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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윤미숙 '렛츠 기릿 나나나나는 래퍼!'

아이들이 등교하고 잠깐 쉬는 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에 귀가 세워졌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의 장래희망에 관련된 얘기였다. 달리는 차 뒤꽁무니에 무사안착 하는 청소부가 되겠다는 맹랑함에 끌렸다. 아이에게는 어벤져스급 푸른 꿈에 진지했다.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DJ는 아주 설레어했다. 아이는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계획적으로 밝혔다. 엄마는 철없는 아들을 말려달라는 의도인데 듣는 사람은 신통하고 무엇이 될지 흥미진진해졌다. 사연을 듣던 나도 아이가 크게 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아들의 미래가 궁금한 마음이 있어 사연을 보냈을 심상도 있었길 기대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다 하라고, 한없이 다 해보라고 더 일찍 말했더라면…… 이제 와서야 달라졌을까! 아쉬움, 미련의 앙금으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국 안데르센 대상작 『렛츠 기릿 나나나나는 래퍼!』는 부모가 지도하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스스로 키워가는 과정을 알려준다. 동화 속 경주는 기타와 랩 사이에서 갈등한다. 기타 연주로 인정받는 경주다. 그럼과 동시에 매료된 랩을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오케스트라의 바이얼린 주자인 엄마는 경주와 신경전이 팽팽했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거/ 먼저 하고 싶은데/ 돼돼돼/ 하고 싶은 거/ 먼저 해도 돼/ 돼돼돼/ 하고 싶은 거‘먼저 해도 돼/ 돼돼돼/ 나나나나도 음악해도 돼/ 공부해도 마음이 편치 않아/ 나의 미래가 편치 않아/ 내 책가방의 무게는 헉헉헉 "<본문 랩 중에서> ‘난 진짜로 랩을 하고 싶나?’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망설이지 말고 던져/ 내 멋대로 던져/ 똑똑한 그것보다 독특함을 살려/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 내 멋대로/ 내 생각대로 씽씽 달려"<본문 랩 중에서> 머뭇대던 경주에게 랩은 자꾸 ‘Let’s get it!’ 일깨운다. 스토리가 역동적이어서 읽는 내내 후끈하다. 글 속에 사이사이에 나오는 랩은 느슨할 간격을 없애고 촘촘하게 엮었다. 윤미숙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 짐작된다. 오케스트라, 기타, 랩 등등 음악가와 래퍼가 얼마나 노력 끝에 만들어졌는지 가히 느껴진다.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수없이 확인하고, 실행을 반복했을 것이다. 아이가 마음껏 경험하도록 길을 것을 통감하게 만드는 책이다. ‘돼돼돼!’는 방치, 방관이 아닌 가능성을 열어준다. 『렛츠 기릿 나나나나는 래퍼!』는 아이가 쑥쑥 성장한다. 자신의 이상과 의욕을 자유롭게 스스로 키워가는 과정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한다. 아 참! ‘영, 아니다 싶으면 유턴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할 뿐더러 되돌아오는 것도 일러줘야지 덤으로 알게 해준다. 성장판이 멈추지 않게 가능성을 부여하고 바라봐 주는 것, 여유가 아닌 여유로 곁을 두는 일이 양분이 될 때를 배운다. ‘다시 키우면 잘 키울 텐데’ 후회는 접어두고, ‘Let’s get it!’ 외쳐라.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수필당선, 2018년 《동양일보》 동화 신인문학상, 저서로는 『레오와 레오 신부』, 『가족이되다』, 오디오북 『구멍난 영주씨의 알바보고서』,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공저.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이 있다. 현재 아이들과 동시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23 18:04

문명전환종합지 '사상계', 55년 만에 복간호 발행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잡지 <사상계(思想界)>가 약 반세기 만에 돌아왔다. ‘사상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최근 ‘응답하라 2025!’를 주제로 창간 72주년 기념 특대호이자 재창간 1호를 발간한 것. 1970년 5월 20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지 약 55년 만이다. 과거 사상계는 독립운동가 출신 민주화 운동가 고(故) 장준하(1918-1975)가 1953년 4월 창간한 잡지로 민족, 분단, 민주주의 등의 주제를 선도적으로 다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학, 철학, 예술 등 다방면에 걸친 글을 싣고 담론을 이끌었으나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강제 폐간됐다. 그간 1998년 6월호(통권 206호)와 2000년 6월호(207호)가 발행되는 등 복간을 시도했으나 재정난과 준비 부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새롭게 출간된 사상계에는 현시대를 둘러싼 다양한 고민이 담겼다. 책에는 12·3 비상계엄, 소설가 한강, 문명 전환 등을 다룬 글이 실렸다. 또 ‘문예-자연을 짓다’ 시 부문을 통해 섬진강 시인이라 불리는 김용택 시인의 작품도 실려 독자들과의 조우를 기다린다. 발행인은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맡았으며. 명예 편집인에는 강대인 '배곳 바람과물' 이사장,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김용택 시인과 임진택 판소리 명창, 정성헌 한국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 편집고문으로 함께하며, 윤순진 서울대 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 석학 48인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장호권 발행인은 책의 서문을 통해 “작금은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와 교육과 한경 등 모든 분야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다불(多不)의 시대”라며 “이에 사상계가 다시 나서, 문명전환과 정치전환을 비롯한 거대한 전화의 시대에 작은 물꼬를 트는 일을 하겠다. 사상계는 문명전환과 생명평화의 극상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기어코 이바지할 것”이라고 발간사를 전했다. 복간된 사상계는 올해 계간으로 펴낸 뒤, 2026년부터는 격월로 펴낼 예정이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23 18:03

나만의 꿈을 찾아내는 감동의 성장 동화⋯장은영 작가, '광대 특공대' 출간

역사 속 광대들의 통쾌한 활약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이 꿈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감동의 성장 동화가 나왔다. 장은영 아동문학가가 어린이 성장 동화 <광대 특공대>(보랏빛소어린이)가 바로 그것. 책은 열두 살 소년 바우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속, 조선 시대 광대들의 삶과 활약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성장 동화다. ‘조선 시대의 광대’라는 소재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작품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역동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눈앞에서 공연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 이야기 속 화려한 옷을 입은 광대들이 채를 튕기며 버나를 하늘 높이 던졌다가 사뿐히 다시 받아 내는 순간, 섬세한 문장과 일러스트로 독자들의 눈앞에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연희가 생생하게 펼쳐지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처럼 작가는 다양한 광대들의 기술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광대들이 어떻게 몸을 움직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당시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러스트레이터로 함께한 인디고 작가는 전통문화 예술인 버나돌리기, 줄타기 등 광대들의 뛰어난 재주를 생생한 삽화로 표현해 독자들을 역사 속 현장으로 이끈다. 특히 이번 이야기는 1555년 을묘왜변 당시 전주 부윤 이윤경이 광대들을 통해 왜구를 무찔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창작된 것으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기록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예술이 가진 힘과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장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오래전 버나 공연을 보고 버나재비의 모습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시대, 버나재비와 같은 광대는 천민은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며 “그러던 중 조선왕조실록 속 기록을 보고 광대 특공대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됐다”고 말하며 이야기의 시작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광대의 길을 선택해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어린이 독자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하고 즐겁고 기쁜지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보석 같은 꿈을 찾아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2024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23 18:03

김영 디카산문집 '파랑 한 발채' 출간

김영 시인이 디카산문집 <파랑 한 발채>(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시인이 펴낸 디카산문집 <파랑 한 발채>는 지난 2020년 인간 사이의 사막을 주제로 펴낸 시집 <파이디아>의 연장선에 있다. ‘사막은 원래 바다였다’는 말에 영감을 받아 바다와 관련된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설프지만 바다를 보고 떠오른 생각을 차곡차곡 글로 옮겨 적었고, 사진과 함께 책으로 출간했다. “배 지나간 자리에 물띠가 일어납니다/물띠는 아무것도 맬 수 없고 아무도 매어둘 수 없습니다//당신이 지나간 마음엔 당신이 떠나던 길이 선명합니다/걸어도 걸어도 당신에게 갈 수 없는 길입니다/기다려도 기다려도 당신이 내게 오지 않는 길입니다”(‘물띠’ 전문) 그가 4년 만에 펴낸 산문집에는 자신의 가치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에게 바다란 자신인 동시에 타인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되는 우주 만물인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변산 앞바다 파도의 곱디고운 풍경과 함께 고요한 날들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글로 끝을 맺는다. 모든 이의 앞날이 윤슬처럼 반짝이고, 물결처럼 고요하길 바라는 시인의 따뜻한 메시지가 큰 울림을 선사한다. 김영 시인은 “나에게 타자는 언제나 출렁거리는 문장”이라며 “이 책의 수많은 타자인 당신은 너이기도 하고 나 이기도 하고 우리이기도 하고 절대자이기도 하고, 우주 만물이기도 하다”고 책에 대해 소개했다. 시인은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해 <나비 편지> <수평에 들다> <파이디아> <벚꽃 지느러미> 등을 펴냈다. 윤동주문학상과 석정촛불시문학상 대한민국 예술문화대상(대상) 외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전북문인협회장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석정문학회장으로 활동중이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23 16:40

상상의 시력(詩歷) 풍성, 소재호 시인 '나비, 선율의 시' 출간

풍부한 상상의 시력(詩歷)과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곡절하게 노래해 온 소재호 시인이 시집 <나비, 선율의 시>(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그동안 삶의 구체적인 감각에서 길어올린 맛깔스런 언어로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이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깊어진 시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특유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서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묵직한 통찰로 내면을 어루만지는 새로운 경향의 시편들이 돋보인다. “가만히 보아/물방울 홀로일 때는 간곡한 머물음이야/몇이 뭉치면 금방 무너지네/무너짐은 흐름인 거야//(…중략…)//무너짐으로 큰 하나 이룩되는 것을/바다라 하네/바다도 무너지면/해일(海溢)로 솟아/그리하여 허공으로 무너지면/또 하나 세상을 퍼는 것이지//사람도 제각각/무너지면, 강물 나아가듯이/도(道)가 되는 거야”(‘무너지네’중에서)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 깊숙한 자신만의 내면을 단단히 다져왔음을 증명하는 이 시집은 혼란스러운 세계를 부유했던 지난날에 대한 시인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자아를 담는 날카로운 언어를 따라가면 끝없이 부서지고 합체된 내가 있음을 보여준다. 시집에는 시인의 깊은 시적 사유와 철학이 깃든 70여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임명진 문학평론가는 시집 평설에서 “‘소재호는 화이부동의 시인이다’라는 애초의 언명도 이제 다른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이 이쯤에서 더욱 선명해진다”며 “상상의 시력이 확신의 증표가 되고도 남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위대한 존재를 추구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1984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재호 시인은 전북문협회장, 원광문인회 회장, 석정문학회장, 전북예총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문화 대상을 비롯해 목정문화상, 한국문화상, 중산문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시집 <이명의 갈대> <용머리고개 대장간에는> <악성 은행나무> <초승달 한 꼭지>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23 15:58

영원한 저항 시인 '김지하를 다시 본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 고(故) 김지하 시인의 문학과 예술·생명 사상을 재조명하는 책이 나왔다. 김지하추모문화제추진위원회가 <김지하를 다시 본다>(개마서원)을 발간한 것. 책은 2023년 5월 김지하 추모 1주기에 열린 ‘김지하 추모 학술 심포지엄’ 토론 자료를 정리하고, 다시 꼭 읽어야 할 김 시인의 글을 모아 만든 105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1부에는 염무웅, 이부영, 임진택, 임동확, 김사인, 홍용희, 정지창, 채희완, 심광현 등 30여 명이 ‘김지하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 이라는 큰 주제 아래, ‘김지하의 문학 예술과 미학’, ‘김지하의 그림과 글씨’, ‘민주화 운동과 김지하’,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문동’으로 나눠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한 후 정리한 내용과 종합 토론을 한 내용을 단행본에 맞게 정리해 놓았다. 이어 2부에는 ‘김지하가 남긴 글과 생각·생명의 길·개벽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김 시인이 남긴 수많은 글 중 꼭 다시 읽어봐야 할 글을 골라 실었다. 글에는 암울한 시대에 수많은 젊은이를 위로하고 힘주었던 <양심선언>, <나는 무죄이다>, 로터스상 수상 연설인 <창조적 통일을 위하여>,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등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수십 년 앞서서 말하고 방법을 제시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 <개벽과 생명운동>, 김 시인이 자신의 문학에 대해 쓴 <깊이 잠든 이끼의 샘>, 시인이 남긴 생명사상을 살필 수 있는 <생명평화선언>, <화엄개벽의 모심> 등이 실렸다. 이번 책의 기획에 함께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은 발간사를 통해 “젊은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그는 ‘죽임’ 앞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생명’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랐고, ‘감옥 밖 감옥에서’ 다시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사상’을 외치고 갈구하다 기진해 스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치열한 구도와 수난의 과정에서 기필코 열어 보려 했던 그 ‘생명의 문’을 이제 우리가 열어내야만 한다”며 그리워하는 많은 벗과 후배들의 추억 속에 남은 김 시인도 편안한 마음으로 명부에 들어가 쉬고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23 15:58

교응의 미학이 절묘하다⋯전호균 시인 '봄은 아픈가'

“삐져나온 마음/ 복숭아나무 서너 가지에/ 아기 꽃잎들을 깨우고 있다/ 옆에, 옆에/ 가지에서도 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투명한 향기가 여기에 있다고/ 나비 떼 찾아들어 꽃들을 어우른다/ 나비 떼 찾아들어 꽃들을 어우른다/ 꾼들이 지나가고 나면 씨방에/ 생살이 부풀 텐데/ 저들의 봄도 참 아프겠다/ 나는 붓끝에서 시간을 빨기 전에/ 잠시 고단한 기억을 터놓고/ 복숭아나무 그늘에/ 한 줄의 화제를 또박또박 못질했다/ 봄은 아픈 거다”(시 ‘봄은 아픈가’ 중) 미술작가임과 동시에 시인이기도 한 전호균이 시집 <봄은 아픈가>(제이비)를 그려냈다. 총 5부로 구성돼 90여 편의 시가 실려있는 시집 속 전 시인의 작품에는 시의 삼 요소가 균등하게 배분되면서 또 회화적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특별한 색채를 띤다. 소재호 문학평론가는 전 시인의 이번 시집을 ‘서정성이 회화적 이미지를 띤 영활의 시’라고 총평했다. 그는 “시인의 시는 감성적 정조는 알맞게 조절되고 감상은 사뭇 절제된다”며“또 그림으로 형용되는 상징물들은 이미지즘의 단계를 밟는다. 이미지의 아우라 변용으로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 몇 편을 골라 깊이 음미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실제 책 속 시편들을 감상해 보면, 수직적 교응의 교합이 시편마다 합융해 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피사 되는 만물의 질료를 그 근원적 실재에서 통찰하고 소위 견자의 논법대로 아우라를 묘사해 낸다. 전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오랫동안 생각의 무늬만 붙잡고서 좋아하는 붓을 들지 못했다”며 “그림을 가을옷으로 지어 입히고 까치의 노래 듣는 소나무의 푸른 그늘에서 먹물을 달빛에 말렸다, 때때로 밤낮없이 그림이 내 귀속에 자꾸만 말을 할때마다 시어들을 가족으로 불러 모아 놓고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스케치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날 당신과 함께 같은 꿈을 키웠던 기억의 언어에 채색해 당신이 몹시 그립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시를 그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인은 동국대 미술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월간<한국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와 전주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16 18: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이선애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이삼십 대엔 월급을 타고선 월례처럼 서점엘 갔다. 요즘엔 서점보다 도서관의 서고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다른 작가나 시민의, 책을 골라 읽는 큐레이션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올봄, 전주시립 완산도서관의 <자작사색> 입주 작가로 3층 책장의 두 칸을 큐레이션 하게 되었을 때, 이선애 시인의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에로티시즘으로 읽어야 할지, 자기 구현으로 읽어야 할지. 그의 시는 상처투성이의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공감 이상의 세계, 그 고통의 세계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것이다. 상처와 어둠을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함께 버티는 것이다. 그의 시는 매일의 뉴스, 내가 기억하거나 잊었거나 어떤 사건의 뒤를 추적하게 했다. “산다는 것은 머리를 박고/ 목숨을 불꽃 위에서 꽃피우는 것”(「사랑의 기술 2 –가스레인지」) “꽃잎은 그렇게 죽음을 앞지른다” (「사랑의 기술 3 –업사이클링」) “들여다보면 희생도 이기적이다/ 강산은 그저 변하지 않고/ 나를 통하여 너에게 간다/ 악역은 늘 나의 몫” (「사랑의 기술 4 -전골」) 한때 저자의 스승이기도 한 이은봉 시인은,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12년만인 2020년에 첫 시집을 낸 것에 대해 추천사를 붙이는 일이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꼼꼼하게 뜯어 읽어야 그의 시가 지닌 깊이에 이를 수 있다고. 프랑스 시인 랭보의 말을 빌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며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향기 있는 시,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고. 그가 제 시를 상처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기인한다고. 시인의 말에서 그는 “한 발자국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공중을 펼쳐 놓고/ 발자국을 더듬었다./ 발이 푹푹 빠졌다 그때 낮게 하늘을 나는/ 한 무리 새들의 흰 배가 보였다./ 여린 숨결이 밀고 가는 굶주린 탈주/ 새들의 바닥은 하늘이구나!/ 오독의 천국에서 시간을 눌러 죽였다.”고 했다. 그의 모든 삶과 공간은 슬픔과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실로 존재한다. “완성은 언제나 미완성보다 쓸모없는 것인가”(「안나푸르나 –산 혹은 밤」) “사라진 과거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사라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공룡발자국 옹달샘」) 시인은, ‘내 몸’이 ‘어린 神이 태어나는 고요한 능선, 정신만 외롭게 빛나는 사막’임을 놓치지 않는다. ‘서늘한 카페’에서 ‘진한 아라비카 커피가 목젖을 적’시면 ‘실재와 악몽 사이에서 기호를 낳는 자궁’이 된다. 그의 과거는 지하도시 같은 비밀스러운 카페와 책꽂이가 가득한 도서관이나 자신의 서재와 같은, 침묵이 으르렁대는 절집, 또는 그의 모든 기록의 장소인 사람, 그 장소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낙타의 가시 돋친 붉은 꽃을 먹으며, 환골탈태의 고통을 견디고 버티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창작의 쾌감을 기다린다. 사라진 시간을 놓친 슬픔과 그리움, 자기검열의 공간. 그의 시 한편한편은 각각 하나의 방에 들어있다. 원고지 한칸한칸의 네모난 방에 든 것이다. 그의 시집은 아파트 한 동 같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있다. 그의 네모난 원고지, A4, 워드 자판은 세계이며, 모든 시로 향한 거울이다. 시인은 수없이 많은 방에, 과거의 기록을 가진 사람을 들이고 타자와 자신의 경계를 허문다. “한 줄기에서 태어난 수많은 잎사귀/ 똑같이 제 몫의 햇살 나누어 갖는다/ 그의 붓 자국이 내게로 건너온다”(「사람주나무」) 과거, 현재, 미래가 섞여 있는 것이 시이고, 시의 순간은 지난 시간을 더듬는 자리에서 온다고, 시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발자국에 대해서만 물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16 18:18

작은 설렘을 기록한 수필⋯노은정 수필가, '하루살이' 발간

노은정 수필가가 수필집 <하루살이>(한비CO)를 펴냈다. 책은 ‘제1부 풋사랑’, ‘제2부 코딱지’, ‘제3부 사랑은 나를 비우고’, ‘제4부 더덕 꽃향기’, ‘제5부 하루살이’ 둥 총 5부에 거쳐, 지금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 속에 수록된 수필은 한 편 한 편이 일상에서 대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수용해 지각에 이르게 한 다음 영과 융합시키고 있다. 또 몇 편의 수필에는 동화적 기법이 사용돼 작가의 내면에 잠재한 순수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번 수필집 속 글에는 작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노 작가가 본인의 가슴이 뛸 때마다 써 내려간 글로 가득한 이번 수필집 속 기록된 작가의 가슴이 뛰었던 시간은 특별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다. 실제 그의 가슴이 뛴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영유와 낭만을 담아 차를 마시고, 반짝이는 은빛 물결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예쁜 꽃을 보고, 향긋한 꽃내음을 맡는 등 아주 지극히 사소한 장면들이다. 이처럼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감동하는 작가에게 수필을 쓰는 일 역시 가슴 뛰는 일이었다 고백한다. 그는 “수필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문학이기에 불완전한 삶을 끊임없이 성찰해 완전히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라며 “그동안 내 안의 울림을 듣고 생각한 흔적과 일상에서 잊히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본다. 어설프고 외로운 날갯짓이지만 내 사색의 정원을 찾아준 고마운 방문객들이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이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2011년 대학문단 수필로 등단한 작가는 2014년 한비문학 동시‧동화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아동문학 동화부문 신인상, 2022년 한국아동문학 오늘의 작가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동시집 <호박이 열리며>를 비롯해 동화집 <아기 다람쥐의 외출> 등이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아동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16 16:53

소설 '달궁', '강' 펴낸 원로 소설가 서정인 별세

실험적인 소설쓰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며 1970~80년대 한국 문학을 이끈 소설가 서정인(본명 서정택)이 14일 밤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6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1962년 잡지 ‘사상계’에 단편소설 <후송>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소설 <강> <가위>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 장편소설 <달궁> <봄꽃 가을 열매> 등을 펴내며 왕성히 작품 활동을 했다. 1968년부터 2002년까지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정년퇴임 후에도 2009년까지 명예교수를 지냈다. 2009년 7월에는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원으로 선임됐다. 1968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강>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담아내 문학계의 극찬을 받았다. 실제 황석영 작가는 “1960년대 한국 단편문학의 빛나는 결정체”라고 평한 바 있다. 서정인의 문학은 인간의 타락과 삶의 어두운 측면을 정제된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87년 출간한 <달궁> 3부작은 판소리와 소설을 접목한 독창적인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소설은 한국전쟁 중 부모와 헤어진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주인공 인실이 부정과 허위만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일생을 그렸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저자 특유의 형식 파괴적 실험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꼽힌다. 사회의 모습을 해학과 아이러니로 형상화하면서 다양한 문체적 실험을 시도한 작가는 한국 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월탄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2년 녹조근정훈장,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경기 김포 뉴고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7일 오전 7시, 장지는 용인평온의 숲이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16 16:26

도보여행가 신정일이 길어올린 '이토록 매혹적인 역사여행'

신정일 작가에게는 으레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문화사학자’ 그리고 ‘현대판 김정호’. 40년 간 우리 산과 강, 바다를 누비며 도보여행의 신세계를 열었던 저자는 남도에서 동해까지 관통했던 ‘해파랑길’을 기록했고, 발길과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얽힌 지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신택리지’를 세상에 선보였다. 그러나 두 수식어만으로 신정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도보여행가로서 두 발로 걷고 기록한 것들은 단면에 불과하다. 그가 탐독한 조선왕조실록부터 택리지까지 수많은 역사지리서는 여행을 기록하는데 중요한 연료가 됐기 때문이다. 신정일 작가의 밀도 높은 역사·문화적 서사를 엿볼 수 있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도보여행' 선구자로서 현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신정일 <이토록 매혹적인 역사여행(사찰‧정원‧절경‧문화유적으로 만나는 우리 역사 55)>(깊은샘)에는 저자가 아로 새긴 쉰다섯가지 역사여행의 진면목이 담겨있다. 우리 역사의 문화적 근간을 이루는 주요 사찰과 서원, 정원, 자연명승, 문화유적을 저자 특유의 시각과 해석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땅끝 해남 미황사 달마고도에서부터 섬진강 길, 광주 무등산, 강진 다산초당을 거쳐 철쭉꽃과 진달래가 수놓인 합천 황매산과 충북 제천 충주호까지 매혹적인 역사여행길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특히 자신이 최소 세 번 이상 걸었던 우리 산하의 역사를 인문적 성찰로 서술한다. 선운사와 부석사 등 우리나라 대표 사찰을 통해 불교문화에 대한 시각을 전달하고, 사원을 통해 조선유학자의 높은 이상세계를 조명한다. "안양루 밑으로 계단을 오르면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중 빼어난 조형미를 간직한 부석사 석등이 눈앞에 나타나고, 뒤로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인 무량수전이 있다" ('나라 안에서 가장 빼어난 절, 경북 영주 부석사' 중에서) 봄‧여름‧가을‧겨울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전남 해남부터 강원 정선까지 전국 팔도의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사진을 수록해 시각적 즐거움을 전한다. 신정일 작가는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긴 여운이 남는 아름다움 풍경들이 머물러 있다가 한 편 한 편이 글이 되어 세상 속으로 나갔다”며 “이번에 펴내는 책에는 이 땅의 숨어 있는 절경들이 행간을 가득 메울 것”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현재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일 작가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1989년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길 위의 인문학’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정일의 신택리지> 10권을 비롯해 <강답사여행기> <역사인물교양서> 등 110권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16 16: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김해자 외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

여기 펜이 있습니다. 4+1입니다. 샤프심과 빨강, 초록, 파랑, 검정 펜이 들어있어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찾아봅니다. 플라스틱, 금속, 스테인리스강, 염료, 벤질 알코올, 지방산, 흑연, 햇빛과 달빛의 속삭임, 바람의 귀 기울임 등등 헤아릴 수 없군요. 어느 노동자의 땀과 숨결이 섞였을 수도 있어요. 걷는사람 시인선 100호 기념 시집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는 98명의 시를 한 편씩 가리어 뽑았어요. 제목은 문신의 시 ‘시 읽는 눈이 별빛처럼 빛나기를’에서 가져왔고요. 생각은 힘이 셉니다. 마을 사진을 찍는 드론에 탈 수 있어요. 빈틈이 있어 많아진 물이 흐릅니다, 적으나 정밀한 불이 타닥타닥 무얼 짓고요. 강하고 견고한 바위가 새소리처럼 질문을 던지기도 하죠. 흩어져 있지만 실한 흙은 콧노래 부릅니다. 두 최고봉을 봅니다. 걷는 사람과 걷지 않는 나무. 다 달라, 하나하나가 시입니다. 가지가 굽었거나 썩었다고 사람과 나무를 비난할 순 없습니다. 칭찬할 걸 찾아 눈과 귀를 엽니다. 그들이 고래처럼 펄럭펄럭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되어봅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기다리며 한자리를 지켜온 그들은 자신들의 나이테가 읽을거리가 되는지 어떤지 자책에 떨지 모릅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누가 지어주었나, 어떤 (무)의미가 있나, 물어봅니다. 그들에게 코를 기울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배달하는 그들의 내음이 올라옵니다. 펜 하나 눌러 시 하나 펼쳐 봅니다. 경제, 과학기술, 외교, 지역 균형, 문화의 심들 하나씩 눌러 민주와 정의를 쓰고 싶듯. “길은 늘 발끝에서 어린 양처럼 멈춰 서곤 했고/ 그래서 양이 잃어버린 것은 길이 아니라 동행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며”(송주성 ‘막북漠北에 가서’ 중).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잉어를 잡아다 넣어 둔 항아리처럼/ 일렁거려 잘 수가 없네”(송진권 ‘소 꿈’ 중).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고중식 ‘초식동물’ 중). “갓 쌓인 눈에 발이 잠기는 순간까지만/ 바래다 줘”(박진이 ‘바래다 줄게’ 중).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안상학 ‘몽골에서 쓰는 편지’ 중). “내놓고 치라고 슬픔이 밖에 나와 있는 걸 안다 마음에 두었던 색을/ 허리에 매고 나아갈 쪽 반대를 치겠다”(졸시 ‘꽃멸치’ 중).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옆에 커피잔이 놓여 있으면 덜 심심하다/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라고 한다”(하상만 ‘잔’ 중). “나는 누구의 대신일까/ 누가 나 대신 황야를 걸어 노을 속으로 심부름 갔을까”(김안녕 ‘뼈 심부름’ 중). 시 읽는 일은 낯설지만 본 듯한 곳으로 여행을 가게 합니다. 두근대는 심장을 가슴 밖에 내게 해요.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의 눈을 반짝이게 합니다. 시 속엔 무엇이 있을까요? 경계 없는 유일한 탈것이라는 상상이 기다리고 있어요. 시인이 오래 담가두었던 언어들이 진한 향을 내며 뒷걸음질 치고 있어요. 내 아픔과 등을 기댈 님의 아픔이 갓 지은 밥풀 냄새를 풍기고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09 18:51

청년들이 일군 민주주의 뿌리…이광재 장편소설 '청년 녹두'

소설가 이광재가 꼬박 1년을 집필한 <청년 녹두>(도서출판 한국농정)는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의 청소년기를 다룬 이야기다. 소설은 전봉준의 열두 살 때인 1866년부터 스물한 살이 되던 해인 1875년까지 십 년 간의 시간을 서술한다. 소설의 시간을 이루는 십 년의 세월은 조선의 안과 밖이 모두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수시로 무력 침범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전근대적 왕조가 붕괴됐고, 근대 사회가 열리던 변혁의 시대에 조선은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민심과 민생이 악화일로로 치닫았다. 그렇기에 작가는 조선 내부의 사회모순과 가렴주구가 극심해지는 시대상을 단순 서술하지 않는다. 정치사적 격변을 당대 주요 양요들의 사건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시대를 겪은 인물들이 안쓰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근대 이후 오늘에까지 이 땅에서 겪고 있는 '양이(洋夷)’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도록 섬세한 필치로 동학을 묘사한다. “이제 왜구들은 조선을 제 집 강아지 다루듯 한답니다. 제 나라 임금을 천자라 칭하면서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지요. 그래서 대원위 대감 시절엔 서계를 받지 않았던 겁니다. 그 일로 왜국 사신이 뻔질나게 드나드는데 여기 이 사람이 왜국에 다녀왔으니 물어보시우.”(본문 287쪽‘) 구한말 수차례 겪은 양요는 이 땅의 근세사가 겪은 과거사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지속해서 한국인의 삶에 작용하는 현실의 문제라는 작가의식을 엿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소설에서 '청년 녹두'와 그의 일행들이 양요(洋擾)와 양이를 대하는 비판적 시각은 큰 울림과 감동으로 와닿는다.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소설 <나라 없는 나라>와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 등을 펴내며 ‘동학’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는 동학사상을 뿌리삼아 농민혁명의 주역으로 성장한 청년들의 치열함을 진지하고 절절하게 전달한다. 하원오 전봉준투쟁단 총대장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세계질서를 수립해야 하는 이 시대에 젊은 날 녹두장군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청년 녹두'의 출연은 뜻깊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1989년 녹두꽃2에 단편 ‘아버지와 딸’을 발표한 이광재 작가는 동학농민혁명을 천착하여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를 펴냈다. 이후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단편집 <늑대가 송곳니를 꽂을 때>와 장편소설 <수요일에 하자> <왜란>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9 17:05

김계식 시인, 서른여섯 번째 시집 '명주실 한 꾸리' 발간

“삶의 방법을 일컫는 한 갈래로/ 쌍벽을 이루어 우리의 뇌리에 박힌/ “짧아도 굵게”/ “가늘어도 길게”라는 표현이 있지/ (중략) 자기의 목숨 줄 뚝 잘라/ 아내인 우리 할머니에게 보탬으로/ 쉰다섯 해 전에 아흔두 살까지 살게 하신/ 우리 할아버지/ 오죽 했으면 아까운 손주 아명을/ 항렬 자식 앞에 명주실의 실을 붙여/ “실식”이라 불렀으리라고/ 길거나 깊은 곳을 잴 때/ 쉬 따다가 쓰는 명주실이 인연이 되어/ 누에고치 삶아 실을 뽑는/ 옹기 솥단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번데기 닁큼닁큼 받아먹는 맛도 맛이려니와/ 줄줄 이어지는 명주실 바라보는 재미/ 그 어디에 비할수 있으랴”(시 ‘명주실 한 꾸리’ 중에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하루 시작을 시 쓰기로 여는 영주(瀛州) 김계식 시인이 서른여섯 번째 시집 <명주실 한 꾸리>(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시집은 ‘빛이 되는 길’, ‘삶의 향기’, ‘미지의 증폭’, ‘긍정이 빚은 기쁨’, ‘쾌재의 진원’ 등 총 5부로 구성돼. 80편의 신작을 품고 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시작되는 시 쓰기 시간 속 탄생된 작품이 실린 만큼, 책에는 시인의 두터운 신앙심과 더불어 신선한 창조의 기운부터 삶에 대한 번뇌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봄빛 무르익는 4월 끝 주 토요일/ 시인(P) 수필가(E) 소설가(N) 서른아홉/ 빈틈없이 계획된 문학기행의 한 촉이 되어/ 암수 정답게 짝지은 마이산을 바라보며/ 진안휴게소의 빗돌에 새겨진/ ‘행복과 만남의 길’ 일러줌을 따라/ 경상도 서남 문화의 보고 함양을 찾아갔지/ (중략) ‘하나 둘’ 선생님의 구령에 ‘셋 넷’따라하는/ 노란 병아리 유치원생이 된 우리 일행은/ 그의 설명을/ 돋보기 삼지 않고는 바라볼 수 없고/ 보청기 삼지 않고는 들을 수 없었지”(시 ‘역사의 흐름을 굽어보며’ 중)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나라도 더 깨우치려는 하화중생(下化衆生)/ 한판 곱게 어울린 장을 펼쳤으니/ 이보다 더 값진 교육의 장이 어디 있으랴”(시 ‘기행 갈무리’ 증) 또 이번 시집에는 ‘전북PEN 봄날 문학기행’과 ‘전북시인협회 문학기행’ 등 시인이 몸 담은 문학 단체가 진행했던 문학기행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당시 시인이 느낀 감상을 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한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서른다섯 번째 시집을 출간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며 “반 년 조금 넘은 시간인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부를 묻고 싶기도 하고 안부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 또 이렇게 삶의 이모저모를 담아 보냈다”고 말했다. 정읍 출생인 시인은 2002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완주문인협회, 한국미래문화연구회, 전북PEN클럽, 한국창조문학가협회, 두리문학, 표현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사랑이 강물되어> 등 일반시집 총 29권과 신앙시선집 <천성을 향해 가는 길>, 단시집 <꿈의 씨눈> 외 2권, 시선집 <자화상> 외 2권, 성경전서 필사본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9 16:15

자연을 사랑한 저자, ‘양경무의 꽃이 말을 걸다’ 출간

“봄은 시작이 더디기는 하지만 시작하기만 하면 부산하다. 매번 봄은 발바닥에서 감촉으로 오는 것이다. 단단했던 땅이 화신을 실은 볕에서 언 땅을 누벼 발끝으로 전한다. 회색빛 겨울빛에서 물오르는 소리가 들려 눈에 연한 연두의 시작을 느끼게 한다, (중략) 언덕 개나리 및 봄까치, 별꽃이 귀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광대나물이 얼굴을 흐트러뜨리고 꽃마리도 나와 손뼉을 친다.”(글 ‘봄을 이루는 풍경’) 자연을 사랑하는 저자 양경무 씨가 사진 에세이 <양경무의 꽃이 말을 걸다>(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이번 책은 절박함과 한계 속에서도 고유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과 나무, 풀과 이끼 등 작은 생명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카메라에 담고, 그 순간에 대한 감상과 사색, 신앙심을 함께 엮은 기록이다. 양 씨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 9년에 걸쳐 자연을 오롯이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왔다. 도심의 변두리, 이름 모를 들판, 계절의 경계마다 피고 지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저자는 존재하는 것 그 자체의 가치에 주목해 왔다. 이번 책은 단순한 자연 사진집이 아니다. 책 속에 담긴 사진 한 장 한 장은, 자연이 저자에게 먼저 말을 건넨 순간들이며, 그 말에 귀 기울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속삭임의 기록이다. 사진과 함께 담긴 짧은 글들은 자연을 관조하는 눈길이자,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꽃의 표정, 나무의 자세, 풀잎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동물은 그중에서도 사람은 표전과 자세, 눈빛, 걸음걸이 등에서 전해오는 느낌과 영감, 공유, 경외, 싫어짐 등의 감정이 있다. 식물도 물로 그 자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예컨대 절박함, 한계성 가운데서도 자신을 보여주고 전해주려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하며 꽃을 마음에 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마다 선호의 감정이 있지만 저는 자신을 표현하고 전해지는 한계 속에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 가운데서 혹은 속박 같은 무언가에서 변명 없이 전해오는 메시지에 친숙해지는 것 같다”며 “제가 꽃, 식물 그리고 산과 교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일지라도 가까이 가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진안 출생인 양 씨는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그는 대자인병원 성형외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9 15:05

책을 매개로 로컬의 이야기를 나누다⋯전주 책방똑똑의 특별한 북토크

서울 밖의 저자-독자-기획자-지역이 연결되는 특별한 북토크가 완판본의 고장, 전주에서 펼쳐진다. 전주시 인후동의 한 골목에 자리잡은 ‘책방똑똑’이 오는 12일 <복닥맨션>의 북토크를 연다. ‘책방똑똑’은 전주시 인후동에 있는 수 많은 골목 중 그리 특별하지도, 수상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하고, 가파른 골목 끝에 있는 독립서점이다.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는 골목 초입, 진짜 이곳에 책방이 있을지 의심이 드는 중, 언덕 끝 하얀 바탕 속 검은색 고딕 글씨체로 ‘책’이라고 쓰인 동그란 간판만이 책방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인적이 드물어 고요하기만 해 보이는 이곳이 오는 12일 오후 ‘서울 밖, 로컬 생활자’들의 이야기로 떠들썩해질 예정이다. 이번 북토크는 서울 밖에서 복닥복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집, 책<복닥맨션>에서 파생된 ‘서울 밖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된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기획자가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북토크를 기획한 정은실 책방똑똑 대표는 “저희 똑똑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독립 서점이기도 하지만, 공간을 통해 사람들 간의 연결을 중요시하는 정체성을 지닌 ‘공간을 읽는 책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며 “ 때문에 도서 판매와 동시에 그간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열고, 전주라는 지역의 지역성과 장소성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프로그램 역시 책방의 장소성을 출판과 서점, 그리고 독자가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기획된 것”이라며 “우리가 머무는 많은 공간에 자신의 삶과 경험이 녹아들 때 이곳이 장소로서 온전하게 우리의 삶을 보내는 공간으로 와닿는다고 생각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며 덧붙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저자와 독자만이 아닌 기획자와 출판사 등 서울과 수도권에 중심된 출판문화계의 관계자가 지역에서 함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 대표는 “책이 출판돼 독자에게 가는 과정에서, 서점은 단순한 유통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엮고 확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지역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단순한 책 판매를 넘어, 지역과 연결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책은 특정한 공간과 시대를 담을 수 있는 매체다. 이번 북토크가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책을 매개로 한 시시콜콜한 지역 이야기가 열릴 이번 북토크 참여방법 등 자세한 사항은 책방똑똑의 SNS(@ttogttog.doo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3 17: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김채람, 양소영, 이풀잎 '효자, 시절'

익산시 남중동의 마당 없는 주택에서 자랐다. 주택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있는 주택이었다. 소담스러운 골목, 대문, 마당 그리고 화단을 지나 나오는 집의 현관 같은 것들. 나의 어릴 적 공간은 이런 전원 주택 타입은 아니었다. 사거리의 모퉁이에 있었고, 마당이나 화단 같은 건 없었다. 문짝이 하나인 대문을 열면 곧장 계단이 있었고, 그 끝은 바로 현관이었다. 1층은 가게고 2층은 살림집인 주택이었다. 나는 집이 실용적이어서 좋았다. 곳곳의 틈새는 가게를 위해 알차게 사용했고, 막연히 걸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길 없이 모든 공간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었다. 마당 대신 있는 옥상에서는 햇볕에 빨래를 널거나 화초를 키우고 아빠와 친 텐트에서 여름밤을 나기도 했다. 집 곁의 사거리에서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사거리의 모두 다른 길로 연결되었다. 다만 동네에 가게랄 것은 우리 집인 그린유리와 하이퍼마트(몇 년 전, 편의점이 되었다.)뿐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이 택배를 맡기거나 택시에서 목적지로 말하는 랜드마크 같은 곳이 되었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동네는 서서히 바뀌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날마다 내 손을 잡고 집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던 동네 오빠의 집도 있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쉬던 친구네 집도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집들은 전부 비어서 을씨년스러워졌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나중에는 어디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러기를 잠시, 집의 양옆으로 큰 빌라와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빌라와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 사이에서 말 못 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전의 동네가 얼마나 한산하고 어두워 보였는지를 생각하면 무턱대고 거대 아파트가 싫다고 말하기도 망설여졌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괴롭고 고민스럽기는 사는 이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동네의 변화를 회상한 것은 『효자, 시절』을 읽은 탓이다. 책은 효자주공3단지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살고, 벌고, 떠나고,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묶어 기록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는 다른 아파트나 커뮤니티의 기록 작업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사무실 앞 창고에는 아파트를 관리하며 모아두었던 사진과 도면, 각종 영수등들이 정돈되어 있다. 20년 전 효자주공3단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어지럽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시기별, 내용별로 분류하고 정리한 것이다.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다 사라질 흔적들이다. (161쪽)” 그동안의 모든 일을 기록하고 정리해 둔 관리사무소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남중동의 그린유리까지 이어졌다. 덩달아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나름대로 복기해보고 싶어졌다. 건너편이 아파트가 된 마당에 부모의 청장년이, 나의 유년기가 녹아있는 남중동 집도 언젠가 밀리고 헐려 사라질지 모를 일이니까. 작년에는 내게도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친구와 함께 전주의 97년생 아파트를 고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작된 나의 새 시절을 가꾸며 『효자, 시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02 18:32

순수한 어조로 자연의 생명력 서술…공인숙 시집 '바람의 일'

안효희 시인은 공인숙 시인의 신간 시집 <바람의 일>(신아출판사)이 “자연을 향한 한 줄기 편지 같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인간은 무엇이든 사물의 내부로 침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는데, 공인숙 시인의 시집은 상대에 대한 은밀한 유혹과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교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단 내 풀풀 나는 복숭아/생채기가 나 있다/상처 난 것도 버리지마라//산다는 건/상처를 보듬는 일/그 상처가 내가 되는 일”(‘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전문) 시인은 화려한 수사나 상징보다는 향토적 서정에 뿌리를 둔 수수한 어조로 자연의 생명성과 삶의 근원적 의미를 담백하게 노래한다. 전통적인 서정 문법에 충실하되 삶을 과정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절제된 감성과 진솔함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7년 한국문인 시 부문 시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이듬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람의 일’이 당선되며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저서로는 엔솔로지 <한국대표명시 1, 2 집> , <불곡산의 미소> 등이 있다. 공 시인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시인의 마음에 포근한 바람의 일이 일어나는 날을 지극히 기다려본다”라고 시인의 말을 통해 밝혔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2 17:06

동화 전문 잡지 '동화마중 2025년 상반기 통권 6호' 출간

동화전문잡지 <동화마중>의 2025년 상반기 통권 6호가 나왔다. 원유순 동화작가의 ‘위기의 시대, 작가의 할 일’이라는 글로 문을 여는 이번 잡지에는 오복이·전은희 동화작가가 전하는 ‘2024 전주 올해의 책’이 특집으로 실렸다. 또 다른 특집 코너에는 노동주·아무려나 작가의 ‘우리 동화 톺아 보기’도 담겨 동화라는 문학 장르를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올해 상반기 동화 마중의 ‘마중 초대 작가’에는 김옥애·이상배 작가가 이름을 올렸으며, 각각 ‘흰민들레 소식’과 ‘엄마, 쉬고 싶어요’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이어 동화마당 코너에는 강지혜·남은영·박자호·송창우·신소담·유하정·윤일호·이수빈·장정옥·정은경·홍유진 동화작가가 함께했다. 평론·서평에는 영미 작가가 만나본 <우주의 속삭임>(하신하 작)과 박월선 작가의 시선으로 소개하는 <한성이 서울에게>(이현지 작)가 실렸다. 잡지의 마지막 코너인 ‘독자가 추천하는 동화·그림책·청소년 소설’에는 박익산·박자호·심수정·오정수·윤형주·장용수·홍유진 등 총 7명의 독자가 추천한 28권의 작품도 담겨 눈길을 끈다. 김자연 동화마중 편집자는 “’동화마중‘은 동화를 쓰고 발표의 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며 “장르 구분 없이 동화를 쓴 분에게 발표의 기회를 드리고 아동문학 발전에도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앞으로도 동화마중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2 16:36

전주 예술인들의 삶을 기록하다…'2024 전주예술사' 발간

故목경희‧김남곤(문학), 故김윤환‧하수정(미술), 故이성근(국악), 조장남(음악), 김광숙(무용) 씨…. 전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라성 같은 문화예술인의 이름이다. 이들은 2012년부터 시작한 전주 백인의 자화상의 주인공으로 뽑혀 삶의 족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주문화재단에서 14년째 추진하고 있는 ‘전주 백인의 자화상’은 전주를 연고로 문화예술 진흥에 이바지한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선정된 문화 예술인은 모두 91명. 문화재단은 지난해 목경희, 김남곤, 김윤환, 하수정, 이성근, 조장남, 김광숙 등 7명의 원로‧작고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꼼꼼히 기록해 <2024 전주예술사>를 발간했다. 운명이란 참 기이한 것이다. 처음 백인의 자화상 사업이 시작됐을 당시에는 예술인의 삶과 업적을 기록하는 일이 활발하지 않았다. 예인을 기록하는 사업은 필요하지만, 구술‧채록이라는 낯선 작업이었기에 14년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매력일까. 문화재단이 발간한 <전주예술사> 책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목경희(1927~2015), 김남곤 (1937~), 김윤환(1942~2024), 하수정(1942~), 이성근(1936~2019), 조장남(1951~), 김광숙(1945~) 등 예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경지에 이른 예술가 7명에 대한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거창한 수식어나 화려한 이력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전주에서 열심히 땀 흘린 예술가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가에 대한 책이지만, 예술세계에 대한 ‘썰’이나 예술가에 대한 ‘아부’가 없다. 대신 그들이 왜 이런 작업을 ,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얘기들로 가득하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전북일보 사장 시절에는 ‘7층 기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장실이 7층이었는데 그의 책상에는 항상 빨간 펜이 있었다. 대교를 보기 위한 것. 그 시절 ”꿈에서도 대교를 본다“고 말하는 천생 기자이기도 하다. 이즈음 애써 눌러온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문학의 꿈이 먼저였을까, 기자가 먼저였을까, 자주 듣게 되는 우문(愚問)에 즉답을 피한 채 그는 미소로 답했다”( ‘김남곤 시인, 참 스승의 삶을 따라’ 중에서) 전주 백인의 자화상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100명의 예인을 기록하자는 의미가 담긴 ‘전주 백인의 자화상’은 어느덧 91명의 예술인을 기록했다. 100이라는 목표 달성까지 9명이 남았다. 그러나 백인의 자화상을 응원하는 이들은 숫자와 관계없이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의 삶이 기록되어지길 바라고 있다. 최락기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매년 쌓이는 기록 속에서 전주가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하고 품어왔다는 사실에 새삼 깊은 감동과 자긍심을 느낀다”며 “전주예술사를 통해 예술가들이 일궈 온 고귀한 흔적을 기념하고, 지역의 예술인들이 예술로 이룩한 유산을 재조명함으로써 전주의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라고 발간사를 통해 밝혔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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