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여 어 여 어허루 상사뒤여~" 농요 부르며 논농사 시름 달래다…모내기철 풍속, 들노래
지난 오월 첫 주에 지리산 둘레길에 다녀왔다. 남원 산내면에서 시작하여, 인접해 있지만 도 경계를 지나 경남 마천에 이르는 코스였다. 이 길은 어느 정도 진입하면 나타나는 올망졸망한 다랭이논과, 그 너머에 펼쳐지는 천왕봉, 제석봉, 두리봉 등 고래등같은 지리산 능선을 조망하면서 걷는 풍광이 압권이다. 이때가 절기로는 입하(5. 5)였다, 그런데 그곳 다랭이논들은 논물이 찰랑찰랑 넘치고, 벌써 모를 심고 있었다. 아무리 해발이 높은 산골이고 비닐하우스로 모를 키운다지만, 과거에 비하면 산골로는 한 달이, 들녘에 비하면 한 달하고도 보름 정도가 빠른 셈이다. 전통농경으로 산골은 곡우(4. 20) 때 볍씨를 담그고, 망종(6. 5) '전삼일 후삼일'이 모심는 적기라고 했다. 반면에 들녘은 하지(6. 21) '전닷세 후닷세'를 적기로 했다. 산골 사람들의 말에 "보리는 들녘에서 먹어 들어오고 나락은 산중에서 먹어 나간다."고 한다. 즉 산골은 모를 일찍 심고 일찍 거둔다는 말이다. 이제 모심는 철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은 전통농경 과정에서 불렀던 '들노래'에 관한 내용인데, 그 중에서도 요즘 절기에 즈음하여 '모심는소리'가 주인공이다. 들노래는 '농요'라고도 하고, '들소리'나 '논농사민요'라고도 한다.△"보리는 들녘에서 먹어 들어오고 나락은 산중에서 먹어 나간다."들노래를 부르며 모심던 시절, 모심는 적기는 지역에 따라 망종 전삼일 후삼일, 또는 하지 전닷세 후닷세라고 말한 바 있다. 시절 따라 농사짓던 사람들은 이렇듯 절기에 맞춘 표현이 있는가 하면, 일종의 알람시계같이 일머리를 알리는 알람식물, 알람동물이 있다. "참쭉나무 이파리가 참새만 하면 못자리할 때고, 감꽃 피었다 지면 모심을 때다.", "개구리 울면 못자리 하고, 뜸부기 울면 모심는다.", "찔레꽃 피면 모심고, 찔레꽃 세 번 비 맞으면 풍년든다."찔레꽃은 모내기철에 피기 시작하여 약 한 달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모심고 난 후, 꽃이 피어 있는 동안 세 차례나 비가 온다는 것은 물이 가장 필요한 생육기에 충분한 물이 공급된다는 것이니 풍년농사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그들의 오랜 경험칙에 의한 지표이자 속신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천수답 논이 대부분인지라 모심을 철에 하늘만 바라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일도 허다했다. 오죽하면 "사월에는 소발자국에 물만 괴어도 막아야 한다,"고 했겠는가. 그러나 한량없이 비를 기다리며 모내기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밤송이를 겨드랑이 찡궈봐서 안아프면 심궈도 된다."거나, "대추를 콧구멍에 찡궈봐서 아직 들랑거리면 심궈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복이 지나도 비가오지 않으면 호미로 파서 모를 심는 서종이나, 작대기로 구멍을 파는 작대기모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 말복까지 지나면 도리없이 체념하고 서숙이나 메밀을 심을 수밖에 없었다.△"개구리 울면 못자리 하고, 뜸부기 울면 모심는다."전북지역의 경우 '모심는소리'는 두 종류의 대표적인 가창방식이 있다. 판소리에 수용되어 잘 알려진 '농부가'처럼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뒷소리(후렴)를 받는 방식을 '선후창'이라고 하며 익산, 옥구, 김제, 정읍 등 농경지가 많은 서부평야지역의 형식이다. 예컨대 선소리꾼이 "여보시오 농부님에 이내 한 말 들어 보소 / 일락서산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솟아온다"라고 앞소리를 부르면 이어서 "어 여 어 여 어허루 상사뒤여"라고 후렴을 일제히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선후창 방식의 경우, 마을에 제법 인정받는 앞소리꾼이 있어야 한다. 메기는 소리가 시원치 않으면 받는 사람들의 신명을 끌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청도 좋고, 장단도 정확하고, 사설도 풍부하고, 즉흥적 작사 능력도 있고, 유머도 있고, 리더십도 있어야 앞소리꾼으로 행세할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어지간해서는 앞소리꾼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 사람을 수소문하기도 쉽지 않다. 제보를 부탁하면 당신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정도면 잘하지 않냐', '그럼 니가 해봐라;' 등등. 자고로 이런 지역에서 큰 소리꾼이 나왔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 사람이 메기고 모든 사람이 받는 선후창 방식반면에 두 패로 짝이 나뉘어 한 패가 한 소절을 부르면 다른 한 패가 그에 상응하는 내용으로 나머지 한 소절을 부르는 방식으로 '교환창'이라고 한다. 교환창은 암수로 나뉘어 서로 대구를 이루는 가사를 주고받지만 후렴은 없다. 진안, 무주, 장수 등 주로 동부산간지역에서 많이 부르는 형식이다. 예컨대 한 패가 "해다지고 저문날에 골골마다 연기나네"라고 부르면 다른 패가 앞 내용에 맞추어 "우리님은 어디가고 연기낼줄 모르는가"라고 부르는 식이다. 교환창 방식의 가사는 2행으로 된 한 편의 시를 방불케 한다. 몇 소절만 옮겨보자. "이 논에다 모를 심어 장잎이 훨훨 영화로세 / 어린 동생 곱게 길러 갓을 씌워 영화로세""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치 남았구나 / 지가 무신 반달인가 우리님이 반달이지""물꼬 철철 물실어 놓고 쥔네 양반 어디갔나 / 문어야 전복 손에 들고 첩에 방에 놀러갔네""방실방실 웃는 님을 못 다 보고 해 다 졌네 / 지는 핼랑은 접어나 두고 돋는 해로 다시나 보세" "한산 모시 적삼 안에 박속같은 젖좀 보게 / 많이야 보면 병난단다 담배씨만큼만 보고가소""날오라네 날오라네 산골처자가 날오라네 / 오라길랑 오래다놓고 문고리 잡고서 벌벌벌 떠네"△교환창 방식의 들소리는 한 편의 2행 시모심는 철은 '부지깽이도 거들어야 할 정도'로 바쁘다. 과거 전통농경시절, 이맘때를 '수제비타령'에 비유했다. 즉 모심는 기간이 한 달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한쪽에서 모찌는 사람, 써레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모심는 사람이 있고, 그러는 사이에 모를 일찍 심은 사람은 어느새 김매기도 해야 한다. 수제비라는 것이 끓일 때 보면 크게 띤 것도 있고, 적게 띤 것도 있고, 먼저 넣은 것은 익어서 퍼지고 있고, 나중에 넣은 것은 아직 설익고... 모내기철은 영낙없는 수제비타령이다. 그런데 들노래의 실상을 보면 어느 지역이건 간에 모심는소리는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바쁜 모내기철이 '상사소리' 부를 정도로 한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기가 닥쳐와도 비가 제때 내려야 모를 심고, 적당히 비가 오면 써레질부터 모내기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노래 부를 물리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논농사민요의 핵심은 '논매는소리'에 있다. 들노래의 지역적 분포와 정체성, 수없이 분화되는 다양한 악곡, 민속놀이가 수반되는 노래까지, 들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논매는소리가 아닐 수 없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