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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사문학학회(회장 나종우)와 전주문화원(회장 서승)이 5일 오전11시 전주리베라호텔 백제홀에서 '조선조 기호학파의 학맥과 전북'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을 갖는다.이번 학술대회는 조선 500년을 이어온 전북 유학의 학맥을 통해 전북 정신의 뿌리찾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변주승 전주대 교수의 사회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나종우 원광대 교수가 '전북의 유학과 선비정신'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맡는다. 유학과 선비정신은 지행합일사상으로, 국난 극복의 저항정신으로 이어졌다는 주장.황안웅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는 '조선 중기 전북의 유맥(儒脈)에 대한 일 고찰'을 통해 포은 정몽주에서 퇴계 이황으로 이어지는 계보 보다 전주인 진일재 유승조를 거쳐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의 계보로 구분지어야 한다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한다.이용엽 동국진체연구소장은 '유극수 신도비에 나타난 전북의 학맥'을 통해 유분의 제자로 이계맹을 비롯해 후탄 이경동, 한재 이목, 건계 나안세로 이어지는 계보의 근거를 제시하고, 전북에도 학통이 분명하게 존재했다는 점을 언급한다.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은 '전주 유씨의 금석문과 편액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유습·삼한국대부인·유극수 신도비 등과 고산과 인후동의 시사재, 승유재, 용강서원 등의 편액을 조사해 전북 유학의 학맥을 고찰한다.이후 종합토론이 이어질 계획. 이재운 전주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유본기 용강서원 별임, 안진회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서홍식 전북역사문학학회 이사가 참여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인 제실박물관이 개관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2일 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에서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어령)와 국립중앙박물관 주최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전국 국ㆍ공ㆍ사립ㆍ대학 박물관과 미술관 관장, 세계박물관협회(ICOM) 회장 등 국내외 박물관 종사자와 문화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했다. 박물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과 유상옥 코리아나화장박물관장이 문화훈장을 받았다. 참석자들은 기념식이 끝나고 이날 신설된 고조선실을 관람했다.
'공공문화 체험프로그램 개발 및 전주시립도서관 발전방향 토론회'가 4일 오후 2시 전주시의회 5층 간담회장에서 열린다.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날 세미나는 시립도서관 중장기 발전계획과 작은도서관 활성화 대책 등이 주로 논의될 전망이다.안찬수 책읽는사회 문화재단 사무처장이 '전주시 도서관 현실과 정책의 방향'을, 허순영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이사가 '지역을 혁신한 도서관의 도시 순천 이야기'를 주제로 발제한다.토론자로는 김남규 시의회 문화경제위원장과 서윤근 시의원, 유금호 시립도서관장, 김은자 도서관사랑모임 회원이 참여한다.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7세기 백제 궁궐의후원(後苑)과 수로가 발견됐다. 1989년 이후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을 발굴조사 중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올해 그 북편 구릉지역 조사한 결과 백제시대 궁성 내부 후원과 물길(곡수로<曲水路>), 보도(步道) 시설, 석축시설 및 건물터 등을 확인했다고29일 말했다. 물길은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로 크게 두 줄기가 확인됐으며, 그 중간에는 물을저장해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네모난 집수시설(集水施設)이 드러났다. 곡수로는 너비 80~140㎝이고 단면은 바닥이 편평한 U자형으로 현재까지 확인된총 길이는 228m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정원(庭園)에서 보이는 구불구불한 사행수로(蛇行水路)와유사한 형태지만, 이들과는 달리 왕궁리 유적 수로는 바닥이나 측벽에 자갈돌이나판석 등의 석재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나아가 수로 내부에서는 유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으며 주변에서 백제시대 기와등이 소량 출토됐다. 부여연구소 김낙중 학예연구관은 "신라시대 포석정이나 일본의 고대 정원에도물을 대기 위한 수로는 있지만 이렇게 구릉 전체를 이용한 큰 규모의 수로는 없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곡수로가 궁성 내에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역할뿐만 아니라 정원과 어우러진 조경 공간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 동진(東晉)시대부터 유행했고, 일본 헤이죠큐(平城宮) 동원정원(東院庭園)등에서 채택된 구불구불한 물길이 후원 공간의 중심적인 요소로 확인돼 동아시아 고대 원림의 조영방식에 대한 비교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연구소는 평가했다. 연구소는 또 왕궁리 유적에서 동쪽으로 1.4㎞ 떨어진 제석사지(사적 제405호)에대한 2차 조사를 통해 가람 배치가 기본적으로 백제 사비시대(538~660년) 사찰의 그것과 동일하며, 그 규모가 매우 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확인된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이외에 회랑지, 중문지, 동ㆍ서 건물지가확인됐다. 목탑지 중심에서 동쪽으로 42m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된 동회랑지는 폭 7.8m로,폭 6.8m인 미륵사지 회랑 백제 사찰의 회랑 가운데 가장 넓다. 또 목탑지와 금당지 사이의 서편에서 목탑과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한 방형 건물의 기초부(동서 21.5m, 남북 20.8m)가 새롭게 확인됨으로써 제석사의 조성 및 변천양상을 밝히는 데 새로운 단서를 확인하게 됐다. 건물 기초부는 현재의 지표 아래로 130㎝ 두께가 남아 있으며, 특히 목탑 기단기초에서 보이는 달구질 흔적(건물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흔적)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이 방형 건물은 목탑과 그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목탑과 유사한성격의 건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설명 = 왕궁리유적 곡수로와 제석사지 동회랑지(맨아래)>
전주·전북 정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역사서에 보이는 전라도에 대한 혹평 등 소극적·부정적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전북 문화 정체성의 탐구'를 주제로 28일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에서 열린 전북문화원연합회(회장 이복웅) '제7회 향토문화연구심포지엄'에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라도에 대해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기술해 놓은 「택리지」 등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은 조선시대 3대도시 혹은 4대 거점도시로 거론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전라도에 대한 통치자의 견제에서 비롯된 성향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전주·전북 정신에 대한 소극적·부정적 시각'을 발제한 이관장은 "전주·전북을 바라보는 시각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점들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이런 시각이 타자에 의해 설정되고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낙후된 현재 처지에 의해 고착된 결과인 것 같다"며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 정신이 지역 발전 전략과도 직결되어 있는 만큼 가능한한 지역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또 전주·전북의 대표 정신으로 자주 거론되는 '저항정신'은 소외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는 점에서 '변혁의 정신'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이관장은 "지역 정신의 정립은 지역민들의 결집과 지역의 대외 이미지 구축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올바른 지역 정신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전북 지역문화와 그 특성'을 통해 전북 문화의 특성을 크게 '농경문화'와 '선비정신과 절의(節義) 문화'로 본 나종우 원광대 교수 역시 "오늘날 경쟁 주체가 국가보다는 지역 사회가 되면서 지역의 역량이 중요한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나교수는 "지역 문화라고 하면 으레 중앙문화에 대한 변방문화로서 지방 문화만 생각하기 쉬운데, 일정한 지역적 범주 안에 형성된 공동체문화를 가리킨다"며 "지역 문화의 범주에는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나름대로 새롭게 만들고 개발한 것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전북문화원연합회 이복웅 회장은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문화산업시대가 되면서 무분별하게 문화 정체성을 상실해 가는 경우가 많다"며 "문화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28일 시 승격 60년을 기념해 지난 60년의 발자취를 담은 '전주시 60년 일지'를 발간했다. 이 책자는 전주부에서 전주시로 승격된 1949년 8월 15일부터 최근까지 지역에서일어난 주요 사건과 사고, 행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쌀과 커피 값, 행정시책 등도 포함됐다. 전주시 성하준 홍보담당관은 "전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유용한 자료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한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한글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 중인 세종사업에 대한 자문 위원회로 '세종사업 위원회'가 출범, 27일 첫 회의를 열었다. 위원회는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어령 전 장관이 공동 위원장을 맡으며 권재일 국립국어원장, 김승곤 한글학회장, 조중빈 국민대 교수, 이상봉 패션디자이너 등 10명의 위촉직 위원, 7개 부처 차관으로 구성된 7명의 당연직 위원, 간사 2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됐다. 문화부는 이날 낮 프라자호텔에서 연 세종사업 위원회 1차 회의에서 로마자표기법, 외래어표기법을 비롯한 어문규범 정비 계획, (가칭)한국어지식대사전 편찬, 세종학당 브랜드 통일화, 한글문화관 건립 등 세종사업의 과제별 추진 현황을 보고하고 위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또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제안됐던 세종대왕릉과 연계된 여주 한글테마파크에 대해 사업성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동진의 귀족문화를 계승한 남조는 이왕(二王)의 필법을 전승하는 한편 문화의 이양과정에서 독특한 미감을 지닌 예해(隸楷)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이찬비(찬보자비와 찬용안비)이다. 남조 마애의 대표작으로 예학명(514)이 있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평탄한 남조문화의 역량을 드러내 보이는 것들로서 서예사적 가치를 지닌다.이에 반하여 화북지방의 이민족들이 난립한 오호십육국은 국가의 존망을 두고 치열한 각축을 벌였으며, 이를 평정한 위(魏)나라가 비로소 강남의 송왕조와 대응함으로써 남북조시대가 병립하게 된다. 북조는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웅강(雄强)한 필치를 펼치며 남조와는 다른 지역적 특성을 나타냈다. 북위는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국가로 군림하며 북조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국력을 바탕으로 북조의 패권을 잡은 북위(효문제)는 북방민족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중원문화의 지배를 위하여 낙양(洛陽) 천도를 단행한다. 이처럼 한화(漢化) 정책의 일환으로 단행된 낙양 천도로 인하여 남조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지만, 한편 북조의 문화가 중원에 뿌리를 내리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북조의 서예자료는 대부분 석각에 편중되어 있다. 비와 묘지명, 조상기, 마애 등 뛰어난 석각들이 매우 풍부하다. 북위 말의 '장흑녀묘지(張黑女墓誌)'처럼 지영(智永)의 '천자문'을 연상케 하는 완전히 남조화된 것도 있으며, 남조의 마애비 '예학명'에 비길 만한 것으로 섬서성의 '석문명(石門銘)'과 산동성의 '정희하비(鄭羲下碑)'처럼 독자성을 보이는 것도 있다. 이러한 남조와 북조의 서예적 특징을 구별하여 서예사 연구에 적용한 사람은 청나라의 완원(阮元)이다. 그는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과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북비의 정통성을 들어 비학(碑學)을 주장하였고, 이는 포세신(包世臣), 강유위(康有爲) 등을 통하여 계승되었다. 이왕을 중심으로 한 간찰 위주의 첩학(帖學)보다 서법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엄정한 비문서체를 통하여 글씨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연경(燕京)에서 완원과 사제의 연을 맺은 이후 '남북서파론'과 비학이 추사 서예학의 근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북조의 수많은 석각들 중에서도 서예가들의 이목을 집중한 것이 '장맹룡비'다. 북위 정광(正光) 3년(522)에 산동성 곡부의 공묘(孔廟)에 세워진 것으로, 비액에 '魏魯郡太守張府君淸頌之碑' 3행 12자의 해서가 새겨져 있어 장맹룡의 덕을 칭송한 송덕비임을 알 수 있다.청말의 강유위는 '광예주쌍즙'에서 "장맹룡비는 마치 주공(周公)이 예법을 만든 것처럼 일삼은 것들이 모두 아름다우며, 정자체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들 중에서 종주가 된다. 결구가 매우 뛰어나며 변화가 끝이 없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필의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북조의 전통을 계승한 당해(唐楷)가 횡획과 결체에서 좌양우음의 법칙을 보이는 데 반하여, 장맹룡비는 좌음우양을 경향을 보이고 해서이면서 팔분서(八分書)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남조의 영향이 섞이지 않고 순일하게 북조의 웅강한 멋을 표현하여 풍격이 높다. 다만 추사(秋史)가 경계한 것처럼 북조의 비들은 변화가 심하여 자법(字法)에 대한 면밀한 공부가 요구된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2009년도 조경묘·경기전 대제 봉행이 26일 오전 10시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경기전에서 이동선 전북경찰청장과 이강안 완산구청장 전주 이씨 종약원 회원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이날 조경묘 대제에는 이준기 상임고문이 초헌관, 이강안 완산구청장이 아헌관, 이태용 종무원장이 종헌관으로 참여했다.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경기전 경내 북쪽에 있는 조경묘는 1771년(영조 47) 이득리(李得履) 등 7도(七道) 유생들의 상소로 창건된 것이다.경기전 중앙대제 봉행(음력 9월9일)과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유형 제 16호인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경주 김씨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조경묘를 기려왔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과 업적 등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집필한 미완의 원고 '동양평화론'에 초점을 맞춘 학술대회가 열렸다. 26일 안중근ㆍ하얼빈학회와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미래' 국제학술회의에는 한ㆍ중ㆍ일 학자 20여명이 모여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했다.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동양평화론'에 나타난 안중근의 동아시아 전략은 막연히 한ㆍ중ㆍ일 3국이 연대, 제휴해야 한다는데 머물지 않고 다자간 협의기구 성격을 띤 평화회의 건설을 제안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면서 "동양의 범주에 동북아의 3국 외에 시암(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까지 포함시킨 지역공동체 구상을 펴고 있음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그는 "한ㆍ중ㆍ일 동양 3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공동체를 결성하자는 동양주의를 몸으로 실천한 안중근은 제국주의 시대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취급받았을지라도 탈근대, 탈서구중심주의가 도래한 21세기의 동아시아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단순히 한ㆍ중ㆍ일 자유무역협정, 동북아개발은행 같은 경제 공동체의 논리에 한정되지 않고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선 문명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논하려면, 100년전 동아시아인들에게 '동양평화론'이 던진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쑤용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심각하게 비판하면서도 진정한 인내심을 가지고 일본을 계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서 "안중근이 가졌던 평화의 희망은 침략과 확장 노선을 분명히 밝힌 일본 군국주의 앞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배부른 희망으로 보였으나 그가 평화를 희망했다는 점은 결코 평가절하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술적인 면에서 안중근 의거의 구체적인 사실이나 이 사건이 미친 영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동양평화론'에 종합적으로 드러난 안중근의 사상을 살피는 것이 진정으로 동아시아 학술을 발전시키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보장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는 '안중근 연구가 나아가야할 길'이라는 기조연설에서 "안중근 자료 전집 편찬은 늦출 수 없는 당면 기본 사업"이라면서 "안 의사의 하얼빈 의열투쟁은 그 전후 있었던 이준의 헤이그 순국과 장인환, 전명운의 샌프란시스코 의거 등과 밀접히 연관된 정황이 발견되므로 의열투쟁의 성격과 계보를 밝혀 그 의의를 정립하는 심층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27일까지 계속되며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의 현대적 의의'(마키노 에이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고종황제'(이태진), '안중근 의거의 중국에 대한 영향과 그 평가'(최봉룡) 등의 논문이 발표된다.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집. 더구나 저자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68-?)이다. 그럼에도 더욱 의아스런 대목은 이렇게 중요한 그의 문집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은 온전한 번역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최치원 전문가인 장일규 국민대 박사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단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한다. 단순히 글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신라와 당나라의 정치ㆍ역사ㆍ문화에도 정통해야 한다.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문체를 구사한 그의 문장은 난삽하기로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제1의 문호라고 할 만한 서거정도 "최치원의 문장은 이해할 수 없는 데가 많은데 그건 아마도 문체가 법도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토로했을까? 이런 최치원의 계원필경집이 마침내 국내 최초로 완역됐다. 과거 우리의 한문고전 번역에서 혁혁한 업적을 쌓은 민족문화추진위원회를 대체한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이 번역원 전환 이후 그 회심작으로 내세운 성과물이 계원필경집 역주본이다. 최치원의 글은 계원필경집과 고운집(孤雲集)이라는 두 가지 문집으로 정리돼 있다. 고전번역원은 이 두 가지 문집을 계원필경집 2권, 고운집 1권의 전 3권으로 내기로 하고, 최근 고운집과 계원필경집 제1권을 완간했다. 계원필경집 2권 또한 사실상 역주가 완료된 단계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내년에 출간한다. 역주는 올해 환갑을 맞은 고전번역원 국역위원 이상현(李相鉉.60)씨가 했다. 전주 출생으로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사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강제해직 된 뒤에는 고전 연구와 번역에 투신했다. 두 문집 중에서도 계원필경집(전 20권)은 최치원이 신라로 귀국한 직후에 당나라에서 절도사 고변 휘하에서 문장을 담당하는 막료로 활동할 때 지은 시문 중에서도 시 50수, 문 320편을 최치원 자신이 직접 골라 엮어 신라 헌강왕에게 바쳤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제목 중 계원(桂苑)은 문장가들이 모인 곳을 일컫는 명사이며, 필경(筆耕)은 군대 막사에서 거주하면서 문필로 먹고 살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계원필경집은 고변을 중심으로 해서 숨가쁘게 전개된 당나라 말기 중국과 신라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시대 양상을 고스란히 증언하는 제1급 문헌인 셈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계원필경집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계원필경집과 고운집 완역을 기념해 고전번역원과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는 3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강대 다산관에서 '국제인 최치원의 사상과 저술'을 주제로 내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장일규 박사와 김복순(동국대) 교수, 중국 난징사범대학 당인핑 교수, 일본 규슈대 하마다 고사쿠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최치원 전문가들이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2010년 전주한옥마을에 개관하는 완판본문화관과 부채문화관, 소리문화관.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사장 라종일)이 전주의 대표 브랜드를 내세운 3대 문화관을 놓고 운영방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28일 오후 3시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리는 제23회 천년전주문화포럼 '3대 문화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현재 전주시는 3대 문화관을 통해 완판본과 부채, 소리를 전시·교육할 계획이다. 문화관 별로 명창, 장인 등 전문가를 주도적으로 참여시키며, 자립운영을 원칙으로 문화관별 특성에 따라 운영비를 연차적으로 차등지원하며 줄여나갈 예정이다. 또한 전주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한국전통문화아카데미 사업과 연계, 3대 문화관을 문화체험관광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곽병창 우석대 교수가 소리와 부채문화관을, 이태영 전북대 교수가 완판본문화관을 중심으로 운영방안을 발제하며, 변주승 송화섭(전주대) 정회천 교수(전북대)와 정충영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이 토론에 참여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종합토론도 진행된다.
'정조학'을 표방하며 정조가 발휘한 국가경영능력과 통합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는 수원화성운영재단과 함께 28일 수원 경기도 문화의전당 컨벤션센터에서 '제1회 정조학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조선후기 정치사의 권위자인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은 기조강연에서 정조시대에 대한 여러 각도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리 배포한 강연문에서 "과연 정조학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동안 정조에 대한 연구가 있었지만 흐름은 약했고 역사학계보다는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대중성을 확보했다"면서 "역사에서 제공하는 팩트 부분이 취약하고 픽션은 과도해 팩트와 픽션을 정교하게 조합한 팩션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 대중들이 역사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가올 지식에 기반을 둔 문화의 시대에 역사는 문화콘텐츠에서 중요한 저장고의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이 시점에서 그동안 정조에 대한 연구동향을 살피고 그 문제점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정조학'이 활기를 띠고 역사학계뿐 아니라 정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후속 연구가 나오길 기대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조선왕조에 대한 연구가 더 깊어져야 하고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등 정조관련 자료의 역주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정조 리더십의 형성과 전개', '정조의 학문과 사상', '수원화성 콘텐츠의 국제적 비교' 3가지 주제로 진행되며 '정조의 국왕교육'(김문식), '정조의 기록정신과 의궤'(신명호), '화성 성곽의 특징'(한동수) 등의 논문이 발표되고 토론이 이어진다.
(사)한국국악학회(이사장 이동복)와 전북대 예술문화연구소(소장 백희영)가 주최하는 '2009 국악학 전국대회'가 23일과 24일 양일간 전북대 아트홀에서 개최됐다.'인접학문과 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문학, 무용, 역사, 미술, 복식, 연희 등 6개 주제와 음악의 연관성을 연구한 논문들이 발표됐다.'연희와 음악'에서 '실크로드와 한국전통의 연희'를 발표한 전경욱 고려대 교수는 삼국시대 공연예술의 국제적 교류를 주목해 관심을 모았다. 전교수는 "동아시아 공동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유교, 한자 등이 후대에 한·중·일에서 자국의 문화로 가꾸어 나가는 노력 끝에 독자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처럼 공연예술도 산악(散樂), 백희(百戱)라는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가 한·중·일 각국에서 자국의 연희로 변용, 발전, 재창조돼 독자적인 공연문화를 형성하게 됐다"고 밝혔다.산악, 백희는 고대에 무용, 음악, 연극, 체육, 무술이 세분화되지 않은 채 연행되던 총체예술. 전교수는 "한국에서는 산악, 백희 계통의 연희가 변화·발전해 조선후기 본산대놀이 가면극, 판소리, 인형극 등을 성립시켰다"고 설명했다.이동복 한국국악학회 이사장은 "총체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음악과 관련있는 인접학문들과 학제간의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국악과 인접학문의 연구학자들이 만나 다양한 공동의 주제를 개발하고 토론, 국악학의 연구 영역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6·25 전쟁 때 소실됐던 국내 최초의 한옥성당인 전북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의 되재 성당(전북도 기념물 제119호)이 원형대로 복원됐다. 완주군은 2007년부터 10억원을 들여 되재 성당 및 종탑을 복원하고 진입로 확·포장과 화장실 신축 등 주변을 정리, 오는 24일 이병호 주교 집전으로 주민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을 열기로 했다. 이 성당은 정면 9칸(기둥과 기둥 사이 2.5∼3m), 측면 5칸의 팔작지붕 형태로복원됐으며 내부는 중앙 기둥을 연결하는 낮은 벽을 통해 남녀 좌석이 구분되도록했고 바닥은 마루로 꾸며졌다. 1895년에 세워진 되재 성당은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자 최초의 한옥성당이다. 군 관계자는 "문화적 보존가치가 높은 되재 성당을 복원, 인근 천호성지와 연계해 천주교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이하 서예비엔날레)가 서예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책표지 문자 디자인전'과 같이 눈높이를 낮춘 프로그램으로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21일 오후 7시30분 공간 봄에서 '서예비엔날레 성과와 과제' 주제로 열린 마당 수요포럼에서 김수천 원광대 교수는 "이번 서예비엔날레는 주제인 '소통'에 걸맞게 '책표지 문자 디자인전', '서예, 불을 밝히다-서예와 한지등'을 통해 대중화를 위한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며 "다만 서예의 본질과 정통성에 갇혀 손글씨나 디자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작가들을 타락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도슨트(전시를 설명하는 안내인)를 예로 들면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교육을 하면서 전시장에 상주시키는 것도 대중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전공자(학생)와 비전공자를 참여시켜 평가보고서를 내실있게 만드는 것도 서예비엔날레 발전을 위해 간과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김병기 서예비엔날레 총감독은 "모든 예술을 대중화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서예 자체를 대중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끌고가기 위한 대중화는 아니다"며 "서예의 저변을 점차 확대시켜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라고 말했다.일부 원로 작가나 대가 중심으로 꾸려지기 보다 젊은 스타 작가를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여태명 원광대 교수는 "서예비엔날레가 젊은 작가도 과감하게 수용하면서, 작가 나름대로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부스를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서예비엔날레가 대중화의 과도기에 있는 만큼 스타 작가 발굴에 힘을 쓸 때"라고 말했다.김 감독은 "대가들을 참여시켜야 서예비엔날레의 권위가 높아지고, 홍보도 되기 때문에 작가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작가 선정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중복 참여를 배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젊은 작가 발굴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이나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공통점은 모두 작품 속에서 구수한 지역 사투리를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 세 작품 속에 질펀하게 담긴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서울말로 바꾼다면 그 매력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ㆍ서울(이사장 김후란)은 이렇게 문학과 언어 생태환경을 살찌우는 순도 높은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짚어보기 위해 23일 '문학어의 생명'이라는 주제로 '2009 서울문학인대회'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날 기조발표자로 나서는 시인 겸 전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모든 창조적인 문학 언어나 방언은 고도의 표현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며 방언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라도 방언이 쓰인 서정춘의 시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을 인용하며 "방언의 사용은 표준어라는 규범에서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더욱 풍성해지고 또 한껏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며 "안일한 감상주의나 자아분열적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당당하게 전라도적 언어풍경의 윤기를 발하게 해주는 문학의 언어는 주술이요, 언어의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발표자인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도 '문학어로서의 한국어의 오늘'이라는 발표문에서 "표준어에 대한 전면적 성찰을 통해 한국어 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방 교수는 "어휘의 제한과 규범화가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현저히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영어를 비롯한 각종 외래어, 외국어의 영향 아래서 점점 더 단순화해 가는 한국어 어휘의 상황을 점점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 겸 소설가 김형수 씨 역시 김삿갓과 김소월, 김지하, 이문구, 서정인 등 우리 문학사에 나타난 '언어의 달인'들의 사례를 들면서 "주목할 것은 우리말에 활력을 보태는 문제적 현상이 매번 표준어가 아닌 주변부 언어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의 모국어는 서울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하나만의 한국어여서는 안 될 것이고, 남과 북, 해외, 도서 변방으로 흩어져서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 복수의 한국어들이어야 할 것이며, 결국은 다시 하나의 정체성 아래 모일 수밖에 없는 단수의 한국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서울문학인대회에서는 문인 203명이 고향 사투리와 좋아하는 사투리를 엮은 책 '그리움의 말을 찾아서'의 출판 기념회도 함께 열린다.
지금은 사라진 '삼천'의 우리말 '세내'와 전통 민속놀이 '전주기접놀이'를 내세운 축제가 벌어진다.사단법인 기접놀이보존회(회장 심영배)와 세내전통문화축제 제전위원회(위원장 전석진 손홍목 양진영 김대진 소만호)가 주최하고 삼천문화의집(관장 이수영)이 주관하는 '2009 세내전통문화축제'가 22일부터 24일까지 전주시 삼천변 세내교 일대에서 열린다.축제 중심이 되는 기접놀이는 7m 장대에 가로 3.4m, 세로 2.2m의 대형 깃발을 달아 그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의 안녕과 평안, 번영을 기원하던 민속놀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삼천동과 평화동 효자동 등에서 활발하게 전승됐었지만, 이후에는 그 맥만 간신히 이어지다 1998년 전주기접놀이보존회가 결성됐다.이번 축제에서는 용의 모습이 그려진 깃발 용기 전시와 용기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된다. 300년 넘게 전승되고 있는 10여개의 용기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용기 전시는 '용기 해설사'를 운영, 전문 해설사가 용기에 대해 설명도 해 줄 예정이다. 깃발에 서예를 쓴 '서예 깃발' 전시와 깃발에 주민들이 직접 소원을 담아 보는 '시민깃발체험전'도 볼거리다.축제 마지막 날인 24일 오후 2시에는 문화공연과 퍼포먼스, 어린이 글짓기·그림대회 시상식이 진행된다. 이날 도시와 농촌을 구분 짓는 삼천변에 놓은 전통다리 섶다리도 개통한다. 개통식과 함께 고사 및 축문 낭독, 대동합굿 등이 펼쳐진다.
"세내전통문화축제는 주민 스스로가 현대적 삶 속에서 과거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문화를 배우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주민들의 바람이 축제를 통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2009 세내전통문화축제'를 주관하는 삼천문화의집 이수영 관장은 "그동안 관 중심 행사와 다르게 평화 2동, 삼천 2·3동, 효자 3·4동 동장 및 주민들로 구성된 제전위원회가 주축이 돼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신종 플루 영향으로 축제를 상당히 축소된 형태로 치르게 됐지만, 세냇가 주변을 무대로 하고 섶다리에 용등을 띄워 축제 분위기를 살리려고 해요. 앞으로 주민과 밀착된 행사들로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고 싶어요."그는 "세내전통문화축제가 삼천생활권 지역의 전통문화 자원을 복원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나아가 지역 이미지를 창출하고 브랜드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귀족문화가 성행했던 동진시대를 지나 중국의 문화는 다시 분열기를 맞는다. 동서에서 남북으로 이행된 중국의 문화는 남조와 북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남조는 송(宋)·제(齊)·양(梁)·진(陳)으로 동진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무제(武帝)를 비롯하여 도홍경(陶弘景) 등이 출현한 양나라는 서예와 서론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양나라의 마애비로서 진강(鎭江) 초산(焦山)에 있는 예학명(514년각)은 서예사에서 크게 주목받는 석각이다. 한 글자가 손바닥만한 대자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웅혼함을 느끼게 하며, 해서이지만 예서와 행서의 기운을 갖추고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이행기의 양상을 보이며 독특한 서체적 특징을 이루고 있는 비각들에서는 세련미보다는 천진한 소박미가 느껴져 예술가의 감성을 자극한다. 고예로 구분되는 우리나라의 광개토호태왕비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자연석에 새겨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재질로 인하여 정밀성보다는 순자연의 소박함이 돋보인다.예학명에는 본래 기년이 없으나 송 황장예(黃長睿)가 양나라 천감(天監) 13년으로 고증함에 따라 514년에 새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본래는 초산의 서쪽 절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수나라 때 강으로 떨어져 다섯 조각으로 부서졌고, 이후로 물이 빠지는 겨울에만 탁본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채탁한 것을 수탁본(水拓本)이라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글자는 90여 자이다. 본래 화양진일(華陽眞逸)이 짓고 상황산초(上皇山樵)가 썼다고 하나, 서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여 왕희지, 고황, 도홍경의 설이 있는데 도홍경의 설이 가장 유력하다. 도홍경(456~536)은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하여 도은거와 화양은거로 불렸는데, 양무제가 편지로 서법을 질문하고 수시로 정치적 자문을 구하여 '산중재상'이라는 호칭이 있었던 인물이다.'예학명'은 말 그대로 학(鶴)을 묻고 그 내력을 새긴 글씨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학의 수명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임진년(512)에 화정(華亭)에서 학을 얻었으나 갑오년(514)에 죽었다. 이에 현황색(玄黃色)의 비단으로 싸서 이 산 아래에 묻었다. 선가(仙家)에는 비석을 세우고 깃발에 기록하는 예가 있으므로 명을 새겨 후세에 전하노니…". 위진남북조의 신선사상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이는 대목이다. 유례 없이 큰 글씨로 절벽의 암석에 새겨진 글씨는 그 호방함 때문에 주목을 받아 역대 서가들이 임서하며 서평을 남겼다. 북송의 황정견(산곡)이 왕희지의 글씨라고 믿고 천착하여 일가를 이루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호남의 명유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은 창암 이삼만의 글씨가 '예학명'의 형상을 변화시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평하였는데, 창암 스스로도 서법은 '대우전(大禹篆)'과 '예학명'에서 나왔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또 평산당(平山堂)의 주지승 성오(省悟)가 한 쌍의 학을 길렀는데 한 마리가 발에 병이 나 죽자 다른 한 마리가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슬피 울다 끝내 따라 죽으니 학총을 만들고 안진경(顔眞卿)에게 명문(銘文)을 부탁하였다. 안진경이 명문을 지어 쓰며 말미에 "살아서는 숲 속에서 함께 지내고, 죽어서는 아름다운 언덕에 함께 묻혔구나. 저 새들의 정열(貞烈)도 이와 같은데 세상에 의리 없는 사람들은 새들에게 부끄러울 것이다."고 하였다. '예학명'의 글씨나 일화에서 배울 점이 많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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