안하면, 근대적 개념의 전북체육의 역사는 100년 안팎으로 볼 수 있다.공식적으로 첫 전국체전은 일제치하인 1934년 경성운동장에서 시작됐으나, 그때는 각 종목별로 개최시기나 장소가 달랐고, 1949년 서울대회부터 시·도별 종합 순위가 매겨진다.전북은 1963년 제44회 전국대회에서 3위에 오르며 체육강도(强道)로서 위상을 널리 떨치기 시작했다. 첫 전국체전을 유치한 그때부터 전북의 체육이 활성화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이후 1974년 제55회 전국체전때 전북은 개최지인 서울에 이어 2위를 하면서 화려한 꽃을 피웠으나, 산업화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전북의 위상은 서서히 추락해 오늘에 이른다.하지만 전북의 체육인들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전국 무대에 얼굴을 알렸고, 마침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정상에 선 경우가 많았다.본보는 전북체육을 빛내기위해 분전했던 체육인 30명을 선정, 그들의 삶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북체육의 비사를 들어봤다.30대부터 90대를 망라한 이들 체육인들은 선수, 지도자, 체육행정가, 체육담당 교육자 등으로 활동해 오면서 느꼈던 애환을 진솔하게 전했다.이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체육인으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 너무나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이다.과거의 추억은 아름답게 다가온다고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 수없이 어려움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인동초처럼 다시 일어나 저마다 일가를 일군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 체육 일선에서 비껴나 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전북인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고, 후배들이 전북체육 발전을 위해 더욱 힘써줄 것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