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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전북문화] 익산에서 만나는 세계유산여행 "백제 왕도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접하다"

2천 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백제는 익산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백제 왕도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곳이 익산이었지요. 마을 캐던 아이였던 서동이 백제의 왕위에 올라 무왕이 되어 익산에 화려한 백제의 흔적을 남겨두었는데 그의 흔적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백제 역사 유적지 미륵사지와 쌍릉, 왕궁리 유적을 돌아보면서 익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여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 있는 미륵사지는 서쪽 석탑의 보수를 끝내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동쪽의 석탑은 서쪽의 탑이 복원 보수를 하는 긴 시간 동안 미륵사지를 묵묵히 지키고 있더니 서탑까지 가림막을 치운 온전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니 왠지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정적인 느낌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답게 미륵사지는 넓은 절터에 존재감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서탑으로 가기 전에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두 석탑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재였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된 하대석만 남아있는 석등재는 현재 2기가 남아있는데 1기는 서탑으로 가기 전 법당 터 사이에 있고 다른 1기는 중앙의 목탑 터와 법당 터 사이에 있습니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어두는데 3단의 받침돌 중 아래 받침돌만 남아있습니다. 사각의 바닥 돌 위에 놓인 아래 받침돌은 윗면에 8잎의 연꽃을 두르고 그사이에도 작은 잎을 조각해두었습니다. 연꽃무늬의 모습이 이 절터에서 발견된 연화문 수막새와 비슷하고 지금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인 것으로 미륵사의 창건 시기와 비슷한 백제 무왕 때의 작품으로 추측됩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등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등의 처음 양식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맨 윗면에는 윗돌을 꽂아두기 위한 둥근 홈이 나 있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 옥외전시관에 미륵사지에 나온 석등 부재를 활용하여 미륵사지 석등 2기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화사석과 옥개석만 원래 부재고 나머지는 새로 조성된 것이지만 완전한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석등을 제작한 나라는 백제임을 밝히고 있으며 미륵사지가 보여주는 백제문화는 소중하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복원된 서탑은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나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를 걷어낸 대로 복원하였기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습니다. 미륵사의 3탑 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도 놀랍지만 미륵사지 석탑은 고대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복원 보수를 마친 서탑을 둘러보면서 목재를 짜 맞추는 결구기법을 사용한 외양과 석실 무덤의 공간 조성기술이 그대로 사용된 1층 내부의 설명도 들었습니다. 2층 이상 내부는 벽돌탑을 쌓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의 복원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문화재의 모습 같아 더 정답게 느껴집니다. 미륵사지 석탑 옆으로 새로 조성된 국립익산박물관에서 미륵사지를 발굴, 조사하는 동안 수습된 문화재를 보기도 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많은 문화재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서탑 해체와 복원 과정에서 나온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영기의 해석은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주었습니다.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와 관련된 글은 역사책을 보는 듯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사리 구멍에서 함께 나온 금판과 은제 관모 꾸미개는 그때 당시 시주했던 것이랍니다. 사리병이나 유리구슬 등을 만들었던 기술력은 그저 감탄만 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둘러볼 만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문의처: 063)830-0900 다음 이동지는 익산 쌍릉이었습니다. 대왕릉과 소왕릉 두 능이 있는 곳으로 백제 말기 무왕(600~641)과 선화 공주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71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대왕릉의 현실은 장방형으로 벽은 화강암 판석을 다듬어 세웠으며 천장과 벽 사이에 육각형의 말각부재를 끼워 구축해 놓았다고 합니다. 소왕릉은 전면 중앙에 짧은 연도가 있으며 입구는 판석으로 막아 놓았답니다. 두 능은 모두 같은 시대의 것으로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당하였으나 부패 된 목관과 토기 등이 수습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018년에 백제문화유산주간에 대왕릉의 경우 발굴조사를 다시 시작하여 내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등의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다시 덮어 원형의 봉토만 볼 수 있습니다. 출토유물과 현실의 규모,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하여 백제 말기의 형식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왕릉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가림막에 둘러있어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소왕릉의 내부 모습이 공개되어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익산 쌍릉>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쌍능길 135-19 문의처: 063)859-5797 새로운 도약을 꿈꿨을 백제의 마지막 왕궁,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왕궁리 유적의 관람도 인상 깊었습니다.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지를 보고 놀랐던 점은 유적지의 규모였습니다. 얼마나 넓던지 백제 왕궁의 궁궐터였을 거라는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초록 잔디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왕궁리 오층석탑도 존재감이 확실했고 빈 곳으로 조성된 건물터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궁리 5층 석탑은 고려 시대 이곳이 사찰일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 백제 시대의 것은 아닙니다. 백제 궁궐이었을 당시엔 목탑이 있었답니다. 1989년부터 발굴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궁궐의 담장과 후원 영역은 2017년에 정비를 마무리하고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왕궁리 유적은 7세기 백제 무왕 당시 조성한 궁궐터로 확인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2018년에 북동편 구릉을 중심으로 조성된 후원의 네모난 연못과 구불구불한 물길, 화려한 정원석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백제 무왕이 금마저라 불리는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얼마나 준비를 했을지 건물이라고는 오층석탑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그 마음이 느껴지니 신기했습니다. 무왕은 이곳에 궁궐을 조성할 때 백제 부흥의 꿈을 꾸고 익산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꿨을 것입니다. 무왕 사후 19년이 지난 뒤 백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왕궁리 유적이 더 눈에 담깁니다. 드넓게 펼쳐진 왕궁리 유적지에서 역사적인 상상력을 펼쳤다면 실제 발굴된 유물로 백제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왕궁리 유적 전시관이었습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왕궁리 궁궐은 통일신라의 사찰이 되었고 서서히 역사의 흐름에 따라 폐허가 되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의 수도임을 증명하는 수부(首府)라고 적힌 기와와 왕궁리라는 이름, 왕궁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많은 금동제품이 이곳이 궁궐로 사용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실에 마련된 디오라마로 복원된 왕궁리 유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인증서가 오래도록 기억되었습니다. 익산의 백제유적은 오래된 백제 역사보다 덜 알려진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관심을 가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백제의 마지막 왕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왕궁리 유적>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문의처: 063)859-4632 /글사진 = 이난희(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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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6 15:25

[뚜벅뚜벅 전북여행] 금강습지생태공원, “습지에서 다양한 생태 생물을 살펴보아요”

아름다운 새들을 만난 금강습지생태공원의 풍경을 담아왔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곳, 1박2일 촬영지 이정표가 눈에 띄던 곳입니다. 탁 트인 금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운이 좋아 새들의 무리를 한껏 볼 수 있던 곳입니다. 주차장 초입에 무인 자전거대여소도 있어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면 참 좋을 만한 곳인데 굉장히 넓습니다. 멀리 금강철새조망대 타워가 있기도 하지만 생태공원을 둘러보며 철새 관찰대만 가더라도 새들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금강습지생태공원은 무더운 폭염이 이어지던 날, 들 사이에서도 살짝 구름이 햇살을 가린 날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땡볕에 공원을 보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한낮엔 좀 더운 곳이고 이른 아침이나 노을이 질 무렵 찾아 철새와 함께 여름의 노을을 즐기기 적당한 곳입니다. 습지 생태를 둘러볼 수 있는 연못과 화원, 관찰데크, 암석원 등을 지나 철새관찰대로 향하는 길입니다. 철새가 가득 찾아오는 계절엔 혹시나 이 나무 대 위로 새가 빼곡히 앉기도 해 기회만 되면 무리 지어 있는 새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망이 좋아 보이는 언덕으로 가는 길, 광복절을 앞두고 무궁화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의미심장하게 무궁화 사진도 한 장 담고 관찰데크로 올라가 봅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던 관찰 데크는 정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날이 좀 흐린 탓인지 금강의 모습이 뿌연 날이었는데 그래도 그 아래로 강과 가장 가까운 관찰데크가 보이는 명당이 있어 그곳으로 향해 봅니다. 정자가 있는 곳 주변으로 다양한 야생화 군락도 이어집니다. 계절이 맞는다면 아름다운 꽃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철새를 관찰하기 위한 습지 생태공원인 만큼 철새와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철새들이 이용하는 V자 편대비행의 장점과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철새는 보통 겨울에 이곳을 찾아 머물다 간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겨울 철새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름 철새도 있다고 합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던 관찰데크에 도착합니다. 금강을 바라보고 자리 잡은 덕에 강과 건너편 서천까지도 한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데크는 나무 틈 사이로 유관으로 볼 수 있는 곳과 이렇게 망원경이 준비된 곳이 있습니다. 금강을 찾는 철새들의 대표격은 아무래도 겨울의 가창오리들입니다. 가창오리는 강이나 호수, 저수지를 좋아하는 겨울 철새로 이곳 외에도 국내 다양한 저수지를 찾아 겨울을 나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여름 철새는 꾀꼬리, 덤불해오라기, 중대백로, 물총새, 노랑할미새, 개개비 등의 종류가 있고 그 외 텃새나 나그네새 등 다양한 새의 종류를 알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금강습지생태공원을 찾은 날엔 홀로 날아가는 새 한 종류와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새 한 종류 총 두 종의 새를 볼 수 있었지만 어떤 새인지는 알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겨울이 아니라 가창오리 때의 아름다운 모습은 엄두도 내지 않았었는데 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도 다양한 동식물의 삶의 터전이 되는 금강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용안내 - 주소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 181-1 - TEL : 063-454-3330 /글사진 = 강영훈(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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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6 15:10

국제라이온스 356복합지구 제10대 하재관 의장 “나를 위한 봉사 아닌 모두 함께 봉사하는 라이온스 만들 것”

지난달 30일 국제라이온스협회 356복합지구 총재협의회 제 10대 의장으로 하재관(61) 전 국제라이온스협회 356-C(전북)지구 총재가 부임했다. 전북을 비롯해 대전, 세종충남, 경북, 충북, 대구 등 6개 지구 국제라이온스협회를 아우르는 356복합지구에 전북 출신 의장이 당선, 취임한 것은 이번이 3번째이다. 하 의장을 만나 취임 소감과 앞으로 국제라이온스 356복합지구를 이끌어갈 포부 등을 들어봤다.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전북일보 독자들께 인사와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전북일보 애독자여러분 반갑습니다. 고향신문이라서 더욱 새롭습니다. 저의 고향인 전북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전년도에는 전북지구 제41대 총재를 역임하고 2019-2020 새로운 회기에 국제라이온스협회 356복합지구 제10대 의장으로 인사드리게 돼 무척 기쁘고 반갑습니다. 하지만 막중한 책임감이 앞서는 바입니다. -의장님과 국제라이온스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주십시오. 라이온스는 봉사하는 단체입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라이온스클럽을 가입하여 국제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나의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라이온스 활동을 하면서 봉사의 테두리에서 새로운 희망과 열정을 느끼며 숭고한 라이니즘을 구현하고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마치 마술에 걸려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삶이었죠. 또 봉사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유능한 지도자들의 조직력과 리더쉽이 함께 발휘돼 라이온 여러분과 오랜 기간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더 크고 더 넓은 봉사를 향해 주어진 기회를 356복합지구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복합지구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업무를 이어가실 예정이신가요. 356복합지구는 356A(대구)지구, 356B(대전)지구, 356C(전북)지구, 356D(충북)지구, 356E(경북)지구, 356F(세종,충남)지구 등 6개 지구로 구성돼 총 622개 클럽과 2만6000여 명의 회원들이 라이온스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이 막중한 만큼 매월 6개 지구 총재님들과 총재협의회를 통하여 봉사방향을 제시하고 각종 통계정보를 제공해 지역간 소통과 다양한 봉사활동이 벤치마킹되는 기회를 갖고 보다 효율적인 봉사활동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교육지원과 서포터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또 라이온스 각 지구가 발전할 수 있게 직접 찾아가 현장을 살피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지구 방문을 계획해 제 2019-2020 회기가 356복합지구의 대한민국 최고회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계획입니다. -전북지구 총재를 역임하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신지요. 국제재단 나레사아가월 이사장이 방한해 전북지구에서 환영회와 함께 봉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와 국제재단에 39만5000달러 LCIF기금 전달, 회기동안 1600여 명이란 역대 최대 숫자의 회원영입, 1257명을 순증하는 등 6300명의 회원시대를 만드는 기록적인 성과를 이룬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지구 원로총재님들의 훌륭한 업적을 기록한 40년사를 편찬, 발간해 6300여 라이온에게 배포한 것은 봉사인으로서 크나큰 긍지와 성취감을 느낍니다. 4억4400만원의 교부금 지원사업으로 22개 복지기관 및 단체에 효율적인 센타 운용과 수혜자들의 편리한 이동수단이 될 수 있도록 차량을 기증했으며 다양한 분야의 최고를 찾아 시상하고 위로와 격려 차원의 효열, 사회봉사, 공익, 다문화가정 등 4개 분야를 선정해 라이온스 봉사대상을 시상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명실 상부한 봉사는 전북지구가 매년 실시되는 밀라노 국제대회에서 회원순증 세계1위 시상을 3만여 세계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이뤘습니다. 총재 임기동안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영광과 많은 사랑을 받고 누렸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성원을 이제는 356복합지구에 돌려 6개지구 총재님들이 소신을 갖고 지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복합지구 운영에 중점을 둔 사항이 있다면 복합지구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분과위원 구성, 6개 지구의 집행부와 소통을 위해 총재협의회를 개최, 사무총장, 재무총장 간담회를 통한 실무를 논의하고 스포츠를 통한 화합의 장을 위해 친선골프대회를 개최할 것입니다. 특히 여성라이온 세미나 개최를 통해 여성라이온의 증가와역량강화 및 지도력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ELLI 초급지도력연수와 교육, 캠페인100운동사업 등 교육과 세미나를 강화해 세계최대 최강 봉사단체의 이념을 정립하고 어둡고 그늘진 곳에 빛과 소금이 돼 봉사의 실천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 이러한 기본 계획의 이념으로 다함께 봉사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주제를 설정해 함께하는 라이온을 만들 계획입니다. -끝으로 라이온스 회원들과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국제라이온스협회는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모토로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전 세계에서 봉사의 손길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의 역사를 아름답게 남기기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를 펼치고자 합니다. 6개 지구 총 622개 클럽의 2만6000여 명의 라이온 가족들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새 역사를 함께 써나갈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하재관 제 10대 국제라이온스 356복합지구 의장은 1958년 정읍 신태인에서 태어난 하 의장은 성공한 기업인일뿐만 아니라 항상 노력하고 진취하려는 인물로 정평이나 있다. 28살 이른 나이에 제약회사에 입사, 16년간 몸 담던 회사를 떠나 만든 지금의 의약품 유통 기업을 성공가도로 올릴때까지 바쁜 시간 중에서도 그는 봉사와 함께했다. 쉼 없이 인생을 달려오면서도 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하 의장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성공이 아닌 라이온스의 정신처럼 모두가 함께 기쁨을 나눌때, 그리고 타인을 위한 이타심에 의해 사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기에 봉사를 지속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국제라이온스 356C-(전북)지구 총재 시절 회원 수 1250여 명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중국 사천지구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의 결실을 이뤘다. 부임 한달,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하 의장은 전세계 라이온스 회원국 중 대한민국 라이온스는 전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이에 걸맞는 역할을 위한 노력과 나아가 대한민국 8만여 라이온들의 협력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는 의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엄승현
  • 2019.08.25 16:3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62. ‘기니미굴’이라 불린 라제통문

신라와 백제의 경계로 알려진 굴이 있다. 바로 무주에 있는 라제통문(羅濟通門)이다. 삼국시대에 뚫려 통로로 쓰였으며 굴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로 나뉘어 양쪽의 말씨와 풍습이 다르다 했다. 게다가 김유신이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지나던 길이라 하니 통일문이라 불리며 한때 교과서에 실려 수학여행의 코스까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굴은 삼국시대에 뚫은 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를 내며 뚫린 것이다. 라제통문의 유래가 왜곡된 것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지만, 그곳은 무주구천동의 입구로 무주구천동 33경(景)의 시점이 될 만한 곳이다. 라제통문을 제1경으로 시작하여 33경인 덕유산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곳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5도의 접경지로 유구한 역사가 깃들고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접경지이다 보니 굴을 경계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나뉜다 했지만, 실제 라제통문은 설천면 신두마을과 이남마을 사이를 잇는 통로로 모두 무주군에 속한다. 인근 냇가에 민물 게가 많아 게가 넘어가는 곳이란 기니미가 이남마을의 옛 이름이라 라제통문을 기니미굴 혹은 설천굴이라 했고, 그 굴을 낸 산은 덕유산(德裕山) 자락에 있는 석견산(일명 석모산)이다. 예로부터 덕이 많아 너그러운 산으로 불리던 덕유산은 다양한 생명을 넉넉하게 품은 산이다. 산세 따라 계곡이 발달한 덕유산 계곡의 맑은 물에는 꺽지, 금강모치, 동사리, 갈겨니 등이 서식하고 있고, 계곡 주변과 숲은 다릅나무, 전나무, 황벽나무, 구상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과 야생화들로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그중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香赤奉)의 이름은 천연기념물인 주목(朱木)에서 따왔다. 향이 좋고 나무의 껍질과 열매가 붉기 때문에 향목 혹은 적목이라 불리는 주목 7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룬 곳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중턱에는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오래전 덕유산에는 절이 많았다고 전해지나 아쉽게도 흔적만 남아 있고 지금의 백련사는 6.25 전쟁 때 소실된 절터 옆에 1960년대 새로 지은 절이다. 고려 시기 번창하여 산 내 암자를 14개나 두었고 조선시기 부휴, 정관, 벽암, 매월당 등 유명한 고승들이 머물렀다 전해지는 사찰은 고지도 속 비슷한 위치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구천동사(九千洞寺)이며 이를 백련암으로 혼용하여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무주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구천동이란 지명은 불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 일설에 구씨(具氏)와 천씨(千氏) 집안싸움을 어사 박문수가 말리면서 구천동(具千洞)이 구천동(九天洞)으로 되었다고 하지만, 조선시기 문인 임훈(1500-1584년)이 덕유산을 유람하며 남긴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는 구천 명의 성불공자(成佛功者)가 머문 땅이라 하여 구천둔(九千屯)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승려들의 거처를 진 칠 둔(屯)으로 칭한 것은 묘향산에 보관 중이던 『조선왕조실록』을 적상산사고로 이관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 마니산사고의 실록이 훼손되자 적상산 사고본을 근거로 교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에 수호사찰인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하여 승군(僧軍)을 두고 사고의 경비를 강화했던 것이다. 절이 많던 덕유산에 승군까지 합세하다 보니 구천 명 주둔설이 나왔고, 밥을 지을 때 쌀 씻은 물이 만조탄(무주구천동 제10경)까지 흘러 내려와 뜨물재라고도 했으니 구천둔에서 구천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날 만했다. 무주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백제가 한성을 잃고 공주로 도읍을 옮기며 정세가 불안해지자 가야계 소국 반파와 신라가 이 일대를 차지하기 위해 잦은 전쟁을 치렀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 전쟁은 철의 전쟁으로 칭할 만 했고, 지역에서의 철의 생산과 가공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무주현 편에서는 한 곳의 철장(鐵場)이 있어 봉촌(蓬村)에서 연철(煉鐵) 2천 2백 근을 선공감(繕工監)에 바치고, 9백 14근을 전주에 바친다라는 대목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토산으로 송이, 꿀, 인삼, 닥종이와 더불어 철을 내세운 기록이 있다. 지금도 제철유적은 구천동계곡과 얼음령계곡 등에 철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찌꺼기인 슬래그(Slag)의 흔적을 남겼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눈독을 들이는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보니 철을 비롯한 무주의 각종 임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김천역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내며 기니미굴을 뚫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매일신보>의 기사 속에는 무주 김천 간 도로 개통에 따른 효과를 홍보한 기사가 남아 있다. 오랫동안 세를 늘리며 번창했던 덕유산의 절들은 세월의 풍파 속에 소실되었지만, 라제통문은 국도 30호선을 이어주며 무주구천동 33경을 열고 있고, 백련사는 불자들의 마음과 덕유산을 찾는 방문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또한, 1910년 국권을 잃고 폐지된 적상산사고는 치열하게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융숭한 정신을 품고 새로 옮겨진 자리에 굳건히 남아 있다. 뜨거운 팔월을 지나다 보니 덕유산 넉넉한 품에 깃든 이야기와 아울러 잊지 말아야 할 일제의 수탈 흔적에 마음이 간다. 라제통문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절경과 선조의 얼이 깃든 사연은 우리를 특별한 시간으로 이끈다. 그곳엔 수려한 풍경보다도 더 귀한 사연을 지닌 무주 설천면 출신의 의병장 강무경(1878-1909년)을 기념하는 공간이 있다. 의병활동을 함께 한 부인 양방매와 부부 의병으로도 알려진 강무경은 치열한 의병활동을 이어가다 일제에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무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반딧불이를 보러 가거들랑 우리의 역사를 올곧게 다져준 선조들의 빛나는 마음도 함께 만나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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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2 16:37

[위병기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 4. 의사 출신 국내 첫 소믈리에 송호석 씨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요즘엔 크고작은 와인 바를 종종 볼 수 있다. 예전엔 부자들만 마시는 고급술이란 이미지가 강했으나 차츰 대중에게 널리 전파되고 있다. 사실 와인은 외국 술이다. 외국의 문화와 정서가 녹아 있는 술이고 그들의 음식과 맞는 술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크고작은 와인 동호회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전히 서민에겐 좀 접근하기 어려운 술임엔 틀림이 없으나 한번쯤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때마침 와인 전도사로 유명한 의사 출신 국내 첫 소믈리에 송호석 박사가 전북인 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한번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전주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송호석(55) 한국 국제소믈리에협회 고문은 익산 여산이 고향이다. 일반외과 전문의인 그는 서울 은평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림대 의대 외래교수, 성균관대 의대 외래 부교수인 그는 마스터 소믈리에로서 경희대성신여대 등에서 와인강사도 오래 지냈다. 전주 동북초, 해성중, 영생고를 거쳐 원광대 의대에 진학하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다. 수술을 주로 하는 외과를 전공한 것은 무엇보다도 가부가 확실히 결론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남부럽지 않게 살았고, 특히 평소 술을 좋아했던 그는 원광대 의대에 진학할때만 해도 세상은 늘 행복으로 가득찬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본과 1학년때 초등교사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하고, 6개월 후 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생각지도 않은 시련과 직면하게 된다. 4형제중 장남으로서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막내동생까지 보살피는 등 가장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고난에 마주친 그가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술을 끊고 교회에 다니면서 종교에 깊게 빠져들었고, 또 한편으론 의료 선교사를 목표로 뛰게된다. 마침내 대학 졸업후 그는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되는데 외과 입국식에서의 작은 사건이 또 인생을 바꾸게 된다. 외과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데 교수, 선배 전문의, 간호사 등이 총 집결한 가운데 진행되던 입국식에서 그는 맥주컵에 가득 따라주던 선배의 술잔을 받지 않고 엎어버린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당시로선 건방지기 짝이 없었으나 어느 누구도 관행을 거부하지 못하던 시절 그의 특이한 행동은 훗날 의료계에 많은 우군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30대 후반의 나이에 서울 은평에 개업한 그는 숱한 어려움에 직면해서인지는 몰라도 혈압이 올라가는 등 건강을 잃게 됐다고 한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뇌출혈로 쓰러지진 어머니로 인해 프렌치 패러독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마저 젊은 나이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와인에 큰 관심을 갖게된다.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란 육류 위주의 고지방 식사를 하는 프랑스인의 심장병 발병률이 이유 없이 현저하게 낮은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직전, 프렌치 패러독스가 소개되면서 와인 붐이 일었는데, 그 후 경기침체와 막걸리 열풍에 밀려 다소 주춤하다가 다시 꾸준히 와인 소비량이 늘고 있다. 때마침 국내에서도 와인 붐이 일자 그는 보다 전문적으로 와인을 배우기로 하고 관련 서적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게된다. 덕성여대, 경희대, 건국대 등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그는 와인을 단순히 취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의학적으로도 관심있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의사이자 와인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내린 결론이 궁금합니다. 저는 그동안 와인을 좋아하는 의사로서 와인과 건강에 대해 강의를 참 많이 했습니다. 강의 말미에 늘 하는 말은 와인도 술이니 절대 과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와인이 건강에 좋은 술이라도 취하게 마시면 그 폐해는 다른 술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요. 제아무리 좋은 술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학적 측면에서 와인으로 효과를 보려면 하루에 몇병씩 마실만큼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칩니다. 다만 십수년간 술을 단 한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원만한 사회활동을 위해 와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 자체가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에 도움이 되죠. 와이너리 투어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또다른 기쁨입니다. 와인은 술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예술입니다.좋은 음식과 품위있는 와인이 필수이나 분명한 것은 누구랑 마시는가 하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3위일체죠 △서민들에겐 여전히 와인이 좀 멀게 느껴지는데 생활속에서 좀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와인을 너무 어렵게 생각 하지 말자, 배우려 하지 말고 즐기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꼭 비싼 와인만이 유명한 와인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수많은 와인이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지요. 많은 와인 중에서 자기에게 맞는 저렴한 것을 찾아가는 게 와인의 진미를 아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사실 와인은 하나의 매개일뿐이구요, 이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술을 전혀 하지 않다가 와인을 마시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와인을 통해 알게 된 많은 사회 선후배를 갖게돼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졌고, 전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병원에 오시는 술 좋아하는 환자분들과도 충분히 교감하는게 무척 큰 기쁨이죠 △의사로서 술, 그중에서도 와인이 건강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십니까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그후 수많은 사람들이 술을 즐겼고 다양한 종류의 술이 개발됐고, 지방마다 고유의 술이 발달되어 왔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죠. 유럽연합의 조사에 의하면 18세이상 성인 남성의 90% 이상,여성의 80%이상이 술을 마십니다. 우리나라도 술 소비량이 많은 나라중 하나죠. 그런데 회식문화 중심의 술 권하는 우리 사회는 장점도 많지만 건강을 잃거나 패가망신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와인이 꼭 정답은 아니자만 소믈리에로서 이러한 술문화에 하나의 대안으로 와인을 꼽고 싶습니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과연 와인의 성분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 할지는 의문이나 취하려 마시지 말고 즐기는 술 문화를 만드는 것은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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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1 20:12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전북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 ⑥ 남원 뒷밤재~운봉초등학교

4월 25일 비 올 징후가 많았다. 아침 식사 후에 길에 올라 운봉(雲峰) 박산취(朴山就)의 집에 들어가니, 비가 몹시 퍼부어 머리를 내놓을 수 없었다. 여기서 들으니 원수(권율)가 이미 순천으로 향했다고 하기에, 즉시 사람을 금부도사(이사빈)에게 보내어 머물러 있게 했다. 이 고을의 현감(남간南侃)은 병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남원을 지나갈 무렵의 기록을 살펴보면 정유재란의 전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발견된다. 먼저 군량 확보를 위하여 3월 중순 전라도로 파견된 호조판서 김수가 남원의 곡식창고를 점검하고 봉인하였다는 난중잡록 4월 기사가 보인다. 그리고 5월 초, 구원병으로 온 명나라장수 양원이 임금 선조에게 가장 긴요한 방어 지역이 어디냐고 묻자, 선조는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남원이 요해처이니 이곳의 방어를 부탁한다라고 답하며, 김수는 계속 그곳에 머물면서 조처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선조실록 기사이다. 이렇듯 정유재란 발발조짐이 있자 조선 조정은 당초부터 왜군의 호남 공략을 대비해 남원 방어를 최우선 방책으로 삼았고, 구원병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이곳을 중심으로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을 남원의 상황에 대해서 일절 이야기를 남기지 않고 있다. 8월 초순이 끝날 무렵 남원시 뒷밤재로 들어섰다. 오전 9시를 갓 넘긴 시각이지만 대기는 이미 달구어져 있고, 배롱나무도 더욱 붉게 꽃을 피웠다. 이번 답사는 뒷밤재에서 남원시가지와 여원재 옛길을 거쳐 운봉초등학교에 이르는 약 24km 구간을 걷게 된다. 뒷밤재에서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가로수를 이루는 길을 천천히 내려서면 백의종군로는 옛 서남대 앞에서 춘향로(17번국도)와 만난다. 이곳에는 도로 오른쪽으로 인도가 잘 조성되어 있다. 폴리텍대학 버스정류소에 이르면 정류소 뒤의 오솔길로 길이 이어진다. 예전 전라선 철길이 지나가던 곳인데, 뜻밖에 사람의 길로 기능하게 되었다. 향교동으로 이어지는 만인로에서는 옛KBS방송국 고갯마루까지 약 700m를 갓길이 없는 이차선 도로로 걸어야 하니 운행에 주의를 요한다. 고개를 내려서면 이내 남원향교를 지나 축천교를 건너게 된다. 남원부 북문(옛남원역)으로 들어서던 옛길은 아파트 단지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고 하나, 옛길의 흔적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길은 향교오거리에서 옛남원역을 잇는 대체로로 복원이 되어있다. 전라선 남원역을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며 폐역된 옛남원역은 예전 남원성 북문이 있던 곳으로, 현재 문화재청의 유물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남원성은 정유재란기인 1597년 8월 16일, 만여 명의 인명이 처절하게 숨져간 가슴 아픈 역사가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만여 명의 시신을 합장한 만인의총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백의종군로는 옛남원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법원사거리(남원지원)로 이어지며, 이곳에서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외버스터미널-동림사거리를 차례로 지난다. 이곳의 도로명은 용성로인데, 남원의 오래된 역사가 서려 있는 길이다. 용성(龍城)은 남원의 옛이름이다. 동림사거리에서는 복잡한 도심 구간을 피하고 아름다운 요천을 보며 걸을 수 있도록 요천변 동림교 앞으로 길을 이어놓았다. 요천은 장수에서 발원하여 남원의 젖줄을 이루며 흐르다가 곡성에서 섬진강 본류와 만나는데, 지리산을 포함한 헌걸찬 백두대간 산자락의 물길이 모여 흐르는 강이다. 동림교에서 요천로를 따라 2km 남짓 진행하면 월락삼거리가 나온다. 백의종군로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백로로 들어선다. 도로를 따라 이백면사무소까지 약 5Km를 불볕더위와 맞서며 걸어야 한다. 이백면사무소에서 이백초등학교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니 목가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목가리(木街里)는 현재 무척 한적한 마을이나, 24번 국도가 주 도로로 기능하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원재를 거쳐 남원과 운봉-함양을 오고가던 길목으로, 주막과 양조장이 있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양가저수지에 이르면 여원재 옛길이 시작된다. 오래전, 가시나무와 넝쿨로 밀림을 이루던 이 길의 복원을 추진하며, 사람들은 길을 버렸고, 길을 스스로 몸을 감추어버렸다라며 곳곳에 파발을 띄우던 기억이 새롭다. 길은 저수지 왼쪽으로 진행하여 오른쪽 갈대밭 사이로 난 길로 이어진다. 산허리를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서면 이제부터 한동안 너르고 반듯한 오솔길을 걷게 된다. 키 큰 소나무 숲 옆의 삼거리에서는 정면 갈대밭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서서 계곡을 건넌다. 철조망과 무덤 있는 곳을 지나니 이내 휴식하기 좋은 숲속의 넓은 공간을 만난다. 쉼터 옆의 예쁜 계곡에서 오늘 폭염 속의 고행을 충분히 위로받는 듯하다. 숲길을 잠시 오르면 오래된 글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바위를 차례로 만난다. 이른바 유정과차(劉綎過此), 유정부과(劉綎復過) 각석(刻石)이다. 각각 1593년(계사년) 5월, 1594년(갑오년) 3월, 임진왜란기에 구원병으로 참전한 명나라장수 유정이 지나갔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곧이어 나주임씨삼세충의비와 여원치마애불상을 차례로 지나니, 24번 국도로 올라서며 백두대간 고개 여원재에 닿게 된다. 백의종군로는 24번국도(황산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한국경마축산고 앞의 마산교를 지나 왼쪽 과수원 농로로 이어지며 서림공원을 지난다. 옛길은 24번 국도변 향돈촌 있는 곳으로 곧장 이어졌다고 한다. 예전 운봉 객사가 있었던 운봉초등학교에서 폭염 속의 답사를 마친다. 7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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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0 17:48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영화 속 판소리 이야기

더운 여름이다. 시원한 피서지가 그리워지지만 때로는 집에서 편하게 영화 한 편 감상하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영화들이 있지만 판소리 영화 한 편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판소리 소재 영화라면 많은 분들이 우선 2015년도에 개봉한 도리화가를 떠올릴 것이다. 류승룡, 수지, 송새벽 등 호화 캐스팅의 영화다. 30, 40대 이후로는 서편제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한 극장에서 하나의 영화만 상영하는 단관 시절 1백만 관객을 돌파한 임권택 감독의 1993년 작 영화다. 하지만 영화 휘모리를 기억하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서편제 개봉 이듬해인 1994년에 개봉한 판소리 영화다. 국악계의 명인, 명창이 직접 출연한 영화로 이임례 명창과 국악인 고 이병기 선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남우 주연은 이태백 명고다. 남자 주인공 병기 역을 맡았다. 이임례 명창이 바로 이태백 명고의 어머니고 고 이병기 선생은 그의 아버지다. 여자 주인공 임례 역은 김정민 명창이 했다. 음악은 김영동이 맡았고, 작창은 김일구, 김영자 명창이 했다. 조통달 명창, 고 박병천 명인, 채향순 명무가 특별출연했다. 국악계의 명인, 명창이 대거 출연한 영화다. 영화는 1956년 진도국악원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국악원에서 도둑소리를 하던 임례가 소리 선생 병기의 눈에 들어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고 이후 소리꾼으로 성장하고 살아가며 겪는 인생역정을 그렸다. 특별출연했던 조통달 명창을 만나 영화 속 판소리 이야기를 들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 말에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실을 찾았다. 조 명창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휘모리에 출연하게 된 상황을 좀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1991년도에 전남도립국악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이임례 씨가 제게 출연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출연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나오는 시간은 몇 분 안 되어도 촬영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표정도 각양각색으로 지어야 했고, 공연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가 이리 끊고, 저리 끊고... 저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관객 표정과 연계도 시켜야 하고 되게 복잡하더라고요. 그래도 동시녹음인 점은 맘에 들었어요. 제 소리가 현장 소리 그대로 담겨서 좋았죠. △토굴에서 독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리꾼들이 실재로 그런 독공을 많이 하나요? 영화에서는 한 장면만 잠깐 나오지만 실재로는 더 많이 해요. 저도 13세 때 전국명창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변성기가 와서 목이 주저앉아가지고 그걸 극복하려고 독공을 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집 근처 서울 북악산 등에서 독공을 했죠. 산이나 폭포, 사찰 같은 데서 소리꾼들이 다양하게 독공을 합니다. △산에서 혼자 독공하면서 무섭지 않으셨나요? 한 번은 독공하려고 한 겨울에 북악산에 올라가는데, 산길에서 하얀 것이 하나 올라오는 거에요. 무서워서 백여시인가?하고 자세히 봤더니 어떤 아줌마가 소복차림으로 올라오더라고요. 산 속 약수터에 기도하러 가는 길이래요. 같이 산을 올라가면서도 무서워서 여우 꼬리 보이나 살피며 갔었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심청가 중에 심봉사가 황성 올라가는 대목에 뻐꾸기 소리가 나와요 이 대목을 연습할 때였어요. 한참 뻐꾹, 뻐꾹, 뻐뻐꾹, 뻐꾹했더니, 주변 나무에 앉아 있던 뻐꾸기가 안 가요. 제가 뻐꾹하니까, 나무에서 뻐꾸기가 뻐꾹하더라고요. 지 친구인 줄 알았나 봐요. △소리에 한이 담겨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한이 담긴 소리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인생역정이 없는 사람은 소리의 한을 담은 바이브레이션이 안 나와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 이게 한을 담은 소리죠. 스승인 박초월 명창께서는 제게 목구녘에 한을 넣어야 하는데, 너 시련이라도 한 번 당해보면 알 것이다. 애통한 마음이 뿜어져 나오는 그 소리가 한을 담은 소리다.라고 하셨죠. 한이 담긴 소리는 슬픔을 담아 심금도 울리고, 웃음도 진한 웃음을 줄 수 있어요. 한마디로 사람에게 희로애락을 모두 줄 수 있는 소리가 한을 담은 소리죠. △한을 담은 소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쉽지 않죠. 그래서 항상 소리 앞에 겸손해야 돼요. 대통령상 탔다고 목에 힘주고 그러면 안 돼요. 힘주다 보면 부러져요.(웃음) 아미를 단정히 숙이고(머리를 단정히 숙이고) 그래야 돼요. 박초월 선생께서는 늘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아미를 숙이고, 그래야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설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젊었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장단이 한을 불러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던데요? 북장단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이죠. 소리와 북장단,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일 청중, 이 고수, 삼 명창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북을 치는 고수는 소리꾼과 청중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존재죠. △전라북도립창극단을 이끌고 계신데 어떤 활동 펼치고 계시나요? 판소리 본류를 돌아보고자 작년 10월에 판소리 페스티벌을 했고 올해에도 6월에 소리문화관에서 저를 포함한 27명의 소리꾼이 정통 소리판을 열었어요. 많은 호응이 있었죠. 지금은 10월에 선보일 창극 만세배 더늠전을 준비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도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도민 여러분께 기쁨 드리는 작품을 만들고자 단원들과 함께 땀흘리고 있습니다. 도민여러분이 계셔야 판소리가 환하게 꽃필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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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9 17:09

[뚜벅뚜벅 전북여행] 고창읍성 답성놀이 “즐길 거리 볼거리 많은 고창읍성”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고창에는 읍내 중심지에 아름다운 성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고창읍성은 1453년 조선 단종 원년에 왜적의 침을 막기 위해 쌓은 성석으로 거칠게 다음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잘 보존되어있는 곳입니다. 고창읍성은 읍성이면서도 고을을 둘러싸지 않고 산의 계곡을 감싸 만든 산성으로 성밖에 외성이 없고 내성 하나만 있는 홑성입니다. 오랜 역사에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매스컴을 통해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밤이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성곽과 많은 관광객, 고창 군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창읍성 답성놀이는 윤년에 한번 윤달에 고창읍성을 찾아가 성을 밟으면서 극락왕생을 서원하는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1778년 윤삼월에 고창 현감 이항이 모양성 개축을 주도하면서 성곽 축조의 기원과 고을 보호의 방편으로 불교의 탑돌이와 다리 밟기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당산제와 같은 마을 신앙에서 유래하여 답성놀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가족 올 한해 건강하길 기원하며 답성놀이 한번 가보았습니다. 고창읍성 매표소 옆 신재효 고택 옆에서 운영 중인 고창읍성 답성놀이 하고 황금받자에요. 체험장은 월요일 정기휴무를 제외하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운영 중이에요. (우천 시는 취소!!)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나 체험접수는 4시 30분에 마감된다고 합니다. 다채롭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체험 소개해 드릴게요.! # 전통의상 입고 답성놀이 하면서 지역문화 이해하고 황금 찾자 체험코스 : 고창읍성 외곽 또는 읍성 안 소나무 길 준 비 물 : 전통의상을 입으면 황금을 뽑아라. 추첨 기회 제공 진행방법 : ①전통의상 입는다. ②답서놀이 활동지의 문제를 해결한다. ③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홍보한다. # 고창읍성 현장체험학습 프로그램 체험코스 : 고창읍성 활동지(6개 코스) 진행방법 : ①고창읍성 활동지를 받아 문제를 해결한다. ②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홍보한다. ③추첨함에서 추첨한다. #고창읍성 답성놀이 나무 핸드폰 및 가방 고리 만들기 체험장소 : 판소리박물관 주변 체험비용 : SNS 홍보시 무료 진행방법 : ①나무 위에 답성놀이 인두기로 문양 찍기 ②매듭이나 끈으로 고리를 만든다. ③체험한 사진을 SNS로 알린다. #고창읍성 답성놀이 미니어처 장승 및 구둣주걱 만들기 체험장소 : 판소리박물관 주변 체험비용 : SNS홍보 시 무료 진행방법 : ①준비된 나무 판과 나무로 장승을 만든다. ②나무 위에 답성놀이 인두기로 문양 찍기 ③체험한 사진을 SNS로 알린다. #인절미 만들어 먹고 고창 많이 알고 알리기 체험장소 : 판소리박물관 주변 인문학 거리 진행방법 : ①인절미를 만들기 ②체험한 사진을 SNS로 알린다. #조선의 관아와 옥사체험 운영일정 : 상시 체험장소 : 동헌과 옥 앞 진행방법 : 준비된 형구와 널뛰기를 옥과 동헌 앞에 설치합니다. 관광객들은 누구나 준비된 형구나 널뛰기에 참여하여 즐길 수 있습니다. #달빛향연(고창읍성에서 차와 함께 밤을) 운영일정 : 5월 18일과 9월 7일(2회) 체험장소 : 고창읍성 내 진행방법 : 보름달이 뜰 때 고창읍성 내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을 위한 격조 높고 품위 있는 티타임입니다. 누구나 준비된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입장할 때 SNS로 홍보는 기본 예의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안의 맹종죽으로 소원을 기원하는 대나무 패 적는 곳이 있어요. 특히 체험장에서 쓰이는 많은 목재나 대나무는 고창읍성 맹종죽림(대나무숲)과 자연마당에서 손질하고 나온 나무와 대나무를 체험 선생님께서 직접 자르고 손질해서 다시 재사용하신다고 합니다. 아직 글씨를 쓰지 못하는 막내는 펜으로 열심히 끄적이고 두 아이는 간절한 소원을 적어 나무에 걸었습니다. 거창한 소원은 아니지만, 소원 대나무패를 적고 거는 것만으로도 소원이 이루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마다 대나무 패에 쓰인 소원성취 글이 소박하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기원하는 문구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쓰여 있는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역사 문화의 향을 열다_고창 문화재 야행 https://www.gochangnight.co.kr/ #제46회 역사는 미래다_고창 모양성제 http://www.gochang.go.kr/moyangfestival/index.gochang 고창읍성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인 #고창 문화재 야행과 # 모양성제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오랜 역사가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전라북도 고창의 모습을 마음과 눈에 담아가셨으면 합니다. /글사진=배인숙(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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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9 16:36

취임 6개월 맞은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 정책 수립, 새만금 가시적 성과 낼 것"

새만금 사업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새만금 내부개발이 속도를 올리고 있다. 최근 국가산업단지로 전환된 새만금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업 투자 유치가 늘고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도 제 골격을 갖춰가고 있다. 이런 새만금의 변화상을 그 누구보다 몸소 느끼고 있는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은 지난 2월 취임 이후 정부 부처와 국회 등을 숨 가쁘게 찾아 새만금 사업에 필요한 법령 개정과 예산 확보에 공을 들였다. 취임 6개월을 맞은 김현숙 청장을 만나 새만금 사업의 과제와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새만금 산단의 장기임대용지 추가 확보 계획은 어떤지요. 지난해 장기임대용지 조성 이후 현재까지 총 20개사와 투자 협약을 체결했고, 이 중 10개사는 입주 계약까지 마친 상태입니다. 지난 4월부터 임대료가 인하되고 수의계약도 가능해져 관련 기업의 관심이 더욱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기업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장기임대용지를 지속적으로 확보공급할 계획입니다. 내년까지 총 100㎡의 장기임대용지를 확보할 것이며, 이 중 현재까지 66만㎡에 대한 예산을 확정해 단계적으로 매입 중에 있습니다. 장기임대용지의 투자 유치 효과가 크고 기업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는 만큼, 지방자치단체 및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계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겠습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유치에 나섰는데, 새만금이 지닌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새만금은 글로벌 초대형 데이터센터에 적합한 경쟁력 있는 입지 여건을 갖췄습니다. 또 다양한 개발 사업들과 데이터센터가 연계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합니다. 넓은 부지와 대규모 재생에너지 전력공급 환경은 20년 이상 안정적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아시아 데이터센터 허브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국가기관인 새만금청에서 국내 데이터센터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행정적 뒷받침을 한다는 점도 새만금의 강점입니다. -모빌리티 융복합 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어떻습니까. 새만금은 육해공을 망라한 3차원 공간이라는 입지적 강점과 함께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제작공정 환경이 갖춰진 지역입니다. 새만금은 테스트, 각종 모빌리티 생산 등 상용화까지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산업 생태계 입지여건이 조성돼 있습니다. 이런 천혜의 입지조건을 활용해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위그선 등 4차 산업혁명 융복합기술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관련 신산업이 창출되는 디지털인프라 기반의 모빌리티 기술 상용화 단지 구축을 통해 새만금을 우리나라 환황해권 신산업 전진기지로 구축해 나갈 계획입니다. -카지노 등이 포함된 복합리조트 개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새만금은 방조제, 고군산군도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췄고 스마트 수변도시 건설이 예정돼 관광해양거점으로서 가능성이 충분한 지역입니다. 카지도 도입은 새만금 관광활성화를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기대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는 만큼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과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우선 신시야미 관광레저용지에 호텔, 수상레저시설, 인공해변 등이 포함된 복합리조트 조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명품관광도시 새만금 조성에 대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관련 의견을 귀담아 들으며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새만금 한중경제협력단지의 활성화 방안이 있다면. 새만금 활성화를 위해선 중국 자본의 투자 유치가 중요합니다. 향후 중국의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대중국 투자 유치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주한중국대사를 만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다음달 23~25일에는 새만금에서 한중산업협력단지 관계자와 양국의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한중산단 협력교류회를 여는데 이 자리에서 새만금의 속도감 있는 변화 모습과 투자 기회를 소개할 계획입니다. -2023 세계잼버리에 대비해전북도 및 한국스카우트연맹과 협업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세계잼버리는 각 기관별로 업무를 분담해 충실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 기관의 준비 현황 공유를 위해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는 유관기관 회의에 참석했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기관간 협력 사항에 논의할 것입니다. 특히 오는 10월 출범 예정인 조직위원회가 차질 없이 구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조직위 출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업무 지원을 할 계획입니다. -새만금 내부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길 바라는 도민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 정부 들어 국정과제에 새만금이 포함되는 등 새만금 사업 추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만큼 새만금에 대한 전북도민의 기대와 관심이 커진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새만금이 환황해경제권 거점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북도, 새만금개발공사 등과 협력해 공공주도 매립과 동서남북도로, 신항만 등 기반시설 구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입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정책과 계획을 수립해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 등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스마트 수변도시,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등 내부개발 '착착' 새만금 사업은 스마트 수변도시재생에너지 클러스터기반시설 구축용지 조성 등 속도감 있는 내부개발을 축으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재생에너지사업 추진에 따른 전기자동차, 데이터센터 산업 및 자율주행, 드론, 위그선 등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 유치가 늘고 있다. 공공주도 매립의 신호탄인 스마트 수변도시 사업도 내년 말 착공한다. 새만금개발청은 새만금 국제협력용지에 2만명 수준의 자족형 스마트 수변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새만금청은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 의견을 들어 이달 중 사업시행자를 지정할 계획이다. 새만금개발공사는 내년 말 착공을 위해 환경영향평가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한다.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은 새만금개발공사와 긴밀히 협력해 신항만 및 신공항과 연계한 국제업무기능첨단산업 등 다양한 기능을 수변도시에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또 새만금지역 내 총 3GW 규모의 태양광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추진된다. 앞서 새만금청은 주민설명회와 민관협의회를 통해 지역상생방안을 마련했다. 주민참여 비율은 31% 수준이다. 해상풍력은 새만금해상풍력㈜에서 0.1GW 규모로 추진 중이며 이달 중 착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 세계잼버리 부지는 현재 실시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청은 대회 개최에 차질이 없도록 오는 2022년 8월까지 매립한다는 계획이다. 김현숙 청장은 새만금이 우리나라 미래 성장을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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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국
  • 2019.08.18 19:07

[뚜벅뚜벅 전북여행] 남원 월매야시장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할 다양한 먹거리의 즐거움과 문화가 있는 야시장”

시원하게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어도 비가 그치고 나면 이내 훅하고 달아오르는 8월의 한여름 무더위! 여러분들의 여름밤은 안녕하신가요? 얼마 전 남원 여행을 하며 월매 야시장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더운 여름이면 사실 재래시장은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마련인데요. 상설 재래시장, 오일장, 야시장 등 같은 장소에서 다양한 시장의 형태를 보여주며 활기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장이었습니다. 2018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표 전통시장 중 한 곳으로 남원 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은 남원춘향골 공설시장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며 평소에서는 이렇게 상설 재래시장으로 운영하며 매월 끝자리 4일과 9일에는 오일장이 서는 정기시장으로도 운영하는 곳입니다. 또한, 매주 주말 금. 토요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야시장이 열려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남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남원 대표 야간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월매 야시장에 가면 월매가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해 준답니다. 남원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월매랑 기념사진으로 남원의 추억을 남겨 보세요. 열심히 일하고 한주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면 주말엔 다양한 먹거리뿐만 아니라 즐길 거리도 함께 하는 월매 야시장을 방문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주말 오후 6시가 되면 공설시장 내 상가들은 의무적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문을 닫습니다. 야시장이 열리는 통로에 있는 농악기나 목재 제품 등 몇몇 가게들은 문을 닫지 않고 함께 영업하기도 합니다. 조용하던 시장에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시장통 한가운데로 매대가 줄지어 들어서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전체 25매대가 들어서 분주하게 손님맞이 준비를 합니다. 주말 야시장이 열리는 시각 오후 6시입니다. 손님맞이 준비로 상인들만 바쁜 게 아닙니다. 잠시 후 줄지어 선 매대 한가운데로 화려한 복장으로 들어서 자리 잡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연팀인데요. 동호회나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공연이나 체험 버스킹 등이 시장 안팎에서 열리고 있어 관광형 시장의 활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장단 맞추어 신명 나게 북을 두드리며 시장의 흥을 돋우어줍니다. 야시장 먹거리를 즐기며 남원 전통의 멋과 풍류도 함께 느낄 수 있답니다.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이 시장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안고 마실 나온 주민들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시장을 가득 채우며 북적북적 열기로 후끈 달아오릅니다. 태국의 팟타이와 쌀국수, 초록 초록한 조선 최고 시금치 꿀호떡, 소떡소떡, 소고기 부챗살과 새우가 만난 부채새우꼬치,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 튀김, 김밥, 닭강정 등 보기만 해도 침 꿀떡 삼키게 하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데요. 일단 한 바퀴 돌아보며 눈으로 먼저 먹어보고 선택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격도 합리적이라 한 가지로 배불리 먹는 것보다 부담 없이 이것저것 몇 가지 골라 두루 맛보는 즐거움을 누려 보아도 좋겠지요.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와 노랫말이 들려옵니다. 영원한 오빠 가수 조용필 씨가 온 줄 알았다지 뭡니까. 주인공은 공연팀이 떠난 자리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분이었는데 노래도 잘 부르고 목소리도 거의 비슷해서 깜박 속았습니다. 파도가 밀려가듯 한바탕 사람들이 지나간 뒤 시장은 한숨 돌린 듯 숨 고르기를 합니다. 야시장이 열리는 주말 전면 주차장 야외무대에서도 저녁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야시장을 방문하는 시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즉석 이벤트도 진행하고 노래자랑 버스킹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재래시장이지만 공설시장 전면과 측면에 넓은 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요. 측면 주차장은 유료이지만 저녁 7시 이후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남원은 올해 광한루 600년 기념으로 광한루원과 그 주변 남원예촌 등에서 체험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연중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곳 월매 야시장과 주변 주요 관광지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어 남원 하루 코스 여행으로 즐겨도 손색이 없습니다. 평일엔 광한루원 야경을 무료로 즐길 수 있고 주말 저녁이면 이곳 월매 야시장이 열립니다. 뜨거운 태양도 한풀 꺾이는 저녁 시간 남원의 화려한 야경을 즐기며 한여름 밤 무더위를 떨쳐 버리기에 제격입니다. - 야시장 개장 시간: 매주 금. 토요일 18:00~22:00 - 장소: 남원 춘향골공설시장 내 - 주변 여행지: 광한루원 남원예촌 춘향테마파크 남원항공우주천문대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 함파우 소리체험관 등 -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 남원춘향골 공설시장 지도 첨부 /글사진 = 배인숙(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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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6 15:37

[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전주 기록, 시간을 쓰다 - 1973년 완산중 3-4반 박병익군의 일기

<일기, 민간기록의 꽃> 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다. 꼼꼼하게 기록된 일기야말로 가장 미시적이고 구체적이며 생생한 민간 기록물이 아닐 수 없다. <전주 민간기록물로서 병익일기의 가치> 1973년 중3 박병익군의 일기는, 1970년대 초반 전주에 유입된 서민의 생활을 생생히 보여준다. 전매청에 다니는 어머니와 방직공장에 다니는 누나들, 조지 포먼 같은 권투 선수가 되고 싶은 형과 쌍절권을 돌리며 이소룡을 닮고 싶어 하던 친구들, 빈대 극장과 동그라미 빵집을 기웃거리다 삥 털리는 어리숭한 중학생 등등, 그 웃픈 시절을 되살리는 시간여행의 통로다. 병익 군의 일기에 반공의 날 책상을 한쪽으로 밀고 레슬링을 한 기록이 있다(72.11.23.). 그 기록을 보는 순간 김일의 박치기 장면이 떠올랐다. 안토니오 이노끼의 뒷머리를 거머쥐고 오른발을 높이 들어 박치기에 돌입하는 정지 화면은, 온 국민이 한 목소리 박치기 소리로 레디 액션, 한반도는 그 순간만큼은 통쾌, 상쾌, 유쾌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로 양말이 닳도록 비벼대고, 차범근의 슛 골인이 한반도 창공에 메아리칠 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면에는, 끽소리 함부로 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엄연했다. 일기장 뒤표지 반공 아는 척하는 말에 비밀은 샌다 방첩은, 당시 국가 권력의 서슬 퍼런 위협을 상징한다. 그러했다. 일기장 속 박 군의 정치 인식과 스포츠 몰입, 극장 순례, 연예 폭식은 당시 여느 중학생과 다를 바 없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은 책 속의 이야기일 뿐, 매사 주먹과 으름장이 먼저인 시절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땅에 들어설 때면 새마을운동에 힘쓰는 어른들 속에서 번영의 미래를 꿈꾸고(73.1.9.), 날이 추워지면 일선 장병과 병든 이웃을 걱정했으며(73.12.0.) 시험 때면 예비고사와 취직 준비하는 형과 누나들을 걱정하던(72.11.27.) 정다운 시절이었다. 병익일기는, 전쟁의 무자비에 비하면 그나마 좋은 세월이 틀림없는, 도시 중심의 산업 사회로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70년대를 살았던 전주 학창 시절의 자화상이다. <1973년 전주에 유입된 남원 양반> 병익군은 남원 송동 안계 사람이다. 70년대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병익군의 부모님도 자녀교육을 위해 일찌감치 전주로 이사를 온 것으로 보인다. 전주로 유입된 각처의 사람들은 주로 정류장이나 역 근처에 자리를 잡는다. 병익군의 가족은, 전주-남원 전라선을 이용한 전주역(지금의 시청 자리)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기린봉으로 나무를 하러 가고(72.11.19.), 김장하려고 덕진에서 배추 80포기를 버스에 싣고 오거리에서 내린 어머니(72.12.10.), 동부시장에서 철도(지금의 기린대로) 사이에서 깡패를 만나 돈 10원과 목걸이를 빼앗긴 것(73.1.20.) 등을 감안하면 병익 군의 집은 노송동 병무청 주변 어디쯤이 된다. 병익 군의 형 병훈은 제1회 신인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73.3.4.), 둘째 형 병배는 병익보다 한 학년 위다. 여동생 기순은 중학교 추첨 5번 전일여중에 배정된다(73.2.16.). 어머니는 남원으로 장사를 다녔는데 무거운 짐을 역까지 들어다 드리며 병익 군은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73.10.6.). <중3 남학생의 해피 데이> 73년 중3 병익 군의 목표는 고등학교 진학이다. 당시 고입 시험은 10과목이다. 과학 30점, 사회 국사, 공업기술, 국어 25점, 영어, 수학, 체육 20점, 음악, 미술 10점 그리고 반공 15점, 체력장 20점까지 해서 총 220점 만점이다. 병익 군은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에 전념하는 한편 극장과 탁구, 축구 그리고 스포츠 중계와 연예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다. 코리아극장, 아카데미극장, 삼남 극장, 제일극장, 현대 탁구장, 중앙 탁구장, 전북 탁구협회장, 역전 탁구장, 챔피언 탁구장, 중앙초, 교대부속, 풍남초 등이 놀이터인 셈이다. 추운 겨울이면 고향 동네 형, 누나들과 술 한 되, 화토 놀이도 재밋거리다. 문화방송 10대 가수 청백전(72.12.2.) 남자팀은 김상진, 나훈아, 남진, 이용복, 여자팀은 하춘하, 김상희, 조미미, 문주란, 정훈희 등이었다. 제5회 킹스컵(72.11.18.~28.), 뮌헨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73.11.)과 관련해서는 승패, 순위, 선수 특성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골 넣는 장면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되새길 정도다. 제54회 전국체전에서 전북 4위(73.10.12), 제7회 ABC 아시아 농구선수권 대회(신동파, 박형태, 이광중, 이동광, 유기형, 박한, 기로한, 이자연, 강호연)(73.12.4.), 뮌헨 서부독일 오픈 탁구 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이에리사, 박미라, 정영숙), 단식 우승(정영숙)(74.2.24.), 조지 포먼이 노턴을 상대로 2회 KO를 거두며 30전 30승 27KO(74.3.28.) 등은 일기에 기록해야 할 중요 뉴스였다. <일기로 보는 시민들의 생활상> 병익일기는 지난 2018년 10월, 제5회 전주 기록물 수집 공모전에 기증된 민간기록물이다. 일기를 공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기를 역사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우리는 일기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다양한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전주 민간기록물의 기본 취지가, 전주시민들의 삶,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기야말로 가장 훌륭한 민간기록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일기장을 공개한 박병익 선생의 용기 있는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다양한 계층의 일기가 수집되어 전주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풍성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김규남 전주시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지역문화연구공동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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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5 16:11

[뚜벅뚜벅 전북여행] 고창 학원농장, 여름 가을 꽃 잔치 여행 - 계절 꽃 인증샷 찍기 좋은 곳

매년 봄이 되면 고창 학원농장에서 청보리밭 축제가 성황리에 열립니다. 축제가 끝난 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하여 보리 수확을 하고 들판에 메밀, 코스모스, 백일홍 등을 심어 여름과 가을에 걸쳐 100일 동안 꽃구경이 가능한 100일 꽃잔치가 열립니다.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 학원농장 여름가을 꽃잔치는 2019년 7월 20일에서 10월 27일까지 고창군 공음면 학원관광농원 일원에서 열립니다. 특히 8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만발한 코스모스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고창 학원농장 행사장 식당매점을 중심으로 꽃 분포를 확인하시고 관람을 하면 좋을 듯합니다. 요새 백일홍과 황화 코스모스는 만발하였습니다. 1차로 5,000평 대지에 심은 해바라기는 지고 있지만 2차로 1,600평에 심은 해바라기는 태풍도 비켜나 꽃을 예쁘게 피우고 있답니다. 학원농장 홈페이지 (http://www.borinara.co.kr/)에서 꽃 개화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16회 학원농장 여름가을 꽃잔치 -기간: 2019.7.20.(토) ~ 10.27.(일) -장소: 고창군 공음면 학원관광농원 일원 아무리 예쁜 꽃도 시기를 잘 맞추어 가야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죠. 제가 해바라기 꽃밭을 찾았을 때는 1차로 심은 해바라기가 지고 있었는데요. 폭염으로 덥긴 했지만 중간중간 황화 코스모스랑 피어 있는 몇 송이 해바라기가 열정을 보태 주었습니다. 16,000평 규모로 심은 키 작은 해바라기가 폭염과 태풍을 견뎌내고 8월 중순에서 하순이면 만개할 듯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해바라기를 보며 사랑이 더욱 깊어지길 바랍니다. 또 해바라기 사진을 집안에 걸어 놓으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하니 멋진 사진 해바라기와 인생 샷도 찍으시면 좋을 듯합니다. 도깨비가 문을 열고 나올 듯한 그곳에 파란 하늘과 초록 벌판이 어우러져 하얗게 핀 메밀꽃이 점점이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합니다. 메일 꽃말은 연인 또는 사랑의 약속인데요. 안개꽃처럼 하얀 작은 메밀꽃과 잘 어울리는 꽃말입니다. 이곳 메밀꽃은 점차 지고 있지만, 반대편 메밀꽃은 9월 초순부터 만개할 듯합니다. 청보리가 가득했던 곳에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만개했습니다. 백일홍의 꽃말은 인연, 행복인데요. 사랑하는 이와 이 길을 걸으면 절로 행복이 찾아올 듯합니다. 트릭 아트 길에서 재미난 사진도 남겨 보면 좋을 듯합니다. 배롱나무가 백일동안 꽃이 핀다 하여 백일홍 나무라고 부르는데 백일홍과 백일홍나무(배롱나무)는 전혀 다른 종이랍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황화 코스모스의 꽃말은 넘치는 야성미인데요. 드넓은 들판을 가득 채울 기세입니다. 8월 말경이면 만개할 듯합니다. 고창 학원농장 부근 이야기 길로는 보리밭길, 가로수길, 저수지길, 보리밭 사잇길 등이 있는데요. 여름철에는 가로수와 작은 숲으로 이뤄진 가로숫길을 걸으며 전래동화 도깨비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고창 학원농장에서 30여 분 차로 가면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고창읍성이 있는데요. 요즘 어딜 가나 배롱나무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고즈넉한 고창읍성과 어우러진 진분홍 빛깔의 배롱나무꽃은 운치를 더합니다. 성곽 밟기와 산책을 즐기며 자연이 준 선물을 만끽하기 그만입니다. 고창읍성 근처 고창전통시장에는 고창의 명물 비빔 짬짜면이 있는데요. 얼마 전 배틀트립 등 방송을 타며 유명세를 더하고 있습니다. 짜장과 짬뽕을 비벼 먹는 이색적인 맛을 느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입추(立秋)가 지나서일까요? 잠깐이지만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하는 요즘 날씨인데요. 이 계절에 볼 수 있는 예쁜 꽃들 보며 몸도 마음도 힐링하세요~ /글사진=이병호(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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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2 22:00

[국산밀을 살려야 하는 이유] 수입밀 생태발자국 1만km…로컬 농산물, 환경비용 줄이는 지름길

국산밀과 로컬농산물로 만든 전주비빔빵. /제공= 천년누리 전주빵 국산 밀 자급률은 0%대이다. 2년째 계류 중이던 밀 산업 육성법 제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했고 35년 만에 밀 수매제를 법으로 명기하고 공공급식 등 집단급식에 우리밀과 밀가루를 우선 구매토록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계약재배 장려와 생산, 유통단지 지정 등의 기반 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 2018년 산 밀가루 3만톤이 여전히 재고로 남아있고 올해 6~7월에 수확된 햇밀의 부담도 커서 현장에서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3개월 후면 또 밀 파종이 시작된다. △밀 자급률 최저재배면적 감소 밀 자급률은 주요 곡물 중 최저이지만 그중에서 재고가 반절 이상 쌓여있기 때문에 사실상 0.5% 대라고 보면 된다. 농식품부는 2018년 12월에 산업 중장기 발전 대책을 발표하면서 2017년 1.7%인 밀 자급률을 2020년 5.1%, 2022년 9.9%로 높인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러나 2018년 밀 자급률은 2017년보다 0.5% 포인트나 떨어진 1.2%에 불과했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0.7%로 0%대이며 식용 밀의 재고가 2016년부터 3만톤이나 남아 있어서 식용 밀 역시 0% 대라고 보면 된다. 밀 생산 재배면적도 급감하고 있다. 밀 재배면적은 2017년 9283㏊에서 2018년 6600㏊로 29%나 줄었다. 2019년에는 재배면적이 3736㏊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2019년 밀 자급률은 0.5%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재배면적이 비슷했던 2004년(3792㏊)의 자급률이 0.5%였다. 밀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이유는 물론 소비처가 없기 때문이다. 밀 소비량은 늘어가는 데 국산 밀을 사용하는 개인과 업체들은 계속 줄어가고 있기 때문에 수확을 해도 팔리지 않으니 소득이 되지 않고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아서 농가들이 밀 재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죽어가는 국산밀을 살려야 하는 이유로 첫 번째 밀은 이미 주요 식량원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게 생존의 가치와 식량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밀은 더 많이 소비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 충분히 예측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인당 밀 소비량은 1970년대에 13.8kg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35kg으로 세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쌀 소비량과 비교해보면 1970년대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쌀 소비량은 136.4kg이었으나 69kg까지 하락했다. 곡물시장에서 유일하게 소비가 급증한 종목이 밀이다. 이렇게 밀소비량은 대폭 증가하고 있지만 그 소비량의 99%가 수입산 밀이다. 투기세력이 농산물에 배팅하면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서 농부들이 파산하기도 한고 반대로 급등해서 수맥만 명이 굶주리기도 한다. 그래서 2008년에는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식량파동이 일어났다. 국산 밀의 경우 밀가루 소비량이 4백만톤 이상이어서 쌀과 맞먹는 주식으로 소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1% 이하로만 소비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수입업체의 수입밀이 장악하고 있다. 밀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4년째 재고를 쌓아놓고 있고 우리밀을 사용하는 업체들은 계속 줄고 있고 국산밀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수입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있는데 품질이 나쁜 것도 아닌데 사용하지 않고 수입산이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컬 농부들의 소득은 떨어지고 있고 농촌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다. △우리밀 환경 살리는 지름길 국산밀을 살려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환경적 가치 때문이다. 최근 미세먼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겨울철에 자라나는 우리나라 밀은 겨울철 초록 숲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주고 미세먼지 저감효과에 큰 기여를 하는 농작물이었다. 지난 150년 동안 소비한 화석연료 대분분은 탄소 대기업 90개가 다 채굴했다. 곧 텍사코와 엑손모빌 같은 투자자 소유 기업 50개, 사우디 아람코와 페멕스 같은 국영기업 31개, 구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공기업 9개이다. 화석연료에서 배출한 배기가스는 산업시대에 대기로 배출한 탄소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와 같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 규모를 생태학적 비용의 규모로 환산하면 초원, 습지, 산호초, 산림 같은 전 세계 자연 생태계에 인간이 받는 혜택은 해다마 약 143조 달러에 이른다. 장거리 운송망, 에너지 인트라, 고속 통신 정보망으로 들어오는 각종 수입농산물은 국내에서 굳이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수입해오고 있다. 수입은 자국에서 생산될 수 없거나 생산이 힘든 경우 들여와야 함에도 재고로 버려지는 데도 들여오고 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은 로컬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다. 기후 변화가 급증하고 화석연료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자원을 낭비하면서 무역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탄소배출량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의 선의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수입해야 하지만 국내 생태계를 기반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지나친 무역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환경과 생태계가 다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몽골은 우유를 생산하는 가축이 인구보다 10배가 더 많은 데도 가게에 가면 현지에서 생산한 우유보다 유럽에서 수입한 유제품이 더 많다. 영국은 평균적으로 한 해에 수백만 리터와 밀과 양고기 수천 톤을 수출하는데 그와 거의 똑같은 양을 수입하고 있다. 말 그대로 똑같은 재화를 수출하고 수입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파는 대구 필레는 현지에서 잡은 대구를 다시 중국으로 수출해서 가공한 뒤 다시 수입한 제품입니다 생선 하나가 1만 6000킬로미터를 왕복한 셈입니다. 우리가 먹는 수입밀의 생태발자국은 엄청나게 길다. 미국, 캐나다산 1만1949km, 호주는 6948km입니다. 만 km 먼 곳에서 오는 탄소 발자국이 긴 제품이 아니라 국내에서 밀가루 1톤 49만g 한해 수입하는 4백만톤 1억9600만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킨다. 이 배출량은 1년 동안 나무를 2000만 그루를 심어야 하는 양이기 때문에 환경비용 가치만으로도 우리밀을 사용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수입밀의 수입액을 농민들의 소득과 일자리 창출 비용으로 환산하면 19억4908만6000달러 이상이다. 따라서 국내산 밀가루는 환경적 가치와 일자리 창출 가치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산 밀 등 로컬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과도한 무역경제 속에서 노동착취뿐 아니라 환경 착취는 지구 생태계가 온전히 감당하고 있고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 환원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중에 모든 사람이 날마다 먹는 유일한 재화인 식량에서만이라도 환경비용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국산밀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 /장윤영 천년누리 전주빵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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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2 19:17

[뚜벅뚜벅 전북여행] 진안고원길 9코스, "자연이 주는 산듯한 바람, 꼭 가봐야 할 전북 여름 피서지"

본격적인 여름 피서철입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시원한 여름 피서지는 없을까? 고민하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시원한 여름 피서지 추천! 기분 좋은 자연풍이 부는 전라북도 진안고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전라북도 사람들은 전라북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동북쪽 산간지방을 무진장이라고 부릅니다.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인 고원지대인데요. 고원인 만큼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낮아 여름에 가기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진안고원길은 하늘땅 고샅고샅 마을과 마을을 잇는 210km에 이르는 길입니다. 평균 고도 300m에서 100개의 마을과 40개의 고개를 지나게 되는데요. 힐링 스팟! 진안의 다채로운 매력에 푹~빠지게 되는 코스입니다. 진안고원길은 인상적인 표지판이 안내합니다. 홍삼색과 인삼색으로 구성된 표지판은 진안 특산물, 홍삼과 인삼을 나타냅니다. 1구간 : 마이산길(진안만남쉼터~마령면사무소, 12.9km, 4시간 30분, 난이도 중)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거쳐 마령면에 이르는 고원길입니다. 연인의 길은 사계절 아름다운 숲길로 이야기 가득한 은수사와 탑사, 마을 숲이 풍성한 은천마을이 있습니다. ​ 2구간 : 들녁길(마령면사무소~백운면사무소, 10.5km, 3시간 30분, 난이도 중) 진안에서 흔치 않은 들녘길로 마령들과 백운들을 바라보고 그 속을 걷는 길은 풍성함과 개운함을 동시에 줍니다. 섬진강변 솔밭거리에서 쉬어보세요. ​ 3구간 : 내동산 도는 길(백운면사무소~성수면사무소, 17.8km, 6시간 30분, 난이도 상) 내동산(백마산)을 돌아 백운면과 성수면을 잇는 고원길로 과거엔 땔나무와 먹거리 창고 역할을 했고 지금은 등산길로 찾는 내동산입니다. ​ 4구간 : 섬진강 물길(성수면사무소~오암, 12.4km, 4시간, 난이도 중) 섬진강 본류와 달길천을 따라 걷는 구간입니다. 반용재에서 보이는 풍광을 비롯해 시원함 가득한 섬진강, 강변과 골짜기 곳곳에 자리한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 5구간 : 고개너머 마령길(오암~장승삼거리, 12.3km, 4시간, 난이도 중) 적당한 높이를 가진 덕천리 고개 넷을 지나는 길로 멀리 마이산이 배경처럼 보입니다. ​ 6구간 : 전주 가는길(장승삼거리~부귀면사무소, 15.4km, 5시간 30분, 난이도 상) 진안과 전주를 잇는 곰재, 옛곰재, 적내재, 모래재, 조약재, 보룡고개 등이 과거와 현재의 기억 속에 공존하는 길입니다. 세동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지나 금강과 섬진강 물이 나뉘는 금남호남정맥을 넘습니다. ​ 7구간 : 황금폭포 하늘길(부귀면사무소~마조, 17.8km, 7시간, 난이도 중) 정자천과 황금리, 수항리, 심원재를 거쳐 마조에 이르는 길입니다. 황금폭포에 오르면 아찔함과 함께 전망이 멋진데요. 비포장 심원재에서는 자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습니다. ​ 8구간 : 운장산 넘는길(마조~삼거, 17km, 6시간 30분, 난이도 중) 정천에서 주천으로 운장산 능선을 넘는 길입니다. 8km에 이르는 임도의 정상 갈크미재는 남으로 심원재, 북으로 대불리를 볼 수 있습니다. 외처사동부터는 주자천을 따라 산재한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 9구간 : 운일암반일암 숲길(삼거~주천면사무소, 8.8km, 3시간, 난이도 하) 운일암반일암 안에 자리한 숲길을 따라 걷는 짧은 구간으로 전망대와 무지개 다리에서 운일암반일암을 바라보고 나무데크로 이어진 천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 10구간 : 용담호 보이는길(주천면사무소~용담면사무소, 15.4km, 6시간, 난이도 상) 주자천을 따라 용담호가 보이는 길로 탁조봉고개와 용강산은 길이 힘들지만 조망은 시원합니다. 용담면은 차량이동이 적은 도로 일부를 걷기도 합니다. ​ 11구간 : 금강물길(용담면사무소~안천소운동장, 16.6km, 5시간 30분, 난이도 하) 용담호가 잠긴 금강 본류를 따라 걷는 길로 용담댐 공도교를 지나 용담호변 도로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안천면소재지에 이르며 용담댐 아래 감동마을에 이르는 감동벼룻길이 샛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 11-1구간 : 감동벼룻길(용담체련공원~감동, 3.7km, 1시간 30분, 난이도 하) 용담댐에 수몰되지 않는 금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동에 이르는 길로 물길따라 섬바위를 지나면 여름철 물놀이에 좋은 감동에 이르게 됩니다. ​ 12구간 : 고개너머 동향길(안천소운동장~동향면사무소, 19.8km, 7시간, 난이도 상) 갈티재, 갈골재, 가래재, 말고개로 이어지는 동향면 고갯길입니다. ​ 13구간 : 천반산길(동향면사무소~상전면사무소, 16km, 6시간, 난이도 상) 정여립을 품은 천반산과 금강 상류를 만나는 길로 아름다운 오솔길이 가득합니다. ​ 14구간 : 진안천 물길(상전면사무소~진안 만남 쉼터, 13.4km, 4시간, 난이도 하) 상전면에서 진안천을 따라 진안읍에 이르는 길입니다. 읍내 버스터미널과 진안시장, 우화정을 거쳐 진안 만남의 쉼터에 이르는 길입니다. 진안고원길 9코스 운일암반일암 숲길은 삼거에서 주천면사무소까지 8.8km에 이르는 길입니다. 3시간이 소요되고요. 난이도는 어린 유아들도 걸을 수 있습니다. 운일암반일암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나무 데크가 잘 조성되어 있거든요. 숲길을 따라 걷는 짧은 구간으로 전망대와 무지개다리에서 운일암반일암과 천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등산로 입구 경사진 산길에서 시작해 가파른 철계단, 밧줄을 잡고 암벽을 이동하는 가파른 산행코스인 명도봉, 복두봉은 등산을 즐기시지 않는 분들은 힘드실 수 있습니다. 여러 산 등반으로 기초체력을 기르신 분들께 알맞은 코스예요. 실력파 등산가라면 안전장비 갖추시고,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안원길 9코스를 걷다 보면 산속 맑은 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진안에는 곳곳에 다슬기탕 가게가 많이 보이는데요. 맑은 물만 산다는 다슬기가 많이 잡히는 지역으로 크고 쫄깃쫄기한 다슬기를 맛보실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다슬기잡이 체험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햇빛 쨍쨍한 낮에는 보이지 않는 다슬기가 밤이 되면 바위 위로 올라와 바위에서 떼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다슬기는 야행성이라 밤에 활동한다고 해요. 가볍게 물놀이를 즐기며 다슬기잡이까지!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캠핑을 좋아하는 캠핑족이라면 주목! 진안 운일암반일암에는 무료 캠핑장이 있습니다. 운일암반일암 28경 오토 캠핑장은 평평한 넓은 면적에 텐트를 칠 수 있게 조성해 놓았는데요. 주차 공간 또한 넓어 캠핑카 주차도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전북 여름 인기 명소, 운일암반일암에서 물놀이 즐기고, 여름의 낭만, 캠핑도 할 수 있어 가족 단위 여행하시는 분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연일 갱신하는 폭염에 야외활동하기가 두려워지기도 하는데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솔~솔~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진안 고원길 따라 올 여름 피서를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사진 = 권현아(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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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1 22:18

[뚜벅뚜벅 전북여행] 남원 구룡계곡 트레킹 코스 "시원한 여름 피서지 한국의 명수 지리산 구룡계곡"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는 여름 휴가철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덥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더위를 피해 휴가를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해수욕장도 좋지만 시원한 계곡도 많이 찾으시는 것 같아 전북의 명품 계곡 중 하나인 남원 구룡계곡에서 트레킹도 하시고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가시라고 구룡계곡 소개합니다.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전라남도 구례군,경상남도 하동군,산청군,함양군 등3개 도에 걸쳐 있는 명산입니다 오늘 트레킹 할 구룡계곡은 국립공원을 보호하고 시설 설치와 유지 관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앞마당에서 출발합니다. 주차장 옆으로는 구룡계곡의 마지막 화장실과 약400년 전에 이 지역의 선비들이 용소 앞 변 바위 위에 지었으나1960년 큰비로 소실돼서 지금에 위치로 옮겨 복원한 육모정이 있습니다. 구룡계곡은 주천면 호경리에서 주천면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입니다. 수려한 산세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있으며 계곡의 끝에는 구룡폭포가 있어 매년 트래킹을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계곡으로남원8경 중1경으로 꼽을 정도로 풍경이 뛰어난 곳입니다. 구룡계곡에는9개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데 이걸 용호구곡이라고 하고 용호구곡에는 송력동,용소,학서암,서암,유선대,지주대,비폭동,경천백,구룡폭포가 있습니다.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를 출발 처음 만나는 계곡은 아홉 마리의 용이 놀았다는 곳이라 하여 용호동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용호동은 전북 완주의 양반가 출신으로 소리꾼이 되어 집안에서 쫓겨난 조선시대 판소리8명창 중의 한 분인 권삼득 선생의 유적비가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권삼득 선생은 용호동에 콩 서 말을 지고 와서 소리 한 번 하고 콩 한 알을 용소에 던지고 이렇게 콩 서 말이 다 비워질 때까지 수련을 한끝에 득음하셨다고 하네요. 남원 출신의 명창들은 대부분 이곳 용소와 구룡폭포에서 소리 공부를 하고 득음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에서 도로를 따라300미터쯤 걸어 올라오니 구룡탐방로의 시작인 구룡탐방지원센터가 있고 바로 옆으로 탐방로의 입구가 보입니다. 국립공원은 쓰레기를 돼 가져가는 그린 포인트를 운영하는데요. 그린 포인트 제도란 스스로 국립공원 내 방치된 쓰레기나 본인이 가지고 간 쓰레기를 거둬 가지고 내려오면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범국민 정화활동입니다 오늘 트레킹 할 구룡계곡은 구룡 폭포까지 총 3.4KM로 평균 경사각은12.4%,소요시간은 왕복3시간입니다 비폭교까지는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 좋으나 비폭교부터는 경사가 심해져 평소 운동을 안 하신 분들은 힘이 들 수 있으니 비폭교 까지만 다녀오셔도 좋을 듯싶네요. 트레킹을시작하기전에는15분 정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몸을풀어주고 출발하면 건강에 좋으니 꼭 준비운동하고 올라가세요. 한국의 명수는 우리나라의 원류,계곡,수질,폭포,샘물의 수질 수량 등을 첫째로 삼고,지역주민들에게 얼마나 친밀도가 있는가?또는 보전이 잘되고 있는가? 를 감안했고,물에 얽힌 유래와 전설,특이성 및 지명도 등을 검토해서 우리나라에100곳을 선정했으며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곳이라고 하네요. 전라북도에는 구룡계곡을 포함9곳의 명수가 있고 잘 보전되고 있습니다. 구룡계곡 탐방로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작은 폭포를 만나는데요. 흰 바위가 물에 깎여 반들거리고 구시처럼 바위가 물살에 패어 있어 구시소라고도 하고,스님이 꿇어앉아 독경하는 모습 같다 하여 서암이라고도 부르는 구룡구곡 중 사곡입니다. 사곡 주변은 물이 맑고 큰 바위가 많아 멋진 풍경을 보여 주는 곳입니다. 계곡 트레킹 할 때 주의할 점은 미리 기상악화를 대비하셔야 하는데요. 계곡 특성상 비가 오면 급속도로 수량이 늘어서 위험할 수 있으니 미리 기상 확인하시어 안전사고를 방지해야 하며 우산 손전등 비상약 정도는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트레킹 시에는 등산화를 꼭 신어서 갑작스러운 미끄러움에 대비를 하셔야 하고 상의는 땀 배출이 잘되고 잘 마르는 재질의 옷을 입으셔야 하며 긴 바지와 등산양말,장갑 정도는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또한, 트레킹 시에는 무리하지 말고30분마다 한 번씩 휴식을 취해 주고 충분한 수분흡수를 하시어 안전한 트레킹 하시길 바랍니다. 계곡의 물은 맑아서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이 듭니다.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혹시나 물에 들어가실 분들은 계곡 물의 온도가 낮으니 여분의 옷이나 수건 꼭 챙겨 가세요. 반월봉에서 바라보는 계곡에 물이 떨어져 물보라가 생기는 모양이 마치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같다하여 비폭동이라고 불리는 구룡계곡의 칠곡입니다. 구룡계곡의 칠곡인 비폭동을 지나면 성인들도 숨이 찰 정도로 급경사가 시작되는 계단이 나옵니다. 언덕을 오르면 구룡폭포까지는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구룡폭포입니다 폭포를 보는 순간 힘들게 걸어온 시간을 보상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구룡폭포는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두 갈래 폭포를 이루고 폭포 밑에 조그마한 연못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 두 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목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서 서로 꿈틀거린듯하여 교룡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안내에 자세히 나와 있네요. 아름다운 구룡계곡 트레킹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계곡의 맑은 물에서 한참을 쉬다 돌아왔습니다. 계곡물이 시원하다 못해 차가워서 발을 오래 담그고 있으면 발이 시릴 정도이었습니다. 물소리,새소리 들으며 한참을 앉아서 쉬다 보니 매우 좋아서 같이 간 분들과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네요. 트레킹은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이 동시에 되어 건강을 지켜주는 운동 중 하나입니다. 이번 여름 아름다운 전북의 구룡계곡으로 건강과 힐링 찾아 떠나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추천합니다. /글사진=박순배(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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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1 22:05

박수천 전북지방조달청장 "기술력·품질 갖춘 지역업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만들 것"

박수천 전북지방조달청장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박수천 전북지방조달청장이 취임한지 2개월을 맞았다.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근무를 하게 된 박 청장은 창업벤처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입 지원을 통해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현재 도내 기술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공공조달시장 판로를 확대하고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내 중소기업을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도내 창업벤처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공조달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힌 박 청장을 만나 전북조달청의 올해 사업목표와 조달업체의 물품 판로 확대 방안 등을 들어봤다. -전북 근무는 처음이신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30여 년간의 공직생활 중 처음으로 전북에 오게 돼 설렙니다. 아름다운 산과 들이 있고, 맛과 멋으로 유명한 고장인 전북에서 청장으로 근무할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한편으로는 지방청장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중한 책임감 또한 느끼고 있습니다. -전북조달청의 지난해 성과와 올해 사업목표는 무엇인가요. 2018년은 전북조달청 역대 최대의 실적을 달성한 해였습니다. 2017년 대비 약 107% 증가한 1조 4721억 원(내자구매 1조 841억 원, 시설공사 3880억 원)을 일궈냈습니다. 올해 우리 청의 연간 사업목표는 1조 4338억원으로, 조달 조기집행 등으로 상반기에만 사업목표의 64.8%를 달성했습니다. 실적 추이 분석을 해보면 금년 사업목표도 무난히 초과달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올해 중점 사업 방향은 어디에 두실 계획인가요. 혁신성장공정경제와 함께하는 조달행정을 가치로 도내 조달업체가 조달시장을 통해 진입성장도약하는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고 혁신제품의 판로를 확보해 기술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성장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이 올해의 사업 방향입니다. 올해 정부혁신 6대 역점 추진분야로 혁신적 공공구매 조달이 선정돼 향후 벤처나라를 통한 공공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벤처나라우수조달물품 등의 등록 및 판로 지원을 통해 신기술신산업 성장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또 기술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혁신 시제품을 조달청 예산으로 구매해 수요기관이 사용하게 하고 그 결과를 기업이 피드백 함으로써 상용화를 지원하는 혁신시제품 시범구매 사업(공공테스트베드 사업)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창업벤처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입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창업벤처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입 지원 방안은 앞서 말씀드린 벤처나라가 있습니다. 벤처나라에 등록된 창업벤처기업 제품은 공공조달시장 진출 상담, 나라장터 엑스포 전용 부스 제공, 언론보도, 홍보동영상, 맞춤형 기획전 등 각종 혜택이 지원됩니다. 특히 벤처나라 제도가 낯선 수요기관 및 조달업체를 위해 올 하반기 우리 청에서는 창업벤처기업 설명회, 벤처나라 등록 현장 컨설팅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공공조달시장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상하고 계신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지역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제한경쟁(지역제한)의 방법이 있습니다. 내자구매와 시설공사 계약 때 모두 활용하는 제도로서 지역제한이 가능한 계약의 경우 수요기관과의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지역제한으로 진행해 도내 업체들의 판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는 앞서 언급한 벤처나라 관련 간담회설명회 외에도 수요기관을 대상으로 한 우수조달업체 제품 설명회는 물론 조달업체들을 대상으로 G-PASS 제도 설명회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전통문화상품과 사회적기업에 대한 계약판로 지원 방안도 마련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정부구매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특히 수요기관과 조달업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고민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 업체의 실적이 늘어난다면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지역 경제도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도내 우수조달업체의 물품 판로 확대 등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요. 도내 우수조달물품 지정 업체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각종 유관기관 회의, 간담회 등을 통해 우수조달물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협조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언론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적극적으로 우수조달물품 이용의 장점과 도내 우수조달물품의 기술력 등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현재 도내 49개 업체, 60개 품명이 지정돼 있으며, 지난해 한 해 우리 청을 통해 구매한 우수조달물품 실적은 1013억 원이며, 올 상반기 실적은 약 669억 원입니다. 하반기에도 정부구매력을 십분 활용해 도내 우수기업의 판로 확대에 갖은 역량을 동원해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공공조달시장의 구매력을 활용해 기술력과 품질을 갖춘 지역 업체가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침체된 전북경제가 활성화 되는데 일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또 즐겁게 일 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전북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지역을 먼저 생각하는 조달행정을 펼치고, 도민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신뢰받는 전북조달청이 되도록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 박수천 청장은 - 조달행정 전문가창업벤처기업 공공조달시장 진입 지원 앞장 박수천(56) 전북지방조달청장은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서울 용문고와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 청장은 공직에 입문해 조달청 국제물자국 외자기기팀, 시설사업국 시설총괄과, 조달품질원 납품검사과, 기획조정관실 조달회계팀장, 인천지방조달청 장비구매과장 등을 거쳐 전북조달청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통해 내자외자시설 등 계약업무와 국유재산물품관리 등 조달업무 전반에 걸쳐 탁월한 업무수행으로 조달행정 전문가로 평가 받고 있다. 전북 근무가 처음인 박 청장은 맛과 멋의 고장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방청장으로서의 책임감도 크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전북에서 근무하는 동안 도내 기술력 있는 창업벤처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입 지원을 앞장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청장은 찾아가는 현장 행정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듣고, 혁신 가능한 조달행정을 추구해 도내 창업벤처기업 등 기술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의 공공조달시장 판로 확대와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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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원
  • 2019.08.11 17:57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 씨 “과잉기술의 시대,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지속가능한 삶은 더 멀어진다”

부안군 변산면 변산로. 아름다운 해변 마을 모항에 있는 시인의 집을 찾았던 것은 10여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두 번째 산문집 모항 막걸리 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를 펴낸 직후였는데 그는 이 책 때문에 마음고생을 단단히 겪고 있었다. 그가 나고 자란 모항과 그곳 사람들이 살아온 그만그만한 이야기를 담은 이 산문집이 나오면서 더러는 감추어두고 싶었을 이야기 속내가 들춰지자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적잖은 입담이 오고간 후유증이었다. 꽁댕잇배에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태우고 고기잡이 나섰다가 밤썰물에 밀려 삼대가 몰살한 갑열씨, 아들딸 낳고는 어쩐 일인지 3년을 폐인으로 지내다 요절한 자맥질 선수 종태씨, 어릴 때 하도 울어싸 아버지가 포대기 채로 내팽개쳐 실성해버린 고막녀, 오징개 양반이 바람피우다 들킨 사연, 남의 배를 타면서 받은 삯을 조금 때 술집에 붙어살며 술로 다 먹어조져버린 조지기, 눈을 끔쩍이는 버릇 때문에 남자를 줄포장에서부터 뒤따라오게 한 눈끔쩍이, 술 마시고 조갈증으로 오강 단지 안 오줌을 다 마시고도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는 공진씨 등 더도 덜도 아닌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꼭 그대로 펼쳐놓은 산문집의 이야기는 재미와 애틋한 감동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 들였지만 시인은 외레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겼다는 것에 마음 아파했었다.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씨(61) 이야기다. 꼭 19년 만에 시인의 집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시집과 산문집, 어린이 책을 꾸준히 내놓았던 그는 최근 네 번째 시집 <밥값도 못 하면서 무슨 짓이람>(천년의 시작)을 펴냈다. 소설가 정도상의 표현처럼 농부이며 동시에 시인인 상태로 노동하는 시인의 삶이 궁금했다. 덧붙이자면 3년 전 자칫 도감과도 같은 성격이 될 연장에 관한 이야기를 맛깔스런 글로 버무려 내놓은 훌륭한(?) 산문집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열화당)도 좀 더 듣고 싶었다. 짙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놓인 산길을 따라 들어간 그의 흙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한때는 농민운동을 이끌었던 투쟁가였으나 강하지 않고 요란스럽지도 않은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맞게 더 찬찬하고 겸손해진 듯 했다. 그가 즐겨 마시는 줄포막걸리와 방금 쪄낸 옥수수가 마당 한쪽 평상위에 놓였다. 더위가 한창인 한 낮, 한가해진 농사꾼 시인과의 인터뷰는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다. -들어오면서 보니 밭에 작물은 별로 보이지 않고 풀이 잔뜩 깔려 있던데요. 그것이 눈에 띄었군요. 올 한해 땅을 놀렸어요. 농사짓기 싫어서. -농사짓는 시인이 농사는 짓지 않고 시만 쓴다는 이야기겠습니다.(웃음) 이야기 하자면 긴데, 완전히 놀리진 않고 그저 우리 식구 먹을 만큼만 땅을 빌렸습니다. - 농사는 얼마나 짓습니까. 소규모예요. 집 앞 밭은 천 오백평정도, 일곱 마지기 조금 넘고 논은 천이백 평, 한 필지 짓습니다.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수입은 어떻습니까. 1년 수확하는 쌀이 알곡으로 2000kg 정도인데 가격으로는 형편없어요. 유기농을 하고 있는데다 농기계가 없으니 농사를 지으려면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 기계를 임대해야 하고 거름까지 모든 경비를 제하고 나면 250만 원~300만 원 정도 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식구가 1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유기농 쌀은 비싸니까 일반미를 다시 사서 먹어요. 우스운 일이죠. -유기농으로 열심히 지은 쌀은 내놓고 일반미를 사서 드시는 이 상황이 농촌 현실이겠네요. 밭농사는 유기농이 더 힘들거든요. 풀을 일일이 앉아서 뽑아야 하니까요. 가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한 살림이나 생협 등 관련 단체와 계약재배를 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시중에 내기 어렵죠. 저 같은 경우는 결국 나누어 먹거나 자가소비 합니다. -유기농으로 전환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제가 농사일에 게을렀어요. 풀을 매는 것도 그다지 열심히 하는 체질이 아니어서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는 풀매는 일로 야단을 많이 맞았죠. 결혼 전부터 농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결혼 하고 난후 정농회에 있는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기농 쪽으로 가게 된 것 같아요. -유기농을 한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잖아요.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들 무심히 해왔던 것들을 챙겨야 하고.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지지난주 금요일에 집을 나가 엿새 동안 고창 영광 함평 무안 신안 목포까지 230km를 걸었어요. 길가의 논밭을 보니 유기농을 하는 곳은 확실히 표가 나더군요. 특히 함평 쪽으로는 유기농 땅이 많았어요. 요즘의 농촌이 어떻습니까. 인구가 줄어드니 폐가가 많고 논밭은 단정하지 않죠. 또 놀란 것은 농촌 구석구석까지 뒤범벅되어 있는 쓰레기 더미였어요. 보이는 것은 논둑이든 밭둑이든 풀 약을 친 탓에 벌겋게 타있고. 가슴 아팠습니다. 유기농 하는 사람들은 절대 풀 약을 하지 않아요. 풀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 깔끔하게 깎아주죠.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풀 약으로 벌겋게 타고 메마른, 모래 먼지만 풀풀 날리는 숨도 못 쉴 것 같은 이런 땅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풀의 생리나 작물의 생리를 잘 알게 되면 그렇게 죽자 살자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유기농을 하면 숨통이 트여요. 이번에 돌아보니 더 확연히 알겠더라고요. -멀찌감치 떨어져 보게 된 땅이 많은 것을 다시 확인시켜준 것 같습니다. 농약을 안 한 논과 밭을 지날 때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푸름이 살아 있고. 우렁이가 알을 낳아 놓고. 그런 것을 보니 풀과의 전쟁이나 노동의 어려움을 떠나 결국은 유기농사가 힘들기는 하지만 자연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죠. 나를 떠나 우리 이웃을 살리고 나아가 흙과 물을 살리는 일이 되니 어렵고 힘든 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유기농의 힘은 더 넓게 봐야 해요. -3년 전쯤 펴낸 연장 이야기 산문집은 선생님이 농사일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더군요. 어떻게 쓰게 되었습니까. 간단합니다. 소중한 것들이 다 사라지잖아요. 사라진다는 것은 구시대 유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인데,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에서는 연장과 기계의 문제가 더 절실합니다. 옛날 부지런한 가장이 있는 집 괭이나 호미는 결코 녹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녹슬어버린다는 것은 수공업적인 농촌의 문화나 농촌의 생활양식이 다 없어진다는 이야기거든요. 그것이 안타까웠어요. 또 하나. 넘쳐나는 오늘의 과잉 기술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몇 평 되지 않은 텃밭은 괭이나 호미로 하면 되는데, 그마저도 트랙터가 들어가 한단 말이죠. 그런 과정이 일을 좀 편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재화의 흐름으로 보면 결국은 모두 농기계회사나 거대 기업들에 돌아가는 잇속이에요. -선생님은 농사지을 때 거의 연장을 쓰십니까. 저도 형님들이 주신 경운기 한 대와 관리기가 한 대 있어서 쓰긴 합니다. 그러나 적정기술로 보자면 저 같은 소농의 경우는 이정도면 충분한데 농사일이 꼭 그렇게 되진 않거든요. -적정기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인가요. 과잉 기술이 아닌, 쓸모 있는 만큼만 쓰는 것이죠. 적정기술의 뒷면에는 이런 것도 있어요. 대기업이 갖고 있는 농기계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그런 인식. 결과적으로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배경이죠. 최소한의 동력을 이용하는 것, 그것이 적정기술인데 그 지향은 지속가능함에 있습니다. -얼마 전 다녀오셨다는 도보여행은 어땠습니까. 생애 처음 몇 십 년 만에 벼르고 별러 다녀온 여행이었어요. 젊은 시절, 농민운동 할 때는 직책까지 맡았으니 날마다 나돌아 다녀야 했지만 여행이라고 할 수 없었죠. -맘먹고 가셨군요. 45년 농사일을 했는데, 이 밭이 고스란히 그 시간을 함께 해온 밭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돌아보니 해마다 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거예요. 봄 되면 감자 심고 고추 심고, 여름 되면 고구마 참깨 콩 심고. 규모가 크면 다른 것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규모가 있다 해도 할 수 있는 일도 없거든요. 지금은 대부분의 작물이 단지화가 안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의 농사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저 같은 소규모 농작인 경우는 결국 재래식 농사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죠. 45년 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해마다 똑같은 농사일을 45년 동안 되풀이 했다는 것인데 명색이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쓰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일들이 너무 지겨워졌어요.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그런 생각이 갈수록 더 큰 괴로움을 주더군요. -그렇게 생애 처음 떠난 여정에서 뭘 얻으셨습니까. 뭘 꼭 얻겠다고 떠난 길은 아니었으니 욕심은 없었어요. 시를 몇 편 써오긴 했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자기애가 강하고 독립심이 없었어요. 가족들과도 마음의 일체감이 없어졌다 생각하면 너무 괴롭거든요. 그래서 항상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나쁜 방식은 아닌데 자칫하면 집착이 되거든요. 이번 여행에서는 무작정 걸었어요. 조금 더 걸어 해남 땅 끝까지 갈 계획이었는데 변산공동체 학교에서 연락이 와 그날 저녁 돌아왔습니다. 엿새 동안 하루 35km나 40km를 죽자 살자 걸었어요. -잘 다녀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세상을 만나신 셈인데요. 다른 태도라기보다는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60년 살고 보니 모든 것이 바닥이 나버린 것 같은, 무엇인가 다시 새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갈등 같은 것.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제적인 부분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같은 것들이 반복되는 일상은 견딜 수 없었어요.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겠죠. 고행과도 같은 여정에서도 밝게 정리되는 몇 가지가 있었어요. 여행의 끄트머리쯤이었는데 더 이상 걷기 힘들어진 거예요.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어 면사무소에 들어가 농가 비닐하우스나 정자 같은 쉴 자리를 물었죠. 이슬만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면사무소 뒤편 일하시는 분들 쉼터를 안내해줬어요. 그때 단순한 고마움이 아니라 어떤 깨우침이 확장되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운 삶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죠. 그리고 덧붙이자면 정신의 자유랄까. 농사일에 매달린 삶이라도 어떻게 하면 정신의 자유를 가져올 수 있겠는지 길이 보여요. 좀 더 자유롭게 농사를 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시 이야기를 해보죠.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농사지으면서 시를 쓴다는 것은 확실히 특별한 일인데요. 특별한 계기라면 신동엽 시인의 시를 만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데, 우여곡절 끝에 열여덟 살 즈음 서울에 올라갔어요. 박정희 정권시절이었는데 날마다 데모와 시위가 이어졌죠. 아는 분을 통해 운동권 누나를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그 시절 여기저기서 열리는 교양강좌를 많이 듣고 다녔어요. 그 누나가 신동엽의 <금강>이라는 시집을 소개해주면서 시를 모두 베껴 가져다주더군요. 세권의 스프링노트였는데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금강 중에서도 6장 시작 부분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았어요.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자 는 그런 내용인데,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와 온갖 비리를 압축적으로 담아 놓은 시였어요. 지금 읽어봐도 그 감동이 전혀 퇴색되지 않는 시죠. 그 부분만 10부를 베껴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그러면서 나도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신동엽의 금강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군요.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처럼 분단의 문제를 일관되고 정서적으로 그리고 올곧게 다룬 시가 또 있을까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다운 시잖아요. 거기 비추어보면 농민의 모든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연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말미에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가리자면 선생님은 농사꾼과 시인, 어느 쪽인가요. 어려운 질문인 것 같으면서도 간단합니다. 농사꾼이 아니었으면 시인이 못되었을 겁니다. 지금도 저를 시인으로 부르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랫동안 농사지어온 농사꾼의 정체성으로도 걸맞지 않고 시인으로서도 자리매김 될 만큼의 좋은 시를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분명한 것은 농사꾼으로서 겪게 되는 괴로움이나 갈등을 그래도 의연하게 견뎌왔고, 또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북받쳐 오르는 것들이 있어 그것이 자연스럽게 노래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그려집니다. 더 건강한 농사꾼으로 돌아온 시인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제 시집에 칠석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딘가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내 발에 혹은 내 입속에 콩잎 깻잎 이런 것이 돋아나올 때면 내가 정말 제대로 된 농사를 다시 하고 싶다면 칠석에 내린 비 같이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에요. 그런 시간을 곧 마주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지으면서 제대로 시대를 담는 그런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박형진 시인은] 10여 년 농민운동고향 부안서 대안학교 교장도 맡아 박형진 시인(61)은 부안군 변산면 모항이 고향이다. 열여덟 살 즈음 잠깐 서울로 가서 지냈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집에서 15km나 떨어져 있는 읍내 중학교에 다니기 싫어 세 번 가출 끝에 목적을 이뤘지만 형들의 채근으로 서울의 피어선 공립학교를 한 달 남짓 다니다 그 마저도 작파하고 내려왔다. 7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를 어머니는 특별한 애정으로 키웠다. 아홉 살 늦깎이 나이에 초등학교 입학한 것도 어머니가 품에서 아들은 떼놓지 못한 탓이었다. 여덟 살 때까지 엄마 등에 업혀 저녁이면 마실을 다녔던 그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온갖 재밌는 이야기를 귀에 쏙쏙 박히도록 들었는데, 그의 산문과 시가 푸진 어투와 재미를 갖게 됐다면 그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읽기에는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농사일을 거들기 시작했는데, 그즈음 문맹퇴치를 내세워 마을에 야학당이 생기고 마을문고가 문을 열었다. 덕분에 원래 서당이 있었던 그의 집에 마을문고가 들어섰다. 그때 동네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 삼국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다섯 권씩 20권 세트로 구성된 현대문학 100권을 거의 다 읽었다. 잊고 있었던 그 소설들은 문학을 알게 되고 시를 쓰게 되었을 때 책읽기에 빠져 있었던 어린 시절을 소환해냈다. 농사일을 배우고 있던 열여덟 살, 반란이 시작됐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학교 강의록을 사서 공부 했지만 영어 수학이 그의 의지를 붙잡았다. 공부를 다시 하겠다며 서울로 갔다. 그즈음 서울 각 공간에서 운영하던 교양강좌를 찾아다니며 지식을 넓혔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운동권 누나 덕분에 자신을 시인으로 이끈 신동엽시인의 시 <금강>을 만났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꾼이 된 것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라고 생각했다.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농민운동은 중요한 사명이 되었다. 기독교농민회 전라북도 총무를 맡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던 그는 다른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과감히 15년 농민운동과 결별했다. 그때부터 농사일에 전념하면서 시도 열심히 썼다. 1992년 <창작과 비평>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됐다. 철학자 윤구병 교수가 주도한 변산공동체를 만드는데도 참여한 그는 세 딸과 아들을 모두 변산공동체 학교에서 교육시켰으며 지난해에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공동체 대안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첫 시집 <바구니 속 감자 싹은 시들어가고>를 비롯한 네 권의 시집과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등 세권의 산문집, 그리고 <갯마을 하진이>와 <벌레 먹은 상추가 최고야>등의 어린이 책을 펴냈으며 그중에서도 <연장 부리던 이야기>는 88가지 연장 이야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문화와 양식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 기획
  • 김은정
  • 2019.08.08 20:05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61. 신천습지의 나비와 가재

만경강에서 미국가재가 발견되었다. 만경강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재를 보니 만화영화 개구리 소년 왕눈이에 나오는 가재가 생각났다. 욕심 많은 권력자인 투투의 부하인 가재는 무지개 연못의 평화를 깨며 행패를 부리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특히 투투의 딸인 아롱이의 남자친구 왕눈이와 가족을 괴롭히며 투투와 함께 미움을 받는 가재는 미국가재를 닮았다. 이 미국가재가 발견된 강에는 신천습지(新川濕地)가 있다. 신천습지는 고산천과 소양천이 합류하는 완주군 삼례읍 회포대교에서 하리교까지 이어지는 약 2km 길이의 만경강 하도습지(河道濕地)이다. 신천습지는 만경강에서 생태계가 가장 우수한 곳으로 특히 중앙부에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인 하중도(河中島)는 다양한 수생식물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게다가, 신천습지가 생겨난 이유를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아픈 우리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생명을 품은 곳이라 특별하기도 하다. 일제가 만경강을 직강화하면서 그 결과로 자연이 만들어낸 습지가 바로 신천습지이다. 풍요로운 강이란 말이 걸맞은 만경강 일대는 우리나라 벼농사의 중심지였다. 그렇다 보니 일제 강점기 집중적인 수탈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목적 아래 만경강 고유의 모습도 달라졌다. 만경강을 농경지에 물을 대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일제는 구불구불한 만경강의 물길을 펴며 길고 넓은 제방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직강(直江)화했던 것이다. 고지도에 그려진 만경강의 굽이쳐 흐르던 유려한 물길과 일제 강점기 이후 모습을 비교해 보면 옛 강의 흔적과 변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직강화의 여파로 옛 물길이 지났던 곳에도 습지가 생겨났고 현재 회포대교 인근에 제방이 생기면서 소양천이 만경강으로 합류되면서 퇴적물을 쌓았고 그곳에 생물들이 자라나면서 습지 생태계가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물이 만나는 곳으로 유역이 넓은데다가 곳곳에 수중보가 조성되어 있어 유속의 변화가 심하지 않고, 습지 내에 많은 하중도가 있어 습생식물, 수생식물 등 다양한 식물종과 군락이 분포하고 있고 어류의 산란처이자 서식지로 많은 새들이 찾는 곳이다. 이 지역 일대 습지식생의 식물은 왜개연꽃과 노랑어리연꽃 등 연꽃군락과 마름모 모양의 마름, 꽃대가 나사처럼 꼬불꼬불한 나사말, 꽃이 낙지다리 같은 낙지다리, 잎이 자라등 같은 자라풀, 네 개의 잎이 밭 전(田)자 같아서 전자초라 불리는 네가래, 부들, 달뿌리 풀, 흑삼릉, 고마리, 갈대, 줄 등이 군락을 이루며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신천습지가 특별한 이유는 연잎에 가시가 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가시연꽃이 발견되었던 곳이고, 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자생하는 북방식물인 개쇠뜨기 군락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이 자생하여 군락을 이룬 곳이 바로 신천습지이다. 꼬리명주나비.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꼬리명주나비는 한때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던 나비였지만 환경오염과 농약 때문에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이 귀해지면서 희귀식물 약관심종으로 분류돼 있다. 꼬리명주나비는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0년)이 이름을 붙인 나비로 제비꼬리처럼 가늘고 긴 꼬리를 가졌고 날개가 명주의 색과 무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수컷은 회백색 날개에 검은색과 붉은 무늬가 있는 반면에 암컷은 흑갈색 날개에 노랗고 붉은 무늬가 있는 호랑나비과의 한 종류로 꼬리범나비로도 불린다. 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우아해 나비수집가들이 탐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꼬리명주나비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중국 연해주 등에 분포하며 일본에 없는 나비였는데 1980년대 일본 수집가들이 우리나라에서 몰래 이식해 가 일본 동식물 도감에 올려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에만 알을 낳고 애벌레가 쥐방울덩굴만 먹기 때문에 쥐방울덩굴이 사라지면 꼬리명주나비도 사라지게 되는 공생의 운명을 지녔다. 그 두 연이 엮여 자생하는 연유로 신천습지와 만경강 상류의 둑길에서는 쥐방울덩굴과 꼬리명주나비의 알과 애벌레를 살필 수 있는 주요 관찰지가 되었다. 신천습지는 만경강의 습지들과 더불어 습지 생태계를 형성하며 만경강의 허파로 불리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현재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진행하는 만경강 하천환경정비사업도 신천습지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고, 신천습지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 주민과 전문가들이 습지 생태계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이정현 사무처장은 생물다양성과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신천습지를 습지보호지역과 생태경관지구로 지정하여 생태테마관광의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며 생태계 교란을 자행하는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며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번식력이 좋은 외래종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고 파괴하는 주범이다.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미국가재나 황소개구리 돼지풀 등 외래종을 방치 혹은 식재하거나 풀어놓으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어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생명의 물을 머금고 있는 습지는 자연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고여 썩기도 하며 어느새 사라지는 존재이기도 하니 정성껏 지켜내야 할 대상이다. 팔월의 뜨거운 햇볕이 습지를 내리쬐는 시기,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국제정세와 일본과의 갈등으로 후덥지근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간 그러했듯이 어떠한 시련도 잘 견디며 회복했던 위대한 민족성을 믿는다. 그리고 만경강 신천습지 바닥 깊은 곳에서 때를 기다리며 있을 가시연꽃의 씨가 꽃대를 올리고 그 위에 나비가 춤을 추고 토종가재와 금개구리가 노래하는 날을 그리며 지속 가능한 습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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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9.08.08 17:30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척박한 땅에서는 거친 풀이 자란다

광주일보를 붓 머리로 하여 전북일보, 경인일보, 매일신문 등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발표하고 나서 많은 지지와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비난도 없지 않았다. 비난을 받을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잠깐이나마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생각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아야 할 생각이 개수가 준 나머지 몇 개의 생각으로 뭉쳐서 활력을 잃는 것이 더 위험하다. 문제는 지지나 비난이 어느 높이에서 일어나는가가 중요하다. 지지가 되었건 비난이 되었건, 곰곰이 생각하고 하는 것과 그러지 않고 감(감각과 감성)으로만 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생각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있다. 거기서는 지적 개방성이 최소한이나마 작동한다. 이리하여 싸움판 같은 논쟁이라도, 그것이 끝나는 곳에는 협치도 자라나고 합의도 피어나서 사회를 앞으로 미는 전진의 기운이 생겨난다. 최소한의 지적 개방성도 보장되지 않은 정도의 수준에서라면, 논쟁은 그저 비난전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한 치의 전진도 없다. 그저 제자리를 뱅뱅 돌거나 과거로 퇴행한다. 내가 보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감각과 감성의 작동 기재에 갇혀 최소한의 지적 개방성도 허용되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양분 상태이다. 한 나라 두 국민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어느 쪽에서나 내로남불을 대놓고 하고 얼굴색도 바뀌지 않는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에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이 결사적이다. 이젠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차라리 장수하는 비결이 될 지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들어주는 경우가 아주 귀하다. 대개는 어떤 주장을 들으면서 우선 자기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결정하고, 거기서 출발한다. 맘이 과학과 논리를 앞선다. 맘에 들면 맘에 들게 논리를 만들고, 맘에 안 들면 맘에 안 들게 논리를 만든다. 그러니 개념의 적용 범위를 무시하거나, 억지스럽거나, 논리적이지 않거나, 인신 공격적이거나, 프레임을 쉽게 씌운다. 국가주의니 획일주의니 패권주의니 하는 등등의 주의에 쉽게 갇힌다. 가치가 개입될 여지가 많은 철학이나 정치나 종교의 영역에서는 더욱 심하다. 지적인 훈련이 되어 있으면, 논리로 감각을 지배하지만, 지적인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감각에 논리를 복종시킨다. 감각에 논리를 복종시킨다는 말은, 논리를 편의대로 만든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적 주장에서 이런 경향이 매우 심하게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지적 독립성이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의 늪을 피하지 못한다. 고도로 지적 훈련을 받은 증명서를 가진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정치가 모든 지적 활력을 다 빨아드린 후 소진 시켜 버리는 블랙홀로 기능한다. 정치라는 블랙홀의 흡인력에 얼마나 저항할 수 있는가가 얼마나 높은 강도로 지적 훈련을 받았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이것은 지식인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지적 훈련을 받은 사람답게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각과 감성을 이겨내라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 감성이 배제된(완벽한 배제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나 한일관계에서나 건강한 논쟁을 할 토양은 사라졌다. 논쟁을 통해 무슨 조그마한 소득이나마 산출할 토양이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경제지표가 하락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문제이다. 극단적인 이전투구 판에 있으면서도 죽기 전에 바늘 끝만 한 아름다움이나마 거두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다면 이 정도까지 천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내 나라가 나는 너무 슬프고 무섭다. 앞에서 지적 훈련이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학벌 좋고 가방끈이 긴 사람들끼리의 말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지적 태도라는 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하는 가장 효율적인 한 방식일 뿐이다. 세계를 지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접촉한다. 좁고 얕게 접촉하는 사람은 넓고 깊게 접촉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피상적인 수준에서 이기고 지는 승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종합한 인생 전체에서의 승리 여부를 말한다. 지구는 평평한가, 둥근가? 배운 것을 즉각적으로 내뱉으며 둥글다고 아주 쉽게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하지도 않은 것을 자신 있게 말하기란 적잖이 조심스럽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전혀 경험되지 않는다. 감각과 본능으로 보면 지구는 평평하기만 하다. 가만히 생각하고 자세히 따져 봐야 둥글다. 지적이라는 것은 지식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고 자세히 따져 보는 능력을 발휘하는지의 여부이다. 지구를 평평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세계를 접촉하는 범위는 좁고 얕을 수밖에 없다. 가만히 생각하고 곰곰이 따져 봐서 지구를 둥근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세계를 넓고 깊게 접촉한다. 삶의 효율성이 누구에게 더 있을지는 길게 말할 필요 없다. 이렇게 보면, 지적 태도는 우선 감각과 본능을 극복하는 태도이다. 감각과 본능을 극복한다는 말은 감각과 본능을 소멸시키거나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 능력으로 감각과 본능을 정련시킨다는 말이다. 지적이면 가만히 생각하고 곰곰이 따지면서 반응하기 때문에 덜 감성적이고, 지적이지 못하면 생각을 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정련되지 않은 감각이 그대로 튀어나와 훨씬 더 감각적이며 감성적이다. 지적이면 생각을 하고, 지적이지 못하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력이 아무리 높아도 지식의 양만 넘쳐나고 곰곰이 따지는 능력이 배양되어 있지 않다면, 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학력이 낮거나 지식의 양이 적더라도 곰곰이 생각할 줄 알면 지적인 사람이다. 이것은 세계와 반응하는 기술이자 태도이다. 곰곰이 생각할 줄 알면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커지는 데도 인간은 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은가? 생각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신적인 수고이다. 힘이 든다. 감각과 감성은 정신적인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극에 맡겨 본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된다. 특정한 이념에 갇혀도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 이념만 기준으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념가들이 더 감성적인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이념이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는 점이다. 이념을 강하게 소유하면,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과거를 지키거나, 거기에 자발적으로 갇힌다는 문제가 있다. 이념적이다, 과거에 갇혔다, 생각이 없다, 감성적이다라는 표현들은 서로 매우 가깝게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만일 권력을 갖게 되면 쉽게 자기 확신에 빠진다. 자기 확신에 빠져, 자기가 만든 진실에 자기가 도취 되어 역사에 철저한 태도로 헌신한다는 느낌을 스스로 제조한다. 그래서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이념을 본다. 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는 수고를 하지 못하고, 이념으로(그것이 낡은 이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제어하려는 무모함을 행한다. 봐야 하는 대로가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보는 승리의 길을 포기하고 자아 도취에 빠져 몽환적 정치를 하게 되는 노정은 이와 같다. 일상과 현실이 아무리 피폐해져도 오히려 그 피폐함을 진실에 접근하는 통로로 간주한다. 곰곰이 생각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점은 이렇게 중요하다. 감각과 감성에 의존하는 태도를 갖느냐 지적인 태도를 갖느냐 하는 점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다. 우리의 근대 역사에는 동학 혁명이라는 불꽃같은 기록이 있다. 우리는 동학의 정신을 잘 살피고 더욱 계발해야 한다. 동학도 없었으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여기서 우선 김태유 교수의 패권의비밀; 4차산업혁명시대, 부국의 길이라는 제목을 단 유투브 영상을 소개해야겠다. 모두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김태유 교수에 의하면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에 의해 3만명 사살될 때 일본군은 한 명 죽는다. 엄청난 격차다. 무기가 달랐다. 일본군은 전설의 소총인 스나이더 소총을 자신들의 신체에 맞게 개선한 무라다 소총을 썼고, 우리는 여전히 화승총을 들었다. 무라다 소총은 엎드린 자세에서 장전하며 1분간 15발을 쏠 수 있었고, 사거리는 800미터였다. 반면 화승총은 2-3분 동안 선 채로 1발을 장전하여 쏠 수 있었고 사거리는 120미터였다. 이런 화승총에 죽창을 곁들인 무력으로는 아무리 큰 결기로 뭉쳤다 하더라도 무라다 소총을 든 적을 이길 수 없다. 결국 산업화의 결과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무라다 소총과 화승총의 차이는 산업화의 차이를 상징한다. 그럼 왜 누구는 산업화에 성공하고 누구는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세계에 반응하는 태도가 좌우한다. 무엇을 제작한다 혹은 개선한다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소지하는 태도가 아니라 불편함과 문제를 느껴서 그 다음을 알려고 하거나 설명하려고 하는 강력한 의지가 발현된 것들이다.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소지하는 태도를 가지면 곰곰이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주로 감각과 본능이나 감성을 표하는 것으로 자기 태도의 대부분을 채운다. 반면에 그 다음을 곰곰이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면, 불편이나 문제를 발견한 후 그것을 붙들고 늘어지는 수고를 스스로 감당한다. 이것이 지적인 태도이다. 스나이더 소총을 무라다 소총으로 개선했다는 것은 일단 감각과 본능을 극복하여 지적인 태도로 문제를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있던 화승총을 별 개선 없이 계속 썼다는 것은 우선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인 태도를 우리보다 먼저 혹은 더 철저히 발휘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았고,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했던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그들에 의해서 짓밟히는 치욕을 살았다. 이런 의미에서 헤르만 헤세도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알려고 하는 태도는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향한 욕망이다. 그것이 바로 지적인 태도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근본적인 힘이다. 알려고 하면(곰곰이 생각하면) 인간의 주체성을 지키며 살 것이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약 20여 년 전, 지금 일본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여러 저술을 통해 일본을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한다. 그의 성공은 바로 우리의 고통이었다. [네이버 열린논단]에서 한 미야지마 교수의 강연 내용에 의하면, 1872년에서 1876년 사이에 후쿠자와 유키치가 출간한 『학문의 권장』이라는 계몽서가 300만부나 팔렸다. 당시 일본의 인구가 3500만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조금 과장하여 당시 일본인 10명 가운데 한 명은 이 책을 읽었다고도 할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는 평가는 뒤로 하고, 그의 시대에 그가 300만의 독서 인구를 가졌다는 그 사실이 부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독서는 곰곰이 생각하는 훈련이 아주 잘 된 사람들이 남긴 결과(그것이 책이다)를 접촉하여 자신도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우리는 무라다 소총과 300만 독서 인구의 존재가 같은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300만 독서 인구와 후쿠자와 유키치는 따로 존재하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300만 독서 인구를 가진 당시 일본 사회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토양이다. 우리가 일본에 패배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 해야 지식이 나오고, 또 거기서 산업이 나오고, 국력이 커지는 이치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곰곰이 생각하는 지루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미덕이 사라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다. 그 대신 생각하는 수고를 포기한 감성의 배설과 감각적 판단이 요즘은 난무한다. 이미 소지한 각자의 신념을 지키는 일로만 세월을 보낸 지 이미 수십 년이다. 이제는 프레임 씌우기가 더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빨갱이라는 프레임 씌우기로 고통받은 적이 있던 사람들은 위치가 바뀌자 친일파라는 프레임 씌우기에 바쁘다. 이런 토양에서 건설적인 정치와 외교와 정책이 실현될 수는 없다. 척박한 땅에서는 거친 풀이 자란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이란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감각과 감성보다는 숙고와 사실에 기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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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7 20:45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휴가철 서노송예술촌에서 예술과 만난다

지난 주 전주시에서 도시재생뉴딜과 함께 문화적 도시재생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서노송예술촌을 찾았다. 지금도 선미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서노송동 일대는 전주의 중심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장 낙후된 곳이기도 하다. 성매매집결지라는 지역의 특성상 전주시 중심 시가지에서 196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공간의 특성상 지역민의 문화를 통한 삶의 질도 뒤떨어져있다. 2019년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으로 6월부터 선미촌에 자리를 잡은 전주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추진단 인디의 총괄기획자 장근범 작가와 시간을 가졌다.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 도시재생뉴딜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토정책으로 낙후된 기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해 쇠퇴한 도시를 새롭게 부흥시킨다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국토부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구도심과 노후주거지 개선을 통한 주민 생활 개선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면, 문체부에서 추진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은 지역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지역 문화 가치 발굴을 통해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 사회적 유대감 형성을 통한 공동체 회복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8년 처음 시행된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은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부산 영도구 등 4개 지역을 시범사업으로 실시했으며, 2019년에는 총 19곳으로 사업대상지를 확대했다. 전주시는 완산구 서노송동 일대 즉 성매매집결지인 선미촌 인근을 주요 사업지로 공모해 선정되었다. △전주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추진단 인디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은 지역 고유의 문화가치를 존중하고 지역민이 문화적 삶의 가치를 확립하여 문화를 통해 도시공간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주민, 예술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여 지역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전주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추진단 인디는 총괄기획자 장근범, 아트디렉터 민경박, 경영지원팀장 김지은, 교육담당 신유정, 창업담당 이정우가 팀을 꾸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추진단 인디의 뜻은 전주사투리 ...인디에서 따 왔다고 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의견을 피력할 때 전주사람들이 잘 쓰는 말 중에 하나가 그랬는디, ...했는디 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나의 의견도 나누는 접미사로 그 말에서 전주 사람들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장근범 기획자는 사투리 ,,,인디처럼 전주의 정체성을 담은 전주에서만 할 수 있는 문화예술을 담고자 인디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서노송예술촌-사람이 심고 꽃이 답하다 전주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추진단 인디가 예술가, 주민과 함께 만들고자 하는 서노송동은 어떤 모습일까? 인디는 사람이 심고 꽃이 답하다를 사업 주제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다. 사람이 심고 꽃이 답하다는 주민과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마을 스스로 지속적이고 자생적인 문화재생과 활성화가 가능한 마을로의 변화를 위해 배우고(Learn) 키우고(Grow) 만들고(Make) 나누는(Share) 네 가지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또한 5개의 주제인 인문, 가드닝, 창업, 예술, 마켓을 주민과 예술가 그리고 전문가가 결합함으로써 지속적인 문화적 도시재생의 동력을 확보하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6월 14일 사업설명회를 시작으로 5개 주제인 인문, 가드닝, 창업, 예술, 마켓 분야는 매달 지역주민과 예술가, 전문가와 함께 워킹그룹을 구성해 사업의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서노송예술촌 주민과 함께 하는 물결예술휴가주간 사업단은 주민과 시민, 예술가 등 다양한 참여자가 함께 하는 예술주간 진행으로 선미촌이라는 공간이 성매매집결지가 아닌 예술촌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물결예술휴가주간인디를 운영한다. 8월 14일 김정희 박사의 맛있는 채소 이야기 강연과 또띠아 시식회, 8월 15일 박준 시인 시 낭독회, 8월 16일 합정지구 사례 공유 워크숍, 8월 17일 서울 야시장 및 문례 문화예술촌 답사, 8월 18일 인문 예술 소모임 클럽 마주와 함께 하는 영화 토크쇼, 8월 19일 마을 주민과 박규현 예술가가 함께하는 수박 국수 잔치, 8월 20일 이영욱 작가와 함께 하는 선미촌 예술의 방향을 논의하는 묻고 답하다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업단이 저녁 7시부터 10시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지역민이 찾지 않는 서노송동의 밤을 지역민과 함께 나누는 예술 프로그램 운영으로 누구나 서노송동의 밤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서노송예술촌에 예술 심기 장근범 총괄기획자는 선미촌이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다양한 의제로 사업에 어려움이 있지만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이라는 사업의 근본 성격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민을 위한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해 사소한 것부터 주민과 예술가와 논의를 통해 결정하고 있으며, 문화적 가드닝을 통해 시민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역의 정체성과 인문적 가치를 기반으로 문화와 예술을 통해 만드는 도시재생은 어려운 과제다.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의 1년 단위로 진행되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1950년대 이후부터 전주에 가려진 공간으로 존재했던 선미촌이 서노송예술촌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그곳이 문화와 예술을 통한 예술촌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70여년간 선미촌으로 불려졌던 물리적 시간을 간과할 수는 없다. 서노송예술촌이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조금은 느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고형숙 전주 부채문화관 기획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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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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