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결산> ①SK 독주로 막 내린 2010년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도 뜨거웠다. 정규리그부터 각종 대기록이 수립된 사이 막판까지 SK와 삼성이 치열한 1위 경쟁을 벌이며 관심을 키웠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두 차례나 최종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끝까지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열리는 해라는 악조건에도 지난해 세운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며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서 위상을 다진 가운데 SK가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며 최고 명문팀으로 우뚝 섰다. 삼성과 두산, 롯데는 거듭된 혈전으로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내면서 저력을 보여줬지만 결정적인 허점도 함께 드러냈다. 반면 지난해 12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전통의 명가'를 부활시킨 KIA는 5위로 추락해는 아픔을 맛봤고, LG와 한화, 넥센은 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SK, 3번째 우승컵 들어올리며 독주지난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SK는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4연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탈환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주까지 1위 다툼을 벌였던 삼성과 맞붙은 SK는 명승부가 펼쳐지리라던 기대를 비웃듯 일방적인 승리를 이어갔다. 왼손 투수 위주로 구성된 SK 불펜은 승부처마다 번갈아 등판해 삼성의 왼손 타자들을 돌려세웠고, 1차전 김재현의 적시타와 박정권의 홈런포로 존재감을 알린 타선도 4경기 내내 폭발했다. SK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래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으로 우승컵을 차지한 6번째 팀으로 이름을 올리며 해태(1987년, 1991년)와 LG(1990년, 1994년), 삼성(2005년) 등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인 명문 구단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섰다. SK는 한국시리즈에 앞서 이미 정규리그부터 강호로서 모습을 확실히 보여줬다. 잦은 연패로 주춤하기도 했지만 개막 3경기를 내리 이겨 전 시즌부터 계속된 22연승 행진 신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해 4~5월에는 무려 16경기에 내리 승리하는 등 시즌 내내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했다. SK는 4월18일 1위로 올라선 이후 한 차례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끝까지 선두 자리를 지켰다. ◆저력과 약점 함께 드러낸 삼성.두산.롯데지난 시즌 5위에 머물러 가을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던 삼성은 젊은 선수들이 한층 성장하면서 올해 2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은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두산과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른 끝에 극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와 올해 포스트시즌을 명승부로 수놓았다. 유격수 김상수와 투수 안지만 등 젊은 선수들은 큰 무대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실력을 드러냈고, 베테랑 배영수도 어김없이 가을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끈끈한 모습과 달리 한국시리즈에서는 4연패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정규리그에서 SK와 9승10패로 대등하게 싸웠던 모습을 한국시리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투수와 야수 모두 SK보다 집중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두산은 지난해에 이어 정규리그에서 2년 연속으로 3위에 머물며 힘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가을 잔치에서 가장 빛난 조연은 단연 두산이었다. 롯데와 준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두산은 삼성과 플레이오프에서도 5경기 모두 1점차로 경기가 끝나는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칠 대로 지친 롯데 불펜 투수들이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지는 모습은 승패를 떠나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결국은 항상 고민이었던 투수력이 보강되지 않은 탓에 올해도 우승의 꿈은 포기해야 했다. 외국인 투수 히메네스와 토종 에이스 김선우가 버티면서 선발진은 원투펀치의 구색을 갖췄지만 마무리 이용찬이 음주 교통사고로 엔트리에서 빠지는 등 불펜 전력이 약해진 것이 발목을 잡았다. 롯데는 창단 후 처음으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타격 7관왕에 오른 이대호를 필두로 홍성흔과 가르시아, 강민호 등 즐비한 강타자들을 앞세워 화끈한 '빅볼 야구'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프로야구에 다양성을 더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두산에 먼저 2연승을 거두며 선 굵은 야구의 힘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뒷심에서 밀렸다. 특히 흐름이 넘어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속출한 수비 실책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롯데는 내리 3경기를 지면서 3년 연속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 돌아서는 신세가 됐다. 롯데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새로운 사령탑을 찾으려 하고 있다. ◆추락한 KIA…LG, 한화, 넥센은 긴 침체지난해 챔피언 KIA는 불운이 겹치면서 극적인 추락을 경험했다. 홈런왕 김상현이 초반부터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타선의 힘과 짜임새가 모두 크게 약해졌다. 지난해 다승왕 아킬리노 로페즈는 구위 저하에 불운까지 겹쳐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했고, 토종 에이스 윤석민(24)마저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중도에 이탈하면서 팀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았다. 결국 KIA는 힘겨운 4위 싸움이 진행되던 6~7월 무려 16연패에 빠져들면서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접어야 했다. LG와 한화, 넥센은 올해도 가을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8년째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한 LG는 신임 박종훈 감독을 불러들이고 풍부한 타선을 구축했지만 '팀 재건'과 '4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는 못했다. 마운드에서는 에이스 봉중근 외에는 제 역할을 해준 선수가 없었고 '국가대표 외야진'이라 불리던 타선도 부상과 부진이 엇갈리면서 좀처럼 힘을 한데 모으지 못했다. 가뜩이나 한정된 자원에 허덕이던 넥센은 걱정이 더 많다. 올해도 트레이드로 선수들이 숭숭 빠져나간 구멍을 고원준과 손승락 등이 잘 메우면서 탈꼴찌는 했지만, 앞으로 팀을 안정시키는 것이 더 어려운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이미 시즌 중반 황재균을 롯데로 트레이드하며 '선수 장사'를 계속한 만큼 또 주축 선수가 빠져나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김태균과 이범호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팀 전력이 더욱 약해진 한화는 결국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류현진이 최고의 투구를 선보이며 숱한 화제를 낳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받쳐줄 만한 동료가 없어 더욱 외로운 한 시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