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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러시아 낭만음악의 거장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으로 클래식 여행을 떠나는 연주회가 열린다. 전주시립교향악단이 오는 18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제248회 정기연주회 TCHAIKOVSKY SYMPHONY NO.4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을 연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최희준의 객원 지휘로 진행하는 이번 연주회는 라흐마니노프의 14개 독창곡 가운데 가사가 없는 보칼리제로 문을 연다. 보칼리제로 무대를 여는 이유는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관계에 있다.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는 서로 사숙(누구를 마음속으로 본받아 학문이나 기량을 닦음)에 가까운 관계로, 차이코프스키는 만년에 내가 죽고 나서 러시아 음악의 길을 이어갈 젊은 인재로 라흐마니노프를 언급했다. 이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교향곡 4번을 들려준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파경을 맞은 이후의 심경이 담겨있다. 차이코프스키는 1877년 10세 연하의 음악원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했으나 두 달 만에 파경을 맞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때 후원자였던 폰 베크 부인에게 막대한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요양을 취하며 작곡에 몰두했다. 이듬해 교향곡이 탄생했고, 여기에는 그의 심경을 반영한 듯이 운명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과 외로움, 애상 등이 녹아 있다. 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됐으며, 무대에서는 전 악장 모두를 들려준다. 1악장은 시름에 잠김 괴로움, 2악장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느낀 감정, 3악장은 현실과 관계없는 혼란, 4악장은 불행한 운명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 담겨 있다. 이번 공연의 좌석은 S석(1층) 1만원, A석(2층) 7000원으로 운영하며, 나루컬쳐홈페이지와 전화로 예매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길고 긴 터널 끝에, 백신이라는 빛이 보이는 듯하다. 2021년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회복의 해이자 도약의 해가 될 전망이다. 공공미술관 폐쇄와 전시 취소를 겪으며 힘든 한 해를 보냈던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도 새봄에 새싹이 움터 오르듯 희망의 빛줄기를 느끼고 있다. 이와 관련 우진문화재단 청년작가 공모에 당선됐던 미술인들이 모여 결성한 우진청년작가회가 코로나19 극복을 염원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다음 달 14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리는 우진청년작가회 정기전 Jump!. 이번 전시는 회원 38명이 참여해 저마다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인다. 김판묵 작가는 black mirror란 작품을 내놨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변화로 인해 우리는 전보다 더 두꺼운 가면을 쓴 채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숨겨진 표정 뒤, 알 수 없는 감정들은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구멍을 내 깊은 골을 만들었다며 내가 생각하는 당신과 당신이 생각하는 나의 어긋남을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검은 구멍 속에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장영애 작가의 기억의 단서는 인간이 외부와의 소통 과정을 사실이 아닌 감각으로 되새긴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작품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위안이 되는 과거 기억을 상기하고, 다시 감각을 새롭게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동 우진청년작가회장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려움에 부닥쳤던 문화예술인들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보자는 염원을 담아 전시를 기획했다며 관람객들의 마음에도 희망과 활력을 불러일으켰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주민예총(회장 고양곤)이 주최주관하고 전주시가 후원하는 제6회 초록바위진혼제가 19일 오후 5시 30분 풍남문 광장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초록바위진혼제는 조선 말기 아픈 역사 속에 묻힌 망자들의 한을 달래고, 이를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전주 초록바위는 188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 남종삼의 아들과 홍봉주의 아들이 수장된 장소다. 동학 접주인 김개남 장군을 비롯해 동학 교도들이 처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도 백성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공연은 19세기 중엽 조선 백성들이 부세와 수탈을 견디다 못해 각 지역에서 봉기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내용에 따르면, 전주의 한 마을에 사는 백성들은 1862년 전라감영 앞에서 누명을 쓰고 죽은 산돌이에 대한 재심을 요구한다. 시위대는 조세와 부세 감면, 평등권 보장, 성문 출입의 자유를 외치고, 관청은 민초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한다. 관청은 산돌이 사건을 재심키로 하고 조세와 부역 감면, 구휼을 약속한다. 그러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주동자는 태형으로 처벌하고 10년간 출입을 금한다. 주동자들은 전주성을 떠나며 훗날을 기약한다. 무대에서는 수많은 민초들의 분노와 항거를 초록바위에 새기고 담아서 역사와 서사가 흐르는 음악극으로 표현한다. 각 장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기타, 독창, 합창, 춤, 판소리 등이 동원된다. 고양곤 회장은 신분질서와 권력의 횡포에 따른 좌절과 체념을 떨치고 들불처럼 일어난 민초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세종대왕 조선왕조 중 세종대왕은 많은 공적을 남긴 성군이다. 집현전을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글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었고, 정음청을 중심으로 불교 경전을 한글로 번역시켜 그 뜻을 백성과 함께 하고자 했다. 또한 조선 실정에 맞는 농법서인 농사직설(農事直設)을 만들어 농업의 발전을 끌어내고자 했으며, 민족의 음악을 더불어 아끼시고 귀히 여겨 박연으로 하여금 궁중음악인 아악(雅樂)을 정리하게 했다. 이러한 성군의 시절에도 전염병은 있었으니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전염병의 350회 전체 원문 중 10회의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기록은 세종 2년, 6년, 12년~16년, 18년~19년, 25년~26년의 해로 참으로 적지 않은 환난을 겪은 성왕이었다. 세종 2년, 첫 전염병이 돌자 세종은 서울과 지방에 전염병이 성하게 유행한다 하니 소재지 관리로 하여금 성의를 다하여 치료하여 죽은 자가 나지 않도록 하라 하였고, 세종 14년에는 각 도의 감사에게 민간에 전염병이 발생하면 구제하여 치료해주라는 법의 조항을 상고하여 구료(求療)해 살리도록 마음을 쓰라 전지(傳旨)했다. 세종은 즉위 후 전염병이 돌자 온 힘을 기울여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 지시했으며 더불어 법을 만들어 치료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절실히 표명했다. 또한 세종 16년에는 외방(外邦)의 유행. 전염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방문(方文)으로 써서 주지시키도록 하라 명을 내렸는데 이는 각 고을의 관직을 맡은 이들에게 현장에 직접 가서 치료법을 알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백성들에게 향하는 긍휼(矜恤)이 닿는 성군의 마음이었고 당시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지혜로운 성왕의 방법이었다. 세종 18년에는 예조가 간청하기를 전염병으로 죽은 자의 가족을 살피게 쌀과 면포를 주게 하소서 상소하자 이에 그대로 세종은 명을 내려 실행하도록 했으며, 세종 19년에는 황해도에 여러 병이 전염됨을 염려하여 유명한 의원을 보내어 도내 의학생에게 교류하고 구료하는 방법을 견습(見習)시키라 하교하여 성왕의 의지를 전했다. 이처럼 세종은 치료에 국한하지 않았으며 예방을 위한 계획도 만들고 실천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많은 시련을 겪고 있다. 잊고 싶은 과거의 전염병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나타났지만, 우리는 필사(必死)를 다 하여 이겨낼 것이다. 600여 년 전 세종대왕과 선조들처럼 꿋꿋하고 의연하게 말이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 민족은 항상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며 승리했다. 세종실록 56권 세종14년 4월 23일 非獨疾疫者, 流離絶糧之人, 悉訪以啓 <전염병에 걸린 사람뿐 아니라, 유리(流離)하여 양식이 떨어진 사람들도 죄다 찾아서 아뢰라>
전통 산수화는 행하는 그림입니다. 내가 발로 걸으면서 바라본 것을 그리는 거죠. 그래서 철학이 있는 그림입니다. 한국의 산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담아내는 경산 송관엽 화백이 전주한옥마을 문화공간 향교길68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붓을 든 철학자. 그림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부산에서 등 최근 작업한 산수화와 부채 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송 화백은 한국의 산을 소재로 수묵화를 그린다. 그는 한국의 산은 정확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갖춘 화강암 지역에서 나온 한국 산만의 형태가 있다고 했다. 그는 겸재 정선, 소정 변관식과 같은 한국 전통 산수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자신만의 조형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래전, 수묵산수 화가들은 중국의 산수화를 모방해 그렸다. 당시 관행을 깨트린 건 조선 시대 겸재 정선이었다. 그는 조선의 실경을 직접 보고 그리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비로봉도 등을 남겼다. 이후 소정 변관식 선생도 금강산을 비롯한 한국 산하를 사생했다. 송 화백은 한국의 산은 용이 꿈틀거리듯 산과 산이 연결돼 있다. 그러다 보니 골짜기를 수묵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안개다. 안개를 배치해 그에 맞게 산맥이 흘러가도록 한 것이다. 그는 안개를 끌어들임으로써 비울 자리는 비우고, 채울 자리는 채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후 송 화백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흐리게 그린 먼 산이 관념적이고 고전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는 공기 중 물방울의 양에 따라 산의 흐리고 선명한 정도가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 아무리 산이 가까이 있어도 그 자리가 연해지고, 공기 중에 물방울이 없으면 먼 산도 선명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의 산수화에서는 먼 산이 선명하고, 가까운 산이 희미하다. 이는 일반적인 원근법과는 다른 특징이다. 그는 이 조형미를 발견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공간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안개 낀 산을 잘 그린다고 했을 때도 이걸 찾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올봄에 그림을 그리고 썼던 제목이 비로소 봄입니다. 이제 비로소 보인다는 저의 고백입니다. 송관엽 화백은 원광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초대전, 회원전 등 450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화선지와 쉬지 않고 놀아왔다. 전북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수묵화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 계속된다.
삽화 = 정윤성 기자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는 유대인 위령탑이 있다. 1943년 바르샤바의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인 게토에서 나치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섰다가 희생당한 수만 명 유대인들을 기리는 탑이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와 함께 이 위령탑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서독 총리를 지낸 빌리 브란트(1913~1992)가 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사진이다. 당시 서독에서는 브란트의 행위에 공감하는 사람들보다 비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세계의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며 브란트를 격찬했다. 후에 브란트는 헌화를 하는 순간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인간의 말이 소용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이 흑백 사진 한 장이 가져온 결과는 놀라웠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동안 쌓여온 문제들이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것은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닦은 정책, 평화의 현실적 가능성을 넓힌 20세기 평화정치가 빌리 브란트를 우뚝 서게 한 동방정책의 상징적 출발점이기도 했다. 동구 공산권 국가들과의 국교를 회복하고 외교를 적극 추진하면서 동서 화해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동방정책은 결국 1990년 10월 서독과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탄생시키는 동력이 됐다. 동서독 평화공존으로 통일을 이끌어내고 독일형 복지국가를 건설해낸 동방정책을 성공시킨 브란트는 거창한 정책보다는 당장 해결 가능한 문제들에 집중하면서 더 많은 대화와 협상을 신뢰와 변화의 통로로 삼았다. 작은 걸음과 접근을 통한 변화의 가치를 추구했던 그는 사민당을 이끌면서도 합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세웠다. 덕분에 결단력과 추진력 부족이라는 비난을 불러들이기 일쑤였지만 끝까지 의견을 듣고 조정하며 통합해 당의 결속력을 강화했다. 1970년대, 브란트가 이끌었던 사민당은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청년당원이 급격히 늘어났다. 위압적 권위보다는 소통과 조정, 통합의 리더십으로 새로운 정치 발전을 원했던 이들에게 브란트는 상징적 리더이자 희망이었다. 한국 정치에 변화의 바람이 몰려왔다.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청년정치의 부상이 그 증거다. 30대 야당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한편에서는 거창한 구호들이 먼저 나부댄다. 신중함과 진정성이 더 절실해진 시절, 브란트가 지켰던 작은 걸음의 가치가 새삼스러워진다. /김은정 선임기자
작품설명: 합죽선의 바람이 시작되는 전주에서 터를 잡고 선화(扇畵) 작업을 묵묵히 진행하고 있다. 요철이 있는 합죽선 위에 붓질하는 어려운 작업을 기꺼이 즐기면서 묘미를 찾고 있는 것. 오월 단오를 전후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물하고 있다. 미술가 약력: 류명기는 전주부여완주에서 19회 개인전을 했으며, 황소연 미술상을 받았다. 지붕전, 산묵회, 투사와 포착, 비사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 해설=문리(미술학 박사미술평론가)
전라도 정신의 기원을 돌아보는 책이 출간됐다. 전라정신연구원(이사장 전일환, 원장 김동수)이 펴낸 <전라정신>(전라정신연구원) 제2집이다. 책에서는 전라도 정신의 원류를 찾기 위해 도내 지역의 유무형문화, 역사, 예술, 문학을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미륵사지 석탑과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대표되는 백제의 문화, 꽃과 새, 산수가 주를 이루는 백제의 미술,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고 세운 황산대첩비, 후백제의 견훤왕, 조선중기 혁명가 정여립 등 전라도 문화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들이다. 책은 이들을 기반으로 1부 아! 거대한 뿌리, 2부 전라의 숨결, 3부 전북의 비전, 4부 개벽을 꿈꾸며, 5부는 백제여, 후백제여 등으로 나눴다. 김동수 원장은 전라정신연구원은 그간 가려져 있었던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문화유산을 되찾아 그 맥을 이어 선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선자 시인 한선자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현대시)를 출간했다. 이 시집의 전체적인 기조는 우울과 죽음이다. 누구나 살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슬픔, 상처를 시로 오롯이 드러낸다. 표제작인 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는 시집의 특질을 잘 나타낸다. 어둡고 축축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단단하게 죽은 새 한 마리를 오래도록 쓰다듬는다/무동을 타고 놀던 어린 새가 화면 가득 날아다닌다. 이동희 시인은 이를 두고 죽음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본질이라면서 한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정갈한 사유의 세계를 죽음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수 출신인 한선자 시인은 2003년 시집 <내 작은 섬까지 그가 왔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은 <울어라 실컷 울어라>, <불발된 연애들>이 있다. 전북시인상을 수상햇으며 현재 건강보험공단 전주북부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박상재 작가 어디선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하얀 이팝꽃잎들이 눈물처럼 떨어지며 바람에 날렸습니다. (본문 중) 박상재 동화작가가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그림동화책 <할머니의 생각시계>를 출간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근현대사의 주요한 사회적 기억을 소환해 소통하는 나한기획 사회치유 그림책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책은 518민주화운동 때 대학생인 아들 민호를 잃은 영수 외할머니의 트라우마를 그리고 있다. 이팝꽃이 피면 그날의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앓이를 이 세상 모든 영수 외할머니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엄마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무덤을 찾았습니다. 바람결에 눈물도 메말라갔습니다. (본문 중) 박 작가는 영수 외할머니의 정신적 상처는 우리 모두의 상처라며 그 깊은 상처가 하루빨리 치유되고 광주의 민주정신이 바르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화를 썼다고 설명했다. 장수에서 태어난 박상재 동화작가는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아동문학전문지 <아동문학사조>를 발행하고 있다.
조혜경 시인 커피를 쏟아도 우린 웃지 않지/ 반점이 나타난 바나나 앞에서/ 향기가 왜 슬플까?// 아무 말 하지 말자/ 우는 여자의 속눈썹과 아름다운/ 驛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 일부) 조혜경 시인이 첫 시집 <그 오렌지만이 유일한 빛이었네>를 펴냈다. 시집에는 다채로운 언어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본 44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그는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곤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으로 소리 이미지에 색깔을 입혀낸다. 이 소리는 무수한 내면의 파열음(소음)이다. 얼굴에 물감을 묻혀요 튜브를 짜며 수북해지는 껍질들/ 하얀 이불 위에서만 엎드려 울 거예요/ 내 손은 지저분해요/ 에왈라 아나 야쓰 내 손은 지저분해요 (에왈라 아나 야쓰 일부) 감각의 전이를 통해 감각의 겹침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방식은 시인의 내면이 중층의 비밀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겹이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 내면 전체가 공명하면서 소리는 증폭된다. 이 투명한 소리의 분출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차용한 방식이 채색이다. 특히 그는 무의식의 세계, 무지의 세계, 미몽의 세계로부터 의식의 세계, 기지의 세계, 각몽의 세계로 이행하는 것을 껍질 벗기기로 형상화한다. 시에서 자주 들리는 파열음(소음)은 껍질을 깨트리는 소리인 것이다. 고종석 문학비평가는 조혜경 시인의 시에는 명징한 불투명성이 있고, 그 명징한 불투명성이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시인은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순천향대와 동 대학원,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간호학을 전공했고 현재 전주대 교수로 있다. 2012년 시 레위기 저녁으로 서정시학 신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던져진다. 태양계 끝에서 바라보면 해쓱한 푸른 점에 맡겨진다. 첫 울음은 이 땅에서 수행해야 할 미션을 말하고 있지만 들을 수 없다.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언제든 아픔이 끓는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세포에 감겨있는 디엔에이를 풀면 명왕성(소행성 134340)까지 다다른다. 그 속에 해야 할 일과 잘 하는 일이 담겨있다. 어떤 에이아이도 모퉁이를 돌아가는 사랑의 아련한 그림자에 가슴 뛰지 않는다. 1922년 6월 21일,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에이모 토울스의 두 번째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름을 말하라는 비신스키 검사에게 백작은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 쓸데 없는 그런 작위와 칭호들은 얼마든지 가져도 좋소라고 말하는 검사에게서 백작의 나락을 읽을 수 있다. 백작은 죽을 때까지 메트로폴 호텔을 나올 수 없다. 한 걸음이라도 호텔 밖으로 나간다면 총살될 것이다. 백작은 학문과 사회생활로 다져진 품격을 지니고 있고, 문학를 사랑하며,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진 그야말로 신사다. 자유로움을 가지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겪어봐야 한다는 듯 그곳은 쓰라린 일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해야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날개로 난다.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 입에 갈대를 물고 나는 기러기처럼 지혜를 다해 허허로운 들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고, 꽃을 피운다. 백작은 호텔에서 만나게 될 니나와 그녀의 딸 소피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경제적 숙명, 문화, 지식, 심리, 사회, 신체, 언어의 감옥을 넘는다. 깃펜으로 펜싱을 하는 백작은 우리 모두에게서 장점만을 찾아내고자 하는 사나이다. 소피야가 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하더라도 음 하나하나를 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현명한 지혜를 긍정적인 자세에서 찾으려 한다. 백작은 똑바른 자세는 침착성과 참여 정신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준다며, 6미터 되는 방에서 50킬로미터를 걷는다.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궁정 만찬 모임에 갔을 때 그를 헬레네 옆에 앉히지 않았더라면 트로이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자리 배치의 중요성을 말한다. 백작은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온도계의 미세한 변화에 의해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는 한 번도 일정을 정해놓고 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점심 식사 전에 온전히 충실한 시간을 보냈으므로 오후에는 현명한 자유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믿었으며,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에 몰입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신사였다. 사람을 보는 그의 눈은 버들가지의 눈을 닮았다.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첫인상은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칵테일의 재료는 각자의 농담에 웃어줄 수 있고 각자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그리고 대화 중에 서로에게 소리 지르지 않는 두 가지로 한정되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안전하게 키움으로써 목적 있는 삶을, 그리고 신이 허락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하고, 우려를 표명한 다음에는 세 발짝 물러서야 한다. 우정이나 유무 보존의 법칙을 말하기도 한다. 우정의 지속 기간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베토벤을 귀먹게 만들고 모네를 눈멀게 만든 바로 그 신이 우리에게 준 것을 나중에 와서 반드시 회수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경제와 심리에 우레를 친다. 백작이 속삭인다. 목욕부터 해. 뭘 좀 먹고 와인도 한잔하라고. 그리고 밤새 푹 자도록 해.
허강무 교수 우리 국민 자산의 76.1%가 부동산이다. 재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일컬어 부동산공화국이라고 까지 한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에 관한 정책은 국민적 관심과 갈등의 연속이고, 무수히 많은 부동산 정책과 입법이 추진될 때마다 이해득실에 따라 헌법논쟁에 휘말리곤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부르는 부동산에 대한 현안들에 대해 헌법적 판단들을 담아낸 책이 출간돼 이목을 끈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인 전북대학교 허강무 교수(공공인재학부)가 3년 간의 집필 끝에 최근 펴낸 『부동산헌법, 부동산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의 사회적 합의』(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가 그 책이다. 책은 부동산에 관한 헌법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개정되었는지, 외국의 부동산에 관한 헌법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우리나라의 부동산법제는 어떻게 체계화되고 구성되어 있는지, 부동산정책은 어떤 헌법 원리와 기준으로 만들어져 입법되는 지, 부동산정책은 어떤 기준으로 위헌과 합헌, 합법과 위법이 결정되고 판단되는 지, 2000년대 이후 부동산을 둘러싼 경제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 부동산 관련 15개 헌법재판소 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 책 '부동산 헌법' 허 교수는 책에서 부동산헌법은 매우 낯선 용어이고, 우리는 부동산공법이나 토지공개념이라는 용어에는 익숙해도 부동산헌법이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부동산 시장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부동산헌법은 형용모순과 같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인식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헌법이라는 제목으로 집필한 이유는 헌법이 부동산정책의 등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도 한다. 허 교수는 이 책은 최대한 주관적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우리 헌법과 부동산 입법정책에 대해 헌법 최고 판단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분석, 부동산 시장에 국가가 언제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가감 없이 소개했다며 부동산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필했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법학자인 허 교수는 (재)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을 역임하고 한국토지공법학회 학술상과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술상을 수상했다.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비상임위원, 국회 입법지원단 입법지원 위원(국토교통 분야), 새만금개발청 예산심의 위원, 한국농어촌공사 농지포럼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국토교통부, 농림부, 법무부 등의 부동산정책 관련 연구 및 정책자문 등에 참여하고 있다.
10년의 세월 동안 매월 한 번씩 동요나 민요를 부르면서 향유하고 즐기는 모임이 있다. 소리샘이란 노래모임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맑은 소리를 내고 싶다는 의지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소리가 우러나오는 샘이란 의미도 담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모임에서는 주로 클레멘타인, 로렐라이 언덕 등 동심을 느끼게끔 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명화 부회장(63)은 동요를 비롯해 회원들이 요청한 곡을 부르기도 한다며 노사연의 만남과 같은 대중가요도 이따금씩 부른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하나 더 있다. 전북에 거주하는 60대~80대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출신은 예술가, 수필가, 사진가, 언론인 등 다양하다. 김명곤 회장(83)은 일반적인 직장을 다녔던 분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며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아와서 노년을 즐기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첫 시작은 지난 2011년 김 회장이 지인들과 만나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동요를 하는 동아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부터였다. 그러면서 서로 인연이 닿아있던 사람들이 모였고, 어느 덧 회원수가 20명이 됐다. 반주자와 지휘자도 섭외했다. 이 부회장은 반주는 회장님 지인분이 해주셨고, 지휘자는 정읍의 한 성당에서 성가대를 지휘하셨던 분이 맡아주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휘자는 우리가 음을 잘못 낼 경우 일일이 수정해줬다고 부연했다. 노래를 부르는 장소는 폐교가 된 정읍시 옹동면 산성초등학교를 활용했다. 모임에서 직접 폐교를 인수했고,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김 회장은 초등학교에서 동요를 부를 때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참 행복했다며 연령과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매도했고, 이후 전주에 있는 오페라단 사무실을 밀려 매월 마지막 주 주말에 한 번씩 연습을 하고 있다. 지휘자도 다시 섭외했다. 김 회장은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며동요에 대한 느낌을 살릴수 있는 공간을 다시 확보하고 싶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창단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회원수가 30명~40명 정도 늘어나, 소트라노 알토, 테너 등 파트를 나눠 전문적으로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김 회장은 회원수가 늘어나고 어느 정도 전문성이 갖춰진다면, 각종 요양시설을 찾아가 공연을 하며 노래봉사를 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동요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파란마음으로 물들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모임에 참여하길 희망하는 사람은 김명곤 회장과 이명화 부회장에게 문의하면 된다.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주구묘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백제문화와 뚜렷이 구분되는 마한문화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고학적인 자료이다.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처음 주구묘가 발견되었을 당시 그 연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주구 내에서 출토되었던 유물 가운데에서 토기 제작할 때 단단하게 하기위해 두드린 무늬가 찍힌 타날문토기에 대한 연대를 기원후 3세기로 설정하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 견해였기 때문에 주구묘의 연대 역시 3세기를 상한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보령 관창리유적의 보고서에서는 주구 내에서 출토되는 토기를 분석한 결과,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문화와 후기에 해당하는 점토대토기문화 집단과 관련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 주구묘의 축조연대를 기원전 3~2세기로 설정했지만, 학계 다수의 연대관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일본 야요이 시대의 보편적 묘제인 주구묘는 축조수법이나 그 형태에 있어서 한국에서 발견된 주구묘와 유사한데, 그 출현연대를 야요이 전기 곧 기원전 3세기에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주구묘의 기원은 북부 구주에서 벼농사의 기원과 같은 것으로 긴끼(近畿)지역에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농경에서 논의 구획에서 비롯된 묘제로서 각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한편 진시황의 지시로 불노초를 구하러 바다를 건너온 서복(徐福) 전설과 관련지어 중국 진(秦)묘제인 위구묘(圍溝墓)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한국 주구묘의 상한연대를 기원후 3세기로 설정하게 되면 일본 야요이시대의 주구묘와 연대차는 물론, 그 원류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보령 관창리유적 발견이후 익산 영등동, 서천 당정리 등 서해안 일대에서 급증하는 주구묘 자료는 일본의 주구묘 원류에 대해 재고해야 된다는 의견이 먼저 일본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관창리 주구묘의 연대를 한국 청동시대 중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며, 특히 긴끼지방의 효고현 히가시무코(兵庫縣 東武庫)에서 출토된 송국리형 토기가 일본 주구묘 기원의 한반도설의 적극적인 증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에서 긴끼지방으로 이주해온 도래인에 의해 직접 전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주구묘의 연대를 청동기시대 중기까지 소급할 수 자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일본 고고학자들의 주구묘에 대한 연구는 매우 각별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을 상징하는 고유의 고대묘제인 전방후원분의 원조가 바로 이 주구묘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일본 학계의 정설이다. 곧 일본 고대사회의 변화추이에 따라 주구묘는 분구묘로 발전되고, 분구묘는 다시 전방후원분으로 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며,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긍지 또한 매우 강했음도 알 수 있다. 보령 관창리 유적을 직접 발굴 조사한 고려대학교 이홍종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이 유적 조사이후 일본 방형주구묘의 저명한 연구자 한명이 주구묘에 관한 연구에서 절필을 선언할 정도로 마한 주구묘의 발견은 일본 학계에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다를 알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우리들의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John F. Kennedy) 바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해양문학 발전을 위해 제정된 제15회 바다문학상 시상식이 15일 오후 4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전북일보사와 ㈜국제해운이 주최하고 바다문학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올해 바다문학상은 대상(시)에 김숙영 씨, 본상(수필)에 김주선 씨가 선정됐다. 찾아드리는 상은 전병윤 시인에게 돌아갔다. 이날 시상식에는 서창훈 전북일보사 회장, 윤석정 ㈜국제해운 대표이사, 김남곤 바다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홍성준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나해수 진안부군수, 김광수 진안군의회 의장,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서정환 신아출판사 사장, 김영 전북문인협회장, 김현조 전북시인협회장 등 지역 인사와 문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은 특별히 서창훈 회장, 홍성준 청장, 소재호 회장이 환경보호 바다사랑운동 선언문에 서명하고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서창훈 전북일보 회장은 바다문학상은 청장년기를 바다에 헌신한 윤석정 사장이 바다의 소중함을 문학적으로 일깨우기 위해 귀한 뜻을 세워 제정한 상이라며 바다문학상을 공동 주최하며 바다가 주는 문학적예술적 영감이 바다의 깊이나 넓이만큼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윤석정 국제해운 대표이사(전북일보 사장)는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한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바다는 우리의 미래이면서 희망이라며 문학을 통해 바다를 가까이하고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바다사랑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김숙영 씨는 해양수산부 장관상과 상금 300만원, 순금 10돈, 본상 수상자인 김주선 씨는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김숙영 씨는 설렘과 기쁨을 가득 안고 서있는 사람이 제가 맞는지 꿈만 같다며 지치거나 자만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소멸하지 않는 시, 미학적 흔적을 남기는 시인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륙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주선 씨는 어릴 적 보리밭을 가리키며 바다라고 설명해 주신 부모님의 문학적 DNA 물려받은 듯하다. 문학상 수상은 또 다른 시작임을 알기에 작가의 윤리적 임무와 책임을 갖겠다고 말했다. 찾아드리는 상을 받은 전병윤 시인은 해양수산부 장관 표창장과 순금 10돈을 받았다. 아흔을 바라보는 전 시인은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상을 받아 과분하다며 인류 문명, 자원의 보고인 바다가 아파하고 있다. 문인들이 앞장서서 바다를 더 깊게 사랑하고 더 짙게 노래하고 공존하면서 함께 빛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 바다문학상 공모에는 시 부문 1092편, 수필 부문 204편이 접수돼 해마다 높아지는 관심과 인기를 실감케 했다.
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을 부르는 말 명장(名匠). 민속목조각장, 소목장, 선자장, 악기장 등 한 분야에서 명장으로 불리는 전북지역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와 전통공예 장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주 교동미술관 명인명장 초대전 현존하는 가치를 통해서다. 오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시대 변화 속에서도 뿌리를 잃지 않고 전통 무형유산의 맥을 이어온 명인명장 20명이 함께한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병진 소목장,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김동식 선자장, 전북무형문화재 제10호 방화선 선자장, 전북무형문화재 제12호 최종순 악기장, 전북무형문화재 제12호 고수환 악기장,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박강용 옻칠장, 전북무형문화재 제29호 장동국 사기장, 전북무형문화재 제31호 유배근 한지발장, 전북무형문화재 제45호 윤규상 우산장, 전북무형문화재 제50호 최대규 전주나전장, 전북무형문화재 제53호 안시성 옹기장, 전북무형문화재 제58호 김종연 민속목조각장, 전북무형문화재 제60호 김혜미자 색지장, 전북무형문화재 제61호 김선애 지승장이 참여한다. 또 전통공예 장인인 전경례(전통자수), 장정희(침선), 박순자(침선), 김선자(매듭), 김정화(칠보), 이병로(도자기) 작가도 초대했다. 김완순 교동미술관장은 무형유산은 형(形)이 없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유형유산과 달리 후대에 전승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 있는 예술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의 신념과 역할이 중대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이번 전시가 전북 무형유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그 중요성에 공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찬 시인 시인은 1948년 11월 4일, 전북 정읍시 장명동 74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박정규, 어머니 정혜상의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시인이 태어난 마을은 박 씨 집성촌으로 향교와 기와집이 즐비하게 이어진 동네로 수도곶이라 불리기도 했다. 성황산 기슭에는 대숲 바람이 일렁거렸고 고개를 들면 내장산 서래봉이 바라다보이는 곳이었다. 시인은 정읍동초등학교, 정읍중학교, 서울 동북고등학교를 거쳐 1974년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강원도의 최전방 양구에서 ROTC 육군 중위로 복무하였다. 전역 후에는 시계산업을 하는 ㈜미광에 입사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가며 시계 유통에 관여했다. 1978년에는 경성고의 교사 김매심 씨와 6개월 정도 열애 끝에 결혼했으며, 1979년에는 갓 태어난 첫딸의 이름을 딴 주식회사 세의를 세울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1026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거치면서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는 화곡동 산동네로 전셋집을 얻어 이사하였다. 시인에게 화곡동 시절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시를 배우기 위해서 동아일보 문화센터에서 시 공부를 시작했고, 수강생들과 함께 〈동강시〉동인회를 구성하여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1983년 시 전문지 『시문학』에 6개월여에 걸쳐 추천 완료되었다. 그의 첫 시집 《수도곶 이야기》에서는 시인에게 각인된 유소년기의 원체험을 서정적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 후, 실업자 시절 쓴 화곡동 연작시는 소박했던 달동네의 삶이 잘 그려졌다. 업가 業家가 업자 業者가 되어 돌아오던 날 아내는 배가 아팠다. 딱총 사건 이후 경제는 낙엽처럼 떨어져 가 주머니 속엔 부스러진 잎사귀만 가득 멋쩍게 대문을 들어서는 내게 핼쑥한 얼굴로 멋쩍게 맞다가 아내는 배가 아팠다. 초여름 낮의 길고 긴 병실 앞에서 오락가락 풋내나는 담배만 맥없이 사루고 공주가 더 예쁘죠 담당 의사의 목소리가 한 귀에서 한 귀로 바람처럼 스쳐 간다 병실 창밖으로 공을 굴리는 아이들 시간도 소리 없이 굴러가고 잠을 깬 아내의 충혈된 눈에서도 소리 없이 굴러내리는 것 괜찮아 나는 딸이 훨씬 좋으니까 -나의 참말에 손을 내미는 아내야 나는 안다. 당신의 배보다 지금은 당신의 가슴이 훨씬 더 아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화곡동 1-반전 反轉」 전문 시인은 5년간의 실업자 생활을 마감하고 1885년에 《스포츠서울》 창간 기자로 입사하면서 새로운 삶을 펼친다. 그는 문학 담당의 베테랑 기자가 되었으며, 스포츠 신문으로는 보기 드물게 〈시가 있는 수요일〉이라는 지면을 만들어서 독자들과 시로 소통하였다. 시인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실크로드를 답사하였다. 내 젊은 날의 슬픔은, 짐짓, 인생을 모두 알아버렸다는 것 다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것 세상모르고 살아온 어느 불혹의 밤 불현듯 떠오르는 그 밤의 강 출렁이는 빛 물결에서 꿈결처럼 보았네 산은 산, 그 안에 담겼을 이치를, 온갖 은유를 그러나 비유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안개 속에서 커 보이던 나무 하나, 안개 걷히자 앙상한 뼈만 남아 죽어 있네 -「밤의 강가에서 」 전문 이 여행은 망막한 광야와 폐허와 모래바람 속에서 원초적 그리움과 우리네 삶의 본디를 생각하게 하였다. 구름과 연기처럼 마음의 행로를 따라 구름처럼 연기처럼 떠돌면서 시인은 삶과 존재의 본질을 궁구하였다. 이처럼 누구보다도 질박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시인에게 간암이라는 복병은 참으로 냉혹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였고, 희끗희끗해져 가는 머리카락 한 자락을 초록으로 물들인 초록 머리를 애교스럽게 꾸미고 살았다 한다. 간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달 만에 통증이 심해져서야 입원한 그는 마지막 순간에 숨을 모아 사랑하는 딸 세의야, 세연아 사랑해라는 입 모양을 지으며 숨을 놓았다고 한다. 이제, 썩어 없어질 육신을 위해 저 나무를 자를 수는 없다. 곱게 자라는 풀들을 파헤칠 수는 없다 살아서 힘겹게 내 자리를 마련했듯 지금 펄펄 살아서 꽃 피우는 나무와 풀들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썩어 없어질 육신은 불살라 산에 들에 강에 뿌리고, 고시레 새들이, 고기들이 섭취한 배설물로 자연스레 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둥둥 떠도는 흰 구름으로, 연기로 나의 흔적을 지워나가야 한다. -박찬 「화장(火葬)」의 전문 시인은 병원에 가기 전에 두 딸을 불러 엄마 외롭게 하지 마라. 아빠 마이너스통장 정리 좀 부탁하고 말러의 교향곡을 들려주렴. 사랑해 라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2007년 『시인시각』 봄호에는 누가 봐도 절명시라는 것을 알게 하는 「소리를 찾아서 서래봉 가는 길」을 남겼다. 지루하고 막막한 날이 끝나간다 그 끝에서 붉게 타는 칸나여, 안녕! 다시 못 볼 푸른 하늘이여, 너도 안녕. 박찬 시인 평전을 쓴 이경철은 시인은 병중에도 병마와 싸우지 않고, 그 비극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삶과 문학을 갈무리했다. 채움보다는 비움, 팽팽한 긴장의 대칭보다는 느슨한 비대칭의 구도, 평화롭고 여유로우며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는 인식을 생활철학으로 내면화했다라고 평가했다. 박찬 시인은 『수도곶 이야기』(1985)와 『그리운 잠』(1989), 『화염길』(1995) 등 세 권의 시집과 유고시집 『외로운 식량』(2008)을 남겼다. 참고 : 이경철 『시인 박찬 평전』(2021, 계간문예)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숲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벽면 가득 신록의 푸르름이 눈부시다. 관객들은 그림 속 순수하고 신비로운 흰 사슴과 눈 맞추며 잠시나마 안식과 위로를 경험한다. 류재현 작가가 완주 유휴열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숲을 주제로 신록의 푸르름을 화폭에 담아냈던 그가 이번엔 강에 주목했다. 2019년 미뤄뒀던 어깨 수술을 한 뒤, 지난해 섬진강의 천담과 구담을 모티브로 작업하기 시작한 결과물이다. 그의 화실 주변 완주 구이저수지도 그림으로 옮겨졌다. 작가는 강 너머에 있는 풍경을 그렸다. 전시 제목도 Over There이다. 전부 실경을 모티브로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그림은 아니다. 강 너머는 가고 싶고, 느끼고 싶은 동경의 세상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붓질로 사실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작품은 유화이지만, 유화 붓 대신 한국화 붓을 사용한다. 작고 부드러운 모필로 한국화에서 난을 치듯이 긋고, 점을 찍는다. 바람결에 떨리는 녹색, 연두색 풀들의 부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현대인들은 자연을 동경한다. 실제로는 자연 속에 살고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나와는 거리가 있는 다른 세상이 돼버렸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늘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가끔 겨울의 설경 작업도 하지만, 작가는 주로 봄과 여름 사이 신록으로 가득찬 숲을 그린다. 6월이 지나면 숲의 색이 너무 진해져 맑고 상쾌한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새싹이 움트는 계절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근원적 생명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작품에는 흰 사슴이 등장한다. 그가 공허함과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발견한 존재로 작가의 발현이자, 관객 이입의 대상이다. 짙고 옅은 초록 숲속, 흰 사슴은 바쁘게 몰아치던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한다. 전주 출신인 류재현 작가는 전북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7년간 미술 교사로 근무했다. 2013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서울과 전주,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31일까지 계속된다.
유채와 단청물감, 아크릴, 파스텔로 실험예술을 구현한 작품전이 찾아온다. 전시회는 정형화한 형체를 그리는 구상화 대신 예술가의 세계관과 개념을 드러낸 추상화로 채워진다. AX는 오는 18일~24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제3회 AX그룹전을 연다고 14일 밝혔다. AX는 지난해 장석원 작가(전 전북도립미술관장)를 주축으로 전북 지역 예술가들이 예술의 상품화와 제도적 틀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기치를 들며 결성했다. 이번 전시에는 박성수이가립차유림탁소연김성민김춘선조헌이재승한봉림장석원 작가가 참여한다. 박성수는 높이가 2m나 되는 한지에 먹으로 추상적 드로잉을 구현했다. 그는 무엇을 묘사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얼굴 형태만 담았다. 자신의 본질을 직접 표현하려는 의도다. 작품명은 자화상이다. 이가립은 높이 1m가 넘는 종이에 소녀의 얼굴을 그려 넣은 투명소녀를 선보인다. 작품을 보면 오일파스텔로 예리하게 긁어낸 흔적이 보인다.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내는 작가만의 작화법이다. 최근에는 미리 종이를 적어 접힌 자국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차유림 Woman-Cyborg 차유림은 아크릴을 이용해 한지에 인간의 신체를 그린 뒤, 전반을 칼로 파내 비늘처럼 보이도록 묘사했다. 이와 함께 잘린 한 팔에 사이보그의 팔을 3D로 결합시키는 독특한 구도를 만들었다. 스스로를 치유하며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작품명은 Woman-Cyborg이다. 탁소연 '불안....보이지 않는' 탁소연은 먹물이 번져 퍼지게 하는 화법을 통해 가장 사적이고 편안한 공간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작품명은 불안....보이지 않는으로, 과거에 인체를 표현하면서 대중성의 존재를 공허하게 표현한 방식과는 다르다. 이는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정서적 변화이기도 하고, 조밀한 내면이 표현이기도 하다. 김성민은 작품 묵(默)으로 갯벌의 황량하고 고독한 정경을 드러냈다. 그는 폭 162㎝의 화면에 시원한 붓 터치를 선보인다. 김춘선은 제목 The wild life에서 시사하듯 간단치 않은 삶 속에서의 진실 규명과 음악적인 감성을 자유로운 붓질과 흘림으로 표현한다. 조헌은 40호 사이즈의 판지에 상추를 그렸는데, 상추가 갖는 생명력과 존재감을 강조한다. 이재승은 심상-명상을 통해 한지와 먹으로 현대적인 추상성을 구현했다. 작품에서는 중첩된 원형의 구조 안에 텅 비거나 조밀하게 구성된 계서적인 질서를 드러낸다. 한봉림은 영원한 운동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단청 물감을 흩뿌리는 드로잉으로 생명의 역동성을 드러냈다. 장석원 '바보바보' 장석원은 바보 바보 페인팅으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인간상을 표현한다. 기법은 낙서에 가깝고 본질은 독자적인 회화성이다. AX 소속 작가들은 우리는 삶과 사회성을 주시하면서 늘 깨어있는 예술가의 길을 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전북 미술사에 사회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예술로 표현하려 했던 흔적이 남길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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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 향토인재 장학생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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