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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최근 경향과 향후 방향 - '공모전' 대신 새로운 작가 등단 시스템 자리매김

예술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작가는 소위 말하는 '스펙'이 없어 전시할 공간을 찾기 힘들다. 더불어 전시장을 임대할 만 한 돈도 없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그들에게 미술관과 화랑은 준비되지 않는 예비 예술가를 받아 줄 이유가 없다. 상업갤러리는 작가의 철학과 예술성, 실험보다 잘 팔리는 스타일과 스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무명 혹은 비주류의 신진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의 내적 고민보다 스타일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들에게 창작활동에 있어 생계의 문제, 창작공간의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운명과도 같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스스로 붓을 내려놓는다. 창작의 꿈 대신 생활비를 선택한다.이 문제는 지극히 예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문화는 예술의 가치와 표현을 통해 증명되고 발전해왔다. 이 시대에 예술계도 그러하다. 그래서 문화선진국이라는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북유럽국가의 여러 복지국가들은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창작공간과 작품 활동의 생계비용을 정부가 직접 챙기는 것이다. 향후 그들의 나라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앞으로 도래할 문화예술산업의 성장가능성 및 관광산업의 새로운 트렌트를 그들은 준비하고 있다. 고흐라는 예술가 한 명이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 엄청난 관광문화수익을 창출해 주고 있는 객관적 경험을 통해 그들은 알고 있다.△ 레지던시의 확산정부 차원의 창작공간지원 및 예술가지원은 폐교를 활용하기 위한 공간전시 방식으로추진됐다. 1995년 창원마동창작마을을 시작으로 폐교를 예술 창작공간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부터다. 수많은 지역 거점 예술 창작 공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 운영과정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의 경제적 생활권 밖에 자리 잡음으로서 재원 확보의 어려움, 운영비의 부담, 전문인력 미비 등이다.정부는 직접적으로 작가를 지원하는 방식보다 미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간접적인 지원방식을 선호하게 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창작스튜디오가 구도심, 혹은 지자체 거점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서울시의 금천예술공장(2009), 서교실험예술선터(2009), 문래예술공장(2010), 인천시의 인천아트플랫폼(2009), 경기도의 경기창작센터(2009)등이그것이다. 이 공간들은 레지던시의 고유한 역할 외에도 '도시재생' '문화예술활성화'라는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2000년대 후반 수많은 지차제들은 이러한 수도권의 예술창작지원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면서 프로젝트형 창작공간들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광주의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2008), 대구의 문전성시프로젝트(2009)가 대표적이다. 이 구조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민간 기관 및 단체이 지역과 연계한 레지던시를 통해 지역성과 지역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미술계 새 바람,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 "1990년대 말, 대안공간은 미술계의 새로운 힘으로 부상했다. 1999년 대안공간루프을 시작으로 홍대앞은 대안공간의 핵심거점이 되었고, 아트스페이스 휴와 같은 대안공간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가 왔다. 레지던시 또한 이쯤 새로운 장르, 형식의 넘어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그 작가는 바로 대안공간에서 전시를 열었고, 반대로 대안공간에서 전시했던 작가들은 상당수 레지던시 입주로 이어졌다."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추진단장 김윤환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러한 레지던시와 대안공간 출신 작가들의 약진으로 미술계의 레지던시 붐은 새로운 '작가 등단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기존 국전, 공모전이 학연, 지연주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작가등용문 역할을 신진작가들에게 외면당하면서 레지던시는 더욱 활발한 양상을 띤다. 즉 작품의 과정, 창작의 포트폴리오를 창작지원공간을 통해 증명해내는 내는 방식이 더욱 작가의 가능성을 검증하고 역량을 키워내는데 합리적이었다. 해외미술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레지던시를 방문하는 것이 필수 코스처럼 되면서 입주작가들은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사례도 빈번히 늘어났다.△프로그램 차별화 수행할 철학 필요 '예술가의 창작활동은 사회적 노동이며, 가치이다.' 프랑스의 예술가의 집 사례처럼 정부는 예술가의 창작권을 인정하면서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집단 창작촌이나 대형 아파트, 스튜디오를 별도로 지원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작가 발굴 및 예술가 지원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더불어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를 고려한 지역 거점형 예술 공동체를 공공의 영역을 통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즉 공공기관의 레지던시 사업은 예술가의 창작공간 지원을 포함해 시민의 문화 향유와 도시재생까지 망라하는 종합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전북의 레지던시지원사업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지원제도이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공적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계 내부에서는 예술을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창작의 자율성, 프로젝트의 운용의 제한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이 문제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쟁점이 될 듯하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차별화와 지역에 맞는 레지던시의 예술과 사회의 통합역할론 확립이 필요하다. 진정한 창작의 허브가 필요한 이 시대에서 대한민국 대전처럼 작가들에게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주말
  • 기고
  • 2012.10.05 23:02

한국인의 문화적 감성·전통의 아름다움 '오롯이'- 한복의 미학

필자의 40여년을 돌이켜 한복을 입은 기억을 되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아, 맞아~~!! 머리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강하게 떠오르는 건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진행한 나름대로의 클래식한 결혼식을 마치고 시댁어른들께 인사를 하는 공식적이면서도 전통적인 형식의 폐백에 입었던 빨간치마에 녹색저고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1970년초 어렸을 적 백일사진 속 한복. 1970년대 흑백사진이어서 컬러가 어떠했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추억 속 사진 정도이다. 어렸을 적 일상의 대부분을 한복을 입고 지내셨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옥색빛바랜 하얀색. 그리 화려하지도, 멋스럽지도 않지만 단정하고 정갈했던 할머니, 햇빛 좋은 날이면 마루에 앉아 동정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다리고 바느질하시던 아담한 실루엣, 자박자박 걸을 때마다 나는 한복의 부스럭 부스럭소리.내 기억 속 한복은 할머니와 함께 빨강, 연두, 자주 등의 화려한 색채가 아닌 베이지, 하늘빛과도 같은 파스텔컬러의 은은함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 문화의 원류로의 상징성과 함께 화려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지닌 한복! 추석을 앞두고 한국적 미학과 한국 고유의 정서를 한복을 통해 느끼고 한복의 현대적 계승과 대중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복, 색으로 말하다. 우리가 예복에 입는 한복의 색을 보면 혼례복으로는 빨강치마에 연두저고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표색이 되었고 옥색한복에 자주빛 고름이 우아하고 점잖은 한복의 색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상을 당했을 때 흰색 한복을 입고 우리가 매체를 통해 보는 조선시대의 임금들은 항상 홍색의 옷을 입고 있고 대신들은 청색의 관복을 입고있다. 그러면 한복의 색이 지니는 상징성은 무엇일까?흔히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한다. 조선시대부터 흰색옷을 즐겨입었다. 그 이유는 흰색을 화려하게 색깔 옷감으로 만들 염료를 구하기 어려웠으며 국상을 비롯한 상이 잦다보니 상복을 입어야 할 일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흰색 옷을 늘 입고 있어서 흰색이 갖는 상징성이 우리 민족과 가깝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규제가 가장 많은 색은 황색이었다. 오방색에서 중앙에 해당하는 황색이 중국 황제의 의복색으로 정해진 뒤 일반인의 황색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홍색도 황색과 같은 이유로 금지되었는데 홍색이 왕실의 색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으므로 동방의 색인 청색을 숭상하도록 해 관인은 청색을 입도록 했다. 계절에 따라 염색을 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서민들에게까지 시행은 불가하였고 관인의 옷은 청색, 서민의 옷은 흰색으로 정해졌고, 그 결과 백의민족의 전통이 지속되고 있다. # 한복, 현대를 입다. 한복은 단순히 한국전통의 의상, 복식의 의미를 넘어 한국인의 문화적 정서와 감성, 풍토에 적응하면서 역사와 문화가 반영된 한국 문화의 미학적 산물이다. 한복의 완만한 곡선이 주는 여운과 우아한 한복 선의 조형미, 화려하면서도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눈부신 한복의 색채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복은 저고리의 도련선, 치마 밑단의 넓고 완만한 선이 주는 우아함, 저고리의 섶과 깃의 균형 등 전체를 이루는 부분 요소요소 어디하나 지나치지 않은 셈세함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러한 우수하고 감각적인 전통문화를 브랜드화, 세계화하여 생활 안에 정적으로 남아있는 문화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일상의 문화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복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연구,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뒷받침하는 국가적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2005년 이래 문화체육관광부를 주축으로 전통문화 콘텐츠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를 통하여 고용 및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가이미지를 고양하려는 목적 한글, 한식, 한옥, 한복, 한지, 한국음악의 6대 부문을 선정하였고 한스타일 정부 정책화 사업을 통해 전통문화의 상품화를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은 물론 우리 문화의 원천인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대중문화로의 지속적 확산을 기대하고 있다. 전주시도 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여 한스타일 산업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문화적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연구 개발부문 특화사업, 문화 체험부문 특화사업, 산업진흥 부문 특화사업, 인력양성 부문 특화사업을 주골자로 한스타일사업 특구를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각 부문별 특화사업의 대부분은 한지의 연구개발을 통한 한지사업의 육성, 한지품질 개선 및 지원, 수요처 발굴, 한옥 데이터베이스 구축, 한옥마을 환경개선, 종합적인 전통문화 체험 및 교육을 통한 대내외적인 전통문화 교류 네트워크 구축 등이다. 전주시는 한스타일 6대 부문 중 한지, 한옥, 전주비빔밥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 산업을 집중 육성, 지원하고 있는데 한스타일 관련 여러부문에 걸쳐 문화적 자산을 골고루 갖춘 전주시가 부문별 소재를 개별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종합적 연구개발 및 산업 시설의 집적화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전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주도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전주시의 입장도 알겠지만 우수한 한복 문화의 지역적 유산과 콘텐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범위 안에 있지 못해 발전하지 못하고 사장되어가는 한복산업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역에서 30년간 궁중한복과 출토복식을 연구하고 제작, 발표를 통해 한복의 전승, 계승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박순자씨(한복의 미 대표)는 의례용 한복으로 대표성을 띄는 궁중한복의 아름다움과 그 의복 안에 드러나지 않은 가치와 생활복으로서의 한복의 대중화를 알리고 개발하는 사업이 지자체의 정책과 지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대학에서 서구의복은 물론 한국전통 복식을 체계적으로 교육과 경험을 통해 대학의 인력들의 현장 전문인력으로 연계될 수 있는 학교 및 사회교육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전통 콘텐츠를 모티브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이상봉과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가 전주에서 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복은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한국인의 문화적 감성과 미학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그 소중함과 가치를 계승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일상화해야하는, 그러한 가치를 지닌 문화적 자산이다. 이러한 한국적 조형미를 부각시키는 디자인적 접근과 해석을 통해 기능미가 조화된 한국적인 새로운 전주만의 한복 브랜드 개발 이끌어 내야하는 지혜와 노력이 지자체, 지역전문가, 장인, 유관대학 등의 협력과 소통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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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1 23:02

전주문화재단 주최 내일부터 1박2일 '한복데이'

추석을 앞두고 22일부터 1박2일간 전주 풍남문과 한옥마을 일대에서 '한복입고 놀자!'라는 주제로 지역 젊은이들의 이색적인 행사가 열린다. 한옥마을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과 지역주민들이 국가, 성별, 나이, 직업을 벗어나 한판 어우러져 노는 '한복day-시민, 주민, 관광객 모두가 한복을 입고 문화 축제를 즐기는 날' 행사가 전주문화재단 주최, 한옥마을보존협의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한복데이 기획단 박세상 단장(28)과 20대 젊은 청년들이 함께 기획, 진행하는 이번 행사는 전주 한옥마을 특색과 자원을 활용한 문화 축제를 만들어 관광 자체가 축제가 되는 참여형 지역행사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박단장이 2년전인 2010년 일본여행 중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은 10만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참여하는 하나비축제를 우연한 기회에 보고 느낀 감동과 충격이 문화를 통해 지역민들이 함께 노는 자발적 지역문화축제 한복데이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한복데이 축제는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한옥, 한식, 한지를 잇는 새로운 '한'바람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전북의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축제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자체 기획단을 공모하였고 여기에 뜻을 함께한 20대 지역 젊은이들 30여명이 축제의 기획과 진행,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이날 정오부터 저녁 9시까지의 빡빡한 프로그램 일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복을 입은 대학생들 100명의 플레쉬몹, 한복 기차놀이와 강강수월래, 힙합과 락, 전통국악의 공연과 한복체험을 비롯한 전통 민속놀이까지 어느 축제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젊은 감각의 톡톡튀는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한복을 입고 힙합과 락 장르로 무대를 채우는 공연자들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거리가 될 것 같다.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통 문화컨텐츠를 다양한 각도로 활용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획하는 지역젊은이들의 특색있는 이번 행사가 타도시와 차별되는 관광지로서 한옥마을 위상은 물론 현대의 또 다른 지역 문화가 창출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전주를 찾은 관광객 및 외국인들이 한복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친근하게 경험하는 의미있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 주말
  • 기고
  • 2012.09.21 23:02

조선시대 한복은 - 화려하고 비실용적이었다? 양반 여성도 일상복은 소박

조선시대 여성 한복을 떠올리면 노랑, 연두, 분홍 등 화려한 색상의 짧은 저고리와 길고 폭넓은 우아한 치마가 생각난다. 현대 여성들에게 이런 전통 한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대가 지나면서 필자의 경우처럼 폐백에 입는 예복, 의복으로 착용을 하고 우리 어머니 세대만 봐도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거의 착용하지 않다가도 예의나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 1년에 한두번 정도 한복을 입는다. 이렇듯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전통한복은 실용적인 생활의복의 의미가 아니라 격식과 예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까. 조선시대에 한복은 실용적인 생활의복과 의례적 기능을 모두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 복식제도는 신분제 바탕위에서 유지되었는데 일상복 사대부 등의 지배층과 상민이하의 신분을 구별하려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여성한복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이런 의복은 왕실, 일부 귀족들의 소유였으며 지배층 역시 소박한 일상 의복을 즐겨입었다. 18세기 중엽 이전에 반가 여성들이 어떤 옷을 일상복으로 입었는지 알수 있는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 이전의 것은 의례와 관련된 예복으로서의 한복에 대한 자료들이 대부분이어서 조선시대 여성의복이 비실용적이고 다소 화려하다는 인식을 낳게 된 것이다.양반 신분과 달리 상민 신분의 여성은 노동이 생활화된 계층이었으므로 실용적이면서 검소한 옷일 수 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후반 쌀 중심의 농업은 남성 중심으로 노동이 이루어지면서 여성은 면작, 면직을 상당 부분 담당했다. 따라서 상민들의 여성 일상복은 언제든 노동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활동적인 의복이었다. 조선 후기 윤두서의 풍속화 '나물 캐는 두 여인'에서 조선 생활 의복의 실용성과 소박함을 엿볼 수 있는데 그림에서 묘사되었듯이 여성들이 일하면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상의 저고리의 품이 넉넉하고, 길고 폭 넓은 치마를 끈으로 묶어 올려 노동에 편한 복장으로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말에서 18세기초만 해도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로 대표하는 여성의 의복은 유행전이었다.이후 1세기 뒤에 신윤복이 그린 '어물장수'를 보면 19세기에는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가 모든 신분을 망라해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에는 어물을 팔러다니는 젊은 여성과 그를 마주 보고 서있는 나이든 여성이 등장한다. 전자의 젊은 여성은 기생의 차림 못지 않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의상을 입었다. 머리에 인 바구니를 얹기에 머리 모양이 불편할 것 같고 바구니를 잡기에도 저고리가 너무 짧아 불편할 것 같고 앞이 여며지지 않을 정도로 옷 품이 작다. 아무튼 어물을 팔러다니는 여성의 복장은 아니다. 반면 이러한 여성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든 노인의 복장은 앞 윤두서의 그림 '나물캐는 두 여인'에서처럼 치마 윗부분을 덮을 정도로 저고리가 길고 컬러감 없는 하얀색치마에 저고리다. 이렇듯 상층에서 시작된 유행이 19세기에 이르면 상민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 주말
  • 기고
  • 2012.09.21 23:02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 스승의 소리, 패기로 풀어낸다

30대 소리꾼들을 키워야 판소리사 30년을 내다볼 수 있다. 올해 신설된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은 젊은 소리꾼들의 패기 넘치는 소리를 담아내는 그릇. 유태평양(흥보가) 민은경(심청가14일 오후 7시) 남상일(적벽가15일 오후 7시) 정은혜(춘향가) 조정희(수궁가16일 오후 7시)가 풀어내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전주 한옥마을 다문에서 만나볼 수 있다.1998년 만 6세의 나이로 3시간에 걸쳐 '흥보가'를 완창 해 세상을 국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국악 신동' 유태평양(전북대 한국음악과 2년)이 의젓한 어른이 돼 '흥보가'를 다시 완창한다. 지난해 갑작스레 아버지를 여읜 그가 제28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에서 1위(2012)를 한 뒤 그 소식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고인이 그토록 원하던 상. 스승인 조통달 명창도 함께 기뻐했다. 소리축제에서 '심청가' 완창을 도전하는 민은경(중앙대 한국음악과 석사과정)은 얼마 전 뮤지컬 '서편제'에서 이자람 차지연과 함께 송화 역을 맡으면서 안정된 소리와 노래, 춤으로 '최고의 복병'으로 꼽혔다. 마당놀이 '심청', 창극 '산불'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신인 같지만, 전통 판소리를 올곧게 이어온 국악인.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금상(2002), 임방울 국악제의 판소리 부문 금상(2003), KBS 국악대경연 판소리 부문 장원(2008) 등을 수상했다.KBS 1TV '아침마당' 고정 패널 자리를 꿰찰 만큼 소리꾼 남상일은 판소리에 구수한 입담이 일품이다. 안숙선 조소녀 명창에게 사사한 덕분에 자신의 소리가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라고 여겨왔던 그에게 이날 '적벽가'는 또 다른 도전일 수 있다. 10대들의 고충을 표현한 '십대 애로가', 초보 여성 운전자들의 심정을 가사에 담은 '여성 운전가' 등 창작 판소리를 시도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젊은 소리꾼 정은혜가 어렵기로 소문난 '정정렬제 춘향가'를 선보인다. 본래 요구되는 7시간짜리는 아니지만, 그의 남다른 공력이 느껴지는 무대. 남원 국악예술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악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제17회 동아국악콩쿠르 종합 특상과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재원이다. 연금향의 외손녀로 성우향조상현안숙선정회석 명창 등 큰 스승에게 두루 사랑을 받은 조정희는 지난해 네 번의 도전 끝에 30대에 전주 대사습 명창부 장원을 거머쥐었다. 이날 사설이 정제되고 음악적으로 잘 짜인 소리로 평가받는 유성준 명창의 바디를 이은 정광수 바디 '수궁가'를 들려준다.

  • 주말
  • 이화정
  • 2012.09.14 23:02

판소리 다섯 바탕 '五人五色'…한옥마을에 차린 '소리의 성찬'

2012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판소리 다섯 바탕'은 흙 속 진주를 고르듯 진정한 소리꾼을 찾는 일이다. 왕기석(수궁가·14일 오후 1시) 송재영(춘향가·14일 오후 4시) 박복희(심청가·15일 오후 1시) 윤진철(적벽가·16일 오후 1시) 채수정(흥보가·16일 오후 4시) 등 중견 명창이 전주 한옥마을 학인당에서 묵직한 소리로 성찬을 들려준다. 소리는 바람을 타고 반듯한 학인당 기와를 날아 넘고 골목골목으로 퍼져나간다.왕기석 명창에게 "판소리는 '님'이다." 객석과 충분히 호흡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의 감정선(線)을 잘 읽어내는 것과 같아서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이하 전주대사습) 장원(2005)을 한 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로 떠올랐지만, 비주류적이거나 실험적인 감수성도 적극 껴안는 '속 깊은' 창자. 그의 평생 스승 남해성 명창에게 사사한 '수궁가'를 들려준다.송재영 명창(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은 건강이 여의치 않은 이일주 명창의 곁에서 '동초제' 뒤를 잇는 실력파 소리꾼. 진즉에 전주대사습 장원(2003)까지 했으나, "진짜 소리 인생은 이제부터"라고 겸허히 자신을 낮춘다. 올해 국립창극단이 올린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의 '수궁가'에서도 중후한 연기를 보여줘 이목을 끌었다. 박복희 명창은 4시간30분이나 되는 '심청가' 완창을 전주에서 처음으로 시도한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슬픈 장면이 가장 많은 게 '심청가'라면, '심청가' 중 가장 슬픈 형식이 강산제 '심청가'. 조상현 명창에게 강산제를 익혔다. 남원 춘향국악대전의 판소리 명창부 대상(2006) 수상자. 소리는 물론 북도 잘 치고 그림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인 윤진철 명창(광주시립국극단 예술감독)은 '팔방미남'에 가깝다. 전주대사습 장원(1998) 이력이 암시하듯 작고한 정권진 선생으로부터 보성소리를 올곧게 이어왔으나 창작 판소리 '홍길동전' 작창·발표를 하는 등 개방성과 진취성이 적극 보인다.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2010)을 받은 채수정 명창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다. 채 명창은 2008년 이화여대 대학원 한국음악과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중모리 대목 연구' 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사 소리꾼'. 스승인 박송희 명창을 만나 판소리에 입문해 '박록주제 흥보가' 를 배우기 시작해 2005년 '흥보가' 음반을 냈고, 이듬해 10월 '흥보가' 완창 무대를 가진 바 있다. 저음처럼 들리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특징인 채 명창 역시 완창 무대다.

  • 주말
  • 이화정
  • 2012.09.14 23:02

해외 초청 공연 - 흥겨운 '살사', 구슬픈 '파두'…국악과 아랍 재즈 만남도

다국적 음악이 '무한 도전'한다. 국내 최초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인기 살사 그룹 '엘 그랑 콤보'가 무대에 불을 '확' 붙인다. 집시와 디제잉이 어우러진 'DJ 클릭'과 포르투갈 전통 성악 '파두'를 애절한 선율로 불러낸 '클라우디아 오로라', 섹시한 집시 기타리스트 '카말 무살람 밴드'까지(국수예술단의 '사천가무악' 제외)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초청 돼 소리축제에서만 볼 수 있다.1962년 창단한 최고참 밴드이자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살사 그룹 '엘 그랑 콤보'(14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전주를 찾는다. 무려 61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In Alaska : Breaking the Ice'(1984)가 처음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데 이어 'Best Tropical Album'(2003)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수상한 전설의 그룹. 특히 전주 공연은 창단 50주년을 맞아 시작한 월드투어 일환이라 각별하다. 처음 한국 팬들과 만나는 자리로 최근 새롭게 개사한 'No Hago Mas Na'(I don't do anything else), 'Echar pa'lante'(Moving Forward)를 포함한 히트곡들을 가득 준비했다. 흥겨운 살사 음악은 보는 이들도 리듬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전 세계에서 '소화'된 '디지털 포크'의 처음과 끝을 정리해주는 팀. 'DJ 클릭'(15·16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놀이마당)은 프랑스, 인도, 이탈리아, 루마니아 등 출신의 다국적 멤버가 모여 집시 음악과 일렉트로닉을 결합시킨 '디지털 포크'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다. 'DJ 클릭'이 전주에서 들려줄 음악은 집시음악을 중심으로 디제잉과 라이브 연주를 결합시킨 것이다. 기존의 앨범 'Click Here Delhi to Sevill'(2010)에 실린 음악에 판소리 등과 같은 한국 전통음악의 풍광을 덧댄 'Click Seoul'이라는 새 프로젝트 앨범을 준비 중이다. '파두(fado)'는 운명·숙명을 뜻하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전통 성악이다. 항구도시 리스본 민중의 삶을 노래한 민요이다 보니 '파두'는 언제 들어도 구슬프고 서정적이다. 노래는 복잡하지 않지만 미묘한 '싱커페이션'(당김음)과 섬세한 가락 때문에 가수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이 느껴진다. 포르투갈의 떠오르는 '파디스타'(fadista·여성 파두 보컬리스트) '클라우디아 오로라'(15일 오후 9시30분 전주 한옥생활체험관·9월 16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놀이마당)가 지난해 10월 발매한 데뷔 앨범 'Silencio'에 수록된 곡들로 우수에 젖은 성음이 애잔함을 전한다. '소다드(Sodade)' 는 즉 '슬픔'이라고 하는 우리의 '한'(恨)과 닮은 가슴 적시는 무대가 될 듯.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는 요르단 기타리스트 '카말 무살람 밴드'가 전주를 찾는다. '카말 무살람'(14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놀이마당)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두바이를 중심으로 세계 재즈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경과 장르를 초월한 폭넓은 음악적 시도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국악과 아랍음악의 접목을 통해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선보인다. 특히 실크로드의 음악 전통에 관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내놓을 예정. 소리꾼, 가야금·피리 연주자 등이 함께한다. 중국 사천 지방의 전통무대극 '사천극'(16일 오후 7시30분·17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을 들고 '국수예술단'이 전주를 찾는다. 우리에겐 '변검'으로 더 잘 알려진 사천극과 함께 중국 소수민족인 치앙족의 춤과 노래를 전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치앙족의 전통 피리 '치앙디'까지 들어볼 수 있다. 중국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피고춤, 허리띠춤 등 치앙족의 이색적인 민속무용과 목가적인 노래 등도 만나보자.

  • 주말
  • 이화정
  • 2012.09.14 23:02

전주향교 - '공자 가라사대'…전라도 유교·유학의 심장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자와 제자 3000명이 대나무 책을 들고 논어의 구절 중 '온 세상사람이 모두 형제'(四海之內 皆兄弟也)를 노래하며 행진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난해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내려다보이는 천안문 광장에 9.5m의 공자동상이 우뚝 섰고, 중국정부의 주도로 노벨평화상에 맞먹는 공자세계평화상도 제정됐다. 전세계 313개 대학에 공자학원이 설치됐고 작은 규모의 공자학당도 369개가 세계 곳곳에 세워졌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공자의 화려한 복권은 우리에게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전라도 유교와 유학의 심장부였던 전주향교에서 공자의 부활을 생각한다.△ 전라도 53관의 수도향교, 전주향교 서울 성균관을 모델로 삼아 지어진 전주향교는 그 역사로 보나 건물배치와 건축미학으로 보나 유교적 이상을 구현한 곳으로 손꼽는다. 전주향교 안을 사색의 눈빛으로 소요하는 것만으로도 2,500년 전 유학의 문을 처음 열고 세계 4대 성인이자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 된 공자의 길을 엿볼 수 있다. 전주향교는 고려 공민왕 때(1354) 지금의 경기전 북쪽에 처음 앉혀졌다.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곁이어서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태종 때 전주성 서쪽 황화대 아래로 옮겨졌다. 두 차례 전쟁을 겪고 나서 선조 때(1603)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전주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하여 만화루, 동무와 서무, 동재와 서재, 계성사, 신문, 입덕문, 사마재, 양사재, 책판고, 제기고, 수복실 등 모두 99칸이 넘는 규모였다. △ 삶의 멘토들을 모신 대성전향교의 정문인 만화루는 2층 누각이다. 이 누각은 일종의 유생회관으로 이용되었고 이곳에서 방문객을 맞았다. 마을원로의 양로회가 열리거나 연회가 베풀어지기도 했고, 바깥마당에서 마을잔치가 벌어지면 이곳에서 구경할 수도 있었다. 향교나 서원에 만화루가 세워졌다면 그 고을에 왕비나 정승처럼 특별한 존재가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하는데, 전주는 태조의 본향이므로 응당 만화루가 세워졌던 것. 향교는 크게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으로 나뉜다. 전주향교는 평지에 앉은 탓에 앞에 대성전이 나서고 명륜당이 그 뒤에 섰다. 성현을 모신 대성전을 배움의 공간보다 더 신성시해서다. 대성전에는 공자 초상화, 4성과 공문십철, 송조6현의 위패를 모셨고, 앞쪽 동무와 서무에는 최치원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18현을 모셨다. 대성전에서는 해마다 두 차례 공자를 기리는 석전이 거행된다. 공자의 기일인 5월11일과 공자의 탄생일인 9월28일이다. 이때는 제수음식이 진설되고 연주되는 문묘제례악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술을 올리는 등 의례의 법도가 까다롭고 복잡하다. 또 전주향교에는 다른 향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계성사라는 건물이 있는데,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이다. 마오쩌둥은 '공자가 죽어야 중국이 산다'고 외치며 봉건왕조를 떠받든 지배이데올로기로 공자사상을 비판하고 탄압했다. 문화대혁명 기간(1966~1976)에 공자를 기리는 사당은 파괴됐고 문묘제례는 사라졌다. 중국은 개방과 개혁을 통해 삽시간에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강대국으로 일어섰다. 이제 역사와 문화, 전통에 맞는 정체성으로서 또한 대표적인 국가 브랜드로 공자를 내세운 중국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석전의 원형을 간수해온 우리의 전통적인 의례방식을 배우기 위해서다.△ 젊은 글벗들이 열공하던 명륜당 강학하는 공간인 전주향교의 명륜당은 독특한 외양으로 아낌을 받는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다시 좌우에 한칸씩 눈썹지붕을 달아내어 몸집을 넓혔고 20개에 달하는 널문이 분합문 형식으로 달렸다. 눈썹지붕의 도리가 뺄목으로 되어 비스듬히 길게 뻗어 나와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독수리가 날갯짓을 다듬으며 내려앉는 형국이다. 전주향교에는 400살이 넘은 은행나무들이 서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다. 옛 사람들은 향교에 반드시 은행나무를 심었다. 은행나무의 연륜이 그대로 향교의 역사가 된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행단이라 부르고 은행나무를 심어 유교적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알렸다. 명륜당 양쪽 앞에는 동재와 서재가 앉아 있다. 유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곳이다. 향교는 뜻이 있어 배우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지만, 생계에서 벗어나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만 공부할 수 있었다. 반상이 나뉘어 동재에는 양반자제가 서재에는 서민자제가 지냈다. 차츰 양반 자제들은 향교의 대중교육에서 벗어나 이름난 학자들이 운영하는 서원을 찾아 사교육을 받으러 떠났다. 1000여 개가 넘다가 서원철폐령으로 삽시간에 사라졌던 서원의 역사에 비하면 향교는 언제나 그 수를 유지하며 공교육의 밑바탕을 떠받쳐왔다. 유학의 근본정신을 붙잡고 어진 심성과 예의바른 성품을 가르치는 데 전력했지만 향교 역시 시대의 변화에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 '반드시 필요한 사람'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이다. 그 시대는 패권경쟁이 치열했던 난세이기도 했지만 중국사상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군주마다 정치이론에 통달한 학자를 초빙하여 나라경영에 대한 의견을 들었고, 제자백가로 통하던 학자들은 자신의 사상이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그 목표를 향한 길을 압축한 표현이었다.공자는 14년 동안 주유했으나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고 당대 최고 지식인이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68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행단을 차려놓고 73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서예악을 비롯한 고전문화의 정수를 가르쳤다. 그는 공문십철로 일컫는 수제자를 비롯하여 3천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선비라는 뜻의 유(儒)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유교는 내세를 약속하거나 절대자를 내세우지 않지만, 종교이자 학문이며 동시에 도이자 삶의 기술이다. 지금 전주향교는 소일하듯 관광지가 되어 지칫거리고 공자의 가르침은 옹색하며, 그럴수록 중국에서 들려오는 공자의 소식은 사뭇 솔깃해진다. 한때 전주향교는 성균관스캔들을 촬영하던 날이면 어린 소녀 팬들이 몰려들어 뜨겁게 몸살을 앓았다. 꽃미남 유생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향교 안을 여전히 떠돈다. 이제는 먼 곳에서 한옥마을을 찾은 객들이 소슬해진 향교에 들러 퇴락해 가는 명륜당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혹은 힘겹게 생명을 버텨온 늙은 은행나무에 등을 기댄다. 생각에 잠겼다가 돌아가는 길에는 더 나은 세상을 그리며 인간의 길을 밝혔던 공자의 말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무슨 주문처럼 되외며 정신이 고양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김정겸 문화전문시민기자(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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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07 23:02

역사 간직한 도내 향교 3곳 - 배롱나무 꽃구름 사이로 학동들 글 읽는 소리가…

조선은 개인적 초탈을 꿈꾸었던 고려의 불교적 이상을 버리고, 사회와 책임을 내세운 유교를 나라의 바탕이념으로 삼았다. 향교는 국가 정책적 교육 사업으로 1읍1교 원칙에 따라 마을마다 세워졌다. 유교적 이념에 따른 유교적 인간으로 하루빨리 백성을 교화시켜야 할 절박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당시 329개 고을에 향교가 건립되었음이 보고됐다. 현재 남쪽에 234개 향교가 있는데 도내에는 전주향교를 비롯한 26개 향교가 살아남았다. 그 가운데 우여곡절의 역사를 간직한 향교 몇 곳을 찾아가 보았다.△ 옥구향교옥구향교는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솔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대성전, 단군성묘, 명륜당, 전사재, 문창서원, 자천대, 비각 등이 저마다 사연과 역사를 안고 사이좋게 모여 있다. 옥구향교는 1403년 태종 때 처음 세워졌는데 인조 때(1646년) 지금 자리로 옮겨 앉았다. 외삼문을 넘어 마당에 들어서면 풀잎이 카펫처럼 땅을 덮고, 연륜 지긋한 배롱나무들은 내키는 대로 뻗어나간 가지마다 꽃숭어리들을 달고, 반듯한 축담에 앉은 건물들이 편안하다. 옥구향교는 특이하다. 대성전과 담을 사이에 두고 단군을 모신 사당이 있고 그 앞쪽으로는 그 옛날 최치원이 올라앉아 글을 읽었다는 자천대가 옮겨와 있다. 일제강점기에 군산비행장을 닦일 때다. 문창서원에는 숱한 전설을 뿌리고 신선이 된 최치원 선생의 초상화가 모셔졌다. 뒤쪽으로 잘 짜인 비각에는 세종대왕숭모비가 우뚝 서 있다. 무엇 하나 내치지 못해 한 품에 끌어안은 옥구향교는 소박한 기운과 따뜻한 손길이 곳곳에 스몄다. △ 고부향교고부는 가없이 펼쳐진 호남평야를 거느린 큰 고을이었다. 논이 부의 척도였던 시절, 황금 낟알을 거두며 고부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식 농사에 힘을 쏟았다. 고려 말 일찌감치 관아 곁에 향교의 터를 잡고 학문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이곳은 옛 명성에 견주면 규모나 외모가 보잘 것 없다. 명륜당은 특이하게 뒤로 돌아앉아 대성전 쪽을 바라보고, 짝 잃은 서재를 옆에 두고 양사재를 건너다보고 있다. 건물마다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초췌하다. 그러나 대성전으로 향하는 내삼문을 올려다보는 순간, 을씨년스런 기분이 덜어지고 가벼이 전율한다. 대성전의 돌계단과 돌축담은 쇠락한 고부향교를 단번에 위엄을 갖춘 성전으로 격을 높여주는 까닭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크고 귀한 돌들이 성채를 쌓아올리듯 신전을 짓듯 정성껏 짜 맞추며 대성전을 아뜩한 높이로 올려놓았다. 게다가 늙은 은행나무와 배롱나무의 꽃구름이 대성전을 감싸 우수어린 분위기를 더한다. △ 태인향교1421년 세워진 태인향교 정문은 2층 누각으로 만화루 편액이 달렸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이 고을에서 태어나 향교에 만화루가 세워졌다. 누각에는 여의주를 물고 뭔가에 놀란 듯 퉁방울눈을 부릅뜬 용이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학생들이 휴식공간인 누각에 올라 해학적인 용들을 희롱하며 머리를 식히는 모습이 선하다.태인향교는 예스럽고 단정하다. 특히 잿빛 도는, 5칸 짜리 명륜당은 옆으로 품을 벌리고 낮게 정좌한 자세다. 3칸 대청마루는 띠살무늬 분합문이 달렸고 양옆에는 온돌방이다. 가지런한 문살과 기왓골에서 정연한 미를 느낀다. 명륜당 뒤 내삼문에 들어서면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균형미를 지닌 아름다운 맞배지붕 집이다. 처마를 길게 빼고 창방과 장여 사이에 커다란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화반이 끼어 있고, 날개를 편 새 모양의 익공이 3겹으로 되어 있다. 성스러운 집답게 화려하고 장엄하다. 김정겸 문화전문시민(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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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07 23:02

아름다운 순례길 240km - 4대 종단 성지 체험…역사·문화의 숨결을 느끼다

길을 나선다. 혼자 갈까? 잠시 고민한다. 어느 길을 선택할까. 두려움과 설레임, 해방감, 자유, 고독, 방랑, 깨달음, 기도 등에 대한 단상을 배낭에 차곡 차곡 넣고 달콤한 십일몽을 꿈꾸며 길을 나선다. 일상을 벗어나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을때가 있다.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일상의 스케줄. 지친 나를 추스르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을 때 우리는 길을 떠난다.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이 유행하고, 전국에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걷기보다는 커다란 깨달음과 의미를 담은 순례길이 생겨나고 있다.세계적인 순례길로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꼽는다. 스페인 산티아고는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순례길 중에 하나로 한해 2~3만명이 찾는다. 스페인 여행을 경험한 분들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순례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북에도 순례길이 있다. 유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이 함께 만든 240km의 '아름다운 순례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순례길은 세계 최초로 4대 종단이 하나로 결합해 각 종단의 순교지와 성지, 교회, 사찰 등을 공동 순례하는 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걷자는 의미의 '느바기'가 '아름다운 순례길'의 모토. 조용히 묵상하고 역사와 대화하면서 느리게 걷는 아름다운 순례길의 상징은 달팽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순례꾼들은 저마다 달팽이. 달팽이가 길을 안내해주니, 누구라도 혼자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길이 곧 화답할 것이다.△ 240km 8박9일 코스'아름다운 순례길'2009년 10월31일 개통된 '아름다운 순례길'은 240km로 8박9일 코스로 돼 있다. 지난 2년 간 무려 6만여 명이 다녀갔다. 익산 성당면에는 1845년 한국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머문 나바위 성지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10명의 순교자가 묻힌 천호성지가 있다. 호남 최초로 1893년 설립된 서문교회와 1897년 미국인 선교사 잉골드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서울 광혜원에 이어 두번째로 문을 연 전주 예수병원도 만나볼 수 있다. 1400년 전 백제시대에 창건된 김제 금산사, 신라 말기에 창건된 완주 송광사를 비롯해 익산시 금마면에 가면 백제시대 동양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와 국내서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을 볼 수 있다. 원불교 성지인 익산에는 창시자 소태산 선생을 기리는 탑과 기념관이 있다.(아름다운 순례길) 1코스 = 한옥마을~송광사 28.0km2코스 = 송광사~천호 26.5km3코스 = 천호~나바위 26.5km4코스 = 나바위~미륵사지 27.5km5코스 = 미륵사지~초남이 29.3km6코스 = 초남이~금산사 24.0km7코스 = 금산사~수류 19.7km8코스 = 수류~모악산 21.0km9코스 = 모악산~한옥마을 27.5km△ 여러 종단의 화합의 길외국의 순례길과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다르다. 외국의 순례기은 한 특정 종교의 길인 반면, '아름다운 순례길'은 여러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길이다. 전주를 비롯해 완주익산김제의 천주교와 기독교불교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성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아름다운 순례길'이 2009년 선포됐다. 예수의 제자 야곱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800km에 이르지만,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240km로 하루 20~30km씩 걸으면 되기 때문에 누구라도 선뜻 나설 만한 여정이다. 또한, 백제시대의 미륵교, 조선시대 성리학으로서의 유교, 실학에 바탕을 둔 천주교,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자 한 동학원불교, 근대의 개혁을 강조한 개신교 등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할 때 그 심장의 역할을 했던 종교가 상당 부문이 전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북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이제 어느 하나의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가 더불어서 새로운 정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로, 세계가 눈길을 모을만한 발걸음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만경강 갈대밭과 제남리 뚝방길, 고산천 숲속 오솔길 등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을 따라 걷는다. '고삿길'에서는 자연에 취해 우주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다. 스님이 천주교의 정신이 깃든 천호 파정의 집에서 여정을 하고, 신부가 원불교 숲 문화센터에서 잠을 청하며, 원불교의 교무가 교회에서 묵어가고, 목사가 송광사의 템플스테이에서 잠시 머무르는 상상을 해보자. 비단 종교인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만나기도 하고, 너른 평야 곡창지대를 지나면서는 농민의 마음도 읽어낼 수 있다. 길가에서는 임실 치즈에 얽힌 사연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가람 이병기 생가와 전주 한옥마을 내 위치한 경기전강암 송성용 기념관동학혁명기념관 등에서는 전북 역사의 뿌리를 만나볼 수 있다. 발을 내딛었을 때 첫 여정과는 달리 마무리 여정에서는 우리 시대를 깊이 이해하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1월 세계순례대회로 종교간 대화를 더욱 의미있는 것은 11월1~11일 '세계순례대회'가 전북에서 열린다는 대목이다. 전북도와 (사)한국순례문화연구원이 교황청이 기획하고 있는 '2014년 아시아순례대회'의 전북 유치를 위해 사전에 기획된 것. 세계 대부분의 순례길이 개별 종교의 특성만을 담고 있거나 역사적으로 종교분쟁과도 맞물려 있었다는 데 비해, '종교 간의 대화'가 세계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러 다양한 종교가 한데 공존하고 있는 전북에서는 '아름다운 순례길'을 통해 종교간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행사에는 종교 신자와 일반인 등 국내외에서 5만여 명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참가자들은 전주 한옥마을과 치명자산, 완주 송광사와 천호성지, 익산 나바위와 미륵사지, 김제 금산사와 수류성당 등 종교영성의 체취가담긴 길을 걷는다. 순례 도중에 아픈 몸을 치유하고 마음을 달래는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각 종단의 지도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화합을 다지는 행사도 준비된다. 앞서 전북도는 순례길 정비에도 힘을 쏟았다. 방향 표지판 900여개, 안내판 70여개를 세우고 길 중간에 화장실벤치 등 쉼터도 마련했다. 주변의 절성당교회는 물론 동네의 마을회관을 숙박장소로 제공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김진아 문화시민전문기자(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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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31 23:02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종교 성지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지닌 우리 지역의 종교 성지를 소개한다. ■ 후백제 견훤이 창건했다는 미륵신앙 성지'김제 금산사'미륵신앙의 성지인 김제 금산사. 김제시 수류면 소재의 사찰이다. 후백제(900~936)의 견훤이 건립했다고 전하며 신라 말~고려 시대 석조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다. 건물은 임진왜란(1592)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됐다. 미륵전은 3층 불전으로서 1~2층은 도리의 길이 5간들보길이 4간, 3층은 3간2간이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도리의 길이가 긴 건물로서 미륵전과는 대조적이다. 경내 5층 석탑은 신라 말기(10세기 초)의 것이다.■ 달마 대사 숭산 소림사 면벽좌선 뜻 담은'익산 숭림사'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345년(충목왕 1)에 창건했는데, 창건주는 미상이다. 중국의 달마(達磨)대사가 숭산(崇山) 소림사(小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한 고사(故事)를 기리는 뜻에서 절 이름을 숭림사라 했다고 한다. 숭림사 보광전(보물 제825호)은 익산 웅포면 함라산 자락 깊숙한 곳에 있다.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있다. 불상 머리 위의 천장에는 섬세한 용 조각이 있는 닫집을 설치해 불상이 장엄하다.■ 첫 사제 김대건 신부 국내 첫 발 기념해 세운'나바위성당'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국내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해 1906년 건립 된 나바위성당(사전 제318호)은 주변에 넓은 바위가 많아 나비위 성당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고딕모양의 뾰족한 첨탑과 한옥 지붕을 얹은 예배당은 국내 유일 양식으로 김대건 신부의 순교탑 등이 있다. 한옥기와와 고딕식 첨탑이 어우러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근대 건축물수목이 잘 보존된'원불교 중앙총부'원불교 중앙총부(등록문화재 제179호)는 원불교의 산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순례지이며, 국내 원불교의 성지로 통한다. 1924년 9월 이 곳에 자리를 잡았고,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의 건물과 2개의 탑이 초창기의 모습을 그대로 복존하고 있다. 특히 일식과 한식이 혼합된 다양한 근대건축물과 수목이 잘 보존되어 휴식처가 되고 있다.■ 1890년대 지어진 종탑 그대로 보존된'김제 수류성당'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223번지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전동성당과 역사를 함께 한다. 1889년에 설립돼1890년대에 지어진 종탑이 아직 그대로 보존돼 있다. 수류성당이 있는 화율리 주민 대부분은 천주교 신자들로 15명의 사제를 배출했을 만큼 신심 깊은 마을이다. 625때 불탄 성당을 주민이 직접 냇가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 벽돌을 만들어 다시 지었다고 한다.■ 유교전통 따르며 복음 전파 ㄱ자 예배당'익산 두동교회'두동교회(지방문화재 자료 제179호)는 1923년 선교사 해리슨의 전도로 처음 설립, 남녀유별의 유교전통을 따르고 남녀모두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조상들의 지혜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남녀 회중석을 직각으로 배치해 서로 볼 수 없도록 했으며, 두 축이 만나는 중심에 강단을 시설해 'ㄱ' 자가 90도 회전한 평면 형태를 이루도록 했다. 기역자 예배당은 김제 금산교회와 단 2곳에만 있는 한국교회의 독특한 유형이다.김진아 문화전문시민(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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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31 23:02

옛 추억·어머니의 손맛, 몸 속 가득 퍼지다

장 생활을 하면서 건강 상태가 조금 나빠졌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기 때문에 운동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균형 잡히지 못한 식생활 때문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매일 먹게 되는 점심저녁 식사는 대부분 밖에서 사먹게 되고, 먹게 되는 음식은 고기류나 덮밥 등과 같은 기름진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가끔씩 약속이 있어 외부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더라도 고칼로리 음식들이 많고, 바빠서 간단하게 때우게 되는 끼니들도 대개는 인스턴트나 가공음식이다. 매일 먹을 수 밖에 없는 이런 음식들이 질리는 날이면 가끔 어릴적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뛰놀며 아이들과 함께 먹었던 와일프 푸드. 논밭을 뛰놀며 먹었던 진달래 꿀은 어찌 그리 달콤했으며 메뚜기 구이 맛은 얼마나 고소했던지. 학교에 다녀오면 어머니께서 기다렸다는 듯 내어 주시던 삶은 고구마와 계란 맛은 요즘처럼 인스턴트 음식에 질릴 때면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어린 시절 즐겨먹던 추억의 음식들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돼버렸다. 동네에서 흔히 먹던 개구리 뒷다리 튀김은 맛볼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운 '별미'가 되어버렸고, 어릴적 흔하게 널려있던 먹거리들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야 보일까말까한 '귀한 음식'이 되었다. 나는 이런 음식들의 맛이나 영양보다도 그것에 얽힌 '추억'이 그립다. 이제 이런 음식들을 맛보기란 정말 어려워진 것일까.△ 추억의 맛을 복원하는 그 이름, 와일드푸드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이들 추억의 야생음식들을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완주군을 중심으로한 '와일드 푸드' 복원 열풍이 그것이다. 완주군은 지난해부터 추억의 향수 음식, 우리 어른들의 손맛을 지켜나가자면서 '와일드 푸드' 복원을 주도하고 있다. '와일드 푸드'는 이름처럼 야생에서 그대로 가져온 추억의 음식들을 말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며 맛봤던 추억의 맛, 할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던 우리 어른들의 손맛이 담긴 요리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흔했던, 그러나 지금은 귀한 몸이 된 추억의 '와일드 푸드'들. 내 기억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대략 서너 가지 쯤은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개구리 뒷다리 구이다. 어린 시절에만 해도 동네에 개구리가 흔했다. 동네 논에 나가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화장품 모델(?)로도 유명한, 작고 귀엽기까지한 청개구리를 보는 일은 다반사였고,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제법 큰 개구리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한참을 뛰어다니며 개구리를 잡으면 꼬챙이에 꾀어 구워낸다. 개구리 뒷다리 구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지만 신기하게도 이 뒷다리 구이에선 닭고기 맛이 난다. 제법 고소하고 담백해 처음 인상을 찌푸렸던 이들도 금새 그 맛에 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함께 맛을 봤던 친구들 중에선 지금도 그 맛을 찾는 '마니아'도 생겼다. 두 번째, 밀떡구이와 화덕구이다. 화덕구이란 말 그대로 불을 지펴놓은 화덕에 원하는 먹거리를 꼬챙이에 꽂아 구워먹는 음식이다. 밀떡구이는 화덕에 구워먹는 음식 중 밀가루 반죽을 막대기 끝에 돌돌 말아 구워먹는 것을 말한다. 어릴적 누구나 한번쯤은 고구마나 감자, 밤 같은 먹거리들을 화덕에 구뭐먹어봤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화덕구이는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야외에서 화덕에 구워먹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웠던 추억을 주는 음식이다. 막대기에 매달아 놓고 빨리 익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 해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독특한 추억이다. 세 번째는 감자삼굿이다. 이 음식은 어린시절의 추억보다는 지난해 완주와일드푸드축제에 가서 처음 접하게 된 음식이다. 감자삼굿은 쉽게 말하자면 뜨겁게 달군 돌로 감자를 익히는 요리다. 적절한 크기의 구덩이를 파고 뜨겁게 달군 돌을 넣은 뒤 돌 위에 감자를 놓는다. 그리고 지푸라기와 함께 황토를 덮어 익어지길 기다린다. 그럼 뜨거운 돌의 열기가 감자를 익히게 되는데, 이게 바로 감자 삼굿이다. 이와 비슷한 요리로는 닭황토구이가 있다. 닭황토구이도 방법은 비슷하다. 갓 잡은 닭을 털도 뽑지 않고 황토옷을 입힌 뒤 화덕에서 구워낸다. 다 구워내고 나면 황토옷이 단단하게 굳어 벗겨내면 털과 함께 빠진다. 중요한 것은 닭을 제대로 구워내기 위해선 3~4시간 정도 구워내야 한다는 것. 오랜 시간 여유있는 마음으로 구워내야 하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요리가 아니다. △ 추억의 음식들이 매력적인 이유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추억의 음식들을 지난해 완주 와일드 푸드에서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완주군이 사라져가는 옛 맛을 지키겠다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복원한 덕분이다. 완주군은 지난해 '완주 와일드 푸드 축제'에서 음식들을 소개했다. 수십가지 추억의 맛을 소개하기 위해 13개 읍면의 '손맛'들을 모아 마을별 경연까지 펼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축제를 통해 오랜만에 먹어본 그때 그 음식들은 나에게 기분좋은 매력을 선사했다. 첫째, 유년시절의 추억을 그리게 하는 매력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 기름진 인스턴트 음식에 찌들어있던 나에게 어린 시절 맛봤던 음식들은 아련한 향수와 함께 친구들과 뛰놀던 추억까지 되새길 수 있게 해줬다. 개구리 뒷다리 구이를 한입 넣었는데 어찌나 추억이 되살아나 웃음이 나던지.둘째, 몸 속 가득 퍼지는 건강함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해서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 시절의 음식들엔 합성조미료나 지나친 기름기가 없었다. 그저 야생에서 건져올린 재료(?)들을 구워내고 삶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 음식들은 신선하고 건강하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듯 순수하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에게 기분좋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갈수록 전자제품과 꽉 막힌 콘크리트 건물 등 도시숲에 갇혀 살아가게 될 내 아이에게 자연에서 뛰노는, 자연을 맛보는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선사해주고 싶다. 보다 넓고 밝은 생각과 마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이 야생음식, 와일드 푸드가 반갑다.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완주군에서만 조명하고 있는 와일드 푸드. 오랜만에 만난 이 음식들엔 우리의 어린시절이, 추억이, 몸 속 가득 퍼지는 건강함이 담겨 있다. 성재민 문화전문 시민기자(선샤인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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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4 23:02

"개구리 뒷다리·메뚜기 튀김 어릴 적 추억의 맛 되살렸죠"

'와일드푸드'는 '야생'이다. 어릴적 시골마을에서 직접 잡아먹던 '그때 그맛'이다. 아마 어린시절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이들이라면 동네 개울에 넘쳐나던 개구리를 구워먹던 뒷다리와 가을철 논에 가면 한가득 뛰어다니던 메뚜기 튀김의 맛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추억속에 존재하기에 '한국 대표 와일드푸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개구리 뒷다리 튀김과 메뚜기 튀김. 와일드푸드축제에서는 구이면에서 그 맛을 선보여 만날 수 있었다.지난해 완주 와일드 푸드 축제에서 개구리뒷다리 튀김과 메뚜기 튀김을 선보였던 사람은 구이면 이의성씨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논밭을 뛰놀며 맛보고 즐겼던 추억의 맛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 자신있게 메뉴를 맡게 되었다. "우리 나이에 어린 시절 개구리뒷다리나 메뚜기 튀김 안 먹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들 놀러나가서 쉽게 먹는 것들이었죠. 그때는 농약도 없고 환경도 깨끗하다 보니까 개구리나 메뚜기 보는 게 굉장히 쉬웠죠. 집 앞에만 나가면 있던 것들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어른들 인기가 특히 좋더라고요."와일드 푸드 축제 당시, 개구리와 메뚜기요리 부스는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스를 찾아와 개구리뒷다리메뚜기 튀김을 맛보려 했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흔한 음식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어른들은 추억에, 아이들은 호기심에 관심을 끌만큼 귀한 것이 되어버렸기에 벌어진 일이다. 축제 기간 내내 쉴 새없이 몰려드는 관람객 덕분에 의성씨의 개구리 뒷다리와 메뚜기 튀김 부스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부스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전국 어느 축제에서 개구리뒷다리메뚜기 튀김을 만들어주겠어요? 40~50대 분들은 어린 시절에 먹던 맛이라면서 좋아하고, 아이들은 도시에서는 못보는 것이라며 신기해하면서 바라보더라구요. 아이들 좋아하는 것을 보니 '이런게 산 교육이구나' 싶어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지금은 '이만한 산교육이 어디있느냐'며 자랑스레 말하는 의성씨지만 축제 당시만 해도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개구리와 메뚜기 요리라는 것이 평소에 보기 힘든 별미이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할까 의심도 들었지만 다행히 반응은 뜨거웠다."개구리나 메뚜기 요리라고 하면 사람들이 좀 꺼려할 것 같기도 하죠. 근데 이게 실제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요. 현장에서도 개구리라면 질색하는 아이들이 처음엔 꺼리더니 한입 먹어보면 '치킨맛 난다'며 굉장히 좋아해요. 안먹는다고 떼쓰던 아이들이 오히려 더 달라고 성화를 부리더라니까요. 특히 개구리는 남자들한테 좋아서 50대 이후 남성이나 일부 여성분들은 '마니아'라고 할만큼 열렬히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았죠."개구리뒷다리메뚜기 튀김. 독특하고 추억이 담긴 요리를 선보여 사랑받았던 구이면 사람들은 이같은 축제가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사람들 표정을 보면 저도 행복해지더라구요. 어릴적 작은 추억을 되살린 것 뿐인데 이렇게 좋아할줄은 몰랐습니다. 올해 당연히 또 해야죠." 밝게 웃는 의성씨. 그의 해맑은 표정에서 추억의 음식이 사람들에게 준 '행복바이러스'를 느낀다.성재민 문화전문시민(선샤인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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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4 23:02

금산사 템플스테이 - 비움, 아름다운 채움…산사에서 '깨달음'을 배우다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는 SBS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금시대의 여러 명사들과 함께 우리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신개념 토크쇼가 유행을 하면서 일상에 '힐링(치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올해 여름휴가의 화두 또한 '힐링'이 대세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지인, 연인, 가족과 함께 느림의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이 절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템플스테이는 힐링의 시간을 원하는 이들에게 아주 유익한 체험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이번 휴가철에는 산사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수행을 체험하고자 템플스테이를 찾아오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전북에도 선운사, 금산사, 송광사, 내소사 등 많은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템플스테이 10주년을 맞아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전북 완주 송광사에서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를 개회하여 전국의 150여 가족, 6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금산사는 작년 9월부터 365일 템플스테이를 운영을 통해 힐링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본 기자 또한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산사의 하루를 체험하고 나를 힐링하기 위해 1박 2일 간의 금산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였다.금산사는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부터 산사체험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 전주를 찾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에게 숙소가 부족했는데, 이 때 절간에서 사람들이 지내게 되면서 템플스테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로 금산사템플스테이에 다녀간 이들이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에 많은 수기와 소개를 남기면서 더욱 알려져 올해 8월 휴가철에는 주말보다 평일에 인원이 더 많은 날이 있을 만큼 찾아오는 이가 늘었다. 또한 지난해 9월부터 한 달에 2회 정도 진행하던 템플스테이를 '매일 쉴 수 있는 곳,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365일 운영하기 시작한 이유가 이렇게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돌릴 수 없는 측은한 마음에서다.△ 일감스님의 내비둬콘서트 '나의 마음부터 내비 두세요!' 산사에 찾아오는 이들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자신 스스로의 삶 속에서 지친 마음과 몸, 그리고 복잡한 심정과 고민들을 비우고자 한다. 내면의 치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번뇌의 마음을 들고 찾아오는 수많은 참가들 각각의 경험담과 고민들을 들으면서 작년 7월부터는 '나의 마음부터 내비 두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일감스님의 내비둬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산사를 찾아오는 이들의 인생의 시행착오와 고민에 대한 스트레스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현재는 여름휴가철인 7월말부터 8월까지 매 주말마다 5번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프로레슬러 김남훈의 '가슴 뛰는 청춘들을 위한 이야기', 부모와 아이를 함께 생각하는 의사 서천석, 가수 조성일, 시인 신현수씨가 콘서트에 참여하였다. 마지막으로 풍류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오는 18일에 함께 한다.혜천스님(지도법사)은 '쉰다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 비우고자 찾아온 산사의 생활도 결국 비우고자하는 욕심이 있다면 자신을 내버려두지 못하기에 비울 수 없는 것'이라면서 절의 예법, 도량, 수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저 자신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금산사 템플스테이는 엄격한 규율과 질서로서의 수행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을 '내비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불교의 관습과 예법에 익숙하지 않는 세속인들이 절간에 머물다보면 많은 어려움과 수고로움이 있을 것인데? 라는 질문에 신행스님(지도법사)은 '만약 부처님이 살아 계시다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실까? 안하실까? 라고 물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불교가 단군 이래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은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와 너무 격리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템플스테이는 한국불교의 고유의 문화와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근간으로 속세의 인연들과 함께 하기에 더욱 필요한 불가의 책무이다.'라고 답한다. △ 산사의 하루, 나와 마주하는 힐링의 시간!당신에게 이 소리는 무엇입니까? 차분한 산사의 아침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30여명의 인연들이 둘러앉아 스님과의 대화시간을 맞이한다. 금산사 템플스테이 일감스님(원장)은 좌종을 경건히 울리며 좌중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에게 이 소리는 무엇입니까?', '저에게는 그냥 종소리로 들립니다.', '저에게는 제 마음을 여는 소리입니다.', 'This Sound is...just like a Brightness.'. 참가자들은 제 각각 자신에게 고요히 울리는 좌종의 소리에 대한 반응과 느낌을 나눈다. '참선은 좌종 소리를 자신의 입장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입장으로 듣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울림은 그저 좌종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울림이요, 전 우주의 소리와도 같다. 나의 고민과 고통은 곧 내안에서 나의 입장으로만 바라보기에 그리 아프다.' 라고 일감스님은 선문답하신다. 다시 참선에 든 금산사의 보제루에는 산사의 숲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우주의 소리가 아우라친다. 산사에서 하루의 생활은 이렇듯 자신과 함께 가족,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연인들이 평안하고 자유롭게 느림의 시간을 자족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3시에 입산 후에는 모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산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트레킹하면서 만끽할 수 있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구며 더운 여름을 오히려 즐길 수 있다. 특히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상생하는 연리지(連理枝)를 돌아보며 가족애와 부부애, 연인과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코스도 일품이다. 5시가 되면 사찰의 예절과 문화, 그 의미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다. 정좌, 삼배절, 안행 등 몸을 바르게 하는 예법을 통해 참가자의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다. 저녁공양 후에는 타종체험과 함께 예불을 드린다. 이후 다도와 함께 스님과의 대화를 가진다. 바쁜 일상을 떠나 깊은 산사에서 우려낸 찻잔에 마음을 기울이며 지친 삶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인연들과도 서로 공감하고 교감하게 된다. 참가자들이 묵는 화림선원과 서래선원은 한옥의 멋과 정이 녹아든 아름다움 숙소다. 9시가 되면 이곳에서 일찍 잠을 청한다.다음날 새벽 3시 30분, 새벽예불과 108배, 염주 꿰기 그리고 좌선의 시간을 통해 자신 몸과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고 참선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발우공양체험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똑같이 나누어 먹으며 조금의 낭비도 없는 청결의 마음, 먹는 소리 등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않아 경건의 정신을 배운다. 스님과의 대화시간을 마지막으로 점심공양까지 1박 2일의 금산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끝이 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또한 엄숙히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무엇보다 참가자 스스로가 자신을 먼저 '내비둬'야 함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평안한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그만이다.신행스님(지도법사)은 '템플스테이에 다녀간 사람들이 나만 힐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힐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소원한다.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발 뒤로 물러서 타인의 입장을 오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힐링의 시작이다. 356일 템플스테이를 개최하는 것은 일감스님(원장)을 비롯한 지도법사스님들과 직원, 그리고 자원봉사자까지 고된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이 곧 수행이라 여겨주시는 모든 이들이 있어 금산사를 찾아오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편안과 위안을 얻어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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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7 23:02

"비우려는 것, 자체가 집착 그냥 있으니 행복해져요"

유인자(70. 이하 엄마)씨 가족은 금산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해 2박 3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들은 김제 원평에서 홀로 사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위해 어머니께 금산사 템플스테이로 여름휴가를 권유했다고 한다. 또 미국 펜실베니아로 이민 간 고모님도 귀국한 기념으로 산사체험을 함께 했다. 금산사 템플스테이는 이들에게 어떤 시간과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더불어 '빨리빨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과 자기치유를 잃어버린 도시인들의 정서에 템플스테이의 느림의 시간은 어떤 것일까? 유씨 가족 인터뷰를 통해 잠시 들여다본다.- 금산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이유는?△ 이미숙(47. 이하 큰딸) : 템플스테이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있었어요. 엄마도 쉬고 나도 쉴 겸! 마침 이민 간 고모가 30여년 만에 오셔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겠다 싶었죠.△ 이은주(36. 이하 막내딸) : 스님처럼 생활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좋잖아요. 엄마가 불자는 아니지만 평소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를 늘 하세요. 절에 와서 절하는 법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잖아요.△ 유인자(70. 이하 엄마) : 딸이 오자고 했을 때 기뻤어요. 물론 지금 농사 한철이라 고추도 따야하고 해서 고민했는데, 막상 오고 보니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아요.- 고모님은 외국생활을 오래하셨는데, 산사체험은 처음이신가요? △ 이옥자(60. 이하 고모) :미국 펜실베니아로 이민 간 나이가 27살이었어요. 지금은 하와이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한국의 절은 처음 왔어요. 하와이에서 일본 절을 가본 적이 있어요.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예전에 우리엄마가 불교를 믿으셨던 아련한 기억이 나요. 엄마가 믿으신 종교라 편하게 느껴져요.- 사찰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엄마 :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어서 정말 많이 먹었어요~.△ 막내딸 :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밥을 먹으니 밥맛이 너무 좋아요. 군것질도 없으니 더 잘 먹구요.- 템플스테이에서 체험한 참선, 108배, 스님과의 대화 등의 프로그램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큰딸 : 마음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여기에 오기 전에 나를 아프게 한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참선하고 108배를 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어요. 제 스스로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막내딸 : 비우려고 왔는데 비우는 것 자체도 집착이라고 내비 두라고 하시더라구요.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됐어요. 그냥 흘러가는 데로 자연에 맡기고, 시간에 맡기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씩 알아 가는 것 같아 좋아요. - 이 곳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실 텐데요. 본인의 삶에 변화가 있을까요?△ 큰딸 : 제가 좀 성격이 급한 편인데, 이제 멈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호흡한번 가다듬고 일을 하거나 애들한테도 자꾸 이거 해라 하지 않고 귀 기울일 거예요. - 요즘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인거 아시죠? 템플스테이 또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치유하는 대표적인 힐링 프로그램인데, 주변의 분들에게 추천할 생각이 있나요?△ 고모 : 저는 외국에 살잖아요! 외국 사람들은 이런 거 잘 몰라요. 아마 외국에 소개하면 많이 찾아 올 거라고 확신해요. 많이 더욱 추천하고 싶어요.△ 막내딸 : '불교를 가진 사람들만 가는 것 아니냐'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꽃다지 조성일 가수 등이 오셔서 콘서트 형식으로 '내비둬 콘서트'를 하니까 종교적인 느낌은 거의 못 느껴요. 또 감성을 깨우는 것 같아서 좋았구요.△ 엄마 : 묵주를 꿰면서 정성을 들였어요. 자식하고 함께 머무니 좋았지만, 같이 기도하니까 더 좋았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전국의 사찰들은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들에게 등산로 코스로 잠시 지나가는 절간이자, 단체 관광버스가 오가며 관광객들에게 불당과 법당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절간이요, 불교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기보다 물 한잔 마시거나, 기념사진 한 장 덜렁 찍어갈 뿐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사찰은 여느 다른 휴양지나 관광지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템플스테이는 분명 다르다.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산사의 여유와 느림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회복하는 치유의 힘을 발견하게 한다. 더불어 참선의 수행은 가족, 직장, 친구 등 내 인생의 수많은 관계와 인연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봄으로써 마치 나의 위치를 알게 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나를 그냥 '내비둠'으로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찰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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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7 23:02

기차는 서지 않지만 추억이 서려있는 곳

이제는 더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그러나 간이역은 전 세계적으로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도 간이역이었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 역시 역을 개축해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인상파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됐다. 국내에서도 강원도 원주 반곡역은 화가 박명수씨가 미술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철도청과 한국미술협회 등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끈질기게 설득해 2009년 10월 역 대합실에 비교적 아담하고 깨끔한 '반곡역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소개 돼 꽤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전북에는 호남선과 전라선, 장항선 등 3개 노선과 40개 기차역이 있다. 이 가운데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은 무려 29곳에 이른다. 이용객 수에 차이는 있겠지만 서민들이 몰렸던 도내 기차역의 70%는 발길이 끊기고 있다. 정읍 초강역과 남원 옹정역, 익산 오산리역을 비롯한 5곳은 역 건물마저 없고, 22곳은 역무원마저 배치되지 않은 상황. 여객열차 중 무궁화호가 서는 역은 12곳, 새마을호는 7곳, KTX는 익산과 김제, 정읍, 전주, 남원 등 5곳에서만 정차한다. ■ 가장 오래된 역 '익산 춘포역'슬레이트를 얹은 목조건물로 단순해보이기까지 한 춘포역은 일제강점기 개통 당시 '대장역'으로 불리다가 1996년 이름이 변경됐다. 2007년 6월 기준으로 여객과 화물을 취급하지 않기에 이제는 기차가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곳이 됐다. 논란이 있기는 해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지자체가 코레일로부터 무상 임대를 받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사업이 추진 중이다.■ 수탈 역사 간직 '군산 임피역'군산 임피역사(등록문화재 제208호)는 비교적 옛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임피역의 건립 시기는 1912년, 1921년, 1936년 등 기록이 서로 달라 명확치 않다.아픈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간이역 임피역. 군산 임피역사는 일제 강점기 전북의 농산물을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가 된 군산선의 역사 가운데 하나다. 임피역은 당시 농촌의 소규모 간이역사의 건축양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잘 보존 돼 있어 건축사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소설 혼불 무대 '남원 서도역'소설 '혼불'의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옛 서도역. 2008년부터 기차가 서지 않는다. 옛 서도역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주인공인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닐때 이용하던 장소다. 옛 시골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공간은 지난 2002년 전라선 철도 개량사업 당시 인근에 새 역사가 건립되고 철로가 이설되면서 철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역주민과 사회단체의 보존 건의를 남원시가 받아들이면서 영상촬영장으로 거듭났다. 혼불 문학관 길목에 위치한 이 공간에는 옛 역사와 관사, 철길, 신호기 등이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돼 있다. 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자그마한 역사를 지나 완행열차가 곧 도착할 것만 같은 플랫폼에 서면 곧바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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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0 23:02

호남선 개통 100년 - 일제 '경제수탈' 상흔 딛고 철도 근대화 첨병으로

호남선 철도 역사가 100년이 됐다. 19세기 말 외세의 침입과 함께 등장한 철도는 식민지의 근대화를 위한 첨병이었다. 외국으로부터 철로 부설권을 사들여 경인선을 개통함으로써 조선의 수도와 개항장 인천을 관통하는 축을 움켜쥐게 된 일본은 1905년부터 경부선경의선에 이어 1914년엔 호남선을 개통했다. 물론 군사적 목적이 앞선 철도 개통은 일제의 억압과 침탈의 채찍으로 활용됐으나, 나중엔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철도는 일상생활에 '근대적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시간, 분, 초 단위로 생각하게 했고, 일반인들도 열차를 타고 여행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2012 전북 방문의 해와 호남선 개통 100주년을 맞아 일제 침략과 함께 식민지 근대화의 첨병이 된 철도를 살펴보자.△ 호남선은 일본 억압과 침탈의 상흔호남 지방은 비옥한 곡창지대였다. 호남 지방의 서부를 관통하는 호남선은 우리나라의 간선 철도인 경부선경의선경원선에 비해 정치적군사적 중요성 보다는 경제적 유용성이 큰 노선이어서 일찍부터 철도 개발 필요성이 요구됐던 곳이다.1896년 프랑스는 호남선 철도부설권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직접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1904년 6월에는 호남철도주식회사를 통하여 강경~군산 간 철도와 공주~목포 간 철도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호남철도주식회사는 주식 공모로 자금을 마련함으로써 우리 손으로 직접 철도를 직접 철도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군사상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경목철도(호남선)를 자신들이 건설하고자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어 부설권을 취소하도록 하였다. 그 후 호남선은 1911년 7월 대전연산(39.9㎞) 개통을 시작으로 연산강경(1911년 11월), 강경~이리(1912년 3월), 이리김제(1912년 10월), 김제정읍(1912년 12월), 나주학교(1913년 7월), 학교목포(1913년 5월), 광주 송정나주(1913년 10월), 정읍광주 송정(1914년 1월)이 차례로 개통됐다. 그러나 전주의 지주들은 지맥이 끊기고 지반이 흔들려 도시가 몰락한다는 이유로 호남선 전주 통과를 반대했다. 익산에 군산선이 개통되고 근대 문명을 뒤늦게 안 뒤에야 철도를 유치, 1914년 12월 익산~전주 전라선 첫 구간을 폭 좁은 협궤철도로 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개통된 호남선은 호남 지방의 미곡을 일본으로 수송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호남선의 주요 지점에 미곡 집산지가 들어섰고, 미곡 적출항으로 연결되는 지선도 개통됐다. 대전역에서 호남선과 경부선을 연결할 때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접속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일본이 철도 개설을 위해 노동력을 빼앗고 부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이 겪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인들은 집과 땅, 묘지를 무상으로 빼앗겼고, 공사 현장에서 총살에 처해졌다. 반일 감정은 철도 정거장의 공격으로 나타나 1900년대 초반 의병들에게 경의선 일산역경부선 소정리역 등이 파괴됐다. 1904년 7월부터 1906년 10월까지 철도와 관련해 처형당한 한국인은 사형 35명, 감금 및 구류 46명 등 257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100년 간 폭발폭파를 겪고도 우뚝 선 익산역 호남선 100년의 역사에서 익산역이 갖는 상징성과 중요성은 남다르다. 국민가수 나훈아가 부르고 순창 출신 임종수씨가 익산 황등역을 무대로 작사작곡한 '고향역'처럼 추억을 젖어들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익산역이 개통된 것은 호남선 강경~익산(27.2㎞)과 군산선(24.7㎞)이 동시 개통된 1912년 3월 6일. 고속도로 개통 이전에는 승객 3위의 국내 철도 요충지이자, 1995년 익산군과 통합해 익산시로 거듭나면서 인구 33만의 호남 3위권 도시로 자리매김한다. 해방 이후 이리역 하면 떠오르는 중요한 사건이 바로 이리역 폭발폭격 사건이다. 이리역 폭발은 1977년 11월11일 밤 이리역에서 발생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발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또한 허술한 안전 의식이 인재를 불러왔다는 비판과 함께 이리시가 재건되고 복구되면서 뼈아픈 역사를 거울삼아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익산역 미군 폭격 사건은 1950년 7월11일 낮부터 이리시 철인동에 위치한 이리역과 평화동 변전소 인근 만경강 철교 등에 미 극동 공군 소속 B-29 중폭격기 2대가 폭탄을 투하해 철도 근무자와 승객, 인근 거주민 등 수백여 명이 집단 희생된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고의성 여부를 두고 진실 규명을 진행해 왔고, 2010년 6월 29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사건 발생 60년 만에 미군 전투기가 오폭으로 인한 피해로 결론이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유족들에게는 좀 더 명확한 진상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익산역에 가면 대한적십자 건물 앞에 위치한 3기의 기념비가 그것을 대변한다. 한 가운데 1971년 8월15일 동아일보사가 세운 익산 31 운동 기념비, 좌우에는 1950년 미군의 이리역 폭격 희생자 위령비와 419 학생 의거 기념비가 있다. 2014년이면 KTX 개통과 함께 서울까지 68분이면 왕래할 수 있게 된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이곳 KTX 에 새 역사를 세우고, 환승센터를 중심으로 구도심에 상업문화주거 등 복합기능을 갖춘 신역세권 개발을 추진 중이다. 100년의 시간 속에서 익산의 모습은 역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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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10 23:02

무주곤충박물관·부안누에타운 - 별난 곤충 보고 누에치기 하고… 자연의 신비·추억 속으로'풍덩'

바야흐로 방학과 휴가철이다. 여름방학이면 학생들에게 곤충을 채집하고 관찰하는 과제물이 꼭 주어지곤 했다. 그러나 TV와 컴퓨터에 밀려 이제는 아이들 곁에서 자연이 멀어지고 더불어 곤충도 멀어졌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도 있고, 인터넷을 뒤지면 세상 모든 지식을 배울 수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곤충을 빌미로 어른과 아이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휴식과 여유를 즐기며 잊을 수 없는 그해 여름을 보낼 곳이 있다면 먼 길을 마다않고 떠나볼 일이다. 자연생태체험이 가능한 무주곤충박물관과 부안누에타운을 소개한다.△ 무주 반디랜드의 곤충박물관무주에서도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구천동 계곡 인근에 무주 설천면 무설리에 반디랜드가 있다. 무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천동행 완행버스를 타고, 옛날 호랑이를 몇 번이나 만났을 법한 고개를 몇 개 넘어, 잘 닦여진 도로를 20분쯤 달리면 반디랜드에 당도한다. 반디랜드는 두 산봉우리에 걸쳐 펼쳐진 거대한 자연생태 휴양지인 셈인데, 이곳이 천연기념물로 대접받으며 서식하는 반딧불이 세상이다. 반딧불이는 스스로 빛을 내는 유일한 곤충이다. 예전엔 개똥벌레로 불리며 여름밤 어디서든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청정지역에서만 발견되며, 그래서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닌 깃대종(환경지표)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는 2000여 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8종이 있고 무주에서는 파파리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세 종류가 산다. 반딧불이의 빛은 반딧불이 배의 발광세포에 의해 발생하는데, 화학물질인 루시페린이 생체에너지인 ATP와 분해효소인 루시페라제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옥시루시페린과 빛을 낸다. 이런 반딧불이에 관한 모든 지식은 곤충박물관에 들어가 서성이다 보면 실물과 3D입체영상 등을 통해 저절로 알게 된다. 반딧불이 친구들인 온갖 곤충에 대해서도 물론 깊이 알 수 있다.이곳 곤충박물관은 반딧불이, 장수하늘소, 비단벌레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하여 2000여 종 1만3500여 마리에 달하는, 온갖 곤충이 모여 있다. 다리가 4개인 워커리하늘소, 자웅동체인 데모레우스 호랑나비와 세리세우스 사슴벌레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곤충들이 전시된 박물관으로도 이름 높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과학수사 선진국에서는 법곤충학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곤충과 관련된 정보를 이용해 범죄사건을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법과학의 한 분야다. 실제로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곤충만큼 흥미롭고 매혹적인 존재도 드물다. 곤충박물관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환상적인 다양성과 신기한 무늬, 아른대는 황홀한 빛깔을 지닌 곤충에게서 미적 감각을 배워올 수도 있다. 이렇게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은 곤충세계가 오염지역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연과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발심이 생긴다면 금상첨화겠다. 반디랜드에 와서 곤충박물관만 둘러보고 돌아간다면 절반만 즐긴 셈이다. 최첨단 망원경을 갖춘 반디별천문과학관에서는 태양계의 탄생과 진화, 밤하늘의 별자리,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 등을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다. 반디랜드를 에워싼 칠엽수원과 약용식물숲, 삼림욕장에서 나무그늘 사이로 산책하는 동안 자연과 교감하며 머리와 가슴을 시원하게 비워낼 수 있다.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통나무집과 숲속의 야영장에서 노랑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개똥벌레에 싸여 두런대며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온가족이 온전한 생태환경 속에서 1박2일 즐겁게 놀았으니, 앞으로 남은 삼복염천이 두렵지 않게 더위를 이겨낼 힘을 얻고 온몸에 감흥이 풍성히 쌓일 것이다. △ 부안의 누에타운부안군 변산면 마포 삼거리에서 뽕나무 밭에 둘러싸인 유유 저수지를 지나 10분 더 걸어 올라가면, 기어가는 누에 형상의 산을 배경으로 누에타운이 있다. 이곳 유유마을은 뽕나무로 누에를 키워온 전통 깊은 마을이다. 여기서 누에를 둘러싼 모든 것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고 뽕잎과 오디, 누에고치를 이용한 살균비누를 만들고, 비단실을 뽑아 물레를 돌리고, 전자현미경으로 유전자를 관찰하고, 오디주스·뽕잎차·뽕아이스크림·오디쉐이크를 맛볼 수 있다. 누에나방의 에벌레인 누에는 하늘벌레로 불리며 귀하게 여겨왔다. 오직 신선한 뽕잎만을 갉아먹으며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비단을 만들어내는, 이 청결하고 수수하게 생긴 벌레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적 만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큰담비나방, 공작거울나방, 수녀나방, 행렬나방, 숲너도나무나방 등 누에나방은 나비에 견줄 만큼 아름다우며, 누에나방의 한 살이는 신비 자체다. 누에나방의 유일한 임무는 번식. 수컷은 짝짓기 즉시 죽는다. 암컷도 며칠에 걸쳐 2~300개 알을 낳고 죽는다. 알에서 빠져나온 누에는 벨벳 같은 검은 털가죽으로 덮여 있다. 6~7주 짧은 생애 동안 누에는 4번 잠들고 깨어날 때마다 허물을 벗는다. 매번 더 하얗고 반들반들해지며 크고 아름답게 변하다가 투명해진다. 마지막 허물을 벗고 며칠이 지나면 목이 불그스름해지는데, 변태의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누에는 먹기를 멈추고 소리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실을 잣는다. 이 실은 몸 속에서 생산된 수지질 액체로 만들어낸다. 머리를 계속 이리저리 움직여 300m에 달하는 실을 뽑아내서 달걀 모양의 집을 짓는다. 공기도 습도도 통하지 않는 고치 안에서 누에는 마지막 허물을 벗어 번데기로 변하고 2~3주 후에 나방이 되어 빠져나온다. 기원 전 2640년경 중국 황제의 비 서능이 누에고치로 양잠을 처음 시작한 이래 비단은 실크로드를 통해서만 나갈 수 있었다. 양잠기술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으나 우리나라는 기원전 1170년경 기자가 잠종을 가져와 양잠과 방직술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산업혁명과 각종 직물이 생산되면서 잠업은 차츰 몰락하고 누에는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누에와 뽕잎에 당뇨병 예방과 항암 효과를 비롯한 여러 약리작용이 알려지면서 부안의 누에타운은 누에와 뽕잎을 이용한 각종 산업의 메카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무주와 부안 여행에서 발견한 사실 하나는, 이들 공용버스터미널이 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 몹시 열악한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대합실은 선풍기 한대 없이 한증막처럼 후끈거리고 실내조명은 우중충하고 어둑했으며 카드는 절대 안 되며 좌석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붙어 있었다. 방학이어서 떼지어 내려온 젊은 친구들은 앉을 곳이 없어 장시간 서 있어야 하고, 물 한모금 마실 정수기가 없어 시골 노인들은 화장실 수돗물을 마시고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는 2~3시간 간격으로 다니고 일찍 끊어졌는데, 행여 차를 놓치면 막막했다. 곤충박물관과 누에타운은 크고 번듯한 건물에 온갖 진귀한 것들을 갖추어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이들 매표소보다 못한 공용버스터미널의 허술한 외양은 왠지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환경문제가 심각한 지금, 차 없이도 선뜻 찾아갈 마음을 낼 수 있도록, 편리한 대중교통과 쾌적한 터미널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시급한 대로 먼 곳에서 오는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터미널 대합실에 정수기를 마련하고 카드 사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며, 매표소에서 손님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터미널까지 마중 나가듯 가능한 셔틀버스를 운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객에게도 물 한 바가지 기꺼이 건네고 잠을 청하면 그냥 보내지 않았던 인심 좋은 이야기들이, 전북의 2012가지 숨겨진 이야기에도 담겨 있길 바래본다. /김정겸 문화전문시민기자(프리랜서 작가)

  • 주말
  • 이화정
  • 2012.08.03 23:02

1만원이면 '눈'이 호강…맛집 탐방 '입' 즐거워…함께 여행 '마음' 흡족

수많은 지자체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여행상품을 내놓지만 전북에는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하는 여행이 있다. 단돈 1만원으로 전라북도를 여행하는 '전라북도 순환관광버스'다. 전 국민 누구라도 전북 여행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내놓은 것으로 매주 토일요일마다 출발하는 주말형 여행이다. △ 떴다 하면 매진! 식사 한 끼 가격 밖에 안되는 비용으로 전북을 돌아볼 수 있다니. 코스 때문일까 가격 때문일까. 전북 순환관광은 매년 예약을 하자마자 거의 모든 코스가 매진을 이룰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최근에는 격주로 운행하던 1박2일 부산 코스를 매주 토요일마다 운행하도록 증설까지 했다. 그렇다면 전북도 순환관광버스가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첫째, '만원의 행복'이라는 가격 경쟁력이다. 부담 없이, 기분 좋게 떠날 수 있는 착한 여행이다. 군산구불길 도보 여행, 고창권 순환 관광 등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둘째, 입이 즐겁다. 여행 비용이 저렴한 만큼 식사는 각자 해결해야 하지만 여행객들에겐 다양한 전북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으로 간주된다. 전북 곳곳에서 즐기는 맛집 탐방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셋째, 함께 떠나는 즐거움이다. 지난해 순환관광버스의 성적표를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운행된 서울과 부산 출발 1박2일 코스는 45인승 버스 기준으로 1회 평균 37명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탑승했고, 도내 순환 당일 코스는 1회 평균 44명 관광객이 이용했다. 도내 당일 코스의 경우 거의 매번 매진을 기록하다시피 인기리에 운행됐다. 더불어 만족도 조사도 97.5%. 10명 중 9명 이상의 여행객들이 순환 관광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만족도 높은 여행코스다 보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 처음엔 낯설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금세 친해진 여행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전북 순환관광버스의 숨은 매력 중 하나다. △ 올해도 '완판'될 여행 특산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북 순환관광버스는 높은 관심과 참여 속에 운행되고 있다.'2012 전북 방문의 해'이기에 그 인기는 더욱 뜨겁다. 인터넷 혹은 전화로 '찜'해둘 것. 하루 짧은 여행을 꿈꾸거나 '전북 방문의 해'를 맞아 한 번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혹은 돈이 없어 여행을 떠나기가 망설여진다면 세가지 매력을 한번에 만끽할 수 있는 전북 순환관광버스가 어떨까.성재민 문화전문시민(선샤인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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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27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