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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명희의 문학세계

1947년 10월 전주시 경원동에서 태어난 최명희는 1981년부터 시작하여 1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거쳐 대표작 '혼불'을 완성했다.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우리 식 고유의 이야기 형태를 살리면서 서구 전래품이 아닌 이 땅의 서술방식을 소설로서 형상화하여, 기승전결의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낱낱이 단위자체로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각 장, 각 문장, 각 낱말을 쓰고 싶었다”던 작가의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혼불'의 독특한 서술 방식은 우리 소설사에서 전통적 이야기 방식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특히 서사 문법의 논리나 서사진행의 선조적 진행을 거부하고 감성과 직관을 중시한 최명희의 글쓰기는 호남지역 특유의 문학풍토와 깊은 연관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소설에 포함된 방대한 전통 문화와 역사 자료는 민속지로서의 '혼불'의 위상을 말해줄 뿐 아니라 역사해석을 위한 사료로서 그 귀중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가 최명희의 '혼불'은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서로를 소외시키며 피폐해져만 가는 표류하는 현대인들에게 '근원의 그리움'을 찾아가도록 돕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 대표작 '혼불' '쓰러지는 빛' '탈공(脫空)' '오후' '옥정이' '이웃집 여자' '몌별(袂別)'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04.06.30 23:02

[문학기행]최명희의 '혼불'

저녁 뉴스에선 내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될 것을 예보하고 있다. 태풍 라마순을 피하려다 장마를 만나는 건 아닌가. 태풍을 핑계대고 게으름 피운 게 이토록 후회가 될 줄이야. 기말고사 채점하느라 정신없는 나를 본체만체 내일 소풍간다는 소리에 아이는 좋아라 외치며 할머니 손을 잡고 장보러 간다. 이번 문학기행에 나는 아이와 친정어머니와 동행 할 계획이다.'우리 엄마는 매일 주말마다 쿨쿨 잠만 잔다'는 아이의 푸념을 잠재우기 위해서, 게다가 딸네 집 살림해주느라 멀쩡한 집과 서방을 놔두고 비좁은 아파트 창살 없는 감옥살이에 지쳐가는 엄마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도,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나는 내일 남원에 간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일어나자마자 베란다에 나가 창문부터 열어본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등허리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듯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다. "아! 결국은 장대비를 맞아야 하는 구나!” 내 심난한 기분과는 무관하게 아이와 엄마는 마냥 즐거운가보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고 과일을 깎는다. 도시락을 싸고 남은 김밥 꽁다리로 아침 해결. 드디어 모녀 3대, 집을 나선다. 남원 가는 길, 막 전주를 벗어나 관촌에 들어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수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비가 그친다. 다행이다. '입이 서울'이라고 물어물어 '혼불 문학관'이 자리한 노봉마을 도착. 마을 뒤를 병풍처럼 두른 노적봉은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혼불 문학관을 에워싸고 있다. '혼불 지킴이' 황영순 선생께서 마중을 나와 계신다. 마을 입구에는 '꽃심을 지닌 땅', '아소님하'를 새긴 한 쌍의 장승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반긴다. 남원시의 지원을 받아 올 가을 개관 예정인 문학관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백제문화연구회' 회원으로 계시는 사장님께서 '혼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지었다는 문학관은 전시실과 학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작가의 유품을 전시하고 작가의 생전 집필실을 그대로 재현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혼불의 주요 사건을 디오라마(diorama)로 재현해 전시하게 된다. 문학관 오른 편에는 학습실이 있다. 학습실은 방문객들에게 작가 최명희와 '혼불'에 대해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혼불과 관련된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학습실 아래 고풍스런 정자에 올라보니 팔공산과 성수산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맑은 날은 만향산의 주봉 천왕봉까지 보인다는데 날이 흐려 천왕봉을 볼 수가 없다. 정자에 서 굽어보니 청호가 바라다 보인다. 완공 당시 둘레가 사방 오 리가 넘었다던 청호. 첫날 밤 소박맞은 인월댁이 각시 복숭아 진분홍 꽃잎이 숨막히게 지고 지던 밤 몸을 던진 청호. 그 청호는 저수지를 만든 청암부인을 존경하는 뜻에서 사람들이 호수 호(湖)자에 청암부인의 택호를 따 지은 이름이다. 문학관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거멍굴과 고리배미가 있다. 거멍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지난 해 장마에 유실된 돌다리를 대신해 튼튼한 철제다리가 서 있다. 찻길은 다리에서 끊어지고, 우리는 걸어서 거멍굴(黑谷) 근심바위 앞까지 갔다. 천민 춘복과 옹구네, 공배네, 평순네, 무당 백단이, 무부 홍술이, 백정 택주네들이 모여 남루한 일상을 이어가던 거멍굴, 그 한 복판에 검은 덩치로 커다랗게 우그리고 앉은 '근심바우' 아래에서 한 아낙이 밭을 매고 있다. 그네는 '변동천하'를 꿈꾸던 춘복과 '투장'을 통해서라도 시아버지의 뼛속 깊이 새긴 한을 풀어주려던 무당 백단이와 무부 만동이의 피맺힌 절규를 알고 있을까.거멍굴을 나와 고리배미리로 향한다. 공명첩을 사가지고 의관(議官) 자리를 얻어 양반행세를 하다 매안 이씨 양반들에게 끌려가 멍석말이를 당하고 초죽음이 된 엄장업. 그가 장독 오른 다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들 병곤에게 이르던 말이 떠오른다. "내 생전에 못 산 세상, 너는 살어 볼 수 있을랑가. 신분을 설워 말고 그저 죽으나 사나 돈. 돈을 모아얀다. 우리 같은 인생은 돈이 양반이여. 그것조차 없으먼 개다구만도 못헌 거이 우리 신세다. 너는 인자 나중에 꼭 의관보담은 좀더 높은 놈으로 베실을 사서 정자관을 보란디끼 써 바라. 망할 놈의 정자관.” 엄장업의 설움 받친 절규 때문인가. 예나 지금이나 민촌 고리배미에는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고리배미를 뒤로 하고 노봉마을과 더불어 '혼불'의 무대가 된 사매면 대신리 상신마을을 찾았다. 이씨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마을 입구에는 '매화낙지(梅花落地)' 명당이 있다. 마을 뒤 '계룡산에서 핀 매화가 떨어진 곳' 매화낙지에 서니 "명당, 명당 해도 선조의 정신을 모으는 후손의 마음자리가 제일 큰 명당이지. 그 마음자리가 썩어 있으면 이백 년 송 관목이 다 무엇이고, 좌청룡·우백호가 다 무엇이야, 무단한 공염불일 뿐.”이라던 청암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명당자리 구경을 마치고 서도역(書道驛)에 들렀다. 서도(書道)라는 명칭은 근처에 서원이 많았던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역 맞은 편에는 일제 시대에 세워진 듯한 목조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구멍가게가 된 그 2층 목조건물 벽에는 '서도역 운송점'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역 양 옆으로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고, 좀더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벚나무 아래 다람쥐가 뛰놀고 있다. 소설 속의 서도역은 번화한 곳이다. 오고가는 사람들로 번잡하던 그곳이 지금은 다람쥐 놀이터가 되어 있다. 강모와 효원 그리고 청암이 내딛었을 역사에는 이름 없는 꽃들이 만개해 있다. 사리반댁을 비롯한 매안 이씨 며느리들이 화전놀이를 하던 삼계석문을 지나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에 있는 이웅재 고가를 찾아 간다. 매안 이씨 종가의 서슬퍼런 위상을 상징하듯 높이 솟은 솟을대문 양 옆에는 하마석(下馬石)이 놓여 있다.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왼편으로 마굿간이 보인다. 안에 놓인 다섯 칸짜리 말구유가 그 옛날 종가의 번영을 말해준다. 지금은 말을 대신해 누런 황소가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토방을 딛고 사랑채가 서있다. 사랑채 뒤편 처마가 지난 해 장마로 인해 위태롭게 내려앉고 있다. 사랑채 위로는 사당이, 오른 편으로 안채가 놓여 있다. 사당 한켠 텃밭 가에는 매실이 농익어 바닥에 쏟아져 있다. 열매를 거둬들일 일손이 부족한 탓일까. 사당에 쌓인 먼지처럼 초여름 종가의 뒤안은 쓸쓸하고 고즈넉하다. 종가 가장 깊숙한 곳에 'ㄷ'자형 안채가 있다. 안채를 지키는 연로한 종부께 혼자서 큰 집을 지키기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집이 누추해 손님들이 오면 죄송스럽다며 수줍어하신다. 늙은 종부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혼불 문학관으로 향한다. 한나절이 넘도록 친절하게 안내를 맡아주신 황 선생님과 함께 문학관 정자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준비한 도시락으로 고마움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죄송스러울 뿐이다. 왜 그토록 '혼불'을 사랑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혼불 속에 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 지금까지 '혼불'을 다섯 번 읽었고 앞으로 다섯 번을 더 읽겠다는 그분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왜일까./고은미(전주대 객원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04.06.30 23:02

편지글 '아들아...'펴낸 전주영생고 권승호 교사

"부모와 자녀들간 진지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다보니 갈등이 생기죠.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려주고 기다리면 분명히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흔 여섯명의 부모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거든요.”전주 영생고등학교 권승호교사(43)가 부모와 자녀들간 사랑의 연결고리로 나섰다. 학부모들의 진솔한 마음이 담긴 원고를 받아 엄마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들아, 내 아들아!(예영커뮤니케이션)'를 펴낸 것.평소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싶었다는 권교사는 2년 전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유치해? 난 심각해!'를 펴낸 바 있다. 이 책도 수업시간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써오라'는 과제에 마음 속 비밀들을 털어놓은 아이들의 이야기다.책을 통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학부모들의 반응에 권교사는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하기로 했다.처음 원고 청탁 안내문을 발송하고 마감일까지 도착한 원고는 다섯 편. 권씨는 글 쓰기를 두려워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힘들었지만, 원고를 써주신 부모님께 미안하고 또 교육상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책 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차례 원고 청탁 안내문을 발송하고 3백여통의 전화 끝에 모은 소중한 글들은 모두 마흔 여섯편.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발간을 주저하는 출판사를 설득한 끝에 2년만에 완성된 책이다."부모님은 오직 공부만을 강요하고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착각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러나 처음 옹알이를 했을 때 아들과의 첫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고, 아들을 생각할 때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처럼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이지요.”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학부모들의 소중한 외침에 학교는 다음달 5일 학교 강당에서 작은 출판 기념회를 갖기로 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04.06.29 23:02

[BOOK]정성수 시집 '누구라도 밥값을...'

"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많은 날들을 정신없이 밥을 먹으면서 언젠가부터 밥값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밥값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시를 쓰는 것이라 생각했지요.”시인 정성수씨(57·익산 삼기초등학교 교사)가 일곱번째 시집 '누구라도 밥값을 해야한다'를 펴냈다."시골에 있는 초등학교를 오랫동안 돌아다녔지요. 아이들의 맑은 심성과 자연의 교훈이 자연스레 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그는 아직 덜 익은 '감'으로 세상이 떫어 온 몸을 푸르도록 떨었다고 말하고, '봉숭아'로 '그녀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봉숭아가 툭툭 제 속을 터뜨려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며 서정적인 감상을 풀어놓는다.'세상에 그물을 던지면 약삭빠른 놈들은 다 빠져나가고 바보 몇 만 남는다'며 세상을 욕하면서도 '비린내가 우적우적 새벽을 깨물어 먹는' 중앙시장 떡골목의 치열한 삶의 열기를 전하기도 한다.그의 글은 대중성을 향해 열려있다. 어렵고 난해한 글보다 낮은 눈높이로 독자의 가슴에 저절로 와닿아 스며드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익산 출생으로 원광대와 동 교육대학원, 전주교육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집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 '정성수의 흰소리'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04.06.29 23:02

[양계영의 베스트셀러 엿보기]법정 '홀로사는 즐거움'

"혼자 살아온 사람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남은 세월을 다할 때까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은 젊음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결같이 삶을 가꾸고 관리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 더욱 깊어진사유의 언어와 한층 더 맑아진 영혼의 소리를 담아 펴낸 법정 스님의 신작 <홀로 사는 즐거움>의 한 대목이다.이 책은 올해 초 <길상사>의 회주직에서 물러나 침묵의 수행을 선언한 스님이 지난 2001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회지에 썼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지난 1999년 발간되어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 많은이들의 영혼을 살찌우게 했던 <오두막 편지> 이후 근 5년 만에 발표된 작품이라 반가움이 더한다. 책 속에는 바닷가 거처로 잠시 옮겨갔을 때의 이야기, 모든 세속의 직함을 버릴 당시의 심경,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속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일상의 모습, 911 테러 사건을 비롯한 속세의 일들과 현대인들의 삶에 일침을 가하는 준엄한 말씀 등 모두 40편의 글이 담겨 있다.스님의 글 속에는 홀로 있어도 의연하고 늘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와 일관된 철학이 담겨 있다. 청빈한 삶을 설파하는 많은 에세이가 있지만 본인 스스로 그리 살면서 그 삶이 그대로 글 속에 녹아 흐르는 에세이는 많지 않다.오늘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며 "이제부터 할 수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노스님의 깊은 가르침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양계영(홍지서림 전무)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04.06.29 23:02

박범신·김용택·안도현씨, 독자들에 다양한 표정의 여름 선물

소설가 박범신씨, 시인 김용택·안도현씨가 다양한 표정의 작품집을 잇따라 냈다. 소설가 박범신씨(58)는 연작소설집 '빈방'을, 안도현시인(44)은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태동출판사), 김용택시인(57)은 산문집 '정님이'(열림원)를 펴냈다. 여름을 맞은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다. ○ 박범신의 '빈방' '빈방'은 올해 초 13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명지대 문예창작과)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소설창작에만 전념했던 박씨의 첫 결실이다. 여섯 편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예술적 성취에 좌절하는 40대 화가와 패션디자이너의 야망을 갖고 있는 20대 여성의 연애담을 큰 틀로, 두 사람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단편들을 그렸다. 창조적인 생산력을 잃고 '불임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초상.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 예순 네 살의 부호와 결혼하려는 혜인('빈 방'), 죽음에 임박해 은행통장과 토지문서를 찾아 움켜쥐는 용암사 원행스님('감자꽃 필 때'), 화가의 집에서 사산아를 몰래 낳은 어린 임산부('괜찮아, 정말 괜찮아'), 화가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는 노파('별똥별'), 10년째 '필생의 야심작'을 쓰고 있는 늙은 여류작가('항아리야 항아리야') 등 허깨비 같은 욕망에 붙들린 인생들이다. 회갑을 두 해 남겨놓은 박씨지만 문학적 상상력은 여름날 녹음처럼 여전히 짙푸르다. ○ 김용택의 '정님이'"유리창 밖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님이가 책보를 가슴에 안고 걷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어른거린다.”섬진강가 작은 학교(순창 덕치초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씨는 소설처럼 줄거리를 이룬 산문집을 펴냈다. 1996년 출간했던 동화 '옥이야 진메야'를 대폭 보강해 다시 쓴 이야기다. 시인은 어릴 적 구유 속같이 산이 둘러싸고 있는,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강물이 흘러가는 강변 마을에서 함께 자랐던 정님이와의 아련한 추억에 상상을 섞어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냈다. '진달래꽃과 함께 왔다가 진달래꽃과 함께 떠난' 정님이. 시인은 그에 얽힌 애틋한 감정과 추억을 절기의 변화와 자연의 다채로움, 마을 잔치와 놀이 등 옛것과 맛나게 버무려 향수를 일으킨다. '섬진강 아이들'(열림원)에서 인연을 맺었던 우승우 화백의 그림도 글 못지 않게 여유 있다. '눈 내리고 비가 오고 달이 뜨고 진달래 피면 네가 그립고 보고 싶을 거야. 너도 날 잊지마. 나도 널 잊지 않을 거야.'○ 안도현의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천천히 읽고, 입에 넣어 오물거리면서 읽고, 또 한번쯤은 입 바깥으로 소리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리움이 당신의 마음속에도 스며들 것입니다.”지난해 12월에 펴낸 1권에 이은 두 번째 러브레터는 조선닷컴에 '안도현의 러브레터'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시인이 밑줄 쳐가며 읽은 문장과 흥얼거리는 노래들을 보고 듣는 재미에 시인이 전하는 짤막하고 명쾌한 전언들을 맛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독자들은 설레인다. 떨림, 유혹, 가족, 관계 등 4가지 테마로 구분한 이번 책에서도 고은·문태준·고정희·김명리·이문재·윤대녕·이성복·이병천·박성우 등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황진이의 시조 등 구전 한시와 시조, 월북작가 안성현이 작곡한 '부용산' 등 노래, 영화 '일 포스티노' 등 유명영화의 대사까지 시인의 더듬이에 포착된 구절이 시인 특유의 해석과 아포리즘을 붙인 짧은 단편들로 채워졌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알퐁스도데의 소설 '별'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떨림, 그때의 아름다움”을 떠올린 시인은 "설렘과 떨림으로 충만한 사랑, 당신도 지금 꿈꾸고 계시겠지요”하고 묻는다.

  • 문학·출판
  • 최기우
  • 2004.06.29 23:02

[글짓기 짱! 모여라 글세상]비

비오늘 아침부터비가 내립니다.똑똑똑 빗물이창문 두드리는 소리그 소리에 창가로눈길이 갑니다.하지만 빗방울은몇 마디 못하고주루룩─미끄러져내려갑니다빗방울이 나에게못다한 이야기다음에들어보렵니다./황민(이리송학초교 6학년)준혁이에게 하고 싶은 말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생일파티를 하였다.나는 이준혁한테 나랑 똑같은 옷을 선물했다. 그래서 월요일에 입고 오기로 약속했다. 오늘 옷을 깨끗이 빨아서 월요일에 입고 갈 것이다. 빨리 내일 모레가 되어서 학교에 가고 싶다.'준혁아, 생일 축하해. 건강하고 사이좋게 지내자. 군대 갈 때에도 같이 가서 전쟁에서 이기자. 파이팅!'/이정헌(이리마한초교 2학년)[글을 읽고]기교없이 잔잔한 영상 이끌어내...민이의 글=영화 한 장면 같다. '똑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누구인가 눈길을 주었더니, 빗방울이다. '주루룩'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보고 빗방울이 나에게 못다한 이야기라는 기발한 표현을 한다.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잔잔한 영상을 이끌어내는 글솜씨가 민이의 훗날을 기약하게 한다. 준혁이의 글=초등학교 2학년 글답다. 토요일, 친구에게 옷을 선물하고…월요일, 같은 옷을 입고 오기로 약속을 한다. 선물을 줄 때보다도 선물을 주고난 후의 설레임이 더 큰 경우다. 사이좋게 지내자. 군대 갈 때에도 같이 가서 이기자라는 표현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준혁이와의 우정이 변함 없기를 빈다. 정현이 파이팅!/임대섭(시인)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04.06.24 23:02

[글짓기 짱! 모여라 글세상]나의 새 엄마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더 많이 해본 아이였습니다. 소풍을 가장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소풍을 가장 싫어하던 아이였습니다. 삐뚤삐뚤 엉망의 김밥이 창피했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 되면 차라리 아파 학교에 안 나왔음 했습니다. 각자 자기네 엄마를 기다리며 있던 아이들 중 "너희 엄만 언제 오셔?"라고 말이라도 건네는 아이라도 있으면 곧 싸움으로 이어져 늘 엉망이 되던 운동회였습니다. 그리고 점심이 되면 바쁜 아빠 대신 동네 아줌마가 싸오신 점심으로 운동회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오면 텅 빈 집에서 혼자 TV를 켜고 아빠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빠가 일이 늦게 끝나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혼자서 잠이 들기 일쑤였습니다. 우리 집은 아빠, 나 이렇게 두 가족뿐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잦은 가출로 인해 결국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이혼이 무엇인지도 왜 엄마와 따로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왜 엄마가 보고싶다 말해서는 안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아빠가 싫어하기에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혼이 무엇인지 알고부터 왜 엄마와 따로 살아야 하는지, 왜 엄마가 보고싶다고 말하면 왜 안 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유없이 엄마가 싫어졌습니다. 증오감과 혐오감만 늘어났습니다. 그런 아버진 설마라도 제가 어디가 엄마없어 그런다는 소리라도 들어 상처받을까 늘 다른 아이들보다 배는 더 잘해주셨습니다. 아빠와 나 둘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누가 부럽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없다 놀리고 따돌려도 집에만 오면 행복했습니다. 아빠가 있기에.내가 막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항상 아빠가 집을 비우시는 날이면 큰댁에 가자곤 했기에 그 날도 아빠가 집을 비우신다 하셔서 큰집에서 자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이유없이 아팠던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유없는 고열로 밤새 잠을 못 이룬 채 눈물이 범벅이 된 베개를 안고 겨우 잠이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무척이나 무거웠습니다. 방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려 했던 내 몸이 멈춰버렸습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낯선 아줌마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들어와서 인사드려라. 새 엄마 되신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으셨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아줌마에게 아빤 새엄마라며 인사를 시키셨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아빠를 미워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밤,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과 함께 밤새도록 내 눈물샘은 쉬지도 않고 눈물을 쏟아내었습니다.며칠이 안되어서 나의 가족은 둘에서 셋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의 새엄마. 또 한 번 엄마란 존재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내 손으로 아무 것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시키는 이도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이 또한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일은 다 아빠가 하셨습니다. 하지만 새 엄마가 오고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아침이면 밥도 해야했고 세탁기도 돌려야 했으며, 청소도 해야했습니다. 모두다 새엄마가 나가기 전 시키고 가신 일이었습니다. 새엄마가 해야할 일을 나에게 시키는 거 같아 더더욱 새엄마가 싫어졌습니다. 새엄마께서는 절대 칭찬이라곤 없으셨습니다. 늘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 일쑤였습니다. 내게서 아빠를 빼앗아간 계모,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늘 나에게 일을 다 시키는 계모. 차가운 얼음 계모.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새엄마에 대한 미움만 쌓여가고, 나에게도 뒤늦은 사춘기라는 게 다가왔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집에 들어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새 엄마가 싫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삐뚤어지게 나가면 새엄마도 결국엔 집에서 나갈 줄 알았습니다. 지쳐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점점 삐뚤어져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지치기는커녕 더욱더 잔소리만 늘어만 갔고 사사건건 내 일에 참견하는 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나쁜 행동들만 골라하였습니다. 학생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골라했습니다. 하지만 지치는 쪽은 새엄마가 아닌 나였습니다. 그리고 내 일에 일일이 참견하는 새엄마가 더욱더 미워져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점점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애써 그걸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어느 날은 너무 많이 변해버린 나를 느낀 뒤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젠 누가 시키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고, 혼자서 생각해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께서 왜 내게 그리도 칭찬을 아끼셨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건 수학 공식도 아닙니다. 영어 해석 문제도 아닙니다.오로지 나의 엄마만이 간직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그렇게 나의 짧은 방황은 끝이 나고 지금은 세상 어느 모녀보다 다정한 모녀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나는 나의 새엄마에게 죄송하다 말 한 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만 자신의 딸이기에 모든 걸 용서하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사랑을 눈으로 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게 또한 아닙니다 오로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따뜻한 엄마의 사랑을.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서초희(부안여상 3학년)▷[글을 읽고]코끝 찡한 이야기... 방황모습은 추상적성장기에 있어 가장 소중한 '가족이야기'이다. 초희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그리 외롭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새엄마가 생기게 되면서 초희는 방황하게 된다. 아버지도 빼앗기고 하지 않던 일도 해야된다. 사춘기에 겪었을 고통은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남들보다 훨씬 심했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얼마간 겪던 방황은 자신의 깨달음으로 끝나고 새엄마와 화해하고 둘만이 느끼던 행복을 셋이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은 쉽사리 드러내기 어려운 부모의 이혼과 재혼 새엄마와의 갈등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혼자 어려움을 헤쳐가는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좀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초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물론 제한 된 원고 이어서 그랬겠지만,방황하는 모습이 너무 추상적이다. '학생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든지 또한 새엄마와의 갈등 해소 부분이 안일하다는 느낌이 든다./이용범(시인)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04.06.24 23:02

회원들의 정감어린 글, 전북수필과 전라시조

결과와 과정 모두가 소중한 것은 인생이나 문학이나 마찬가지다. 굽이굽이 인생사처럼 '서로 보듬고 다독이고 격려하며' 펴낸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전북수필문학회(회장 공숙자)의 전북수필 58호와 전라시조문학회(회장 유휘상)의 전라시조 32집. 회원들이 당당하게 문학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려놓은 두 권의 책은 각 단체의 회장들이 쓴 권두언과 편집위원들의 편집후기에 먼저 눈길이 간다. 특히 유 회장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인회의 주최'를 제목으로 한 글은 문학동호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꼭 눈여겨볼 일이다. 72명의 회원들이 참가한 전북수필은 최만산·정약용·이태준의 수필을 '특별한 감동을 주는 수필'로 실었다. 군산대 허소라 명예교수의 작품을 초대했고, 신입회원들의 작품도 특집으로 엮었다. "세상사 아기자기한 모습을 눈으로 조망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편집위원 김은숙씨는 "정답고, 포근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회원들의 가슴을 읽는 기쁨 또한 컸다”고 소개했다. "전북수필을 통해 '소설로 쓴 시'이거나 '시로 쓴 철학'이라 매김 받는 수필을 두루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공 회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 희망이 우리를 문학의 본질로 이끌 것”이라고 충고했다. 정읍출신 시조시인 김준씨(서울여대 교수)의 작품과 작품평론을 특집으로 한 전라시조는 김상선·김태자·박부산·유영애·이기반·정순량·차경섭씨 등 회원 30명의 근작과 독자시단 등으로 꾸몄다. 특히 '자유시가 결국 시조를 닮아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자유시를 사설시조나 평시조로 고쳐 소개한 유승식씨의 논단 '자유시 속의 시조문학(2)'는 특별한 재미를 준다. "시조는 시대를 넘어 변함 없이 우리들의 가슴을 울려주고 있는 민족시”라는 것이 유씨의 주장. 유씨는 안도현 시인의 시 '간격'의 시구 일부를 조정해 3수의 평시조로 고친 것을 비롯해 신현림('꿈꾸는 누드') 김남조('남은 말') 김지하('해') 고은('순간의 꽃') 등의 시를 시조로 바꿔 소개했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엮어 21세기 변화되고 있는 시조문학의 한 갈래를 짚은 섹션도 돋보인다.

  • 문학·출판
  • 최기우
  • 2004.06.22 23:02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박환용 교수가 권한 '홀로 사는 즐거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맑아짐을 느낍니다. 향기로운 차 한잔을 마시고 난 후의 느낌이라고 할까요?”희곡작가인 백제예술대 박환용 교수(52, 영상문예과)는 이 달 초 법정스님이 낸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 펴냄)을 소개했다. 법정스님이 '오두막 편지' 이후 5년 만에 펴낸 신작 산문집. 존재에 대한 성찰을 위해 끝없이 정진하는, 진정한 수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책은 홀로 사는 즐거움을 말하지만 결국 홀로 있는 것은 함께 있는 것임을 설파하는 책이다. 법정스님을 "침묵과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고 있는 수도자이면서도 예술에 대한 사랑과 안목이 깊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멋있는 한국인”이라고 정의한 박 교수는 이 책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면서 살아야 행복하게 된다는 쉬운 진리를 가르쳐주지만, 그 진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바람이여 넋이여'(1984·삼성문학상) '너덜강 돌무덤'(1985·전국연극제 희곡상) 등 80년대 중반 전북을 대표하는 희곡작가였던 박 교수는 "학생들이 낸 레포트와 시험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학교생활의 분주함을 먼저 꺼냈다. 대학에 몸담은 지 올해로 10년. 그는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더운 날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시원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치솟는 욕심과 아집은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뜨거운 불길이기 때문이지요.”

  • 문학·출판
  • 최기우
  • 2004.06.22 23:02

수필로 읽는 군산 현대사 30년

누구보다 군산을 사랑하는 시인 최영(59·군산시 월명동장)씨의 수상집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 3권과 4권이 나왔다. 한국문협 군산지부장을 지낸 저자는 이 책에서 80-90년대 항도 군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이며 인물들의 이야기를 서사시처럼 엮고 있다. 은파는 지금 유원지로 개발되어 군산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한참 변두리였다. 그리고 째보선창은 한때 어선과 수산물로 북적였던 곳으로 이제는 메워져 옛 향수만 어려있다. 이들 지명은 군산의 상징이랄 수 있다. 또한 군산의 끝에서 끝이요, 옛과 오늘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군산 현대사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다. 교과서 같은 정사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이면사(裏面史)다. 이미 발간한 1권이 73년 7월부터이니, 93년 6월까지 20년 동안의 기록이 4권의 책속에 담겨는 셈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앞으로 3권을 더 발행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 30년 동안의 군산 현대사가 집대성될 것이다.내용을 뜯어 보면 크게 △군산지역과 사람 △공직자들의 애환 △문인들 얘기로 꾸며져 있다. 군산시청 현관에 걸려있는 송상섭 화가의 그림, 세계챔피언에 도전했다 사망한 김득구 권투선수, 용공단체로 몰렸던 오송회사건, 약속다방 탈영병사건, 군산상고 야구부, 제과점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성당과 조화당 등이 첫번째 카테고리다. 두번째는 민선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관선시대 공무원들의 애환이 그려져 있다. 도지사 공관 연회에 쓰인다고 갑자기 시바스리갈 30병을 구해 보내라는 얘기며, 강암 석전 여산 등의 글씨를 받아 선물(?)하기, 관공서 주변 다방에 얽힌 일화, 사랑방 같았던 군산시청 구내 이발관 풍경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또 행사시 자리 쟁탈전, 대학노트에 가득한 인사청탁자 명단 등이 당시 공직사회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세번째는 문인들로 최승범 김남곤 허소라 이기반 고헌 정양 이시연 주봉구 임명진 라대곤 이대우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의 활약상과 함께 석조동인, 군산문학, 청사초롱 결성 당시의 얘기도 나온다. 수필로 읽는 최근 군산 30년사의 후속편을 기대해 본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04.06.22 23:02

[책과 사람]전주서 찍는 TV드라마 '단팥빵' 작가 한수영씨

다음달 4일 첫 방송될 MBC일요아침드라마 '단팥빵'(연출 이재동)은 전주가 배경이다. 그래서 촬영도 전주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주만의 풍경이 동명의 원작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원작자 한수영씨(28·전주시 평화동). 그는 자신의 작품마다 '아름다운 온고을에서 태어나서 여전히 살고 있음'이란 표시를 남기는 전주토박이다. "전주에서 촬영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고향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았어요. 아름다운 전주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브라운관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죠.”그는 최근 3년 동안 모두 6권의 책을 출간한 '욕심쟁이' 신예작가다. "글짓기 숙제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디자인 전공자”지만, 그와 글은 우연과 필연의 관계. 그는 천리안 로맨스동호회(천일야화)에서 단지 '글읽기 권한'을 갖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해 '작가'라는 단어와 인연을 맺었다. 동력은 어렸을 적부터 편식하지 않고 읽었던 전집들과 백과사전류를 첫 페이지부터 넘기며 독파하는 독특한 취미에서 찾아진다. "책에서 보여준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 내용의 다른 결말에 대해서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생각들이 도움이 됐을까요?”그의 도발적 상상은 전주와 홍콩을 배경으로 바리공주 설화를 적절히 포개 넣은 '은장도'(2002·현대문화센터 펴냄)와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섞어 만든 가상의 나라 황룡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연록흔'(2002·전3권) 등에서 찾아진다. "가상의 나라를 쓰지만 제 마음대로 쓰진 않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이야기를 전개하죠. 한 작품을 쓸 때 모으고 읽어야하는 자료들이 엄청나답니다.”그래서인지 그는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처럼 모든 자료를 긁어모으는 '절대 자료 수집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글의 소재는 "꿈을 꾸다가, 책을 읽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뉴스를 보다가”처럼 뜬금없이 떠오른다. '단팥빵'(2003·전2권)은 앨범을 들추다가 마음먹은 작품이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단팥빵'의 앙꼬는 제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간의 기억들이죠. 그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속지의 삽화까지 직접 그린 이 책은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과거 에피소드가 동화·극본·인터뷰·판소리·일기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돼 있다. "작가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새로움을 주는 진화하는 이야기꾼. 글을 잘 쓰는 것도 좋지만 저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거든요.”그는 얼마전 직장을 그만뒀다. 전업작가 선언이 아니라 잠시 요양중이다. 출간한 작품 외에도 '퓨전러브 if' '설빙화' '셋째 딸 콤플렉스' 등 완결된 작품의 숫자만으로 봐도 아플 만 하다. 그렇지만 "전주의 문화재와 관련된 이야기, 전주 역사를 리얼하게 그려낸 역사소설”을 계획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여전히 분주할 것 같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튀어나가는 개구리 같은 이야기꾼, 어쩌면 이마에 뿔이 튀어나온 그런 개구리 같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그의 행보에 기대를 걸만하다.

  • 문학·출판
  • 최기우
  • 2004.06.22 23:02

'전북미술' 창간.. 대중화 앞장

제14대 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지회장 이강원)가 회원들간의 대화 통로를 넓히고, 미술문화 대중화에 나섰다. 미협신문 '전북미술'을 창간하고 홈페이지(http://www.jbfaa.or.kr)를 오픈한 것. 미협 회원간의 정보교류와 소통, 전북미술의 대중화, 투명한 미협 운영을 내세운 사업이다.계간지로 발행되는 '전북미술' 창간호는 '전북미술계의 원로작가' 서양화가 박남재씨와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했고, 제36회 전북미술대전 수상작을 소개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직접 참여, 미술사·조각·판화·사진·설치미술·회화 등 미술에 관한 이론을 소개하는 '미술의 이해'는 특히 눈에 띄는 기획이다. 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이 주목하는 신인작가 소개도 돋보인다. 편집위원은 최원 상임이사와 서용인 간행물 분과이사. 전북미협 홈페이지는 그동안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했던 회원들의 정보를 구축하고, 사이버 갤러리를 통해 회원들의 작업을 소개할 계획이다. 정보 교류를 통한 회원들의 신속한 반응과 여론 조성, 일반인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 유발 효과을 기대하고 있다. 이강원 지회장은 "회원들간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홈페이지와 미술협회신문을 제작했다”며 "정체된 전북미술에 활기를 부여하고, 작가들간의 화합을 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04.06.21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