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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⑧ 미당을 말하다

미당은 30여년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다. 같은 문단의 사람들, 제자, 미당을 추모하는 사람들 등 다양하다. 이들은 우리가 시집이나 소설을 통해 한 번쯤 접해본 사람이다. 우선 김동리와 정지용은 그의 대표적인 절친들이었다. 현재 한국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문정희 한국시인협회 이사장, 신경림 시인, 김초혜 시인, 이근배 시조시인 등은 그의 제자다. 학계에도 윤재웅김춘식 동국대 교수, 구사회 교수 등 즐비하다. 서지월 시인은 미당의 제자인 전옥란 SBS 구성작가의 소개로 미당댁을 찾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들은 미당 서정주 시인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내기도 하고 쓴 소리도 마다않는다. 미당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많은 에피소드를 전해줬다. 작품으로 접하는 유명 시인과는 또다른 인간적인 미당의 면모가 생생한 목격담으로 되살아났다. 이들 중 본지에는 서지월 시인, 구인모 연세대 교수, 구사회 선문대 교수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서지월 시인만이 아는 미당의 비밀= 서지월 시인이 기억하는 미당은 자신의 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1994년, 미당이 199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때였다. 당시 미당은 서지월 시인에게 우리 오천년 역사에서 신라시대 최고의 문인은 최치원, 고려시대에는 이규보, 조선시대에는 서거정,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는 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올해는 내가 노벨상을 탈 것 같다 며 왜냐하면 내 시가 외국어로 번역이 많이 되었고 내 시를 번역했던 사람이 노벨문학상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당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서지월 시인은 또 미당이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미당 댁을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도 공개했다. 당시 미당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나는 며칠 안 있으면 미국의 아들네 집으로 갈 것이다. 우리 민족은 딱한 민족이야. 누구든지 잘되면 헐뜯어서 깎아 내리기를 밥 먹듯이 하는 민족이야 내가 이런 땅에서 어떻게 살아. 지긋지긋해이 말을 들은 서지월 시인은 가슴이 철렁했었다. 서지월 시인은 아무래도 자신의 친일 시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고 했다.서 시인은 문단에서 잘 알려진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그는 어느 해 추운 겨울 집에 있는 감홍시를 따다 미당에게 줬다. 당시 미당은 자네가 준 감홍시 말이야, 그 속에는 까만까치가 파먹은 것이 들어있더구만이라고 했다. 다음해 1월 미당의 말은 곧 시가 되었다. 시는 서지월이의 홍시라는 제목으로 <80소년 떠돌이의 시>에 수록돼 있다. 시에는 대구의 시인 서지월이가 자셔 보이소 하며 저희 집에서 딴 홍시들을 가져왔기에 보니 거기엔 산 까치가 그 부리로 쪼아 먹은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서지월 시인은 정말 나를 아껴주신 분이었고, 지금도 그립다고 말했다.△미당수업 마지막 수강생 구인모 교수= 동국대 국문과 96학번인 구인모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조교수는 이미 은퇴한 미당의 강의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대학원에 입학한 1996년 9월 당시 홍기삼 교수(전 동국대학교 총장)가 대학원생들을 위해 미당에게 삼고초려해서 수업을 마련한 것. 구인모 교수는 감히 범접조차 하지 못할 전설이었다 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미당수업의 마지막 수강생이었다고 말했다.구 교수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81세였던 미당은 남현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대학원 수업을 했고, 학생들에게 맥주를 한 병씩 사오라고 시켰다. 학생들에게 권하지는 않고 수업할 때 맥주 3병 정도를 비웠다. 구 교수는 꼭 생마늘과 함께 맥주를 드셨는데 한 번도 취하신 적이 없다고 말했다.수업은 문답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이 미당과 교유한 인물이나 시 세계에 대해 질문하면 미당이 답해주는 식이었다. 개강첫날 미당은 제자들에게 문학이론은 내가 공부할 때보다 더 좋은 책이 많다.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하고 내가 곧 죽으니까 나랑 교유했던 문학인이나 나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위주로 물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학생들은 미당의 풀어놓는 당대 문인들과의 교유에 귀를 쫑긋 세웠다. 시인 이상 김억오장환 등과의 에피소드가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구 교수는 더욱 놀라웠던 건 미당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임화김남천과 같은 프롤레타리아 문인들과의 친분관계였다 며 우리가 식민지 시기의 문인들의 교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접근하지 않았나 라는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구 교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일화 한 가지를 들려줬다. 당시 <화사집>의 일부 구절들이 일본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질문을 미당에게 했었는데, 갑자기 화들짝 놀라면서 일본말로 답변을 해줬다고 한다. 구 교수는 상당히 좋아하는 시인이라 하셨고, 식민지 시기 일본말을 하던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신 듯 했다고 말했다.△ 미당은 나에게 가깝고도 먼 스승 구사회 교수= 애증이랄까,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동국대 75학번인 구사회 선문대 교수는 박정희 유신정권 시기의 일화를 들려줬다. 구 교수는 당시 선배들과 함께 유신반대 서명을 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미당이 그를 찾아왔다.미당은 구 교수를 사범대학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고창고보 다닐 때 광주학생운동지지시위 주모자로 권고자퇴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미당은 구사회 교수에게 지금 세상이 일제시기와 비슷하다 고 했다.구 교수는 나한테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중앙정보부에서 당신이 지도교수니까 책임을 지라고 압박을 넣었던 것 같다며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말했다.구 교수는 미당에 대해 시대문제를 적극적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는 없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수업 시간에도 일제시기 문인과 교류한 내용만 얘기했을 뿐 시대를 비판하진 않았다고 했다. 박정희의 유신에 대해서 말한 적도 없고 전두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시대가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체념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구 교수는 미당이 1980년대에 전두환 지지연설을 한 이후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줬다. 그는 1950~70년대 보였던 친 정부적인 상황에 대해선 별로 알려지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지만, 80년대 이후 소문이 확산돼 동국대에서도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며 남영동의 미당댁을 찾아가는 제자들 사이에서도 파가 갈렸다고 말했다.구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미당의 삶과 행적은 미당 서정주 개인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일제 청산과 함께 역사의 중심에 놓여있고, 한편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대다수 한국의 삶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런 지점들을 고민하면서 미당 서정주의 역사적 과오와 함께 그의 문학적 성과도 함께 껴안고 가야할 때입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9.22 23:02

"긴장의 끈 놓지 않고 시 써 나갈 것"

신석정문학상에 복효근 시인(54)이 선정됐다.(사)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는 제2회 신석정문학상의 주인공으로 도내 출신인 복효근 시인의 7번째 시집 <따뜻한 외면>을, 신석정촛불문학상은 경기 출신 정지윤 시인(52)의 샘 치과를 뽑았다고 20일 밝혔다.심사위원은 신경림 시인을 심사위원장으로 이시영강인한나태주 시인이 맡았다. 이들은 수상 작품의 문학성과 수상자의 인품을 높게 평가했다.복효근 시인은 신석정 선생은 시나 문학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힘겨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큰 시인이다며 그 이름 주어진 상이 기쁘지만 한편으로 버겁고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복 시인은 이어 시인으로 잘 살아와서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해 준 상이라기보다는 문학의 변방에서 시 쓰는 사람에게 주는 격려라고 여기겠다며 나이 들면서 느슨해지기 쉬운데 긴장을 잃지 말고 시를 쓰라는 뜻으로 생각한다는 소감을 덧붙였다.남원 출신인 복효근 시인은 전북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199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해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마늘촛불> 등을 펴냈다. 시선집으로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 있다. 편운문학상 신인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촛불문학상의 경우 전국에서 250여명이 응모해 예심을 거친 10여명 중 정 시인을 단독으로 뽑았다.정지윤 시인은 뜻깊은 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어둠의 시대를 밝힌 신석정 시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기 해 더욱더 정진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정 시인은 용인 출신으로 2009년 <시에>로 등단했다. 제1회 민중문학상 신인상 시 부문,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제6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을 수상했다.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은 석정문학제의 시작과 함께 다음달 24일 오후 3시 부안군 부안읍 석정로에 있는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신석정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3000만 원과 상패, 신석정촛불문학상은 상금 500만 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한편 석정문학제는 24일부터 2일간 부안과 전주 일원에서 진행되며 석정시 전국 낭송대회, 시화전, 문학 강연, 시극 공연, 촛불의 탑 향연 등이 예정됐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9.21 23:02

박남준 시인 등단 30주년 기념 '문학의 밤'

박남준 시인(59)의 등단 30주년을 기념해 독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마련된다.(사)전북작가회의(회장 김병용)와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은 18일 오후 7시 전주 한옥마을 내 최명희문학관 비시동락지실에서 박남준 시인을 초청한 ‘문학의 밤’을 연다. 박 시인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 <중독자>의 발간을 축하하고, 등단 30주년을 맞은 시인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다. 이날 ‘시인 박남준에 중독되다’를 기치로 시 낭송, 노래 부르기를 비롯해 시인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진다. 후배 문인인 김종필·정동철·김선경 씨가 박남준 시인의 삶의 단편을, 경종호·박태건·문신·신재순·하미숙 씨가 시인의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김병용 전북작가회의 회장은 “이번 시집 <중독자>는 더욱 아득하고 유연해진 시인의 시 세계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남준 시인은 전라남도 영광 출신으로 전주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등단했다. 시집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등과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박남준 산방일기>,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등이 있다. 전주시 예술가상, 거창 평화인권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번 행사의 참가는 누구나 가능하며, 참가비는 2만 원이다. 자세한 문의는 전화(063-275-2266/284-0570).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9.18 23:02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 잘못 알려진 동학사상 재정리

2014년 동학농민혁명120주년을 맞아 1월부터 필자는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를 집필하기 시작했다.책을 쓰게 된 동기는 크게 셋이다. 첫째는 1994년 동학농민혁명100주년 전후로 동학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잘못 알려지고 부족한 동학사상과 역사에 대한 집대성이었다. 둘째는 필자가 동학역사공부의 스승으로 모셨던 삼암 표영삼 선생의 저서 〈동학〉이 2권까지 출간되었으나 노환으로 환원함으로써 제일 중요한 3권이 미작으로 출간되지 않은 아쉬움에서다. 셋째는 많은 사람들이 동학 하면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을 떠올리는 것에 대한 그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동학창도주 수운 최제우 선생에 대한 자세한 조명을 하고 싶어서이다.그래서 작년부터 본격 집필을 시작했으나, 필자가 근무하는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이 120주년을 맞아 전시관 및 낙후시설 정비공사에 몇 개월 걸렸고, 전국에서 연달이 개최되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집필에 몰두하기에 부담스러워 중단하였었다. 그러다가 올 5월쯤 신인간 출판사에서 전격 필자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니 집필을 완성하여 달라는 제안에서 다시 필을 잡았다.이번에 출간된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은 전체 내용 중 상권에 해당된다. 상권의 내용은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일대기와 동학에서 파생된 신흥종교,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약사 순서로 구성했다. 내년 2016년에 출간 예정인 하권에는 동학2대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과 전봉준장군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상권을 집필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동학의 어떤 내용을 중심에 둘까였다. 교중기록을 우선하다보면 한 교단의 교조라는 위상문제로 역사의 사실에 멀어질 수 있다. 관변기록을 우선하다보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초점에 맞춰져 역사의 진실이 왜곡 될 수 있다. 학계의 논문에 우선하다보면 학술적 차원에서의 대중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역사의 공감에 거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다양한 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으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중심과 객관성에 우선하고 역사의 사실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개한 것이다. 또 학문적 위상도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으며, 가능한 대중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런데 수많은 동학 관련 책들의 이야기들의 내용들이 겹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비사(秘史)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사실 비사라고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관심들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비사(秘史)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학(東學)그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비사이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있고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분들도, 필자가 보기에는 동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올해 8월 초 KBS에서 방영한 역사저널 그날에서 동학농민운동편이 화제가 되었다. 담당 아나운서가 해설자의 설명에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동학혁명이 발생한 원인 중에 하나가 조병갑의 가혹한 착취였다.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장군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들이 혁명을 일으키자 조병갑은 도망갔다가 파직되어 섬으로 유배되지만 곧장 복직한다.1898년 6월 2일 해월 최시형 선생은 서울로 압송되어 교수형을 당한다. 그런데 사형선고를 내린 고등재판소 판사 중에 조병갑이 끼어있었다. 담당 아나운서는 조병갑이 파직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조병갑이 다시 복직하여 해월 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가 되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뒤틀리고 어이없는 우리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된 것에 감정이 격해 진행자가 눈물까지 흘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구한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에 동학농민혁명은 좌절하고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며 해월선생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탐관오리들이 친일파로 연결되고, 지금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세력으로 군림하는 현실! 영화 암살이 성공적으로 흥행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학이나 친일파 문제는 알려져서는 안 될 역사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들은 동학-일제-해방으로 연결되는 시대를 제대로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와 현대사는 가능한 적게 언급하려 하고 일본과 관련된 것은 가능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비사(秘史)가 있다면 이렇게 해서 생겼을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5.09.18 23:02

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⑦ 미당을 기리는 사람들

이 가을에 오신 손님 이 세상에서 제일로 쓸쓸한 신발을 신고또 다시 저 혼자서 떠나서 가네 - 이 가을에 오신 손님 〈노래〉-9월은 미당 서정주의 절창이 생각나는 달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겼어도 미당은 세상을 떠난 뒤 돌팔매질을 당했다. 친일과 독재옹호의 과오 때문이다.미당과 함께 돌팔매질을 돌파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미당의 과오를 덮고 미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해도 기념 사업회를 만들어 문학적 성과를 다양한 형태로 재조명한다. 학술세미나와 문학제를 열고, 추모시도 바치고, 시 낭송회, 백일장 등 각종 행사를 연다. 개인적으로 미당의 묘제(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에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미당과 관련해서 여러 말이 있지만 문학은 문학으로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기리고 있나= 미당을 기리는 이들은 전국단위의 단체를 만들어 미당 관련 행사를 열기도 하고, 각자가 사는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기리기도 한다. 주로 미당과 사제, 친구 관계로 직접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지만 개인적인 인연조차 없는 사람도 상당수다. 심지어 미당의 정치적 행보를 보고 반감을 가졌다가, 그의 작품을 보고 추모에 동참한 사람도 있다. 구성원들이 다양하다.△ 미당의 제자들= 미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미당이 동국대학교에 재직할 때 제자였던 윤재웅 동국대학교 교수와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다.윤재웅 교수가 미당의 제자가 된 건 우연의 일치였다. 윤 교수가 동국대에 입학했을 1981년 당시 미당은 이미 은퇴하고 없었다. 그런데 그는 2학년이 되던 1982년 소설론 수업에서 미당의 강의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담당교수가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대타로 수업을 맡은 이가 다름 아닌 미당이었다. 윤 교수는 이런 인연을 계기로 미당 연구자가 되었다. 미당 사후엔 미당 홍보대사라 불릴 정도로 미당을 기리는 활동에 열심이다. 그는 지난 2010년 다른 학자들과 함께 논문을 엮어서 낸 연구서인 〈서정주-미당 영원한 소년의 만족 없는 탐구시〉에서 질마재마을의 미당시문학관 개관에 투신했고,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미당문학제를 만들었으며, 남현동 자택 복원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연구실에 앉아 논문 쓰는 일 못지않게 외부 일을 많이 했다 고 밝혔다.현재 미당기념사업회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윤 교수는 이남호(고려대)최현식(인하대) 교수와 이경철 문학평론가, 전옥란 작가 4명과 함께 지난 6월 22일 미당 시 950편이 담긴 〈미당 서정주 전집-시〉 5권을 발행했다. 내년도 자서전, 산문, 시론, 방랑기, 소설 등을 엮은 전집 15권을 더 출간할 계획이다.군산 출신의 문효치 이사장은 문학청년시절부터 미당의 시를 좋아했다. 동국대에 간 이유도 미당에게 직접 문학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문 이사장은 미당이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당 시의 깊이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당관련 사업에 두루두루 참여하고 있다. 미당기념사업회 회원이고, 미당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한국문인협회의 이사장이다. 그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절기마다 발행하는 월간지(계간문학)에 다시, 서정주를 노래하다, 이메일 대담 등을 담은 특집호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동국대학교 출신 문학인으로 구성된 동국문학인회와 공동주관으로 미당 시 낭송회, 학술세미나 등 추모행사를 열 예정이다. 또 그가 발간하는 문학지 미네르바에도 미당 기념행사 기사와 추모시를 실어 개인적으로 미당을 기리고 있다. 문효치 이사장은 미당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시인이다 며 그 분을 기리는 일이야 말로 한국 현대시사를 정립하는 일이기 때문에 추모 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민족서정시인 서지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지월 시인은 미당을 기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고 자부한다. 서 시인은 지난해부터 치러진 미당 묘제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를 맡고 있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활동한다. 미당의 아들인 승해씨와 윤씨가 미국에 있어서다.미당 생전에도 미당과 가까이 지냈다. 1년에 한 두 차례씩 10여 년간 미당의 서울집 봉산산방(蓬蒜山房)에 갔다. 사후에는 미당기념사업회와 미당문학회 등 미당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지난 2009년부터 미당기념사업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고, 지난 2월 도내에서 만들어진 미당문학회에선 창간호 편집위원이다. 미당문학회 창립행사에서는 미당 서정주를 기리는 시 오천년을 살아오신 분을 지어 낭송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내가 누구보다 미당을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했다. 이어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 고창출신이지만 본향은 대구 달성이다 며 같은 달성 서 씨로서 오래전부터 가깝고 허물없이 지냈다고 말했다.△전북 미당문학회의 주축들= 미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도내에서는 김동수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송하선 우석대 명예교수 등 원로급 문인이 중심이 된 미당문학회가 만들어졌다. 미당문학회의 주축인 김동수 교수와 송하선 교수는 전주에서부터 고창의 미당시문학관까지 부지런히 오가며 미당기념사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10월부터 11월까지 미당시문학관에서 미당문학 학술심포지엄개최, 미당 시 서예전, 미당 시비 건립 등 다양한 행사를 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당문학회 차원에서 종합문예지 〈미당문학〉과 〈미당시선집〉을 발간할 예정이다.미당문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동수 교수는 자신이 미당추모사업을 열성적으로 할 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는 항일문학을 전공했던 문학도로서 미당의 친일행적과 독재옹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당의 작품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미당이 한국인의 전통과 언어, 한국인의 심성을 신들리게 표현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누구보다 미당을 홍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송하선 우석대학교 명예교수는 현재 미당문학회 고문이면서 미당시문학관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송 교수는 1년에 꼭 네 번씩 고창에 간다. 10월부터 11월까지 미당시문학관에서 열리는 미당문학제에 참석하고, 미당 기일인 12월 24일에는 묘소 제사에 가기 때문이다. 그는 미당이 구사한 시적 언어를 보고 있노라면 허기를 채우는 기분이 든다 고 했다. 이어 이남호 교수가 인류역사상 모차르트 음악과 미당의 시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9.15 23:02

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⑥ 미당시문학관·생가 관리, 이대로 좋은가

미당의 고향인 고창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무게와 함께 무심한 인정에 대한 탄식을 불러일으킬 법하다. 질마재 마을에 있는 생가는 아무런 생활도구조차 없이 방치돼 있고 문학관 역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 시설보수와 콘텐츠 마련이 시급해 보이지만, 미당의 과오인 친일과 독재옹호 때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미당의 문학적 업적과 과오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하지만 미당문학관과 생가가 있는 곳은 선운산과 인접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곳이며, 그의 문학적 모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으로서도 좋은 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시대적 관점에 통용될 수 있는 차원에서 그 방안을 모색한다.△부끄러운 흔적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그 곳에는 생가와 시 문학관 등 미당의 생애와 시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시의 정부, 국민시인이란 명성이 무색케 할 만큼 초라하다.지난달 21일에 기자가 들렀던 미당생가. 생가의 담장은 낮게 둘러쳐져있고, 초가집 한 채와 창고가 덩그러니 서 있다. 미당이 살던 때의 모습을 재현한 초가지붕,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상가수의 소리) 라고 일컫던 우물 등 미당의 원초적인 삶의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집 벽 곳곳에 있는 수많은 낙서자국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연인끼리 사랑을 과시한 문구나 방명록 등 다소 민망한 흔적이 여러 남아있었다. 또 생가의 방문은 거의 잠겨있고, 유일하게 열리는 창고는 안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었다.서정태 옹은 현재 고창군에서는 잡초를 제거하거나 문에 창호지가 찢어지면 바르는 정도의 보수만 한다 며 관리를 철저히 안한다고 말했다. 서 옹은 이어 원래 집 안에 형님께서 생전에 쓰던 가재도구가 있었는데 모두 없어졌다 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대목이다.미당 생가에 인접한 개울을 건너면 미당 시 문학관이 나온다. 문학관은 폐교된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 분지를 활용해서 만들었다. 지난 2013까지 수억 원을 들여 시설을 보강하고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당의 유품과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어, 미당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미당 시문학관 관리 담당자는 문인과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 며 하루에 50여명 정도 방문한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미당 문학을 설명할 전문적인 학예연구사가 없다. 미당의 유품관, 작품전시관 등으로 구획을 나눈 전시실에 대한 지적도 따른다.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은 유품이 항목별로 나열만 되어있을 뿐 테마를 담은 전시가 없다 고 꼬집었다.△주민쉼터와 학생 교육기능만 하는 봉산산방(蓬蒜山房)= 고창에 이어 지난 5일 기자가 취재하러 갔던 봉산산방(蓬蒜山房). 미당이 1970년부터 2000년 12월 24일 타계할 때까지 30년간 살던 집이다. 곰이 쑥(蓬)과 마늘(蒜)을 먹으면서 웅녀가 됐다는 단군신화의 내용을 갖고 미당이 직접 지었고, 한국 신화의 원형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해 있다. 모두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에는 미당이 실측하여 만든 건축설계도와 생전에 즐겨 입었던 의복과 소품 등이, 2층에는 자신의 작품을 친필로 쓴 서예와 집필도구, 저서, 여권 등의 유품이 진열돼 있었다.관악구청이 제시한 미당 서정주의 집 설명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 전시돼 있는 미당의 주요 유품과 저서들은 고창 시문학관에 소장되어 있는 전시품 중 일부를 복제한 것들과, 동국대학교에서 소장품을 기증받은 것이다. 미당의 문학적 업적을 외면할 수 없다는 취지하에 지난 2011년 서울시가 예산을 들여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현재는 관악구의 예산으로 관리하고 있다.실제로 봤을 때 미당 생가에 비해 관리와 보존은 잘 돼 있었다. 이곳에서 관리를 담당하는 공익근무요원 김성준 씨(22)는 시설보수와 청소가 꾸준히 잘 이루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그러나 이곳은 주로 학생들의 교육 용도나 주민 산책코스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김 씨는 하루에 20명 정도 방문하는 데 주로 학생들이다 며 주로 학교 과제 때문에 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인 이모 씨(53여)도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올 때 둘러보기만 한다 며 형식적인 관리보다 방문객에게 지식을 주는 확실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관악구청에 자문을 하는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봉산산방은 30년 동안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 곳이라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며 문화적 마인드를 되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고 말했다.△체계적인 관리vs자율적 관리=미당의 생가와 시문학관 관리문제에 있어서도 그의 정치적 성향과 행보에 대한 평가가 개입된다. 그 결과 담당군청도 조심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창군청 담당자는 다음해에 미당 생가의 낙서자국을 지우는 등 일부 관리가 부실한 부분을 점진적으로 보수할 계획이다 고 말했다. 문학관의 콘텐츠 정책에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관리중심으로만 운영하고 있어서 고려해볼만하지만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족단체의 반대 민원이 심해 미당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게 조심스럽다 면서 미당을 반대하는 측과 절충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봉산산방을 관리하는 관악구청은 고창군청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극심한 민원이나 반대의견이 상대적으로 적어서다.전문가들의 입장은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 지자체 단위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자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은 미당 시 문학관은 미당 문학의 변천사를 시기별로 드러낼 수 있는 콘셉트로 전시공간을 구성하고, 전문적인 학예연구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미당 생가는 조경시설을 보완하고 잘 꾸민 벤치 등을 둬 관광마케팅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재웅 교수도 미당 유품을 가지고 서울과 고창이 교환전시도 하고, 미당 문학을 소재로 문학관 앞에서 공연행사나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반면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서정주가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의 친일행각이나 친 권력적인 행보의 면면을 살펴볼 때 민족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며 국가 재정이나 지자체 재정으로 미당의 행적을 관리하는 것은 반대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이어 미당의 생가와 시문학관 관리는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보다 미당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강변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9.08 23:02

[출판문화산업진흥원 '9월의 읽을 만한 책']독서의 달, 마음의 양식 채워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이재호)은 2015년도 9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 도서 10종과, 9월 청소년 권장도서로 〈청소년을 위한 토닥토닥 명언 노트〉 등 도서 10종을 선정 발표했다.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문학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유아아동 분야의 책을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발표하고 있다.9월의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 이들의 발문을 요약 소개한다.■ 성공한 시인이 말하는 삶△마흔두 개의 초록(마종기/문학과지성사)마종기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예술적 명문가에서 태어나 약관 20세에 시인으로 등단해서 60년 가까이 의사로, 시인으로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성공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운명의 실험이나 심술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비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시인은 남의 선망을 받을 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불평할 일,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나직이, 에둘러 읊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륜은 이제 인생의 시련을 상처나 모욕으로 받아드리기 보다는 수용하며 성찰하게 해 주었다. 추천자 서지문(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멋'에 대한 남성들의 집념△명화로 보는 남자의 패션(나카노 교코/이연식/북스코프)나카노 교코는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로부터 하층민에 속했던 어릿광대나 소매치기까지, 또 어른부터 아이까지의 차림새를 관찰하면서, 각선미에 집착한 루이 14세의 고뇌, 벼룩과 이가 들끓어도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멋에 대한 남성들의 집념, 가발과 수염의 어쩔 수 없는 상관관계, 보기에도 민망한 코드피스(샅주머니) 등등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쉽고 유머러스하게 펼쳐낸다.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대가들의 진지한 그림에 나카노 교코는 재미라는 새 옷을 입혔다.추천자 김영숙(미술 에세이스트)■ 韓-유라시아 문명에 대한 고찰△유라시아 역사기행(강인욱/민음사)고고학자인 저자는 이 책의 중심축을 중앙아시아의 초원 문명에 두면서도, 그런 유라시아 문명과 한국 문명의 연관성에 대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여 천착한다. 특히 한반도 문명의 고유성만을 강조하거나 한국인의 대륙 기원설만 신봉하는 단선적 역사인식을 뛰어넘어, 한국 문명의 형성과 진화 과정에서 부단하게 접촉한 유라시아 문명과의 관계를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쉬우면서도 수준 높게 설명해준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 일본인 학자가 제기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의 탄생 배경을 유라시아의 원대한 역사적(고고학적) 맥락에서 설명한 점도 흥미롭다.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대사회 신화의 힘△신화를 찾는 인간 롤로 메이(신장근/문예출판사)신화는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와 스마트폰,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는 오늘날, 신화는 과거의 유물이나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만 유용한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실존주의 치료의 대가 롤로 메이는 현대인의 우울증과 고독, 불안과 약물중독은 신화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선언한다. 신화를 경시하는 태도가 혼란과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롤로 메이는 이 책에서 학문적 깊이와 넓이, 그리고 풍부한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이트에서 출발하여 미국신화와 서구의 각종 문학작품을 분석한다.추천자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세계 곳곳 이색적인 장소 소개△장소의 재발견(엘러스테어 보네트/박중서/책읽는수요일)이 책은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무관심한 장소의 확산에 경고를 보낸다. 그 대신 토포폴리아(topophilia), 즉 장소에 대한 본질적 애착을 강조한다. 추억의 비밀 장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다. 보네트는 각박한 삶을 멀리하고 싶은 욕망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토포폴리아를 일깨우기 위해 세계 곳곳의 이색적인 장소 47개를 소개한다. 잃어버린 곳, 숨어 있는 곳, 주인 없는 땅, 죽은 도시, 예외의 장소 등 항목으로 나누어 레닌그라드, 메카, LA공항 주차장, 국경 초소, 공군기지 등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추천자 서병훈(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행복의 크기가 딜레마 해답△행복, 경제학의 혁명(브루노 S. 프라이/유정식 외)이 책은 개인의 실질적 행복감(주관적 안녕감)을 측정하는 것이, 그간 경제학이 갖고 있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효용을 중요시하지만, 정작 효용을 측정하지 못하고, 소득 등의 대체물로 추정해온 경제학의 고민이 심리학, 사회학 등이 연구해온 개념을 통해 일정 정도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경제학의 여러 논의와 접근을 연계시킨다.추천자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맛깔난 옛 식재료 소개△하리하라의 음식 과학(이은희/살림출판사)여러 권의 좋은 과학책을 낸 바 있는 저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음식을 먹어 왔으며, 그 식재료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월별로 나눈 각 장마다 떡국, 삼계탕, 햇과일 등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전통 명절과 연관지어서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과 과학 지식을 잘 버무려서 과식하지 않고 물리지 않게 맛깔나게 내놓는다.추천자 이한음(과학전문 저술번역가)■ 정확한 관찰이 통한다△설득하고 싶은가? 스토리로 승부하라(신성진/새로운제안)책은 스토리의 힘에 주목한다. 밋밋함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게 스토리라 강조한다. 스토리가 차이와 가치를 창조하고 유행과 명품을 만든다고 봐서다. 이럴 때 스토리는 좋은 거짓말이다. 생활주변은 스토리전쟁터다. 흔하디흔한 무언가에 특별하고 재미난 스토리가 입혀져 눈길발길을 끌어 모은 사례는 숱하게 많다. 벽화마을, 지역축제, 영화배경 등 관광명소 상당수가 스토리의 채색결과 덕이다. 물론 모든 스토리가 다 통하진 않는다. 정확한 관찰이 녹여든 본인만의 메시지 작성과 전달에 치중하라 권한다.추천자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강소천 선생의 동화시 25편△조그만 사진첩(강소천/재미마주)우리 아동 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친 강소천 선생의 탄생 100년을 맞아 60여 년 만에 다시 복간한 동화집이다.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전쟁의 혼란과 가난 속에서 어린이들의 메마른 정서를 흠뻑 적셔 준 것이 이 동화책이었다. 13편의 동화와 동시 12편이 함께 실려 있다. 이들 동화와 동시에 담긴 보편적 정서는 가족애와 그리움이다.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 주는 잔잔한 감동과 위안이다.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홈페이지를 통해 강소천 선생의 생애와 동요, 동시, 동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수석교사)■ 아이가 즐길만한 글그림 모음△모두 나야 (이성표/엔씨소프트)이성표의 그림책 〈모두 나야〉는 높이와 넓이와 위치와 방향이 모두 아이에게 맞춤한 창이라 할 만하다. 아이 손으로 펼쳐 들기에 적절한 판형의 그림책을 열면, 아이가 혼자서도 싱긋 웃으며 즐길 만한 글과 그림이 이어진다.세상 모든 존재와 쉽게 동일시되는 아이다운 어법으로 곧바로 나는 무엇이라고 말하는 텍스트는 장자(莊子)적 시(詩)이다. 여백 많은 그림과 함께 매 장면 시화 한 점을 구현하는 한편 순정한 이야기의 세계를 유려하게 이어간다.추천자 이상희(그림책 작가, 시인)자료제공=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5.09.04 23:02

수필 속에 흐르는 인간애 〈사람과 수필 이야기 - 김경희〉

수필가 김경희씨가 수필집 <사람과 수필 이야기>를 냈다(수필과비평사). 수필집 <내 생명의 무늬>를 발간한지 9년만이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수필은 종교 이상으로 삶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은 말할 것 없고 지옥에도 못 가는 영혼을 위해 고민할 수 있는 작가는 역시 수필 쓰는 분이어야 한다”는 수필관을 제시했다. 인생의 교훈이나 심오한 철학이 아니더라도, 수필 쓰는 시간만큼은 착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시간여행이라고 덧붙였다.“슬픔 속에 발담그고 살아가는 사람, 비를 맞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가슴 짠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사람을 응원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인간애’가 수필 전편에 흐른다. ‘하늘이 나를 이 땅에 낸 뜻은’ ‘사람과 수필’ ‘내 마음 따뜻했던 날들’ ‘문인으로서의 생명공학’ ‘아내의 세월’ ‘느티나무의 미소’ 등 6부에 걸쳐 40여편의 수필을 수록했다.순창 출신으로, 1979년 <전북문학>과 198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둥지 안의 까치 마음> <도공과 작가>, 시집 <태양의 이마> <시목> 등을 냈다. 현재 덕진문학 지도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지역 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김원용
  • 2015.09.04 23:02

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⑤ 친일·군사정권 협력 어떻게 볼 것인가

친일 문제는 민족의 큰 숙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대통령 동생인 박근령의 친일망언, 현직 정치인들 윗대의 친일행적 등이 이슈가 됐다. 미당 서정주의 친일과 독재옹호 역시 여전히 그의 문학세계 전반의 공과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국민시인이란 위상에 큰 오점을 남겼으며, 문학적 성과와 맞물려 지금도 진행형의 논란거리다.△1940년대 초 친일시 10여편= 미당의 시적 이력에 친일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와 관련해 밝혀진 시만 해도 10여 편이다. 1942년부터 2년여에 걸쳐 쓰인 작품들, 시의 이야기-국민 시가에 대하여(매일신보, 1942, 평론),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춘추, 1943, 수필), 스무살 된 벗에게(조광, 1943, 수필), 항공일에(국민문학, 1943, 일본어시), 최제부의 군속지망(조광, 1943, 소설), 헌시(獻詩)(매일신보, 1943, 시), 보도행(조광, 1943, 수필), 무제(국민문학, 1943, 시) 오장 마쓰이 송가(매일신보, 1944, 시)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들은 대부분 최재서의 요청으로 일본말 시 잡지 국민시인의 편집일을 맡았을 때 쓰였다.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씨의 둘째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구국대원/(중략)/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로 온/ 원수 영미(英美)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미당을 친일 시인으로 낙인찍히게 만든 시, 오장 마쓰이 송가 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비롯된 태평양 전쟁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4년 12월 9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게재됐다. 이 시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를 찬미하고 있다. 무모한 전술에 동원된 몸뚱이도 인 씨성을 가진 엄연한 조선 젊은이의 것이다. 허병식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올 6월 발표한 논문, 식민지 주체의 아이덴티티 수행과 친일의 회로에서 미당의 친일시는 일제에 충성하는 민족의 맨얼굴을 자랑스럽게 전시한다고 평가했다.미당은 자신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의식했다. 그의 친일행각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고백과 사과는 1960년대 창피한 이야기들에서 이뤄졌다. 그는 이야기에서 전쟁세계에 대한 내 무지와 부족한 인식이 빚어낸 이것, 해방되어 돌이켜보니 참 너무나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미당은 1980년대의 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와 1992년 〈신동아〉에 기고한 일정 말기와 나의 친일시에서 일본이 쉽게 패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자신의 행위가 강요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혔다.△80년대 군사정권 옹호, 친일 행적 연상시켜= 해방 후, 미당은 친(親)권력적 행보를 보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50년~1970년을 거치면서 문단과 매체를 통해 확고한 문학권력으로 부상했고 대학교수라는 제도적 권위까지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가지가 떨어지게 열리는 꽃은/ 겨우내 여기 다 소곤거리던/ 바람의 바람의 소망이리라/ 바다밑 조개들이 붉고 푸른 문의는/ 온 철련 에워싸고 출렁거리던/ 물결의 물결의 소망이리라/ 이 거치른 마음의 땅에/ 소나기처럼 오시는 혁명은/ 오랜 민중의 소망이리라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8월 24일 경향신문에 발표한 시다. 제목은 혁명 찬(讚). 서은주 박사(연세대학교 강사)가 지난 해 12월 동국대에서 열린 학술발표회 서정주와 전통주의의 계보에서 공개했다. 미당은 이 시에서 군사 쿠데타를 민중의 소망이 반영된 혁명으로 추켜세웠다.미당의 군사정권 옹호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와서도 이어진다.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 원년으로 만드셨나니/(중략)/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중략)/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 하늘의 찬양과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이 시는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56세 생일 축하장에서 발표한 시, 처음으로다. 그는 시에서 당시 삼저호황(198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현상)에 의한 물가안정과 평화의 댐 건설을 전두환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했다. 김학동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그의 글 서정주의 생애와 문학〈서정주 연구〉에서 서정주가 보여준 친권력적인 태도는 일제 치하의 친일 행적과 연관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이외에도 그는 이승만의 전기를 쓰고, 베트남 참전기를 독려하는 시 다시 비정(非情)의 산하(山下)에를 썼으며, 1975년에는 김종필의 새마을 운동 시찰을 따라다니며 관제용 참관기를 남겼다. 1980년에는 광주의 비극을 발판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TV연설을 했다.△ 권력지향적 태도비판 잇따라= 미당의 문학과 현실인식에 대한 평가는 그의 타계 이후 언론 논쟁의 양상을 띠기도 했다. 이 논쟁은 미당의 제자였던 고은 시인이 지난 2001년 미당 담론에서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 시대에 대한 고소 공포증에 가까운 굴복이라고 쓰며 시작됐다. 이에 대해 송하선 우석대 명예교수는 미당담론에 대한 담론에서 돌아가신 스승의 뒤통수에 대고 돌을 던지는 그림은, 상상하기조차 힘들고 안타깝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미당의 문학과 정치적 행보에 대한 전면적 논쟁이었던 셈이다.현재도 미당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논자들은 미당의 삶과 문학이 세계관을 통해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서은주 박사는 미당은 친일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권력지향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며 당시에 존재했던 절대권력의 외압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겠지만,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인의 삶과 작품이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미당의 친일은 보통사람과의 친일과는 다르다 며 적어도 문단에 영향력이 큰 지식인이라면 도의적인 책임을 피해갈 순 없다. 해방 후 석고대죄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고 주장했다.조교현 광복회 전북지부 사무국장은 걸출한 문학적 재능을 친일에 썼다는 거 자체가 문제다 면서도 서정주에 대한 판단은 대중들에게 맡길 필요도 있다며 판단을 유보했다.△친일과 독재옹호는 반면교사하고, 시 자체로 평가받아야= 미당에 대해 일정정도 우호적인 관점을 가진 논자들은 친일독재옹호와 문학적 업적은 별개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은 예술은 이념적인 잣대나 가치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며 친일시 몇 편으로 명확한 근거 없이 서정주의 다른 작품들마저 친일 정신이 반영돼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복잡한 식민지 상황을 인지하고, 서정주의 행동이 친일(親日)이었는지 순일(順日)이었는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윤재웅 동국대학교 교수는 미당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행보를 단죄적 시각으로 바라보기엔, 여러 복잡한 함수들이 존재한다 며 그의 친일행적 및 독재정권 협조는 문학성과는 별개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미당을 위한 동생 서정태 시인의 변론= 미당의 동생 서정태 시인은 일제시기를 살아 본 사람의 입장에서 미당을 평가한다. 가족의 입장이 아닌 시인의 입장에서 얘기한다는 사실 역시 강조한다. 서정태 옹은 형님은 1944년 고창 경찰서에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킨다는 연극단원들의 사상적 배후혐의로 구금됐었다 며 당시에 큰 고초를 겪었는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서 시인은 이어 시대적 상황이 어땠는지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전두환을 찬양한 시에 관해서는 형님의 큰 과오라고 생각한다 면서도 장세동 전대통령 경호실장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장세동이가 형님에게 전두환 찬양을 부탁하면서, 거의 형님집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어쩔 수 없이 찬양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9.01 23:02

토속성 묻어나오는 에로티시즘 조기호 시인 19번째 시집 〈민들레 가시내야〉

조기호 시인(78)이 19번째 시집으로 그동안의 작품 가운데 추린 시를 묶어 선집(選集) <민들레 가시내야>(문학사계)를 냈다.그는 89편의 시를 1부 신화, 2부 가난 이삭줍기, 3부 철들 무렵, 4부 전주성, 5부 주천왕 꽃, 6부 백제의 미소 등으로 나눠 담았다.조 시인 특유의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 묻어나오는 작품이 수록됐다.작품 해설에서 황송문 시인은 조 시인의 과잉된 의식은 예술지상주의쪽 관능미에 경도되어 있다며 다소곳한 에로티시즘과 의기양양한 에로티시즘으로 나눌 수 있다고 풀이했다.조 시인이 다소곳이 그리는 여인은 놋요강에도 소리 없이 소피볼 줄 아는 여인이다.더불어 선정적이고 색정적인 장면을 의기양양하게 펼칠 때에는 토속성이 함께 한다. 오월장미는 싸락눈 따 먹은 홍시 입술로/초여름 립스틱을/꾹꾹 눌러 찍었다며 도시의 문명적 요소까지 전이된 관능적 애욕이 넘친다는 해석이다.황 시인은 이어 육두문자는 이야기의 발성이 돼 걸쭉함을 낸다고 덧붙였다.시장 통 조껍데기 술집에 앉으면/여기도 씨벌/저기서도 씨벌/씨벌이 살아서 펄펄 날아다니는는 조껍데기 술집같은 풍경도 그려낸다.조기호 시인은 전주 출신으로 목정문화상, 전북예술상, 전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28 23:02

'불손한 책?' 보며 '독서 자유' 읽는다

단발머리를 하고 늘 어린 동생을 업고 다녔던 몽실언니.권정생 작가의 이 작품은 처음 잡지에 연재할 때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1986년에는 어용단체가 용공 동화의 사례로 몰았고 문교부가 학교도서관에서 빼라고 지시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권의 작가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도 불손한 책으로 찍히기는 마찬가지였다.<아기 공룡 둘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 부천의 명예시민인 그가 한 때는 아동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금서(禁書)였다. 지난 2008년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에 오른 뒤 서점에서 판매량이 10배 이상 뛰기도 했다.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독서문화시민연대)는 시대적 배경에서 금서였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을 펼치기 위해 독서의 달 첫 번째 주인 다음 달 1일부터 7일까지를 제1회 금서 읽기 주간(BBW, Banned Books Week)으로 정했다.전국의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등에서 금서를 읽으며 어떤 책이 왜 금지됐는지를 살펴보고 민주주의 기본원리이자 근본 규범인 표현의 자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취지에서다.출판, 독서, 도서관 등 책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모임인 독서문화시민연대가 꼽은 금서 목록에는 국내외가 망라돼 있다. 국내는 독재시절 반공 이데올로기에 묶이거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해외 사례 역시 풍기 문란을 이유로 금서가 된 책이 눈에 띄었다.현재는 해금된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사슴>을 비롯해 한홍구 사학자의 <대한민국史>, 위기철 작가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 김지하 시인의 <오적>, 조태일의 <국토> 등도 금서라는 낙인을 받았다.닐 웨일즈 작가가 중국에서 공산당 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김산을 기록한 <아리랑>은 민주와와 함께 해금됐다.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트 슈만 작가의 <세계화의 덫>, 헨리 조지 작가의 <진보와 빈곤>도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진보적인 경제서로 국방부가 지정한 금서에 이름을 넣었다.동화도 금서의 단골 목록이었다. 저스틴 리처드슨, 피터 파넬 작가의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는 의미를 담았지만 지난 2005년 출간한 뒤 금서로 올랐다. 아빠 펭귄 로이, 실로가 아기 펭귄 탱고를 키우는 내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였다.또한 모리스 샌닥 작가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린드그렌 작가의 <삐삐 롱스타킹>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화도 아동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책으로 지적되기도 했다.책의 역사 만큼 고전도 빼놓을 수 없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출간 당시 금서였다. 세상을 향한 풍자를 담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무삭제판도 마찬가지다.독서문화시민연대는 우리나라 책의 역사에서는 검열과 허가제가 오랫동안 책의 숨결을 억압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독자들은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고 금서의 울타리는 하나씩 둘씩 허물어졌다고 진단한다.이들은 진리생존설을 주창한 존 밀턴은 어떤 사상이 옳으냐 하는 것은 권력자인 검열관이 판정할 수 없고 그것은 자유로운 논쟁과 독자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야 진리가 살아남고 허위가 도태될 것이라 했다면서 이번 금서 읽기 주간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더 깊은, 독서의 자유와 도서관의 자유가 활짝 개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이세명
  • 2015.08.28 23:02

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④ 고향 고창, 어떻게 투영됐나

철학자 하이데거는 철학을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정의했다. 하이데거가 정의한 철학과 마찬가지로, 미당 문학에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드리워져 있다. 실제로도 미당 문학의 바탕에는 고향의 정서가 듬뿍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유년시절 외할머니가 해주던 옛이야기와 고향의 구전설화가 스며든 시집 <질마재 신화>, 주모(酒母)와의 슬픈 추억이 담긴 선운사 동구<동천> 등은 고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당이 묘사한 풍광이 살아있는 곳 고향 고창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그 곳에는 미당의 동생인 서정태 옹(93)이 1989년 귀향해, 형의 생가 바로 곁에 초가삼간, 우하정(又下亭)을 지어놓고 산다. 그를 찾는 사람들의 용건은 대부분 그의 형 서정주이기에 항상 말을 전하는 사람의 위치로 비켜 있을 터지만, 지속적으로 미당을 찾는 사람들과 교우하고 있다. 21일 본지기자의 취재에 동행했던 김동수 미당문학회 회장도 서정태 옹과 교분을 유지하는 한 사람이다.이날은 서정태 옹 역시 취재에 동행해 미당의 생애와 관련된 장소와 그가 시집에 형상화한 곳곳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집에서는 방문만 열고 북쪽 방향에 시선을 주면 <질마재 신화>의 모티브가 된 질마재가 보인다. 질마재. 산굽이를 따라 구불구불 길게 뻗은, 소나 말 안장을 닮았다는 언덕이다. 서 옹의 안내를 따라 가는데도, 길이 구불구불해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덕의 정상에는 형 내외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묘소근처에는 잡초가 제법 길고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서 옹에게 혹시 시묘살이 하는 것 같지 않냐 는 질문을 하니, 팔자려니 은근히 즐겁다고 했다.질마재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소요산을 등지고 있는 미당 시문학관이 보인다. 질마재길이 시문학관까지 잇닿아 있는데, 차로 5분 내외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미당의 유품과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어, 미당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문학관과 인접한 개울을 건너면 다시 미당 생가가 나온다. 생가의 담장은 낮게 둘러쳐져있고, 초가집 한 채와 창고가 덩그러니 서 있다. 그 사이에 위치한 마당에는 미당이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상가수의 소리)라고 일컫던 우물이 있다.미당 생가에서 벗어나 마을 입구 쪽으로 나오면 유년 시절 미당이 다녔다던 서당터가 있다. 바로 그 서당터의 건너편에는 미당 시 세계의 설화적 배경을 제공한 외가가 있다. 서 옹에 따르면 외할머니는 질마재 주변에 맴도는 설화 등을 미당에게 들려주며 시적 모티브를 제공했던 사람이다.외가의 오른편에는 배 모형의 전시물이 있고, 앞 벽에는 바다와 초가집이 그려져 있고, 시 해일이 적혀져있다. 일찍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던 남편을 기다렸던 미당 외할머니의 심정을 떠오르게 한다.△슬픈 사연 간직된 선운사 동구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미당이 남긴 절창(絶唱)중에 선운사 동구는 국민 애송시의 하나다. 이 시에는 슬픈 일화가 깃들어 있다. 송하선 우석대 명예교수가 쓴 <서정주 예술언어>에 따르면 미당은 선운사에 갔을 때 어느 주막에서 취중에 한 예쁜 주모를 본다. 그 후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뒤 다시 가보았더니 주막은 잿더미로 변하고 주모도 없는데, 그 잿더미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반기더라는 것이다.이와 관련한 실제 사연은 시 아버지 돌아가시고<팔할이 바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미당은 1942년 부친이 세상을 뜨자 고향에 내려간 길에 선운사에 들렀다. 어느 이슬비 내리는 가을 오후에 길가에 실파밭 건너 오막살이 주막에 들어가 약주를 찾았다. 주막에서 나이 사십 쯤 되보이는 주모와 만나 술을 마셨는데, 얼얼해진 주모가 육자배기를 들려줬다. 그 노래는 미당에게 진솔하게 전달됐다. 내 생애에서도 이것이 최고 정상이었네 라고 평했다. 주모는 떠나는 시인에게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이~ 했다. 미당은 술에 취해 독일어 이히 리베 디히(난 널 사랑해)를 연상했다. 세월이 10년 정도 흘러 미당이 그 주막을 다시 찾았는데 한국 전쟁 때 주모와 가족이 빨치산에게 학살당했다고 한다. 빨치산 토벌에 나선 경찰들에게 밥을 죄어 목인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미당은 시에서 그 주막도 불태워져 버리고 뒤에 내가 보았을 땐 그 실파만 남았더군. 그래 나는 그 뒤 선운사의 내 시비에 새긴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 그 육자배기 소리를 담아보았지라고 밝혔다.서정태 옹은 시에 나온 대로 주막집 없어진지 오래됐다 며 한국전쟁 때 빨치산들이 식량 얻으러 내려와서 불질러버렸다고 말했다. 실제 고창군 부안면에 있다고 추정되는 주막터를 찾아보니, 음식점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고창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고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서정주의 시 세계는 고향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습니다 논문 서정주의 신라정신과 남한 문학장으로 지난 2013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김익균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의 말이다.그에 따르면 미당의 고향인 고창은 자신의 시 세계의 설화적 배경을 제공한 외할머니와 구분될 수 없다. 서정주의 고향 고창은 외할머니가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자화상)를 평생 동안 기다리고 있는 공간이다. 이는 미당의 시적 창작동기를 지배하는 원형이 된다.예를 들어,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동천)에 나온 구절인 천 살에도 안 죽기로 한 신랑이 돌아오는 풀밭길 은 일찍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던 남편(해일)과 연결된다. 또 만주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쓴 신부(질마재 신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시 안에서, 첫날 밤 도망가 버린 신랑을 그 자리에서 기다리다 산화한 여성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기다리며 고창에서 늙어간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변용한 것이다. 결국 미당의 시 세계에서 외할머니와 고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게 김익균 연구원의 설명이다.시집 단위로 볼 때, <질마재 신화>는 고창의 질마재 주변에 맴도는 설화들과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다. 간통사건과 우물, 단골무당네 머슴아이, 이삼만이라는 신 등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유년 시절에 들은 동네 설화를 기반으로 변형을 한 뒤,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다.이밖에 고창을 다룬 개별시로는 유년시절에 만났던 네 명의 소녀(섭섭이, 서우니, 푸접이, 순녜)를 그려낸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렇게 살고 싶은가<귀촉도>, 수대동시<화사집>, 내 영원은(동천) 등이 있다. 이에 대해 고봉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그의 논문 탈향과 귀향의 형이상학에서 서정주의 시 세계는 지속적으로 자기 실존의 근거를 확인하려는 귀향의지의 산물이다고 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15.08.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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